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에 해당되는 글 34건

  1. 2009.12.24 선덕여왕을 잃어버린 『선덕여왕』 by 파비 정부권 (25)
  2. 2009.12.23 ‘선덕여왕’, 왕위후계자 춘추가 사라진 이유 by 파비 정부권 (54)
  3. 2009.12.07 '선덕여왕' 비담과 설원공, 의문의 관계 by 파비 정부권 (22)
  4. 2009.11.22 선덕여왕, 비담에게 남긴 미실의 유산 by 파비 정부권 (3)
  5. 2009.11.12 미실과 이명박의 공통점, 드라마로 미화된 독재자들 by 파비 정부권 (5)
  6. 2009.11.11 애국자로 미화된 반란수괴 미실의 최후 by 파비 정부권 (10)
  7. 2009.11.04 미실의 난이 실패한 이유? 식자우환이다 by 파비 정부권 (19)
  8. 2009.10.28 '선덕여왕' 미실에게서 '킬빌'의 오렌을 보다 by 파비 정부권 (18)
  9. 2009.10.20 '선덕여왕' 미실의 최후는 미실의 선택 by 파비 정부권 (2)
  10. 2009.10.13 '선덕여왕' 잠자던 용 미실 깨운 춘추의 실수? by 파비 정부권 (7)
  11. 2009.10.10 김춘추와 선덕여왕, 진골 대 성골의 대결? by 파비 정부권 (5)
  12. 2009.10.06 '선덕여왕' 미실은 MB, 화백회의는 한나라당? by 파비 정부권 (14)
  13. 2009.10.05 '선덕여왕' 유신, 사랑 버리고 근친결혼한 까닭 by 파비 정부권 (4)
  14. 2009.09.25 황남대총금관으로 보는 선덕여왕 탄생의 비밀 by 파비 정부권 (6)
  15. 2009.09.23 '선덕여왕' 냉혹한 야심가 비담을 위한 변명 by 파비 정부권 (23)
  16. 2009.09.12 미실이 황후가 된다면 세종과는 이혼해야 할까? by 파비 정부권 (3)
  17. 2009.09.10 선덕여왕과 미실의 통일관은 어떻게 다를까? by 파비 정부권 (3)
  18. 2009.09.04 선덕여왕에서 가장 한심한 사람은 누구일까? by 파비 정부권 (5)
  19. 2009.09.02 문노가 받은 선덕여왕의 비밀은 무엇일까? by 파비 정부권 (7)
  20. 2009.09.01 선덕여왕과 일본자민당의 침몰을 보며 드는 생각 by 파비 정부권 (5)
  21. 2009.08.26 '선덕여왕' 옥에 티, 황제가 짐이 아니고 과인? by 파비 정부권 (8)
  22. 2009.08.25 미실을 속이려고 유신과 비담마저 속이는 덕만공주 by 파비 정부권 (7)
  23. 2009.08.19 선덕여왕, 다음주를 예언하는 즐거움 by 파비 정부권 (13)
  24. 2009.08.11 '선덕여왕' 덕만의 정광력, 미실의 하늘을 깰까? by 파비 정부권 (1)
  25. 2009.08.11 선덕여왕, 덕만은 살고 천명이 죽어야 하는 이유 by 파비 정부권 (11)
  26. 2009.07.29 선덕여왕,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 by 파비 정부권 (4)
  27. 2009.07.23 선덕여왕, 미실은 몇 번 결혼 했을까? by 파비 정부권 (9)
  28. 2009.07.21 선덕여왕의 ‘도원결의’,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by 파비 정부권
  29. 2009.07.14 ‘선덕여왕’ 미실이 대인배? 그럼 전두환도 대인배다 by 파비 정부권 (50)
  30. 2009.07.11 선덕여왕, 미실의 출신성분은 무엇이었을까? by 파비 정부권 (8)

『선덕여왕』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당연히 선덕여왕이지!”라고 말해야 옳겠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말하긴 어려울 듯하다. “그럼 대체 『선덕여왕』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이야?” 하고 다시 물어본다면, 아마도 비록 내키진 않을지라도 “미실!”이라고 말하거나 또는 “미실과 비담 모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사실이 그렇다. 사실 나는 선덕여왕 역을 맡은 이요원의 팬이라고 할 수도 있다. 『패션70s』에서 처음 만났던 그녀는 참 매력적이었다. 시골소녀의 풋풋함과 당찬 도시여성으로 성장해가는 전사 같은 모습이 어우러진 이요원을 『화려한 휴가』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그 매력은 여전했다. 물론 선덕여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겐 상경한 시골처녀의 당돌함이 있었고, 그것은 세상을 마주하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어린 덕만 남지현에 이어 등장한 이요원에게도 그것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패션70s』에서의 이요원도 서울에서 멀리 남도 끝자락의 어느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 유배도 덕만처럼 음모에 의한 것이었다. 머나먼 이국의 사막 타클라마칸에서 자란 덕만처럼 『패션70s』의 이요원도 활기찬 사내아이 같았다.

제도에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힘, 나는 그것이 덕만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덕만이 처음 서라벌에 들어와 미실과 마주했을 때 거둔 덕만의 승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순수한 영혼의 힘. 아마도 오래 전 기억이지만-벌써 7개월이란 세월이 흘렀으니-‘하룻강아지’ 덕만과 여우같은 천명의 합작이 미실에게 거둔 첫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포스팅한바가 있다.


나는 그래서 덕만이 머나먼 이국 사막에 버려진 것이-나중에 그것은 덕만의 유모 소화가 문노를 피해 덕만을 데리고 도망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어쩌면 예언의 이끌림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라벌에 있었다면 천명처럼 덕만도 미실을 무서워하며 오금을 펴지 못했을지 모른다. 사실 이런 설정은 여러 고전에서도 발견되는데, 반대의 경우지만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도 그렇다.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예언자의 불길한 예언에 따라 아들을 숲에 버린다.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던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파리스는 목동이 되고 유명한 ‘황금사과의 재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예언의 이끌림에 따라 트로이로 돌아와 왕자의 지위를 되찾는다. 그러나 그는 혼자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의 10만 대군과 맹장 아킬레우스를 끌고 돌아온 것이다.


이런 종류의 설정은 자주 보는 것이지만, 늘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힘이 있다. 덕만도 국조의 예언에 따라 버려졌다. 어출쌍생 성골남진. 결국 이 예언은 이루어진 셈이다. 덕만과 승만을 끝으로 성골은 멸절했으니까.―대체 성골과 진골이 뭐냐는 따짐은 여기선 생략하기로 한다. 성골남진이 춘추가 진골로서 왕이 된 이유라는 사기의 기록을 믿는다는 전제하에―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예언은 이보다 먼저 진흥왕이 문노에게 남긴 예언 즉,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물리칠 자가 오리라!”는 예언을 이루기 위한 보조적인 예언에 불과했다. 덕만을 멀리 사막으로 보내 미실을 물리칠 힘을 키워오도록 해야 하는데 별다른 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불길한 예언’이다. 역사기록을 예언으로 바꾸는 기지가 참으로 놀랍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드라마의 제작 의도는 틀림없이 덕만이 미실이 대표하는 세력 즉, 구세력을 타파하고 신진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보다 강해진 신라를 만들어 삼한통일의 대업을 준비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실을 악으로, 덕만을 선으로 규정해 대립구도를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초기의 시도는 매우 옳았고 성공했다. 그러나 갈수록 미실의 악역이 빛나는 게 문제였다.

매력적인 악의 화신 미실. 시청자들로부터 쏟아지는 미실에 대한 찬사에 제작진들도 넋을 잃은 것일까. 어느 날부터 갑자기 미실이 변하기 시작했다. 미실은 원래 인정사정없는 권력의 화신이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기 부하도 가차 없이 목을 벤다. 실제로 덕만을 안고 도망치는 소화를 놓친 근위병사를 직접 칼을 들어 베지 않았던가. 게다가 동생 미생도 죽이려 했고, 심복 상천관은 끝내 죽였다.

정치적으로는 대귀족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고 중소귀족들과 평민들의 세금을 낮추어주려는 덕만의 정책에 맞서 대토지소유귀족들의 권익을 옹호한다. 뿐 아니라 매점매석으로 자영농을 소작농으로 전락시키고, 소작농에겐 고리대를 놓아 이들을 노예로 만들어 나누어가진다. 전형적인 독재자다. 독재자들이란 늘 그렇듯이 서민들을 핍박하고 대신 기득권 세력을 만들어 그들을 지지기반으로 삼는다.


이런 미실이 극 후반부로 갈수록 묘하게 뒤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원래 그렇게 기획됐던 것인지, 고현정의 열연으로 미실의 인기가 높아진 탓에 변형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볼 때 이것은 부조리였다. 미실을 이기고 새로운 신라를 만들어 삼한통일의 기초를 닦을 덕만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매혹적인 독재자미실이 들어선 것이다.

나중에 미실은 반란까지 일으켰으나 많은 네티즌들은 미실의 반란이 실패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미실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었겠지만, 그게 그거 아닌가. 미실이 죽고 난 뒤에는 비담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비담은 미실의 아들이었던 고로 마치 비담이 난을 일으켜 왕권을 잡으려고 하는 것은 미실의 유지인 것처럼 비쳐졌다.

진흥왕이 자신을 척살하라고 설원공에게 내린 칙서가 비담의 손에 들어갔을 때, 미실은 “제 주인을 찾아갔구나!”라고 말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비담이 사량부령이 되어 새의 깃털로 만든 부채를 들고 나타나자 그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비담은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마지막 12회 분량에서 보여준 제작진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선덕여왕』의 마지막은 비담과 선덕여왕의 사랑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 사랑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세력-염종을 비롯한 전통 귀족세력-의 음모에 의해 비극으로 끝난다. 마지막 비담의 회상에서 미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 “여리디 여린 사람의 마음으로 푸른 꿈을 꾸는구나!” 이 말은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한편 자신이 못다 이룬 대업을 아들이 이루길 바라면서 또 한편 그것이 실패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런 모순이... 그러나 어찌 되었든 『선덕여왕』 후반부의 주인공도 선덕여왕이 아니라 비담이었다. 비담은 미실과 마찬가지로 악한 성정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미실이 그렇듯 비담도 사람을 죽이는데 일말의 양심도 없는 사람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닭고기를 못 먹게 만들었다고 칼을 휘두르는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덕만을 위기에서 구한 첫 번째 공이었지만.

그런 비담도 미실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부터 순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악의 화신이 졸지에 순정만화의 주인공으로 둔갑한 것이다. 애초에 비담이 덕만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문노가 자신에게 넘겨주려 한 신라를 가지기 위함이었다. 너무 오래돼서 모두들 잊어버린 것일까. 그러나 어떻든 비담은 최후마저도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멋있게 죽었다.

“덕만 앞 70보” “덕만 앞 30보” “덕만 앞 10보” 할 때는 마치 이연걸이 주연한 중국영화 『영웅』의 ‘십보필살검법’을 패러디한 것 같아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덕만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는 비담의 모습은 실로 눈물겨웠다. 마지막회는 그야말로 어느 블로거의 표현처럼 비담의, 비담에 의한, 비담을 위한 드라마였다. 그럼 선덕여왕은 그동안 무얼 했을까?

글쎄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질질 짜다가 갑자기 냉철한 모습으로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가 하면 갑자기 사랑의 열병도 앓는다. 그러다가 다시 냉정한 모습으로 그 사랑이 진심인지도 의심하게 한다. 원래는 유신과의 애절한 사랑의 레퍼토리가 끝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갑자기 유신에 대한 연모는 오간데 없고 비담이 덕만의 가슴에 들어앉았다.

미실을 물리치고 ‘덕업일신 망라사방’의 꿈을 이룰 덕만도 없었다. 원래 『선덕여왕』은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선덕여왕은 처음에는 있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블로거 송원섭의 스핑크스 글 제목처럼 ‘진짜 선덕여왕이 『선덕여왕』을 보았다면’ 무어라고 했을까. 아마도 매우 실망했을 것이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하면서.

진짜 선덕여왕은 미실과 비담을 위한 내레이터 정도로 전락한 선덕여왕을 보면서 모욕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 내가 보기에 선덕여왕은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비담의 내레이터였다. 역시 다시 한 번 하는 말이지만,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을 제압하고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끝냈어야 했다. 그리고 미실과 비담도 원래의 모습에 충실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오해를 피하기 위해 굳이 사족을 다는 것이지만-『선덕여왕』은 매우 훌륭한 드라마였다. 이전에 이토록 훌륭한 드라마는 보지 못했다.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광개토대왕을 다룬 『태왕사신기』가 있었지만 이만한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토록 많은 블로거들이 많은 후기를 쏟아낸 드라마가, 또는 무엇이었든, 있었던가.


아무튼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이요원이 『선덕여왕』에서 내레이터처럼 만들어진 것은 매우 불만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래봐야 소용없는 일인 줄은 안다. 엿장수 마음이란 말도 있으니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이 8개월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화려한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탄생한 덕만에 대한 기대를끝내 채워주지 못한 채, 선덕여왕은 연모와 왕좌 사이에서 갈등하다 운명을 마쳤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결말입니다. 저는 앞서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여전히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을 진압하고 왕위에 등극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못한 <선덕여왕>은 결국 용두사미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애초 의도했던 선덕여왕에 대한 재조명에도 실패했습니다. 지증왕이 추구하고 진흥왕이 마련했던 삼한통일의 대업을 이룰 개양자의 예언도 오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김유신도 마찬가집니다. 선덕여왕과 함께 삼한통일의 주역으로 그 역할에 기대를 모았던 유신은 문노가 죽기 전에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지목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내용도 활약도 없었습니다.


염종에 의해 또 다른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지목되었던 춘추도 그렇습니다. 염종은 문노와 달리 왕재로 덕만이 아닌 춘추를 지목하고 삼한지세도 그가 가져야한다고 믿었지만, 결과는 영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물론 이는 염종이 비담의 난의 주요인물이란 역사적 기록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떻든 왜 춘추가 아니고 비담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있어야 했습니다.


춘추는 미실에 의해 폐위된, 형식적으로는 진평왕에 의해 폐위된 진지왕의 손자입니다. 물론, 천명공주의 아들이므로 진평왕의 외손자이기도 합니다만, 신라는 어디까지나 부계전승사회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춘추의 지위가 그리 탄탄한 것은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진평왕과 선덕여왕에게 춘추는 정적의 자손일 뿐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춘추는 선덕여왕을 이을 후계잡니다.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을 진압할 때도 “우리에겐 두 개의 카드가 있다. 그게 미실보다 유리한 지점이다”라는 말로 춘추의 입지를 세워줍니다. ‘만약 내가 죽으면 네가 왕이 되면 된다’라는 논리죠. 비담의 난 때도 마찬가집니다. 선덕여왕은 서라벌을 떠나지 않고 반란에 맞설 것을 고집하며 춘추를 울산으로 보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합니다. 사실상 춘추를 후계자로 지명한 셈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왕좌에 올랐지만 아무것도 한 일 없이, 굳이 한 일이 있다면 비담을 사량부령(정보부장감찰부장)에 앉혀 신료들을 사찰하고 통제하고 억압한 일 뿐인데, 느닷없이 선위를 결심하는 장면은 참으로 뜬금없었습니다. 아무튼 비담과 조용한 암자를 골라 여생을 마치기로 하고 선위하겠다고 측근들에게 밝혔을 때, 선위의 대상은 누구였을까요? 당연히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스토리로 보자면 춘추가 그 대상입니다. 


실제로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자 몽진을 권하는 신료들을 뿌리치고 대신 춘추를 울산으로 피신시켜 차기 대권에 대한 대비를 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선덕여왕은 후계자로 틀림없이 춘추를 택한 것이며 모든 신료들도 그걸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도 급히 왕세자를 책봉해 왕과 세자가 따로 피난을 갔던 전례가 있습니다. 이 역시 왕위가 비게 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왕좌가 빈다는 것은 곧 나라의 멸망을 의미하니까요. 자,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춘추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춘추가, 왜 마지막회에서는 그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월천대사와 신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그 중에 대남보의 행방에 대해선 춘추가 밝혀주었지만, 이도 네티즌들이 의혹을 제기한 데 따른 반사 아니었을까—과 다르지 않은 이유 때문일까요?


물론 그것은 아닐 겁니다. 춘추는 사라진 다른 사람들과는 분명 격이 다른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마지막회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윤서아빠세상보기님이 제기한 것처럼 단순히 제작진의 실수였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몇 차례 계속된 연장방영 결정은 작가나 제작진에게도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일정에 쫓기다보니 앞뒤가 안 맞는 경우도 많고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사람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를 인지한 제작진이 김춘추의 입을 통해 “대남보가 왜 갑자기 실종됐을까? 그거 내가 비밀리에 복수한 거야. 죽인 거라고” 미생에게 실토하는 진풍경까지 연출했지요. 그저 제 생각일 뿐, “원래 그렇게 기획된 거야” 하고 말한다면 할 말 없지만. 아무튼 그러나 김춘추는 역시 격이 다르다는 말로 제작진의 실수였다는 변호를 반박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확실히 실수라고 말하기엔 뭔가 허전합니다.


실수라기보다는 애초부터 제작진의 오류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 오류는 어쩌면 이미 예정된 김춘추의 성공 탓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정된 분량 안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야했던 제작진으로서는 김춘추를 선덕여왕의 후계자로 만드는 실수 아닌 오류를 저질렀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김춘추와 선덕여왕 사이에 승만공주(진덕여왕)를 넣어야했지만, 그러기엔 드라마 분량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춘추의 포지션이 애매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연장방송으로 인한 대본 수정, 제작기술상의 변화는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시간을 주지 않았을 겁니다. 원래 <선덕여왕> 홈페이지 등장인물에 보면 승만공주도 나옵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드라마의 줄거리를 잡기 위해선 춘추와 더불어 승만도 나왔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여건상 승만공주가 나올 수 없었다면, 역시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에서 끝났어야 옳았습니다.


그랬다면 시즌2에 대한 기대감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애초의 드라마 제작 목적도 충실하게 수행했을 겁니다. 어떻든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예언을 통해 탄생한 선덕여왕이 마지막까지 그 신비한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마지막에 선덕여왕은 없고 미실과 비담만 남았다는 불평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춘추가 마지막에 사라진 이유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요?


막상 선덕여왕의 죽음에 이르고 보니 선덕여왕의 후계자인 진덕여왕이 걸렸다, 춘추로 하여금 덕만의 유지를 받들며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그래도 무언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조용히 안 보이게 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이렇게 말입니다. 윤서아빠세상보기님의 글에 보니, 선덕여왕이 춘추에게 “왕위는 승만에게 잇도록 하고 너는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나 대업을 준비하라”는 신을 찍었다는 기사를 봤는데 편집하지 않았냐는 의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랬다면 더 우스웠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실컷 춘추를 후계자라고 치켜세워놓고선 이제 와서 “너는 성골이 아니니 굳이 정치적 부담 질 것 없이 승만에게 왕위를 양보하거라. 곧 성골, 진골 구분은 없어질 것이니 그때 대업을 도모하라” 하고 말한다는 게 얼마나 난센습니까? 그러면 비담의 난이 일어났을 때 왜 춘추를 울산으로 보냈을까요. 승만공주를 보냈어야지요.


아무튼 춘추가 마지막회에 나오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제작진의 오류로 인한 실수라고 보여 집니다. 물론, 이것은 망고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모든 시청자들이 인정하듯 저 역시 <선덕여왕>이 대단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니, <선덕여왕>은 최고의 드라마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도 <선덕여왕>이 불세출(!)의 드라마였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선덕여왕>은 정치가 썩은 시대에 정치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본보기도 보여주었으니 이런 정도의 칭찬을 하더라도 아무런 무리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을 보다 보면 늘 사라지지 않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나왔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오랜만에 블로고스피어를 탐방해보았더니 역시 저와 비슷한 의문을 가진 분이 계시더군요. 코스모클로버님은 "선덕여왕, 천명공주 죽인 대남보는 왜 안 보일까?로 대남보가 꽤 비중 있는 사건에 연루된 인물인데도 화면에서 사라진 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소리 없이 사라진 사람들

그러고 보니 대남보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어떤 인물들보다도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김춘추의 원수입니다. 자기 어머니인 천명공주를 죽였으니까요. 김춘추가 어떤 인물입니까? 대야성에서 백제군에게 살해당한 딸과 사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 마침내 백제를 멸망시켰지 않습니까? 혹자는 김춘추의 복수심 때문에 삼국통일이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고도 하더군요. 아무튼 그런 김춘추가 대남보를 그냥 놔 둘리가 만무한데, 거 참 이상합니다.

첨성대를 만들어야 할 월천대사도 사라졌습니다. 혹시 모르죠. 어느 날 갑자기 첨성대 설계도를 들고 나타날지도 말입니다. 그 외에도 사라진 인물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을제대등도 하루아침에 사라져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을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죠. 선덕여왕이 자기를 보좌하여 정무를 보게 하는 인물입니다. 또는 선덕여왕의 남편들 중 한 명이라고도 합니다. 김유신과 결혼한 영모도 안 나옵니다. 그건 이해가 갑니다. 살림 하느라 바쁘겠죠.

춘추에게 보쌈 당해 행복한 강제 결혼을 당했던 보량도 안 나오네요. 역시 살림하느라 바쁜 모양입니다. 문노가 비담과 염종에게 죽임을 당해 사라진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입니다. 원래는 그냥 어린 덕만공주와 함께 조용히 사라지기로 되어 있었다는데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에 힘입어 복귀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별다른 걸 보여주지도 못하고―우리는 모두 그가 무슨 대단한 비밀이나 예언을 풀어놓을 줄 알았지요―허무하게 암습에 가고 말았습니다.

그 외에 아예 처음부터 등장하지도 않는 중요한 인물들도 있습니다. 문희와 보희가 그렇고, 승만공주가 그렇습니다. 승만공주는 선덕여왕을 이어 진덕여왕이 될 사람인데 아직도 등장하지 않으니 이러다간 선덕여왕이 죽음을 앞두고 춘추에게 보위를 전하는 해프닝까지 등장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됩니다. 아이고 이런~ 이야기가 완전 옆길로 샜습니다. 코스모클로버님체리블로거님의 글을 읽다가 원래 생각했던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네요. 그래도 어쨌든 원래 길로 다시 돌아갑니다.

비담은 설원공에게 무엇일까?

지난주에는 선덕여왕을 보다가 이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설원공과 비담의 관계 말입니다. 도대체 설원공은 비담에게 무엇일까요? 또 비담은 설원공에게 무엇이기에 그토록 비담을 위해 목숨마저 내놓고자 하는 것일까요? 설원공에게는 아들 보종이 있지 않습니까? 아들보다 사랑하는 미실의 아들이 더 귀한 것일까요? 진정 미실의 유지 때문에 설원공이 비담을 위해 목숨까지 던지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설원공의 사랑이야말로 참으로 지고지순합니다. 

그러나 지난주 설원공이 죽기 전에 독백하는 장면을 보면서 도대체 설원공과 비담은 무슨 관계일까 하는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물론 그 독백은 죽은 미실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설원공은 윤충이 이끄는 백제군을 맞아 전장으로 나가기 전 미실의 사당에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무릎을 꿇고 향을 피우며 말합니다.

"새주, 비담이 닮지 말아야 하는 것을, 저를 닮았습니다. 누군가를 연모하는 마음을 말입니다. 연모는 날아가는 새나 줘버리라던 새주를 닮았어야 하는 건데. 허나 새주의 마지막 당부였으니 따를 것입니다. 이번 전쟁을 비담에게 반드시 기회로 만들어 주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새주."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 여기에서 약간의 의심이 들긴 했지만, 그러나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실을 워낙 사모하는 설원이니 그녀의 아들조차 사랑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역시 미실의 아들인 하종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것도 영 아니지만―그런데 설원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와 마지막 죽는 장면에서 말입니다. 비담은 왜 그리 슬피 울었을까요? 자기를 위해 전장에 나갔다가 죽게 된 설원이 너무 고마워서 그랬을까요?

그러나 그런 건 비담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냉혹한 비담이 설원의 죽음에 슬피 우는 이유는?

비담이 어떤 사람입니까? 수십 명의 무고한 사람을 독살시키고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던 인물입니다. 그것도 어린아이 때 말입니다. 문노가 비담으로부터 희망을 거두어들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죠. 비담의 냉혹한 성품, 목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잔혹해질 수 있는 차가운 마음은 바로 미실을 닮은 것이었죠. 그리고 어른이 된 비담의 성격은 더욱 난폭해졌습니다. 물론 정에 약한 비담이 천진난만한 모습도 보여주긴 합니다만, 그는 기본적으로 냉혹한 인물입니다.

미실이 죽고 난 이후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완벽한 악인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죠. 그러니 그런 비담이 설원공의 죽음 앞에 슬피 우는 모습이 너무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퍼뜩 설원이 전장에 나가기 전 미실의 영정 앞에서 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 아, 이거 분명 비담은 진지왕과 미실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이건 또 뭐야~

아마 제가 착각한 것일 겁니다. 설원이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 하는 게 뭐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작가가 쓰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미실을 그리워하는 설원의 애달픈 모습을 그리다보니 설원의 입에서 헛말이 나왔을 수도 있지요. 비담도 그렇습니다. 괜히 설원이 자기를 걱정하며 죽으니 슬픔에 겨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리 악인이라도 사람의 죽음 앞에 눈물은 흘릴 수 있습니다. 특히 자기를 위해 죽은 사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겠죠. 그러나 그래도 자꾸만 의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아니 도대체 설원공과 비담은 무슨 관계야? 도대체 무슨 관계이기에 저토록 애틋할 수가 있단 말이지? 혹시나? 하긴 미실은 색공으로 여러 남자를 울린 사람이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요?"

게다가 비담이 태어날 무렵의 미실은 나는 새가 아니라 황제도 떨어뜨릴 수 있는 위세를 가진 인물이었으니까요. 그녀가 원하며 무엇이든 할 수 있던 시절이었죠. 그러나 그래도 그건 아닐 것이란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비담을 진지왕과 도화녀의 아들 비형이란 인물과 합성해 창조한 것도 모자라 설원공까지 끼워 넣는다면 이건 정말 아니죠. 그러나 아무튼 저로 하여금 이런 의심이 들도록 만든 것은 <선덕여왕>의 작가님이십니다.

쓸데없이 설원공으로 하여금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 같은 대사를 하도록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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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이 변했습니다. 물론 이런 변화는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것이긴 하죠. 그러나 그 변화의 정도가 너무나 급격해서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비담은 <선덕여왕>이 한창 인기를 끌던 중반 등장하던 순간부터 관심을 한 몸에 모았습니다. 비담이란 이름이 선덕여왕 치세에 상대등을 지냈을 뿐 아니라 막판에는 반란을 일으켜 선덕여왕의 죽음에도 일정하게 관여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궁지에 몰린 김유신이 연을 날리는 전술로 비담군을 격파했다는 월성전투는 너무나 유명하죠.


