'블로그'에 해당되는 글 30건

  1. 2015.05.04 박종훈교육감 간담회에서 목을 길게 뺀 사연 by 파비 정부권
  2. 2014.12.27 박종훈은 순진한 교육감, 아니면 천생 교육자? by 파비 정부권
  3. 2014.06.07 블로그 재개를 결심하며 by 파비 정부권 (2)
  4. 2013.06.10 정치인블로그, 하려거든 빨리 하세요 by 파비 정부권
  5. 2011.12.17 블로그 글쓰기에 대한 짧은 소견 by 파비 정부권 (7)
  6. 2011.09.17 없는놈들이 나라걱정 더 많이 하는 이유는 뭘까? by 파비 정부권 (2)
  7. 2011.05.23 당분간 블로그 운영 못합니다 by 파비 정부권
  8. 2011.01.28 올릴 게 없어서 올리는 썰렁한 이야기 by 파비 정부권 (3)
  9. 2011.01.16 갱상도블로그, 추천박스 좀 치워주시면... by 파비 정부권 (14)
  10. 2011.01.08 블로그 방문자수, 통계가 이상한 것 같아요 by 파비 정부권 (3)
  11. 2010.10.14 블로그 하다보니 신문사 인터뷰도 해보네요 by 파비 정부권 (15)
  12. 2010.03.22 경블공, 4월 블로그강좌에 초대합니다 by 파비 정부권 (10)
  13. 2010.03.21 티스토리 베타테스터가 되어 보니 by 파비 정부권 (1)
  14. 2010.03.14 내가 티스토리 베타테스터가 되려는 이유 by 파비 정부권 (4)
  15. 2009.11.26 블로거와 간담회 나선 작은도서관의 희망만들기 by 파비 정부권 (6)
  16. 2009.11.01 올챙이 블로그 1년만에 블로그 강사가 되어보니 by 파비 정부권 (20)
  17. 2009.10.31 새 블로그 이름, 추천 좀 해주세요 by 파비 정부권 (28)
  18. 2009.09.29 블로거10만양병설? 시민운동의 대안은 블로거운동 by 파비 정부권 (11)
  19. 2009.09.28 '아부해' 보던 우리 딸, "여자의 직감?" by 파비 정부권 (12)
  20. 2009.09.01 블로그 개설 1주년을 맞아 그날을 추억함 by 파비 정부권 (15)
  21. 2009.08.26 독설닷컴, 블로그 고속성장 비결은? by 파비 정부권 (17)
  22. 2009.07.29 선덕여왕 인기 배후엔 블로그도 있다 by 파비 정부권 (12)
  23. 2009.07.07 마산시국미사, 가두행진 나선 사제들과 수정만 할머니들 by 파비 정부권 (12)
  24. 2009.06.25 인기블로그가 되는 비결? "댓글부터 다세요" by 파비 정부권 (24)
  25. 2009.06.19 100분토론 출연 교수들, 팔아먹을 양심은 있나 by 파비 정부권 (34)
  26. 2009.04.29 블로그와 댓글, 잘못 사용하면 인격장애 일어날 수도 by 파비 정부권 (12)
  27. 2009.03.26 알라딘-티스토리 서평단에 합격했어요! by 파비 정부권 (5)
  28. 2008.12.06 블로그와 술 마시기 by 파비 정부권 (14)
  29. 2008.10.27 부산 블로거를 염탐하다 by 파비 정부권 (22)
  30. 2008.10.14 블로그로 프리젠테이션도 할 수 있었다 by 파비 정부권 (18)

교육감을 만났다. 사실 나 같은 평민이 교육감을 만난다는 것이 그리 평범한 일은 아니다. 교육감은 경남도민이 직접 선거로 선출한 기관장이니 도지사와 같은 급이다. 그러므로 그를 만난다는 것은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교육감과의 블로거 간담회에 초대됐을 때 약간 으쓱하는 기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물론 블로거 간담회에 초대된 것이 특별히 잘났거나 다른 인연이 있거나 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내가 간담회의 주체인 <경남블로그공동체>의 회원이기 때문이지만.


 내 자리는 교육감 오른쪽 끝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만 자리가 안 좋고 다른 이들은 괜찮았던 듯싶기도 하다. ㅠ


간담회는 7시부터지만 나는 예의를 차려 30분 일찍 도착해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교육감을 만나면 무엇을 묻는 게 좋을지 머릿속으로 따져보았다. 박종훈 교육감은 직선제가 실시된 이래 첫 진보교육감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호의적인 기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내 기대는 처음부터 어그러졌다. 정시에 교육감이 도착하고 일일이 악수를 나눈 다음 자리에 앉았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예의를 차린다고 제일 먼저 도착해 맨 끝자리에 앉아 있던 덕분에 눈을 맞추는 것도 어려웠다. 눈을 보지 못하니 질문하기도 어려운 것은 불문가지.

 

왜 이런 식으로 자리배치를 했을까. 간담회 내내 그 생각 때문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간담회가 열린 식당은 공간이 충분해서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자리를 만들 수가 있었다. 내 생각엔 T자형으로 배열하면 좋을 것 같았다. T자의 가운데 자리에 교육감이 앉고 그 양 옆과 앞쪽에 블로거들이 죽 앉는 것이다.

 

자나 U자도 괜찮다. 아무튼 교육감에게 질문을 하거나 그의 말을 들으려면 목을 앞으로 길게 빼고 디스크 수술한 허리를 왼쪽으로 틀어야 했으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내가 담당자였다면, 최소한 1시간 전에 먼저 와서 현장을 살펴 가장 좋은 자리배치를 하려고 고민했을 것이다.

 

간담회 진행 방식도 매끄럽지 못했다. 물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고 격식에 얽매이는 것보다 더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데에는 공감한다. 그렇더라도 사회자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주 만나는 친구 사이도 아니고, 어쩌면 어려울 수도 있는 교육감인데 적절한 리드를 해줘야 편안하게 대화가 오고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예전에는 이런 행사를 하기 전에 미리 질문도 구하고 인터뷰 대상자의 활동이나 정책 등 정보도 돌려보고 그렇게 했던 것 같은데 그 점도 아쉽다. 이것은 교육청 담당 공무원(혹은 비서)의 책임만은 아니다. ‘교육감과의 블로거 간담회는 엄밀히 말해서 경남블로그공동체가 주체이며, 마땅히 책임도 져야 하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우리 스스로 그동안 너무 소통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을 해본다. “아무리 좋은 조직도 훌륭한 리더가 있어야 잘 굴러간다!”는 말이 있지만, 반대로 아무리 리더가 훌륭해도 조직이 소통이 안 되고 화합이 안 되면 어림없는 것이다.

 

처음 당선된 이른바 진보교육감을 만난 이야기를 칭찬과 격려 일색으로 시작하지 못해 죄송스럽기 하지만, 이번 기회에 의전과 사전 준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박종훈 교육감의 건투를 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홍준표 지사처럼 싸우는 방식은 마뜩찮다. 교육운동가로서 정치인처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도민들도 교육감에 대한 기대가 정치인처럼 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홍준표 지사처럼 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 거리에 나가서 대중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연대해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같은 것을 청구했느냐는 다소 날선 물음에 박종훈 교육감은 이렇게 말했다. 실제 인상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와는 달라도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홍준표가 불도저에 늑대 같은 야성을 가졌다면 그는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이며 이를 그리는 화가의 마음을 가졌으리라 생각했다.

 

홍준표 지사와 싸우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선자 시절에도 그런 생각 못했고…… …취임 후에 바로 도지사 예방하러 갔다. 사적인 면담하면서 자신이 진보적인 입법 활동 하였던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 당시에도 급식비 지원에 대해서는 이견이 좀 있었다. 오늘은 급식비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하고 덕담을 나누며 환담하고 왔다. 행정가로서 지사로서의 역할과 교육감의 역할이 부딪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못했다.”

 

교육감에 당선되고 인수위를 구성할 때 이미 홍준표의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사람들이 많이 했는데 이에 대한 대비에 소홀했던 거 아니냐는 물음에도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싸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니, 지사와 교육감의 역할이 부딪히는 경우가 있을 거라는 예측 자체가 아예 없었다니, 얼마나 순진한가!

 

그럼에도 그것은 그의 철학이었으며 확고한 신념으로 그를 지배하고 있는 듯했다. 교육감은 행정가이며 정치가인 지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여전히 믿고 있었다. 교육감 역시 행정가이며 정치가로서의 역할과 임무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본성은 교육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그는 이미 무상급식 문제에서 보듯이 고고한 교육자의 자질만 내세워서는 결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이런 자리, 블로거와 교육감의 대화 같은 자리도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도의회에서, 의회에서 사실 관계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봉쇄되는 경험…… 힘으로 엎어버리는 경험을 당하면서, 소시민들은 어디에서 하소연 할 것인가? 의회는 민원 창구, 판관 포청천의 역할도 해야 하는데……의회가 (이다지도) 파쇼적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 (그래서) 거칠게 항의한 적도 있다. 급식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교육감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을 알리고 싶은 생각에서 블로거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사실관계보다는 누구 스피커가 더 큰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 스피커의 크기로 골목골목 찾아다니다 지쳐서 자빠졌다.”

 

그렇다. 문제는 스피커이며 이 스피커의 크기가 대세를 결정한다는 것을 그는 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좀 늦은 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진한 교육감, 천생 교육자에서 그는 현실감각을 갖춘 교육행정가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홍준표의 스피커에 비해 그의 스피커는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었다. 그래서 평범한 도민들의 귀에 급식은 교육이라는 그의 소신은 들리지 않고 예산 받았으면 감사 받아야지라든가 무상급식은 후세대들에게 빚을 안겨주는 것이라는 따위의 말만 들리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의료원에도 홍준표 지사의 주장을 담은 경남도청 홍보물이 가득 쌓여 있었다. 오호, 통제라!


Posted by 파비 정부권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4~5년 전부터 블로그를 거의 운영하지 않다가 2~3년 전부터는 폐업 비스름한 상태에 빠진 듯하다.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려고 한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고심인데, 나름대로 플랜을 가지고 썼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생각은 가지고 있다. 원래 길게 구질구질 쓰기를 좋아하니 시리즈로 써도 좋겠다. 아무튼 게으름 피지 말고 제대로 했으면 좋을 텐데 이거 또 작심삼일 아닐지 모르겠다. 뭐든 조직이 있어야 꾸준하게 할 수 있는 법인데 현재는 그런 게 내게 없다. 대략 4~5년 그 이전에는 아마도 조직 같은 게 있었다. 충성심도 있었고. 지금은 그게 없으니 문제다. 아무튼 글은 자꾸 써야 실력이 줄지 않고 느는 법이다. 아무리 좋은 칼도 안 쓰면 녹슬게 돼 있는 거고 차도 안타고 세워두면 퍼지는 법이다. 그런 차원에서 남들 의식하지 말고 그냥 내 기분에 족한 글부터, 아니 그런 글만 우선 쓰도록 하자. 이윤기 파블처럼 매일 쓰겠다는 결심은 못하겠고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쓰는 것으로 결심하고 시작하자. 결심서약서 조인. .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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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6월 10일이니 지방선거가 1년 남았네요. 그런데요. 이미 늦었지만 오늘 이 시간 이후라도 당장 블로그 만들 결심이 서지 않는 정치인들은 그냥 포기하심이 좋을 거 같아요. 페북, 카스 등 소셜네트워크는 모르겠지만 블로그는 최소한 1년 이상 공을 들여야 하거든요. 

오늘 만든다고 당장 내일부터 손님 오는 거 아닌 게 블로그에요. 하루에 천명, 이천명, 또 만명, 이만명 온다는 블로그들, 꾸준한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거거든요. 괜한 헛수고만 하게 된다는 점 명심하시고 하려거든 6월 안으로 하시고, 6월 지나면 기억에서 잊어주세요. 

지난 선거 때 봤더니 쓸 데 없는 헛수고 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요. 그런 분들은 시장통에 부지런히 다니시면서 악수를 한번이라도 더 하시는 게 낫다는 거지요. 괜히 헛고생 하지 마시고 ^^

ps1;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자기활동 알린다는 사명감을 갖고 꾸준히 4년 쓰는 정치인 한명도(아무도 없는 건 아니죠. 노회찬의 난중일기도 있고 또 누구도 있고, 있죠) 없다는 거 너무 슬픈 일입니다. 별로 힘든 일도 아닌데, 잘 쓸 필요도 없고,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말 간단하게 요약해서 페북에 쓰듯이 하면 될 것을. 오늘 제가 여기다 쓴 내용량 정도면 블로그 두 페이지는 되겠어요. 페북에 링크 걸어도 되고. 암튼 내년 1월 넘어서면 블로그 하겠다고 설치는 분들 생기고 심지어는 선거 보름 남겨두고 블로그 만든다고 땀 빼는 분들도 있는데...... 올해는 제발 그런 헛공사에 시간낭비 말았으면 하네요. ~~~~~~~~~~~~

ps2; 물론 필요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예외고요. 그런 분들은 당연히 선거 때도 관심 안 갖겠죠? 그럼 되는 거에요.

ps2; 정치인들이 제 보기엔 너무 쓸 데 없는 데 바쁘신 거 같아요. 블로그는 그에 비하면 자기피알도 되지만 자기를 뽑아준 유권자들에게 좋은 서비스도 되는 거고요, 알 권리 이런 거까진 말씀 안 드리겠어요, 신문방송보다 더 효과도 있고 뛰어난 미디어란 점도 참조하셨음 합니다만.  

※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블로그에도 동시에 (조금 첨가해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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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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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블로거들끼리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가질 때면 듣는 말이 있습니다. “파비님은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시나요? 술술 읽히는 게 보통 실력이 아닌 거 같아요.” 심지어 글쓰기가 밥벌이인 어떤 분은 “황구라보다 더한 구라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 뿌듯하기도 합니다. 내 맘속은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는 글을 잘 쓴다는 칭찬에 대한 긍정이요, 다른 하나는 그렇게 칭찬받을 정도는 아니라는데 대한 불안감입니다.

사실, 블로그를 하기 전에는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여태껏 글쓰기에 대한 정규적인 교육을 받아본 바가 없습니다. 중학교 때 ‘작문’ 과목이 있었던 기억이 나지만 제대로 배우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연합고사’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과목(국어의 부속과목이었던 듯)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지금처럼 대학입시에 논술이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지만 ‘작문’ 시간은 피곤한 선생과 학생이 함께 쉬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기계공고는 일반 공고와도 달라 수업시수의 절반이 실습(공장에서 쇠를 깎아 공작물을 만드는 훈련)이었으며 이론수업의 절반이 또 전기일반이니 재료역학이니 하는 실기전공과목이었으므로 글쓰기에 도움이 될 만한 공부는 하지 못했습니다.

십여 년을 공장에서 쇠를 깎는 일에 종사하던 내가 서른 몇 살이 되어 전문대학에 진학해 세무회계학을 공부했는데 이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늘그막(?)에 대학에 들어간 목적은 공부가 아니라 인맥형성이었습니다.

야간수업을 마치고 술집에서 회포를 푸는 일이 더 중요했으니 이 시기가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 싶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냐? 술술 잘 읽힌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을까요?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그래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별다른 교육도 받지 않았고 경험도 없던 내가 어떻게 이만큼이라도 글쓰기를 할 수 있었을까? 아주 잘 쓴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영 못쓰는 것도 아니니 신기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 결론 중 한두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공상과 사색을 즐겨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걸으면서 혹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의 바다에 빠져 헤엄치는 것은 살아가는 큰 즐거움입니다.

둘째는 책읽기를 매우 좋아하는데 특별히 마음에 드는 책은 매우 천천히 그리고 반복해서 읽는다는 것입니다. 인상적인 문장이 있으면 몇 번을 되새겨 읽어본 다음에야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한 열 번 정도는 읽었을 것입니다.

이런 성격은 영화보기도 마찬가지여서 <벤허> 같은 영화도 마찬가지로 열 번 정도는 보았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줄거리뿐 아니라 대사까지도 기억할 정도가 됐는데 혼자 가만히 앉아 영화를 머릿속으로 필름 돌리듯 돌리면 장면과 느낌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나는 책을 읽을 때나 영화를 볼 때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도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봅니다. 하나의 문장과 장면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선 그 순간마다 엉뚱한 상상들이 나래를 펼치기도 합니다.

<무진기행>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

누구나 좋아하는 구절일 테지만 나도 이 구절을 특별히 좋아해서 언젠가 내 블로그에다 인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꼭 그렇게 했습니다. 이런 성격은 시간도 많이 잡아먹고 피곤할 것 같기도 하지만 가끔 유용할 때도 있습니다.

언젠가 회사에서 일할 때 힘들여 작성한 A4용지 3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기획서가 컴퓨터 고장으로 날아간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당황했지만 곧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작성했는데 처음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내가 쓴 기획서가 마음에 들어 수십 번을 읽고 또 읽는 중에 그만 외워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경험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도 몇 차례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가끔 티스토리 내에서 문서작성을 하다 날아가는 경우가 있었던 것입니다.

남의 블로그를 볼 때도 이런 성격은 그대로 드러나서 좋은 글이 발견되면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습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물론입니다. 어떤 때는 종이와 볼펜을 꺼내 써보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훌륭한 문장만큼 아름다운 것도 잘 없습니다.

실은 엊그제 만난 동료 블로거의 분에 넘치는 칭찬에 대한 답으로 쓰기 시작한 글이 글쓰기보다는 책읽기에 대한 개인적 감상으로 흐른 듯한 느낌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글쓰기에 대한 내 생각은 그렇습니다. 글을 잘 쓰려면 남의 글을 잘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으로 읽지만 말고 마음으로 음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다면 아름다운 시를 외우듯 외워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창조물은 인용과 응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블로그가 있어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내 안의 나를 발견하는 기회도 됐으니 여간 반갑고 고마운 게 아닙니다. 하지만 과분한 칭찬을 들으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군요.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써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래 글은 내가 제일 처음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글 주소가 http://go.idomin.com/1 입니다. 끝에 1번 보이시죠? 그만큼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블로그는 문장으로만 글쓰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진도 있고 다른 무엇도 있을 테지요. 그럼 이만...  

어느 슈퍼아저씨의 나라사랑

마트에서 수육용 제주도산 도야지 600g을 100g당 500원에 구입했습니다. 냄비에 물과 된장을 풀어 섞고 다진 마늘과 파, 무를 썰어 넣은 다음 생강이 없어서 못 넣는 대신 단감 반쪽을 싹둑 잘라 넣어 가스렌지에 올려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먹다 남은 소주도 반병 부었습니다. 아들놈이 옆에서 “아빠, 감은 왜 넣는거야?” 걱정스러운 듯 물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어. 이런 걸 창조정신이라고 하는 거야. 혹시 모르니까 너는 먹지 마.” “......, !” 그리고는 동네 슈퍼에 소주를 한 병 사기위해 쓰레빠를 끌고 찬바람을 맞으며 내려갔습니다.

내가 소주병을 들고 여기저기 살피고 있으니 주인장 왈, “손님, 뭘 살피시는 김미까? 그거 유통기한 아직 안 지났어요.” 내가 왈, “아, 네. 유통기한 살피는 게 아니고 도수 살피는 겁니다. 몇도 짜린가 볼라고요. 요즘 술이 도수가 너무 낮아서... 19.5도짜리가 제일 높은 거네.”

“하하 손님, 16도 짜리도 있심다. 요즘 말임미다. 알콜 도수 낮춰가지고 소주회사들 배 터졌슴미다. 주정 적게 들어가니 원가 절감돼서 돈 벌지, 도수 떨어지니 많이 쳐 먹어서 돈 벌지, 여자들도 인자 부담 없이 마신답디다.” 주인장께서 일장 연설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나도 거들었습니다. “네, 나도 어쩐지 요즘 소주 주량이 많이 늘었다 했더니. 더 싸게 만들어서 더 비싸게 더 많이 판다, 이런 말이로군요. 그러면서 부드러운 술 팔아 국민보건에 앞장선다고 자랑도 하고요. 앉아서 비싼 월급 받고 이런 거만 연구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리고 한 발 더 나갔습니다. “요즘 삼성 문제로 시끄러운데요. 바로 이런 게 문제에요. 소비자들, 국민들, 일하는 사람들 등골 빼가지고 이런 잔머리 굴리는 놈들한테 수십억씩 연봉 바치고, 뇌물 바치고 하니 사회가 제대로 될 리가 있습니까?”

그러자 슈퍼 아저씨, 내 말을 잽싸게 끊더니 침을 튀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슈퍼 장사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도, 그건 아님미더. 잘 하는 놈은 더 많이 주고 못하는 놈은 굶어 죽어야 됨미더. 그게 경쟁사회고, 그래야 나라가 발전 함미다. 김용철인가 하는 그놈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요. 완전 파렴치한 놈 아임미까. 삼성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으예...... 삼성은 뭔 짓을 해도 용서해줘야 됩미더...... (중략) 삼성에서 이건희 다음이라카는 이학수 실장 있다 아임미까. 요 옆에 밀양 사람 아임미까. 마중 출신 아이요. 그라고 삼성기획실에서 실장 다음 차장이라카는 김인주 사장인가 그사람도 우리 마산(마중, 마고 출신)사람 아임미꺼. 이 사람들 얼마나 대접받는지 암미까. 삼성이 그래서 잘하는 김미다...... (후략)”

가스렌지에 올려놓은 냄비는 들끓고 있을텐데 우리의 슈퍼엉클 열변이 지칠 줄도 모르시고, 아 열라 불안해지기 시작하네. 슈퍼 아저씨가 숨고르기를 위해 잠시 멈춘 순간, “아저씨, 오늘 말씀 참 잘 들었습니다. 날씨가 엄청 춥네요. 어유 춥다.” 냅다 집으로 뛰어 올라왔습니다.

맛있게 익은 돼지수육을 왕소금에 찍어 소주를 한 잔 들이키며 드는 생각. “오늘은 작전상 후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랫동안 블로그가 방치됐다. 올 들어서는 거의 글을 쓰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몇 달간 매달 대여섯 건의 글을 겨우 올리다가 급기야는 8월 달에 1건, 9월 달에는 아예 한건의 글도 생산하지 못했다.

