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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없는놈들이 나라걱정 더 많이 하는 이유는 뭘까?

오랫동안 블로그가 방치됐다. 올 들어서는 거의 글을 쓰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몇 달간 매달 대여섯 건의 글을 겨우 올리다가 급기야는 8월 달에 1건, 9월 달에는 아예 한건의 글도 생산하지 못했다.

결과는 뻔하다. 어쩌다 바빠서 한 며칠 글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라도 대략 800명에서 1,000명 가까운 방문자들이 조회수를 올려주었던 내 블로그가 500명, 400명으로 그 수준이 떨어지다가 얼마 전부터는 하루 2~300명 선을 겨우 유지하지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오늘 185명으로 떨어졌다. 이러다간 100명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한번 무너진 성을 다시 세우는 것은 새로 짓는 것보다 몇 갑절이나 더 어려운 법. 그러나 무엇보다 블로그를 만들어놓고 이처럼 방치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1건이라도 써야겠다는 의무감에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데 무얼 쓰지? 쓸 거리가 없다. 그동안 연속극은 빼먹지 않고 열심히 봐왔지만 막상 블로그에 글을 안 쓰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봤다. 확실히 블로그를 열심히 할 때와 안할 때의 차이란 이런 것이다. 사물을 눈여겨보지 않는다는 것.

아무튼 무언가 쓰긴 써야겠는데 무얼 쓸까? 아 그래, 그걸 쓰자. 하나뿐인 아버지와 아들이 지금 병원에 있다. 아버지야 원래 80이 넘은 노인이시니 병원이 집인 것이고, 아들이 추석 전에 병에 걸렸다. 그게 병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임파선염이라고 한다. 아무튼 병원에 입원했으니 병은 병이다.

추석 바로 전날 아들을 보러 병원에 갔다가 바로 옆방에 입원한 아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산판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다리를 톱에 잘려 입원한 것이었다. 다행히 뼈와 신경은 잘리지 않았다며 호탕하게 웃는 그를 보니 나도 따라 웃어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을 지경이었다.

그가 보여주는 다리는 마치 고무장화 두 개를 엎쳐놓은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는 말했다. “이까짓 거 별거 아이라. 큰 나무둥치에 맞아 뒤지지 않은 게 어디요. 팔다리 톱에 좀 잘리고, 나뭇가지에 찔리는 것쯤이야 예사지.”

나뭇가지에 찔린다는 표현을 썼지만 여러분, 그냥 찔리는 게 아니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면 정확할 것이다. 사극에서 적군의 창에 찔려 신음하는 한 병사를 떠올려보라. 산판노동자를 찌르는 나뭇가지란 바로 그 창이다. 잘리고 부러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해오는 나뭇가지는 그야말로 찰나를 실감케 한다.

내가 아는 산판노동자는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함양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번에 크게 다친 이 사람은 김해, 창녕 등지에서 일하다가 거창의 험준한 산에서 사고를 당했다. 그는 너덜너덜해진 다리를 끌고 산을 내려와 지프를 끌고 인근병원에 가서 응급처치를 한 다음 다시 창원까지 달려왔다

자동미션이 달리지 않은 구식 자동차였던 탓에 클러치를 밟느라 그는 죽을힘을 다해야만 했다. 톱에 잘린 다리가 왼쪽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한사람의 산판노동자. 그는 이런 위험한 일이 싫어 최근까지 산판꾼들의 톱에 공급하는 기름을 지고 산을 타다가 결국 절반밖에 안 되는 보수 탓에 톱을 잡았다.

그럼 산판일을 하면 하루에 얼마나 받을까? 15만 원 정도. 노가다라는 게, 특히 노가다 중에 상노가다라고 할 수 있는 산판일이라는 게 한달에 20일이면 많이 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충 한달 수입이 나온다. 목숨 내놓고 하는 일에 대한 대가라고 하기엔 너무 허접하다.

그의 병실 한쪽 구석에 조선일보가 놓여있기에 보았더니 서울시장 선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안풍이며 박원순 바람이 거세긴 해도 한때의 바람일 뿐으로 곧 원상태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은 한나라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분석기사가 실려 있었다.

습관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뭐야 이거, 완전히 한나라당 당보 아냐. 아무리 편들고 싶어도 좀 적당히 눈치도 봐가며 해야지 이건 너무 노골적이네. 당보라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겠다.” 내 이 한마디 때문에 병실은 갑자기 한나라당 성토장이 돼버렸다. 뭐 그러자고 한 건 아닌데.

내가 아는 산판노동자와 50대 초반쯤 돼 보이는 다른 한 환자는 의도하지 않게 그렇게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그래도 한나라당을 찍어준다는 거다. ‘없는 놈들’이 ‘있는 놈들’을 위해 일하는 한나라당이 좋다고 찍는다는 거다. 그들은 말했다.

