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이야기

오바마가 좌파라니요?

결론부터 말하면, 오바마는 좌파가 아니다.

한발 물러서 진보주의자라고 불러주기에도 상당히 어색하다. 물론 미국 내에서는 공화당에 비해 민주당이 덜 보수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거기에다 버락 오바마라는 앵글로 섹슨에게는 생소한 이름의 아프리카계 흑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점 때문에 세계가 마치 미국에 혁명이라도 일어난 듯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겠다.

미국인의 선택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심판


그러나 어쨌든 오바마도 미국 민주당도 좌파는 아니며, 그렇다고 특별히 진보라고 보아줄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 또는 북한과 같은 적성국가를 대하는 태도에서 약간씩의 차이를 보여줄 뿐이다. 이 차이도 실상은 최근에 생겨난 것이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최악의 전쟁으로 평가 받는 베트남전을 이끈 정부가 실은 민주당이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도 있다. 

1980년대 이후에 클린턴 행정부를 제외하고 줄곧 공화당 정권이 득세했다. 이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미국의 신자유주의와 패권주의는 절정을 구가했지만, 미국의 경제는 거꾸로 곤두박질쳤다. 이는 전쟁에 대한 반발과 시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결국 미국민은 오바마와 민주당을 선택했다. 부시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미국민의 심판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조선일보의 조갑제는 미국 대선 레이스가 한창일 때, 마치 오바마가 당선되면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말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오바마가 매우 친북(좌경)적인 사람이며 그래서 위험하다고 생각하던 그들이 갑자기 오바마는 좌파가 아니며 좌파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고 말하니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약간 혼란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어떤 진보인사 한 분은 오바마에게 ‘미국식 좌파’라는 개념을 따로 붙여주기까지 했다. 

사진=경남도민일보/뉴시스


미국이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양당체제에 고착된 독특한 정치체제의 나라라는 점을 감안할 때 오바마에게 ‘미국식 좌파’라는 딱지를 붙여주어도 별다른 이의가 없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좌파-우파의 개념이 상대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개념에 대한 선은 있어야 할 듯싶다. 

노무현을 좌파로 모는 조갑제가 오바마는 좌파로 부르지 말자고?

미국에서도 실제로 오바마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주로 남부의 보수적인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마치 노무현이나 김대중을 좌파라고 몰아세우며 ‘우파의 잃어버린 10년’을 노래하는 이명박이나 조갑제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 미국도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이다. 어딜 가나 돌연변이들은 있게 마련이다.

김대중은 집권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IMF를 돌파하는 정책을 펼쳤다. 노무현도 역시 김대중이 닦아놓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충실히 수행했고 미국과의 FTA는 그 결정판이었다. 더욱이 미국의 패권주의적 군사정책에 협조해서 아프간과 이라크에 파병까지 했다. 이 지점들 때문에 오히려 한나라당보다 더 우편향의 정치를 했다고 평가 받기도 했고 노동자 농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기도 했다. 

또 반면에 김대중과 노무현은 대북정책에 있어서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유화정책을 폈으며 남북화해무드에 많은 기여를 했다. 두 차례나 남북의 정상이 만나고 그 실효성 여부에 불구하고 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는 것은 역사적 진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조갑제 류의 수구인사들은 이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이게 바로 노무현과 김대중이 친북좌파라는 증거라고 끊임없이 물고 뜯는 것이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오바마는 좌파임에 틀림없다. 우선 오바마는 적성국 북한의 최고 통치자인 김정일을 만나겠다고 한다. 여기에다 오바마는 노무현이나 김대중이 신자유주의를 추구한 것과 달리 신자유주의에 종지부를 찍고 과거 뉴딜시대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런 면에서 오바마는 노무현보다 훨씬 좌파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정치인이 되는 셈이다. 그런 오바마를 좌파라고 부르지 말자고 자기네끼리 신호를 주고받는 조갑제류의 행태는 그야말로 코미디다.   

그러나, 좌파라고 하기엔 한계가 뚜렷한 민주당 

그러나 아무리 오바마와 민주당의 리버럴이 좌파나 사회주의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역시 미국 민주당의 한계는 뚜렷하다. 미국은 민주당이 수없이 집권했지만 의료보험 체계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나라이다. 교육에 있어서의 공공성도 최악의 수준이다. 북서유럽의 좌파 사민당이 오래 집권한 나라들의 복지와 비교할 기준조차 제대로 없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런데 30여년에 걸친 미국식 신자유주의 실험이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며 좌초하는 시점에서 건국 232년 만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냉정한 미국의 현실을 망각하게 하는 효과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반대로 조갑제 같은 이들에겐 노무현보다 훨씬 좌파적인 오바마를 애써 좌파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데에는 숭미사대주의에 기반을 둔 나름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진보인사들이 앞을 다투어 오바마를 좌파라고 추켜세우며 환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나 좌파라면 무조건 빨갱이에 공산주의자로 몰리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발현된 어떤 보상심리 같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는 조갑제류의 기회주의와는 다르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섣불리 오바마가 좌파라고 말하기보다, 우선 그가 보다 좌파적으로 행동하기를 촉구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바마가 신자유주의를 폐기하고 추진하는 뉴딜 식의 경제회생 정책들이 과연 사회복지로 제대로 연결되는지도 주의 깊게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나서 오바마의 좌파에 대하여 평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오바마를 선택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에는 공화당의 실패한 경제가 있다. 이 점을 잘 아는 오바마가 전통적인 민주당의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난국을 돌파하리라는 예상은 이미 충분히 있어 왔다. 실컷 좌파라고 추켜세우다가 결국 뒤통수를 맞았을 때의 황당함보다는 덤덤하게 지켜보는 게 오히려 현명하지 않을까?

오바마의 개혁이 좌파적 복지의 확충으로 이어지길

조갑제나 이명박 같은 이들이야 원래 표리가 부동한 분들이라 좌파라고 생각하는 오바마가 당선된 것이 매우 불쾌하지만 애써 속내를 숨기며 “오바마를 좌파라고 불러선 안 된다.”느니 “오바마와 나는 닮은 데가 많다.”느니 횡성수설하며 꼬리를 치지만 우리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바마를 좌파로 보긴 뭔가 석연치 않지만 그가 진정한 좌파가 되어 보다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으로 미국의 경제만 살릴 뿐 아니라 최소한의 복지시스템이라도 구축하는 실로 역사적인 미국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한다. 미국민들이 그저 마시던 코카콜라를 펩시콜라로 바꾼 정도의 불행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결론은, 오바마가 진정한 좌파로 거듭나길 바라는 것이다.  

2008. 11. 6.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