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에 해당되는 글 31건

  1. 2016.12.23 그들만의 다른 선택이 생각나는 회폐한 밤 by 파비 정부권
  2. 2016.04.26 별난사람 별난인생, 진짜 별난 것은? by 파비 정부권 (2)
  3. 2016.01.11 조선의 여왕 혜주, 내부자에게 망하다 by 파비 정부권
  4. 2015.11.25 그들이 역사교과서를 지배하고자 하는 이유 by 파비 정부권
  5. 2015.06.03 풍운아, 기인, 또는 건달 채현국 by 파비 정부권 (3)
  6. 2014.06.17 마크 트웨인과 생텍쥐페리의 위로 by 파비 정부권
  7. 2012.06.21 맹자, 부인을 쫓아내고 성인이 되다 by 파비 정부권 (5)
  8. 2012.06.21 초패왕의 자살 by 파비 정부권 (1)
  9. 2012.06.21 고전을 보지 않고 내일을 말하지 말라 by 파비 정부권 (3)
  10. 2012.06.21 권력자들이 책을 불태우려는 이유, 나비효과 by 파비 정부권 (3)
  11. 2012.06.21 중년의 유시민이 쓴 풋내기 유시민의 독서 by 파비 정부권 (8)
  12. 2012.06.21 청바지, 노동자의 작업복에서 권력이 되기까지 by 파비 정부권 (6)
  13. 2012.01.27 시내버스로 가는 여행, 볼 수 없던 것이 보인다 by 파비 정부권 (8)
  14. 2010.11.04 인터넷서평꾼 로쟈에게 책은 단두대의 칼날 by 파비 정부권 (7)
  15. 2010.08.02 학교가 세상을 바꿀까, 세상이 학교를 바꿀까? by 파비 정부권
  16. 2009.11.10 불경기와 함께 돌아온 도시락의 추억 by 파비 정부권 (7)
  17. 2009.10.19 환상소설가들이 만드는 세계의 첫경험 by 파비 정부권 (11)
  18. 2009.08.29 법조계의 이단아, 법조패밀리의 실체를 까발리다 by 파비 정부권 (2)
  19. 2009.08.22 역설의 퍼즐,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by 파비 정부권 (5)
  20. 2009.08.21 김대중 서거일에 만난 노무현의 마지막 인터뷰 by 파비 정부권 (20)
  21. 2009.08.10 80년광주로 돌아간 이시대에 "거꾸로 희망이다?" by 파비 정부권 (3)
  22. 2009.08.07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by 파비 정부권 (3)
  23. 2009.07.06 MB정권을 현장체험교재로 보는 6월항쟁, <100℃> by 파비 정부권 (9)
  24. 2009.06.15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만 많을까? by 파비 정부권 (2)
  25. 2009.06.01 살벌한 세상에 읽는 ‘고민하는 힘’ by 파비 정부권
  26. 2009.05.22 신영철사태로 다시보는 사법비리 by 파비 정부권 (1)
  27. 2009.05.09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적인 여행 by 파비 정부권 (1)
  28. 2009.05.08 사람과 개의 공통점과 차이 by 파비 정부권 (2)
  29. 2009.03.26 알라딘-티스토리 서평단에 합격했어요! by 파비 정부권 (5)
  30. 2008.10.16 습지와 인간이 만들어온 역사와 람사르 by 파비 정부권 (5)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시절이다.

 

엄혹한 시절, 두 부류의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고난을 감내하며 조국의 독립에 헌신하는 선택이었다. 그 길은 고달프고 험난했을 것이다. 목숨마저도 내놓아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어떤 이들은 가시밭길 그 길을 선택했다.

 

또 하나의 선택은 달콤하고 배부르고 하루하루가 기쁨으로 가득한 현세적 선택이었다. 그 길은 안락하고 평온했으며 자식들에게 편안한 삶의 기반을 물려줄 수 있었다. 비록 양심을 버렸다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어떤 이들은 기어코 붉은 주단이 깔린 배신의 길 그 길을 선택했다.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을 읽으며 들었던 감정은 가시밭길을 선택한 지사들에 대한 경외, 사랑 이런 감정보다는 배신의 길을 선택한 어떤 이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었다. 원래 감정이란 것이 긍정보다는 부정에 더 빨리 더 깊이 반응하는 것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되 아무튼 그랬다.



최근 다시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이 생각나는 것은 이른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인해 시작된 청문회 때문이다. 청문회장에 불려나와 답변이라는 것을 하는 자들의 꼬락서니를 보고 있노라면 울화통이 터져 금세 허파라도 뒤집어질 듯해도 어쨌든 그런 자들을 보며 이른바 <그들의 다른 선택>이란 것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얼마 전 시위 중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은 채 서울대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고 적은 의사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다. 대부분의 의사들도 그의 병사 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에 당당했다.

 

우병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순실을 몰랐을 리 없으며 만약 몰랐다면 무능해도 이만저만 무능한 민정수석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심문했으며 그를 기화로 승승장구했던 검사 출신치고는 너무 형편무인지경이다.

 

그의 선택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늦은 밤 청문회를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거칠고 고달픈 양심의 길과 붉은 주단이 깔린 배신의 길 중에. 승승장구했던 검사 출신의 법조인, 국정원과 검찰, 경찰 등 대한민국 권력기관을 관장하는 민정수석으로서 그가 선택한 길은 무엇이었을까?

 

그리 깊이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결론은 버킹검이라고 했다. 뭐니 뭐니 해도 모든 것은 머니로 통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것처럼 모든 배신의 길은 머니로 통하게 돼있다.

 

그 외 오늘 나온 청문회에 나온 간호사 조여옥 대위 같은 사람은 논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다. 함께 동행한 감시원인지 간호사 동료인지 이슬비 대위인가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군인이며 로봇일 뿐이다. 국방부의 지시를 받아 사전에 답변 원고를 달달 외워 말하는 폼이 참 안쓰웠다. 그렇다고 불쌍해보이지는 않았다. 가증스러웠다.   


아무튼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밤이었다.

 

정신이 회폐해지는 밤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별난사람 별난인생>에서 제일 내 눈길을 끈 사람은 방배추였다. 이름도 별났지만 그의 이력은 실로 별난 것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건달이었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 듣기로 여느 깡패처럼 패를 지어 몰려다는 그런 건달이 아니라 시라소니처럼 홀로 움직이는 싸움꾼이었다.

 

하지만 전설의 주먹이라든가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이라든가 조선 3대구라따위의 다소 선정적인 닉네임에 끌린 것은 아니었다. 내 관심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그는 한때 백만 평이 넘는 부지에 <노느메기밭>이라는 농장을 짓고 함께 일하고 똑같이 나눠 갖는 공동체를 운영했다는 것이다.

 

공동생산 공동분배. 노느메기밭에서는 아무리 일을 잘하는 사람도, 아무리 일을 많이 하는 사람도 남보다 더 많이 가져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일을 못하는 사람도,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한 사람도 남보다 더 적게 가져가지 않았다. 누구든 공평하게 똑같이 분배받았다는 것이다.

 

오호라, 1970년대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일까? 박정희 정권은 두말할 필요 없이 네놈이 빨갱이 아니면 이럴 수 없다면서 그를 잡아다 고문하고 6개월간 징역을 살렸다. 그때의 고문 후유증으로 그는 40대부터 지금까지 이가 하나도 없이 모두 의치에 의존해 살고 있다.

 

그는 진짜 빨갱이였을까?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보면 결코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자본론>을 읽어봤다고 했지만 마르크스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는 마르크스가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 노동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천재였지만 커다란 약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는 푸리에와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메시지가 없는 사람이다. 사실 내 삶 자체가 그러하기도 하고 거창한 철학 따위를 앞세우려는 마음도 전혀 없다. 하지만 숱한 고비와 기회가 다가올 때마다 맨몸 하나를 내던져 새로운 세상을 뜨겁게 만났고 부딪혔다는 점 하나만큼은 자부한다. 나를 건달, 주먹, 깡패, 협객 뭐라고 해도 상관없지만 그냥 뜨거운 내 인생을 찾아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사람으로만 받아줬으면 좋겠다.”

 

방배추 선생(본명 방동규)


방배추라는 사람이 사회주의자여도 상관없고 아나키스트여도 상관없다. 물론 그의 말처럼 아무 철학도 없고 메시지도 없는 그저 깡패거나 협객이어도 상관없다. 다만 그가 1970년대에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공동체를 건설하고 운영할 생각을 했으며 실제로 실행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중요하다.

 

그는 선각자였던 것이다. “최근 정부의 이른바 성과급 중심 임금제 개편이나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 마련 등 정책 어떻게 보느냐?”는 저자(김주완 기자, 경남도민일보 이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만 보아도 80을 훌쩍 넘은 나이의 그가 얼마나 선진적인 사상을 몸과 마음에 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일을 많이 하고 잘난 사람은 돈 많이 주고, 못하는 사람은 적게 주고, 아주 못하는 사람은 퇴출시킨다? 이건 노예의 노동력을 착취할 때 사용했던 방법이에요. 노예끼리 서로 잡아먹고 자기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고, 그건 백 년 전에, 2차대전 전에 했던 경제이론이야.”

 

아무리 평등사상을 신조로 삼는 진보인사라도 이런 주장을 이토록 손쉽게 할 수 있을까? 일을 잘 못하는 사람도 일을 잘하고 많이 하는 사람과 똑같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당하게 그렇소!” 하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방배추는 정말 별난 사람이다.

 

<별난사람 별난인생>에는 방배추 외에도 6명의 별난 사람 이야기가 더 실려 있다. 채현국 선생은 너무도 유명한 별난 인생이라 따로 설명이 필요 없겠다. 장향숙 할머니는 참 아름다운 분이었다. 양윤모, 김장하 같은 분은 별난 인생이라기보다는 의인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노동운동가 김진숙의 삶에 대해선 따로 이야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 나는 이분에 대해서만큼은 별난 인생이라 부르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그의 인생은 뜨겁고 진지하며 정의로운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산업화시대의 사랑과 아픔 그리고 미래가 그를 통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별난 공무원 임종만과 별난 농부 김순재는 특별히 내가 아는 분들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만큼 이분들에 대해서도 따로 할 이야기가 많다. 아마도 임종만은 자신의 임명권자인 시장이 근무하는 시청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하는 인물이니 별종이라고 해도 별로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김순재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 후에는 농촌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살다가 농협조합장까지 오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인생도 들여다보면 만만찮다. 그의 행보뿐 아니라 성격이나 행동도 알고 보면 아주 별나다.


하지만 누구보다 별난 사람은 이 책을 쓴 김주완 기자가 아닌가 한다. 그의 기자 이력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별난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다른 기자들이 안 하는 일을 주로 한다. 그러다 가끔 욕 아닌 욕을 듣기도 하지만 그의 개척정신, 실험정신은 실로 대단하다. 


김주완 기자는 나쁜 사람, 남들이 다루길 꺼리는 비극적 사건을 주로 쫓아다녔는데, 이승만 정권 하의 민간인학살이 대표적이다. 그는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에 일등공신이다. 그의 휘하에(이런 표현을 써서 미안하지만 이 표현이 좀 멋진 거 같아서, 임기자님 죄송^^) 임종금이란 기자는 그의 영향을 받아서 아예 <악인열전>이라는 별난 제목의 책을 불과 얼마 전 출간했다. 


 별난 기자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


아무튼 <별난사람 별난인생> 재미있게 읽었다. 감동도 받았다. 이런 별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빛나고 아름답게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이런 별난 책을 꼭두새벽에 일어나 열심히 쉬지 않고 재미있다고 읽은 나도 참 별난 사람이다.

 

그러나 진짜 별난 것은 이 세상이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이 차별의 세상이야말로 가장 별난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별난 제위들에게 권한다. <별난사람 별난인생>을 읽고 별나지 않은 미래에 동참하시기를.

Posted by 파비 정부권

기묘한 책이다. ‘실록에서 지워진 조선의 여왕이라고? 조선에 여왕이 있었던가?


<혜주>라는 제목만 보아서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도 없고 또 저자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잘 나가는 공지영이나 전경린, 최근 표절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신경숙 같은 유명 작가가 아닌 바에야 누가 이런 밋밋한 제목의 책에 손을 내밀까. 그런데 부제가 당돌하다.


실록에서 지워진 조선의 여왕



소설은 의외로 속도감이 있었다. 글은 간결하여 짧은 단문들로 채워졌고 거의 은유가 없이 직설적이었다. 깊이 생각하거나 고민할 겨를 없이 책장은 술술 넘어갔다. 시종 연속되는 사건들이 흥분과 긴장을 고조시켰다. 게다가 적절하게 뿌려놓은 성애 장면에 신경이 곤두선다. 어쩌면 그것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핵심 주제였다


혜주는 주인공 혜명공주가 왕이 된 후에 불리는 이름이다. 작명에서부터 풍기는 뉘앙스가 심오하다. 사실 <혜주>라는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번쩍 누군가를 떠올렸으며 호기심이 극도에 다다랐다. 혜주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복잡한 성관계로 얽혀있는데 작명처럼 이러한 설정도 독특하기 이를 데 없다. 게다가 혜주가 어릴 적부터 보모상궁에게 방중술을 배웠다는 대목에선 아연해진다. 그리고 민 상궁이 다시 그 예의 방중술을 무극스님에게 전수하고 혜주의 정인으로 삼게 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르지 않고 누가 배기랴.


더욱 놀라운 것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지만 무극만은 민 상궁이 혜주의 생모인 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모녀관계의 두 여자를 품으면서 무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단순한 애욕의 포로였을까? 무극은 어떨지 몰라도 혜주는 애욕의 포로였다. 어린 그녀가 어떻게 그토록 빨리 성에 눈을 뜨고 집착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이 책에서 별다른 설명은 없다. 다만 혜주의 생부와 생모의 전력으로부터 그것이 유전 문제가 아닐까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 초반부의 혜명공주에게 연민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달째 폭우가 쏟아져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 상황에서 숨겨둔 정인과의 정사가 그리워 궁궐을 빠져나가 며칠씩 나타나지 않는 여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혜주가 열락에 몸을 맡기고 있는 사이 한강이 범람하여 두물섬의 마을 한 개가 수몰되고 주민 백여 명이 몰살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급한 보고도 정념에 사로잡힌 혜주를 빼내올 수는 없었다. 닷새의 휴가를 모두 채우고 돌아온 여왕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이렇게 말한다.


청년들은 헤엄쳐 나왔다는데 다른 사람들은 뭐했나요? 물가에 사는 사람들이 헤엄도 하나 못 치나요?”


, 이쯤 되면 천하에 우둔한 사람이라도 상상력은 한군데로 모아진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두물섬 참사가 잊혀갈 즈음 이번엔 역병이 돌아 수많은 백성이 죽어나간다. 시체가 쌓여 썩는 냄새가 진동하지만 조정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니 하는 일이 없다고 하는 게 제대로 된 표현일 것이다. 결국 반정이 일어나고 혜주는 폐주가 되어 쫓겨날 운명에 처한다. 때는 혜명공주가 왕좌에 오른 지 4년째 되던 해. 이 또한 의미심장한 메타포다.


간결하고 직설적인 문체의 소설은 전반적으로 투박했다. 명쾌한 설명이 없는 설정들에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한다. 갑작스런 사건 전개에 당혹스럽기도 하다. 때로는 어이없는 대사들에 실소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왕비가 회운사에서 시중을 드는 무극스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우리 공주와 짝을 맺어주면 참 좋겠구나라고 생각하는 대목은 실로 난센스 아닐지. 어려서 고아가 된 무극은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천출인 것이다. 체적인 구성과 문장도 매끄럽지 못하다. 너무 촌스럽다거나 속물적인 표현들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겠다.


그러나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혜주>는 힘이 있었다. 박진감이 넘쳤다. 재미있고 다음 장면의 기대로 책장 넘기기를 멈출 수 없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아무리 지고한 사상이 담긴 글이라도 재미가 없어 읽히지 않으면 그뿐이다


<혜주>에는 시대를 엿보게 하는 무수한 장치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다름 아닌 노천이란 책사였다. 그는 이른바 3인방의 한사람으로 여왕의 심복이다. 하지만 그 정체는 의혹투성이다. 두물섬 참사에 대한 대책을 묻는 혜주에게 그는 이렇게 간한다.


“(괘념치 마시옵소서.) 백성들은 마구간 누렁소나 뒷간 똥돼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들은 나면 죽고 죽으면 또 태어나는 법이옵니다. 부디 성심을 굳건하게 보지(保持)하시옵소서.”


그랬던 노천은 혜주가 폐주가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삿갓을 쓰고 대중들 속에 숨어 이렇게 중얼거렸다.


폐주의 패망은 그의 운명이요, 그를 망하게 한 것은 내 소임인 것을…….”


그는 내부자였던 것일까? 노천은 본디 술객으로 앞날을 내다보는 신통력이 있었다. 그런 자를 내부자로 배치했다는 것은 이 소설의 작자 또한 신통력이 있다는 뜻이렸다. 소설 <혜주>는 영화 <내부자>가 개봉되는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출판되었으니 영화의 감독과 교감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실로 흥미로운 일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진리경찰이란 필명을 쓰는 온라인 활동가가 있었다. 그가 요즘도 활동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명박 정권 초기 촛불정국을 전후하여 맹활약(!)한 그는 지독스럽게 빨갱이를 혐오했다. 아니 혐오하고자 하는 모든 대상을 빨갱이로 몰았다.

 

그는 가끔 시인 흉내도 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을 다른 이의 블로그에 댓글로 남기기도 했다.

 

장하다 대한민국 전투경찰

그대는 우리의 전사우리의 자랑

대한민국 전투경찰

그대는 우리의 폭동진압 공격특별대원

(중략)

수백 개의 돌과 쇠파이프와 화염병과

머릿속이 새빨간 벌레 같은 폭도들로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북괴의 흉악한 공작을

그대 몸뚱이로 내리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면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하략)


이미 오래전에 증발해버려 어느 누구의 기억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을 필명이 왜 무단히 생각났을까? 그것은 아마도 <1984>에 등장하는 사상경찰과 너무도 흡사한 이름 때문이었으리라. 물론 진리경찰이 곧 사상경찰을 흉내 낸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나의 상상력일 뿐이다. 어쩌면 진리경찰은 <1984>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진리경찰은 <1984>를 읽었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다른 명저 <동물농장>도 함께. 죽을 때까지 철저한 사회주의자로서 이상을 꿈꾸었던 오웰의 이력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의 저작을 반공주의 교과서로 활용했던 점을 생각한다면, 진리경찰은 다분히 이념적 의지가 함축된 작명이었을 것이란 짐작도 가능하다.


젊은 작가 오웰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스페인내전에 참전했다. 영국독립노동당과 스페인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의 연합 민병부대에 배속된 그는 이곳에서 적과 싸우기에 앞서 같은 편인 스페인공산당의 탄압으로 동지들이 학살되는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이른바 친 소련파 스페인공산당의 헤게모니 투쟁이다.


긴박한 상황, 자신도 체포되면 총살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오웰은 아내이자 동지 아일린과 함께 가까스로 탈출해 영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즉각 <카탈로니아 찬가> 저술에 돌입한다. 엄청난 충격에 분노의 화신처럼 그의 펜은 맹렬하게 전체주의를 향해 포탄 세례를 퍼붓는다. 스탈린주의로 변질된 공산주의는 그에게 전체주의였다. 사회주의 이상사회를 위해 공산주의는 1차적으로 척결되어야 할 악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카탈로니아 찬가>에 이어 <동물농장><1984>가 탄생한다. 오웰이 스페인내전에 참전하여 스탈린주의자들의 참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세 권의 의미 있는 저술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아이러니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실제 현장을 기록한 르포임에도 80여 년의 시공을 넘는 데는 한계를 보여준다. 아무래도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당시와는 너무나 달라진 오늘날의 눈으로 그 시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에 반해 <동물농장><1984>는 다르다. 때로는 사실을 다룬 기록보다 허구를 그린 소설이 훨씬 진실을 잘 전달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두 편의 책은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1984>는 조지 오웰이 마치 예언자의 눈으로 과거의 시점에서 오늘을 보며 글을 썼던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1984>는 마치 예언서와 같다. 1940년대에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냈을까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증오심을 주입하고 세뇌하는 얇은 금속판 통제 장치 텔레스크린은 하루 종일 쉼 없이 떠들어대는 종편방송들과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연상시킨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들을 째려보며 증오를 촉구한다. 잘 차려입은 붉은 얼굴들이 오리처럼 경쟁하듯 꽥꽥거리는 화면을 보고 있자면 어느새 함께 꽥꽥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현대의 텔레스크린 앞에서 증오와 적의로 뭉쳐진 진리경찰들은 그렇게 해서 또 생산되고 단련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1984>에서 우리가 전율하는 것은 바로 다음 말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 말을 다시 쓰면 이렇게 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도 지배하기 위해 과거부터 지배하고자 한다.”

 

섬뜩하지만 이보다 진실을 담은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1940년대의 런던에서 2015년 서울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지 않은가. 박근혜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괜한 것이 아니다. 빅 브라더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과거를 자기 편의대로 고치고 싶은 것이다. 현재처럼 미래도 지배하기 위해…….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기록국에서 했던 일은 과거 발행된 신문기사를 고치는 일이었다. 기록국의 다른 동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채 홀로 빅 브라더의 명령에 따라 이미 발행된 신문을 끄집어내 오늘 일어난 결과에 적합하게 새로 써서 다시 편철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매일매일 새롭게 고쳐 써서 편철되는 역사는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영혼이 없는 활자들일 뿐이다. 2015년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 집필진들도 바로 그런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윈스턴들처럼 그들은 은밀한 곳에 숨어 서로의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채 과거의 역사를 끄집어내 지울 것은 지우고 새로운 활자들로 채울 것은 채울 것이다.


맑지만 쌀쌀한 4월 어느 날 13시 괘종시계가 울리는 것으로 시작한 <1984>는 비극적 엔딩으로 결말짓는다. 서양에서 13은 불길함을 나타내는 숫자다. 우리의 미래는 어떨 것인가. 어제, 대통령은 자기를 비판하는 국민들을 향해 “IS 테러범 같다며 강한 적의를 드러냈다. 텔레스크린이 ‘2분 증오’로 골드스타인을 단죄하듯, 방송들은 연일 시위대에게 증오와 적개심을 퍼부을 것이다.

 

1984년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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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이었다. 사실 나는 이 책 <풍운아 채현국>을 읽어보기 전에 그를 먼저 만났다. 창원대학교 강당에서 열렸던 이 책 출판기념회에서였다. 엄밀히 말하면 출판기념회가 아니고 북 콘서트라고 해야겠다.

 

다시 사실을 말하면, 나는 북 콘서트의 개념을 잘 모른다. 아마 대충 내가 아는 개념대로라면 북 콘서트란, 책을 통해 사람들이 모여 즐기고 소통하는 것이다. 하나의 문화행사다.

 

이날의 북 콘서트는 책을 팔기 위한 목적보다는 채현국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무엇을 했는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런 것들을 나누는 그런 소통의 자리였다고나 할까.

 

하여튼 내가 그때 처음 본 채현국이란 노인은 기인이었다. 그는 거침이 없는 사람이었다. 욕도 예사롭게 해댔다. 그래서 그의 이력을 잘 모르고 그의 대화를 듣게 된다면, 뭐 이런 노인네가 다 있지? 하며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른다.


그의 입에서 마구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 같은 욕설을 듣노라면 그가 과거에 건달이었던지 아니면 최소한 무식한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여길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기 스스로 건달이라고 했다. 또 그 이후에 읽어본 이 책에 따르면, 그의 친구들은 그를 일러 만약 이 친구가 돈이 없었다면 천상병처럼 되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천상병 시인의 기인 행적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던 터이지만, 그러고 보니 채현국 노인의 외모가 천상병 시인을 닮은 듯도 싶다. 각설하고.


 

그는 기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유심히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첫 대목부터 나는 아, 하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그는 기인이 맞다. 그는, 과거 그 시절에 이른바 서울대 중의 서울대라 불리던 서울문리대 출신이었다. (나는 그의 외모나 말투만 보고 진짜 그가 무학자에다 건달 출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토록 무식하게, 쓰레기 같은 욕설이 뒤섞여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말들의 행렬 속에 놀랍도록 고매한 지식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건달 입에서 버나드 쇼가 나오고 니체가 나온다면 사실 평범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건달이었지만, 대단한 학식을 겸비한 건달이었다.

 

, 그럼 지금부터 책 이야기를 하자. 어차피 이 글은 이 책을 읽고 난 독후감이다. 그런데 책 이야기는 안 하고 서두에 노인 채현국 혹은 건달 채현국에 대한 이야기만 해댔으니. 책을 쓴 김주완 기자가 섭섭하다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면 그리 섭섭할 일도 아니다. 채현국을 이야기하는 것이 곧 이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까. <풍운아 채현국>은 김주완 기자가 채현국 노인을 만나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그러므로 그저 채현국의 어록이라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사진.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김주완은 친절하게도 책의 첫머리에 채현국을 모르는 대다수의 독자를 위해 그의 이력을 간단하게 알려준다. 방법은 기록을 찾아 소개하는 것이다. 과거에 그를 아는 사람들이 남겼던 기록을 꼼꼼하게 더듬는 작업은 그 특유의 성실함이다.

 

그는 가끔 술자리에서, 대충 기억나는 대로 쓰자면 이런 말을 했다. “취재하러 왔다는 놈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온다면 그게 말이 되겠느냐. 그래서 나는 누구를 취재하러 가기 전에 먼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사부터 한다. 그게 사람에 대한 예의다.”

 

그가 소개한 채현국은 이런 사람이었다.

 

채현국 형은 가두의 철학자라고 내가 부르는데 당대의 기인이라 할 것이다. 옷도 막 입고 말도 막 하고 술도 막 마시고…… 집안에 돈이 있어서 그렇지 없었으면 천상병 시인과 비슷해졌을 것이다.” (남재희, 언론인, 전 노동부장관)

 

그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고 헤어질 때 차비를 쥐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셋방살이를 하는 친구들에게는 조그마한 집을 한 채씩 사주는 파격의 인간이다. (임재경, 언론인)

 

채현국은, 그 당시 표면에는 일절 나서지 않으면서 군사정권의 지명수배를 받거나 도망치 다니는 사람들을 그 탄광에 받아서 그들에게 호신처를 제공하고, 또 음으로 양으로 반독재 노선을 추구하는 지식인들과 학생들 그리고 문인들을 경제적으로 도와준 훌륭한 분이오.” (리영희, 전 언론인)

 

존경하는 리영희 선생까지 나서서 훌륭한 분이라고 치켜세웠으니. , 이쯤되면 더 소개할 필요가 없겠다. 이외에 인정의 사나이, 활빈당주 등 그를 따라 다니는 수식어들은 실로 넘치고도 남았다. 무엇보다 스스로 건달을 자처하는 그는 기인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의 부친 역시 기인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채기엽. 젊어서 물산장려운동에도 투신했으며, 나중에 임시정부에 합류하고자 상해로 건너가서는 사업에 투신해 큰돈을 벌게 된다. 해방 후 귀국한 이후에도 사업수완을 발휘 재벌급의 기업을 일구게 된다.

