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11.05.31 3대세습 비판하자고 하면 사상검열일까요? by 파비 정부권 (1)
  2. 2011.03.23 유엔의 리비아개입은 또다른 학살인가 by 파비 정부권
  3. 2010.06.22 월드컵 북한:포르투갈 경기 보다, "북한이나 MB나 똑같아" by 파비 정부권 (4)
  4. 2010.03.18 박남기 총살설, 진실이어도 문제고 거짓이어도 문제다 by 파비 정부권 (3)
  5. 2009.12.27 정몽준의 현대가 보여준 무자비한 보복테러 by 파비 정부권 (116)
  6. 2009.09.08 미녀들의 수다에서 배우는 국제평화주의 by 파비 정부권 (12)
  7. 2009.07.10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by 파비 정부권 (10)
  8. 2009.07.06 MB정권을 현장체험교재로 보는 6월항쟁, <100℃> by 파비 정부권 (9)
  9. 2009.06.30 박근혜가 선덕여왕? 그럼 김정일은 광개토대왕이냐? by 파비 정부권 (73)
  10. 2009.05.25 낙동강에서 접한 노무현 서거 by 파비 정부권 (1)
  11. 2009.03.15 북한의 비인도적 도발보다 더 한심해보이는 한국의 진보 by 파비 정부권 (4)
  12. 2009.01.31 전라도 좌파가 된 소감 by 파비 정부권 (7)
  13. 2008.12.25 크리스마스, 단 하루를 위한 휴전 by 파비 정부권 (2)
  14. 2008.12.04 대북삐라로 본 진보와 수구의 차이? by 파비 정부권 (2)
  15. 2008.10.28 예수님 이름으로 벌이는 삐라 살포행각 by 파비 정부권 (3)
  16. 2008.10.23 평양 단고기집 접대부들은 항상 저렇게 예쁜가요? by 파비 정부권 (8)
  17. 2008.10.18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댓글 폭력들 by 파비 정부권 (11)

거다란님께 드리는 댓글

거다란님의 ☞<진보신당의 3대 세습 비판은 사상검열> 이란 글을 읽고 한자 붙입니다. 왜 3대세습 비판이 사상검열일까요? 저는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3대 세습 비판은 사상검열이다’라고 미리 못 박아 말문을 막는 것이 실은 사상검열이 아닐까?”

물론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3대 세습 비판을 하는 것은 옳지만 그걸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것은 사상검열이다.” 옳습니다. 누군가는 3대 세습을 옹호할 수도 있고, 북의 체제가 배워야할 정치체제라고 말할 수도 있으며,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치적을 칭찬할 수도 있습니다.

오래전에 제게 실제로 그렇게 말한 사람이 꽤 있지만, 저는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고 지금도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건 그들 생각의 자유입니다. 저는 오히려 초원의 사자들의 세계에 빗대 주체사상의 핵심이론인 ‘수령론’은 매우 현실적이고 불가피한 사상체계일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3대 세습이 이 수령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것은 이 분야에 약간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입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저는 그들의 수령론을 이해한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관계 때문에 나온 다분히 정치적 발언이었을 뿐 아직도 도무지 왜 그런 사상이 나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우리가 사상논쟁을 할 이유는 없겠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진보신당이 3대 세습을 비판하는 것이 사상검열’이란 주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것은 사상검열이 아닙니다. 진보신당의 입장으로 보면 매우 온당한 요구인 것입니다.

구 민노당이 현재의 민노당과 진보신당으로 갈라진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는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민노당 분당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소위 ‘민노당 간첩사건’이었습니다. 간첩혐의로 체포된 당시 민노당 사무부총장과 모 중앙위원이 북의 정보당국에 민노당 핵심당원들의 신상정보를 넘긴 게 발단이었죠.

이른바 ‘종북주의’ 논란이 벌어진 것입니다. 또 다른 분당의 원인으로 패권주의를 꼽기도 합니다만, 이 패권주의 역시 ‘종북주의’로부터 나온 것이며 따라서 패권주의는 절대 포기될 수 없는 전략 포지션일 거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물론 반대편에서는 이를 ‘종북소동’이며 한 치의 진실성도 없는 매도라고 주장합니다.

@사진. 거다란닷컴

이런 논란이 최근 다시 불거지는 것은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진보대통합 협상이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진보신당은 민노당과의 협상에서(정확하게는 8자연석회의에서) 통합조건으로 북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명기할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위에 말한 전차들 때문에 진보신당이 거다란님이 말한 소위 ‘사상검열’을 하려는 것이죠.

이쯤에서 제 입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사실 진보대통합에 반대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찬성하는 편도 아닙니다. 민노-진보가 통합한다고 해서 정치적 지도가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사회당도 있다고 말합니다만, 죄송하지만 제 눈에 사회당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회당의 실체를 한 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진보신당의 협상카드일 뿐 아니겠나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저는 차라리 통합할 거라면 문성근 식으로 단일정당을 만들어서 그 안에 블록을 만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선 결선투표제와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등 정치개혁을 단일정당의 목표로 정하고 목표가 달성되면 각자 헤쳐모이는 장기비전을 갖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백만민란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현재의 진보정당은 아무리 봐도 소수정당, 지역정당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어 보입니다. 울산, 창원, 거제가 하나의 교두보 내지는 근거지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한국정치의 오래된 벽을 넘는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순천에서 민노당이 의원을 냈지만, 내년에 민주당이 이곳에 후보를 낸다면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죠).

영국의 노동당이나 스웨덴의 사회민주노동당이 성공했던 유럽의 상황이 우리나라에도 만들어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만큼 지루하고 힘든 일일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고백하자면, 제 이름 파비도 실은 영국노동당을 만든 페이비언에서 딴 것이란 걸 말씀드립니다.

이렇게 대규모적인 단일정당운동으로 진보대통합운동이 바뀐다면, 북한에 대한 입장 표명이나 3대 세습 비판을 명시하자니 하는 말은 필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강령이 필요 없는 정당입니다. 이들에겐 당헌과 당규만 있으면 족합니다(한나라당과 민주당에 강령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있더라도 껍데기뿐이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명시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될 일도 없을 것이고, 또 가시적인 집권이 기대되는 정당이 불필요하게 협상의 상대인 북한을 자극할 만한 강령을 가지는 게 좋은 모양새도 아니지요(물론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는 조선노동당이 대남적화노선을 명시했다고 해서 그들과 대화 못하겠다고 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진보대통합이라면 어떻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소수정당, 지역정당의 한계가 분명한 정당입니다. 통합하면 2004년과 같은 20%대의 지지를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하겠지만 현실은 그저 야무진 꿈에 불과하다고들 말합니다. 혹자는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이나, 진보대통합당이나 다 등대정당 이상이 되긴 어려울 거라 말합니다. 게다가 진보대통합당의 두 블록은 색깔이 너무 다릅니다(하기야 오래 함께하다보면 색깔이 비슷해질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진보신당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들 내부에서 ‘도로민노당’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진보대통합이 이루어지면 과거처럼 친북행위가 당내에서 횡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물론 반대편은 그것은 친북이 아니라 대북교류의 일환이며 넓게 보아 통일운동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만).

진보신당이 불안해하는 또 하나는 새로운 진보정당(진보대통합당)이 1950년대 이후 유럽의 진보정당들이 스탈린주의와 확실하게 선을 그음으로써 집권했던 경험을 보아서라도 국민을 향해 북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소위 ‘묻지마 진보대통합’이 그런 기회를 영원히 날려버릴 것이란 것입니다.

댓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정리해야겠습니다. 결론은 진보신당이 진보대통합의 전제조건으로 북에 대한 입장을 명시하자고 하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사상검열이 결코 아니란 것입니다. 최소한 그들 스스로에게는 진보정당의 생존에 대한 고민이고, 과거의 상처로부터 얻은 역사적 교훈인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종북은 소동일 뿐 존재하지도 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는 민노당이 그냥 통 크게 “그래, 대북문제 정리하자. 우리도 북한식 사회주의체제는 원하지 않는다. 3대세습도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의 인권문제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하자”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걸 위 말처럼 구체적으로 하자는 것도 아니고 두루뭉술하게 언어의 마술을 구사하면 될 것을 말입니다. 이정희 대표도 원래 그러지 않았습니까? 북한 문제에 관해서 놀랄 정도로 전향적인 안을 내놓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결국 이정희 대표도 민노당 내 다수정파의 입장에 눌린 듯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통합의 상대방인 진보신당이 그렇게 원한다면 힘도 더 센 민노당이 걍 들어주면 안 될까요? 아니 그렇잖습니까. 이슬람과 유대교와 기독교가 통합하면서(절대 있을 수 없는 가설이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같은 신을 믿고 있죠) 기독교를 향해 “삼위일체 신앙을 포기해라!” 뭐 그런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암튼^^ 존경하는 블로그계의 대선배님이신 거다란님. 앞으로도 계속 건필하시길~
잔소리가 긴 점 사과드리며, 거다란님의 커다란 이해심을 믿사옵니다. 저도 장기간 블로그 문 닫았다 여는 글이 이런 글이 된 점이 좀 거시기하긴 합니다. 하하.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갖고 횡설수설했다는 생각도 들고요(저는 사실 요즘 민노당도 진보신당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양쪽 모두 접촉도 거의 없고요).   

거다란님은 사실 민주당 지지자에 가까워 보이는데도 민노당과 진보신당에 보여주는 관심과 애정에 감읍하기도 하는 파비가.

Posted by 파비 정부권

참 델리케이트한 문젭니다. 일부러 델리케이트란 생경한 용어를 썼습니다. 그만큼 심경이 복잡합니다. 카다피는 어떤 사람인가? 이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한때 운동권들은 카다피를 쿠바의 카스트로처럼 대단한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아마 자료를 어렵게 찾아야할 테지만, 그에 대한 칭송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심지어 고 리영희 선생조차도 카다피에 대한 환상을 가졌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난 후 바로 나온 <리영희 평전>의 서평에서도 저는 그 부분을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리영희 선생의 잘못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시계가 반미의 시간에 정지해있었던 것은 그분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사상하고,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리비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에만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펙트는 엄청난 살상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카다피는 미쳤습니다. 그는 학살을 공언하고 있습니다. 시위대를 향해 발포는 물론 미사일에 전투기, 탱크를 동원한다는 미확인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미확인 보도들은 오래지않아 거의 모두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시위대도 무장했습니다. 이때부터 시위대는 반군으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위대로 출발한 반군이 제아무리 무장을 한들 리비아 정규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생각해봅시다. 광화문에 모인 촛불시위대에 탱크가 주어졌다, 그걸 누가 운용할 수 있을까요?

아랍세계의 반미, 반제국주의를 카다피는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습니다. 그는 시위대를 외세의 앞잡이로 몰아붙이고,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했습니다. 언론의 보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반군으로 불리기 시작한 시위대는 리비아 정규군과 용병의 무차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벵가지 일원으로 몰렸습니다.

저항하는 자는 모조리 죽여 피의 강을 만들겠다는 아들 카다피의 공언이 그냥 공언일까요? 아니라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자, 이쯤에서 적절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죠. 이웃집이 있습니다. 그 집의 가장은 매우 폭력적입니다. 그런데 오늘 따라 유난히 시끄럽습니다.

술에 취한 폭력가장은 아내와 아이들을 마구잡이로 폭행합니다. 마침내 이성을 잃은 그는 칼을 집어들고 아내를 죽이려고 합니다. 순간 아이들이 앞을 막아서며 저항합니다. 그러나 속수무책입니다. 결국 아이들은 큰 소리로 이웃에 구조를 요청합니다. 이에 화가 난 폭력가장은 아이들마저 죽여 버리겠다고 큰소리칩니다.

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 집의 일이 남이 간여해서는 안 되는 개인적 영역이므로 그 집 담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걸까요? 자기 집안의 문제는 그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하는 것이므로 이웃이 개입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난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요?

한 블로거께서 제가 쓴 <리비아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차, 왜 생기나; 진보신당만 국제사회에 무력개입 촉구, 정부와 여타 정파들은 침묵>이란 기사에 대해 <또다른 학살을 요구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란 글로 비판했습니다. ‘학살을 요구하고 지지하는’이란 문장에 주목하면 이건 비난이며 심각한 명예훼손입니다.

우리가 학살을 요구하나요? 그는 제 글 외에도 <한겨레신문에 이렇게 실망한 적이 없었다>는 글을 올린 블로거 거다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다른 블로거도 ‘한겨레의 친 카다피 논조에 실망했다’며 ‘지금 이 순간 한겨레보다 카다피의 학살을 막기 위해 카다피군에 대한 폭격에 나선 사르코지의 폭력기가 더 휴머니즘적으로 보입니다’라고까지 말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블로거의 비판보다 거다란의 평가가 훨씬 더 가슴에 와 닿으니 확실히 세상을 보는 눈에 차이가 많이 나는가봅니다. 물론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리비아 사태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리비아는 내부 부족들간의 갈등문제도 심각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만약 카다피가 시위대를 향해 군대를 동원하거나 용병을 투입하고, 미사일, 탱크, 전투기까지 동원하는 야만성을 보이지 않았다면 다국적군의 무력개입을 우리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고, 다국적군이 출동하는 불행한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진보신당 대변인도 무력개입을 촉구하는 논평을 내지도 않았겠지요.

거다란의 말처럼 “상황은 너무나 심각했던 것”입니다.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고 있고, 더 많은 학살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북한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제 개인적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물론 북한의 민주화는 북한민중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지만, 리비아처럼 된다면 결론은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만약 남과 북이 반대의 경우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남한 민중이 탱크에 짓밟히고 전투기가 시위대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그리하여 남한정권이 인구의 3분지 1 정도는 몰살시키겠다고 호언한다면? 저는 기본적으로 이른바 운동권 출신들의 인권의식,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시각에 불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또다른 학살을 요구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에 실린 사진을 보니 아마도 <다함께>라는 국제사회주의자그룹(IS) 조직원들이 다국적군의 폭격을 중단하라는 시위를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저는 거꾸로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카다피에게 학살을 중지하라는 시위를 한 적이 있는가?