결과는 뻔하다. 어쩌다 바빠서 한 며칠 글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라도 대략 800명에서 1,000명 가까운 방문자들이 조회수를 올려주었던 내 블로그가 500명, 400명으로 그 수준이 떨어지다가 얼마 전부터는 하루 2~300명 선을 겨우 유지하지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오늘 185명으로 떨어졌다. 이러다간 100명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한번 무너진 성을 다시 세우는 것은 새로 짓는 것보다 몇 갑절이나 더 어려운 법. 그러나 무엇보다 블로그를 만들어놓고 이처럼 방치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1건이라도 써야겠다는 의무감에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데 무얼 쓰지? 쓸 거리가 없다. 그동안 연속극은 빼먹지 않고 열심히 봐왔지만 막상 블로그에 글을 안 쓰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봤다. 확실히 블로그를 열심히 할 때와 안할 때의 차이란 이런 것이다. 사물을 눈여겨보지 않는다는 것.

아무튼 무언가 쓰긴 써야겠는데 무얼 쓸까? 아 그래, 그걸 쓰자. 하나뿐인 아버지와 아들이 지금 병원에 있다. 아버지야 원래 80이 넘은 노인이시니 병원이 집인 것이고, 아들이 추석 전에 병에 걸렸다. 그게 병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임파선염이라고 한다. 아무튼 병원에 입원했으니 병은 병이다.

추석 바로 전날 아들을 보러 병원에 갔다가 바로 옆방에 입원한 아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산판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다리를 톱에 잘려 입원한 것이었다. 다행히 뼈와 신경은 잘리지 않았다며 호탕하게 웃는 그를 보니 나도 따라 웃어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을 지경이었다.

그가 보여주는 다리는 마치 고무장화 두 개를 엎쳐놓은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는 말했다. “이까짓 거 별거 아이라. 큰 나무둥치에 맞아 뒤지지 않은 게 어디요. 팔다리 톱에 좀 잘리고, 나뭇가지에 찔리는 것쯤이야 예사지.”

나뭇가지에 찔린다는 표현을 썼지만 여러분, 그냥 찔리는 게 아니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면 정확할 것이다. 사극에서 적군의 창에 찔려 신음하는 한 병사를 떠올려보라. 산판노동자를 찌르는 나뭇가지란 바로 그 창이다. 잘리고 부러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해오는 나뭇가지는 그야말로 찰나를 실감케 한다.

내가 아는 산판노동자는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함양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번에 크게 다친 이 사람은 김해, 창녕 등지에서 일하다가 거창의 험준한 산에서 사고를 당했다. 그는 너덜너덜해진 다리를 끌고 산을 내려와 지프를 끌고 인근병원에 가서 응급처치를 한 다음 다시 창원까지 달려왔다

자동미션이 달리지 않은 구식 자동차였던 탓에 클러치를 밟느라 그는 죽을힘을 다해야만 했다. 톱에 잘린 다리가 왼쪽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한사람의 산판노동자. 그는 이런 위험한 일이 싫어 최근까지 산판꾼들의 톱에 공급하는 기름을 지고 산을 타다가 결국 절반밖에 안 되는 보수 탓에 톱을 잡았다.

그럼 산판일을 하면 하루에 얼마나 받을까? 15만 원 정도. 노가다라는 게, 특히 노가다 중에 상노가다라고 할 수 있는 산판일이라는 게 한달에 20일이면 많이 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충 한달 수입이 나온다. 목숨 내놓고 하는 일에 대한 대가라고 하기엔 너무 허접하다.

그의 병실 한쪽 구석에 조선일보가 놓여있기에 보았더니 서울시장 선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안풍이며 박원순 바람이 거세긴 해도 한때의 바람일 뿐으로 곧 원상태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은 한나라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분석기사가 실려 있었다.

습관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뭐야 이거, 완전히 한나라당 당보 아냐. 아무리 편들고 싶어도 좀 적당히 눈치도 봐가며 해야지 이건 너무 노골적이네. 당보라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겠다.” 내 이 한마디 때문에 병실은 갑자기 한나라당 성토장이 돼버렸다. 뭐 그러자고 한 건 아닌데.

내가 아는 산판노동자와 50대 초반쯤 돼 보이는 다른 한 환자는 의도하지 않게 그렇게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그래도 한나라당을 찍어준다는 거다. ‘없는 놈들’이 ‘있는 놈들’을 위해 일하는 한나라당이 좋다고 찍는다는 거다. 그들은 말했다.

“씨발, 조또 없는 것들이 지가 무슨 정몽준이쯤 되는 줄 안단 말이야.”

하긴 그들이 하는 말이 맞다. 50 초반의 그 환자 말처럼 택시를 타보면 대개 기사들이 나라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라 재정이 어려운데 무슨 무상급식이냐면서 혀를 끌끌 차는 꼴을 보면 그런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걸 억지로 참는다.

“나라 걱정 같은 거 집어치우고 니나 똑바로 잘 사세요.”

요즘 벌이가 어떠냐고 물어보면 한달 기본급 4~50에 쌔빠지게 뛰면 150 겨우 가져간다고 엄살피면서 정치이야기만 나오면 나라 걱정부터 먼저 한다. 나라 재정이 어떻고,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고, 국민들이 배가 너무 불렀다는 둥…. 실로 할 말을 잃는다.

하긴 사극 같은 것도 보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종놈들이 양반보다 양반 걱정을 더 많이 하는 것이다. 요즘 인기 뜨고 있는 공주의 남자라도 한번 보시라. 불평불만분자들이 가장 많았던 추노만 해도 그렇다. 한 고참 종놈이 이렇게 말한다. “종놈의 새끼들이 분수를 알아야지.”

아마 조선시대에 정당정치가 있었다면(사실 내가 볼 때 조선시대에도 정당정치는 있었다.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하는 것들이 다 정당이다. 그걸 왜곡해서 붕당이라고 하는 거지만. 물론 양반들끼리의 정당이니 민주적인 정당은 아니겠다) 종놈들은 모조리 노비당이 아니라 양반당에 투표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병실에는 대학생들로 보이는 환자들이 두세 명 있었는데 “이 세상은 자네들 거여. 우리야 이미 별 볼일 없는 거고. 니들이 살 세상, 니들이 확 바꿔야제. 혁명을 하든 뭘 하든.” 나는 이 과격한 상황에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학생환자들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동의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요즘 학생들도 죽을 맛일 테니. 연간 천만 원씩 들여 공부해봤자 취직도 제대로 안 된다. 우리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면서기(9급 공무원) 시험에 대학생들이 줄을 선다. 비싼 돈 들여 배운 학문이 겨우 동사무소에서 등본 떼어주는데 쓰이고 있다고 환자들은 입을 모았다.

그건 그렇고,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른바 3D업종을 기피하니마니 말들이 많은데 과연 그런가? 병실에 누워서도 의기양양한 그를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과연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이 이 산판노동을 견뎌낼 수 있을까? 내가 볼 땐 어림도 없다.

그럼 눈높이를 낮춰서 일자리를 찾으면 될 텐데 그리 안하는 건 또 뭐냐고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거기에 대해서도 이 나이 지긋한 환자들은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그럼 대학까지 나온 젊은 놈들이 미래를 생각해야지 아무데나 덜렁 들어가서는 앞으로 어쩔라고.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애도 낳고 살아야 되는데….”

늘 내 주장은 한가였지만 오늘 또다시 한마디 한다면 이렇다. 산판노동자의 월급이 의사 월급보다 센 나라, 교수의 아내는 차도 없지만 전기수리공의 아내는 벤츠를 타고 다닌다는 핀란드나 스웨덴 같은 나라가 되면 교육개혁이니 이런 골치 아픈 문제도 일거에 사라진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교육운동은 핀트가 어긋난 거다.

그런 나라는 대학교육을 무상으로 시켜도(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무상교육으로 한다고 하면 아마 난리가 날 거다. 포퓰리즘인지 피폴리즘인지 어쩌구 하면서) 진학률이 40%를 겨우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린 연 천만 원씩 들여서 못 들어가서 난리니.

아이구 이거 또 말이 길어졌다. 여기까지. 암튼^^ 그 산판노동자 엊그제 고무장화 두 개 엎어놓은 듯한 다리를 끌고 나와 새벽까지 병원 앞 슈퍼에 앉아 술을 마셨다. 패밀리마트였는데, 아 그런데 이거 왜 이렇게 비싼 거야. 천 원짜리 소주가 천사백오십 원이다. 젠장.

오늘 병원에 갔더니 그 환자, 기브스 푼 기념으로(?) 무학산 등산 하고 오는 길이란다. 아니 실밥 터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타박을 주자 이렇게 말한다. 아참, 그전에 제목에 대한 답? 그건 나도 모른다. 그걸 알면 내가 여기 이러고 있겠나. 벌써 뭘 해도 했겠지.

“갑갑하기도 하고, 빨리 움직여야 근육도 풀리고 그러지요. 그래야 빨리 산에 가서 일을 할 거 아니요. 의사들 시키는 대로 가만 누워있다고 누가 내 입에 밥 넣어 주요?”

9월의 의무방어전, 이렇게 횡설수설로 끝.

Posted by 파비 정부권

집안 사정으로 인해 당분간 글을 쓰지 못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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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인지 사흘인지 블로그에 글을 안 올렸더니 좀 불안하네요. 이런 증상도 폐인이니 뭐니 그런 거 아닐는지... ㅎㅎ 제가 요즘 다른 데 신경 아닌 신경 쓸 일도 좀 있고... 늘 하는 핑계지만 매일 술 마신다고 정신 없어서,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쓸 게 없을 수밖에.

'닥본사'에 실패하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캐쉬가 한 방에 700원씩 날아간다는... 휴~

월요일었던가요? 고등학교 동기놈과 옛날 태양극장 근처 어디서 소곱창에 소주 한잔 했습니다. 구제역이다 뭐다 해도 곱창 그거 참 맛있더군요. 가격도 저럼하고요. 그렇게 맛있게 먹고 있는데, 한떼의 아주머니들이 들어와서는 "야야, 빨리 틀어봐라. 시작할 때 안 됐나" 하면서 일렬로 티브이 앞에 늘어앉더군요.

잠시 있으니 또 두 명의 아주머니 들어오셔서는 "야야, 동해야 벌써 시작 했나? 동해 우찌 됐노." 하시면서 또 그 옆에 열지어 앉으시는 겁니다. 정말 티브이 드라마에 목숨이라도 건 듯이 보였습니다. 모두들. 무슨 소린가 했더니 8시 반 연속극 <웃어라, 동해야>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연속극 한번도 안 봐서 무슨 내용인지는 모릅니다만, 저렇게 연속극 하나 보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어오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만 하네요. 드라마 리뷰를 주로 쓰는 블로거인 제 입장에서도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동해가 그렇게 잘나가는 중이었어?' 

아주머니들은 1오 횡대 대형으로 티브이 앞에서 30분간을 앉아 <웃어라, 동해야>를 시청한 다음, 역시 우리처럼 소곱창을 시켜 소주를 한잔씩 걸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마도 그날이 곗날이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계모임의 화제도 주로 동해 이야기였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가 아니고, 웃어라 동해야, 말입니다. 

하도 쓸 말이 없어서 대충 재미없는 이야기 좀 했습니다. 그분들 티브이 시청하는 뒷모습 찍어놓은 사진도 있지만, 어느 구석에 있는지 찾기도 어렵고, 사진 한장 없으면 이 포스트가 너무 썰렁할 것 같아서 대신 우리 딸이 우리집 화장실 문에 붙여놓은 경고문 내지 주의문 비슷한 거 하나 올려놓고 물러갑니다. 끝.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래 전부터 갱상도블로그에 가져왔던 희망사항이었습니다.
추천박스 말입니다.
물론 이 추천박스가 가지는 순기능이 있을 줄 압니다.
그리고 역기능도 있겠지요.

역기능이라 함은 늘 연말만 되면 1등, 2등 순위를 매겨 상을 주어야만 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불편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교 졸업 때까지 등수가 뭔지도 모른다는 핀란드 교육을 동경하면서도 우리는 늘 1등, 2등에 목말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이 있을 줄 압니다.

또 이게 사실 하나의 영업적 광고효과도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게 말하자면 하나의 순기능이겠지요.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상과 다음뷰 블로그 어워드 상이 같은 날 동시에 치러지고,
행사 규모나 형식, 분위기가 비교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그리하여 어떻든 이렇게 순위를 매기고 상주는 행사가 절대 없어질 수는 없을 테지요.

긴 말 할 필요가 없는데 이렇게 초반 사족을 단 이유는 위 빈칸을 메우기 위함이었고요.
어흠~ 사실 갱상도블로그에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 하나랍니다.
추천박스를 없애주시거나 어디 한쪽 귀퉁이로 치워주실 수는 없나요?

예전에 구두로 요청해보긴 했습니다만, 별로 심각하게 생각지 않으시는 것 같네요.
가독성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글을 읽기가 불편하단 말이지요.
추천박스가 블로그 포스트를 가리기 때문입니다.

아래 사진에 보시는 바와 같이 떡하니 블로그의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치워야 할 충분한 사유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갱상도블로그의 글을 정상적으로 편안하게 읽기 위해서는...
갱블에 로긴 한번, 회원 블로그에 로긴 한번, 마지막으로 추천박스 삭제 로긴 한번, 
해서 총 3번의 관문을 통과하고서야 비로소 뜻을 이룬답니다. 

저처럼 속도 빠른 양질의 컴퓨터를 보유하지 못한 이로서는 매우 불편한 일입지요.
로딩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거든요.

통촉하시기를...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건 뭐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냥 궁금해서요.

오늘 이시간 현재 총 방문자수가 아래 캡쳐한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1165명입니다.

아마 이 숫자는 다음뷰든 믹시든 갱상도블로그든 모든 메타와 직접 방문을 통틀어 합산된 수치이겠지요.


그런데 그 밑에 보시면 다음뷰 방문자수가 나오는데요. 1197명이군요. 또 그 밑에 믹시를 보면 853명입니다. 물론 여타의 다른 메타블로그들은 통계에 없습니다. 

제가 머리가 나빠 그런지 이해가 잘 안 되는군요. 왜 그런 것일까요?

네 머리도 안 좋으면서 쓸데없는 곳에 신경 쓰지 마라고요? 그러다 뇌세포만 많이 축낸다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그냥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아마 제가 대개 심심한 모양이지요? ㅎㅎㅎㅎ~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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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김주완 기자의 중학생 아들이, 부산일보였던가요? 신문사에 인터뷰하자고 왔다고 자기 블로그에서 말했었지요. 이 친구는 사실 중학생이지만 이미 꽤 유명한 파워블로거이니 충분히 기사소재가 됐을 겁니다.

 

어쨌든 그걸 보고 꽤나 부러웠는데 이번엔 도민일보에서 저를 인터뷰하자고 연락이 왔군요. 그래서 어제 부랴부랴 가서 허겁지겁 인터뷰를 했는데요. 오늘 아침에 바로 났네요. 그런데 글을 읽어보니 좀 그렇습니다. 거시기 하다고나 할까요?

 

인터뷰는 두 시간 가까이 인생사 전반에 대해 따져 물으시더니 신문에는 달랑하게 짧은 바지처럼 거개 다 잘리고 말았네요.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사진이었는데, 제가 요즘 머리카락들이 반란을 일으켜 내전 중인데요. 이것들이 한 2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역외탈출을 시도하고 있단 겁니다.



그래서 신경 좀 써주십사 부탁을 드렸는데, 역시 없는 머리는 어쩔 수 없나 보군요. 좌우가 허전해 보이는 게 마음이 짠합니다. 그래도 중도는 아직 많이 남아있네요. 앞으로 중도라도 잘 관리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래도 저게 아마 김두천 기자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사진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90
년 공장에서 해고되고 수배, 구속생활을 겪고 난 이후 한 2년 가까이 한겨레신문 보급소장(지국장이라고 하죠?)을 했는데, 그때 배달하다가 버스 밑에 깔린 이야기, 새벽에 청소차에 치인 이야기, 배달 마치고 집에 가다 유치원 봉고차에 치인 이야기 같은 건 탈락됐군요

먹고 살기 위해 학습지 영업사원도 잠깐 했는데
, 하교시간에 맞춰 초등학교 앞에 가 기다리고 있다가 장남감 갖고 노는 시범 실컷 보여주고 입이 헤 벌어져있는 애들한테 신청서 한 장씩 나눠주며 내일 엄마한테 사인 받아오라고 시키는 일이었죠. 그것도 빠졌고요

나중에 공인중개사 자격증 따서 부동산도 잠깐 했었고
, 사업 한답시고 서울 잠실까지 올라가 사무실 차리고 있다가 그 건물에 불이 나는 바람에 뛰어내렸던 이야기도 빠졌네요. 그때 그 건물에선 사고 당시에만 10명이 죽고 10여명이 중상을 입었는데요. 저는 천우신조였죠

아무튼 그 외에도 간택에서 탈락한 얘기들이 꽤 많았는데
, 저는 그 많은 이야기들이 다 나가면 어쩌나 하고 내심 노심초사(?)했는데, 헛된 걱정이었네요. ㅋㅋㅋ~ 처음 창원의 동양기계(통일중공업)에 입사했을 때, 거기 민노당 문성현 전 대표가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고요

여영국 진보신당 경남도의원도 함께 일했었지요
. 이 친구는 제 고등학교 동기이기도 하답니다. 문성현씨와 여영국씨는 나란히 줄을 서서 작업도 하고 노조활동도 같이 하고 했습니다만, 저야 같이 활동했다는 건 좀 오해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같은 공장에서 일했다는 정도로…. 

전체적인 소감은 신문이 좋고 아직 파워가 세긴 하지만
, 역시 지면의 한계 때문에 구구절절 사연을 옮기기엔 인터넷신문이나 블로그의 자유로움을 따라잡기가 어렵겠다 생각이 드네요. 이거 제가 블로그를 하고 있다고 너무 그쪽 편향으로 간다고는 생각지들 마세요. ㅎㅎ~

이상 각설하고 아래에 김두천 기자님께서 써주신 인터뷰 기사를 달아두겠습니다
. 미리 보신 분들은 일부러 다시 보실 필요는 없을 테고요. 김두천 기자님 고맙습니다. 저도 이로써 김태윤 학생(김주완 기자 아들)에게 가졌던 부러움과 한은 풀었다고 말씀드려야겠군요


김두천 기자님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 .

"파워블로거 활약 지켜봐 주세요"
'100인닷컴' 편집장 정부권 씨
2010년 10월 14일 (목) 김두천 기자 kdc87@idomin.com

시사·대중문화관련 유명블로거에서 인터넷 신문 편집장이 된 사람이 있다.

경남을 넘어 전국의 파워블로거들 이 모여 만들어진 <100인닷컴> 편집장 정부권(46) 씨가 그 주인공.

그는 2008년부터 블로그운영하며 시사·대중문화분야에서 왕성한 필력으로 꾸준히 포스팅을 해오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블로거로 성장했다.

그런 그를 13일 오전 만났다. 이날도 그는 자신이 포스팅한 글 때문에 곤욕 아닌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평범한 시민서 유명 블로거로…올 초 편집장까지 맡아

   
 
"고장 난 보일러를 수리했는데도 계속 문제가 생겼다는 내용의 글을 포스팅했는데, 그 글을 본 업체 본사에서 전화가 와 문제를 해결해 주겠으니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이 온 겁니다." 새삼 블로그 글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그가 블로그를 알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4월경이다. 평소 안면이 있던 기자와의 술자리에서 블로그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그는 젊은 날 노동운동과 진보정당활동을 하며 사회·정치문제에 눈을 떴다. "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1982년에 창원공단의 현 'S&T 중공업' 노동자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89년에는 '효성기계'에서 노조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수배당해 구속되기도 했죠.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 여영국 현 도의원이 함께 활동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진보주의 활동으로 잘 짜인 자신만의 생각을 글로 써서 민주노동당 홈페이지나 진보적 인터넷 언론매체인 <레디앙>에 보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생각과 필력을 유심히 본 기자는 개인 미디어로서의 블로그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직접 블로그를 개설·운영까지 도와주게 된 것이다.

꾸준한 발굴 보도로 세상 바꾸는 블로그 공동체 만들 터

이후 그는 <경남도민일보>가 주도한 '블로그 기자단'에 가입, 경남 민간인 블로그 기자단 1호가 되면서 정식으로 블로거 기자가 됐다.

그가 블로그에 맛을 들인 것은 자신의 첫 포스팅이 유명해지면서였다. 제목은 '삼성은 뭔짓을 해도 용서해줘야 됩니다'. 동네 슈퍼 주인의 삼성 예찬론을 듣고 그에 대한 비판을 맛깔 나게 쓴 글이었다. 이 글은 포스팅 한 뒤 이틀째 되던 날 다음 실시간 뉴스올라 3시간 동안 5만 명이 보는 큰 히트를 쳤다.

블로그를 시작한 시기도 절묘했다. "제가 블로그를 시작할 당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한창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시사 블로거들에게는 정말 황금기였죠." 그런 과정에서 맺은 블로거들과의 인연은 그에게 아주 소중한 자산이 됐다.

그런 그가 <100인닷컴> 편집장이 된 것은 운영자의 사정 때문이었다. 올해 초 설립자인 김주완 기자가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으로 임명되면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

비록 사정상 운영을 떠맡은 것이지만 나름의 운영 방침과 철학은 확고했다.

"<100인닷컴>은 종이신문 형태를 따라가면 안 됩니다. 정보력과 취재력이 확보된 신문사 기자들을 이길 수도 없고 따라갈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종이신문이 다루지 못하는 부분, 지역의 소외된 소식과 정보를 발굴하고 보도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고 살길입니다. 이것이 100인 닷컴의 존재 이유입니다."

하지만, 지역의 중요 이슈나 사안에 대해 눈감지는 않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 "경남의 첫 야권 도지사가 정권을 이룬 만큼 격려와 비판을 하는 것도 <100인 닷컴>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4대 강 사업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할 것입니다. 반면에 생활복지·밑바닥 서민경제 문제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보도를 할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 도지사가 신경을 쓰게 만드는 것도 <100인닷컴>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경남도민일보> 메타블로그 보다 더 나은 블로그 공동체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그를 평범한 시민에서 인터넷 신문 편집장으로 만든 블로그. 그에게 블로그는 어떤 것일까?

