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만공주'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09.12.17 비담의 난으로 용두사미 된 선덕여왕 by 파비 정부권 (7)
  2. 2009.11.11 애국자로 미화된 반란수괴 미실의 최후 by 파비 정부권 (10)
  3. 2009.11.04 미실의 난이 실패한 이유? 식자우환이다 by 파비 정부권 (19)
  4. 2009.10.21 '선덕여왕' 죽방의 홍보전략, 진짜 통했을까? by 파비 정부권 (4)
  5. 2009.10.20 '선덕여왕' 미실의 최후는 미실의 선택 by 파비 정부권 (2)
  6. 2009.10.13 '선덕여왕' 잠자던 용 미실 깨운 춘추의 실수? by 파비 정부권 (7)
  7. 2009.10.10 김춘추와 선덕여왕, 진골 대 성골의 대결? by 파비 정부권 (5)
  8. 2009.10.06 '선덕여왕' 미실은 MB, 화백회의는 한나라당? by 파비 정부권 (14)
  9. 2009.09.29 '선덕여왕' 문노가 뿌린 불행의 씨앗 by 파비 정부권 (25)
  10. 2009.09.21 선덕여왕은 실제로 미인이었을까? by 파비 정부권 (7)
  11. 2009.09.10 선덕여왕과 미실의 통일관은 어떻게 다를까? by 파비 정부권 (3)
  12. 2009.09.08 선덕여왕, 문노가 덕만에게 낸 문제의 정답은? by 파비 정부권 (63)
  13. 2009.09.01 선덕여왕과 일본자민당의 침몰을 보며 드는 생각 by 파비 정부권 (5)
  14. 2009.08.25 미실을 속이려고 유신과 비담마저 속이는 덕만공주 by 파비 정부권 (7)
  15. 2009.08.19 선덕여왕, 다음주를 예언하는 즐거움 by 파비 정부권 (13)
  16. 2009.08.13 선덕여왕, 김춘추는 왜 성골이 아니고 진골일까? by 파비 정부권 (6)
  17. 2009.08.11 '선덕여왕' 덕만의 정광력, 미실의 하늘을 깰까? by 파비 정부권 (1)
  18. 2009.08.11 선덕여왕, 덕만은 살고 천명이 죽어야 하는 이유 by 파비 정부권 (11)
  19. 2009.06.30 박근혜가 선덕여왕? 그럼 김정일은 광개토대왕이냐? by 파비 정부권 (73)
  20. 2009.06.24 이요원이 창조할 선덕여왕 이미지는? by 파비 정부권 (3)
  21. 2009.06.17 하룻강아지 선덕여왕과 여우같은 천명공주 by 파비 정부권 (11)

<선덕여왕>이 막판에 용두사미가 되고 있다. 진흥대제로부터 시작된 드라마는 실로 사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에 부끄럽지 않았다. 갈수록 더해지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블로고스피어에서도 단연 독보적이었다. <선덕여왕>으로 인해 블로그가 융성했고, 반대로 블로그는 <선덕여왕>을 부흥시켰다. 

이미지는 요즘 TV나 컴 앞에 앉을 시간이 별로 없어 불가피하게 연어군님 블로그에서 무단으로 도용했음.


선덕여왕, 미실의 난으로 끝냈어야

천명공주와 미실의 대결, 이어 타클라마칸에서 돌아온 덕만공주와 미실의 대결은 늘 숨이 가빴다. 상상을 뛰어넘는 지략과 술수에 시청자들이 열광했다. 여기에 문노의 비밀과 비담의 활기가 더해져 <선덕여왕>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국민 남동생이라는 유승호의 등장으로 절정에 달했던 <선덕여왕>은 그러나 미실의 죽음 이후 기가 빠졌다. 

여기까지였다.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을 진압하고 덕만공주가 여왕에 즉위하는 것으로 끝냈어야 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곧 드라마가 처음 시작할 때 진흥대제가 던져준 예언의 완성을 의미한다.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이길 자가 오리라!” 이것이 드라마의 처음이자 끝이 아니었던가.

덕만이 태어나고, 미실을 물리치고, 그리하여 최초로 여왕이 된 덕만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룰 기초를 닦을 것이란 희망을 보여주며 드라마는 마쳤어야 했다. 그랬다면 사람들은 선덕여왕이 진정 개양자였음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무도 덕만이 개양자란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블로거들 누구도 그 사실을 상기시키지 않는다. 

그럼 비담은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그거야 비담은 유신, 알천과 함께 덕만공주를 도와 미실의 난을 진압하고 선덕여왕 옹립의 1등공신이 되면 되는 것이다. 미실의 난을 진압하는 중에 비담에게 전해진 진흥대제의 칙서로 먼 훗날 비담의 난을 암시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묘한 여운을 남기는 것도 좋은 전략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차라리 비담의 난은 <선덕여왕 시즌2>로 만들면 어땠을까?

미실의 난을 진압하고 논공행상 과정에서 유신과 비담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면 시청자들에게 <선덕여왕 시즌2>를 기다리게 하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왜 그랬을까? <선덕여왕> 제작진은 무리하게 짧은 기간에 선덕여왕의 치세와 비담의 난과 선덕여왕의 죽음 그리고 춘추의 등극까지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욕심을 부리는 듯하다.

비담의 난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선덕여왕> 전편에 버금가는 대작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무리한 드라마의 진행은 어이없는 선덕여왕을 만들고 말았다. 처음에 예언의 인물, 신국의 개양자였던 덕만은 한낱 사랑에 휘둘리고, 사람을 의심하고, 그러다 결국 느닷없이 병을 얻어 죽게 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예언속의 개양자란 말인가. 

그리고 사랑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 덕만이 유신을 사랑하는 줄로 알고 있었지 않은가. 그런데 갑자기 여왕이 된 덕만의 사랑이 비담에게로 갔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애틋한 눈길로 유신을 바라보다 블로거들로부터 왕 자격이 있느니 없느니 비판을 받으며 논란에 휩싸였던 그녀다. 그럴만한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 외로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원래 바람둥이라서?

외로우면 유신을 부르면 될 일인데, 나는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간다. 그토록 간절하던 두 남녀의 사랑이 고작 그 정도였단 말인가? 물론, 비담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난 이후 줄곧 덕만을 향한 연정의 화살을 쏘아대기를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그것은 야심의 발로였다.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한 발판으로 덕만을 선택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진정한 사랑으로 느끼지 못했다.
 

역시 연어군님 블로그에서 도용한 이미지


용두사미가 된 선덕여왕, 탓은 비담의 난 때문이다

그런데 막판에 비담의 야심마저 애절한 사랑으로 둔갑했다. 게다가 더욱 어이없는 것은 냉혹하고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미실의 뒤를 이어 미실파를 장악한 비담이 오히려 이들의 간계에 넘어가 말이 물가에 끌려가 물마시듯 반란의 주모자가 된다는 스토리다. 바로 어제까지도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바칠 것 같던 비담이 하루아침에 오해에 빠져 반란수괴가 된다니. 

비담의 난으로 인해 <선덕여왕>은 선덕여왕을 잃어버렸다. 진흥대제가 예언한 ‘미실을 이기고 신국의 영광을 되찾을’ 개양자를 잃어버렸다.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온갖 고난을 이기며 서역과 중국의 발달한 문명을 배우고 돌아온 덕만을 잃어버렸다. 덕만이 왕좌를 차지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면 얻을 수 있었을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선덕여왕> 제작진으로 보자면, 시즌2로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만약, 시즌2를 만들 수 있었다면 전편을 능가하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비담이 어떻게 세력을 모아 나가는지, 유신과 춘추는 어떻게 합종하고 연횡해서 집권기반을 구축하는지, 덕만의 치세는 어떻게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는지 우리는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선덕여왕> 전편에서 던져졌던 모든 의문들이 후편을 통해 풀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꼭 만났어야 하지만 나타나지 않았던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시즌2를 만들든 말든, 비담의 난으로 인해 <선덕여왕>은 용두사미가 되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미실이 드디어 최후를 맞았습니다. 대단한 인기에 걸맞게 장중하고 엄숙한 죽음이었습니다.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이 선덕여왕이 아니라 미실이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이 사실이라고 항변하는 듯 그런 죽음이었습니다. 실로 죽음이 아름답다고 생각될 만한 그런 죽음이었습니다. 미실이 죽던 그 순간은 온 세상이 고요 속에 어쩔 줄 모르는 듯했습니다. 

미실의 용상. 미실은 자신만의 옥좌에서 고혹적인 죽음을 맞는다.


미실 권력의 핵심은 사람 

대야성에 피신한 미실은 그곳에서 전열을 가다듬으며 전세를 역전시킬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미실은 대야성에 쫓겨 들어간 그날 측근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부터 이전과는 반대로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덕만은 시간에 쫓기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미실의 군세는 불어납니다. 

미실은 주지하듯 젊은 시절에 진흥대제와 함께 변방을 누비며 당대 신라의 국경을 만든 인물입니다. 물론 이는 픽션이긴 하지만, 1부의 첫 장면이었던 만큼 드라마에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실질적인 신라의 통치자 미실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진흥대제는 그걸 알았고 그래서 설원랑에게 미실을 죽이도록 칙서를 내렸던 것이죠. 
그러나 설원랑은 미실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때는 이미 신라의 서울(서라벌)과 지방의 모든 조직이 미실에게 넘어간 후였습니다.  대세를 장악한 미실은 진흥대제의 주검 앞에서 이렇듯 당당하게 외칩니다.

“사람? 사람이라 하셨습니까? 폐하. 보십시오. 여기 이 사람들을. 폐하의 사람들이 아니라, 제 사람들입니다.” 

이미 대부분의 인재들이 미실의 편에 가담했으며, 진흥대제는 사실상 앙상한 뼈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지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이길 자가 오리라!"는 알지 못할 예언만 남긴 채.
그리고 마침내 진흥대제의 예언대로 개양성의 주인 덕만이 나타나 미실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30여 년의 세월은 너무나 긴 세월이었습니다.

신라의 곳곳에 미실의 촉수가 뻗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신라의 귀족, 장군들치고 미실로부터 은혜를 받지 않은 자가 없을 지경입니다. 미실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진흥대제 밑에서 은밀하고 꾸준하게 자기 세력을 만들어온 미실은 마침내 권력을 잡자 도처에 그들을 심었습니다.

여기엔 미실의 말처럼 속함성을 비롯한 변방의 모든 장수들은 미실과 함께 피를 흩뿌리며 고락을 같이 해온 동지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중에는 속함성 당주처럼 진심으로 미실을 받드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공포정치 아래 길들여진 노예근성에 젖은 자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상주정 당주 주진의 변심은 미실의 권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던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좋은 예입니다. 

 

덕만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미실, 이것도 대의였을까?


미실은 한 번도 대의를 저버린 적이 없었다?

미실이 난을 일으키고자 했을 때, 세종과 설원을 비롯한 측근들조차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미실이 보여준 모습과는 너무 상반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쿠데타는 미실처럼 대의를 존중하고 실천해온 사람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야성의 수비진용을 짜던 칠숙과 석품이 나눈 대화에서도 그걸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미실 새주를 따랐던 것은 단 한 번도 새주가 대의를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소리를 매번 들을 때마다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실이 대의를 저버린 적이 없다니요? 진흥대제가 살아있을 때의 미실이라면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흥대제가 죽을 때 미실이 어떻게 했었지요? 미실은 진흥대제를 독살하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진흥대제는 미실에게 독살되기 전에 눈을 감았습니다. 이에 미실은 진흥대제에게 이렇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었지요. "폐하, 제 손으로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실은 진흥대제가 남긴 유서를 숨기고 백정이 아닌 금륜을 왕으로 옹립합니다. 여기엔 금륜과 미실의 검은 거래가 있었습니다. 미실에게 황후전을 보장하겠다는. 

왕이 된 금륜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미실은 이번엔 진흥대제의 진짜 유언장을 들이밀며 진지제를 폐위시킵니다. 그리고 어린 백정을 왕이 되게 하고 그의 황후가 되기 위해 마야부인을 죽이라는 밀명을 내립니다. 마야부인은 문노의 도움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고 미실의 꿈은 좌절됩니다.

덕만과 천명이 태어났을 때, 진평왕이 덕만을 버린 것도 결국은 미실이 무서워서였습니다. 제 아무리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이 있다 한들 미실이 아니었다면 덕만이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할 이유는 그다지 없었습니다. 이미 미실은 신국의 황제 위에 군림하는 만인지상이었던 것입니다.

덕만을 몇 번이나 위기에서 구한 진흥대제의 소엽도


 미실에게 대의란 곧 자기 파벌의 권력과 축재의 수단일 뿐 

그리고 30여 년, 미실과 미실의 측근들은 신국의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분야를 주물렀습니다. 그들은 매점매석으로 토지를 잃게 된 농민들을 노예로 사들였고, 부를 축적하며 사병을 길렀습니다. 덕만이 공주의 신분으로 처음 미실을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왜 신라가 진흥대제 이후 발전을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덕만의 말에 의하면 그 이유는 미실은 신국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엔, 미실과 그의 측근들이 수십 년 동안 나라를 농단했음에도 발전은 고사하고 망하지 않은 신라가 참으로 신통합니다. 그런데 이런 미실을 향해 한 번도 대의를 벗어난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떻든 좋습니다. 미실이 한 번도 대의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고 칩시다. 요즘은 친일 행적이 명백함에도 그건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며, 누구라도 당시로서는 그리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 그깟 대의 같은 게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과거에 역적질을 좀 했고, 나라 재정을 거덜냈으며, 백성들을 노예로 만든 게 무에 그리 대수겠습니까.  

문제는 지금입니다. 미실은 분명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것도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미실 스스로도 치가 떨리도록 비열한 방법을 써서 역모를 성공시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진평왕도 연금했고, 덕만공주를 죽이라고 지시했으며,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옥좌에 앉아 신료들에게 호통을 치는 불경죄를 저질렀습니다. 

미실은 명백히 이순간 반란 수괴인 것입니다. 그런 미실이, 그런데 너무 쿠데타 세력의 수괴답지 않은 행동을 합니다. 자신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2만 군사를 이끌고 달려온 속함성 당주를 국경을 잘 수비하라는 당부와 함께 돌려보냅니다. 실로 착한 반란 수괴입니다. 반란군이 당장 눈앞의 역모보다 나라의 장래를 먼저 생각합니다. 눈물겹습니다.

미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남편과 아들(좌) / 덕만공주를 거짓말로 속이는 미래의 배신자 비담(우)


과도하게 미화한 반란 수괴의 최후

일개 국경수비대장이 2만의 병력을 갖고 있는데 서울(서라벌)을 수비하는 금군이 겨우 수천도 되지 않는다는 설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센스란 것쯤은 그냥 넘어가도록 합시다. 하긴 상주정 당주가 5천의 군사를 끌고 오자 바로 전세가 결판이 나는 상황을 보며 놀랐던 경험이 있던 터에 이제 2만이라고 하니 더 놀랄 힘도 없습니다.

아무튼 미실의 최후는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최후가, 꼭 그렇게 반란 수괴를 나라에 충성하는 애국자로 만들어야만 가능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쉽기만 합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여기에 어떤 역사적 가치관 같은 것을 대입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30여 년만에 두 번의 반란으로 헌정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전방에서 나라를 지켜야할 군대가 전선을 이탈해 권력을 찬탈하는 역모에 동원되는 반역사의 현장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공포정치로 권좌를 지키기 위해 제 나라 국민을 도륙한 군인들이 통치하는 시대를 지켜보았던 사람으로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선덕여왕』이 미실의 최후를 그렇게 그린 것인지도. 역설적인 어법으로 과거의 쿠데타 세력에 대한 준엄한 역사적 심판을 하려는 의도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미실의 최후는 불만입니다. 그녀의 죽음이 충분히 아름다울 필요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미실을 애국자로 만들 필요까지 있었을까요?  

미실을 얼마든지 악당으로 만들더라도 그간 미실이 보여 왔던 무게만큼 장중하고 엄숙한 그리고 아름다운 죽음은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왕 대의를 버리고 오랜 꿈을 쫓아 칼을 뽑아들었다면 최선을 다하다가 장렬하게 죽는 모습이 훨씬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나는 정말 미실의 그런 죽음을 바랐습니다.

대의는 내게 있다는 듯 진흥대제의 소엽도를 내미는 덕만은 미실이 떠난 자리를 어떻게 메울지


미실 없는 『선덕여왕』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50여 회에 걸친 미실의 역정이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오늘 50회 미실이 죽는 모습만 놓고 본다면 멋진 죽음이었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고현정은 역시 훌륭한 연기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모래시계』의 히어로였던 그녀가 삼성가의 며느리가 되는 것을 보면서 실망하기도 했었지만, 역시 그녀는 멋진 배우입니다. 

고현정 없는 『선덕여왕』의 미래가 실로 궁금합니다. 고현정을 죽였으니, 이요원은 이제부터 진짜 실력을 한번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아무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미실의 난이 실패했다. 미실은 마지막으로 "그래, 덕만이 네가 이겼다!" 속으로 부르짖으며 화살을 날린다. 도대체 누구를 향해 쏘는 화살일까? 물론 덕만을 향해 날리는 화살일 터이다. 다중이 모인 장소에서 추국을 하기도 전에 신국의 공주를 죽이고자 하는 행동은 "나 역도요!" 하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미실의 도발적 행동, 왜 그랬을까?

도대체 미실은 왜 그랬을까? 옆에서 놀라 제지하는 아우 미생에겐 아랑곳없다는 듯이 그저 묵묵히 화살을 뽑아 시위에 장전해 날리는 모습은 마치 벌써 이런 상황에 대비해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빨랐다. 자포자기했던 것일까?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냉정하게 침착함을 잃지 않던 미실이 아니던가. 


어쩌면 미실은 정변이 실패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덕만과 춘추로부터 자신은 한 번도 꾸어보지 못한 꿈에 대하여 들었을 때 자신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았을지 모른다. 새롭게 떠오르는 두 마리 용의 기개와 지략을 보며 그들을 상대하기엔 자신과 자신의 측근들은 너무 노쇠했다는 사실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던 것일까. 마지막으로 옥처럼 찬란하게 부서지고 싶다고…. 그리고 실제 자기가 말한 대로 찬란하게 부서질 각오로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다. 지금까지 자기가 살았던 방식과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정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정변은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당한다. 아무도 모르고 있지만, 계산에 능한 미실은 간파했다. 

싸움은 이미 끝났다. 노련한 프로 바둑 기사가 수읽기를 통해 패배를 인정하고 돌을 던지듯이 미실도 그렇게 한대의 화살로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이 화살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덕만이 맞게 될지, 아니면 화랑들 중 누군가가 대신 맞을 것인지, 아니면 어떤 출중한 고수가 출현해 화살을 받아낼 것인지….