제가 <100인닷컴>에다 <리비아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차, 왜 생기나; 진보신당만 국제사회에 무력개입 촉구, 정부와 여타 정파들은 침묵>이란 글을 올린 이유도 실은 앞에서 <다함께> 등과 같은 운동권 조직에 물어보고 싶은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하긴 뭐 국내문제도 많은데 매일 남의 나라 이야기나 하는 뉴스가 불만인 분들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아무튼, 미국이라서, 제국주의적 식민주의 야심이 문제이기 때문에, 거기에 석유가 있기 때문에, 이런 주장들도 많이 보긴 합니다만, 저로서는 도무지…. 6시에 약속이 잡혀있어서 토론은 이정도로 해야겠습니다. 급하게 생각나는대로 쓴 글이라 좀 거칠더라도 이해해주시를 앙망합니다. 그럼...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에이, 노래 못 틀게 하기는 명박이도 마찬가진데 뭘"

사진=연합뉴스

















북한, 포르투갈에 7:0 대패


북한이 포르투갈에 7:0으로 크게 졌습니다. 최근에 이렇게 큰 점수 차이로 지는 경기는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가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네덜란드에 5:0으로 진 적이 있었지요. 물론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한국은 당시 세계 최강이던 헝가리에 9:0으로 진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입니다.

헝가리 하면 요즘은 별 볼일 없는 나라로 치지만, 1950년대엔 브라질, 아르헨티나도 명함을 못 내밀 정도였죠. 아쉽게 결승전에서 서독에 2:3으로 역전패 하는 바람에 준우승에 머물긴 했지만, 아무도 헝가리가 우승하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헝가리엔 전설적인 영웅 푸스카스가 있었습니다. 푸스카스는 레알 마드리드 시절 유러피언컵(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4골을 넣었는데, 아직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나라에 전쟁의 포화속에서 갓 벗어난 애송이 대한민국이 0:9로 졌다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북한도 마찬가집니다. 포르투갈에는 호날두가 있죠. 호날두가 과연 레전드 푸스카스와 비교할 만한 선수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숩니다. 메시에게 그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헝가리는 스위스 월드컵에서 서독과 두 차례 격돌했는데, 서독 선수들의 집중 마크로 말미암아 푸스카스는 큰 부상을 입었고(이때 헝가리는 서독을 8:3으로 완파했지만, 다시 만난 결승에서 2:3으로 역전패했습니다.) 브라질과 우루과이 경기엔 결장하게 되었죠. 후일 펠레도 집중 마크로 인해 큰 부상에 시달리곤 했는데, 회의를 느낀 펠레는 축구를 그만둘까 고민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어? 북한도 월드컵 나왔네"

아무튼, 북한이 포르투갈에 7:0으로 진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국제 경기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세계적 클럽에서 뛰는 선수들로 구성된 포르투갈을 맞아 그 정도 선전한 것은 아주 잘 한 일이라고 칭찬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북한과 포르투갈의 경기를 보다가 아내가 이렇게 물어보더군요.

"어? 북한도 월드컵 예선전에 참가했었나? 어떻게 월드컵 나왔지?"

이 말을 들은 저는 기가 막혀서(사실 뭐 그럴 거까진 없지만. 원래 여자들이란 축구에 대해서 만큼은 매우 무지한 게 보통이니까) 이렇게 받아쳤답니다.

"아니, 북한이 우리나라하고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예선전 하는데 평양엔 한국팀이 절대 올 수 없다고 버텨서 결국 제 3국에서 한 거, 거기가 홍콩이었던가, 그것도 모르나?"
 
"나는 모르는데, 그런 일이 있었나?"

"평양에 오는 건 뭐라 안 하는데, 다만 애국가는 틀 수 없다 그래서 그렇게 된 거지. 왜 국제 경기할 때마다 시작하기 전에 국가 틀어주잖아. 서울에서 북한과 경기할 때는 북한 국가 연주 했지. 그런데 평양에서는 안 된다고 하니 참 황당하더구만. 아주 나쁜 놈들이지."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열린 남아공 월드컵 예선전. 평양 경기는 제3국에서 했다. 사진=연합뉴스


허정무가 북한 대표팀 감독처럼 북한 기자들에게 행동했다면?

"에이, 명박이는 더 나쁜 놈인데 뭐."
 
"뭐라고? 와 명박이 나쁜 놈이고."

"명박이도 노래 못 틀게 하잖아. 무슨 행사할 때 '임을 위한 행진곡' 못 틀게 한다던데."

"하긴 그도 그렇네. 그래도 쟈들이 더 나쁜 놈들이다. 서울에서도 인공기 걸리고, 북한 애국가 연주하고 하는데 저그는 와 못 하게 한단 말이고. 얼마 전에 북한 대표팀 감독 인터뷰 사건도 하나 있었지. 우리나라 기자가 "북한팀은~" 어쩌구 하면서 질문을 하니까 이랬다지? 아주 불쾌한 표정으로. 

'북한이란 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팀만이 있을 뿐이지요. 다음 질문 하십시오.' 

그래서 우리나라 기자들은 질문을 하나도 못했다고 하더군. 거 북한이라고 좀 부르면 어때서. 자기들은 꼬박꼬박 남조선이라고 부르면서 말이야. 아, 우리는 지들을 북한이라 부르고 저그는 우리를 남조선이라 부르면 되는 거지. 만약 허정무가 북한 기자들이 "남조선 팀은~" 어쩌구 했다고 그렇게 갈기면 좋겠냐고."

괜히 열 냈더니 아내가 꼬랑지를 내리더군요. "하긴 그 말도 맞다. 그라모 둘 다 나쁜 놈이네."

경기를 다 보진 못했습니다. 후반전 초반에 벌써 스코어가 4:0으로 벌어지고 있어 더 이상 볼 흥미를 느끼지 못한데다가 저는 연속극 동이를 보아야 했거든요. 나중에 확인하니 7:0으로 졌더군요. 이미 경기 내용으로 보아선 몇 골 더 먹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나라가 아르헨티나에 4:1로 졌을 때보다 훨씬 기분이 덜 나빴다는 것입니다. 아르헨티나에 졌을 때는 정말 기분이 나빴을 뿐만 아니라 며칠 동안 밥맛이 없었거든요. 그러나 그 정도는 아니더군요. 그냥 '심하게 져서 안타깝네!' 하는 정도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함께 살려면 더 부드러워져야 하지 않을까?

같은 민족이라고 하지만, 그래서 늘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역시 아무래도 먼 남의 나라 일처럼 생각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6·25 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군요. 며칠 있으면 바로 그 60년이 되는 날입니다.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비록 분단은 되었다 하더라도 전쟁만은 없었다면?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낫지 않았을까요? 제 마음가짐도 말입니다.

이상 월드컵 보다가 엉뚱하게 삼천포로 빠진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뭐 그렇게 완전 삼천포로 빠진 건 아니지 싶습니다. 다 잘 살아보자는 이야기고요. 통일이 되려면 좀 더 부드러워져야 된다, 그런 이야기고요. 그건 북한팀 감독도 마찬가지고,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네요. 

세상에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해서야 통일은 고사하고 함께 사는 것조차 힘들지 않을까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문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게 비극이다

북한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이 총살당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게 진짠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다 문제인 것만은 확실하다. 총살당했다는 뉴스가 진짜라도 문제고, 오보라도 문제인 것이다. 진짜라면 보편적 가치의 차원에서 충분히 논란이 될 만한 문제인 것이며, 오보라면 "역시 북한은 폐쇄적인 사회야!" 하는 게 문제인 것이다.
 


사실 우리가 북한 사회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작년이었던가? 한때 북한의 최고 통치자인 김정일이 죽었을지 모른다는 뉴스가 언론을 장식했었다. 그리고 곧 그 '죽었을지 모른다'는 미확인 뉴스는 '죽었을 것이다'는 추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미확인 혹은 추정일 뿐이었다.

결국 김정일은 나중에 건강한 모습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 무성한 추측들을 조롱했다. 특히 김정일의 사망설을 가장 먼저 보도했던 일본 언론들이 가장 큰 낭패를 보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정보를 보도한 언론들은 오보에 대해 대중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은 사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왜 그런가. 이미 대중들은 그런 오보 자체가 크게 실수가 아니며 또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이란 사회는 누구라도 정확하게 실상을 안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가공해 미확인 뉴스를 만들어내는 반칙이 일상화 된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 전에 중국에서 압록강 철교를 지나 신의주를 거쳐 평양으로 향하던 열차가 폭파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때도 사람들은(언론들은) 그 열차에 김정일이 타고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놓고 미확인 뉴스를 만들어내기에 바빴다. 그리고 대체적인 결론들은 그 열차에 김정일이 타고 있었으며 그 사고는 김정일을 암살하려는 테러였다는 걸로 모아졌다. 

그러나 역시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에 대한 실체는 비밀로 남겨져 있다. 역시 북한이란 사회를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안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국가계획위원장이 총살당했다는 뉴스도 그런 맥락에서 진실성에 대하여 의심해볼 여지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김정일 사망설과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의 총살설을 똑같은 반열에 두긴 무리가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김정일은 북한의 최고 권력자일 뿐 아니라 북한 사회를 60년 넘게 세습 통치하고 있는, 사실상의 왕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본다면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의 총살설마저 의도된 가공뉴스라고 보긴 좀 어려운 면도 없잖아 있다.  

어쨌든 북한 경제가 얼마나 어려워졌기에, 민심의 불만과 불안이 얼마나 팽배했기에 국가경제의 최고책임자를 촐살형에 처하는 극약처방을 내렸을까? 이 뉴스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역시 북한이란 사회는 아직도 사형을, 그것도 총살형이라는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하긴 요즘 우리나라도 김길태 사건으로 사형제에 관한 논의가 뜨겁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그 뒤를 이었다. "아무리 화폐개혁에 실패하고 국가경제를 파탄에 빠지게 한 책임이 있다지만, 총살형에 처한다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그리고 한편 화폐개혁 정도의 고강도 경제정책은 일개 경제부처의 장이 아니라 통치자에게 책임을 묻는 게 온당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진실이 무엇이든지간에 우리는 왜 늘 북한 소식을 '설'로만 들어야 하는지 나로선 실로 그것이 안타깝다. 이래서야 어떻게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우리가 신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혼례식을 치르고 첫날밤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잠든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조선시대의 여자도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까 그런 것이다. 알 수 없는 나라 북한,
또는 북한이란 나라를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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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제 울산에서 열린 영남노동자대회에 갔다가 내려오는 버스에서 뉴스를 보았습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하는군요. 그야말로 무시무시하고 섬뜩한 내용이었습니다. 아마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사에 언급된 대북 태도에 대한 보복성 발언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남한 정부를 향해) 한계가 없는 무자비한 타격력을 보여주겠다.”

그러면서 전 인민군에 전시체제 돌입을 명령했다고 했습니다. 순간 김정일이가 이명박에게 낚였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북한은 남한 내 중요한 정치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헛발질로 정권을 도와주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국민의 눈과 귀를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는 MB정권의 공작에 북한군부가 놀아난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국민들도 하도 이골이 나서 별 관심이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계가 없는 무자비한 타격력”을 보여준 현대 테러단

그러나 ‘한계가 없는 무자비한 타격력’을 보여준 것은 유감스럽게도 북한 군부가 아닌 현대중공업 경비들이었습니다. 1월 17일 자정이 가까운 시간, 울산 현대미포조선 굴뚝 농성장에 소화기와 헬멧으로 무장하고 난입한 100여명의 현대중공업 경비들은 현장에 있던 10여명의 노동자들을 무차별 구타하고 소화기로 머리와 어깨를 내리찍는 등 폭력을 자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옥희 진보신당 울산위원장의 승용차와 건설플랜트노조 승합차가 파손됐고 김석진 현대미포조선 현장대책위원장은 소화기에 머리를 가격당해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옆에서 이를 말리던 울산시 동구의회 박대용 의원과 진보신당 당직자들도 집중 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함께 실리어갔습니다.
 

사진을 찍던 여성노동자가 카메라를 빼앗기는 바람에 테러현장 사진은 이 사진 한 장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현장에 있던 텐트에 불을 지르고 방송차량 안에 있던 물품을 꺼내 모조리 불길 속에 집어던졌습니다.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가자지구에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여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이슬라엘군의 모습이 바로 저런 모습이었을 겁니다. 이들에게 자비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북한군 총참모장이 위협하던 “한계가 없는 무자비한 타격력”을 현대는 앞서서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이날 자정의 테러는 이미 예견되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경찰차가 한 대 배치되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역부족이었습니다. 뒤늦게 출동한 경찰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들은 멀찍이서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수수방관하던 경찰이 왜 폭력 현행범을 체포하지 않느냐는 항의에 그제야 못이기는 듯 사태에 개입하고자 움직이기 시작했고, 100여명의 현대경비들은 "철수!"라는 짧은 구호에 잘 훈련된 유격대원들처럼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회사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고공농성 25일, 현대는 음식물 공급도 차단

울산 현대중공업 100M가 넘는 굴뚝 위에는 한 달째 두 명의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생수 두병만 달랑 들고 올라간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음식과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방한복입니다. 그러나 현대 측은 경찰이 올려 보내려는 음식물조차 공급을 차단했습니다. 다만, 3일마다 생수 한 병과 초콜렛 한 통만 허락했습니다.   

