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블로거들의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연고지가 부산은 아니고 마산인데, 그냥 염탐 차원에서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부산이 저와 아주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왕년에 이곳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3년간 다닌 적이 있으며, 지금도 가사를 보지 않고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부산갈매기」란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수영역을 지나 센텀시티역 4번 출구로 나오니 마천루처럼 치솟은 빌딩들이 사방에서 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너 어디서 온 촌놈이냐!" 하는 듯이 말이지요. 아닌 게 아니라 마산 촌놈이 부산 가니 눈알이 빙글빙글 돌더군요. 옛날 제가 어릴 때는 여기가 허허벌판이었는데 세상 많이도 변했네요. 센텀시티를 지나 직진해서 신호등을 두 번 건너니 시청자미디어센터가 나왔습니다.
저는 여기서도 촌놈처럼 1층 로비에서 멍청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시가 약속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심심해서 제 카메라로 스스로 제 얼굴을 찍어 보았습니다. 인상을 경상도 말로 "가지껏" 잡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나왔습니다. 갑자기 레옹에서 마틸다의 가족을 살해하기 전에 코에 마약을 집어넣고 부르르 떨던 게리 올드만이 생각나더군요. 제가 보아도 섬뜩하네요.
대문에 걸려있는 사진하고는 차이가 많이 나지요? 그 사진은 지금으로 부터 20년 전 사진입니다. 1988년에 찍은 사진이니 스물 너덧 살 때죠. 모임이 끝나고 나서 부산의 블로거 분들과 식사를 함께하는 자리에서 어느 분이 제 블로그 대문에 걸린 사진을 보고 한창 젊은 사람(지금도 젊으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어린사람 쯤 되겠다)인 줄 알았다고 하셔서 조매 뜨끔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실직고 차원에서 진짜 사진을 올립니다. 머잖아 이 사진도 가짜가 되겠지만 말입니다.
3시 58분인데도 아무도 안 오니 슬슬 불안해 지는군요. 그래서 커서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2층 세미나실에 다들 모여 있다고 하네요. 아, 역시 촌놈은 촌놈입니다. 황급히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모두들 모여 계시군요. 70이 넘으신 곱게 차려입은 여자분도 계셨는데 인사만 하시고 바로 가셨습니다. 아마 오늘 블로거 모임에서 최연장자이셨던 듯합니다.
커서, 레이스탈, 미고자라드, 파비, 라이너스, 커리어노트, 엔시스, 세미예, 카메라를 든 여전사, 강우용 감독, 미디어숲, 그리고 조금 늦게 오신 부산오류시정운동본부란 블로그를 네이버에서 운영하신다고 하셨는데, 커서님 옆에 앉으셨습니다.
맨 안쪽에서 노트북을 쓰고 계신 분은 따뜻한 카리스마님이십니다. 대학 교수님이시라는데 오늘은 노트북 꺼내놓고 열심히 속기사 역할을 했습니다. 커리어노트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신답니다. 그 옆은 라이너스란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인데 나중에 인사를 하다가 깜짝 놀랐답니다.
아래의 미고자라드님과 함께 온 친구인 줄 알았거든요. 올해 스물 하고도 아홉이라는군요. 통영의 한 조선회사에서 생산계획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고 하네요. 살짝 보이지만 엄청 젊어보이지요? 주말엔 집이 있는 부산으로 온다는군요. 커리어노트 오른편이 엔시스님이신가 봅니다. "엔시스정보따라잡기"란 정보 보호를 주제로 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시답니다.
오늘 가장 놀라웠던 것은 역시 고3 수능준비생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이지요. 지금 한참 고문 받느라 바쁠 텐데 어떻게 시간을 냈군요. 나중에 식사자리에서 제가 이 친구에게 책을 한 권 선물했습니다. 『습지와 인간』이란 책인데요. 경남도민일보의 김훤주 기자가 쓴 책입니다. 저자는 저와는 20년 가까운 지기이기도 합니다.
위 사진 오른쪽이 바로 그 친구입니다. 미고자라드란 필명을 쓰고 있군요. 뜻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네팔어로 '지나가다'란 뜻이라네요. 정치외교학과 지망생인데, 역시 폭이 넓습니다. 벌써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까지 섭렵했습니다. 수능 끝나면 책 읽어보고 독후감이나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수능 전에는 절대 읽지 마세요. 미고자라드님 부모님께 제가 원망 듣습니다.”
얼굴도 참 잘 생겼지요? 저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참 부러웠습니다.
세미예님과 여전사님이시군요. 그런데 여전사님은 이름하고 너무 안 어울리시는 것 같네요. 너무 고우시잖아요. 외유내강이신가? 하긴 칼 대신 카메라를 든 여전사시니까요. 그런데 이름이 안 어울리기는 옆의 세미예님도 마찬가지네요. 그러나 세미예님은 다음에서 황금펜까지 수여받은 파워블로거시랍니다.
그 다음이 강우용 감독님이십니다. 독립영화 『제제에게 가는 길』로 세상에 알려지신 분이십니다. 이야기로만 들었는데 저도 오늘 처음 뵙는군요. 강감독님 옆의 미디어숲님은 세미예님의 도움을 받아 블로그를 개설하셨다는데요. 앞으로 부당한 장애인들의 처우에 저항하는 것과 더불어 합리적 제안을 하는 그런 블로그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행동하는 장애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기대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네이버에서 부산오류시정운동본부란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의 소개가 있었습니다. 열정이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특히 엉터리 기사에 대한 분노가 많은 분 같았는데요. 이 분을 마지막으로 소개 대장정이 끝났습니다.
미디어숲님의 말씀처럼 "자기소개가 엄청 긴" 그런 회의였습니다. 소개 하는데 두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모임은 소개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올챙이에겐 엄청 영양가 있는 소개들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역시 초보자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물어야 쑥쑥 자라는 법이란 게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닌가 합니다.
밖에 나오니 어느덧 어둑어둑합니다. 사상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깜빡 조는 새 벌써 마산입니다.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놈이 평균 95점 맞았다고 오마이치킨 두 마리 사오랍니다.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후라이드보다 천원 더 비싼 간장치킨으로 두 마리 샀습니다. 물론 제가 먹을 생맥주 1500리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일제고사에 반대하고 학력서열화를 반대한다면서도 막상 지 자식 시험 잘 쳤다니 기분이 막 좋습니다.
좋은 하루였습니다.
2008. 10. 26.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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