 

그의 부친 역시 기인이었다는 것은, 독립운동에 투신하겠다는 일념으로 가족까지 팽개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이나, 대륙에서 트럭을 몰고 사지를 오가며 무역을 해 큰돈을 벌었다는 것이 아니다. 부친도 채현국과 마찬가지로 돈이 생기면 여기저기 나누어주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상해에서 이분에게 은혜를 입은 한국인은 아마 백 수십 인이 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그들이 아직 당시의 은혜를 갚는 것 같지 않다. 뿐만 아니라 계속 누를 끼치고 있기까지 하다. ‘은혜가 다 뭐냐. 다들 건강하게 일 잘하고 있으면 그로써 만족하다고 말씀하시지만 부끄럽기 한이 없다. 희귀한 인물임을 특기해두고 싶다.” (이병주, 소설가)

 

, 이쯤 되면 책 얘기도 더 할 필요가 없겠다. 직접 읽어보시라. 그의 어록을. 그럼에도 하나 특이사항을 소개한다면 대학 시절 그가 탤런트 이순재와 연극반에서 함께 했었다는 사실이다. 책 속에 나오는 그의 말이다.

 

한번 전화를 했는데, ‘이름 들어봐야 잘 모를 끼다. 나 채현국이다했더니 왜 몰라?’ 하대. 그래서 이 자식, 알면서 전화도 한번 안 했냐고 하니 지금도 욕하는데. 뭐 욕먹으려고 전화 하냐?’ 하더군. 2년 선배에요.”

 

그러고 보니 이순재가 서울대 철학과 출신이었다. 나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늙어서 케이블방송에서 상조회 광고나 하는 그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내 사정이고. 아무튼 채현국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 이름들만 해도 쟁쟁하다. 책을 통해 직접 만나보시기를 바란다.

 

채현국 선생은 이미 유명인사가 됐다. 그의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모니터가 그의 사진들로 꽉 찬다.


, 특이사항이 하나 더 있다. 채현국 부자가 현 경남대학교를 당시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이던 박종규가 인수(강탈?)하기 전 소유주였다는 사실. 우리 지역 일이니 관심이 아니 갈 수가 없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비사다. 어쨌든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입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많은 사실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그의 입을 통해 세상을 발가벗겨보는 재미도 느끼게 될 것이다. 채현국은 실로 기인이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세상에 정답은 없다. 무수한 해답만 있을 뿐!” “재산은 세상 것이다!”와 같은 그의 어록이 아니라도 그는 삶 자체가 기인이다. 그러나 이 책 <풍운아 채현국>을 읽고난 이제 그를 이렇게 불러야겠다.

 

채현국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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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람선은 항상 가정과 같은 분위기를 유지함으로써 여행객이 병에 걸릴 경우 주위의 친절한 벗들로부터 가능한 모든 치료와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마크 트웨인 여행기>에 나오는 여행 프로그램의 한 구절입니다. 이 여행 프로그램은 186721일 브룩클린에서 발행된 것으로 실제입니다. 200자 원고지로 대략 2~30매에 달하는 장문의 여행 프로그램인데 일종의 판촉홍보물인 셈입니다. 그 시절에 이런 상세하고 자상한 광고문이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비유하자면 요즘 TV홈쇼핑에서 쇼호스트들이 보여주는 그것과 유사하다 할 것인데 어쩌면 그보다 더 섬세한 리얼함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가 주목한 것은 바로 위에 인용한 문장 중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유럽인들은 치유에 있어서 위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어린왕자>를 보십시오. <어린왕자>의 충실한 독자라면 아마도 생텍쥐페리가 쓴 서문을 기억할 것입니다.


레옹 베르트에게

 

 내가 이 책을 레옹 베르트라는 어른에게 바치게 된 것을 어린이 여러분은 용서해 주기 바랍니다나로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세 가지 있답니다먼저 이 어른은 세상에서 나와 제일 친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또 이 어른은 거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정도로 이해심이 많은데어른의 책들을 비롯하여 어린이를 위한 책들까지도 잘 이해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마지막으로이 어른은 지금 프랑스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살고 있어서 내가 그를 위로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유들로 부족하다면옛날 어린아이였을 때의 그분에게 이 책을 바치기로 하지요어른들도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아이였으니까요(그러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많지 않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헌사를 이렇게 고쳐 쓰려고 합니다.

 

어린아이였을 때의 레옹 베르트에게

 

 이 서문에서 제가 특별히 주목해서 보는 것도 바로 다름 아닌 위로입니다. 아마도 <어린왕자> 서문을 통해 보내온 위로는 레옹 베르트에게 그 어떤 선물보다 큰 기쁨을 주었을 것입니다. 독일에 점령된 나찌 치하의 프랑스에서도 그는 삶이 주는 환희에 감사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위로.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짤막한 이 단어에 인색하지 않나요?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치료와 더불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라 할 수 있습니다. 유럽인들은 그것을 알았기에 간단한 여행 프로그램에서조차 밝히고 있습니다. 이미 백오십여 년 전에 위로는 여행상품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의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우리가 오히려 위로에 인색하다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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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가 성인이 되고자 고심하다 마침내 부인을 내쫓았다!”

맹자

예사롭지 않은 이 고대의 스캔들을 들춰낸 사람은 다름 아닌 곽말약이다. 다분히 과장되었을 이 이야기는 그러나 순자로부터 차용한 것이었다. 순자는 ‘해폐편(解蔽篇)’에서 ‘맹자는 패덕을 싫어하여 부인을 내쫓았는데, 이는 가히 스스로 수신에 힘쓴 것’이라고 기술했다.

그런데 ‘맹자는 금욕주의자’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곽말약의 해학이야말로 흥미롭다 아니할 수 없다. 그는 순자의 악패를 부인의 패덕이 아니라 ‘맹자가 자신이 몸을 상할 것을 염려하여 부인을 내쫓았다’는 주장을 펴는 신비한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곽말약. 그는 중국 문화사에서 천재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깊고 넓은 학식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그는 대문호 노신과 쌍벽을 이루는 뛰어난 문학가요 탁월한 역사학자이자 고문학자였으며, 혁명가였다. 

족발, 제목에 깃든 오묘한 철학
 그가 역사적 사실들로부터 제재를 취하여 집필한 글들을 묶은 책의 제목으로 <豕蹄>, 우리 말로 하면 <족발>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 책의 한국어판 역자(신진호)는 제목에 얽힌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썼다.

“이 시제(豕蹄)라는 말이 우리나라 말로는 돼지족발을 의미하는데 곽말약은 족발이라는 제목이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성질을 잘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값싸고 천한 돼지족발도 불을 세게 때서 푹 삶고, 알맞게 간하고 향신료를 뿌리면 평민들이 즐겨 먹는 요리가 될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라성 같은 성인‧영웅호걸들의 공식적 역사 속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작은 이야기들도 보는 관점과 다루는 방식에 따라서는 평범한 현대인들이 세상을 달리 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꺼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목에 얽힌 이 이야기 속에는 곽말약의 번뜩이는 기지와 자유로운 상상력 그리고 투철한 역사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처음에 곽말약은 ‘역사제재 꽁트’(史題空託)라는 이름을 쓰려했지만, 네 글자가 너무 거추장스럽다고 여겨 ‘사제(史題)’로 줄이려고 했다가 다시 ‘사체(史體 )’로 바꾸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살찐 자기 친구에게 이 책을 바치면서 발음이 같은 시제(豕蹄)로 결정했다고 한다.

오늘 나는 우연히 책장에서 걸어 내려와 방바닥에 뒹굴고 있는 <족발>을 발견했다. 이 책을 산 것이 어언 십년하고도 4년이 더 흘렀다. 그동안 나는 이 책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니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게 된 셈인데 무척이나 반가웠다.

나는 오래전, 이 책 속에서 맹자의 아내를 보았었다. 그녀는 매우 고결했으며 현명하고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곽말약의 비유에 따르면 그녀는 현숙했을 뿐 아니라 매우 요염하고 색기가 넘치는 젊은 여자였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했다. 곽말약의 뛰어난 문재는 맹자가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쩔쩔 매는 모양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적나라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었다.

아내의 미모에 홀린 맹자, 공부가 안 돼
<족발> 속에 등장하는 이 글의 제목은 <맹부자출처(孟夫子出妻)>다. 우리말로 번역한 제목은 <맹자, 부인을 내쫓다>이다. 맹자가 부인을 내쫓았다고? 참으로 독특하고 기이한 제목이 아닌가? 나는 제목을 보자마자 끓어오르는 흥미를 참을 수 없었다.  

공자의 아내는 그 추하게 생긴 몰골과 괴팍하고 못된 성격으로 그의 남편 못지않은 명성을 누렸다. 혹자는 공자가 성인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아내의 추하고 못된 성격이 한몫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공자는 집을 떠나 천하를 주유했던 것일까?

맹자는 정반대의 경우였다. 맹자의 아내는 매우 아름다웠다. 조숙했으며 지혜롭기까지 했다. 그녀는 맹자가 설파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알았으며 부동심(不動心)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맹자가 아침밥을 먹을 동안 옆에 다소곳이 앉아 시중을 들었다.

그녀는 예를 알아 행했다. 밥을 퍼서 건넬 때도 나무쟁반을 중간매체로 삼아 고개를 숙여 두 손으로 받쳐서 건넸다. 식사는 맹자가 좋아하는 담백한 생선죽과 생강 한 조각, 콩나물 무침으로 매우 정갈했다. 그러나 맹자는 밥을 먹는 내내 아내의 얼굴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곽말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어젯밤의 상황과 오늘 아침의 상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맹자는 어젯밤에 부인을, 한 방울의 즙까지도 아까워하면서 참외를 먹듯이 그렇게 애무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바로 어젯밤 그 애무 때문에 맹자는 이렇듯 점잔을 빼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란 이처럼 모순된 것이었다.”

생선도 내가 원하는 바요, 곰 발발닥도 내가 원하는 바라
맹자는 공자를 따라 성현이 되고자 하는 뜻을 세우고 그 요체로 ‘부동심’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의 부인만 보면, 특히 밤에는 마음이 흔들리고 다음날이 되면 여지없이 나른한 기운으로 온몸이 가득 차니 공자가 질책하는 듯해 괴롭기 이를 데 없었다.

곽말약은 계속해서 맹자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직시하지 않는 것 역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부인의 온몸, 그 적나라한 몸이 사실 그의 모든 감각기관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갈저고리 아래 튀어나온 봉긋한 유두, 그의 비밀을 모조리 꿰뚫어 보는 듯한 흑요석 같은 눈, 그 온화함, 그 유연함, 그 숨결, 그 유선(流線)……. 그는 천근의 무게에 짓눌린 듯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 악마야! 나는 공자의 제자이지, 너의 제자가 아니야!’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외쳐대던 그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주방으로 가 있으시오. 밥은 내가 직접 퍼서 먹겠소.” 부인을 내보낸 맹자는 벽에 걸린 공자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탄식했다.

공자

그러자 부엌에 있던 부인이 놀라 다시 돌아와 맹자에게 말한다. 그녀는 이미 맹자의 속마음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 저를 당신의 아내로도 여자로도 여기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하실 수 없나요? …… 당신 곁에 제가 없으면 전 당신이 불편할까봐 염려스럽습니다. …… 여보, 진정 저를 제자나 하인으로 여겨 주세요.”

여기에 대해 맹자는 “생선도 내가 원하는 바이고 곰 발바닥 요리 역시 내가 원하는 바이다. …….”란 애매한 경구로 답을 대신한다. 역시 맹자는 유식한 지식인이다. 생선은 아내요, 곰 발바닥 요리는 공자다. 극진한 모성애를 느낀 맹자의 아내는 즉시 물러나 짐을 싼다.

천하의 성인도 다른 이의 노동 없이 이루지 못한다
순간, 맹자의 자세는 허물어진다. 그는 심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곽말약은 계속해서 적고 있다. “아내가 가 버린다면 기름이니, 소금이니, 땔감이니, 쌀 같은 것들은 누가 맡아 살림을 해준단 말인가? 그는 이때 한 가지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의 성현이 되려면, 아니 심호흡을 하는 것조차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작은 노동 덕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가엾은 맹자는 부인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잘못을 빌며 가지 말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부인은 그를 안아 일으키며 말한다.

“아니에요. 저는 당신에게 감사해요. 여보, 당신은 천하의 스승이에요. 저 한 사람이 독차지할 수 있는 분이 아니지요. 제가 여기 남아있는 것은 당신에게 도움이 못 되요. 제가 떠나는 것이 당신에게 이로운 거죠. 당신에게 이롭기만 하다면 불속에라도 뛰어들 거예요.”

맹자는 문득 아내가 공자보다도 위대하다고 생각되었다. 아내는 이미 만공선생에게 맹자를 보살펴줄 것을 부탁하고 온 참이었다. 그녀는 입으로만 인의를 떠들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했다. 맹자는 생각했다. 공자도 그의 아내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어찌 천하를 주유하며 세상을 가르칠 수 있었겠는가.

위대한 스승은 멀리 공자가 아니라 가까운 아내였다
마지막으로 맹자의 결심을 곽말약은 이렇게 적고 있다. “그렇다. 말하지 않고 행하는 것, 실천, 실천! 나는 멀리 공자를 스승으로 모시느니 차라리 가까이서 아내를 본받아야겠다.”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맹자는 역시 훌륭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글쎄, 이게 왜 홀연히 세월을 뛰어넘어 방바닥을 뒹굴고 있었을까? 나는 우리 집에 이 책이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지 오래였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새삼스러운 사실 하나를 다시금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은 아내들이란 사실을 말이다. 물론 십여 년 전에도 느꼈던 바이기는 하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맹자가 깨달았던 평범한 진리는 더욱 절실하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작은 노동 없이는 단 한 시도 살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을 아내들은 말없이 실천으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의 경우 특히 그렇다. 그래서 오늘 이 책이 무척 반가우면서도 한편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2009. 2. 2.  파비

ps; 뛰어난 희극작가요 시인이었던 곽말약의 문학세계는 노신과 더불어 쌍벽을 이룬다. 그러나 그가 중국공산당에 이용당하는(또는 스스로) 작품을 많이 썼으며, 권력에 아부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는 역시 변함없이 중국 현대문학사에 빛나는 별이다. 이글에 등장하는 묘사들 중에는 현대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것은 이글이 세상에 나온 때가 1930년대란 점을 감안하면 그리 큰 불만은 없을 것이다. 아쉽게도 곽말약의 사진은 구하지 못했다. 대신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을 사진으로 만들어 올릴 생각이지만, 지금 카메라가 없으므로 서너시간 정도 걸릴 듯하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초패왕의 자살

서평 2012.06.21 01:24

괄막약의 역저 『족발』은 맹부자출처를 비롯하여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특유의 해학과 풍자로 쓴 이야기들을 엮은 책이다. 거기에는 맹자, 공자, 장자, 항우, 진시황, 사마천, 노자, 가의, 그리고 두 명의 제나라 용사가 등장한다. 또 공자를 만나기 위해 멀리 서양에서 찾아온 마르크스도 등장한다.

이 책이 어느 날 홀연히 책장에서 걸어내려 와 방바닥을 뒹굴게 되면서 나는 14년 만에 다시 고대 중국의 명인들을 만나보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2200년 세월의 벽을 넘어 항우를 만나보는 것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다.

‘역발산기개세’ 항우의 자살
항우는 초한지에 등장하는 유방의 맞수다. 그래서 우리는 항우를 잘 알고 있으며 '역발산기개세'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는 것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항우는 유방에게 패함으로써 천하제패의 꿈을 접었다.

해하에서 사면초가에 몰린 항우, 부인 우미인마저 자신의 초전검으로 자결하자(항우와 우희의 애달픈 생사이별을 노래한 ‘패왕별희’는 너무도 유명하다) 남은 군사를 이끌고 퇴각하여 오강에서 처절하게 싸우다 스스로 목을 베어 파란만장한 생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곽말약의 족발에서 항우에 대한 이야기의 제목은 「초패왕자살(楚覇王自殺)」이다. 그러나 곽말약이 그려낸 초패왕의 자살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항우는 용맹한 장수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그에 못지않은 종리매를 비롯한 용맹한 무장들이 부지기수였다. 그의 부대는 천하무적이었다. 그가 비록 해하전투에서 패해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용맹은 시대를 넘어 회자되고 있다.

그런 그가 그리 허무하게 죽었을까? 아니다. 그의 죽음은 장렬했다. 그는 용맹한 부하들과 더불어 마지막 순간까지 투쟁했다. 항우에게 전장은 따뜻한 고향의 품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최후를 맞이할 장소로서 전장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전장이야말로 그가 살아온 곳이며 그가 죽어야할 곳이었다. 그러나 곽말약은 죽음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무인은 함부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용사에게 죽음이란 천하만인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항우의 최후가 장렬하기는 하였으나 곽말약의 관점에서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명예에 집착하는 헛된 죽음일 뿐이다.

장강에 이는 풍운(風雲)
연일 내린 폭설로 오강포 부근 우저산과 백벽산 일대는 온통 새하얗게 뒤덮였다. 솟아오른 아침 태양에 흰빛만이 반짝이며 저항할 뿐 인적은 끊어지고 새 한 마리조차 날지 않았다. 세상은 온통 흰빛에 정복되어 있었다. 저 휜 눈에게 항복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지칠 줄 모르고 흐르는 장강과 하늘의 태양뿐이다.

이곳에 난데없이 한때의 군마가 어지러이 달려오고 있었다. 넓은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파도처럼 강변에 당도한 웅장한 소리는 스물일곱 명의 사람과 스물일곱 마리의 말이었다. 그들이 강가에 다다르자, 그 기세는 강변에 부서지는 물결의 포말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들의 대장을 태운 말은 검푸른 빛을 띠며 아직도 더 달리고 싶다는 듯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강을 향해 연신 울부짖으며 뿌연 김을 내뿜고 있었다. 말의 주인은 매우 지쳐있었다. 그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한군데 성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강가에 버려진 조개껍데기처럼 널려 있었다.

말들도 기진맥진했다. 기수가 내리자마자 모래톱에 긴 수면을 취하려는 듯 쓰러져버렸다. 검푸른 말만이 앞발로 모래톱을 연신 차대고 있었다. 말에서 내린 대장인 듯한 사내는 잔뜩 충혈 된 두 눈으로 분노하듯 장강을 노려보았다. 나이는 30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항우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오강(烏江의) 정장(亭長)
이때 고요를 뚫고 한 척의 나룻배가 나타났다. 배 위에는 중년의 남자가 노를 젓고 있었는데 예사 사공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의 생김새는 여위었으나 넓는 이마 아래 두 눈에선 지혜어린 광채가 발하고 있었다.

“대왕. 제가 틀리지 않았을 거라 믿습니다. 당신은 틀림없는 우리의 서초패왕이십니다. 뒤를 쫓아오는 병사들이 곧 들이닥칠 것입니다. 어서 배에 오르십시오.”

대왕이라 불린 이 사내는 바로 서초패왕이라 자칭하던 항우였다. 그랬다. 모두들 조개껍데기처럼 널려졌지만, 유독 그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던 검푸른 말은 다름 아닌 천하의 명마, 오추마였던 것이다. 항우와 그의 부하들은 유방의 군사들에게 쫓기고 있었던 것이다.

수백 년을 이어오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종지부를 찍고 천하를 통일한 것은 진시황이었다. 그러나 진시황은 폭정으로 민심을 잃었다. 농민들에게 과도한 세금과 부역, 병역을 부과해 국가경제의 기반이던 농민들의 삶을 도탄에 빠트렸다. 분서와 갱유는 수천 년에 걸친 중국의 문화를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만들어놓았다.

항우, 진시황을 능가하는 폭정으로 민심을 잃다
진시황이 죽자 전국 각지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농민봉기를 주도하던 진승, 오광 그리고 시정의 평민들을 이끌고 유방이 있었다. 거기에 항우도 봉기의 한 세력을 담당했다. 항우는 숙부인 항량과 더불어 출전했다. 그들은 파죽지세였다. 이때 항우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칭호를 얻었다.

결국 진나라는 봉기세력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폭정을 일삼는 진왕조의 전복이란 백성들의 염원이 반영된 결과였다. 함양에 입성한 항우는 득의양양했다. 자신의 역발산기개세가 진왕조를 멸망시킨 것이다. 이제 그에게 거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당초 항우는 사람됨이 좋고 힘과 용기까지 갖추어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패자가 되자 자만심이 그를 지배했다. 진왕조를 멸망시킨 것은 오로지 그의 능력 때문이라고 믿었다. 항우는 포악해지기 시작했다.

진의 수도 함양의 궁실과 각종 서적들을 불태웠다. 무고한 아녀자를 무참히 살해했다. 진시황이 저지른 분서와 갱유를 능가하는 폭정을 자행했다. 민심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민심이 떠나자 항우는 더 이상 역발산기개세가 아니었다. 이어 벌어진 유방과의 패권다툼에서 항우는 연전연패했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초패왕
유방의 군사에 쫓긴 항우의 앞에는 장강이 가로막고 있었다. 불과 수십 리 밖에는 그의 목을 베어 공을 세우려는 무리들이 휜 눈을 날리며 쫓아오고 있다. 이때 오강의 정장이 나룻배를 끌고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를 구하기 위해. 그러나 항우는 그를 믿을 수 없었다.

지금껏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속였던가. 음릉에서 한왕에게 쫓기다 길을 물었을 때 늙은 농부는 그를 속여 서쪽으로 가게 하여 속여 죽을 고비를 넘겼다. 연도(沿道)의 주민들은 밥과 따뜻한 국으로 그를 맞지 아니하고 집을 텅 비우고 모두들 도망을 갔다. 그러나 무엇보다 야속한 것은 하늘이었다.

실로 기진맥진한 그들에게 눈을 내려 고통을 더해주는 하늘이 가장 미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강도 더할 수 없이 미웠다. 공교롭게도 그가 오는 것을 기다려 배를 정박하고 있는 정장이 마치 하늘의 화신인양 생각되었다.

‘음릉의 늙은 농부와 연도의 주민들도 다 하늘이 조종해놓은 것이다. 아, 내 앞에 서서 배에 타기를 권유하는 이자는 틀림없이 첩자다. 나는 물에 익숙하지 못하다. 내 부하들도 모두 북쪽사람들이라 물의 특성을 알지 못한다. 이놈이 그걸 알고 우리를 죽이려는 것이다.’

초패왕은 불끈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이 모든 것은 하늘이 안배한 것이다. 하늘은 궁극적으로 나보다 강하다. 내 어찌 하늘을 이길 수 있겠는가.’

하늘은 초패왕을 버렸는가?
칼자루에서 손을 뗀 항우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말했다. “배에 한 명밖에 오를 수 없다면 여기 종리매와 나의 오추마를 데려가게. 종리매는 나의 가장 훌륭한 전우이지만 지금 그는 너무 다쳐 몸을 움직일 수도 없네. 내가 아끼는 이 오추마도 전장에서 죽게 하고 싶지 않으니 데려가 살려주게.”

초패왕은 뜻밖에도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너그러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함양을 정복한 이후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던 웃음이 그에게 돌아온 것이다. 『사기』의 「항우본기」에 등장하는 항우의 말을 곽말약은 다음과 같이 옮겨놓았다.

‘이것은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다면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숙부와 더불어 회계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우리가 8천명의 강동 젊은이를 이끌고 강을 건너 싸우기를 8년, 70여 차례의 싸움을 치르고 난 지금엔 모두들 죽고 아무도 남지 않았다. 숙부께서도 일찍이 정도에서 전사하셔서 이제 나 혼자만이 남았다. 나 혼자 강동으로 돌아가 설령 강동의 노인들이 나를 가엾게 여겨 왕으로 추대할지라도 내가 무슨 면목이 있어 그들과 만날 수 있겠는가?’

정장은 계속해서 항우에게 배에 오르기를 권했지만, 끝내 항우는 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종리매와 오추마를 그의 부하들을 시켜 배에 태우게 했다. 그리고 항우는 왼손으로 힘차게 방패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나머지 스물다섯 명의 장사도 마치 명령을 받은 것처럼 동시에 방패를 들어올렸다.

초패왕의 장렬한 최후
적들의 말발굽 소리가 지척에 들려왔다. 족히 수백 마리는 됨직하였다. 항우는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항우의 초전검과 함께 스물여섯 줄기의 검광이 휜 눈에 반사되어 무수한 무지개를 뿜어냈다. 스물여섯 줄기의 검광은 말을 달려 앞으로 달려 나갔다. 두 무더기의 거대한 파도가 부딪히자 거대한 물보라가 일었다.

항우는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그는 부하들이 모두 죽자 두려워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는 적 앞에서 우희가 자결한 초전검으로 스스로 그의 목을 베었다. 역사에 의하면 그의 목을 차지하기위해 다투다 수십 명이 밟혀 죽었으며 항우의 시신은 다섯 동강이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시신의 각 부분을 차지한 장수들은 공훈을 인정받아 후한 상을 받았다고 한다. 

장국영 주연의 『패왕별희』의 한 장면/이미지출처=다음영화


멀리 강 한 가운데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정장은 종리매에게 고백한다.

“종리매 장군. 사실 저는 정장이 아닙니다. 저는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서생일 따름이지요. 하지만 이곳의 정장이 달아나버렸으니 정장이라 해도 이상할 것은 없겠지요. 애초에 호의를 품고 여기에서 기다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한왕의 첩자는 아니올시다. 당신도 이 사실은 분명하게 알아야겠지만 오늘날의 백성들 특히 우리 글 읽는 사람 가운데 항왕에 대해 그 누가 아직도 좋은 뜻을 품고 있겠습니까? 그 자신이 민심을 저버린 때문입니다. 그는 처음에 사람이 좋아 민심을 얻었습니다. 진시황의 폭정에 시달린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진나라 통치를 뒤엎으려했습니다.

민심을 저버린 항왕, 더 이상 역발산기개세는 없다
이러한 백성들의 뜻에 부응한 항왕은 세상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무두들 자신의 생명을 아까와 하지 않고 그를 돕고 추대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2년도 채 못 되어 진나라 사람의 폭정을 뒤엎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힘어었습니까? 그것은 항왕의 힘이 아니라 백성들의 힘이었습니다.