비담은 실제와 허구를 합성한 캐릭터

<선덕여왕>의 비담이 실존인물 비담과는 다르다는 주장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덕여왕>은 1부를 시작하며 자막으로 ‘시간과 공간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전개될 것’이라고 양해를 구해 상당부분 실제와 허구가 버무려졌음을 밝혔습니다. 특히 비담은 실존인물 비담과 진지왕과 도화녀 사이에서 난 비형이란 설화 속 인물을 합성한 캐릭터입니다. 그러므로 비담이야말로 <선덕여왕>에서 가장 실제와 허구를 넘나드는 인물인 셈이죠. 그러나 어떻든 <선덕여왕>에서 비담은 미실의 아들.

그런데 비담의 변화도 매우 놀라운 것이지만, 덕만의 변화는 더욱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여왕이 된 덕만은 비담에게 정보사찰의 임무를 맡깁니다. 이것은 미실도 하지 않던 일입니다. 비담이 맡은 역할은 아마도 오늘날의 중앙정보부장이나 안기부장쯤 되겠지요. 선덕여왕이 왜 비담에게 이런 중요한 직책을 맡겼는지 아직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왜 선덕여왕이 미실도 만들지 않았던 비밀정보기관을 만들었냐 하는 것입니다. 그 심오한 의도는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는 의문입니다.

아무튼 비담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비담은 염종이 갖고 있던 ‘문노의 비밀정보망’을 모두 손에 넣고 최대한 활용하고 있습니다. 문노가 유신에게 전하고자 했던 ‘삼한지세’도 비담의 손에 있겠지요. 물론 이 삼한지세는 춘추의 머릿속에도 새겨져있긴 합니다만. 이제 비담은 명실상부하게 신국의 2인자가 되었습니다. 유신이 비록 상장군이 되어 전장을 누빈 공로로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있다고는 하지만 왕을 제외한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사량부령의 권력에는 미칠 바가 아닙니다.

선덕여왕이 비담을 비밀정보부장에 앉힌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막강한 권력에 더해 문노의 비밀조직에다 구세력의 핵심인 설원까지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비담이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더욱이 비담의 싸늘한 표정에선 무언가 위험한 미래가 감지됩니다. 마치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에 나오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처럼. 아나킨은 장래가 촉망되던 제다이였지만, 마음속에 숨어있는 두려움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그 두려움이 언젠가 분노로 변할 것임을 제다이들의 스승 요다는 알고 있었지요.

분노가 가져올 욕망과 파괴를 알고 있었던 요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나킨을 오비완의 제자로 만든 콰이곤은 아나킨의 능력만을 보았습니다. 선덕여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비담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분노와 욕망을 보지 못하고 겉에 드러난 능력만을 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에게 겨눌 칼을 스스로 벼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아무런 느낌도 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비담의 분노, 비담의 욕망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비담에게 분노와 욕망의 마음을 불어넣어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미실입니다.

미실이 비담을 버렸을 때, 비담은 욕망덩어리였습니다. 비담은 탄생 자체부터가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미실을 황후로 만들기 위해 태어난 비담은 그 꿈이 좌절되자 버려졌습니다. 비담의 두려움과 분노는 여기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미실에게 버려진 비담을 데려다 키운 것은 문노였습니다. 그러나 문노 역시 비담을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사랑과 배려를 나누어주기보다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어린 비담을 다그치기만 했습니다.

욕망의 근원은 두려움으로부터 솟아나는 분노

비담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싹트는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삼한지세를 되찾기 위해 도적의 소굴에 들어가 수십 명을 모조리 독살한 것도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비담의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결국 분노로 화했습니다. 영특한 미실은 비담의 마음속에 든 두려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곧 분노로, 다시 매우 파괴적인 욕망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비담의 뛰어난 재능이 분노가 가야할 길을 잘 안내할 것이란 점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의 실패를 대비하여 마지막 안배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미실이 난을 일으키기 전, 설원에게 붉은색으로 포장된 서첩을 가져오라 했을 때 모두들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해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공개된 후에도 궁금증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서첩의 내용은 진흥왕이 설원에게 미실을 죽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서첩이 우여곡절을 거쳐 비담의 손으로 들어가고 미실이 “결국 제 주인을 찾아가갔구나!” 하고 말했을 때, 도대체 그 숨은 뜻이 무엇일까 궁금해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대충이나마 그 뜻을 짐작합니다. 붉은 서첩은 미실이 비담에게 전하고자 했던 유산이었던 것입니다. 미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주는 사랑의 증표라고나 할까요. 미실은 끝까지 모자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대신 이 서첩을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동시에 이 서첩은 미실이 비담에게 남긴 유산이자 유언인 셈입니다. 그럼 미실은 무엇 때문에 붉은 서첩을 비담에게 남기려고 했을까요?

미실이 비담에게 남긴 유산, 분노와 욕망

미실은 비담의 내부에서 잠자고 있는 두려움과 분노와 욕망을 일깨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담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하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담에게 남긴 미실의 붉은 서첩은 유산이 곧 유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비담의 변한 모습에서 살아남은 미실 잔당들은 살아있는 미실을 보는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그리고 설원을 비롯한 이들은 새로운 기대로 꿈에 부풉니다.


‘연정이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다!’란 가르침을 주고 떠난 미실의 유지를 받은 비담과 ‘아낌없이 모든 것을 덕만에게 바치겠다!’는 유신의 한판 대결은 불가피한 숙명입니다. 이 두 사람의 가운데에서 선덕여왕이 어떤 태도를 보일까 하는 것도 주목되는 관전 포인틉니다. 그러나 어떻든 선덕여왕이 된 덕만이 보여주는 모습은 현재로선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독재자 미실에 대항하던 덕만이 갑자기 더한 독재자가 된 것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하긴 그것도 다 스토리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장치라고 이해하면 그만이겠지요. 유신과 비담의 마지막 대결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미실에 맞서 싸우던 덕만을 응원하던 저로서는 매우 불만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덕만이 미실도 하지 않았던 비밀정보기관을 만들 수 있을까? 요즘으로 말하자면 조작사건 같은 걸 만들어내는 비담을 용인할 수 있을까?

아무튼 ‘고참이 반합에 똥을 누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했으니 지켜볼 일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드라마 『선덕여왕』 최고 히어로는 누가 뭐래도 미실입니다. 그 미실이 죽자 온 세상이 "그녀야말로 진정한 여왕이었소!" 칭송이 자자합니다. 그녀에게 바치는 헌사는 넘치고 넘칩니다. 이 정도면 미실을 비판하는 게 오히려 악당으로로 몰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미실이 이토록 대단한 영웅이 되어 있었던 것일까요?

미실의 진정한 모습은? 공포정치 이면에 두툼한 전별금으로 부하들을 위로했다는 전두환이야말로 미실의 모습 아닐까?

    ※ 참고로 나는 <미실이 대인배면 전두환도 대인배다> 란 포스팅도 한 바가 있다는 점을 밝힌다. 내 입장은 늘 그렇다.

미실에게 넘치는 칭송들, 이유가 뭘까?


나도 애초에 미실이 결국 덕만을 왕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덕업일신 망라사방'의 대업을 이루지 않겠느냐, 그리 생각했습니다. 삼한의 통일을 이루기 위한 기초는 무엇보다 국내 제 세력들을 통일 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라벌도 통일시키지 못하면서 삼한을 통일 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그러나 극 초반 베일에 가려져 있던 미실의 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그녀가 전형적인 독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야말로 히틀러나 박정희 또는 김일성에 버금가는 독재자의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마 세상 모든 독재자들의 종합판이라고 해도 될 듯했습니다. 물론 매력적인 독재자였지만 말입니다. 

미실은 30여 년 신라를 지배했습니다. 왕이 있었지만, 왕은 허수아비였습니다. 신국의 신료들도, 화랑들도 왕보다는 미실의 말을 따랐습니다. 마치 일본의 막부정치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왕은 그저 상징적 존재일 뿐, 통치는 막부의 쇼군이 하는 것처럼요. 미실은 충성을 맹세하는 측근들에겐 한없이 자애롭지만, 백성들에겐 공포정치를 폈습니다.

미실의 지론이 무엇이었습니까? 백성들은 무지하고 변덕스러우므로 공포를 통해 통치에 길들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실은 군사력과 더불어 백성들을 지배할 수단으로 신권까지 장악했던 것이죠. 여기에 덕만공주가 반기를 들었지요. "미실이 사람을 죽여 사람을 얻었다면, 나는 사람을 살려 사람을 얻겠다."

30년 동안 미실이 독재한 결과는 무엇이었나?

미실의 측근들은 미실의 권력을 믿고 온갖 부정과 부패를 다 저질렀습니다. 탈세와 매점매석은 기본이었습니다. 백성들의 땅을 뺏고 소작으로 전락한 양민들을 고리대를 이용해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나라 재정은 파탄 일로에 처했습니다. 귀족들은 세금을 안 내고, 세금을 내야할 농민들은 땅을 잃고 귀족들의 노예로 팔려가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미실이 장기 독재하는 동안 최고 수혜자는 역시 남편과 아들. 이들은 부정부패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30년 미실 독재의 결과가 이랬습니다. 결국 진흥왕이 이룩한 영광은 빛이 바래고 발전은 정체했습니다. 40여 회가 지날 때까지도 미실은 악녀였습니다. 그녀는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했으며,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을 또한 무력으로 억압했습니다. 그러나 결말이 다가오면서 미실은 갑자기 판타지로 다시 가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고 충분히 이해도 합니다. 미실의 인기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드라마의 인기도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미실은 쿠데타를 일으켜 반란수괴의 길을 걸었지만, "그녀야말로 진정한 여왕이다!'란 찬사를 이끌어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만들어낸 픽션이지만, 대단한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루아침에 독재자가 영웅으로 미화된 것입니다. 무력으로 백성들을 핍박하던 미실이 진정한 여왕으로 탄생했습니다. 자기에게 반대하는 신료를 다중이 보는 앞에서 목을 베고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모두 이처럼 되리라"고 협박하던 미실이 애국자로 변신했습니다. 실로 드라마가 아니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상상력입니다. 

반란으로 장기집권하며 독재를 했지만 역시 미실처럼 미화된 표본들



30여 년 공포정치는 사라지고, 
             짧은 미실의 최후만 남았다 


미실이 막판에 속함성에서 군사를 이끌고 자기를 돕기 위해 달려온 여길찬을 국경 수비에 충실 하라며 돌려보낸 사건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이는 어쩌면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궁정동에서 피살된 이후 권력공백기를 이용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 일파를 향한 독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9사단장이었던 노태우는 전방을 지켜야할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정권을 장악하고 마침내 80년 5·17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니 미실은 비록 똑같은 반란 세력이라도 이들에 비하면 애국자라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30여 년간 자행된 미실의 공포정치가 없어지는 걸까요? 

막판에 그토록 처연하고 아름답게 미화된 죽음을 남겼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억압하고 노예로 만든 독재자의 삶이 하루아침에 고귀한 것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일까요? 나의 머리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불편하기 그지없는 이런 스토리 전개 때문에 그토록 드라마를 즐기면서도 드라마의 사회적 부작용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9년이었던가요? 그 해에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는 『야망의 세월』이었습니다. 아마 요즘 『선덕여왕』보다 더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합니다. 당시엔 텔레비전 말고는 별다른 오락 도구가 없었습니다. 퍼스널 컴퓨터도 없었으니 인터넷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이 『야망의 세월』이란 제목의 드라마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일개 건설사 사장을 영웅으로 미화한 드라마

그러나 사실입니다. 드라마『야망의 세월』은 이름 없던 일개 건설회사 사장을 졸지에 유명인사로 만들었고, 영웅으로 미화했으며, 결국 대통령 자리에까지 앉혔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오늘날 이명박 정권에서 완장을 찬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이었습니다. 유인촌이 현 정권 최고 실세처럼 행세하고 다니는 것도 다 나름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분들 중에 많은 이들이 "이명박을 뽑은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최대의 실수였다.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을 뽑았다. 어떤 사람을 뽑더라도 이보다 더 나쁜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해줍니다.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명박을 뽑은 게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가 뽑았답니다." 

드라마의 최대 수혜자는 누가 뭐래도 이명박, 그 다음은 완장 찬 유인촌이다. 이들에게 드라마는 대박의 조건인 셈이다.


한편의 드라마가, 단순히 재미를 위해 만든 한편의 드라마가 어떤 참담한 결과를 몰고 올수 있는지 나는 이명박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1989년 『야망의 세월』이 방영되기 전에 이명박을 알았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장담하건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지금 현대건설 사장이 누군지 혹 아는 분이 계시나요?

아니면 삼성전자 사장이 누군지 아시는 분은요? 아무튼 『야망의 세월』덕분에 이명박은 세상에 이름을 알렸고,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 국회의원도 되고, 서울시장도 되고, 대통령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이 서울시장 재직 중이던 2004년이었던가요? 이번엔『영웅시대』란 드라마가 이명박 영웅 만들기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드라마에도 정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영웅시대』의 실제 주인공은 이명박이 아니라 정주영과 이병철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동근이 등장하면서 갑자기 극의 중심은 이명박으로 쏠렸습니다. 유동근이 바로 이명박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남자 연기자는 누가 뭐래도 유동근이었죠. 이를 두고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아니냐는 음모론도 솔솔 나왔었지요.

아무튼 드라마란 삶의 재미를 주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한편 이처럼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이는 어디까지나 국민 일반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 일부 소수의 의도는 분명 있을 터이지만―사회적 부작용도 만만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실의 영웅 만들기가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미실을 그렇게 애국자로 미화해야만 미실의 최후가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이었을까? 미실이 반란군의 지도자로서 최후까지 최선을 다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막판에 국경수비대의 지원을 마다하고 패배의 길을 걸었다고 해서 30년 독재가 사라지고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네티즌들이, 미실이야말로 진정한 여왕이었다며 열광하지만, 나는 아직도 불편합니다. "이거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이러고서도 우리가 정의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여전히 소화불량처럼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선덕여왕』은 재미있습니다. 『대장금』이래 이토록 화제를 만발한 드라마가 있었습니까? 

그렇지만 결론은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미실이 드디어 최후를 맞았습니다. 대단한 인기에 걸맞게 장중하고 엄숙한 죽음이었습니다.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이 선덕여왕이 아니라 미실이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이 사실이라고 항변하는 듯 그런 죽음이었습니다. 실로 죽음이 아름답다고 생각될 만한 그런 죽음이었습니다. 미실이 죽던 그 순간은 온 세상이 고요 속에 어쩔 줄 모르는 듯했습니다. 

미실의 용상. 미실은 자신만의 옥좌에서 고혹적인 죽음을 맞는다.


미실 권력의 핵심은 사람 

대야성에 피신한 미실은 그곳에서 전열을 가다듬으며 전세를 역전시킬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미실은 대야성에 쫓겨 들어간 그날 측근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부터 이전과는 반대로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덕만은 시간에 쫓기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미실의 군세는 불어납니다. 

미실은 주지하듯 젊은 시절에 진흥대제와 함께 변방을 누비며 당대 신라의 국경을 만든 인물입니다. 물론 이는 픽션이긴 하지만, 1부의 첫 장면이었던 만큼 드라마에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실질적인 신라의 통치자 미실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진흥대제는 그걸 알았고 그래서 설원랑에게 미실을 죽이도록 칙서를 내렸던 것이죠. 
그러나 설원랑은 미실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때는 이미 신라의 서울(서라벌)과 지방의 모든 조직이 미실에게 넘어간 후였습니다.  대세를 장악한 미실은 진흥대제의 주검 앞에서 이렇듯 당당하게 외칩니다.

“사람? 사람이라 하셨습니까? 폐하. 보십시오. 여기 이 사람들을. 폐하의 사람들이 아니라, 제 사람들입니다.” 

이미 대부분의 인재들이 미실의 편에 가담했으며, 진흥대제는 사실상 앙상한 뼈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지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이길 자가 오리라!"는 알지 못할 예언만 남긴 채.
그리고 마침내 진흥대제의 예언대로 개양성의 주인 덕만이 나타나 미실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30여 년의 세월은 너무나 긴 세월이었습니다.

신라의 곳곳에 미실의 촉수가 뻗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신라의 귀족, 장군들치고 미실로부터 은혜를 받지 않은 자가 없을 지경입니다. 미실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진흥대제 밑에서 은밀하고 꾸준하게 자기 세력을 만들어온 미실은 마침내 권력을 잡자 도처에 그들을 심었습니다.

여기엔 미실의 말처럼 속함성을 비롯한 변방의 모든 장수들은 미실과 함께 피를 흩뿌리며 고락을 같이 해온 동지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중에는 속함성 당주처럼 진심으로 미실을 받드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공포정치 아래 길들여진 노예근성에 젖은 자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상주정 당주 주진의 변심은 미실의 권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던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좋은 예입니다. 

 

덕만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미실, 이것도 대의였을까?


미실은 한 번도 대의를 저버린 적이 없었다?

미실이 난을 일으키고자 했을 때, 세종과 설원을 비롯한 측근들조차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미실이 보여준 모습과는 너무 상반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쿠데타는 미실처럼 대의를 존중하고 실천해온 사람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야성의 수비진용을 짜던 칠숙과 석품이 나눈 대화에서도 그걸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미실 새주를 따랐던 것은 단 한 번도 새주가 대의를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소리를 매번 들을 때마다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실이 대의를 저버린 적이 없다니요? 진흥대제가 살아있을 때의 미실이라면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흥대제가 죽을 때 미실이 어떻게 했었지요? 미실은 진흥대제를 독살하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진흥대제는 미실에게 독살되기 전에 눈을 감았습니다. 이에 미실은 진흥대제에게 이렇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었지요. "폐하, 제 손으로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실은 진흥대제가 남긴 유서를 숨기고 백정이 아닌 금륜을 왕으로 옹립합니다. 여기엔 금륜과 미실의 검은 거래가 있었습니다. 미실에게 황후전을 보장하겠다는. 

왕이 된 금륜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미실은 이번엔 진흥대제의 진짜 유언장을 들이밀며 진지제를 폐위시킵니다. 그리고 어린 백정을 왕이 되게 하고 그의 황후가 되기 위해 마야부인을 죽이라는 밀명을 내립니다. 마야부인은 문노의 도움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고 미실의 꿈은 좌절됩니다.

덕만과 천명이 태어났을 때, 진평왕이 덕만을 버린 것도 결국은 미실이 무서워서였습니다. 제 아무리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이 있다 한들 미실이 아니었다면 덕만이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할 이유는 그다지 없었습니다. 이미 미실은 신국의 황제 위에 군림하는 만인지상이었던 것입니다.

덕만을 몇 번이나 위기에서 구한 진흥대제의 소엽도


 미실에게 대의란 곧 자기 파벌의 권력과 축재의 수단일 뿐 

그리고 30여 년, 미실과 미실의 측근들은 신국의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분야를 주물렀습니다. 그들은 매점매석으로 토지를 잃게 된 농민들을 노예로 사들였고, 부를 축적하며 사병을 길렀습니다. 덕만이 공주의 신분으로 처음 미실을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왜 신라가 진흥대제 이후 발전을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덕만의 말에 의하면 그 이유는 미실은 신국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엔, 미실과 그의 측근들이 수십 년 동안 나라를 농단했음에도 발전은 고사하고 망하지 않은 신라가 참으로 신통합니다. 그런데 이런 미실을 향해 한 번도 대의를 벗어난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떻든 좋습니다. 미실이 한 번도 대의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고 칩시다. 요즘은 친일 행적이 명백함에도 그건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며, 누구라도 당시로서는 그리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 그깟 대의 같은 게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과거에 역적질을 좀 했고, 나라 재정을 거덜냈으며, 백성들을 노예로 만든 게 무에 그리 대수겠습니까.  

문제는 지금입니다. 미실은 분명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것도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미실 스스로도 치가 떨리도록 비열한 방법을 써서 역모를 성공시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진평왕도 연금했고, 덕만공주를 죽이라고 지시했으며,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옥좌에 앉아 신료들에게 호통을 치는 불경죄를 저질렀습니다. 

미실은 명백히 이순간 반란 수괴인 것입니다. 그런 미실이, 그런데 너무 쿠데타 세력의 수괴답지 않은 행동을 합니다. 자신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2만 군사를 이끌고 달려온 속함성 당주를 국경을 잘 수비하라는 당부와 함께 돌려보냅니다. 실로 착한 반란 수괴입니다. 반란군이 당장 눈앞의 역모보다 나라의 장래를 먼저 생각합니다. 눈물겹습니다.

미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남편과 아들(좌) / 덕만공주를 거짓말로 속이는 미래의 배신자 비담(우)


과도하게 미화한 반란 수괴의 최후

일개 국경수비대장이 2만의 병력을 갖고 있는데 서울(서라벌)을 수비하는 금군이 겨우 수천도 되지 않는다는 설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센스란 것쯤은 그냥 넘어가도록 합시다. 하긴 상주정 당주가 5천의 군사를 끌고 오자 바로 전세가 결판이 나는 상황을 보며 놀랐던 경험이 있던 터에 이제 2만이라고 하니 더 놀랄 힘도 없습니다.

아무튼 미실의 최후는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최후가, 꼭 그렇게 반란 수괴를 나라에 충성하는 애국자로 만들어야만 가능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쉽기만 합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여기에 어떤 역사적 가치관 같은 것을 대입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30여 년만에 두 번의 반란으로 헌정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전방에서 나라를 지켜야할 군대가 전선을 이탈해 권력을 찬탈하는 역모에 동원되는 반역사의 현장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공포정치로 권좌를 지키기 위해 제 나라 국민을 도륙한 군인들이 통치하는 시대를 지켜보았던 사람으로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선덕여왕』이 미실의 최후를 그렇게 그린 것인지도. 역설적인 어법으로 과거의 쿠데타 세력에 대한 준엄한 역사적 심판을 하려는 의도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미실의 최후는 불만입니다. 그녀의 죽음이 충분히 아름다울 필요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미실을 애국자로 만들 필요까지 있었을까요?  

미실을 얼마든지 악당으로 만들더라도 그간 미실이 보여 왔던 무게만큼 장중하고 엄숙한 그리고 아름다운 죽음은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왕 대의를 버리고 오랜 꿈을 쫓아 칼을 뽑아들었다면 최선을 다하다가 장렬하게 죽는 모습이 훨씬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나는 정말 미실의 그런 죽음을 바랐습니다.

대의는 내게 있다는 듯 진흥대제의 소엽도를 내미는 덕만은 미실이 떠난 자리를 어떻게 메울지


미실 없는 『선덕여왕』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50여 회에 걸친 미실의 역정이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오늘 50회 미실이 죽는 모습만 놓고 본다면 멋진 죽음이었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고현정은 역시 훌륭한 연기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모래시계』의 히어로였던 그녀가 삼성가의 며느리가 되는 것을 보면서 실망하기도 했었지만, 역시 그녀는 멋진 배우입니다. 

고현정 없는 『선덕여왕』의 미래가 실로 궁금합니다. 고현정을 죽였으니, 이요원은 이제부터 진짜 실력을 한번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아무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미실의 난이 실패했다. 미실은 마지막으로 "그래, 덕만이 네가 이겼다!" 속으로 부르짖으며 화살을 날린다. 도대체 누구를 향해 쏘는 화살일까? 물론 덕만을 향해 날리는 화살일 터이다. 다중이 모인 장소에서 추국을 하기도 전에 신국의 공주를 죽이고자 하는 행동은 "나 역도요!" 하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미실의 도발적 행동, 왜 그랬을까?

도대체 미실은 왜 그랬을까? 옆에서 놀라 제지하는 아우 미생에겐 아랑곳없다는 듯이 그저 묵묵히 화살을 뽑아 시위에 장전해 날리는 모습은 마치 벌써 이런 상황에 대비해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빨랐다. 자포자기했던 것일까?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냉정하게 침착함을 잃지 않던 미실이 아니던가. 


어쩌면 미실은 정변이 실패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덕만과 춘추로부터 자신은 한 번도 꾸어보지 못한 꿈에 대하여 들었을 때 자신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았을지 모른다. 새롭게 떠오르는 두 마리 용의 기개와 지략을 보며 그들을 상대하기엔 자신과 자신의 측근들은 너무 노쇠했다는 사실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던 것일까. 마지막으로 옥처럼 찬란하게 부서지고 싶다고…. 그리고 실제 자기가 말한 대로 찬란하게 부서질 각오로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다. 지금까지 자기가 살았던 방식과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정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정변은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당한다. 아무도 모르고 있지만, 계산에 능한 미실은 간파했다. 

싸움은 이미 끝났다. 노련한 프로 바둑 기사가 수읽기를 통해 패배를 인정하고 돌을 던지듯이 미실도 그렇게 한대의 화살로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이 화살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덕만이 맞게 될지, 아니면 화랑들 중 누군가가 대신 맞을 것인지, 아니면 어떤 출중한 고수가 출현해 화살을 받아낼 것인지….

미실의 난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튼 미실의 난은 실패했다. 그런데 왜 미실의 난이 실패한 것일까? 실질적으로 30여 년간 신국의 권력을 장악해왔으며, 군사력의 대부분을 쥐고 있고, 신료들과 지방귀족들의 지지를 업고 있는 미실이 어째서 덕만에게 패하게 되는 것일까?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드라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우선 일선에서 일을 처리하는 부하들의 실수가 잦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칠숙은 다 잡은 덕만을 놓쳤다. 나는 칠숙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선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만약 내가 칠숙이었다면 복야회의 산채를 포위했을 때 그냥 화공으로 잿더미로 만들었을 것이다.

어차피 덕만은 추포되는 과정에서 죽여야 한다. 살아서 서라벌로 데리고 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 석품의 주진공 암살 실패를 들 수 있겠다. 어떻든 석품은 주진공을 죽였어야 한다. 그런데 어설프게 작전을 감행하다 실패했다. 진평왕 말년에 선덕여왕의 등극에 반대해 난을 일으켰다는 칠숙과 석품, 그 대단한 두 사람의 실수는 어이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실수들은 지엽적인 것이다. 대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 결정적인 실수는 다름 아닌 미실이 저질렀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실 측근들의 실수는 부분의 실수로서 다른 부분에서 만회하면 된다. 그러나 미실이 하는 실수는 보완할 방법이 없다. 미실은 덕만을 보는 즉시 죽였어야 했다. 그런데 미실은 오판했다.  

미실, 너무 똑똑해서 탈이다 

미실이 측근들에게 강조하며 경계한 것이 무엇이었던가. "공주를 살려서 서라벌에 데려와서는 절대로 안 된다. 반드시 추포되는 과정에서 저항하다 장렬하게 전사하도록 해야 한다." 공주를 살려두는 것은 곧 정변을 일으킨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반드시 죽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덕만이 대범하게도 호랑이굴에 제 발로 들어왔다. 물론 미실은 순간 당황했을 것이다. 게다가 옆에는 당나라 사신도 있다. 그러나 미실은 위국부령이다. 신국의 황제를 대신해 역도를 추국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을지라도 당장 평정심을 되찾아 덕만을 잡아 옥에 가두라고 명해야 본래의 미실다운 모습이다. 

