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17.11.15 우연히 발견한 노무현추모위 기사와 문재인의 지방분권 by 파비 정부권
  2. 2011.07.03 김정길, 대권 잡으려면 노무현 넘어야하는 까닭 by 파비 정부권 (6)
  3. 2011.06.25 김정길 "세상에 가장 좋은 운동은 뭘까요?" by 파비 정부권
  4. 2011.04.13 노무현 추모위 풍경 "아, 이거 사회 보기 난감하네" by 파비 정부권 (8)
  5. 2010.09.18 김탁구, 감옥에 간 악당 한승재를 위한 변명 by 파비 정부권 (2)
  6. 2010.03.17 추노, 이경식과 인조를 현대에서 찾는다면? by 파비 정부권 (5)
  7. 2009.10.18 49년만의 민간인학살위령제, 마산시장은 왜 안 오나 by 파비 정부권 (14)
  8. 2009.09.29 블로거10만양병설? 시민운동의 대안은 블로거운동 by 파비 정부권 (11)
  9. 2009.08.30 노무현·김대중 조문하지 않은 김기자를 위한 변명 by 파비 정부권 (12)
  10. 2009.08.28 선덕여왕은 박근혜가 아니라 심상정이다 by 파비 정부권 (13)
  11. 2009.08.21 김대중 서거일에 만난 노무현의 마지막 인터뷰 by 파비 정부권 (20)
  12. 2009.08.19 선덕여왕, 다음주를 예언하는 즐거움 by 파비 정부권 (13)
  13. 2009.08.03 신영철, 아직도 대법관 사무실에 출근한다 by 파비 정부권 (15)
  14. 2009.07.10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by 파비 정부권 (10)
  15. 2009.07.05 노회찬, "서민복지동맹만이 MB독재 깰 무기" by 파비 정부권 (10)
  16. 2009.06.19 100분토론 출연 교수들, 팔아먹을 양심은 있나 by 파비 정부권 (34)
  17. 2009.06.18 교육감한테 왜 무릎 꿇고 술 따르죠? 그거 욕이에요 by 파비 정부권 (18)
  18. 2009.06.05 좌파정권 10년? 그럼 김태호지사도 좌파빨갱이다 by 파비 정부권 (5)
  19. 2009.06.02 노무현 서거에 신영철 함께 묻히나 by 파비 정부권 (8)
  20. 2009.06.01 살벌한 세상에 읽는 ‘고민하는 힘’ by 파비 정부권
  21. 2009.05.30 노무현의 꿈, 노선과 가치가 살아있는 당 by 파비 정부권 (4)
  22. 2009.05.26 동길아, 쌀 그만 축내고 어서 죽어줄래? by 파비 정부권 (4)
  23. 2009.05.25 낙동강에서 접한 노무현 서거 by 파비 정부권 (1)
  24. 2009.05.15 대통령도 탄핵하던 국회, 신영철은 왜 못하나 by 파비 정부권 (29)
  25. 2009.04.30 조승수 당선을 바라보는 진보언론들의 태도 by 파비 정부권 (2)
  26. 2009.01.21 과잉진압 사망, 전 정부는 사과했다 by 파비 정부권 (17)
  27. 2009.01.10 짜집기도 못하는 강만수와 학력주의 바이러스 by 파비 정부권 (7)
  28. 2008.11.27 노무현이 저학력자가 보이는 분열증세 환자? by 파비 정부권 (12)
  29. 2008.11.06 오바마가 좌파라니요? by 파비 정부권 (9)
  30. 2008.10.19 강산에와 함께한 고승하 선생 음악인생 40년 축하공연 by 파비 정부권 (7)

인터넷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6년 전 <백인닷컴> 편집장 시절 쓴 기사. 좀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때 내가 이런 기사도 썼었구나 하여 감회가 새롭다. 아마 이 행사 끝나고 뒤풀이로 간 갈비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서로 마주 앉아 술잔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문재인 대통령 옆에 문성현 현 노사정위원장이 앉았었는데 나를 그 자리로 불러 앞에 앉히고는 인사를 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당시만 해도 쑥스러움을 아주 많이 타는 편이어서 대화는 그리 활기차게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을 것이다.


아, 그러고 한번 더 볼 기회가 있기는 했지만 그때는 내가 피했다. 작년 4.13총선 때다. 반송시장 앞 유세장이었는데 문재인과 노회찬이 함께 나오는 사진을 찍으러 갔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불평을 하자, 문재인 후보가 성큼성큼, 그야말로 동네청년회 회장님처럼 "뭐가, 뭐가" 하고 소리치면서 풀쩍풀쩍 다가왔던 기억이 났다. 순간 기세에 눌리기도 했고 변신이 너무 놀랍기도 해서 "아, 별거 아닙니다" 하고 피하고 말았다. 마치 파도가 쓸고 지나간 것 같았다. 변해도 엄청 변해 있었다. 대체 저 변신은 어떻게 가능한 거지? 하고 놀랐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이날의 화두는 지방분권이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5인가? 여수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방분권은 시대정신이며 국민의 명령이다." 그러고 보면 문재인 정권의 지방분권 개헌 선언이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왔으며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를 계승하는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다행스럽게 이 기사를 아고라의 한 회원분이 캡처해 올려두어 다시 만날 수 있었지만 사진까지 함께 캡처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사진도 함께 볼 수 있었으면 더없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의 욕심은 한정이 없다. <파비>


노무현추모위, 상임위원장에 문성현씨 뽑아

김두관, “추모위가 노무현의 지방분권, 균형발전 뜻 펼치는 자리 됐으면”


2011년 04월 13일 (수) 00:51:42                                                               정부권 기자 soyagang@daum.net


노무현 대통령 2주기 경남지역 추모위원회가 구성됐다. 4월 12일 오후 6시 창원컨벤션센터(CECO)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2주기 추모위원회 구성을 위한 발기인 모임은 노무현 추모위원회 상임위원장에 문성현 전 민노당 대표(현 창원시당위원장)를 선출하고 집행위원장에 이철승 목사를 임명하기로 했다.


▲ '노무현 2주기 추모위원회 발기인 모임' 모습


이날 행사주최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을 기리는 사람들이 모이는데 의의를 두고 이번 모임을 준비했으며, 특별한 기획 없이 자원봉사자 중심으로 일을 진행했다”고 밝혔는데, 실제로 사전에 특별히 조직구성 등을 준비하거나 하지 않았던 것은 이후 회의 과정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장에는 김해을 보궐선거의 예비선거라 할 만한 야권단일후보 여론조사에서 승리한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봉수 후보는 국민참여당 경남도당위원장으로서 다른 정당사회단체 대표들과 더불어 ‘추모위원회 제안자’의 자격으로 온 것이었다.


이외에도 김두관 경남지사를 비롯해 민주당, 민노당, 국민참여당의 인사들이 대거 발기인 모임에 참여했다. 본행사가 시작되기 전 단상의 스크린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어떤 참석자의 혼잣말처럼 ‘역시 거리의 사나이’다운 활력이 돋보였다.


스크린에서 그는 “(정치판이) 좀 보수적이고, 또 좀 진보적인 두 진영으로 갈라져서 서로 경쟁해야 되는데, 이걸 지역주의가 가로막고 있다. …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투쟁에서) 언론에 굴복하는 비겁한 정치인은 되지 않겠다”고 역설하고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뒤에 나온 인사말들이 마치 이를 보고 하는 듯해 묘한 인상을 주었다.


▲ 맨 오른쪽이 문재인 전 노무현 대통령비서실장, 그 옆이 김두관 경남도지사, 맨 왼쪽은 김영만 6.15선언남측위원회 상임대표.


김두관 지사는 인산말에서 “대통령 생각할 때마다 지방분권 생각이 간절하다. 동남권신공항 백지화, 과학벨트 분산, LH 일괄이전문제 등 쟁점들을 보면서 분권의 중요성, 균형발전이 곧 대한민국의 미래임을 절감한다. 오늘 이 모임이 추모의 뜻 외에도 지방분권, 균형발전을 통해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정치선진화를 이루고자 했던) 노무현의 뜻을 펼치는 결의의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노무현 정권의 핵심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었다. 퇴임 후에 귀향하신 거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노무현 추모사업 만큼은 중앙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중심으로 하자는 공감대가 있었고, 각 지역별로 추진하도록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또 문 이사장은 “경남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노무현 추모사업에) 여건이 좋다. 봉하마을이 가까우니까 청소년 캠프도 할 수 있고, 생태체험학습 프로그램, 친환경농업 자원봉사 같은 일도 만들기 쉽고, 노무현 생가도 직접 보고, 느끼고, 함께 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해 나름 하나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발기인 모임의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문성현 민노당 창원시당위원장(전 민노당 대표)은 사회를 맡은 김태환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일일이 행사의 진행경과나 안건의 취지를 물어가며 어렵사리 회의를 진행하면서 “주최측의 말대로 진짜 아무런 사전 준비나 각본이 없는 게 그대로 보이죠?” 하고 말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 발기인 모임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문성현 노무현 2주기 추모위원회 상임위원장.


결국 문성현 임시의장의 기지로 ‘우선 발기인 모임에서 추모위원회 구성에 동의하는 결의를 하고 추모위원회 위원장단 및 집행위원장, 각 분과구성에 대해서는 발기인 모임 제안자들인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에게 위임해주면 뒤풀이 자리에서 별도로 의견을 모아 선출할 것’을 제안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한편, 이날 발기인 모임은 김태환(전 청와대 행정관, 전 경남노사모 회장) 씨와 김현찬(개인사업) 씨 등 자원봉사자들이 중심이 되어 준비하고, 민주-민노-참여당 등 정당대표들과 김영만 전 희망연대 상임의장, 이경희 진보연합 상임대표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제안을 해 이루어졌다. 발기인 모임 제안자 명단은 아래와 같다.


진보연합 상임대표 이경희/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경남본부 상임대표 김영만/ 경남이주민센터 목사 이철승/ 경남민언련 공동대표 김송자, 박종훈, 이건혁/ 부산대 교수, 변호사 차정인/ 경남대 교수 안승욱/ 민주당 경남도당위원장 백두현/ 민노당 경남도당 위원장 이병하/ 국민참여당 경남도당위원장 이봉수/ 남해군수 정현태/ 민노당 전 대표 문성현/ 두드림 전국대표 윤정대/ 시민광장 경남대표 심성호(바우)/ 노사모 경남대표 오세주(가야)


▲ 노무현 2주기 추모위원회 발기인 모임 제안자들. 이봉수 국민참여당 경남도당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지난 6월 24일 오후3시부터 6시까지 부산민주공원 옥상 마루에서 <100인닷컴>과 <경남블로그공동체> 주최로 김정길 전 행자부장관 블로그합동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30분이나 훌쩍 넘겨 6시가 넘어 끝났습니다. 못다 한 질문도 많고, 못다 한 답변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알찬 인터뷰였다고 생각합니다. 가볍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인터뷰 기사를 연재하려고 생각했지만, 역시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라 의도와 달리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지난 6월 12일 김정길 전 장관은 대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내년 총선에도 선도 출마해 부산에서 최소 5석, 최대 10석까지 얻어 대선에서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날 인터뷰에는 서울, 부산, 창원에서 15명의 블로거를 비롯 20명이 참여했습니다.  

ps; 어제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니 김정길 전 장관이 유력 대선후보로 급부상했다는 소식입니다. 야권후보 경쟁에 새로운 변수가 생겼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 블로그공동체와 100인닷컴 탓이라고 꼭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블로그인터뷰한 내용을 포스팅하고, 100인닷컴에 기사도 올리고 하는 와중에 생긴 일이라 사실 좀 흐뭇하긴 합니다. ㅎㅎ~ 이글은 100인닷컴에 미리 실었던 내용입니다.  <파비>

 

이윤기 부장(마산YMCA 기획부장, 블로그 ‘이윤기의 책읽기 세상읽기’ 운영자)이 제대로 된 문제제기를 하셨습니다. 김정길, 분명 박근혜나 손학규보다는 훨씬 매력적인 인물인 거 같기는 한데 뭔가 ‘딱’ 하는 게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랫동안 뉴스의 중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일까요?

꼭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야인으로 은인자중하며 살다가도 혜성처럼 나타나 정계를 뒤흔드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숨어(?)지내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는 했습니다.

아무튼 이윤기 부장의 지적은 날카롭고 정확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길 전 장관이 사실상 대선출정식이었다고 해야 할 ‘김정길의 희망’ 책 출판기념회에서 말한 ‘노무현은 바보, 나는 왕바보’라는 슬로건에 대해 ‘노무현을 넘어서야 대권에 다가갈 수 있다’고 한 지적 말입니다.

그런데 몇몇 분들이 이 ‘노무현을 넘어서야 대권에 다가갈 수 있다’고 한 이윤기 부장의 문제제기에 대해 잘못 해석하고 있는 거 같아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원래 저의 ‘김정길 블로그 합동인터뷰 취재산책’이 이쪽 길로 나갈 생각이었던 것은 아닌데 의도하지 않게 잠깐 샛길로 들어서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리면, 저는 미리 ‘김정길 인터뷰’에 질문을 여러 개 준비하고 있었고 그 중에 하나가 “보편적 복지에 대해 나름 확고한 입장이 계신 듯한데, 이른바 민주정부 10년,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공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자유주의, 한미FTA 등으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농민들의 삶이 위협받았던 것은 김 장관님이 말씀하시는 보편적 복지와는 반대방향 아니었을까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준비한 질문들의 요지는 비슷해서 모두 보편적 복지, 교육개혁에 대한 생각, 선거제도 개혁 등 진보적 의제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블로그 인터뷰에 질문이 너무 많이 쏟아지고 예정된 시간도 2시간 30분을 훌쩍 지나 3시간을 넘기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질문들은 하지 못했습니다.

▲ 블로그합동인터뷰 전 부산민주공원 기념관에서 1971년 유신헌법 선포 당시 전국에서 총학생회장으로 유일하게 구속됐을 때 사진과 기사 등을 들여다보며 감회에 젖고 있는 김정길 전 장관 @사진. 포토뮤 제공

하지만 다른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김정길 전 장관이 지역주의 타파, 정치적 민주주의, 남북관계 개선 등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복지, 선진적 정치개혁 등 진보적 의제에 대해선 매우 추상적인 견해만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윤기 부장은 “김정길을 봤을 때 노무현을 넘어서는 어떤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윤기 부장의 생각처럼 “바보 노무현보다 나는 더한 왕바보다!”라고 선전하는 것은 정말 바보짓이며 진짜 노무현과 자신을 비교하고 싶다면 노무현보다 더 강한 임팩트를 표출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뭘까요? 진보적 의제에 대한 본인의 정확한 답안지를 만들고 그걸 선전해야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인 것입니다.

2012 대선은 그야말로 ‘복지전쟁’이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측입니다. 이런 흐름에 편승해서 민주당은 전통적인 보수정당이면서도 무상급식을 말하고 나아가 보편적 복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자기네 당 대표 경선에 나와서 한 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무상급식, 이거 무상시리즈의 출발점이에요.” ‘무상시리즈’란 표현은 홍 의원 입장에선 ‘매우 불쾌한 정책이다. 이거 사회주의 정책 아니냐?’라면서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온 일부 후보가 이런 주장에 동조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하는 공격적 어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홍 의원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무상급식은 무상시리즈의 작은 시작에 불과하며 종착점에 다가갈수록 ‘무상교육, 무상의료’ 같은 보다 선명한 구호들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상시리즈는 실제로 사회주의 정책이 맞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 정책이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나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요? 왜 꼭 아니라고 부정하며 방어적 몸짓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아이러니한 것은 사회주의자 탄압으로 악명을 떨쳤던 비스마르크 정권이 사회주의자들이나 반길 사회보장제도를 독일에 제일 처음 도입했다는 것이며, 또한 반공을 국시로 했던 (공산당 활동으로 처형당할 뻔 했던 사람이 반공을 국시로 하다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죠) 박정희 정권이 사회주의자들이나 반길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명박 정권은 박정희 정권의 이 치명적인 오류(?)를 수정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긴 합니다. 이 정권의 기조에 반해 박근혜 전 대표는 복지를 자주 입에 올립니다만, 그의 부친의 행적을 보면 나름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박근혜의 (아무런 의미도 없이 말장난에 불과한) 복지론이나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론에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일반 국민들은 어떨까요? 저처럼 복지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별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는데 일반 국민들이 그 차이를 알 수 있을까요? 결국 2012년의 복지전쟁은 소리만 무성한 전쟁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때 김정길 전 장관은 그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선명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한미FTA, 이라크 파병, 국가보안법 같은 문제들에 대한 김 전 장관의 견해가 어떠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김 전 장관의 분명한 입장도 아직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작년 부산시장 선거 때 ‘한 독거노인의 슬픈 사연을 만나고 흘린 눈물’ 같은 이야기는 감동적이긴 해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부자에게 명예를, 빈자에겐 존엄을.’ 구호는 그럴 듯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저 환상에 불과합니다. 유토피아란 말이죠. 그리고 설령 그런 대통령이, 말하자면 재벌도 좋아하고 노동자도 좋아하는 그런 정권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 시점에서 저는 이윤기 부장의 말이 백번 옳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대통령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그런 대통령이 필요한 시대다.”

▲ '100인닷컴' '경남블로그공동체' 합동블로그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부산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탑에 참배하는 김정길 전 장관 @사진. 포토뮤 제공

만약 김정길 전 장관이 ‘부자에게 명예를!’이란 슬로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자들에게 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 명예를 얻도록 하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리하여 그 세금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복지를 골고루 나눠주겠다”라고 말한다면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김정길의 보편적 복지론은 환상이 아니라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정책이고 공약이 되겠지요. 복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재정 이야깁니다. “돈은 어디서 만들 건데? 그게 없잖아. 그러니까 당신의 정책이 포퓰리즘이라는 거야.”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론도 기껏 “4대강에 쓸 돈이면 충분하다”든지 “지금 있는 재정을 잘 활용하기만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거둬들여 그걸로 국민들에게 복지를 나눠주겠다” 따위의 혁명적인 발언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부자들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재벌을 무시하고 어떤 정책을 만들 수는 절대 없습니다. 심상정 전 의원이 경남도민일보 독자모임 강연회에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절대 재벌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윤기 부장이 “김정길 전 장관에게서 강한 임팩트는 느끼지 못했다”고 하면서도 “보편적 복지에 대한 뚜렷한 소신을 발견한 점”은 소득이었다라고 생각한 대목이 바로 아래와 같은 김 전 장관의 주장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육료 걱정하지 않고 아이 낳을 수 있는 나라, 돈이 없어서 병원 치료를 못 받는 일이 없는 나라, 가난 때문에 목숨 끊는 국민이 없는 나라, 가난해서 공부 못하는 일이 없는 나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나라, 출산율을 높이고 자살률을 낮출 수 있는 보편적 복지가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 부분은 ‘빈자에겐 존엄을!’이란 슬로건을 설명하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말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언어로 말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런 정도의 표현은 박근혜 전 대표도 할 수 있으며, 김 전 장관의 1차적 경쟁상대인 손학규 대표도 할 수 있습니다.

‘보육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돈이 없어서 병원치료를 못 받는 일이 없는 나라.’ 제 욕심 같아서는 ‘무상교육, 무상의료’라고 분명하게 말해주면 좋겠지만, 그게 부담스럽다면 어떻게 돈이 없어도 교육받을 수 있고, 병원에도 갈 수 있다는 것인지 그 어떤 다른 방법이라도 알려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이라면 아마 이렇게 말하겠지요. “부자들에게 세금 깎아주면 되는 거야. 법인세 낮추면 기업의 소득이 늘어나고, 그러면 투자가 활발해지고, 고용이 늘어나고, 그러면 돈 없어 병원 못가는 사람도, 공부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거야.”

현재로선 김정길 전 장관의 ‘부자에겐 명예를, 빈자에겐 존엄을’이란 슬로건이 제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많은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보수정객들이 유행병처럼 입에 담는 ‘보편적 복지’와 김 전 장관의 ‘보편적 복지’가 무엇이 다른지도 현재로선 불투명합니다.

다시 말해 그의 슬로건은 진보와 보수를 모두 아울러 ‘표의 확장성’을 노려보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소리만 요란한 ‘복지전쟁’에 잘 들리지도 않을 작은 총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판단에는 다른 유력후보들에 비해 인지도가 현저히 낮다는 점도 한 몫 합니다.

▲ 인터뷰 시작 전 블로거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는 김정길 전 장관 @사진. 포토뮤 제공

블로그 <장복산>을 운영하는 이춘모 씨는 이윤기 부장의 글에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또 다른 정권의 탄생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라고 댓글을 달았지만, 저는 역시 이윤기 부장의 답글과 같이 “지금 한나라당과 같은 보수세력과 진보를 아우르는 정권은 무의미한 역사의 후퇴”라 생각하고 또 그런 정권이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명박 정권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정권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취해야 할 스탠스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고 그걸 숨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진보에 적대감을 보입니다. 오히려 진보인 척 하면서 수구적 욕심을 채우는 가짜 보수들에 비해 그들은 분명한 판단을 도와준다는 점에서 훌륭합니다.  

자, 대충 결론을 내겠습니다. 김정길 전 장관이 자신의 약점인 인지도 약세를 딛고 대권에 도전하려면 노무현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것은 블로거 거다란이 이야기한바 ‘이미지의 차별화’가 아니라, 이윤기 부장의 지적처럼 보다 더 선명한 진보적 의제를 발굴하고 주장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유로피안 드림>이었다고 합니다. 노 대통령은 퇴임 후에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많은 고민과 후회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로피안 드림>을 읽으며 유럽사민주의와 보편적 복지에 대해 연구를 해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노 대통령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전직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사회상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고 제시하는 한국사회에 드문 지도자상을 정립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제 블로그에다 아쉬움을 토로한 적도 있습니다.

김 전 장관이 “부자가 명예를 얻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건 세금을 많이 내는 거야”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도대체 부자가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외에 더 명예로운 일이 무에 있을까요? 기부도 있고 재단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그저 하나의 미담일 뿐입니다.

남들보다 많이 번 돈에 대해 세금을 많이 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법인세를 예컨대 25%에서 20%로 낮추어준 것과는 정반대로 50%로(실제로 유럽의 모든 복지국가들은 담세율이 이 정도로 높습니다), 물론 혁명정권이 아니므로 점진적으로 해야겠지만, 올리겠다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돈으로 보편적 복지를 달성하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4대강에 쏟아 부은 돈만 해도 충분하다든지, 지금 있는 재정만 가지고도 충분하다든지 하는 주장보다(실은 이런 주장들은 모두 부자들의 조세저항이 두려워 나온 것이죠) 훨씬 구체성과 신뢰성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자신의 철학에 따른’ 다른 방법이 제시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해야 뒤에 나오는 ‘빈자에겐 존엄을’이란 슬로건이 “아하, 그런 뜻이었구나!” 하고 선명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빌프레도 파레토가 말한 ‘20 대 80의 사회’가 분명합니다. 아니 ‘5 대 95’, ‘1 대 99’의 사회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시대에 대권에 도전하면서 김정길 전 장관이 취해야 할 스탠스는 진보와 보수 모두를 아우르겠다는, 별로 현실적이지도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이는 매우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를 낳기만 할 뿐입니다. 오히려 자기가 누구 편인지 분명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누구 편이어야 할까요? 가난한 자의 편이어야 합니다. 만약 박근혜 전 대표나 손학규 대표라면 제가 이런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김정길이기 때문에, 달동네에서 만난 한 노인의 슬픈 사연에 눈물지었다는 김정길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누구보다 뚜렷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신념을 세웠다고 자부하는 김정길이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인터뷰 도중 갈증이 나 물을 마시고 있는 김정길 전 장관 @사진. 포토뮤 제공

소통과 화합을 말하니 생각나는데,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로 유명한 황희 정승도 실은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었습니다. 김정길 전 장관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우는 ‘협상과 소통의 달인, 화합의 정치인’이 어쩌면 황희 정승의 이미지와 닮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황희 정승도 너무나 뚜렷한 소신 때문에 죽음마저 불사해야 했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자들도 옳고, 빈자들도 옳다!”는 말로는 이 시대를 개척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부자’와 ‘빈자’의 가운데 자리가 아니라 확실한 자기 입장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김정길 전 장관 특유의 ‘소통과 협상의 정치, 화합의 정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 전 장관이 그의 자서전 ‘희망’에서 “가난한 자의 존엄을 지켜주면 부자에게 명예가 생긴다”고 한 설명은 김정길로부터 아직은 작은 희망을 발견하게 합니다.