"블로그는 일단 내 놀이도구이고, 하고 싶은 말 얘기 들어주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제가 사회발언을 할 수 있는 유력한 도구이지요. 그러나 궁극적 블로그 글쓰기자기 존재를 계속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자기 관심분야에 대한 취재와 글쓰기는 결국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는 기록으로 또 자기만의 역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경블공 4월 블로그 강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글은 경블공 까페에 실은 글입니다

좀 늦었습니다. 그 동안 하는 일 없이 공사가 다망했답니다. 어제는 <걷는 사람들>과 함께 진동 태봉마을, 동전마을을 거닐었습니다. 엊그제 토요일엔 황사가 엄청 심했었지요. 눈이 따가울 정도였습니다. 밤에 만날재에 가족들과 올라갔었는데 마창대교가 안 보이더군요. 평소엔 환환 불빛의 대교가 선명했었지만 이날은 완전 암흑. 도심에 불빛들도 황사에 가려지고 롯데시네마 건물 불빛만이 아스라한 것이 마치 어떤 만화영화에서 본 안개에 싸인 환상 같은 미래도시를 연상시켰답니다.

진동 동전마을 입구


그런데 우리가 걷기 행사에 나선 일요일 아침엔 웬 하늘이 그토록 맑았던지. 파랗게 갠 하늘이 꼭 여름 태풍이 모두 지나간 가을 하늘처럼 푸르렀습니다. 봄볕도 따사로운 것이 "역시 하늘은 걷는 자를 돕는다!"는 출처불명의 경구가 생각나더군요. 아무튼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걷는 사람들>은 걷는다기보다는 거의 거니는, 아니 '노닥거리는'과 '거니는"의 합성어 "노닥거니는'을 써서 <노닥거니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옳겠다 싶을 정도였는데요.

너무 빠르지 않은 아주 느린 모임이었습니다. 역시 모임의 운영도 아주 느슨하고 자유롭게 하더군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뭐 그런 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모임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부담을 주지 말자, 그런 거였는데 그 속에는 또한 "자연에도 부담을 주지 마라!"는 뜻과 "한가롭게 자연과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갖자!"는 뜻이 있는 게 아닐까 홀로 생각해보기도 했답니다. 그 모임에 송창우 시인과 박영주라는 절친한 형이 있어 갔던 것인데, 좋았습니다.

아, 그리고 출발할 때 경남대에 모두 모여 버스를 타고 갔는데 차창으로 쏟아지는 따사한 봄볕을 받으며 달리는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단체로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여행도 꽤나 독특하고 즐거운 여행 중 하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누구든 뜻이 있으면 매월 셋째 일요일 11시에 경남대에 모이면 된다고 합니다. 준비물은 도시락과 버스비 2000원.

도민일보 김주완 기자가 주최한 블로거 컨퍼런스 이후 갱상도블로그가 만들어지고 다시 경블공이 탄생했다.

자, 지금까지는 블로그 강좌 공지가 늦은데 대한 변명이었습니다. 변명이 자랑이 되고 말았지만, 아무튼, 험~.
경남블로그공동체(이하 경블공)는 지난 3월 회합에서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습니다.

  1. 매월 1회 블로그 강좌를 개설한다.

  1. 강좌 운영 비용은 경블공이 보유한 공금으로 충당한다.

  1. 블로그 강좌는 회원을 대상으로 하되, 회원이 아닌 사람도 홍보하여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다.

그리하여 그 첫 번째 강좌가 다음달(4월)에 열리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강좌를 맡아주실 분은 구자환 기자입니다. 구자환 기자는 현재 <민중의소리> 지역 주재기자로 활동하고 있고, <내가 꿈꾸는 세상>이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영상제작업>에 종사하며 머잖아 훌륭한 다큐영화를 한 편 제작해 선보이는 게 꿈이라고 하는데 곧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블로그 강좌 내용은 그래서 아마도 <영상과 블로그의 만남>이 될 것 같습니다. 동영상 촬영하는 법, 사진 잘 찍기, 찍은 동영상과 사진을 이용해 블로그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 그리고 그 동안 블로그를 해오면서 체득한 노하우 등 폭넓고 유용한 강좌라 될 것으로 매우 큰 기대가 됩니다. 그럼 아래에다 블로그 강좌 시간과 장소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회원 여러분은 물론이고 회원이 아니신 여러분께서도 참여하셔서 좋은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경블공 4월 블로그 강좌 

때; 2010. 4. 20(화) 오후 7시

장소; 창원시 봉곡동 <경남정보사회연구소> 교육장

강사; 구자환 블로거 및 기자

내용; 영상과 블로그의 만남  

                                          ............... 경블공 회장 김주완 (총무 파비)

구체적인 강좌계획, 장소 약도 등은 따로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이런 걸 한다는 걸 알리는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모두들 행복한 오후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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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티스토리 첫화면 꾸미기 베타 테스터에 뽑혔습니다. 공자한 대로 3월 18일 목요일 11시부터 첫화면 꾸미기 클로즈 베타가 시작되었더군요. 저도 물론 여기에 동참했습니다. 커다란 기대를 안고서. 그리고 기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것으로 판명 났습니다. 아직 더 살펴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만족할 만한 수준입니다. 

제 블로그 첫화면입니다. 좀 어설퍼 보이지만 앞으로 배우면서 나아지겠죠.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기도 전에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켜거나 다른 작업을 하다 블로그에 다시 돌아오면 첫화면 꾸미기가 비활성 상태로 바뀌어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당황해서 재부팅을 해본다든지 이리저리 조작을 해보았지만 다시 활성으로 만드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블로그 관리화면으로 들어갔는데 거기 스킨 창에 첫화면 꾸미기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살펴보니 역시 활성에서 비활성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그래서 다시 <사용 안함>을 <사용함>으로 고치고 <블로그로> 돌아가기를 하니 클로즈 베타가 떴습니다. 이런, 그래서 다시 컴퓨터를 재부팅한 다음 블로그를 열었는데 역시 비활성….   

몇 차례 반복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은 토요일, 오후에 딸아이를 데리고 풍물학원에 갔다가 다시 성당 주일학교에 데려다 주라는 명령 같은 부탁을 받고 나갔다 왔더니 그런데 어? 이게 웬 일이야. 아까는 분명 컴퓨터를 껐다가 새로 켜면 클로즈 베타가 작동을 안했는데 깨끗하게 잘 되는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다음뷰에 티스토리 꾸미기 리뷰가 올랐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러브드웹이란 분이 쓰신 <티스토리 첫화면 꾸미기 버그와 개선점 10>이란 글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바로 이 문제를 이미 거론했더군요. 음~ 동작들이 참 빠르군요. 문제를 발견하고 지적해준 ☞러브드웹님이나 발 빠르게 문제를 해소한 티스토리나 모두들 훌륭합니다.

비활성 문제 등을 제기한 블로거 리뷰들. 이것들을 죽 읽다보니 공부가 많이 됐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아 이거 제가 큰일이군요. 사실은 클로즈 베타 리뷰를 첫화면 꾸미기 비활성 문제로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할 게 없네요. 사용자 리뷰를 해야 하는 것은 베타 테스터로 뽑힌 자의 임무거든요. 뭔가 꼬투리―사실은 이런 표현은 적절한 것이 아니고 개선사항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냥 재미로 이해바랍니다―를 찾아야 되는데…. 

음, 뭐가 없을까요? 아무리 봐도 제가 뭘 몰라서 그런지 별로 지적할 만한 사항이 눈에 띄지 않네요. 여기까지 쓰던 글을 세워두고 한참을 살펴보다 겨우 한 가지 찾아냈습니다. 맨 위에 게시한 제 블로그 사진 한 번 보시죠. 거기 보시면 <오늘의 포스트>가 있고 그 아래에 <최신 포스트 보기>가 있습니다. 

<오늘의 포스트>와 <최신 포스트 보기>는 각각 별도의 아이템으로 디자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위 아이템(<오늘의 포스트>)에 게시된 기사(<추노, 그분은 진짜 '그분'>)가 아래 아이템(<최신 포스트 보기>)에도 다시 나옵니다. 좁은 화면에 여러 개의 정보를 보여주고 싶은 사용자로서는 아쉬운 대목입니다. 

두개의 아이템이 각각 따로 기동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개선의 여지가 없을까요?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면, 아래 사진처럼 <사용자의 최고 인기글>이란 아이템을 만들었다고 칩시다. 그런데 이게 좀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 100개 이내의 글 중에서 조회수가 많은 글, 추천이 많은 글 등이 자동으로 등재되도록 돼 사용자의 의중이 반영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인기글이 최근 100개의 글에 없으면 랭크가 안되는 문제가 있다.


이걸 좀 더 세분화해서 사용자의 글 전체, 또는 월별, 연도별 인기글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해주면 어떨까 싶군요. 그리고 카테고리별로 이런 기능을 적용할 수 있다면 저 같은 경우에 TV이야기, 여행이야기, 책이야기, 영화이야기, 세상이야기, 시사이야기 등의 카테고리별로 따로 인기순위글을 매길 수도 있겠지요.  

음, 아직은 제가 웹에 거의 무지한지라 뭐라 말씀드리긴 그렇지만 현재로선 상당히 만족할 만합니다. 앞서 사용하던 테터데스크도 좋았지만, 디자인적인 차원에서 많은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생각입니다. 좀 더 사용하면서, 이리저리 조물거리면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찾아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베타 테스터 뽑힌 거 이것도 알고 보니 좀 귀찮은 일이로군요, 하하. 물론 남들보다 먼저 좋은 제품을 써보고 고쳐야 할 점들을 찾아내 개선하는 기쁨은 있지만 말입니다. 암튼 이번 참에 이것저것 많이 배우는 기회도 되고 해서 저로서는 매우 만족합니다. 흐뭇하게 또는 무흣하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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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다시 돌아온 블로그 첫화면 꾸미기 베타 테스터 응모 기회

티스토리 베타 테스터 모집 기간이 3월 14일로 연장되었군요. 지금 시간이 3월 14일 18시 28분, 제게 다시 기회가 왔습니다. 제가 한동안 하는 일 없이 바빠서 인터넷 접속도 자주 못하고, 2월 한 달 동안은 포스팅도 몇 번 하지 못했네요. 그러다 보니 티스토리 베타테스터 모집 날짜를 넘기고 말았답니다. 지나고 나서 보니 3월 10일이 마감이었더군요.

 
그런데 오늘 다시 우연한 일로 티스토리를 방문했더니, 앗! 베타 테스터 모집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오늘까지 연장되었군요. 그래서 찬스다 싶어 이렇게 부랴부랴 티스토리 블로그 글쓰기 판을 열었답니다. 그래서 사람은 늘 마지막까지 신경 끊지 말고 긴장하라, 그러면 지나갔던 기회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방금 제가 지어낸 말입니다요, ㅋㅋ~ ^.^)

베타 테스터가 되기 위한 이유

그럼 먼저 티스토리가 요구한대로 왜 나는 티스토리 베타테스터가 되려고 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만족감 때문입니다. 블로그 첫화면을 예쁘게 꾸미는 것은 마치 여자가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허영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본성 아닌가 합니다.

공작새처럼 화려한 부챗살 꼬리도 없고, 사자처럼 멋진 갈기도 없는 인간은 대신 다른 무엇으로 자신을 치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죠. 그 만족감이란, 그러므로 허영심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부여된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도 든답니다. 궤변일지 몰라도 말입니다. 아무튼 블로그 첫화면 꾸미기는 가정 먼저 저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 다음 블로그 첫 화면은 내 블로그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선 아름다운 또는 멋진, 화사한 화면을 만나는 방문객들에게 "아, 이 블로그 참 잘 찾아왔어!" 하는 생각이 절로 들도록 하는 것은 블로그를 하는 사람의 기쁨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기쁨이 아니겠는지요.

티스토리를 사용하면서 가장 좋았던 기능은?

가장 좋았던 기능? 너무나 많지만 그 중에 하나를 꼽으라는 말인가요? 티스토리는 우선 글쓰기가 가장 편한 툴이라는 점입니다. 티스토리 만큼 글쓰기가 편한 툴은 없다는 것이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제가 속한 경남블로그공동체(경블공) 회원들의 공통된 생각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경블공 회원들 중 다수는 티스토리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으리라 봅니다. 

블로거 이윤기님이나 구르다님(경남정보사회연구소 이종은 소장) 같은 분들은 단체에서 블로그 교육을 하면 티스토리가 가장 좋은 글쓰기 툴(Tool, 도구)이라고 홍보를 할 뿐만 아니라 아예 티스토리를 가지고 교육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두어 가지 좋은 점을 더 꼽으라고 하면 티스토리는 연결망이 아주 뛰어난 툴이란 점입니다.
 
티스토리에는 플러그인 기능이 있어 거의 모든 메타블로그로 생산한 콘텐츠를 자동으로 보낼 수 있답니다. 그리고 사이드바나 본문 위나 아래에 광고를 달기도 아주 편하지요. 원한다면, 실제로 사이판 총기난사 사건 홍보 위젯을 만들어 블로그에 상시로 배너광고를 단 것처럼, 꼭 상업적 광고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별도의 배너광고를 달수도 있답니다. 

그리고 이 기능은 광고 목적이 아니라 디자인 목적으로도 적절히 활용할 수도 있죠. 그러나 어떻든 블로그가 태어난 이유가 홈페이지가 가진 폐쇄성을 극복하고 보다 넓은 지역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했을 때, 티스토리의 이 손쉬운 배포 기능은 매우 필요하고 훌륭한 장점이라고 아니할 수 없지요.
 
다음은 개설하기가 아주 쉽다는 것입니다. 가방끈이 긴 사람이나 저처럼 가방끈이 짧은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티스토리는 아주 쉽게 블로그를 개설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아마 티스토리를 이용해 블로그를 개설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분이 계시다면? 글쎄요, 별로 상상을 해본 일이 없어서 그에 대한 논평은 일단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티스토리를 사용하면서 가장 불편했던 기능은?

그럼 가장 불편했던 기능은? "없습니다!" 하고 외친다면 티스토리 담당자님들이 아주 좋아하시겠지만, 아직 불편한 점들은 이곳저곳에 적잖이 숨어있답니다. 글을 작성하면서 느꼈던 적잖은 불편들이 갑자기 쉬 생각나지는 않지만, 아무튼 개선해야 할 점들이 아직 적잖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아직 블로그에서 직접 글쓰기를 하기가 한글 등 워드에서처럼 그렇게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죠. 특히 글을 쓰다가 따옴표를 찍을 때 무조건 " ", ' ' 를 써야 하는 것은 사용자로서는 아주 고역입니다. “ ”, ‘ ’ 를 쓰기 위해 저는 굳이 한글에서 문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복사해서 다시 옮기는 번거로운 일을 하는데요.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그렇게 생산한 콘텐츠를 검색할 때 프로그램 언어가 섞여 나와 검색에서 불리해진다는 거지요.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메모장에 옮겼다가 거기에서 드래그 해서 다시 블로그로 옮기는 이중 작업을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게다가 티스토리에서 직접 글쓰기를 할 때 불편한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이건 저처럼 예민한 사람들에겐 치명적인 것인데요. 띄어쓰기, 오탈자 검색 기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합니다. 티스토리에서 문서를 곧바로 작성하고 이 문서를 복사해서 한글에 옮겨 오탈자,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을 한 다음 수정할 것은 수정해서 발행을 하는 것이죠.

이게 한글에서 작성한 문서를 메모장에 옮겼다가 다시 블로그에 옮기는 일보다는 간소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답니다.  한글 등 워드프로세서 수준까지 기대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개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티스토리를 사용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한 질문인데요. 

티스토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이건 정말 답하기 어려운 문제로군요. 블로그란 게 아주 개인적으로 하는 작업인데 뭐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있을까요? 그래도 질문에 답은 써야 하니 생각을 해보기로 하죠. …………………………………, 아무래도 없네요. 죄송합니다. 왜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없을까요? 아!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쓰다 보니 하나 생각났습니다. 

2009 티스토리 우수블로그로 지정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티스토리에서 제작한 명함도 받고, 다이어리도 받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군요. 이렇게 말하니 이거 완전 아부하는 말 같습니다만, 암튼 사실입니다. 선물 받고 기분 나쁠 사람 하나도 없겠죠? 그리고 하나 더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부산의 블로거 커서님과 마산의 블로거 김주완 기자와 함께 경주에 갔었던 일입니다. 

블로그를 하면서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큰 기쁨이죠. 1박 2일로 갔었는데, 돌아올 때 포항에 가서 먹었던 고래 육회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아이쿠~, 다시 먹고 싶어지는군요. 흠흠~. 환경운동 하시는 분들은 고래 고기 먹는 이야기를 하는 저를 미워하실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맛이 기가 막혔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소주 안주로 최곱니다. 

본인이 사용하는 사용환경 (OS 및 인터넷 브라우저 버젼)

자, 마지막으로 제가 사용하는 사용 환경을 적는 것으로 티스토리 베타 테스터 응모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윈도우 XP
인터넷 익스플로러 7.0

■ <참고; 티스토리 공지사항>

- 베타 테스터 응모 자격

(1)티스토리에 가입한지 3개월 이상인 블로그
(2)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작성한 글이 50개 이상인 블로그 (펌글 및 간단한 링크 모음은 제외)
※ 1~2번을 모두 만족하는 블로그

-응모 방법
(1) 아래의 응모주제들로 블로그에 글을 작성
(2) 작성된 글을 이 공지글에 트랙백 보내기 (트랙백 주소 :
http://notice.tistory.com/trackback/1478 )

-베타 테스터 응모글 주제
  • 베타 테스터가 되기 위한 이유
  • 티스토리를 사용하면서 가장 좋았던 기능 / 가장 불편했던 기능
  • 티스토리를 사용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 본인이 사용하는 사용 환경 (OS 및 인터넷 브라우저 버젼) 필수 입력!

 
Posted by 파비 정부권
도서관이 없던 시골에서 부산으로 유학(?)을 간 80년부터 도서관은 저에게 가장 친숙한 곳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독립된 도서관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곳이 저에겐 놀이터 겸 안식처였던 것 같습니다. 직업훈련소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던 고교시절, 저는 수학문제를 풀거나 영어 단어를 외는 대신 독서에 몰두했습니다. 

이미지아파트도서관 내부. 아이들이 책 보며 놀기 딱 좋은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은 장서가 부족하고 좁다.


어린 시절 놀이터요 마음의 안식처였던 도서관

일반 인문계 고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를 한자도 읽지 않고 졸업했다면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입니다. 재료역학이니 기계공작이니 하는 과목들은 자격증 시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 했지만, 국어나 수학을 공부하는 것은 제게 사치였습니다. 게다가 일주일에 3일을 꼬박 기름에 젖어 사는 우리에게 역사 같은 과목은 아예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신에 학교에는 어디에도 부럽지 않은 큼지막한 도서관이 있었고 저는 거기에서 놀았습니다. 그곳에서 톨스토이도 만나고 헤밍웨이도 만났습니다. 채시라가 주연한 미니시리즈의 원작 <여명의 눈동자>도 그때 읽었었지요. 학교에서 배우는 교양 능력은 중학교 수준에서 멈추었지만, 도서관과 친했던 것이 오늘날 이처럼 블로그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80년대 초반 창원공단에 취업한 제가 공장을 쉬는 날이면 늘 가는 곳도 도서관이었습니다. 공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경찰에 쫓겨 수배생활을 할 때도 시간을 보내던 곳은 도서관이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도서관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지만요. 도서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술집이 더 가까워지는 것은 인지상정일까요. 

그러나 아무튼 도서관은 지금도 제게 가장 친근한 곳 중 하나입니다. 도서관은 어린왕자도 만나게 해주고, 아름다운 전원주택도 만나게 해줍니다. 고대의 찬란한 유적도 만날 수 있으며, 그곳에서 살다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훌륭한 작가들이 찍은 아름다운 사진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카메라 사용법도 배울 수 있군요.

작은도서관 희망만들기 블로거 간담회. 블로거는 저쪽, 이쪽은 작은도서관 사서들.


작은도서관이 주최한 블로거 간담회

며칠 전, <경남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에서 주최하는 <작은도서관 희망만들기 블로거 간담회>에 초대를 받아 다녀왔습니다. 마산의 중리에 있는 한 작은도서관에서 열렸는데, 간담회가 시작되기 전에 잠깐 작은도서관이 어떤 곳인지 둘러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원래 이곳은 창고였는데 개조해 작은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도서관은 아담하고 깨끗했습니다. 작은 도서관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아늑했지만, 풍부한 장서는 시립도서관 부럽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이는 과장이지만, 그러나 작은도서관을 주로 이용하는 아이들에겐 보다 효율적일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도서관에 오는 이용객들에게 꼭 필요한 책들만 엄선해서 비치해놓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제가 사는 마을에도 작년에 작은도서관이 하나 생겼습니다. 우리 마을은 아파트촌이 거의 없고 대신 오래된 주택들이 많이 모인 곳입니다. 원래 창원군청이었던 것이 나중에 의창군청이 되고 합포구청이 되었다가 지금은 경남대학교에서 인수해 평생교육원으로 사용되는 건물이 이 마을에 있는데, 이곳 1층에 작은도서관이 하나 생긴 것입니다.

경남대학교와 STX가 협력해서 만든 작은도서관입니다. 말하자면, 산학협동 도서관인 셈입니다. 멀리 떨어진 마산시립도서관을 주로 이용하던 저는 집에서 5~600m 거리에 도서관이 생긴다고 하니 매우 기뻤습니다. 작은도서관이란 개념을 알게 된 것도 이때였습니다. 그 전에는 주로 도서관 하면 시나 도에서 만든 거대한 건물만을 생각했었지요. 

왼쪽은 이미지아파트도서관, 책 고르는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바닥에 보인다/ 오른쪽은 경남대-STX도서관 책장


첫 번째 만났던 작은도서관에서 얻은 실망 

그러나 작은도서관과의 첫 만남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제가 1년 전에 그 감상을 적은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좋으실 듯합니다(http://go.idomin.com/28). 요즘도 저는 그 도서관을 자주 이용합니다만, 별로 나아진 건 없습니다. 여전히 장서의 대부분은 법학개론이니, 경제학원론이니, 기계공학이니, 물리학이니 하는 이름만 들어도 머리 아픈 책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입구에 앉은 사서는, 사실은 진짜 사서가 아니라 아마도 아르바이트 대학생인 듯이 보이는 사서는 매우  불친절하고 사무적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는 이용객들이 불필요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컴퓨터 이용대장에 기록을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기 위해 고용된 감시원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서 아닌 사서는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은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문객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저 외에는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실은 이곳에 책을 보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곳에 컴퓨터가 두 대 비치되어 있는데, 그걸 쓰기 위해 가끔 들르는 정도였지요. 어떨 땐 이곳이 제 개인서재 같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요.  