미실의 난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튼 미실의 난은 실패했다. 그런데 왜 미실의 난이 실패한 것일까? 실질적으로 30여 년간 신국의 권력을 장악해왔으며, 군사력의 대부분을 쥐고 있고, 신료들과 지방귀족들의 지지를 업고 있는 미실이 어째서 덕만에게 패하게 되는 것일까?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드라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우선 일선에서 일을 처리하는 부하들의 실수가 잦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칠숙은 다 잡은 덕만을 놓쳤다. 나는 칠숙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선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만약 내가 칠숙이었다면 복야회의 산채를 포위했을 때 그냥 화공으로 잿더미로 만들었을 것이다.

어차피 덕만은 추포되는 과정에서 죽여야 한다. 살아서 서라벌로 데리고 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 석품의 주진공 암살 실패를 들 수 있겠다. 어떻든 석품은 주진공을 죽였어야 한다. 그런데 어설프게 작전을 감행하다 실패했다. 진평왕 말년에 선덕여왕의 등극에 반대해 난을 일으켰다는 칠숙과 석품, 그 대단한 두 사람의 실수는 어이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실수들은 지엽적인 것이다. 대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 결정적인 실수는 다름 아닌 미실이 저질렀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실 측근들의 실수는 부분의 실수로서 다른 부분에서 만회하면 된다. 그러나 미실이 하는 실수는 보완할 방법이 없다. 미실은 덕만을 보는 즉시 죽였어야 했다. 그런데 미실은 오판했다.  

미실, 너무 똑똑해서 탈이다 

미실이 측근들에게 강조하며 경계한 것이 무엇이었던가. "공주를 살려서 서라벌에 데려와서는 절대로 안 된다. 반드시 추포되는 과정에서 저항하다 장렬하게 전사하도록 해야 한다." 공주를 살려두는 것은 곧 정변을 일으킨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반드시 죽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덕만이 대범하게도 호랑이굴에 제 발로 들어왔다. 물론 미실은 순간 당황했을 것이다. 게다가 옆에는 당나라 사신도 있다. 그러나 미실은 위국부령이다. 신국의 황제를 대신해 역도를 추국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을지라도 당장 평정심을 되찾아 덕만을 잡아 옥에 가두라고 명해야 본래의 미실다운 모습이다. 

비록 공주라고 하나 덕만은 역적 혐의를 받고 있는 몸, 포박하여 옥에 격리한다고 한들 누가 탓할 수 있으랴. 더구나 위국령이 내려진 엄중한 시점에 말이다. 그러나 미실은 너무 생각이 많았다. 너무 정치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당나라 사신의 눈이 두렵고, 대신들의 눈이 두렵고, 모든 사람들의 눈이 두려웠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미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에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미실이 아니라 세종이었다면 어땠을까? 당장 덕만을 체포해 옥에 가두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을 베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실은 아홉수를 내다보는 노회한 정치인, 여기에 미실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공개추국? 쿠데타에 그런 공정한 재판은 없다

너무 똑똑한 미실, 식자우환이라고나 할까. 쿠데타는 그저 쿠데타일 뿐이다. 명분 따위는 애초부터 필요 없다. 어차피 쿠데타 세력이 내세우는 명분이란 것도 알고 보면 모두 거짓 선동에 불과한 것이다. 반란을 일으키는 마당에 무슨 대의 따위가 소용이 있겠는가 말이다. 결국 나중엔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되어 있는 것을.

덕만의 죽음에 대해선 역모에 대해 추국하던 중 자결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여기에 대해 사실을 확인하자고 달려들 신료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미 황제의 건강상태를 직접 확인해보자던 대신을 현장에서 죽였던 미실이다. 그런 미실이 이미 죄인이 되어 손아귀에 들어온 덕만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춘추가 밖에 있다지만, 그래서 덕만을 죽이더라도 춘추가 그 자리를 대신할 거라는 걱정은, 글쎄 그건 좀 난센스다. 춘추는 진지왕의 손자로서 패주의 자손이다. 설령 춘추에게 대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덕만을 죽이고, 귀족들을 단속하고, 군사를 장악한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남는 문제는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식자우환이다. 너무 똑똑해도 화근이다. 알렉산더처럼 단순해져야 하는 것이다. 단 칼에 실타래를 끊어 푸는 것처럼. 그런데 이거 오늘 내가 엉뚱하게 쿠데타 세력을 찬양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긴 우리가 사는 시대는 너무나 많은 쿠데타를 겪어 마치 반란 교육이라도 받은 것처럼 훤하다.  

미실의 쿠데타 실패는 식자우환 탓 

그래서 내가 아니더라도 미실이 식자우환이란 것쯤은 누구든 이미 눈치 채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미실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출현했던 쿠데타 세력들과는 달리 대의와 명분을 통해 대중적으로 지지받는 정권을 창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혹시 양심적인 쿠데타? 어허, 그러고 보니 나도 식자우환이다. 쿠데타면 쿠데타지, 무슨 대의니 명분이니…, 개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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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죽방거사다. 물론 덕만공주가 가장 바쁘다. 그러나 그녀는 주인공이니 당연히 바쁜 것이고. 김유신도 바쁘고 알천도 바쁘고 비담도 바쁘지만, 역시 죽방 만은 못하다. 죽방은 결정적인 순간에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계책을 내놓는가하면, 적의 동태를 탐지하고, 필요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담도 넘는다.
 


죽방은 타고난 여론선전가

그러나 무엇보다 죽방이 가장 크게 공을 세우는 곳은 다름 아니라 현장이다. 시장에서, 주막에서 죽방이 벌이는 고도의 선전활동은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 죽방의 주특기다. 덕만이 일식을 통해 개양자의 자격으로 천신황녀가 되어 공주의 자리에 복귀할 때도 죽방은 바빴다. 일의 우선순위에는 반드시 여론전이 있기 마련이다. 

어제도 죽방은 엄청 바빴다. 시장에서, 골목에서, 주막에서 덕만공주가 만들어낸 '대귀족들에겐 세금을 높이고 중소귀족들과 서민들에겐 세금을 낮추는 조세정책'을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덕만공주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 중소귀족들과 백성들의 지지를 얻고자 하더라도 이를 아무도 모르면 그만이다. 

자, 그런데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이 있다. 그때도 죽방의 여론 선전활동이 효과가 있었을까? 요즘처럼 신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텔레비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도 없다. 그런데 겨우 시장통이나 골목에서 벌이는 죽방거사의 홍보전략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와 동시대에 여론선전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 예가 실제로 있었다. 하나는 서동요로 유명한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요, 다른 하나는 김유신의 동생 문희와 김춘추의 혼인에 얽힌 이야기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두 이야기는 모두 너무나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다. 

맹랑한 서동의 선화공주 훔치기도 여론조성으로

서동은 맹랑하기 그지없는 자였다. 서여(마로 만든 과자)를 캐서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처지에, 그것도 백제 사람으로, 어여쁜 신라공주를 꾀어내려는 수작을 누가 감히 생각이나 하겠는가. 그러나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덕만공주도 사실 따지고 보면 얼마나 맹랑한가. 감히 여인인 주제에 왕이 되겠다니. 

그러나 서동에겐 아무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 일을 돌파할 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노래를 통한 여론의 조성이었다. 서동은 경주의 아이들을 구슬려 해괴한 노래를 가르쳐주고 소리 높여 부르게 했다. 뇌물로 서여를 나눠 주었음은 물론이다. 마치 서동과 선화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꾸민 노래는 삽시간에 퍼졌다. 

선화공주님은 
남모르게 짝지어 놓고
서동 서방을 
밤에 알을 품고 간다. 

그 다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공주는 유배를 가게 되었고, 유배지에서 미리 기다리던 서동이 자신을 밝히고 선화공주를 데리고 백제로 갔으며,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그런 이야기다. 그리고 서동은 나중에 백제의 무왕이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삼국유사에 진지하게 기술한 일연도 참으로 맹랑한 사람이다.


김유신이 부린 여론선전전, 삼한통일의 기초가 되다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 그때나 지금이나 여론의 위력은 실로 막강하다는 것을 이 설화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여론의 위력을 짐작하는 데 하나의 설화가 더 있다. 위에 미리 말했던 김유신의 동생 문희와 김춘추에 얽힌 이야기다. 사실 이 이야기가 설화인지 일화인지 정확하게 알 길은 없으나 여론의 위력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예임에는 분명하다. 

김문희가 언니 보희가 서쪽 산에 올라 오줌을 누었더니 서울 성안에 가득 차는 꿈을 꾸었는데 그걸 샀다는 이야기는 너무 진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유신과 축국을 하던 춘추의 옷이 찢어졌는데 그걸 보희 대신 문희가 꿰매주었고 후일 춘추와 혼인한 문희는 태종 임금의 왕후가 되었으며 문무왕의 모후가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이야기의 줄거리가 아니다. 문희가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된 유신이 취한 태도다. 누이를 호되게 꾸짖은 유신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누이를 불태우리라는 말을 온 나라 안에 퍼뜨린 일이었다. 그리고 선덕여왕이 남산에 행차하여 노는 날을 기다려 마당에 장작을 쌓고 불을 피웠던 것이다.

결국 유신의 여론선전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문희는 춘추와 공식적으로 혼례를 올렸으며 유신은 차기 국왕의 처남이 된 것이다. 패망한 가야국의 이민4세였던 유신과 김춘추의 결합은 한편 신라와 가야가 하나로 통일되는 실질적 계기였을지도 모른다. 김유신에겐 망국민의 콤플렉스를 벗어던질 절호의 기회였음도 물론이다. 

시대는 달라도 사람 사는 방법은 똑같다

당시 서라벌(서울)의 인구가 백만을 넘나들었다고 하니 소문의 전파 속도나 여론의 파급력도 상당했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도 사람 사는 방법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의 뜻이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죽방이야말로 선덕여왕 등극의 일등공신이 아닌가. 덕만이 왕위에 오른 다음 죽방을 홍보수석비서관으로 발령을 낸다한들 누가 탓할 수 있으랴.  

죽방이야말로 최고의 홍보전략가인 것을. 하긴 그러고 보니 유신이 문희를 불태우리라고 서울 성안에 소문을 내도록 한 것은 죽방으로부터 배운 것이 아닐까? 아니면 죽방이 직접 유신에게 계책을 내었던지. 하여간 죽방, 정말 대단하다. 배울 점이 참으로 많은 인물이다. 처음 볼 때부터 그런 예감이 들었다. 배울 점이 많은 인물일 것이라고.

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춘추가 골품제는 천박한 제도라며 왕과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갈을 했을 때,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라고 제 블로그에서 물어본 일이 있습니다. 물론 드라마를 계속 보았던 사람이라면 이건 문제 축에도 들지 못하는 문제죠. 답은 뻔히 미실 일파입니다. 미실 일파 중에서도 세종공이 가장 즐겁겠죠.


골품제 비판, 춘추는 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종공은 사태를 읽는 명석한 두뇌가 없습니다. 주제에 넘치게 욕심은 많지만 재능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설원공은 머리는 명석하지만 타고난 출신의 한계로 인해 사고의 한계 역시 명확합니다. 물론 설원공이 출신이 미천하다는 것은 드라마의 설정일 뿐입니다. 출신이 미천하면 절대 병부령이 될 수 없는 게 바로 골품제죠.

그러니 그 설정이란 난센스입니다. 춘추와 미실조차도 넘을 수 없는 벽을 설원공이 넘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설총이나 최치원이 천하를 품을 만한 재능을 가지고도 방랑의 세월을 살았던 것도 다 골품제 때문입니다. 6두품은 진골과 함께 중앙귀족을 형성하는 정치집단이지만, 제6관등인 아찬까지만 오를 수 있었고 그 이상의 관직에는 진출할 수 없었습니다. 

6두품이 본격적으로 골품제의 모순을 비판하는 것은 신라 하대에 이르러서입니다. 진골귀족들 간에 왕위쟁탈전이 치열해지고 중앙과 지방의 정치혼란이 극심해지자 6두품은 반 신라적 입장을 취하거나 세상을 피해 은둔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치원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건국되었을 때 이들 6두품이 대거 진출했음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김춘추가 골품제를 비판한 것은 옳은 일이었을까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김춘추는 6두품이 아니라 진골귀족이기 때문입니다. 6두품의 입장에서 보면 골품제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제도가 맞습니다. 아니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신분제도 자체가 아먄적이고 폭력적인 제도입니다. 

미실, 신분의 벽을 깨고 왕위에 도전할 수 있나

그럼 여왕은? 그건 신라사회에선 가능한 일이었다고 보입니다. 이미 선덕여왕이 탄생하기 이전에도 여자가 권력을 장악한 경우는 몇 차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황남대총의 여주인이 그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왕통이 끊어졌을 경우에 또는 왕자가 아직 나이가 어려 왕위에 오르기 어려울 때 공주의 부마를 부군으로 삼아 왕위를 계승한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석탈해, 김미추도 그렇게 해서 왕이 된 사람들이죠. 

다시 말해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상속권을 가졌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이는 신라 하대에 이르러 유학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비판 받기 시작합니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유학자로서 사대주의와 남녀차별적인 사고방식에 정신을 빼앗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그가 삼국사기를 편찬한 것을 역사의 불행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튼 진평왕 시대에 여왕이 등극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신라인은 드물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신분의 상속은 공평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 예로 지소태후가 이사부와 통정하여 낳은 아들 세종에게 전군(태자가 아닌 왕자)의 칭호를 내린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님 소리 듣는 김춘추도 마찬가지죠. 이는 조선시대에는 도저히 불가한 일입니다. 

자, 이쯤에서 미실이 얘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미실에게 깨달음을 준 것은 덕만과 춘추입니다. 덕만은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춘추는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덕만이 아니라도 미실이 살던 시대에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큰 흠이 아니었습니다.

미실이 할 수 있는 일은 쿠데타밖에 없었나

오히려 덕만은 미실을 통해 왕이 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설정도 난센스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미실 정도의 걸출한 인물이라면 그녀가 만약 성골이었다면 틀림없이 왕위에 도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성골이 아니라 진골이었으므로 왕이 아니라 왕후가 되는 것에 만족하려 했을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신라의 전통을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권력을 취하는 길을 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진흥왕을 독살하고 유언장을 조작한 것도 알고 보면 정통성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덕만이 내놓은 조세감면정책에 대해 보인 미실의 태도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미실은 변화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왜 미실이 직접 나선 것일까요? 지금까지 미실의 권력을 위협하는 현실적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력이 등장했습니다. 하나는 덕만공주요, 다른 하나는 춘추공입니다. 이 둘은 모두 현 왕의 직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능력이 출중합니다.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죠.

그래서 직접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미실은 과거처럼 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하거나 쟁취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방법은 정통성이 있는 왕족을 자기가 포섭하고 있거나 그런 왕족이 없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이제 그게 힘들어졌으니 미실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아주 제한적입니다. 진즉에 덕만을 죽였어야 했지만, 미실이 크게 실수했던 거지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미실의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그럼 미실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이 있을까요? 정변밖에 없습니다. 쉬운 말로 쿠데타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두 번의 쿠데타를 겪었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일으킨 구데타죠. 정통성이 없는 세력이 권력을 쥐기 위해 가장 손쉬우면서도 확실한 방법이 바로 군사정변입니다. 미실에게 주어진 카드는 결국 쿠데타뿐입니다.

미실이 칠숙과 나눈 잠깐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미실이 곧 난을 일으킬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칠숙은 미실에게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나는 가진 것이라곤 재산도 가족도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말로 대신합니다. 이미 칠숙과 함께 난을 일으키는 것으로 돼있는 석품은 칠숙의 심복이 되어있습니다. 

오래전에 칠숙의 난을 위한 준비는 완료되어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칠숙의 난이 미실의 난의 소품 정도일 뿐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미실은 사실상 신라의 지배자였으니 그녀가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친위쿠데타가 되겠군요. 그러나 이것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백성들과 중소귀족들의 신망이 미실로부터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미실의 난은 분명 실패하고야 말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현실에서는 어떨까요? 덕만의 조세정책과는 반대로 종부세를 폐지하고 부자(귀족)들에게 세금을 깎아주는 MB정부의 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만약 미실의 난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실패했을까, 성공했을까?  

덕만을 죽이지 않은 실수의 결과, 미실의 최후는 어떤 모습일까?

아무튼 미실은 덕만을 죽이라는 상천관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상천관을 독살하는 실수를 범했지요. 미실 일생일대의 실수였다고 할 수 있겠군요. 물론 그것은 황실을 압박해 마야부인을 축출하기 위해 덕만을 살려 이용하기 위함이었지만 말입니다. 스스로 옥처럼 찬란하게 부서지는 길을 택하겠다고 했으니 어떻게 부서지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미실의 최후가 매우 궁금해지는군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은 김춘추의 지략이 빛난 하루였다. <선덕여왕>이 재미를 보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진패/허패 놀이다. 이미 덕만이 허패(일식이 없다)를 가장한 진패(일식이 있다)를 쓴 적이 있다. 김춘추도 역시 허패와 진패를 병용하며 미실 진영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번에 김춘추가 던진 패는 허패다. 김춘추는 미실 편에 투항하는 척 하며 미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미실과 거래를 시도한 것이다.
 

김춘추가 미실파에 던진 패는 내분을 노린 허패 

덕만공주가 스스로 부군이 되어 왕이 되겠다는 선언은 미실 진영에 꽤 큰 혼란을 가져왔다. 전대미문의 선언이었지만,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이미 신라는 사실상 미실이란 여인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던가. 게다가 덕만공주는 성골이다. 성골만이 왕통을 계승할 수 있다는 불문율에 따로 저항할 명분도 없다.

여기에 춘추가 패를 던진 것이다. 춘추는 미실을 만나 자기를 부군으로 밀어달라고 말한다. 그럼 미실의 걱정거리 하나가 사라진다. 성골인 덕만공주가 스스로 부군이 되겠다고 한 이상 미실 일파는 권력을 잃게 될 위험을 피할 수 없다. 비록 상대등과 병부령이 살아있다고는 하나 영원한 것은 없다. 덕만공주는 강적이다. 그 사실을 모두들 잘 알고 있다. 

미실은 춘추의 제안이 매우 흡족했을 것이다. 춘추는 미실이 몰아낸 진지왕의 손자이기도 하지만, 진평왕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덕만공주를 제외한다면 진평왕의 가장 가까운 혈손이다. 명분은 충분하다. 그러나 그보다 미실을 기쁘게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덕만공주 세력의 내분이었다. 