비록 공주라고 하나 덕만은 역적 혐의를 받고 있는 몸, 포박하여 옥에 격리한다고 한들 누가 탓할 수 있으랴. 더구나 위국령이 내려진 엄중한 시점에 말이다. 그러나 미실은 너무 생각이 많았다. 너무 정치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당나라 사신의 눈이 두렵고, 대신들의 눈이 두렵고, 모든 사람들의 눈이 두려웠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미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에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미실이 아니라 세종이었다면 어땠을까? 당장 덕만을 체포해 옥에 가두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을 베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실은 아홉수를 내다보는 노회한 정치인, 여기에 미실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공개추국? 쿠데타에 그런 공정한 재판은 없다

너무 똑똑한 미실, 식자우환이라고나 할까. 쿠데타는 그저 쿠데타일 뿐이다. 명분 따위는 애초부터 필요 없다. 어차피 쿠데타 세력이 내세우는 명분이란 것도 알고 보면 모두 거짓 선동에 불과한 것이다. 반란을 일으키는 마당에 무슨 대의 따위가 소용이 있겠는가 말이다. 결국 나중엔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되어 있는 것을.

덕만의 죽음에 대해선 역모에 대해 추국하던 중 자결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여기에 대해 사실을 확인하자고 달려들 신료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미 황제의 건강상태를 직접 확인해보자던 대신을 현장에서 죽였던 미실이다. 그런 미실이 이미 죄인이 되어 손아귀에 들어온 덕만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춘추가 밖에 있다지만, 그래서 덕만을 죽이더라도 춘추가 그 자리를 대신할 거라는 걱정은, 글쎄 그건 좀 난센스다. 춘추는 진지왕의 손자로서 패주의 자손이다. 설령 춘추에게 대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덕만을 죽이고, 귀족들을 단속하고, 군사를 장악한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남는 문제는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식자우환이다. 너무 똑똑해도 화근이다. 알렉산더처럼 단순해져야 하는 것이다. 단 칼에 실타래를 끊어 푸는 것처럼. 그런데 이거 오늘 내가 엉뚱하게 쿠데타 세력을 찬양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긴 우리가 사는 시대는 너무나 많은 쿠데타를 겪어 마치 반란 교육이라도 받은 것처럼 훤하다.  

미실의 쿠데타 실패는 식자우환 탓 

그래서 내가 아니더라도 미실이 식자우환이란 것쯤은 누구든 이미 눈치 채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미실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출현했던 쿠데타 세력들과는 달리 대의와 명분을 통해 대중적으로 지지받는 정권을 창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혹시 양심적인 쿠데타? 어허, 그러고 보니 나도 식자우환이다. 쿠데타면 쿠데타지, 무슨 대의니 명분이니…, 개뿔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미실이 난을 일으켰다. 덕만과 춘추의 꿈이 너무도 탐이 나 그냥 있을 수 없었던 미실이 택한 것은 결국 정변이었다. 군사적 힘을 가진 자는 늘 쿠데타의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런데 하필이면 미실이 난을 일으킨 날이 쿠데타의 교범이라 할 만한 5·16군사정변의 주인공 박정희가 비명에 간 날이라니, 아이러니치고는 참으로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죽은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 동시에 이토오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죽은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또한 운명의 장난인가. 아니면 드라마 제작진이 일부러 이날을 골랐던 것일까. 아무튼 미실도 마찬가지로 비명에 죽게 될 테니 운명치고는 참으로 얄궂다.  

불평하는 대신을 칼로 벤 다음 대신들을 협박하며 용상에 앉은 미실. 놀란 대신들은 아무 말도 못하는데...


그런데 오늘 나는 미실의 분기탱천한 모습을 보며 비참한 최후를 맞은 또 한사람의 운명을 보았다. 다름 아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킬 빌』의 여걸 오렌 이시이다. 오렌은 악녀 중의 악녀다. 그녀는 야쿠자의 두목이다. 사람의 목을 자르는 것을 마치 무 썰듯 하는 오렌이다. 『킬 빌』의 주인공이 비록 우마 서먼이고 그녀의 무술 액션이 영화 전반을 주름 잡고 있지만, 오렌의 매력 또한 강렬했다.

오렌 이시이 역을 한 배우는 루시 리우라는 중국계 미국인이었는데, 그녀는 이미 『미녀삼총사』를 통해 세계적인 배우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으나 이 한편의 영화로 확실하게 위치를 굳혔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킬 빌』은 주인공 우마 서먼이 아니라 루시 리우를 위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그녀의 이미지는 강렬했다.

오렌 이시이가 『킬 빌』에서 내게 보여준 가장 선명한 장면은 바로 직접 야쿠쟈 두목의 목을 베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하는 장면이었다. 일본 야쿠자를 평정한 오렌 이시이가 보스들을 모아놓은 회의석상에서 자신의 출신을 깔보는 한 보스를 향해 달려가 칼을 뽑아 그대로 목을 잘라버린다.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여러 명의 보스들을 향해 오렌 이시이는 일장연설을 시작한다.

차분한 어조로 공손하게 일본어로 말하던 오렌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무 격분해서 감정 조절이 어려운 관계로 보다 더 정확하게 내 감정을 여러분에게 알리기 위해 지금부터 영어로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렌은 영어로 야쿠자 보스들을 향해 밀려드는 쓰나미보다 더 무서운 기세로 몰아친다. "너희들이 지금껏 무얼 했느냐?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어냐?"  

그리고 오렌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 나에게 불만이 있는 자는 지금 당장 일어나라.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내 앞에서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기란 말이다." 영화를 본지가 오래 되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개 이런 투의 말이었다. 그러나 대사의 내용보다 오렌 이시이로부터 뿜어 나오는 놀라운 폭발적인 힘과 기세, 카리스마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더욱 생생하다. 

그런데 오늘 그 오렌 이시이의 카리스마를 미실을 통해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미실은 자신에게 승복하지 않는 귀족의 목을 직접 베지 않고 보종랑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감정을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일본어로 말하지 않고 영어로 말하겠다"고 한 부분을 "내가 감정이 너무 격한 관계로 예를 생략하고 말하겠다"고 한 부분이 약간 다를 뿐이다. 

예를 생략하고 말하겠다고 한 미실은 오렌 이시이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신료들에게 공포를 안겨주었다. "너희들이 지금껏 한 일이 무엇이냐?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이 미실이 신라를 실질적으로 지배해오는 동안 너희들은 아무 것도 한 일이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물론 오렌이 했듯이 "시키는 대로 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협박도 아끼지 않았다.

물론 미실의 이런 행동은 작가가 『킬 빌』로부터 차용해온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튼 나는 미실의 이 돌연한 행동으로부터 오렌 이시이를 연상했다. 그리고 오렌 이시이가 블랙 맘마(우마 서먼)에게 머리꼭지가 잘려 하얀 눈밭에 쓰러지는 마지막 모습처럼 미실도 그렇게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 10·26을 맞아 박정희도 생각했고, 이토오 히로부미도 생각했다.  

하필이면 10월 26일에 미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미실이 일본 야쿠자 두목 오렌 이시이가『킬 빌』에서 보여준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러나 오렌의 밑에서 기는 야쿠자 보스들과 신라의 대신들은 분명 다른 데가 있을 것이다. 일국의 대신들이 야쿠자와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들은 미실의 행동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실은 실수한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감정이 너무 격해져 통제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일까?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직접 대신 하나를 베도록 한 것은 엄청난 실수였다. 깡패들이나 할 짓을 황제가 되겠다는 미실이 저지르다니. 깡패들은 무력 앞에 맹목적으로 굴복하겠지만, 그들은 다르지 않겠는가. 특히나 화랑들은 의를 중시하는 조직이다. 이미 화랑들은 사태의 진실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으며 동요하고 있다.

오렌 이시이와 블랙 맘마의 결투 장면


『킬 빌』에서 오렌 이시이는 하얗게 눈이 내리는 일본 정원에서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멋지게 죽었다. 우리의 미실도 그렇게 죽을 수 있을까? 오렌처럼 멋진 결투 끝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만큼 멋진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긴 오렌 이시이도 비열한 방법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인 야쿠자였다. 그러니 미실도 오렌처럼 멋지게 죽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고 보니 박정희 전 대통령도 궁정동 안가에서 좋아하는 가수를 불러다 놓고 즐겨 듣던 엔가를 들으며 총에 맞아 죽었다. 이토오 히로부미도 하얼빈 역에 마중 나온 환영객들의 박수소리와 군악대의 연주를 들으며 죽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 안중근 의사가 날린 총성은 음악 소리에 묻혀 다분히 환상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미실도 아름답게 죽었으면 좋겠다. 어떻든 몇 달 동안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던 인물이었으니. 오늘은 10월 27일, 30년 전 오늘 아침, 책상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던 내 친구 기종이가 생각난다. 각하의 죽음에 자기 부모가 돌아가신 듯이 슬피 울던 까까머리 어린 내 친구는 지금 어디 살고 있을까? 그 애는 아직도 그때와 똑 같은 마음일까? 

하긴 그 시절 우리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왕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박정희는 대통령이었으며, 성장하는 내내 대통령이었다. 그러니 박정희의 죽음은 곧 왕의 죽음, 어린 내 친구에게도 청천벽력이었을 테다. 오늘 나는 미실의 난을 통해 박정희도 보고, 이토오 히로부미도 보고, 오렌 이시이까지 보았으니 영락없는 1타3피다. 하하, 이건 그냥 헛소리다. 그저 하는 헛소리.

아무튼, 미실의 최후는 어떤 모습일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춘추가 골품제는 천박한 제도라며 왕과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갈을 했을 때,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라고 제 블로그에서 물어본 일이 있습니다. 물론 드라마를 계속 보았던 사람이라면 이건 문제 축에도 들지 못하는 문제죠. 답은 뻔히 미실 일파입니다. 미실 일파 중에서도 세종공이 가장 즐겁겠죠.


골품제 비판, 춘추는 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종공은 사태를 읽는 명석한 두뇌가 없습니다. 주제에 넘치게 욕심은 많지만 재능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설원공은 머리는 명석하지만 타고난 출신의 한계로 인해 사고의 한계 역시 명확합니다. 물론 설원공이 출신이 미천하다는 것은 드라마의 설정일 뿐입니다. 출신이 미천하면 절대 병부령이 될 수 없는 게 바로 골품제죠.

그러니 그 설정이란 난센스입니다. 춘추와 미실조차도 넘을 수 없는 벽을 설원공이 넘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설총이나 최치원이 천하를 품을 만한 재능을 가지고도 방랑의 세월을 살았던 것도 다 골품제 때문입니다. 6두품은 진골과 함께 중앙귀족을 형성하는 정치집단이지만, 제6관등인 아찬까지만 오를 수 있었고 그 이상의 관직에는 진출할 수 없었습니다. 

6두품이 본격적으로 골품제의 모순을 비판하는 것은 신라 하대에 이르러서입니다. 진골귀족들 간에 왕위쟁탈전이 치열해지고 중앙과 지방의 정치혼란이 극심해지자 6두품은 반 신라적 입장을 취하거나 세상을 피해 은둔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치원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건국되었을 때 이들 6두품이 대거 진출했음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김춘추가 골품제를 비판한 것은 옳은 일이었을까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김춘추는 6두품이 아니라 진골귀족이기 때문입니다. 6두품의 입장에서 보면 골품제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제도가 맞습니다. 아니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신분제도 자체가 아먄적이고 폭력적인 제도입니다. 

미실, 신분의 벽을 깨고 왕위에 도전할 수 있나

그럼 여왕은? 그건 신라사회에선 가능한 일이었다고 보입니다. 이미 선덕여왕이 탄생하기 이전에도 여자가 권력을 장악한 경우는 몇 차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황남대총의 여주인이 그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왕통이 끊어졌을 경우에 또는 왕자가 아직 나이가 어려 왕위에 오르기 어려울 때 공주의 부마를 부군으로 삼아 왕위를 계승한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석탈해, 김미추도 그렇게 해서 왕이 된 사람들이죠. 

다시 말해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상속권을 가졌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이는 신라 하대에 이르러 유학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비판 받기 시작합니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유학자로서 사대주의와 남녀차별적인 사고방식에 정신을 빼앗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그가 삼국사기를 편찬한 것을 역사의 불행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튼 진평왕 시대에 여왕이 등극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신라인은 드물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신분의 상속은 공평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 예로 지소태후가 이사부와 통정하여 낳은 아들 세종에게 전군(태자가 아닌 왕자)의 칭호를 내린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님 소리 듣는 김춘추도 마찬가지죠. 이는 조선시대에는 도저히 불가한 일입니다. 

자, 이쯤에서 미실이 얘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미실에게 깨달음을 준 것은 덕만과 춘추입니다. 덕만은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춘추는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덕만이 아니라도 미실이 살던 시대에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큰 흠이 아니었습니다.

미실이 할 수 있는 일은 쿠데타밖에 없었나

오히려 덕만은 미실을 통해 왕이 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설정도 난센스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미실 정도의 걸출한 인물이라면 그녀가 만약 성골이었다면 틀림없이 왕위에 도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성골이 아니라 진골이었으므로 왕이 아니라 왕후가 되는 것에 만족하려 했을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신라의 전통을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권력을 취하는 길을 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진흥왕을 독살하고 유언장을 조작한 것도 알고 보면 정통성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덕만이 내놓은 조세감면정책에 대해 보인 미실의 태도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미실은 변화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왜 미실이 직접 나선 것일까요? 지금까지 미실의 권력을 위협하는 현실적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력이 등장했습니다. 하나는 덕만공주요, 다른 하나는 춘추공입니다. 이 둘은 모두 현 왕의 직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능력이 출중합니다.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죠.

그래서 직접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미실은 과거처럼 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하거나 쟁취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방법은 정통성이 있는 왕족을 자기가 포섭하고 있거나 그런 왕족이 없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이제 그게 힘들어졌으니 미실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아주 제한적입니다. 진즉에 덕만을 죽였어야 했지만, 미실이 크게 실수했던 거지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미실의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그럼 미실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이 있을까요? 정변밖에 없습니다. 쉬운 말로 쿠데타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두 번의 쿠데타를 겪었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일으킨 구데타죠. 정통성이 없는 세력이 권력을 쥐기 위해 가장 손쉬우면서도 확실한 방법이 바로 군사정변입니다. 미실에게 주어진 카드는 결국 쿠데타뿐입니다.

미실이 칠숙과 나눈 잠깐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미실이 곧 난을 일으킬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칠숙은 미실에게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나는 가진 것이라곤 재산도 가족도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말로 대신합니다. 이미 칠숙과 함께 난을 일으키는 것으로 돼있는 석품은 칠숙의 심복이 되어있습니다. 

오래전에 칠숙의 난을 위한 준비는 완료되어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칠숙의 난이 미실의 난의 소품 정도일 뿐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미실은 사실상 신라의 지배자였으니 그녀가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친위쿠데타가 되겠군요. 그러나 이것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백성들과 중소귀족들의 신망이 미실로부터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미실의 난은 분명 실패하고야 말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현실에서는 어떨까요? 덕만의 조세정책과는 반대로 종부세를 폐지하고 부자(귀족)들에게 세금을 깎아주는 MB정부의 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만약 미실의 난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실패했을까, 성공했을까?  

덕만을 죽이지 않은 실수의 결과, 미실의 최후는 어떤 모습일까?

아무튼 미실은 덕만을 죽이라는 상천관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상천관을 독살하는 실수를 범했지요. 미실 일생일대의 실수였다고 할 수 있겠군요. 물론 그것은 황실을 압박해 마야부인을 축출하기 위해 덕만을 살려 이용하기 위함이었지만 말입니다. 스스로 옥처럼 찬란하게 부서지는 길을 택하겠다고 했으니 어떻게 부서지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미실의 최후가 매우 궁금해지는군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은 김춘추의 지략이 빛난 하루였다. <선덕여왕>이 재미를 보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진패/허패 놀이다. 이미 덕만이 허패(일식이 없다)를 가장한 진패(일식이 있다)를 쓴 적이 있다. 김춘추도 역시 허패와 진패를 병용하며 미실 진영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번에 김춘추가 던진 패는 허패다. 김춘추는 미실 편에 투항하는 척 하며 미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미실과 거래를 시도한 것이다.
 

김춘추가 미실파에 던진 패는 내분을 노린 허패 

덕만공주가 스스로 부군이 되어 왕이 되겠다는 선언은 미실 진영에 꽤 큰 혼란을 가져왔다. 전대미문의 선언이었지만,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이미 신라는 사실상 미실이란 여인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던가. 게다가 덕만공주는 성골이다. 성골만이 왕통을 계승할 수 있다는 불문율에 따로 저항할 명분도 없다.

여기에 춘추가 패를 던진 것이다. 춘추는 미실을 만나 자기를 부군으로 밀어달라고 말한다. 그럼 미실의 걱정거리 하나가 사라진다. 성골인 덕만공주가 스스로 부군이 되겠다고 한 이상 미실 일파는 권력을 잃게 될 위험을 피할 수 없다. 비록 상대등과 병부령이 살아있다고는 하나 영원한 것은 없다. 덕만공주는 강적이다. 그 사실을 모두들 잘 알고 있다. 

미실은 춘추의 제안이 매우 흡족했을 것이다. 춘추는 미실이 몰아낸 진지왕의 손자이기도 하지만, 진평왕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덕만공주를 제외한다면 진평왕의 가장 가까운 혈손이다. 명분은 충분하다. 그러나 그보다 미실을 기쁘게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덕만공주 세력의 내분이었다. 

춘추가 비록 미실 일파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는 역시 천명공주의 아들이며 덕만공주의 조카다. 천명과 덕만은 개양성이 두 개로 갈라지며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던 날 태어난 쌍둥이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공동운명체다. 천명의 아들이 덕만과 대립하는 것은 곧 분열을 의미하며 이는 덕만공주 진영에 치명적 타격이 될 것이다. 

미실은 그걸 노렸다. 한편으론 덕만이 스스로 왕위에 올라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막고, 다른 한편 상대 진영을 분열시켜 어부지리를 얻는 것, 그게 미실이 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실은 진평왕과 신료들 앞에서 당당하게 “골품제도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제도요” 라고 일갈하는 춘추를 보며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덕만과 춘추의 존재를 깨달은 미실, 그러나 조용히 물러나진 않는다

미실은 춘추를 보며 덕만공주를 떠올렸다.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미실이 한 번도 넘지 못한 벽을 너무나 가볍게 넘어버림으로써 뼈아픈 슬픔을 안겼다는 점. 그녀는 평생을 권력의 정상에서 버텨왔지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제도와 관습의 벽 앞에서 늘 좌절감을 맛보았던 것이 그녀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그걸 너무나 쉽게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덕만과 미실의 마지막 대결이 볼 만하겠다.

미실은 순간 인생이 허무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토록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골품의 벽도 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왜 안 했던 것일까? 덕만과 춘추가 진정 나누어진 두 개양성의 각각의 주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이제 자신도 늙었음을, 그만 세상에서 물러나야할 때가 되었음을 뼈저리게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세종공과 설원공이 서로 물고 뜯으며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모른 척 서라벌을 떠나 외유를 즐기고 있다. 차분하게 마치 인생을 정리하는 듯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은퇴를 결심한 노정객의 모습이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은 없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절대 죽지 않아. 왜? 나는 미실이니까.” 이게 예고편에서 미실이 보여준 대답이었다. 덕만공주가 춘추에게 말한다. “너와 나는 모두 실패했어. 우린 둘 다 실패한 거야. 네가 무얼 했는지 알겠니? 잠자던 용을 깨운 거야.” 마치 무덤처럼 고요한 적막을 가르며 솟아오르는 서릿발 같은 광기, 이게 바로 미실의 힘 아니던가? 

그러나 덕만공주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 미실은 덕만공주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춘추도. 그녀는 이들이 미래의 신라를 이끌어갈 기둥임을 알게 되었다. 또 이 두 사람을 통해 그녀의 인생이 얼마나 부질없었던 것인지도 알았다. 이제 한 시대가 갔음도 깨달았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전의가 불타오른다.  

김춘추, 잠자던 용 미실을 깨운 것은 의도한 실수?  

젊은 시절의 혈기가 되살아남도 느꼈을 것이다. 미실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진골왕족이다. 그럼 덕만공주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미실의 반격으로 얻게 될 덕만과 춘추의 동맹이다. 잠자던 용 미실과의 일대 회전은 쇠사슬보다 튼튼한 두 사람의 동맹을 요구한다. 이 동맹으로 덕만은 최고의 전략가를, 춘추는 든든한 미래의 후원자를 얻게 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지 않던가. 음이 있어야 양이 있는 법이다. 빛은 어둠을 뚫고 나온다. 강력한 적이야말로 아군의 강고한 연대의 원천이다. 그러나 미실이란 존재는 덕만공주보다는 김춘추에게 더욱 긴요한 존재인 듯하다. 덕만은 성골로서 어차피 왕이 될 것이지만, 쫓겨난 진지왕의 손자인 춘추에겐 신흥세력을 형성할 절호의 기회다.
 
그러고 보면 내일 덕만이 춘추에게 하기로 돼있는 말은 실은 틀린 것이다. “넌 실패했어. 네가 무얼 했는지 알겠니? 잠자던 용을 깨운 거야.” 아마 춘추는 속으로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이모, 사실은 내가 일부러 잠자던 용을 깨운 거예요. 난 퇴출된 왕족이에요. 세력도 없어요. 혼돈은 내게 기회죠. 이번 기회에 난 이모에게 최고의 공신이 될 거에요.’

마지막으로 춘추가 용춘공에게 한 말을 되새기며 글을 마무리하기로 하자. “숙부, 나는 분명 미실보다 훨씬 오래 살 거예요. (그러니 저와 동맹을 맺는 게 숙부에게도 좋지 않겠어요?)” 춘추가 일부러 잠자던 용을 깨운 것인지, 실수로 깨운 것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춘추는 미실은 물론 덕만공주보다도 오래 살 것이라는 사실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춘추가 골품제도를 일러 천박하고 야만스러운 제도라고 일갈했다. 그것도 성골 왕인 진평왕 앞에서.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결론은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 김춘추는 덕만공주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공주님은 어떤 마음으로 신라에 오셨습니까? 저는 또 어떤 마음으로 신라에 온 것 같습니까?"
 

사서에 등장하는 김춘추는 탁월한 외교전략가였다.


김춘추, "나는 신라를 가지기 위해서 왔다!"

그리고 김춘추는 힘주어 말했다. "저는 신라를 가지기 위해 왔습니다." 이미 덕만공주도 오래전에 같은 말을 했었다. "신라를 먹어버릴 거야." 그리고 그 말은 곧 "내가 신라의 왕이 되겠다"는 확신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덕만공주는 바야흐로 왕이 되려고 한다. 아무도 꾸어보지 못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꿈, 여왕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김춘추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춘추는 말한다. "신라 역사에서 아무도 꾸어보지 못한 두 가지 꿈이 있어. 하나는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골이 왕이 되는 것이지. 그런데 그 둘 중 어느 게 먼저 될까? 여왕? 아니면 진골 왕?" 묘한 웃음을 흘리며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지는 김춘추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진심은 무엇일까?

그러나 이미 우리는 김춘추의 마음을 그의 입을 통해 충분히 들었다. 그는 덕만에게 "나도 이모님과 마찬가지로 신라를 가지기 위해 바다를 건너 왔다"라고 말했으며, 엊그제는 진평왕과 대등들 앞에서 "골품제도는 천박하고 야만스러운 제도"라고 일갈했던 것이다. "그래, 성골만 왕이 되란 법이 있소? 나 진골도 왕이 되고 싶소!" 이게 그의 진심인 것이다.

그리고 김춘추는 입국하자마자 염종을 수하에 두고 비담을 포섭하기 위해 저울질 하는 등 나름대로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나아가 미생과 친하게 지내면서 적을 안심시키고 내부를 교란시키는 양동작전까지 펼치고 있다. 가히 외교술의 귀재였다는 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 우리가 짐작하는 것이 맞는다면, 김춘추는 기골이 장대하고 빼어난 용모를 지녔으며 뛰어난 두뇌와 유창한 화술의 소유자였다. 당태종조차도 김춘추를 칭찬했다고 하니 그가 고구려와 일본, 중국을 넘나들며 외교전을 펼친 것이 우연한 일은 아니었을 듯하다. 게다가 김춘추는 출중한 지혜뿐 아니라 대범한 용기까지 지니고 있었다.  

김춘추는 뛰어난 외교전략가에 행동가였다

감히 누가 있어 용담호혈에 주저 없이 들어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김춘추는 스스로 죽을지도 모를 길을 주저 없이 갔다. 그리고 실제로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에게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그런 그였으니 진평왕 앞에서 감히 "골품제도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제도"라고 일갈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국기를 뒤흔드는 일이다. 골품제도는 신라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라가 아니라 신라왕실을 지탱하는 장치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곧 역모다. 성골왕족을 부정하고 역모를 일으키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을 김춘추가 왕 앞에서 한 것이다.

사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친손자이면서 동시에 진평왕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못할 소리도 아니다. 그의 입장으로 보면 성골남진한 상태에서 충분히 왕위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 김춘추는 진평왕에 의해 폐위된 진지왕의 친손자요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진골귀족일 뿐이다.   
 
아무래도 김춘추가 왕이 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역시 덕만공주의 부마가 되어 부군이 되는 것이다. 부군이란 태자가 없을 때 공주의 부마를 다음 왕위계승자로 삼는 신라만의 독특한 제도다. 이런 제도는 근친혼이 성행하던(혹은 권장되던) 신라였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어차피 부마도 결국 같은 왕족이니까.   

실제로 부군의 지위에 올라 왕이 된 예는 많았다. 석탈해가 그랬으며 김씨족 최초의 왕인 미추왕이 그랬다. 내물왕과 실성왕도 모두 사위로서 왕이 된 케이스다. 그러니 성골 태자가 없을 경우에 진골귀족 중 한 명을 성골 공주의 부마로 맞아 부군으로 삼는 것이 신라의 전통이며 자연스럽게 후계를 확정짓고 정국을 안정시키는 방법이다. 

김춘추의 위험한 발언, "성골만 왕이 되란 법 있나?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김춘추가 굳이 왕이 되고 싶다면 이미 미실과 계획한 것처럼 덕만공주와 혼인해 부군이 되면 될 일이다. 덕만은 김춘추에게 외가 촌수로는 이모(3촌)가 되지만, 친가로 보면 6촌 형제간이다. 근친혼을 신국의 도라 하여 권장하던 신라사회에서 6촌 형제간인 덕만과 춘추가 결혼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물론 역사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드라마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신라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겠다는 연출의도에 따라 연대나 인물 등에 대해 각색의 가위질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는 역사적 사실도 있는 법이다. 선덕여왕과 김춘추의 관계가 그렇다. 