항왕이 역발산기개세일 수 있었던 것은 백성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떠난 항우에게 더 이상 역발산기개세는 존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항우는 자기보다 훨씬 약한 유방에게 패하고 만 것입니다.”

“종리매 장군! 하지만 저는 오늘 항왕이 당신과 이 말에게 보여준 태도를 보고 매우 감동했습니다.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에 친구를 생각하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득 생각난 것인데 당신도 알 것입니다. 한왕 유방은 도망갈 때 자기 자식들을 수레에서 밀어 떨어뜨렸다는 얘기 말입니다. 대체로 이러한 것들이 인간의 모습이지요.

항왕은 이점에서 유방보다 더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러한 마음을 널리 베풀었다면 그는 결코 오늘 같은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그를 죽이려던 마음을 바꾸어 그를 살려주어 강동으로 돌아가 재기하기를 바랐지만 그는 자신의 실패를 하늘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운명은 하늘 탓이 아니다
정장은 계속해서 말한다. 자기 잘못을 알아야지 어찌 하늘을 탓하는가? 하늘은 말이 없다. 항왕이 들먹거리던 이 하늘이었고 한왕이 들먹거리던 하늘도 이 하늘이다. 백성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저 자신만의 권세를 생각하고 백성의 생사 따위엔 개의치 않던 사람이 자멸의 걸어갔다고. 그는 죽을 때까지도 자기만 생각했다고.

이어 정장은 항우를 따라 죽고자하는 종리매에게 이런 말로 타이른다.

“장군. 죽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필사적인 마음으로 타인을 이롭게 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사람됨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 저의 집이 여기서 않습니다. 제가 배를 돌린 이유는 당신을 저의 집으로 데려가 부상을 치료하고 잘 쉬게 한 다음에 당신으로 하여금 다시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초패왕자살>은 지칠 줄 모르고 흐르는 장강의 충고로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있다. 장강은 말한다. “너희들이 아무리 잘난체해도, 너희들이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갖고 거드름을 피워도 결국은 모두 나에게로 녹아 흘러들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에게로 와 함께 생명의 찬가를 부르는 게 어떻겠는가?”

『족발』, 해학과 기지가 돋보이는 명작
곽말약은 참으로 신묘하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린 초패왕과 초나라 군사들. 그들은 짙은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초가(楚歌)에 전의를 완전히 빼앗겼다. 하나 둘 탈영이 이어지고 마침내 소수의 부하들과 자신만 남게된 초패왕,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명예롭게 죽음을 택하는 길외엔 없었을 터이다

하지만 곽말약은 초패왕의 비장한 최후를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살려놓았다. 날렵한 해학과 날카로운 기지가 다시금 돋보이는 작품이다. 곽말약의 작품도 뛰어나지만, 이 작품을 번역한 역자 신진호의 순발력 또한 뛰어나다. 그는 원제 <楚覇王自殺>을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늘은 초패왕을 버렸는가?                                 

Posted by 파비 정부권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 - 10점
모리야 히로시 지음, 지세현 옮김/시아출판사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면 세상살이가 한결 가벼워진다
세월을 뛰어넘은 통찰로 인생을 경영하는 지혜를 배운다
… 인간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원칙과 지침을 제시해 주는 고전의 세계

고전을 읽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고전을 통해 선현들의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우리는 고전을 읽지 않는가?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삶에 지쳐서 그러하기도 하다. 또는 고전처럼 딱딱하고 두꺼운 책을 쉽사리 들기가 부담스러운 점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공자 왈’ 한다거나 ‘맹자 왈’ 한다는 말로 그를 무시한다. 이로써 공자와 맹자는 성현의 지위에서 매우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와 맹자는 참으로 고리타분한 사람들이었던가?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공자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고초를 다 겪었지만 자신을 갈고 닦아 결국 성현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맹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집안에 틀어박혀 ‘공자 왈’ ‘맹자 왈’ 한 사람들이 아니다. 천하를 주유하며 온갖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논쟁하며 세상을 경영하기에 분투한 사람들이다.


논어와 맹자를 읽는 현대인들이 녹슬지 않는 그 지혜에 탄복하는 것은 수없이 많은 수레바퀴를 마멸시키며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하는 책,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는 논어, 맹자, 사서삼경, 순자, 노자, 채근담, 십팔사략 등 방대한 중국고전 중에서도 현대인들이 읽었으면 하는 내용을 엄선하여 수록한 책이다.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 - 10점
모리야 히로시 지음, 지세현 옮김/시아출판사


나는 한글세대이다. 우리가 흔히 한글세대라고 하면 1970년 박정희 정권의 한글전용정책 이후에 교육받은 세대를 말한다. 한글전용정책 덕분에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거의 0%로 떨어졌다.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을 말할 때 배우기 쉽고 매우 과학적인 글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배우기 쉽다는 것은 한글전용정책 이전 6~70%에 달하던 문맹률이 거의 0%로 떨어졌다는 사실로 쉽게 증명할 수 있다. 그러면 과학적 측면에서의 우수성은 어떨까? 그것도 이미 증명되었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한자를 계속 쓰고 있었다면 오늘날처럼 IT강국이 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한글전용정책은 기업들에게도, 특히 컴퓨터와 휴대폰 업체들에게, 비용과 부담을 덜어주는 혜택을 주었다. 이처럼 얻은 것이 많은 대신 우리는 한자를 잃었는데, 그것만 잃은 것이 아니라 한자가 만들어내는 한문 즉, 고전도 함께 잃어버린 것이다. 성장제일주의를 넘어 다시 인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한문이 새로 관심을 받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이책의 저자는 일본인 모리야 히로시다. 그는 일본의 대표적 중국문학자로 중국고전의 대부분을 번역했다. 그는 머리말에서 “나는 이 책을 30대 이상의 이 사회를 열심히 지탱해나가고 있는 사람들, 특히 40대 이상의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중국고전은 단순히 지식과 교양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식과 교양만을 얻기 위해선 중국고전이 적합하지 않다고? 그럼 무어란 말인가.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이는(중국고전은) 어디까지나 실학으로,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실천했을 때 의미가 있으며 비로소 그 값어치가 살아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층은 사회의 중심 세대이긴 하지만 고전의 내용과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아직 이르다.”


저자는 요즘 젊은이들이 유명한 고사성어인데도 걱정스러울 정도로 잘 이해를 못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컴퓨터를 비롯한 온라인 매체의 홍수에 빠진 요즘 세대들이 중국고전에까지 신경쓸 여가가 없다는 데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첨단매체, 첨단기술의 습득도 중요하지만, 고전은 그에 비길 수 없는 무한한 가치의 보고란 점을 강조한다.


나는 저자가 일본인인데도 나와 매우 비슷한 눈을 갖고 있다는데 놀랐다. 그것은 다른 말로 일본도 우리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말 중에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대학에 나오는 말로써 수신제가에 힘쓴 연후에 나라를 경영해야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고사성어를 설명하면서 “요즘 정치가들을 보고 있으면 새삼 인물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냥 무심코 이 말을 지나치다가, 왜냐하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으니까, 문득 그가 일본인이란 사실을 깨닫고 생각했다. ‘아, 일본의 정치인들도 우리네 정치인과 별로 다르지 않은가 보구나.’


오래전 황광우는 이렇게 말했었다. “修身齊家에서 제가란 가정을 잘 돌보라는 말이 아니다. 공자와 맹자가 가정을 잘 돌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들은 제가를 이루었다. 제가란 곧 이다. 자신을 잘 갈고 다듬어 이렇듯 제가 즉, 정당을 만들어 나라를 경영하고 천하를 평안케 하는 것이 정치가(그는 노동운동가였으므로, 사실은 노동운동가)의 역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면 황광우가 말한 수신제가는 고사하고 전통적 의미의 수신제가도 제대로 하는 경우를 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을 이 사회의 중견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3~40대의 직장인들이 읽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정치인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들이 이 책을 읽고 스스로 자신을 수양할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다면 나라의 장래를 위해 큰 덕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은 수신제가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정계에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 원칙일 터이지만, 그것은 이상이고 현실은 차가운 것이므로 그런 정도의 소망이라도 가져보는 것이다.


나는 또 이 책을 스스로 진보운동에 헌신하고 있다는 사람들도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은 진실로 이 사회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자 부단히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가끔 자기신념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것 같은 슬픔을 본다. 고전의 명구는 그들에게도 마음의 평안을 줄 것이다. 


고전을 읽는 것은 마치 훌륭한 그림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가 위대한 화가가 그려놓은 그림을 어제 보고 오늘 또 보지만 거기서 항상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처럼, 고전을 읽는 것은 늘 새로운 깨달음을 우리에게 준다. 고전에 등장하는 고사성어들은 씹으면 씹을수록 맛을 내는 특별한 향신료라도 들어있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논어나 십팔사략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완파하겠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결심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친절하게도 수많은 중국고전들 중에서 겨우 109개의 경구만을 가려 뽑아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겨우라고 했지만, 현대인들의 처세에 매우 핵심적인 내용들로 이정도만으로도 지혜의 숲을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침 이 책에 독서방법에 대한 하나의 교훈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송나라 주자 등 학자들의 글을 뽑아 편집한 『近思錄근사록』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근사란 논어의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仁은 그 안에 있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하루는 주자의 스승인 정이천에게 한 제자가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 묻자 “모름지기 책을 읽어라!” 하고 전제한 후에 “많이 읽는 것보다는 핵심을 파악하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많이 보고도 그 핵심을 모르는 자는 서사(책방주인)일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말일 것이며, 아무 책이나 읽어서도 안 된다는 말이겠다.


그러면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 것인가? 근사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반드시 많이 읽을 필요는 없다. 많이 읽는 것보다는 책이 말하고 있는 핵심을 간파하도록 유의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 모리야 히로시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지식을 얻으려면 이러한 독서가 가장 실천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핵심을 잘 간파할 수 있는 유용한 독서법을 얻으려면 풍부하면서도 날카로운 사고능력이 요구되는데, 이는 고전읽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고전읽기만큼 생각을 풍부하게 해주는 독서가 또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적절한 시점에 나왔다. “오늘 새롭고, 나날이 새롭고, 또 하루가 새롭다”는 대학의 경구처럼 우리는 나날이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방법으로, 우선 가볍게 전체를 한번 훑어본 다음 화장실에 두고 매일 한 구절씩 그 뜻을 음미하며 읽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화장실이야말로 가장 편하면서 친숙한, 사색을 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공간이 아닌가. 고전은 단번에 베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다. 조금씩 두고두고 천천히 되새김질하듯 음미해야 그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만 20년 전에 내가 들었던 말을 오늘 다시 여기 옮기는 것으로 이 글을 끝낸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아마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고전을 읽어라. 고전을 읽지 않고 어떻게 오늘을 분석하고 내일을 설계할 수 있겠는가. 고전 속에는 오늘을 말하고 내일을 보는 지혜가 들어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중국의 전국시대를 종식시킨 진시황은 분서갱유를 단행했다. 그가 갱유, 즉 역사상 유례없는 대학살을 자행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서에 대해서만큼은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분서로 인하여 진시황 이전의 수많은 위대한 문명들이 잿더미 속에 사라졌다. 

인류 문명을 향한 치명적 테러는 진시황만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 세계에서도 이런 분서가 예외 없이 저질러진 시대가 있었다. 기원 2~4세기 초기 기독교는 신성에 대한 해석을 놓고 갈등과 대립이 치열한 시기였다. 그노시스파로 불리는 영지주의는 당대 세계의 중심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가톨릭을 위협했다.

책을 불태우려는 사람들, 책이 가진 나비효과를 잘 알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로마 황제의 승인을 받은 가톨릭이 승리했고, 그노시스파의 모든 종교적 저작물들은 이단이란 이름 아래 망각의 불길 속에 내던져졌다. 20세기에 이르러 이집트의 동굴에서 2천 년 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그노시스의 파피루스가 발견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는데, 신국론과 고백록으로 중세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를 닦은 아우구스티누스도 처음엔 그노시스파(마니교)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세기 후반의 대한민국에도 분서는 예외 없이 행해졌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부에서 인정하지 않는 책을 소지하고 있다가 불심검문, 압수수색 등에 의해 교도소로 간 사람들이 많았다. 교도소란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곳이란 뜻이다. 최근엔 국방부에서 금서목록을 만들어 물의를 일으킨 일도 있었다.

18세기 조선에서도 예의 이 분서는 어김없이 행해졌는데, 당시 조선에는 정치에서 소외된 남인들을 중심으로 천주교가 널리 퍼지고 있었다. 이에 체제적 위협을 느낀 조정은 천주학 관련 서적에 대한 대대적인 분서를 단행했다. 천주교 관련 서적을 가지고 있다가 발각되는 날엔 책과 함께 목이 잘려나갔다.

그러나 역시 가장 악명 높은 분서는 근세기 중국에서 벌어졌다. 문화혁명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홍위병들의 이 잔혹한 테러가 처음 시작한 곳이 유서 깊은 소림사였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오쩌둥이 공산당원들의 자녀들을 불러 모아 홍위병을 처음 조직한 곳이 바로 소림사였던 것이다.

495년경에 세워진 소림사는 중국 선불교의 발상지다. 소림사를 창건한 달마는 특정한 자세로 벽만 바라보면서 수행에 정진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르고자 했다. 후에 이러한 선법은 《벽암록》이란 책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동양세계에 선불교가 꽃피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누구도 금지할 수 없는 자유가 존재하는 곳, 깊숙한 정신세계

《벽암록》이 추구하는 선이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고유한 힘과 그 힘의 원천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화혁명의 광풍은 《벽암록》을 추종하는 선승들을 무력으로 제압했지만, 승려들은 '그들의 정신세계 속으로 깊이 침잠해서 홍위병은 절대 얻을 수 없는 자유, 그리고 마오쩌둥조차 절대 금지할 수 없는 자유에 도달했다.'

책 vs 역사 - 10점
볼프강 헤를레스.클라우스-뤼디거 마이 지음, 배진아 옮김/추수밭(청림출판)

볼프강 헤를레스는 독일의 저명한 언론인이다. 1950년 독일 바이에른에서 태어난 그는 빌 게이츠를 비롯한 유명한 경영자들을 불러 자기 프로그램에 담는 등 매우 정력적인 활동을 벌였을 뿐 아니라 다수의 정치서적, 실용서, 소설을 집필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연출로도 유명한 저널리스트다.

그는 자신이 쓴 책 《책 vs 역사 》에서 '책이 만든 역사' 혹은 '역사가 만든 책'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역사는 책을 만들었지만, 책은 다시 역사를 만들었다. 모든 책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헤를레스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수백만 독자가 읽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러나 이 소설은 역사까지 만들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미의 이름》은 책의 가공할 힘에 대해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책이다. 그는 역사를 만든 책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판매량을 잣대로 책의 영향력을 가늠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엄청난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코란》은 역사를 만들었다. 그런데 세계를 바꾼 책 중에는 인류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진 작품도 적잖이 있다." 

책과 역사 사이에는 사람이 있다. 헤를레스는 어떤 책은 금서가 되고 또 어떤 책은 불태워지는데, 이런 행위를 하는 자들은 책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불에 타 사라지는 것은 그저 잉크와 종이일 뿐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도 없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고, 생각은 자유로우며, 생각을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책 속의 활자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 책이 선정한 역사를 만든 책 50권의 구성에 불만을 가지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또는 이 책의 저자가 활자 틈새 곳곳에 숨겨놓은 가치관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마도 어쩌면 헤를레스는 유럽 중심주의나 루터교에 경도된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헤를레스는 지나치게 마르크스나 마오쩌둥을 비난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독자들의 몫이다. 독자들은 얼마든지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을 자유가 있으며 그럴 권리도 있다. 만약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경향성에 대해 불평하면서 책을 고른다고 한다면 우리가 읽을 책은 세상에 한 권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책은 독자가 읽으면서 새롭게 해석하고 창조적으로 다시 쓰는 것이다.

그 점만 잘 유의해서 본다면 이 책은 실로 유용한 책이다. 책을 대하는 독자들의 태도가 조금이라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은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500년 전 탄생한 공자의 《논어》를 설명하면서 1899년 중국에서 발생한 비밀결사 대원들의 철도 습격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헤를레스의 화술은 역시 그가 유능한 저널리스트임을 실감하게 한다. 

한번들 읽어보시라. 그러면 어떤 분서나 금서로도 막을 수 없는 책의 위대한 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경 첫 구절에 의하면 태초에 말이 있었다고 한 것처럼 인류 역사를 만들어온 수많은 말들이 있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막강한 힘을 지닌 서적들의 배후엔 어떤 본보기와 선구자, 갖가지 상상과 아이디어, 유례를 알 수 없는 신화와 전설'이 숨어 있을까?  

단, 헤를레스의 관점을 탓할 생각은 버리고, 독자 여러분이 가진 생각의 그물에 활자의 물고기를 걸러 가면서 차분하고 천천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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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청춘의 독서』, 유시민 전 장관이 쓴 책이다. 유시민은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다. 내가 유시민이란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스물다섯쯤 되었을까, 그때 나는 공장노동자로 일하던 한창 나이의 젊은이였으며, 노조 활동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비밀지하조직의 일원이기도 했다. 참 우스운 것은, 그 비밀조직이란 것이 기껏 오늘날의 진보신당이나 민노당 정도의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결사체였다는 점이다.

청춘의 독서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유시민 (웅진지식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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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첫 작품, 항소이유서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어떤 면에선 더 유연한 사고의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그 조직에서 유시민이란 사람이 썼다는 <항소이유서>란 문건을 읽어보길 권했다. 비밀조직이었던 만큼 차라리 요구이거나 지시라고 해야 옳을 수도 있었던 그 권고를 나는 충실히 이행했다.


어쨌든 나는 무언가를 읽는 것을 세상의 낙으로 생각하던 사람이었으므로, 그 권고는 썩 마음에 내키는 것이었다. 더욱이 특별한 방향이나 지침도 없이 닥치는 대로, 마치 그저 무언가를 읽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는 듯이 독서를 즐기던 내게 그런 권고는 위험한 바다를 떠도는 뱃사람들의 머리위에서 빛나는 북극성처럼 흡족한 것이었다.


오늘 다시 그 문건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당시 그 문건이 던져주는 힘과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삶은 그 문건에서 내가 느꼈던 힘과 감동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물론 그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그가 존경하는 노무현과 그가 딛고 선 땅은 우리 같은 약자들이 묻힌 세상과는 달랐다.

그들이 권력을 쥐고 개혁을 추구하던 시대에도 여전히 노동자들은 해고와 구속에 시달렸고, 농민들은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쌀을 불태우고 얼어붙은 배추를 추운 눈밭에 버렸다. 모든 진보세력들이 한미FTA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일 때, 노무현은 섭섭한 마음을 TV에 나와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유시민은 그 섭섭함의 대변자였다.


중년의 유시민이 쓴 『청춘의 독서』

그 유시민이 책을 냈다. 바로 <청춘의 독서>다. 그리고 나는 지금 대림자동차 정문 앞 ‘대량정리해고 반대 진보신당 천막농성장’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역시 유시민의 글은 명문이다. 세월의 파고를 넘어온 그의 글에선, 이제 그가 스스로 ‘풋내기’였다고 고백한 젊은 시절의 위험한 선언보다는 차분한 성찰이 돋보인다. 그럼에도 현실주의자가 된 그의 글 곳곳에선 여전히 ‘풋내기’ 이상주의자의 면모가 스며있다.


그게 사랑스럽다. 나는 아직 그의 책을 다 읽지 않았다. 겨우 첫 장만을 읽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서둘러 이 서평을 쓰려는 이유는 그 첫 장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기 때문이다. 풋내기 고교생 유시민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과 감동은 세월이 흘러 현실주의자가 된 중년의 유시민의 눈으로 <청춘의 독서> 첫 장에서 재해석된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살인자다. 그는 도끼로 전당포 노파를 죽였으며, 예정에 없이 나타난 배다른 노파의 여동생 리자베따마저 죽였다. 그의 이 엽기적인 살인은 그러나 ‘초인론’이란 이름으로 포장된다. 말하자면, 선한 목적을 위한 악한 수단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전당포 노파 알료나는 악인이었다. 그녀는 아마도 세익스피어가 묘사한 베니스의 샤일록 같은 존재였을 터이다.


게다가 노파는 배다른 여동생 리자베따를 하녀처럼 부려먹었고 그녀가 부업을 해 번 돈까지 빼앗았다. 이런 이야기를 어느 술집에서 우연히 엿듣게 된 라스꼴리니꼬프는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돈을 빼앗기로 결심하고, 이를 결행한다. 그는 ‘악을 응징하고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악행을 택한 셈이다. 그리고 유시민이 표현한바, 이 ‘초인정신’은 후대에 스탈린과 히틀러에 의해 현실세계에서 발현되었다. 


세상은 비범한 사람들에 의해 구원될 수 있을까

유시민에 의하면 라스꼴리니꼬프처럼 스탈린, 히틀러는 ‘비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류를 구원하려는 신념에 입각해 모든 종류의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부여받은, 혹은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라스꼴리니꼬프가 이들 ‘비범한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끔찍한 정신적 번민과 고통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반대로 스탈린과 히틀러, 이들의 지시를 받아 대량학살을 저질렀던 수많은 부하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런 양심적 가책의 증거도 찾을 수 없는 그들이 그러한 죄악을 저지른 결과 어떤 선한 목적도 이루지 못했다는 증거도 너무나 명백하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고 믿었던 ‘비범한 사람들’의 실패한 악행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선이라고 매듭짓는 유시민의 결론은 유려한 문체와 더불어 빛난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 누가 이 마지막 명제에 반박할 수 있을까.


자, 그런데 나는 이 유려하게 빛나는 첫 장을 읽으며 왜 진한 아픔을 느꼈는가. 그것은 아직도 여전히 목적을 위해 악한 수단이 정당화되는 악행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악행에 저항하는 모든 수단이 역으로 악으로 간주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유시민은 여기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자기 성찰로 성숙한 현실주의자 유시민이 아니라 ‘풋내기’ 유시민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들이 든 것은 대림차 정문 앞 농성장에서 한 해고노동자의 피맺힌 절규를 들었을 때였다. 그는 “악질적인 대림자본의 정리해고에 맞서 우리는 더 악해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저들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정리해고 되어 돌아갈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디에 회사에서 쫓겨난 우리를 따뜻이 맞아줄 세상이 있습니까. 여러분, 저들이 악랄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악해져야 살 수 있습니다.” 


풋내기 유시민이었다면?
정리해고와 비범한 자들의 대량학살을 어떻게 비교했을까


‘기업의 입장’이란 이름 아래 자행되는 대량 정리해고는 대량학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과연 ‘풋내기’ 시절의 유시민이었다면 이런 사태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무어라고 말할까. 자기성찰이 부족한(!) 젊은 날의 그였다면 대량학살에 다름 아닌 정리해고를 남발하는 이 나라 ‘기업의 입장’이야말로 처단 받아 마땅한 노파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아니, 성숙한 현실주의자 유시민이라도 마찬가지다.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업의 입장’은 스탈린과 히틀러 같은 비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행이며, 결코 선한 목적조차도 이룰 수 없다고 외쳐야 마땅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 비범한 사람들의 악행이 멈추지 않는 제도화된 악의 나라라고 외쳐야 마땅하다. 그러나 성숙한 현실주의자 유시민은 그저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고 반박할 수 없는 옳은 말만을 할 뿐이다.


아마도 ‘풋내기’ 유시민이라면 “라스꼴리니꼬프의 초인론으로 현실화된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체주의에 맞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동등한 인권과 참정권을 부여하고,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의사결정권을 위임하는 민주주의 체제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따위의 말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기적인 자기 목적을 위해 악행을 일삼는 자본에 맞서 우리도 스스로 악해져야만 합니다.”

19세기의 도스토옙스키는 민주주의가 승리하는 20세기 세계사를 목격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풋내기’ 시절의 이상이 퇴색한 유시민은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보지 못하는 슬픔이 있는 것이다. 현실주의자가 된 유시민이 현실을 목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있지만, 그의 글 곳곳에 나타나는 이상주의의 그림자들은 아직 그가 ‘풋내기’처럼 맑은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게 사랑스럽다. 그래서 나는 그의 『청춘의 독서』를 꼼꼼히 읽어볼 참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각 장마다 모두 서평을 달 생각이다.

<…………>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그는 글을 잘 쓴다. 대충 훑어본 『청춘의 독서』에는 몇 가지 논쟁적 지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판적 의식을 잃지 않고 잘 읽는다면, 우리의 정신세계가 한없이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이 책속에는 있다. 유시민은 국회의원도 했고 장관도 했지만, 그러나 어떤 잘난 직업보다도 그에겐 뛰어난 글쟁이란 이름이 어울린다. 그리고 그게 가장 훌륭하다. 아마 『청춘의 독서』가 그걸 증명해주리라 믿는다. 

청춘의 독서 상세보기
본 도서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청바지변천사,
자유와 저항에서 구속과 권력으로

청바지는 원래 작업복으로 태어났다. 노동계급의 작업복. 청바지가 탄생할 즈음, 1848년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한 해였다. 혁명의 소용돌이가 유럽을 휩쓸었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2월 혁명은 독일의 3월 혁명으로 이어지며 전 유럽을 혁명의 열병 속으로 밀어 넣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을 발표했다. 이 짤막한 한 권의 책은 유령처럼 나타나 성경을 능가하는 독자를 확보하며 세계를 양분했다.


1848년은 미국에게도 매우 중요한 한 해였으며 전환기였다. 미국은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대가로 콜로라도, 네바다, 아리조나,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를 얻었다. 1848년 어느 날,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었다. 스코틀랜드 출신 제임스 윌슨 마셜은 제재소의 방수로를 점검하다 번쩍이는 물체를 발견했다. 골드러쉬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때 유태인 리바이 스트라우스도 그 대열에 합류했는데 그는 금을 캐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막촌으로 변한 캘리포니아에 천을 팔기 위해서였다. 

최초의 청바지는 천막용 천으로부터
그러나 리바이의 천은 품질문제, 재고누적 등으로 곧 커다란 곤경에 처한다. 모든 성공담이 그러하듯 위기는 늘 기회와 함께 찾아온다. 리바이 스트라우스에게도 기회는 위기 속에 숨어 찾아 들었다. 납품 클레임에다 엄청난 재고, 산더미 같은 빚과 밀린 임금에 허덕이던 리바이의 눈에 광부들의 낡은 작업복이 들어왔다. 천막 재고는 당장 캘리포니아 노동자들을 위한 바지로 변신한다.