춘추가 비록 미실 일파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는 역시 천명공주의 아들이며 덕만공주의 조카다. 천명과 덕만은 개양성이 두 개로 갈라지며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던 날 태어난 쌍둥이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공동운명체다. 천명의 아들이 덕만과 대립하는 것은 곧 분열을 의미하며 이는 덕만공주 진영에 치명적 타격이 될 것이다. 

미실은 그걸 노렸다. 한편으론 덕만이 스스로 왕위에 올라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막고, 다른 한편 상대 진영을 분열시켜 어부지리를 얻는 것, 그게 미실이 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실은 진평왕과 신료들 앞에서 당당하게 “골품제도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제도요” 라고 일갈하는 춘추를 보며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덕만과 춘추의 존재를 깨달은 미실, 그러나 조용히 물러나진 않는다

미실은 춘추를 보며 덕만공주를 떠올렸다.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미실이 한 번도 넘지 못한 벽을 너무나 가볍게 넘어버림으로써 뼈아픈 슬픔을 안겼다는 점. 그녀는 평생을 권력의 정상에서 버텨왔지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제도와 관습의 벽 앞에서 늘 좌절감을 맛보았던 것이 그녀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그걸 너무나 쉽게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덕만과 미실의 마지막 대결이 볼 만하겠다.

미실은 순간 인생이 허무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토록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골품의 벽도 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왜 안 했던 것일까? 덕만과 춘추가 진정 나누어진 두 개양성의 각각의 주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이제 자신도 늙었음을, 그만 세상에서 물러나야할 때가 되었음을 뼈저리게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세종공과 설원공이 서로 물고 뜯으며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모른 척 서라벌을 떠나 외유를 즐기고 있다. 차분하게 마치 인생을 정리하는 듯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은퇴를 결심한 노정객의 모습이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은 없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절대 죽지 않아. 왜? 나는 미실이니까.” 이게 예고편에서 미실이 보여준 대답이었다. 덕만공주가 춘추에게 말한다. “너와 나는 모두 실패했어. 우린 둘 다 실패한 거야. 네가 무얼 했는지 알겠니? 잠자던 용을 깨운 거야.” 마치 무덤처럼 고요한 적막을 가르며 솟아오르는 서릿발 같은 광기, 이게 바로 미실의 힘 아니던가? 

그러나 덕만공주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 미실은 덕만공주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춘추도. 그녀는 이들이 미래의 신라를 이끌어갈 기둥임을 알게 되었다. 또 이 두 사람을 통해 그녀의 인생이 얼마나 부질없었던 것인지도 알았다. 이제 한 시대가 갔음도 깨달았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전의가 불타오른다.  

김춘추, 잠자던 용 미실을 깨운 것은 의도한 실수?  

젊은 시절의 혈기가 되살아남도 느꼈을 것이다. 미실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진골왕족이다. 그럼 덕만공주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미실의 반격으로 얻게 될 덕만과 춘추의 동맹이다. 잠자던 용 미실과의 일대 회전은 쇠사슬보다 튼튼한 두 사람의 동맹을 요구한다. 이 동맹으로 덕만은 최고의 전략가를, 춘추는 든든한 미래의 후원자를 얻게 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지 않던가. 음이 있어야 양이 있는 법이다. 빛은 어둠을 뚫고 나온다. 강력한 적이야말로 아군의 강고한 연대의 원천이다. 그러나 미실이란 존재는 덕만공주보다는 김춘추에게 더욱 긴요한 존재인 듯하다. 덕만은 성골로서 어차피 왕이 될 것이지만, 쫓겨난 진지왕의 손자인 춘추에겐 신흥세력을 형성할 절호의 기회다.
 
그러고 보면 내일 덕만이 춘추에게 하기로 돼있는 말은 실은 틀린 것이다. “넌 실패했어. 네가 무얼 했는지 알겠니? 잠자던 용을 깨운 거야.” 아마 춘추는 속으로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이모, 사실은 내가 일부러 잠자던 용을 깨운 거예요. 난 퇴출된 왕족이에요. 세력도 없어요. 혼돈은 내게 기회죠. 이번 기회에 난 이모에게 최고의 공신이 될 거에요.’

마지막으로 춘추가 용춘공에게 한 말을 되새기며 글을 마무리하기로 하자. “숙부, 나는 분명 미실보다 훨씬 오래 살 거예요. (그러니 저와 동맹을 맺는 게 숙부에게도 좋지 않겠어요?)” 춘추가 일부러 잠자던 용을 깨운 것인지, 실수로 깨운 것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춘추는 미실은 물론 덕만공주보다도 오래 살 것이라는 사실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춘추가 골품제도를 일러 천박하고 야만스러운 제도라고 일갈했다. 그것도 성골 왕인 진평왕 앞에서.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결론은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 김춘추는 덕만공주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공주님은 어떤 마음으로 신라에 오셨습니까? 저는 또 어떤 마음으로 신라에 온 것 같습니까?"
 

사서에 등장하는 김춘추는 탁월한 외교전략가였다.


김춘추, "나는 신라를 가지기 위해서 왔다!"

그리고 김춘추는 힘주어 말했다. "저는 신라를 가지기 위해 왔습니다." 이미 덕만공주도 오래전에 같은 말을 했었다. "신라를 먹어버릴 거야." 그리고 그 말은 곧 "내가 신라의 왕이 되겠다"는 확신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덕만공주는 바야흐로 왕이 되려고 한다. 아무도 꾸어보지 못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꿈, 여왕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김춘추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춘추는 말한다. "신라 역사에서 아무도 꾸어보지 못한 두 가지 꿈이 있어. 하나는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골이 왕이 되는 것이지. 그런데 그 둘 중 어느 게 먼저 될까? 여왕? 아니면 진골 왕?" 묘한 웃음을 흘리며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지는 김춘추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진심은 무엇일까?

그러나 이미 우리는 김춘추의 마음을 그의 입을 통해 충분히 들었다. 그는 덕만에게 "나도 이모님과 마찬가지로 신라를 가지기 위해 바다를 건너 왔다"라고 말했으며, 엊그제는 진평왕과 대등들 앞에서 "골품제도는 천박하고 야만스러운 제도"라고 일갈했던 것이다. "그래, 성골만 왕이 되란 법이 있소? 나 진골도 왕이 되고 싶소!" 이게 그의 진심인 것이다.

그리고 김춘추는 입국하자마자 염종을 수하에 두고 비담을 포섭하기 위해 저울질 하는 등 나름대로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나아가 미생과 친하게 지내면서 적을 안심시키고 내부를 교란시키는 양동작전까지 펼치고 있다. 가히 외교술의 귀재였다는 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 우리가 짐작하는 것이 맞는다면, 김춘추는 기골이 장대하고 빼어난 용모를 지녔으며 뛰어난 두뇌와 유창한 화술의 소유자였다. 당태종조차도 김춘추를 칭찬했다고 하니 그가 고구려와 일본, 중국을 넘나들며 외교전을 펼친 것이 우연한 일은 아니었을 듯하다. 게다가 김춘추는 출중한 지혜뿐 아니라 대범한 용기까지 지니고 있었다.  

김춘추는 뛰어난 외교전략가에 행동가였다

감히 누가 있어 용담호혈에 주저 없이 들어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김춘추는 스스로 죽을지도 모를 길을 주저 없이 갔다. 그리고 실제로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에게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그런 그였으니 진평왕 앞에서 감히 "골품제도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제도"라고 일갈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국기를 뒤흔드는 일이다. 골품제도는 신라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라가 아니라 신라왕실을 지탱하는 장치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곧 역모다. 성골왕족을 부정하고 역모를 일으키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을 김춘추가 왕 앞에서 한 것이다.

사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친손자이면서 동시에 진평왕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못할 소리도 아니다. 그의 입장으로 보면 성골남진한 상태에서 충분히 왕위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 김춘추는 진평왕에 의해 폐위된 진지왕의 친손자요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진골귀족일 뿐이다.   
 
아무래도 김춘추가 왕이 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역시 덕만공주의 부마가 되어 부군이 되는 것이다. 부군이란 태자가 없을 때 공주의 부마를 다음 왕위계승자로 삼는 신라만의 독특한 제도다. 이런 제도는 근친혼이 성행하던(혹은 권장되던) 신라였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어차피 부마도 결국 같은 왕족이니까.   

실제로 부군의 지위에 올라 왕이 된 예는 많았다. 석탈해가 그랬으며 김씨족 최초의 왕인 미추왕이 그랬다. 내물왕과 실성왕도 모두 사위로서 왕이 된 케이스다. 그러니 성골 태자가 없을 경우에 진골귀족 중 한 명을 성골 공주의 부마로 맞아 부군으로 삼는 것이 신라의 전통이며 자연스럽게 후계를 확정짓고 정국을 안정시키는 방법이다. 

김춘추의 위험한 발언, "성골만 왕이 되란 법 있나?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김춘추가 굳이 왕이 되고 싶다면 이미 미실과 계획한 것처럼 덕만공주와 혼인해 부군이 되면 될 일이다. 덕만은 김춘추에게 외가 촌수로는 이모(3촌)가 되지만, 친가로 보면 6촌 형제간이다. 근친혼을 신국의 도라 하여 권장하던 신라사회에서 6촌 형제간인 덕만과 춘추가 결혼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물론 역사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드라마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신라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겠다는 연출의도에 따라 연대나 인물 등에 대해 각색의 가위질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는 역사적 사실도 있는 법이다. 선덕여왕과 김춘추의 관계가 그렇다. 

그래서 진골인 김춘추가 성골 왕 진평왕 앞에서 감히 역모에 준하는 발언을 한 것일까? "폐하, 어찌 성골만 왕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저 진골도 왕이 되고 싶사옵니다. 저를 후계자로 삼아주시옵소서." 그러나 이는 분명 매우 위험한 발언임에 틀림없다. 진평왕은 5촌 조카이면서 동시에 외손자이기도 한 김춘추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고 하면 위 인물들 중 누가 제일 기뻐할까?

 
그러나 다른 신료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당장 김춘추를 참하라고 소를 올릴 것이다. 만약 그들 귀족들도 김춘추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특히 미실과 세종 일파의 경우에, 다른 의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도 진골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기회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때문에 속으로는 김춘추의 발언에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이고 있는 권력을 둘러싼 역관계로 보아 김춘추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다음 왕위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세종이다. 이것은 미실이 평생을 꾸어오던 꿈, 곧 황후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김춘추는 "성골만 왕이 되고 진골은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야만적"이란 따위의 발언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김춘추에게 필요한 것은 세력이다

오히려 김춘추는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으며, 덕만공주야말로 하늘이 예언한 개양자로서 나라를 다스릴 임금의 재목'이라고 진평왕에게 품해야 옳은 일이다. 나아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덕만공주의 결정이야말로 참으로 현명한 판단이라고 부추겨야 옳은 일이다. 그 길만이 "신라를 가지기 위해 돌아왔다"라고 말하던 그의 야심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설령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땅 속에 묻어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고 하더라도 김춘추의 생각대로는 절대 될 수가 없다. 왜? 김춘추는 미실 일파가 몰아낸 진지왕의 손자이기 때문이다. 김춘추는 패주의 자손이다. 그리고 진지왕을 패주로 만든 것은 미실과 세종, 설원공 등이다.

실제로 역사에서도 김춘추는 선덕여왕 16년과 진덕여왕 7년을 합하여 무려 20년이 넘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진덕여왕이 죽은 후에도 김춘추는 바로 왕으로 추대되지 못했다. 삼국사기에 보면 귀족들이 화백회의를 열어 알천공을 왕으로 추대했지만 알천공은 자신은 늙고 덕이 없음을 들어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진실일까?

온갖 부패혐의에 시달리면서도 대통령이든 총리 자리든 연연하는 오늘날의 세태로 보면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 될 수도 있는 미담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런 미담은 대체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럼 왜 알천공이 왕 자리를 고사했을까? 바로 김춘추의 뒤에는 김유신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월성전투의 승리로 비담의 난을 제압한 이후 김유신은 신라의 무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이러니지만 후일의 김유신과 김춘추를 만들어 준 것은 바로 비담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알천공이 김춘추에게 왕위를 양보한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목숨은 두 개가 아니니까.

김춘추가 해야 할 일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이때부터 화백회의는 사실상 그 기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집권을 통해 왕권이 강화된 신라에서 화백회의는 왕의 괴뢰기구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법흥왕 때부터 대등들을 각 행정기관의 장으로 배치해 왕권의 통제아래 두려던 시도는 김춘추가 왕이 될 무렵에는 거의 복종하는 관계로 굳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김춘추가 덕만공주에 맞서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대드는 것은 난센스다. 아니 치명적 실수다. 지금은 은인자중할 때다. 조용히 세력을 키우며 때를 기다리는 게 그가 할 일이다. 영민한 그로서는 분명 언젠가는 자기에게 기회가 올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나라에 유학까지 한 김춘추라면 태공망의 고사쯤은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잠시 미쳤던 것일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당신이 통치하던 시대엔 왜 발전이 없었을까요?"

덕만공주가 미실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이 대사를 들으며 우리는 역사적 사실 따위는 잠시 잊어야 합니다. 미실이 진평왕을 제치고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라도 통치행위를 했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미실은 드라마상에서 실질적인 통치자입니다. 진평왕은 허수아비 황제에 불과하죠. 미실은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화백회의도 쥐고 있고, 병부령을 통해 군권도 장악하고 있습니다. 


미실이 시대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사람에 백성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시대의 주인이 된다!" 미실은 그 사람을 귀족들로 보았습니다. 미실은 유력한 귀족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나머지 귀족들은 당근과 채찍을 병용하는 수법으로 통제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공포를 통해 지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미실에게 백성이란 시대의 주인이 되기 위해 얻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통제해야할 대상에 불과한 피지배자일 뿐입니다. 

미실은 마치 오늘날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부자들에겐 세금을 깎아주거나 갖은 특혜를 베풀면서도 정작 서민들에게선 그나마 주어지던 복지혜택을 빼앗아가는 MB정권의 과거형이 바로 미실입니다. MB에게 얻어야할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재벌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입니다. 미실과 세종 등 진골귀족 일파는 MB와 재벌 등 기득권 세력의 과거형입니다. MB의 국민관과 미실의 백성관이 닮았음은 물론입니다.

"아니 내 돈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한단 말이야. 공주라고 해도 그건 용납할 수 없어." 핏대를 올리는 하종의 모습은 마치 MB정권을 배출한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화백회의의 대등들이 고대 신라사회의 진골귀족들로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을 독점하고 있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종과 난투극을 벌이는 용춘은 전형적인 민주당 의원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용춘과 하종이 덕만공주의 쌀값 안정 정책을 놓고 결투를 벌이는 듯한 장면에서 웃음이 나왔지만, 작가의 기발한 발상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용춘공이 폐위된 진지왕의 아들이긴 하지만 어쨌든 왕자 출신인데 과연 그럴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하종도 만만찮은 골품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용춘공에게 꿀릴 것이 하나도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용춘공은 입장은 매우 난처하지만―그도 역시 매점매석을 했으므로―세종이나 설원공 일파와는 달리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그는 덕만공주의 편에 서서 화백회의 내 야당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그러나 덕만공주만 아니었다면 그도 세종 일파와 별로 다르지 않은 행보를 취했을 것입니다. 이건 미실이 오래전에 덕만공주에게 한 말을 상기해 보시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덕만공주가 처음 궁궐에 들어왔을 때 미실이 무어라고 했지요?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세종공이든 용춘공이든 또는 보종이든 유신이든 알천이든 모두 한 편이다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공주와 나는 경쟁자가 되겠지만, 횡으로 나누면 우리는 한 팀이랍니다. 공주님과 나는 어차피 지배계급의 일원이니까!" 이 말은 이렇게 바꾸어도 되겠군요. "공주님과 저는 권력을 두고 다툴 때는 경쟁자이지만, 백성들 앞에서는 한 편입니다. 무지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우리가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할 때 우리는 힘을 합쳐 백성들을 통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덕만공주가 폭동을 일으킨 백성들과 직접 소통하겠다고 나섰을 때, 덕만공주의 편에 선 귀족들도 반대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미실 일파에 반대하여 투쟁하긴 하지만, 역시 그들도 지배층의 일원이란 자각 때문이죠. 이 장면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큰 대목입니다. 미실 일파도 나쁘지만 용춘공을 비롯한 착한 귀족들도 결국은 귀족들일 뿐이란 진실이 슬프지만 아픈 지점이었죠. 

경주 낭산 정상 선덕여왕릉. 사진속의 인물은 자전거를 타고 경주투어에 나선 아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덕만공주가 미실에게 던진 질문을 한번 더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이 통치하던 시대엔 왜 발전이란 것이 없었을까요?"

미실은 이 말을 듣고 찔끔합니다. 역시 미실은 세종이나 설원공과는 차원이 다른 귀족입니다. 그녀는 실질적인 통치자입니다. 세종 등은 그저 눈 앞에 보이는 개인의 이익에만 몰두하지만, 미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녀는 최고 통치자로서 큰 판을 보아야 합니다. 그녀는 사람을 얻기 위해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자들의 배를 불려주는 일에 골몰하다보니 큰 것을 놓친 것입니다. 

덕만공주의 말을 듣고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잠깐이었지만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고 말 것입니다. 그녀에겐 시대의 주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확보한 사람들을 잃어선 안 되고, 그들을 잃지 않으려면 그들의 배를 적당히 불려주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MB가 제 아무리 위기의식을 느끼고 서민행보―쇼맨십뿐이지만―를 하더라도 결국은 제 사람들의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 알고 보면 제 사람들의 이익이란 것이 사실은 자기 이익이기도 합니다. 미실도 처음엔 큰 야망을 가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가진 계급적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덕만공주는 다릅니다. 그녀는 비록 성골이긴 하지만 황실에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멀리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장사를 배우며 잔뼈가 굵었습니다. 백성들에게 고품질의 농기구와 자영지를 주어야겠다는 발상도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덕만과 미실의 차이는 성골과 진골의 문제가 아닌 경험의 차이 

반면 미실은 어떻습니까? 그녀는 자신이 성골이 아니란 사실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긴 하지만, 그녀 역시 진골귀족으로 왕족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황실에서만 줄곧 살았습니다. 그녀가 제 아무리 원대한 통치자의 이상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 한계는 명백합니다. 백성들 속에서 백성들과 함께 살며 백성들의 마음이 곧 자기 마음이었던 시절이 단 한 순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미실에게 백성이란 겁을 주어 통제해야할 대상일 뿐입니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시에 매우 귀찮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MB나 박근혜가 가진 한계도 마찬가집니다. 젊은 시절부터 현대건설 이사로, 사장으로, 회장으로 군림해온 MB, 어릴 때부터 청와대에서 공주처럼 살아온 박근혜는 미실의 현재형입니다. 그들 역시 미실이 가진 한계로부터 한 발짜욱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세종이나 하종, 설원공 일파의 현재형입니다. 그들의 한계 또한 명백합니다. 아마도 용산참사를 바라보는 미실과 덕만의 의견도 극명하게 엇갈렸을 것입니다. 