처음 만났던 작은도서관은 이처럼 저에게 실망만 안겨주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과 기업체가 만든 작은도서관 말고 마을도서관은 어떨까 궁금한 마음으로 중리의 작은도서관에서 열리는 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로 만난 마을도서관은 와~ 하는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했습니다. 우선 이곳엔 경제학원론이니 민법총칙 같은 책은 없었습니다. 

주민이 스스로 만드는 작은도서관과 관 주도 도서관의 질감의 차이

게다가 아파트 단지의 한가운데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즐거운 것이었습니다. 어려운 말로 <접근성>이 아주 뛰어나니까요. 사실 이것은 아파트촌의 장점입니다. 우리처럼 단독주택이 주로 모인 동네에선 부러운 일이지요. 어쩌면 우리 동네의 아이들에게 더욱 절실한 것이 이런 공간일 텐데도 말입니다.

간담회 진행자 문정희 팀장. 오른쪽은 김미정 도서관 사업담당.


아무튼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 작은도서관의 이름은 대동이미지아파트도서관입니다. 블로거 간담회에 참석한 관장의 말에 의하면 창고였던 이곳을 개조해 도서관을 만들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장서를 확보하는 것도 문제였고, 고정적인 사서를 배치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아이가 있는 집과 없는 집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블로거 간담회를 주최한 <경남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에서 준비한 발표에 의하면, 작은도서관 희망만들기(전담인력 양성·파견사업)는 경력단절여성, 여성가장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기여를 통한 자기만족도 제고에도 유용할 뿐 아니라 지역민들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통해 삶의 질을 제고하는데도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거기에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관이나 기업체가 만든 도서관이 아니라, 민이 주도가 되어 운동적 관점으로 만들어나가는 작은도서관이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처음 작은도서관을 보여준 경남대-STX 합작 작은 도서관처럼 딱딱한 콘크리트의 질감과 다른 대동이미지아파트도서관의 우드질감은 운동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작은도서관은 운동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정책과의 김준이란 분이 2006년에 쓴 <작은도서관 개념에 대한 이해>에 보니 이런 말이 나와 있군요. "작은도서관은 운동이다." 두 개의 작은도서관을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이 말은 진리입니다. 기업과 대학이 만든 도서관도 결국은 관 주도 전시행정 수준을 넘지 못하는 한계가 분명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작은도서관은 운동이다!"란 말이 실감납니다.  

그리고 그 운동에 여성들이 앞장서는 것은 매우 지당하고 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사진은 간담회 다음날 작은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는 여성들과 진주 청동기박물관에 갔을 때 찍은 것입니다. 청동기박물관에 마련된 문고 앞에서 사서들은 탄성을 지르며 한참을 이곳에서 머물렀습니다. 역시 직업은 못 속이는 것일까요? 

블로거 간담회 다음날, 작은도서관 사서들과 다솔사를 거쳐 진주 청동기박물관 견학.


그 모습들에 제게서도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역시 작은도서관은 운동이야!" 그렇습니다. 역시 작은도서관은 운동이고 운동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운동을 이끌고 나가는 데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점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와 나이가 비슷한 어느 사서의 말을 들으며 그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여성입니다.

"처음엔 일자리 생각으로 작은도서관 사서 일을 시작했어요. 아이들도 어느 정도 크고, 그러고 나니까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돈을 벌어 가계에도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런데 이제 돈은 뒷전이 됐어요. 돈보다는 뭐랄까, 일에 대한 보람 같은 거, 맞아요, 그게 우선이 됐어요. 이 일은 정말 보람 있는 일이에요. 정말 내 일을 찾은 거 같아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블로그 강좌에 강사로 나서달라는 요청을 받고 나는 잠깐 망설였다. 우선 내가 블로그 강사가 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이유 때문이었지만, 무엇보다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늘 교육만 받던 처지에서 거꾸로 교육을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남들 앞에서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제일 문제는 그것이었다.

강의중인 필자. 강좌에 참석하신 달그리메님이 찍어주신 사진.


올챙이 블로거, 블로그 강좌에 강사로 나서다

그러나 수락하기로 했다. 우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에게 블로그를 전도한 김주완 기자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강의를 하기로 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내가 하게 될 강좌의 내용이 교육이라기보다는 사례발표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에 크게 부담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같은 초보블로그에게―이제 이 초보란 딱지도 떼야 하겠지만―블로그 강좌를 부탁할 때는 전문적이고 차원 높은 수준의 강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지나온 과정을 들려달라는 뜻이 숨어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하는 블로그 강좌의 청강생으로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던 나는 그 뜻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했다. 1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강의가 열리는 당일까지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게으른 사람들은 늘 여기저기 하는 일 없이 바쁘다. 게다가 블로그 강좌 전날에도 어느 강좌의 수강생이 되었던 나는 뒤풀이 자리를 새벽까지 지켰다. 해가 뜨자 나는 참으로 난감해졌다. 후회와 함께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오전에 대충 일을 본 나는 점심을 먹고 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 교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막막했다. 어쩐다? 생각 끝에 나는 내가 맡은 강좌 내용을 실제로 현장에서 강의를 하듯이 그냥 글로 적기로 했다. 그러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 수강생들을 상대로 미리 강의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리허설이라고나 할까. 

역시 블로그는 급할 때 긴요하고 훌륭한 프레젠테이션 도구

이미 주제와 소제목은 김주완 기자로부터 받았었다. 1. 블로그를 운영하게 된 계기와 이유, 2. 블로그를 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3. 처음 블로그를 할 때 유의할 점이나 고려할 사항, 4. 쉽고 즐거운 블로그 운영비법, 5. 글의 소재는 어디에서 찾을까, 6. 나의 히트 블로그 포스트, 7. 향후 계획 및 전망, 이렇게 받은 숙제를 인터뷰에 답변하듯 하면 되는 것이었다.

소제목마다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먼저 틀을 잡는 것이 일이었다. 이 일을 하는데 대충 30분 정도가 소진되었다. 시계는 이미 두 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마음은 초조하다. 강의를 한다는 기분으로 편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이 중간에 끊어지면 안 된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거의 네 시가 다 되어서야 작업이 끝났다. 

활자 크기 10으로 A4 용지 9장 분량이었다. 매우 많은 분량이다. 이걸 1시간 이내에 끝낼 수 있을까? 시간을 재면서 다시 리허설을 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빔 프로젝트로 강의 내용을 프레젠테이션 할 수 있도록 자료를 만드는 작업이 남았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다른 프로그램을 이용할 거 없이 그냥 블로그에 자료를 만들어 담기로 했다. 

역시 블로그는 급할 때 긴요하고 훌륭한 프레젠테이션 도구다. 그런데 이것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제목과 소제목, 간단한 설명을 다는 것은 금방 마칠 수 있었지만, '나의 히트 블로그 목록'을 만드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지난 1년간 쏟아낸 300여 개의 블로그를 일일이 확인하며 그 중 20여 개를 골라내고 주소를 링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꽤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게으름으로 인해 얻은 불안과 초조는 스트레스였다

물론 시간이 충분하다면 간단한 일이었을 테지만, 7시부터 강의가 시작되니 늦어도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시간은 이미 5시를 넘기고 있었다. 초조한 마음 탓인지 손가락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시간은 5시 30분, 경남도민일보 강당에 도착하니 6시 20분쯤 되었다. 김주완 기자에게 빔 프로젝트와 노트북을 받아다 강의실에 설치하고 나니 6시 40분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미리 작성한 강의안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워낙 장문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대략 윤곽만 확인하고 빨간 볼펜으로 줄을 그어 중요부분이나 단락을 구분 지어두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7시에 강좌가 시작되었는데 <발칙한 생각>을 운영하는 구르다님이 먼저 강의를 하고 그 다음이 내 순서였다. 

구르다님(정보사회연구소 이종은 소장)은 준비를 제대로 해 오신 것 같았다. 아니 이분은 정보사회연구소에서 평소에 블로그 강좌를 연다고 했다. 그러니 이미 충분히 단련된 훌륭한 강사였다. 거기다 블로그 경력도 거의 5년이라고 했던가? 그는 이미 블로그 전도사 역할을 충실히 해오던 선교사였다. 말하자면, 준비된 강사였던 것이다. 

그의 강의를 듣는 내내 나는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저렇게 준비도 많이 하고 말씀도 잘하시면 이거 참 곤란한데….' 그러나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궁지에 몰린 쥐처럼 변할 수도 있는 법이다. 이런, 비유가 너무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그냥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에이, 될 대로 되라지.'

포기하는 순간 찾아온 마음의 평화와 여유

'강의가 아니라 사례발표를 한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실제로 교육내용이 사례발표 아니던가. 그저 지인들 앞에서 편안하게 내가 지나온 길을 들려준다고 생각하자.' 그러자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도 두세 차례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 이유는 경험해보신 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사람이 긴장하면 오줌이 자주 마려운 법이다. 

그러나 훨씬 편안해진 마음으로 시작한 강의는 무리 없이 진행되었던 것 같다. 그냥 이웃들과 어울려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니 이보다 더 편하고 재미있는 일이 없었다. 시간이 모자랐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그걸 다 쓸 수는 없었다. 앞에서 시간이 초과한 탓이었다. 시간이 30분만 더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의 히트 블로그 포스트'를 소개할 때 제목 달기나 사진 배치, 소재 발굴 등에 대해 이야기를 곁들일 생각이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실은 이게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자를 수밖에 없었다. 9시까지는 교육을 마쳐야 질문 30분 정도 받고 3교시 뒤풀이로 갈 수 있다. 청강생들에겐 뒷풀이 시간이 더 기다려진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잘 아는 것이다. 

9시 10분에 강의를 마쳤다. 소요시간은 약 50분이었다. 그러나 기지를 발휘해 제목 달기에 대해서는 질의응답 시간에 잠깐 언급함으로써 아쉬움을 풀 수 있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이유는?' 이런 식으로 제목을 다는 게 독자들에게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훌륭한 강의를 위해선 소주제별로 적절한 시간 안배가 필요했다

"홀딱 벗으면 안 됩니다. 적당히 보여주고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정도로 제목을 다는 게 중요하죠. 그러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보신탕 때문이었다' 라고 홀딱 보여주는 제목이 때에 따라서는 어필할 경우도 있습니다. '달마, 보신탕 맛보러 동쪽으로 가다' 이렇게 갈 수도 있겠지요. 모든 건 상대적이죠. 절대적인 건 없습니다." 

그리고 나의 블로그 제목들이 변해온 과정을 잠깐 언급했는데 내가 보아도 1년 전 혹은 6개월 전의 블로그 제목들은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길거나 짧았다. 그러나 아직도 감각이 많이 모자란다. 지금도 어떤 제목을 달아야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자칫하면 낚시 제목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성의 없는 제목으로 냉대 받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의 첫 번째 강의는 무사히 끝났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출사표라도 올리고 강좌에 나섰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런 마음도 실은 마라톤을 완주하고 난 다음에야 가질 수 있는 여유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런 여유가 내게도 올지 모르겠다. 그때는 나도 김주완 기자나 이종은 소장처럼 블로그 전도사로 자처해도 되지 않을까. 

이제 겨우 개구리 발이 보이기 시작한 올챙이에 불과한 나에게 블로그 강좌를 맡겨준 김주완 기자와 경남도민일보에 감사드린다. 재미없는 강의를 졸지 않고 끝까지 들어준 블로거 여러분에게도 감사드린다. 아, 한 사람 졸지는 않았지만 하품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의 고교 동창인데 여영국이란 친구였다. 

블로그 강의를 맡긴 경남도민일보에 감사

이 친구에게 나는 따로 강좌에 참석해달라고 연락한 바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하품을 몇 번 하긴 했지만 끝내 졸지는 않았으므로 내 친구에게도 더불어 감사드린다. 경남도민일보가 지역 언론으로서 지역 블로그의 활성화를 위해 바치는 노고가 실로 가상하다. 마지막으로 경남도민일보의 건승을 기원한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제 블로그는 탄생한지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이름의 역사를 쓰자면 좀 깁니다. 제 블로그가 처음 세상에 빛을 본 것은 작년, 그러니까 2008년 4월 19일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날은 매우 의미가 깊은 날입니다. 4·19혁명 기념일이죠. 바로 그런 날에 제 블로그가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한편 가슴 뿌듯합니다. 

내 블로그 생일은 4·19혁명 기념일

사실 그러고 보면 이날은 제 인생에도 혁명이 일어난 날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날로그 세상에서만 맴돌던 제가 디지털 세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는 것을 혁명이라고 해도 그리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제 블로그는 4·19혁명 기념일에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블로거가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 후의 일입니다.

2008년 8월 30일, 경남블로거스컨퍼런스. 사진=경남도민일보


제가 블로거가 되도록 인도한 사람은 경남도민일보에서 미디어부장으로 일하는 김주완 기자와 정성인 기자입니다. 제 블로그를 만들어준 사람도 사실은 김주완 기자입니다. 그가 제게 티스토리 초대장도 보내고, 블로그 스킨도 만들고, 나중에 광고도 달아주고, 그가 다 했습니다. 저는 오로지 글만 써서 올리면 되었던 거지요. 

당연히 제 티스토리 블로그 아이디와 비밀번호도 그는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까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당시 저는 거의 컴맹이었습니다. 컴퓨터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컴퓨터는 제게 워드프로세서, 엑셀, 파워포인트나 사용하는 사무용품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인터넷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도 업무상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니 컴맹이라고 불려도 별로 변명의 여지가 없지요. 넷맹이라고 하는 게 보다 더 정확할 수도 있겠군요. 4월 19일, 김주완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블로그 다 만들었으니 들어가 보시고 이전에 써두었던 글 있으면 우선 몇 개 올려보세요."

대박 난 첫 번째 포스팅, "삼성은 뭔 짓을 해도 됩니더"

그래서 도민일보에 기고했거나 어떤 까페에 올렸던 글 등 30편을 골라 한꺼번에 올렸습니다. 제일 첫 번째로 올렸던 글은 <삼성은 뭔 짓을 해도 용서해줘야 됩니더>란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이 떴습니다. 다음 메인 뉴스 화면에 발탁된 이 글은 4시간 만에 5만 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방문했습니다. 댓글도 백여 개가 달렸습니다. 

그게 4월 20일이었던가, 4월 21일이었던가요?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김주완 기자로부터 받았던 전화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 파비님 블로그가 다음에 떴던데 보셨어요? 난리가 났던데요." 글쎄 저는 그때 블로그란 게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그저 한 순간 지나가는 태풍처럼 그렇게 지나갔을 뿐입니다. 

9월이 오기까지 저는 단 한편의 포스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8월 30일, 경남도민일보에서 주최했던 <경남블로거스 컨퍼런스>는 블로그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하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말하자면, 제게 그것은 신항로의 발견에 버금가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9월 1일, 저는 블로그를 위한 첫 포스팅을 했습니다. 

아마 이날이 제게는 실질적인 블로그 생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무얼 써야 할까? 마치 '뭘 해먹지?' 하고 고민하던 우리 어머니처럼 쓸 게 없었던 저는 제 이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제목이 <목욕탕에서 만난 낯선 남자>였는데, 낯선 남자란 다름 아닌 저였습니다. 이후 주로 세상사는 이야기를 주로 쓰던 저는 슬슬 시사블로그로 옮겨갔습니다. 

감성블로거가 되지 못하고 시사블로거도 아닌 의문의 블로거로 남다

'빗물처럼 감성이 줄줄 흘러내리는' 그런 감성블로그를 만들고 싶었던 저는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하고 시사포스팅을 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고 물어보신다면, 그게 가장 접근하기 쉬워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엔 말입니다. 그리고 당시는 촛불정국을 지나 세상이 혼돈한 시기였습니다. 물론 여전히 혼돈상태에 있긴 하지만 그땐 정말 시끄러웠죠. 

그리고 제 경우에 감성블로그란 여행을 중심으로 문화답사, TV·영화·책 등 문화비평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한 시간과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사포스팅을 위주로 하는 블로거가 되었던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요즘은 또 드라마 리뷰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이덴티티가 없는 블로그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시사블로거도 아니고 드라마리뷰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행블로그도 아닌, 정체가 모호한 의문의 블로그인 셈이지요. 한 달쯤 전에 김주완 기자와 커서님 그리고 저, 이렇게 세 사람이 경주에 놀러 간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두 분이 제게 했던 말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파비님은 블로그 정체가 뭔지 그걸 모르겠단 말이에요." 그리고 김주완 기자가 구체적인 해법까지 내놓았습니다. "요즘 드라마 리뷰를 자주 쓰시던데 아예 그 길로 가세요. 조회 수 10만 넘는 것도 몇 건 있잖아요. 이참에 블로그 이름도 고치고요. '고' 블로그가 뭡니까? '고' 블로그가… TV저널, 이런 건 어떻습니까?" 듣고 보니 그럴듯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블로그 이름의 변천사, 고마나루에서 테레비저널까지

"TV저널이 좋긴 한데 좀 촌스럽군요. 그보다는 고상하게 테레비저널로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러자 두 사람은 적극적으로 찬성의 의사를 표시하며 지지했습니다. "아, 그거 정말 좋네요. 그걸로 하세요." 그렇게 해서 보시다시피 제 블로그는 지금 현재 테레비저널이란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제 블로그 이름의 변천사라고나 할까, 거기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가 4·19혁명 기념일에 태어났을 때 처음 이름은 고마나루였습니다. 제 대신 블로그를 만든 김주완 기자가 제게 블로그 이름을 무얼로 할 거냐고 물어봤을 때 퍼뜩 생각나는 게 없어서 그냥 고마나루로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 티스토리 블로그 주소도 http://gomanaru.tistory.com 입니다. 그러나 이 이름이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게 되는 불상사가 생겼습니다. 도민일보에 실리는 기사마다 사사건건 나타나서 시비를 거는 아주 극렬한 우익인사가 한 분 계시는데, 그 분 필명이 강나루로서 비슷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감각이 부족한 제게 좋은 이름이 떠오를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고마나루>에서 뒷부분의 '마나루'를 뺀 '고'를 이름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고블로그>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2차 도메인 주소도 아예 go.idomin.com으로 정했습니다. 제 블로그 주소는 지금도 http://go.idomin.com 입니다.

부담스러운 이름, "내 주제에 무슨 저널?"

그 이후에도 제 블로그 이름은 <파비의 고블로그>, <고블로그, 파비의 블로그 여행>으로 바뀌었다가 마지막으로 <테레비저널>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습니다. 블로그 이름 때문에 말입니다. <테레비저널>이란 이름을 만들게 해준 이는 김주완 기자였는데, 이제 이 이름이 자꾸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저널이란 거창한 개념이 맘에 걸립니다. "내 주제에 무슨 저널?" 이런 회의가 자꾸 드는 것입니다. 게다가 테레비 보고 비평하는 글만 써야할 것 같은 부담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바꾸고 싶은데, 그래도 제가 의리라는 묘한 감상주의에 연연해하는 사람인지라... 테레비를 전격적으로 버리지는 못한답니다. 마음 약해서…  

그래서 대충 아래와 같은 정도의 이름 중에서 하나를 골라 바꾸고 싶습니다. 이번에 바꾸는 이름은 절대로 변하지 않고 저와 운명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니 꼭 그럴 생각입니다. <칼라테레비>나 <검정테레비> 혹은<블루테레비> 같은 이름은 꼭 드라마 리뷰를 써야만 한다는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요. <테레비페이퍼>나 <테레비노트>라고 하면 역시 TV 이야기에 구속되는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블루노트>나 <블랙노트>로 가면 테레비란 이름에 대한 의리를 배반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튼 후보가 난립하긴 했지만, 관심들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 그런 쓸 데 없는데 시간 낭비하기 싫다고요? 그러시면 할 수 없지요, 뭐. 하긴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귀찮아서 하기 싫다는 분들도 많던데요. 흐흐흐~ 

새로운 블로그 이름, 추천 좀 해주세요

추천 마감시간은 월요일 오후 10시까지입니다. 그런데 이거 하나를 고른다고 해도 김주완 기자와 커서님에게 재가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분들이 골라준 이름이니 그분들에게 거부권이 있는 거 아닐까요? 제가 헌법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겠는데, 아니 이거 비약이 달나라로 가고 있군요…. 이만 퇴장해야겠습니다. 

특별히 <블로거스경남> 여러분은 꼭 관심 가져주세요. 안 그러면 미워할 겁니다. 진짜로요. ㅎㅎ    

1. 칼라테레비   2. 검정테레비   3. 빨강테레비   4. 파란테레비   5.지테레비   6. 감성테레비   7. 블루테레비  
8. 블랙테레비   9. 테레비페이퍼    10. 블랙페이퍼    11. 레드페이퍼     12. 옐로페이퍼     13. 감성페이퍼   
14. 테레비노트     15. 감성노트   16. 블루노트   17. 옐로노트   18. 레드노트   19. 블랙노트   20. 기타 좋은 이름


ps; 제가 블로그 이름 골라 달라고 <블공> 까페에도 올렸더니 실비단남이 그런 의견을 주셨군요. 블로그 이름이나 대화명을 자주 바꾸면 변덕스럽게 보이고 신뢰성이 떨어진다고요. 그냥 밀고 나가라네요. 텔레비전에는 별의 별 걸 다 하니 부담 갖지 마라는군요. 그 말씀을 듣고 보니 또 그렇습니다.

하하, 역시 저는… 제 블로그가 의문의 블로그가 아니라 제가 의문인 것 같네요. 에휴~ 어쨌든, 고민은 참 많습니다. 그래서 블로그 시작할 때 이런 고민 너무 오래 하다가 정작 블로그 개설도 못한다는 이야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저에게 블로그를 전도한 김주완 기자의 말입니다만, 구구절절 옳은 말 같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여수넷통 한창진, 경남블로그공동체(약칭 '블공') 첫 모임의 초대 손님이다. 블공은 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아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경남지역 블로거들의 연구모임이다. 블로거스경남의 회원 블로거들을 중심으로 몇 차례 시범 운영한 후에 본격적으로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는 조직이다. 