가난한 자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 먼저라는 것. 부자들의 곳간을 먼저 채워주면 빈자들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질 것이라는 소위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낙수이론’과는 분명한 차별성이 여기로부터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한번 가져봅니다. 그리고 바랍니다.

‘보다 구체적이고’ ‘보다 선명한’ 김정길 대권주자가 되었으면, 그리하여 ‘2012 복지전쟁’을 주도하는 김정길이었으면 하고 말입니다.

다음번 이야기는 ‘왜 김정길은 언론에 나오면 안 되나?를 가지고 써보려 합니다. 어느 분이 경남도민일보 이승환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김정길이가 신문에 나올만한 사람이냐?”고 항의했다고 하네요(이 기자는 블로그인터뷰를 취재해서 경남도민일보에 기사를 썼습니다).

좀 어이가 없긴 하지만, 이 기회를 빌어서 “왜 김정길을 언론에서 주목해줘야만 하는가?”에 대해 나름대로 제 생각을 풀어보려 합니다. 주제가 좀 황당하고 따라서 궤변이 될 소지도 있지만, 마침 그 ‘어느 분’이 좋은 이야깃감을 제공해준 것 같아 되레 고마울 따름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지난 24일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블로거합동인터뷰가 있었습니다. 100인닷컴과 경남블로그공동체가 주최한 행사였습니다. “김정길 장관?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분명 아주 젊은 사람입니다.

김 장관은 부산에서 두 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된 인물입니다. 그러나 1990년 1월 22일 전격 단행된, 이른바 보수대연합이라 불리는 3당 합당을 폭거라 칭하면서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를 따라가길 거부한 인물입니다. 이때 노무현 전 대통령도 김정길과 뜻을 함께 했습니다.

▲ 부산민주공원 내 민주기념관 옥상 마루에서 블로거합동인터뷰 중인 모습 @사진. 블로그 '크리스탈' 운영자 크리스탈


3당 합당에 대해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모르시는 젊은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민주화세력으로 분류되던 김영삼과 통일민주당이 5공 군사독재세력인 민정당과 3공 군사독재세력의 잔당으로 평가되는 김종필의 공화당, 이렇게 3당이 합당해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김정길과 노무현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계파정치, 보스정치가 한국정치를 주름잡던 시대인 만큼, 3당 합당에 의해 탄생한 민자당, 오늘날의 한나라당이 야당성향이 강하던 부산과 경남을 집어삼킨 것입니다. 이후에 김정길은 부산에서만 내리 다섯 번을 떨어졌습니다.

김정길은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3당 합당에 반대해 끝까지 절개를 지키며 고군분투한 공을 인정받아 국민의 정부 초대 행자부 장관을 했고, 나중에는 정무수석비서관도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역시 국민의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했지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친구의 의리로 김정길에게 여러 차례 원하는 자리가 있는지 물으며 기용할 뜻을 비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내가 친구이자 평생 동지인 노 대통령이 재임할 동안은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어떤 자리도 맡지 않을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런 그도 나중에 대한체육회 회장과 한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직을 역임했는데 그에 대해 “그건 선출직이어서 내가 나갔던 것”이라고 했지만, 과연 그런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그의 말처럼 “철새처럼 한나라당에서 커서 민주당을 잡아먹은 손학규와는 분명 다른 인물”임은 분명했습니다.

제가 사실 김 전 장관에게 그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만, 워낙 질문과 답변이 길어 정해진 시간인 두 시간 반을 훨씬 넘어 세 시간을 향해 달리고 있었으므로 하지 못했는데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민주당 당원들의 당심은, 또 민심도 손학규가 1등일까요? 이상하잖습니까?”

사실 기억하시는 분은 하시겠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손학규가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떨어져 민주당으로 들어와 대선 경선에 나서려하자 이렇게 말했다죠. “저 사람은 절대 안 된다!” 노무현은 너무나 생각과 행동이 분명해서 고건 전 총리에게도 “그 사람도 절대 안 돼!”라고 말해 섭섭하게 했었죠.

암튼^^ 이건 나중에 서면으로 다시 질문하면 본인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변해주기로 했으니까 그때를 기다리기로 하고요. 오늘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운동 중에 가장 좋은 운동이 뭘까? 이건 김정길 전 장관이 인터뷰 끝나고 블로거들과 밥 먹으면서 한 소리입니다.

원래 이야기는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에 대한 김 장관의 지론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것, 두 번째가 운동을 많이 해야 된다는 것이었고, 세 번째가 소식한다는 것이었는데요. 두 번째, 운동 중에 제일 좋은 운동이 또 선거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하니 첫째, 선거운동하면 많이 걸어야하니 자연스럽게 운동이 되니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고, 둘째, 사람들을 만나면 찡그릴 수도 없고 마음에 있던 없던 웃어야 하므로 또 이보다 더 좋은 안면운동이 없다는 것이며, 셋째, 이때 악수를 하며 웃어야 하는데 악수가 또한 좋은 운동이라 가장 좋은 운동은 선거운동이다, 뭐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 "운동 중 가장 좋은 운동이 선거운동이에요." 자기 지론을 말하고 있는 김정길 전 행자부장관. 김장관 오른편은 블로그 '장복산' 운영자 이춘모, 왼편은 블로그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세상보기' 운영자 김주완 @사진. 블로그 '발칙한 생각' 운영자 구르다(이종은)

듣는 느낌으로는, 평생을 각종 선거에 출마해 떨어지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삼아온 인생에 대한 한탄처럼 들리기도 했고, 이번에 큰 선거에 나가는데(대선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그에 대한 자기 다짐과 더불어 선거운동 열심히 해달라는 주위에 대한 부탁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김정길이 부산에서 내리 다섯 번을 떨어지며 고난의 행군을 한 것을 그의 탓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김영삼과 통일민주당 다수 국회의원들이 노태우정권이 만들어놓은 3당 합당이란 그늘에 투항했기 때문이고, 부산시민들이 몽땅 자신들을 한나라당에 바쳤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든 고난의 역정을 걸어온 한 정치인이 자신을 향해 “선거운동이 운동 중에 제일 좋은 운동이야!” 하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그가 제시한 건강하게 사는 비결 첫 번째,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것과 결부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긍정적으로, “그래, 선거운동 열심히 하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하면서 뛰어다닌다면 당락을 떠나 즐거운 선거운동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저는, 그래도 선거운동이 제일 좋은 운동이라는 데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 한번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완전히 피폐해지고 만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김정길은 꽤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도 블로거 자격으로 이날 인터뷰에 참여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대선에 출마한 유력인사들을 거의 다 인터뷰해봤는데, 노무현, 이회창, 문국현, 손학규, 정동영, 김근태…, 그런데 노무현 이후에 이렇게 필이 좋은 괜찮은 사람 처음 본다. 인지도가 너무 낮은 게 흠이지만, 사람은 아주 마음에 든다.”

어쨌거나 저는 지지자도 아닌 입장에서 뭐라 말씀드리긴 뭣합니다만, 김정길 전 장관님의 운동이 정말 좋은 운동이 되기를, 가장 좋았던 운동이 되기를 바라마지않습니다. 바라마지않습니다, 이렇게 표현하고 보니 이거 고 김대중 대통령이 유세 때 말 마무리에 주로 잘 쓰시던 표현이군요.

이로써 한 가지는 확실해졌습니다. 저는 선거운동은 제대로 못해봤지만, 선거구경은 열심히 했다고 말입니다. 하하. 

Posted by 파비 정부권

100인닷컴 기자 자격으로 <노무현 대통령 2주기 추모위원회 발기인모임> 취재를 위해 창원컨벤션센터에 다녀왔습니다. 세코(CECO)라고도 부르는 창원컨벤션센터,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자주 가볼 수도 없는 곳이지만, 엄청 깨끗하고, 넓고, 세련되고, 화려하고, 또 뭐가 있나, 암튼^^ 좋네요. ㅎㅎ

뭐 좋은 걸 좋다고 하는 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갑자기 허정도 전 경남도민일보 사장님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성산아트홀이나 3.15아트센터나 거대한 종합운동장 같은 시설보다는 자그마한 수영장, 문화공간 이런 걸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게 동네마다 만들어야 한다고요. (우리 동넨 거꾸로 있던 것도 없애고 공무원들 사무실로 개조합디다만)

왜냐하면? 사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곳에 가서 고급 오케스트라나 뮤지컬이나 뭐 이런 거 볼 기회가 별로 없다는 거지요.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참 옳은 말씀이다, 그리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하늘에 별 따기 같은 기회가 제게도 오니 좋긴 좋군요. 

100인닷컴 편집장 오래도록 해먹어야겠어요. 능력이 딸려 곧 쫓겨날지도 모르지만서도... 흠^^ 어쨌거나 허 사장님의 말씀은 전적으로 옳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동네에도 세코 정도는 아니라도 그 만분에 1만이라도 한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아, 이거 제 주특기긴 하지만서도, 또 말이 새나갔네요. 흐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문성현 씨가 <노무현 추모위원회> 임시의장에 선출돼서 회의를 진행했는데요. 진짜로 사전에 아무 각본이나 작전 그런 거 없었던가봐요. 

그래서 일단 사진 몇장만 구경하시라고 올려봅니다. 진즉 각본이 없어 혼동스러워하는 이런 장면 볼 줄 알았으면 미리 사진 찍을 준비하고 팡팡 찍는 건데... 아쉽습니다. 그래도 역시 문성현 씨, 베테랑답게 스무스하게 일 처리 잘 하더군요. 하긴 젊었을 때부터 회의에는 이골이 난 양반이니...
 


올라오라 해서 올라가긴 했는데, 문 의장, 상당히 곤혹스런 모양이네요. "가만 있어보자, 그러니까 오늘 결정해야 될 게 추모위원회를 바로 만들자, 아니면 준비위부터 먼저 만들든지, 뭐 그런거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 사회를 맡아보던 김태환(전 청와대 행정관, 전 노사모 경남회장) 씨를 보고 "뭐 따로 준비된 거 없어요?


제가 취재를 위해 노무현 2주기 추모위 발기인모임 준비사무실에 들렀을 때, 열심히 회의도 하고 하시던 주최측 대표선수 김태환(사진 가운데) 씨, "아무것도 없심더."


↗"어, 이러면 곤란한데, 가만 있자, 그래도 내가 관록이 있지, 이런 정도로 버벅거리면 체면이 안 서겠죠? 이런 땐 최고 수가 겐똡니다. 대충 두두려 잡는 게 상책이죠. 내가 이래뵈도 왕년에 겐또 선수였습니다. 겐또 잘 찍어서 서울상대도 갔다 온거 소문들 들으셨죠?"


↗김두관 지사, "흐흐, 각본 좀 짜고 오지. 문성현이 오늘 진땀 좀 나겠네."


↗김두관 지사, "어디 보자!" ……

하지만, 맨 왼쪽 김영만 선생, 아무 생각 없는 표정. 혼자만 회의자료 끝까지 안 들었음. 혹시 해병대 정신을 생각하고 있으실지도. "안 되면 되게 하라!" (김영만 희망연대 전 상임의장은 원래 해병대 출신임)


↗"각본도 없이 연기하려니, 아, 이거 쑥스럽구만." (단상에 임시의장 보는 이가 문성현 씨, 사진 왼쪽 끝 사회 보는 이가 김태환 씨다)  그래도 역시 관록은 무시 못하는 것. 무사히 <노무현 대통령 2주기 추모위원회> 구성 만장일치로 완료하고 모든 행사의 하이라이트요 대망, 뒷풀이 자리로 옮김.

 


↗임시의장 맡은 여세(?)로 노무현 추모위원회 상임위원장까지 거머쥔(사실은 밀려서 된 분위기였지만) 문 위원장, "나 오늘 괜찮았어?"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 "어, 아주 잘했어. 그만하면 100점이야!"

이상은 실제상황과는 관계없는, 제가 그냥 잣대로 쓴 소설입니다. 그냥 재미들 있으시라고 한 번 못 그리는 그림 그려 본 것이오니, 오해마시길. 그러나 사실 큰 차이도 없을 겁니다요. 흐흐~ 하지만, 미리 준비한 각본도 없이 어설프게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훨씬 진솔하고, 순수하고, 감동을 주는, 말하자면 무연출에 연출이었다, 그렇습니다.

ps; 참고로 건배하는 술 색깔이 까만 건 마늘액즙과 소주를 반반씩 타서 그런 것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탁구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한 회 한 회가 긴장의 연속이었고 마지막회마저도 그 긴장은 줄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보기 힘든 드라마였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김탁구지만, 사실은 김탁구만 주인공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마준도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승재입니다. 한승재. 그는 이 드라마에서 김탁구를 괴롭히는 악당이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악당들과는 달랐습니다. 눈물겨운 사연을 가진 슬픈 악당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보면 "저 나쁜 놈" 하면서도 또 한편 가슴 시린 연민의 정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었습니다. 그런 그를 거두어준 것은 거성가였습니다. 구일중의 어머니 홍여사가 그를 거두어 키우고 대학 교육까지 시켜 거성맨으로 만들었습니다.


한승재의 콤플렉스는 종놈 의식에서 나온 것?

아마도 한승재에겐 말 못할 콤플렉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홍여사 밑에서 구일중과 함께 자라고 친구가 되고 공부도 해서 매우 영특한 인재가 되었지만, 구일중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구일중의 밑에서 비서실장으로 2인자 역할을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물론 그는 떠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홍여사가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구일중을 위해 거성에 남아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구일중도 그런 한승재가 누구보다 미더웠을 것입니다. 형제같은 친구이자 비서실장 한승재가 든든했을 것입니다. 

한승재가 서인숙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또는 한승재와 서인숙이 어느 정도의 관계였기에 마치 구일중이 한승재가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았다고 했는지는 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불만스런 것이었지만, 제작진이 왜 그랬는지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한승재는 서인숙의 꾐에 넘어가―처음에 그는 매우 머뭇거렸습니다. 그런 점으로 보아 그의 사랑이 홍여사에 대한 보은의 감정보다 크다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불륜을 저질렀고, 그 결과 구마준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한승재가 악당이 되는 씨앗인 셈이었습니다.

한승재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아주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조실부모하고 홍여사 밑에서 구일중과 형제처럼, 친구처럼 자랐지만 늘 콤플렉스에 시달렸을 겁니다. 마치 문간방에 빌어먹는 종 신세가 바로 자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콤플렉스는 역으로 스스로를 더 종이란 인식에 가두었을지 모릅니다.

아들 마준은 외로운 한승재에겐 인생의 목표

그렇게 체념과 순종에 익숙한 그에게도 목표가 생겼습니다. 아들이 생긴 것입니다. 비록 떳떳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그는 아들을 거성가의 후계자로 만들겠다는 야심이 생겼습니다. 서인숙과 동일한 이 야심이 달성되면 서인숙도 자기 품으로 올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틀어졌습니다. 최후에 그의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구마준이 교도소에 수감된 한승재를 찾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저씨, 나는 아저씨가 단 한 번이라도 존경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어요.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비참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되었을 거에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말하는 구마준이야말로 참으로 미운 말만 골라서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마준은 알고 있습니다. 한승재가 왜 그토록 악독한 인간이 되었는지를. 그것은 모두 구마준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으므로 친아들 마준과 서인숙이 전부요 목표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모습은 숭고한 것입니다. 비록 한승재가 살인미수, 강간사주, 폭력, 아동유괴, 횡령 등 갖가지 범죄를 다 저지른 악당이지만, 구마준은 아버지를 그런 눈으로 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최소한 마준에게 한승재의 아버지로서의 사랑은 절실한 것이었으니까요. 

한승재가 구일중에게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 가슴에 닿습니다. "나는 평생을 네 밑에서 2인자로 살아왔어. 그런데 날 봐. 내가 뭘 가지고 있지? 종처럼 부려먹고 내게 해 준게 뭐냐고. 누군가가 가지게 되면 누군가는 빼앗기게 돼 있어. 이 세상은 이기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야." 

생존경쟁에 내몰린 아버지들이 존경받는 삶, 쉽지 않다

한승재의 부정은 삐뚤어진 것이었지만, 그 삐둘어진 부정의 배경에는 이 사회의 냉혹한 현실이 있었던 것입니다. 한승재가 말한 현실, 곧 누군가가 가지게 되면 누군가는 빼앗기게 되어 있다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대체 구마준은 어떤 존경스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기대했던 것일까요?  

저 역시도 한승재의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자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도소에 찾아가 한승재를 향해 "왜 존경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느냐?" 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과연 자식들에게 얼마나 존경스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말로는, 정치사회적으로는 진보니 민주니 하고 떠들면서도 막상 직장에 나가면 살기 위해 신념과는 다른 행동을 하도록 강요받는 것이 이 시대 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4대강사업 반대 집회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사업을 하는 어떤 아버지는 살기 위해 권력자들을 만나면 웃음을 팔아야 합니다.  

어찌보면 이 사회에서 진정 존경받을 수 있는 아버지가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물론 한승재는 벌 받을 만한 짓을 했습니다. 한승재는 비열했으며, 잔인했고, 부도덕했습니다.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이유는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가지게 되면 누군가가 빼앗기게 되는 이 냉혹한 현실 앞에서 나는 내 아들에겐 절대로 빼앗기는 서름을 당하게 하지 않겠다. 이기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이 세상에서 내 아들 만큼은 기필코 승자의 삶을 살도록 해주겠다."  

한승재의 삐둘어진 아들 사랑은 그의 탓만은 아니다

한승재의 비장하기까지 한 이 이유가 오로지 그의 탓만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승재의 아들을 향한 삐뚤어진 부정은 실은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온 것입니다. 만약 이 사회가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가진자가 되어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사회였다면 한승재의 불행은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얼마 전 봉하마을에 블로거 간담회를 갔다가 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김경수 전 비서관이 한 말인지 김정호 전 비서관이 한 말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퇴임 후 고향에 정착한 전직 대통령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한결 같이 노 전 대통령에게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덕담 한마디 해주세요." 그러면 노 전 대통령은 진지하게 고민하다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글쎄요. 이런 말이 있잖아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우리 세대는 그럴 말 들으며 자랐잖아요. 그런데 말이에요. 이런 생각을 해야만 했던 그런 사회가, 그런 시절이 그만큼 불행했던 것이죠. 그런 사회는 미래가 없어요. 그런 사회를 물려주면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별 생각없이 메모만 하고 말았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사람 사는 세상'이란 어떤 것인지 또 그런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어른들의 할 도리가 아니겠냐 뭐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원칙과 상식이 있는 사회',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면 한승재 같은 인물은 없어질까?

노무현은 매우 진지한 사람이어서 어쩌면 아이들에게 그저 "착하고 건강하게 크세요"라거나 "공부 열심히 하세요" 같은 상투적인 덕담은 하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어른들에게 덕담을 해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튼, 정반대의 방향에 있는 모난 돌과 한승재를 비교하는 것은 난센스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어떻든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그게 어떤 세상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물어보긴 했는데 시원한 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모난 돌도 한승재 같은 인간도 나타나지 않겠지요.

어떻게 마무리를 하다 보니 한승재를 위해 변명을 한다는 것이 엉뚱하게 한승재를 욕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한승재가 악당이기는 하지만 그가 삐둘어지게 된 배경에는 치열하게 경쟁을 조장하는 이 사회의 탓이 더 크지 않겠나 그런 생각입니다. 

                                                                                                   이블로그가 맘에 들면 구독+신청 Q

Posted by 파비 정부권
"한성별곡에서 정조의 캐릭터는 노무현에 비유되는 장치를 활용한 것" 
"이명박 대통령이 현직에 있는 상태였더라도 사람들은 비슷한 구석을 찾아냈을 것"

오늘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다가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추노' 작가, "곽정환 감독과 작품을 하지 않겠다">, 엥? 이게 뭔 소리람…. 역시 낚시였습니다. "곽정환 당신과 꼭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을 제목으로 잡은 것입니다. 결국 낚시가 맞기는 맞지만 즐거운 낚임이었습니다. 

추노에 이어진 한성별곡의 문제의식 

아래 뉴스의 인용 부분은 제가 임의로 앞뒤를 자른 것입니다. 앞부분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곽정환 감독이 천성일 작가에게 함께 일해보자고 추파를 던졌을 때 천성일 작가는 우선 곽정환 감독의 전작 <한성별곡>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말을 한 것입니다. 제대로 해석하면 "나는 당신과 꼭 일을 해야겠다!" 이런 말이었겠지요. 
   

기사의 출처는 시사인/ 미디어 다음


<추노>는 보통 드라마들과 달리 초반부터 폭발적인 시청률로 압도적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 이유로 많은 시청자들이 <한성별곡>의 곽정환에 대한 기대를 꼽습니다. 천성일 작가 역시 공동작업 요청을 받고 <한성별곡>을 보았으며, 곽정환이란 사람에게 빠졌을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너무 똑같다. 그래서 함께 작업 못하겠다", 라는 독특한 수락은 작가의 감독에 대한 신뢰를 잘 보여주는 것이죠.

<한성별곡>에서 정조는 노무현이었습니다. 곽 감독도 그런 지적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극이란 형식을 빌려 현재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므로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에 비유되는 장치들을 활용했을 뿐"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현직에 있는 상태에서 <한성별곡>을 봤더라도 사람들은 비슷한 구석을 찾아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글쎄요. 저는 <한성별곡>을 보지 않았으므로 뭐라고 판단을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겠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정조를 노무현 대신 이명박으로 오해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럼 <한성별곡>에서 이명박은 어떤 인물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일단 그건 <한성별곡>을 보신 분들이 알 수 있겠죠.

한성별곡에서 정조는 노무현, 그럼 추노에서 이명박은 누구?

그런데 짓궂게도 저는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그럼 추노에서 이명박을 찾는다면 누구와 비교할 수 있을까? 분명 <한성별곡>에서 보여준 곽정환 감독의 문제의식은 <추노>에도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한성별곡>에 출연했던 대부분의 배우들이 <추노>에도 그대로 등장했습니다. 최장군도 그렇고 설화, 이경식 등….

그러므로 아마도 <추노>에서도 곽정환 감독은 노무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대통령에 비유되는 장치를 설치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약간은 짓궂은 저의 의도대로 <추노>에서 이명박을 찾는다면 어떤 사람이 될까요?

아무래도 이명박은 대통령이니만치 인조에 비유하면 되겠군요. 인조, 그러고 보니 <추노>에 나오는 인조의 이미지가 왠지 이명박과 어울려 보이는군요. 인조와 좌의정 이경식의 대화를 기억하시나요? 뭐 대충 기억나는 대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다시 들어봐도 섬뜩하지 않으십니까?

"제주도 일은 너무 걱정 마십시오."
"음~."
"용한 의원을 내려 보냈습니다."
"용한 의원이라~."
"예, 전하. 조용하게 처리될 것이옵니다."
"그대가 수고가 많구만~."

인조에겐 이경식, MB에겐 유인촌?

인조에게 이경식이 있다면 이명박에겐 유인촌이 있습니다. 기자들을 향해 "야, 찍지마. 아 씨발~" 하며 인상을 긋던 유인촌은 이명박의 아바탑니다. 이경식이 인조의 어심을 잘 헤아려 알아서 일 처리를 하듯 그도 이명박의 심중을 잘 헤아려 그렇게 막욕을 한 것일까요?


그러나 아무래도 유인촌을 이경식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조금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경식은 그래도 두뇌 돌아가는 소리도 없이 은밀하게 어심을 해결하는 반면 유인촌은 너무 요란합니다. 가는 곳마다 뉴스거리를 만들어 내고 물의를 일으키는 유인촌, 이명박의 아바타라 그런 것일까요?