"안강의 백성들이 성을 점거한 것은 폭동입니다." "아니에요. 그건 폭동이 아니에요. 폭동이란 역모를 목적으로 일으키는 것이지 살기 위해 하는 건 폭동이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생존이라고 하는 거죠."  

그럼 민주당은? 그들이 가진 한계도 분명하다는 것을 오늘 드라마 선덕여왕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용춘공이 바로 민주당의 과거형입니다. 그는 선덕여왕에서 매우 의기가 있고 양심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덕만공주가 왕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할 사람입니다. 게다가 그는 장차 태종무열왕이 될 김춘추의 삼촌(사서에서는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미실의 말처럼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지배계급의 일원일 뿐입니다.

어떤 분은 오늘 선덕여왕을 보고 매우 불쾌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니 어떻게 미실에게 당신은 주인이 아니라서 나라를 발전시킬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지? 그럼 자기는 성골이고 나라의 주인이니까 발전을 시킬 수 있다, 이런 말인가? 이런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가 대체 가당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맞습니다. 오늘날 양심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죠. 나라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니며 오로지 국민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성골도 진골도 아닌 국민들이 직접 통치할 때만 발전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골이든 진골이든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일 것은 자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골의 이익이냐, 진골의 이익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내일은 김춘추도 한마디 거들 모양입니다만, 도대체 성골이니 진골이니 이런 시대에 뒤떨어진 분류가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내친 김에 한말씀 더 드리면 김춘추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가 김춘추를 어떻게 그릴지는 더 두고 봐야 알 일이겠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은 고대 신라사회의 골품제로부터 얼마나 발전했을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어떨까요? 우리는 과연 고대 신라와는 다른 정치체제에서 살고 있을까요? 혹시 우리는 아직도 그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혹시 미실이 말한 세상을 횡으로 자른 위에 존재하는 사람들끼리 파당을 지어 다투다가 국민들 앞에서는 한 편이 되어 자기들 이익을 챙기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한 미실의 말이 섬뜩하게 다가오는군요.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공주님과 나는 경쟁자가 되겠지만, 횡으로 나누면 우리는 한 팀이랍니다. 공주님과 나는 어차피 지배계급의 일원이니까!" 

우리는 여전히 골품제 하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설마 아니겠지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문노가 어이없이 죽었다. 기껏 김춘추가 찢어 주렴구 같은 장난감을 만들어 놀게 될 삼한지세를 김유신에게 전달하기 위해 길을 가다 독침에 맞아 죽었다. 절세의 무공을 지닌 그가 이리도 허망하게 죽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문노는 곧 죽게 될 것이 자명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가리라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노는 왜 염종 같은 인물을 수하에 두고 중요한 임무를 맡겼을까?

문노의 수하에 염종을 두었다는 자체가 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염종이 삼한지세를 작성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문노의 능력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한 오류였다. 물론 우리가 염종이란 인물의 결말을 미리 알고 있기에 이런 생각도 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것은 문노의 명백한 실수다. 

그러고 보면 문노는 무예가 출중한 것을 빼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일을 처리한 것이 없다. 드라마 초반에 문노는 진흥왕으로부터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이길 자가 오리라"는 예언을 받은 인물이다. 그리고 문노는 진흥왕으로부터 또 다른 유지를 받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짐작하듯 삼한통일의 비결이었을 터이다. 

삼한을 통일하는 방법은 결국 무력에 의한 병합뿐이다. 요즘처럼 테이블에 앉아 연방제니 연합제니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당시에 민족의식이 있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삼한지세는 그래서 작성했으리라. 

그리고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비담을 선택했다. 이는 나중에 문노도 깨달았지만, 실수였다. 비담은 삼한지세의 주인이 될 수 없는 자였다. 그의 속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어있었다. 문노는 그것을 보았다. 비담은 목적을 위해 사람을 가차 없이 죽일 수 있는 인면수심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문노는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노는 삼한지세를 만드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비담이 더 이상 삼한지세의 주인이 될 수 없음을 알았는데도 왜 계속 삼한을 누비며 삼한의 정세를 파악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을까? 진흥왕의 유지 때문이었을까? 애초에 문노는 무엇 때문에 삼한을 통일시키고 전쟁을 종식시킬 주인공으로 비담을 선택했을까?

문노의 죽음과 함께 예언에 관한 모든 비밀도 미궁 속으로 사라지나

그리고 미실을 이길 개양성의 주인과 삼한을 통일시킬 역사의 주인은 달랐던 것일까? 이것 또한 진흥왕으로부터 받은 예언 중 일부였을까? 그런데 어떤 연유로 삼한을 통일시킬 인물로 비담을 점 찍었을까? 그리고 비담과 덕만을 혼인시키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것은 문노의 어이없는 죽음과 함께 미궁 속으로 사라졌다.
 
오랜 세월 신비한 구름 속에 잠적해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던 그가 다시 나타났지만 이에 대한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미실의 아들과 덕만을 혼인시키려 했다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으로 사람들을 당혹케 만들었다. 그리고 이마저도 실패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마지막에 역사를 변혁시킬 만한 중요한 임무 두 가지를 이루었다.  

그 하나는 김유신을 풍월주에 앉힌 것이다. 만약 이대로라면 김유신은 절대 풍월주가 될 수 없었다. 물론 진짜 역사에서는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패망한 가야의 왕손인 김유신 가문은 살아남기 위해 못할 일이 없었다. 유신의 조부인 김무력은 전장에 나가 백제 성왕을 죽이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우며 신라 최고의 지위 대각간에 올랐다.

김서현은 어땠는가. 그는 만명공주와 사랑의 도피행각까지 벌이며 김유신을 낳았다. 그러나 만노군 태수로 부임하던 김서현을 만명공주가 따라 나선 것이 도피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시는 신라 최고의 명장 김무력이 건재하고 있던 때이다. 드라마에서처럼 김서현이 만노군에 추방되어있었다는 것은 사실과 달랐을 것이다. 

김유신이 풍월주에 오르던 612년에도 김무력은 여전히 건재하게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614년에 죽은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유신이 풍월주가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화랑세기에서처럼 미실의 가문과 혼인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김유신을 풍월주에 올린 것은 문노 생애 최고의 공적

아마도 드라마에서 미실이 그토록 유신을 얻고자 안달하는 장면은 화랑세기에서 호림공의 부제였던 보종으로 하여금 유신에게 풍월주를 양보하라고 설득하는 데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다. 권력의 정상에 있던 미실도 김유신 가문과의 제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어쨌든 문노는 궁지에 몰린 덕만공주를 위해 김유신을 풍월주에 앉히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원래 풍월주는 비재를 통해 뽑는 것이 아니라 원로들의 결정에 의해 임명하는 자리다. 특별한 하자가 없다면 부제가 승계하는 것이 전통이다. 따라서 풍월주 호림공의 뒤를 이어 보종랑이 풍월주가 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러나 미실은 유신이 풍월주가 되도록 했다.

이것은 화랑세기의 이야기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처리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비재를 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문노는 김유신이 풍월주가 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다음 문노가 이룬 또 하나는 삼한지세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적에 관한 정보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삼한지세를 유신에게 전하려던 이 두 번째 임무는 염종의 암습에 의해 불발로 끝났다. 예고편에서 염종을 사주한 것은 김춘추라는 암시가 나온다. 그러나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수나라에서 돌아온지 며칠 되지도 않은 애송이가 언제 문노란 존재에 대해 파악을 했으며, 문노가 삼한지세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단 말인가. 

그러나 어찌 되었든 삼한지세는 김춘추에게로 갔다. 김춘추는 삼한지세를 뜯어 주렴구를 만들어 던지는 장난질을 치고 있다. 그가 삼한의 형세를 분석한 기서의 내용을 제대로 읽기나 한 후에 뜯어 장난감으로 썼는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알겠지만, 삼한지세가 김춘추에게로 갔다는 것은 주인을 제대로 찾아간 것임에는 틀림없다.

비담이 잉태할 불행의 씨앗은 문노가 뿌린 것

후일 김춘추가 고구려와 일본, 당나라를 드나들며 외교 전략을 펼치며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삼한지세의 주인은 원래부터 춘추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랴. 문노는 살아서도 제대로 일을 처리한 것이 거의 없으며, 죽을 때도 무엇 하나 제대로 알아낸 것이 없다.

오직 하나 있다면 비담의 자기에 대한 진심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죽어가는 문노에겐 커다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노는 여전히 알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비담이 사랑 받지 못하며 자란 불행한 운명으로부터 만들어진 비뚤어진 성정이다. 비담이 스승 문노를 향해 "삼한지세는 내 것"이라고 외치는 것은 애정결핍에 대한 반항이었다는 것을 그는 결국 모르고 죽었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불행을 잉태할 것이란 사실도 그는 모르고 죽었다. 그 불행의 씨앗을 뿌린 것은 결국 자신이란 사실도. 그러니 문노야말로 실로 불행한 인물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역사를 바꿀 만한 두 가지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MBC 드라마에서 선덕여왕 역을 맡고 있는 이요원은 미인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 경주에 선덕여왕을 만나러 가는 길에 김주완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요원은 볼에 살이 붙으니까 예전에 비해 훨씬 낮죠. 전에는 비쩍 말라서 별로더니, 예뻐졌더라고.” 김주완 기자는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선덕여왕도 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역시 세간의 화제인 선덕여왕을 무시할 순 없나봅니다. 선덕여왕(이요원)의 미모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니 말입니다.
 

경주 낭산 정상의 선덕여왕릉. 김주완 기자와 거다란닷컴 커서님이 선덕여왕릉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요원은 일곱살짜리 아이를 둔 애엄마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아이를 낳고 나서 훨씬 미모가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너무 마른 것 보다는 적당하게 살이 붙어주는 게 남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 여자분들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살이 찌면 곤란하겠지요? 적당한 운동과 적절한 식습관으로 몸매를 관리하는 것도 세계평화를 위해 좋은 일이지요. 물론 건강에도 좋습니다. 아무튼, 그렇다면 진짜 선덕여왕은 어땠을까요? 그녀는 미인이었을까요?

선덕여왕의 미모를 추정해볼 수 있는 두 개의 설화

선덕여왕의 미모에 대하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어디에도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김부식은 사기에서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인 승만공주(선덕왕의 뒤를 이어 진덕여왕이 된다)의 신체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자태가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키는 칠 척이고 팔을 늘어뜨리면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이로 보아 선덕여왕의 자태를 가늠해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선덕여왕 역시 진덕여왕처럼 키가 크고 자태가 풍만한 아름다움을 지녔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선덕여왕의 미모를 추정해볼 수 있는 두 개의 설화가 있습니다. 그 하나가 당태종이 보냈다는 향기 없는 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나라에서 꽃씨와 함께 그림을 보냈는데 이를 본 덕만공주는 단박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는 꽃이다.” 과연 꽃씨를 심어 후에 핀 꽃을 보니 향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는 선덕여왕의 뛰어난 지혜를 드러내고자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와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당태종이 향기 없는 꽃그림을 보낸 것은 선덕여왕을 비하하기 위해 그랬다는 겁니다. “그대는 미모는 꽃처럼 빼어날지 몰라도 향기 없는 꽃에 불과하니 어찌 신라의 왕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아마 이런 메시지를 보내 여왕의 권위에 흠집을 내고 분란을 일으켜 모종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책이 숨어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쨌든 이런 설화로 미루어 살펴보면 선덕여왕의 자태나 풍모가 범상치 않았다는 짐작을 능히 할 수 있습니다.

신라밀레니엄파크 선덕여왕세트장에서 찍은 사진

그러나 이보다 더 확실하게 선덕여왕의 미모를 짐작케 해주는 설화가 있습니다. 바로 선덕여왕을 사모하여 연못에 빠져 죽은 지귀의 전설이 그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모르는 분이 아무도 없겠지만, 한 번 더 들어보시기로 하겠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시대에 지귀라는 거지가 살았습니다. 그는 활리역에서 노숙을 하며 살았는데, 하루는 서라벌에 나왔다가 행차를 나온 선덕여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홀딱 빠져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맏딸로서 성품이 인자하고 지혜로울 뿐 아니라 용모가 매우 아름다워 백성들의 칭송과 찬사가 자자했는데 한 번 행차를 나오면 모든 사람들이 여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거리를 가득 메웠다고 합니다.

지귀, 선덕여왕의 미모에 흠뻑 빠지다

지귀도 사람들 틈에서 선덕여왕을 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그는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못하고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여왕이 날 안으면 아이고 죽겠네. 아이고 죽겠네.” 사람들이 그의 이 기괴한 행동에 화를 내며 매질을 하였으나 그의 이런 행동은 멈추지 않고 늘 선덕여왕을 사모하는 노래를 부르며 혼자 울기도 하기 웃기도 하는 등 점점 미쳐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욕하기도 하고 동정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문은 급기야 전국으로 퍼졌고 여왕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하루는 여왕이 영묘사에 기도를 드리기 위해 행차를 가는데 지귀가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여왕이여. 사랑하는 나의 여왕이여.” 지귀가 가까이 다가오자 신하들이 제지하여 그를 내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왕은 “어찌 나를 만나러 온 사람을 내친단 말이냐” 하고 신하들을 꾸짖고 지귀가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도록 했습니다. 지귀는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추며 여왕의 행렬을 따라갔습니다. 

선덕여왕이 불공을 드릴 동안 탑 앞에 앉아 기다리던 지귀는 한참이 지나도 여왕이 나오지 않자 안타깝고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신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지귀는 마침내 지쳐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불공을 마치고 나오던 선덕여왕은 쓰러져 잠이 든 지귀를 보았습니다. 자기를 사모하다 지쳐 잠이 든 지귀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여왕은 자신의 팔목에서 팔찌를 풀어 잠든 지귀의 가슴(성기 위 옷 부분이란 설도 있다)에 올려놓고 떠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무튼 잠에서 깬 지귀는 선덕여왕이 자기의 사랑을 인정해준 것이라고 여기고 팔찌를 가슴에 꼭 껴안은 채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가슴속에서 터져나온 불길에 온 몸이 새빨간 불덩어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지귀가 탑을 잡고 일어서다가 탑도 불기둥에 휩싸였으며 거리도 온통 불길로 뒤덮였습니다. 이후부터 불귀신으로 변한 지귀가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화재를 당하는 백성들이 늘어나자 선덕여왕은 다음과 같은 주문을 지어 집에 붙이게 했습니다.  

지귀는 마음에 불이 일어
몸을 태우고 화신이 되었네.
푸른 바다 밖 멀리 흘러갔으니
보지도 말고 친하지도 말지어다.

볼 만한 것도 많고 공연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식당 음식맛이 없었다. 아무리 좋아도 음식 맛이 없으면 다 안 좋게 된다.


거지의 사랑도 받아들일 줄 아는 선덕여왕이야말로 절세의 미인

그러자 모두 화재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선덕여왕이 지어준 주문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불귀신이 된 지귀가 선덕여왕의 뜻만 쫓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불귀신이 되어서도 선덕여왕을 향한 지귀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귀의 숭고한 사랑도 대단하지만 대체 선덕여왕의 미모가 얼마나 빼어났기에 귀신의 마음마저 움직였던 것일까요? 어쨌든 위 두 개의 설화를 통해 우리는 선덕여왕이 대단한 미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덕여왕의 미모는 무엇보다 노숙을 일삼는 거지와 같은 일반 백성의 사랑도 받아들일 만큼 넓은 도량을 가진 마음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MBC드라마의 선덕여왕도 백성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주의 신분을 회복했음에도 죽방을 일러 여전히 ‘형님’이라고 불러주는 덕만, 선덕여왕의 아름다움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귀의 전설에 나오는 선덕여왕도 마찬가지죠. 누가 감히 선덕여왕처럼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므로 선덕여왕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절세의 미녀였음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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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보덕동 | 신라밀레니엄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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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문제를 푸는 재미도 있습니다. 대체로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데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이미 드라마에서 여러 장치들을 통해 어느 정도 신경을 쓰면 알 수 있도록 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 힌트를 주기도 합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은 오히려 관심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드라마 제작진의 고도의 계산이 깔린 전술이란 생각이 듭니다.
 

시중에 많이 나온 <소설 선덕여왕>들도 답을 맞히는데 한 몫을 합니다. <필사본 화랑세기>를 읽어본 독자라면 더 쉽습니다. 구체적인 예가 이번에 문노가 낸 문제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너무 어려워서 아마 맞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요. 닌자 임무를 열심히 수행하며 미실의 총애를 받는 보종이 아니고선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두 번째 비재의 정답은 화랑세기에 나온다
 
그러나 두 번째 문제는 사실 화랑세기를 유심히 읽어본 독자라면 쉽게 맞출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덕업일신 망라사방" 이는 화랑세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라란 이름의 세 가지 의미를 전하는 국사를 미실이 조작한다든지, 이를 간파한 거칠부가 밀서를 통해 진흥왕의 소엽도에 새긴 세필을 살피라고 하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입니다.

어쨌든 두 번째 문제의 정답은 삼한통일입니다. 신라란 이름은 서라벌이 세력을 팽창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며 결국 그 끝은 고구려와 백제를 통일하는 것으로 완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미실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 회상이란 결국 미실이 황후가 되려고 했던 음모에 관한 것들입니다.

진흥왕이 죽은 후―미실이 독살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게 되었다―미실은 진지왕에게 황후 자리를 약속 받고 왕관을 건네지만 진지왕은 약속을 어깁니다. 진지왕을 몰아내고 진평을 왕으로 세운 미실은 그러나 이번에도 황후 자리를 얻는데 실패합니다. 격분한 미실은 황실서고에 들어가 국사 중 한권을 불태워버립니다.