질기고 튼튼한 작업복은 노동자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다. 1853년 리바이는 <Levi Strauss Firm>을 설립했고 후일 Livi's사의 시초가 되었다. 리바이스의 청바지는 진화했다. 뻣뻣하고 무겁고 거친 천막용 회색 범포는 프랑스 님 지방에서 생산되는 서지 드 님(데님)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제노바의 이름을 따 진(jean)이라고도 불리는 보다 부드러운 천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뱀을 피해 일 해야 하는 광부들을 위해 푸른 물감을 들였다. 


청바지가 푸른색으로 태어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광산노동자들의 작업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유는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청색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서민들의 색이었다. 바스코다가마(Vasco Da Gama)가 항로를 개척하여 햇빛에 잘 바래지도 않으며 거친 노동에 긁히거나 때도 잘 타지 않는 청색염료 인디고를 얼마든지 값 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해 준 이후로 청색은 서민에게 친숙한 그리하여 너무나 평범한 색이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블루칼라의 옷이 된 것이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 10점
TBWA KOREA 지음/알마
 “인간은 상징을 조작하는 동물이다.” 
                        상징은 기호의 한 형태다. 
                인간은 옷으로 그 ‘시대’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

    청바지는 노동자의 끈기와 강인함에서 새로운 상징으로 진화해왔다.
 

    
청바지 사회문화사로 세상을 읽다
     프래그머티즘에서 팍스아메리카나로,
          제임스 딘에서 양희은으로,
          노동에서 여가로,
     미국에서 세계로,
     실용에서 사치로,
          마초에서 페미닌으로, 
     반항에서 제도권으로,
     해방에서 구속으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대량생산에서 수제로…

청바지 150년의 역사를 기록한 책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캘리포니아 광부의 작업복으로 태어난 청바지가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했으며 세상을 점령했는가에 대한 지난 150여 년의 역사를 감각적인 디자인과 문장으로 엮어놓은 책이다. 이 책을 보는 순간,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마치 한편의 다큐멘타리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아니 그것은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이 책은 다큐멘타리 영화다. 한 편의 기록영화를 감상하듯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 치웠다.

표지부터가 스타일뤼시한 이 책의 저자는「TBWA KOREA」다. 티비와 코리아? 이름부터가 생소하면서 남다르다. TBWA KOREA는 광고회사다. 매출기준으로는 업계 2위, 평판에서는 업계 1위의 매우 괜찮은 광고회사다. 무엇보다 이들은 세상에 화젯거리를 던질 줄 아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밝은 광고회사다. 우리 눈에 익숙한 광고를 수없이 만들어 낸 이 회사는 그러나 단순한 광고회사이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들은 거부의 증표 중 하나로 이 책을 냈다. 

우선 이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는 것이라는 필자의 느낌을 확인하듯 저자 소개부터 독특하게 시작한다. 

함께한 사람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7명의 TBWA KOREA의 차애리, 허진웅, 윤혜진, 김현우, 이상민, 조주연, 양희선이 글을 쓰고, 1명의 사람 좋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TBWA KOREA 박승욱 부장)가 진행했고, 1명의 익스큐티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TBWA KOREA 박웅현 ECD)가 총감독을 맡았다.


마치 영화의 오프닝이나 엔딩에 등장하는 출연진과 제작진의 자막 같지 않은가? 이 오프닝을 접하는 순간 우리는 “블랙홀 같은 눈빛”과 “스펀지 같은 감수성”에 빠질 각오를 해야 한다. “눈부신 아이디어의 서식지”를 탈출한 이 책은 읽는 내내 “롤로코스터를 타는” 듯한 현기증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실로 이 책은 실존하는 찬란함으로 빛날 뿐 아니라 젊은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까지 한다.

젊음과 자유와 저항의 상징 청바지
우리의 젊은 시절을 대표하는 것이 무엇이었던가? 생맥주, 통기타와 음악다방의 MC,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상징으로 만들어내는 청바지. 청바지가 없이 어떻게 젊음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캘리포니아 광부의 작업복으로 세상에 태어난 청바지는 그러나 우리의 젊음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규제와 구속 대신에 자유와 반항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났다.

절제된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으로 대공황과 양차대전을 견디어낸 프롤레타리아의 청바지도 드디어 자유를 갈망하기 시작한다. 팍스아메리카의 영광과 함께 청바지를 입은 제임스 딘이 등장했다. 그는 자유와 반항의 아이콘이었다. 1960년대를 달구었던 변혁의 회오리 바람 속에도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청재킷과 청바지에 전쟁과 핵무기, 침략을 반대하는 구호를 페인팅 했다. 

평화와 평등을 외치는 그들로 인해 “가장 미국적이던 청바지는 미국을 거부하는 상징으로 변했다.” 노동의 복장이 투쟁의 복장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하여 청바지는 “가장 혁신적인 의복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80년대에 청바지는 “움직이고 달리는” 투쟁현장의 복장으로 등장했다. 청바지는 자유와 저항의 목소리를 뿜어내는 젊음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 이르러 청바지는 다시 한 번 변신을 시도한다.

새로운 종족 보보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KTF의 광고 카피처럼 청바지를 입은 CEO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일명 보보스라고 불리는 신종 엘리트들로서 칼라 없는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캐주얼을 신었다. 이들은 부르주아의 삶을 살지만 보헤미안의 정신세계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헤미안적 저항정신을 보다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물질주의에 반대하는 부자들” “엘리트주의에 반대하며 자란 엘리트”, 이것이 이들에 대한 수사다.

보보스는 WASP(White Anglo Saxson Protestant)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기득권 집단이 아니면서 교육 받은 엘리트로서 부르주아의 영토에 진입한 새로운 종족이었다. 이들의 등장은 블루진에도 상당히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고가의 프리미엄진이 등장했다. “보보스는 하위 계층과 같은 품목을 공유하지만 보다 고가의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지점에 존재하던 보보스와 청바지의 만남은 청바지 역사에 큰 전환점을 만들었다.”

누구라도 잘어울리는 "청바지와 컨버스"의 문화코드에 비해 개성 강한 프리미엄진과 짝꿍 하이힐은 또 하나의 코드다.


19세기 프롤레타리의 작업복으로 탄생한 청바지는 팍스아메리카나의 시작과 함께 검은 음료 코카콜라와 헐리우드와 더불어 세계를 점령했다. 1929년 이전, 청바지는 패셔너블한 옷이 아니었다. 특별한 격식이 필요하거나 멋지거나 스타일뤼시한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저 거친 노동환경에 적합한 질긴 작업복이었다. 그러나 청바지는 대공황을 거치면서 자신만의 상징을 획득했다. 바로 ‘끈기’와 ‘강인함’그리고 ‘힘’이었다. 

대공황으로 무너져가던 미국을 살린 노동계급의 상징성에 카우보이의 멋과 실용주의와 보보스의 철학이 덧칠해졌다. 청바지는 진화했다. 노동현장에서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태어난 블루진이 이제 세계를 주름잡는 팍스아메리카나와 더불어 점령군이 되었다. 블루진은 마지막 식민지라는 여자의 세계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남성성을 대표하던 청바지는 여자들도 점령했다. 프리미엄화되고 개성이 강해지지기 시작하면서 블루진도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청바지는 여성을 두 개의 계급으로 분열시켰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마지막 장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청바지에 구속당하는지에 대해 선명한 LCD화면처럼 자세히 보여준다. 블루진이 하나의 권력이 되기 위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에 대한 디테일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마지막 임무다. 블루진은 최후의 식민지 여성을 새로운 식민지로 삼았다. 청바지는 여성들의 몸을 중세의 코르셋에서 풀어주는 대신 그녀들의 종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청바지는 여성들을 새로운 계급으로 분열시켰다. 이 책은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국광산노동자. 1981년 브룩쉴즈는 "나와 캘빈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란 캘빈 클라인 블루진광고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전지현이나 정려원처럼 축복받은 몸매를 자신 있게 드러내고
어떤 스타일의 청바지든 멋스럽게 소화해내며
우월감을 느끼는 계급과,

그런 그녀들의 몸과 자시의 몸을 번갈아보며 열등감을 느끼고
몸을 움츠리며, 노출 패션을 조장하는 더운 여름이 한없이
원망스러운 계급”


계급간의 괴리가 생기자, 청바지는 (이전에 노동자 계급의 편에 섰던 것처럼) 열등감을 느끼는 계급의 편에 섰다.


다양한 스타일과 색으로
몸매를 보정해주고
청바지가 가진 스타일뤼시함을
그녀들에게도 선물했다.
청바지의 다양한 스타일과
컬러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중세여성의 코르셋과 재단사를 풍자한 그림


그러나 이런 친절한 디테일을 꼼꼼히 들여다볼 열등한 계급의 여성들이 과연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아무리 뚱뚱하고 짧은 다리를  소유한 여자라도 꼭 전지현과 같은
블루진을 고집하려고 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이면서도 늘 부르주아의 영토를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른지….
블루진 다큐《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데님 바지를 갖추고 있는 곳.
현대백화점 무역센터 5층. 청바지 편집 매장 ‘데님바’
그곳에는 9개 나라, 50여 개 브랜드, 450여 가지 스타일의
바지가 가지런히 걸려 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청바지는
과연 얼마나 될까
청바지를 보고 있는 여성들이
청바지를 고르는 것일까
청바지가 이 여성들을 고르는 것일까?
 
 

우리는 과거를 읽었다, 미래를 읽는 건 독자들의 몫?
이 책은 별도로 어떤 결론을 내려고 애쓰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을 만들어낸 이들이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이들은 이 책의 결말이나 결론도 소비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려고 하는 것일까? 청바지의 미래까지 포함해서…. 경쾌하고 발랄한 문체와 신선한 디자인과 편집은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그 경쾌함과 발랄함 뒤에는 메시지의 모호함이 꽤나 아픈 단점으로 투영된다. 어쩌면 그조차도 광고 전문가들인 저자들의 의도일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또 다른 문제점을 하나 발견했다. 끈질기고 강인한 프롤레타리아의 상징성과 자유와 저항, 재해석과 창조 의지를 담은 청바지를 스타일뤼시하면서 자극적인 디자인으로 편집한 이 책이 매우 아이러니한 결함을 하나 갖고 있었다. 스타일에 치중한 탓인지 제본이 조금 허약하다. 두세 차례 책을 뒤적이고 난 지금 청바지 무늬로 포장된 이 책의 일부가 틑어지기 시작했다.

스타일뤼시하면서도 100년이 가도 틑어지지 않을 튼튼한 책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청바지처럼…. 청바지처럼 너무나 친숙하고 그리하여 너무나 평범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한 책이라면. 그러나 어쨌든 이 책의 획기적인 시도는 성공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새로운 도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파비   (주) “ ” 안은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본문 인용/이미지도 모두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속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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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타고 우리지역 10배 즐기기
/김훤주 쓰고 경남도민일보 엮음

우선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아쉬움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왜 비매품으로 했을까? 돈을 받고 팔아도 얼마든지 잘 팔릴 책인데….”

그렇습니다. 비매품이라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아, 공짜로 책을 얻을 수 있었으니 좋지 않았냐고 말씀하실 분도 계시겠습니다. 사실 이 책의 저자는 저와 약간의 인연이 있는 관계로 유료였더라도 책값을 받지 않고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비매품이든 아니든 그것이 제게는 별 상관없는 일일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책을 거저 얻지 못하더라도 저는 얼마든지 돈을 내고 이 책을 사서 볼뿐만 아니라 책장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꺼내보며 두 눈을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운 경치들과 맛깔스런 글들을 되새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웠던 것입니다.

“돈을 받고 팔아도 대형서점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진열될 수 있었을 텐데….”

▲ 시내버스를 타면 눈에 들어오는 너른 들판이 너무 시원하지 않은가! @사진=김훤주

하긴 책의 가운데와 마지막에 지역 기업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의 광고가 실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광고수입은 그저 일회성에 그칠 뿐이고 꾸준하게 들어오는 수입은 역시 책을 팔아 얻는 인세수입이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돈 얘긴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쌀재 임도를 타고 넘어오는 봄내음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행암갯벌에서 반지락을 캐는 할마시들의 웃음소리도 정겨웠습니다. 고성 상족암 바위마다 새겨진 6500만 년 전 혹은 1억 년 전의 공룡발자국들이 바다를 이불삼아 덮었다 걷었다 하는 모양도 아른거립니다.

시내버스는 창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주에도 있고 하동에도 있고 고성에도 있으며 함양에도 있었습니다. 저 멀리 남쪽바다 거제도와 남해에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곳은 시외버스도 함께 타야 합니다.

그러나 김해의 박물관과 왕릉을 둘러보는 데는 시내버스만으로 족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창원에서 김해까지 시내버스가 다닌다니. 이 책을 읽은 독자만이 얻을 수 있는 고급정보라고 하면 좀 지나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어쨌든 유익한 정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한때는 우리도 자가용은 돈 꽤나 있는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사치품이었던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가용 한두 대쯤 없는 집이 없으니 누구나 할 것 없이 바야흐로 행복을 갈구하던 시대에서 만끽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만 같습니다. 과연 그런가요?

▲ 차창 안에 한가득 핀 꽃들이 너무 정겹다. @사진=김훤주

우리는 물질문명이 주는 약간의 풍요로움은 얻었지만 대신에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우선 마음의 여유를 잃었습니다. 그 옛날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떠들고 웃던 시간들도 잃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건물들과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도 이젠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시내버스는 우리에게 유용한 교통수단임과 동시에 사색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차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바라보며 턱을 괴고 깊은 상념에 빠지거나 엔진이 쏟아내는 굉음을 타고 눈부시게 쳐들어오는 따가운 햇살이 안겨주는 나른한 포만감에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제 추억의 저편으로 밀려난 시내버스를 다시 타보라고 권유합니다. 그리하여 요란한 물질의 세계에서 벗어나 조용히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권유합니다. 그 속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옛사람들의 정다운 목소리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저자가 원하는 것은 매일 시내버스를 타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말 혹은 시간이 날 때 시내버스를 타고 가까운 교외로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멀리 바람 따라 나가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무한한 자유와 평화와 행복과 또 뭐 그런 것을 얻을 수 있게 되리란 것입니다.

저자가 미리 앞서 개척한 바에 따르면, 시내버스를 타고 즐기는 여행은 경남의 동쪽 끝 양산, 김해에서부터 서쪽 끝 하동, 함양까지 모두 가능했습니다. 자가용을 버리고 시내버스로 움직이는 여행은 더할 나위 없는 홀가분함과 더불어 주당들에겐 술 마실 자유를 선물로 줍니다.

▲ 버스여행엔 이렇게 맛있는 반주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사진=김훤주

그리고 또 있습니다.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자가용을 끌고 가면 중간에 돌아와야만 합니다. 그러나 자가용을 버리고 떠나면 가고 싶은 곳까지 마음껏 갈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자유가 어디 있을까요? 자가용은 편리함을 주지만 반대로 사람을 구속하기도 합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면 공해 배출도 줄일 수 있고 에너지도 적게 쓰게 되며 교통비 지출도 줄어들게 된다”는 저자의 환경주의적 충고나 재무상의 배려까지 들을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저 시내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따라 다르게 펼쳐지는 창밖 풍경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는 장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당장 시내버스를 타고 통영 앞바다부터 구경해보시는 것은 어떨는지요? 동피랑도 보시고 멍게회덧밥도 한 그릇 드시고 말입니다. 여유가 되신다면 밤마실 끝에 생선회에 소주 한잔 걸치시고 하룻밤 유하시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아니면 우선 가까운 창원 진동면에 있다는 진해현 관아부터 들러보시는 것은 어떨는지요? 원래 진해가 진해의 반대편에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지요? 떠나실 때는 <시내버스 타고 우리지역 10배 즐기기>를 들고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김훤주 기자가 제대로 썼는지 한번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테지요. 만약에 틀린 것이 있다면 돌아와 혼내주면 될 터이고, 제대로 맞게 썼다면 돌아와 술을 한잔 사주면 좋겠지요.

아, 이것도 괜찮겠군요. 팀을 짜서 확인답사를 한번 해보는 것입니다. 큰 돈 드는 것도 아니니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일정을 잡아 떠나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이름도 있어야겠군요. 이러면 어떨까요? <‘시내버스 타고 우리지역 10배 즐기기’ 감사원정대>.

마지막으로 진짜 아쉬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 재미나게 책을 읽다가 문득 허기가 져 컵라면을 끓였습니다. 뜨거운 물에 불고 있는 컵라면에 김이 샐까봐 이 책을 살짝 올려놓았겠지요. 그런데 그만 책 표지가 쭈글쭈글해지고 말았습니다. 흐미~

특히 모자를 눌러쓰고 합천 영암사지 벚꽃길을 걷고 있는 김훤주 기자의 허벅지 부위에 선명하게 엑스자로 주름이 졌습니다. 이런, 참으로 죄송하게 됐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탓은 아닙니다. 혹 표지에 비닐 비슷한 성분이 너무 많이 포함됐던 때문 아닐까요? 흐흐.

ps; 이미 신문에서 대부분 읽었던 것들이지만, 책으로 읽으니 새롭고 더 재미있었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었던 <나는 왜 쓰는가>에서 조지 오웰은 그렇게 말했었다. “작가가 글을 쓰는 첫 번째 동기는 ‘순전한 이기심’ 때문이다.” 그리고 오웰은 그 ‘순전한 이기심’에 대해 친절하게 이렇게 번역해 놓았다. ‘허영심.’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많이 배워야 한다거나, 그래서 허영심을 채워야 한다거나 하는 따위의 엉뚱한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늘 내가 읽고 주제넘게 서평이란 걸 써야 하는 책, <책을 읽을 자유>의 프롤로그를 통해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배움을 통해 얻는 지식은 사람에게 자신감을 준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조지 오웰도 숱한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그런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을 쓰는 이유는 “유명해지고 싶은 허영심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책을 읽을 자유 - 10점
이현우(로쟈) 지음/현암사


 


<책을 읽을 자유>의 저자 이현우 역시 그 비슷한 감흥을 두툼한 책의 첫머리 프롤로그에서부터 내게 주었다. 아주 예감이 좋다. 책을 읽기도 전에 뭔가 커다란 수확을 거둔 농부처럼 마음이 풍성하다. “인생은 ‘책 한 권’ 따위에 변하지 않아.”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럼 지금껏 수많은 위인들이 특별한 책 한 권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던 것은 모두 거짓이었단 말인가?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인터뷰에서 밝히는 것처럼, 어떤 한 권의 책을 통해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했다고 하는 것은 그럼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러 권’입니다. 우리가 좀 ‘덜 비열한 인간’이 되거나 더 나아가 ‘비열하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면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 다수의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인생이 아직도 비열한 인생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가 ‘책만 읽어서’가 아니라 ‘책을 덜 읽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멘트는 평균 독서량이 ‘한 달에 한 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인의 독서 습관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독서캠페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인간이 한 권의 책만 가지고 어떤 깨달음을 얻거나 가치를 정립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을 자유 - 10점
이현우(로쟈) 지음/현암사

그걸 이 저자는 매우 자신 있게 그리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어 그는 또 하나의 특이한 주장을 하게 되는데, “인류는 원래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독서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계발되는 것이다.

물론 이 특이한 주장 역시 그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책 읽는 뇌>라는 책의 저자가 그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그는 덧붙여 인류가 책을 읽게 된 것은 전체 인류사에 견주어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고, 대중적인 독서는 불과 100여 년의 역사에 지나지 않으므로 너무 당연한 말이라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독서 능력이라는 ‘발명품’은 인간에게 주어진 ‘특별한 옵션’이다. “인간은 똑똑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똑똑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란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무기”다.

<책을 읽을 자유>의 저자 이현우는 <로쟈의 저공비행>이란 블로그의 주인장으로 더 유명하다. 나도 사실은 이현우란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었을 뿐이며 로쟈란 이름부터 먼저 알았다. 특별히 지적 허영심이 강한 내게 그의 블로그는 매우 인상적이며 매력적이었다.


<책을 읽을 자유>는 로쟈의 꾸준한 블로그 활동의 결과물이다. 몇 년 동안 알라딘 서평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과 <한겨레>와 <경향신문>, <시사인>등에 실었던 서평이 보태졌다. 그래서 이 책은 그의 표현처럼 매우 ‘불룩한’ 책이 되었다. 무려 600여 페이지에 달한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600여 페이지를 달리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주제, 즉 한 권의 책을 위한 서평에 보통 3페이지, 어떤 경우엔 겨우 1페이지 정도의 가벼운 산책만 하면 된다. 물론 좀 더 긴 것도 가끔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어려운 인문학 주제를 다룬 책들을 이렇게 가볍게 산보하듯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그러다 어떤 하나의 서평에 반해서 선뜻 그 책을 사서 달리기를 해볼 결심을 한다면 그야말로 더 큰 행운을 안게 되는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 책 읽기란 머나먼 이국 땅에서 ‘서울에서 가져온 라면에 김치를 먹을 때’처럼 행복한 일이다. ‘인류가 산출해낸 가장 위대한 정신들의 거처이자 가장 아름다운 양식들의 창고’를 만나는 일이다. 그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독서에 처형된’ 존재였다.

그러나 우리는 굳이 이 선택 받은 저자처럼 책이 만든 단두대에 행복하게 목을 들이밀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독서를 아침 저녁으로 하는 이닦기처럼 습관처럼만 할 수 있다면 족하다. 책을 애인처럼 늘 곁에 두고 자주, 혹은 가끔이라도 애무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흐뭇한 일이랴.

그러다 혹시 알겠는가. 정말 우리도 어느 순간, 행복하게 자청하여 목을 들이밀 ‘단두대의 칼날’을 얻게 될지. 그리하여 진정한 영혼의 거처를 만나게 될지도. 물론 저자의 넋두리처럼 ‘화려한 정신의 맨션’으로 안내 받는 게 아니라 ‘맨땅에 헤딩’할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책을 읽을 자유 - 10점
이현우(로쟈) 지음/현암사

ps1;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고도 돈만 굴리면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발악하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예비 노동자인 대학생들은 자본이 자신을 착취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랄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바라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편입’이라는 것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정직한 토로다.” <379p, 사상의 은사에서 사상의 오빠로, <리영희 프리즘>, 고병권 외, 사계절>

위 글을 읽으면서 ‘책을 읽을 자유’는 고사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취업 수험서를 팔 자유’밖에 없이 ‘자본의 착취’로부터 호명 받을 날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오늘날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정신들의 거처’니 ‘양식들의 창고’니 논하는 것이 배부른 헛소리가 아닌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쩌랴. 당장 육신의 생활고 때문에 영혼의 거처를 포기한다는 건 가엾은 일이 아닌가. 인류를 다른 생명체들, 예컨대 “오징어나 말미잘과 다르게 해주는 것”이 바로 독서다. 인류에게 주어진 이 ‘특별한 옵션’을 포기하는 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더 불행한 것은, 아직 이 세상은 몇몇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특별한 옵션’을 집행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책이 읽기 싫어서’가 아니라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다. 

ps2; 책을 1페이지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다 읽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특히 이 책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내키는 대로 어느 페이지건 심지 뽑듯이 뽑아 읽어도 좋을 그런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마음대로 읽을 자유’가 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교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교육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만들어낸 운동 중에 하나가 대안학교 운동이다. 소셜디자이너란 이름으로 다시 우리에게 다가온 박원순이 그 대안학교들을 둘러본 감상과 거기에서 발견했다는 희망을 들고 왔다.
 
「마을이 학교다」. 박원순이 발견한 희망은 이 책에 담겨있다. 그는 우리 사회에 깊게 드리운 절망의 그늘과 좌절의 한숨 소리에 탄식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맞이한 새로운 밀레니엄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공동체는 회색의 암담한 미래로 채색되고 말았다.”

교육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이 공교육의 자리를 대신했으며, 가계는 사교육비 부담으로 휘청거린다. 박원순은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새순들이 곳곳에서 돋아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마을이학교다함께돌보고배우는교육공동체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박원순 (검둥소, 2010년)
상세보기

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에서 찾을 수 없는 희망을 대안교육에서 찾고 있었는데, 이미 네트워크를 이루고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뭔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발견한 것이다. 박원순이 둘러본 20개가 넘는 학교들은 실제로 기쁨과 희망이 충만해 있었다.

대안학교.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대안학교란 어떤 것일까? 제도권 교육에 익숙하지 않은, 혹은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특별한 학교? 아니면, 제도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적 사회를 구성하면서 새로운 교육을 모색하려는 시도?

어떤 정의든 기존 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운동인 것만은 분명하다. 「마을이 학교다」에 등장하는 대안학교들은 하나같이 행복이 넘쳐났다. 우선 교사들이 가장 행복해보였다. 긍지와 자부심으로 넘쳐나는 교사, 그들이야말로 대안교육의 풍족한 거름이 아닐까. 

대안교육으로 가장 덕을 많이 보는 사람들은 학생과 학부모들일 것이다. 우선 학부모들은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고도 보다 양질의 제대로 된 교육을 아이들이 받을 수 있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더 이상 주입식 교육의 저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 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거의 모든 대안학교들이 초등학교 과정에 집중돼 있었던 것이다. 행복이 넘쳐나는 교육,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지식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물론 풀무학교와 이우학교처럼 중등학교 과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풀무학교는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1호로 인정받는 학교다. 1950년대부터 그 명맥이 이어왔으니 역사도 오래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이것이 이 학교의 정식 명칭이다. ‘더불어 사는 평민’을 배출하는 것이 이 학교의 교육철학이다. 이우학교는 풀무학교와는 많이 달랐다. 민족사관고가 생각났던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무튼 아직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안교육이 성공할 수 있는 곳은 초등학교 과정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실로 대단하다. 나도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지만, 자라나는 새싹에게 스스로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으리라.

그러나 그런 학부모들도 중등학생의 학부모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우학교는 그런 학부모들의 이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믹스한 그런 학교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우학교가 유명세를 타게 된 것도 100대 수능 학교에 들고 외국어와 언어 영역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 아닌가.

만약 이우학교가 나름 제도권 교육 시장에서조차 달성하기 어려운 성적을 내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라도 이 학교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구름처럼 모였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율성을 지향하는 이우학교의 대안교육 프로그램은 매우 매력적인 것은 틀림없어보였다.

결국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대안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매우 높고 계속 확산되어가는 추세에 있지만, 그 유용함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의 일이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꿈은 깨어진다. 그들은 어차피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삶.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비전이요 인생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의 초두에 물었듯이, 과연 교육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교육을 통해 대안적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실천하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썩 믿음이 가지 않는다. 세상은 썩어 악취가 진동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몸에 향수를 뿌리고 깨끗한 옷으로 치장을 한다고 세상이 아름다워질까. 교육이 진실로 교육다운 교육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우선 먼저 세상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의 교육을 배워야 할 모델로 삼는다. 일전에 진보신당의 심상정씨가 핀란드에 다녀와 그쪽 교육 실태에 대해서 보고 겸 강연을 하는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긴 바뀐 세상 아닌가? 우리완 질적으로 다른 사회가 아닌가? 그래서 그런 교육혁명도 가능했던 것 아닐까?”