이번엔 '김연아가 자기를 회피한 동영상'을 편집해(ps; 나중에 동영상을 직접 보니 편집한 게 아니라 실제 장면이더군요) 올린 네티즌을 찾아내 고소했답니다. 남들이 보기에 자기가 성추행을 한 걸로 오해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명예훼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인데, 남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던데 본인만 성추행 오해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혹시 진짜로 그럴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까 모르겠네요.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명박도 마찬가지로 인조와 비교하긴 약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인조는 조선조 사상 가장 무능했던 임금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존심 하나는 무척 셌던 모양입니다. 정묘호란으로 강화도까지 도망가는 수모를 겪고서도 반청 정책을 일관했으니까요.

추노에 숨어있는 MB는 누굴까?

그리고 병자호란 때 삼전도의 치욕까지 겪게 됩니다. 아마 죽고 싶은 심정이었을 테지요. 그래도 그는 청에 대한 반감을 버리지 않습니다. 만약 전해오는 소문이나 <추노>에서 보여주는 추리처럼 소현세자 독살설이 맞는다면 그는 반청을 실천하기 위해 봉림대군을 세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독도 문제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는 일본을 향해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는 식으로 얘기해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는 뭔가 다른 점이 있는 것도 사실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어찌 되었건 곽정환 감독의 스타일로 보면 틀림없이 <한성별곡>처럼 <추노>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숨어있는 것이 확실한데 그게 누굴까요?

오늘 위 기사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추노> 홈페이지 기획의도에 실린 문구가 생각나네요. 상당히 감동을 주는 문구였던지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생각나는 명언입니다. 정말 명언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지금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픽션이
지금 이 시대에서 잊혀져가는 것들을 바라보게 만든다면
다른 시대를 다룬 픽션은 필연적으로,
지금 이 시대 그 자체를 바라보게 만든다고 한다.

                                                                                                       제블로그가 맘에 들면 구독+신청 Qook!사이판 총기난사 피해자 박재형 씨에게 희망을 주세요. ☜클릭
Posted by 파비 정부권
10월 16일(금), 마산공설운동장 올림픽체육관 강당에서는 제59주기 민간인학살희생자 위령제가 열렸습니다. 저는 이 위령제가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열린 합동위령제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잘못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제59주기 2차 마산지역 민간인학살희생자 합동위령제>

위령제는 유교 방식으로 제를 지낸 다음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이 각각 위령예식을 올렸다. 개신교는 안 왔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수많은 민간인들이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학살된 사건은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승만 독재정권처럼 제 나라 국민, 제 민족을 재판도 없이 무참하게 학살한 천인공노할 만행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죄 없는 민간인들을 아무런 재판절차도 없이 학살했던 것일까요? 

이승만 정권의 민간인 학살과 유사한 나찌가 저지른 유태인 학살이 있습니다. 히틀러도 선거에 의해 독일인들의 선택을 받은 정치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국민들을 동원하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습니다. 그 희생양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유태인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 얼마나 소름끼치는 말입니까?

묵념하고 있는 허정도 전 경남도민일보 사장 등 참석자들


그 홀로코스트가 대한민국 땅에서도 벌어졌다는 상상을 한번 해보십시오. 그것도 남이 아닌 동족의 손에, 이웃의 손에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9년 전, 바로 이곳 마산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천 명의 우리의 이웃들이 영문도 모른 채 손과 발이 묶여 마산 앞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깽이바다라고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무심하지 않았습니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고 이승만 정권이 국민들의 손에 쫓겨났습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고, 세상도 바뀌었습니다. 숨죽이고 있던 유족들도 늦게나마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누이들의 명복을 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1차 마산지역 민간인학살희생자 합동위령제>가 열렸던 것입니다. 

위령제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오열하고 있는 유족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박정희의 쿠데타가 일어났고 유족들은 다시 숨을 죽여야만 했습니다. 유족회를 주도했던 노현섭 전국유족회장(마산)은 감옥에 끌려갔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유족으로서 억울하게 희생된 가족의 명복을 빌었다는 것이 죄였습니다. 그때는 법도 상식도 필요 없는 시대였습니다. 노 회장을 비롯한 많은 유족들에게 최고 10년씩 징역형이 선고됐습니다.

그 이후로 유족들은 오랜 세월을 눈물 속에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민주화의 여파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고, 이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 나와 겸허하게 정부를 대표해 사과를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곧 과거사위원회도 해산해야할 운명에 처했습니다. 아직 일을 다 하지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이제 겨우 물꼬를 트기 시작한 일이 커다란 난관에 봉착한 것입니다. 다름 아니라 다시 정권이 바뀐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과거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의 후예들이란 사실 때문이었을까요? 그들은 이제 그만 과거사위원회 따위는 접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명박 정부가 외면하고 싶어도 이미 전직 대통령이 공식 사과한 일에 대하여 왈가왈부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국방부장관이 직접 군이 저지른 과거의 학살행위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의 뜻에서 이번 합동위령제에 조화를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39사단 강재곤 중령을 대리로 보내 추모사도 하게 했습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각료인 국방부장관의 한계는 분명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고개까지 숙인 일에 대해 그저 유감이란 애매모호한 말로 사과를 대신했습니다. 유감? 대체 뭐가 유감이란 것이죠? 어쨌든 민간인학살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한 데 대해 더 이상 토를 달고 싶지는 않습니다.

국방부장관이 보내 온 추모조화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기분 나빴던 것은 바로 황철곤 마산시장의 행위였습니다. 그는 이날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부시장을 대리로 보내고 추모사를 대독하게 하긴 했지만, 다른 일도 아니고 억울하게 죽어간 수천 명의 마산시민들의 유족들이 위령제를 지내는 곳에 그가 직접 오지 않고 부시장을 보낸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혹시 그는 자기가 마산시장이 아니라 전주시장이나 안산시장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게다가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그는 조화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국방부장관과 진실화해과거사위원회, 마산수협장의 조화는 있었지만, 마산시장의 조화는 없었습니다.

혹시, 이분 정말로 자기가 마산시장이란 사실을 잠깐 까먹은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까먹고 싶었거나…. 오늘 10·18 부마항쟁 기념 마라톤대회에 갔더니 제일 먼저 황철곤 마산시장이 축사를 하더군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독재에 항거했던 부마항쟁) 그날의 함성을 되새기며 힘차게 뛰어주시기 바랍니다."

희망연대 김영만 상임의장은 추모사에 앞서 위령제에 불참한 마산시장을 성토부터 했다.


저는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저토록 뻔뻔할 수가 있을까? 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일까? 돈도 많이 벌고…. 하긴, 옛날 어릴 때 어른들에게 그렇게 배웠던 것 같습니다. "세상은 요령이란다. 요령이 없으면 거지처럼 늘 남 밑에서 살게 되는 거야. 그러니 아무래도 요령이 최고지."

그러나 역시 제게는 요령부득입니다. 그런데 마산시장은 그렇다 치고, 진보단체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민노총, 진보연합 등 수시로 각종 행사에 이름을 내미는 진보단체들이 민간인 학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의외였습니다. 그들도 혹시나 마산시장처럼 민간인 학살 문제가 계륵이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59주기를 맞은 민간인학살희생자 유족 여러분의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대해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결국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라는 말 외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이상 아무런 도움도 돼 드리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도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여수넷통 한창진, 경남블로그공동체(약칭 '블공') 첫 모임의 초대 손님이다. 블공은 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아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경남지역 블로거들의 연구모임이다. 블로거스경남의 회원 블로거들을 중심으로 몇 차례 시범 운영한 후에 본격적으로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는 조직이다. 

사진@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블공의 첫 번째 초대 손님으로 여수넷통의 한창진 대표를 모신 것은 나름대로 뜻이 있는 것이었다. 한창진 대표는 지금 여수에서 시민네트워크 구축에 땀을 쏟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야심찬 계획은 ‘블로거 10만 양병설’이란 말로 대변된다. 블로거 10만 양병설? 율곡선생의 10만양병설까지 인용한 이 거창한 계획이란 대체 무엇일까?  

한창진 대표는 원래 교사였고 지금도 교사다.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얼마 전에 김주완 기자가 자기 블로그에 쓴 여수의 시민블로그운동 <블로그로 지역언로를 여는 사람들> 에 대해 읽어 본 것이 전부다. 내가 시민블로그운동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실제로 한창진 대표는 블로그를 시민운동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을 향해 발언하려고 해도 기회를 주지 않잖아요. 특히 언론들이 우리 얘기 제대로 실어주는 거 보셨어요?” 그랬다. 언론의 취사선택이 매우 자의적이고 편의적이란 사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예외가 있긴 하지만 언론들은 늘 힘 있는 자의 소식이나 선정적인 뉴스에 매달리는 경향을 보여 온 게 사실이지 않은가. 

얼마 전, 모 단체의 신종플루 관련 기자회견장에서 발견한 기자들의 모습은 실로 절망적이었다. 기자회견문이 낭독되는 동안 프레스센터 내 상당수의 기자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인터넷을 뒤적이거나 심지어 게임 비슷한 것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대체 이런 기자회견을 왜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마저 들 지경이었다. 

한창진 대표가 블로그를 알게 된 것은 불과 1년 전이었다. 처음 그가 블로그를 발견했을 때 그것은 마치 한줄기 빛과도 같은 것이었다. 1인 미디어, 언론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발언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이 신기한 물건을 왜 이제야 만났단 말인가. 그는 블로그에 열광했다. 홈페이지 같은 것은 이제 구석기시대의 쪼아 만든 돌처럼 보였다.
 
그는 블로그를 알기 전에 인터넷신문 발행을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수시민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그런데 작년 촛불집회 때 보여준 1인 미디어의 활약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또 노무현 대통령의 웹2.0 정신을 살린 <사람 사는 세상>을 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한창진 대표. 사진@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그는 인터넷신문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유롭게 발언하고 소통하는 정보의 유통공간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확장되었다. 뉴스만 전하는 언론이 아니라 언로를 통해 소통하고 조직되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 한창진 대표에게 블로그는 신석기시대를 여는 강력한 도구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의 강좌를 통해 시민블로그들을 하나씩 모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메타블로그를 만들기 위해 이미 2100만 원의 돈도 모았다. 앞으로 2억까지 모금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돈을 내고 참여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자기 일처럼 생각하기 힘들어요.”

대신 그는 투명성을 위해 회계는 따로 회원들 중에서 복수로 선임된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자기가 대표로 있던 시민단체의 회계도 상근실무자가 아닌 회원들이 맡아보도록 했다고 한다. 회계에 관한 그의 생각은 매우 진보적이었다.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회계에 무감각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럼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질문을 과거형으로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라고 하는 것은 현재의 그는 블로그운동가이기 때문이다. 아마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기자 식으로 말하자면 블로그전도사라고 해도 되겠다. 그의 명함에는
'전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한창진'이라고 씌어있었다. 그는 시민운동가였다.

그는 원래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라고 했다. 그는 또 주민발의로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 소위 3여를 통합해 하나의 도시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지금은 행정구역통합전국회의 상임집행위원장이다. 그런 그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우리 나이로 쉰다섯,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블로그전도사로 나섰다. 한창진 대표에게 블로그는 단순히 언론의 대체재만은 아니었다. 블로그는 시민운동의 유력한 대안이었다. 그에게 블로그는 자유롭게 발언하고 소통하며 스스로 조직되는 시민의 무기였던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의 가능성을 그는 블로그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사진@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다가오는 1월 1일이면 블로거 10만 양병을 위한 대장정의 첫걸음이 시작된다. 여수넷통의 출범이 그것이다. 여수넷통이 추진하게 될 핵심 사업은 바로 블로거운동이다. 여수 시민 30만 명 중 5만 명이 필진이자 독자로 참여하는 디지털 언로를 만드는 것이 여수넷통의 원대한 꿈이다. 그는 언론이 아니라 언로라고 했다.
 
언론이 일방적으로 발언하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언로는 발언하고 주장하되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결국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일 것이다. 1인 미디어 블로그와 노무현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의 원대한 꿈이 어떤 그림을 그려갈지 벌써부터 기대로 가슴이 벅차다. 

그는 블로거스경남을 벤치마킹했다고 했지만, 이제 거꾸로 블로거스경남이 그들을 유심히 지켜봐야만 할 것 같다. 아마도 전국 최초가 될 여수넷통의 도전은 경남지역의 블로거들에게도 커다란 희망이 되고 있다. 그 희망은 나아가 시민운동가들, 진보운동가들에게도 의미 있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정체된 시민운동, 상근자 중심의 시민운동에서 대중과 함께 하는 시민운동의 롤모델이 탄생할 수 있을지 여수넷통의 대장정을 지켜볼 일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엊그제 김훤주 기자의 글 <내가 노무현·김대중을 조문하지 않을 까닭> 때문에 좀 시끄러웠습니다. 김훤주 기자는 많은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악플도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인신공격성 댓글도 많았습니다. 익명을 이용한 광기의 수준이 도를 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분의 말씀처럼, 집단적 광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일까?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사실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도 매우 심하다고 합니다. 중국의 경우에 이 집단적 광기는 거의 폭발 수준입니다. 얼마 전 티벳과 위구르 사태 때 서울에서 보여준 중국 극우파 유학생들의 난동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나라의 유학생을 극우파라고 하는 것이 좀 생뚱맞긴 합니다만, 저는 그들이 극우파로 보였습니다. 

사진출처=경남도민일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 무장한 극우세력. 어쨌든 말이 좀 새긴 했습니다만, 저는 모든 지나친 행동은 탈이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김훤주 기자가 굳이 '나는 김대중을 조문하지 않았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가 모두들 조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김대중 선생(!)이 바라는 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김대중이 30년 가까이 싸워왔던 바도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가 생각한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한 사람의 발언을 두고 거의 집단적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쏟아낼 때 김대중 선생이 추구했던 가치들이 하나씩 부서진다는 생각들은 들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저는 많은 사람들의 비난 또는 악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진정으로 김대중을 평가하고 그의 업적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훤주란 사실을 말입니다. 집단적 광기 수준으로 분노를 뿜어대는 지지자들보다 김훤주야말로 제대로 김대중을 추모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말입니다.

도대체 민주당이야 김대중이 결단한 혁명적 사회복지에 대해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고 하더라도―그들의 정체성은 역시 한나라당과 별반 다르지 않은 보수우파가 대부분이다―진보정당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추모논평을 보더라도 매우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민주와 평화를 빼고 복지에 대한 평가를 한 세력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훤주는 그걸 했지 않습니까? 조문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김대중의 업적을 제대로 바라보고 공정하게 평가를 해주었지 않습니까? 비난성 악플을 다는 여러분 중에 김대중의 업적 중에 사회복지의 혁명적인 단초를 마련한 사실을 짚어주신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십니까? 제가 좀 과격하게 말씀드리자면, 우리 모두 허깨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사실 김훤주는 김대중을 조문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김대중의 지지자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와는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공인도 아닙니다. 어떤 정당의 당직자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두들 조문하는 분위기에서 "나는 조문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김대중 선생을 조문한 어떤 사람들보다 김대중의 높은 업적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안목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이쯤에서 제 추억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편을 잡았던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박정희는 비명에 갔습니다. 그때 우리 반 부실장이었던 기종이는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습니다.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덜컥 겁이 났습니다. '혹시 전쟁이라도 터지는 거 아닐까?' 그러나 다행히도 전쟁은 나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열린 비상조회에서 교장 선생님은 면사무소에 마련된 분향소에 가서 조문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네, 제 귀엔 지시였습니다.

물론 저는 조문을 갔습니다. 헌화하고 향을 피우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들 훌쩍훌쩍 울었습니다만, 역시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저 두려웠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분이 일제시대에 교편을 잡았던 문경국민학교 교정에는 꽃이 피었습니다. 신문에도 났습니다. 모두들 영웅이 비명에 가 하늘이 노한 것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지난 7월 말, 낙동강 5차 도보기행 때 구미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구미시 해평면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청국장이 참 맛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식당 건물에서 고향 냄새가 났습니다. 게다가 식당 벽에 걸려있는 십자고상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벽에 붙어있는 사진과 달력이 또 하나의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달력에 "평화통일의 대도"란 쓴 글이 이채롭다. 박정희가 평화통일의 대도를 걸었을까? 또 김일성은 어땠을까?


박정희 대통령 일가의 사진이었습니다. 박정희가 비록 독재를 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했지만 경제를 잘 해서 국민들을 배고픔에서 해방시켰다, 이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이 오늘날 결국 대기업 위주의 재벌공화국을 탄생시킨 원흉이다 이런 평가도 있지만, 아직 국민들이 그런 진실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박정희는 경제개발 정책과 더불어 의료보험제도도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생활보호법도 만들었습니다. 협동조합을 본 딴 농협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제도들은 북유럽을 모방한 제도들입니다. 군사독재의 힘으로 사회주의적 제도들을 이 땅에 수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박정희가 만든 사회보장제도들은 시혜적인 것이었습니다. 불쌍한 국민들에게 정부가 나누어주는….

그러니 그 범위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보장의 효시는 독일의 비스마르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철혈재상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지요. 우리나라에 의료보험제도와 생활보호대상자 제도를 도입한 박정희와 유사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아마 이 두 독재자들이 이런 제도를 도입한 이유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무늬만 입혀놓은 사회보장제도를 김대중이 혁명적으로 바꿨습니다. 생활보호대상자를 정당한 권리자란 의미의 수급권자로 바꿨습니다. 법 이름도 생활보호법이 아니라 기초생활보장법으로, 즉 국가가 보장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김대중이 결단하지 않았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들도 반대했다고 하니까요. 그들 중 대다수는 김대중과 달리 한나라당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김대중이나 노무현이나 어려움이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노무현에 비해 김대중이 역시 거목이라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김대중은 자기 칼을 잘 다루고 쓸 줄 알았지만, 노무현은 자기에게 주어진 칼을 잘 쓰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간수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노무현이 만약 탄핵정국 이후 주어진 사상 최고의 권력을 제대로만 썼더라면, 국가보안법 등 악법들을 없앨 수도 있었을 것이고, 민주주의를 완성한 그는 가장 위대한 지도자의 반열에 이름을 길이 새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아쉬움입니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 그래서 늘 공부하며 새롭게 진화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노무현의 죽음이 더 슬픈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김대중은 충분히 꿈을 꾸었고 또 대부분 그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천수를 다했습니다. 

식당과 붙어있는 안채. 할머니가 토마토도 내주시고 무척 고운 분이었다. 어린 시절 생각이 나게 하는 집 풍경이다.


이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박정희 일가의 사진을 걸어놓았던 구미의 어느 시골 식당의 풍경으로부터 저는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했습니다. <웰컴투 동막골>이란 영화였습니다. 인민군 장교가 동막골의 늙은 촌장에게 묻습니다. "큰 소리 한 번 안 치고도 나오는 그 영명한 지도력은 어디서 나오는 겁네까?" 노인이 먼 산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합니다. 

"그저 뭘 많이 먹이야지 뭐." 네, 맞습니다. 그저 많이 먹여야 합니다. 아프지 않게 해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가고,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고, 돈이 없어서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바로 큰 소리 한 번 안 치고도 나올 수 있는 영명한 지도력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김대중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정작 보지 못하는 영명한 지도력을 김훤주 기자가 보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자고로 정치지도자란 이런 일을 해야된다는 메시지를 던져준 거 아니겠습니까? 이명박이 지금 민주주의를 압살한다고 하지만 이는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에 하나의 작은 소일 뿐입니다.

물결은 휘어지기도 하고 소에서 잠시 쉬어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거대한 강줄기가 되어 바다로 갑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물줄기가 얼마나 주변의 대지에 충분한 물을 공급하며 바다로 가는가 하는 것이지요. 저는 김훤주 기자의 목소리에서 그걸 들었습니다. 이런 방식이야말로 지지자가 아닌 그가 김대중을 가장 잘 추모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고요.

횡설수설 한 것 같지만, 강호제현의 보살핌을 바라마지않습니다. 하하. 저는 김훤주보다 간이 많이 작습니다. 고재열 기자가 말한 맷집도 약하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민주당이 두 분 대통령 김대중과 노무현의 사진을 당사에 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다고 두 분의 유지를 받들 수 있을까요? 

두 분의 생각이 뭔지도 모르면서 유훈을 말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진을 거는 것을 나무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잘 했다고 생각하지만, 노무현이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말한 것처럼 제대로 두 사람을 공부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또 다시 강조하지만,

그 공부는 오히려 조문도 하지 않은 김훤주가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슬픈 일이지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심상정이 창원에 왔다. 그녀가 누구인가? 박근혜가 선덕여왕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정 그렇게 선덕여왕다운 사람을 찾고 싶다면 그건 심상정이 아닐까? 누가 그녀처럼 민중들과 고락을 나누며 평생을 자신을 던지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단 말인가? 박근혜가 그렇게 살았을까? 아니면 예쁘장한 나경원이 그렇게 살았을까? 아니지 않는가.

그녀는 서울대를 나온 재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편안하고 행복한 길을 포기하고 노동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1985년, 유명한 구로동맹파업은 그녀의 작품이었다. 물론 이 말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구로공단의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일으킨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동맹파업이었다고 말해야 옳다. 그러나 그녀의 역할이 개중 가장 중요하고 컸으므로 그녀의 작품이었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라 할 수 없고, 당시 동맹파업에 동참했던 많은 노동자들도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 믿는다.

 

창원노동회관 4층 강당에서 열린 심상정 초청 강연회 '핀란드 교육을 통해 본 우리 교육 제자리 찾기'


학교 선생님이 꿈이었던 심상정 

그녀는 원래 꿈이 학교 선생이 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꿈은 수시로 변한다. 그녀가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은 스무개도 넘었는데 그 중 마지막으로 가진 꿈이 학교 선생이었다. 그래서 사범대학을 갔다. 그러나 대학생활은 그녀에게 그녀의 꿈을 앗아가 버렸다. 당시는 엄혹한 유신정권을 거쳐 전두환이 쿠데타에 성공하고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 세상은 흉흉했다. 이런 세상에서 편안하게 자신만의 꿈을 꾸며 안락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그녀의 양심으론 허용되지 않았으리라. 


그녀는 마침내 여공의 길을 택했고, 노동운동가가 되었고, 수배와 구속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최근까지도 그녀의 둥지는 금속노조였다. 그런 그녀가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원래 선생이 되고자 했던 그녀는 정치가가 되는 꿈을  꾸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의반 타의반 정치에 입문했다. 세상은 그녀가 정치를 하기를 원했고 그렇게 만들었다. 국회 의정활동을 통해 그녀는 노동운동가에서 경제전문가로 변신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참모로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정태인 교수는 심상정의 탁월한 경제적 식견에 반해 그녀의 팬이 되었고 끝내는 노무현 대신 심상정을 택하는 결단을 하기도 했다. <100분토론>이나 <심야토론>이 경제문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면 가장 먼저 심상정을 섭외했다. 그녀는 17대 국회에서 최고의 경제전문가로 통했던 것이다. 사실 노동운동가가 경제전문가가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노동운동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경제공부를 했을까?
 

블로그 '거다란닷컴' 커서님도 오셨다. 그는 심상정을 인터뷰하기 위해 공항에서 만나 함께 왔다고 했다.


학교 선생의 꿈에서 노동운동가로, 국회의원으로, 경제전문가로 그 이름을 날리던 심상정. 그녀가 이번엔 교육을 들고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진보신당 경남도당(위원장 이승필) 주최로 열린 심상정 초청 강연회의 제목은 <핀란드 교육을 통해 본 우리 교육 제자리 찾기>였다. 여기서 그녀는 우리 사회는 희망이 거세된 사회라고 말했다. 그녀가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만나본 많은 중고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참으로 절망적이었다. 

희망이 거세된 사회, 꿈이 없는 아이들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게 꿈이에요." 그 다음 그녀는 대학생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게 꿈이에요." 우리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경구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이 사회는 결코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없는 사회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려면 자기주도적인 삶을 사는 훈련을 어려서부터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어려서부터 우리의 아이들이 받는 교육은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모든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미 대학진학율 80%를 훌쩍 넘긴지도 오래다. 그러나 쏟아지는 고학력자를 받아낼 사회적 준비는 전무하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라. 얼마나 많은 대졸 실업자가 존재하는지. 사회에 진입하기도 전에 실패를 경험한 이들 중에는 이를 딛고 일어설 어떤 준비도 용기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실로 '희망이 거세된 사회'란 과장이 아니다. 교육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설계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뼈저리게 통감하던 심상정에게 핀란드 교육이 보였다. 