사진@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블공의 첫 번째 초대 손님으로 여수넷통의 한창진 대표를 모신 것은 나름대로 뜻이 있는 것이었다. 한창진 대표는 지금 여수에서 시민네트워크 구축에 땀을 쏟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야심찬 계획은 ‘블로거 10만 양병설’이란 말로 대변된다. 블로거 10만 양병설? 율곡선생의 10만양병설까지 인용한 이 거창한 계획이란 대체 무엇일까?  

한창진 대표는 원래 교사였고 지금도 교사다.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얼마 전에 김주완 기자가 자기 블로그에 쓴 여수의 시민블로그운동 <블로그로 지역언로를 여는 사람들> 에 대해 읽어 본 것이 전부다. 내가 시민블로그운동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실제로 한창진 대표는 블로그를 시민운동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을 향해 발언하려고 해도 기회를 주지 않잖아요. 특히 언론들이 우리 얘기 제대로 실어주는 거 보셨어요?” 그랬다. 언론의 취사선택이 매우 자의적이고 편의적이란 사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예외가 있긴 하지만 언론들은 늘 힘 있는 자의 소식이나 선정적인 뉴스에 매달리는 경향을 보여 온 게 사실이지 않은가. 

얼마 전, 모 단체의 신종플루 관련 기자회견장에서 발견한 기자들의 모습은 실로 절망적이었다. 기자회견문이 낭독되는 동안 프레스센터 내 상당수의 기자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인터넷을 뒤적이거나 심지어 게임 비슷한 것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대체 이런 기자회견을 왜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마저 들 지경이었다. 

한창진 대표가 블로그를 알게 된 것은 불과 1년 전이었다. 처음 그가 블로그를 발견했을 때 그것은 마치 한줄기 빛과도 같은 것이었다. 1인 미디어, 언론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발언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이 신기한 물건을 왜 이제야 만났단 말인가. 그는 블로그에 열광했다. 홈페이지 같은 것은 이제 구석기시대의 쪼아 만든 돌처럼 보였다.
 
그는 블로그를 알기 전에 인터넷신문 발행을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수시민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그런데 작년 촛불집회 때 보여준 1인 미디어의 활약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또 노무현 대통령의 웹2.0 정신을 살린 <사람 사는 세상>을 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한창진 대표. 사진@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그는 인터넷신문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유롭게 발언하고 소통하는 정보의 유통공간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확장되었다. 뉴스만 전하는 언론이 아니라 언로를 통해 소통하고 조직되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 한창진 대표에게 블로그는 신석기시대를 여는 강력한 도구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의 강좌를 통해 시민블로그들을 하나씩 모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메타블로그를 만들기 위해 이미 2100만 원의 돈도 모았다. 앞으로 2억까지 모금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돈을 내고 참여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자기 일처럼 생각하기 힘들어요.”

대신 그는 투명성을 위해 회계는 따로 회원들 중에서 복수로 선임된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자기가 대표로 있던 시민단체의 회계도 상근실무자가 아닌 회원들이 맡아보도록 했다고 한다. 회계에 관한 그의 생각은 매우 진보적이었다.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회계에 무감각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럼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질문을 과거형으로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라고 하는 것은 현재의 그는 블로그운동가이기 때문이다. 아마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기자 식으로 말하자면 블로그전도사라고 해도 되겠다. 그의 명함에는
'전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한창진'이라고 씌어있었다. 그는 시민운동가였다.

그는 원래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라고 했다. 그는 또 주민발의로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 소위 3여를 통합해 하나의 도시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지금은 행정구역통합전국회의 상임집행위원장이다. 그런 그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우리 나이로 쉰다섯,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블로그전도사로 나섰다. 한창진 대표에게 블로그는 단순히 언론의 대체재만은 아니었다. 블로그는 시민운동의 유력한 대안이었다. 그에게 블로그는 자유롭게 발언하고 소통하며 스스로 조직되는 시민의 무기였던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의 가능성을 그는 블로그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사진@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다가오는 1월 1일이면 블로거 10만 양병을 위한 대장정의 첫걸음이 시작된다. 여수넷통의 출범이 그것이다. 여수넷통이 추진하게 될 핵심 사업은 바로 블로거운동이다. 여수 시민 30만 명 중 5만 명이 필진이자 독자로 참여하는 디지털 언로를 만드는 것이 여수넷통의 원대한 꿈이다. 그는 언론이 아니라 언로라고 했다.
 
언론이 일방적으로 발언하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언로는 발언하고 주장하되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결국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일 것이다. 1인 미디어 블로그와 노무현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의 원대한 꿈이 어떤 그림을 그려갈지 벌써부터 기대로 가슴이 벅차다. 

그는 블로거스경남을 벤치마킹했다고 했지만, 이제 거꾸로 블로거스경남이 그들을 유심히 지켜봐야만 할 것 같다. 아마도 전국 최초가 될 여수넷통의 도전은 경남지역의 블로거들에게도 커다란 희망이 되고 있다. 그 희망은 나아가 시민운동가들, 진보운동가들에게도 의미 있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정체된 시민운동, 상근자 중심의 시민운동에서 대중과 함께 하는 시민운동의 롤모델이 탄생할 수 있을지 여수넷통의 대장정을 지켜볼 일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우리 아들은 연속극을 즐겨 보지 않습니다. 개콘도 잘 안 봅니다. 대신 소비자고발이나 무한지대 같은 프로를 좋아합니다. 미녀들의 수다도 잘 보고요. 좀 특이한 놈입니다.  

우리 딸은 애비를 닮아 연속극을 무지 좋아합니다. 좋아할 뿐만 아니라 다음 장면을 맞추는 것도 지 애비를 닮았습니다. 제가 좀 그렇습니다. 연속극을 보다 보면 미래의 줄거리까지 대충 꿰고 있습니다. 옆에서 같이 보던 마누라가 말합니다.

"고마 연속극 작가로 나서지."
그렇지만 그건 아니죠. 작가들에 대한 모독도 정도가 있어야겠지요.

지난 주 선덕여왕은 글쎄 결정적인 것까지, 그러니까 삼국통일 정도야 누구든 생각할 수 있는 것일 수 있다고 쳐도, 덕업일신 망라사방까지 맞춘 건 저도 사실 의외였지요. 하여간 제가 대충 그렇습니다. 선덕여왕뿐만이 아니라 연속극 볼 때 그런 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딸도 저를 쏙 닮았습니다.

오늘 조금 전에 kbs드라마 <아가씨를 부탁해>가 끝났는데요. 아가씨가 서 집사에게 소원을 하나 들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서 집사, 내가 연설 잘 하고 나면 내 소원 하나 꼭 들어줘야 돼. 전에 한 가지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
서 집사가 그 소원이 뭔지 궁금하다며 지금 당장 말해달라고 보챕니다. 그때 우리딸이 잽싸게,

"그건 내가 알지. 집사 그만두지 말고 계속 남아달라는 거잖아."

딩동댕♬

흐흐~ 부전딸전이었습니다요.

위 이야기는 지난주에 블공(경남블로거공동체) 까페에 올렸던 글이에요. 그리고 엊그제 다시 우리 부녀는 함께 나란히 앉아 <아가씨를 부탁해(아부해)>를 보았답니다. 그런데 드라마에 한참 열중하던 딸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아빠, 나는 아무리 봐도 아가씨하고 이 변호사는 안 어울리는 거 같아. 변호사가 뭐 저래. 아가씨는 서 집사하고 잘 어울려. 그리고 서 집사하고 결혼했으면 좋겠어. 이 변호사는 여의주하고 결혼하고. 태윤 씨는 의주 씨와 어울리는 것 같아. 아니야,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야."

사실은 제 마음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여자의 놀라운 직감이야." 

뭐, 이 정도면 결론 난 거지요. 우리 딸애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에요. 초딩 2년차의 눈에 그렇게 비쳤다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왜냐고요? 물론 우리 딸애가 말한 여자의 직감 때문만은 아니랍니다. 무엇보다 초딩의 눈에도 보일 만큼 결말이 단순하다는 게 이유지요. 


<아부해>는 코믹멜로드라마잖아요? 그렇다면 단순한 게 좋지요. 이런 드라마가 복잡하면 피곤하잖아요? 멜로에도 적당한 긴장은 필요하겠지만 도를 넘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부해>를 즐기는 시청자들은 복잡한 긴장보다는 편안한 가벼움을 선택한 것이라고 봐요. 명화극장을 보는 게 아니니까요.  

아, 여기서 잠깐 제 변명 하나 하고 넘어갈게요. 제가 우리 딸애와 드라마를 함께 보는 것은 제 의도는 절대 아니랍니다. 저도 애 엄마에게 많이 혼난답니다. "도대체 애 데리고 만날 그런 연속극이나 보고 뭐 하자는 게냐"는 핀잔을 귀가 따갑도록 듣습니다. 그렇지만 굳이 보겠다는 애를 말릴 재간이 없죠.  

아, 이거 그런데 정말 큰일 났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서집사와 아가씨가 키스를 하고 있군요. 좀 어설프긴 하지만. 다른 블로거들의 비평처럼 확실히 어설픈 게 맞네요. 그렇지만 원래 처음 키스하는 장면이란 다 어설픈 거 아닐까요? 아니, 어설퍼야 되는 거 아닐까요? 너무 노련하면 그거야말로 정말 문제가 있는 거지요.

서 집사는 제비 출신이라면서 저리도 어설픈 걸 보면 순진한 제비였나 봐요. 딸과 함께 연속극을 보는 저로서는 그 어설픔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하여간
마누라 등살이 무서운 저는 일부러 과장된 모션을 취합니다. 아이의 두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기에 바쁩니다.

"야, 너는 이거 보면 안 돼. 보지 마, 보지 마."
그러면 딸애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어떻게든 보려고 안달입니다.
"아빠, 이번 한 번만 보자. 다음부턴 안 볼께. 하하하, 한 번만 보자."
기어이 보겠다는 녀석을 이길 방법은 없습니다.
"와, 분위기 참 좋다."

어쨌든 우리 부녀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려나 봅니다. 그런데 요즘 윤은혜가 욕을 좀 먹는 모양이에요. 연기력 논란에다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비판까지…, 의견도 다양하더군요. 심지어 "자막을 부탁해"란 조소까지 나오고 있네요. 그러나 모든 드라마가 뛰어난 연기자들로만 채워질 수는 없습니다. 가끔 연기보다는 이미지를 내세운 배우도 필요한 법이지요.

다음(daum)이미지

그렇다고 연기자로 전업한 윤은혜가 계속 이미지에만 매달리라는 것은 아니에요. 윤은혜도 연기자가 된 이상 연기로 승부를 걸어야겠지요. 그러나 이 드라마, <아부해>에서 윤은혜의 이미지는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윤은혜의 단순하고 화려한 이미지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 드라마가 이 정도라도 선방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에요. 

역시 우리 부녀는 단순한 모양이에요. 초두에서 보여드린 대화에서 보셨듯이 우리 부녀는 확실한 윤은혜 편입니다. 윤상현(서집사)과 윤은혜(아가씨)가 잘 되길 바랄 뿐만 아니라 여의주(문채원)는 좀 빠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마저 있답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대책으로 여의주와 이태윤(정일우)을 짝 지워줄 생각까지 하는 것도 저와 딸애의 마음이 똑같습니다. 

단순한 만큼 작가가 그려주는 단순한 이미지에 잘 동화하는 편이지요. 가끔은 그게 행복할 때가 있답니다. 머리를 텅 비우고 <아부해>를 볼 때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텅 빈 머리로 봐야 할 드라마를 너무 진지하게 따져가면서 본다는 것도 사실은 참 피곤한 일이에요. 아가씨는 선덕여왕이 아닌데도 말이죠. 

아무튼 여자의 직감이 어떨지는 계속 지켜봐야겠네요. 그냥 직감도 아니고 '놀라운' 여자의 직감이라니…. 그런데 써놓고 보니 제목을 <'아부해' 윤은혜를 위한 변명>으로 하는 게 더 어울릴 뻔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흐흐흐~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은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 지가 딱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제 블로그를 개설한 날짜는 2008년 4월 19일입니다. 공교롭게도 4·19혁명 기념일입니다. 그러나 정작 저는 9월 1일이 되어서야 혁명을 했습니다. 원래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와 정성인 기자의 권유와 도움으로 블로그를 개설했던 것인데 그때만 해도 저는 넷맹이었습니다. 

2008년 8월 30일 경남 블로거 컨퍼런스. 사진=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그래 블로그를 개설해놓고도 이전에 다른 홈페이지나 신문에 기고했던 글 몇 편을 올렸을 뿐 손도 안 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작년 8월 30일 경남도민일보에서 주최하는 <경남 블로거 컨퍼런스>에 참석한 이후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무언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짜릿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9월 1일 첫 포스팅을 했고 , 그 예감은 사실이었습니다. 

지금은 하루라도 블로그를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칠 정도로 블로그에 푹 빠졌습니다. 블로그는 미디어입니다. 물론 미디어가 아니라 개인 일기장 정도에 만족하고 있는 블로거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미디어용으로 개발된 것이라는 데 별 이견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미디어 이전에 자기 계발 내지 자기 만족 정도로도 충분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를 하다 보면 이유없이 악플을 만나, 하긴 세상에 이유없는 일은 없습니다. 길을 가다가 괜한 시비에 휘말려도 그게 다 그 길을 갔기 때문에 당하는 수난인 것이겠지요. 하여튼 마음 고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도 기쁨이 훨씬 큽니다. 도민일보(블로거스경남)에서 매월 주최하는 블로그 강좌는 배움 이전에 만남의 기쁨을 선물로 주기도 합니다. 

기념일을 맞이하여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를 기념식처럼 하고 싶었으나, 마침 아는 선배와 저녁 술자리 약속이 생기는 바람에 작년 9월 1일 처음으로 올렸던 글을 다시 리바이벌 하는 것으로 기념식에 대신합니다. 물론 이 기념식은 저 혼자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함께 축하해주고 싶은 신 분은 마음속으로 박수라도 한 번 쳐주세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다른 생물계와 구분되는 확실한 이유 중에 직립도 있고,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도 있겠지만 저는 무엇보다 술을 만들어 마실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하고 분명한 특성은 바로 음주에 있다, 이런 말씀이죠. 애주가인 제가 늘 하는 궤변입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을 축복하실 때도 술을 사용하셨죠. 

그럼 이만 저는 주님과는 또 다른 주님을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모두들 행복한 밤 되십시오.
 아, 작년 오늘보다 저의 머리는 더욱 가벼워지고 슬픈 모습이 되었답니다. 아직 남들은 봐줄 만 하다고 하지만…. 그리고 오늘 날씨는 1년 전 그날과 똑같이 신선합니다. 그때의 기분이 어제 일처럼 느껴집니다. 블로그란 이래서 좋은 것이로군요.         파비   

제목: 목욕탕에서 만난 남자          2008. 9. 1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우리 아이 말마따나 여름하고 전쟁을 치르고 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밤 사이 패주하는 적군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산들거리는 바람을 선봉장으로 가을이 해방군처럼 진주해 들어왔다. 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상큼한 기분인가.

살갗을 녹여버릴 듯 짜증스럽게 달려들던 열풍은 간 데 없고 선선한 미풍이 달착지근한 연인의 밀어처럼 감겨든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다정한 연인의 팔에 이끌리듯 여름 내 시달린 몸통을 달래러 목욕탕으로 갔다.
휘뿌옇게 김이 서린 거울 앞에 앉았다. 거울을 바라보았다. 앗! 이게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웬 낯선 남자가 거울 속에 앉아 있었다.

물을 뒤집어쓴 남자의 머리에선 듬성듬성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수리 아래쪽은 텅
비었다. 앞머리 부분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비바람에 스러진 갈대 꼴이다. 바닷물이 불어나 대륙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일본열도마냥 그렇게 간신히 붙어있었다. 몇 달 만에 목욕탕에서 만난 내 얼굴이 이처럼 낯설 줄이야.

나는 평소에 거울을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다. 얼굴에 화장품도 바르지 않는다. 달리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귀찮아서 하기 싫은 것이다. 아내가 사다주는 남성용 스킨과 로션은 10년이 다돼가도록 먼지를 이불삼아 화장실에서 잠을 잔다. 그것도 몇 해 전에 혹시나 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다 버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머리에 빗질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손으로 몇 번 쓰다듬기만 해도 손질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그저 빗으로 머리를
빗지 않아도 되니 참 편리하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거울은 더욱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물을 한바가지 뒤집어쓰고 보니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이 거울 속에 드러난 것이다.

갑자기 오래된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유달리 목욕을 즐겼었다. 목욕을 하고 난 다음 머리를 말리면서 거울을 들여다볼 때의 그 흡족한 만족감을 좋아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 날아올랐다가 스르르 떨어지는 머리카락들의 질감은 마치 고요한 겨울들판에 함박눈이 내려앉듯 포근했다. 아, 이다지도 고운 머리카락이라니! 나는 나르시스가 된 기분으로 바라보며 만족감에 취하곤 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머리에 빗질하는 것도 귀찮은 남자가 되었다. 그저 손가락을 빗살처럼 만들어 머리를 몇 번 어루만져 주는 것으로 외출준비를 끝낼 수 있다는 것에 무척 행복해하며 그 편리함에 고마워했다.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게 된 것도 그즈음부터였으리라. 팍팍한 일상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느새 ‘거울도 보지 않는 남자’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거울 속에서 나는 전혀 낯선 새로운 남자를 만난 것이다.

2008년 9월 1일 밤  파비


  ps; 머리를 말리고 거울을 들여다보니 다시 잘 정돈 된 내가 거기 있었다.
        아직 허무하게 비어버린 공간을 감추어줄 만큼의 모발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테지.
        머잖아 앞머리에 위태롭게 매달린 섬들도 필경 침몰해야만 할 운명을
        받아들여만 할 게 분명할 터이다.
        우연히 목욕탕에서 만난 낯선 남자는 내게 새로운 나를, 아니 본래의
        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도 주었다.
        창 밖에선 지금, 가을바람에 실려 온 빗방울이 마른 대지를 적시고 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블로거스경남>의 블로그 강좌는 매달 열립니다. 이번 8월의 강좌에 초대된 강사는 독설닷컴을 운영하는 고재열 기자입니다. 그는 시사인의 기자이기도 합니다. 강의는 오후 7시부터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서울에서 내려오는 고 기자가 조금 연착하는 바람에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가 대신 '땜방'을 했습니다.

강의 준비 중인 김주완 기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는 구르다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정보사회연구소 이종은 소장

 
그러나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김주완 기자는 탁월한 강의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교수법이 훌륭하다고 훌륭한 선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풍부한 지식과 내용을 먼저 갖추는 게 순서지요. 당연히 김주완 기자는 내용도 충분히 갖추고 있는 훌륭한 기자요 블러거입니다. 그는 블로그 전도사로 불리기에 정말 손색이 없습니다. 

땜방 내용은 트위터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아직 트위터를 개설하지 않고 있는 나로서도 매우 흥미가 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윽고 40여 분 지각한 고재열 기자가 강단에 섰습니다. 인상이 매우 좋았습니다. 착하다고 하면 실례가 될까요? 아무튼 착해 보였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였고요. 과거 기자들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다녔겠지만, 그는 캐주얼이었습니다. 

고재열 기자, X-세대 출신 블로거다운 자유로운 외모

신세대들이 좋아할 것 같은 그러나 제 눈에는 희한하게 보이는 그런 종류였는데, 상의는 빨간 원색에 가슴에는 프리미어 리그 팀 심벌 같은 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바지는 청바지였던가? 아니 까만바지로군요. 전체적으로 머리 모양부터 신발까지 젊은 냄새, 자유의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X-세대 출신다웠습니다. 음, 요즘 기자들은 저러고 다니는구나. 

김주완 기자가 고재열 기자를 소개하고 있다. 두 기자의 복장상태가 비슷하다.


하긴 김주완 기자는 머리에 염색을 하기도 하고 머리를 길러 뒷꼭지를 묶고 다니기도 합니다만―참고로 김주완 기자는 저보다 1년 선배뻘 됩니다―요즘 기자들은 매우 자유분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졌습니다. 보다 자유롭고 날카로운 기자정신도 그래서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고재열 기자도 역시 김주완 기자 못지 않은 강의 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블로그를 한지가 이제 1년 6개월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고속성장을 했습니다. 이제 곧 본격 블로그를 시작한지 1년이 되는 나는 겨우 방문자 백만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는 벌써 누적 방문자 천오백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이 시간 현재 1045개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글을 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대단합니다. 저도 꽤 많이 썼다고 생각하지만, 겨우 300여 개에 불과합니다. 김주완-김훤주 팀블로그가 비슷한 수의 콘텐츠를 올렸으나 두 사람인 점을 감안하면 가히 독보적이라 해도 되겠습니다. 혼자서 하루에 두 개 정도의 글을 쓴다는 말이죠.

고속성장의 비결? 대량생산과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속도전
 
그는 여기에 대해 블로그를 급속 성장시킬 필요가 있어서 집중한 결과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럼 수출드라이브 경제정책 비슷한 거였나? 그런데 아무리 급속 성장을 하고 싶어도 어디 팔 게 있어야지, 그런 궁금증이 들었지만 그건 강의를 들으면서 거의 해소됐습니다. 그는 물건을 만들고 파는 방법에 대해 친절하게 잘 설명해주었습니다.

물론 그의 친절한 설명들은 모두 그의 경험에서 얻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따라 하기엔 역부족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황새고 나는 뱁새기 때문이죠. 그러나 유용한 내용임에는 틀림 없었습니다. 우선 그는 블로그는 겉절이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 힘 있는 자가 약한자를 이긴다'면 온라인에서는 '빠른 자가 느린 자를 이긴다'는 것입니다. 

곧 블로그는 이슈의 빠른 속도에 적합한 방식을 가진 도구라는 것입니다. "미워하고 싶을 때 미워하고 싶은 재료를 줘라!"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바로 이때, 바로 이런 이야기를, 바로 이런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블로그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때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그러나 말처럼 쉬원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고재열 기자는 초보 블로거들은 이슈를 따라 다닐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 단련이 될 때까지는 이 방법이 좋은 교육훈련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무한도전'이나 '패밀리가 떳다'가 방영된 다음날은 예외 없이 많은 글들이 포털이나 메타블로그를 장식하게 될 것인데 여기에 숟가락을 걸치라고 말입니다. 