그래서 진골인 김춘추가 성골 왕 진평왕 앞에서 감히 역모에 준하는 발언을 한 것일까? "폐하, 어찌 성골만 왕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저 진골도 왕이 되고 싶사옵니다. 저를 후계자로 삼아주시옵소서." 그러나 이는 분명 매우 위험한 발언임에 틀림없다. 진평왕은 5촌 조카이면서 동시에 외손자이기도 한 김춘추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고 하면 위 인물들 중 누가 제일 기뻐할까?

 
그러나 다른 신료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당장 김춘추를 참하라고 소를 올릴 것이다. 만약 그들 귀족들도 김춘추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특히 미실과 세종 일파의 경우에, 다른 의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도 진골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기회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때문에 속으로는 김춘추의 발언에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이고 있는 권력을 둘러싼 역관계로 보아 김춘추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다음 왕위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세종이다. 이것은 미실이 평생을 꾸어오던 꿈, 곧 황후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김춘추는 "성골만 왕이 되고 진골은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야만적"이란 따위의 발언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김춘추에게 필요한 것은 세력이다

오히려 김춘추는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으며, 덕만공주야말로 하늘이 예언한 개양자로서 나라를 다스릴 임금의 재목'이라고 진평왕에게 품해야 옳은 일이다. 나아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덕만공주의 결정이야말로 참으로 현명한 판단이라고 부추겨야 옳은 일이다. 그 길만이 "신라를 가지기 위해 돌아왔다"라고 말하던 그의 야심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설령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땅 속에 묻어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고 하더라도 김춘추의 생각대로는 절대 될 수가 없다. 왜? 김춘추는 미실 일파가 몰아낸 진지왕의 손자이기 때문이다. 김춘추는 패주의 자손이다. 그리고 진지왕을 패주로 만든 것은 미실과 세종, 설원공 등이다.

실제로 역사에서도 김춘추는 선덕여왕 16년과 진덕여왕 7년을 합하여 무려 20년이 넘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진덕여왕이 죽은 후에도 김춘추는 바로 왕으로 추대되지 못했다. 삼국사기에 보면 귀족들이 화백회의를 열어 알천공을 왕으로 추대했지만 알천공은 자신은 늙고 덕이 없음을 들어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진실일까?

온갖 부패혐의에 시달리면서도 대통령이든 총리 자리든 연연하는 오늘날의 세태로 보면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 될 수도 있는 미담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런 미담은 대체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럼 왜 알천공이 왕 자리를 고사했을까? 바로 김춘추의 뒤에는 김유신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월성전투의 승리로 비담의 난을 제압한 이후 김유신은 신라의 무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이러니지만 후일의 김유신과 김춘추를 만들어 준 것은 바로 비담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알천공이 김춘추에게 왕위를 양보한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목숨은 두 개가 아니니까.

김춘추가 해야 할 일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이때부터 화백회의는 사실상 그 기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집권을 통해 왕권이 강화된 신라에서 화백회의는 왕의 괴뢰기구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법흥왕 때부터 대등들을 각 행정기관의 장으로 배치해 왕권의 통제아래 두려던 시도는 김춘추가 왕이 될 무렵에는 거의 복종하는 관계로 굳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김춘추가 덕만공주에 맞서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대드는 것은 난센스다. 아니 치명적 실수다. 지금은 은인자중할 때다. 조용히 세력을 키우며 때를 기다리는 게 그가 할 일이다. 영민한 그로서는 분명 언젠가는 자기에게 기회가 올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나라에 유학까지 한 김춘추라면 태공망의 고사쯤은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잠시 미쳤던 것일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당신이 통치하던 시대엔 왜 발전이 없었을까요?"

덕만공주가 미실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이 대사를 들으며 우리는 역사적 사실 따위는 잠시 잊어야 합니다. 미실이 진평왕을 제치고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라도 통치행위를 했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미실은 드라마상에서 실질적인 통치자입니다. 진평왕은 허수아비 황제에 불과하죠. 미실은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화백회의도 쥐고 있고, 병부령을 통해 군권도 장악하고 있습니다. 


미실이 시대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사람에 백성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시대의 주인이 된다!" 미실은 그 사람을 귀족들로 보았습니다. 미실은 유력한 귀족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나머지 귀족들은 당근과 채찍을 병용하는 수법으로 통제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공포를 통해 지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미실에게 백성이란 시대의 주인이 되기 위해 얻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통제해야할 대상에 불과한 피지배자일 뿐입니다. 

미실은 마치 오늘날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부자들에겐 세금을 깎아주거나 갖은 특혜를 베풀면서도 정작 서민들에게선 그나마 주어지던 복지혜택을 빼앗아가는 MB정권의 과거형이 바로 미실입니다. MB에게 얻어야할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재벌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입니다. 미실과 세종 등 진골귀족 일파는 MB와 재벌 등 기득권 세력의 과거형입니다. MB의 국민관과 미실의 백성관이 닮았음은 물론입니다.

"아니 내 돈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한단 말이야. 공주라고 해도 그건 용납할 수 없어." 핏대를 올리는 하종의 모습은 마치 MB정권을 배출한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화백회의의 대등들이 고대 신라사회의 진골귀족들로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을 독점하고 있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종과 난투극을 벌이는 용춘은 전형적인 민주당 의원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용춘과 하종이 덕만공주의 쌀값 안정 정책을 놓고 결투를 벌이는 듯한 장면에서 웃음이 나왔지만, 작가의 기발한 발상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용춘공이 폐위된 진지왕의 아들이긴 하지만 어쨌든 왕자 출신인데 과연 그럴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하종도 만만찮은 골품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용춘공에게 꿀릴 것이 하나도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용춘공은 입장은 매우 난처하지만―그도 역시 매점매석을 했으므로―세종이나 설원공 일파와는 달리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그는 덕만공주의 편에 서서 화백회의 내 야당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그러나 덕만공주만 아니었다면 그도 세종 일파와 별로 다르지 않은 행보를 취했을 것입니다. 이건 미실이 오래전에 덕만공주에게 한 말을 상기해 보시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덕만공주가 처음 궁궐에 들어왔을 때 미실이 무어라고 했지요?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세종공이든 용춘공이든 또는 보종이든 유신이든 알천이든 모두 한 편이다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공주와 나는 경쟁자가 되겠지만, 횡으로 나누면 우리는 한 팀이랍니다. 공주님과 나는 어차피 지배계급의 일원이니까!" 이 말은 이렇게 바꾸어도 되겠군요. "공주님과 저는 권력을 두고 다툴 때는 경쟁자이지만, 백성들 앞에서는 한 편입니다. 무지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우리가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할 때 우리는 힘을 합쳐 백성들을 통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덕만공주가 폭동을 일으킨 백성들과 직접 소통하겠다고 나섰을 때, 덕만공주의 편에 선 귀족들도 반대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미실 일파에 반대하여 투쟁하긴 하지만, 역시 그들도 지배층의 일원이란 자각 때문이죠. 이 장면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큰 대목입니다. 미실 일파도 나쁘지만 용춘공을 비롯한 착한 귀족들도 결국은 귀족들일 뿐이란 진실이 슬프지만 아픈 지점이었죠. 

경주 낭산 정상 선덕여왕릉. 사진속의 인물은 자전거를 타고 경주투어에 나선 아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덕만공주가 미실에게 던진 질문을 한번 더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이 통치하던 시대엔 왜 발전이란 것이 없었을까요?"

미실은 이 말을 듣고 찔끔합니다. 역시 미실은 세종이나 설원공과는 차원이 다른 귀족입니다. 그녀는 실질적인 통치자입니다. 세종 등은 그저 눈 앞에 보이는 개인의 이익에만 몰두하지만, 미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녀는 최고 통치자로서 큰 판을 보아야 합니다. 그녀는 사람을 얻기 위해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자들의 배를 불려주는 일에 골몰하다보니 큰 것을 놓친 것입니다. 

덕만공주의 말을 듣고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잠깐이었지만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고 말 것입니다. 그녀에겐 시대의 주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확보한 사람들을 잃어선 안 되고, 그들을 잃지 않으려면 그들의 배를 적당히 불려주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MB가 제 아무리 위기의식을 느끼고 서민행보―쇼맨십뿐이지만―를 하더라도 결국은 제 사람들의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 알고 보면 제 사람들의 이익이란 것이 사실은 자기 이익이기도 합니다. 미실도 처음엔 큰 야망을 가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가진 계급적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덕만공주는 다릅니다. 그녀는 비록 성골이긴 하지만 황실에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멀리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장사를 배우며 잔뼈가 굵었습니다. 백성들에게 고품질의 농기구와 자영지를 주어야겠다는 발상도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덕만과 미실의 차이는 성골과 진골의 문제가 아닌 경험의 차이 

반면 미실은 어떻습니까? 그녀는 자신이 성골이 아니란 사실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긴 하지만, 그녀 역시 진골귀족으로 왕족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황실에서만 줄곧 살았습니다. 그녀가 제 아무리 원대한 통치자의 이상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 한계는 명백합니다. 백성들 속에서 백성들과 함께 살며 백성들의 마음이 곧 자기 마음이었던 시절이 단 한 순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미실에게 백성이란 겁을 주어 통제해야할 대상일 뿐입니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시에 매우 귀찮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MB나 박근혜가 가진 한계도 마찬가집니다. 젊은 시절부터 현대건설 이사로, 사장으로, 회장으로 군림해온 MB, 어릴 때부터 청와대에서 공주처럼 살아온 박근혜는 미실의 현재형입니다. 그들 역시 미실이 가진 한계로부터 한 발짜욱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세종이나 하종, 설원공 일파의 현재형입니다. 그들의 한계 또한 명백합니다. 아마도 용산참사를 바라보는 미실과 덕만의 의견도 극명하게 엇갈렸을 것입니다. 

"안강의 백성들이 성을 점거한 것은 폭동입니다." "아니에요. 그건 폭동이 아니에요. 폭동이란 역모를 목적으로 일으키는 것이지 살기 위해 하는 건 폭동이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생존이라고 하는 거죠."  

그럼 민주당은? 그들이 가진 한계도 분명하다는 것을 오늘 드라마 선덕여왕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용춘공이 바로 민주당의 과거형입니다. 그는 선덕여왕에서 매우 의기가 있고 양심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덕만공주가 왕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할 사람입니다. 게다가 그는 장차 태종무열왕이 될 김춘추의 삼촌(사서에서는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미실의 말처럼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지배계급의 일원일 뿐입니다.

어떤 분은 오늘 선덕여왕을 보고 매우 불쾌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니 어떻게 미실에게 당신은 주인이 아니라서 나라를 발전시킬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지? 그럼 자기는 성골이고 나라의 주인이니까 발전을 시킬 수 있다, 이런 말인가? 이런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가 대체 가당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맞습니다. 오늘날 양심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죠. 나라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니며 오로지 국민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성골도 진골도 아닌 국민들이 직접 통치할 때만 발전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골이든 진골이든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일 것은 자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골의 이익이냐, 진골의 이익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내일은 김춘추도 한마디 거들 모양입니다만, 도대체 성골이니 진골이니 이런 시대에 뒤떨어진 분류가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내친 김에 한말씀 더 드리면 김춘추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가 김춘추를 어떻게 그릴지는 더 두고 봐야 알 일이겠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은 고대 신라사회의 골품제로부터 얼마나 발전했을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어떨까요? 우리는 과연 고대 신라와는 다른 정치체제에서 살고 있을까요? 혹시 우리는 아직도 그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혹시 미실이 말한 세상을 횡으로 자른 위에 존재하는 사람들끼리 파당을 지어 다투다가 국민들 앞에서는 한 편이 되어 자기들 이익을 챙기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한 미실의 말이 섬뜩하게 다가오는군요.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공주님과 나는 경쟁자가 되겠지만, 횡으로 나누면 우리는 한 팀이랍니다. 공주님과 나는 어차피 지배계급의 일원이니까!" 

우리는 여전히 골품제 하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설마 아니겠지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유신이 미실의 아들 보종의 딸 영모와 결혼했다. 물론 이는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의 이야기다. 이전에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유신이 협박에 굴복해 미실의 가문에 장가를 든 것은 난센스란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실제로는 미실이 유신의 가문과 혼사를 맺음으로써 권력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했을 것이란 사실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김유신의 가문이 신라 진골인 것은 시혜인가, 노력의 결과인가

김유신의 조부인 김무력은 금관가야 구형왕의 아들이다. 그는 신라에 귀순한 이후 전장에 나가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관산성전투에서는 성왕을 죽여 백제부흥운동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김무력은 그 공으로 대각간의 지위에 올랐다. 무력의 아들 서현 역시 낭비성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으며 각간의 자리에 올랐다. 각간은 신라 17관등 중 1등위다.

나중에 삼한을 병합한 김유신이 태대각간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대각간이나 태대각간은 상설적인 벼슬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비정규적으로 특설한 것이었다. 김유신의 가문은 신라에 귀순한 이래 대대로 각간에 올랐을 뿐 아니라 진골귀족으로 행세했다(참고로 신라에서는 진골귀족이 아니면 3등위 이상의 관직에 오를 수 없다). 

신라가 귀순한 가야의 왕족에게 진골귀족의 작위를 부여한 것은 나름 정치적 계산이 있었을 테지만, 그것이 다만 시혜적인 것이었을까? 신라란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열린 사고 구조를 가진 나라였을 수 있다. 박씨족에서 석씨족으로, 다시 김씨족으로 왕권이 이전되는 과정을 보아도 그렇다. 신라는 통합왕조였던 것이다. 

하나의 왕조가 다른 왕조를 배타적으로 멸망시키는 관계가 아닌 상생하는 관계였다고나 할까. 여기에 가야계가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이런 전통에 따라 신라는 가야계의 유력한 왕족인 유신의 가문을 진골로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유신 가문이 진골귀족이 된 것이 단순히 가야의 왕족이었기 때문일까?

그들이 아무리 가야의 왕족 출신이라도 탄탄한 무력이 없었다면 모두 불가능한 일이다. 구형왕은 신라에 귀순함으로써 자신과 자식들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영지에 대한 관할권까지도 일정하게 유지했을 것이다. 우리가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면서 유심히 살펴볼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비담의 화랑 입문기다. 

정치적 입지는 무력보다 혼사가 더 큰 변수

비담은 화랑이 되었지만 아직 낭도가 없다. 말하자면 그는 병사 없는 장군이다. 만약 비담이 끝내 낭도를 구하지 못한다면 그는 영원히 나홀로 화랑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여러분은 하나의 의문도 들지 않는가? 어째서 신라는 화랑으로 임명한 또는 인정한 자에게 낭도를 나누어 주지 않는 것일까? 아무튼 김유신은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이런 무력도 그저 가문의 귄위를 지키는 정도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결국 전장에 나가 공을 세우지 않고서 패망한 왕조의 가문의 영광을 일군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나 마찬가지다. 김무력과 김서현은 수많은 전쟁에서 공을 세웠지만 앞으로 김유신도 마찬가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열심히 노력하는 자가 항상 승리의 월계관을 쓰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잘 가르쳐준다. 여기엔 보다 복잡한 고도의 변수가 작용하는 것이다. 그 변수란 다름 아닌 혼사다. 오늘날의 재벌가나 정치인, 고위관료 집단의 혼맥을 살펴보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의 말에 의하면,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조선일보와 이명박 대통령의 혼맥도라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란다. 아마도 내가 느낀 그대로라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거미줄로 쳐진 망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덕업일신 망라사방>이 아니라 <우리끼리 망라독점>이라고 말해도 하나도 지나치지 않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유신과 영모의 결혼도 분명히 책략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에서도 그랬을 수 있다. 김유신이 자신의 누이들과 김춘추를 결혼시키기 위해 벌인 쇼를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꿈을 사고 판 누이들의 이야기로 너무도 유명한 이 아름다운 고사의 그림자 속에는 무서운 책략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김유신의 연애담, 천관녀와의 사랑

그런 김유신에게도 애절한 연애담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천관녀와의 사랑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천관녀는 기생이라고도 하고 제관이라고 하며 주막집 처녀라고도 하는 등 다양한 신분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몇 해 전, KBS 사극 <연개소문>에 등장했던 천관녀는 미실의 양녀로서 하늘에 제사를 주관하는 천관이었다. 

천관녀가 어떤 출신의 여인이었던지간에 분명한 것은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천한 가문에 속했음은 그다지 틀지지 않아보인다. 만명부인으로 말하자면, 법흥왕의 동생 입종갈문왕의 손녀이며 진흥왕의 동생 숙글종(숙흘종이라고도 발음함)의 딸이다. 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왕족이었다. 

당시는 왕족의 명예와 특권을 위해 철저하게 근친혼이 행해지던 때였다. 김유신이 비록 진골귀족이라고는 하나 패망한 가야의 왕족일 뿐이었다. 내물왕계의 후손으로 철저한 근친혼이 신국의 도라고 배웠던 만명공주에게 김서현은 절대 결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만명공주는 김서현을 따라 만노군(충북 진천)으로 도망쳐 그곳에서 유신을 낳았다. 

물론 전해오는 이야기는 이렇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김서현은 당대의 명장이며 신라 최고의 관등 각간에 '대'자를 더한 대각간이다. 신라 천년역사를 통틀어 대각간의 지위을 받은 인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런 김무력의 가문과 혼사를 맺는 것은 왕족이라 하여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아무튼 만명공주는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젊은날의 에피소드로 인해 콤플렉스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콤플렉스는 자연스레 출세지향적인 성향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런 만명부인에게 천관녀는 가당치도 않은 존재였다. 그런데 자신의 기대를 짊어진 아들 유신이 천관녀에게 빠지다니. 만명부인은 유신에게 호통을 쳤다.

유신, 출세를 위해 애마의 머리를 자르다

"나는 어렵게 너의 부친과 결혼하여 너를 낳았다. 너는 어찌하여 가문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냐? 술 파는 천한 계집과 어울리다니 정신이 있는 게냐, 없는 게냐?" 크게 꾸지람을 들은 김유신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맹세했다. "다시는 천관녀를 만나지도 않을 것이며 그 집에 가지도 않겠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술 취한 유신을 등에 태운 말은 천관녀의 집으로 갔다. 유신의 말은 명마였다. 유신이 술에 취하면 가는 곳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술에 취한 유신이 천관녀의 집에서 운우의 정으로 밤이 깊어감을 잊었음은 물론이다. 다음날 아침 술이 깬 유신은 대경실색했다. 어머니에게 한 맹세를 깨뜨린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유신의 말은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려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주인의 연애를 도운 결과는 비참한 죽음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유신은 진정으로 천관녀를 사랑했을까? 아니면 하찮은 노리갯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천관녀가 주막집 기생이었다면, 그래서 유흥 목적으로 드나든 것이었다면, 만명부인의 충고를 받아들인 유신은 매우 강단이 있는 젊은이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천관녀가 단순히 주막집 기생이 아니라, 요즈음 주로 대세를 이루는 주장처럼 제사를 주관하는 천관이었다면 이야기는 매우 달라진다.

유신 역시 어머니 만명부인과 마찬가지로 매우 출세지향적인 성격의 인물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때 그가 자기 명마의 목을 자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출세를 위해 사랑도 과감하게 버리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영모와 결혼했으며 또 후에 자기 누이가 김춘추와 결혼하여 낳은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유신도 근친결혼, '혼사는 정치야심의 도구'

말하자면, 김유신도 자기 가문의 권위와 특권을 만들기 위해 근친혼을 강행했던 것이다. 하긴 강행이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그 시대에 근친혼이란 이상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신국의 도란 이름으로 권장되던 행위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원술랑이 바로 김춘추와 문희 사이에서 난 공주가 김유신과 혼인하여 낳은 아들이다. 

그토록 출세지향적이었던 김유신, 그래서 천관녀와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말의 목을 잘랐던 김유신, 그러나 천관녀를 향한 사랑의 감정은 가슴속에 남아있었던 것일까? 백제를 멸망시키고 돌아온 김유신은 자신이 드나들던 천관녀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절을 지었다. 천관사란 이름의 이 절은 오는날 흔적은 없고 자취만 남아 천관사지라고 불린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유신이 영모와 결혼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김유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군. 자기 감정을 다스리며 저토록 처절하게 이성에 충실하다는 것은 보통 수양이 깊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지. 실로 삼한통일을 이룰 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거기에 대해선 뭐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사람에겐 저마다 가치관이 다르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는 뉴스를 통해 한국 최고 재벌의 후계자가 이혼하는 것도 보았으며, 또 그 최고 재벌에 시집을 갔다고 해서 신데렐라가 되었다가 스스로 이혼을 결심하고 나온 사람도 보았다. 

신데렐라가 동화 속에서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의 테마일지는 몰라도 현실에서는 어떨까? 왕비가 된 신데렐라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혹은 왕비가 된 신데렐라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단지 유리구두 한 짝 뿐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사실은 인생에서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것은 아니었을까? 

천관사를 완성한 김유신, 천관녀에게 무어라 말했을까?

아무튼 김유신이 미실가문과의 혼사로 정치적 제휴를 맺어 가야 유민들을 살렸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가야 유민들은 김유신에게 목숨을 빚졌다. 그들은 생사를 다해 충성을 다할 것이니 김유신으로서는 확실한 무력을 확보한 셈이다. 그나저나 후반부에서 김유신과 최대의 각을 세우게 될 비담은 어떻게 자신의 군대를 만들어갈까? 

좀 촌스럽게 말한다면, "그것이 궁금하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신라밀레니엄파크에서 찍은 사진

선덕여왕 탄생의 전시대적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미리 말한다면 그건 신라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라는 매우 개방적인 사회였다.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와는 달랐다. 고구려와 백제가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며 제도를 정비한 데 비해 신라는 이들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유심히 유물을 관찰한 사람이라면 찬란한 신라문화의 독자적인 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고분은 찬란한 문화유산의 보물 창고

이재호가 쓴 <천년 고도를 걷는 즐거움(한겨레신문사)>에 이런 일화가 있다. 경주의 고분들에 일제는 아무런 의미없이 1호부터 155호까지 번호를 붙였다. 일제는 1920년대에 대대적인 고분 발굴에 착수했는데 금령총과 금관총 등에서 금관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이어 129호분을 발굴하자 금관이 또 나왔다. 이에 본국과 긴밀히 연락한 총독부는 발굴을 중단했다. 

그리고 때마침 일본에 신혼여행 중이던 스웨덴의 구스타프 6세 황태자에게 "신라 천 년 고도 경주에서 금관이 나왔고, 지금 발굴 중인 고분에서도 금관이 나올 기미가 있다"며 발굴에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유혹했다. 물론 아시아 침략의 야욕을 위해 서방과 선린관계를 맺으려는 일본의 계략이었다. 구스타프는 고고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사람이었다.  

구스타프는 당장 현해탄을 건너 경주에 왔다. 각본대로 금관이 발굴되었음은 물론이다. 흥분과 감동으로 금관을 잡은 황태자는 손을 파르르 떨었다. 이를 지켜보던 일본관리가 만면에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황태자님이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음…." "황태자님이 직접 발굴에 참여하셨으니 서전국(스웨덴)의 이름을 따 서전총이 어떨지요?" 

"안 될 말이오. 찬란했던 동양의 나라 신라 왕릉에 서양 이름을 붙이다니 당치도 않소. 아까 보니 금관 정수리에 봉황 세 마리가 붙어 있던데 봉황총이 어떻겠소." 결국 129호분의 이름은 스웨덴과 봉황의 이름을 합쳐 서봉총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고고학적 지식과 안목을 갖춘 서양의 황태자에게도 신라의 금관은 휘황찬란한 것이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1971년 경주관광개발종합계획이 수립되었을 때 대릉원에서 제일 큰 98호분을 발굴하기로 했다. 이 고분을 발굴하기 위한 예행연습으로 바로 옆에 있던 155호분을 먼저 발굴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여기서 천마도가 나왔다. 예행연습으로 발굴한 고분에서 천마도와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금관(국보 188호)을 비롯해 1만 5천여 점의 유물이 쏟아지다니.

그리하여 155호 고분은 천마총이란 이름을 얻었다. 신문에 보니 천마도는 30여 년이 흐른 오늘에서야 비로소 전체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머리에 뿔이 달린 모습이 유니콘을 닮아 앞으로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고 한다.   

국보 188호 천마총 금관. 플래시를 쓸 수 없어 사진 상태가 안 좋다.


황남대총의 주인은 누굴까?

천마총에서 연습을 끝낸 발굴팀은 1973년부터 2년 3개월에 걸쳐 98호분을 발굴했다. 여기에 연인원 3만 2800명이 투입되었다. 이 98호분이 바로 황남대총이다. 이곳에서도 3만 50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황남대총은 북분과 남분으로 이루어진 쌍총인데 남분은 왕, 북분은 왕비의 능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북분에서는 금관(국보 191호)이 나왔는데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남분에서는 금관이 나오지 않고 대신 은관이 나왔다는 것이다.  남분에는 60세 전후의 남자와 순장된 것으로 보이는 여자의 유골이 나왔는데 남자의 유골은 내물왕 또는 실성왕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관이 출토된 고분의 제작시기를 5세기에서 6세기 초반으로 볼 때 이 시기의 왕은 대략 6명으로 압축되는데 내물, 실성, 눌지, 자비, 소지, 지증왕이다. 이 중에 황남대총 남분의 주인은 누구일까? 여기에 대해 일본의 역사학자 요시미즈 츠네오는 그의 저서 <로마문화 왕국, 신라>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그는 남분의 주인을 실성왕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로 실성왕은 왕족이 아닌 신분으로 왕위에 오른 유일한 신라의 왕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이 모든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성왕 외에도 왕족이 아니면서 왕이 된 인물은 이미 여럿 있었다. 우선 유명한 석탈해가 있다. 석탈해는 왕족이 아니었다. 다음 미추왕도 있다. 그도 역시 왕족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왕의 사위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마로서 왕이 된 사람들인데, 어쩌면 아들이 없는 왕의 공주를 대신해서 왕좌를 이어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요시미즈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석탈해나 미추왕 또는 내물왕의 경우에 박씨족, 석씨족 혹은 김씨족과의 권력투쟁을 통해 왕권을 쟁취한 것이라면 말이다.  
 
황남대총의 왕비는 금관, 왕은 은관?

실성왕은 김씨족이긴 하지만, 즉 김알지의 후손이긴 하지만 최초의 김씨 왕인 미추왕의 자손이 아니다. 그러므로 왕족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물왕의 사위였다. 내물왕이 죽으면서 어린 아들들을 대신해 사위에게 왕좌를 넘겼다. 실성왕은 왕이었지만 미추왕(또는 내물왕)의 딸인 왕비에 비해 계급이 낮았다. 