그 책에는 지증왕이 유지로 내린 신라의 세 가지 의미가 적혀 있었습니다. 왜 미실은 다른 국사는 놔두고 이 책만을 골라 불살라버렸는가. 거기에 대해선 미실의 회상이 자세히 설명해줍니다. 무력증진, 신흥세력, 삼한통일, 이 중 마지막 세 번째 삼한통일이란 실로 '이룰 수 없는' 원대한 이상입니다. 그러나 이는 왕권강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왕권이 강화된다는 것은 반대로 귀족들의 권한이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황후가 된다면 왕권이 자기 것이 되므로 이 유지는 가치 있는 것이지만, 이제 황후전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진골귀족에 불과한 자신에겐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이루어져서도 안 되는 유지라고 미실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이 기록된 국사를 태워 없앤 후 새로 만들게 한 것입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미실에게 삼한통일은 하나의 이용물일 뿐

참으로 무서운 여자입니다. 삼한통일의 대의마저도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용합니다. 그리고 자기 권력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그 대의마저 부정하고 탄압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덕만공주는 삼한통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녀는 아직 신라의 의미를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번 주 마지막 장면에서 진흥왕의 소엽도에 세필로 새겨진 '덕업일신'을 읽는 것으로 드라마는 끝났습니다. 다음 주에 그 다음 구절, '망라사방'을 읽고 마침내 삼한통일의 대업이 신라왕의 임무임을 깨닫게 되겠지요. 그녀가 왕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서라벌로 돌아온 것은 그녀의 언니 천명이 자기 눈앞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미실에게 복수하기 위해 왕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공주 신분만으로는 미실을 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게 출발한 그녀는 문노를 만나 차츰 신라왕의 대업에 대한 깨우침을 얻게 됩니다. 문노도 결국 진흥왕이 예언한 개양자를 위해 마련된 장치였습니다. 개양자가 가는 길을 안내하는 등불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덕만공주는 삼한통일의 대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왕권강화를 위한 강력한 기제라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덕만공주의 깨우침이 이걸로 끝날까요? 그렇다면 덕만공주는 미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미실도 덕만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공주님은 이 미실보다 훨씬 간교합니다."

성골의 신분으로 자기 권력을 확보하고 확대하는 데만 골몰한다면 틀림없이 미실의 말처럼 덕만은 미실보다 더 간교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미실은 태어나면서부터 권력 속에서 권력과 함께 권력을 누리며 자랐습니다. 미실은 늘 미천한 자신의 신분을 탓하며 살았지만, 사실은 미실의 신분이 그렇게 미천하지 않습니다. 

민중 속에서 만들어진 덕만의 꿈은 삼한통일도 민중적으로 해석할 것

그녀는 진골귀족 중에서도 권세가 막강한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늘 황제와 가까운 거리에서 황후의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성골이 아닌 것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녀는 "내가 만약 성골이었다면, 그리고 황후가 될 수 있었다면 아마 다음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내가 보기에 별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황후전을 차지하지 못하게 되자 지증왕의 삼한통일의 유지가 전해지는 국사를 불태운 그것이 그녀의 본심입니다. 이에 비해 덕만은 어떻습니까? 그녀는 비록 성골이라고는 하지만 민중 속에서 자랐습니다. 민중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녀는 민중의 고락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 자신이 민중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그녀가 삼한통일의 대업을 받았을 때 그것을 단순히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할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민한 그녀는 그러지 않으리라 봅니다. 마음이 따듯한 그녀는 분명 다른 대의를 찾으리라 봅니다.  

당시는 삼국이 국경을 맞대고 각축을 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였습니다. 늘 전쟁으로 백성들은 피폐했습니다. 어느 누가 통일을 이루지 않고서는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종식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에서 불거져 나온 전쟁과 협상의 노예'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켜야만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덕만공주는 틀림없이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눈물이 흐르지 않는 나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삼한통일의 대업은 권력기반의 문제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의 문제임을 직시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처음부터 공주가 아니라 민중 속에서 민중과 함께 자란 민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미실과 확연히 다른 점입니다. 

백성의 삶과 무관한 삼한통일은 그저 전쟁놀음일 뿐이다

아마도 이 지점은 지증왕도 생각한 것이 아니었으며, 진흥왕이나 문노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을 겁니다. 물론 그 시대의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방 같은 평민이라면 신라의 의미를 단박에 깨달았던 것처럼, 덕만공주라면 지증왕이 생각한 이상을 생각하는 지혜를 가졌을 게 분명합니다.

아무튼 다음 주를 기대해보지요. 다음 주엔 보종이 유신랑에게 실컷 혼나겠군요. 참고로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종은 유신랑의 부제가 됩니다. 그리고 유신랑의 뒤를 이어 풍월주에 오르죠. 이 점을 살피면서 드라마를 보신다면 향후 덕만공주와 미실의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될지 가늠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건강한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뻔'한 결과를 알면서도 유신과 보종의 결투가 기다려지는군요. 이것 참…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드디어 문노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문노가 첫 번째 하는 일이 풍월주를 뽑는 일이로군요. 김대문이 쓴 화랑세기를 옮겨 썼다고 주장되는 <필사본 화랑세기>에 의하면, 풍월주는 김대문 가문에 세습되는 화랑 최고의 지위였습니다. 김대문의 가문처럼 5대에 걸쳐 풍월주를 세습하진 못했다고 하더라도 2대에 걸쳐 풍월주를 지낸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화랑이란 선발되는 것이 아니라 세습되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을 낳게 합니다. 진골귀족이 세습되는 것처럼 그 진골귀족 중에서도 권문세가의 자제들이 정계에 진출하기 전에 일종의 수련 코스로 거치는 곳이 아닐까 생각되는 거지요. 화랑세기를 집필했다는 김대문 본인도 만약 신문왕 때 화랑제도가 폐지되지 않았다면 풍월주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랬다면 그는 화랑세기를 집필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삼국사기는 삼국시대가 종언을 고한 뒤에야 씌어 질 수 있었습니다. 고려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랑세기도 화랑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이후에야 씌어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화랑제도가 왜 폐지되었는가 하는 것은 고려 초 천추태후와 유사한 이유라고 합니다. 태후간의 권력투쟁의 결과란 것이죠.

어쨌든 화랑도 풍월주도 세습되는 것이라는 화랑세기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문노는 풍월주를 선발하기 위해 비재의 문제를 냅니다. 세 가지 과제 중 첫 번째 문제는 관찰력 테스트입니다. 오랜 세월 미실과 설원공의 명으로 닌자 임무를 수행해온 덕에 보종이 어렵지 않게 정답을 맞힙니다.

첫 번째 관문은 보종의 승리입니다. 유신과 덕만공주 측은 쫓기는 심정이겠지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합니다. 시청자들 중에 보종의 편은 단 한 명도 없으며, 이 게임이 유신과 보종의 대결이란 사실을 모르는 시청자도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유신이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두 번째 문제는 유신이 정답을 맞힐 것이고, 세 번째 무술 시합에서 마침내 보종을 보기 좋게 누르고 김유신은 명실상부하게 화랑의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겠지요. 세 번째 무술 대결이 가장 볼 만 하겠군요. 모두들 이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밤에 전개될 두 번째 문제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신라의 의미 세 가지를 찾아오라는 거지요.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신라란 이름이 처음부터 국호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라가 주변 부족국가들을 통합하면서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중국식 제도와 연호를 받아들여 국호를 신라로 한 것이 아닐가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어떻든 신라의 의미 세 가지라. 저야 풍월주에 오를 재목도 오르고 싶은 욕심도 없는 사람이니 세 가지를 다 맞힐 필요는 없을 거 같고,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새롭게 일어나 주변으로 뻗어나간다'는 자구해석 그대로의 의미를 들겠습니다. 그런데 이 의미가 가만 보니 문노가 덕만공주에게 던진 과제와 비슷하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덕만공주와 마주 앉은 문노는 덕만공주에게 매몰차게 말합니다. "저는 공주님이 왕이 되시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이란 말입니까? 덕만이 타클라마칸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서라벌에 온 이유는 오로지 문노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문노에게 덕만은 아버지와 같은 향수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노의 생각은 달랐죠. 문노는 비담을 덕만과 혼인시켜 왕재로 키우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포악한 성정의 비담은 문노에게 좌절감을 안겼죠. 공주가 왕좌에 오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던 문노는 그러나 덕만공주에게 문제를 제시합니다. 만약 그 문제를 풀면 도와주겠다는 언질과 함께.

그 문제는 바로 "신라의 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라왕의 대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 문제가 풍월주 비재에서 문노가 제시한 두 번째 과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신라의 의미와 신라왕의 대업! 여기에 대하여 이미 덕만공주는 오래 전에 정답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녀는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지 않는 그런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왕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미실을 이기기 위함입니다. 미실을 완벽하게 누르기 위해서는 공주의 신분만으로는 부족한 것이죠. 그래서 왕이 되겠다는 담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노는 그런 덕만에게 신라의 왕이 무엇인지, 신라왕의 대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게 되면 문노라는 강력한 후원자를 얻게 됩니다. 물론 이미 여러분이 눈치 채신 바와 같이 그 답은 국호 신라의 의미와 같습니다.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 바로 삼국통일입니다. 

'눈물이 흐르지 않는 나라'를 만들려면 '인간의 욕망에서 불거져 나온 전쟁과 협상의 노예'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당시는 삼국이 국경을 맞대고 각축을 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였습니다. 늘 전쟁으로 백성들은 피폐했습니다. 어느 누가 통일을 이루지 않고서는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종식시킬 수 없습니다.

신라왕의 대업은 곧 서라벌의 대업입니다. 서라벌이 신라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것은 삼국통일의 이상에서 나온 자연스런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 대업의 선봉에 화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덕만공주에게 던졌던 질문을 풍월주 비재에도 문제로 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문노는 대단한 인물입니다. 

앞서 우리는 문노의 비밀에 대하여 논한 적이 있습니다. 문노가 진흥왕으로부터 받은 예언이 혹 개양자가 삼국통일의 대업을 닦을 인물이란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문노는 개양자인 덕만공주와 비담을 혼인시켜 비담을 왕재로 키울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비담에게 무공을 전수한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문노도 개양자인 덕만공주가 스스로 왕이 되는 것에 대해선 생각도 해보지 못한 모양입니다. 전례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역시 위대한 왕은 누가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되어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 덕만처럼 지뢰처럼 널린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말입니다. 

아무튼 문노가 낸 문제의 정답은 삼국통일입니다. 틀려도 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정답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할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아, 그래도 이거 틀리면 억수로 쪽 팔릴 것 같은데… 오늘밤 기대해 보겠습니다. 삼국통일이 꼭 정답이었으면 좋겠는데, 아니어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래도… ^-^ 삼국통일로 해주세요. 제발~ ㅎㅎ   

ps; 제 예감으로는―예언이 아니고 예감입니다―문노를 통해 신라왕의 대업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덕만공주가 미실을 죽이지 않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름지기 통일이란 원대한 포부를 지닌 지도자라면 상대를, 그게 정적이라고 하더라도, 끌어안는 대범한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그냥 그런 예감이 드는군요. 

ps2; 어쩌면 패배를 인정한 미실이 덕만공주가 여왕이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문노도 그렇고 진평왕도 그렇고 부권사회에 익숙한 진골귀족들이 선덕여왕의 등극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로지 미실만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일본열도가 돌풍에 휩싸였다. "여성자객들에게 자민당의 대표정치인들이 모두 제거 당했다" "자민당을 초토화시킨 오자와의 미녀자객",  이 돈 될 만한 선정적인 기사를 황색언론들이 가만 내버려둘 리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언론의 이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기사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이다.

일본열도의 대반란을 주도한 신예 여성정치인들

기사에서 의도적으로 선정성을 추구하는 수사만 빼버린다면 "일본 민주당의 신예 여성정치인들이 자민당의 거물들을 침몰시켰다"란 분명한 진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녀들이 단순히 미녀라서, 그것도 아주 젊고 매력적인 에너지를 소유했다고 해서 자민당의 대표적인 거물 정치인들을 물리치고 54년 장기집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일본 유권자들은 모두 바보 아니면 호색한들이라고 말해도 별로 틀리지 않을 텐데,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무어라 속단할 수는 없지만, 바다 건너 일본을 우리가 쉽게 판단하는 것이 무리이겠지만, 간단하게 뉴스로 접한 사실들로 보자면 소위 일본 민주당의 여성자객들은 변화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녀들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법을 알았으며 대중들이 무얼 원하는지 알았다. 이에 반해 노회한 자민당의 노정객들은 의연히 관성의 소용돌이 속에 자신을 내맡긴 채 변화하기를 주저하거나 거부했다. 그들은 일본이 변하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진실은 아직은 내 자유로운 상상력의 울타리 안에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믿는다. 과거로부터 주어진 권위를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환경에 능숙하지 못하다. 그들에게 변화는 매우 불편한 것들이다. 설원공이 개중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으나 그 역시 과거의 권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귀족이 아닌 그의 사고가 가장 열려있다.  

미실과 덕만이 천신황녀의 자리를 놓고 다툴 때 그는 이렇게 진언한다. "덕만의 판에 끌려가지 말고 새주의 판으로 끌어들이세요."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판이 가진 강력한 권력의 힘을 이용하라는 계책일 뿐 진정으로 변화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변화를 주도하며 대중과 소통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선덕여왕

그러나 덕만은 어땠는가. 과감하게 상대의 판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상대에게 자신의 진패를 내보이며 승부를 걸었다. 진패를 허패로 위장하려는 덕만의 계책은 적중했다. 그 무모한 용기에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그것은 대중의 힘이었다. 그녀는 상대의 판에 뛰어들어 미실과 직접 승부를 하고자 했으며 대중들을 여기에 불러들였다. 

물론 덕만이 미실처럼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었다면 대중의 힘을 빌리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실이 덕만에게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공주와 나는 경쟁자가 되겠지만, 횡으로 나누면 우리는 한 팀이에요! 당신과 나는 어차피 지배계급의 일원이니까!"라는 말을 할 때, 그녀도 잠시 헛갈리지 않던가. 

그러나 어쨌든 덕만은 대중과 함께 할 것이고 함께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명부인이 황후 마야부인에게 하는 말은 작가가 이에 대해 우리에게 던지는 암시다. 덕만이 미실을 물리치고 얻은 천신황녀의 자리를 버리고 첨성대를 만들겠다고 하자 이렇게 말한다. "덕만공주가 너무 오래 평민들 속에 살아서 황실의 사고를 못하는 거 아닐까요?"

진정으로 염려하는 이 말은 그러나 사실이다. 덕만은 평민들 속에서 살아왔으며 평민들처럼 사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무얼 필요로 하는지를 알고 있으며 그걸 주려고 하는 것이다. 덕만은 월천대사가 무얼 원하는지를 꿰뚫어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백성들의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걸 미련 없이 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시청하면서 유심히 지켜보았지만,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소통이었다. 드라마 초기에 유신이 천명공주에게 한 말을 기억하는가? "내가 진심을 다 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사람들이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그 진심이란 바로 대중과 마음을 다해 소통하는 것이 아닐까?

첨성대는 통치자가 아니라 대중과 함께 꿈을 꾸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선덕여왕의 의지

그런데 이 소통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덕만이다. 그녀는 평민들 속에서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았고 마침내 <사람>을 얻어 최초의 여왕이 될 것이며, 첨성대를 만들어 하늘의 뜻을 독점하지 아니하고 백성들과 공유할 것이다. 그리하여 백성들과 함께 꿈을 꾸는 그녀는 삼국통일의 반석을 이룰 것이다. 이게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닐까? 

첨성대를 통해 하늘의 뜻을 백성들에게 공개함으로써 통치권의 주요 수단을 놓아버리겠다는 덕만공주의 발상은 노무현을 연상시키기도 했지만―이 부분에 대해선 좀 더 생각이 필요할 듯하고 정리해서 새롭게 올리고 싶다. 작가의 의도를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기도 하고―그러나 무엇보다 여성의 장점이 더욱 두드려져 보이는 장면이었다.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자의 특징과 여자의 특징이 무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할 때, 남자는 운동신경과 지각능력이 발달돼있다. 이에 비해 여자는 지각능력은 떨어지지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다. 이는 오랜 구석기시대에 형성된 유전자의 영향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신석기시대를 포함하여―구석기시대의 기나긴 세월에 비하면 찰나에 속한다. 그러므로 유전자의 대부분이 구석기에 형성된 것임은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구석기시대의 생활양식이란 다들 아시다시피 수렵, 어로, 채취다. 남자들은 주로 수렵에 종사했으며 어로와 채취는 여자들이 담당했다. 

이런 오랜 생활양식은 남자들에게는 뛰어난 지각능력을, 여자들에게는 소통능력을 부여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본능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나는 이 말이 진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오늘날 정치를 주무르고 있는 남자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이던가? 다름 아닌 소통이다. 

그러나 변화의 의지가 중요할 뿐, 소통부재는 유전자 탓이 아니다

보수만 소통이 부족한가? 물론 수구세력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아예 소통 자체를 거부하지만, 합리적 보수든 진보든 소통이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이 지점에서 일본 정계에 쓰나미처럼 불어 닥친 소위 여성자객들의 반란은 예사롭게 보아 넘길 게 아니다. 황색언론들은 이 대반란에 미녀자객이란 섹시함에 포커스를 맞추는 상업주의에 몰두하지만….  

우리가 보아야할 것은 미녀들이 아니라 그녀들의 변화에 민감한 피부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그리고 사람들과 격의 없이 호흡하고 대화하는 능력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세상이 변하고 있다. 천년을 넘게 이어오던 패턴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강한 부성이 지배하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선덕여왕을 비롯하여 천추태후 등 여성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주몽에서도 소서노는 안방이나 지키는 마님이 아니라 당당한 건국의 주역으로 자기를 세상에 알렸다. 이후에 소서노에 대한 많은 관심과 연구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변화하는 세상을 반영한 것이다. 과거에 여자들은 드라마의 뒷방에서 음모나 일삼거나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남자를 괴롭히거나 아니면 정숙하고 단정한 모습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자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이런 게 아니다. 나도 결국 '오디세우스와 아이네아스의 갑옷'에 몸을 숨긴 남자일 뿐인데….

우리도 모두 변화에 민감한 피부를 갖기 위해 마사지를 열심히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말이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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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저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하하. 좀 쑥스럽긴 하지만 이 정도 제 자랑으로 시작하는 걸 너무 나무라진 마십시오. 이것도 다 블로그를 하는 보람 중에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덕만의 이이제이 전략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예언은 예언으로 깬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은 덕만이 쌍생의 하나란 사실을 밝히지 않고서는 자신의 신분을 회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쌍생의 예언을 인정해야만 한다면 결국 쌍생의 예언을 저주가 아닌 복음으로 만드는 방법 외엔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죠.
 

저는 그래서 총명한 덕만이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 새로운 예언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입니다.<7/29,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
http://go.idomin.com/288 8/19, 선덕여왕, 다음주를 예언하는 즐거움 http://go.idomin.com/343> 물론 성골남진의 비문에 이어 개양성의 비밀을 밝히는 새로운 예언이 나타날 수도 있었습니다. 이미 진흥왕이 죽기 전에 국선 문노에게 전한 개양성의 예언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덕만이 스스로 예언을 만드는 게 아니라 국조 혁거세나 진흥왕의 예언이 나타날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드라마 선덕여왕》은 결국 덕만이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걸로 만들었습니다. 그게 더 멋있습니다. 미실의 계략을 역이용하는 기발한 전략, 이것이야말로 덕만이 신라의 왕으로 등극하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는 증좌가 되겠습니다. 이런 덕만의 지혜는 유신과 알천을 비롯한 신라 인재들이 진심으로 충성을 하도록 만들게 될 것입니다. 결국 덕만은 천명이 아니라 스스로 왕이 되는 것이죠. 스스로의 힘으로 말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왕입니다.