▼ 치열했던 음식물 공수작전
    (7~8번째 사진처럼 현중경비대의 낚싯줄에 걸려 위태로웠지만, 결국 음식물을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몇 차례에 걸쳐 음식물을 올려 보내기 위해 시도했지만, 현대 측 경비들의 무차별적인 폭력에 의해 좌절되자 급기야 행글라이더로 약간의 육포와 음식물을 공급하는 초유의 사태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자그마한 점과도 같은 100M 높이의 굴뚝 꼭대기에 행글라이더가 날아가서 음식을 투하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기가 차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사주인 정몽준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는 현대와는 무관하니 보고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있습니다. 참 꿈도 야무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의도 그의 사무실에는 그의 대통령 꿈에 바람을 넣어줄 사람들이 줄지어 드나들고 있다고 합니다.  

제 식구 밥도 못 주게 하면서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정몽준은 야만입니다. 며칠 전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그는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당도 말하자면 가정과 같은 것인데… 서로 이해하고 도와야지 이리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뉴스를 통해 본 그의 발언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당은 가정처럼 화목해야한다는 요지의 발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 회사 식구들 하나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 가정을 이야기하다니 우습습니다. 30명이 넘는 자기 회사직원들을 6년 동안이나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어놓고 가정의 화목을 이야기하다니 기가 막힙니다. 아무런 이유도 잘못도 없이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이혼의 고통 속에 내던져지고, 알코올 중독자로 전전하고, 열심히 공부해야할 어린 자녀가 아르바이트를 하다 전신 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는 처절한 현실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정몽준은 참으로 야만인입니다. 

그런 그가 온 국민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아직도 꾸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꿈을 주는 이 나라도 결국 야만의 나라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전쟁포로도 밥은 줍니다. 사형수에게도 음식과 따뜻한 잠자리는 보장받습니다. 그런데 직장을 잃고 6년 동안이나 거리를 헤매던 현대미포조선 하청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복직을 위해 굴뚝에 올라간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현대는 밥조차 먹지 못하게 합니다.

최소한의 음식을…, 책임자 처벌…,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들

영남노동자대회에서 연설하는 민노당 대표 강기갑 의원. 작은 체구에서도 목소리가 카랑카랑했다.

가두행진을 벌이는 영남노동자대회

현대중공업 굴뚝 농성장으로 행진하는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현대백화점 앞에 집결,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격렬한 전투. 사진을 찍던 필자에게도 소화전 물공격이 날아왔다.

물대포에 흠뻑 젖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그러나 식량 공수작전은 성공.

경찰들은 이때도 구경만 했다.


이에 영남노동자대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이 나섰습니다. 대회를 마친 그들은 대오를 형성하고 현대미포조선으로 향했습니다. 굴뚝 아래에 집결한 노동자들은 굴뚝 위에 로프를 연결하고 음식물을 올려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헬멧과 소화기로 무장한 현대중공업 경비원들이 대거 투입되어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습니다. 현대중공업 공장 안에서는 수압을 최대로 높인 소화전에서 물대포 공격이 감행되었습니다.

전쟁이었습니다. 숫자에 밀린 현대 측은 굴뚝 중간에서 올라가는 음식물을 낚아채기 위해 낚싯대까지 동원했습니다. 음식물이 한때 중간에서 낚싯줄에 걸려 휘청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모든 음식물을 무사히 공급했습니다. 영남노동자대회에 참석한 수많은 노동자들은 만세를 불렀고, 굴뚝 위의 두 농성자는 손을 흔들며 감사의 뜻을 보냈습니다. 필자도 감격의 눈물을 삼키며 창원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버스 안 TV모니터를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엔 북한군 총참모장이 예의 누런색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계가 없는 무자비한 타격력을 보여주겠다!”

밥 주었다고 무자비한 보복테러 자행하는 정몽준의 현대

그러나 그 ‘한계가 없는 무자비한 타격력’을 보여준 것은 북한군부가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의 야무진 꿈을 꾸는 정몽준이 사주인 현대중공업에 의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들은 노동자들이 모두 돌아간 자정을 기해 굴뚝 아래 농성장 텐트에 야습을 감행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진보신당 노옥희 울산대표와 조승수 전 국회의원 등이 4일째 단식농성 중이었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다쳤습니다. 현장에서 폭력을 말리던 울산동구의회 의원까지 소화기에 등과 어깨, 머리 등을 찍혀 병원에 실리어갔습니다. 

현대 측의 보복공격이 있을 것을 예상한 경찰은 현장에 경찰차 한 대를 배치해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보복공격이 시작되자 전경차 한 대가 추가로 배치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멀찍이서 구경만 했습니다. 왜 폭력 현행범을 체포하지 않느냐는 항의에 못 이겨 뒤늦게 진압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리고 경찰의 무책임한 태도에 항의하기 위해 울산시 동부경찰를 방문한 정원현 씨 등 네 명의 노동자들은 경찰서 문을 넘었다는 이유로 현행범으로 체포됐습니다. 이 나라도 경찰도 미쳤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강기갑 의원은 서울에 올라가는 대로 정몽준 의원을 만나보겠다고 했습니다. 동료의원이 만나자는데 설마 안 만나주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정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현대미포조선의 사주인 당신이 나서서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사람을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게 뜻대로 되겠습니까? 야만인의 귀에 인간의 언어가 들릴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강기갑 의원의 시도 역시 그저 야무진 꿈에 불과할 뿐입니다. 

2009. 1. 18.  파비
<ps; 음~ 마지막 문장이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을 듯하여 추가합니다. 정몽준의 야무진 꿈은 취미로 대통령질 해먹겠다는 배지가 불러터진 야욕의 꿈이지만, 강기갑의 야무진 꿈은 노동자, 서민의 고통과 함께 하는 연대의 꿈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정몽준과는 함께 꿀 수 없는 꿈이기도 하고, 정몽준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짐승 같은 정몽준의 귀에는 인간 강기갑의 말이 들릴리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역시 배지가 불러 말귀를 이해 못하는 몇몇 분들이 엉뚱하게 이 문장 하나만 잘라 조소하므로 그런 몹쓸 사람들을 위해서도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오랜만에 미녀들의 수다를 보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 프로를 재미있게 보는 편이다. 나는 내가 여전히 30대에 머물러 있는 줄 알지만, 이미 불혹의 벽을 넘어선지 오래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이 좋아하는―물론 나는 여전히 내가 젊은 축에 든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밖에 나가 모임 같은 곳에 가보면 제일 젊은 편에 속한다―프로를 잘 보는 걸 보면 아직 젊은 것이 맞다 생각한다. 하긴 여러 사회문제들에 대해 나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견해를 가진 젊은 친구들을 많이 보기도 했다.  

이 프로에 나오는 미녀들은―사실 내 기준에서 보자면 몇몇을 빼고는 그리 미녀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사실 우리나라 여성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발랄함이 있었다. 또 그녀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한 번씩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저토록 어린 처자―좀 상스러운 표현이지만, 이해해주기 바란다―들에게서 저토록 기막힌 생각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그 생각들은 그저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었다.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상식적이지 않은 세상에서 비상식을 상식처럼 여기며 살아왔다는 말처럼 들려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그녀들은 발랄했다. 그리고 그녀들은 그런 발랄함 속에 우리가 알 듯 모를 듯 상식이 무언지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녀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사는 세계 속에서 배운 것들을 자연스럽게 내뱉는 과정에서 조용한 깨우침을 주고 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오늘 미수다의 마지막 수다는 애국가에 관한 것이었다. 각 나라의 애국가를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독일에서 온 베라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애국가 가사를 몰라요. 그냥 듣기만 했지 직접 불러본 적이 없어서 가사를 기억하지 못해요." 엉? 이게 무슨 소린가. 애국가 가사를 모른다니. 충분히 능글맞은 진행자 남희석에게도 이건 매우 의외의 대답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국민으로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그런 노래 부르는 게 금기시되어 있어요." 

미르야는 한 발 더 나갔다. "그리고 1절과 2절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요. 부르는 게 불법이죠. 3절만 불러야 되요." 1, 2절은 애국심과 전쟁을 선동하는 내용인 모양이다. 아마도 이 수다를 들은 많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도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웃나라 일본을 상상했을지 모른다. 일본은 독일과는 정반대다. 그들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과거 군국주의 시절을 회상하며 전쟁을 금지한 헌법마저 수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지 돌아보는 사람이 있었을까 궁금했다. 우리는 어떨까? 물론 우리는 애국가 1절부터 4절까지 달달 외운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애국가 1절부터 4절까지 필기시험을 치르곤 했었다. 국민교육헌장,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가, 이 세 가지는 반드시 외워야 하는 필수사항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이 세 가지 필수 암기사항을 외지 못하고 졸업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특별한 고문관을 빼고는.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우리는 늘 애국가를 부르며 살았다.

극장에서도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부른 다음에야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공짜는 결코 아니다. 길을 가다가 국기하강식이 있으면 제자리에 서서 국기를 향해 손을 가슴에 얹고 부동자세를 취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이런 이야기들은 옛날이야기다. 세상이 바뀌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 <이윤기의 세상읽기, 책 읽기>란 블로그에 올라온 글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야구장에서는 아직도 경기 전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는 거였다.

내 돈 내고 들어가서 일어섰다 앉았다 하는 불편도 문제지만, 순수하게 야구경기를 관람하러 온 외국인들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국가대항전이라면 모르겠지만, 프로경기에서조차 그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나는 일본의 우경화, 군국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의 화살을 쏘아대는 어떤 한국인도 자기 자신의 과격한 애국주의나 민족주의에 대해 반성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사실은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많은 부분 민족적 감성에 빠져있는 게 현실이다.

아무튼 신선한 감동이었다. 독일인들이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그토록 처절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고맙고 미덥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처럼 의식적이지는 않지만, 그들에겐 애국가를 부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며 부자연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양차대전이 일어나기 전과 같은 상시 동원체제가 아니라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시대다. 우리만이 그런 세계화의 흐름에 동떨어져 여전히 국민동원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녀들의 수다, 그녀들의 수다를 듣다 보면 가끔 부끄러워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핀란드에서 왔다는 따루라는 아가씨였던가? 언젠가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에는 좌파가 없어요. 한국에서 좌파라고 불리는 정치세력들은 핀란드에서는 우파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좌파란 평등과 평화를 기치로 하는 정치세력이다. 그러므로 좌파의 주요한 슬로건은 전쟁반대다. 그런데 오늘 독일인 베라와 미르야의 수다를 들으며 따루의 말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한국의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어차피 통일되면 그거 다 우리 것이 될 테니 좋은 일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평화를 신봉하는 진보와는 어울리지 않는 주장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한나라당 중에, 심지어 한나라당 국회의의원 중에서도 똑같은 이유로 북한의 핵실험을 호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비공식적이지만. 애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이데올로기 속에는 좌우를 막론하고 사람을 흥분시키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것일까?

어쨌든 미수다는 참 좋은 프로다. 얼마 전, 베라가 쓴 책자가 일으켰던 소동이 기억난다. 제목이 <잠 못 드는 서울의 밤>이었던가? 어떤 책인지 꼭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나는 독일어를 못하니 누군가가 한글 번역본을 내야만 읽을 수 있겠지만. 남의 나라에 와서 자기 나라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공개적인 방송에서 스스럼없이 반성할 줄 아는 사람. 참으로 신기하다. 우리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일본인들이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간 자기 나라에 돌아가 몰매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하, 생각하니 또다시 씁쓸해진다. 이거 이런 걸 글로 써서 블로그에 올리는 나도 몰매 맞을지 모르겠다. 그러기 전에 빨리 자야겠다. 물론 이 글은 내일 아침 발행으로 예약해두고. 독자들도 자야 하니까. 자기 전에 제목을 한 번 더 훑어보니 너무 거창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이해를 바랄 뿐이다. 졸린 탓도 조금 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분 있으십니까? 아마 아무도 없으실 걸로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이런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열린 진보신당 주체의 강연회(주제 : 지역 토호세력의 뿌리)에서 강사로 나선 김주완 기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어땠을 거 같아요?"
 

사진을 못 찍어서 "김주완-김훤주 팀블로그"에서 빌려왔습니다. 왼쪽이 김주완. 그 옆은 김훤주 기자.


생뚱맞은 질문에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엉뚱한 질문이었죠. 그런데 이건 이분의 주특기입니다. 강사로 모셔다가 교육을 받는 중에 느닷없이 자기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아니 질문은 우리가 해야지 왜 자기가 하는 거죠? 하하, 그러나 이보다 더 확실하게 교육생들에게 인식을 심어주는 방법도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누구도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설마라도 해보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런데 김기자의 답은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로동신문보다 더 지독한 친 김일성, 친 김정일 신문이 되었을 것이다"란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조선일보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는 것이지요.

조선일보는 일제시대에는 친일신문으로 그 악명을 떨쳤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조선총독부의 비호 아래 접수하면서부터 그리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는 조선의 젊은 청년들을 태평양전쟁으로 내몰기 위해 "천황폐하의 은혜에 보답하여 대동아전쟁을 승리로 이끌자"고 역설하던 신문입니다.

그런 조선일보가 해방 후에는 이승만 독재에 앞장 섰습니다. 그리고 다시 5·16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에게 아부하며 밤의 대통령 행세를 했습니다. 전두환이 들어서자 민족의 영명한 지도자라고 추켜세우며 다시 전두환에게 꼬리를 치는 기민함을 보였던 것이 바로 조선일보입니다.

김주완 기자의 말에 의하면 조선일보는 보수언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전형적인 기회주의 언론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기회주의의 특성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힘있는 자에게 빌붙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오늘은 간에 붙었다가 내일은 쓸개에 붙는 것이 기회주의인데, 조선일보가 바로 그 전형이란 것입니다.