신라 왕릉 최대 규모의 황남대총. 길이는 남북으로 120m 동서로 82m, 높이는 남분이 22m 북분이 23m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왕은 은관을 쓰고, 왕비는 금관을 쓰고 누워있는 무덤의 실체'에 대해 이보다 더 확실한 대답은 없을 것이다. 또 혹자는 같은 맥락에서 내물왕의 무덤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실성왕은 눌지에게 피살당해 권력을 상실했는데 이토록 거대한 무덤을 조성했을 리 없다는 차원에서 눌지왕의 능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물왕의 무덤이라는 주장은 비록 석씨왕의 사위로서 왕이 되었으나 김씨족 왕권의 기틀을 닦은 강력한 군주라고 평가한다면 별로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다. 눌지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성왕을 죽이고 권력을 빼앗았다고 하나 그는 내물왕의 아들로서 정통성이 있다. 은관을 쓰고 누워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리 보면 가장 확실한 무덤의 임자는 아무래도 요시미즈의 주장처럼 실성왕이다. 그런데 어떻게 눌지에게 피살당해 권좌에서 밀려난 왕의 무덤이 이토록 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미스터리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커다란 핸디캡이 있다. 바로 의식이며 고정관념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왕을 보는 눈은 가졌지만 왕비를 보는 눈은 갖지 못했다. 

기록에 의하면 실성왕의 왕비는 미추왕의 딸이라고 한다. 그러나 연대 차이로 볼 때 이는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다. 아마도 미추왕의 적손이거나 내물왕의 딸일 가능성이 크다. 미추왕의 딸이라고 하는 것은 김씨 왕족의 정통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을 수 있다. 왕에 비해 신성한 혈통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황남대총의 여주인은 왕보다도 강한 권력자였다

어떻든, 우리는 황남대총의 북분과 남분의 피장자를 통해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북분의 피장자는 여왕이 아니었는데도 왕만이 쓸 수 있는 황금수목관과 호화찬란한 장신구를 비롯해 로마유리잔과 자기 등이 부장되었지만, 남분의 피장자는 비록 왕이었지만 왕비에 비해 낮은 신분 탓으로 은관과 금동관과 기타 무기·무구류가 부장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은 원래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한데, 자신을 암살하려던 실성왕을 오히려 시해하고 왕이 된 눌지조차도 어쩔 수 없이 거대한 봉분을 조성하는데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세력관계다. 실성왕의 왕비는 눌지왕의 이모이고 눌지왕의 아내는 실성왕의 딸이다. 눌지왕 주변에는 강력한 외척, 여인들의 파벌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우리는, 어째서 왕비의 무덤인 북분에서 왕이 쓰는 황금수목관이 나오고 왕의 무덤에서는 은관과 금동관만이 나왔는지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MBC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듯 미실이라는 여인이 구축한 권력관계란 것이 그렇게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란 사실도 함께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미실이 구축한 구도란 것은 결국 선덕여왕이 왕좌에 오를 수 있는 토대다. 선덕여왕이 비록 성골이라고는 하나 여자로서 왕위에 오른 것에 대하여 아직 어떤 구체적인 해명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삼국사기에서 '성골남진'을 이유로 들고 있는데 이는 그저 불가피한 하나의 조처였을 뿐이라는 소극적인 해명 아닌 해명에 불과하다. 

신라 왕릉 중 가장 거대한 황남대총은 활발하고 진취적인 신라 여인들의 패기를 보여주는 블랙박스다. 그러나 우리는 이 블랙박스를 푸는 열쇠를 잃어버렸다. 여기에는 통일신라 후기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유교의 영향으로 고대의 전통을 깡그리 부정하는 풍조도 한몫했다. 이 풍조에 편승한 김부식은 암닭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으로 선덕여왕을 비하했다. 

황남대총 사이를 지나가는 두 사람. 무슨 생각을 하며 걸어가고 있을까?


그러나 결국 여왕도 배타적 근친혼을 통해 탄생한 왕족일 뿐, 
중요한 것은 골품귀족의 이해에 반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  
 
그러나 그 역시도 삼국통일의 토대를 닦고 문물을 장려한 선덕여왕의 공덕을 모두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완곡하게 "여자가 왕이 되었는데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신통한 일이다"라고 비틀어 말했던 것이다. 선덕여왕은 우연히 왕이 된 여인이 아니다. 또는 성골이 남진하여 그리된 것도 아니다.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진덕여왕과 이백여 년이 지나 다시금 등장한 진성여왕은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사대주의 사관으로 씌어진 삼국사기, 이를 극복했으나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는 삼국유사만으로 고대사회를 본다는 것은 얼마나 편협한 것인가. 그러므로 비록 필사본이라 해도 화랑세기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실로 위안이라 아니할 수 없다.

화랑세기 진본이 나타나기 전에는 위작 논쟁은 아마도 종지부를 찍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기와 유사에서는 볼 수 없는 생생한 고대 신라 사회의 생활상을 그려보는 기쁨을 화랑세기를 통해 누려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화랑세기의 이야기를 확실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은 다른 어떤 왕릉보다 우뚝 솟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황남대총의 여주인이 아닐까?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이 분묘의 여주인이야말로 당당하게 신라정계에서 활약한 미실과 선덕여왕의 전신이란 사실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전제가 있다면, 황남대총의 여주인이든 미실이든 선덕여왕이든 타고난 혈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철저한 근친혼을 통해 배타적 신분으로 만들어진 왕족이거나 성골들이다.

그러나 아직 모든 것은 수수께끼다. 무덤들은 말이 없다. 대릉원을 순례하던 날, 마치 계곡을 타고 바람이 흐르듯 거대한 무덤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무척이나 시원했다. 황남대총 사이를 걸어가며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래,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일 뿐이다.

"와,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참 잘 생겼다." 

ps; 마무리가 희끄무리하지만 잠이 와서 할 수 없이 예약 걸고 그냥 잡니다. 내일 시간 나면 손 보겠습니다.
     뭐 크게 무리는 없다고 보지만, 결론은 신라사회는 여왕이 탄생하는 데 큰 거부감이 없는 사회였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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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 대릉원 황남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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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자신만만하던 비담, 천진난만하던 비담이 초라해지고 있다. 알천랑의 뒤를 이어 유신의 포스를 누르며 인기를 구가하던 비담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있다. 야심을 드러낸 비담의 야비한 행보가 유신의 진심 앞에 한없이 작아 보인다. 왜 그럴까? 자기 출생의 비밀을 몰랐을 때 비담은 당당했다. 그는 누구에게도 허리를 숙일 필요도 없었고 그러지도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비담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버렸다.

비담과 문노 사이에 놓여진 책이 바로 '삼한지세', 즉 삼국의 형세를 분석한 전략지침서다.


유신의 진심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비담의 야심 

비담은 자기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채 문노에 의해 키워졌다. 비담은 문노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싶었을 것이나, 문노는 그런 비담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문노는 철저하게 스승과 제자로 관계를 한정지었다. 그런 문노에게 비담은 잘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천애고아인 비담,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비담의 심정을 누가 알 것인가.

비담에겐 오로지 문노뿐이었다. 그런 문노가 어느 날, 자기에게 말했다. "내가 준비하는 모든 것은 다 너를 위한 것이란다. 이 모든 것들은 다 네 것이다." 그가 준비하는 것들이란 다름 아닌 <삼한지세>였다. 진흥왕으로부터 받은 원대한 대업의 꿈, 언젠가 이 불가능한 꿈을 이룰 자가 나타날 때를 대비해 삼한을 누빈지 오래다. 

문노는 이 꿈을 이룰 자가 비담인 것으로 오해했다. 개양성의 주인인 덕만공주와 혼인시켜 비담을 왕으로 만들겠다는 게 문노의 생각이었다. 아마 어리석고 겁 많은 소화가 덕만을 데리고 도망치지만 않았다면 이 계획은 아무런 차질 없이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문노의 이 원대한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비담이 잃어버린 문서 <삼한지세>를 되찾기 위해 도적의 소굴에 들어가 독약을 먹여 남여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죽여 버리고 만 것이다. 문노는 당황했다. 어린 아이의 비정한 참모습에 그가 세운 원대한 계책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때부터 문노는 비담을 멀리했다. 비담을 제자로 인정하려 들지도 않았다. 잔인한 성격을 지닌 비담이 두려웠던 것일까? 

문노는 비담에게서 진심 대신 사심을 읽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신이 나타났다. 비담에게서 찾던 진심을 유신이 갖고 있었다. 처음 볼 때부터 놀라운 눈으로 성장하는 유신을 반신반의하며 지켜보았지만, 유신이야말로 삼한통일의 꿈을 이룰 인재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몇 차례 그를 시험해보았다. 확실히 개양성을 도와 천하를 도모할 인물임에 틀림없다.
 

어떤 왕릉보다도 잘 보존된 화려한 김유신장군묘. 오늘날에도 가장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유신의 기개와 이상은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유신에겐 확실히 비담이 갖지 못한 기개와 이상이 있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유신이 흔들리는 천명공주에게 말했었다. "진심을 다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사람들이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이 말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진심을 다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   

유신은 가야유민의 마음을 얻어 신라사회 안에 자기 세력을 구축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앞장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로써 오랜 세월 의심받고 견제 당하던 신라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넘어 신라를 움직이는 핵심세력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다. 가야세력을 살리기 위해 오히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앞장섬으로써 돌파하겠다는 생각을 과연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비담은 어떤가. 그에겐 원대한 포부 따위는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욕망과 안위가 중요할 뿐이다. 그는 외롭게 살았다. 그는 지켜야 할 가족도 종족도 없다. 오로지 혼자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스승에게 인정받는 길이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문노뿐이다. 문노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일생의 기쁨이다. 그것은 곧 가족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담에겐 사랑받고 사랑해 줄 가족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목이 말랐다. 그리고 그는 그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을 죽였다.

선덕여왕이나 태종무열왕릉에도 이런 장식은 없었다.

김유신장군묘를 둘러 치장한 십이지신상이 화려하다.

 
그러나 스승을 기쁘게 하려고 저지른 행동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스승 문노를 잃은 것이다. 그는 더욱 외로운 존재가 되어갔다.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냉소 뒤엔 늘 쓸쓸한 고독의 그림자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었다. 자기가 미실 새주와 진지왕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비담을 냉혹한 야심가로 만든 것은 바로 스승 문노다

게다가 스승 문노가 자기를 덕만공주와 혼인시켜 왕재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문득 어린 시절 일이 떠올랐다. "여기 내가 만드는 이 삼한지세는 모두 너를 위한 것이란다. 모두 네 것이야." 아, 내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고독한 방황의 삶을 살아왔단 말인가. 

이때부터 비담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비재에서 보여준 그의 야비한 행동은 모두에게 경악과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생모 미실은 그런 그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다. 미실은 자기가 덕만공주에게 잘 보여 사욕을 채우려다 일을 그르쳤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지독한 모욕감을 느낀 비담은 수치심과 분노로 몸을 떤다. 

믿었던 스승 문노도 이미 자기에게 마음을 돌렸다는 사실을 눈치 챈 비담, 이제 그가 가야할 길은 어디일까? 그러나 여러분. 모두가 비담을 탓하고 있지만, 사실은 비담을 이렇게 만든 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한다. 그 첫 번째 원흉은 다름 아닌 비담의 생모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갓난아기를 버렸으며 그 아기의 생부도 죽음으로 몰았다.

비담으로 보자면, 단란한 가정을 빼앗은 것이다. 정상적으로 양육되고 교육받을 터전을 박탈당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원흉은 문노다. 미실에 비해 문노의 죄는 더 크다. 아이를 데려갔으면 제대로 키웠어야 한다. 자신 없으면 데리고 가지 말았어야 옳다. 그런데 문노는 비담을 데려다가 고독과 분노만 가르쳤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 

선덕여왕 세트장에서 김주완 기자와 거다란닷컴 커서. 커서님의 SUV 구입 기념으로 경주에 다녀왔다.


어린아이에게 고독이 얼마나 지독한 형벌인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린아이에게 자신을 보호해줄 울타리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존재가 불분명한 고독은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없게 한다. 대신 자리 잡게 되는 것은 세상을 향한 냉소다. 비담의 행동은 바로 그 냉소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렇다면 앞으로 비담의 운명은?


그럼 유신의 진심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우선 서현공과 만명부인이라는 든든한 부모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자신이 속한 자기 정체성의 뿌리인 가야세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유신의 진심이 기개와 이상으로 승화되고 비담의 냉소가 비굴한 야심으로 추락한 것은 이로부터 비롯된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복야회의 수장 월야의 야심과 비담의 야심을 비교해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월야의 야심은 역시 유신과 마찬가지로 진심에 기반하고 있다. 결국 진심이란 개인적인 욕심으로부터 나올 수는 없는 것이며, 매우 사회적인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유신과 월야와 달리 구속될 세력이 없다는 것은 비담의 크나큰 불행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것을. 운명이 루비콘 강을 건너 저 멀리 달려가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후일 비담과 함께 반란을 주도할 염종이 왜 문노의 명으로 삼한지세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도박장에서 이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고 있는 비담, 구름 속에 몸을 숨긴 신선처럼 느껴지던 문노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불안하다. 

등하불명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대체 작가는 운명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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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선도동 | 김유신장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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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만약, 만약에 말입니다. 
진평왕이 미실을 받아들여 황후가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어떤 결과들이 일어났을까요?


물론 미실이 왕권을 틀어쥐고 신라를 농단했겠지요. 아니면 지증왕이 내린 교지에 따라 삼한통일의 대업에 앞장섰을 수도 있습니다. 미실의 말처럼 그녀가 황후가 된다면 왕권강화를 위해 귀족들을 누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녀는 황후가 되지 못했고, 따라서 왕권을 약화시키고 귀족의 권위를 높이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실과 진평왕을 결혼시키는데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하던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다름 아닌 미실의 하나뿐인 남편―설원공이 있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은 분도 계시겠지만, 설원공은 남편이 아니라 연인입니다. 단지 세종이 묵인하고 있을 뿐이죠. 세종은 감정보다는 권력을 택한 약은 사람입니다. 비굴해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권력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입니다.

세종은 화백회의의 수장 상대등입니다. 상대등은 유사시에는 왕이 될 수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상대등이 왕이 된 경우도 많습니다. 상대등은 관료사회의 최고 기관인 이찬이나 각간과는 달리 특별한 관직이 아니라 화백회의 구성원인 대등들을 대표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자라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국회의장 같은 것이었을까요? 그러나 아마 국회의장보다는 훨씬 힘이 셌던 모양입니다. 그런 세종이 자기 부인인 미실을 처음에는 진지왕에게 다시 진평왕에게 시집보내려고 안달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럼 자기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오나요? 저는 늘 그게 궁금했고 지금도 궁금합니다. 

만역 진평왕이 미실과의 결혼을 받아들여 미실이 황후가 되었습니다. 그랬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미실은 이제 진골귀족이 아니라 성골왕족이므로 귀족을 탄압하고 왕권을 강화해야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 말은 미실이 황후가 되기 전에는 세종을 비롯한 진골귀족들과 동지였지만, 황후가 되고부터는 대립각을 세우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설원공은 진골귀족이 아니니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사실 진골귀족이 아닌 설원이 병부령이란 고위직에 오른다는 자체가 난센스라고 수차 지적했었죠―세종을 비롯한 진골귀족들은 미실과 맞서거나 아니면 그 동안 누려오던 권력을 내놓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보다 제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만약 미실이 황후의 자리에 오른다면 남편인 세종은 어떻게 될까요? 그냥 결혼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혼을 해야 되는 것인지, 그게 궁금하네요. 쓸데없는 고민을 다 한다고요? 그렇지만 저는 그게 제일 궁금하답니다. 

아무리 천하를 주무르는 미실이지만 남편을 두고 또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게다가 상대는 일국의 황제입니다. 또한 신라시대는 1부1처제가 확립된 부계사회였습니다. 설원공이요? 그는 미실의 남편이 아니라 연인일 뿐이라고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아무튼 어떻습니까?

"미실이 황후가 되면 세종과는 이혼을 해야 할까? 이혼하지 않아도 될까?"

이거 헌법재판소에 물어볼 수도 없고…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할까요? 그나저나 만약 제 생각대로 미실이 황후가 된 후에는 이혼해야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세종은 그냥 낙동강 오리알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세종은 무엇 때문에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그야 당연히 멍청하기 때문이라고요? 아~ 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문제를 푸는 재미도 있습니다. 대체로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데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이미 드라마에서 여러 장치들을 통해 어느 정도 신경을 쓰면 알 수 있도록 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 힌트를 주기도 합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은 오히려 관심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드라마 제작진의 고도의 계산이 깔린 전술이란 생각이 듭니다.
 

시중에 많이 나온 <소설 선덕여왕>들도 답을 맞히는데 한 몫을 합니다. <필사본 화랑세기>를 읽어본 독자라면 더 쉽습니다. 구체적인 예가 이번에 문노가 낸 문제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너무 어려워서 아마 맞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요. 닌자 임무를 열심히 수행하며 미실의 총애를 받는 보종이 아니고선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두 번째 비재의 정답은 화랑세기에 나온다
 
그러나 두 번째 문제는 사실 화랑세기를 유심히 읽어본 독자라면 쉽게 맞출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덕업일신 망라사방" 이는 화랑세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라란 이름의 세 가지 의미를 전하는 국사를 미실이 조작한다든지, 이를 간파한 거칠부가 밀서를 통해 진흥왕의 소엽도에 새긴 세필을 살피라고 하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입니다.

어쨌든 두 번째 문제의 정답은 삼한통일입니다. 신라란 이름은 서라벌이 세력을 팽창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며 결국 그 끝은 고구려와 백제를 통일하는 것으로 완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미실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 회상이란 결국 미실이 황후가 되려고 했던 음모에 관한 것들입니다.

진흥왕이 죽은 후―미실이 독살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게 되었다―미실은 진지왕에게 황후 자리를 약속 받고 왕관을 건네지만 진지왕은 약속을 어깁니다. 진지왕을 몰아내고 진평을 왕으로 세운 미실은 그러나 이번에도 황후 자리를 얻는데 실패합니다. 격분한 미실은 황실서고에 들어가 국사 중 한권을 불태워버립니다.

그 책에는 지증왕이 유지로 내린 신라의 세 가지 의미가 적혀 있었습니다. 왜 미실은 다른 국사는 놔두고 이 책만을 골라 불살라버렸는가. 거기에 대해선 미실의 회상이 자세히 설명해줍니다. 무력증진, 신흥세력, 삼한통일, 이 중 마지막 세 번째 삼한통일이란 실로 '이룰 수 없는' 원대한 이상입니다. 그러나 이는 왕권강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왕권이 강화된다는 것은 반대로 귀족들의 권한이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황후가 된다면 왕권이 자기 것이 되므로 이 유지는 가치 있는 것이지만, 이제 황후전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진골귀족에 불과한 자신에겐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이루어져서도 안 되는 유지라고 미실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이 기록된 국사를 태워 없앤 후 새로 만들게 한 것입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미실에게 삼한통일은 하나의 이용물일 뿐

참으로 무서운 여자입니다. 삼한통일의 대의마저도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용합니다. 그리고 자기 권력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그 대의마저 부정하고 탄압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덕만공주는 삼한통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녀는 아직 신라의 의미를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번 주 마지막 장면에서 진흥왕의 소엽도에 세필로 새겨진 '덕업일신'을 읽는 것으로 드라마는 끝났습니다. 다음 주에 그 다음 구절, '망라사방'을 읽고 마침내 삼한통일의 대업이 신라왕의 임무임을 깨닫게 되겠지요. 그녀가 왕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서라벌로 돌아온 것은 그녀의 언니 천명이 자기 눈앞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미실에게 복수하기 위해 왕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공주 신분만으로는 미실을 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게 출발한 그녀는 문노를 만나 차츰 신라왕의 대업에 대한 깨우침을 얻게 됩니다. 문노도 결국 진흥왕이 예언한 개양자를 위해 마련된 장치였습니다. 개양자가 가는 길을 안내하는 등불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덕만공주는 삼한통일의 대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왕권강화를 위한 강력한 기제라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덕만공주의 깨우침이 이걸로 끝날까요? 그렇다면 덕만공주는 미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미실도 덕만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공주님은 이 미실보다 훨씬 간교합니다."

성골의 신분으로 자기 권력을 확보하고 확대하는 데만 골몰한다면 틀림없이 미실의 말처럼 덕만은 미실보다 더 간교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미실은 태어나면서부터 권력 속에서 권력과 함께 권력을 누리며 자랐습니다. 미실은 늘 미천한 자신의 신분을 탓하며 살았지만, 사실은 미실의 신분이 그렇게 미천하지 않습니다. 

민중 속에서 만들어진 덕만의 꿈은 삼한통일도 민중적으로 해석할 것

그녀는 진골귀족 중에서도 권세가 막강한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늘 황제와 가까운 거리에서 황후의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성골이 아닌 것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녀는 "내가 만약 성골이었다면, 그리고 황후가 될 수 있었다면 아마 다음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내가 보기에 별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황후전을 차지하지 못하게 되자 지증왕의 삼한통일의 유지가 전해지는 국사를 불태운 그것이 그녀의 본심입니다. 이에 비해 덕만은 어떻습니까? 그녀는 비록 성골이라고는 하지만 민중 속에서 자랐습니다. 민중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녀는 민중의 고락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 자신이 민중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그녀가 삼한통일의 대업을 받았을 때 그것을 단순히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할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민한 그녀는 그러지 않으리라 봅니다. 마음이 따듯한 그녀는 분명 다른 대의를 찾으리라 봅니다.  

당시는 삼국이 국경을 맞대고 각축을 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였습니다. 늘 전쟁으로 백성들은 피폐했습니다. 어느 누가 통일을 이루지 않고서는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종식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에서 불거져 나온 전쟁과 협상의 노예'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켜야만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덕만공주는 틀림없이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눈물이 흐르지 않는 나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삼한통일의 대업은 권력기반의 문제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의 문제임을 직시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처음부터 공주가 아니라 민중 속에서 민중과 함께 자란 민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미실과 확연히 다른 점입니다. 

백성의 삶과 무관한 삼한통일은 그저 전쟁놀음일 뿐이다

아마도 이 지점은 지증왕도 생각한 것이 아니었으며, 진흥왕이나 문노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을 겁니다. 물론 그 시대의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방 같은 평민이라면 신라의 의미를 단박에 깨달았던 것처럼, 덕만공주라면 지증왕이 생각한 이상을 생각하는 지혜를 가졌을 게 분명합니다.

아무튼 다음 주를 기대해보지요. 다음 주엔 보종이 유신랑에게 실컷 혼나겠군요. 참고로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종은 유신랑의 부제가 됩니다. 그리고 유신랑의 뒤를 이어 풍월주에 오르죠. 이 점을 살피면서 드라마를 보신다면 향후 덕만공주와 미실의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될지 가늠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건강한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뻔'한 결과를 알면서도 유신과 보종의 결투가 기다려지는군요. 이것 참…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을 보면서 가장 한심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진평왕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국의 황제가 가장 한심해 보이는 것이다. 진지왕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일개 궁주인 미실에게 끌려 다니다 결국 왕좌를 잃고 죽음을 당했다. 덕분에 그의 아들들, 용수와 용춘은 성골의 자리에서 밀려나 진골로 족강되었다.
 

그러면 이 두 명의 황제가 이토록 한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욕심 때문이다. 그 욕심이 황실을 보호하려는 대의에 따른 것이든 권좌를 지키려는 사욕이든 그 출발은 욕심이다.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두려움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만약 이 두 황제가 욕심을 버리고 과감한 결단의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내전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 결과는 뻔하다. 군권을 쥐고 있는 미실을 대적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한 가지 효과는 거둘 수 있었다. 미실에게 역적이란 낙인을 찍는 것이다. 진지왕이라면 특히 그랬어야 했다. 어차피 그는 죽은 목숨이 아니던가. 

진평왕의 경우는 더 기가 막히다. 그래도 진지왕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노력은 했다. 미실을 끝까지 황후에 봉하지 않음으로써 최소한의 체면은 지켰다. 그런데 진평왕은 어떤가? 아내의 황후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자식을 버렸다. 심지어 죽일 생각까지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평왕은 약간의 부성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일까? 

부성은 인류의 발명품이다?

물고기들이 보여주듯이 원래 생명체가 바다에 있을 때 새끼를 번식하고 키우는 책임은 수컷에게 있었다. 루이지 조야가 <아버지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것처럼 암컷은 물속에 난자를 방출함으로써 모성을 완수하고 떠나는 첫 번째 존재였다. 그 다음 임무는 수컷이 정액을 난자들에 발산하고 이어 태어난 새끼들을 돌보는 책임까지 맡았다.

그러나 생명체가 바다에서 나와 마른 대지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의 본능적 방식은 역전된다. 정자와 난자를 함께 위탁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물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자 체내수정을 시작한 생명체들은 암수의 역할이 뒤바뀌게 된다. 수컷은 먼저 생식 행위를 종결짓는 첫 번째 존재가 되고 번식의 임무를 암컷에게 넘겼다.       

긴 진화의 시간 속에서 고등한 동물 수컷일수록 가족관계에 정자의 제공이란 역할 외에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 쪽으로 발달해왔다. 부성이 길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인류를 통해 부성이 돌아왔다. 오늘날 부성은 모성과 더불어 인류의 가장 위대한 특징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루이지 조야에 의하면 모성이 본능적인 것이라면 부성은 문명적인 것이다.  

즉 인류에게 부성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고 문명의 발생과 더불어 필요에 의해 생긴 것이다. 또는 부성의 귀환이 문명의 발생을 촉진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부성이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 발명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고단한 작업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오늘날 인류에게 부성은 모성과 더불어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아버지란 무엇인가 - 10점
루이지 조야 지음, 이은정 옮김/르네상스

모성과 달리 '본능을 억누르면서 사회적으로 선택된' 것이 부성이라는 루이지 조야의 가정이 아니더라도 부성은 모성과 달리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선덕여왕』에서 마야부인이 천명에게 했던 말을 들어보자. "폐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다.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다른 거란다. 게다가 네 아버지는 아버지기 전에 왕이다."

자식을 앞에 두고도 자식이라 부르지 못하는 진평왕은 한심한 것일까, 이기적인 것일까?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진평왕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확하게는 자기 부인을 지키기 위해 딸을 버린 것이다. 혹독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섹스 파트너를 지키기 위해 딸을 죽이려고 했다는 가정도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진평왕은 딸을 지키려는 것도 마야부인을 지키려는 것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안위와 황제의 지위가 불안했을 뿐이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부성을 발휘해 가족을 지키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그래서 가족 중 하나를 희생시키는 결단을 했던 것이라면 덕만의 말처럼 20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무지 설명할 길 없는 모순이다. 그에겐 문명적 부성보다 생존 본능이 앞섰던 것은 아닐까?  