핀란드는 그녀에게 어떤 희망을 주었을까? 그녀는 핀란드로 날아갔다. 그곳의 교육현실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혹자는 이런 심상정에게 못마땅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도대체 핀란드 며칠 가서 무얼 배워오겠단 말이요?" 실제로 레디앙에 실린 심상정의 핀란드 방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나도 보았지만, 그들에게선 진정으로 걱정하는 비판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일종의 직업적이고 감정적인 안티에 불과해보였다. 그러나 그런 질문을 충분히 할 수도 있을 법하다. 

"아니 내가 겨우 한 달 북유럽 3국 순방하고 핀란드 교육을 다 공부했다고 하겠어요? 나는 이미 충분히 공부를 하고 갔어요. 이미 내가 발표한 내용들은 미리 학습하고 준비한 것들이에요. 다만, 마지막으로 직접 가서 확인한 것이죠. 그러나 실제로 거기 가서 핀란드 교육청 장관으로 20년을 봉직하며 교육혁명을 주도한 에리키 아호를 만났을 때,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나는 핀란드 교육에 관심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 교육에 관심이 있죠. 그러나 커다란 영감을 얻었어요." 

커서님과 심상정을 위해 한 사진 찍었다. 옆은 부산지하철 노보편집위원이다.


노동운동가에서 정치가로, 다시 꿈을 찾는 교육혁명의 길에 자신을 던지다

그녀가 핀란드에 가서 배웠다는 영감, 무한한 상상력을 갖도록 만들어주었다는 그 영감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말하도록 하자. 왜냐하면,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강연을 들으면서―또 이전부터 알고 있던 그녀에 대한 정보를 통해서도―그녀야말로 이 나라의 지도자가 갖출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어려서는 학교 선생이 되려는 꿈을 꾸었고, 대학에 가서는 노동운동가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어 경제전문가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꿈을 잃어가는 젊은이들이, 우리의 아이들이 꿈을 찾을 수 있는 교육혁명의 꿈을 다시 꾼다. 그랬다. 그녀의 말처럼 교육혁명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희망이 거세된' 이 나라의 미래는 없을 듯하다. 요즘 MBC 드라마 선덕여왕이 인기다. 이 바람을 타고 일부에서 선덕여왕과 박근혜를 비교하는 언론 플레이가 있었다. 박근혜야말로 선덕여왕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로 그들은 첫째, 모두 지지기반이 대구경북이란 점, 둘째, 모두 최고지도자의 딸로서 공주출신이란 점을 들었다. 나는 이 기사들을 읽어 보고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내 블로그에 포스팅했었다. "박근혜가 선덕여왕? 그럼 김정일은 광개토대왕이냐? 
http://go.idomin.com/261" 나는 박근혜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녀가 어떤 꿈을 갖고 있다는 소리도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녀라고 해서 아무런 꿈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대통령이 되고 싶은 꿈을 그녀의 꿈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오늘날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꿈이다. 오늘날 대학생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즐겁게 보고 있는 선덕여왕의 덕만이 꾸고 있는 꿈이 겨우 그런 꿈일까? 그렇지 않다. 덕만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낭떠러지에서 자신을 간신히 매달고 있는 줄마저 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인물이다. 

박근혜, 나경원? 천만에, 심상정이야말로 선덕여왕의 재목 

박근혜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민중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랑이 있을까? '희망이 거세된 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찾아 고난의 길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까? 행동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그럴 마음이라도 먹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박근혜라면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쯤은, 아니 그럴 마음이 애초부터 없다는 것쯤은 진보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보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마산시 이옥선 의원과 심상정. 이옥선은 마산시 22 명의 의원들 중 단 세 명 뿐인 여성의원 중 한 명이다.


만약 박근혜도 민중을 위해 자기 목숨쯤 초개처럼 바칠 용기가 있는 인물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코메디다. 차라리 미실이라고 한다면 모를까. 그러나 심상정은 어떤가? 그녀는 젊음을 송두리째 민중을 위해 저당잡혔다. 그녀는 당시만 해도 출세가 보장되던 서울대 출신의 길을 버리고 노동자의 길을 택했다. 서슬퍼런 전두환 군사정권 치하에서 목숨을 버릴 각오 없인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그녀는 서민들과 함께 꾸는 꿈의 길을 고집한다. 나는 선덕여왕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덕만처럼 백성들 속에서 백성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가냘프면서도 강인한 카리스마를 간직한 지도자를 우리는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덕만처럼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줄을 놓고 낭떠러지로 떨어질 용기를 가진 지도자를 우리는 본 일이 있는가? 그리고 미래에는 그런 지도자를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심상정이야말로 오늘날 선덕여왕의 재목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에 견주어 선덕여왕에 비교하는 것이 오히려 심상정 그녀에게 실례가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민중의 삶과 함께 해온 심상정을 박정희의 딸로 청와대에서 공주 행세를 하며 살아온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덕으로 살고 있는 박근혜 같은 사람에게 견준다는 자체가 어쩌면 심상정에게는 지독한 모욕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것조차도 심상정이라면 충분히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그녀는 충분히 통이 큰 인물이니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공교롭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던 날 알라딘으로부터 책을 받았다. 오마이뉴스 대표 기자 오연호 씨가 쓴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였다. 나는 김대중 지지자도 아니며 노무현 지지자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아니다. 나는 진보신당 당원이며 그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나는 과거에 노동조합운동을 했던 이력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을 아주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두 분을 존경한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10점
오연호 지음/오마이뉴스


나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했을 때, 정권 창출 과정에서 벌여졌던 모든 불미스럽고 마땅찮은 사정들에 불구하고 내심 박수를 쳤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는 그를 찍지 않았음에도 밤새 술을 마시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새벽 동이 트도록. 정치 9단이라는 김대중의 노련함과 아마추어처럼 보이지만 뚝심으로 정면 돌파하기를 마다 않는 노무현에겐 모두가 존경할 수밖에 없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겐 일관된 철학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길을 걸었다. 비록 그 길이 내가 생각하는 길과 많은 부분 다를지라도 그들은 굳건했다. 김대중은 납치와 사형선고로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노무현은 끊임없이 조중동과 시장권력으로부터 테러를 당했다. 그 두사람이 걸어왔던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나는 그들의 굳건함이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 노무현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늘 김대중을 공부하며 그의 흔적을 찾았다고 이 책에서 말했다. 

노무현의 말에 의하면 김대중은 천재다. 노무현은 스스로 창조적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것은 김대중이 이미 준비하고 예비한 길이었다고 했다. 오연호 기자가 노무현에게 질투심 같은 건 없었느냐고 물었지만, 노무현은 가벼운 웃음으로 받아 넘겼다. 노무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대로 매우 솔직하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질투심 같은 것은 자리할 공간이 없다. 그는 김대중 정부 덕분에 참여정부가 열매를 따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나는 노무현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이야말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천재가 아니고서는 자신을 낮출 줄을 모른다. 자신감으로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자신을 낮추는 방법을 모른다. 노무현은 그걸 아는 사람이었다. 노무현의 말에 의하면 김대중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탁월한 정치가였지만, 그가 빛나는 것은 단지 그것 때문이 아니라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뛰어난 정책능력 때문이다. 

노무현은 이미 김대중이 1971년 대선에 뛰어들 때 내놓았던 4대국 보장론이나 통일정책을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으며 당시 세계 정세를 꿰뚫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며 매우 천재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는 오연호 기자의 해석처럼 김대중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조중동 등으로부터 김대중의 준비된 대통령이란 수사에 비유해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는 혹평을 들었지만, 그는 충분히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어떻게 해서 대통령이 되었을까? 아니, 무엇 때문에 대통령이 되려고 했을까? 거기에 대한 노무현의 진술은 책 속의 어떤 이야기들보다도 파격적이었다. 역시 노무현은 꾸밈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대통령에 출마한 것은 그러니까 이인제 씨 때문이에요." 나는 눈을 의심했다. 무슨 이런 황당한 말씀이. 무슨 원대한 이상과 포부를 말씀하셔야지 기껏 이인제 때문에 출마를 결심했다니…, 그러나 그건 사실이었다.

노무현은 앞서 자기가 국회의원이 된 것도 국회의원이 되려고 된 것이 아니고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보니까 그냥 어떻게 그리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을 것이다. YS가 변절해서 노태우의 민정당과 합당해서 민자당을 만들었을 때 국회의원 되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를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의를 선택했다. 그가 볼 때 김영삼도 원칙 없는 변절자였던 것이다. 그는 나중에 김대중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부산에서 계속된 낙선의 쓰라림을 맛보았다. 종로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국회의원 뺏지를 달았지만,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또 한번의 고배를 마셨다. 이런 그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승부사에다 바보라는 이름을 얹어주었다. 그에겐 일관된 원칙이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역구도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요원하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이인제는 기회주의의 표징이었다. 그는 변절을 밥 먹듯 하는 원칙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노무현은 이인제 같은 사람이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어서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장래가 암울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인제는 97년 대선에서 이회창에게 한나라당 경선에서 지게 되자 무소속으로 나와 3등을 했다. 그리고 다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2002년 대선에 도전장을 던진 인물로 노무현의 눈으로 보면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였다. 그리고 당시 그는 유력했다. 노무현은 이인제를 이겨야겠다고 결심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일부에선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이도 대통령이 다 되고. 이거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전여옥 같은 사람은 아예 노골적으로 현직 대통령이던 노무현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대학도 나오지 못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참기 힘들 만큼 치욕적인 상황이었다. 김대중-노무현이 만들어놓은 민주주의 공간에서 그들은 상고 출신 운운하며 대통령을 모욕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노무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노무현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자기 원칙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노무현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국민을 가까이 하고 벗이 되고자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은 사실은 '노무현 같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인제나 전여옥 같은 학벌 좋고 똑똑한 사람들은 절대 넘볼 수 없는 경지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서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다. 이 추도사는 원래 노무현 전 대통려의 영결식에서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할 수가 없었다. 김대중은 이런 이명박 정부를 어이없다고 했다. 그는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했다. 그는 이 추천사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깨어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죽기 전에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자신이 만든 사이트 <민주주의 2.0>에 한미FTA 재협상을 해야한다고 올린 글에 심사정이 시비를 건 것이다. 심상정이 노무현에게 한미FTA의 당사자로서 결자해지를 촉구하며 고해성사를 요구했던 것이다. 노무현은 이틀에 걸쳐 심상정의 공격에 반론의 편지를 썼다. 이때 노무현은 자신을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하는 진보진영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토론은 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에 오래지 않아 검찰의 수사로 표적이 된 노무현은 "더 이상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식물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심상정과 인식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토론을 종결하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며 "좀 더 유능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나름의 고해성사에 대신한 솔직한 노무현을 이제 우리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노무현이 이토록 허망하게 죽지 않고 살아서 우리와 호흡하고 토론하고 실천하며 그가 말한 것처럼 정치권력을 넘어서는 시민권력의 전형에 다가가는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 할 수 있었다면 그가 아쉬워했던 '인식의 차이'를 뛰어넘는 어떤 무엇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노무현 같은' 걸출한 인물이라면 가져봄직한 기대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정체하지 않고 늘 공부하며 진화하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으니까.

노무현이 봉하마을에서 만든 홈페이지의 이름이 <사람 사는 세상>이었던가? 아마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도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이렇게 시작하는 거였다고 들었다. 그 노래는 나도 좋아하는 노래다. 내가 20대였던 시절, 노무현은 우리 마을 파업현장에 온 적이 있다. 그는 당시 국회의원이었는데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연설하고 곧 바로 사라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뒷풀이에 남아 난장에서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던 그는 싱싱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있다. 올 한해에만 세 분의 뛰어난 지도자가 세상을 등졌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노무현의 말처럼 "삶과 죽음이란 그저 자연의 한 조각"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심사가 그리 편하지 않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제일 먼저 일어난 일이 숭례문 화재였다. 그때도 무언가 심상찮은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더욱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그런 엉터리 같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 아름답지 못한 세상이 한심하고 슬프다. 마지막으로, 노무현은 바보가 아니었다. 오연호 기자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제 1장의 제목을 <바보를 보내다>라고 썼지만, 그러나 노무현은 바보가 아니다. 그는 원칙에 투철했을 뿐아니라 예지력도 갖춘 뛰어난 지도자였다. 그는 김대중을 천재라고 했지만 그도 역시 천재였다. 그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천수를 다 하지 못했지만 역사에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 

그가 존경했다는 링컨처럼….           파비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10점
오연호 지음/오마이뉴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덕만의 무기, 예언은 예언으로 이긴다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중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맞춰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사실 드라마 선덕여왕은 골든벨에서 학생들이 푸는 퀴즈를 같이 풀며 즐기는 시청자들의 심리를 잘 꿰뚫고 있는 듯하다. 선덕여왕 제작진은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미리 퀴즈의 답을 슬며시 흘리는 전술을 쓰기도 한다. 사다함의 매화가 그랬고, 비담의 김남길이 그렇게 이용되었으며, 김춘추 역의 유승호도 역시 그랬다.  

그러나 선덕여왕을 보면서 가장 궁금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미실이 어떻게 무너질까 하는 것이었다. 미실이 무너지기 위해선 첫 번째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 덕만공주의 복권이다. 그러나 덕만공주가 복권되기 위해선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예언, 쌍생의 저주다. 진평왕이 미실 앞에서 떠는 이유이며 덕만이 사막에 버려진 이유, 성골남진의 예언이다. 이 예언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한 힘을 잃지 않도록 만드는 마력 같은 존재였다.

사실 나 역시 많은 시청자들이 그러하듯 쌍생의 저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작은 퀴즈문제를 풀어가는 데 재미를 느꼈다. 그러나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역시 저주를 어떻게 풀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오늘 드라마 선덕여왕 예고편에서 그 힌트가 나왔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저주를 깨뜨릴 새로운 예언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물론 다음주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쌍생의 저주를 깨뜨릴 새로운 예언, 예언은 예언으로 제압한다, 나는 이미 진즉에 이 사실을 예언(?) 하지 않았던가. 혹시 나의 선덕여왕 후기를 꾸준하게 읽어주신 신실한 독자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7월 29일자 <선덕여왕,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에서 쌍생의 저주를 푸는 방법으로 나는 두 가지를 말했다. 하나는 천명공주가 죽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이라고. 

http://go.idomin.com/288  선덕여왕,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

이제 바야흐로 덕만의 정체가 드러났다. 어출쌍생의 저주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모두 쉬쉬하며 숨겨왔지만 이제야말로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모든 것이 내던져졌다.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 대등 을제는 진평왕에게 왜 덕만을 땅에 묻어 어출쌍생의 저주를 자르지 않았느냐고 다그치고 미실도 덕만의 실체를 눈치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덕만과 천명은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문제의 쌍생의 저주를 어떻게 풀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둘 중 하나, 즉 천명공주와 덕만공주 중 하나가 지금이라도 죽으면 될 일이다. 덕만은 선덕여왕이 될 인물이니 당연히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천명의 몫이다.

그러나 그건 지금까지 보여준 선덕여왕의 주제의식에 맞지 않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사람이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미실은 사람을 죽여 사람을 얻지만, 덕만은 사람을 살려 사람을 얻고 결국 미실을 이긴다는 게 주제다. 그렇게 본다면 쌍생의 저주에 굴복해 천명이 죽는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주제 설정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은 해답은 하나다. 덕만이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이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미실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늘의 뜻은 없다고. 있다면 오로지 미실의 뜻만이 있을 뿐이라고. 천문을 아는 미실이 하늘을 이용해 예언을 퍼뜨리고 계시를 만들었던 것이다.  

덕만이 서역의 상인들 틈에서 천문을 익혀왔다는 사실, 그녀에게 정광록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실에게 대적할 사람은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온다고 한 예언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리) 덕만이 사람을 얻어 천하를 다스릴 조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쌍생의 저주를 풀지 않고서는 결코 왕이 될 수 없다. 

천명이 죽든, 새로운 예언을 만들든… 그러나 나는 김유신의 말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과거의 너는 잊어버려. 그런 게 무슨 소용이야. 앞으로 만들어갈 덕만이 네가 더 중요한 거야. 너는 앞으로의 너를 만들어가야 해." 그렇다. 이 말이야말로 해답이다. 과거에 붙들리고서 저주를 풀 방법은 없다. 미래는 과거의 예언이 아니라 만드는 자의 것이니까.

  
쌍생의 저주, 계양성의 예언에 무너진다

물론 내 짐작이 모두 들어맞은 것은 아니다. 나는 두 가지 중 하나의 방법으로 저주가 깨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응당 새로운 예언을 통해 쌍생의 저주를 깨뜨리고 미실로부터 천의를 빼앗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천명공주가 설마 죽으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덕여왕 제작진은 과감하게 천명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 덕만에게 증오를 부추겼다. 나는 여기서 절망했다.(실은 절망이랄 건 없고 그저 실망이지만…) 아, 나의 예언이 빗나갔구나. 


그러나 오늘 나는 마지막 예고편을 보며 다시 희망을 되찾았다. 그래 내 생각이 맞았어. 예언을 깨뜨리는 방법은 단 하나, 오로지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뿐이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 새로운 예언이 이미 혁거세 거서간이 쌍생과 성골남진의 예언을 만들 때 함께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진흥왕이 안배한 것인지, 또 그 예언을 덕만의 힘으로 찾아낸다는 것인지 아니면 바람처럼 나타난 문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질 것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미실의 천의를 깨뜨릴 새로운 천의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예언이란 것이 나타날 것을 이미 내가 예언(!)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천명이 죽음을 맞이한 것은 매우 슬픈 일이며 나의 착오다. 이는 선덕여왕 제작진이 쌍생의 저주를 깨뜨릴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쓰는 초강수를 두었기 때문이다. 덕만에게 증오와 투쟁의지를 북돋우고 동시에 쌍생의 저주를 깨고 당당하게 복권한다는 시나리오는 역시 작가에게만 허용된 상상의 날개였지만…, 

나는 즐겁다. 이독제독, 하늘의 뜻은 하늘의 뜻으로 물리친다. 이렇게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는 보는 그 자체만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내다보고 다듬어간다는 데에도 있을 것이다. 또 선덕여왕을 통해 알지 못했던 고대사회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만만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가끔 내가 예측했던 것이 맞았을 때 느끼는 희열은 무엇에 비기기 힘들 정도로 뜨겁다. 그래서 즐겁다. 그러나 한편 패도는 패도로써 누르겠다는 덕만의 대사를 들으며 슬픈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큰 별이 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왔던 분들이다. 그들의 공과에 대하여는 역사가 말할 것이다. 그들의 집권 10년 동안 신자유주의로 고통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서민도 많다. FTA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 나라는 관용과 포용이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했다. 노무현은 자기에게 주어진 칼마저 버리는 결단을 취하기도 했다. 

패도가 아니라 관용과 포용이 세상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시대는 과연 요원한가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중이 손에 쥐어준 칼을 왜 쓰지도 못하고 버렸는가. 그래서 결국 그 칼에 자신이 당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덕만이 비장한 표정으로 "패도는 패도로써 제압하겠다! 미실이 한 똑같은 방법으로 신라를 먹겠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며 이제 영면의 길로 들어선 두 사람의 모습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그들이 덕만이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으리라. "패도는 패도를 낳는 법! 관용과 포용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어 천하를 태평하게 하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덕여왕을 만드는 제작진이나 나나 그런 상상력을 발휘할 만큼 이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노무현 대통령에 이은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이 그래서 더 안타깝고 슬픈 이유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엊그제 7월 31일은 대한민국 사법사상 가장 치욕스런 날로 기록된 날이었습니다. 사법부가 진보당 대표였던 조봉암 선생을 살해한 날이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살해했는가? 바로 법이라는 흉기를 사용해 한 나라의 지도자를 죽였습니다. 이처럼 법이란 것은 흉악한 권력자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무자비한 흉기가 되는 것입니다.

죽산 조봉암 선생 @레디앙


사법부의 살인, 진보당 사건
처음에 조봉암 선생이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이승만 정부가 첩자를 심어 조봉암 선생을 간첩으로 몰려는 흉계에도 불구하고 1심 재판부는 징역 5년에 그친 선고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재판부를 용공판사로 몰아붙이는 관제데모가 벌어지고 이승만의 유감 발언이 이어집니다.

결국 2심 재판부는 조봉암 선생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대법원도 그대로 사형선고를 유지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재심청구를 했지만 이마저도 기각됩니다. 대법원 주심이었던 김갑수가 재심재판의 주심판사를 맡는 상식 이하의 재판이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재심청구가 기각된 날은 7월 30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조봉암 선생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사형이 확정된 다음날 즉시 사형을 집행한 예는 또 있습니다. 바로 박정희 정권 때 인혁당 사건의 사형수들이 그렇습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인혁당 사건은 날조된 것으로 판명 났으며 국가차원에서 배상도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죽여 놓고 배상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처럼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시절에 사법부와 검찰은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한 흉악한 무기였으며 살인도구였습니다. 조봉암 선생을 법살한 사법부 판사들의 면면을 보면 조선총독부 판사 출신들이 대부분입니다. 조봉암 선생에게 사형 집행을 명령한 당시 법무부장관 홍진기(현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부친) 역시 조선총독부 판사였습니다.

진보당과 인혁당 사건 판사들은 살인죄로 기소되어야
그럼 조봉암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일본경찰에게 손톱을 빼는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동상에 시달리며 손가락 마디들이 절단되어 나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는 삼일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1년을 복역한 것을 비롯해 만주사변 발발 다음해인 1932년에 검거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7년을 복역하고 인천에서 지하운동을 하다 다시 검거되어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는 일제시대에 조선공산당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해방 후에는 박헌영 노선을 비판하며 조선공산당을 탈퇴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 서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토지개혁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1959년 사법부에 의해 살해당하기 전에도 수차례 친일지주들의 모략에 시달렸습니다. 토지개혁을 통해 친일지주들의 땅을 소농들에게 분배한 그가 지주계급들에겐 원수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이승만과 김일성의 양대 독재정권을 모두 비판했던 그는 피해대중의 권익이 실현되는 평등한 국가건설을 과제로 삼았습니다. 이미 당시에 그는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를 심중에 두었을 것입니다. 조중동의 끈질긴 모략과 이명박 정부의 공격에 상처를 받고 죽음을 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가 마지막에 읽었던 책이 유러피안 드림이었다고 했습니다.

노무현은 그가 재임시절에 사회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진보진영으로부터 저항을 받았지만, 그도 역시 마음 한구석에는 진보에 대한 열망을 채워줄 무엇을 찾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그러한 희망을 리프킨의 책 유러피안 드림에서 찾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드림을 찾아 진보주의자로 변신하는 현실을 만들지 못하고 떠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상한 세월은 흘러 조봉암 선생이 사법이란 흉기에 의해 살해당한지도 5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사법부는 조봉암 선생을 법살한 조선총독부 판사의 후예들이 기득권을 지키고 앉아 있습니다. 그들이 저지르는 행태도 과거의 선배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신영철 대법관입니다.