그러니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틀림없이 김일성 만세를 낮밤 가리지 않고 불렀을 것이란 사실은 매우 자명한 일입니다. "그럼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대통령 할 때는 왜 그렇게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주야장천 실었을까요? 노무현 정부 때는 비판을 넘어 아예 비난 내지는 학대하는 것 같던데요."

혹시 이렇게 질문을 하실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지난 10년 간의 김-노 정권이 민주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정권들은 언론통제를 제일 과제로 삼았습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제일 먼저 장악한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방송국입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언론통폐합 조처였지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노무현이 조선일보 사장을 남산에 끌고 가서 한 사흘 밤낮만 고문하라고 지시했다면 조선일보는 그 다음날부터 바로 노무현 만세를 주야장천 불렀을 거라고 말입니다. 우스갯소리지만 푸념이기도 하답니다. 준비되지 않은 민주주의는 그 과실을 몽땅 조중동과 재벌들이 따먹도록 만들었으니까요. 

하여튼 김주완 기자의 주장은 압권이었습니다.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친 김일성, 친 김정일 신문으로 자나깨나 주체사상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이따위 기회주의 신문이 대한민국 언론계를 평정하고 있다는 것은 국제적인 망신입니다. 그 평정조차도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돈을 뿌려 얻은 것이니 하등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만.

하여간 여러분,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답은 이겁니다. "조선일보는 로동신문보다 더 지독한 김정일 찬양신문이 되었을 것이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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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100℃ - 10점
최규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만화가 최규석,
민주주의의 의미를 찾아 민주화운동의 정점이었던
1987년 6월로 여행을 떠나다


"잡아라…!"

 
1978년 6월의 어느 여름날, 뜨거운 열기로 새하얗게 달아오른 굵은 모래가 굴러다니던 운동장에서는 웅변대회가 한창이었습니다. 머리를 빡빡 밀어 윤기가 반질거리는 머리를 한 중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로 질서정연하게 운동장에 앉아 졸고 있었습니다. 이때 느닷없이 연단에 올라선 한 연사가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잡아라!"

"저기 날아다니는 파리나 모기를 잡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를 잡으란 말이냐? 바로 북한괴뢰도당의 괴수 김일성을 때려잡으라는 말입니다. …" 그는 나보다 한 학년 위의 선배로서 3학년이었습니다. 이름이 김성일이었는데, 이름자의 위치만 살짝 바꾸면 김일성이 된다는 생각에 이후로도 가끔 속으로 웃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웅변대회에 나와 이렇게 "○○○을 때려잡아라"와 같은 비인간적인 구호를 외치는 연사는 없습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모두가 6월항쟁의 덕입니다. 6월항쟁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습니다. 6월항쟁 이전에는 대통령 이름만 불러도 국가원수 모독죄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다는 소문이 사실처럼 번져있었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아니면 누가 일부러 낸 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모두 그 소문에 벌벌 떨었답니다. 그래서 우리가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대통령의 함자를 부를 땐 반드시 뒤에다 '각하'란 존칭을 붙였습니다. 게다가 대통령은 박정희, 국무총리는 김종필, 국회의원은 채문식이 영원히 하는 것으로 알았던 나의 어린 시절 대통령은 임금님이었습니다.

그러던 세상에 개벽이 일어났습니다. 6월항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오고 자동차들은 거리에서 클락숀을 빵빵 거렸습니다. 당시의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였습니다. 1972년 유신헌법이 만들어진 이래로 대통령은 국민들이 뽑지 않고 체육관에서 몇몇 사람들이 모여 뽑았습니다. 

소위 간선제란 것이었는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뽑는 것입니다. 서슬퍼런 유신시절에 대의원들을 모아놓고 '공갈 반 회유 반' 하면 안 넘어갈 사람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6월항쟁으로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뽑게 되었습니다. 물밀듯이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의 저항에 전두환 독재정권도 결국 항복선언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최규석의 만화 『100』는 6월항쟁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중고등학생들이 읽기 쉽도록 만화로 그린 책입니다. 권영호라는 주인공도 어린 시절 웅변대회에 나가 빨갱이를 때려잡자고 외치던 당찬 반공소년이었습니다. 그러던 주인공이 대학에 들어가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고민하게 되고 결국 운동권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런 아들이 빨갱이들에게 물들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던 어머니, 그러나 아들이 구속되자 누구보다 앞장서서 독재에 맞서던 어머니를 통해 결국 세상은 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말없이 직장생활에 충실한 영호의 형 영진은 6월항쟁의 주역이었던 넥타이부대의 표징입니다. 

이 책은 6월항쟁 승리의 소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완강하게 아들 영호와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다 민가협에 빠진 아내를 못마땅해하던 아버지도 마지막에는 택시기사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6월항쟁의 클락숀에 손을 얹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개벽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작가 최규석은 부록 뒤에 실어놓은 <작가의 말>을 통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관한 통렬한 비판을 던집니다. 6월항쟁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냈을지는 몰라도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작가의 관점입니다. 진짜 민주주의는 경제민주주의란 것입니다. 정치민주주의가 아무리 꽃을 피워도 경제민주주의가 없다면 그것은 날개 없는 민주주의입니다.  

6월항쟁으로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게 되었지만, 여전히 철거민들은 두드려 맞고 생활현장에서 쫓겨나고 있고, 노동자들은 전태일 열사가 했던 것처럼 줄기차게 목숨을 내던지지만 연예인의 성형기사만큼도 조명을 받지 못하며, 전태일 열사가 제 몸에 불을 붙이며 지키라고 절규했던 근로기준법은 걸레처럼 개악됐습니다.

그래서 6월항쟁은 반쪽의 혁명입니다. 6월항쟁이 완전한 혁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나머지 반쪽, 즉 경제민주주의를 당성해야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6월항쟁은 끝난 것이 아니며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항쟁이 지닌 역사적 의미가 지대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그는 처음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로부터  이 작품의 작업을 제안받았을 때 거절을 할 심산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첫 이유는 그 사건에 대하여 별로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배알이 꼬여서'라는 그의 이유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이유는 배알이 꼬여서였다. 87년 이전 공고를 졸업한 동네 형님들은 20대 후반이면 혼자 벌어서 제 소유의 자그마한 주공아파트에서 엑셀을 굴리며 아이들을 낳고 키웠었지만, 지금 내 또래의 친구 중에 부모 잘 만난 경우를 빼면 누구도 그런 사치를 부리지 못한다."
 
글쎄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87년 이전에 공고를 졸업한 동네 형님들이 부럽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그때보다 현저하게 살기 어려워진 현실에 대한 푸념일까요? 공고를 다니다 82년에 취업이란 걸 나와서 기름밥을 먹으며 젊은 시절을 보낸 저로서는 이해가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아마 작가의 동네 형님들은 모두 두산중공업(구 한국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공장에 다니는 모양입니다. 아마 그런 곳이라면 틀림없이 맞는 말입니다. 그런 대공장에 다니지 않더라도 작가의 동네 형님쯤 되는 사람들은 작은 아파트에 엑셀을 굴리며 아이를 낳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그 동네 형님들 중 상당수는 비정규직으로 떨어져 작은 아파트와 엑셀을 유지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지 모릅니다. 물론 작가 또래의 친구들은 그런 생활조차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배알이 꼴릴 만도 합니다. 6월항쟁은 정치민주주의를 달성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발빠르게 적응한 자본은 새롭게 진화했습니다. 

6월항쟁 이전의 그들은 독재에 순종하며 그들이 쳐주는 보호막 속에서 돈을 벌면 되었지만, 이제 그들은 스스로 법을 만들고 세상을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로자파견법을 만들고, 이게 발전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했으며, 이제는 이보다 더 진화한 새로운 제도를 찾고 있습니다. 모든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만들겠다는 게 현재 그들의 구상입니다. 

어쩌면 작가는 이런 모든 현실, 미완의 혁명에 대한 불평, 이런 것들로 인해 배알이 꼬여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의 제안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작가는 지난날에 비해 통치자들에 대한 말문이 조금 트인 걸 겨우 민주화라고 말한다면 할 말 좀 참고 좀더 배불리 편하게 먹고 사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탓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사회의 문제로 고통받으면서도 제 탓만 하고 사는 사람들 앞에서 20년 전에 이룩한 민주화를 찬양하는 것은 삶의 질과 민주주의가 아무런 연관을 갖지 않는다고 선전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행사장 귀빈석에 앉은 분들 가슴에 달린 카네이션 같은 것으로 만드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작가가 작업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이 작품이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배포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걸 위해 수많은 사람들―역사교과서에 등장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처럼 터무니없이 약하고 겁 많고 평범한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렸고 제 삶의 기회를 포기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안심할 정도로 튼튼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강화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이 없이는 어느날 '사람 좋아 보이는 도둑놈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하고 싶었다."

마지막 그의 바람은 그의 얘기처럼 '이 책이 인터넷에 발표됨과 동시에 집권한 이명박 정권에 의해 생생한 현장체험을 곁들인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도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이미 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전적인 인쇄물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도 색다른 추억입니다.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녀석이 다가와 '잽싸게' 집어갔습니다. 이 책이 만화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는 아이의 표정은 그리 밝거나 신나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심각한 표정이 자못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짐짓 모른 척 재미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아이에게 6월항쟁은 너무나 무서운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책장을 다 넘겨보는 아이가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아이에게 '아름다운 꽃노래'만 틀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으로 다를 바 없지만, 그러나 미래가 그들의 것이라면 그래선 안 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만화입니다. 만화는 재미있습니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만화의 커다란 장점입니다. 시간을 많이 소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주어진 것인지 알게 해주고 싶다면 이 책을 사서 먼저 읽어본 다음 권해보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6월항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껏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는 소중한 역사의 자산입니다. 또 6월항쟁은 정치민주주의로 끝나서는 안 되고 경제민주주의를 달성하고자 하는 지난한 투쟁을 통해 완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가장 절절하게 잘 표현해놓은 것 같은 박재동 화백의 추천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100』는 우리의 심장을 다시 요동치게 하고 잠자던 세포들을 일깨워
지금의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되짚어보게 한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속에 어떠한 역사가 묻혀있는가를!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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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선덕여왕이 한창 인기다. 그런데 이런 인기바람을 타고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박근혜가 선덕여왕을 닮았다는 거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이미 선덕여왕이 방영되기 전부터 친박계 주변으로부터 슬금슬금 흘러나온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의도가 뻔한 이야기를 <MBC 생방송 아침>이 전파에 실어 전국에 흘려보냈다.


당연히 논란이 벌어졌다. "박근혜를 그렇게 비유하니 그럴 듯하다!" 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박근혜를 선덕여왕에 견줄 수 있느냐?" "박근혜는 선덕여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미실에 가깝다!"라는 의견까지 다양한 논쟁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대체로 어이없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당연한 이야기다.

선덕왕과 박근혜의 공통점은 오직 한가지 뿐이다. 여자라는 사실. 만약 이 사실 때문에 선덕왕과 박근혜를 비교하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짓이다. 그리 말한다면, 나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과 닮았다고 해도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그분들과 나는 남자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은 여자라는 공통점만을 내세우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덕여왕과 박근혜가 세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늘어놓았다. 첫째는 지지기반이 경상도 지역으로 같다는 것이며, 둘째는 최고 지도자의 딸, 즉 공주 출신이란 점이 또한 같고, 셋째는 선덕화라는 박근혜의 법명이 선덕여왕과 같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별로 거론할 가치도 없다. 도대체 이름을 두고 이런 말장난을 벌이는 것이 진실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면 여자들은 모두 선덕이란 이름을 갖게 될 것이며 남자들은 모두 담덕이 될 것이다. 그럼 두 번째 이유를 들여다보자. 선덕여왕과 박근혜가 모두 공주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고 지도자의 딸로 통치수업을 받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모두 공주 출신이라고?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래서 박근혜를 수첩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 수첩공주는 박근혜의 무식함을 빗대어 놀리는 말이긴 하지만 그녀의 출신성분에 가장 적절한 말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지금이 왕조사회던가? 어떻게 박근혜를 공주에 비교하는 난센스를 남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본다면 북한의 김정일이야말로 박근혜와 가장 닮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김정일은 북한의 절대적 지배자인 김일성의 아들이 아니던가. 박근혜가 공주라면 김정일은 왕자란 말인가. 시계는 미래를 향해 오늘도 어김없이 돌아가고 있건만 민주공화국의 정신세계는 거꾸로 왕조시대를 쫓아가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박정희 왕가의 가족들?


그러나 더 한심한 것은 다음 첫 번째 이유다.  박근혜의 지지기반이 경상도 지역으로 선덕여왕과 일치한단다. 선덕여왕 당시 신라의 전 국토가 경상도 일원이었으니 이 비유도 적절한 것은 못 된다. 그저 말장난일 뿐이다. 게다가 공영방송이 생방송으로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듯이 말을 만들어낸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한 태도다.

어떻든 좋다. 박근혜의 지지기반이 경상도 지역이라서 선덕여왕과 닮았다고 치자. 그럼 김정일은 지지기반이 북한 지역, 즉 과거의 고구려 지역이라서 광개토대왕과 닮았나? 광개토대왕도 남자요, 최고지도자의 아들이었다. 그럼 완벽하지 아니한가. 김정일이야말로 완벽하게 광개토대왕과 닮은 꼴이라고 말해도 무슨 문제가 있겠나.

