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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유엔의 리비아개입은 또다른 학살인가

참 델리케이트한 문젭니다. 일부러 델리케이트란 생경한 용어를 썼습니다. 그만큼 심경이 복잡합니다. 카다피는 어떤 사람인가? 이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한때 운동권들은 카다피를 쿠바의 카스트로처럼 대단한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아마 자료를 어렵게 찾아야할 테지만, 그에 대한 칭송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심지어 고 리영희 선생조차도 카다피에 대한 환상을 가졌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난 후 바로 나온 <리영희 평전>의 서평에서도 저는 그 부분을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리영희 선생의 잘못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시계가 반미의 시간에 정지해있었던 것은 그분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사상하고,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리비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에만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펙트는 엄청난 살상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카다피는 미쳤습니다. 그는 학살을 공언하고 있습니다. 시위대를 향해 발포는 물론 미사일에 전투기, 탱크를 동원한다는 미확인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미확인 보도들은 오래지않아 거의 모두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시위대도 무장했습니다. 이때부터 시위대는 반군으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위대로 출발한 반군이 제아무리 무장을 한들 리비아 정규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생각해봅시다. 광화문에 모인 촛불시위대에 탱크가 주어졌다, 그걸 누가 운용할 수 있을까요?

아랍세계의 반미, 반제국주의를 카다피는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습니다. 그는 시위대를 외세의 앞잡이로 몰아붙이고,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했습니다. 언론의 보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반군으로 불리기 시작한 시위대는 리비아 정규군과 용병의 무차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벵가지 일원으로 몰렸습니다.

저항하는 자는 모조리 죽여 피의 강을 만들겠다는 아들 카다피의 공언이 그냥 공언일까요? 아니라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자, 이쯤에서 적절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죠. 이웃집이 있습니다. 그 집의 가장은 매우 폭력적입니다. 그런데 오늘 따라 유난히 시끄럽습니다.

술에 취한 폭력가장은 아내와 아이들을 마구잡이로 폭행합니다. 마침내 이성을 잃은 그는 칼을 집어들고 아내를 죽이려고 합니다. 순간 아이들이 앞을 막아서며 저항합니다. 그러나 속수무책입니다. 결국 아이들은 큰 소리로 이웃에 구조를 요청합니다. 이에 화가 난 폭력가장은 아이들마저 죽여 버리겠다고 큰소리칩니다.

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 집의 일이 남이 간여해서는 안 되는 개인적 영역이므로 그 집 담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걸까요? 자기 집안의 문제는 그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하는 것이므로 이웃이 개입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난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요?

한 블로거께서 제가 쓴 <리비아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차, 왜 생기나; 진보신당만 국제사회에 무력개입 촉구, 정부와 여타 정파들은 침묵>이란 기사에 대해 <또다른 학살을 요구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란 글로 비판했습니다. ‘학살을 요구하고 지지하는’이란 문장에 주목하면 이건 비난이며 심각한 명예훼손입니다.

우리가 학살을 요구하나요? 그는 제 글 외에도 <한겨레신문에 이렇게 실망한 적이 없었다>는 글을 올린 블로거 거다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다른 블로거도 ‘한겨레의 친 카다피 논조에 실망했다’며 ‘지금 이 순간 한겨레보다 카다피의 학살을 막기 위해 카다피군에 대한 폭격에 나선 사르코지의 폭력기가 더 휴머니즘적으로 보입니다’라고까지 말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블로거의 비판보다 거다란의 평가가 훨씬 더 가슴에 와 닿으니 확실히 세상을 보는 눈에 차이가 많이 나는가봅니다. 물론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리비아 사태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리비아는 내부 부족들간의 갈등문제도 심각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만약 카다피가 시위대를 향해 군대를 동원하거나 용병을 투입하고, 미사일, 탱크, 전투기까지 동원하는 야만성을 보이지 않았다면 다국적군의 무력개입을 우리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고, 다국적군이 출동하는 불행한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진보신당 대변인도 무력개입을 촉구하는 논평을 내지도 않았겠지요.

거다란의 말처럼 “상황은 너무나 심각했던 것”입니다.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고 있고, 더 많은 학살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북한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제 개인적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물론 북한의 민주화는 북한민중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지만, 리비아처럼 된다면 결론은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만약 남과 북이 반대의 경우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남한 민중이 탱크에 짓밟히고 전투기가 시위대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그리하여 남한정권이 인구의 3분지 1 정도는 몰살시키겠다고 호언한다면? 저는 기본적으로 이른바 운동권 출신들의 인권의식,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시각에 불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또다른 학살을 요구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에 실린 사진을 보니 아마도 <다함께>라는 국제사회주의자그룹(IS) 조직원들이 다국적군의 폭격을 중단하라는 시위를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저는 거꾸로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카다피에게 학살을 중지하라는 시위를 한 적이 있는가?

제가 <100인닷컴>에다 <리비아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차, 왜 생기나; 진보신당만 국제사회에 무력개입 촉구, 정부와 여타 정파들은 침묵>이란 글을 올린 이유도 실은 앞에서 <다함께> 등과 같은 운동권 조직에 물어보고 싶은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하긴 뭐 국내문제도 많은데 매일 남의 나라 이야기나 하는 뉴스가 불만인 분들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아무튼, 미국이라서, 제국주의적 식민주의 야심이 문제이기 때문에, 거기에 석유가 있기 때문에, 이런 주장들도 많이 보긴 합니다만, 저로서는 도무지…. 6시에 약속이 잡혀있어서 토론은 이정도로 해야겠습니다. 급하게 생각나는대로 쓴 글이라 좀 거칠더라도 이해해주시를 앙망합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