자, 그런데 덕만이 만들어낸 혁거세 거서간의 예언이 담긴 비문, 거기엔 개양성이 하늘로 돌아가면 일식이 일어나고 이어 개양성이 다시 서니 신라에 새로운 하늘이 도래한다고 씌어있습니다. 개양성이 하늘로 돌아갔다는 것은 천명공주가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식이 일어나면 나머지 하나의 개양성이 스스로 다시 선다고 했으니 이는 덕만이 공주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뜻이죠. 개양성이 자립하고 새로운 하늘이 도래한다는 것은 덕만의 의지입니다,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그런데 덕만이 일식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미실과 월천대사가 하는 말을 엿들었나요? 저는 한 번도 선덕여왕 보기를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어제는 <블로거스경남>에서 주최하는 블로그 강좌(강사 : 독설닷컴 고재열 기자)가 있어 보지 못했지만, 오늘 인터넷에서 500원 주고 봤습니다. 하여튼 어떤 일이 있어도 저는 선덕여왕을 빼먹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덕만이 어떻게 일식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그게 궁금하네요. 제가 벌써 치매기가 있는 것인지…. 

어쨌든 월천대사도 일식이 일어난다고 했으며, 그 사실을 미실에게도 말했습니다. 게다가 덕만이 만들어낸 혁거세 거서간의 예언이 담긴 비문에도 일식이 일어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일식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혁거세 거서간의 비문은 가짜가 되거나 아니면 개양성이 자립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식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고 또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덕만은 비담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면서 일식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일식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실이 믿게 해야 한다고 주의를 줍니다. 자, 여기서 주목해 봅시다. 비담은 일식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정 앞에서 신통력을 선보이며 백성들의 이목을 모은 후에 개양성의 예언이 담긴 비문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미실 앞에 붙들려 갑니다. 미실에게 잡혀가는 것이 목적이었죠. 그리고 미실에게 일식이 일어날 것임을, 그리고 그 날짜를 내가 알고 있음을 믿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실이 어떤 사람입니까? 상대의 심중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난 계략가입니다. 그래서 비담에게마저 일식은 없을 것이라고 속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미실은 덕만이 자신에 필적할 지모와 방략을 지녔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미실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예고편을 보면 미실은 일식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다고 합니다. 이 대목은 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입니다. 미실은 이미 미생공과 월천대사로부터 일식이 있을 것임을 암시 받았습니다. 다만, 그 날짜를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선 정광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을 뿐입니다. 

만약 오늘 드라마에서 정말 미실이 일식이 없다고 선언한다면 이는 미실의 실수가 아니라 드라마 제작진의 실수입니다. 미실이 갑자기 그렇게 멍청해진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미실의 다른 숨은 의도가 있든지. 하여간 덕만, 정말 대단합니다. 미실을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자신의 명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비담마저 속입니다. 좀 비유가 아름답지 못하긴 합니다만, 옛날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이 생각납니다. 

맥아더의 이 작전은 손자병법에도 나오는데 유명한 동성서취 전략이죠. 원산을 공격할 것처럼 하면서 인천으로 갔던 겁니다. 원산공작에 투입되었던 특공대원들은 죽을 때까지도 원산상륙작전을 믿었을 것입니다. 2차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성'에 투입된 어떤 임무조에게도 절대 '서취'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철칙입니다. 비담이 투입된 것은 상대를 기만한다는 의미에서 결국 동성작전입니다. 덕만이 얻고자 하는 서취가 어떤 것인지 비담은 알지 못합니다. 

덕만은 이미 미실의 잔머리 수준을 여러 차례 보았고 잘 알고 있습니다. 잔머리에는 잔머리로…. 그러나 덕만의 잔머리는 기가 막힌 반전이 담긴 절묘한 것입니다. 거기다 자신의 명으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하에게마저 속임수를 쓰는 냉정한 가슴마저 지녔습니다. 이제 차츰 미실보다 더 무서운, 미실보다 더 미실다운 덕만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오싹해지는군요. 그러나 미실의 꾀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이용되지만, 덕만의 꾀는 사람을 살리는 데 이용됩니다. 

그러므로 예고편에서 보여준 비담의 최후는 이루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덕만이 반드시 비담을 구하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죠. "나는 너를 구할 수 없다. 살고 싶다면 네 힘으로 살아라!", 라고 말했지만 덕만이 그렇게 모진 사람이 아니죠. 부하를 사지로 몰아놓고 가만 있을 우리의 선덕여왕이 아니란 건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 가게를 잃을 수 없다며 버티는 백성들에게 무장특공대를 투입해 죽게 만드는 어떤 대통령하고는 차원이 다른 지도자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비담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죠. 역사에서 비담은 선덕여왕과 같은 해 죽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비담은 결코 죽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드라마고 작가의 마음이 엿장수 마음과 같은 것이라지만 실존인물의 죽음까지 조작할 수는 없는 일일 테지요. 아무튼 오늘 밤이 기대 됩니다. 흐흐~ 그나저나 우리의 문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이런 중요한 때 나타나지도 않고 말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서 진흥왕이 남긴 경천동지 할 예언이라도 선포하려고 준비 중인 걸까? 궁금해 죽겠네요. ㅋㅋ 
 

ps; 오늘 드라마를 보니 비담 뿐 아니라 유신과 알천, 진평왕과 황후 마야부인, 김서현과 만명부인 등 자기를 뺀 모두를 속였네요. 완전 클라이막스였습니다. 재미있고 시원하네요. 으하하~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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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만의 무기, 예언은 예언으로 이긴다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중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맞춰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사실 드라마 선덕여왕은 골든벨에서 학생들이 푸는 퀴즈를 같이 풀며 즐기는 시청자들의 심리를 잘 꿰뚫고 있는 듯하다. 선덕여왕 제작진은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미리 퀴즈의 답을 슬며시 흘리는 전술을 쓰기도 한다. 사다함의 매화가 그랬고, 비담의 김남길이 그렇게 이용되었으며, 김춘추 역의 유승호도 역시 그랬다.  

그러나 선덕여왕을 보면서 가장 궁금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미실이 어떻게 무너질까 하는 것이었다. 미실이 무너지기 위해선 첫 번째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 덕만공주의 복권이다. 그러나 덕만공주가 복권되기 위해선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예언, 쌍생의 저주다. 진평왕이 미실 앞에서 떠는 이유이며 덕만이 사막에 버려진 이유, 성골남진의 예언이다. 이 예언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한 힘을 잃지 않도록 만드는 마력 같은 존재였다.

사실 나 역시 많은 시청자들이 그러하듯 쌍생의 저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작은 퀴즈문제를 풀어가는 데 재미를 느꼈다. 그러나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역시 저주를 어떻게 풀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오늘 드라마 선덕여왕 예고편에서 그 힌트가 나왔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저주를 깨뜨릴 새로운 예언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물론 다음주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쌍생의 저주를 깨뜨릴 새로운 예언, 예언은 예언으로 제압한다, 나는 이미 진즉에 이 사실을 예언(?) 하지 않았던가. 혹시 나의 선덕여왕 후기를 꾸준하게 읽어주신 신실한 독자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7월 29일자 <선덕여왕,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에서 쌍생의 저주를 푸는 방법으로 나는 두 가지를 말했다. 하나는 천명공주가 죽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이라고. 

http://go.idomin.com/288  선덕여왕,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

이제 바야흐로 덕만의 정체가 드러났다. 어출쌍생의 저주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모두 쉬쉬하며 숨겨왔지만 이제야말로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모든 것이 내던져졌다.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 대등 을제는 진평왕에게 왜 덕만을 땅에 묻어 어출쌍생의 저주를 자르지 않았느냐고 다그치고 미실도 덕만의 실체를 눈치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덕만과 천명은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문제의 쌍생의 저주를 어떻게 풀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둘 중 하나, 즉 천명공주와 덕만공주 중 하나가 지금이라도 죽으면 될 일이다. 덕만은 선덕여왕이 될 인물이니 당연히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천명의 몫이다.

그러나 그건 지금까지 보여준 선덕여왕의 주제의식에 맞지 않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사람이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미실은 사람을 죽여 사람을 얻지만, 덕만은 사람을 살려 사람을 얻고 결국 미실을 이긴다는 게 주제다. 그렇게 본다면 쌍생의 저주에 굴복해 천명이 죽는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주제 설정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은 해답은 하나다. 덕만이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이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미실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늘의 뜻은 없다고. 있다면 오로지 미실의 뜻만이 있을 뿐이라고. 천문을 아는 미실이 하늘을 이용해 예언을 퍼뜨리고 계시를 만들었던 것이다.  

덕만이 서역의 상인들 틈에서 천문을 익혀왔다는 사실, 그녀에게 정광록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실에게 대적할 사람은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온다고 한 예언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리) 덕만이 사람을 얻어 천하를 다스릴 조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쌍생의 저주를 풀지 않고서는 결코 왕이 될 수 없다. 

천명이 죽든, 새로운 예언을 만들든… 그러나 나는 김유신의 말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과거의 너는 잊어버려. 그런 게 무슨 소용이야. 앞으로 만들어갈 덕만이 네가 더 중요한 거야. 너는 앞으로의 너를 만들어가야 해." 그렇다. 이 말이야말로 해답이다. 과거에 붙들리고서 저주를 풀 방법은 없다. 미래는 과거의 예언이 아니라 만드는 자의 것이니까.

  
쌍생의 저주, 계양성의 예언에 무너진다

물론 내 짐작이 모두 들어맞은 것은 아니다. 나는 두 가지 중 하나의 방법으로 저주가 깨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응당 새로운 예언을 통해 쌍생의 저주를 깨뜨리고 미실로부터 천의를 빼앗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천명공주가 설마 죽으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덕여왕 제작진은 과감하게 천명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 덕만에게 증오를 부추겼다. 나는 여기서 절망했다.(실은 절망이랄 건 없고 그저 실망이지만…) 아, 나의 예언이 빗나갔구나. 


그러나 오늘 나는 마지막 예고편을 보며 다시 희망을 되찾았다. 그래 내 생각이 맞았어. 예언을 깨뜨리는 방법은 단 하나, 오로지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뿐이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 새로운 예언이 이미 혁거세 거서간이 쌍생과 성골남진의 예언을 만들 때 함께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진흥왕이 안배한 것인지, 또 그 예언을 덕만의 힘으로 찾아낸다는 것인지 아니면 바람처럼 나타난 문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질 것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미실의 천의를 깨뜨릴 새로운 천의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예언이란 것이 나타날 것을 이미 내가 예언(!)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천명이 죽음을 맞이한 것은 매우 슬픈 일이며 나의 착오다. 이는 선덕여왕 제작진이 쌍생의 저주를 깨뜨릴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쓰는 초강수를 두었기 때문이다. 덕만에게 증오와 투쟁의지를 북돋우고 동시에 쌍생의 저주를 깨고 당당하게 복권한다는 시나리오는 역시 작가에게만 허용된 상상의 날개였지만…, 

나는 즐겁다. 이독제독, 하늘의 뜻은 하늘의 뜻으로 물리친다. 이렇게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는 보는 그 자체만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내다보고 다듬어간다는 데에도 있을 것이다. 또 선덕여왕을 통해 알지 못했던 고대사회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만만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가끔 내가 예측했던 것이 맞았을 때 느끼는 희열은 무엇에 비기기 힘들 정도로 뜨겁다. 그래서 즐겁다. 그러나 한편 패도는 패도로써 누르겠다는 덕만의 대사를 들으며 슬픈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큰 별이 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왔던 분들이다. 그들의 공과에 대하여는 역사가 말할 것이다. 그들의 집권 10년 동안 신자유주의로 고통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서민도 많다. FTA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 나라는 관용과 포용이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했다. 노무현은 자기에게 주어진 칼마저 버리는 결단을 취하기도 했다. 

패도가 아니라 관용과 포용이 세상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시대는 과연 요원한가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중이 손에 쥐어준 칼을 왜 쓰지도 못하고 버렸는가. 그래서 결국 그 칼에 자신이 당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덕만이 비장한 표정으로 "패도는 패도로써 제압하겠다! 미실이 한 똑같은 방법으로 신라를 먹겠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며 이제 영면의 길로 들어선 두 사람의 모습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그들이 덕만이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으리라. "패도는 패도를 낳는 법! 관용과 포용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어 천하를 태평하게 하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덕여왕을 만드는 제작진이나 나나 그런 상상력을 발휘할 만큼 이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노무현 대통령에 이은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이 그래서 더 안타깝고 슬픈 이유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천명공주가 죽었다. 아쉬운 대목이지만, 덕만공주가 왕이 되기 위해선 불가피한 조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천명공주가 일찍 요절했다는 기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어디에도 없다. 김춘추가 왕좌에 올랐을 때 그의 아비 용춘공을 갈문왕으로 예우해 올렸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천명공주가 덕만이 왕이 되기 전에 죽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오히려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을 때까지 살아있었다고도 한다.


성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은 미실궁주와 덕만공주의 대결구도를 만들기 위해 천명공주를 제물로 삼았다. 어디까지나 드라마로서의 자유를 최대한 누린 것이다. 모두들 드라마를 보면서 느끼고 있을 테지만, 사실 천명공주와 덕만공주가 일국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배후에는 미실이 있다. 만약 미실과 같은 걸출한 여걸이 없었다면(물론 악마지만, 드라마는 악마가 있어야 영웅이 나오는 법이다) 천명도 없었으며 덕만도 없었을 것이라는 뉘앙스가 이 드라마의 배경에 은밀히 깔려 있다.

원래 천명공주는 부군(태자의 존재를 해제조건으로 하는 왕위계승권자)의 자리에 올라 진평왕의 후계를 잇기로 되어있었다. 용춘을 사모하던 천명이 모후인 마야부인에게 "용숙과 혼인하고 싶다"고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용춘이 아닌 용수와 결혼하게 된다. 용숙이라 한 것은 숙부뻘(5촌 아저씨)인 용춘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하고 빗대어 부른 것일 게다. 그러나 마야부인은 용숙을 용수로 착각하고 진평왕과 의논하여 두 사람의 혼사를 정해버린 것이다.   

마음이 유약해 왕실의 법도를 거역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혼인을 하게 된 천명부군은 월성에서 용수전군과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용수전군은 본래 선제인 진지왕의 장남으로 태자였으나 진지왕이 폐위되는 바람에 전군으로 족강한 인물이다. 이종욱 교수의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에 의하면 용수가 성골이 아니라 진골인 것은 진지왕의 폐위로 인한 탓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종욱 교수는 성골에 대해 대체로 이렇게 해석한다. "신라는 골품제 사회다. 골품제는 골품과 두품으로 나뉘는데 두품은 다시 6두품으로 구분했다. 골품은 왕족으로 진골과 성골이 있는데, 성골이란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을 의미하며, 왕과 왕의 가족, 왕의 형제와 그 가족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왕이 바뀌면 성골집단은 새롭게 구성된다."

이런 해석에 의하면 용수는 자기의 사촌형제인 진평왕이 등극함으로써 성골의 범주에서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 것이다. 즉 진평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성골이었으나 진평왕이 왕이 되어 새롭게 성골귀족이 재편됨으로써 진골로 족강한 것이다.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인 승만공주가 성골이므로(진평왕의 형제의 가족이므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용수는 매우 용의주도하며 야심이 큰 인물이었다. 그는 천명과 혼인하기 전에는 폐주의 자식으로 최대한 몸을 낮추었다. 미실에게 다가가 아첨을 하며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미실은 천명의 배필로 용수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폐위시킨 왕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용수의 맹세에 마음이 움직인 미실이 용수와 천명의 국혼을 허락한다. 

천명공주를 부군의 자리에서 폐하고 덕만공주를 여왕의 재목으로 선택한 이유

천명과 혼인하여 부군의 남편 자리에 오른 용수는 이제껏 보여주던 태도를 180도 바꾸어 진평왕의 오른팔처럼 행동했다. 공공연히 미실궁주의 권위에 도전하기도 서슴지 않았다. 마치 천명이 왕위에 오르면 실제 왕은 자기라는 듯 오만하기 그지없다. 이에 미실은 생각을 바꾸어 마야부인을 황후에서 폐하고 새로운 황후를 들여 태자를 생산해야한다는 당론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는 결국 천명부군을 폐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덕만이 미실의 처소로 가 무릎을 꿇고 뜻을 거두어주길 간청한다. "미실궁주께서는 왕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궁주님으로 인해 여자도 부군이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천명공주를 부군의 자리에서 폐하려 하십니까?" 그런 덕만공주에게 미실이 묻는다.

"공주, 그대의 말처럼 나는 미실이란 옥토를 통해 여왕이란 꽃이 필 수 있는 기반을 닦았소. 그대가 제왕으로서 이 땅에 선다면 무엇을 위한 기반을 닦고 싶소?" 무슨 뜻인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던 덕만이 말한다. "덕만은 눈물이 흐르지 않는 나라를 위해 살아갈 것 같습니다.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욕망에서 불거져 나온 전쟁과 협상의 노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심히 이상적이구먼." 미실이 말하자 덕만은 다시 힘주어 말한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삼한의 통일… 제가 제왕이라면 그것을 이상으로 내세우고, 영원토록 추구할 것입니다."  그러자 미실이 덕만을 찬찬히 내려다보며 다시 말한다. "일전에 천명부군에게도 이와 같은 질문을 했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소." 그리고 이어 말한다. "내가 천명부군을 폐한 것은 덕만공주, 뒤늦게 그대를 발견했기 때문이오."

이 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짐작할 것이다. 천명공주는 부군의 자리를 스스로 내놓고 월성에서 낳은 춘추를 데리고 용수와 함께 월성을 빠져나간다. 월성은 왕과 왕의 가족만이 기거할 수 있는 곳이다. 공주가 성골이 아닌 진골과 성혼을 하게 되면 월성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명은 부군의 자리에 있었기에 용수와 혼인하고서도 월성에서 계속 살면서 김춘추를 낳았다. 

즉, 부군으로서 왕위를 계승할 위치에 있었으므로 일반 법도와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군의 지위를 잃었으니 월성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음은 자명하다. 야심만만한 용수전군이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용수전군이라 한들 어쩔 도리가 없다. 그는 부군의 남편이었기 때문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뿐 스스로 힘의 원천은 아니었던 것이다. 