“씨발, 조또 없는 것들이 지가 무슨 정몽준이쯤 되는 줄 안단 말이야.”

하긴 그들이 하는 말이 맞다. 50 초반의 그 환자 말처럼 택시를 타보면 대개 기사들이 나라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라 재정이 어려운데 무슨 무상급식이냐면서 혀를 끌끌 차는 꼴을 보면 그런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걸 억지로 참는다.

“나라 걱정 같은 거 집어치우고 니나 똑바로 잘 사세요.”

요즘 벌이가 어떠냐고 물어보면 한달 기본급 4~50에 쌔빠지게 뛰면 150 겨우 가져간다고 엄살피면서 정치이야기만 나오면 나라 걱정부터 먼저 한다. 나라 재정이 어떻고,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고, 국민들이 배가 너무 불렀다는 둥…. 실로 할 말을 잃는다.

하긴 사극 같은 것도 보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종놈들이 양반보다 양반 걱정을 더 많이 하는 것이다. 요즘 인기 뜨고 있는 공주의 남자라도 한번 보시라. 불평불만분자들이 가장 많았던 추노만 해도 그렇다. 한 고참 종놈이 이렇게 말한다. “종놈의 새끼들이 분수를 알아야지.”

아마 조선시대에 정당정치가 있었다면(사실 내가 볼 때 조선시대에도 정당정치는 있었다.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하는 것들이 다 정당이다. 그걸 왜곡해서 붕당이라고 하는 거지만. 물론 양반들끼리의 정당이니 민주적인 정당은 아니겠다) 종놈들은 모조리 노비당이 아니라 양반당에 투표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병실에는 대학생들로 보이는 환자들이 두세 명 있었는데 “이 세상은 자네들 거여. 우리야 이미 별 볼일 없는 거고. 니들이 살 세상, 니들이 확 바꿔야제. 혁명을 하든 뭘 하든.” 나는 이 과격한 상황에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학생환자들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동의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요즘 학생들도 죽을 맛일 테니. 연간 천만 원씩 들여 공부해봤자 취직도 제대로 안 된다. 우리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면서기(9급 공무원) 시험에 대학생들이 줄을 선다. 비싼 돈 들여 배운 학문이 겨우 동사무소에서 등본 떼어주는데 쓰이고 있다고 환자들은 입을 모았다.

그건 그렇고,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른바 3D업종을 기피하니마니 말들이 많은데 과연 그런가? 병실에 누워서도 의기양양한 그를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과연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이 이 산판노동을 견뎌낼 수 있을까? 내가 볼 땐 어림도 없다.

그럼 눈높이를 낮춰서 일자리를 찾으면 될 텐데 그리 안하는 건 또 뭐냐고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거기에 대해서도 이 나이 지긋한 환자들은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그럼 대학까지 나온 젊은 놈들이 미래를 생각해야지 아무데나 덜렁 들어가서는 앞으로 어쩔라고.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애도 낳고 살아야 되는데….”

늘 내 주장은 한가였지만 오늘 또다시 한마디 한다면 이렇다. 산판노동자의 월급이 의사 월급보다 센 나라, 교수의 아내는 차도 없지만 전기수리공의 아내는 벤츠를 타고 다닌다는 핀란드나 스웨덴 같은 나라가 되면 교육개혁이니 이런 골치 아픈 문제도 일거에 사라진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교육운동은 핀트가 어긋난 거다.

그런 나라는 대학교육을 무상으로 시켜도(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무상교육으로 한다고 하면 아마 난리가 날 거다. 포퓰리즘인지 피폴리즘인지 어쩌구 하면서) 진학률이 40%를 겨우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린 연 천만 원씩 들여서 못 들어가서 난리니.

아이구 이거 또 말이 길어졌다. 여기까지. 암튼^^ 그 산판노동자 엊그제 고무장화 두 개 엎어놓은 듯한 다리를 끌고 나와 새벽까지 병원 앞 슈퍼에 앉아 술을 마셨다. 패밀리마트였는데, 아 그런데 이거 왜 이렇게 비싼 거야. 천 원짜리 소주가 천사백오십 원이다. 젠장.

오늘 병원에 갔더니 그 환자, 기브스 푼 기념으로(?) 무학산 등산 하고 오는 길이란다. 아니 실밥 터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타박을 주자 이렇게 말한다. 아참, 그전에 제목에 대한 답? 그건 나도 모른다. 그걸 알면 내가 여기 이러고 있겠나. 벌써 뭘 해도 했겠지.

“갑갑하기도 하고, 빨리 움직여야 근육도 풀리고 그러지요. 그래야 빨리 산에 가서 일을 할 거 아니요. 의사들 시키는 대로 가만 누워있다고 누가 내 입에 밥 넣어 주요?”

9월의 의무방어전, 이렇게 횡설수설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