아마도 우리 사회도 핀란드처럼, 아니 그 반만이라도 닮은 세상이 된다면 박원순이 기쁜 마음으로 답사한 대안학교들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의 우리 마을 어디에서도 만날 수 있는 그런 학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무상급식만 말해도 좌파에 빨갱이가 되는 세상이다.

마을이 학교다 - 10점
박원순 지음/검둥소

핀란드에서 온 어떤 여성이 말했던가. “한국의 좌파는 핀란드에선 우파도 못 돼요!” 이 말을 거꾸로 하면 “핀란드의 우파는 한국의 좌파보다 훨씬 좌파적이다!” 이런 말이 되겠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그러나 어떻든 박원순이 유람한 유토피아들은 매우 의미 있는 것들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절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 빛을 던져주고, 장밋빛으로 물든 미래를 꿈꾸게 해준다. 정말 언젠가 세상이 바뀌어서 굳이 너나 할 거 없이 대학을 가야만 하는 병폐가 사라지는 그런 날이 오면, 이들이 심어 놓은 값진 노력들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고 평화롭게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 대안교육이 주류교육이 되는 그날! 사회가 소득 순으로 서열이 매겨지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학교도 성적순으로 서열을 매길 수밖에 없는 고질적인 상황은 타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기 전에는 대안교육이 튼실하게 뿌리내리길 기대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 

그래서 「마을이 학교다」에 나오는 학교들의 노력들이 더욱 가치 있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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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도시락에 얽힌 추억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동무들과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몰래 도시락을 까먹던 일, 겨울이면 난로 위에 서로 먼저 도시락을 얹어놓으려고 쟁탈전을 벌이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경제위기와 함께 돌아온 도시락의 추억

체육시간이면 남의 도시락 반찬을 훔쳐 먹기 위해 몰래 교실로 기어들던 녀석들도 있었다. 그런 도시락이 요즘 다시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아니라 직장인들 사이에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북하우스>가 펴낸 남진희 글 『직장인 도시락 전략』은 이렇게 말한다.


직장인 도시락 전략
카테고리 요리
지은이 남진희 (북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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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혼자 점심을 먹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어떤 메뉴가 좋을지 의논하며 삼삼오오 몰려나와 점심을 먹는 모습이 많이 줄어든 반면, 편의점에 앉아서 라면이나 김밥 등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거나 샌드위치를 사다가 사무실에서 홀로 먹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이처럼 혼자서 식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식비절약’이라고 한다.

경제위기. 유사 이래 최고의 불경기는 직장인들의 식문화까지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도시락 문화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잃어버렸던 추억을 다시 살린다는 것도 좋은 일이고, 동료들과 점심을 나누어 먹으며 담소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며, 무엇보다 자유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어 좋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들이 도시락을 싼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뜻은 좋지만 작심삼일이 되기 십상이다. 다양하게 소소한 행복을 도시락에 싸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직장인들이 넘어야할 현실의 벽은 높다. 『직장인 도시락 전략』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여든일곱 가지에 달하는 도시락 반찬들을 뒤적이다보면 일단 눈이 즐겁다. 세상에, 이렇게도 많은 종류의 도시락 반찬들이 있었단 말인가. 그저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기만 했던 갖가지 반찬들의 모습이 새삼스럽다. 살아오면서 한 번씩은 만났을 것들인데도 어쩐지 처음 보는 것처럼 생경한 반찬도 있다.

그저 눈으로 보기만 하여도  행복하다. 사람이 누리는 기쁨 중에 먹는 기쁨을 빼놓을 수 없다. 아름다운 산수를 여행하면서 먹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란 말이 실감나리라. 그러고 보니 어찌 직장인에게만 도시락 싸는 기쁨이 행복일쏘냐. 주말 산행에도 빠질 수 없는 게 맛있는 도시락의 즐거움이다.

4가지 유용한 도시락 전략

김밥 하나로 통일된 산행 점심이 직접 싼 도시락으로 대체된다면 자연의 공기가 얼마나 더 풋풋할 것인가. 이 책은 도시락 싸기 비법을 알려주기 전에 먼저 도시락에도 전략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도시락을 싸는 단순한 행동도 반복하면 삶의 전략이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이 전해주는 유용한 4가지 도시락 전략이란 무엇일까?

첫째, 식비절약이다. 하루 점심값 5천원과 커피 값 3천원을 한 달로 치면 약 20만 원이지만, 1년이면 240만 원을 절약하는 셈이 된다. 점심값만 따로 저축해서 여행펀드를 만들거나 노트북을 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건강을 챙길 수 있다. 식당에서는 아무래도 가정에서보다 좋지 않은 재료를 쓰거나 맛을 내기 위해 조미료를 많이 쓴다. 
도시락을 싸면 내가 먹고 싶은 반찬을 내 입맛에 맞게 적당한 양 만큼 선택할 수 있다. 식당에서처럼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고 무리하게 많이 먹을 필요도 없다.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면 칼로리 조절도 가능하다. 그러고 보니 건강을 위해선 도시락이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다이어트로 체중을 조절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셋째,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식당과 메뉴를 찾아 헤매는 시간을 줄이고 대신 책은 본다든가 외국어 학습으로 자기계발을 이끌 수도 있다. 사무실 주변의 조용한 공원에서 산책을 즐기거나 명상에 잠길 수도 있다. 또는 인터넷 서핑을 통해 뉴스를 보거나 새로운 정보를 습득할 수도 있다.

넷째, 친목 도모에 유용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나중엔 점심시간이 친목 도모의 장이 될 것이다. 도시락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개인의 성향이나 가족사까지도 빠짐없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게 되고 신뢰가 쌓일 것이다. 

점심 도시락으로 맺어진 우정과 신뢰는 저녁시간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휴가 때 가족들과 함께 주말농장에 놀러 갈 수도 있다. 작은 친목은 나아가 평소 교류가 없던 부서의 직원들과도 친해지게 되어 인맥 쌓기에도 도움이 된다. 식비절약으로 출발한 도시락이 건강과 자투리 시간과 친목을 통한 인맥까지 제공하는 것이다. 

도시락은 생활의 즐거움

이 책은 ‘소소한 이유로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여 지금은 도시락 마니아가 된 5명의 도시락 고수들’이 들려주는 도시락 생활의 즐거움도 소개한다. “밥 먹고 남는 시간에 아이를 위한인터넷 쇼핑을 한다”는 김혜원 주부는 웹 디자이너다. 출판사기획편집자인 박상경 씨는 “몸은 물론 마음도 건강해진 느낌”이라고 말한다. 

점심식사후의 산책을 통해 하루의 활력소를 찾았다거나, 점심값을 아껴서 스노보드복을 구입했다는 도시락 마니아들. 그러나 무엇보다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온라인 마케터 원동령 씨의 인터뷰에선 공감과 희망이 함께 묻어났다. 그리고 이 책은 짤막하게 여러나라의 점심 풍경과 도시락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일본은 역시 도시락 천국이다. 다양한 종류의 도시락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집 떠날 때 가져가는 오니기리에서 시작된 일본의 도시락은 이제 현대인에게 매우 필요한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혼자 사는 직장인들이 집에서 음식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네모난 도시락 하나면 한 끼가 만족스럽게 충족되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책상을 제외한 네 발 달린 것은 모두 먹는다는 중국은 직접 싸기보다는 주문형 도시락이 주종을 이룬다. 아침도 점심도 모두 사먹는 외식의 나라 베트남, 실용의 나라 미국의 점심 풍경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음식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의 점심풍경은 또 우리와 얼마나 다를까? 

『직장인 도시락 전략』은 본격적인 도시락 싸기 비법을 알려주기 전에 <식재료&밑반찬 장보기 노하우>부터 소개한다. 도시락을 싸기 위해선 우선 기본부터 익혀야 하는 것이다. 오이나 당근, 버섯을 고르는 방법을 신선한 사진과 함께 보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장보기의 달인이 되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직장인 도시락 전략』과 함께 꿈꾸는 미래는 행복

소고기, 돼지고기 등 육류와 건어물 그리고 양파, 달걀, 두부, 대파&쪽파 등 기본식재료 역시 친절한 사진 설명과 더불어 어떤 것이 신선하고 좋은 것인지 알려준다. 대표 볶음 밑반찬, 대표 젓갈, 대표 장아찌, 대표 김치를 각 4가지씩 익히고 나면 이제 우리는 도시락을 싸기 위한 준비를 반은 한 셈이다. 

이어지는 집으로 배달되는 인터넷 밑반찬집과 도시락 용기 쇼핑몰에 대한 소개, 초보에게 꼭 필요한 도시락 쉽게 싸는 요령 10가지는 초보 도시락 마니아들을 위한 정보다. 거기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두고 먹는 반찬, 시판 양념장을 이용한 스피드 반찬까지 보았다면 아무리 초보자라도 도시락을 싸기 위한 준비는 거의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야 이 책의 독자들은 도시락 싸기 비법을 실전처럼 전수받을 준비를 하게 된다. 비로소 87가지 각양각색의 도시락들이 맛깔스런 그림들과 함께 펼쳐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α로 확 달라지는 스페셜 도시락까지 배우고 나면 여러분은 드디어 도시락 고수다. 

이 책은 요리책이다. 그러나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다. 경제전략이 숨어있는 요리책이며, 인맥의 가이드이며, 행복의 안내자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을 받아보고 ‘이걸 읽고 어떻게 후기를 쓰지?’ 하고 걱정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가장 찾기 쉬운 책장에 꽂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들고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즐거운 책이었다. 

『직장인 도시락 전략』을 통해 도시락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추억과 정은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커다란 힘’이다. 그리하여 여러분 중 누군가가 추억의 담장을 넘어 지금 당장 도시락 싸기를 마음먹었다면  물질적, 육체적 이득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큰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상상해보라. 그대의 미래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가.

직장인 도시락 전략
카테고리 요리
지은이 남진희 (북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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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는 환상소설이었다. 환타지소설이라고도 불리는. 그리고 이 소설은, 아니 소설집은 단편을 모은 책이었다. 10명의 환상소설가들이 쓴 단편집의 제목이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였다. 나는 처음에 환상소설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환타지소설이란 단어를 찾아내고 "아, 그거!" 했을 뿐으로 나는 환상소설에 대해선 무지했다. 환타지란 낱말과 환상이란 낱말을 연결시키지도 못할 정도로.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영도 (황금가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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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이 책을 다 읽어야만 했다. 내게는 주어진 임무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이 책을 끝까지 다 읽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나는 난관에 봉착했다. 자, 이 열편의 소설 중 어느 것부터 읽어야 하는 거지? 보통 하던 대로 처음부터 읽어야 할까? 아니면 끝에서부터 거꾸로 읽어오기 시작할까? 그러다 나는 이 소설의 제목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부터 읽는 게 아무래도 예의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는 책의 가운데쯤 위치해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상한 마력에 끌려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아, 이런 게 바로 환상소설인가보군.' 기묘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나는 묘한 흥분에 휩싸였다. 마치 딸애가 좋아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함께 볼 때와 같은 두근거림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한 스스로 재미없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하는 주인공은 달팽이와 대화를 나눈다. 

대문과도 대화를 나누고 계단과도 대화를 나눈다. 영화와도 대화를 나누며 티켓과도 대화를 나눈다. 그가 하는 얘기는 재미없는 얘기도 있고 재밌는 얘기도 있다. 그리고 그는 커피잔을 들고 얘기를 하다가 재채기를 한다. 그러면 세상은 하나의 점으로 수축된다. 세상은 모두 한 점에서 시작됐고 한 점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모든 사물은 하나의 씨앗에서 나왔으며 연관돼 있다는 걸 말하고자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생소하고 신선하다. 

아마 어쩌면 첫 대면에서부터 지루하게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난해한 철자를 해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고통을 겪었다면 그만 책장을 덮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렇게 관대한 편이 아니다. 그러나 9장의 워밍업은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제 첫 페이지로 넘어가보자. <학교>.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가 가벼운 워밍업 환타지였다면, <학교>는 본격적인 환타지였다. "세상에… 이런 걸 소설로 쓸 수 있다니."

나는 전율했다. 이 소설은 단편이라지만 꽤나 길었다. 66페이지에 달하는 긴 글의 마지막은 상상하지 못했던 급격한 반전으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러나 두려움이란 묘한 중독성을 갖고 있다. 무서움에 떨면서도 우리는 밀실에 무엇이 있을까 엿보고 싶은 궁금증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어지는 <노래하는 숲>, <노인과 소년>, <천국으로 가는 길>을 읽으며 나는 환상소설의 기묘한 마력에 어느덧 빠져들고 있었다.

책을 읽는 중에 아는 형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잠시 책장을 덮고 인근 중국집으로 그를 만나라 갔다. 짬뽕에 소주를 몇 병 시켜놓고 대화중에 내가 말했다. "형님, 내가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아세요? 환상소설이란 건데요." 내 이야기를 대충 듣던 그 형은 내게 혹시 이영도를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의 맨 마지막에 <샹파이의 광부들>이란 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아직 읽지는 않았다고 말하자 그는 이영도에 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영도 (황금가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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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사람이야. 진짜 대단하지. 너는 그럼 <드래곤 라자> 아직 안 읽어봤겠구나. 한 10년 됐는데 게임으로도 나왔잖아. 그걸 모르다니…, 그 친구 그리고 우리 동네 사람 아이가. 여, 경남대 출신이잖아." 그리고 그는 이어 말했다. "여기 출신들 중에 유명한 소설가가 좀 있지. 전경린이도 있고. 너, 경남대 송 선생 알잖아. 송 선생이 친하니까 만나고 싶으면 언제 한 번 볼 수 있을 거야."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샹파이의 광부>들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작가는 우리 동네 사람이었다.

형의 말처럼 이영도는 실로 대단한 작가였다. 그는 그 동안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을 단박에 깨주었다.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이란 참으로 미안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첫 번째는 서울의 대학에 대한 지방대의 선입견이요, 두 번째는 환타지소설이란 대체로 무협지 이상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종이 위에 뿌려댄 놀라운 상상력의 씨앗들은 실로 역사, 문화, 철학, 과학에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들이라고 여겨졌다. 씨앗들을 엮어내는 문장 솜씨 또한 천하일품. 

<샹파이의 광부들> 속에는 엄청난 파격이 숨어있었다.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상상할 수 없었던 파격들은 내 상식을 여지없이 부셔놓았다. 책을 다 읽고 난 나는 잠시 멍청한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머지 단편들을 마저 읽었다. <은아의 상자>, <뮤즈는 귀를 타고>, <장미정원에서>, <소설을 쓰는 사람에 대한>. 단편소설 <장미정원에서>는 한참동안 나를 슬픔에 빠뜨리기도 했다. 영화 <식스센스>나 <디 아더스>를 감상하며 느꼈던, 그런. 

<뮤즈는 귀를 타고>는 참으로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환타지소설이 아니라면 만들어낼 수 없는 공상의 세계를 이 단편을 통해 유감없이 볼 수 있었다는 건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수천 년의 시간과 유럽과 아시아, 미주의 공간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은 그야말로 환타지소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엄청난 시공여행의 마지막 결론을 콘돔광고로 장식한 것도 매우 재미난 발상이었다. 글쎄, 좀 코믹하단 생각을 하긴 했지만, 환타지 시공여행의 결론이 우리나라였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아무튼 매우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내가 열렬한 환타지소설의 독자가 되리라고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생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하나 더 느낀 것이 있다면, 인터넷이 얼마나 세상을 다채롭게 변화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정말 세상은 많이 변했다. 그런데 나는 무얼 하며 살았을까? 소설의 재미를 떠나 자괴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물론 사람은 저마다 자기 기호에 따라 살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내가 세상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설의 재미를 떠나 그저 드는 생각일 뿐이긴 하지만… 내겐 놀라운 경험이었다.

본 도서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가끔 터지는 사법 비리를 볼 때마다 우리는 커다란 슬픔에 빠진다. 신영철 대법관이 이메일을 일선 판사들에게 보내 판결에 개입했다는 보도가 났을 때, 세상 사람들은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며 부패한 사법부에 질시의 눈길을 보낸다. 그러나 그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무어라 생각하건 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신영철 대법관은 여전히 법복을 입고 법정에서 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그가 가진 저울이 권력에, 자본에, 구체적으로 삼성에 기울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아니, 그들만은 이 모든 사실들을 모르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법조라 불리는 특수한 세계에 사는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선택받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불멸의 신성가족』의 저자 김두식도 바로 이 특별한 사람들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에게 보내는 사람들의 지나친 예우는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이미 영감이 된 것이다. 그는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맑스가 말한 것처럼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된… 고독한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인 신성가족의 실체를 자신이 속한 특수한 세계의 특별한 사람들로부터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마음속으로부터 울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 타락하고 부패한, 거부할 수 없는 관계망으로부터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법복을 벗고 교수가 되었다. 그는 이제 마음속에 숨겨진 양심에 따라 세상을 향해 신성가족을 고발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 결과가 이 책이다. 여기서 우리가 만날 주제들은 하나같이 낯설지 않은 것들이다. ‘전관예우’ ‘거절할 수 없는 돈’ ‘청탁’ ‘압력’ ‘평판’…, 신성가족의 일원으로 이 주제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이 책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에 진실이란 옷을 입혀준다. 이 책은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러나 편안하게 대포집에서 막걸리를 나누며 친구와 대화하듯 하는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실의 구술자들은 모두 현직 판검사, 변호사들이다. 그들이 사법비리를 폭로하면서도 자기변명을 하는듯한 태도가 좀 거슬리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그들 역시 신성가족의 일원이란 사실을 잠시 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들과 함께 대포집에 앉아 마음껏 신성가족의 실체를 까발겨보자. 그리고 마음껏 분노해보자. 세상은 우선 까발기고 분노하는 것으로부터 변화의 싹이 트는 것이니까. 이 책은 바로 그 분노의 밭에 씨앗을 뿌리는 농부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불멸의 신성가족 - 10점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위 글은 8/28일자(금) 경남도민일보 1면 <책이 희망이다> 코너에 실렸던 글입니다. 본래 이렇게 써 보낸 글이 너무 길다고 뒷부분이 살짝 잘렸습니다. 이발을 잘 해주신 덕에 신문에 난 글이 더 훌륭해 보이지만, 그래도 저는 원래 제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원문을 여기 올려봅니다. 김훤주 기자의 전화 부탁으로 썼는데, 전날 심상정 초청 토론회 갔다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새벽까지 과음한 관계로 오전 내도록 해매는 중에 받은 전화였습니다. 저는 원래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무조건 '네' 또는 '응'이 먼저 나가는 편입니다. 역시 그랬습니다. 후회가 막급했지만, 오후 2시경 일어나서 부랴부랴 써서 넘겼습니다. 4시까지 마감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다른 저명한 분들에게 여기저기 부탁하다가 너무 시간이 급하다고 고사하는 바람에 제가 대타로 찍혔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저를 찍어준 김훤주 기자에게 고맙습니다. 김훤주 기자는 자기가 고맙다고 한 잔 사겠다고 했지만, 그건 아닙니다. 우리가 신문에 이름 내기 어디 쉽습니까?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는 분도 계신 판에요. 그래도 한 잔 산다면 그것 역시 저는 거절할 수 없습니다. 똑 같은 이유로 말입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알라딘에서 받은 책 제목이다. 무슨 이런 섬뜩한 책 제목도 다 있단 말인가. 사람을 먹으면 안 된다니. 그럼 사람을 먹는 사람들이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물론 이건 나의 기우였다. 섬뜩한 제목과 달리 책은 처음부터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33개의 퍼즐로 구성된 이 책의 첫 번째 퍼즐은 "생각이 많으면 공주를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어느 왕국이 있다. 이 왕국에는 왕과 왕비가 있다. 왕과 왕비에겐 아리따운 공주가 있다. 그리고 똑똑이 왕자와 안똑똑이 왕자가 있다. 똑똑이 왕자는 별로 잘 생기지도 않았고 남자답지도 못하지만, 대단히 영리하다. 안똑똑이 왕자는 그 반대다. 문제가 있다. 문제는, 왕이 아리따운 공주가 똑똑이 왕자와 결혼하길 원한다.
그러나 왕비는 안똑똑이 왕자를 지지한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공주의 마음은? 그녀는 현명하게도 그녀의 사랑이 누구에게나 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녀의 속마음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왕비가 제안한다. "구혼자들에게 과제를 내야겠어요." 왕이 동의했다. "좋은 생각이요. 수학 퍼즐로 합시다. 가령 직각삼각형의…." 왕비가 반대한다. "어림없어요." 수학 문제를 내면 안똑똑이 왕자가 불리할 게 자명하다. "두 사람은 용을 죽여야 해요. 용을 쓰러뜨리고 먼저 돌아오는 구혼자가 우리 딸과 결혼할 수 있어요."
물론 왕은 이 제안이 못마땅하다. 그가 좋아하는 후보가 십중팔구 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때 공주가 끼어들어 옵션을 제시한다. "둘 중 한 명은 단지 용을 죽이겠다는 마음만 가져도 되고, 다른 한 명은 실제로 용을 죽여야 한다면 어떨까요? 
똑똑이 왕자가 재빨리 '마음만' 옵션을 선택한다. 용을 죽이는 힘든 노동을 선택하는 것보다 '마음만' 먹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걸 영리한 그는 순간적으로 눈치 챈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자신의 더딘 이해력을 탓하며 용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왕비는 펄쩍 뛰었다. '무의미하고 바보 같은 짓이야!'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10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마젤란


현명한 독자라면 벌써 공주의 의도를 눈치 챘을 것이다. 공주는 영리하지는 못하지만, 잘 생기고 남자다운 안똑똑이 왕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별 고민 없이 칼을 차고 달려나가 용의 목을 베어 돌아왔다. 저자는 이 왕국에는 쉽게 죽일 수 있는 용들이 무수히 많다고 가정한다. 당연히 안똑똑이 왕자는 가장 쉽게 죽일 수 있는 아주 작은 용을 선택했다. 그럼 우리의 똑똑이 왕자는?


그는 밤새도록 고민했다. '내가 용을 죽이기로 마음 먹는다는 것은 사실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건 내가 용을 안 죽여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용을 죽이기기로 마음 먹는다는 것은 사실은 용을 안 죽이겠다는 것과 같다. …… 좋아, 어쨌든 용을 죽이는 게 낫겠어. …… 아, 아니야. 그건 미친 짓이야. 그런 중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 내일 동이 트면 용을 죽이겠다고 진지하게 마음을 먹는 거야. 하지만 잠깐….'

저자는 '만약 '마음먹기'만의 조건이 안똑똑이 왕자에게도 주어졌다면?' 하고 자문한다. 그의 답은 그래도 안똑똑이 왕자가 이겼을 것이라는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별로 영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잡한 추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오디세우스의 신화에서도 등장하는데,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어놓고, 귀를 모두 밀랍으로 막으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사이렌의 노래소리를 듣지 않고 살아남았다. 

똑똑이 왕자도 오디세우스처럼 '만일 죽일 마음만 먹을 수 있다면 굳이 죽일 필요가 없을 거라고 일러주는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자신의 의도를 실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류의 퍼즐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언제나 일어난다. 우리는 늘 역설의 역설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자, 첫 번째 퍼즐을 통해 우리는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에 대해 알았을 것이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그럼 다음 두 번째 퍼즐을 들어보라. 

두 명의 탐험가가 있다. 한 명은 비관주의자 페넬로페이고 다른 한 명은 낙관주의자 오필리아이다. 산악지대를 탐험하고 있던 두 사람은 크고 굶주린 곰을 만났다. 곰은 맛있는 아침식사를 상상하면서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기 시작한다. "달아나는 게 좋겠어." 낙관주의자 오필리아가 재촉한다.
"아무 소용없어." 비관주의자 페넬로페가 곰을 보면서 절망스럽게 내뱉는다. "곰보다 빨리 뛸 순 없잖아." 
그러자 낙관주의자 오필리아가 능글맞게 웃는다. "안 그래도 돼. 우린 곰보다 빨리 뛸 필요 없어. '내'가 '너'보다 빨리 뛰면 되거든. 그 말과 함께 그녀는 냅다 뛰기 시작한다.  
  
   

저자는 질문한다.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행동은 무엇일까? 그 곰의 아침식사 거리로 한 명만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둘 중 한 명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덕성은 그런 자기 희생을 요구할까?" "당신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그 결과로 무고한 사람이 죽게 되는 경우는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까?" 안개 속을 헤맬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건 독자 여러분이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안개 속을 직접 걸어보지도 않고 '오리무중'을 이야기하는 건 물론 가능한 일이긴 하겠지만, 왠지 허전하다. 그러나,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고 항의할지도 모를 독자들을 위해 한 가지 퍼즐을 더 소개한다. 이 책의 제목 "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가 있다. 이 엽기적인 제목의 퍼즐은 이 책의 열아홉 번째 퍼즐이다. 물론 이 퍼즐도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엽기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역설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사실 오늘날 산다는 것이 서로 먹고 먹히는 그런 과정 아니겠는가? 사실은 우리 모두가 한입 거리다.  

"가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는 번득이는 휜 이를 드러내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두 팔로 내 목을 감았다. 이 순간 내가 어떻게 우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방금 나를 회원으로 받아준 클럽에서 그렇게 따뜻한 환영과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으니 말이다.
"누가 저녁거리지?" 몇몇 사람이 물었다. 나는 배가 고팠고, 사람들은 밝고 친절했으며, 게다가 너그럽게 회비를 받지 않았다. 나는 명예회원이라고 그들이 말했다. 순진하고 한심한 나. 나는 저녁식사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인 결과가 이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손님이나 요리사로 초대된 것이 아니라 '요리를 해먹을' 한입 거리로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대단히 관대했지만, 나는 곧 그 관대함이 지나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읽은 현명한 독자라면 틀림없이 눈치 챘을 테지만, 이 책은 철학 책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안도하는 대로 그다지 어려운 책은 아니다. 거기다 재미도 있다. 이 책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즐겁게 읽기 위해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전혀 없다. 사실 이 말은 과장이지만 그리 큰 과장은 아니다. 당신은 글자를 읽을 줄 아는가? 어쨌든 우리는 만난 적이 없지만 그 대답이 '예스'라는 걸 서로 안다. 당신이 여기까지 읽었다면 우리는 이미 그 장애물을 넘은 셈이다."