덕만이 일식을 이용해 본래의 신분을 되찾고자 몸부림치는 중에도 진평왕은 머뭇거리기만 한다. 이때 과감히 몸을 던져 나선 것은 마야부인이다. 그녀는 어머니였다. 그녀의 모성은 자식을 보호하려는 뜨거운 피로 용솟음친다. 그러나 이런 모성 앞에서도 부성은 머뭇거리기만 한다. 모든 사회적 관계를 먼저 고려해야 하는 왕이기 때문에? 

물론 모성의 강력한 이끌림에 진평왕도 마침내 부성을 발휘해 덕만을 공주로 선포하는 조처를 취하긴 하지만, 그 한심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 드라마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역시 여성들의 역할이다. 그 중심에 덕만과 미실이 있다. 물론 모성이 생략된(또는 생략한) 특수한 여성들이긴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강하다.

반면에 남성들은 한없이 약하고 무기력하고 의존적이다. 『선덕여왕』에서 진평왕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무능하고 이기적이며 연약한 남성의 표상이라고나 할까? 그에 반해 마야부인의 모성은 원시적 본능에 투철하다. 역시 문명의 힘보다는 자연의 힘이 위대한 것인가. 아직 부성은 태초에 부여받은 원초적 본능을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인가.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우리는 진흥왕이 국선 문노를 불러 국조의 예언에 대해 말한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덕여왕이 30회를 넘겼으니 벌써 넉 달 전의 일이라 까마득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 국선 문노는 진흥왕으로부터 국조의 예언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계양성이 둘로 갈라지는 날, 즉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개양자가 온다는 예언입니다.


베일에 싸인 진흥왕의 지시는 무엇이었을까

개양자를 진흥왕은 미실에 대적할 자라고 했습니다. 그가 오기 전에는 아무도 미실에 대적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매우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껏 문노를 기다려왔던 것입니다. 그가 비밀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가 나타나는 날 우리는 베일에 가려진 비밀을 알게 될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타날 듯 말 듯 하면서 속을 태우더니 드디어 다음 회부터는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문노가 품고 있는, 진흥왕으로부터 받은 예언이 무엇일까 궁금증을 더욱 부채질합니다. 그런데 예고편에 잠깐 나타난 그의 발언을 보면 무언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예감할 수 있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의 전략 중 하나가 비밀을 슬며시 흘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궁금증을 부채질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작전을 썼습니다. 문노가 비담으로부터 덕만이 왕이 되려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덕만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덕만공주가 왕이 되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소."

그 다음 하나의 비밀이 더 있습니다. 문노는 소화를 만나 따집니다. "왜 허락도 없이 사라진 것이냐?" 소화가 대답합니다. "비담과 혼인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비담과 혼인을 시킨다고? 도대체 누구와? 이미 현명한 시청자들이라면 모두 눈치 챘을 것입니다. 문노는 덕만을 비담과 혼인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덕만을 비담과 혼인시키겠다는 문노의 계획

자, 우리는 이쯤에서 비담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비담은 물론 미실의 아들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가 만들어 낸 픽션에 불과하지만,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비담은 그 출신성분이 철저하게 가려져 있습니다. 원래 역적의 이름은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법입니다.  

비담이 선덕여왕 말년에 상대등이었다는 사실로 보아 그가 진골귀족이었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골이 씨가 마른 상태에서 그는 왕이 될 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드라마의 설정대로라면 그는 진지왕의 아들이며 진흥왕의 손자입니다. 당대 최고의 실력자인 미실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황후전을 주지 않는 진지왕에 분개한 미실은 비담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버린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후에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비담이 나타날 때까지도 그리고 지금도 사실은 비담이 미실의 아들이란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 단지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을 통해 시청자들이 미리 그렇게 짐작한 것일 뿐입니다. 아이러니지만.

그런데 문노는 언제 어떻게 비담을 데려다 키웠던 것일까요? 이건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나 곧 풀리겠지요. 왜 문노는 비담을 데려다 키웠을까? 자신의 절세무공을 전해주면서까지 악녀 미실의 아들을 거두었을까? 나는 이 대목이 가장 궁금했습니다. 거기에 하나의 미스터리가 더 있습니다. 문노는 왜 비담을 장래에 덕만과 혼인시키려 했을까?

악녀 미실의 아들 비담을 거둔 문노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거 정말 궁금해 죽겠습니다. 문노의 행보가 과연 진흥왕으부터 전해 받은 국조의 예언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소화가 돌발행동을 함으로써, 사실 돌발행동이라기보다는 문노의 계획에 찬동할 수 없었던 소화의 착한 마음 탓일 수도 있겠지만, 문노의 (원대한?)계획은 어그러지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문노의 계획은 무엇이었을까요? 혹시 미실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진지왕의 아들이기도 한 비담과 진평왕의 딸이며 계양성의 운명을 타고난 덕만을 혼인시켜 미실에 대항할 계획이었던 것일까요? 그런데 소화가 문노의 치밀한 전략에 뒷통수를 때렸고, 20년이 지나 갑자기 나타난 덕만은 예언을 조작하여 자기 자리를 되찾는 이변을 만들었습니다. 

문노로서는 매우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에겐 매우 흥미진진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비담과 유신이 벌이게 될 마지막 월성전투, 비담의 난과 맞물려 추리해보는 문노의 비밀, 도대체 문노가 알고 있는 국조의 예언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예언을 관철하기 위해 문노가 벌인 계획은 무엇이었을까요? 다음주가 기대됩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일본열도가 돌풍에 휩싸였다. "여성자객들에게 자민당의 대표정치인들이 모두 제거 당했다" "자민당을 초토화시킨 오자와의 미녀자객",  이 돈 될 만한 선정적인 기사를 황색언론들이 가만 내버려둘 리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언론의 이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기사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이다.

일본열도의 대반란을 주도한 신예 여성정치인들

기사에서 의도적으로 선정성을 추구하는 수사만 빼버린다면 "일본 민주당의 신예 여성정치인들이 자민당의 거물들을 침몰시켰다"란 분명한 진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녀들이 단순히 미녀라서, 그것도 아주 젊고 매력적인 에너지를 소유했다고 해서 자민당의 대표적인 거물 정치인들을 물리치고 54년 장기집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일본 유권자들은 모두 바보 아니면 호색한들이라고 말해도 별로 틀리지 않을 텐데,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무어라 속단할 수는 없지만, 바다 건너 일본을 우리가 쉽게 판단하는 것이 무리이겠지만, 간단하게 뉴스로 접한 사실들로 보자면 소위 일본 민주당의 여성자객들은 변화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녀들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법을 알았으며 대중들이 무얼 원하는지 알았다. 이에 반해 노회한 자민당의 노정객들은 의연히 관성의 소용돌이 속에 자신을 내맡긴 채 변화하기를 주저하거나 거부했다. 그들은 일본이 변하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진실은 아직은 내 자유로운 상상력의 울타리 안에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믿는다. 과거로부터 주어진 권위를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환경에 능숙하지 못하다. 그들에게 변화는 매우 불편한 것들이다. 설원공이 개중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으나 그 역시 과거의 권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귀족이 아닌 그의 사고가 가장 열려있다.  

미실과 덕만이 천신황녀의 자리를 놓고 다툴 때 그는 이렇게 진언한다. "덕만의 판에 끌려가지 말고 새주의 판으로 끌어들이세요."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판이 가진 강력한 권력의 힘을 이용하라는 계책일 뿐 진정으로 변화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변화를 주도하며 대중과 소통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선덕여왕

그러나 덕만은 어땠는가. 과감하게 상대의 판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상대에게 자신의 진패를 내보이며 승부를 걸었다. 진패를 허패로 위장하려는 덕만의 계책은 적중했다. 그 무모한 용기에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그것은 대중의 힘이었다. 그녀는 상대의 판에 뛰어들어 미실과 직접 승부를 하고자 했으며 대중들을 여기에 불러들였다. 

물론 덕만이 미실처럼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었다면 대중의 힘을 빌리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실이 덕만에게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공주와 나는 경쟁자가 되겠지만, 횡으로 나누면 우리는 한 팀이에요! 당신과 나는 어차피 지배계급의 일원이니까!"라는 말을 할 때, 그녀도 잠시 헛갈리지 않던가. 

그러나 어쨌든 덕만은 대중과 함께 할 것이고 함께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명부인이 황후 마야부인에게 하는 말은 작가가 이에 대해 우리에게 던지는 암시다. 덕만이 미실을 물리치고 얻은 천신황녀의 자리를 버리고 첨성대를 만들겠다고 하자 이렇게 말한다. "덕만공주가 너무 오래 평민들 속에 살아서 황실의 사고를 못하는 거 아닐까요?"

진정으로 염려하는 이 말은 그러나 사실이다. 덕만은 평민들 속에서 살아왔으며 평민들처럼 사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무얼 필요로 하는지를 알고 있으며 그걸 주려고 하는 것이다. 덕만은 월천대사가 무얼 원하는지를 꿰뚫어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백성들의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걸 미련 없이 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시청하면서 유심히 지켜보았지만,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소통이었다. 드라마 초기에 유신이 천명공주에게 한 말을 기억하는가? "내가 진심을 다 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사람들이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그 진심이란 바로 대중과 마음을 다해 소통하는 것이 아닐까?

첨성대는 통치자가 아니라 대중과 함께 꿈을 꾸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선덕여왕의 의지

그런데 이 소통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덕만이다. 그녀는 평민들 속에서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았고 마침내 <사람>을 얻어 최초의 여왕이 될 것이며, 첨성대를 만들어 하늘의 뜻을 독점하지 아니하고 백성들과 공유할 것이다. 그리하여 백성들과 함께 꿈을 꾸는 그녀는 삼국통일의 반석을 이룰 것이다. 이게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닐까? 

첨성대를 통해 하늘의 뜻을 백성들에게 공개함으로써 통치권의 주요 수단을 놓아버리겠다는 덕만공주의 발상은 노무현을 연상시키기도 했지만―이 부분에 대해선 좀 더 생각이 필요할 듯하고 정리해서 새롭게 올리고 싶다. 작가의 의도를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기도 하고―그러나 무엇보다 여성의 장점이 더욱 두드려져 보이는 장면이었다.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자의 특징과 여자의 특징이 무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할 때, 남자는 운동신경과 지각능력이 발달돼있다. 이에 비해 여자는 지각능력은 떨어지지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다. 이는 오랜 구석기시대에 형성된 유전자의 영향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신석기시대를 포함하여―구석기시대의 기나긴 세월에 비하면 찰나에 속한다. 그러므로 유전자의 대부분이 구석기에 형성된 것임은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구석기시대의 생활양식이란 다들 아시다시피 수렵, 어로, 채취다. 남자들은 주로 수렵에 종사했으며 어로와 채취는 여자들이 담당했다. 

이런 오랜 생활양식은 남자들에게는 뛰어난 지각능력을, 여자들에게는 소통능력을 부여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본능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나는 이 말이 진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오늘날 정치를 주무르고 있는 남자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이던가? 다름 아닌 소통이다. 

그러나 변화의 의지가 중요할 뿐, 소통부재는 유전자 탓이 아니다

보수만 소통이 부족한가? 물론 수구세력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아예 소통 자체를 거부하지만, 합리적 보수든 진보든 소통이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이 지점에서 일본 정계에 쓰나미처럼 불어 닥친 소위 여성자객들의 반란은 예사롭게 보아 넘길 게 아니다. 황색언론들은 이 대반란에 미녀자객이란 섹시함에 포커스를 맞추는 상업주의에 몰두하지만….  

우리가 보아야할 것은 미녀들이 아니라 그녀들의 변화에 민감한 피부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그리고 사람들과 격의 없이 호흡하고 대화하는 능력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세상이 변하고 있다. 천년을 넘게 이어오던 패턴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강한 부성이 지배하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선덕여왕을 비롯하여 천추태후 등 여성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주몽에서도 소서노는 안방이나 지키는 마님이 아니라 당당한 건국의 주역으로 자기를 세상에 알렸다. 이후에 소서노에 대한 많은 관심과 연구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변화하는 세상을 반영한 것이다. 과거에 여자들은 드라마의 뒷방에서 음모나 일삼거나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남자를 괴롭히거나 아니면 정숙하고 단정한 모습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자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이런 게 아니다. 나도 결국 '오디세우스와 아이네아스의 갑옷'에 몸을 숨긴 남자일 뿐인데….

우리도 모두 변화에 민감한 피부를 갖기 위해 마사지를 열심히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말이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근래 보기 드문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제가 보건대 연말 대상은 따놓은 당상인 듯합니다. 틀림 없습니다. 작년에 김명민의 베토벤 바이러스가 있었다면 올해는 단연 선덕여왕입니다. 작년 MBC 대상은 송승헌과 김명민의 공동수상으로 김 빠진 맥주 꼴이 되었지만, 올해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 꼭 그렇지는 않군요. 김남주의 내조의 여왕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청율 등 충성도에서는 선덕여왕이 많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요원 씨, 방심하지 말고 분발해야겠군요. 김남주가 워낙 거물이니… 


선덕여왕을 만든 작가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대장금으로 크게 성공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중입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니 그는 우석훈 씨의 선배이며 운동권 출신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랬었군요. 그래서 제가 늘 선덕여왕 후기를 올릴 때마다 적었지만, 미실의 모습에서 이명박 정권의 잔혹한 모습이 연상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선덕여왕은 재미도 있지만, 철학도 있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늘 선덕여왕 칭찬만 침이 마르도록 해왔던 제가 오늘은 안티를 좀 걸어야겠습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너무 무시한다든지 이런 것은 아닙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비록 시공을 너무 초월해서 픽션을 만들어낸다는 허점이 있긴 하지만,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었을 것이란 이해를 합니다. 대가야의 후예들과 금관가야의 후예들이 같은 가야 출신으로서 동맹을 한다는 허구도 이해합니다. 사실 대가야와 금관가야는 완전히 다른 세력이니 동질감을 가진다는 건 김훤주 기자의 지적처럼 난센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아니 그런 것들은 아예 눈 딱 감고 신경 쓰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저 드라마에 몰입하기만 하면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충분한 행복을 제공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김훤주 기자가 그의 블로그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지퍼 달린 군화도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그런 사소한 선덕여왕 스탭들의 실수를 옥에 티로 블로깅하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은 도저히 참기 힘든 옥에 티가 발견되었습니다. 진평왕 말입니다. 사실은 선덕여왕에선 진평왕을 진평왕이라 하지 않고 진평제 혹은 진평대제라 불러야 할 겁니다. 물론 시호는 왕이 죽은 후에 신료들이 의논하여 올리는 것입니다만, 어쨌거나 드라마에서 신라의 왕은 황제입니다. 실제로 신라가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칭호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왕이 황제보다 격이 낮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황제란 이름은 중국의 시황제가 이전의 왕들과 자신을 구별짓고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주나라 시대까지 제후들에겐 공이란 호칭을 사용했지요. 제나라 환공이니 노나라 양공이니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원래 나라의 최고 통치자는 왕이었습니다. 진시황 이후부터 중국에서는 황제란 새로운 이름을 사용한 것일 뿐이지요. 중국에서 왕 대신 황제란 이름을 사용했다고 다른 나라 왕들이 갑자기 황제보다 격이 낮아진다는 건 엉터리입니다. 

황제나 왕이나 동격입니다. 중국에서만 황제가 왕보다 한 단계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신라의 왕들이 자신을 왕이라 부르건, 마립간이라 부르건 또는 황제라 부르건 이는 위격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진평왕이든 진평제든 황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평왕은 자신을 호칭할 때 과인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진흥대제를 이어 황제가 된 진평이 자신을 과인이라고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짐이라고 불러야 마땅하고 옳은 일이지요. 

고려시대에는 아예 중국처럼 황제들에게 붙이는 묘호인 조와 종을 썼습니다. 삼국을 통일한 김춘추도 태종이란 묘호를 쓰긴 했습니다만, 신라시대에는 아직 중국의 제도나 문물이 정착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조와 종을 선대의 왕들에게 올리는 관습이 정착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원래 하던 전통대로 그냥 무슨무슨 왕이란 시호를 올렸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진평왕이 자신을 과인이라고 부른 것은 난센스였습니다. 

실수였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껏 짐이라고 불렀는데 어제 프로에서만 짐이란 황제의 자기 존칭을 까먹고 과인이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제 기억에도 앞에서는 진흥왕도 자기를 짐이라고 했고 진평왕도 그리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위에 적시한 다른 것들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므로 우리가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그렇네요. 조금만 신경 쓰면 될 것을. 이건 지퍼 달린 군화하고는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이러다 폐하를 전하로 부르는 사건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대본을 만들 때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연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기자도 그렇습니다. 조민기는 자기가 황제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는 집에 가서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때도 늘 자신이 황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선덕여왕이 끝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래야 생생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물론 이건 그저 제 생각일 뿐입니다만. 아무튼 황제가 스스로 짐을 과인으로 깎아내린 사건은 매우 유감입니다.

하긴 조민기 같은 베테랑 연기자도 실수를 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지퍼 달린 군화를 신고 나오든 짐을 과인이라 부르든 우리는 그저 재미있게 보면 되는 거겠지요. 그래도 이런 사소한 실수가 한 번씩 두 번씩 나올 때마다 김 빠진 맥주 마시는 기분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몰입하기가 힘들어지는 거지요. 에이, 저러면 안 되는데… 이런 마음이 자꾸 드니까요. 아무튼 선덕여왕, 제 1막이 끝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소화에게 안겨 사막으로 쫓겨갔던 덕만이 드디어 자기가 태어난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미실과 어떻게 싸움을 벌여갈지 궁금 또 궁금입니다. 그나저나 문노는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겁니까? 오늘 나오려나 내일 나오려나 하고 있는데 계속 안 나오네요, 속 터지게.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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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저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하하. 좀 쑥스럽긴 하지만 이 정도 제 자랑으로 시작하는 걸 너무 나무라진 마십시오. 이것도 다 블로그를 하는 보람 중에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덕만의 이이제이 전략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예언은 예언으로 깬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은 덕만이 쌍생의 하나란 사실을 밝히지 않고서는 자신의 신분을 회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쌍생의 예언을 인정해야만 한다면 결국 쌍생의 예언을 저주가 아닌 복음으로 만드는 방법 외엔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죠.
 

저는 그래서 총명한 덕만이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 새로운 예언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입니다.<7/29,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
http://go.idomin.com/288 8/19, 선덕여왕, 다음주를 예언하는 즐거움 http://go.idomin.com/343> 물론 성골남진의 비문에 이어 개양성의 비밀을 밝히는 새로운 예언이 나타날 수도 있었습니다. 이미 진흥왕이 죽기 전에 국선 문노에게 전한 개양성의 예언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덕만이 스스로 예언을 만드는 게 아니라 국조 혁거세나 진흥왕의 예언이 나타날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드라마 선덕여왕》은 결국 덕만이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걸로 만들었습니다. 그게 더 멋있습니다. 미실의 계략을 역이용하는 기발한 전략, 이것이야말로 덕만이 신라의 왕으로 등극하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는 증좌가 되겠습니다. 이런 덕만의 지혜는 유신과 알천을 비롯한 신라 인재들이 진심으로 충성을 하도록 만들게 될 것입니다. 결국 덕만은 천명이 아니라 스스로 왕이 되는 것이죠. 스스로의 힘으로 말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왕입니다.

자, 그런데 덕만이 만들어낸 혁거세 거서간의 예언이 담긴 비문, 거기엔 개양성이 하늘로 돌아가면 일식이 일어나고 이어 개양성이 다시 서니 신라에 새로운 하늘이 도래한다고 씌어있습니다. 개양성이 하늘로 돌아갔다는 것은 천명공주가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식이 일어나면 나머지 하나의 개양성이 스스로 다시 선다고 했으니 이는 덕만이 공주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뜻이죠. 개양성이 자립하고 새로운 하늘이 도래한다는 것은 덕만의 의지입니다,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그런데 덕만이 일식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미실과 월천대사가 하는 말을 엿들었나요? 저는 한 번도 선덕여왕 보기를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어제는 <블로거스경남>에서 주최하는 블로그 강좌(강사 : 독설닷컴 고재열 기자)가 있어 보지 못했지만, 오늘 인터넷에서 500원 주고 봤습니다. 하여튼 어떤 일이 있어도 저는 선덕여왕을 빼먹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덕만이 어떻게 일식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그게 궁금하네요. 제가 벌써 치매기가 있는 것인지…. 

어쨌든 월천대사도 일식이 일어난다고 했으며, 그 사실을 미실에게도 말했습니다. 게다가 덕만이 만들어낸 혁거세 거서간의 예언이 담긴 비문에도 일식이 일어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일식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혁거세 거서간의 비문은 가짜가 되거나 아니면 개양성이 자립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식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고 또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덕만은 비담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면서 일식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일식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실이 믿게 해야 한다고 주의를 줍니다. 자, 여기서 주목해 봅시다. 비담은 일식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정 앞에서 신통력을 선보이며 백성들의 이목을 모은 후에 개양성의 예언이 담긴 비문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미실 앞에 붙들려 갑니다. 미실에게 잡혀가는 것이 목적이었죠. 그리고 미실에게 일식이 일어날 것임을, 그리고 그 날짜를 내가 알고 있음을 믿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실이 어떤 사람입니까? 상대의 심중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난 계략가입니다. 그래서 비담에게마저 일식은 없을 것이라고 속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미실은 덕만이 자신에 필적할 지모와 방략을 지녔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미실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예고편을 보면 미실은 일식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다고 합니다. 이 대목은 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입니다. 미실은 이미 미생공과 월천대사로부터 일식이 있을 것임을 암시 받았습니다. 다만, 그 날짜를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선 정광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을 뿐입니다. 

만약 오늘 드라마에서 정말 미실이 일식이 없다고 선언한다면 이는 미실의 실수가 아니라 드라마 제작진의 실수입니다. 미실이 갑자기 그렇게 멍청해진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미실의 다른 숨은 의도가 있든지. 하여간 덕만, 정말 대단합니다. 미실을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자신의 명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비담마저 속입니다. 좀 비유가 아름답지 못하긴 합니다만, 옛날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이 생각납니다. 

맥아더의 이 작전은 손자병법에도 나오는데 유명한 동성서취 전략이죠. 원산을 공격할 것처럼 하면서 인천으로 갔던 겁니다. 원산공작에 투입되었던 특공대원들은 죽을 때까지도 원산상륙작전을 믿었을 것입니다. 2차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성'에 투입된 어떤 임무조에게도 절대 '서취'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철칙입니다. 비담이 투입된 것은 상대를 기만한다는 의미에서 결국 동성작전입니다. 덕만이 얻고자 하는 서취가 어떤 것인지 비담은 알지 못합니다. 

덕만은 이미 미실의 잔머리 수준을 여러 차례 보았고 잘 알고 있습니다. 잔머리에는 잔머리로…. 그러나 덕만의 잔머리는 기가 막힌 반전이 담긴 절묘한 것입니다. 거기다 자신의 명으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하에게마저 속임수를 쓰는 냉정한 가슴마저 지녔습니다. 이제 차츰 미실보다 더 무서운, 미실보다 더 미실다운 덕만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오싹해지는군요. 그러나 미실의 꾀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이용되지만, 덕만의 꾀는 사람을 살리는 데 이용됩니다. 

그러므로 예고편에서 보여준 비담의 최후는 이루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덕만이 반드시 비담을 구하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죠. "나는 너를 구할 수 없다. 살고 싶다면 네 힘으로 살아라!", 라고 말했지만 덕만이 그렇게 모진 사람이 아니죠. 부하를 사지로 몰아놓고 가만 있을 우리의 선덕여왕이 아니란 건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 가게를 잃을 수 없다며 버티는 백성들에게 무장특공대를 투입해 죽게 만드는 어떤 대통령하고는 차원이 다른 지도자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비담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죠. 역사에서 비담은 선덕여왕과 같은 해 죽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비담은 결코 죽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드라마고 작가의 마음이 엿장수 마음과 같은 것이라지만 실존인물의 죽음까지 조작할 수는 없는 일일 테지요. 아무튼 오늘 밤이 기대 됩니다. 흐흐~ 그나저나 우리의 문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이런 중요한 때 나타나지도 않고 말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서 진흥왕이 남긴 경천동지 할 예언이라도 선포하려고 준비 중인 걸까? 궁금해 죽겠네요. ㅋㅋ 
 

ps; 오늘 드라마를 보니 비담 뿐 아니라 유신과 알천, 진평왕과 황후 마야부인, 김서현과 만명부인 등 자기를 뺀 모두를 속였네요. 완전 클라이막스였습니다. 재미있고 시원하네요. 으하하~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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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만의 무기, 예언은 예언으로 이긴다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중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맞춰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사실 드라마 선덕여왕은 골든벨에서 학생들이 푸는 퀴즈를 같이 풀며 즐기는 시청자들의 심리를 잘 꿰뚫고 있는 듯하다. 선덕여왕 제작진은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미리 퀴즈의 답을 슬며시 흘리는 전술을 쓰기도 한다. 사다함의 매화가 그랬고, 비담의 김남길이 그렇게 이용되었으며, 김춘추 역의 유승호도 역시 그랬다.  

그러나 선덕여왕을 보면서 가장 궁금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미실이 어떻게 무너질까 하는 것이었다. 미실이 무너지기 위해선 첫 번째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 덕만공주의 복권이다. 그러나 덕만공주가 복권되기 위해선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예언, 쌍생의 저주다. 진평왕이 미실 앞에서 떠는 이유이며 덕만이 사막에 버려진 이유, 성골남진의 예언이다. 이 예언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한 힘을 잃지 않도록 만드는 마력 같은 존재였다.

사실 나 역시 많은 시청자들이 그러하듯 쌍생의 저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작은 퀴즈문제를 풀어가는 데 재미를 느꼈다. 그러나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역시 저주를 어떻게 풀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오늘 드라마 선덕여왕 예고편에서 그 힌트가 나왔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저주를 깨뜨릴 새로운 예언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물론 다음주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쌍생의 저주를 깨뜨릴 새로운 예언, 예언은 예언으로 제압한다, 나는 이미 진즉에 이 사실을 예언(?) 하지 않았던가. 혹시 나의 선덕여왕 후기를 꾸준하게 읽어주신 신실한 독자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7월 29일자 <선덕여왕,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에서 쌍생의 저주를 푸는 방법으로 나는 두 가지를 말했다. 하나는 천명공주가 죽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이라고. 

http://go.idomin.com/288  선덕여왕,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

이제 바야흐로 덕만의 정체가 드러났다. 어출쌍생의 저주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모두 쉬쉬하며 숨겨왔지만 이제야말로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모든 것이 내던져졌다.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 대등 을제는 진평왕에게 왜 덕만을 땅에 묻어 어출쌍생의 저주를 자르지 않았느냐고 다그치고 미실도 덕만의 실체를 눈치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덕만과 천명은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문제의 쌍생의 저주를 어떻게 풀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둘 중 하나, 즉 천명공주와 덕만공주 중 하나가 지금이라도 죽으면 될 일이다. 덕만은 선덕여왕이 될 인물이니 당연히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천명의 몫이다.