선덕여왕 - 10점
신진혜 지음/창해

   


성골은 신라 왕궁 월성에 살아야 하며, 월성을 떠나면 성골의 지위도 잃게 된다

이상 미실이 신라의 여왕으로 덕만을 택하고 천명을 버린 이야기는 소설 속의 이야기다. 창해출판사에서 펴낸 소설《선덕여왕》은 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진혜라는 역사학도가 쓴 책이다. 그녀는 1985년 생으로 아직 4반세기도 살지 못한 어린 나이다. 이 소설의 텍스트도 물론 화랑세기지만, 소설적 구성을 위해 약간의 변형을 꾀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신진혜 작가가 의도한 소설적 해석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덕만공주가 천명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 배경과 과정을 빠른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필치로 사실감 있게 잘 그려놓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사실 미실이 삼한의 통일이란 원대한 이상을 품은 덕만을 선택했다고 하는 설정은 좀 억지가 있지만, 천명이 아니라 덕만이 왕이 되는 이유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천명공주와 그 가족들이 월성을 떠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천명공주의 신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서강대 이종욱 교수에 의하면, 월성은 성골만이 살 수 있는 곳이고 성골은 월성에 살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월성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은 성골의 지위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광법사의 어머니는 숙명부인이다. 그녀는 지소태후의 딸 숙명공주로 진흥왕의 왕후였으나 이화랑을 사모해 출궁하여 이화랑과 혼인함으로써 성골의 지위를 버렸다. 물론 진흥왕의 포기와 묵인 하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 이화랑의 자손들이 4대에 걸쳐 화랑의 풍월주를 세습하게 되었으며 화랑세기의 기자 김대문은 그 5대손이란 사실은 이미 전회의 포스팅에서 밝힌 바 있다.

어쨌든 천명공주는 부군의 지위에서 물러나 월성을 떠남으로써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다. 춘추 역시 월성에서 살 때는 성골이었으나 진골로 족강되었음은 당연하다. 이러한 성골에 관한 개념이 하나의 원칙이나 제도로 자리잡은 것은 법흥왕 때로 보인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함으로써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이 율령반포에서 중요한 두 가지가 골품제도와 화백회의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특히 왕족들의 신분과 처우에 관한 법이 정비되어있지 않아 늘 정국불안의 한 요인이었던 것을 해소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또한 성골의 범위를 축소하여 왕과 왕의 형제와 그 가족들로 한정했다는 것은 중앙집권제가 시도되었음도 의미한다. 

성골은 왕위계승권을 확정해서 분쟁을 없애기 위한 제도적 장치

율령이 반포되기 전에는 귀족회의인 화백회의 의장을 왕이 맡았으나 상대등을 따로 두어 화백회의 의장 역할을 하도록 한 것도 왕권 강화의 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즉 대등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만장일치제 회의를 하던 관행에서 왕은 빠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 일파가 진평왕과 권력게임을 하는 것도 그러고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법흥왕이 만들어 놓은 성골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귀족들의 불만,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 거기다 아직 확고하게 완성되지 못한 중앙집권도 분란의 씨앗이었다. 어린 나이에 등극한 진평왕을 대신해 태후와 미실궁주의 오랜 섭정도 왕권과 귀족간의 싸움을 부채질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물론 우리란 필자의 주관적 해석이지만―김춘추가 본래 성골이었으나 모후인 천명공주가 부군의 지위를 잃고 월성에서 쫓겨남으로써 함께 진골로 족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진흥왕의 유일한 적통으로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패망하여 신라에 귀순한 가야계인 김유신이 김춘추를 선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김유신이 문희를 태워 죽이겠다고 벌인 쇼를 오로지 김춘추의 인간성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독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김춘추 또한 자신의 운명적 신분에 힘을 실어줄 김유신의 무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 이로써 우리는―역시 필자의 주관적 해석인 우리다―성골이란 현재의 권력관계를 표상하는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성골은 고정불변의 신분이 아니며 성골이 진골로 족강할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로 진골이 성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이 됨으로써 성골의 시대가 끝나고 진골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었다. 

즉, 김춘추 이후로는 진골들이 왕위에 올랐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역시 주관적인 우리는―오늘 이 말이 난센스임을 알았을 것이다. 김춘추가 왕이 된 이후 신라 천 년을 통틀어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왕의 시대가 백년을 넘게 이어졌다. 형제계승을 기본으로 하던 왕위 세습은 장자계승의 원칙이 확립되어갔다. 

김춘추 이후에 진골들이 왕이 되었다는 말은 난센스

다시 말해서 성골의 범주가 더욱 엄격해졌다는 말이다. 성골이란 진골귀족들 중에서 왕위계승권자의 범위를 확정할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앞서 말했다. 굳이 억지로 성골과 진골을 구분하라고 한다면 성골은 왕족이고 진골은 귀족이다. 그러나 신라 하대로 가면서 왕권이 약화되고 골품제도는 혼란을 겪게 된다. 상대등 중에서 왕이 나온 경우도 많았다는 것은 무너진 왕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예다.  

아무튼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다. 김춘추는 성골로 태어났으나 진골로 족강되었다가 다시 왕이 되면서 성골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 김춘추의 후계자들은 보다 더 엄격해진 성골의 기준을 만들고 왕위를 세습했다. 그러니 김춘추 이전에는 성골들이 신라의 왕 노릇을 하다가 김춘추가 정권을 잡으면서 진골들이 왕이 되었다는 말은 난센스다. 

그러나 이런 결론도 뒤집어 말하자면, 성골이란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이며, 존재조차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성골이란 단어가 그리 흔하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성골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기술해놓은 기사도 없다. 화랑세기에서는 아예 성골-진골 대신에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이렇게 본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만들어낸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도 허구로부터 만들어낸 허구 같은 게 되고만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허구 중의 허구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드라마는 재미있으면 된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역사를 왜곡해선 안 된다는 불평도 있지만, 내가 볼 땐 그렇게 왜곡할 만큼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도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중요한 주제는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민심을 얻는 자가 진정한 성골이 아니겠는가. 민심, 그것이 현대적 의미에서 성골의 진정한 척도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선덕여왕, "그 이상을 위해 삼한통일의 기반을 닦겠다!"는 선덕여왕이야말로 진정한 성골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성골이었을까? 그들은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게 되는 나라'를 꿈꾸었을까? 이를 위해 남북통일의 기반을 닦는 것을 이상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영원히 추구한 정권이 있었을까? 물론 어떤 정권이든 다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걸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싶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 진정한 善德은 없다 

위의 마지막 질문은 내가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소설 선덕여왕의 저자인 신진혜 씨가 소설 속에서 암시해준 질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녀는 덕만공주를 통해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온통 눈물 천지다. 용산에선 삼성의 개발이익에 밀린 철거민들의 눈물이 도시를 적시고, 평택에선 기업 살리기란 명분으로 살 길을 잃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눈물이 공장을 적신다. 

세상에 사는 낙이 없다. 그러나 오늘 역사학도이며 선덕여왕(창해)의 작가 신진혜 씨의 글을 읽노라니 기특한 생각에 입가에 번지는 기쁜 미소를 지울 길이 없다. 내가 그녀를 기특하다고 하는 것은 그녀가 이제 갓 만 23세의 대학생이고 나와는 20년이나 차이나는 나이 때문이지만, 그녀가 특별히 욕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녀의 집필의도가 무엇이었든 그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소설 선덕여왕을 읽으며 내가 느낀 감상, 그것이면 족하다. 책을 읽고 가지는 감상은 작가가 아닌 독자의 영역 아니겠는가.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이 축구경기로 말하자면 후반전에 들어섰습니다. 지금까지는 미실의 일방적인 공격에 덕만과 천명이 방어에 급급한 형국이었다면, 이제 본격적인 덕만의 공격이 시작될 태세입니다. 사실 덕만은 경기를 지배할 마음이 별로 없었죠. 그녀에게 관심사는 자기 출생의 비밀에 대해 밝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왜 미실과 칠숙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지, 왜 엄마가 죽어야 했는지, 이 모든 비밀을 밝혀내는 게 그녀의 목표였지요.


천명의 죽음에 분노하며 미실과 대결하고자 각오를 다지는 덕만
그런데 이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미실이 왜 그토록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지도 알았고, 부왕이 왜 자기를 내다버렸는지도 알았으며, 을제 대등이 왜 자기를 소리 없이 죽이려고 했는지 그 이유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혁거세 거서간 이후로 전해 내려오는 황실의 예언 때문입니다.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 결국 이 예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력투쟁의 와중에 언니 천명공주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언니의 죽음을 목도한 그녀의 가슴에 새로 싹튼 것은 분노입니다. 이미 이 분노에 대하여 《선덕여왕》은 여러 차례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미실이 덕만에게 말했지요.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뿐이니라. 하나는 도망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노하는 것이니라." 유신 역시 이 분노에 대해 말합니다. 미실에게 무모하게 대적하지마라고 충고하는 김서현에게 유신은 외칩니다. "아닙니다. 분노가 먼저이옵니다. 우리 집안의 이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미실의 수를 생각하기 전에 분노가 먼접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 하늘의 뜻이란 것이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필시 하늘의 뜻을 살펴볼 재주를 가진 자를 통해 세상에 오는 것인가 보다." 미실의 뜻을 거슬러 상천관은 미생의 아들 대남보를 시켜 덕만을 죽이려 했고 이 음모에 뜻하지 않게 천명공주가 희생되는 불운을 당하고 맙니다. 만약 상천관이 미실의 뜻에 거역하지 않았다면, 덕만은 조용히 중국이나 타클라마칸의 사막으로 떠났거나 설원에게 붙잡혀 미실 앞으로 끌려왔을 것입니다.

후자가 미실의 야욕을 채우는 데 훨씬 유용했겠지만, 사실은 두 가지 다 미실에겐 나쁘지 않은 수였습니다. 그런데 상천관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일을 그르치게 되었습니다. 미실은 예전에 없던 최대 위기에 봉착했고, 나아가 상천관이 엿본 하늘의 뜻이 계시하듯 무서운 적을 다시 서라벌로 불러들이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중요한 전투에서 지휘체계가 무너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 예입니다.  

(잠깐) 상천관은 천관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랍니다. 신라시대 천관은 여자들이었죠.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국가의 천관들도 모두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주몽이나 태왕사신기에서도 하늘의 계시는 신녀들이 받았습니다. 천관녀와 김유신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지요. 김유신이 결국 말의 목을 잘라 천관녀와의 관계를 정리했지만… 그런데 궁금한 건, 왜 남자는 하늘의 계시를 못 받는다는 거지요? 불공평하잖아요?  

상천관, 미실의 하늘을 깰 자 덕만을 다시 서라벌로 불러들이다
그러나 미실은 아직 모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사실 상천관이 미실의 뜻을 어기고 덕만을 죽이려고 했던 것도 다 천기를 통해 미래를 슬며시 엿보았기 때문이었죠. 미실은 그런 상천관을 못마땅해 하며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라고 핀잔을 줍니다. 미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죠. 미실의 예언대로 일식이 일어나자 놀라 벌벌 떠는 덕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의 뜻 같은 건 없느니라. 있다면 오로지 이 미실의 뜻만이 있을 뿐이지." 

젊은 시절의 미실은 천의를 두려워했지만,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황제마저도 떨게 만드는 그녀에게 이제 하늘의 뜻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기억나십니까?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으로 쪼개지던 날 밤, 미실이 두려움에 몸을 떨며 쌍둥이를 잡아오라고 군사를 다그치던 모습…. 그러나 세월은 하늘마저도 무시할 정도로 그녀를 오만하게 변화시켰습니다. 미실의 자만심이 천의마저도 부정할 정도로 오만해지게 된 배경에는 물론 '사다함의 매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미실이 진정 모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덕만이 자신이 가진 하늘의 뜻을 거꾸러뜨릴 또 다른 하늘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음 주 예고편에서 정치적 위기에 처한 미실 일파는 계략을 꾸밉니다. 역시 미실의 주특기인 하늘의 뜻을 빌려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일식을 만들겠다는 거죠. 그러나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광력이 있어야 한다고 월천대사가 말합니다.

여러분, 기억나시는지요? 정광력. 그 정광력이 누구 손에 있었지요? 바로 덕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덕만이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로마와 서역의 상인들을 도와준 대가로 정광력을 받고 온 세상을 얻은듯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우리 모두 덕만의 손에 들린 그 낡은 책자가 엄청난 일을 할 것임을 예감했었습니다. 선덕여왕이 첨성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죠.

덕만의 정광력, 마침내 미실의 천의를 꺽을 것인가
그리고 사다함의 매화가 대명력이란 사실이 밝혀졌을 때, 우리는 모두 역시 그랬구나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미실이 대명력으로 천의를 가로챌 때, 나는 왜 덕만이 정광력을 꺼내들고 대항하지 않는지 그게 몹시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광력이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미실이 가진 사다함의 매화를 물리칠 '타클라마칸의 낡은 책자'…. 마침내 덕만공주와 미실이 하늘의 뜻을 두고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덕만이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을 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기는 바로 이 정광력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이제이, 하늘의 뜻은 하늘의 뜻으로 제압한다는 말로도 바꿀 수가 있겠지요. 덕만이 정광력을 잘 간직하고 있기는 한 건지, 혹시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과정에서 분실되거나 훼손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흐흐~ 별 걱정을 다 합니다. 스텝들이 잘 보관하고 있을 텐데 말이죠. 자, 과연 하늘의 뜻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다음 주가 기대됩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왜? 덕만공주가 선덕여왕 자리에 올랐을까요? 천명공주는 무엇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일까요? 그보다 한술 더 떠 (드라마상이긴 해도) 천명공주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요? 삼국사기는 덕만공주를 진평왕의 장녀로 묘사하고 있지만, 삼국유사는 진평왕의 장녀는 천명공주이며 덕만공주는 차녀라고 하고 있습니다. 화랑세기도 또한 유사와 같이 덕만을 차녀라고 하고 있지요. 그러고 보니 유사와 세기가 비슷한 점이 많고 사기만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째서 천명이 아니라 덕만이 선덕여왕이 되었을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삼국사기는 김부식이라는 중앙관료가 정권 차원에서 집필한 역사서입니다. 따라서 당시 집권세력의 이데올로기가 잘 반영된 기사들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세기와 유사는 집필자의 의도에 따라 보다 자유로운 기사 작성이 가능했으리라 봅니다. 그런 면을 고려한다면, 삼국사기보다는 삼국유사가 더 진실에 근접했을 수도 있습니다. 덕만을 장녀로 묘사한 것도 따지고 보면 신라왕조의 후예인 김부식으로선 당연한 기술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집권세력의 이데올로기든 집필자의 자유로운 의도든 주관이 개입되어있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습니다. 유사가 사기에 비해 150 년 정도 후대에 씌어졌다고 하지만 이 역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점에선 두 기사 모두 차이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화랑세기의 위작논란도 사실 생각해볼 대목이 많습니다. 화랑세기가 위작이라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위작일 가능성은 없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어떤 역사서든 어느 정도의 위작은 가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동양의 유명한 역사서로 사서의 바이블이라 할 사마천의 사기도 결국은 기자의 주관적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점에선 위작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사마천이든 김부식이든 일연이든 고증에 많은 땀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화랑세기의 위작논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화랑세기는 김대문이란 당대의 인물이 당대의 이야기를 저술한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화랑세기가 진본이라고 했을 때 그 폭발력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사실 기존 역사학계의 입장에서 보면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왜 덕만이 천명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을까? 물론 이 질문은 어디까지나 유사나 세기의 기사를 사실로 가정하고 하는 것입니다. 사기의 입장에 서면 이런 질문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왜? 당연히 장녀인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게 순리니까요. 

그러나 세기나 유사의 눈으로 보면 이는 당연히 들 수 있는 궁금증입니다. 성골 남자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장녀인 천명을 제치고 덕만이 왕위를 계승했을까? 진평왕이 재위 54 년 동안 왕자를 한 명도 생산하지 못했거나 생산했더라도 모두 죽었다는 성골남진에 대한 의문에 대해선 일단 덮어두기로 합시다. 유사에서도 선덕여왕 등극의 비밀을 여는 열쇠로 성골남진을 지목했으므로 지금으로선 성골남진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여왕 출현의 이유일 수밖에 없습니다.

선덕여왕 등극의 이유는? 천명이 무능했기 때문
그러나 삼국유사는 단지 성골남진을 지목했을 뿐 차녀인 덕만이 등극한 이유에 대해선 언급이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화랑세기가 보다 많은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요. 요즘 《드라마 선덕여왕》의 인기에 힘입어 출판계에서도 선덕여왕 출간 붐이 일고 있습니다. 서점의 신간 코너에 가보면 온통 선덕여왕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로 화랑세기를 텍스트로 하는 이 소설들은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이 대부분입니다. 그 중에 한 권으로 된 소설 선덕여왕도 있습니다.

선덕여왕 - 10점
신진혜 지음/창해

   


창해출판사가 간행한 신진혜 저 선덕여왕입니다. 전질로 된 선덕여왕에 질린 독자라면 300여 페이지 정도로 간결하게 만들어진 부피에 우선 안도할 것입니다. 이 책은 주로 덕만이 공주의 신분으로 천명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경위와 김춘추와 김유신을 중용해 왕권을 확립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빠르고 박진감 넘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며 들었던 궁금증들을 이 한 권의 책이 충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천명공주는 장녀로서 부군(태자가 없을 경우 왕위 계승권 1순위자에 내리는 칭호로서 태자가 생기면 그 지위는 해소된다)의 위치에 오르지만 매우 유약하여 결단력이 없습니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제 1의 자질은 결단력입니다. 다른 모든 것을 참모가 해주더라도 오직 하나 이 결단만큼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결단은 오로지 최고 지도자의 몫입니다. 천명공주에겐 이것이 부족했습니다. 이 결단력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전반부에 등장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화랑세기에서 차용한 것이겠지요. 천명부군은 용춘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용춘은 세속에 관심이 없고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합니다. 그래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용춘의 형인 용수는 세속적 권력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쨌든 용춘을 좋아하는 천명은 어느 날 모후에게 털어놓습니다. "어머니, 저는 용숙이 좋아요. 용숙공과 혼인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런데 용숙을 용수로 잘못 알아들은 마야부인과 진평왕은 천명의 남편으로 용수를 정하고 맙니다.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게 된 데에는 천명공주의 우유부단함이 작용했습니다. 천명이 차마 용춘이란 이름을 입에 담지 못하고 용숙(龍叔)이라 했던 것입니다. 그리 말하면 응당 자기 마음을 알고 있는 모후가 용춘을 부마로 삼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마음이 유약하고 온순한 사람의 특성이 바로 이겁니다. 남들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고 확실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하길 기피하는 것이지요. 이런 마음은 사실 연약한 희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말 실수로 용춘이 아닌 용수에게 시집가는 천명공주
사태가 어그러졌으면 문제를 일으킨 본인이 해결해야 함에도 천명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결국 덕만이 부왕 앞으로 나가 사태의 진실을 고하고 바로잡아 줄 것을 청합니다. 그러나 이미 결정된 왕실의 혼사는 번복할 수 없다는 대답만 듣게 되지요. 이때 진평왕의 옆에서 덕만공주를 바라보던 원광법사는 그녀의 자질이 왕재임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진평왕에게 덕만의 스승이 되겠다고 자청하지요. 헤게모니가 천명에서 덕만으로 넘어가는 순간입니다. 