'철학은 눈을 열고, 고로 '나'를 연다' 그러나 철학은 우리에게서 멀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훌륭한 철학 트레이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트레이닝을 통해 우리는 철학적 사색의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기발한 재치들이 퍼즐 곳곳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여러분은 상식과 지혜를 얻은 기쁨에 가슴이 불꽃처럼 뜨거워질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비트겐슈타인의 금언을 빌어 말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급하게 가지 말고 퍼즐 하나씩 천천히 읽고 천천히 생각하길 바란다는 뜻에서.

"천천히 하시오!"                   파비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10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마젤란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공교롭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던 날 알라딘으로부터 책을 받았다. 오마이뉴스 대표 기자 오연호 씨가 쓴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였다. 나는 김대중 지지자도 아니며 노무현 지지자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아니다. 나는 진보신당 당원이며 그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나는 과거에 노동조합운동을 했던 이력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을 아주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두 분을 존경한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10점
오연호 지음/오마이뉴스


나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했을 때, 정권 창출 과정에서 벌여졌던 모든 불미스럽고 마땅찮은 사정들에 불구하고 내심 박수를 쳤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는 그를 찍지 않았음에도 밤새 술을 마시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새벽 동이 트도록. 정치 9단이라는 김대중의 노련함과 아마추어처럼 보이지만 뚝심으로 정면 돌파하기를 마다 않는 노무현에겐 모두가 존경할 수밖에 없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겐 일관된 철학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길을 걸었다. 비록 그 길이 내가 생각하는 길과 많은 부분 다를지라도 그들은 굳건했다. 김대중은 납치와 사형선고로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노무현은 끊임없이 조중동과 시장권력으로부터 테러를 당했다. 그 두사람이 걸어왔던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나는 그들의 굳건함이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 노무현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늘 김대중을 공부하며 그의 흔적을 찾았다고 이 책에서 말했다. 

노무현의 말에 의하면 김대중은 천재다. 노무현은 스스로 창조적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것은 김대중이 이미 준비하고 예비한 길이었다고 했다. 오연호 기자가 노무현에게 질투심 같은 건 없었느냐고 물었지만, 노무현은 가벼운 웃음으로 받아 넘겼다. 노무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대로 매우 솔직하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질투심 같은 것은 자리할 공간이 없다. 그는 김대중 정부 덕분에 참여정부가 열매를 따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나는 노무현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이야말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천재가 아니고서는 자신을 낮출 줄을 모른다. 자신감으로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자신을 낮추는 방법을 모른다. 노무현은 그걸 아는 사람이었다. 노무현의 말에 의하면 김대중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탁월한 정치가였지만, 그가 빛나는 것은 단지 그것 때문이 아니라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뛰어난 정책능력 때문이다. 

노무현은 이미 김대중이 1971년 대선에 뛰어들 때 내놓았던 4대국 보장론이나 통일정책을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으며 당시 세계 정세를 꿰뚫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며 매우 천재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는 오연호 기자의 해석처럼 김대중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조중동 등으로부터 김대중의 준비된 대통령이란 수사에 비유해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는 혹평을 들었지만, 그는 충분히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어떻게 해서 대통령이 되었을까? 아니, 무엇 때문에 대통령이 되려고 했을까? 거기에 대한 노무현의 진술은 책 속의 어떤 이야기들보다도 파격적이었다. 역시 노무현은 꾸밈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대통령에 출마한 것은 그러니까 이인제 씨 때문이에요." 나는 눈을 의심했다. 무슨 이런 황당한 말씀이. 무슨 원대한 이상과 포부를 말씀하셔야지 기껏 이인제 때문에 출마를 결심했다니…, 그러나 그건 사실이었다.

노무현은 앞서 자기가 국회의원이 된 것도 국회의원이 되려고 된 것이 아니고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보니까 그냥 어떻게 그리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을 것이다. YS가 변절해서 노태우의 민정당과 합당해서 민자당을 만들었을 때 국회의원 되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를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의를 선택했다. 그가 볼 때 김영삼도 원칙 없는 변절자였던 것이다. 그는 나중에 김대중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부산에서 계속된 낙선의 쓰라림을 맛보았다. 종로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국회의원 뺏지를 달았지만,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또 한번의 고배를 마셨다. 이런 그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승부사에다 바보라는 이름을 얹어주었다. 그에겐 일관된 원칙이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역구도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요원하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이인제는 기회주의의 표징이었다. 그는 변절을 밥 먹듯 하는 원칙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노무현은 이인제 같은 사람이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어서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장래가 암울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인제는 97년 대선에서 이회창에게 한나라당 경선에서 지게 되자 무소속으로 나와 3등을 했다. 그리고 다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2002년 대선에 도전장을 던진 인물로 노무현의 눈으로 보면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였다. 그리고 당시 그는 유력했다. 노무현은 이인제를 이겨야겠다고 결심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일부에선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이도 대통령이 다 되고. 이거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전여옥 같은 사람은 아예 노골적으로 현직 대통령이던 노무현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대학도 나오지 못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참기 힘들 만큼 치욕적인 상황이었다. 김대중-노무현이 만들어놓은 민주주의 공간에서 그들은 상고 출신 운운하며 대통령을 모욕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노무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노무현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자기 원칙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노무현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국민을 가까이 하고 벗이 되고자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은 사실은 '노무현 같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인제나 전여옥 같은 학벌 좋고 똑똑한 사람들은 절대 넘볼 수 없는 경지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서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다. 이 추도사는 원래 노무현 전 대통려의 영결식에서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할 수가 없었다. 김대중은 이런 이명박 정부를 어이없다고 했다. 그는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했다. 그는 이 추천사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깨어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죽기 전에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자신이 만든 사이트 <민주주의 2.0>에 한미FTA 재협상을 해야한다고 올린 글에 심사정이 시비를 건 것이다. 심상정이 노무현에게 한미FTA의 당사자로서 결자해지를 촉구하며 고해성사를 요구했던 것이다. 노무현은 이틀에 걸쳐 심상정의 공격에 반론의 편지를 썼다. 이때 노무현은 자신을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하는 진보진영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토론은 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에 오래지 않아 검찰의 수사로 표적이 된 노무현은 "더 이상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식물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심상정과 인식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토론을 종결하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며 "좀 더 유능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나름의 고해성사에 대신한 솔직한 노무현을 이제 우리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노무현이 이토록 허망하게 죽지 않고 살아서 우리와 호흡하고 토론하고 실천하며 그가 말한 것처럼 정치권력을 넘어서는 시민권력의 전형에 다가가는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 할 수 있었다면 그가 아쉬워했던 '인식의 차이'를 뛰어넘는 어떤 무엇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노무현 같은' 걸출한 인물이라면 가져봄직한 기대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정체하지 않고 늘 공부하며 진화하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으니까.

노무현이 봉하마을에서 만든 홈페이지의 이름이 <사람 사는 세상>이었던가? 아마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도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이렇게 시작하는 거였다고 들었다. 그 노래는 나도 좋아하는 노래다. 내가 20대였던 시절, 노무현은 우리 마을 파업현장에 온 적이 있다. 그는 당시 국회의원이었는데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연설하고 곧 바로 사라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뒷풀이에 남아 난장에서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던 그는 싱싱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있다. 올 한해에만 세 분의 뛰어난 지도자가 세상을 등졌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노무현의 말처럼 "삶과 죽음이란 그저 자연의 한 조각"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심사가 그리 편하지 않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제일 먼저 일어난 일이 숭례문 화재였다. 그때도 무언가 심상찮은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더욱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그런 엉터리 같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 아름답지 못한 세상이 한심하고 슬프다. 마지막으로, 노무현은 바보가 아니었다. 오연호 기자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제 1장의 제목을 <바보를 보내다>라고 썼지만, 그러나 노무현은 바보가 아니다. 그는 원칙에 투철했을 뿐아니라 예지력도 갖춘 뛰어난 지도자였다. 그는 김대중을 천재라고 했지만 그도 역시 천재였다. 그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천수를 다 하지 못했지만 역사에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 

그가 존경했다는 링컨처럼….           파비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10점
오연호 지음/오마이뉴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원래 쓰려고 했던 제목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시사IN에서 만들어낸 책, 거꾸로 희망이다>, 이렇게 제목을 잡으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보내준 이 책을 읽는 동안에 30년 전에나 일어났을 사태가 2009년 오늘에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물론 그 목격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했습니다. 현장에 있지 않아도 현장의 비참함이, 참혹함이, 전쟁 같은 공포가 먹구름처럼 제 가슴을 뒤덮었습니다.
 
거꾸로, 희망이다 - 10점
김수행 외 지음/시사IN북


80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아직은 방송사 언론들이 완전히 죽지 않아서 경찰의 폭력 장면을 여과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폭력이었습니다. 국가에 의해서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력, 이 폭력은 합법인지 불법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쌍용차 노조가 진압된 후(모두들 협상 타결로 대타협을 했다고 하지만 제 눈엔 진압입니다) 노조 간부들은 수십 명이 구속 됐습니다. 그러나 무기를 들고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포착된 경찰 중 구속된 자가 있다는 기사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엊그제 어떤 진보 인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민주주의를 역진 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파쇼라고 부르기엔 좀 그렇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그는 제가 속한 진보신당의 지역당 위원장입니다. 그에게 이런 말을 가끔 들은 바가 있긴 했었지만, (평소 그를 존경스럽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이날은 도저히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파쇼가 아니면 도대체 어떤 때를 파쇼라고 불러야 할까? 그렇게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80년 광주의 봄처럼 꼭 대검과 총으로 시민을 살육해야만 파쇼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쌍용차 공장 지붕에서 벌어진 사태는 경찰들이 대검과 총만 안 찼다 뿐이지 80년 광주의 상황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광주에서 무자비한 살육이 전개되고 있을 때 저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우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학교에 잘 다녔고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그렇지 않았던 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평택에서는 전쟁의 광풍이 휩쓸고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온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정권은 평택의 쌍용차 노조는 폭도일 뿐이며, 이 폭도들을 진압한 것은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 당연한 것이었고, 이제 대한민국은 평온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시나리오는 80년 광주항쟁 때나 2009년 평택 쌍용차사태나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진@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세서 세상보기


대한민국은 이명박 씨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후 절망적인 상태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명박 씨가 스스로 자랑했던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747? 그런 것이 있었습니까? 그런 따위는 미국의 보잉사 공장에서나 찾을 일입니다. 이명박 씨가 한 일은 경제를 살린 것이 아니라 경제를 시궁창에 쳐 박은 일입니다. 시사IN이 펴낸 책 《거꾸로 희망이다》에서 김수행 교수는 한국 경제의 현실을 공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공황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자본주의에 공황은 흑사병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케인스가 등장하기 전에 이 공황은 10년을 주기로 발생했습니다. 양차 세계대전도 실은 이 공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니, 직접적인 계기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진 제국들은 자본주의를 수정해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수정자본주의(혹은 수정사회주의) 정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10 년을 주기로 일어나던 공황을 이연시키거나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공황에 한국 경제가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만 공황에 빠진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도 공황에 빠진 것입니다. 《거꾸로 희망이다》는 공황에 빠진 한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책입니다. 경제가 공황에 빠진 것은 국민이 합심해서 열심히 일하면 헤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황에 빠진 민주주의는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국민이 합심하고 싶어도 합심하지 못하도록 정권이 방해하는 것이 예사입니다.

쌍용차사태에서 우리는 그걸 보았습니다. 대화와 타협으로 상생의 길을 찾도록 이끌어야 할 정부가 앞장서서 대화와 타협에 폭력을 가합니다. 정부와 자본이 책임져야 할 경제공황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면서 "너희들이 죽지 않으면 회사를 살릴 수 없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참으로 비통함을 느낍니다. 많은 국민들 중에 이런 이데올로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도 있겠지만, 도대체 그 죽어야 할 사람들에게 살아나는 경제가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이토록 절망적인 민주주의가 공황에 처한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우리나라의 대표적 지성인 여섯 사람을 또 다른 여섯 사람의 지성인들이 인터뷰하고, 강연하고, 질문하는 형식으로 만들어 낸 책이 바로 《거꾸로 희망이다》입니다. 제일 먼저 이문재 시인이 녹색평론 대표 김종철 교수에게 '생태적 상상력'을 묻습니다. 그 다음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에게 '위기의 심리'에 대해 질문합니다. 

정치경제학 전문가인 김수행 교수와 정태인 교수가 '자본의 미래'를, 우석훈 교수가 조한혜정 교수에게 '문화적 상상력'에 대해 묻습니다. 시민운동가 하승창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함께 '대안경제'에 대한 해법을 상상해봅니다. 정해구 교수는 서중석 교수와 함께 '역사의 위기'에 대하여 토론을 벌이고 "역사는 후퇴하는 게 아니라 에돌아갈 뿐"이라는 결론을 끌어냅니다. 책은 대화체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했던 강연회를 책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런 만큼 딱딱하지 않습니다. 편안합니다. 연사로 등장하는 열두 사람의 주장도 간결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거꾸로 희망이다!"에 대한 희망이 진실로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 글의 초두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책을 읽는 중에 쌍용차 무력 진압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에 거의 백기투항하다시피 한 노조와 협상을 벌여 대타협이란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분노와 절망으로 숨조차 쉬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인 내게 이 책의 제목은 정말 사치스러웠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거꾸로 희망'이란 말이야!" 정말이지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숨을 가다듬고 책을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역시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책의 연사들 덕분입니다. 게다가 이 책이 진실로 "거꾸로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살인진압규탄 농성중인 강기갑 의원에게 떠나기를 요구하는 사진속 여인들의 뒷모습에서 측은함보다는 비정함을 느낀다.


그러나 사실은 아직도 무엇이 희망이라는 것인지에 대해선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렇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희망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 글 앞에 포스팅했던 <쌍용차아내모임, "제발 그들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세요">에서 보았듯이 산 자의 아내들이 쌍용차 정문에서 돗자리를 깔고 살인진압을 규탄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강기갑 의원을 찾아가 떠나기를 강요하는 것이 이 시대의 현실입니다. 

나는 그녀들, 산 자의 아내들의 비정한 모습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 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거꾸로 희망"이 있다는 열두 연사들의 열띤 웅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심쩍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희망이 있는 것일까? 책 속에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청중의 한 분이 김종철 교수에게 질문합니다. "선생님, 혹시 최근 신문과 방송에서 가장 히트치고 있는 광고가 뭔지 아십니까?" "아니요 잘 모릅니다." "죽었을 때 매장해주는 거. 상호부조회사." "네, 주로 케이블TV에서…."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마을 공동체가 모두 모여 장례를 치르고 매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매장을 책임져주는 공동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두 개인의 일입니다. 이제 사람은 돈이 없으면 자유롭게 죽을 자유마저도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정말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책의 연사들은 그렇다고 답합니다. "거꾸로 희망이다!"라고 말합니다. 아직 나는 그 말이 실감나게 가슴에 와 닿지는 않지만,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볼 작정입니다. 차분하게 숨을 가다듬고… "정말 거꾸로 희망일까!", 해답을 찾아보기 위하여. 여러분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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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란 책을 본 적이 있다. 홍세화란 사람이 쓴 책이었다.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된 그는 마침 프랑스 빠리에 회사 일로  출장 가 있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망명객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 세상이 바뀌어 2002년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그는 현재 진보신당 당원이기도 하다.
 
에펠탑을 보려면 에펠탑으로 가면 안 된다
그는 빠리에서 살기 위해 택시운전사로 20년을 일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경험을 담아놓은 책이 바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다. 나는 그 책을 시간 날 때마다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고 또 다시 읽기를 즐겨 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에펠탑을 보려면 에펠탑으로 가서는 안 된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할까? 

글쎄 그게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홍세화 선생은 빠리의 택시운전사 시절 에펠탑을 보려는 관광객들을 어느 언덕으로 안내했다고 했다. 에펠탑을 보려면 멀리 떨어져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지리산을 제대로 보려면 지리산 속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 10점
권진.이화정 지음/씨네21


                          일상은 여행처럼, 삶은 예술처럼, 
                        
                 이방인들의 새롭고 낯선 서울 생활기

       
서울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로버트 프리먼의 연신내 시장과 스타벅스, 에밀 고의 홍대 앞과 신사동,
          젠 아이비의 의릉과 인사동, 곤도 유카코의 연남동과 이문동, 
          얼 잭슨 주니어의 시네마테크와 고대 앞, 바또 브레이즈이 이태원,
          마크 지그문드의 낙원동과 종로통.
          작가, 아티스트 등 문화노마드들의 특별한 공간, 그리고 일상 이야기.




오늘,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란 책을 읽었다. 알라딘에서 보내준 책이다. 일곱 명의 외국인을 두 명의 한국인이 인터뷰한 내용이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마치 에펠탑의 그늘 밑에서 실제 에펠탑이 어떤 모양인지도 모르면서 에펠탑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이야말로 적당한 거리에서 우리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을 아닐까?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 특히 서울의 모습은 다양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에게 서울은 서울이라는 것이었다. 서울은 뉴욕도 아니고 도쿄도 아니다. 서울은 서울만의 특징이 있다.

청계천 공사 이후 사라지는 오래된 전통 유산들
인터뷰어의 한 사람인 에밀 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성격이 공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서울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런 거죠." 그러나 이런 공존도 서서히, 최근에는 보다 급속하게 종말을 고하고 있다. 그는 청계천이 개발된 것에 내심 불만이다. 이제 청계천에는 트렌디한 레스토랑과 커피숍이 넘쳐난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고의 치적으로 자랑하는 청계천 복원 공사가 기실 외국인의 눈에는 그저 환경파괴 이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럽풍으로 뒤바뀌고 있는 청계천 주변은 유서 깊은 서울의 참 모습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어쩌면 몇 년 내에 우리는 이런 모든 오래된 유산들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서울은 점차 능률이란 이름으로 서구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속에는 전통의 냄새가 배어있는 특이한 도시였고 그런 점이 이들 외국인의 눈에는 보였다. 그런데 이런 전통들, 서구화의 바람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하던 옛 모습들은 어느 날부터 갑자기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급속하게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경우가 재래시장이다.

재래시장들은 월마트나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들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재래시장이 사라진다는 것은 편리함 대신에 자기만의 스타일을 잃는 것과 같다. 서울의 재래시장은 '파리나 런던 같은 체계적인 곳에서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자연스런 서울의 색깔'이다. 그런데 이 고유의 색깔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환경파괴의 다른 말 재개발, 개발이익에 떠밀린 인간성도 파괴한다 
자본과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파괴가 아니라 개발이다. 아이러니지만, 이처럼 하나의 현상을 놓고도 마치 수백광년이나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뉴욕에서 온 젠 아이비는 묻는다. "그'개발'이라는 것이 뭡니까?" 그의 질문처럼 과연 개발이란 무엇일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발은 경제적 이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발로 인해 한 쪽은 엄청난 돈을 벌고, 다른 한 쪽은 생존의 기본 터전마저 잃게 되는 불운에 빠지는 게 바로 개발이다. 그리니 개발을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자면, '너 죽고 나 살자!' 쯤 되는 것이 아닐까? 개발, 알고 보니 실로 무서운 말 아닌가. 

우리는 얼마 전, 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철거민들의 저항을 보았다. 그리고 여섯명의 죽음도 보았다. 용산참사다. 용산에서 벌어진 철거민들의 아픔 뒤에는 삼성이라는 대한민국 최대 재벌의 개발이익이 있었다. 삼성은 용산을 개발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1등 기업이다. 그러나 용산 철거민들은 용산이 개발되면 죽는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의 모습…,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를 읽으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책은 이런 따위의 무거운 주제만을 다루고 있는 책은 아니다. 인터뷰를 책으로 엮은 만큼 부드럽다. 책 속 곳곳에 배치된 사진들, 서울의 모습들은 독자들의 눈도 즐겁게 해준다. 

외국인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없는 우리의 참 모습을 발견
도쿄에서 온 여자가 본 한국인의 술버릇에 관한 이야기도 있으며,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아프리카 춤을 배우는 열정적인 한국인의 모습도 그려진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젠 아이비는 배우로도 활약했다. 그는 '성공시대' '명성황후' '슬픈 연가' '원더풀 라이프' '올인' 등에 출연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가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러나 부드러운 필치로 아름다운 사진과 더불어 보여주는 매우 매력적인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몇 시간 만에, 순식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읽어냈다. 그만큼 재미도 있었다는 말이다. 마치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감상하는 기분과 더불어….

그렇다. 이들 외국인은 우리를 비추어주는 거울이었으며 에펠탑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언덕이었다.            파비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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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10점
최규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만화가 최규석,
민주주의의 의미를 찾아 민주화운동의 정점이었던
1987년 6월로 여행을 떠나다


"잡아라…!"

 
1978년 6월의 어느 여름날, 뜨거운 열기로 새하얗게 달아오른 굵은 모래가 굴러다니던 운동장에서는 웅변대회가 한창이었습니다. 머리를 빡빡 밀어 윤기가 반질거리는 머리를 한 중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로 질서정연하게 운동장에 앉아 졸고 있었습니다. 이때 느닷없이 연단에 올라선 한 연사가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잡아라!"

"저기 날아다니는 파리나 모기를 잡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를 잡으란 말이냐? 바로 북한괴뢰도당의 괴수 김일성을 때려잡으라는 말입니다. …" 그는 나보다 한 학년 위의 선배로서 3학년이었습니다. 이름이 김성일이었는데, 이름자의 위치만 살짝 바꾸면 김일성이 된다는 생각에 이후로도 가끔 속으로 웃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웅변대회에 나와 이렇게 "○○○을 때려잡아라"와 같은 비인간적인 구호를 외치는 연사는 없습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모두가 6월항쟁의 덕입니다. 6월항쟁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습니다. 6월항쟁 이전에는 대통령 이름만 불러도 국가원수 모독죄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다는 소문이 사실처럼 번져있었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아니면 누가 일부러 낸 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모두 그 소문에 벌벌 떨었답니다. 그래서 우리가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대통령의 함자를 부를 땐 반드시 뒤에다 '각하'란 존칭을 붙였습니다. 게다가 대통령은 박정희, 국무총리는 김종필, 국회의원은 채문식이 영원히 하는 것으로 알았던 나의 어린 시절 대통령은 임금님이었습니다.

그러던 세상에 개벽이 일어났습니다. 6월항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오고 자동차들은 거리에서 클락숀을 빵빵 거렸습니다. 당시의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였습니다. 1972년 유신헌법이 만들어진 이래로 대통령은 국민들이 뽑지 않고 체육관에서 몇몇 사람들이 모여 뽑았습니다. 

소위 간선제란 것이었는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뽑는 것입니다. 서슬퍼런 유신시절에 대의원들을 모아놓고 '공갈 반 회유 반' 하면 안 넘어갈 사람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6월항쟁으로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뽑게 되었습니다. 물밀듯이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의 저항에 전두환 독재정권도 결국 항복선언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최규석의 만화 『100』는 6월항쟁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중고등학생들이 읽기 쉽도록 만화로 그린 책입니다. 권영호라는 주인공도 어린 시절 웅변대회에 나가 빨갱이를 때려잡자고 외치던 당찬 반공소년이었습니다. 그러던 주인공이 대학에 들어가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고민하게 되고 결국 운동권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런 아들이 빨갱이들에게 물들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던 어머니, 그러나 아들이 구속되자 누구보다 앞장서서 독재에 맞서던 어머니를 통해 결국 세상은 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말없이 직장생활에 충실한 영호의 형 영진은 6월항쟁의 주역이었던 넥타이부대의 표징입니다. 

이 책은 6월항쟁 승리의 소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완강하게 아들 영호와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다 민가협에 빠진 아내를 못마땅해하던 아버지도 마지막에는 택시기사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6월항쟁의 클락숀에 손을 얹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개벽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작가 최규석은 부록 뒤에 실어놓은 <작가의 말>을 통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관한 통렬한 비판을 던집니다. 6월항쟁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냈을지는 몰라도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작가의 관점입니다. 진짜 민주주의는 경제민주주의란 것입니다. 정치민주주의가 아무리 꽃을 피워도 경제민주주의가 없다면 그것은 날개 없는 민주주의입니다.  

6월항쟁으로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게 되었지만, 여전히 철거민들은 두드려 맞고 생활현장에서 쫓겨나고 있고, 노동자들은 전태일 열사가 했던 것처럼 줄기차게 목숨을 내던지지만 연예인의 성형기사만큼도 조명을 받지 못하며, 전태일 열사가 제 몸에 불을 붙이며 지키라고 절규했던 근로기준법은 걸레처럼 개악됐습니다.

그래서 6월항쟁은 반쪽의 혁명입니다. 6월항쟁이 완전한 혁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나머지 반쪽, 즉 경제민주주의를 당성해야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6월항쟁은 끝난 것이 아니며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항쟁이 지닌 역사적 의미가 지대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그는 처음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로부터  이 작품의 작업을 제안받았을 때 거절을 할 심산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첫 이유는 그 사건에 대하여 별로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배알이 꼬여서'라는 그의 이유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이유는 배알이 꼬여서였다. 87년 이전 공고를 졸업한 동네 형님들은 20대 후반이면 혼자 벌어서 제 소유의 자그마한 주공아파트에서 엑셀을 굴리며 아이들을 낳고 키웠었지만, 지금 내 또래의 친구 중에 부모 잘 만난 경우를 빼면 누구도 그런 사치를 부리지 못한다."
 
글쎄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87년 이전에 공고를 졸업한 동네 형님들이 부럽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그때보다 현저하게 살기 어려워진 현실에 대한 푸념일까요? 공고를 다니다 82년에 취업이란 걸 나와서 기름밥을 먹으며 젊은 시절을 보낸 저로서는 이해가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아마 작가의 동네 형님들은 모두 두산중공업(구 한국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공장에 다니는 모양입니다. 아마 그런 곳이라면 틀림없이 맞는 말입니다. 그런 대공장에 다니지 않더라도 작가의 동네 형님쯤 되는 사람들은 작은 아파트에 엑셀을 굴리며 아이를 낳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그 동네 형님들 중 상당수는 비정규직으로 떨어져 작은 아파트와 엑셀을 유지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지 모릅니다. 물론 작가 또래의 친구들은 그런 생활조차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배알이 꼴릴 만도 합니다. 6월항쟁은 정치민주주의를 달성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발빠르게 적응한 자본은 새롭게 진화했습니다. 

6월항쟁 이전의 그들은 독재에 순종하며 그들이 쳐주는 보호막 속에서 돈을 벌면 되었지만, 이제 그들은 스스로 법을 만들고 세상을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로자파견법을 만들고, 이게 발전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했으며, 이제는 이보다 더 진화한 새로운 제도를 찾고 있습니다. 모든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만들겠다는 게 현재 그들의 구상입니다. 