그러나 그건 지금까지 보여준 선덕여왕의 주제의식에 맞지 않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사람이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미실은 사람을 죽여 사람을 얻지만, 덕만은 사람을 살려 사람을 얻고 결국 미실을 이긴다는 게 주제다. 그렇게 본다면 쌍생의 저주에 굴복해 천명이 죽는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주제 설정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은 해답은 하나다. 덕만이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이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미실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늘의 뜻은 없다고. 있다면 오로지 미실의 뜻만이 있을 뿐이라고. 천문을 아는 미실이 하늘을 이용해 예언을 퍼뜨리고 계시를 만들었던 것이다.  

덕만이 서역의 상인들 틈에서 천문을 익혀왔다는 사실, 그녀에게 정광록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실에게 대적할 사람은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온다고 한 예언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리) 덕만이 사람을 얻어 천하를 다스릴 조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쌍생의 저주를 풀지 않고서는 결코 왕이 될 수 없다. 

천명이 죽든, 새로운 예언을 만들든… 그러나 나는 김유신의 말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과거의 너는 잊어버려. 그런 게 무슨 소용이야. 앞으로 만들어갈 덕만이 네가 더 중요한 거야. 너는 앞으로의 너를 만들어가야 해." 그렇다. 이 말이야말로 해답이다. 과거에 붙들리고서 저주를 풀 방법은 없다. 미래는 과거의 예언이 아니라 만드는 자의 것이니까.

  
쌍생의 저주, 계양성의 예언에 무너진다

물론 내 짐작이 모두 들어맞은 것은 아니다. 나는 두 가지 중 하나의 방법으로 저주가 깨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응당 새로운 예언을 통해 쌍생의 저주를 깨뜨리고 미실로부터 천의를 빼앗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천명공주가 설마 죽으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덕여왕 제작진은 과감하게 천명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 덕만에게 증오를 부추겼다. 나는 여기서 절망했다.(실은 절망이랄 건 없고 그저 실망이지만…) 아, 나의 예언이 빗나갔구나. 


그러나 오늘 나는 마지막 예고편을 보며 다시 희망을 되찾았다. 그래 내 생각이 맞았어. 예언을 깨뜨리는 방법은 단 하나, 오로지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뿐이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 새로운 예언이 이미 혁거세 거서간이 쌍생과 성골남진의 예언을 만들 때 함께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진흥왕이 안배한 것인지, 또 그 예언을 덕만의 힘으로 찾아낸다는 것인지 아니면 바람처럼 나타난 문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질 것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미실의 천의를 깨뜨릴 새로운 천의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예언이란 것이 나타날 것을 이미 내가 예언(!)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천명이 죽음을 맞이한 것은 매우 슬픈 일이며 나의 착오다. 이는 선덕여왕 제작진이 쌍생의 저주를 깨뜨릴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쓰는 초강수를 두었기 때문이다. 덕만에게 증오와 투쟁의지를 북돋우고 동시에 쌍생의 저주를 깨고 당당하게 복권한다는 시나리오는 역시 작가에게만 허용된 상상의 날개였지만…, 

나는 즐겁다. 이독제독, 하늘의 뜻은 하늘의 뜻으로 물리친다. 이렇게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는 보는 그 자체만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내다보고 다듬어간다는 데에도 있을 것이다. 또 선덕여왕을 통해 알지 못했던 고대사회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만만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가끔 내가 예측했던 것이 맞았을 때 느끼는 희열은 무엇에 비기기 힘들 정도로 뜨겁다. 그래서 즐겁다. 그러나 한편 패도는 패도로써 누르겠다는 덕만의 대사를 들으며 슬픈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큰 별이 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왔던 분들이다. 그들의 공과에 대하여는 역사가 말할 것이다. 그들의 집권 10년 동안 신자유주의로 고통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서민도 많다. FTA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 나라는 관용과 포용이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했다. 노무현은 자기에게 주어진 칼마저 버리는 결단을 취하기도 했다. 

패도가 아니라 관용과 포용이 세상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시대는 과연 요원한가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중이 손에 쥐어준 칼을 왜 쓰지도 못하고 버렸는가. 그래서 결국 그 칼에 자신이 당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덕만이 비장한 표정으로 "패도는 패도로써 제압하겠다! 미실이 한 똑같은 방법으로 신라를 먹겠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며 이제 영면의 길로 들어선 두 사람의 모습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그들이 덕만이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으리라. "패도는 패도를 낳는 법! 관용과 포용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어 천하를 태평하게 하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덕여왕을 만드는 제작진이나 나나 그런 상상력을 발휘할 만큼 이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노무현 대통령에 이은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이 그래서 더 안타깝고 슬픈 이유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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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 축구경기로 말하자면 후반전에 들어섰습니다. 지금까지는 미실의 일방적인 공격에 덕만과 천명이 방어에 급급한 형국이었다면, 이제 본격적인 덕만의 공격이 시작될 태세입니다. 사실 덕만은 경기를 지배할 마음이 별로 없었죠. 그녀에게 관심사는 자기 출생의 비밀에 대해 밝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왜 미실과 칠숙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지, 왜 엄마가 죽어야 했는지, 이 모든 비밀을 밝혀내는 게 그녀의 목표였지요.


천명의 죽음에 분노하며 미실과 대결하고자 각오를 다지는 덕만
그런데 이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미실이 왜 그토록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지도 알았고, 부왕이 왜 자기를 내다버렸는지도 알았으며, 을제 대등이 왜 자기를 소리 없이 죽이려고 했는지 그 이유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혁거세 거서간 이후로 전해 내려오는 황실의 예언 때문입니다.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 결국 이 예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력투쟁의 와중에 언니 천명공주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언니의 죽음을 목도한 그녀의 가슴에 새로 싹튼 것은 분노입니다. 이미 이 분노에 대하여 《선덕여왕》은 여러 차례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미실이 덕만에게 말했지요.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뿐이니라. 하나는 도망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노하는 것이니라." 유신 역시 이 분노에 대해 말합니다. 미실에게 무모하게 대적하지마라고 충고하는 김서현에게 유신은 외칩니다. "아닙니다. 분노가 먼저이옵니다. 우리 집안의 이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미실의 수를 생각하기 전에 분노가 먼접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 하늘의 뜻이란 것이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필시 하늘의 뜻을 살펴볼 재주를 가진 자를 통해 세상에 오는 것인가 보다." 미실의 뜻을 거슬러 상천관은 미생의 아들 대남보를 시켜 덕만을 죽이려 했고 이 음모에 뜻하지 않게 천명공주가 희생되는 불운을 당하고 맙니다. 만약 상천관이 미실의 뜻에 거역하지 않았다면, 덕만은 조용히 중국이나 타클라마칸의 사막으로 떠났거나 설원에게 붙잡혀 미실 앞으로 끌려왔을 것입니다.

후자가 미실의 야욕을 채우는 데 훨씬 유용했겠지만, 사실은 두 가지 다 미실에겐 나쁘지 않은 수였습니다. 그런데 상천관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일을 그르치게 되었습니다. 미실은 예전에 없던 최대 위기에 봉착했고, 나아가 상천관이 엿본 하늘의 뜻이 계시하듯 무서운 적을 다시 서라벌로 불러들이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중요한 전투에서 지휘체계가 무너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 예입니다.  

(잠깐) 상천관은 천관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랍니다. 신라시대 천관은 여자들이었죠.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국가의 천관들도 모두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주몽이나 태왕사신기에서도 하늘의 계시는 신녀들이 받았습니다. 천관녀와 김유신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지요. 김유신이 결국 말의 목을 잘라 천관녀와의 관계를 정리했지만… 그런데 궁금한 건, 왜 남자는 하늘의 계시를 못 받는다는 거지요? 불공평하잖아요?  

상천관, 미실의 하늘을 깰 자 덕만을 다시 서라벌로 불러들이다
그러나 미실은 아직 모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사실 상천관이 미실의 뜻을 어기고 덕만을 죽이려고 했던 것도 다 천기를 통해 미래를 슬며시 엿보았기 때문이었죠. 미실은 그런 상천관을 못마땅해 하며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라고 핀잔을 줍니다. 미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죠. 미실의 예언대로 일식이 일어나자 놀라 벌벌 떠는 덕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의 뜻 같은 건 없느니라. 있다면 오로지 이 미실의 뜻만이 있을 뿐이지." 

젊은 시절의 미실은 천의를 두려워했지만,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황제마저도 떨게 만드는 그녀에게 이제 하늘의 뜻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기억나십니까?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으로 쪼개지던 날 밤, 미실이 두려움에 몸을 떨며 쌍둥이를 잡아오라고 군사를 다그치던 모습…. 그러나 세월은 하늘마저도 무시할 정도로 그녀를 오만하게 변화시켰습니다. 미실의 자만심이 천의마저도 부정할 정도로 오만해지게 된 배경에는 물론 '사다함의 매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미실이 진정 모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덕만이 자신이 가진 하늘의 뜻을 거꾸러뜨릴 또 다른 하늘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음 주 예고편에서 정치적 위기에 처한 미실 일파는 계략을 꾸밉니다. 역시 미실의 주특기인 하늘의 뜻을 빌려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일식을 만들겠다는 거죠. 그러나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광력이 있어야 한다고 월천대사가 말합니다.

여러분, 기억나시는지요? 정광력. 그 정광력이 누구 손에 있었지요? 바로 덕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덕만이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로마와 서역의 상인들을 도와준 대가로 정광력을 받고 온 세상을 얻은듯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우리 모두 덕만의 손에 들린 그 낡은 책자가 엄청난 일을 할 것임을 예감했었습니다. 선덕여왕이 첨성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죠.

덕만의 정광력, 마침내 미실의 천의를 꺽을 것인가
그리고 사다함의 매화가 대명력이란 사실이 밝혀졌을 때, 우리는 모두 역시 그랬구나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미실이 대명력으로 천의를 가로챌 때, 나는 왜 덕만이 정광력을 꺼내들고 대항하지 않는지 그게 몹시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광력이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미실이 가진 사다함의 매화를 물리칠 '타클라마칸의 낡은 책자'…. 마침내 덕만공주와 미실이 하늘의 뜻을 두고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덕만이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을 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기는 바로 이 정광력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이제이, 하늘의 뜻은 하늘의 뜻으로 제압한다는 말로도 바꿀 수가 있겠지요. 덕만이 정광력을 잘 간직하고 있기는 한 건지, 혹시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과정에서 분실되거나 훼손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흐흐~ 별 걱정을 다 합니다. 스텝들이 잘 보관하고 있을 텐데 말이죠. 자, 과연 하늘의 뜻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다음 주가 기대됩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왜? 덕만공주가 선덕여왕 자리에 올랐을까요? 천명공주는 무엇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일까요? 그보다 한술 더 떠 (드라마상이긴 해도) 천명공주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요? 삼국사기는 덕만공주를 진평왕의 장녀로 묘사하고 있지만, 삼국유사는 진평왕의 장녀는 천명공주이며 덕만공주는 차녀라고 하고 있습니다. 화랑세기도 또한 유사와 같이 덕만을 차녀라고 하고 있지요. 그러고 보니 유사와 세기가 비슷한 점이 많고 사기만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째서 천명이 아니라 덕만이 선덕여왕이 되었을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삼국사기는 김부식이라는 중앙관료가 정권 차원에서 집필한 역사서입니다. 따라서 당시 집권세력의 이데올로기가 잘 반영된 기사들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세기와 유사는 집필자의 의도에 따라 보다 자유로운 기사 작성이 가능했으리라 봅니다. 그런 면을 고려한다면, 삼국사기보다는 삼국유사가 더 진실에 근접했을 수도 있습니다. 덕만을 장녀로 묘사한 것도 따지고 보면 신라왕조의 후예인 김부식으로선 당연한 기술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집권세력의 이데올로기든 집필자의 자유로운 의도든 주관이 개입되어있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습니다. 유사가 사기에 비해 150 년 정도 후대에 씌어졌다고 하지만 이 역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점에선 두 기사 모두 차이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화랑세기의 위작논란도 사실 생각해볼 대목이 많습니다. 화랑세기가 위작이라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위작일 가능성은 없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어떤 역사서든 어느 정도의 위작은 가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동양의 유명한 역사서로 사서의 바이블이라 할 사마천의 사기도 결국은 기자의 주관적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점에선 위작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사마천이든 김부식이든 일연이든 고증에 많은 땀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화랑세기의 위작논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화랑세기는 김대문이란 당대의 인물이 당대의 이야기를 저술한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화랑세기가 진본이라고 했을 때 그 폭발력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사실 기존 역사학계의 입장에서 보면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왜 덕만이 천명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을까? 물론 이 질문은 어디까지나 유사나 세기의 기사를 사실로 가정하고 하는 것입니다. 사기의 입장에 서면 이런 질문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왜? 당연히 장녀인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게 순리니까요. 

그러나 세기나 유사의 눈으로 보면 이는 당연히 들 수 있는 궁금증입니다. 성골 남자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장녀인 천명을 제치고 덕만이 왕위를 계승했을까? 진평왕이 재위 54 년 동안 왕자를 한 명도 생산하지 못했거나 생산했더라도 모두 죽었다는 성골남진에 대한 의문에 대해선 일단 덮어두기로 합시다. 유사에서도 선덕여왕 등극의 비밀을 여는 열쇠로 성골남진을 지목했으므로 지금으로선 성골남진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여왕 출현의 이유일 수밖에 없습니다.

선덕여왕 등극의 이유는? 천명이 무능했기 때문
그러나 삼국유사는 단지 성골남진을 지목했을 뿐 차녀인 덕만이 등극한 이유에 대해선 언급이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화랑세기가 보다 많은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요. 요즘 《드라마 선덕여왕》의 인기에 힘입어 출판계에서도 선덕여왕 출간 붐이 일고 있습니다. 서점의 신간 코너에 가보면 온통 선덕여왕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로 화랑세기를 텍스트로 하는 이 소설들은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이 대부분입니다. 그 중에 한 권으로 된 소설 선덕여왕도 있습니다.

선덕여왕 - 10점
신진혜 지음/창해

   


창해출판사가 간행한 신진혜 저 선덕여왕입니다. 전질로 된 선덕여왕에 질린 독자라면 300여 페이지 정도로 간결하게 만들어진 부피에 우선 안도할 것입니다. 이 책은 주로 덕만이 공주의 신분으로 천명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경위와 김춘추와 김유신을 중용해 왕권을 확립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빠르고 박진감 넘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며 들었던 궁금증들을 이 한 권의 책이 충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천명공주는 장녀로서 부군(태자가 없을 경우 왕위 계승권 1순위자에 내리는 칭호로서 태자가 생기면 그 지위는 해소된다)의 위치에 오르지만 매우 유약하여 결단력이 없습니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제 1의 자질은 결단력입니다. 다른 모든 것을 참모가 해주더라도 오직 하나 이 결단만큼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결단은 오로지 최고 지도자의 몫입니다. 천명공주에겐 이것이 부족했습니다. 이 결단력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전반부에 등장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화랑세기에서 차용한 것이겠지요. 천명부군은 용춘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용춘은 세속에 관심이 없고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합니다. 그래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용춘의 형인 용수는 세속적 권력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쨌든 용춘을 좋아하는 천명은 어느 날 모후에게 털어놓습니다. "어머니, 저는 용숙이 좋아요. 용숙공과 혼인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런데 용숙을 용수로 잘못 알아들은 마야부인과 진평왕은 천명의 남편으로 용수를 정하고 맙니다.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게 된 데에는 천명공주의 우유부단함이 작용했습니다. 천명이 차마 용춘이란 이름을 입에 담지 못하고 용숙(龍叔)이라 했던 것입니다. 그리 말하면 응당 자기 마음을 알고 있는 모후가 용춘을 부마로 삼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마음이 유약하고 온순한 사람의 특성이 바로 이겁니다. 남들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고 확실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하길 기피하는 것이지요. 이런 마음은 사실 연약한 희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말 실수로 용춘이 아닌 용수에게 시집가는 천명공주
사태가 어그러졌으면 문제를 일으킨 본인이 해결해야 함에도 천명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결국 덕만이 부왕 앞으로 나가 사태의 진실을 고하고 바로잡아 줄 것을 청합니다. 그러나 이미 결정된 왕실의 혼사는 번복할 수 없다는 대답만 듣게 되지요. 이때 진평왕의 옆에서 덕만공주를 바라보던 원광법사는 그녀의 자질이 왕재임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진평왕에게 덕만의 스승이 되겠다고 자청하지요. 헤게모니가 천명에서 덕만으로 넘어가는 순간입니다. 

오늘 드라마를 보니 내일 천명이 죽게 될 모양이군요. 화랑세기의 기사나 소설 선덕여왕들이 다루는 것과는 다르게 천명공주는 지금껏 강인한 결단력으로 화랑들을 통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은 김서현까지도 발아래 꿇게 만들었지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내일 천명공주가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저주 때문에 두 명의 공주 중 한 명이 죽어야 한다는 것도 대답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둘 중 누가 하나 먼저 죽든 말든 어출쌍생은 일어난 것이며 성골남진의 저주도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죠. 둘 중 하나가 죽더라도 성골남진의 저주가 풀리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죽어야 했을까요? 아니 죽여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성골남진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차녀가 왕이 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를 이 드라마에선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덕만이 천명을 제치고 왕이 되려면 천명이 무능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드라마에서 천명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천하의 김서현을 발아래 꿇리고 알천과 유신을 복종하게 하는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부왕인 진평왕보다 더 뛰어난 지도력을 가졌습니다. 이런 천명공주가 살아있는데 덕만공주가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게다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왔는지도 모르는 덕만공주가 왕위에 오른다면 이건 천지개벽이죠. 그러니 《MBC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천명공주가 죽지 않고서 선덕여왕이 탄생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딜레마는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이 스스로 만든 것일 테지요. 아마 의도는 이런 것이었을 겁니다. 천명을 죽임으로써 자연스럽게 덕만의 왕위계승 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덕만으로 하여금 미실과 건곤일척의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노린 것입니다. 이 역시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덕만의 가슴에는 자기 존재를 찾아야겠다는 집념과 더불어 불타는 증오와 분노가 얹어졌습니다.
 
천명공주의 죽음은 덕만을 왕위에 올리기 위한 드라마 제작진의 고육지책
바야흐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겠군요. 그러나 손실도 만만치 않습니다. 천명공주의 결단성과 지도력에 감탄해 마지않던 시청자들의 실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천명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그간 천명에게 성원을 보내던 수많은 시청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 이 손실조차도 드라마 제작진의 의도일지도 모릅니다. 그 실망과 허탈감은 미실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이 분노는 덕만과 유신에 대한 응원으로 승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연상되는 대목입니다. 어쨌든 천명공주의 죽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가 일전에 올린 글 중에 "쌍생의 저주를 풀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둘 중 하나가 죽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새로운 예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저는 두 번째 경우의 수로 쌍생의 저주를 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첫 번째 방법으로 가고 마는군요.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둘 중 하나가 죽는다고 저주가 풀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주를 푸는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성골남진이면 성골여왕이 등극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라인들은 간단하게 이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겐, 아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썼던 시절의 우리들에게도 도저히 풀기 어려운 난제였을 성골남진을 신라인들은 너무나 쉽게 처리했습니다. "남자만 왕이 되어야 한다는 법이 있는가? 성골 남자가 없으면 여자가 왕이 되면 그만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튼 아쉬운 건 사실입니다. 천명공주를 죽이지 않고 보다 현명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었으면 하는 바람은 이제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천명이 죽어야 하는 운명인 것은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차녀가 장녀를 제치고 왕위에 올라야 하는데 장녀인 천명의 카리스마가 너무나 선명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어출쌍생의 저주는 천명의 죽음으로 새로운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 벌써 내일 드라마가 기다려지는군요. 요즘 사는 낙도 없는데 선덕여왕 보는 재미로 삽니다. 이런 말세에 선덕여왕이라도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의 줄거리를 만들어가는 핵심 소재는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다. 성골남진은 삼국유사 왕력편에 등장하는 기사다. 성골남진, 말 그대로 성골남자의 씨가 말랐다는 의미다. 성골이란 무엇인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을 일컬어 성골이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듯하다. 


그럼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고대신라는 장자계승의 원칙이 확립되기 이전의 사회였다. 석탈해나 내물왕처럼 왕의 사위가 되어 왕위를 계승한 인물도 있고, 왕의 동생으로 왕권을 이어받은 경우도 허다하다. 또는 왕에게 왕위계승권자가 없을 경우에 왕의 형제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왕위계승에는 하나의 질서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질서는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함으로써 체계화된 법으로 정비되었다. 그것이 바로 성골이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가설일 뿐이지만, 현재로서는 이보다 유력한 가설은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성골은 왕위계승권자인 왕족의 집단으로 그 구성은 새로 왕이 등극할 때마다 바뀐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진지왕의 아들들인 용수와 용춘은 진지왕이 왕이었을 때는 성골이었지만, 진평왕이 등극한 이후에는 진골로 족강되었던 것이다.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의 저자 이종욱 교수의 말을 빌자면, 성골이란 왕과 왕의 형제의 가족들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진평왕은 숙부인 진지왕이 왕이었을 때도 성골이었지만, 진평의 사촌들인 용수와 용춘은 경우가 달랐던 것이다.   

자, 이렇게 되면 성골남진이 어떤 상황인지 대충 어림잡을 수는 있을 듯하다. 그래서 진평왕은 이의 타개책으로 용수를 천명공주와 혼인시켜 사위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방법은 신라에서는 고래로부터 써오던 방법이었다. 석탈해가 그랬고 내물왕이 그랬다. 게다가 용수는 선대왕의 아들이며 성골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대목에서 성골이란 어떤 고정불변의 신분이 아니란 사실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체계에 불과한 것이며, 정치상황의 변동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용수에게 왕위가 가지 않고 선덕이 후계지가 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드라마에서도 이 부분에 주목한 것 같다. 왜 용수에게 왕권이 넘어가지 않고 선덕이 왕이 되었을까? 드라마에서는 용수를 젊은 나이에 죽게 만들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용수와 용춘으로 하여금 선덕여왕을 받들게 하고도 아들이 생기지 않자 을제와 흠반으로 하여금 보좌하도록 하였다는 얘기가 사실이라면 말이다. 

그럼 왜 드라마에서 용수는 젊은 나이에 김춘추를 임신한 어린 부인 천명공주를 두고 죽어야 했을까? 그것은 이 드라마가 성골남진의 원인으로 어출쌍생이란 픽션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성골남진이란 왕위계승권자가 없어진 상황은 중대한 국가적 위기상황이다. 성골남진이란 상태가 단지 정통 권력계승자가 사라진 것일 뿐 위기는 아니라고 말하는 분도 있을 수 있다.

분명 그렇다. 사위에게 왕권을 넘기기도 하고 세 명의 여왕을 배출하기도 한 유연한 신라사회에서 성골남진이 위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부로 화각을 좁혀보면 분명코 위기다. 정통 계승자가 없으니 당연히 암투가 벌어질 것이다. 선덕여왕이 등극하기 직전 칠숙과 석품이 일으킨 난이 이를 반증한다. 

성골남진에 어출쌍생을 접목시켜 하나의 예언을 만들어낸 것은 기발한 발상이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장치가 어디 있겠는가. 권력을 흔들고 쟁투의 장을 만드는데 예언보다 유용한 수단이 어디 있겠는가. 왕건이 왕이 되기 전에도 예언이 있었으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위해서도 예언이 필요했다. 심지어 사초위왕의 예언에 빠져 죽은 조광조도 있다.

그러나 지금껏 드라마는 진평왕이 덕만을 죽이지 않고 소화를 통해 살려 보냄으로써 성골남진을 막지 못한 부분에 대한 갈등을 별로 보여주지 않았다. 덕만이 비록 먼 이국땅 타클라마칸의 사막에 버려졌지만 그녀가 살아있는 한 쌍생의 저주는 그대로 유효한 것이다. 그런데 왕자들의 죽음으로 성골남진의 예언이 이루어질 때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제 바야흐로 덕만의 정체가 드러났다. 어출쌍생의 저주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모두 쉬쉬하며 숨겨왔지만 이제야말로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모든 것이 내던져졌다.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 대등 을제는 진평왕에게 왜 덕만을 땅에 묻어 어출쌍생의 저주를 자르지 않았느냐고 다그치고 미실도 덕만의 실체를 눈치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덕만과 천명은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문제의 쌍생의 저주를 어떻게 풀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둘 중 하나, 즉 천명공주와 덕만공주 중 하나가 지금이라도 죽으면 될 일이다. 덕만은 선덕여왕이 될 인물이니 당연히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천명의 몫이다.

 

그러나 그건 지금까지 보여준 선덕여왕의 주제의식에 맞지 않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사람이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미실은 사람을 죽여 사람을 얻지만, 덕만은 사람을 살려 사람을 얻고 결국 미실을 이긴다는 게 주제다. 그렇게 본다면 쌍생의 저주에 굴복해 천명이 죽는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주제 설정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은 해답은 하나다. 덕만이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이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미실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늘의 뜻은 없다고. 있다면 오로지 미실의 뜻만이 있을 뿐이라고. 천문을 아는 미실이 하늘을 이용해 예언을 퍼뜨리고 계시를 만들었던 것이다.  

덕만이 서역의 상인들 틈에서 천문을 익혀왔다는 사실, 그녀에게 정광록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실에게 대적할 사람은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온다고 한 예언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덕만이 사람을 얻어 천하를 다스릴 조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쌍생의 저주를 풀지 않고서는 결코 왕이 될 수 없다. 

천명이 죽든, 새로운 예언을 만들든… 그러나 나는 김유신의 말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과거의 너는 잊어버려. 그런 게 무슨 소용이야. 앞으로 만들어갈 덕만이 네가 더 중요한 거야. 너는 앞으로의 너를 만들어가야 해." 그렇다. 이 말이야말로 해답이다. 과거에 붙들리고서 저주를 풀 방법은 없다. 미래는 과거의 예언이 아니라 만드는 자의 것이니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제는 제가 음주회동이 있어서 《선덕여왕》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니지, 자정이 넘었으니 그 오늘도 이제 어제가 되었군요. 아무튼 역시 또 음주 회동이 있었지만, 과음을 자제하고 맑은 정신으로 들어와 거금 1000원을 결재하고 보았습니다. 물론 500원짜리도 있습니다만, 선덕여왕만큼은 1000원을 내고 보는 편입니다. 화질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그런데 《선덕여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싶은 그런 사소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선덕여왕》을 보면서 신라의 색공 풍습에 관한 문제라든지,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대단히 문란해 보이는 당시의 혼인제도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몇 차례 포스팅을 하면서 여러 서적들을 살펴보았던 제가 좀 예민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했던 생각은 《선덕여왕》 제작진이 좀 오버한다는 것입니다. 자, 제가 오버한다고 생각한 장면은 이겁니다. 미실이 위천제를 올리고 하늘의 계시를 핑계로 가야세력을 궁지에 몰아넣는데 성공합니다. 봇짐을 메고 줄줄이 쫓겨나는 가야인들이 마치 재개발에 밀려 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철거민들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었지요.