이름? 그거야 죽기 전이든 죽은 후든 시호를 담덕이라고 내리면 될 일이다. 그까짓 게 무슨 대수가 되겠는가. 선덕여왕은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업적을 쌓은 인물이다. 선덕여왕대에 일구어낸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또한 선덕여왕은 위기에 처한 신라의 국력을 일으켜 삼국통일의 기초를 쌓은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는 세종대왕보다 더 뛰어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세종대왕 역시 과학기술 뿐만 아니라 국력신장에도 괄목할 업적을 세웠다. 4군6진을 개척해 오늘날의 국경선을 확정지은 인물이 세종대왕이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안정된 정국을 기반으로 가졌다는 점에서 그렇지 못한 선덕왕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광개토대왕이야 이름이 의미하듯 두말할 필요가 없는 영웅…. 이렇든 저렇든 <MBC 생방송 아침>에 의하자면, 이제 우리나라는 남에는 선덕여왕을, 북에는 광개토대왕을 가지게 된 셈인데 이를 두고 축하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MBC에 바란다. <선덕여왕>이 요즘 인기 정상을 달리다 보니 잠시 정신이 혼미해진 점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재미있게 잘 보고 있는 드라마에 초를 치는 일은 제발 자제해주기 바란다. 오늘밤 <선덕여왕>에서는 김유신과 김서현이 살아서 돌아오고 진골신분과 영지도 회복하게 된다고 한다. 지난주에 포스팅한 <이요원이 창조할 선덕여왕의 이미지는?>에서 내가 말한 것처럼 미실 일파의 계략이 거꾸로 미래의 선덕여왕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듯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려고 하는 <선덕여왕>에 박근혜 이야기가 튀어나오니 맛있는 밥상을 받아놓고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이다. 매우 불쾌하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의문을 제기하며 마치기로 하자. 진실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덕만의 어디가 박근혜와 닮았단 말인가? 시시콜콜 모든 일에 관심을 보이며 앞장서는 덕만과…

모든 국가대사에 등을 돌리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박근혜, 심지어 자기 당이 위기에 처해도 입을 닫고 칩거하기를 즐기는 박근혜의 어디가 선덕여왕과 닮았단 말인가?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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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을 걷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했다. 낙동강 천삼백 리 도보기행팀은 3차구간이 시작되는 단천교에서 시작하여 단천리 비경과 이육사기념관을 거쳐 윷판대에 올라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래로는 까마득한 천길 단애다.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에 떨면서도 아래를 내려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그때 누군가가 “노무현이 죽었다는데?” 하고 말했다. 그는 행군을 하면서도 귀에 리시버를 꼽고 라디오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방금 뉴스에 나오는데 노무현이 죽었대.” 이 무슨 황당한 소리란 말인가. 신정일 대표는 어이없다는 듯이,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오늘이 만우절이야? 오늘 만우절 아니잖아. 그런데 방송국에서 그런 거짓말도 하나?”


사람들은 갑작스런 소식에 술렁거렸다. 그리고 곧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야, 너 혹시 소식들은 거 있어? 노무현이 죽었다는데? 어떻게 된 거야. 뭐? 모른다고? 빨리 뉴스 틀어봐. 그리고 바로 전화해줘.”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지만 곧, 믿을 수 없는 또는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은 사실이 되어 우리를 침묵 속에 밀어 넣었다.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졌다. 까마득한 윷판대 아래로 휘감아 돌며 탄성을 자아내게 하던 낙동강이 갑자기 흐릿한 회색빛으로 두려움을 몰고 왔다. 이제 겨우 두  시간 남짓 걸었을 뿐인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리고 두려움은 분노로 변하기 시작했다. 화가 난다. 세상이 밉다. 구체적으로는 이명박이, 이명박의 똥개를 자처하는 검찰이, 모든 똥개들의 나팔수 조중동이 죽이고 싶도록 밉다.


이렇게 힘든 낙동강 걷기는 처음이다. 아름다운 경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고 또 잘 찍히지도 않는다. 비록 카메라를 잡은 지가 갓 석 달째에 불과하지만, 나름대로 구도를 잘 잡는다는 칭찬을 들었었다. 그런데 엉망이다. 전차의 도보기행에서는 찍은 사진이 천장을 넘었었다. 그러나 이번에 채 50여장도 채우지 못했다.


윷판대를 떠난 일행은 도산서원을 지나 자연공원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먹었다. 세 명의 길벗이 이곳에서 인사를 고했다. 조문을 가야겠단다.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오지에서 어떻게 가겠냐고 걱정들을 했지만, 그들은 짐을 챙겨 서둘러 떠났다. 나머지는 계속해서 걸었다. 비보에 기진맥진한 탓이었을까. 목적지인 병산서원에 훨씬 못 미친 우리를 태우기 위해 버스가 왔다.


병산서원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건축학도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한다는 병산서원. 아름다운 해넘이로 유명한 병산서원에서 그러나 우리는 붉은 노을을 볼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칙칙한 회색빛으로 하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고 있었다. 다음날도 여정은 계속되었지만, 너무나 힘들었다. 이렇게 힘든 여정은 처음이다.


유장한 낙동강의 아름다운 물결도, 역사도, 사람도 모두 덧없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그저 회색이었다. 어젯밤 늦게 집에 돌아온 나는 제일 먼저 인터넷부터 켰다. 온통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다. 세상 밖 낙동강 상류의 오지에서 들었던 소문이 이제 눈앞에 사실로 다가왔다. 슬픔이 밀려온다. 소주 두병을 샀다. 취하지 않고서는 잠들기 힘들 것 같았다.


오늘 점심시간, 어느 중국집에 들어가 짬뽕을 시켰다. 텔레비전에선 노무현의 일대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텔레비전 속에서 고무장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쓴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중국집 여주인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에고~ 저렇게 소탈하신 분이었는데. 고마 고향 사람들과 농사지으며 행복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중국집 주방장이자 주인아저씨도 맞장구를 쳤다. “저기 다 이명박이 때문인기라. 쥑일 놈들.” “저리도 소박하게 사는 사람을 호화판 어쩌구 하며 욕하는 놈들도 미친 놈들이제.” 내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사장님. 호화판 어쩌구 한 놈들, 그거 바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아입니까. 노무현 사저가 땅이 천 평이 넘는다면서 말입니더.”


“전두환이며 노태우며 이런 더러운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집터가 평당 천만 원만 하겠습니꺼? 그런데 봉화마을 땅값은 얼마겠습니꺼.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내는 그거 오천 원에 사라고 해도 안 사겠습니더. 골짝에 뭐할라꼬. 그런데 그걸 씹고 대든 놈들이 바로 조중동 아입니꺼. 이집에 보니 동아일보 들어오는 모양인데, 낼부터 당장 끊으이소.”


주인 아줌마는 갑자기 미안했던지 말을 돌렸다. “그란데 아이씨요. 엊그제 테레비에 보니까 이명박이 나왔던데 말입니더. 모내기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하데예. 그란데 내가 그거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시상에, 모내기 한다는 사람이 말입니더. 하얀 와이샤스를 입고 팔도 안 거지고 모를 심고 있더라 이 말입니더. 흙 하나 안 묻히고… 쇼를 해도 잘 해야지예.”


그녀는 그러면서 논둑에 앉아 동네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생전의 노무현을 바라보며 눈물지었다. 그래, 그녀의 말처럼 하얀 와이샤스를 입고 국민을 향해 쇼를 벌이는 대통령이 있는가하면 노무현처럼 진심으로 국민들과 소통하고자했던 대통령도 있었다. 짬뽕을 먹고난 나는 중국집을 나서면서 말했다. “사장님, 낼부터 당장 동아일보부터 끊으이소.”


나는 노무현의 지지자는 아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될 때 그를 찍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비록 그를 또는 그가 속한 정당의 견해를 이해하진 못해도 그는 영웅이었다. 말하자면, 개천에서 용이 났으며 그런 용을 개천에 사는 우리는 선망과 희망을 섞어 바라보았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는 보통의 용들이 모두 개천을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과 달리 개천으로 돌아왔다. 밀짚모자를 쓰고 논에 오리를 몰면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런 모습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봉화마을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늘 붐볐다. 이런 일이 우리 역사에 언제 있었던가. 어떤 대통령이 퇴임 이후에 이런 대접을 받았던 예가 있었던가.


그러나 그런 모습이 이명박의 눈에는 가시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넘쳐나는 봉화마을의 관광객들을 보며 이명박은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도 못하는 괴로움을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검찰을 닦달했던 것일까. 그리고 똥개를 자처한 검찰은 소명도 하지 않은 조사내용을 언론에 슬쩍 흘리며 전직 대통령을 모욕하는 비열한 모습을 연출한 것일까. 


진짜로 모를 심고 있는 생전의 노무현을 눈물을 훔치며 바라보던 중국집 아줌마의 마지막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 “진짜 죽어야 할 전두환이 같은 놈은 뒤지도록 안 뒤지고, 저런 소박한 분이 왜 죽느냐 이 말입니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고 했다지만, 나는 그걸 액면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그의 진심을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의 유언은 직접 몸으로 보여준 행동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중차대한 시국에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세발의 미사일 쏘았다고 한다. 늘 그렇지만 북한은 저런 식으로 남한의 수구세력을 도와준다. 또 남한 국민들이 크나큰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감행한 도발에 비판은커녕 도리어 부화뇌동하는 듯 보이는 민노당의 논평도 참 걱정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그들이 벌이는 엉뚱하고 무모한 쇼에 관심둘 때가 아니다.
지금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저 묵묵히 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을 던져 보여준 유서의 참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며…. 그게 전직대통령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길이 아닐까. 방금 전 봉화마을에서 취재 중인 김주완 기자의 블로그를 살펴보니 봉화마을에 촛불이 켜지고 있다고 한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다고 한다. 인공위성용 로켓이라고 하지만 인공위성과 미사일의 차이는 발사체인 로켓에 탄두를 장착하는가, 위성을 장착하는가 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미사일이 위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위성이 미사일로 변할 수도 있다.

 

또 북한이 신고한 것처럼 평화적 목적의 인공위성이라고 하더라도(물론 이 평화적 목적이란 언제든 군사적 목적으로 변용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역사적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지만) 위성이 궤도에 진입하기 전 분리된 로켓이 어디에 떨어질지도 문제다. 발사체의 낙하지점에 위치한 인접 관계국들로선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핵실험 압박에 민간인 억류까지, 북한은 6·15선언과 10·4선언을 입에 담을 자격 없다 


그런데 북한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 미사일 발사쇼에 이어 이번엔 개성공단에 출퇴근하는 수많은 남측 노동자들을 억류한 것이다. 이유는 있다. 북한은 남한과 미국이 키 리졸브 한미군사훈련을 실시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조치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개성공단 입주업체 차량들이 개성에서 파주로 돌아오는 모습. 사진=경남도민일보제휴 뉴시스

 그러나 이는 온당치 못한 변명이다. 남한이 미국과 군사훈련을 강행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평화에 대한 의지를 의심받기에 충분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지난 10여 년 간 쌓아온 군사적 대결태세를 완화하고 화해와 협력을 증진해온 역사적 진전에 대한 반동(反動)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북한이 그 동안 취해온 태도는 평화적이었던가? 북한은 말끝마다 6·15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을 촉구하지만, 정작 그들은 대포동 미사일 발사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핵실험 파동으로 정치적 외줄타기를 펼치더니 마침내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작년에는 금강산에 바람 쐬러 온 관광객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아들과 남편을 둔 50대의 여성관광객이 그렇게 해금강 해수욕장에서 비명횡사 했다. 그때도 그들은 군사분계선을 넘은 불법적 행위에 대한 정당한 군사적 대응조치였음을 강변하며 사과도 하지 않았다.


상식을 잃은 진보, 진정한 진보라고 말할 수 있나
 

북한은 6·15선언이나 10·4선언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이명박 정부의 반평화적이고 반통일적 정책은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북한의 작태를 보노라면 새 발의 피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 듯하다. 이 모든 것이 신년벽두부터 줄곧 주장해온 북한의 무자비하고 한계를 모르는 타격력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전초전인가.


그러나 무엇보다 화가 나고 괘씸한 것은 북한의 이처럼 무모하고 도발적인 민간인 억류사태에 대하여 인권과 평화를 주장해온 진보정당을 비롯 시민사회단체들이 한마디 말이 없다는 사실이다. 민노당은 어차피 친북파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정당이라 이해하고 논외로 하자.

 

친북자주파의 패권적이고 종파적인 행태에 반대해 민노당을 탈당해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구현하겠다던 진보신당에서조차 성명은 고사하고 논평하나 없다는 것은 매우 섭섭한 일이다. 진보신당뿐만 아니라 북한의 국경차단문제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 어떤 진보단체도 보지를 못했다.

 

이 문제는 여야의 문제도 아니고 보수와 진보의 문제도 아니다. 그저 상식의 문제이다. 상식이 무너지는 현실에 입을 닫는 것도 진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런 진보라면 차라리 진보하고 싶지 않다. 나는 진정한 진보는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통일은 상식의 회복으로부터 싹튼다
 

남과 북이 상식으로 만나는 날, 통일은 우리에게 진보가 될 것이다. 지금은 남과 북이 말하는 어느 쪽의 통일도 진보라고 믿을만한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로서의 당위만 보일 뿐이다. 이들에게 통일은 정권안보용 수단일 뿐이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지금 이순간 나는 상식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다. 상식이야말로 루소가 말한 자연으로 돌아가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이 몰상식의 시대에… 상식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닐까.   파비

ps; 방금 전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북한의 개성공단 통행차단은 남북관계를 해치는 비인도적 처사라는 비판과 아울러 이명박 정부에도 남북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립을 요구하는 발언이 있었다는 소식이 있네요. 일단 시시비비를 떠나 민간인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 들러본후 2009/01/23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낭비했구만... 전라도 좌파들... 하여튼...
    뭐? 북한이 틈만 나면 한국을 도와주려했는데, 이명박이 한테 낚여?
    정말로 세월 좋아졌구마...
    이런넘들 아주 싸그리 잡아서 삼청교육대가서 6.25때 어땠는지부터
    지대로 교육시켜야 정신차리지....
    이러니까 전라도 제외한 국민의 80%가 전두환때가 그립다고 하지들..ㅉㅉ
    정신좀 차려라 너네들끼리 서로 댓글달고 좋아하지들 말고....
    그런 귀족노조들 보호할 시간있으면 소년소녀가장좀 돌보시기를.......