만약 신영철 대법관이 진보당 사건 판사였다면?
만약, 신영철 대법관이 당시처럼 진보당 사건의 주심판사로 재판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두 말할 것 없이 그가 정권의 뜻을 받들어 조봉암 선생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란 사실을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가 삼성재판에서 이건희의 무죄판결에 손을 들 것이란 사실을 이미 재판이 열리기 전부터 모두들 알고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신영철 대법관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지난 5월까지도 오늘내일 하며 목이 간달간달 하던 그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정국, 천성관 검찰총장후보자 사퇴파문, 언론악법 불법통과파문 등으로 시끄러운 틈을 타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모양입니다. 갑자기 그의 근황이 궁금해져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그는 조용히 대법관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진보당 사건으로 재판 받는 조봉암 @레디앙


검색창에 신영철을 쳤더니 진보신당 당원이라는 구형구라는 사람이 올린 글이 있었습니다. 제목이 특이했습니다. "재수 없게도 신영철이 내 인생에 끼어들다니…"였습니다. 그는 2년 전 이랜드 투쟁 때 집시법 위반으로 연행되어 이틀 동안 구류를 살고 벌금 50만원의 약식 판결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에 불복해 변호사를 선임해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는 방심하여 변호사도 없이 재판을 했고 야간집회라는 명목을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한 검찰의 의도에 넘어가 다시 벌금 50만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다시 1심 변호사와 협의하여 상고를 하게 되었는데 이 재판의 대법관이 신영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판부기피신청을 했다는 거였는데 그게 받아들여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직 신영철이 대법관 사무실에 계속 출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 끈질긴 인간입니다. 저 같으면 창피해서라도 이렇게 세상이 시끄러워 남의 이목이 줄어들었을 때 조용히 사표내고 떠나겠습니다. 얼마나 기회가 좋습니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신영철은 하루 빨리 해고되어야
어쨌든 제가 가진 상식으로는 진보당이나 인혁당 사건에서 사형선고를 내린 판사들은 모두 살인죄로 기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상식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런 상식은 그저 관념에 불과합니다. 현실에서 그런 것들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쓰레기일 뿐입니다. 신영철 같은 사람이 대법관 자리에 버티고 있는 대한민국은 아직 그렇게 양심적인 국가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 사법부에 남아있는 한 사법부가 권력의 꼭두각시가 되어 살인흉기가 되는 일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진보당 사건과 인혁당 사건에서 사용한 법살의 무기는 국가보안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신영철 같은 사람이 사법부에 존재하는 한 국가보안법이 없더라도 일반형법으로도 얼마든지 법살을 감행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의 양심적인 미래를 위해 살기 위해 투쟁하는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아니라 신영철 같은 사람을 하루 빨리 해고해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분 있으십니까? 아마 아무도 없으실 걸로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이런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열린 진보신당 주체의 강연회(주제 : 지역 토호세력의 뿌리)에서 강사로 나선 김주완 기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어땠을 거 같아요?"
 

사진을 못 찍어서 "김주완-김훤주 팀블로그"에서 빌려왔습니다. 왼쪽이 김주완. 그 옆은 김훤주 기자.


생뚱맞은 질문에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엉뚱한 질문이었죠. 그런데 이건 이분의 주특기입니다. 강사로 모셔다가 교육을 받는 중에 느닷없이 자기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아니 질문은 우리가 해야지 왜 자기가 하는 거죠? 하하, 그러나 이보다 더 확실하게 교육생들에게 인식을 심어주는 방법도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누구도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설마라도 해보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런데 김기자의 답은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로동신문보다 더 지독한 친 김일성, 친 김정일 신문이 되었을 것이다"란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조선일보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는 것이지요.

조선일보는 일제시대에는 친일신문으로 그 악명을 떨쳤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조선총독부의 비호 아래 접수하면서부터 그리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는 조선의 젊은 청년들을 태평양전쟁으로 내몰기 위해 "천황폐하의 은혜에 보답하여 대동아전쟁을 승리로 이끌자"고 역설하던 신문입니다.

그런 조선일보가 해방 후에는 이승만 독재에 앞장 섰습니다. 그리고 다시 5·16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에게 아부하며 밤의 대통령 행세를 했습니다. 전두환이 들어서자 민족의 영명한 지도자라고 추켜세우며 다시 전두환에게 꼬리를 치는 기민함을 보였던 것이 바로 조선일보입니다.

김주완 기자의 말에 의하면 조선일보는 보수언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전형적인 기회주의 언론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기회주의의 특성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힘있는 자에게 빌붙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오늘은 간에 붙었다가 내일은 쓸개에 붙는 것이 기회주의인데, 조선일보가 바로 그 전형이란 것입니다.

그러니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틀림없이 김일성 만세를 낮밤 가리지 않고 불렀을 것이란 사실은 매우 자명한 일입니다. "그럼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대통령 할 때는 왜 그렇게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주야장천 실었을까요? 노무현 정부 때는 비판을 넘어 아예 비난 내지는 학대하는 것 같던데요."

혹시 이렇게 질문을 하실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지난 10년 간의 김-노 정권이 민주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정권들은 언론통제를 제일 과제로 삼았습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제일 먼저 장악한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방송국입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언론통폐합 조처였지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노무현이 조선일보 사장을 남산에 끌고 가서 한 사흘 밤낮만 고문하라고 지시했다면 조선일보는 그 다음날부터 바로 노무현 만세를 주야장천 불렀을 거라고 말입니다. 우스갯소리지만 푸념이기도 하답니다. 준비되지 않은 민주주의는 그 과실을 몽땅 조중동과 재벌들이 따먹도록 만들었으니까요. 

하여튼 김주완 기자의 주장은 압권이었습니다.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친 김일성, 친 김정일 신문으로 자나깨나 주체사상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이따위 기회주의 신문이 대한민국 언론계를 평정하고 있다는 것은 국제적인 망신입니다. 그 평정조차도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돈을 뿌려 얻은 것이니 하등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만.

하여간 여러분,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답은 이겁니다. "조선일보는 로동신문보다 더 지독한 김정일 찬양신문이 되었을 것이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지난 6월 25일,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창원에 다녀갔다. 초청강연회 연사로 내려온 그의 강연회에 나도 갔었는데, "보수라도 좋다, 밥만 먹여준다면"이란 다소 엉뚱해 보이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보수라도 좋으니 밥만 먹여달라고? 6월항쟁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발전해온 한국인의 의식으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이 말은 그러나 진실이었고 일반 국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말이었다.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노회찬 강연회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위기의 대한민국"


6월항쟁 이후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국민들은 노대표의 말처럼 점차 보다 나은 대통령을 선택하는 현명함을 보였다. 김영삼보다는 김대중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았으며 또 노무현은 김대중보다 나았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비주류가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국민의 정부에 비해 참여정부는 분명 진일보한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국민들은 방향을 거꾸로 틀어 MB라는 괴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일까?

비밀은 바로 "보수라도 좋다, 밥만 먹여준다면' 여기에 있었다. 6월항쟁은 형식적 민주주의에서의 승리를 가져왔지만 거기까지였다. 진정한 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로의 발전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경제, 먹고사는 문제는 수구세력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 국민들의 정서가 이를 반영한다. 국민들은 민주화세력이 양심이나 도덕성에서는 존중할만하지만, 경제에 관해서는 무능한 세력으로 보았다. 그들은 결코 빵울 불려줄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 미리 선을 긋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소위 진보-개혁세력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 실제로 그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답을 제대로 내놓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이 만들어놓은 선진적인(!) 노동법이 걸레조각이 되도록 방치하거나 방조한 것도 그들이었다. 지금 국회에서는 비정규직법과 미디어법을 놓고 일대회전이 준비 중이다. 그런데 일부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보다 중요한(?) 미디어법 투쟁을 위해 비정규직법은 한나라당과 타협하고 넘어가자는 목소리가 들린다.
 
민주당에게 정치민주주의를 저해하는 미디어법 반대투쟁은 사활을 건 문제로 인식되지만, 빵을 위한 투쟁, 경제민주주의를 촉구하는 투쟁, 비정규직법 문제는 소홀히 할 수 없으면서도 매우 귀찮은 문제다. 이명박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선동이 거짓말로 판명된 지금도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헤게모니를 수구세력이 쥐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로서 그 책임의 상당부분이 진보개혁세력에게 있는 것이다. 

강연후 마산 수정만 STX입주 반대 농성장을 찾은 노회찬 대표



만화가 최규석은 이렇게 말한다. "6월항쟁 당시 명동성당에 격리된 사람들에게 밥을 해 먹였던 철거민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맞고 거리로 쫓겨나고 있고, 노동자들은 제 처지를 알리기 위해 전태일 이후로 수십 년째 줄기차게 목숨을 버리고 있지만 전태일만큼 유명해지기는커녕 연예인 성형기사에조차 묻히는 실정이다." 그는 "선생님이 멋있어 보여 선생님을 꿈꾸던 아이들이 지금은 안정된 수입을 위해 선생님을 꿈꾸고 아파트 평수로 친구를 나눈다"고 세태를 비판한다. (최규석 만화 <100 ℃> 작가의 말 중에서) 

그에게 이런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 (민주주의가 기껏) 지배층과 대거리를 할 만큼 똑똑해서 그들의 통치에 훈수나 비판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 더이상 황당한 이유로 끌려가게 되지 않는 것, 민주화란게 겨우 이런 거라면… 할 말 좀 참고 좀 더 배불리 편하게 먹고 사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의 흐름을 어떻게 탓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한국 민주주의가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민주주의에 비해 경제민주주의가 오히려 후퇴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어온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6월항쟁이 세 명의 (자기 출신)대통령을 배출하는 동안 같은 해 일어났던 7·8·9월 노동자대투쟁의 주역들이 현상수배와 구속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치민주주의가 발전했음에도 경제민주주의는 여전히 수렁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쌍용자동차 문제는 6월항쟁 이후 정치민주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자본가들에게 주어진 정리해고의 자유와 같은 한국의 고질적인 병폐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7월이 6월에 짓밟힌 것이다. 노회찬 대표는 이날 강연회에서 이명박 정권의 독재를 막기 위해 그런 6월과 7월이 만나야한다고 강조했다. 6월과 7월의 만남, 정치민주주의와 경제민주주의의 조화, 그것은 결국 서민복지동맹으로서만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실질적인 삶과 무관한 민주주의란 도대체 무슨 소용이겠는가. 민주주의가 그저 액자 속에 잘 그려진 한 폭의 그림처럼 매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애 터지게 싸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계절은 바야흐로 6월의 태양으로 대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7월이다. 중천을 가르던 태양은 서서히 기울어가지만 대지는 용암처럼 펄펄 끓는다. 끓어오르는 대지는 구름을 만들고 거대한 비바람을 몰고 올 것이다. 그리하여 대지는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가을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다. 그러고 보면 인간사도 결국 자연의 한 조각이다. 그러나 인간세상의 계절은 너무 길고 변화가 무쌍해서 한치 앞을 가늠하기가 정말 어렵다. 노회찬의 열변에 고개를 끄덕이면소도 걱정스러운 이유다. 그나저나 서민들의 바구니에 빵을 채워주는 것이 진정 진보라는 인식이 상식이 되는 날은 언제나 올까. 더이상 이명박 같은 괴물의 새빨간 거짓말에 속아넘어가지 않고 '우리 것 우리가 찾게 되는' 날이 언제나 올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MBC 100분토론>에 나온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정진영 교수와 최창렬 교수를 보면서 벽창호도 저런 벽창호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성진 의원도 전직 교수였다고 하니 세 명 모두 교수 출신인 셈인데, 나는 그들이 진정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맞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데 자기들만 민주주의는 아무런 이상도 없으며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 횡행하던 민중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대체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교수란 사람들이 민중민주주의가 무언지, 자유민주주의가 무언지 그 개념이나 제대로 알고 말하는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는 민중민주주의란 것이 존재한 적이 없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고 시도했던 정치적 행위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면,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야말로 확실히 민중민주주의자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데 인터넷과 블로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지금도 앞으로도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6월 항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취되었고, 이후 점차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확대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맞아 대폭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국보법 등에서 보듯 여전히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갈 길이 먼 미완의 민주주의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그 자유민주주의마저 길바닥에 내던져진 것이다.


이 세 명의 교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시국선언을 하는 교수들을 향해 왜 교수들이 발언을 해서 국론을 분열시키느냐는 말만 할 뿐이지, 어째서 자신의 양심을 밝히는 정당한 행위를 부정하는지, 집회시위의 자유를 막기 위해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삥 둘러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토론 중간에 어느 아주머니가 전화의견으로 이런 말을 했다. “국회의원들 뽑았으면 그 숫자대로 국회에서 모여 일하면 될 것이지. 왜 거리로 나옵니까? 국민들이 선거로 한나라당을 170석 다수당으로 만들어주었으면 그냥 국회에서 그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왜 일도 안하고 거리로 나오고 그래요? 월급 내놓으세요.”


참으로 무식한 말씀이다. 물론 이 아주머니 의견도 일리는 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일을 해야지…. 그런데 지금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가? 국회에 들어가는 순간, 한나라당은 국민의 뜻을 거역해 이명박 정권만이 좋아하는 법들을 통과시킬 것이다. 지금은 국회에 들어가 일하는 게 오히려 국민의 뜻에 반하는 역설의 시대가 아닌가.  


아주머니의 무식한 말씀에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세 사람의 교수들을 보면서 대한민국 교육현실이 실로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송영길 의원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국회의원을 뽑는 행위가 모든 권리를 백지위임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은 기본에 해당한다. 아무리 국회의원, 대통령이라도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교수란 직업이 무엇인가. 좀 과장되게 학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행위를 빗대어 말하자면, 양심을 팔아 밥 먹고 사는 직업 아닌가? 그런데 이들 교수들에게 대체 팔만한 양심이라도 있는 것인지 의심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100분토론>을 시청한 소감으로는…. 하긴 이들도 살아남아야 하니 너무 나무라기도 그렇다. 이명박 정권에 잘못 보이면 교수직도 언제든 쫓겨나는 것이 요즘 세태 아니던가.


또 다른 시청자의 전화의견을 통해 전해들은 국민정서야말로 현 시국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진단이 아니었을까.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죽으면 떡을 돌리겠다고 하더라!” 이 말을 들으니 퍼뜩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그래, 나도 그런 떡 제발 얻어먹었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듣고도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죄악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면 정말 살아야 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이만 대충 정리하고 잠이나 자야겠다. <ps;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화의견으로 등원 안 하는 의원들 월급 내놓으라고 핏대 올리던 그 아주머니 "동네에서 일을 해보니 법에 호소해서 안 되는 게 없더라!" 라고 하시던데 대충 뭐 하는 분인지 짐작이 간다. 세상이 하 수상하니… 별 생각이 다, 쩝~

ps2; 원래 제목이 "MB 죽으면 떡 돌리고 싶다!" 였지만 누가 먼저 똑 같은 제목을 달았기에 달리 고친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6월 17일, 블로거들이 경남교육감을 만났다. 이날 간담회는 지역메타블로그인 블로거’s 경남을 운영하고 있는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했으며 김주완 부장이 진행을 맡았다. 서울에서는 지난 대선후보 초청간담회라든지 태터앤미디어가 주최하는 유명정치인과 블로거의 간담회 등 블로거와의 소통이 활발해지는 모습이지만, 경남에서는 최초의 시도라고 한다.


내가 경남도교육청을 찾은 것은 오후 5시 30분, 교육청 건물을 사진으로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찾아보기는 처음이다. 초등학교 6학년과 2학년짜리 학생을 둔 학부모인데도 교육청이 무얼 하는 곳인지 아직 정확하게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저 어렴풋이 학교를 감독하는 장학사가 있는 곳이란 정도가 내가 아는 지식의 전부라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국민들도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람한 교육청 건물은 그러므로 여전히 나에겐 베일이다. 그래서 6시 30분에 간담회가 시작되지만 한 시간 일찍 왔다. 베일 내부를, 아니 껍데기만이라도 미리 보고 싶었던 것이다. 교육청 건물 여기저기를 둘러본 다음 민원실로 갔다.


민원인들을 위해 마련된 편안한 소파와 간단하게 비치된 책들이 신선하다. ‘많이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꽂혀있는 잡지들은 대부분 월간조선이니 여성동아니 하는 것들이다. 좀 더 다양한 색깔의 정보지들을 균형 있게 비치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형식은 선진을 향해 가고 있지만 내용은 아직 70년대의 관료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


무료 커피자판기도 있었다. 속으로 ‘요즘은 커피도 이렇게 공짜로 주는구나!’ 고마워하면서 고객전용 컴퓨터로 인터넷을 배회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려니 사람들이 왔다. 도민일보 김주완 부장과 커서, 봄밤, 이윤기, 달그리메 그리고 나, 이렇게 여섯 사람이 간담회에 참석할 블로거다.
 

가운데가 권정호 경남도 교육감. 오른쪽이 거다란닷컴 커서, 왼쪽은 김주완 부장. @경남도민일보


권정호 교육감은 매우 소탈한 사람이었다. 인상이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좋다. 전형적인 사투리를 쓰는데다가 말씨도 빠른 게 완연한 경상도 사람이다. 그런 평에 대해 교육감은 한술 더 떠 자기를 ‘완전 (경상도)촌놈’이라고 했다. 소탈하면서도 한편 매우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성품의 소유자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 그런 성격은 정직하다는 면에선 유권자들에겐 좋은 일일 수 있겠으나, 비서진들의 입장으로 보면 매우 곤혹스러울 것 같았다. 실제로 측근 중 한분은 교육감의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성품 때문에 겪는 고충을 토로했다. 가끔 진땀을 뺀다는 것이다. 기자들에게는 이런 것이 좋은 먹잇감이 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앞뒤 말 다 자르고 맥락도 없이 몇 개의 문제가 될 만한 용어만 골라 선정적인 기사를 쓰는 한국 언론이 더 문제이지 직설적이고 정직하게 말하는 게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그러나 그는 “그래도 비서진들은 힘들다. 좀 정제된 용어를 써주시면 좋지 않을까”라고 아쉬워했지만, 내가 보기에 경상도 사람 특유의 ‘단순무식함’이란 경우에 따라 장점이다.


그러나 역시 그 측근의 말이 옳다. 직설적이고 정직하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가 나오니 노무현 대통령 생각이 났다. 그이야말로 이런 성격 때문에 고통 받은 사람의 전형이다. 게다가 노무현은 매우 열심히 일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남는 시간엔 컴퓨터에 앉아 네티즌들과 토론까지 벌였다. 그런 그를 두고 어떤 언론인이 말했다.


“맥아더 장군이 말하기를 하루에 중대장은 여덟 시간을 일하고, 대대장은 여섯 시간을, 연대장은 네 시간을 일해야 하며 사단장은 두 시간 이상 일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노무현은 일국의 대통령이다. 저렇게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컴퓨터로 말까지 쏟아내니 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 이 이야기는 노무현이 취임한지 1년도 안돼서 나온 말이다.


그들은 그저 직설적으로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말하는 노무현이 싫었을 뿐이다. 열심히 일하고 솔직하게 말을 쏟아내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탓을 하려면 일의 잘못과 말이 나온 배경을 따져 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특히 한국 언론은 아직 멀었다. 그런 점에서 권 교육감에 대한 그 측근의 바람은 지극히 옳은 것이지만 한편 씁쓸하기도 했다.


직설적이고 솔직한 말을 싫어하는 풍토는 권위주의와도 무관하지 않다. 원래 기득권자들이란 대중 앞에선 말을 아끼고 자기들끼리 은밀한 장소에서 조용히 말하길 즐겨한다. 그래야 권위가 서고 기득권은 보호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정한 권위에 대해 그들은 알지 못한다. 권 교육감은 교육계에 팽배한 그 권위주의부터 깨겠다고 했다.


“내가 일선 교육청이나 학교에 갔더니 말이죠. 교장선생님들이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인사를 하면서 내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 기라. 같이 술 먹으러 가서는 무릎을 꿇고 술을 따르지를 않나…. 내가 그래서 그랬어요. 이보세요. 무릎 꿇고 술 따르는 건 부모님이나 스승님 아니고는 아무에게도 해선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거 욕하는 거예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이젠 예전과 다르게 서로 얼굴 마주보며 반갑게 악수하고, 술자리도 편안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알기에 이런 풍토는 아직도 일선 학교에서는 여전한 것 같다. 금년 2월, 모 고교의 종무식 후 있었던 회식자리에서도 줄을 서서 무릎 꿇고 교장에게 술을 따르더라는 이야기를 그 학교 직원에게 들은 적이 있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한 부분도 있을 거예요. 내가 한꺼번에 다 바꾸지는 못해요. 그저 단초만 만들 뿐이지. 내가 아무리 의지를 갖고 하려고 해도 시간과 상황이 아니면 해결 못하는 것이 있어요. 교육감은 서비스 직종이라고 생각해요. 일선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서비스를 해야 되는 게 역할이죠.”


“교육감님은 자신이 진보적인 교육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학부모들이 자기를 평할 때 바라는 상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란 한 블로거의 질문에 대해 그는 “나는 진보니 뭐니 이런 구분은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러나 굳이 말하자면, 나는 좀 보수적인 사람이에요. 어릴 때부터 종갓집에서 종손으로 교육 받고 자랐고….”


“그러니까 학부모들이 볼 때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을까? 글쎄, 학자이면서 교육자다운 교육감, 그런 말을 듣고 싶군요. 그리고 선생님들로부터는 온고지신, 즉 내 것을 지키면서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교육감, 그런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옆에 있던 다른 블로거가 “그러면 교육감님은 ‘진보적인 보수’라고 하실 수 있겠네요. 온고지신이 그런 뜻 아닐까요?”라고 해서 좌중이 한바탕 웃기도 했다.

권정호 교육감 오른쪽이 필자다. @김주완


그런데 역시 권 교육감은 진보와 보수가 적절히 조화된(그의 표현을 빌자면 극과 극을 왔다갔다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블로거들이 준비한 몇 가지 의제에 대해선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피력했다. 그의 교육관은 그가 명심보감을 즐겨 읽는다는 말이 대변하듯 전통적 교육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교육행정의 개혁에 대단한 열정을 보였다.


그는 일단 선생님들이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아이들에게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분위기를 만드는데 주력하겠다고 했다. 배석한 비서관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으며 교사들에게 내려 보내는 공문―공문이란 처리해야할 일감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의 경우에는 12%나 줄였다고 한다. 앞으로 더 줄일 계획이란다.


권 교육감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일 중에 하나가 독서인증제다. 여기에 대해 일부 논란도 있지만, 일단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들인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하는 것 같았다. “아마 인증제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모양인데, 좀 와전된 점도 있고 언론이 앞서 나간 점도 있어요.”


“독서인증제란 앞으로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고―말하자면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학생들을 선발할 경우에 평가의 자료로 삼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지금 당장 인증제를 해라 그런 게 아니에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많이 읽을 수 있도록 지도방법을 연구하라는 말이지. 그리고 자율과 지도에 관해서 말인데요.”


“자율도 지도가 없으면 안 나오는 거예요. 지도가 없는데 뭘 알아서 자율로 한다는 거지요? 방향을 잡아줘야지요. 그런데 그걸 내가 좀 직설적으로 급하게 말하는 성격이다 보니까 언론이 ‘강제다’ 뭐 이런 투로 내보낸 거예요. 절대 그게 아니죠.” 독서인증제, 이 하나의 문제를 토론하면서도 그는 극을 달리며 보수와 진보를 모두 보여주었다.

역시  온고지신이 그의 신조인 것이 분명했던 것일까. 이어 한 블로거가 “비주류로서 교육감에 당선된 뚝심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는 웃으면서 “제가 어떻게 비주류입니까. 저는 일선교사로 17년, 교대에서 교사를 양성하는데 25년 세월을 바친 사람이에요. 본류라고 해야죠.” 그러나 “사실 정치적으로 비주류가 맞기는 맞지만…” 하며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앞으로 블로그를 하실 생각이 없느냐’는 김주완 부장의 질문에 “제가 너무 바빠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결재다, 행사참석이다 해서 눈코 뜰 새가 없어요. 학자가 되어가지고는 책 한줄 읽을 시간이 없으니… 큰일이죠. 그렇지만 교육청 차원에서 블로그를 만들어서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교육감이란 자리를 흔히 ‘교육대통령’이라 부른다. 정치적인 대통령이 오늘의 문제를 결정하는 사람이라면 교육대통령은 미래의 문제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다. 그럼에도 지금껏 우리에겐 너무나 먼 자리였다. 폐쇄적인 관료주의가 가장 극심한 곳이 또한 교육청이라 한다.