오늘 드라마를 보니 내일 천명이 죽게 될 모양이군요. 화랑세기의 기사나 소설 선덕여왕들이 다루는 것과는 다르게 천명공주는 지금껏 강인한 결단력으로 화랑들을 통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은 김서현까지도 발아래 꿇게 만들었지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내일 천명공주가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저주 때문에 두 명의 공주 중 한 명이 죽어야 한다는 것도 대답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둘 중 누가 하나 먼저 죽든 말든 어출쌍생은 일어난 것이며 성골남진의 저주도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죠. 둘 중 하나가 죽더라도 성골남진의 저주가 풀리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죽어야 했을까요? 아니 죽여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성골남진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차녀가 왕이 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를 이 드라마에선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덕만이 천명을 제치고 왕이 되려면 천명이 무능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드라마에서 천명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천하의 김서현을 발아래 꿇리고 알천과 유신을 복종하게 하는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부왕인 진평왕보다 더 뛰어난 지도력을 가졌습니다. 이런 천명공주가 살아있는데 덕만공주가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게다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왔는지도 모르는 덕만공주가 왕위에 오른다면 이건 천지개벽이죠. 그러니 《MBC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천명공주가 죽지 않고서 선덕여왕이 탄생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딜레마는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이 스스로 만든 것일 테지요. 아마 의도는 이런 것이었을 겁니다. 천명을 죽임으로써 자연스럽게 덕만의 왕위계승 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덕만으로 하여금 미실과 건곤일척의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노린 것입니다. 이 역시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덕만의 가슴에는 자기 존재를 찾아야겠다는 집념과 더불어 불타는 증오와 분노가 얹어졌습니다.
 
천명공주의 죽음은 덕만을 왕위에 올리기 위한 드라마 제작진의 고육지책
바야흐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겠군요. 그러나 손실도 만만치 않습니다. 천명공주의 결단성과 지도력에 감탄해 마지않던 시청자들의 실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천명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그간 천명에게 성원을 보내던 수많은 시청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 이 손실조차도 드라마 제작진의 의도일지도 모릅니다. 그 실망과 허탈감은 미실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이 분노는 덕만과 유신에 대한 응원으로 승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연상되는 대목입니다. 어쨌든 천명공주의 죽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가 일전에 올린 글 중에 "쌍생의 저주를 풀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둘 중 하나가 죽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새로운 예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저는 두 번째 경우의 수로 쌍생의 저주를 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첫 번째 방법으로 가고 마는군요.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둘 중 하나가 죽는다고 저주가 풀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주를 푸는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성골남진이면 성골여왕이 등극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라인들은 간단하게 이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겐, 아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썼던 시절의 우리들에게도 도저히 풀기 어려운 난제였을 성골남진을 신라인들은 너무나 쉽게 처리했습니다. "남자만 왕이 되어야 한다는 법이 있는가? 성골 남자가 없으면 여자가 왕이 되면 그만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튼 아쉬운 건 사실입니다. 천명공주를 죽이지 않고 보다 현명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었으면 하는 바람은 이제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천명이 죽어야 하는 운명인 것은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차녀가 장녀를 제치고 왕위에 올라야 하는데 장녀인 천명의 카리스마가 너무나 선명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어출쌍생의 저주는 천명의 죽음으로 새로운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 벌써 내일 드라마가 기다려지는군요. 요즘 사는 낙도 없는데 선덕여왕 보는 재미로 삽니다. 이런 말세에 선덕여왕이라도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요즘 선덕여왕이 한창 인기다. 그런데 이런 인기바람을 타고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박근혜가 선덕여왕을 닮았다는 거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이미 선덕여왕이 방영되기 전부터 친박계 주변으로부터 슬금슬금 흘러나온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의도가 뻔한 이야기를 <MBC 생방송 아침>이 전파에 실어 전국에 흘려보냈다.


당연히 논란이 벌어졌다. "박근혜를 그렇게 비유하니 그럴 듯하다!" 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박근혜를 선덕여왕에 견줄 수 있느냐?" "박근혜는 선덕여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미실에 가깝다!"라는 의견까지 다양한 논쟁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대체로 어이없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당연한 이야기다.

선덕왕과 박근혜의 공통점은 오직 한가지 뿐이다. 여자라는 사실. 만약 이 사실 때문에 선덕왕과 박근혜를 비교하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짓이다. 그리 말한다면, 나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과 닮았다고 해도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그분들과 나는 남자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은 여자라는 공통점만을 내세우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덕여왕과 박근혜가 세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늘어놓았다. 첫째는 지지기반이 경상도 지역으로 같다는 것이며, 둘째는 최고 지도자의 딸, 즉 공주 출신이란 점이 또한 같고, 셋째는 선덕화라는 박근혜의 법명이 선덕여왕과 같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별로 거론할 가치도 없다. 도대체 이름을 두고 이런 말장난을 벌이는 것이 진실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면 여자들은 모두 선덕이란 이름을 갖게 될 것이며 남자들은 모두 담덕이 될 것이다. 그럼 두 번째 이유를 들여다보자. 선덕여왕과 박근혜가 모두 공주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고 지도자의 딸로 통치수업을 받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모두 공주 출신이라고?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래서 박근혜를 수첩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 수첩공주는 박근혜의 무식함을 빗대어 놀리는 말이긴 하지만 그녀의 출신성분에 가장 적절한 말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지금이 왕조사회던가? 어떻게 박근혜를 공주에 비교하는 난센스를 남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본다면 북한의 김정일이야말로 박근혜와 가장 닮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김정일은 북한의 절대적 지배자인 김일성의 아들이 아니던가. 박근혜가 공주라면 김정일은 왕자란 말인가. 시계는 미래를 향해 오늘도 어김없이 돌아가고 있건만 민주공화국의 정신세계는 거꾸로 왕조시대를 쫓아가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박정희 왕가의 가족들?


그러나 더 한심한 것은 다음 첫 번째 이유다.  박근혜의 지지기반이 경상도 지역으로 선덕여왕과 일치한단다. 선덕여왕 당시 신라의 전 국토가 경상도 일원이었으니 이 비유도 적절한 것은 못 된다. 그저 말장난일 뿐이다. 게다가 공영방송이 생방송으로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듯이 말을 만들어낸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한 태도다.

어떻든 좋다. 박근혜의 지지기반이 경상도 지역이라서 선덕여왕과 닮았다고 치자. 그럼 김정일은 지지기반이 북한 지역, 즉 과거의 고구려 지역이라서 광개토대왕과 닮았나? 광개토대왕도 남자요, 최고지도자의 아들이었다. 그럼 완벽하지 아니한가. 김정일이야말로 완벽하게 광개토대왕과 닮은 꼴이라고 말해도 무슨 문제가 있겠나.

이름? 그거야 죽기 전이든 죽은 후든 시호를 담덕이라고 내리면 될 일이다. 그까짓 게 무슨 대수가 되겠는가. 선덕여왕은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업적을 쌓은 인물이다. 선덕여왕대에 일구어낸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또한 선덕여왕은 위기에 처한 신라의 국력을 일으켜 삼국통일의 기초를 쌓은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는 세종대왕보다 더 뛰어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세종대왕 역시 과학기술 뿐만 아니라 국력신장에도 괄목할 업적을 세웠다. 4군6진을 개척해 오늘날의 국경선을 확정지은 인물이 세종대왕이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안정된 정국을 기반으로 가졌다는 점에서 그렇지 못한 선덕왕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광개토대왕이야 이름이 의미하듯 두말할 필요가 없는 영웅…. 이렇든 저렇든 <MBC 생방송 아침>에 의하자면, 이제 우리나라는 남에는 선덕여왕을, 북에는 광개토대왕을 가지게 된 셈인데 이를 두고 축하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MBC에 바란다. <선덕여왕>이 요즘 인기 정상을 달리다 보니 잠시 정신이 혼미해진 점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재미있게 잘 보고 있는 드라마에 초를 치는 일은 제발 자제해주기 바란다. 오늘밤 <선덕여왕>에서는 김유신과 김서현이 살아서 돌아오고 진골신분과 영지도 회복하게 된다고 한다. 지난주에 포스팅한 <이요원이 창조할 선덕여왕의 이미지는?>에서 내가 말한 것처럼 미실 일파의 계략이 거꾸로 미래의 선덕여왕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듯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려고 하는 <선덕여왕>에 박근혜 이야기가 튀어나오니 맛있는 밥상을 받아놓고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이다. 매우 불쾌하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의문을 제기하며 마치기로 하자. 진실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덕만의 어디가 박근혜와 닮았단 말인가? 시시콜콜 모든 일에 관심을 보이며 앞장서는 덕만과…

모든 국가대사에 등을 돌리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박근혜, 심지어 자기 당이 위기에 처해도 입을 닫고 칩거하기를 즐기는 박근혜의 어디가 선덕여왕과 닮았단 말인가?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요원을 처음 본 것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였다. 그때 이요원은 매우 어리고 철없어 보였다. 당돌해보이기도 했던 그런 모습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 다음 본 것은 TV드라마였는데, <패션 70s>에서 그녀는 ‘더미’라는 이름의 남도의 섬마을에서 상경한 소녀였다. 청순함과 터프함이 믹스된 그런 캐릭터였다.


아마도 이런 캐릭터는 시골처녀의 전형일지도 모른다. 한없이 가냘프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속에 끈질긴 생명력을 감추고 있는 것이 땅을 딛고 살아온 시골처녀의 표상이 아닐까. 그래서 도시의 여자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대지와 같은 포용력을 그녀들은 갖고 있는 것이다. <패션 70s>에서 더미가 그랬다.

그리고 재작년이었던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가냘프고 강인하다. 평범한 간호사로 사춘기 같은 사랑과 소소한 삶의 아름다움에 빠져있던 신애가 광주에 진주한 중무장 군대에 맞선 결말을 알 수 없는 사투 속에서 비장하게 보여주던 강인함….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사진=다음영화


선덕여왕도 그런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덕만공주는 궁궐이 아닌 사막에서 각지에서 몰려든 무역상들 속에 자란다. 그녀는 그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잠자리를 보살펴주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웠을 것이다. 숱한 여행자들의 고향 이야기와 경험담을 들으며 포부를 키웠을 것이다.


만약 덕만이 서라벌에서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자랐다면 서민들의 애환도 몰랐을 것이고, 그들과 한마음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고, 더욱이 대지와 같은 포용력은 더더욱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들 속에서, 서민들 속에서 자랐으므로 그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다. 아니 그들의 마음이 그녀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어린 김유신이 천명공주에게 말했던 바로 ‘진심’이다. “진심을 다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사람들이 변하며, 그러면 결국 세상이 변한다!” 그 진심을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것이 가냘프면서도 강인한 캐릭터다. 여기에 이요원이 가장 어울림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패션 70s>에서 고준희 역을 맡았던 김민정이라면 이 역이 어울렸을까?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화려한 캐릭터의 그녀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천명공주 역의 박예진도 마찬가지다. 도회적 이미지의 김민정이나 박예진에게 풋풋한 시골냄새가 풍기는 덕만의 역할을 맡기기엔 분명 무리가 있다. 이요원이야말로 말똥냄새 풍기는 백성들의 고충을 가장 잘 알고 대변해줄 선덕여왕으로서 적격이 아닌가.


10회에서 보여준 이요원의 덕만은 뭇사람들의 그런 기대에 충분히 부응한 듯하다. 아역배우 남지현이 이요원에게 많은 부담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요원을 걱정했지만, 10회에서 보여준 활약은 충분히 그런 불안을 불식시켜주었다. 남지현에서 이요원으로 넘어온 덕만은 어느 곳에서도 이질감을 찾기가 어려웠다.


내가 보기엔, 역시 남지현에 비해 이요원이 베테랑이므로 청순함과 터프함이 믹스된 카리스마를 서서히 구축하며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선덕여왕이 살았던 시대는 신라에겐 힘든 때였다. 북쪽에서는 연개소문이, 서쪽에서는 백제 무왕이 강성해진 세력으로 압박하던 위기의 시대였다.


진흥왕이 쌓아놓은 위업은 역으로 풍전등화의 위험에 신라를 노출시켰다. 시대를 극복할 사명이 주어진 선덕여왕에게 뛰어난 지혜와 담력도 필요했겠지만 무엇보다 백성들과 일체감을 형성하지 않고서는 나라를 위난으로부터 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그러한 점을 고려해 덕만을 사막과 백성들 속에 고군분투하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덕만처럼 백성들 속에서 백성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가냘프면서도 강인한 카리스마를 간직한 지도자를 우리는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덕만처럼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줄을 놓고 낭떠러지로 떨어질 용기를 가진 지도자를 우리는 본 일이 있는가? 그리고 미래에는 그런 지도자를 가질 수 있을까?  


물론 이제 시대가 바뀌어 지도자는 하늘이 내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스스로 만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덕여왕이 될 덕만의 캐릭터를 보면서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 때문이리라. 오늘 10회에서 미실과 설원공이 반대파의 싹을 미리 자를 심산으로 김서현과 김유신을 사지로 몰았다고 자축하고 있지만…


그것이 미래의 선덕여왕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었을 줄이야. 그래서 역사는 아이러니다. 다음 주가 기대된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MBC드라마 선덕여왕이 벌써 8회가 끝났다. 어느새 한 달이 훌쩍하고 지나갔다. 드라마 속에선 20번이 넘게 춘추가 바뀌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다. 진흥왕 사후 20년간 그 누구도, 황제조차도 감히 대적할 수 없었던 신라의 실질적인 주인 미실, 그녀가 최초의 패배를 당한다. 바로 덕만에게…. 덕만이 드디어 서라벌에 등장한 것이다.


덕만공주는 천명공주를 움직였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천명공주는 덕만을 만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어린 유신랑의 말처럼 ‘진심을 다하면 자기가 변할 수 있고, 자기가 변하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에 믿음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바야흐로 북두의 여덟 번째 별 개양성이 감추어진 자신의 비밀에 다가가고 있다.


첫 회에서 진흥왕이 미실에게 말했다. “미실아, 너는 내가 어떻게 이 넓은 세상을 얻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뛰어나서 그렇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사람이다. 나는 사람을 얻었기 때문에 세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후일 진흥왕의 주검 앞에서 또한 미실이 말했다. “폐하, 사람이라고요? 보십시오. 모두 내 사람들입니다.”


이 드라마의 키워드는 사람이다. 치열한 권력투쟁의 승패도 결국은 누가 사람을 얻느냐에 달린 것이다. 물론 사람을 얻기 위해선 사람을 잘 알아보는 혜안도 중요하겠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 ‘무엇’이란 바로 ‘진심’에서 나온다고 어린 유신랑이 설파한다. 


그런데 그 진심을 덕만은 실천으로 몸소 보여준다. 낭떠러지에 매달린 자기를 끌어당기기 위해 줄을 잡고 버둥거리는 천명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줄을 놓아버린다. 그런 덕만을 따라 천명도 낭떠러지로 몸을 날리고 결국 덕만을 구한다. 진심이 천명을 움직였으며 또한 덕만도 살린 것이다. 그럼 덕만의 그 진심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처음부터 보신 분들은 사막에서 모래 유사에 빠진 덕만의 어머니(사실은 궁궐시녀 소화)가 덕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끌어당기던 줄을 끊어버리고 모래 속으로 사라진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 덕만의 진심은 소화에게 배운 것이다. 15년간 덕만은 사막에서 아라비아와 로마의 상인들을 만나 선진문물을 배우고 어머니에게선 진심을 배웠다.


그런 덕만이 드디어 서라벌에 나타났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에 가늘게 몸을 떠는 미실에게 예기치 못한 첫 번째 패배도 안겨주었다. 게다가 승리의 대가로 사람까지 얻었다.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당대의 영웅 김서현 공이며 북두칠성의 꿈으로 태어난 김유신이다. 김유신과 김춘추, 덕만공주와 천명공주….


덕만이 나타남으로서 이렇게 미실에 대항할 진용이 갖추어진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한 점 두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첫째, 어째서 사람들은 모두 미실을 두려워하는데 덕만공주만이 미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황제까지도 두려워 그녀에게 반대를 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물론 답은 너무 쉽다. 덕만은 미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계림 사람들이 미실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녀가 신라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자기에게 방해가 되는 자는 가차 없이 죽인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만은 그것을 모른다. 덕만에게 미실은 그저 나이 든 여자일 뿐이다. 덕만은 사막에서 자란 철부지 하룻강아지였던 것이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왜 사람들은 미실에게 대적을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미실이 두려워 이미 마음속에서부터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덕만도 천명처럼 궁궐에서 공주로 자랐더라면 아마 다름없이 미실을 두려워하며 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막에서 자란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걸 알리가 없다.


다음 문제는, 그렇다면 덕만공주 혼자의 힘으로 미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대든다고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덕만에겐 쌍둥이 언니 천명공주가 있다. 그녀는 궁궐에서 자라 권력의 생리를 잘 안다. 미실이란 적의 장단점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알고 구별할 줄 안다.


두 번째 답도 사실은 이미 8회에서 나왔다. 김서현 공과 김유신을 알아보고 그들을 서라벌에 입성하도록 안배하는 천명공주 역시 북두의 여덟 번째 별이다. 작가의 의도가 어떤 건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아마 물어보더라도 안 가르쳐줄 것이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저주는 나라를 들어먹으려는 미실로부터 황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본다면 어출쌍생이야말로 신라를 보호하기 위한 하늘의 기막힌 안배다. 진흥왕은 죽기 전에 이미 그 안배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받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미실에게 유지를 남겼던 것일까? 물론 그도 인간이므로 설원랑이 미실의 정부요 심복이란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에게 비밀을 말하는 실수를 범했지만….


하룻강아지처럼 대범한 그러면서도 영리한 덕만공주와 범이 무서워 오들오들 떨면서도 냉정하고 신중하게 처신하는 여우같은 천명공주, 이 두 사람의 환상적인 콤비야말로 미실을 격파할 절대적인 무기다. 아마 내가 작가가 아니라서 장담은 못하겠지만, 북두의 여덟 번째 별은 미실을 물리치고 난 다음 다시 하나로 합쳐질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금 빛나는 북두칠성으로 서라벌의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지 않을까, 이건 그저 내 상상이지만… 꼭 그렇게 될 걸로 생각한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