블로그는 '설득의 매체'가 아닌 '공감의 매체'

이게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는 겁니다. 연예전문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들이야 연예기사를 포스팅하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이슈를 따라 다니는 게 마땅찮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재열 기자는 슬며시 우리를 설득합니다. 거기에 자기의 주장을 투영시키면 되는 거 아니겠느냐고….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요. 금석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블로그는 설득의 매체가 아니라 공감의 매체다." 참으로 중요한 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속성장도 곰감의 방법을 깨달았을 때 가능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설득을 하려다 보면 반드시 무리가 따르게 되고 그리 되면 본래의 목적도 이룰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공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다 보면 설득도 자연스럽게 이룰 수 있습니다. 팔로우 업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요. 그러나 이 역시 말처럼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고재열 기자는 공감의 방법으로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국립 오페라단이 해체되었을 때, 단원이 눈물로 쓴 편지를 직접 실었다는 겁니다.

고재열 기자의 강연은 아주 열정적이었다. 말리지만 않는다면 열 시간도 할 거 같았다.


약간의 설명만 곁들여서 올린 해고된 오페라 단원의 눈물겨운 편지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 강호순 사건이 났을 때, 오래 전에 써두었던 사형수들의 육성기록을 역시 약간의 설명을 첨부해 올렸더니 호응이 좋았습니다. 이 경우는 공감의 한 예이기도 하면서 과거의 글을 재활용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블로그를 잘 하려면 맷집도 강해야

음, 지나간 글이라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군요. 언제든 때가 오면 리바이벌 할 수 있는 것이로군요. 좋은 걸 배웠습니다. 금석 같다고 할 만한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펀치도 중요하지만, 맷집도 중요하다." 악플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시사블로거는 비판기능을 주로 합니다.

펀치를 많이 날리는 블로거란 말이죠. 그런데 펀치는 잘 날리면서 맷집은 너무나 약한 블로거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열 대 때리다가 한 대 맞고 그만 나가떨어지는 블로거도 가끔 보았습니다. 사실은 그 길로 완전히 은퇴한 블로거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든 이유 없이 악플을 받으면 기분이 매우 안 좋습니다. 

그럼 맷집이 좋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선 고재열 기자의 대답도 별 거 없었습니다. 그냥 무시전략이 최고라는 것이었죠. "그냥 무시해버리세요." 그런데 그게 어디 쉽나요? 속은 부글부글 끓는데 무시가 잘 되나요? 그러나 별 다른 대책도 없는 게 현실이니 맷집을 키우기 위해 우리 모두 도를 열심히 닦아야 할 듯싶습니다. 

아 참, 재활용에 대해서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번에 해운대란 영화가 크게 히트를 쳤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걸 지켜보고 있다가 관객이 한 400만쯤 동원 됐을 때 약 6년 전에 썼었던 기사 하나를 올렸다는 것입니다. 내용은 2박 3일 동안 해운대에 머물며 해운대의 일상들을 르뽀 형식으로 취재한 기사였는데요. 

재활용도 잘 하면 좋은 블로그 소재가 될 수 있다

이것도 대박이 터졌다고 하더군요. 6년 전 썼던 글을 살짝 손질하여 이렇게 장사(?)를 잘 해먹을 수 있다니 그 재치가 놀랍지 않습니까? 블로그를 장사에 비유해서 죄송합니다만, 어쨌든 물건을 만들었으면 잘 팔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니 모두들 너그럽게 이해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블로그를 프레이밍 하는 방법, 이슈의 패자부활전, 이슈에 집중하라 등등… 많은 가르침이 있었지만 이만 하겠습니다. 공부도 너무 많이 하면 졸리운 법이니까요. 벌써 길다고 불만에 찬 아우성이 들려옵니다. 특히 구르다님, 소리 그만 지르세요. 저번처럼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댓글 달겠다는 '발칙한 생각', 당장 그만 두세요. 내가 원래 '가늘고 길게' 사는 놈인 거 잘 아시면서.  

강좌가 끝나고 마산 어시장에 가서 아구수육을 안주로 소주를 한 잔 걸쳤습니다. 그런데 고재열 기자와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이 잘 나지도 않는군요. 부산의 파워블로거로 유명하신 거다란닷컴의 커서님도 바로 옆에 앉아 있었는데, 잘 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처음 블로그로 인도해주신 정성인 기자님도 마찬가지고요.

김주완, 커서, 고재열 기자 등 쟁쟁한 블로그계의 전설들과 한 자리에 앉다 보니 너무 긴장을 했었나? 완전 기억 상실되었습니다요. 흑흑~ 하여간 그날 필름이 끊겼습니다. 다음날 하루 종일 고생한 건 두 말 하면 잔소리고요.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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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번 주 최고 시청률이 34.9%라고 한다. 같은 시간대 다른 방송사의 드라마들이 5%와 8% 정도에 그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가히 월화드라마 독주체제다. 선덕여왕은 이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전주 드라마 시청률 1위 자리를 노리고 있다. 찬란한 유산이 막을 내린 지금 이는 거의 확실한 희망사항이다.

이런 추세라면 찬란한 유산이 세웠다는 경이적 시청률 기록 47.9%를 경신하는 것도 기대해볼만하다. 이미 선덕여왕 제작팀에서는 이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이 사실을 슬슬 흘리고 있는 분위기다. 비밀병기로 미실의 아들 비담 역을 맡은 김남길이 곧 등장한다고 한다. 비담은 실존인물로 상대등으로서 선덕여왕 말년에 비담의 난을 일으킨 인물이다.

게다가 모든 시청자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문노가 그다. 이 또한 드라마가 절정에 달했을 때 빼들 비장의 카드로 기록을 갱신할 튼튼한 장대다. 선덕여왕의 시청률 고공행진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하나 있다. 바로 김춘추다. 극 초반 천명이 김춘추를 낳았다는 건 모두 알고 있지만 지금껏 베일에 가려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청률 1위로 독주체제를 굳힌 최고의 공신은 시나리오다. 훌륭한 연출, 화려한 경력의 배우들과 빼어난 연기, 이 모든 것들이 공신의 반열에 오르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역시 1등공신은 시나리오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미실과 덕만의 대결, 예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치열한 권력암투, 마치 추리극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은 모두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 덕이다.

선덕여왕이란 신선한 소재도 큰 몫을 했다. 특히 화랑세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신라인들의 이야기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 거리를 던져주었다. 신라시대의 남녀관계, 결혼제도, 사회풍습, 화랑도와 같은 것들은 생소하고 어색함을 넘어 생기까지 불어넣었다. 판에 박힌 사극들의 주제와는 사뭇 다른 무엇이 선덕여왕에는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모든 것들, 뛰어난 시나리오와 연출, 빼어난 연기와 화랑세기의 생소하고 신선한 충격과 더불어 블로그를 선덕여왕을 최고의 인기드라마로 등극하게 만든 공신의 반열에 올리고 싶다. 이 모든 연출자의 의도와 연기자들의 활약을 고스란히 세상에 알려내는 역할을 한 것은 블로그이다.

심지어 연출자가 심어놓은 그리고 은근히 때를 보아 흘리고 있는 비밀 장치들을 제때 유효적절하게 세상에 전파하는 것도 블로그가 하는 일이다.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비담 역의 김남길이나 김춘추 역의 유승호에 대해 소개하고 궁금증과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것도 블로그가 하는 일이다.

또한, 블로그들은 선덕여왕을 보고 그 감상만을 적어 올리는 게 아니라 화랑세기나 삼국유사, 삼국사기를 빌어 논쟁까지 유발시킨다. 다양한 사실관계를 캐내기도 하고 역사적 해석을 곁들이며 갑론을박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블로그들의 선덕여왕에 대한 관심과 취재가 선덕여왕에 대한 시청율로 이어지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우선 내가 몇 차례 작성한 선덕여왕 관련 포스팅으로 인해 나와 친한 선배 한 사람은 선덕여왕의 골수팬이 되었다. 그는 처음에 선덕여왕을 보지 않았지만 내가 올린 "선덕여왕도 색공을 받았을까?"라는 글을 읽고 선덕여왕을 보게 되었다. 그는 1회부터 보기 위해 인터넷에서 돈을 주고 지나간 회들을 모두 보았다고 했다.

엊그제 월요일 날, 그 선배와 함께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아홉시가 다가오자 선덕여왕을 보러가야 한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물론 나도 덩달아 일어나야 했지만, 합석했던 다른 사람들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요새 가장 인기 있는 선덕여왕을 꼭 보아야겠다는 데 무슨 이의가 있을 수 있었겠나.

선덕여왕 방영 초기 다음뷰 문화연예 베스트 코너의 대부분을 장식하던 때와는 달리 차분해진 분위기인 것도 사실이지만, 문노와 비담, 김춘추가 등장하면서 블로거들의 관심과 열기는 다시 불붙을 것이 틀림없다. 선덕여왕 제작진이 숨겨놓은 비밀병기들은 새로운 이야기 거리와 역사적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그러면 다음뷰는 다시 한 번 선덕여왕 이야기로 몸살을 앓게 될 것임을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선덕여왕 제작진도 이런 현상을 보며 미리 그런 준비를 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준비했을 것이다. 나라면 틀림없이 그렇게 한다. 블로그는 이미 드라마의 중요한 홍보수단이며 인기를 획득하는 비결 같은 존재가 되었음을 모르지 않으니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마산에서 시국미사가 열렸습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시국미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이 세번째 시국미사입니다. 원래는 전주에서 열려고 했던 것을 마산 수정만 주민들이 2년 가까이 마산시와 STX 조선을 상대로 생존권 싸움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전주에서 양보했다고 합니다. 수정만 문제는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용산재개발과 다르지 않은 문제입니다.


시국미사가 열리는 상남성당에 미리 가보았습니다. 고요한 성당 입구에 걸려있는 플랑카드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공권력의 명령이 도덕질서의 요구나 인간의 기본권 또는 복음의 가르침에 위배될 때, 국민들은 양심에 비추어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다. [가톨릭사회교리 제8장 정치공동체 (다. 399장)]"

양심에 따라 공권력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란 다른 말로 하면 "저항할 권리와 의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고, 특히 교회의 지도자인 사제에게는 특별하게 요구되는 양심의 의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회 정문에 내걸린 검은 플랑카드가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이렇게 검은 현수막을 성당에 내걸어야만 하는 현실이 비통하게 느껴집니다.


시국미사는 이상원(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마산교구 대표신부), 전종훈(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신부), 황병식 신부(상남성당 신부)의 공동집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강기갑 의원의 시국강연이 있었습니다. 천주교 교우이기도 한 강기갑 의원은 현 정권이 자행한 용산참사는 개발논리로 사람을 죽인 만행이라고 규탄했습니다. 수정만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발로 돈을 벌기 위해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을 내쫓는 것이 수정만 사태의 본질입니다. 

이어 진행된 시국미사에서 이상원 신부는 강론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언젠가 '세상에 이런 일이'란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새들이 지푸라기를 구하지 못해 철사를 모아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둥지에 솜을 넣어 주었다고 한다. 바로 이명박 정권이 하는 짓이 바로 이와 같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들이 둥지도 틀지 못하도록 개발논리로 사람을 옥죄고 있다. 용산참사가 바로 그 표징이다." 

시국미사가 진행되고 있던 성당 안에는 '월드 베스트 사기꾼 STX-마산시장'이란 문구가 새겨진 조끼를 입은 수정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바로 수정만 사태가 용산참사와 똑같은 문제입니다. 개발논리로 오래도록 터전을 일구어온 주민들이 철사로도 둥지를 틀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수정만 사태입니다. "이들에게는 솜을 넣어줄 사람도 없다"고 외치는 이상원 신부의 강론이 절규에 가깝게 들렸습니다.    


시국미사에 이어 가두행진이 벌어졌습니다.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앞에 서고 그 뒤를 수정만 주민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뒤를 따랐습니다. 행렬은 6호 광장을 지나 불종거리에서 창동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림시장으로 올라갔다가 3·15광장 탑에서 한차례 집회를 가진 다음 다시 어시장을 거쳐 불종거리까지 이어지는 행진이었습니다. 수정만의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의 걸음이 매우 힙겹게 보입니다.

지팡이를 잡고 걷는 모습이 위태롭기 그지 없습니다. 누가 이분들을 이렇게 거리로 내몬 것일까요? 마산시장과 STX가 조용한 동네에 분란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이분들은 평온하게 원래 살아오던 그 모습으로 여생을 마치실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늙으막에 지팡이를 짚고 힘든 행진을 해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분들은 며칠전에는 서울 STX본사에까지 올라가 농성을 벌이다가 금새 풀려나긴 했지만 아홉 분이 연행되기도 하셨습니다.

아래 사진의 할머니는 결국 다리가 너무 아프셨던지 잠시 도로변에 앉아 쉬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끝까지 행진을 하셨답니다.


이날 시국미사는 『누리꾼 TV 아프리카』가 함께 하며 생중계를 했습니다. 마티즈의 지붕에 올라타고 가두행진을 생중계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이분들은 오후 7시부터 밤 10시 반 무렵까지 계속된 행사를 생중계했습니다. 이 생중계는 아프리카 TV와 라디오 21을 통해 생방송되었는데 아프리카의 순간 접속자가 2500명, 라디오 21은 순간접속자가 40만이 넘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생방송을 진행하던 아프리카 PD의 전언으로는 "어떻게 마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며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들이 생방송을 진행하기 위해 올라탔던 마티즈의 지붕을 살펴보았더니 커다란 웅덩이가 하나 파져 있었습니다. 자동차의 지붕이 파손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열정이 대견스럽고 고마웠습니다. 이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언론의 표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분은 수정만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봉쇄수녀인 오틸리아 수녀님이십니다. 시국미사와 집회 장면을 하나도 빠짐없이 동영상으로 담고 있습니다. 수정만 사태가 벌어진 이후 블로그도 열심히 본다고 했습니다. 천주교 마산교구청에 마련된 농성장에 가보면 블로그에 올라온 수정만 관련 기사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스크랩하여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해놓았습니다. 게다가 스스로 촬영한 동영상이나 사진들을 인터넷에 게시하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최초의 블로거 수녀가 될지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한번 지켜보시죠.

마산시장과 STX조선이 아니었다면 수도원에서 노동과 기도로 세속과 봉쇄된 생활을 하며 평생을 보냈을 터이지만, 세상이 그들을 봉쇄수도원의 바깥으로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수정 트라피스트 수도원 원장수녀(아래 두번째 사진, 요세파수녀)는 수정만 주민들과 함께 투쟁하기 위해 로마교황청에 있는 본부에 가서 허가까지 얻었다고 합니다. 천주교의 특성상 이분들 마음대로 봉쇄를 풀고 세상으로 나올 수는 없었을 터입니다. 이분들의 호소를 들은 로마의 수도원 총장은 실태조사팀과 함께 직접 와서 수정만의 진상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결과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수녀들이 수정만 주민들과 함께 투쟁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봉쇄를 푸는 것을 허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전 세계 트라피스트 수도원 원장들의 공동명의로 격려문이 전달되었습니다. 역사상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봉쇄가 풀린 경우는 이번이 단 두번째라고 합니다. 첫번째는 아프리카 우간다의 내전으로 인해 밀려드는 피난민들을 수용하고 그들을 내전 지역 밖으로 탈출시키기 위해 이루어졌던 아프리카의 어느 수도원의 봉쇄 해제가 첫번재 사례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개발에 밀린 지역주민들의 처지를 난민과 같이 인정해 수도원이 봉쇄를 풀도록 허락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사실상 첫번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로마에서조차 중대한 문제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산시장과 대한민국 정권은 이 문제를 그저 귀찮은 하나의 민원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문정현 신부님도 오셨습니다. 함께 악수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마산가톨릭여성회관 관장이었던 분 같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아주 오래된 옛날에 가톨릭여성회관에 들렀다가 그곳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궁금하면 물어보면 될 터인데, 아직 블로거 기자가 되려면 멀었거나 틀린 모양입니다.

그 아래 사진을 보시면 지팡이를 짚고 춧불을 들고 계신 할아버지가 보이실 겁니다. 지팡을 짚은 힘겨운 모습으로도 촛불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지 않으십니까? 얼마 전 농성장을 찾았을 때 어느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누가 우리더러 잘 해 돌라 켔나? 잘 해 줄 필요 하나 없다. 그냥 우리가 살던 대로 그대로 내비리 도라 이말이다. 아무 것도 필요없다. 와 이리 사람을 못 살게 구노?"

밤 10시가 넘어 집회는 이렇게 해서 평화적으로 끝났습니다. 이날의 가두시위는 참으로 조용했습니다. 촛불을 들고 행진하면서 아무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그 흔한 구호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걷기만 했습니다. 정말 조용한 시위였습니다. 말 대신 촛불과 플랑카드로 할 말을 대신한 것입니다. 다만, 창동거리를 지날 때 약간의 소란이 있기는 했습니다. 행진을 지켜보던 어느 시민이 행렬로 달려들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너, 빨리 꺼져. 니가 여기 뭐 한데 왔노? 엉? 니, 빨리 집에 가라. 니는 여기 필요 없다." 그리고 다른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리고 야, 니도 빨랑 집에 가라. 니가 뭐 한다꼬 여기 있노." 우리는 깜짝 놀랐지만 그가 가리키는 사람들은 모두 사복형사들이었습니다. 그 사복들은 이 시민에게 꼼짝도 못하는 거 같았습니다. 우선 덩치부터가 차이가 났습니다. 몇몇 형사들이 그를 제지하려 하자 그는 또 소리쳤습니다. "내 몸에 손 대지 마라. 손만 댔단 봐라. … 어이 그리고 ○형사 니, 내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잘 해라, 어이"

그러면서 그는 사제단을 향해서도 소리쳤습니다. "신부님들, 화이팅!" 나중에 그는 택시까지 타고 쫓아오며 행렬을 따라다니던 형사들을 향해 "빨랑 꺼져라!"고 소리치며 떠났습니다. 에피소드였지만,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경찰이 쓸데 없이 방해만 안 한다면 이렇게 얼마든지 평화적으로 집회가 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 STX 본사 건물 앞에는 한달치 집회가 벌써 경찰에 신고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정작 집회는 단 한차례도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집회신고를 한 측은 두말 할 필요 없이 STX입니다. 그리고 수정만 주민들이 이곳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하면 불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방패를 든 손자 같은 전경들이 이들을 둘러싸고 일정한 시간이 되면 폭력을 휘두르고 연행하고 하겠지요.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의 양심입니다. 웃기는 일이지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제 경남도민일보에서 주최하는 블로그 강좌에 다녀왔습니다. 강의를 해주신 분은 <디자인로그>를 운영하시는 '마루'님이었습니다. 저는 마루님이 디자인 업종에 종사하시고 또 블로그 이름도 디자인로그이므로 마루란 이름은 당연히 디자인과 관련된 이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룻바닥, 강화마루,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경남도민일보의 블로거스 경남 팀이 주최한 강좌. 정원이 30명이었지만, 초과했다.


그런데 마루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런 뜻이 아니고 마루치, 아라치 할 때의 그 마루라고 합니다. 정상, 꼭대기란 뜻이랍니다. '치'는 사람을 의미하니까 마루치는 정상의 사람, 최고의 사람, 뭐 그런 뜻이 되겠군요. 공부 많이 했습니다. 또 공부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릴 때 "태권동자 마루치 정의의 주먹에 ~ 파란해골 13호~" 노래를 부르며 자랐건만… 마루치가 아직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있었네요. 또 어떤 교수님의 해석에 의하면 고대로부터 마루는 신성한 공간을 뜻한다고 하네요. 우리 전통가옥의 마루도 또한 방과 방 사이에서 조상의 제사도 모시고 손님도 맞이하는 신성한 곳이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마루님께서 강의를 해주는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신성한 것들 뿐이었답니다. 우리 같은 초보 블로거들이야(앞으로는 이 초보란 말도 안해야 될 거 같아요.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런 말하면 진짜 초보들 기분 나쁘겠지요. 저는 최초로 블로그용 포스팅을 한 날짜가 9월 1일이랍니다. 개설일은 작년 4월 19일이고요)

꼭 필요한 내용을 쉽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신성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그랬습니다. 마루님의 강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 목말라했던 것들이었습니다. 마치 사막에서 물을 만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러고 보니 문득 옛날 연애편지 대필하던 생각이 나네요. '그대 없는 세상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 (자~ 자, 옆길로 새지 말고)

강의의 주제는 『인기 블로거가 되려면?』이었습니다. 인기 블로거가 되기 위해서는 정말 성실해야겠더군요. 블로그를 예쁘게 꾸며 고객(방문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할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이 댓글을 열심히 다는 것이랍니다. 

남의 블로그에 자주 방문해서 댓글을 열심히 달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글에 달린 댓글에도 성실하게 임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성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었겠지요. 그런데 오늘 제블로그를 열어보니 바로 이를 실천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바로  <달그리메>님입니다. 오늘 아침에 당장 제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놓으셨더군요. 

안 그래도 썰렁했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제 교육받은 신성한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의미에서 답글도 달았지만, 거기에다 아예 이렇게 포스팅으로 보다 더 진지한(!) 답글을 달아봅니다. 네, 오늘 이 글은 달그리메님의 댓글에 대한 답글이랍니다. 달그리메님께서 <이요원이 창조하는 선덕여왕의 이미지는?>이란 제 글에 이렇게 댓글을 주셨네요.  

  • 달그리메 2009/06/25 1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비님의 글을 읽으면서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드라마에 집중을 잘 못하겠더라구요.
    가끔 재미있게 보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드라마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에 대한 감상글을 잘 못 적겠습니다.
    몰입을 해야 느낀점이 생기고 거기서 글이 나오는데 말입니다.
    어제 인사를 해야 했는데 기회가 없어서 못했습니다...^^*

    • 파비 2009/06/25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어릴 때부터 공부는 안하고 드라마만 보면서 커서 그렇습니다. 제가 제일 처음 드라마에서 만났던 탤런트는 김영란입니다. 혹시 옥녀라고 기억 안 나실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국민학교 6학년 때였던가? 우리 동네 그때 처음 전기 들어왔습니다. 1976년이었죠.

    • 파비 2009/06/25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저는 지금도 드라마 즐깁니다. 그리고 영화도 엄청 좋아해서 국산, 외화 가리지 않고 거의 다 봤습니다, 물론 안 본 건 빼고요.