그러나 교육감은 이제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다.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더 이상 무관심할 수도 없는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권정호 교육감의 약속처럼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감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더 이상 교육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파비        

ps; 블로거들이 미리 준비한 질문지에 대한 답변 중 일부는 간담회 수준을 넘어 토론이 되기도 했다. 의제들이 다양하고 내용도 각색이므로 주제별로 따로 시간차를 두고 포스팅을 하고자 한다. 교육개혁 분야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하고 적극적인 추진을 바라는 분위기였지만, 연합고사 부활, 일제고사(교육감의 표현으로는 진단고사) 등에 대해선 꽤 이견들이 있었다. 커서님은 교육청, 시민단체, 학부모들의 의견을 좀 더 취재하고 공부해서 포스팅을 하자고 했고, 그리 되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태호 경남도지사의 “좌파정권 10년” 발언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그의 말대로라면, 김태호 자신도 좌파 빨갱이 도지사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지난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 10년에 부화뇌동하여 대북경협사업에 앞장섰던 사람으로서 좌파 빨갱이였다’, 이런 말이다.


그러니까 좀 우스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좌파 빨갱이 도지사였던 김태호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위해 이명박에게 “나 이렇게 확실히 전향했소. 딸랑딸랑~” 하면서 추파를 던지는 꼴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한다고 너무 나무라지들 마시라. 지금 나라꼴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가득 찬 세상 아니던가.
 

자료사진-경남도민일보. 김태호 지사의 '좌파정권 10년' 발언에 사람들이 항의하고 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조금 더 하자면, 소떼를 몰고 분단 장벽을 넘어 평양으로 올라갔던―아마 한국전쟁 이후 걸어서 판문점을 넘어 북으로 간 최초의 인물이었던―고 정주영 회장도 좌파 빨갱이 자본가가 되는 것이고, 개성공단에 입주한 모든 기업들도 북한정권에 돈을 대는 좌파 빨갱이 기업들인 것이다.


물론 통일딸기 재배사업에다 평양 장교리 소학교 건립에 자금을 대는 사업을 추진하던 김태호 지사도 당연히 좌파 빨갱이다. 그리하여 말하자면, 온 세상이 좌파 빨갱이에 점령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좌파 빨갱이 중의 하나인 김태호가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명박에게 전향원서(?)를 제출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 10년의 통일정책은 실패했으며, MB의 비핵개방3000구상이 훨씬 우월한 대북정책’이라는 게 김 지사의 주장인데, 어차피 한나라당원인 김 지사가 제 식구 자랑하는 것에 대해 따질 필요도 없고 따질 생각도 없다. 개들도 비슷한 놈을 만나면 꼬리를 흔들고 반가움을 표시하는 법 아니던가. 하물며 사람들인데…


얼마 전에 미수다(미녀들의 수다)의 따루라는 핀란드 여성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녀는 핀란드 대사관 직원이라고 들었다. 기억이 완전치는 않지만 그녀의 말을 대충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에서 좌파라고 불리는 정치그룹은 좀 이상해요. 우리나라에서 보자면 우파거든요. 한국에는 좌파는 없는 것 같아요.”


아마 따루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일러 한국의 언론들이 좌파정권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한국의 좌파는 우리나라에선 우파밖에 안 된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한국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세력들, 예컨대 진보신당이나 민노당, 사회당 기타 그늘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좌파정치세력들―아마 이들이야말로 따루의 모국 핀란드의 기준으로 보면 핀란드노동당같은 좌파에 해당할 것이다―은 보지 못하고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의 진단은 일견 정당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분명 신자유주의 정권이다. 김-노 정부가 남북화해무드를 주도하고 경협을 추진했다고 해서 그들의 자유주의적 정체성이 훼손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생각하기에 이 10년의 기간에 자본의 자유는 무제한적으로 성장했으며 노동자의 권리는 한없이 추락했다.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가 도대체 우리하고 뭔 상관이야? 그냥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바로 우리 옆에서 늘 그 날카로운 창끝을 겨누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놓은 의료보험제도는 좌파쓰레기―사회주의정책의 소산인 의료보험제도를 독재정권이 만들었다는 게 아이러니지만―로 치부되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게 한 예다. 


나는 얼마 전 체불임금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로부터 도움을 요청 받고 그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로부터 설명을 들은 나는 간단하게 처방(?)을 던져주었다. 임금은 최우선적으로 전액 변제받을 수 있으니까 아무런 염려 말고 일단 노동부에 체당금부터 신청하라고. 그런데 새로 알아본 결과는 아니었다.


‘임금채권전액우선변제권’은 사라진지가 오래였다. 나는 10년도 훨씬 이전의 근로기준법을 가지고 그렇게 자신 있게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의 무지로 만들어진 이 난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매우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공장에 수없이 잡혀있을 질권, 저당권에 후순위로 밀린 임금을 받아낼 묘안이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따위의 극단적인 반노동, 반복지 정책들은 주로 한나라당 정권에서 추진한 것들이다. 그러나 김-노 민주정권도 사실상 그러한 정책기조를 계승했다. 차이가 있다면 민주주의의 대폭적인 신장과 대북정책에서 평화정책을 보다 강조한 것이었는데, 한나라당은 이걸 가지고 소위 ‘좌파정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때 소위 좌파정권의 대북정책에 편승해 남북경협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김태호 지사가 그 좌파정권을 향해 ‘좌파정권의 통일정책은 실패했다’라며 칼을 던졌다. 그 좌파정권과 짝짜꿍해서 남북경협의 단맛을 보던 그가 말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그 이유를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따루의 말처럼 좌파도 아닌 정치집단을 향해 자꾸 좌파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것은 계속 의문으로 남는다. 서울대를 나왔다는 김태호가 이런 기본적인 지식이나 소양도 없어서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떠벌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다. 그런데 그 한쪽 날개를 향해 자꾸 칼을 들이대면서 잘라내려고 한다면 새가 똑바로 날 수가 있겠는가. 한국이 제대로 된 선진사회로 가기 위해선 좌우의 날개를 정립하는 것이 필수다. 그래서 좌파의 복권이 절실한 과제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정리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우파의 자리부터 정리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정치세력이 진정한 우파인가? 나는 그 자리에 민주당이 들어서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무엇인가? 한나라당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정체불명의 존재다. 그들은 마치 소혹성 B612호를 파멸시키는 바오밥나무와도 같은 존재다. 그들은 어린왕자가 늘 잘라내야만 하는 수고를 던져줄 뿐인 존재들이다.  

하여튼 이야기가 꽤나 산만해지긴 했지만,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대충 이거다. “좌파를 좌파라 부르고, 우파를 우파라 부르자!”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좌파 아닌 것을 좌파라 부르지 말고, 우파 아닌 것을 우파라 부르지 말자!” 우리 모두 제발 정직하게 좀 살자.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이 치러지던 날, 저는 중리 삼거리의 한 중국집에서 짬뽕을 시켜 주린 창자를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함안에서 몇 분의 노동자들을 만나기로 되어있었는데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습니다. 7시를 전후하여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 시간이 6시를 갓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도 때울 겸 중국집으로 들어갔지요.


중국집에는 주인아주머니와 주인아저씨 두 분만 계셨는데, 두 사람 모두 텔레비전에 정신을 팔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해가 연화장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노란 종이비행기가 영구차 위로 날고 오열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화면은 온통 검은색이었습니다. 아저씨는 한숨만 내쉬면서 들어오는 손님―저 혼자였습니다만―은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노무현의 입속으로 들어가던 것은 결국 아이의 입속으로 들어갔다고 함.


아저씨가 아주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다 절로(저기로) 가야되는 기라. 그기 운명인기라.” 아주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마, 쓸데없는 소리 말고 조용히 보이소.” 그때서야 저는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주인아저씨인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손님이던지 아니면 옆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놀러 온 사람으로 생각했었지요.


물이라도 가져다줄까 하고 한참을 기다리던 저는 짬뽕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아줌마, 짬뽕 하나 해주세요.” 아주머니는 말없이 주방으로 들어가면서, 그러나 얼굴에 아쉬움이 섞인 얼굴로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아 짬뽕 한 그릇을 말아왔습니다. 텔레비전은 울음바다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침울하게 응시하는 두 사람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습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 잠깐 통화해도 됩니까?” “아, 네.” “그기 말입니다. 내, 검토해보니까, 기업회생절차 결정을 한 날짜가 아니고 그 앞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날짜가 기준이 되겠네요. 그러면 노동부에 체당금 신청하는 데는 좀  더 유리한 기지요?” 체불임금 문제로 상담을 했던 노동교육원 상담실장님으로부터 온 전화였습니다.


그러자 한번도 제게 얼굴을 돌린 적이 없던 주인아저씨가 쌍심지를 켠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빽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봐요. 전화 하려면 밖에 나가서 하시오. 지금 이 장면에서 당신 떠드니까 하나도 안 들리잖아.” 미안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굽실거렸지만, 주인아저씨의 노기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주인아주머니도 마찬가지였고.


그렇지만 짬뽕을 내버려둔 채 밖에 나가 전화하기도 그렇고 전화를 끊을 수도 없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섯 명의 노동자들이 떼인 거의 1년 치에 달하는 임금과 10년 치가 넘는 퇴직금도 매우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산 사람은 살아야 할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부랴부랴 짬뽕을 비운 저는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수고하이소.” 그러나 두 사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세상에… 내 돈 내고 음식 사먹고 이런 대접 받아보긴 생전 처음일세, 그려.’ 아마 전화가 걸려왔던 그때가 노무현 대통령이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이었나 봅니다.


체불임금 때문에 만나자고 했던 분들 중 한분은 제가 잘 아는 선배입니다. 상담을 끝내고 헤어진 후, 그 선배와 중리에서 방앗간을 하는 한사람 그리고 창원의 자그마한 공장에 다니는 선배가 또 한사람 뭉쳐서 어느 대포집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노무현 이야기에 빠져있었습니다. 간간이 이명박 욕을 섞어가면서 말입니다. 죽일 놈이라고…


노무현 서거의 충격이 상상 이상으로 컸던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의 아성이라고 하는 경남 마산에서조차 이런 정도라면 다른 지역은 어떨까요? 다른 건 몰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인생은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가 재임 중 펼쳤던 신자유주의 정책, 구체적으로 한미FTA에 격렬하게 반대하였지만, 그의 인품을 존경했다고 블로그에서도 몇 차례 밝힌 바가 있었지요.

이용훈 대법원장과 신영철 대법관. 모언론사 기사에서 인용.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을 그때, 온 나라가 국상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그 시간에, 대법원에서는 역사적인 하나의 판결이 무관심속에 해치우듯 처리되었습니다. 바로 삼성의 이건희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표결결과는 6:5였습니다.

6:5! 이 정말 아이러니한 숫자가 아닙니까? 불과 열흘전만 해도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탄핵의 목소리가 전국을 흔들었고, 인터넷에는 그를 성토하는 글들이 물결쳤습니다. 그러나 그자는 온 국민이 비탄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며 입가에 악마의 웃음을 흘렸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삼성재판에 태연히 법복을 입고 들어갔겠지요.


그리고 그자가 이건희의 무죄에 표를 던졌을 거라는 건 불문가지일 것입니다. 그자가 그토록 뻔뻔한 얼굴을 하며 쪽팔림을 무릅쓰고 버텼던 이유가 삼성 때문이었을까요? 김두식 교수(그는 검사였다)가 쓴 『불멸의 신성가족』을 읽어보면 대법관이란 자리가 법조 최고의 명예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퇴임 후 엄청남 돈이 보장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선망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돈을 보장해주는 최고의 기업은 역시 삼성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그 시각에 해치우듯 처리된 이건희에 대한 무죄판결의 진정성뿐만 아니라 법적 타당성조차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영철, 그자는 우리가 자기를 잊었다고 생각할까요? 그래서 이 전례가 없는 위기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여러분, 절대 그래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 자의 음흉한 얼굴에 악마와 같은 미소가 번지는 걸 참고 본다는 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 아니겠습니까.     pabi

Posted by 파비 정부권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고민하는 힘
- 10점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사계절출판사


내가 이 책 『고민하는 힘』을 다 읽은 것은 낙동강으로 도보기행을 떠나기 위해 탔던 차 안에서였다. 이미 절반 이상을 읽었던 책을 마무리하기 위해 배낭에 넣고 시외버스를 탔던 것이다. 경북 봉화와 안동의 경계지점 어느 곳이었을 절에서 하룻밤을 묵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때 시각이 새벽 5시 30분. 


절밥은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위에는 온통 풀로만 만든 음식들이 펼쳐져 있었다. 국도 반찬도 모두 풀이었다. 쌀도 결국 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면, 강변 둑방에서 풀을 뜯는 소가 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허기가 반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허겁지겁 밥을 먹고 나니 주지스님께서 차 공양을 해주신다고 한다.


아직도 하늘에선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다. 이런, 걱정이 태산이다. 우산도 없고 우비라고 해야 천 원짜리 허접이다. 무엇보다 카메라가 걱정되었다. 캐논 450D. 낙동강을 위해 구입한 재산 1호다. 그러나 하늘은 내 걱정 따위는 아랑곳없이 계속 비를 뿌려대었다. 그러다 시계바늘이 7시를 향해 다가가면서 서서히 빗방울도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하늘은 우리 편이야!”라는 농담을 섞어가며 우리는 출발했다. 주지스님께서 친히 단천리 비경에서부터 윷판대를 거쳐 도산서원까지 동행하시겠다고 한다. 길잡이가 되어주시겠다는 뜻이리라. 낙동강을 따라 두 시간여를 걸어 우리는 이육사기념관에 도착했다.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 기념관 바로 위에 있는 윷판대를 올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온 윷판대는 장관이었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뱀처럼 휘어들어오는 낙동강. 그 위에 펼쳐진 단천리의 아름다운 벼랑바위들.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서늘해지는 두려운 쾌감이 몸을 휘감아온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노무현이 죽었다는데…!”


이후부터 우리의 낙동강 도보기행은 엉망이 되었다. 형식상으로야 별일 없다는 듯 그대로 진행되었지만, 이미 사람들은 무력감에 빠져 아무것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개중 몇몇은 부랴부랴 짐을 챙겨 떠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 전례가 없는 사태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눈물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살벌한 세상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 지금의 일본을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어떤 색이 될까요? 나는 희미한 납색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은 내 눈이 어둡기 때문이며, 그래서 비관적인 이미지를 품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급속도로 진행되는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 경제력의 쇠퇴, 막대한 재정적자, 정치적 폐쇄 상황 등 부정적인 요소가 많지만 가족의 연대가 강하고 사람들 사이의 정을 실감할 수 있다면 고립감이나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겠지요. 즉 사람들 사이의 유대관계, 커뮤니케이션이 상호 신뢰에 의해 지탱되고 그것이 각 개인의 정체성에 안도감을 줄 수 있다면 경제적 곤란이나 정치적 부정이 횡행한다고 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희미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회에는 고립감과 시기심이 가득하고 꿈과 희망은 위축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고민하는 힘』의 저자 강상중이 <글을 마치고>에 쓴 말이다. 그는 이 책을 매우 부드러운 어조와 친절한 화법으로 썼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원래 일본인들―그는 재일한국인이지만, 역시 일본어를 사용하는 일본인이다―은 이렇게 친절한 어법을 구사하길 즐긴다고 들었지만, 그래서 그런 걸까? 아니면 옮긴이의 온화한 성품 탓일까?”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유행했던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마음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 읽었던 ‘에세이’ 부류로 치부하는 오류를 범할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에 그런 느낌으로 읽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다시 읽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강상중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단순히 고민하기―혹은 고민하는 훈련을―위해 정신세계의 지평을 넓히라든가 하는 따위의 에세이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이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끌어들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100년 전은 오늘과는 확연히 다른 시대다. 오늘날 우리는 뉴욕에서 워렌 버핏이 하는 말과 행동을 실시간으로 해석까지 덧붙여 접할 수 있는 좁은 지구촌 시대를 살지만, 그때는 확실히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동양의 끝자락과 서양의 끝자락에 살고 있던 두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장치는 당시엔 아무데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 둘은 생각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선 태도 또한 닮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강상중은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가 살았던 시대적 혼돈 상황이 오늘날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오늘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시도를 하는 것이다.


19세기 말, “장기불황과 내란 상태로 어지러웠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다른 나라로 몰려갔으며 일본도 비슷한 이유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른바 제국주의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는 조정되었으나, 지금 세계를 바라보면 국경을 넘어 ‘글로벌 머니’가 종횡무진 ‘배회’하고 있고 그 ‘폭주’를 막을 수 없는 상태”가 계속 되고 있다.


국민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대상이었던 과거의 자본주의는 타파되고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게 되었으며 자유는 무한히 확대되었지만, 그 자유는 인민의 것으로 되지 못하고 시장의 힘에 속박되었으며 자본이 독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말하자면, 강상중은 100년 전의 세기말적 상황과 오늘의 세기말적 상황이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가 백 년 전에 쓴 것을 다시 읽어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개인’의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있으면서도 그 흐름에 따르지 않고 각각 ‘고민하는 힘’을 발휘해서 근대라는 시대가 내놓은 문제와 마주 했”다.


그리고 강상중은 고민하는 인간이었던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섞어 ‘고민하는 힘’에 대해 예의 친절하고 부드러운 화법으로 풀어쓰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다루는 아홉 가지 주제 즉, 자아, 돈, 지성, 청춘, 믿음, 직업, 사랑, 죽음, 늙음에 대하여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의 고민을 빌어 잔잔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떻게 고민에서 벗어날 것인지, 또는 고민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그러나 앞에 소개한 <글을 마치고>에서 저자가 표현한 것에서 보듯이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보여주듯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살벌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국가는 인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자본주의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지만, 그 인민이 향유해야할 자유와 민주는 시장의 힘에 이끌려 자본의 노예가 되었다. 검찰은 물론이고 법원 등 모든 국가기구가 자본의 하수인이 되었다. 국가는 바야흐로 자본을 위한 존재로 된 것이다. 반면 보다 값싸고 유연한―혹은 편리한―비정규직은 넘쳐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국가를 위해 국민이 있다’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국가가 있다’라는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몇 십 년 동안의 노력은 그러나 수상쩍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저자는 통렬히 비판한다. 일본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우리나라는 수상쩍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노무현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 수상쩍은 그림자를 확실히 보지 않았는가.


과거 독재권력의 충직한 개 노릇을 했던 언론들, 구체적으로 조중동은 이제 자유와 민주란 바람을 타고 자본의 이름으로 스스로 권력이 되었다. 검찰과 경찰, 법원 등 모든 국가기구도 자본의 하수인이 되고자 스스로 명단에 이름을 집어넣기에 바쁘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이 엄수되는 그 시각에 하필 대법원이 삼성의 이건희에게 무죄판결을 선물한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늘 그렇게 하겠지만, 먼저 서문을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읽어보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저자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그 의도를 분명히 짚어 본문 책장을 넘긴다면 나침반도 없이 큰 바다에 나가 방향을 잃고 헤매는 어부의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 독자들은 서문을 대충 읽거나 아니면 생략함으로써 마치 잔잔하고 평온한 바다에서 낚시꾼이 고기 한 마리도 낚지 못했을 때 느꼈을 불평을 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물론 이 책은 앞서 말했듯 빠른 물살이 지나가는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그런 기쁨은 없다. 세상을 향한 냉혹한 비판과 주장도 없고 대단한 지혜를 뽐내는 그런 구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바다에 돛단배 하나 띄워놓은 것 같은 그런 책이다. 그러나 서문을 꼼꼼히 읽어보는, 그리하여 저자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독자라면 수평선 저 멀리 떠오르는 빛나는 별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 별들은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독자에게 노를 저어 수평선을 지나 피안에 닿을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리라.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있으면서도 그 흐름에 굴복하지 않고 ‘고민하는 힘’을 발휘하며 이 시대가 내놓은 문제와 마주했을, 또 늘 그렇게 하기 위해 분투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그리고 강자에게 절대 굴하지 않았으며, 약자에게는 늘 온화한 웃음과 위트로 그가 좋아했던 노래가사처럼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오길 염원했을 그를 추억하며…      파비

ps; 원래 이 서평은 알라딘 리뷰와 이 블로그에 진즉 올렸어야 하나 낙동강 도보탐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으로 경황이 없었습니다. 특히 노무현의 죽음은 거의 진공상태에 빠진 듯한 무력감을 가져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하기도 싫었습니다. 한동안 리듬이 완전 깨졌습니다. 알라딘과 티스토리에는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언제나 시의라는 것이 있을 텐데 늦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또 한 권이 밀리는 곤란함이 생겼습니다. 별로 재미도 없고 인기도 없는 포스팅이긴 하지만, 이 시대가 자아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점에서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란 생각은 확실히 듭니다. 하필이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맞물리기도 하면서 고민이 더 많았던 책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억하며   

노무현의 꿈은 노선과 가치가 살아있는 당을 만드는 것이었다. 사진=경남도민일보


노무현이 떠났다. 그러나 그는 떠나지 않았다. 서로 모순될 것 같은 이 두 명제를, 그러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의 육신은 이승을 떠났지만, 그의 혼은 이 세상에 남았다. 역설적으로 그의 죽음이 잊혀져가던 그의 혼을 되살려낸 것이다.

그는 살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고 실망을 주기도 했다. 실망은 반드시 희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희망이 없으면 실망도 없다. 우리가 이명박에게 아무런 실망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바로 그에게서 아무런 희망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무한한 기대를 보냈다. 그는 그 기대에 부응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삶 자체가 바로 사람들이 바라마지않는 희망덩어리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그가 살아왔던 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민주주의, 탈권위주의, 서민적인 대통령, 우직함, 바보스러움, 솔직함, 무엇보다 그는 솔직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정치인이나 언론인 하면 거짓말쟁이들이었다. 그래서 그의 솔직함은 더욱 빛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재임 중에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 강행으로 진보진영으로부터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이로 인해 과거의 동지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돌아섰으며 그를 향해 돌을 던지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와 마찬가지로 노무현은 민주주의 신장과 남북관계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이루어냈다. 한나라당 정권이 만들어놓은 국가부도사태도 10년의 민주정권은 잘 수습했다. 경제는 회복됐으며 다시 본 궤도에 올라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밝은 이면에는 어두운 면이 있게 마련이다. 김대중에 이어 노무현이 추구했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였다. 한미FTA가 바로 그 정점이었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나라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민들을 잘 살게 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혹은 예상했을지도 모르지만―어두운 면은 너무도 참혹했다. 철거민들이 정처 없이 쫓겨났으며 농민들은 고속도로를 점거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늘어나고 KTX 여승무원들은 쇠사슬 시위로 맞섰다. 민주주의가 독재를 대체했지만, 그 자리에는 국민 대신 시장이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그래서 말하자면, 민주주의가 신장되고 사람들은 자유를 더 많이 누리게 되었지만, 실상 그 자유와 민주의 대부분은 자본이 독식하게 되었고 서민들은 비탄에 빠졌다.  

그러나 오늘 노무현에 대한 이 유례없이 뜨거운 추모의 열기는 무엇인가? 왜 그토록 사람들은 그를 못 잊어 하며 울부짖는가? 한때는 미워하기도 했을 그를 향한 충성스러운 행렬에 담긴 뜻은 무엇인가? 노무현은 죽었지만, 그를 영웅으로 재탄생시킨 힘의 원천이란 대체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솔직함에서 찾는다. 그의 솔직함이야말로 노무현이 ‘바보’이기도 하면서 위대한 ‘영웅’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야말로 국민과 소통할 수 있었던 최대의 무기였다고 나는 확신한다.


엊그제 TV에서 그가 의연히 살아있는 모습으로 지난 정치역정에 대해 토로하는 걸 들었다. 그는 매우 차분한 어조로, 그러나 슬픈 얼굴로 말했다. “내가 제일 괴로웠던 것은 과거의 동지들이 한미FTA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며 데모를 할 때도 아니었고, 탄핵 당할 때도 아니었다. 내가 가장 괴로웠던 것은 열린우리당이 해체될 때였다. 열린우리당에 나는 모든 것을 걸었었다. 지역과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는 정당이 아니라 진짜 노선과 가치가 살아있는 정당, 그런 정당을 나는 만들고 싶었다. 내가 남기고 싶었던 것은 그거였다.”