    • 들러본후 2009/01/23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좌파들 특징이 이런 본론만 얘기한 글들은
      무조건 삭제시켜버리지....
      삭제시키기전에, 고향이 어딘지부터 밝혀보시지들 그랴
      전라도 20%가 동조하고 옹호한다고
      국민의 80%가 찬성한다는 착각은 노무현때부터
      시작되더구만.... KBS/MBC때부터..... 



  • 위 글은 제 블로그에 달린 댓글입니다. 본문 제목은 <정몽준의 현대가 보여준 무자비한 보복테러>였습니다.

    어이없는 독해 수준 


    “뭐? 북한이 틈만 나면 한국을 도와주려했는데, 이명박이에게 낚여?…” 이렇게 말한 이유는 아마도 제가 글을 시작하면서 북한군 총참모장 대변인이 TV에 나와 “한계가 없는 무자비한 타격력을 보여 주겠다”고 엄포를 놓은데 대해 그 한계가 없는 무자비한 타격력은 방금 전 현대중공업에서 보고 왔노라고 쓴 데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사실 북한은 어수선한 내부를 단속할 목적으로 가끔 이렇게 남북관계를 긴장시키는 전술을 사용합니다. 며칠 전에는 아예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긴장을 고조시켜 내부를 단속하는 게 목적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어떤 분은 그러더군요. 자꾸 멱살 잡고 싸우고 그래야 옆에서 싸우지 말라고 말리면서 소주나 한 잔 하자고 할 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이런 행동이야 정권안보 차원에서 저지를 수 있는 짓이라고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건 아닙니다. 남한에서도 과거 수시로 이런 캠페인을 했습니다. 독재정권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 저지르는 전형적인 수법이 바로 이거지요.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비유를 든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북한의 이런 행동들이 남한의 독재자들에겐 아주 유용한 일용할 양식과도 같은 것이 되곤 하는 것입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심지어 97년 대선 때는 당시 정권이 북한과 연계하여 판문점에서 총을 쏘아주기로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소위 총풍사건이었죠.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통합책이었는지 어쨌는지 이 사건은 유야무야됐습니다.

    무식한 게 죄는 아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참 웃기는 일이죠. 적과의 동침도 아니고 무슨 이런 로맨스가 다 있느냐 이런 말입니다.

    게다가 버스 안 뉴스를 통해 북한 군부가 협박하는 무자비하고 한계가 없는 타격력이란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10분 전 현대중공업 경비대들로부터 보았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무자비하고 한계를 상실한 테러였습니다. 과거 현대는 식칼테러사건이란 걸 벌인 전력도 있습니다. 삼성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사였던 이덕우(현 진보신당 공동대표)씨는 “삼성은 교활하고 현대는 무식하다”고 했지만, 그날 보았던 현대는 무식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벌이는 팔레스타인 학살전쟁을 무식하다는 정도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논조의 주장에 대해 “뭐? 틈만 나면 북한이 남한을 도와주려했다고?”라고 반응하는 것까지는 이해를 해줄 수 있겠습니다.(혹 익명의 이분 머릿속에는 ‘대한민국=한나라당’으로 꽉 차 있어서 그런 말이 나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뭐, 무식한 것이 죄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말입니다.

    글쎄 저를 전라도 좌파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제가 좌파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저 스스로는 좌파라고 생각하지만, 제 입으로는 그런 이야길 잘 안 합니다. 왜냐하면 진짜 좌파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할 것 같아 말이지요. 그래서 좌파라고 불러주는 것에 대해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좌파란 칭호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실로 휴머니즘, 사회정의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다가갈 수 없는 것이 좌파가 아닌가 합니다.  

    느닷없이 전라도 사람에 좌파가 되다

    그래서 어떤 분은 “세상 사회과학 서적의 90%는 좌파지식인들이 썼으며, 그 이유는 모든 세상의 지식인들은, 그들이 죽을 때 지식인으로 남을 수 있다면, 결국 좌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목수정-레디앙)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저더러 좌파라고 딱지를 붙여주신다면 참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지만 저를 전라디언으로 만든 건 도가 지나쳤습니다.  

    저는 경남 창원군 웅천면(현재는 진해시)이 고향입니다. 이곳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며 지금도 친척들 대부분이 살고 있습니다. 또 경상북도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나오고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창원에서 근 이십년을 살았으며 지금은 마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갱상디언이다, 그런 이야기지요.

    그런데 느닷없이 저를 전라디언으로 만들어놓았으니 이를 어쩝니까? 제가 전라도 사람이 되는 것도 별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조상들에겐 제 고향을 저버린 후레자식놈이 되고 마는 일입니다. 전통적 유교 문화에 익숙한 저로서는 이는 천벌을 받을 일입니다. 모욕도 이처럼 지독한 모욕이 없는 것입니다.

    전라도 좌파면 삼청교육대 보내야 되나

    익명의 이 댓글은 한 발 더 나아가 “저 같은 사람은 싸그리 잡아다 삼청교육대에 보내 6·25가 어땠는지 제대로 교육시켜 정신을 차리게 해야”한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저주도 이런 저주가 없습니다. 삼청교육대가 뭐 하던 곳입니까?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병신 만들어 보내던 곳 아닙니까? 길 가다 기분 나쁘게 생긴 놈 있으면 신고해서 잡아가라고 하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었습니다.

    진주에 가면 육거리파라고 있는데요. 그 육거리파 두목이 삼청교육대에 갔다 와서는 정신이상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비가 오는 날도 남강다리결에 나와 멍하니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곤 했다고 합니다. 그는 밤에 애인과 잠을 자다가 잡혀갔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전해들은 이야기들입니다. 당시 저는 직접 이런 일들을 보고 겪을 만큼 나이가 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 무시무시한 곳에 저를 전라디언 좌파로 낙인찍으며 보내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6·25가 어땠는지 거기 가서 안 배워도 이미 충분하게 그 참상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다. 6·25는 지금도 이 나라 안에서 얼마든지 벌어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익명의 이 분은 군대나 제대로 갔다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군대 30개월 꼬빡 채웠을 뿐 아니라 육군본부 참모총장실에 가서 육참총장으로부터 수고했다고 금일봉까지 받은 사람입니다. 노란 봉투에 백만 원 들어있었습니다. 물론 저 혼자 쓴 건 아니고 네 명이서 갈랐지만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 이야기도 조금 하지요.

    익명의 이분, 군대나 갔다 오셨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야말로 6·25를 제대로 겪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특수부대원으로 직접 참전하셨으며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은성무공훈장 등을 세개나 받아왔습니다. 제가 어릴 때 홧김에 불태워버렸던 것을 아쉬웠던지 최근에 다시 받아다 거실 벽에 걸어놓으셨습니다. 저는 귀가 따갑도록 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은 통에 마치 제가 6·25 참전용사인 것으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6·25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함양에 가시면 얼마든지 그 참상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기자가 그 민간인학살 발굴작업을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그분의 블로그에 가보시면 공부가 많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2kim.idomin.com) 그런데 굳이 삼청교육대를 다시 만들어 저 같은 사람을 그곳에 보내고 싶다는 이 익명의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분이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요?

    그런데 저는 이런 류의 사람들이 막상 전쟁이 터지면 죄다 꼬리를 감추고 도망이나 갈, 용기라고는 개미오줌 만큼도 없는, 나라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그저 잉여물에 불과한 인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런 악성 댓글을 익명을 이용해 서슴없이 다는 사람들이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사이버모욕법 따위에 주로 동조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 중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이런 분들은 밝은 불을 켜놓으면 한마디 말도 못하는 겁쟁이들입니다.

    그러나 어떻든지 간에 전라디언, 그것도 전라도 좌파씩이나 돼보는 영광을 본의 아니게 누리게 되었으니 그리 썩 나쁜 일만도 아니었던 듯합니다. 전라디언 좌파라! 웃지 않을 수 없군요. 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에겐 하하하… 하고 통쾌하게 웃어주는 건 사치라고 생각됩니다. 그냥 이렇게 웃어주어야지요. 피식~

    2009. 1. 31.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크리스마스 이브! 그러나 오늘밤 나는 쓸쓸히 집을 보고 있다. 아이들과 아이 엄마는 성당에 갔다. 오늘 여덟 살짜리 우리 딸아이가 성탄전야 미사에서 천사로 등장한단다. 얼마나 예쁠까? 그러나 나는 따라가지 못했다. 10년 전 수술했던 허리가 어떻게 삐끗했던지 다시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화장실에도 걸어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 

    그럼 혼자 집에서 무얼 할까? 막걸리나 한 잔 할까? 아니지. 그래도 오늘 같은 성스러운 날 그렇게 술이나 마시며 보낼 수야 없지 않은가.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차에 ‘경남도민일보’에서 소개하는 크리스마스 특선영화 생각이 퍼뜩 스쳤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니 재미있을 거 같다. 나름대로 감동도 있는 영화인 듯싶다. 게다가 EBS 영화라면 믿을만하다.   


    그래! 오늘밤 크리스마스 이브는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와 함께 하는 거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미지="DAUM 영화"


    감동실화, “크리스마스, 단 하루를 위한 휴전”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인가? 아니면 신이 내린 가혹한 형벌인가? 

    우리에게도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수십 년 전에 동족 간에 총부리를 겨누고 상잔을 벌였던 쓰디쓴 기억이 아직 채 지워지지 않았다. 그 흔적들은 아직도 함양에서 산청에서 또 이름 모를 어느 곳에서 시커멓게 썩어버린 유골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상처를 자극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 동무들과 어울려 놀 때도 ‘군기놀이’를 하며 놀았다. 미국, 북한, 소련, 한국, 이런 식으로 군기를 만들어 집어던지면 그걸 주워 편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게릴라전을 하듯 이리저리 숨어 다니다가 마주치면 누구든 먼저 “꼼짝 마!” 하고 외친 다음 서로의 군기를 확인하는 것이다. 계급이 높은 쪽이 이기고 낮은 쪽은 적의 포로가 되는 것인데, 어느 편이든 군기가 그려진 병사를 포로로 잡으면 전쟁은 끝나게 되어있다. 

    요즘 아이들은 무얼 하고 노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렇게 전쟁놀이를 하며 자랐다. 군기놀이가 아니면 산에 지천으로 널린 아카시아 나무를 잘라 칼을 만들어 편을 갈라 ‘칼싸움’을 벌였다. 전쟁만큼 신나는 놀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이 벌이는 ‘진짜’ ‘전쟁’ 은 ‘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내려진 비할 데 없이 참혹한 ‘형벌’이다. 

    숨 막히는 전장에 일어난 기적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의 한복판 프랑스 북부 어느 전장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100m도 안 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숨 막히는 접전을 벌이고 있는 이곳에는 자욱한 포연과 죽어가는 동료의 신음만이 가득한 지옥이었다. 이들에게 내일은 없었다. 오로지 맹목적으로 적을 죽여야만 하는 현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죽음의 땅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하얗게 눈 덮인 전장. 적막을 깨고 스코틀랜드 병사의 백파이프 연주가 울려 퍼진다. 잠시나마 긴장을 늦추고자 하는 이 소리에 화답하여 독일군 진영에서도 노래가 흘러나온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이미지="DAUM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얗게 눈 덮인 전장에서 듣는 백파이프 소리와 캐롤 송은 군인들에게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이어서 독일군 진영에서 참호 위에 수십 개의 트리가 내걸렸다. 그리고 전쟁에 징집된 독일 오페라 스타 니콜라스(벤노 퓨어만)가 촛불로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고 캐롤 송을 부르며 전장의 한복판으로 나온다. 하얀 전장에 비치는 촛불이 노래 소리와 어울려 춤춘다.

    크리스마스 이브, 와인으로 축배를 들며 단 하루를 위한 휴전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연합군 진영에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당황한 양쪽 진영의 지휘관들은 그러나 평화의 힘에 이끌려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 정상회담을 갖게 된다. 실로 기이한 기적 같은 정상회담은 크리스마스를 위한 단 하루의 휴전을 맺는다. 호츠메이어 대위가 먼저 말한다.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전쟁도 아니고,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하루 쉰다고 누가 나무랄 사람 있겠어요?”

    독일군 장교의 제안에 프랑스군 장교도 동의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막사에서 와인을 가져오게 해 축배를 나누어 마신다. 그리고 이어서 전장에 나가는 신도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종군한 스코틀랜드 신부의 집전으로 성탄 미사가 열리고, 장중한 미사곡 대신 남편을 찾아 베를린에서 전장에 찾아온 안나가 아베 마리아를 부른다. 실로 다이앤 크루거의 노래 소리는 천상의 소리다. 

    적과 아군이 서로 뒤엉켜 크리스마스 제단에 선 병사들의 지친 눈망울로 천상의 숨결이 스며든다. 아~ 크리스마스 이브, 어둠이 내린 전장의 적막을 타고 흐르는 아베 마리아의 선율은 신이 내린 소리가 틀림없었다. 검은 하늘과 하얀 대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여인의 금빛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러나 전쟁은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안녕히 주무세요.” 서로의 적들에게 인사를 남긴 이들은 각자의 참호로 돌아간다. 자기 진영으로 돌아온 프랑스군 지휘관 오데베르 중위는 본부에 어떻게 보고할지를 묻는 부관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독일군 진영에서는 어떠한 적대행위도 없었음.”