어쩌면 작가는 이런 모든 현실, 미완의 혁명에 대한 불평, 이런 것들로 인해 배알이 꼬여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의 제안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작가는 지난날에 비해 통치자들에 대한 말문이 조금 트인 걸 겨우 민주화라고 말한다면 할 말 좀 참고 좀더 배불리 편하게 먹고 사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탓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사회의 문제로 고통받으면서도 제 탓만 하고 사는 사람들 앞에서 20년 전에 이룩한 민주화를 찬양하는 것은 삶의 질과 민주주의가 아무런 연관을 갖지 않는다고 선전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행사장 귀빈석에 앉은 분들 가슴에 달린 카네이션 같은 것으로 만드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작가가 작업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이 작품이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배포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걸 위해 수많은 사람들―역사교과서에 등장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처럼 터무니없이 약하고 겁 많고 평범한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렸고 제 삶의 기회를 포기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안심할 정도로 튼튼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강화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이 없이는 어느날 '사람 좋아 보이는 도둑놈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하고 싶었다."

마지막 그의 바람은 그의 얘기처럼 '이 책이 인터넷에 발표됨과 동시에 집권한 이명박 정권에 의해 생생한 현장체험을 곁들인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도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이미 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전적인 인쇄물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도 색다른 추억입니다.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녀석이 다가와 '잽싸게' 집어갔습니다. 이 책이 만화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는 아이의 표정은 그리 밝거나 신나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심각한 표정이 자못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짐짓 모른 척 재미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아이에게 6월항쟁은 너무나 무서운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책장을 다 넘겨보는 아이가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아이에게 '아름다운 꽃노래'만 틀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으로 다를 바 없지만, 그러나 미래가 그들의 것이라면 그래선 안 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만화입니다. 만화는 재미있습니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만화의 커다란 장점입니다. 시간을 많이 소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주어진 것인지 알게 해주고 싶다면 이 책을 사서 먼저 읽어본 다음 권해보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6월항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껏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는 소중한 역사의 자산입니다. 또 6월항쟁은 정치민주주의로 끝나서는 안 되고 경제민주주의를 달성하고자 하는 지난한 투쟁을 통해 완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가장 절절하게 잘 표현해놓은 것 같은 박재동 화백의 추천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100』는 우리의 심장을 다시 요동치게 하고 잠자던 세포들을 일깨워
지금의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되짚어보게 한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속에 어떠한 역사가 묻혀있는가를!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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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10점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푸른숲
스스로 행복을 찾아 나서는 여성을 위한 심리치유 에세이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처음에 책 제목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그거야 당연하지. 남자들은 미술관에 갈 시간도 없을 뿐 아니라 미술을 별로 즐기지도 않아. 미술뿐만 아니라 예술 자체를 즐길 줄 모른다는 게 맞겠지. 낚시나 바둑이라면 모를까. 그조차도 아주 소수의 남자들만 즐길 뿐이지. 대부분의 남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내거든.”


그러나 이 책은 시종 미술관에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은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저자인 플로렌스 포크는 심리치료사로 20년을 일하면서 여성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상담했다. 그녀는 스스로가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하며 혼자 사는 법을 터득했다. 그녀 역시 처음엔 예의 당혹감과 수치심에 고통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극복했으며 심리치료사로서 혹은 뉴저지주립대학의 영문학 교수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물론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가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훌륭한 직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여성들, 예컨대 노동계급에 속한 여성들과는 달랐으며, 이 책속의 상담자들 또한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어떻게 혼자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혹은 오히려 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관하여 이 책이 좋은 대화상대가 되어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 혼자인 여자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 플로렌스 포크는 고독해져야한다고 말한다. 고독이야말로 행복을 찾는 열쇠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독이란 무엇일까? 우선 진실로 고독해지기위해서는 고립과 고독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고독은 고립이 아니다. 플로렌스 포크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생활은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동시에 ‘정신없게’ 만드는 곳이다. 혼자서 깊이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균형을 맞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갈되어버리고 만다.”


플로렌스 포크는 계속해서 “혼자 탐색하고 살펴보는 시간이 없다면 친구도 심지어 열정적인 사랑도 나의 진짜 삶이 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독에 대하여 그녀는 이렇게 정의를 내린다. “고독은 자기 자신을 빼앗긴 사람을 위한 음식이다.” 그리하여 고독이란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얻는 가장 큰 혜택은 평화라고 말한다.


여자는 행복해지기 전에 고독을 통해 자기를 만나야 한다
이 책은 ‘싱글 라이프’를 위한 책이다. 플로렌스 포크는 20여 년간 심리치료사로 일하면서 많은 여성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녀들이 어떻게 상처받고 부서지고 다시 일어섰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들이 다시 일어서기 전에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있는데, 그것은 고독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만나는 것이었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책의 제목을 내 나름대로 이렇게 바꿔보았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만 많을까?’ 나는 미술관을 자기를 가두고 학대하는 비밀의 정원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와 고독을 즐기는 그런 공간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자 제목이 이렇게 바뀐 것이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만 많을까?’


이 책은 혼자인 여자를 위한 자기계발서이고,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여자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차분하고 정다운 목소리로 들려주는 책이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혼자가 아닌 여자들도 고독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혼자인 여자들만 상실감으로 고통을 겪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결국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란 말이 있듯이 경제문제는 여성에게 커다란 짐이다. 혼자인 여자가 충분히 행복해지기위해서는 선결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권했듯이 “남성의 도움 없이 생활의 자립을 꾀할만한 돈을 가지는 것”이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여성들이 ‘고독’이란 행복의 열쇠를 얻겠지만, 여전히 그 열쇠로 ‘자기만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는 사실은 슬픈 현실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모든 문제가 그렇지만, 교육문제든 여성문제든 그 답은 결국은 경제문제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은―특히 여성들은―행복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될 것이며 그 믿음은 희망을 줄 것이다. 희망이 있는 한 삶이 늘 팍팍한 것만은 아니며 희망이란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다는 기쁨을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과 더불어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함께 읽어본다면 그런 믿음이 더욱 신실해질지도 모르겠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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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 10점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사계절출판사


내가 이 책 『고민하는 힘』을 다 읽은 것은 낙동강으로 도보기행을 떠나기 위해 탔던 차 안에서였다. 이미 절반 이상을 읽었던 책을 마무리하기 위해 배낭에 넣고 시외버스를 탔던 것이다. 경북 봉화와 안동의 경계지점 어느 곳이었을 절에서 하룻밤을 묵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때 시각이 새벽 5시 30분. 


절밥은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위에는 온통 풀로만 만든 음식들이 펼쳐져 있었다. 국도 반찬도 모두 풀이었다. 쌀도 결국 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면, 강변 둑방에서 풀을 뜯는 소가 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허기가 반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허겁지겁 밥을 먹고 나니 주지스님께서 차 공양을 해주신다고 한다.


아직도 하늘에선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다. 이런, 걱정이 태산이다. 우산도 없고 우비라고 해야 천 원짜리 허접이다. 무엇보다 카메라가 걱정되었다. 캐논 450D. 낙동강을 위해 구입한 재산 1호다. 그러나 하늘은 내 걱정 따위는 아랑곳없이 계속 비를 뿌려대었다. 그러다 시계바늘이 7시를 향해 다가가면서 서서히 빗방울도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하늘은 우리 편이야!”라는 농담을 섞어가며 우리는 출발했다. 주지스님께서 친히 단천리 비경에서부터 윷판대를 거쳐 도산서원까지 동행하시겠다고 한다. 길잡이가 되어주시겠다는 뜻이리라. 낙동강을 따라 두 시간여를 걸어 우리는 이육사기념관에 도착했다.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 기념관 바로 위에 있는 윷판대를 올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온 윷판대는 장관이었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뱀처럼 휘어들어오는 낙동강. 그 위에 펼쳐진 단천리의 아름다운 벼랑바위들.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서늘해지는 두려운 쾌감이 몸을 휘감아온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노무현이 죽었다는데…!”


이후부터 우리의 낙동강 도보기행은 엉망이 되었다. 형식상으로야 별일 없다는 듯 그대로 진행되었지만, 이미 사람들은 무력감에 빠져 아무것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개중 몇몇은 부랴부랴 짐을 챙겨 떠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 전례가 없는 사태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눈물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살벌한 세상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 지금의 일본을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어떤 색이 될까요? 나는 희미한 납색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은 내 눈이 어둡기 때문이며, 그래서 비관적인 이미지를 품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급속도로 진행되는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 경제력의 쇠퇴, 막대한 재정적자, 정치적 폐쇄 상황 등 부정적인 요소가 많지만 가족의 연대가 강하고 사람들 사이의 정을 실감할 수 있다면 고립감이나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겠지요. 즉 사람들 사이의 유대관계, 커뮤니케이션이 상호 신뢰에 의해 지탱되고 그것이 각 개인의 정체성에 안도감을 줄 수 있다면 경제적 곤란이나 정치적 부정이 횡행한다고 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희미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회에는 고립감과 시기심이 가득하고 꿈과 희망은 위축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고민하는 힘』의 저자 강상중이 <글을 마치고>에 쓴 말이다. 그는 이 책을 매우 부드러운 어조와 친절한 화법으로 썼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원래 일본인들―그는 재일한국인이지만, 역시 일본어를 사용하는 일본인이다―은 이렇게 친절한 어법을 구사하길 즐긴다고 들었지만, 그래서 그런 걸까? 아니면 옮긴이의 온화한 성품 탓일까?”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유행했던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마음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 읽었던 ‘에세이’ 부류로 치부하는 오류를 범할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에 그런 느낌으로 읽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다시 읽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강상중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단순히 고민하기―혹은 고민하는 훈련을―위해 정신세계의 지평을 넓히라든가 하는 따위의 에세이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이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끌어들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100년 전은 오늘과는 확연히 다른 시대다. 오늘날 우리는 뉴욕에서 워렌 버핏이 하는 말과 행동을 실시간으로 해석까지 덧붙여 접할 수 있는 좁은 지구촌 시대를 살지만, 그때는 확실히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동양의 끝자락과 서양의 끝자락에 살고 있던 두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장치는 당시엔 아무데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 둘은 생각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선 태도 또한 닮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강상중은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가 살았던 시대적 혼돈 상황이 오늘날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오늘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시도를 하는 것이다.


19세기 말, “장기불황과 내란 상태로 어지러웠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다른 나라로 몰려갔으며 일본도 비슷한 이유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른바 제국주의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는 조정되었으나, 지금 세계를 바라보면 국경을 넘어 ‘글로벌 머니’가 종횡무진 ‘배회’하고 있고 그 ‘폭주’를 막을 수 없는 상태”가 계속 되고 있다.


국민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대상이었던 과거의 자본주의는 타파되고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게 되었으며 자유는 무한히 확대되었지만, 그 자유는 인민의 것으로 되지 못하고 시장의 힘에 속박되었으며 자본이 독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말하자면, 강상중은 100년 전의 세기말적 상황과 오늘의 세기말적 상황이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가 백 년 전에 쓴 것을 다시 읽어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개인’의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있으면서도 그 흐름에 따르지 않고 각각 ‘고민하는 힘’을 발휘해서 근대라는 시대가 내놓은 문제와 마주 했”다.


그리고 강상중은 고민하는 인간이었던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섞어 ‘고민하는 힘’에 대해 예의 친절하고 부드러운 화법으로 풀어쓰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다루는 아홉 가지 주제 즉, 자아, 돈, 지성, 청춘, 믿음, 직업, 사랑, 죽음, 늙음에 대하여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의 고민을 빌어 잔잔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떻게 고민에서 벗어날 것인지, 또는 고민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그러나 앞에 소개한 <글을 마치고>에서 저자가 표현한 것에서 보듯이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보여주듯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살벌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국가는 인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자본주의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지만, 그 인민이 향유해야할 자유와 민주는 시장의 힘에 이끌려 자본의 노예가 되었다. 검찰은 물론이고 법원 등 모든 국가기구가 자본의 하수인이 되었다. 국가는 바야흐로 자본을 위한 존재로 된 것이다. 반면 보다 값싸고 유연한―혹은 편리한―비정규직은 넘쳐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국가를 위해 국민이 있다’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국가가 있다’라는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몇 십 년 동안의 노력은 그러나 수상쩍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저자는 통렬히 비판한다. 일본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우리나라는 수상쩍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노무현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 수상쩍은 그림자를 확실히 보지 않았는가.


과거 독재권력의 충직한 개 노릇을 했던 언론들, 구체적으로 조중동은 이제 자유와 민주란 바람을 타고 자본의 이름으로 스스로 권력이 되었다. 검찰과 경찰, 법원 등 모든 국가기구도 자본의 하수인이 되고자 스스로 명단에 이름을 집어넣기에 바쁘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이 엄수되는 그 시각에 하필 대법원이 삼성의 이건희에게 무죄판결을 선물한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늘 그렇게 하겠지만, 먼저 서문을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읽어보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저자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그 의도를 분명히 짚어 본문 책장을 넘긴다면 나침반도 없이 큰 바다에 나가 방향을 잃고 헤매는 어부의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 독자들은 서문을 대충 읽거나 아니면 생략함으로써 마치 잔잔하고 평온한 바다에서 낚시꾼이 고기 한 마리도 낚지 못했을 때 느꼈을 불평을 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물론 이 책은 앞서 말했듯 빠른 물살이 지나가는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그런 기쁨은 없다. 세상을 향한 냉혹한 비판과 주장도 없고 대단한 지혜를 뽐내는 그런 구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바다에 돛단배 하나 띄워놓은 것 같은 그런 책이다. 그러나 서문을 꼼꼼히 읽어보는, 그리하여 저자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독자라면 수평선 저 멀리 떠오르는 빛나는 별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 별들은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독자에게 노를 저어 수평선을 지나 피안에 닿을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리라.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있으면서도 그 흐름에 굴복하지 않고 ‘고민하는 힘’을 발휘하며 이 시대가 내놓은 문제와 마주했을, 또 늘 그렇게 하기 위해 분투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그리고 강자에게 절대 굴하지 않았으며, 약자에게는 늘 온화한 웃음과 위트로 그가 좋아했던 노래가사처럼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오길 염원했을 그를 추억하며…      파비

ps; 원래 이 서평은 알라딘 리뷰와 이 블로그에 진즉 올렸어야 하나 낙동강 도보탐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으로 경황이 없었습니다. 특히 노무현의 죽음은 거의 진공상태에 빠진 듯한 무력감을 가져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하기도 싫었습니다. 한동안 리듬이 완전 깨졌습니다. 알라딘과 티스토리에는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언제나 시의라는 것이 있을 텐데 늦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또 한 권이 밀리는 곤란함이 생겼습니다. 별로 재미도 없고 인기도 없는 포스팅이긴 하지만, 이 시대가 자아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점에서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란 생각은 확실히 듭니다. 하필이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맞물리기도 하면서 고민이 더 많았던 책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오래된 기억
그가 경찰서에 끌려갔던 것은 1991년 11월이었다. 2년여에 걸친 수배생활로 초췌해질 대로 초췌해진 모습으로 그는 오동동아케이드 앞 전화박스에 잠복해있던 형사에게 덜미를 잡혔다. 굵은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수첩에 사진을 끼워 넣고 수없이 쳐다보았을 그를 그들은 알아보았다. 좁디좁은 사제 승용차에 전리품처럼 던져진 그는 사복들의 만세소리와 머리위로 달려드는 붉은 신호등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체념했었다.

다음날 아침, 유치장에서 간신히 눈을 뗀 그를 구경하기 위해 출근하는 경찰관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 꽤 높은 듯이 보이는 정복차림이 말했다. “음~ 듣던 대로 그렇게 잘 생긴 것은 아니네.” 그러자 옆에 있던 형사가 얼른 말을 받았다. “아닙니다. 계속 쫓겨 다닌 데다 수염도 못 깎고 세수도 안 해서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그는 그저 우리에 갇힌 원숭이였다.  

전날 밤, 모두들 잠든 시간에 공중전화 박스에서 잠복하던 형사가 그를 불러내었다. 수갑은 물론이고 양발에 채운 족쇄를 끌며 컴컴한 지하실로 가자 형사는 통닭 한 마리와 소주 몇 병을 사놓고 기다렸다. 그러면서 그에게 소주를 부어주고 담배를 권하며 말했다. “이제 마음이 편하제? 진작 들어왔으면 고생을 덜 했을 거 아이가. 이자, 모든 걸 잊고 소주나 한잔해라.”

형사는 일계급 특진을 했다고 했다. 그에게 붙었던 현상금 이백만 원을 미리 가불해 직원들이 회식을 하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형사는 그에게 혹시 잘 아는 변호사가 있냐고 물었다. 만약 아는 변호사가 없다면 자기가 소개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 김모 변호사는 매우 훌륭한 법조인이고 그분을 선임한다면 아마도 경찰조서도 수월할 것이라는 조언도 겸해서…

그는 형사의 제안이 매우 고마웠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구속된 사실을 바깥에 있는 노조의 동지들이 알고 있을 것이므로 그들이 남은 일은 처리하지 않겠느냐고 말해주었다. 자기가 할 일은 이제 형무소에 가서 편히 쉬는 일뿐이라고… 그러자 형사는 다시 잘 생각해보라는 말과 함께 그를 다시 유치장으로 밀어 넣었다.

불멸의 신성가족 - 10점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고독하고 절대적인, 그러나 자기만족으로 함께 부패하는 신성가족이 된다는 것
그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거리에서 유치장을 거쳐 교도소로 가던 바로 그해 가을, 『불멸의 신성가족』(이하 이 책)의 저자 김두식은 사법시험 합격통보를 받았다. 1991년 9월 19일, 저자는 네 편의 홍콩느와르와 함께 뒹굴 참이었다. 다음날이면 백수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가 결판나는 날이었기 때문에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오후 4시, 저자는 미리 백수인생은 끝났으며 드디어 신성가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통보받았다. 어쩌면 발표일보다 미리 결과를 알 수 있었던 것도 신성가족에 대한 예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신성가족은 맑스와 엥겔스의 첫 번째 공동저작 『신성가족, ‘비판적 비판주의’에 대한 비판: 브루노 바우어와 그 일파를 논박한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저자는 검찰과 법원, 변호사로 이루어진 법조계를 신성가족에 비유했다. 신성가족. 맑스에 의하면 신성가족은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된… 고독한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였다. 이 책의 저자 김두식은 그가 찬바람 부는 거리를 떠돌다 형무소로 향할 때 고시생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바로 그 신성가족에 입문한 것이다.

다음날부터 저자에 대한 예우는 당장 달라졌다. 친척들의 모임에서조차 사람들이 자기와 앞다투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대한 겸손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저자가 검사를 그만 두었을 때 어머니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정도의 감수성을 가진 저자였기에 검찰생활을 오래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지금은 대학교수다. 

“두식아, 이모가 그러는데 전에는 안 그러더니 네가 검사가 된 이후로는 젊은 애가 왜 늘 뒷짐을 지고 걷는지, 애가 좀 이상해졌나 생각했대. 어른들을 모신 자리에서도 왜 늘 중심에 있으려고 하는지, 쟤가 원래는 안 그랬는데 검사가 되더니 아예 영감노릇을 하려나 생각했다고 하더라.”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 똑바로 다 불어"
그는 교도소에서 두 번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검찰 유치장에서 차례를 기다렸다가 포승줄에 묶인 채로 검사실로 가서 바로 앞 순서가 끝나기를 기다렸는데, 세 명의 소년수들이었다. 조사는 서기가 대신하고 있었으며 검사는 의자를 창가로 돌린 채 자고 있었다. 한참을 자던 검사는 배가 고팠던지 일어나 식당에 간다며 나가려다 나란히 묶여있는 소년들을 쳐다보았다. 

소년들을 권태로운 눈길로 물끄러미 쳐다보던 검사는 갑자기 책상위에 있던 서류철을 집어 들고 소년들의 머리를 차례로 내리쳤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 똑바로 다 불어.” 그러더니 구석에 멍청하게 앉아있는 그를 힐끗 돌아보았다. “이건 또 뭐야?” “네, 그 친구는 시국사범입니다.” “그래?” 검사는 그를 한심하다는 듯 한참을 내려다보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그때 생각했다. “이런, 제길, 저놈들은 내가 누군지 관심도 없구나. 아예 누군지도 모르고 있어. 그러면서 무슨 검사랍시고.” 당시로서는 그래도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자존심에 꽤나 상처를 입었다. 그때는 한창 피가 끓는 젊을 때였으니까 그가 상처를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검사의 입장에서는 매우 귀찮은 범법자의 한 명이었을 테지.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공소장이 교도소 안으로 배달되었고 그는 재판을 받으러 법정에 나가게 되었다. 재판 첫날, 구속 된지 거의 두 달 만에 잡힌 재판일정이었다. 오랜만의 외출에 설렘 반 재판에 대한 불안함 반으로 푸른 수의에 수갑을 차고 법정에 앉았다. 간단한 인정신문이 끝나고 검사가 무엇인가를 읽기 시작 하고 이어 판사가 뭐라고 중얼대더니 그만 일어나란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유치장에 들어가는 그를 향해 간수가 설명해주었다. “속행이야. 4주 속행. 4주 후에 다시 재판을 한단 말이지.” 허탈했다. 그는 오늘의 재판을 위해 두 달 동안 감방에서 준비를 했다. “우리는 왜 민주노조를 만들었으며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니 그는 그보다 자신을 세워두고 하는 말들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내가 판사하고 이미 이야기를 다 했다니까요"
그렇게 재판은 4주에 한 번씩 열렸으며 4개월을 끌었다. 그러니까 1심 재판의 미결수로써 그는 무려 6개월을 감옥에 갇혀 있었던 셈이다. 중간에 설날연휴가 끼었을 때는 한 파스를 거르기도 했다. 그가 감옥에서 겪을 하루의 고통 따위는 아무도 안중에 없는 듯했다. 마침내 6개월 만에 검사의 구형을 받고 최후진술을 할 기회를 얻었다.

4개월 동안 이어진 재판에서 판사와 검사, 변호사는 자기들끼리만 아는 언어로 속삭였었다. 그는 그게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왜? 내가 이럴 수밖에 없었는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변호사는 면담 자리에서 그에게 말했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 계세요. 내가 다 알아서 합니다. 판사하고도 이야기를 다 했어요.”

담당 변호사는 말하자면, 그에게 반성하는 표정으로 피고석에 묵묵히 앉아 있기를 원했다. 그럼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는 거였다. 이미 판사하고도 이야기가 끝났다고 했다. 그럼 이 재판은 뭔가? 변호사는 그가 실형을 얼마나 많이 살게 될 건지보다 어떻게든 자기 행동의 이유를 말하고 싶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를 못했다.

변호사는 최후진술도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냥 선처를 바란다는 말만 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공장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고 왜 노동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만약 실정법을 어긴 것이 있다면 당당하게 벌을 받겠지만, 원인과 결과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며 장황하게 최후진술을 하고 말았다.

6개월을 갇혀있는 동안 공식 면담 외에 한 번도 대화가 없었던 변호사는 일부러 검찰유치장에 앉아있는 그를 찾아왔다. 변호사는 버럭 화를 내었다. 왜 시키지 않은 짓을 해서 일을 망치느냐는 거였다. 그러면서 자기는 모르겠으니 이후의 일은 책임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변호사에게 말했다. “책임질 필요 없으십니다. 살아도 제가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희망제작소의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저자는 이미 2004년에 『헌법의 풍경』이란 책을 통해 법조사회의 비리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한 바가 있다.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책도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법조사회가 얼마나 부패했으며 그 피해를 국민들이 얼마나 짊어져야만 할 것인지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다.

이 책은 희망제작소가 진행한 <우리시대 희망찾기> 프로젝트 중 ‘사법’ 분야 연구의 결과물이다. 이 책의 저자는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렸다고 했다. 그 스스로 사법시험이 보장해준 특권을 버렸다고는 하지만, 그는 여전히 법조계의 한사람이었으며 젊은 나이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부담스럽고 두렵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처음엔 무조건 이유 없이 거절하려고 했지만 법학분야에선 흔치 않은 질적 연구란 점이 묘한 흥미를 끌었다. 질적 연구란 문제를 정해놓고 여러 가지 가설을 제시하며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수집하는 양적 연구와 달리 대화를 통해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상상하고 창조하도록 돕는 실천적 수단의 하나다. <우리시대 희망찾기>는 심층면담을 질적 연구방법으로 채택했다.   

저자에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내용을 녹취하여 분석하고 재구성하여 책을 집필한다는 것은 양적 연구조차 거의 하지 않는 법학분야에서는 흔치 않은 기회로서 여로 모로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양적 연구나 질적 연구, 혹은 연역법이나 귀납법과 같은 전문적이고 고리타분한 느낌은 전혀 받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한적한 대포집에 앉아 저자의 경험담을 듣는 것처럼 편안하다. 그의 글은 법조인 출신답지 않게 매우 친절하고 부드럽다. 그에게서는 신성가족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고백했듯이 끊임없이 겸손해지려고 노력했던 탓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의 내용이 말하듯 치열한 자기반성의 결과였을 것이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법조계의 검은 커넥션을, 그러나 부드럽고 친절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
내가 이 책 이야기를 하면서 왜 ‘그’에게 들었던 오래된 기억을 먼저 들추었을까? 그것은 오래 전 들었던 그의 경험담 속에는 이 책에서 통렬히 비판하는 신성가족의 비리가 태연히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검사였던 저자가 만난 여러 명의 현직 판검사, 변호사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 거대한 커넥션의 뿌리는, 그러나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고 겪기도 했던 실체들 중 일부였던 것이다.

이토록 짧은―또는 짧아야만 하는―서평으로 신성가족이 만들어놓은 검은 실체를 모두 보여준다는 것은 무리다. 그걸 모두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신영철 대법관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차분한 설명도 들어있다. 신영철 사태는 신영철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아니라 신성가족의 문제였다. 

이미지=언론사취재사진

이 책을 쓰게 된 연구프로젝트는 신영철 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영철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모든 작업을 마치고 집필 작업에 들어갔으며 출판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책 속에 이미 신영철 사태가 예견되어 있었음을 발견한다. 신영철 사태는 신성가족으로 말하자면, 그저 지극히 자연스럽고 온당한 하나의 일상이었다.

대법관은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후의 목적지다. 그러나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하나의 사건에 이름만 빌려주고도 수천만 원의 수임료를 받는다는 소문은 대법관 자리가 순수한 명예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현실을 절감케 한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 시절 사건을 수임했지만 변론은 김앤장이 도맡았던 때문에 명의만 빌려준 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에 시달렸었다.