노선과 가치를 중심으로 단결하는 정당. 그것이 노무현의 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과거로 역행하려는 기득권의 강력한 본능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고 그는 좌절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죽어서야 TV에 나온 그의 모습을 보며 그의 꿈을 헤아렸다. 그의 육신이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이십년 전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살고 있던 마산창원 지역의 한 노동조합 파업농성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며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던 그는 그때 겨우 내 나이 정도나 되었을 젊은 사람이었다.


그는 그저 연설이나 하고 떠나는 그런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는 운동가였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우리의 절친한 이웃이었다. 아마도 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인간 노무현의 그런 모습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연설하는 모습보다 사람들 속에서 웃는 모습을…. 그러나 이제 그는 떠났다. 영원히 그의 육신은 이 세상 밖으로 떠났다. 그렇지만, 그의 혼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우리 안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나는 노사모가 아니었지만, 이제부터 노사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노무현의 정신과 노무현의 희망을 대변하는 노선과 가치가 살아 움직이는 정치, 바로 노무현의 꿈과 이상을 실천할 수 있는 그런 노사모 말이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요즘은 신문보다 블로그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게 훨씬 빠르고, 정확하고, 그리고 다양합니다.
그래서 주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늘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지요.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기사를 검색하는 중에 김동길 관련 기사가 많이 걸려 있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자살하거나 감옥에 가야 한다고 비아냥 거렸다는데, 
그걸 아직도 잘했다고 그런다는군요.
 
그런데 이 노인네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만요.
저는 이 늙은이의 수염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여지껏 살아 있다는 사실이 더 기분 나쁘네요. 
음~ 그냥 그렇다는 거고요.
더 이상 쓸 내용은 없습니다. 혹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께는 죄송하네요, 별 내용도 없이. 

김동길이란 늙은이는 도무지 논평할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서요.
아무 때나 짖어대는 개를 보고 “얌마, 너 왜 그래?” 한다면,
모두들 저를 보고 미쳤다고 생각할 게 뻔하지 않습니까?
사실은 그를 인간으로 대접하는 자체도 인류에 대한 모독이죠. 
그렇지만, 논평을 대신해서 이거 한마디는 꼭 해주고 싶군요.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기는 하려는지…

“김동길 씨, 쌀 그만 축내시고 어서 죽어주는 게 어떨까요? 나라 경제도 어려운데…”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낙동강을 걷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했다. 낙동강 천삼백 리 도보기행팀은 3차구간이 시작되는 단천교에서 시작하여 단천리 비경과 이육사기념관을 거쳐 윷판대에 올라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래로는 까마득한 천길 단애다.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에 떨면서도 아래를 내려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그때 누군가가 “노무현이 죽었다는데?” 하고 말했다. 그는 행군을 하면서도 귀에 리시버를 꼽고 라디오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방금 뉴스에 나오는데 노무현이 죽었대.” 이 무슨 황당한 소리란 말인가. 신정일 대표는 어이없다는 듯이,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오늘이 만우절이야? 오늘 만우절 아니잖아. 그런데 방송국에서 그런 거짓말도 하나?”


사람들은 갑작스런 소식에 술렁거렸다. 그리고 곧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야, 너 혹시 소식들은 거 있어? 노무현이 죽었다는데? 어떻게 된 거야. 뭐? 모른다고? 빨리 뉴스 틀어봐. 그리고 바로 전화해줘.”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지만 곧, 믿을 수 없는 또는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은 사실이 되어 우리를 침묵 속에 밀어 넣었다.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졌다. 까마득한 윷판대 아래로 휘감아 돌며 탄성을 자아내게 하던 낙동강이 갑자기 흐릿한 회색빛으로 두려움을 몰고 왔다. 이제 겨우 두  시간 남짓 걸었을 뿐인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리고 두려움은 분노로 변하기 시작했다. 화가 난다. 세상이 밉다. 구체적으로는 이명박이, 이명박의 똥개를 자처하는 검찰이, 모든 똥개들의 나팔수 조중동이 죽이고 싶도록 밉다.


이렇게 힘든 낙동강 걷기는 처음이다. 아름다운 경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고 또 잘 찍히지도 않는다. 비록 카메라를 잡은 지가 갓 석 달째에 불과하지만, 나름대로 구도를 잘 잡는다는 칭찬을 들었었다. 그런데 엉망이다. 전차의 도보기행에서는 찍은 사진이 천장을 넘었었다. 그러나 이번에 채 50여장도 채우지 못했다.


윷판대를 떠난 일행은 도산서원을 지나 자연공원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먹었다. 세 명의 길벗이 이곳에서 인사를 고했다. 조문을 가야겠단다.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오지에서 어떻게 가겠냐고 걱정들을 했지만, 그들은 짐을 챙겨 서둘러 떠났다. 나머지는 계속해서 걸었다. 비보에 기진맥진한 탓이었을까. 목적지인 병산서원에 훨씬 못 미친 우리를 태우기 위해 버스가 왔다.


병산서원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건축학도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한다는 병산서원. 아름다운 해넘이로 유명한 병산서원에서 그러나 우리는 붉은 노을을 볼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칙칙한 회색빛으로 하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고 있었다. 다음날도 여정은 계속되었지만, 너무나 힘들었다. 이렇게 힘든 여정은 처음이다.


유장한 낙동강의 아름다운 물결도, 역사도, 사람도 모두 덧없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그저 회색이었다. 어젯밤 늦게 집에 돌아온 나는 제일 먼저 인터넷부터 켰다. 온통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다. 세상 밖 낙동강 상류의 오지에서 들었던 소문이 이제 눈앞에 사실로 다가왔다. 슬픔이 밀려온다. 소주 두병을 샀다. 취하지 않고서는 잠들기 힘들 것 같았다.


오늘 점심시간, 어느 중국집에 들어가 짬뽕을 시켰다. 텔레비전에선 노무현의 일대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텔레비전 속에서 고무장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쓴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중국집 여주인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에고~ 저렇게 소탈하신 분이었는데. 고마 고향 사람들과 농사지으며 행복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중국집 주방장이자 주인아저씨도 맞장구를 쳤다. “저기 다 이명박이 때문인기라. 쥑일 놈들.” “저리도 소박하게 사는 사람을 호화판 어쩌구 하며 욕하는 놈들도 미친 놈들이제.” 내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사장님. 호화판 어쩌구 한 놈들, 그거 바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아입니까. 노무현 사저가 땅이 천 평이 넘는다면서 말입니더.”


“전두환이며 노태우며 이런 더러운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집터가 평당 천만 원만 하겠습니꺼? 그런데 봉화마을 땅값은 얼마겠습니꺼.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내는 그거 오천 원에 사라고 해도 안 사겠습니더. 골짝에 뭐할라꼬. 그런데 그걸 씹고 대든 놈들이 바로 조중동 아입니꺼. 이집에 보니 동아일보 들어오는 모양인데, 낼부터 당장 끊으이소.”


주인 아줌마는 갑자기 미안했던지 말을 돌렸다. “그란데 아이씨요. 엊그제 테레비에 보니까 이명박이 나왔던데 말입니더. 모내기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하데예. 그란데 내가 그거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시상에, 모내기 한다는 사람이 말입니더. 하얀 와이샤스를 입고 팔도 안 거지고 모를 심고 있더라 이 말입니더. 흙 하나 안 묻히고… 쇼를 해도 잘 해야지예.”


그녀는 그러면서 논둑에 앉아 동네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생전의 노무현을 바라보며 눈물지었다. 그래, 그녀의 말처럼 하얀 와이샤스를 입고 국민을 향해 쇼를 벌이는 대통령이 있는가하면 노무현처럼 진심으로 국민들과 소통하고자했던 대통령도 있었다. 짬뽕을 먹고난 나는 중국집을 나서면서 말했다. “사장님, 낼부터 당장 동아일보부터 끊으이소.”


나는 노무현의 지지자는 아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될 때 그를 찍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비록 그를 또는 그가 속한 정당의 견해를 이해하진 못해도 그는 영웅이었다. 말하자면, 개천에서 용이 났으며 그런 용을 개천에 사는 우리는 선망과 희망을 섞어 바라보았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는 보통의 용들이 모두 개천을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과 달리 개천으로 돌아왔다. 밀짚모자를 쓰고 논에 오리를 몰면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런 모습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봉화마을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늘 붐볐다. 이런 일이 우리 역사에 언제 있었던가. 어떤 대통령이 퇴임 이후에 이런 대접을 받았던 예가 있었던가.


그러나 그런 모습이 이명박의 눈에는 가시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넘쳐나는 봉화마을의 관광객들을 보며 이명박은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도 못하는 괴로움을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검찰을 닦달했던 것일까. 그리고 똥개를 자처한 검찰은 소명도 하지 않은 조사내용을 언론에 슬쩍 흘리며 전직 대통령을 모욕하는 비열한 모습을 연출한 것일까. 


진짜로 모를 심고 있는 생전의 노무현을 눈물을 훔치며 바라보던 중국집 아줌마의 마지막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 “진짜 죽어야 할 전두환이 같은 놈은 뒤지도록 안 뒤지고, 저런 소박한 분이 왜 죽느냐 이 말입니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고 했다지만, 나는 그걸 액면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그의 진심을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의 유언은 직접 몸으로 보여준 행동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중차대한 시국에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세발의 미사일 쏘았다고 한다. 늘 그렇지만 북한은 저런 식으로 남한의 수구세력을 도와준다. 또 남한 국민들이 크나큰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감행한 도발에 비판은커녕 도리어 부화뇌동하는 듯 보이는 민노당의 논평도 참 걱정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그들이 벌이는 엉뚱하고 무모한 쇼에 관심둘 때가 아니다.
지금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저 묵묵히 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을 던져 보여준 유서의 참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며…. 그게 전직대통령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길이 아닐까. 방금 전 봉화마을에서 취재 중인 김주완 기자의 블로그를 살펴보니 봉화마을에 촛불이 켜지고 있다고 한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신영철 대법관 사태를 바라보며 나는 5년 전을 생각했다. 2004년 3월, 대한민국은 역사 이래 초유의 사태에 휘말렸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된 것이다. 당시 탄핵을 주도한 것은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었다. 탄핵의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발의연월일 : 2004년 3월 9일 
발의자 : 유용태, 홍사덕 외 157인

       헌법 제65조 및 국회법 제130조 규정에 의하여 대통령 노무현의 탄핵을 소추한다.
탄핵사유

  첫째, 노무현 대통령은 줄곧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국법질서를 문란케 하고 있습니다.

  둘째, 자신과 측근들 그리고 참모들이 국정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적, 법적 정당성을 상실했습니다.

  셋째, 낮은 성장률에 머물러 있는 점에서 드러나듯이 국민경제와 국정을 파탄시켜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노무현이 같은 것(!)도 대통령이 다 되네?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은 월드컵 4강 신화보다도 더 극적인 것이었다. 사실 2002년이 오기 전에 아무도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되었고, “노무현도 대통령이 다 된”다며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국민들은 그런 노무현을 보며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사실 “노무현이 같은 것(!)도 대통령이 다 된”다며 혀를 찬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의 아버지였다. 아마 시골 동네의 분위기가 그러했던 모양이다. 상고 밖에 못나온 위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니 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고려대 상대를 나오고 현대그룹에서 회장까지 역임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일까?


그러나 결과는 “대통령 하나 잘못 뽑으면 국민이 개고생이다”란 유행어가 대변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대 출신 대통령이 나라경제 말아먹은 걸 상고출신 대통령들이 살려놓았더니 다시 고대 출신 대통령이 말아먹는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아버지가 이런 현실을 보고 이번엔 무어라고 말씀 하실지 자못 궁금하다.


나는 당시(지금도) 노무현 지지자는 아니었지만, 노무현의 탄핵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위에 게기한 것처럼 대통령 탄핵의 사유가 매우 추상적이다. 국법질서를 문란케 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떤 위법·부당한 행위를 해서 국법질서를 교란시켰다는 것인지 구체적이지도 않다.


노무현이 탄핵이면 이명박은 벌써 단두대로 갔어야 
더 우스운 것은 두 번째 사유다. “측근과 참모들이 도덕적, 법적 정당성을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 번째 사유는 그야말로 코미디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낮은 성장률에 머물러 있는 점에서 드러나듯이 국민경제와 국정을 파탄시켜 민생을 도탄에 빠트렸습니다.” 고인이 된 이주일이나 김형곤이 살아오더라도 이정도로 웃기지는 못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로 얼마나 많은 농민들을 울게 만들었는가, 또는 비정규직 정책으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쫓았는가가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아니다. 나는 그의 정책에 반대해 거리에서 팔을 흔들었을지언정 그의 지지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내가 보기에도 그의 재임시절 낮은 성장을 말하는 건 분명 코미디다.


그의 재임시절 국민소득 2만 불을 돌파했던 대한민국이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고 난 이후에 다시 그 아래로 추락했다는 비참한 사실을 굳이 여기서 들먹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그깟 국민소득이 얼마인지 지표 따위가 궁금한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처럼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이 대통령 시절 당했던 탄핵사유가 지금 이명박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인가? 그러나 보시다시피 1번부터 3번까지 이명박에게 해당되지 않는 사유는 단 하나도 없다. 특히 세 번째 국민경제와 국정을 파탄시켜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죄는 역대 어느 정권도 따르지 못한다. 이 정도면 탄핵이 아니라 고대의 방식대로 목을 내놓아야 할 일이 아니던가?


대통령도 탄핵하던 국회가 대법관 나부랭이 하나 어쩌지 못하다니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판결이 아닌 e메일로 말하는 판사’ 신영철 대법관의 탄핵을 논의하기 위해 범야당의 대표회담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각 당의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일단 자유선진당은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다. 민주당과 민노당은 자유선진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발의자체가 불가능한 만큼 모여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회의적 입장이다.


대통령도 탄핵하던 국회가, 그것도 특별한 사유도 없이 -겨우 상고밖에 못나온 대통령이 하는 ‘짓거리(!)’가 매우 불쾌했던 점이 사유라면 사유일 수도 있겠다- 다수의 힘을 국민의 이름으로 밀어붙이던 국회가 대법원장조차도 분명한 재판권 침해라고 밝힌 범법자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한다.(결국 투표를 잘못한 국민의 탓이라고 하겠지만) 


내가 법은 잘 모르지만, 신영철이 저지른 행동은 틀림없이 ‘헌법상 재판권독립을 침해한 것이고, 이는 사법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 것’으로서 헌정질서를 유린한 중대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자기가 소속된 정당 자랑을 좀 하였기로 헌법과 법률을 파괴하고 국법질서를 문란케 했다며 탄핵까지 하던 국회가 아니던가? 


어느 날 갑자기 대한민국 헌법이 바뀌기라도 했단 말인가?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권 개입은 분명한 범죄행위다. 따라서 이는 형사적 처벌대상이다. 재판정에서 약간의 소란만 부려도 당장 법정모독죄로 감옥에 가야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신영철에게 탄핵이란 매우 호사스런 대접이다.


판관 포청천이었다면 신영철에게 개작두를 대령시켰을 것
송나라의 명판관 포청천은 중죄인을 처단하는데 두 개의 작두를 사용했다. 하나는 개작두요, 다른 하나는 용작두다. 개작두는 파렴치범에게, 용작두는 지체가 높거나 정치적인 사형수에게 적용했다. 지체가 높더라도 그 범죄행위가 매우 반사회적일 경우에는 가차없이 개작두를 대령시켰다. 포청천이 시공을 초월해 존경받는 이유다. 


만약 포청천이라면 어땠을까. 그라면 신영철에게 개작두를 대령했을까, 용작두를 대령했을까? 그러나 어찌되었든 신영철은 작두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는 어떠한가. 탄핵조차도 발의할 수 없단다. 대통령도 탄핵하던 그 기개는 어디로 가고 행정부와 사법부의 전횡을 막으라고 주어진 의회 고유의 권리마저 포기한단 말인가.  


이 지경이라면, 이명박이는 둘째 치고 대법관 나부랭이 -판사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하나 어쩌지 못하는 국회부터 탄핵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늘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보수파들, 특히 한나라당에 말한다. 제발 당신들이 좋아하는 법과 원칙, 그거 좀 지켜라.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은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는 날이다. 바로 어제 4월 29일, 5개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진행되었고 한나라당은 단 한군데에서도 이기지 못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패배를 한 것이다. 역대 어느 선거에서도 이토록 처절한 패배를 맛보았던 적이 없었던 한나라당이다. 그만큼 충격도 클 것이다.

또 하나 특기할만한 사항은 진보신당의 조승수 후보가 진보정치 1번지라고 하는 울산 북구에서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진보신당으로서는 창당 1년 만에 원내에 진입하는 것이고 앞으로 그 위상에 괄목할만한 변화가 온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게다가 울산북구는 이미 전패를 예감한 한나라당이 좌파척결론을 내세우며 색깔론 공세로 구태를 재현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서 조승수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만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완벽한 몰락도 진보신당의 원내진입도 모두 노무현 검찰소환이란 빅뉴스에 가려 그 의미가 퇴색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노무현이 자기들을 살려준 셈이니 은인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보궐선거가 한참이던 지난 20일 경에 민중의 소리를 비판하는 기사를 하나 만들어 올린 적이 있다. 당시는 민노당 김창현 후보와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의 단일화 문제가 뜨거운 감자였던 시기다.   @민중의 소리, 조선일보 닮아가나   http://go.idomin.com/206 

레디앙(이상엽 사진작가). 좌로부터 심상정, 조승수, 노회찬


이때 민중의 소리는 일방적으로 민노당 김창현 후보의 입장만 대변하는 기사를 실었으며 조승수 후보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배제하는 태도를 취했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민중의 소리는 충분히 당파적인 언론이며 그럴 권리가 있다. 나는 민중의 소리가 반미통일운동을 중심에 두는 자주파 혹은 주사파의 대변지라는데 생각의 변화가 없다.   

그리고 그런 당파성에 입각한 ‘제 식구 감싸기’ 식의 기사에 대해서도 별로 이의를 달 생각도 없다. 그러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거짓을 기사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가 조선일보를 고깝지 않게 보는 것은 그들이 지나치게 당파적이어서도 아니고 친자본적이어서도 아니다. 그들도 민중의 소리와 마찬가지로 그럴 권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조선일보가 왜곡보도와 곡학아세의 전형이라는 데 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민중의 소리에서도 보았다. 그래서 비판한 것이다. 나는 민중의 소리를 비판하면서 그들이 지나치게 당파적인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존중할 뿐만 아니라 찬사까지 보냈다. 다만, 왜곡만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분은(물론 익명이다) 나의 이런 주장에 대해 매우 뻔뻔하다고 비난한다. 이유는 왜 민중의 소리를 친북언론으로 모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친북으로 보이는 것을 친북이라고 하는 것이 왜 뻔뻔하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라 불러주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이어서 그는 그렇다면 늘 종북주의 타령이나 일삼는 진보신당과 레디앙은 왜 비판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옳은 말이다. 진실로 레디앙이나 진보신당이 늘 종북주의 타령이나 하고 있었다면 비판 받아야 할 일이다. 종북주의가 아무리 밉다지만 급박한 민생현안들을 제쳐두고 늘 타령을 부를 정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말이 길어지고 있으니 간단하게 말하겠다. 진보신당은 조승수 후보의 국회의원 당선에 축하 분위기, 민노당은 조승수 후보의 당선에 매우 분노하며 진보신당을 일러 쓰레기 집단으로 몰아치는 분위기였다. 더 이상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리고 민중의 소리와 레디앙 역시 비교하기 위해 들어가 보았다. 자, 나는 여기서 민중의 소리가 왜 종파언론인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조중동이 족벌언론이라면 민중의 소리는 조중동에 필적하는 종파언론이다. 아주 뼛속까지 종파적인 언론이 바로 민중의 소리다. 민중의 소리는 조승수 후보가 울산북구에서 당선된 소식은 일절 내지 않았다. 

물론 기사를 안낼 수도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검색해보았지만 기사가 없었다. 오로지 노무현 검찰소환 소식만 도배되어 있을 뿐. 그러나 진보진영의 대단결을 추구한다는 민중의 소리까지 이럴 필요는 없는 일 아닌가. 아무리 반북주의자(!) 조승수가 미워도 이렇게까지 종파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설적으로 늘 종북타령을 하는 것은 그들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언론들은 어땠을까? 한겨레신문,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등은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조승수 후보의 당선 소식을 다루었다. 물론 조선, 동아 등은 선거 기사 자체를 배제하는 분위기였으니 참고할 만한 것이 아예 있을 수가 없다.  

민노당이 진보신당과 분당한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패권주의였다. 간첩사건을 빌미로 내세운 종북주의는 사실은 매우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종북주의로부터 바로 하나의 종파가 만들어진 것이며 이 종파는 필연적으로 패권주의를 낳고 패권주의의 결과로 온갖 부정과 부패, 비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소위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이란 것이 그렇다. 원래 건전한 당파란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그 당파가 종파가 되고 그 종파가 패권을 휘두를 때 당쟁으로 왜곡돼 그 결과 피비린내 나는 사화가 발생하고 애꿎은 인명이 살상되는 참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정약용 형제를 비롯한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학살된 신유사옥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민노당 최고위원이며 대변인이었던 박승흡이 조승수 후보로의 단일화에 반발해 모든 당적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그의 변을 보면 조승수 후보와 진보신당에 대한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이해 못할 것은 후보단일화를 먼저 제기한 곳도 민노당이요 후보단일화에 반발해 최고위원과 대변인이 사퇴할 정도의 내홍을 겪는 것도 민노당이란 사실이다. 

민중의 소리 역시 기사를 검색해본 바로는 조승수 후보에 대한 감정이 박승흡 전 민노당 최고위원 겸 대변인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레디앙을 보면 “민노당, 민주당 텃밭 광주전남 2곳에서 승리 기염”이란 제하의 기사를 실어 대조를 보였다. 민중의 소리가 눈여겨볼 대목이 아닐까 싶어 굳이 이렇게 각 언론사의 보도태도를 소개한다.   
파비

민노당 도의원, 군의원 소식은 탑으로 실었으나 정작 울산북구의 조승수 국회의원 당선 소식은 없다.

레디앙. 조승수 후보 소식이 주이긴 하지만, 진보양당 공동 승리, 민노당 지방의원 소식도 함께 실렸다.

프레시안. 조승수, 울산 접수... 진보신당 "원내정당" 시대

오마이뉴스. 진보정당, 거대여당 꺾어

한겨레. 진보신당, 원내진지 구축... '뭉쳐야 산다' 교훈

경향신문. 1석의 힘 "진보신당" 위상 상승


조선. 노무현 소환 기사만 보일 뿐 선거기사가 아예 안 보인다.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마찬가지.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제 한승수 총리가 표명한 유감에 대하여 저는 정말 유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감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라고 질타하는 포스팅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제 글에서 일반적으로 정치하는 족속들이 사과할 줄도 모르고 하고 싶지도 않지만 하지 않으면 곤란한 국면을 피할 수 없는 경우에 주로 애용하는 말이 유감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총리도 일제의 조선강점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한 사례가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후임 총리들에 의해 뒤집어졌습니다만. 현재 일본의 입장은 과거사에 대해 전혀 유감이 없다는 입장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유감이란 참 웃기는 말이지요. 어쨌든 저는 명백하게 사과해야할 사안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이 정부에 대해 매우 유감입니다.

총리의 입장표명은 유감표명 아닌 포고문

실제로 한승수 총리의 유감 표명 전문을 읽어보시면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철거민들에게 한 치의 미안함도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한 총리가 발표한 유감 표명이란 그저 기분이 매우 찜찜하다는 정도의 발언일 뿐입니다.