  • 강의 시작 전에 일찌감치 도착해 준비하시는 마루님. 역시 성실을 블로그의 모토로 삼는 분 다웠다.


    제 답글이 충분히 성실하지 않았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마침 생각나는 게 있어서 좀 더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8 년 전 쯤에 제가 감옥에 있을 때입니다. 그때 저는 노동운동사건으로 본의 아니게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안에서는 우리를 '시국'이라고 불렀습니다.
     
    교도소에선 시국들을 한방에 가두지 않습니다. 한명씩 따로따로 흩어놓는 거지요. 제가 들어갔던 방은 '절도방'이었는데, 완전 도둑놈들(죄송하지만, 이보다 정감가는 말이 없네요) 방이었지요. 교도소에서도 가장 불쌍한 사람들… 인생의 막장들이라는 이들은 여기서도 차별 받더군요. 가장 잘 나가는 사람들은 폭력방에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심지어 강간범한테도 무시당하는 게 절도방 사람들이었습니다.

    교도소는 평등할 줄 알았지만, 이곳에도 계급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교도소에조차 차별받는 불쌍한 인생들인 절도범 두 사람이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한사람은 소매치기 출신이었고, 다른 한사람은 야간털이범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한사람은 낮에 일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사람은 밤에 일하는 사람이었던 거지요. 

    이들 둘이 다투게 된 주제는 이거였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1년에 평균적으로 몇 편의 영화를 볼까?" 이글을 보시는 독자들께서는 황당하실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자기 자존심이라도 걸려있다는 듯이 맹렬하게 싸웠습니다. 밤에 일하는 털이범의 의견은 이랬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1년에 최소한 30편 정도의 영화를 본다!" 그러나 낮에 일하는 소매치기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무슨 소리. 어떻게 30편씩이나 볼 수 있단 말이야? 1년에 20편 정도밖에 보지 않아!" 두 사람은 절대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볼 때 그것은 직업적 자존심같기도 했습니다.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싸움이 길어지자 봉사원(사동 호실 대표)이 끼어들었습니다. "야, 그러지 말고 우리 '시국선생'한테 판결을 맡기는 어때?" 다른 모든 사람들도 동의했습니다. "그래, 시국선생이 결정을 냅시다. 그래도 시국은 우리하고 다르니까…" 글쎄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결론을 내야만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참 난감하더군요.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그러나 저는 제 양심에 따라 공정한 결론을 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둘 중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을 판단을 하겠다는 것이었죠. 제가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두 분 다 틀렸습니다. 평균적인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볼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볼 때 1년에 대략 대여섯 편 정도 보는 게 맞습니다."

    하하… 그런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한민국 사람들의 평균적인 부분은 1년 내도록 거의 영화 한 편도 안 보더군요. 제 주변에도 20년 동안 영화를 한 편도 안 본 사람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저는 정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1년에 약 5~6 편 정도의 영화는 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밤과 낮에 일하는 그분들과 저는 다를 바 없는 개구리였습니다.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 말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의 눈에는 하늘이 자그맣고 동그랗기만 하지요. 나머지는 모르는 것이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블로그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블로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들을 세상 밖으로 안내하여 우주가 얼마나 넓고 아름다운지 가르쳐줄 수 있는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렇게 배운대로 댓글에 포스팅 답글까지 다는 저는 최소한 우물로부터 탈출한 것만은 분명한 것이겠지요?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빨리 끌어내 주시고요, 우물 안에서…. 

    아무튼 어제 마루님의 블로그 강좌는 정말 유용했습니다. 교육받은 내용을 다음날 아침 눈뜨자마자 바로 실천해주신 달그리메님도 훌륭하시고요. 고맙습니다. 하반기에 한 번 더 디테일한 내용으로 교육을 해주겠다고 하셨으니 그 보충수업이 벌써 기다려지는군요. 늦은 시간에 잘 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저도 오늘 아침 <디자인로그>를 방문하여 댓글 남기고 왔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파비 2009/06/25 1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 남기기

    반갑습니다. 어제 강의는 최상이었습니다. 제가 들어본(아마 대여섯번?) 블로그 강의 중에 최고 명강의였습니다. 다들 감동 먹고 가신 듯 ^^* 자주 뵈요. 그리고 수제자는 아니라도 종제자 명단에 저도 좀 올려주세요.

    • BlogIcon 마루[maru] 2009/06/25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열정있는 블로그분들을 많이 만나서 좋았고, 오프라인 공간이 아니면 접할 수 없는 생생한 사람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만남에서는 더 더욱 유익한 이야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파비     ▽김주완 부장님, 블로그강좌 후기는 낙동강 도보기행 다녀와서 쓸게요. 공짜로 강의 들었으니 밥값은 해야 되는데…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MBC 100분토론>에 나온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정진영 교수와 최창렬 교수를 보면서 벽창호도 저런 벽창호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성진 의원도 전직 교수였다고 하니 세 명 모두 교수 출신인 셈인데, 나는 그들이 진정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맞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데 자기들만 민주주의는 아무런 이상도 없으며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 횡행하던 민중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대체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교수란 사람들이 민중민주주의가 무언지, 자유민주주의가 무언지 그 개념이나 제대로 알고 말하는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는 민중민주주의란 것이 존재한 적이 없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고 시도했던 정치적 행위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면,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야말로 확실히 민중민주주의자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데 인터넷과 블로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지금도 앞으로도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6월 항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취되었고, 이후 점차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확대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맞아 대폭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국보법 등에서 보듯 여전히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갈 길이 먼 미완의 민주주의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그 자유민주주의마저 길바닥에 내던져진 것이다.


    이 세 명의 교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시국선언을 하는 교수들을 향해 왜 교수들이 발언을 해서 국론을 분열시키느냐는 말만 할 뿐이지, 어째서 자신의 양심을 밝히는 정당한 행위를 부정하는지, 집회시위의 자유를 막기 위해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삥 둘러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토론 중간에 어느 아주머니가 전화의견으로 이런 말을 했다. “국회의원들 뽑았으면 그 숫자대로 국회에서 모여 일하면 될 것이지. 왜 거리로 나옵니까? 국민들이 선거로 한나라당을 170석 다수당으로 만들어주었으면 그냥 국회에서 그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왜 일도 안하고 거리로 나오고 그래요? 월급 내놓으세요.”


    참으로 무식한 말씀이다. 물론 이 아주머니 의견도 일리는 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일을 해야지…. 그런데 지금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가? 국회에 들어가는 순간, 한나라당은 국민의 뜻을 거역해 이명박 정권만이 좋아하는 법들을 통과시킬 것이다. 지금은 국회에 들어가 일하는 게 오히려 국민의 뜻에 반하는 역설의 시대가 아닌가.  


    아주머니의 무식한 말씀에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세 사람의 교수들을 보면서 대한민국 교육현실이 실로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송영길 의원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국회의원을 뽑는 행위가 모든 권리를 백지위임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은 기본에 해당한다. 아무리 국회의원, 대통령이라도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교수란 직업이 무엇인가. 좀 과장되게 학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행위를 빗대어 말하자면, 양심을 팔아 밥 먹고 사는 직업 아닌가? 그런데 이들 교수들에게 대체 팔만한 양심이라도 있는 것인지 의심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100분토론>을 시청한 소감으로는…. 하긴 이들도 살아남아야 하니 너무 나무라기도 그렇다. 이명박 정권에 잘못 보이면 교수직도 언제든 쫓겨나는 것이 요즘 세태 아니던가.


    또 다른 시청자의 전화의견을 통해 전해들은 국민정서야말로 현 시국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진단이 아니었을까.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죽으면 떡을 돌리겠다고 하더라!” 이 말을 들으니 퍼뜩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그래, 나도 그런 떡 제발 얻어먹었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듣고도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죄악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면 정말 살아야 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이만 대충 정리하고 잠이나 자야겠다. <ps;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화의견으로 등원 안 하는 의원들 월급 내놓으라고 핏대 올리던 그 아주머니 "동네에서 일을 해보니 법에 호소해서 안 되는 게 없더라!" 라고 하시던데 대충 뭐 하는 분인지 짐작이 간다. 세상이 하 수상하니… 별 생각이 다, 쩝~

    ps2; 원래 제목이 "MB 죽으면 떡 돌리고 싶다!" 였지만 누가 먼저 똑 같은 제목을 달았기에 달리 고친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며칠 전 제 블로그의 관리자 페이지를 검색하다 꽤 지난 글에 댓글이 하나 배달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년 9 1일부터 블로그를 시작했지만, 제 블로그에는 댓글들이 홍수를 이루는 그런 분위기는 아닙니다. 콘텐츠들이 별로 논쟁거리가 없다는 뜻일 수도 있겠고 특별한 이슈가 없다는 의미도 되겠지요.

     

    물론 특정한 이슈를 따라가는 포스팅엔 엄청난 댓글들이 달리기도 하는데요. 이런 댓글들 중엔 예외 없이 악플들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주로 정치·사회적인 포스트에 이런 악플들이 등장합니다. 저를 가리켜 전라도 깽깽이 좌파에서 수구꼴통까지 다양하게 딱지를 붙여 주는 거지요.

     

    그 중에서도 전라도 깽깽이 좌파란 욕설은 그런대로 들을 만합니다. 저는 경상도 땅에 나서 경상도 땅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오리지널 갱상도(!) 촌놈으로서 전라도 땅에 한번도 살아본 일이 없긴 하지만, 그렇게 불러준다면 매우 영광으로 알겠다 그런 심정이지요 그러나 저를 일러 수구꼴통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난답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을 진보라고 부르길 좋아하지요. 진보,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진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스스로 자기를 진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아주 경멸하지요. 그들이 진보였는지 아닌지는 역사가 평가해주어야 하는 것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어떻든 일반적으로 진보와 보수라는 잣대를 놓고 세상을 가르는 게 유행이니 그 유행에 따라야겠지요. 그럼 수구꼴통 운운하며 제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던 진보 쪽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사실 그들은 주로 현재의 민노당 사람들입니다. 물론 아주 일부일 테지만, 그 일부가 전체를 욕되게 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지요.

     

    그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면 으레 수구꼴통이란 비난이 들어옵니다. 이분들은 매우 적대적이고 전투적이어서 상대를 적이라고 규정하면 가차없습니다. 울산 북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후보단일화를 해놓고도 승복하지 못하고 조승수 후보를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대는 모습들을 보면 수구나 진보나 참 오십 보 백 보다 그런 생각이 든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날부터 이분들과 싸워봤자 별 소득도 없을뿐더러 건강만 해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다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주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예컨대 얼마 전 기자회견장에서 권영길 의원이 발표한 반개혁적 교육정책처럼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로 한 것이죠.

     

    그때도 제게 그런 말을 하신 분이 있었죠. 물론 댓글로.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민노당과 권의원을 깎아 내리기 위해 이런 따위의 글을 올린다고 말입니다. 그래도 그분은 매우 특이하게 아주 정중하셨지요. 그러나 그 정중함 속에는 저를 그렇고 그런 부류의 사람(아마 진보신당을 말하는 듯)으로 딱지를 붙이는 악의가 숨어 있었지만 저는 이해하기로 했었답니다.

     

    대신 저는 그분에게 권영길의원의 행동을 비판한 경남도민일보의 사설을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해주었었죠. 권영길 의원과 민노당이 내세운 교육정책이란 것이 마치 한나라당에서 발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신문사에서 사설로 다루기까지 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사소한 정도를 빼면 올해 들어 수구꼴통이니 하며 달려드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전라도 깽깽이나 좌파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말이죠. 그거야 워낙 무식한 사람들이 하는 소리니 관심 둘 필요도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엊그제 낙동강 도보기행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블로그 관리자 페이지를 뒤적거리다가 꽤나 지난 글에 배달된 댓글을 보게 되었던 것이지요.
     

    리카르 2009/04/03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위험한 글제목이군요
    .. 제목만 보고 지나치는 수만명의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꼴에 기자단에 가입하셨으면, 그정도는 생각하셔야죠.

    그래서 제목에 물음표를 붙였던 것이긴 합니다만. 충고를 받아들여 "왜 해보지도 않고 반대하나?" "왜 해보지도 않고 반대하냐고?"로 고칩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군요.

    잘못된 곳이 있으면 지적하고 또,비밀댓글도 할수 있는데 글쓴이의 실수를 비아냥 거리듯 '꼴에 기자단에..'운운하는 댓글을 보고 지나다가 글을 읽어본 사람으로써 글쓴이가 참 낯 뜨거웠겠다 싶어 리카르도의 블로그에 방문 하여 보았습니다. 도대체 그 자신은 어떤 사람이길래 남의 글 제목 실수에 대해서 무지막지한 단어를 사용 하였을까(?) 하구 말입니다.

    정작 그 자신은 문장도 틀린곳이 많았을뿐 아니라 아예 단어를 빼 먹은곳도 있었고 띄어 쓰기도 옳바로 적용하고 있지 않았습니다.특히 글 내용이 앞뒤도 맞지 않는 장문의 글을 블로깅 하고 있었습니다
    .

    저는 욕으로 도배 하고픈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신사인척 좋은 글로서 남의 블로그에 그런 댓글을 달아서 되겠냐는 식으로 이야기 했죠...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있으면 파비님의 블로그에서 자신의 댓글을 삭제 하라고 했죠
    .

    처음엔 댓글을 달아 주더군요
    .
    파비님의 글쓴 의도가 나빠서 그랬다는
    ...
    그리고 나의 도덕적을 가장한 명령이 괘씸해서 그럴 마음이 사라졌다는둥...괴변을 늘어 놓더군요
    .

    그래서 다시 조목 조목 글을 올렸더니 IP차단에 나의 글을 모조리 삭제 하였더군요
    .
    욕을 적은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
    그래서 혹시나 싶어 파비님의 블로그에 와서 보니 그 사람의 댓글은 여전히 빼꼼히 히죽거리고 있네요
    .
    앞으로 저는 다른 불로그에서 그 사람의 댓글을 유심히 살펴 보기로 했습니다
    .
    오만하고 방자한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무식하였습니다. 무식은 학력이 뛰어나지 않는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 아니라 인성교육이 잘못된 사람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

    난 파비님의 마음 넓음에 위로를 받고 갑니다
    .
    꼴 같잖다는 표현에도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실수만 인정해 보이는 댓글에서 정말 당신은 멋진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삭제 하지 않고 남겨두신 그 마음도 한수 배우고 갑니다
    .

    행복하고 좋은 휴일 되시길 바랍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댓글을 지우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댓글도 의견이고 창작물인데요. 다만 성적인 광고용 댓글은 지웁니다. 저도 사실 리카르도님의 "꼴에" 하는 표현이 좀, 아니 사실은 많이 거슬리고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받아들이기로 했답니다. 정중하면서도 얼마든지 날카로운 비판이 가능할 텐데요. 그런 비판이 오히려 더 힘이 있을 거 같기도 하구요. 인터넷 문화에 대해서 좀 더 고민을 해봐야 될 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네요. 위안이 많이 되었습니다.

     

    리카르도란 이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나더군요. 정말 기분 나빴었지요. 내용에 대해 비판하면 잘못이 있으면 시인하고 사과하면 될 것이고, 그 비판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반대로 그 비판을 비판하면서 서로 토론을 벌인다면 블로그의 상호 소통이란 목적을 나름대로 달성하는 셈이지요.

     

    그런데 이분의 댓글은 그런 게 아니었어요. 생판 처음 제 블로그에 나타나서는 대뜸 절더러 꼴에 기자단에 가입하셨으면…” 하더란 말이죠. 꼴에란 말이 무척 거슬렸지요. 기분이 안 나빴다고 하면 저는 해탈한 부처님이거나 아니면 심장이 아예 없는 사람이거나 둘 중에 하나가 틀림없을 거에요.

     

    꼴에란 딱지는 수구꼴통 딱지보다 더 기분 나쁘더군요. 도대체 내 꼴이 어쨌다는 건지 게다가 블로거 기자단이란 것도 사실 아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그냥 명목상일 뿐 별 의미도 없는 것이잖아요? 누가 진짜 기자라고 쳐주는 것도 아닐 것이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냥 참기로 했습니다. 왜냐?

     

    그의 블로그를 방문해본 결과 그의 꼴이 더 우스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판단은 그저 지극히 제 개인적인 주관에 불과한 것이지만, 아주 가관이었죠. 그래서 그냥 아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군요. 하고 그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답니다. 사실 저는 그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말입니다.

     

    , 그 리카르도란 분이 왜 열을 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어야겠네요. 제가 낙동강 도보기행 1차 구간을 다녀온 후 포스팅한 기사 제목을 대운하, 왜 해보지도 않고 반대하나? 라고 달았는데요. 이게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반대하나에다 ?를 달았으므로 현명한 독자들은 충분히 그 뜻을 알 거라고 보았거든요.

     

    그런데 명석한 리카르도에겐 그게 안 통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는 꼴에란 비웃음을 담아 비난을 가했던 것이고 저는 순순히 항복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과는 논쟁 따위를 붙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지요. 논쟁을 할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과 대화를 길게 이어간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거든요.

     

    그런데 논쟁은 엉뚱한 곳에서 붙었군요. 쑥과 마늘을 더 드셔야란 이름으로 댓글을 다신 분과 리카르도의 블로그에서 논쟁이 벌어진 모양이에요. 그러나 리카르도는 역시 제가 짐작한 바대로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고요. 급기야는 이 논쟁과 관련된 모든 댓글을 다 지우는 폭거를 자행하고 말았군요.

     

    제가 쑥과 마늘을 더 드셔야의 댓글을 읽고 리카르도의 블로그를 방문해보았으나 모든 흔적은 이미 사라진 후였답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그의 블로그는 평온하더군요.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기억이 다시 살아나면서 참으로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역시 그대는 가관이야!

     

    그러나 아무런 소득도 없이 그의 블로그를 떠나오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평온한 그의 블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공지사항을 하나 옮겨 왔습니다. 카피가 금지되어 있던 관계로 글자 하나하나를 직접 타이핑해야 했습니다. 철자나 띄어쓰기는 고치지 않고 원래 그대로 옮깁니다.
     

    <블로그명>리카르도의 선형적 게슈탈트

    차단, 승인제 풀었습니다.


    글을 올리는 행위란
    생각보다 많은 책임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글을 올리고 난 후의 책임은 전적으로 제게 있습니다.

    그런데 책임도 지지 않을 댓글 폭탄을 던져서

    여러 사람들을 분탕질 하는 "테러범"들이 있습니다.

     

    악날하고 비열한 "바이러스"같은 존재들이 제 글을

    숙주로 삼는 비극적인 사태는 막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이피 차단과 승인제를 유지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1년간 "이슈의 개목걸이"를 벗어던지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려 애쓴결과, 블로그에 평화가 찾아온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차단이나 승인은 하지 않을 방침입니다.

    다만, 글지랄로 평온을 깨는자가 있다면,

    글로써 처절하게 응징해드리겠습니다.

     

    개지랄, 그러니까 누가봐도 개지랄인 글은 삭제하고

    바로 차단시켜드리겠습니다. 그 개지랄 이라함은,

    정확하게 저를 "노빠"라고 부르는 행위가 되겠습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저는 제 블로그가 조중동이 만들어낸 악날한 바이러스들이 기생하는 숙주가

    되는 것은 막고 싶습니다.

     

    무슨 말인지 좀 헷갈리긴 합니다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차단이나 승인제를 시행해왔지만 앞으로는 임의로 댓글을 차단하거나 승인을 받도록 하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댓글을 차단하거나 승인하는 것은 어떤 특정 주제를 다루거나 동호회 성격을 가진 블로그를 제외하고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시사를 다루는 블로그는 이런 댓글정책을 쓰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차단이나 승인제를 시행하는 대신 처절하게 글로써 응징하겠다는 태도도 매우 올바른 처사라고 생각됩니다. 용어 구사가 좀 과격하긴 하지만, 뭐 그런 정도는 이해하기로 합시다. 사람이 다 예쁠 수는 없습니다. 어딘가 흠이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리카르도는 어째서 “처절하게 글로써 응징”하지 아니하고 쑥과 마늘을 더 드셔야님의 댓글과 거기에 단 자신의 답글을 모조리 지워버렸을까요? 그 이유가 다음의 사유에 해당했기 때문일까요?

    개지랄, 그러니까 누가봐도 개지랄인 글은 삭제하고

    바로 차단시켜드리겠습니다. 그 개지랄 이라함은,

    정확하게 저를 "노빠"라고 부르는 행위가 되겠습니다.

     

    이미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공지는 바로 앞의 차단과 승인을 하지 않겠다는 공지와 모순됩니다. 어떻게 이처럼 모순되는 공지사항을 연이어 달아놓았는지 처음엔 저도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러나 공지의 제목이 차단과 승인제를 폐지한다는 내용이었으므로 해석의 일반원리에 입각한다면 이 내용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리카르도에게 이 공지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휘두를 수 있는 전가의 보도였습니다. 그는 과감하게 쑥과 마늘을 더 드셔야님의 댓글에 칼질을 한 것입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처절하게 응징 한 것입니다. 글이 아니라 아이피 차단과 댓글 삭제라는 응징 수단을 사용해서 말이지요.

     

    그에게 쑥과 마늘을 더 드셔야님의 댓글은 바이러스였을까요? 제 블로그 관리자 페이지에는 그의 댓글 내용을 어렵긴 하지만(2~3초 후면 사라지는 댓글 알림 표시창에 마우스를 계속 갖다 대면서 볼 수 있음) 살펴보았더니 위에 인용한 내용과 대동소이했습니다. 이런 정도의 댓글도 바이러스로 인식되는 리카르도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리카르도. 저는 이 이름으로부터 데이비드 리카르도를 떠올렸습니다. 아마 제 추측대로 그는 고전파 경제학을 집대성했으며 노동가치설과 차액지대설이라는 위대한 이론을 창시한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로부터 닉을 차용했을지도 모릅니다. 역시 그의 블로그는 경제관련 포스팅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들을 읽어보진 않았습니다. 그럴 시간도 없었지만, 이토록 사고가 온전치 않아 보이는 사람의 글을 읽어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제 관점에 의하면, 최소한 그렇습니다. 그의 행위로 보자면 리카르도란 닉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소위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거의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사람들을 가끔 봅니다.