그러고 나서 미실이 어떻게 합니까? 자기 측근들을 모아놓고 다음 계책을 이야기합니다. 채찍으로 상처를 주었으니 이제 약을 발라줄 차례라는 거지요. 그 약이란 다름 아닌 김서현의 가문과 자기네 가문이 혼사를 통해 동맹을 맺자는 것이었지요. 그러자 듣고 있던 하종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외칩니다. "어머니, 또요? … 아이, 정말…" 

하종의 짜증스러운 말의 의미를 눈치 챈 세종 또한 얼굴색이 변합니다.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원망이 얼굴 가득하더군요. 그렇다고 큰 소리 칠 수도 없고…. 제일 불쌍한 사람은 역시 설원공이더군요. 그의 얼굴에도 원망과 불만이 가득했지만 세종 부자처럼 내놓고 말도 못합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건 그 다음 미실의 반응입니다.

미실은 측근들의 불만에, 사실 측근들이라고 해봐야 남편들과 아들들과 친동생이었지만, 내심 스스로도 무안했던지 헛기침을 하면서 얼굴을 찡그리며 난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 말고…" 그러나 저는 미실이 얼굴을 살짝 비틀어 숙인 자세로 찡그리며 "나 말고… 자식들 중에서… 아니면, 하종의 여식은 어떨까?" 할 때, 정말 큰 소리로 웃을 뻔 했습니다.

《선덕여왕》이 재미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소재가 신선하고, 박진감 넘치는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연기자들의 연기가 훌륭합니다. 《선덕여왕》만큼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드라마도 흔하지 않습니다. 《대장금》의 인기를 넘어서는 드라마가 아직 없었다고 하지만, 그 《대장금》도 이처럼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햇습니다.

또, 《선덕여왕》에 재미를 더해주는 것은 코미디적인 요소입니다. 사극이 자칫 빠질 수 있는 심각하고 어두운 면을 이 코미디적인 요소들이 잘 어루만져주고 있는 것이지요. 죽방거사의 역할은 감초의 수준을 넘어 《선덕여왕》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그가 있어서 주인공들이 더 빛나는 거지요.

그리고 미실도 가끔 코미디 같은 대사나 행동을 하더군요. 지난주에는 유신을 불러다놓고 하늘의 뜻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하지요. 뇌쇄적인 윙크까지 섞어서 말입니다.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은 필요하답니다." 아마 오늘, 아니 어제였군요. 미실과 측근들이 모여 벌인 해프닝도 결국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활력소를 위한 코믹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확실히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미실은 다행히 정략결혼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고 밝힘으로써 측근들을 안심시켰지만, 이것은 난센스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신라는 모계사회도 아니고 다부다처사회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때도 분명히 부계전승사회였고, 일부일처제가 지켜지는 사회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보다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실은 단 한 번 혼인했으며 남편은 세종 한사람뿐이었습니다. 지금 드라마에서는 마치 설원이 미실의 남편인 것처럼 비쳐지지만, 그는 남편이 아니라 정부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세종이 받는 대접과 설원이 받는 대접은 다른 것입니다. 물론 세종은 진골이며 설원은 두품도 없는 천한 신분이지만서도…

그럼 미실이 3대에 걸쳐 왕들에게 바쳤다는 색공은 무엇일까? 그건 그냥 색공입니다. 미실이 진흥왕에게 색공을 바쳤다고 해서 그녀가 진흥왕비가 아닌 것이며, 진지왕비도 아닌 것이고, 진평왕비도 아닌 것입니다. 다만, 왕실의 자손을 번창시키기 위해서 색공을 바치기로 된 진골 가문의 한 여인에 불과한 것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드라마에서 보여준 '미실의 혼사'는 실은 난센스였던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물론 세종이 죽은 후라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당시는 여자의 재혼을 금하는 어떠한 법이나 관습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미실이 굳이 김서현과 관계를 맺고 싶었다면 혼사가 아니라도 설원과 그랬던 것처럼 은밀하게 정을 통하면 될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미실은 공식적인 정략결혼을 통해 양 가문의 동맹관계를 맺고 싶었던 것이므로 미실이 아니라 자손들 중에서 누군가 하나를 골라 유신과 혼인시킬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하여튼, 비록 난센스라고 제가 비토를 하긴 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이는 자칫 심각하고 무겁고 어두운 사극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장치쯤으로 이해를 하면 그만입니다.

실은 이렇게 비토를 하는 것도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중의 하나입니다. 아무튼 선덕여왕은 매우 재미있는 드라마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보니 드디어 덕만의 정체가 탄로 났군요. 아니 탄로가 난 것이 아니라 본래의 신분을 되찾은 것이지요. 축하를 해야 할 일이겠지만, 대략 예고편을 보니 앞날이 더 험해질 것 같은 예감입니다.

하여간 여러분, 미실은 오직 한번밖에 결혼하지 않았답니다. 남편도 세종 한사람뿐이랍니다. 비록 정부가 여럿 있었으며 세 명의 왕과 한 명의 태자에게 색공을 바치긴 했을지언정 일부종사(?) 했다는 사실,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남자들도 결혼은 한번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의 혼인에 얽힌 고사를 보십시오. 

왜 김유신은 춘추와 사통한 문희를 묶어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지펴 연기를 피우는 연기를 했을까요? 김춘추가 이미 결혼했으므로 문희를 아내로 맞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기는 선덕여왕에게로 날아갔고 결국 여왕의 묵인으로 김춘추는 문희를 정식 아내로 맞이하는 전례없는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신라사회에서는 남자들도 여자와 마찬가지로 결혼은 한번밖에 할 수 없었다는 역사적 기록인 것입니다. 물론 정식 부인은 한명밖에 둘 수 없었지만, 미실과 마찬가지로 정부(첩)는 여럿 둘 수 있었겠지요. 어디까지나 재력과 권력을 가진 귀족들에 한해서만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말입니다. 이런 것도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오늘 새삼스럽게 난센스 이야기 하다 보니 제가 난센스에 빠지는 기분입니다. 흐흐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그것은 분노였다. 분노하지 않는 자는 두려움을 이길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진실을 가르쳐준 것은 미실이다. 지난주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실이 덕만에게 말했다. “무서우냐? 두려움을 이겨내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도망치거라… 분노하거라…” 그렇다. 도망칠 수 없다면, 또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분노하는 것 그것이 답이다. 그러나 덕만과 천명은 너무나 두렵다. 분노하는 것조차 무서울 만큼 두렵다.  
 

두려움을 떨쳐낼 가장 강한 무기, 분노

이때 이들에게 그 두려움을 깨고 일어서도록 힘을 준 것은 유신이었다. 그러나 역시 유신에게 분노를 일깨워준 것은 미실이다. 미실은 하늘의 계시를 구실로 가야세력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것은 미실의 계략이었다. 일단 사지로 몰아넣은 다음 손을 내밀어 복종하게 하려는 고도의 술책이다. 이런 방법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권력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이기도 하다. 과거 군대에서 고참병들이 졸병들을 제압할 목적으로 ‘줄빠따’를 친 다음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며 달래는 것과 같다.

미실이 유신의 집을 찾아와 서현공과 만명부인에게 혼사를 맺어 사돈이 되자고 제안한다. 미실은 서현에게 상생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그 상생은 항복과 복종의 맹세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서현은 당장 답을 하지 않는다. 이에 유신은 격분하여 그런 부모에게 항의한다. “왜 미실에게 안 된다, 나가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서현은 유신을 타이른다. “분노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느냐? 네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안 된다, 나가라 답하면 미실은 제2, 제3의 사다함의 매화를 풀 것이다. 그리 되면 우리 가문은, 너는 어찌 되겠느냐? 미실의 다음 수가 무언지도 알지 못한 채 어찌 무턱대고 분노부터 하는 것이냐?” 그러나 유신은 서현에게 결연한 얼굴로 말한다. “아닙니다. 분노가 먼저이옵니다. 우리 집안의 이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미실의 수를 생각하기 전에 분노가 먼접니다.”

“그렇지 않기에 우린 미실에게 놀아난 것입니다. 미실은 우리의 두려움을 이용하고, 하여 우린 분노도 생각도 행동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허면, 허면  너는 떨치고 일어나 죽기라도 하겠단 말이냐?" “예, 그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미실에게 정치적 부담을 지울 수만 있다면요. 백성들에게 미실이 천신 황녀가 아니라 다만 자신의 이익에 따라 몇 천 백성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자란 걸 알릴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공포는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고, 불의에 대한 분노는 세상을 얻는 첫걸음이다

물론 서현은 유신의 뜻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가야의 마지막 임금이며 서현의 조부인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한 이래 오늘날의 기득권을 이루기 위해 유신의 조상들은 피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어렵게 이룬 터전을 분노 때문에 날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정의롭고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사적 이익보다 앞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김유신 장군이 여기서 꺾일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는 선덕여왕을 도와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고 김춘추를 왕위에 올린 인물이다.  

그는 사후에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역사상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도대체 어느 누가 신하의 신분으로 대왕의 칭호를 얻었던가. 유신은 천명공주를 찾아간다. 그리고 함께 있던 덕만과 천명에게 분노할 것을 종용한다. 만약 두려움에 빠져 분노하길 포기한다면 이제 그만 공주도 덕만도 버릴 것이라고 선언한다. 결의에 찬 김유신에게 감복한 덕만과 천명은 마침내 미실이 보낸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느낀다. 덕만과 미실은 쌍성의 개양성이었지만, 계시를 이루기 위해선 유신이 필요했다.

김유신릉.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그의 묘는 묘가 아닌 왕릉이 맞겠다. 그는 살아서도 대각간에 '태'자를 얹어 태대각간이었다.


그렇다. 이 드라마의 키워드가 무엇이었던가? 사람이었다. 천하를 얻으려면 사람부터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진흥왕이 미실에게 가르쳐 준 것이었으며, 이제 아이러니하게도 그 미실이 자신을 대적할 덕만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사람은 유신이었으며 유신은 거꾸로 덕만과 천명을 공포로부터 해방시키고 분노를 심어주었다. 오늘 드라마의 압권은 그렇게 분노에 불타는 세 사람의 도원결의다.

유비와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결의형제를 맺을 땐 비록 세 사람에 불과했지만, 이 세 사람으로부터 천하삼분의 계책이 나왔다. 이들이 없었다면 천하에 웅비하는 복룡의 지략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만약, 덕만과 천명이 분노하지 못하고 계속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미실에게 대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들에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분노를 배운 세 사람이 결의하여 당을 만들었으므로 미실과 싸우기 위해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유신의 분노는 오늘날 우리들을 향한 외침

나는 오늘 드라마를 보면서 전율했다. 유신이 결연한 어조로 외치는 함성을 들으며 전율했다. 유신이 외치는 함성은 비단 덕만과 천명을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외치는 분노의 목소리였다. “분노하라, 분노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분노하는 것이 먼저다. 사소한 개인의 이해를 따지기 전에, 정치를 따지기 전에, 수 천 수 만 백성들의 피눈물에 분노하는 것이 먼저다.”
 
내일부터 언론총파업이 다시 벌어진다고 한다. 용산참사에 이어 쌍용자동차 노조원의 부인이 죽었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까지 죽음을 맞았다. 실로 이 정권 들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피 흘리고 고통의 눈물을 쏟고 있다. 어린 유신이 천명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진심을 다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사람들이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이 대사에 감동했던 나는 오늘 또다시 유신에게 감동하는 것이다. 

“이(利)를 따지기 전에 진심으로 분노하면, 그러면 반드시 세상이 변할 것이다.” 목검을 들고 수천 번을 헤아리며 내리치다 목검이 부러지자 다시 새 칼을 들고 하나부터 다시 시작하는 우직하다 못해 무지하게까지 보이는 유신을 보며 많은 시청자들이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린 유신랑이 그럴 땐 웃었었다. 그러나 오늘은 웃을 수가 없었다. 제작진의 메시지를 얼마쯤은 읽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유신의 그런 모습에서 나는 분노의 바탕에 깔린 진심을 보았다. 

사람들이 진심을 이해하게 하는 방법은 성실한 모습이다. 우직함과 성실함으로부터 표출되는 분노야말로 세상을 흔들 강력한 무기가 아닌가. 미실의 계략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가야유민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빛은 오늘날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를 지켜보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역시 우리는, 유신의 시대가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다. “우리의 분노는, 우리의 진심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파비  

ps; 흥무왕릉 사진을 따로 구할 수 없어 부득이 김해 김씨 가락종친회 까페에서 인용했습니다. 크게 누가 될 일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사진을 게시했습니다. 상단 이미지의 출처는 MBC입니다. 모두 본문의 이해를 돕는 목적으로만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이미지의 모든 권리도 또한 두 단체에 있음을 아울러 밝힙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다음뷰에서 선덕여왕 후기를 읽다 보니 이런 제목이 눈에 띈다. 《선덕여왕, 미실이 진정한 대인배다》 미실이 진정한 대인배라고? 도대체 무슨 소린가 궁금해서 내용을 읽어 보았다. 제목만 빼고 대부분의 내용은 수긍이 가는 내용이었다. 그래,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특히 권력을 움직이는 사람일 수록 더 그렇다.


미실은 그런 점에서 나름 성공한 권력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랫사람을 인간적인 신뢰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것은 권력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다. 신뢰와 사랑이 빠진 다스림은 억압과 통제에 불과하다. 그런 다스림은 자그마한 불만들이 조금씩 누적되다가 언젠가 커다란 봇물처럼 터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덕목은 어디까지나 덕만의 생각처럼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권력을 사용하고자 할 때만 그 빛을 발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야욕을 채우기 위해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이에 앞장서는 심복들에게만 베푸는 신뢰와 사랑이라면 그것은 오로지 악마의 간교함에 불과하다. 

미실이 대인배란 소리를 듣고 보니 전두환 생각이 났다. 전두환이야말로 한때 대인배의 대명사처럼 회자되던 사람이 아닌가, 몰론 세속적인 아첨꾼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지만. 이에 비해 노태우는 매우 좁쌀스럽고 치사한 인간으로 전락되곤 했었다. 전두환은 부하들이 직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는 반드시 전별금이란 것을 하사했다고 한다.

소위 노란봉투로 불려지는 그 두툼한 현금 뭉치는 충성을 바치는 자에겐 더없는 기쁨이며 더한 충성을 맹세할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두환이 퇴임하고 난 이후에도 그의 곁에는 과거의 부하들이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고 했던가. 물론 돈으로 산 충성은 돈이 떨어지면 끝이므로 그 돈이 마르기 전까지만 유효한 이야겠지만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무기 로비스트로 유명한 린다 김 사건이 터졌을 때였다. 추운 겨울 어느날, 린다 김 집 앞에서 죽치던 기자들에게 설렁탕 한그릇 씩이 배달되었다. 기자들은 손을 호호 불면서 따뜻한 설렁탕을 먹게 되니 눈물이 났던 모양이다. 한 기자가 말했다. "아, 이거 추운 겨울 난장에서 설렁탕 얻어 먹자니 몇 년 전 이맘때 생각이 나는구만…"

그의 회고에 의하면 린다 김 사건이 터지기 몇 년 전, 김영삼 정권 초기 전두환의 집 앞에 죽치던 기자들에게도 그 추운 겨울바람 속에 설렁탕이 한그릇씩 배달되었다고 했다.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식사도 거른 채 보름씩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에게 배달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설렁탕은 복음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 기자의 회고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말이야. 노태우 집 앞에서는 보름이 넘게 죽치고 있어도 껌 하나 안 나오더라 이 말이지. 진짜 지독하더구만…" 이 이야기는 오래 전에 MBC라디오 《격동50년》을 통해 들었던 어느 기자들의 대화 내용이다. 실제 기자가 드라마에서 인터뷰 식으로 확인까지 했으니 나름 신빙성 있는 에피소드였으리라. 

무엇보다 전두환의 대인배성을 적나라하게 증언해주는 것은 역시 장세동이다. 5공 청문회장에서 보여준 그의 전두환에 대한 충성심은 전두환이 노태우가 아니라 장세동을 후계로 키웠어야 한다고 호사가들이 떠들도록 만들기도 했다. 하여간 전두환이 보여준 부하에 대한 지극한 신뢰와 사랑(?)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생각해보시라. 그런 전두환이 일반 국민들에겐 어떤 짓을 했는지를. 전두환은 12·12 쿠데타로 자신의 상관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대통령을 감금하다시피 해서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당시 자기 일파에 의해 의해 대통령으로 옹립(?)되었던 최규하는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진지왕이나 진평왕과 같은 존재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지왕이나 진평왕보다 훨씬 못한 그러니까 그저 전두환이 시키는대로 도장이나 찍고 사인이나 하는 전두환의 꼭두각시였다고 하는 게 옳을 터이다. 그렇게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이 무슨 짓을 벌였던가. 국민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가했다. 광주에서만 수천 명의 사람을 죽였다.

거의 20년 만에 돌아온 칠숙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미실…, 그러나 그 미실은 또한 백성들에게는 어떠했던가.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는 반대파들에겐 어떠했던가. 자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병사의 목을 직접 베던 미실이 아니던가. 그 미실의 모습이야말로 전두환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는 원대한 포부 아래 사람 하나 하나를 빠짐없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이 대인배의 진정한 도다. 자기 개인의 야욕을 위해 사냥개처럼 순종하는 자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주면서도 반대파와 일반 백성들에겐 가차없는 채찍을 휘두르는 것은 대인배와는 거리가 멀다. 

미실이 칠숙의 손등에 떨어뜨린 눈물은 악마의 눈물이다. 악마에게도 순정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정이 싸늘한 눈에 물길을 잠시 내었다고 해서 악마가 갑자기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모름지기 전두환이 장세동에게 보인 순정도 결코 미실에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악마의 눈물을 받아 마신 장세동도 칠숙처럼 그랬을 것이다.  

미실은 대인배가 결코 아니다. 그녀는 그저 사악한 전두환과 같은 야심 가득한 출세주의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미실을 대인배라고 하는 것은 전두환을 대인배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칠숙도 충신이 아니다. 칠숙을 충신이라고 한다면 장세동이도 만고에 충신이라고 말하게 되는 역사적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요사이  MBC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인해 신라의 풍속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다. 특히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화랑들의 이야기로 세상이 뜨거운 것 같다. 화랑세기는 그 위작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라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장치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화랑도에 대한 언급이 있긴 하지만, 이처럼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특히 미실이란 여인은 화랑세기가 아니고서는 만나볼 수가 없다. 화랑세기는 사실상 미실의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저술할 때는, 그가 서문이나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들의 세계(世系)를 밝히고자 함이었다. 그들의 계보를 통해 우리는 화랑의 실체를 접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김대문의 집안은 세습 화랑의 집안이었다. 이 가문은 540년 화랑도가 시작한 이래 681년 폐지될 때까지 1세 풍월주 위화랑부터 시작해서 4세 이화랑, 12세 보리공, 20세 예원공, 28세 오기공 등 모두 5대에 걸쳐 풍월주를 세습했다. 나머지 풍월주들도 대부분 부자가 세습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김대문의 가문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32대에 걸친 풍월주들의 전기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미실이다. 그녀는 5세 풍월주 사다함부터 시작해서 16세 풍월주 보종공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풍월주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었다. 도대체 그녀는 어떤 신분의 인물이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래서 나는 「선덕여왕, 근친혼의 이유는 무엇일까?」
(http://go.idomin.com/268) 라는 글을 통해 미실은 분명 김씨족임이 자명하다고 호언한 바 있다. 신라는 골품제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골품도 없는 여인이 화랑들을 발 아래 두고 국왕까지도 좌지우지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랑세기에서도 미실의 세계에 대하여 자세한 언급은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화랑세기의 목적이 풍월주들의 세계와 세보를 기록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 미실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유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여러 독자가 댓글을 통해 내 글에 반론을 제기했다. 미실은 김씨족이 아니라 박씨라는 것이다.(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또한 모든 네티즌들, 뿐아니라 위키백과에서도 미실을 박미실이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 나의 관심사는 미실이 김씨족인가 박씨족인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라라는 신분제 사회의 특성상 진골귀족 신분이 아니고서 화백회의나 중앙정치를 주무를 수 없다는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을 뿐이다. 그러나 만약 드라마에서처럼 실제 미실의 역할이 그러했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김씨족일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골품제도는 법흥왕 7년(520년) 율령이 반포되면서 정립된 제도라고 말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골품제는 이미 사회적 관습으로 정착되어 있었을 것이다. 법흥왕에 의해 골품을 받은 귀족들은 원래 왕족이었던 박씨족 일부와 김씨족, 그리고 가야의 왕족, 보덕국왕 안승의 후예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 범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박씨족 일부도 진골의 골품을 받았지만, 그들이 신라가 융성했던 중고시대나 중대에 중앙 정계에서 활발하게 활약했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게다가 내물왕 이후 김씨족들이 왕권을 확실히 장악한 이후에 박씨족들은 6부 중 하나인 모량부에 이주해 살면서 가끔 왕비를 배출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고로 화랑세기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미실이나 미생의 역할로 보아 틀림없이 이들의 조상은 김씨족일 거라는 생각은 지금도 확고하다. 그럼에도 여러 독자들이 미실은 박씨라는 주장을 하며 정정을 요구하였고, 심지어는 내물왕의 4대손이며 세종의 아비요 하종의 조부인 이사부조차도 박씨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어 부득이 다시 자료를 확인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사부나 거칠부가 김씨족인 것은 이미 사기에서 밝히고 있는 터라 더 이상 설명은 무의미할 듯하다. 그러므로 당연히 미실의 남편이며 아들인 세종과 하종도 김씨족인 것은 당연하다. 다만 미실에 대해서만 보다 더 확실한 조사가 필요할 것이지만, 아시다시피 그녀에 대한 기록은 화랑세기를 빼고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

그러나 미실의 부모에 대하여 화랑세기에 언급이 있으므로 그녀의 부계와 모계를 확인해 보면 그녀의 출신성분을 알아내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듯싶었다. 미실의 아비는 2세 풍월주 미진부이며 어미는 묘도궁주이다. 미진부의 아비는 아시공이며, 아시공의 아비는  선모이고, 선모의 아비는 장이이고, 장이의 아비는 복호공이다. 복호공은 내물왕의 아들이다. 

미실의 부계를 살펴보건대, 미실은 내물왕의 후손인 것이다. 내물왕은 신라의 김씨 왕조를 확립한 인물이다. 내물왕 이전에 미추가 김씨족으로서 최초로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김씨족의 전제 왕권을 확립한 것은 내물왕이다. 그러므로 김씨 왕조의 사실상 시조는 내물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물왕 이후 왕비들은 대부분 김씨족으로 채워졌는데, 이는 김씨족의 배타적 왕권을 확립하려는 결과였다. 이와 같은 근친혼으로 왕권의 지위는 더욱 초월적인 것으로 공고해졌다. 세기에 의하면, 아시공은 법흥왕이 미실의 조모인 옥진과의 사이에서 난 비대공을 후계자로 세우려 하자 이에 반대해 지소태후와 더불어 진흥왕을 옹립하는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어쩌면 미실의 권력은 이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녀가 비록 세습적으로 색공을 하는 여인이었으며 미색이 출중하고 교태가 남다르다 해도 출신이 미천하고서는 권력에 다가서기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조부인 아시공은 당대의 실력자였으며, 아비는 진흥왕의 총애로 2세 풍월주를 거쳐 최고 관등인 대각간에까지 올랐다.    

그렇다면 미실의 모계는 어떨까? 미실의 어미는 묘도궁주이다. 묘도궁주는 영실공과 옥진궁주의 딸인데, 영실공은 수지공과 법흥의 누이 보현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성골이다. 또 미실의 조모인 옥진궁주는 누구인가. 그녀는 1세 풍월주 위화랑의 딸이다. 위화랑은 진골로서 이찬에 오른 인물이다. 위화랑 역시 옥진의 소생인 비대공을 반대해 진흥왕을 옹립했다.

이렇게 미실의 부계와 모계를 살펴보니 양쪽 모두 진골귀족 출신이다. 진골일 뿐 아니라 왕권에 가장 근접한 권력의 핵심들이었다. 미실의 권력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미실의 힘이 어느날 갑자기, 또는 드라마에서처럼 사다함의 매화로,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닌 것이다.
 
자, 그런데 아직 풀리지 않은 독자들의 궁금증이 하나 더 남아 있을 것이다. 바로 설원랑이다. 나는 앞서「선덕여왕, 근친혼의 이유는 무엇일까?」에서 미실 뿐 아니라 설원까지도 김씨족일 거라고 단정을 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의도한 오류였다. 설원랑은 세기에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진골귀족이 아닌 풍월주다.

화랑의 대부분이 진골귀족으로 채워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진골귀족이라 하더라도 아무나 화랑에 뽑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권문세가의 자제여야 하고 인물이 출중하고 덕이 충만해야 한다. 그래야 선발의 기본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그런데 설원은 어떠한가. 그는 진골귀족도 권문세가의 자제도 아니다.

더구나 그의 아비인 설생은 아비의 이름도 성도 모르는 미천한 출신이다. 다만 설생의 어미가 습비부촌의 설씨 가문의 자손이므로 어미의 성을 따라 설씨가 되었다고 한다. 설생은 용모가 출중했는데,그가 모시던 구리지가 전장으로 나간 틈에 구리지의 여인 금진낭주와 관계를 가져 설원을 낳았다고 한다.

금진낭주는 사다함의 어미이기도 하니 설원은 사다함과는 동모이부의 형제인 셈이다. 사다함은 구리지의 아들이며 내물왕의 7세손으로 진골귀족이다. 금진낭주 또한 위화랑의 딸로서 진골귀족이니 설원은 비록 아비가 출신을 모르는 미천한 사람이었다고는 하나 모계로 보면 역시 귀한 자손이며 미실에겐 외숙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부계계승사회인 신라에서 설원랑은 진골은 고사하고 두품조차 받지 못했다. 그런 그가 화랑이 되고 풍월주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미실의 권력을 웅변해주는 대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드라마상에서처럼 설원이 지배집단의 화백회의에 참여하고 병부령의 지위에 올라 군권을 장악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것이다.

그런 일은 미실의 권력이 아무리 태산처럼 높다 하더라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신라의 골품제를 뒤흔드는 일로서 체제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실이라도 그런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화랑은 골품제의 규정을 비교적 덜 받는 자치조직이었으므로 설원랑이 풍월주에 오르는 이변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관직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랬다면 6두품으로 뛰어난 문재를 자랑했던 설총이나 최치원이 비운의 삶을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골품제가 초기에는 왕권을 강화하고 세력을 확장하는 주요한 도구로 기능했을지는 모르지만, 나라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결국 신라를 패망으로 인도하는 결정적 요인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그래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는 금언이 있는 것이 아닐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