<한승수 총리의 입장표명 전문>
오늘 이른 아침,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서울 용산 재개발 지역의 불법 점거농성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화재로 인해 많은 인명을 잃는 대단히 불행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국무총리로서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이로 인해 법을 집행하던 경찰관 한명이 귀중한 생명을 잃었고 시위 중이던 다섯 사람도 귀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십 수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먼저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부는 이번 일이 발생한 원인과 경위를 최대한 신속하고 철저하게 조사하겠습니다. 불법 점거와 해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대해 한 점의 의혹도 없도록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드러나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입니다. 불법폭력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어느 누구에 의한 것이라도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오늘 오전에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진상규명과 사후수습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미 검찰에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본부를 설치하였고, 서울시에도 사고수습본부를 설치토록 하였습니다.
정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오늘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반의 대책을 강구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법과 질서를 지키는 데 앞장서서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거듭 명절인 설을 며칠 앞둔 이 시기에 이와 같이 불행한 일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데 대하여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총리가 유감을 표명했다는 입장표명 전문을 입수해서 자세히 읽어보았더니, 이게 웬걸?  이건 사과문은 고사하고 유감 표명문도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대국민 협박용 포고문>이라고 한다면 모를까….

그럼 지난 정부에서는 어땠을까요?

노무현 정부,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경찰청장 경질

노무현 정부 때도 철거민 문제는 늘 있었습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라고 부릅니다만, 진짜 좌파가 들으면 매우 기분 나쁜 이야기죠. 노무현 정부의 정책기조는 좌파와는 한참 거리가 멀거든요.

물론 노무현 정부도 스스로 진보이고 싶어 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 노무현 정권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별로 무리가 없는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은 백분토론에 나와 자기도 실은 좌파인데 왜 좌파 취급을 안 해주느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떠하든 진짜 좌파들의 눈으로 보면 노무현 정부는 좌파는 고사하고 오히려 신자유주의에 훨씬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역시 노무현 정부 때도 개발바람에 찬 서리를 맞는 철거민들의 점거농성은 무시로 벌어졌습니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시위도 매우 격하게 일어났습니다.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철거민과 농민들의 시위는 그야말로 막장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지를 그대로 보여주엇습니다. 그러나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농민 한 분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했었던가요?

즉시 대통령이 사과하고 경찰청장이 옷을 벗었습니다. 이번 용산 철거민 과잉진압 사태는 한 명이 아니라 여섯 명이 죽었습니다. 그것도 대테러 경찰특공대를 공수 투입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대규모 참사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무엇을 했습니까?

이명박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사과도 아니고 유족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진상파악을 지시했는데, 그 말투를 보면 불법시위에 대한 엄단대처를 지시한 것쯤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아닌 총리가 유감 표명을 했다고 언론에서 발표했습니다만, 그 전문을 입수해서 읽어보니 이것은 유감표명도 아니고 불법시위에 엄정히 대처하여 법과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포고문 같은 것이었습니다.

전혀 유감 없으면서 유감이란 말만 끼워넣으면 유감인가?

총리의 유감표명에 유감이라고 포스팅을 했던 저로서는 매우 황당합니다. 전혀 유감이 없는 사람의 유감에 유감이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앞으로는 언론의 말도 잘 새겨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총리의 입장표명 전문에 ‘유감’이란 단어가, 그것도 두 번씩이나 들어있긴 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것도 유감이라면 유감인 것은 확실합니다. 네 그러고 보니 유감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유감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대통령이 직접 사과부터 하고 사태를 수습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합니다. 세상에 사과해야 할 일에 사과하지 못하는 사람 만큼 옹졸하고 비겁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기야 사람 죽여놓고 사과한다고 국민감정이 그리 쉽게 가라앉기야 하겠습니까만….  

2009. 1. 21.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30세의 젊은이가 세계적 금융위기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국내 주식시장 붕괴를 예언한 미네르바임이 밝혀지면서 파란이 일고 있다. 아직 그가 진정한 미네르바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검찰은 제 2의 미네르바는 없다고 못 박고 있지만, 네티즌 일각에서는 의혹이 계속되고 있다.

30대의 공고 나온 전문대 출신이 ‘미네르바’면 안 되나?

우선 검찰이 발표한대로 그가 30세의 공고를 나온 전문대 출신이며 아직 무직이라는 점이 사람들이 계속 의혹을 제기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네티즌을 조롱하고자 하는 검찰과 조중동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여기에는 심각한 명예훼손의 위험성도 존재한다.

30세의 미네르바는 체포 다음날부터 모 회사에 출근하기로 되어 있었다. 검찰은 그의 직업을 빼앗아버리고 보수언론 조중동과 함께 그를 직업도 없는 ‘놈팽이’로 만들었다. 게다가 조선일보는 그의 이름까지 공개했다. 검찰의 잣대로 보면 검찰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조중동은 명예훼손 혐의로 당장 체포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는 그런 것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미네르바가 진짜가 맞느냐 하는 것이 주 관심사가 되어있는 듯하다. 이건 검찰과 조중동이 의도한 바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너무나 젊은, 게다가 정규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금융업에 종사한 경험도 없는 미네르바는 충격이었을 수도 있다.

노무현도 들었던 “대학도 못나온 주제에…”

물론 여기에는 뿌리 깊은 학벌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도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특히 그 밉살스런 ‘전여옥’이)에서는 그의 학벌을 문제 삼았었다. 노무현이 비록 상고를 졸업한 외에 더 이상의 학력을 추가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법원 판사를 역임했다. 그러나 이런 것조차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오로지 노무현은 뭘 모르는 고졸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전의 대통령 김대중도 고졸이다. 김대중 역시 한때 무식한 상고 출신이란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워낙 해박한 그의 지식은 그런 비웃음이 도리어 웃음거리가 되게 했다. 서울대 나온 무식한 김영삼과 목포상고 출신의 김대중을 비교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는 강고한 학벌주의 사회이다. 이런 글을 쓰는 필자도 사실은 학벌주의 바이러스에 심각하게 감염되어있다. 필자는 기계공고 출신이다. 그럼에도 자식만은 어떻게든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직 초등학생인 녀석들의 성적표가 늘 불안하다.

지난해 9월 열린 '학벌 없는 사회' 토론회 포스터


‘짜집기’도 못하는 서울대 출신 경제장관

그런데 나는 오늘 미네르바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다 새삼스러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다름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학들의 교육능력이 너무나 형편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 최고학부라 자랑하는 서울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필자는 이미 앞에서 잠깐 언급한 무식한 서울대 출신 김영삼과 해박한 상고출신 김대중을 통해 서울대의 무능함을 이미 간파한바 있다.

오늘자 조선일보의 미네르바 관련기사 제목은 이렇다.

검찰 “미네르바는 전형적 혹세무민 사건”

헤드라인도 엄청 크고 굵은 글씨다. 조선일보야 우리가 다 아는 악의와 왜곡의 달인들이 모인 신문이니 그러려니 하면 된다. 그런데 기사 내용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검찰은 박씨의 학력이나 경력에 비해 글이 수준이 높다는 의혹에 대해선 “박씨는 ‘이론경제학’을 수년간 독학했으며…, (전문용어 구사력과 문장력도 뛰어날 뿐 아니라) 인터넷 검색에도 능해 경제정보를 모아 ‘짜집기’ 하는 데도 소질이 있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포털들에 올라온 기사들을 검색해보니 검찰은 특히 이 ‘짜집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미네르바 예언의 신빙성을 줄여보자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못배운 가짜의 혹세무민이라는 쪽으로 몰고 가고 싶을 것이다. 그게 바로 MB의 의중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그 ‘짜집기’란 것이 너무나 영험하다는 데 있다. 아니 미네르바의 ‘짜집기’는 영험이 아니라 과학이었다. 이어진 공황에 빠진 세계경제가 그걸 입증하고 있다. 그러면 이때, 서울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은 행정고시(재경직) 수석합격자 출신의 기획재정부 장관 강만수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서울대부터 없애는 게…

아무것도 안했다. 굳이 한 일이 있다면 환율을 잘못 조작해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든 일 뿐이다. 그러고도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를 등에 업고 ‘대리경질’이란 초유의 인사제도까지 만들어냈다. 조선시대에 주인을 대신해 곤장을 맞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대리경질이란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이런 일이 어째서 가능한가?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학력주의 바이러스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짜집기’조차 못하는 백수(?)보다 못한 만수지만, 학력주의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에겐 대단한 학력과 휘황찬란한 경력은 매력적인 것이다. 그러니 나라가 거덜이 나도 강만수를 결코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의 결론은 이것이다.

“‘짜집기’도 못하는 강만수 같은 학생들이나 양산하는 서울대부터 없애자!”

2009. 1. 10.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요즘 조선일보에 매수되어 매일 아침 열심히 조선일보를 보고 있습니다. 물론 매수된 만큼 신문은 공짜로 보고 있지요. 신문을 공짜로 봐주는 대가로 받은 현금 3만 원도 잘 썼고요.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해놓고 포상금이 나올 날짜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정신을 황폐화시킬 것만 같은 기사를 매일 아침마다 읽는다는 게 보통 고역이 아니지만, 그러지 않으면 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신문이 그냥 쓰레기장으로 직행할 판이니 자원낭비다 싶어 대충 읽어는 보고 버리는 편입니다.

그러나 오늘 신문을 보니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간단히 기사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동국대 정치외교학과에서 교수질을 하고 있다는 황태연이란 사람이 쓴 글이로군요.

조선일보 A30면 <아침논단> 오바마 당선 보고 놀랐던 가슴

동국대 황태연 교수

미국 역사상 오바마만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대통령 당선자는 없었다. ……… (중략)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좀 착잡하기도 하다. 지난 5년간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랄까. 변방 출신이기 때문에 혹시 ‘우월적 열등감’으로 착종된 이중인격자? 외교의 문외한으로 한미관계를 어지럽힐 ‘미국 노무현’? 서민과 중산층을 살린답시고 되레 죽이는 ‘진보적’ 신참내기? 그의 시장철학과 정치노선은?… 의문이 꼬리를 문다.

그러나 일단, 흔히 출세한 저학력자가 보이는 분열증세인 ‘우월적 열등감’은 문제될 것이 없을 듯하다. 컬럼비아·하버드대학을 거쳐 변호사와 시카고대학 교수를 역임한 미국의 대표적 지성이 무슨 학력 열등감을 갖겠는가? ……… (중략) 이러니 전혀 착잡해할 것까지는 없을 듯하다.

구구절절 길게 써 놓았지만, 이야기는 딱 이겁니다. ‘오바마가 좌파 노무현(자라)과 비슷한 솥뚜껑인 줄 알고 놀랐더니, 다행스럽게도 그는 노무현과 달리 컬럼비아대학에 하버드대학까지 나온 고학력자로서 변호사와 대학교수를 역임한 대표적 지성이므로 별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이죠.

기가 막히네요. 그럼 저처럼 학벌도 없고 직업도 별로인 사람은 지성 같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고, 그래서 출세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로 들리네요. 못 배운 것도 서러운데 사람 괄시까지 하는군요. 그래서 이명박은 많이 배워서 나라경제 망쳐놓고 무슨 자랑이랍시고 백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라며 주식 사라고 장사질이랍니까?

참 딱한 사람입니다. 이런 작자가 무슨 대학교수를 한답시고 거들먹거리고 있으니 대한민국 갱(!)제가 요 모양 요 꼴인 겝니다. 제가 보기엔 이 사람이야말로 고학력자가 보이는 분열증세인 ‘열등한 우월감’에 사로잡힌 환자로 보이는군요.
얼마 전에 “조선일보 보다 내 양심 털 나겠다”는 제목으로 포스팅을 한 바가 있습니다만, ‘내 양심에 털 나기’ 전에 먼저 성질부터 배릴 것 같습니다.

에잇! 아침부터 재수 옴 붙었습니다.

2008. 11. 26.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결론부터 말하면, 오바마는 좌파가 아니다.

한발 물러서 진보주의자라고 불러주기에도 상당히 어색하다. 물론 미국 내에서는 공화당에 비해 민주당이 덜 보수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거기에다 버락 오바마라는 앵글로 섹슨에게는 생소한 이름의 아프리카계 흑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점 때문에 세계가 마치 미국에 혁명이라도 일어난 듯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겠다.

미국인의 선택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심판


그러나 어쨌든 오바마도 미국 민주당도 좌파는 아니며, 그렇다고 특별히 진보라고 보아줄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 또는 북한과 같은 적성국가를 대하는 태도에서 약간씩의 차이를 보여줄 뿐이다. 이 차이도 실상은 최근에 생겨난 것이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최악의 전쟁으로 평가 받는 베트남전을 이끈 정부가 실은 민주당이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도 있다. 

1980년대 이후에 클린턴 행정부를 제외하고 줄곧 공화당 정권이 득세했다. 이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미국의 신자유주의와 패권주의는 절정을 구가했지만, 미국의 경제는 거꾸로 곤두박질쳤다. 이는 전쟁에 대한 반발과 시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결국 미국민은 오바마와 민주당을 선택했다. 부시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미국민의 심판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조선일보의 조갑제는 미국 대선 레이스가 한창일 때, 마치 오바마가 당선되면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말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오바마가 매우 친북(좌경)적인 사람이며 그래서 위험하다고 생각하던 그들이 갑자기 오바마는 좌파가 아니며 좌파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고 말하니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약간 혼란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어떤 진보인사 한 분은 오바마에게 ‘미국식 좌파’라는 개념을 따로 붙여주기까지 했다. 

사진=경남도민일보/뉴시스


미국이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양당체제에 고착된 독특한 정치체제의 나라라는 점을 감안할 때 오바마에게 ‘미국식 좌파’라는 딱지를 붙여주어도 별다른 이의가 없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좌파-우파의 개념이 상대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개념에 대한 선은 있어야 할 듯싶다. 

노무현을 좌파로 모는 조갑제가 오바마는 좌파로 부르지 말자고?

미국에서도 실제로 오바마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주로 남부의 보수적인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마치 노무현이나 김대중을 좌파라고 몰아세우며 ‘우파의 잃어버린 10년’을 노래하는 이명박이나 조갑제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 미국도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이다. 어딜 가나 돌연변이들은 있게 마련이다.

김대중은 집권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IMF를 돌파하는 정책을 펼쳤다. 노무현도 역시 김대중이 닦아놓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충실히 수행했고 미국과의 FTA는 그 결정판이었다. 더욱이 미국의 패권주의적 군사정책에 협조해서 아프간과 이라크에 파병까지 했다. 이 지점들 때문에 오히려 한나라당보다 더 우편향의 정치를 했다고 평가 받기도 했고 노동자 농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기도 했다. 

또 반면에 김대중과 노무현은 대북정책에 있어서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유화정책을 폈으며 남북화해무드에 많은 기여를 했다. 두 차례나 남북의 정상이 만나고 그 실효성 여부에 불구하고 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는 것은 역사적 진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조갑제 류의 수구인사들은 이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이게 바로 노무현과 김대중이 친북좌파라는 증거라고 끊임없이 물고 뜯는 것이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오바마는 좌파임에 틀림없다. 우선 오바마는 적성국 북한의 최고 통치자인 김정일을 만나겠다고 한다. 여기에다 오바마는 노무현이나 김대중이 신자유주의를 추구한 것과 달리 신자유주의에 종지부를 찍고 과거 뉴딜시대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런 면에서 오바마는 노무현보다 훨씬 좌파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정치인이 되는 셈이다. 그런 오바마를 좌파라고 부르지 말자고 자기네끼리 신호를 주고받는 조갑제류의 행태는 그야말로 코미디다.   

그러나, 좌파라고 하기엔 한계가 뚜렷한 민주당 

그러나 아무리 오바마와 민주당의 리버럴이 좌파나 사회주의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역시 미국 민주당의 한계는 뚜렷하다. 미국은 민주당이 수없이 집권했지만 의료보험 체계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나라이다. 교육에 있어서의 공공성도 최악의 수준이다. 북서유럽의 좌파 사민당이 오래 집권한 나라들의 복지와 비교할 기준조차 제대로 없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런데 30여년에 걸친 미국식 신자유주의 실험이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며 좌초하는 시점에서 건국 232년 만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냉정한 미국의 현실을 망각하게 하는 효과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반대로 조갑제 같은 이들에겐 노무현보다 훨씬 좌파적인 오바마를 애써 좌파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데에는 숭미사대주의에 기반을 둔 나름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진보인사들이 앞을 다투어 오바마를 좌파라고 추켜세우며 환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나 좌파라면 무조건 빨갱이에 공산주의자로 몰리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발현된 어떤 보상심리 같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는 조갑제류의 기회주의와는 다르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섣불리 오바마가 좌파라고 말하기보다, 우선 그가 보다 좌파적으로 행동하기를 촉구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바마가 신자유주의를 폐기하고 추진하는 뉴딜 식의 경제회생 정책들이 과연 사회복지로 제대로 연결되는지도 주의 깊게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나서 오바마의 좌파에 대하여 평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오바마를 선택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에는 공화당의 실패한 경제가 있다. 이 점을 잘 아는 오바마가 전통적인 민주당의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난국을 돌파하리라는 예상은 이미 충분히 있어 왔다. 실컷 좌파라고 추켜세우다가 결국 뒤통수를 맞았을 때의 황당함보다는 덤덤하게 지켜보는 게 오히려 현명하지 않을까?

오바마의 개혁이 좌파적 복지의 확충으로 이어지길

조갑제나 이명박 같은 이들이야 원래 표리가 부동한 분들이라 좌파라고 생각하는 오바마가 당선된 것이 매우 불쾌하지만 애써 속내를 숨기며 “오바마를 좌파라고 불러선 안 된다.”느니 “오바마와 나는 닮은 데가 많다.”느니 횡성수설하며 꼬리를 치지만 우리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바마를 좌파로 보긴 뭔가 석연치 않지만 그가 진정한 좌파가 되어 보다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으로 미국의 경제만 살릴 뿐 아니라 최소한의 복지시스템이라도 구축하는 실로 역사적인 미국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한다. 미국민들이 그저 마시던 코카콜라를 펩시콜라로 바꾼 정도의 불행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결론은, 오바마가 진정한 좌파로 거듭나길 바라는 것이다.  

2008. 11. 6.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상세보기

Posted by 파비 정부권
10여 년 전에 고승하 선생의 작곡발표회가 창원 KBS 홀에서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 전통음악과 서양의 클래식이 함께 어우러진 고승하 선생의 음악을 듣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물론 저의 예술적 무지 탓으로 선생의 음악을 십분 이해할 순 없었지만, 훌륭한 시도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에 대한 선생의 사랑은 참으로 지극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늘 어린이야말로 나라의 동량이요 미래라고 이야기 하지만 실천으로 보여주는 이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선생은 바로 그 흔하지 않은 분들 중에서도 매우 훌륭한 어린이의 친구요 선생님이셨습니다. 고승하 선생이 만든 동요를 아름답게 부르는 어린이 예술단 ‘아름나라’는 그래서 선생의 영혼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은 말일 듯합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우리 딸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신 고승하 선생님.


그리고 2008년 10월 16일, 고승하 선생의 ‘음악인생 40년’과 ‘아름나라 20년’을 축하하는 공연이 마산 3·15 아트센터에서 열렸습니다. 

맨 먼저 나온 이성원은 부드러운 음악으로 청중들의 몸을 촉촉히 적셔주었습니다. 그의 노래는 마치 경양식을 먹기 전에 먹는 스프처럼 달콤하면서도 감미롭고, 그러면서도 발랄했습니다. 뒤이어 나온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을 달구었던 민중노래패 소리새벽과 김산은 ‘고백’을 노래하며 차가운 밤이슬 내리는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손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던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주기도 했습니다. 

바위섬을 부른 대학가요제의 히어로 김원중도 왔습니다. 그의 열창은 여전했습니다. 거의 20년 전 마산 자유수출공단 내 수미다전기 노동조합이 자본철수에 반대해서 파업을 벌이던 현장에 격려차 와서 노래를 불렀던 그도 이젠 많이 늙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었습니다. 

어두컴컴한 파업현장에서 함께 노래부르고 막걸리를 마셨던 젊은 날의 김원중과 노무현은 모두 훌륭한 우군이요 동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봄이었던 김원중도 이제 가을의 모습으로 다시 마산에 왔습니다. 이번엔 어두컴컴한 파업현장이 아니라 현대식 건물과 조명이 휘황한 3·15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기념공연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왔습니다. 

역시 그는 예나 지금이나 노래를 잘 합니다. 

80년대 대학가요제의 히어로 김원중. 바위섬을 불렀던 그도 이젠 많이 늙었더군요.


그리고 국악가수 이자람 씨도 선생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왔습니다. 젊디 젊은 국악가수를 보니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노래도 일품입니다. 국악가수가 동요 같은 노래도 참 잘 합니다. 뒤이어 나온 조태준 씨는 처음 보는 분입니다. 젊은 가수였지만,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젊어 나도 함께 젊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사실 7~80년대의 가수들에 비해 요즘 가수들은 노래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비디오만 신경 쓴다고 불평을 해대곤 하는데 이 가수는 정말 노래를 잘 했습니다. 마지막에 나온 강산에가 경계를 해야할 가수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공연 중간에 화상으로 축하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자우림이 인사를 하더군요. 그래서 부랴부랴 셔터를 눌렀는데 시커멓게 나와 여기 소개하지는 못합니다. 자우림, 정말 노래 잘 하는 가수입니다. 얼굴도 섹시하게 생겼지요. 제가 조금만 젊었으면 서울 한 번 올라가는 건데, 그래도 제가 주제파악 정도는 하고 사니까요. 

김미화, 윤도현도 축하인사 하러 화상에 나왔군요. 김미화 참 똑똑한 여자지요. 한때 코메디 프로 쓰리랑 부부에서 야구방망이 들고 많이 설쳐서 대개 웃긴 여자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책도 많이 보고 엄청 똑똑한 여자더군요. KBS 「TV, 책을 말하다」란 프로에서 장정일과 MC 하는 걸 보았는데, 정말 유식했습니다. 

노래 다 부르고 집에 간 줄 알았던 강산에가 갑자기 뛰어나와 청줄을 놀래키며 다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노래로 충만한 기념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강산에가 장식했습니다. 그는 역시 대가수였습니다. 넘치는 무대매너도 훌륭했지만, 역시 그의 노래는 우리네 심금을 울려주면서도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무엇이 있습니다.

강산에와 고승하 선생과 앞에 출연했던 모든 가수들과 아름나라 어린이 예술단과 철부지들, 그리고 청중들이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흥겨워 하는 속에 고승하 선생 음악인생 40년과 아름나라 20년을 기념하는 공연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고승하 선생의 음악인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물론 선생의 영혼이 깃든 어린이 예술단 아름나라도 계속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래할 것입니다. 나이든 어른들이 만드는 철부지들도 변함없이 아름나라와 사이좋게 놀 것입니다. 

아름다운 나라가 이들의 노력으로 우리 곁에 가까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최소한 이날 만큼은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나라에 살았습니다.
 
2008. 10. 19.  파비

아래 사진보다 더 많은 분들이 출연했지만, 제 사진 솜씨 탓으로 시커멓게 나오거나 흔들려 여기 싣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죄송합니다. 공연은 전체적으로 좀 산만했습니다. 출연팀이 너무 많은 탓이었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선생을 위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엄선된 구성과 기획이 아쉬웠습니다. 시간도 무려 2시간 반이나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 약간의 아쉬움도 마지막 전체 어울림 무대가 완벽히 해소했다고 봅니다. 마지막 무대가 참 좋았습니다. 고승하 선생님도 계속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내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선생의 뜻을 잘 나타낸 포스터로군요. 제 자리는 앞에서 네 번째 줄, B-45번이었습니다.

'아름나라'와 함께 어울린 나이든 '철부지들'

아름나라 어린이 예술단

국악가수 이자람의 열창

조태준. 대단한 가수였습니다.

청중과 악수하고 있는 강산에. 역시 대가수...

고승하 선생과 부인

가수 이성원이 선생의 딸을 인계하러 왔다는데, 진짜 딸인가?

인사하러 나왔다가 갑자기 상도 받고 꽃다발까지... 상 제목은 저도 모르겠습니다.(알아보니 생명평화상이었군요.)

고승하 선생의 작품을 노래하는 합창단.

그리고 이어 강산에, 이자람과 아름나라와 철부지들, 고승하 선생까지 마구 무대를 어지럽혔습니다.

사자도 한마리 등장했습니다.

공연에 출연한 모든 사람들이 객석의 청중들과 함께 어울림마당을 만들며 대단원을 맺었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