    그러나 결국 이 평화도 그렇게 오래 가진 못할 것이다. “저들은 불로 모여드는 나방처럼 모두 제단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자들까지도…” 파머 신부가 말하는 불로 모여드는 나방이란 평화를 갈망하는 병사들의 지친 영혼이다. 그러나 곧이어 나오는 지친 영혼의 독백은 평화에 대한 기대가 결국은 허물어지고 말 것임을 예고한다.

    “그러나 전쟁은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을 걸세.”

    이튿날 아침, 적대적 양 진영의 지휘관들이 만나 죽은 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하고 이들은 서로의 진영에서 상대편 시신을 수습해 넘겨주고 장례를 치르기로 합의한다. 총 대신 삽을 들고 서로 뒤엉켜서 땅을 파고 죽은 전우의 시신을 묻는다. 삽으로 동료의 시신을 묻으며 한 병사가 말한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에 장례를 치를 수 있다니 정말 좋군요.” 

    "평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지 몰랐다."

    이 평화로운 장면. 그랬다. 수많은 병사들이 어울려 장례를 치르는 모습이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이미지="DAUM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그리고 이어서 이들은 축구시합을 벌이며 즐거운 한때를 갖는다. 이제 더 이상 이들에게 적은 없다. 오로지 친구요 이웃이 있을 뿐이다. “전쟁이 끝나고 파리가 자유로워졌을 때 저희를 바뱅가로 초대해 와인을 함께 마셔 달라”고 부탁하는 호츠메이어와 “꼭 파리에서 다시 만나 와인을 마시자”고 다짐하는 오데베르가 다시 총을 들고 서로를 겨눌 수 있을까?

    “평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지 몰랐”던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이웃이요 친구인 적에게 총을 쏠수가 없게 되었다. 적에게 총을 쏘는 대신 이들은 자기편이 폭격을 할 때는 적군을 자기네 진지로 불러들여 그들을 보호하고 그 반대의 경우엔 눈  앞에 보이는 친근한 적들의 보호를 받았다. 꼭 총을 쏘아야 할 때는 하늘을 향해 공포를 날렸다. 

    반역도로 몰리는 병사들

    그러나 이 평온함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결국 상부에서 이 부적절한 전장의 실태를 알아챈 것이다. 그리고 양쪽에서 새로운 병사들을 데리고 새로운 지휘관들이 내려왔다. 적극적인 전투력을 상실한 이 부대원들은 보다 험한 곳으로 보내져 전장에서 적에게 평화를 선물한 데 대한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했다. 

    참전하는 신도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전장까지 따라온 파머 신부도 영국에서 급파된 주교로부터 스코틀랜드 교구청으로 이송명령을 하달 받는다. 평화는 깨졌다. 전쟁이 그들을 가만 놔두지 않은 것이다. 주교는 새롭게 편성된 병사들을 모아놓고 전투에 나가 적을 섬멸하라고 독려한다.  

    “주님의 검이 여러분 손에 쥐어졌습니다.”
    “독일군은 우리와 다릅니다. 그들은 주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선하든 악하든 독일인을 모두 없애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십시오. 아멘.”   

    그러나 평화는 전쟁을 이기고 떠난다

    호츠메이어와 독일 병사들은 혹독한 러시아 전선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이들은 러시아로 떠나는 화물열차 안에서 자신들을 사지로 내모는 상관을 조롱하듯 흥겹게 합창을 한다. 그리고 노래 소리를 기적처럼 울리며 기차가 하얗게 솟아있는 수림을 뚫고 달리는 엔딩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흥미로운 기적은 실화다. 이 이야기는  “영국의 신문
    <더 데일리 스케치 Daily Sketch>, <더 데일리 미러The Daily Mirror>등의 기사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 “병사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세 나라의 군대기록보관실에 남아있다”고 한다. 

    “2005년 11월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두고 프랑스 전역 500여개 개봉관에서 상영된 이 영화는 박스 오피스 상위권을 휩쓸며 흥행에 성공했다. 크리스마스 휴전이란 감동적 실화가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자신과 병사들을 적과 내통한 반역자로 몰아세우는 상관을 향해 외치는 오데베르의 외침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칠면조 뜯으며 명령만 내리는 상관들 보다 독일 군인들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오데베르의 외침은 바로 우리들 이야기

    프랑스 장교의 이 외침, 남 이야기가 아니라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 이야기가 아닌가?

    2008. 12. 24일 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 내 극우파 단체들은 계속해서 대북삐라를 북으로 날려 보내고 있습니다. 촛불시위를 공권력으로 진압하던 MB정부도 여기엔 속수무책인 듯싶습니다. 아니면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정부의 태도에 대해 여러 곳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음 블로거뉴스>에서도 많은 블로거들이 반북단체의 무모함과 정부의 무책임함에 분노의 화살을 쏘았습니다. 나도 그 중에 하나였습니다. 

    결국 며칠 전, 다시금 대북삐라를 살포하는 반북단체와 이를 저지하는 한국진보연대 간에 활극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보면서 과연 진보단체는 잘 하고 있는가 하는 데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신념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부적인 기본권을 말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명박 정권을 감히 독재정권과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반대의 권리를 말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며 그렇다면 진보(단체)는 과연 우리가 비판해마지 않는 수구우익들보다 나은 게 무엇이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아래 소개하는 글은 그 회의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좋을 글이라 생각됩니다. 진보신당 게시판에 실려 있던 글을 원작자인 산하님의 허락을 받아 여기 게재합니다. 자기 글 외에는 블로그에 싣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지만, 보다 차분하고 지혜로운 처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물론 반대의 생각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2008. 12. 4.  파비

    한국진보연대에게 묻는다

     자유의 다리에서 벌어진 일대 활극을 인상 깊게 보았다.  왕년에 데일리 프로그램하면서 6밀리 카메라 하나 들고 산지사방 뛰어다니던 때라면 기꺼이 자유의 다리로 달려가서 한몫 거들었으리라.  취재하는 입장에서야 이른바 '노나는' 아이템이었겠지만 지켜보는 이로서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풍경이었음도 분명하다. 

     우선 억센 함경도 사투리로 내갈기는 "이 빨개이 쉐키들이…"란 욕설은 내게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저 말투로는 "불러도 불러도 그 자애로움이 끓어 넘치는 어버이 수령님"을 뇌까림이 어울린다는 것이 내 고정관념이었던가 보다.   군부 정권 이래 한국사회에서 일종의 금기인 총 (가스총일지언정 실제 총 모양의)을 허공에 대고 발사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분들의 과잉행동장애를 보는 듯 했고, 몽키를 휘둘러 사람 머리를 찢은 분들은 법보다는 주먹으로 해결하는 일이 더 많았다는 공화국 폐습을 아직도 벗지 못한 듯싶다.  

    북한으로 삐라를 날려보내는 반북단체 회원. 사진=경남도민일보

     
     그러나 또렷한 서울 말씨로 들리는 몇 마디의 말들은 나를 더욱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 중의 한 마디는 바로 이 말이었다.  "왜 나왔냐? 거기서 왜 나왔어?"    감정이 격해서였을지는 모르나 그 말은 분명히 짧았고 경멸 내지는 비아냥거리는 어투가 잔뜩 배어 있었다.  

     현장에 있었더라면 나는 즉시 그 사람의 얼굴에 바짝 카메라를 들이대고 물었을 것이다.  "왜 나왔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아마도 솔직한 대답은 듣지 못할 테지만, 나는 집요하게 물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한국 진보 연대라는 이름의 단체에 묻고 싶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대체 저 탈북자들이 왜 자기 살던 땅에서 목숨 걸고 헤엄쳐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몇 나라의 국경을 돌파하여 오늘날 남한에 사단 병력으로 거주하고 있는지에 대해 그 단체의 입장은 무엇인지 듣고 싶기 때문이다.  
     
      진보는 태생적으로 반역이다.  그 색깔의 옅고 짙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존의 질서가 가지는 억압의 창살을 걷어내는 일이다.  보다 많은 이들의 자유와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현 상태와 체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동이며 아는 사이, 모르는 사이 사람들의 뇌리와 등짝에 드리워져 있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대한 전환의 키를 제시하는 것을 그 생명으로 한다.   그 진보가 탈북자들에게 물었다.  "왜 나왔냐?"고.  몰라서 묻는 것일까.  북한 당국의 말로 수십만이 굶어 죽었던 고난의 행군의 부산물이라는 것을 정녕 알지 못하여 그러는 것일까.   그 진보의 생각은 무엇일까.   " 제 조국 버리고 나온 이들의 말을 믿을 필요 없다"는 것일까. 

     북한의 관리가 볼멘소리로 "촛불은 막으면서 삐라를 못 막느냐"고 했다지만 적어도 진보라는 이름을 자칭하여 스스로의 단체를 치장하는 이들이라면 그 말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조국통일을 방해하고 6.15 선언을 깨뜨리는" 삐라 살포를 공권력으로 막으라는 요구를 한다면 촛불에 물대포를 쏘아댔던 어청수가 우수한 CEO 상을 받는 우스개에 배꼽을 늘어뜨릴 자격을 일정 부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삐라를 막는 정부라면 촛불을  통일이라는 숭고한 목표를 위하여서는 탈북자들과 납북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도 될까?   몽키를 휘둘러 사람 머리를 찢어 놓은 행동은 처벌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그런데 진보연대 회원들이 그들의 삐라를 '압수'했던 것은 어떤 탈북자의 지적대로 "합법적"인가?  그리고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을 상대로 시위할 수는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나 역시 탈북자들의 삐라보다는 진보연대의 유인물에 공감을 실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물리적으로 진압하거나 그들의 시위용품을 탈취하거나 그들의 주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반민족적 행위이고 반통일적 행동을 비판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제기하자.   정부가 탈북 단체들을 선동하거나 암묵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면   그 지점을 타격하자.   상호비방을 금지했던 합의를 우리 스스로 어기지 말자고 외쳐 보자.   그러나 삐라 살포를 물리적으로 저지하고 나서고 삐라를 '탈취'하는 지경에 이르면 '한국 진보 연대'라는 이름에 등장하는 진보의 사고의 유연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진보는 끊임없는 의심의 과정이다.  지금 내가 머물러 있는 지점이 정체가 아닐까, 나의 생각이 어느새 굳어진 도그마가 아닐까,   나의 세계관이 어느새 케케묵어버린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진보는 생명력을 얻고 활기를 잃지 않게 되는 법이다.  우리의 진보는 휴전선 앞에서 멈추고  그 추상같은 비판의식은 판문점에서 무조건적인 민족애로 승화되어 왔다는 힐난을 괘씸하게 여겨 물리치기 이전에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엉뚱하게도 인권에 관심이 전혀 없던 세력이 선점해 가 버린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반성해 보아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 모르니 말을 할 수 없다는 덜떨어진 앵무새가 진보의 상징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굶어죽지 못해 탈출한 사람들에게 왜 조국을 버리고 나왔냐는 강짜가 이른바 진보의 입에서 나와서는 아니 되지 않겠는가.   어제 가스총을 쏘고 몽키를 휘두른 사람들에게도 할 말이 있고 들어야 할 말이 있다.  자신의 생때같은 가족이 북한에 의해 납치된 (또는 그렇게 믿는) 이들에게 "누가 납치를 해?" 따위의 억지스런 반문을 하는 것은 진보의 화법도 아니며 듣는 자세도 아니다.   그들을 가로막다가 머리가 찢기는 용기는 물론, 그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설득하는 지혜도 역시 진보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2008. 12. 4. 산하/진보신당 당원

     
    Posted by 파비 정부권
    작년 1월 5일, 
    오마이뉴스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났다.


                

    "<조선> '공산당이 싫어요!'는 가필됐다"
    김진규 전 기자협회장 주장... "반향 크자 데스크인 C기자가 떠벌리고 다녀"

    ▲ 이승복 어린이가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조선일보 1968년 12월 11일자 기사.
    ⓒ 조선닷컴
    38년전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들에 의해 살해된 고 이승복 어린이의 죽음을 전한 <조선일보> 기사에서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부분은 데스크에 의해 가필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진규(74) 전 한국기자협회장(7대)은  은퇴 언론인 회보인 <대한언론> 2007년 1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승복 사건이 기사화됐을 당시를 회상하면서 기사 작성에 관여한 <조선일보> 데스크의 언행을 언급했다. (이하 생략)

    <이상 출처 :
    "<조선> '공산당이 싫어요!'는 가필됐다" - 오마이뉴스>

    이 기사는 당시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공산당을 어떻게 알았겠느냐는 반론도 제기됐다. 게다가 무장공비들의 총칼 앞에서 용감하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치며 항거하다 죽음을 당했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머리에 뿔 달린 공산당들이 날려보내는 삐라     


    당시 많은 네티즌들도 9살짜리가 어떻게 공산당을 알았을 것이며 또 어떻게 서슬 퍼런 무장공비들 앞에서 죽음을 무릅쓴 저항을 할 수 있었겠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무장공비들이 이승복 어린이에게 사탕을 주자 이승복 어린이가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 라고 한 것을 무장공비들이 잘못 알아듣고 죽였을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꼬집기도 했다.


    거짓과 굴종과 왜곡으로 점철해온 조선일보의 역사를 보면 가필의 혐의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어린 시절 유신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며 조선일보의 가필 여부를 떠나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9살 어린아이가 무슨 애국심이나 저항의식 같은 것이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독한 반공교육에 세뇌된 어린이의 입에서 얼마든지 나올 수도 있을 법한 말이란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공산당이 뭔지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주입하는 반공교육은 어린 마음에도 불타는 적개심을 심어주었다. 공산당은 아주 흉악하며 머리에 뿔이 나 있다고 했다. 공산당을 발견하면 즉시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받는다는 사실도 자세히 배웠다.

