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문제를 푸는 재미도 있습니다. 대체로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데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이미 드라마에서 여러 장치들을 통해 어느 정도 신경을 쓰면 알 수 있도록 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 힌트를 주기도 합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은 오히려 관심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드라마 제작진의 고도의 계산이 깔린 전술이란 생각이 듭니다.
 

시중에 많이 나온 <소설 선덕여왕>들도 답을 맞히는데 한 몫을 합니다. <필사본 화랑세기>를 읽어본 독자라면 더 쉽습니다. 구체적인 예가 이번에 문노가 낸 문제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너무 어려워서 아마 맞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요. 닌자 임무를 열심히 수행하며 미실의 총애를 받는 보종이 아니고선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두 번째 비재의 정답은 화랑세기에 나온다
 
그러나 두 번째 문제는 사실 화랑세기를 유심히 읽어본 독자라면 쉽게 맞출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덕업일신 망라사방" 이는 화랑세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라란 이름의 세 가지 의미를 전하는 국사를 미실이 조작한다든지, 이를 간파한 거칠부가 밀서를 통해 진흥왕의 소엽도에 새긴 세필을 살피라고 하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입니다.

어쨌든 두 번째 문제의 정답은 삼한통일입니다. 신라란 이름은 서라벌이 세력을 팽창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며 결국 그 끝은 고구려와 백제를 통일하는 것으로 완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미실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 회상이란 결국 미실이 황후가 되려고 했던 음모에 관한 것들입니다.

진흥왕이 죽은 후―미실이 독살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게 되었다―미실은 진지왕에게 황후 자리를 약속 받고 왕관을 건네지만 진지왕은 약속을 어깁니다. 진지왕을 몰아내고 진평을 왕으로 세운 미실은 그러나 이번에도 황후 자리를 얻는데 실패합니다. 격분한 미실은 황실서고에 들어가 국사 중 한권을 불태워버립니다.

그 책에는 지증왕이 유지로 내린 신라의 세 가지 의미가 적혀 있었습니다. 왜 미실은 다른 국사는 놔두고 이 책만을 골라 불살라버렸는가. 거기에 대해선 미실의 회상이 자세히 설명해줍니다. 무력증진, 신흥세력, 삼한통일, 이 중 마지막 세 번째 삼한통일이란 실로 '이룰 수 없는' 원대한 이상입니다. 그러나 이는 왕권강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왕권이 강화된다는 것은 반대로 귀족들의 권한이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황후가 된다면 왕권이 자기 것이 되므로 이 유지는 가치 있는 것이지만, 이제 황후전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진골귀족에 불과한 자신에겐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이루어져서도 안 되는 유지라고 미실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이 기록된 국사를 태워 없앤 후 새로 만들게 한 것입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미실에게 삼한통일은 하나의 이용물일 뿐

참으로 무서운 여자입니다. 삼한통일의 대의마저도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용합니다. 그리고 자기 권력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그 대의마저 부정하고 탄압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덕만공주는 삼한통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녀는 아직 신라의 의미를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번 주 마지막 장면에서 진흥왕의 소엽도에 세필로 새겨진 '덕업일신'을 읽는 것으로 드라마는 끝났습니다. 다음 주에 그 다음 구절, '망라사방'을 읽고 마침내 삼한통일의 대업이 신라왕의 임무임을 깨닫게 되겠지요. 그녀가 왕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서라벌로 돌아온 것은 그녀의 언니 천명이 자기 눈앞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미실에게 복수하기 위해 왕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공주 신분만으로는 미실을 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게 출발한 그녀는 문노를 만나 차츰 신라왕의 대업에 대한 깨우침을 얻게 됩니다. 문노도 결국 진흥왕이 예언한 개양자를 위해 마련된 장치였습니다. 개양자가 가는 길을 안내하는 등불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덕만공주는 삼한통일의 대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왕권강화를 위한 강력한 기제라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덕만공주의 깨우침이 이걸로 끝날까요? 그렇다면 덕만공주는 미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미실도 덕만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공주님은 이 미실보다 훨씬 간교합니다."

성골의 신분으로 자기 권력을 확보하고 확대하는 데만 골몰한다면 틀림없이 미실의 말처럼 덕만은 미실보다 더 간교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미실은 태어나면서부터 권력 속에서 권력과 함께 권력을 누리며 자랐습니다. 미실은 늘 미천한 자신의 신분을 탓하며 살았지만, 사실은 미실의 신분이 그렇게 미천하지 않습니다. 

민중 속에서 만들어진 덕만의 꿈은 삼한통일도 민중적으로 해석할 것

그녀는 진골귀족 중에서도 권세가 막강한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늘 황제와 가까운 거리에서 황후의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성골이 아닌 것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녀는 "내가 만약 성골이었다면, 그리고 황후가 될 수 있었다면 아마 다음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내가 보기에 별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황후전을 차지하지 못하게 되자 지증왕의 삼한통일의 유지가 전해지는 국사를 불태운 그것이 그녀의 본심입니다. 이에 비해 덕만은 어떻습니까? 그녀는 비록 성골이라고는 하지만 민중 속에서 자랐습니다. 민중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녀는 민중의 고락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 자신이 민중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그녀가 삼한통일의 대업을 받았을 때 그것을 단순히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할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민한 그녀는 그러지 않으리라 봅니다. 마음이 따듯한 그녀는 분명 다른 대의를 찾으리라 봅니다.  

당시는 삼국이 국경을 맞대고 각축을 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였습니다. 늘 전쟁으로 백성들은 피폐했습니다. 어느 누가 통일을 이루지 않고서는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종식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에서 불거져 나온 전쟁과 협상의 노예'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켜야만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덕만공주는 틀림없이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눈물이 흐르지 않는 나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삼한통일의 대업은 권력기반의 문제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의 문제임을 직시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처음부터 공주가 아니라 민중 속에서 민중과 함께 자란 민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미실과 확연히 다른 점입니다. 

백성의 삶과 무관한 삼한통일은 그저 전쟁놀음일 뿐이다

아마도 이 지점은 지증왕도 생각한 것이 아니었으며, 진흥왕이나 문노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을 겁니다. 물론 그 시대의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방 같은 평민이라면 신라의 의미를 단박에 깨달았던 것처럼, 덕만공주라면 지증왕이 생각한 이상을 생각하는 지혜를 가졌을 게 분명합니다.

아무튼 다음 주를 기대해보지요. 다음 주엔 보종이 유신랑에게 실컷 혼나겠군요. 참고로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종은 유신랑의 부제가 됩니다. 그리고 유신랑의 뒤를 이어 풍월주에 오르죠. 이 점을 살피면서 드라마를 보신다면 향후 덕만공주와 미실의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될지 가늠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건강한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뻔'한 결과를 알면서도 유신과 보종의 결투가 기다려지는군요. 이것 참…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