     

    주로 홈페이지의 게시판 속에 등장하는 이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것은 극도의 우월감과 적대의식 그리고 분노입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극우파나 수구세력에 못지 않게 이들도 대단히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단지 일부의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아마도 리카르도 역시 자신이 진보적인 부류의 하나라고 생각할 테지만, 바로 그 누구도 인정하지 못하는 강력한 신념과 우월의식으로부터 사고의 굴절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심하면 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편 연민과 동정이 일기도 합니다. 어쩌면 리카르도도 이 고단한 세상의 피해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오늘 이처럼 별로 영양가도 없는 이런 류의 기사를 올리는 이유는 어쩌다가 저로 인해 리카르도의 블로그에 기생하는 악날한 바이러스가 되어버린 쑥과 마늘을 더 드셔야님에게 약간의 위로라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일부러 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리카르도의 난행을 비판하는 포스팅을 하나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그에게서 위로를 받았듯 그도 충분한 위로를 받았으면 합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제 블로그 공지사항에 들어갔다가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알라딘-티스토리 서평단에 합격한 것입니다. 겨우 서평단 모집에 뽑혀놓고 무슨 합격이냐구요? 하하~ 제가 입사시험에 붙은 이래로 물경 이십여 년 만에 합격이란 걸 해보는 바이니 그냥 뽑혔다고 하는 것보단 합격이라고 좀 허풍을 쳐도 큰 허물이 되지는 않겠지요? 된다구요?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참 깜박했네요. 8년 전에 공인중개사 시험에서도 기쁜 소식을 접한 바가 있었군요. 요즘 기억력이 형편없습니다. 그때도 기뻤지만 지금도 기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통점이 있다면 그냥 우연한 계기로 도전하게 됐는데 붙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군요.

    알라딘 - TISTORY 서평단 당첨 블로그

    ◎ [인문/역사/사회/자연과학] 카테고리 (총 10명)
    http://haerang.tistory.com
    http://meoh.tistory.com
    http://freeopher.tistory.com
    http://omentie.tistory.com
    http://go.idomin.com 
    http://noracism.tistory.com
    http://jellybeans.tistory.com
    http://acidrhyme.tistory.com
    http://pustith.tistory.com
    http://befreepark.tistory.com


    저는 아직도 블로그 초보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제 손으로 직접 보다 나은 블로그 환경을 만드는데도 익숙하지 못할 뿐 아니라 티스토리에서 꾸준하게 공지사항을 공지한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야 알았답니다. 덕분에 알라딘 서평단 모집에 응모하게 된 것이지요. 공지사항을 처음 열어본 것이 글쎄 서평단 모집 공고였거든요.

     

    8년 전에도 그랬었던 거 같군요. 어느 날 아내의 선배와 술을 마시다가 이 아줌마가 갑자기 부권씨, 고마 공인중개사 시험이나 한 번 쳐보지? 그거 시험 별로 안 어렵다더라. 60점만 넘으면 된다던데, 하나 따 놓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러더군요. 그래서 진짜로 시험을 쳤지 뭡니까? 물론 합격했으니까 이런 말도 하는 거죠. (그런데 그 선배는 그런 말 한 것조차 기억 못 하더군요.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었던 거죠. ㅎㅎ)

     

    반년 공부했다고 하니까 아무도 안 믿더군요. 거기다 시험치기 일주일 전에 대형사고가 하나 터졌었는데요. 9·11테러라고요. 거 왜 뉴욕 맨하탄에 있는 무역센타에 비행기 두 대가 폭탄 실고 가서 충돌했잖아요. 아이구~ 일주일 내도록 테레비로 그거 보느라 시험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요.

     

    그런데 합격자 공고에 이름이 보이더라고요. 문제가 너무 쉬웠나 봐요. 하긴 1, 2차 다 객관식이었으니까…. (그렇게 받은 자격증은 지금 장농에서 장기수면 중이세요. 요즘 갱제가 무너져서 부동산도 영 장사가 안 된다더만요, ㅠㅠ) 이번에 알라딘-티스토리 서평단 모집도 알고 보면 장난 아니었거든요? 응모 트랙백이 4백 개가 넘었고 그 중에 40명이 뽑혔다니까 나름대로 경쟁이 꽤 치열했네요. 물론 모두들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했을 테지만요.

     

    하이고~ 그러고 보니 이거 제가 제 자랑만 잔뜩 늘어놓고 있었군요. 그래도 이해해주세요. 이런 것도 아니라면 저 같은 소인배가 언제 우쭐거릴 기회라도 있나요? 그냥 귀엽게 봐주세요. 징그럽다구요? 그래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봐주세요. 어쩌겠어요. 어쨌든 오늘 무척 기분 좋은 날이군요, 간만에.

     

    제가 당첨(사실은 합격이 아니고 당첨이 맞겠죠, ㅎㅎ)된 분야는 인문/사회/역사/자연과학 분야인데요. 저하고 어울리려나 모르겠어요. 저는 4개 분야 중에 유아/어린이/학부모/가정을 뺀 나머지 분야 즉, 문학/만화’, 경제/경영/자기계발/실용’, 인문/사회/역사/자연과학에 모두 응모했는데요. 이중 하나는 당첨되겠지 하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실제로 하나는 붙었군요.

     

    이런 걸 유식하게 포트폴리오 전술, 아 이건 좀 비유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군요. 분산투자라니, 무슨…. 그냥 인해전술이라고 해두죠. 그래도 유아/어린이/학부모/가정’ 파트에 응모 트랙백을 안 보낸 건 제 양심의 발로였답니다. 아무리 인해전술이라지만, 차마 거기까진 못 보내겠더군요.

     

    쾌락의 기쁨은 잠깐이요 고통은 영원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앞으로 서평 써 올릴 일이 걱정이네요. 그래도 공짜로 책 보내준다는데 그런 고통쯤 얼마든지 감수해야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 고통도 알고 보면 쾌락의 연속인 걸요. 앞으로 공짜로 보내주는 책 열심히 읽고 부지런히 독후감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덤으로 ‘책 보기를 돌같이는 우리 아들녀석에게도 모범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군요. “아들아, 책은 돌이 아니라 바로 황금이란다, 황금!그러면 이 녀석 눈이 번쩍 뜨일 게 분명합니다.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황금의 단맛을 잘 알거든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는 늘 그런 걱정을 하셨다.

    “오늘은 무얼 해 먹을까?”

    그래봤자 시골에서 해 먹는 음식이란 뻔하다. 그렇지만 재료의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머니는 늘 걱정하셨다.

    “오늘은 무얼 해 먹지?”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늘 가족의 식단을 염려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선하다. 그런데 나도 요즘 어머니와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다.

    “오늘은 무얼 쓰지?”

    요즘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 매일 하는 내 걱정이다. 우리 어머니처럼 내게 주어진 소재의 폭도 매우 협소하다. 그러다보니 걱정을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 어머니보다 내 처지가 더 딱한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비슷한 반찬거리를 돌아가며 내면 될 일이었다. 오늘은 미역국, 내일은 생선국, 그리고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이런 식으로 말이다.

    2008. 8. 30일 경남블로그 컨퍼런스. 다음날부터 블로그를 시작했다. 아직 초보다. 딸아이를 안고 있는 게 필자.


    그러나 블로거는 그리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매일 신선한 재료를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 한 번 써먹은 재료는 식상해서 잘 먹지 않는다. 그러니 요즘 내 고민은 우리 어머니의 그것보다 훨씬 더 하고 주름은 깊어만 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주름이 깊어간다는 건 좀 과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민은 많다.

    “오늘은 무얼 쓸까!”

    어제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 후원의 밤에서 박영주 선배를 만났다. 그는 지역현대사 연구가다. 지단 달엔 6월항쟁사(지역사)도 펴냈고 요즘은 함양에서 근대사 발굴 작업에 여념이 없다. 그분과 나누는 대화중에 자연스럽게 블로그 이야기가 나왔다.

    “부권아. 너, 요새 블로그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블로그도 결국 글쓰긴데, 글이란 일단 많이 써봐야 된다. 내 생각엔 술 먹는 거 하고 똑 같단 생각이 든다. 술도 자주 먹어봐야 잘 먹잖아. 너도 일단 자주 열심히 많이 써라. 그리고 쉽게 편하게 써라. 술 먹는 놈이 인상 쓰면서 고민하며 술 마시더나. 그저 편하게 마시는 거지.”

    그래, 맞는 말이다. 편하게 쉽게 써야지. 독자들 의식하지 말고 그저 술 마시듯 편한 마음으로 써야지. 그래도 걱정이다. 이놈의 블로그란 놈이 편하게 마시기에는 아직 내겐 도수가 너무 높다. 그래도 편하게 마시고자 노력해보련다.

    그래서 오늘 토요일 아침, 이렇듯 편한 마음으로 술 마시듯 블로그를 한다. 그러고 보니 별로 도수가 센 것 같지도 않다. 술술 잘 넘어간다. 

    2008. 12. 6.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여행/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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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파비 정부권

    부산 블로거들의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연고지가 부산은 아니고 마산인데, 그냥 염탐 차원에서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부산이 저와 아주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왕년에 이곳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3년간 다닌 적이 있으며, 지금도 가사를 보지 않고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부산갈매기」란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수영역을 지나 센텀시티역 4번 출구로 나오니 마천루처럼 치솟은 빌딩들이 사방에서 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너 어디서 온 촌놈이냐!" 하는 듯이 말이지요. 아닌 게 아니라 마산 촌놈이 부산 가니 눈알이 빙글빙글 돌더군요. 옛날 제가 어릴 때는 여기가 허허벌판이었는데 세상 많이도 변했네요. 센텀시티를 지나 직진해서 신호등을 두 번 건너니 시청자미디어센터가 나왔습니다.

    저는 여기서도 촌놈처럼 1층 로비에서 멍청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시가 약속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심심해서 제 카메라로 스스로 제 얼굴을 찍어 보았습니다. 인상을 경상도 말로 "가지껏" 잡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나왔습니다. 갑자기 레옹에서 마틸다의 가족을 살해하기 전에 코에 마약을 집어넣고 부르르 떨던 게리 올드만이 생각나더군요. 제가 보아도 섬뜩하네요.

    따분해서 찍은 사진이 어째 레옹에 나오는 깡패 두목이 생각나다니... 뒤는 시청자미디어센터 로비


    대문에 걸려있는 사진하고는 차이가 많이 나지요? 그 사진은 지금으로 부터 20년 전 사진입니다. 1988년에 찍은 사진이니 스물 너덧 살 때죠. 모임이 끝나고 나서 부산의 블로거 분들과 식사를 함께하는 자리에서 어느 분이 제 블로그 대문에 걸린 사진을 보고 한창 젊은 사람(지금도 젊으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어린사람 쯤 되겠다)인 줄 알았다고 하셔서 조매 뜨끔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실직고 차원에서 진짜 사진을 올립니다. 머잖아 이 사진도 가짜가 되겠지만 말입니다.

    3시 58분인데도 아무도 안 오니 슬슬 불안해 지는군요. 그래서 커서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2층 세미나실에 다들 모여 있다고 하네요. 아, 역시 촌놈은 촌놈입니다. 황급히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모두들 모여 계시군요. 70이 넘으신 곱게 차려입은 여자분도 계셨는데 인사만 하시고 바로 가셨습니다. 아마 오늘 블로거 모임에서 최연장자이셨던 듯합니다. 

    시청자미디어센터 세미나실. 다음에는 1인당 컴퓨터와 빔프로젝터가 있는 컴퓨터실에서 한다네요.


    커서, 레이스탈, 미고자라드, 파비, 라이너스, 커리어노트, 엔시스, 세미예, 카메라를 든 여전사, 강우용 감독, 미디어숲, 그리고 조금 늦게 오신 부산오류시정운동본부란 블로그를 네이버에서 운영하신다고 하셨는데, 커서님 옆에 앉으셨습니다. 

    맨 안쪽에서 노트북을 쓰고 계신 분은 따뜻한 카리스마님이십니다. 대학 교수님이시라는데 오늘은 노트북 꺼내놓고 열심히 속기사 역할을 했습니다. 커리어노트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신답니다. 그 옆은 라이너스란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인데 나중에 인사를 하다가 깜짝 놀랐답니다.

    아래의 미고자라드님과 함께 온 친구인 줄 알았거든요. 올해 스물 하고도 아홉이라는군요. 통영의 한 조선회사에서 생산계획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고 하네요. 살짝 보이지만 엄청 젊어보이지요? 주말엔 집이 있는 부산으로 온다는군요. 커리어노트 오른편이 엔시스님이신가 봅니다. "엔시스정보따라잡기"란 정보 보호를 주제로 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시답니다.


    오늘 가장 놀라웠던 것은 역시 고3 수능준비생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이지요. 지금 한참 고문 받느라 바쁠 텐데 어떻게 시간을 냈군요. 나중에 식사자리에서 제가 이 친구에게 책을 한 권 선물했습니다. 『습지와 인간』이란 책인데요. 경남도민일보의 김훤주 기자가 쓴 책입니다. 저자는 저와는 20년 가까운 지기이기도 합니다.

    왼쪽은 만화블로그 레이스탈을 운영하는 분입니다. 레이스탈은 영어로 쓰레기통이란 뜻이랍니다.


    위 사진 오른쪽이 바로 그 친구입니다. 미고자라드란 필명을 쓰고 있군요. 뜻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네팔어로 '지나가다'란 뜻이라네요. 정치외교학과 지망생인데, 역시 폭이 넓습니다. 벌써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까지 섭렵했습니다. 수능 끝나면 책 읽어보고 독후감이나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수능 전에는 절대 읽지 마세요. 미고자라드님 부모님께 제가 원망 듣습니다.”

    얼굴도 참 잘 생겼지요? 저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참 부러웠습니다.

    세미예, 칼 대신 카메라를 든 여전사, 강우용 감독, 미디어숲, 주무시는 분은 세미예님 따님, 재미없나?


    세미예님과 여전사님이시군요. 그런데 여전사님은 이름하고 너무 안 어울리시는 것 같네요. 너무 고우시잖아요. 외유내강이신가? 하긴 칼 대신 카메라를 든 여전사시니까요. 그런데 이름이 안 어울리기는 옆의 세미예님도 마찬가지네요. 그러나 세미예님은 다음에서 황금펜까지 수여받은 파워블로거시랍니다.

    그 다음이 강우용 감독님이십니다. 독립영화 『제제에게 가는 길』로 세상에 알려지신 분이십니다. 이야기로만 들었는데 저도 오늘 처음 뵙는군요. 강감독님 옆의 미디어숲님은 세미예님의 도움을 받아 블로그를 개설하셨다는데요. 앞으로 부당한 장애인들의 처우에 저항하는 것과 더불어 합리적 제안을 하는 그런 블로그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행동하는 장애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기대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네이버에서 부산오류시정운동본부란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의 소개가 있었습니다. 열정이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특히 엉터리 기사에 대한 분노가 많은 분 같았는데요. 이 분을 마지막으로 소개 대장정이 끝났습니다. 

    미디어숲님의 말씀처럼 "자기소개가 엄청 긴" 그런 회의였습니다. 소개 하는데 두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모임은 소개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올챙이에겐 엄청 영양가 있는 소개들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역시 초보자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물어야 쑥쑥 자라는 법이란 게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닌가 합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시청자미디어센터


    밖에 나오니 어느덧 어둑어둑합니다. 사상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깜빡 조는 새 벌써 마산입니다.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놈이 평균 95점 맞았다고 오마이치킨 두 마리 사오랍니다.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후라이드보다 천원 더 비싼 간장치킨으로 두 마리 샀습니다. 물론 제가 먹을 생맥주 1500리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일제고사에 반대하고 학력서열화를 반대한다면서도 막상 지 자식 시험 잘 쳤다니 기분이 막 좋습니다.

    좋은 하루였습니다.

    2008. 10. 26.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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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파비 정부권
    또 한 수 배웠습니다. 블로그를 이용하면 파워포인트 없이도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블로그 전도사' 김주완 기자가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10월 13일 오후 7시,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에서는 지난 8월 30일 열린 '경남블로거 컨퍼런스'에 이어 지역의 블로거들을 상대로 블로그 강좌가 있었습니다. 김주완 기자가 직접 강사를 맡았습니다. 아마 강사를 섭외하기도 어렵고 또 돈도 들고 하니까 자기가 직접 나선 거 같습니다.

    블로그 전도사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기자. 사진="경남블로거 컨퍼런스" 때 토론 모습

     

    그러나 무려 세시간 가까이 한 번도 쉬지 않고 이어진 그의 강의에도 참석한 40여 명의 블로거들은 한 명도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남아 경청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대장정' 끝에 '질문과 토론' 시간도 활발하게 이어졌습니다. 참으로 열정과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이번 강좌에서 가장 확실하게 제 기억 창고에 담아온 것이 있다면, 블로그 글쓰기는 스트레이트 식으로 해서는 안 되고 내러티브 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똑 같은 기사를 스트레이트 식으로 딱딱하게 발행했을 때와 다시 네러티브 식으로 고쳐서 재발행 했을 때의 네티즌들의 반응을 비교해주기도 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인 차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스트레이트 식 기사엔 거의 관심을 보여주지 않던 네티즌들이 똑같은 기사를 내러티브 식으로 고쳐 다시 발행했을 때는 엄청남 관심을 보인 것입니다.

    김주완 기자는 신문들도 이제 스트레이트 기사 방식을 버려야할 때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보수적인 신문들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대세는 블로그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김주완 기자의 강의가 바로 내러티브 식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생생한 자료와 파워블로거의 예를 들어가며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김부장의 강의야말로 참으로 내러티브의 전형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글쓰기 만이 아니라 강의도 내러티브가 대세가 되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로그를 이용한 프리젠테이션으로 강의를 하는 모습. 사진=블로그 거다란의 "커서"


    그래서 저는 두 가지 중요한 것을 배운 것입니다. 하나는 "블로그로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 있다. 전국 어디를 가든 인터넷만 된다면 언제든지 자기 블로그를 열어 강의도 할 수 있고, 보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글을 쓸 때는 내러티브 방식으로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재미있게 써야한다는 것입니다. 

    듣고 보니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써야 읽는 사람도 부담이 없고 그것이 또한 독자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그것은 또 반대로, 글을 쓰는 사람이 직업적인 글잡이가 아니더라도 글을 쓰는데 아무런 부담이 없도록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렵게 격식에 맞출 필요 없이 그냥 사람들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듯 하면 되니까요. 

    내러티브, 말은 어렵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참으로 소중하고 정겨운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저와 함께 강좌에 참여한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제 아내도 틀림없이 유용한 도구 하나를 얻었을 겁니다. 지금쯤 함께 가서 강좌를 들어보자고 권유한 저에게 매우 고마워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블로거와 블로거 지망생들. 저 중에 우리 아내도 있습니다. 사진=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우리나라의 인터넷 사용 인구는 3536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고 합니다. 40대는 82%의 인구가, 50대는 48.9%의 인구가 인터넷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20대는 무려 99.7%가 인터넷을 한다고 하니 이들이 세상의 주력이 되는 가까운 미래는 아마 인터넷 천국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만 보니 30대에 대한 통계가 없군요. 제가 메모를 빠트린 것 같습니다만, 90%이상 되겠지요?

    그러나 IT 최강국으로 평가 받는 우리나라에 파워블로거 수는 아주 미미하다고 합니다. 일본 만해도 활동적인 블로거가 300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블로그의 발상지인 미국은 무려 우리나라 인구에 맞먹는 숫자가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실로 대단합니다. 우리나라는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IT 강국의 위상을 보유하고 있지만, 활동 블로거 수에서도 보듯 콘텐츠나 내용면에서는 확연한 열세입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폐쇄적인 사이버 환경도 한 몫 하고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주완 기자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대 포털인 네이버가 바로 삼성의 벤처기업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성의 폐쇄적이고 독보적인 기업정책이 그대로 네이버에도 유전병처럼 옮아갔으리라고 말합니다.
     
    저도 아직 올챙이지만 블로거가 된 이상, 네이버의 폐쇄성에 대해선 한 번 꼼꼼히 따져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 의견을 말하고 거꾸로 의견을 들어보는 그런 기회를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늘 하는 주장입니다만, "폐쇄적인 모든 것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모든 것은 열어야 하고 판단은 사람들이 한다."는 게 제 신조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올린 "내가 올챙이 블로거가 된 까닭은?"에서 밝혔다시피, 블로거가 된지 이제 겨우 40여 일 남짓 됐습니다. 열심히 해서 백일잔치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올챙이 블로거가 된 까닭'을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사실 블로그가 뭔지도 모르다가 경남도민일보의 정성인 미디어팀장과 김주완 기획취재부장에게 꼬여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들과 상관없이 저 스스로 블로그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매우 재미있습니다. 저는 사실 서정적인 블로그를 만들고 싶었지만, 아직은 제 능력과 여유의 모자람 탓으로 주로 시사적인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제 블로그 카테고리 맨 위에 달아놓았다시피 '청풍명월淸風明月'로 감성이 비 오듯 흘러내리는 그런 블로그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재미없는 그리고 짜증나는 시사포스팅이라도 관심 많이 가져 주세요! (이렇게 살짝 광고도 좀 하고...)

    8/30일, 경남블로그컨퍼런스에서 사진찍다가 김주완 부장에게 도로 찍힌 모습. 이때부터 블로그를 시작했다.


    오늘 여기 다 소개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블로그 강좌에서 배웠습니다. 정말 유익했습니다. 특히 "문성실의 아침 점심 저녁"이란 블로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요리는 잘 못하지만 먹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앞으로 이 블로그에 자주 가서 냄새라도 열심히 맡아봐야겠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압니까? 저도 앞치마 두르고 맛있는 남자가 될 수 있을지도

    강의 중에 저의 전도사님이신 김주완 기자는 역시 신도인 저를 열심히 홍보해 주셨습니다. 제가 싹이 조금 보인다나요? 제 블로그를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몇 차례씩이나 틀어주셨습니다. 물론 저는 매우 뿌듯하고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조금 (시쳇말로) 쪽 팔리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신도가 열심히 크는 모습을 보시는 전도사님도 매우 기쁘시겠지요?

    열심히 할게요, 전도사님. 우리 '블로거교'의 중흥을 위하여, 화이팅!

    2008. 10. 14. 올챙이 블로거 파비

    ps; 부랴부랴 쓰다 보니 빠진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가지 중요한 것을 배운 것입니다." 해놓고선 하나만 말하고 두 번째는 빠트렸습니다. 그래서 첨가하고, 조금 수정했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