    또 북한 공산집단은 수시로 자유대한에 <삐라>를 살포해 사회혼란을 부추긴다고 했다. 그리고 역시 삐라를 발견하면 즉시 가까운 경찰서나 학교로 신고해야한다고 단단히 교육받았다. 유난히 겁이 많았던 어린 시절, 삐라 교육을 받고 산골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다
    혹시나 내 앞에 삐라가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럴 때 행동수칙을 속으로 되뇌어 보곤 했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삐라를 북에 살포하는 반북단체들

    삐라를 뿌리는 짓은 아주 나쁜 짓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신문에서 바로 그 삐라 기사를 보았다. 그런데 이번엔 어처구니없게도 북한공산집단이 아니라 남한에서 북한으로 삐라를 뿌린다는 기사였다.

    10/28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면 북한은 27일에 열린 군사실무책임자 접촉에서 남측의 삐라 살포 행위 중단을 거듭 요구하면서 전단 살포행위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후과(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사는 또 북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과 납북자가족모임(대표 최성용)이 강원도 고성군에서 대형 풍선에 삐라 4만여 장을 매달아 바람에 띄워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 삐라에는 아직 확인되지도 않은 김정일 건강이상설 등의 내용을 포함해서 북한의 체제에 위협이 될 한 내용들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또 강화도에서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 회원들이 삐라를 날려 보내면서 평양에 잘 들어가기를 바란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치는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비겁하게 후방으로 삐라를 날려 사회혼란을 꾀하는 짓거리는 머리에 뿔 달린 흉악한 북한공산집단만 하는 짓인 줄 알았더니 우리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비로소 알았다. 혹시 이들의 머리에도 뿔이 나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르긴 몰라도 이들의 마음 한구석엔 틀림없이 날카로운 뿔이 흉측하게 돋아있을 게 분명하다. 

    그나저나 이들은 자신들이 벌이는 삐라 살포 행각이 북한 주민들에게 대남 적개심을 고취하는 부작용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보기나 한 것인지 궁금하다. 정부에서도 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하니 참 한심한 일이다. 도대체 대한민국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차라리 이 분들을 풍선에 실어 북으로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거기 가서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2008. 10. 28.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 사진은 묘향산 국제친선관람관 사진입니다. 블로그 「내가 꿈꾸는 세상」에 들어갔다가 ‘이북바로알기’ 태그를 눌렀더니 다음 사진이 나왔군요. 다들 아시겠지만 묘향산은 북한에 있습니다. 구천이 별당아씨를 묻은 곳도 바로 묘향산이었죠. 오로지 사랑을 쫓아 김환과 더불어 묘향산에 숨어들었던 별당아씨가 죽었다고 했을 때, 스물도 안 된 어린 가슴도 너무 슬퍼 토지의 책장을 더 넘기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었지요. 
        

    묘향산 국제친선 관람관, 사진=김대하블로그 내가 꿈꾸는 세상

        

    묘향산으로 말하자면 서산대사가 의병을 일으킨 호국불교의 성지라고 할 수 있겠군요. 서산대사가 일찍이 4대 명산으로 금강산, 지리산, 구월산, 묘향산을 꼽으면서 "지리산은 장하나 빼어나지 못하고, 금강산은 빼어나나 장하지 못하다. 그러나 묘향산은 이 두산을 합한 것과 같이 장하면서도 빼어나니 천하의 명산이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4대 명산 중 세 개가 북한 땅에 있군요. 묘향산이 얼마나 장하고 빼어나기에 서산대사가 그런 말씀을 다하셨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단한 산임에 틀림없겠지요. 북한 땅에는 백두산이며 칠보산이며 온갖 유명한 산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인데 이 모든 명산들을 제쳐두고 묘향산을 최고로 꼽으셨으니 말입니다.

    위 사진을 찍은 사람은 민주노동당 창원시당 부위원장으로 계시는 김대하 씨란 분인데요. 그분은 민족통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시고 북한바로알기운동의 일환으로 북한을 자주 소개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9월 말의 방북단에도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등과 함께 다녀온 사진을 올리신 걸 많이 보았지요. 사진에 보니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진광현 씨도 보이더군요. 

    덕분에 아름다운 평양거리와 묘향산, 백두산, 거기다 덤으로 반가운 사람들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한 편에선 법정스님과 연극인 손숙 씨 같은 분들이 3백만의 북한 동포들이 기아선상에서 죽어나갔으며 지금도 아사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도움을 호소하는 눈물겨운 모습이 있는가 하면, 또 한 편에선 이처럼 활기찬 평양거리와 아름다운 산천, 친절하고 용모가 반듯한 평양의 음식점 접대부,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들을 소개하는 걸 보니 좀 혼란스럽기도 하더군요. 

    누구 말이 옳은 것일까? 손숙 씨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은 수구언론의 음해공작에 지나지 않고 경제적으로 조금 어렵기는 해도 북한인민들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인지 헷갈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 되겠지요. 북한을 제대로 알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마다 주장하는 게 제 각각이니 말입니다.

    이처럼 상반되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런 고민까지 든다니까요. 잘못하면 인도적 지원조차도 수구언론의 공작에 놀아나는 꼴이 될테니까요. 쓸데없는 고민이겠지만, 헷갈리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위의 사진을 보면서 드는 궁금증은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고 다음과 같은 사소한 거랍니다.  


    묘향산 국제친선관람관은 왜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건가요?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관람시설에 군인을 배치해놓은 걸 보지 못했거든요. 혹시 군사시설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가만 보니 모두들 진짜 총을 메고 있군요.  

    그리고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요. 아래 사진을 보세요.


    남측 방문단 일행을 환송하는 북측 단고기집 접대원들, 사진=김대하블로그 내가 꿈꾸는 세상


    단고기집이라면 개고기 파는 집을 말하는 것일 터인데요. 평양의 단고기집에는 모두 저렇게 예쁜 접대원들이 접대(북한에서는 이 말이 매우 바람직한 표현으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접대와는 완전 개념이 틀리다고 함)를 하나요? 우리나라 보신탕집에 가면 뚱뚱한 아줌마들이 보신탕 그릇을 툭툭 던지듯 상에 올려주잖아요? 뭐 그래도 맛있으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그런데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리 대접받아도 얼마든지 맛있더라고요. 

    남쪽에서 반가운 사람들이 와서 그날만 특별히 서비스 해준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저렇게 젊고 예쁜 여성들에게 접대를 받으면 무척 행복할 것 같기는 하군요. 하여간 정말 화사하고 예쁘네요. 역시 남남북녀라더니…, 아, 이런 말 하면 남쪽 여성분들이 별로 안 좋아 하겠군요.
     
    통일이 되려면 남과 북이 서로 잘 알아야 되겠지요. 동질성도 회복해야 할 것이고요. 동질성은 마음만이 아니고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전반이 동질성을 가지려는 노력을 기울여만 할 것이라고 보는데요. 아직은 요원하네요. 슬픈 일이죠. 

    2008. 10. 23일 새벽,   파비

    ps; 사진은 빌려 쓰자고 따로 물어보진 못했네요. 허락을 받는 게 예의고 저도 늘 그리 해왔습니다만, 시간도 많이 늦었고 또 북한 바로알기 차원에서 오늘은 뭐 그리 나무라진 않을 것 같군요. 또 같은 동네에 살기도 하고. 늦은 밤, 모두들 행복한 시간되시길….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상세보기

    Posted by 파비 정부권

    평양에 다녀온 많은 분들이 쓰신 방문기를 읽어보았습니다. 아름다운 평양거리도 보았고, 묘향산도 보았으며 백두산도 보았습니다. 백두산 천지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장관이 감동적입니다. 역시 웅대한 민족의 성산입니다.

    저는 사실은 백두산보다는 금강산을 더 좋아합니다. 물론 가보지는 못했지만, 늘 인터넷으로 금강산을 구경하곤 합니다. 제 방에는 북한 최고의 인민화가 정창모가 그린 『금강산 보덕굴』그림이 걸려있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는 벌써 3년 전부터 금강산에 가기로 약속해놓고 아직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두산 천지,
    사진=블로그 '김용택의 참교육'

    꿈에서도 그리운 금강산

    약속을 안 지키는 제게 아들 녀석이 물어봅니다.

    “아빠, 금강산은 언제 가는 거야?”

    “어, 그게 말이야. 아직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허락을 안했어. 조금 더 기다려야 돼.”

    달리 둘러댈 말이 없어서 그냥 김정일 탓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아들 녀석은 제 말을 믿습니다.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아빠, 아직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허락 안했나?” 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나 이제 아들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습니다. 아빠와 함께 어딜 가는 것 보다 제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좋은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세월은 이처럼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 기회도 알듯 모를 듯 빼앗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설령 다시 물어본다 하더라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탓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금강산 해수욕장에서 북한군 병사가 쏜 총에 우리나라 국민이 죽음을 당한 사건 이후로 금강산은 이제 갈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이명박 정부의 반북정책 기조 탓이든 아니면 북한군의 도발적 민간인 총격사건 탓이든 10년 넘게 쌓아온 남북관계가 순식간에 경색되고 금강산은 다시 꿈에서도 그리운 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 만세!" 선전문구 옆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찬양 선전판이 얼핏 보인다.
                   어린 시절 우리
    가 다니던 학교 건물에도 이런 식으로 "10월 유신"을 찬양하거나 "근면 자조 협동" 같은 
                   계몽 선전판이 붙어있었다. 평양의 거리는 서울에 비해 말쑥하게 잘 정돈된 느낌이다.  
                   사진=블로그 '김용택의 참교육'

    그래서 이번에 평양을 다녀오신 몇몇 분들이 올려주신 평양거리와 묘향산, 백두산 사진은 금강산은 아니지만 참으로 살갑게 느껴집니다. 특별히 김용택 선생님은 사진을 소개하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지 못하는 괴로운 심정도 토로하셨습니다. 모두 국가보안법 탓이라고 말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저 역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지 못하고 추한 것을 추하다고 하지 못하는 이 야만의 시대가 싫습니다.
     
    인류는 말을 사용함으로서 사람이 되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서서 걷고 도구를 사용함으로서 최초의 인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이 비로소 사람이 된 것은 말을 할 줄 알게 된 때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글자의 발명은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만들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말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야흐로 말의 전성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씨족과 부족으로 나뉘어 살던 공동체사회가 국가라는 권력구조 하에 놓이게 되면서 통제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은 오로지 최고 권력자만 할 수 있는 전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귀족들은 통치자의 귀에 거슬리지 않는 한도 안에서 말을 허락 받았습니다.

    그리고 평민들은 말다운 말은 할 수가 없었으며, 천민계급은 아예 말을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로마의 폭군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조차도 불필요한 말을 하다가 모함에 빠져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오랜 세월 사슬에 묶여 신음하던 말이 프랑스대혁명을 거치며 슬슬 자유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혁명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들라크루아 作〕

    근대시민혁명이 쟁취한 자유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이 바로 말의 자유, 표현의 자유입니다. 말이 자유를 얻게 되자 세계는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 문학, 예술 등 문화적인 분야만이 아니라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컴퓨터와 인터넷 혁명은 말의 자유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근대시민혁명이 쟁취한 말의 자유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말이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김용택 선생님에게 말은 불편하고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참교육’이란 블로그에 북한 방문길에 찍어놓았던 사진을 올리면서 아무런 설명을 달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선생님은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곳에서 폭력을 당하셨습니다. 북한 방문기를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거리와 함께 꾸준히 소개해주시던 선생님이 주사파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잠깐 언급했던 것이 빌미가 되어 느닷없이 노망난 늙은이로 매도당하고 조선일보의 ‘조깝제’와 사상적 동반자로 몰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주사파에 호의적인 사람들이었나 봅니다. 
    <관련기사
    http://chamstory.tistory.com/68>


    평생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시고 이제는 남은 여생을 참교육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선생님에겐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마음이 여리신 선생님이 받았을 상처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주사파에 대한 짧은 언급 하나가 그다지도 노여웠던 것이어서 평생을 교육에 헌신하고 정년퇴직한 교사의 명예를 무참히 짓밟는단 말입니까? 

    저는 선생님이 사진과 설명을 통해 평양거리를 너무 미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불편했지만, 굳이 반대 댓글 같은 걸 달지는 않았습니다. 평생을 참교육 운동에 바친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 만큼 선생님을 신뢰하는 마음도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사파 비판' 한마디에 선생님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구겨지고 말았습니다. 이참에 선생님은 국가보안법보다 주사파가 더 무섭다고 생각하게 되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국가보안법보다 더한 말의 자유에 대한 폭력

    국가보안법은 법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늘 우리들 속에 숨어 함께 숨 쉬면서 자유로운 말을 향해 폭력을 행사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노래가 유행입니다.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노래지요. 그러나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과연 얼마나 민주적인가에 대해서도 반성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체사상탑, 사진=블로그 '김용택의 참교육'

    이 사진은 선생님이 찍어 오신 주체사상탑입니다. 평양의 맑은 하늘을 이고 우뚝 솟은 탑이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탑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주체사상탑은 도대체 말의 자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유일무이한 주체사상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저 주체사상탑은 서로를 인정하며 화해와 협력으로 통일의 길로 가자고 하는 민족대단결의 정신을 헤치는 반통일적 조형물은 아닐지 의심이 든다고 하면 또다시 나를 반북분자에 수구꼴통이라고 공격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름다운 금강산을 꿈에도 그리며 하루빨리 남과 북이 통일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기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말이 자유를 찾아 맘껏 세상을 뛰어다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2008. 10. 18.   부마항쟁 기념일에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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