이 대법원장이 여기에 발끈해 세무자료까지 제출하며 자신의 청렴을 강조한 것은 나름대로 절제한 자신의 변호사 생활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대법관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한 5년 동안 60억 원에 달하는 수임료를 벌어들이는 기록을 세운다. 그렇게 청렴에 자신 있다던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 정도라면 다른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수입은 어느 정도일까.

'거절할 수 없는 돈'과 '거절할 수 없는 관계'
이 책의 주제들은 우리에게 하나같이 낯설지 않은 것들이다. ‘전관예우’ ‘거절할 수 없는 돈’ ‘청탁’ ‘압력’ ‘평판’… 신영철이 서울중앙지법원장의 이름으로 현직 재판관들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들이 이 모든 주제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법원장의 전화에 헌법상 재판권 독립 운운하며 맞설 수 있었을까?

슬픈 일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우리 국민들은 사법시스템이 신성가족에 점령당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 속의 구술자들이 말하듯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법에 호소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봐야 나만 더 힘들어지고 내 생활만 파탄 날 뿐이니까…’ 의외로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은 심각했다. 변 교수라고 밝힌 한 구술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기업들이 노조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이다. 민주노총의 집계에 따르면 한때 노조원에게 요구한 손해배상의 규모가 2000억 원을 넘어선 적도 있을 정도다. 이런 식의 법률남용은 ‘모든 저항과 자기 권리 구제에 따른 손실을 개인에게 책임지게 함으로써 실제로는 법으로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손해액을 계산하는 것도 결국은 자본가와 법률가들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이래로 법은 완전히 자본의 하수인이 되었으며, 약자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불법으로 만들어버리는” 우리 사법시스템에 대한 변 교수의 통찰에 귀 기울일 점이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 사법시스템에서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거절할 수 없는 돈’의 문제이다.

판검사들이 제아무리 깨끗하게 살고 싶어도 이 거절할 수 없는 돈의 존재는 거대한 신성가족에 파묻힌 그들을 결국은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치 않으나 남들이 다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이 거절할 수 없는 돈의 정체를 이 책은 신성가족이란 이름으로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신영철 대법관 사태도 신성가족이 만든 관계망이 만들어낸 일각일 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이 거절할 수 없는 돈과 신영철의 e메일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커넥션을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말한 신성가족의 관계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얻게 될 엄청난 부도 있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연구에 응해준 현직 판검사 출신 구술자들은 “판검사들은 어떤 경우에 돈을 받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어야 하고, 둘째, 잘 아는 사람들, 특히 판검사 생활을 함께 했던 변호사들의 돈이어야 하며, 셋째, 액수가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 ‘거절할 수 없는’ 인간관계가 개입되면 돈이 좋아서가 아니라, 대열을 무너뜨릴 수 없어서 받아야 하는 특별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들은 성실하게 면담에 응하기 했지만 역시 신성가족의 일원이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 판검사들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전한 돈은 누구의 돈일까? 아마도 준(準)국가에 해당하는 삼성의 돈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기가 맡은 삼성 관련 사건이 없는데 김용철 변호사 같은 사람이 꾸준하게 몇백만 원 수준의 돈을 “좋은데 쓰시라”며 가져다 준다면? 이 안전하고 지속적인 돈을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저자는 돈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아니라고 말한다. 면담을 진행할수록 문제는 돈이 아니며 바로 ‘거절할 수 없는 돈’을 만들어내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일부 판검사들이 그냥 돈이 좋아, 골프가 좋아, 술이 좋아 아무한테나 접대를 받는 게 문제라면 그것은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썩은 사과는 골라내면 그만이니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관계망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는 신영철 대법관 사태의 본질도 그 관계망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 관계망을 이해하게 되면 그 관계망에서 자라온 판검사들이 현 법조계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실정으로부터 몇 차례의 사법파동을 더 겪어야만 해소될 것이라는 슬픈 현실도 보게 될 것이다. 

『불멸의 신성가족』이 신성가족을 향한 고독한 투쟁이 되지 않기를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모든 국민이 한사람도 빼놓지 말고 읽었으면 하고 바란다. 특히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책을 사서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사서 읽는 자체도 대한민국을 깨끗하게 만드는 시민운동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법조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 책을 읽으며 뼈저린 반성과 성찰을 통해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우선 나부터 이 책을 내 주변의 친구들과 내가 속한 단체의 동료들에게 사서 읽기를 권할 생각이다. 말로만 사법비리를 탓하고 개혁을 외칠 것이 아니라 직접 이 책을 사서 읽는 것부터 실천하자. 이 책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사법개혁은 가까워질 것이며, 민주주의도 그만큼 넓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말이다. 

우리 모두는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그 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늘 법속에서 법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전율을 느꼈다. 우리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신성가족은 끊임없이 자기들만의 규율과 질서를 만들며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신영철 대법관 사태처럼 신성가족들이 저지르는 사법비리는 운명인가? ―나는 신영철의 행동도 대법관이 되기 위한 포석의 하나였고, 대법관이란 자리는 궁극적으로 엄청난 돈을 보장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확실히 비리라고 생각한다―박재영 판사처럼 저항수단은 오로지 사표를 던지는 길밖에 없는가? 그렇지 않다.

신성가족을 만들어낸 것은 실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에―사실은 신성가족을 비판하는 우리도 전관변호사를 찾지 않나―, 결자해지란 말처럼 매듭을 풀 책임도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할 것이고 그 힘과 지혜도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매듭을 풀어가는 출발은 현실을 아는 것이고 분노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 책 『불멸의 신성가족』에는 숨겨진 현실을 까발기고 분노하는 마음을 담아놓았다. 다른 이들도 이 책을 읽다보면 원래는 우리 모두가 ‘알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을 하나씩 깨닫는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신영철 같은 부패한 인물들이 사법부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란다.        파비

불멸의 신성가족 - 10점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Posted by 파비 정부권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 - 10점
이희수 지음/바다출판사

 

여행의 묘미는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간을 찾아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하는데 있다. 우리는 그 추억을 통해 과거에 대한 회상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런 기억의 도움 없이도 그저 아름다움이나 웅장함, 위대함 따위만으로도 얼마든지 여행의 목적한 바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하고 웅장한 아름다움도 거기에 추억이 저장되어 있지 않다면 생명이 없는 나무와 같을 것이다
. 우리는 나무에 돋아나는 연초록 이파리들에 감동하면서 지난 겨울을 생각한다. 그 나무는 그 자리에 남아서 지난 겨울의 온갖 풍상과 눈보라를 다 견뎌내고 드디어 연초록 이파리로 세상을 맞이했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너무나 빠른 세상에 살고 있다. 빨리, 더 빨리가 모토였던 7~80년대를 지나왔던 우리에게 세상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의 풍경일 뿐이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면서도 그 세상에 머무르지 못하고 늘 지나쳐야만 하는 나그네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음이 어디에 머무는지도 모르는 채 습관처럼 달려왔던 것이다.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우리에게 오래된 공간을 찾아 시간을 추억하며 머무르길 권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희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기 실린 문화도시들은 빠르지 않은 도시들이다.
   그리고 풍성한 스토리를 가진 도시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도시들이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새로운 기운을 얻기 위해,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도시들이다.
   혼자라도 좋고 여럿이라도 상관없다.”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
- 10점
  이희수 지음/바다출판사

이 책에 소개하는 도시들을 향해 여행을 떠나보라는 저자의 권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저자처럼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이 많은 외국의 도시들을 다 여행할 필요도 없고 또 여행할 수도 없다. 저자의 뜻도 굳이 외국의 이 도시들을 향해 떠나기를 권하는데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 저자의 어쩌면 사치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이 권고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마음을 기댈 만한 오래된 공간이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매력적인 책이다. 우선 편집부터가 제목처럼 매혹적이다.

 

큼지막한 활자는 이 책 속의 공간을 여행하게 될 독자들의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활자를 여행하는 중간중간에 오래된 유적과 도시의 사진을 배치해 쉬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배려도 훌륭하다. 활자 속에 들어있는 역사를 읽고 난 다음 휴식 삼아 사진 속의 밀라노 두오모를 물끄러미 쳐다보라. 그리고 두오모의 지붕에서 하늘을 찌르고 있는 3159개의 조각상들을 세어보라.

 

그저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처럼 책 속의 활자와 사진들을 스쳐가지 말고 차에서 내려 그 풍경 속에 빠지듯 해보라. 그리하여 오랜 세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간에서 지나간 시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그리하여 느림의 미학을 마음껏 느껴보라. 그렇게 해서 그 속에서 마음껏 노닐 수 있기를 이 책은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늘 반만년 유구한 단일민족의 역사를 자랑해왔다. 민족주의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어서 독재자에게마저도 유용한 도구다. 우리가 어린 시절 암기를 못해 혼나던 국민교육헌장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어야 하는 이유에도 반만년 유구한 역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반만년 역사는 언제나 그렇듯 말 속에서만 있었을 뿐 실제로 그 역사는 왜곡되고 부수어지기 일쑤였다.  


나는
에스파냐의 건축물을 보면서는 제발 연대를 묻지 말라며 고개를 흔들었다는 안내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들은 하나의 성당을 완성하기 위해 천 년의 세월을 기다릴 줄 안다. 고딕양식에서 출발하여 바로크 시대를 거쳐 19세기 현대 건축의 요소까지 모두 담고 있다는 팔마 대성당은 사진만으로도 인류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천 년의 세월을 넘어온 이 위대한 건축물을 과연 누구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오늘 누군가가 백 년 혹은 이백 년에 걸쳐 땅을 파고 다지고 기초를 놓고 다시 굳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건축물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은 바보가 아닌가. 당신 대에 끝내지도 못할 일을 도대체 누구를 위해 한단 말이요.

 

나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도시들의 오래된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또한 심한 질투심을 느꼈다. 우리는 왜 저런 곳에서 살지 못하는가. 몇 년 전 프랑스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얀이 유네스코의 파견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산하를 찍다가 그런 말을 했다. 미안하지만 한국의 도시들은 도저히 카메라를 들이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우리는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어딘가에서 그 역사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역사는 둘째치고 사람들에게 평온한 안식을 주는 마음이 머물만한 그런 도시를 찾는 것도 꽤나 어려운 일이다. 자본주의적 속도와 실용만이 강조된 획일적인 건축물들과 거대한 간판들 사이에서 우리의 마음이 잠깐이라도 머물 곳이 없다는 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다.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는 포르투갈의 아름다운 도시 포르투에서 시작하여 쇼팽과 조르주 상드가 사랑한 마요르카, 중세 절대왕권에 밀린 교황청이 피난해있던 프랑스의 아비뇽, 밀라노와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를 거쳐 고대 그리스 신화의 고향 크레타 섬으로 떠난다. 그리고 석양이 아름다운 동유럽 최고의 문화도시 프라하에 잠깐 들른 다음 에메랄드 빛 지중해를 건넌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도시 터키 안탈리아는 산타클로스의 고향이다
. 이곳에서 지중해를 따라 다시 서쪽으로 가면 고대신전과 조각상의 위대함을 만날 수 있는 룩소르(테베) 그리고 까뮈와 지드의 정신적 고향 알제가 기다린다. 그리고 지중해를 떠나 아시아에서 앙코르와트와 이슬람문화의 화려함과 역동성이 살아 숨쉬는 파키스탄 라호르를 만난다.

 

라호르는 농부의 아들이었던 나나크가 힌두교를 접목해 이슬람 시크교를 창시한 곳이다. 자비를 너의 모스크로 삼고, 신앙을 너의 기도 방석으로 삼고, 정직한 삶을 너의 <꾸란>으로 삼고, 겸허함을 너의 율법으로 삼고, 경건함을 너의 예식으로 삼아라.라는 가르침을 새기며 혹한의 땅 이르쿠츠크와 우리와 닮은 사람들이 옛모습을 간직한 채 살고 있는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를 거쳐 캐나다 밴쿠버와 미국의 첨단도시 시애틀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장 그르니에는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덜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여행하게 될 이 책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도시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의 정이 느껴지는 도시다. 이 도시들에선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이 도시들의 거리를 걷게 된다면 살아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기억 속에 잠자고 있는 옛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수천 년간 숙성된 깊은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부족하나마 이 도시의 거리를 직접 걷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굳이 포르투나 알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우리의 마음이 머물 수 있는 거리를 찾는 여유로움을 선물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다면 혹시나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게 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파비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 - 10점
이희수 지음/바다출판사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갑자기 장 그르니에가 읽고 싶어졌다. 엊그제 어떤 책(알라딘-티스토리 서평단이 제공한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의 서평을 쓰다가 장 그르니에가 생각났었다. 정확하게는 그가 했던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사람들 속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덜 힘들다는 말이 생각났었다. 그는 알제대학의 교수였으며 알베르 까뮈의 스승이었다.

까뮈는 장 그르니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까뮈가 젊은 나이에 죽고 난 후에 그르니에는
알베르 까뮈를 추억하며란 책을 쓰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르니에는 일상적인 삶, , 모래톱, 지중해의 영감, 어느 개의 죽음 등의 작품을 남겼다. 오늘 읽은 책은 어느 개의 죽음이다. 삶과 죽음, 존재에 관한 프랑스인 특유의 사유는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장 그르니에의 서정적인 심경을 통해서 우리는 그런 것들을 보다 편리하게, 부드럽게 만날 수 있다.

어느 개의 죽음 - 10점
장 그르니에 지음, 지현 옮김/민음사


장 그르니에는 자기가 키우던 개가 죽고 난 후에 그 개를 위해, 그 개를 추억하며 이 책을 썼다. 그는 그가 사랑하던 타이오를 통해 평등, 자유, 구원, 죽음, 사랑 등의 문제들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문체로 그러면서도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사색의 미로를 밝혀준다. 그러나 오늘 나는 그런 그르니에의 문제제기들보다는 다른 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다름아닌 개와 인간의 공통점과 차이에 대해서다. 그르니에는 사람에게
인권이 있다면 개에게는 견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인간과 개가 다름없이 같은 존재라는 인식을 내놓았다. 그에 의하면 개와 인간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거두어들일 수 있는 만큼만 씨를 뿌리기를! 하피즈의 말이다. 하지만 나의 욕망은 나의 필요와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나는 다른 모든 생물과 다를 바가 없다고 여긴다. 나는 개들 중에서 귀감을 찾으려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개들은 먹을 기회가 생기면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댄다. 개들은 자기들이 토해놓은 것조차 꺼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꼭 성경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 개들은 우리보다 나은 존재가 아니며 우리에게 삶의 교훈을 전해주지도 않는다. 좀더 낮추어 말하면, 개들은 우리와 똑같다

나는 그르니에의 이 관점이 고금을 통틀어 모든 인간에게 통용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에겐 아주 적당한 비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회가 만들어내는 온갖 오물덩어리들을 개처럼 핥아대는 인간에 대한 비유는 그 비유의 흉측함에도 불구하고 그리 틀린 것도 아니라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그렇다. 개들은 우리보다 나은 존재가 아니며 우리에게 삶의 교훈을 전해주지도 않는다. 좀더 낮추어 말하면, 개들은 우리와 똑같다.
그러나 다음 대목을 읽어본다면 우리는 결코 개와 똑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아침이 되면 동물들은 당신을 찾아와서 애정을 표시한다. 동물들의 하루 일과는 이러한 사랑과 신뢰의 실천으로 시작된다. 적어도 넘쳐나는 애정을 표현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 개와 인간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인간은 개가 가진 사랑과 신뢰를 갖지 못했다. 설령 그런 사랑과 신뢰를 갖고 있는 인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개처럼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실천으로 삼는 경우는 아마 표본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 여기서 이런 결론이 나온다. 인간은 개보다 못하다.

 

장 그리니에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인간은 정말이지 위선으로 가득하다. 가엾게 여긴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동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 동물들로 배를 채우는 것이다. 이런 식의 가증스런 희극들이 도처에 가득하다. 강자는 약자의 껍질로 몸을 치장하지만 약자를 사랑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강자는 약자의 껍질로 치장하지만 약자를 사랑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보다 더 명철한 인간에 대한 분석이 어디 있을까? 장 그르니에는 이미 오래 전에 다른 세상으로 갔지만, 그의 이야기를 인간과 개가 아닌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비추어보면 이렇게 고쳐 말할 수도 있겠다.  

 

자본가들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껍질로 치장하고 배를 채우지만 그들에게 일자리를 나누어주고 보살펴주는 것으로 간주된다.

 

, 여기서 슬프지만 다음과 같은 하나의 결론이 더 나온다. 인간은 개보다 못할 뿐만 아니라 매우 흉악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동물이다!” 막상 써놓고 보니 너무 거친 표현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럴 듯한 것 같기도 하여 매우 씁쓸하다. 그러나 그르니에는 현실의 인간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갈파한 것일 뿐 인간 본성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리라. 그래서 다시 루소의 이 말이 희망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제 블로그 공지사항에 들어갔다가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알라딘-티스토리 서평단에 합격한 것입니다. 겨우 서평단 모집에 뽑혀놓고 무슨 합격이냐구요? 하하~ 제가 입사시험에 붙은 이래로 물경 이십여 년 만에 합격이란 걸 해보는 바이니 그냥 뽑혔다고 하는 것보단 합격이라고 좀 허풍을 쳐도 큰 허물이 되지는 않겠지요? 된다구요?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참 깜박했네요. 8년 전에 공인중개사 시험에서도 기쁜 소식을 접한 바가 있었군요. 요즘 기억력이 형편없습니다. 그때도 기뻤지만 지금도 기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통점이 있다면 그냥 우연한 계기로 도전하게 됐는데 붙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군요.

알라딘 - TISTORY 서평단 당첨 블로그

◎ [인문/역사/사회/자연과학] 카테고리 (총 10명)
http://haerang.tistory.com
http://meoh.tistory.com
http://freeopher.tistory.com
http://omentie.tistory.com
http://go.idomin.com 
http://noracism.tistory.com
http://jellybeans.tistory.com
http://acidrhyme.tistory.com
http://pustith.tistory.com
http://befreepark.tistory.com


저는 아직도 블로그 초보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제 손으로 직접 보다 나은 블로그 환경을 만드는데도 익숙하지 못할 뿐 아니라 티스토리에서 꾸준하게 공지사항을 공지한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야 알았답니다. 덕분에 알라딘 서평단 모집에 응모하게 된 것이지요. 공지사항을 처음 열어본 것이 글쎄 서평단 모집 공고였거든요.

 

8년 전에도 그랬었던 거 같군요. 어느 날 아내의 선배와 술을 마시다가 이 아줌마가 갑자기 부권씨, 고마 공인중개사 시험이나 한 번 쳐보지? 그거 시험 별로 안 어렵다더라. 60점만 넘으면 된다던데, 하나 따 놓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러더군요. 그래서 진짜로 시험을 쳤지 뭡니까? 물론 합격했으니까 이런 말도 하는 거죠. (그런데 그 선배는 그런 말 한 것조차 기억 못 하더군요.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었던 거죠. ㅎㅎ)

 

반년 공부했다고 하니까 아무도 안 믿더군요. 거기다 시험치기 일주일 전에 대형사고가 하나 터졌었는데요. 9·11테러라고요. 거 왜 뉴욕 맨하탄에 있는 무역센타에 비행기 두 대가 폭탄 실고 가서 충돌했잖아요. 아이구~ 일주일 내도록 테레비로 그거 보느라 시험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요.

 

그런데 합격자 공고에 이름이 보이더라고요. 문제가 너무 쉬웠나 봐요. 하긴 1, 2차 다 객관식이었으니까…. (그렇게 받은 자격증은 지금 장농에서 장기수면 중이세요. 요즘 갱제가 무너져서 부동산도 영 장사가 안 된다더만요, ㅠㅠ) 이번에 알라딘-티스토리 서평단 모집도 알고 보면 장난 아니었거든요? 응모 트랙백이 4백 개가 넘었고 그 중에 40명이 뽑혔다니까 나름대로 경쟁이 꽤 치열했네요. 물론 모두들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했을 테지만요.

 

하이고~ 그러고 보니 이거 제가 제 자랑만 잔뜩 늘어놓고 있었군요. 그래도 이해해주세요. 이런 것도 아니라면 저 같은 소인배가 언제 우쭐거릴 기회라도 있나요? 그냥 귀엽게 봐주세요. 징그럽다구요? 그래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봐주세요. 어쩌겠어요. 어쨌든 오늘 무척 기분 좋은 날이군요, 간만에.

 

제가 당첨(사실은 합격이 아니고 당첨이 맞겠죠, ㅎㅎ)된 분야는 인문/사회/역사/자연과학 분야인데요. 저하고 어울리려나 모르겠어요. 저는 4개 분야 중에 유아/어린이/학부모/가정을 뺀 나머지 분야 즉, 문학/만화’, 경제/경영/자기계발/실용’, 인문/사회/역사/자연과학에 모두 응모했는데요. 이중 하나는 당첨되겠지 하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실제로 하나는 붙었군요.

 

이런 걸 유식하게 포트폴리오 전술, 아 이건 좀 비유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군요. 분산투자라니, 무슨…. 그냥 인해전술이라고 해두죠. 그래도 유아/어린이/학부모/가정’ 파트에 응모 트랙백을 안 보낸 건 제 양심의 발로였답니다. 아무리 인해전술이라지만, 차마 거기까진 못 보내겠더군요.

 

쾌락의 기쁨은 잠깐이요 고통은 영원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앞으로 서평 써 올릴 일이 걱정이네요. 그래도 공짜로 책 보내준다는데 그런 고통쯤 얼마든지 감수해야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 고통도 알고 보면 쾌락의 연속인 걸요. 앞으로 공짜로 보내주는 책 열심히 읽고 부지런히 독후감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덤으로 ‘책 보기를 돌같이는 우리 아들녀석에게도 모범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군요. “아들아, 책은 돌이 아니라 바로 황금이란다, 황금!그러면 이 녀석 눈이 번쩍 뜨일 게 분명합니다.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황금의 단맛을 잘 알거든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우리 친구가 책을 한 권 냈습니다. 제목이 <습지와 인간>입니다. 책 제목을 왜 <습지와 인간>이라고 했을까 처음엔 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도시와 인간’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겠는데 습지와 인간은 잘 연결이 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기자가 땀으로 쓴 습지와 인간


그러나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대부터 인간은 습지와 매우 유용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습지는 온갖 생물이 다양하게 분포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신석기시대의 인간들은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고 고기잡이를 하고 채집을 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위험과 부딪히지 않는 안전함”을 유지하면서도 “손쉽게 옮겨” 다니면서 “동시다발적인”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습지였던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저도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곤 동굴에서 살던 인간이 차츰 구릉에 정착하며 살았다는 내용뿐입니다. 습지에 관한 어떤 기억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역사교육을 받아왔는가 하는 걸 새삼 알게 됐습니다. 또 얼마나 편의적으로 역사가 기술되었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고고학이 눈에 잘 띠는 마른 땅만 헤집고 다녔으니 이런 결과가 나왔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하도록 이 책은 잘 안내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또 이 책에서 민족주의가 얼마나 역사를 오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의 역사일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24쪽은 ‘신석기시대에 농경생활이 시작되었다.’고 서술했습니다. 신석기시대가 지금에서 1만 년 전부터 3000년 전 정도까지로 아주 넓은 시대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쌀이나 조, 기장 같은 농경 자취가 확인된 곳은 같은 신석기시대라 해도 5500년 전 이쪽저쪽밖에 안 됩니다.”

저자는 “전체 신석기시대 6000년 가운데서 초·중기 4000년은 어름하게 지우고, 후기 2000년 남짓한 시절이 신석기시대 6000년 전체를 대표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교과서 지은이의 무지 탓이 아니라 어떤 비틀림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비틀림에는 쓸데없는 민족주의가 작용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세계사는 신석기시대가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농경과 목축으로 식량을 생산하는 경제활동으로 생활양식에 일대 전기가 마련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신석기 혁명은 중동과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시작하여 세계 각 지역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사정이 “우리도 세계 흐름에 처질 수 없다”는 민족주의를 자극해서 실사구시의 역사의식을 흐리게 했다는 짐작이 그저 짐작일 뿐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최근 습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오늘 신문에 보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창녕 우포늪을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는 국감행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국감 ‘행사’라고 굳이 표현하는 것은 이 자리가 국정감사보다는 ‘람사르 총회’의 성공을 기원하는 성격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김형오 국회의장도 “이번 국감을 통해 람사르 총회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우포늪 자연생태계를 보전해야 한다는 국민적 관심을 이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창녕 우포늪 인근 유어면 등 일대는 늘 물에 잠기는 습지대였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 때 낙동강 변을 따라 높은 제방을 쌓아 습지대를 농경지로 만드는 대역사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 일대는 지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포늪의 크기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창녕군은 국감에서 둑을 막아 논을 만든 지역을 다시 습지로 조성하는 ‘천변 저류지 조성’ 사업에 대해 설명하며 국회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실로 격세지감입니다. 

                
                       10월 15일 오전 창녕 우포늪을 방문한 김형오 국회의장, 이윤성 국회부의장, 추미애 환경노동
                       위원회 위원장 등 국회의원들이 대대 제방 위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과 설명=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제가 우포늪을 처음 알게 된 것은 92~3년 무렵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창녕 사람이 아니라면 우포늪을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창녕 사람들도 우포늪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이 이 무렵부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창녕 사람들에게도 우포늪이란 존재는 92년 이전에는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에겐 ‘우포늪’이 아니라 대대로 ‘소벌’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처음 우포늪을 접하게 된 것은 아마 지역 환경운동단체를 통해서였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소벌’이 아니라 ‘우포늪’이란 이름으로 만났습니다. 그러면 왜 환경운동단체들은 소벌이란 원래의 이름을 지우고 우포늪이란 이름을 쓴 것일까요?

저자는 이 책에서 “환경만 보일 뿐 똑같이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 아래 숨통이 끊어져가는 우리 토종말”을 보지 못하는 환경단체들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습지의 중요성을 알리고 오늘날의 우포늪을 만들어온 대단한 공적이 있는 것과 더불어 과오 또한 만만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2002년 낙동강 언저리 한 횟집에서 문인들이 모여 오간 얘기를 소개하며 다시 한 번 뼈저린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글쎄, 옛날부터 '소벌'이라 하기는 했지. 그렇지만 소벌이라 하면 왠지 투박하고 천하게 들리잖아.”

이렇게 말한 이는 다름 아닌 저자와 고향이 같은 창녕 출신 문인이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결국은 치명상이 되고야 말겠지만, 머리를 쪼개어 두뇌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나 조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무런 살의도 품지 않고, 느끼지 않고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고 합니다.

“소벌을 삼켜버린 우포는 좀처럼 소벌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 인지도를 바탕으로 스스로 세력화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우포가 이제 이름 가치를 인정해 자기네 상표로 끌어다 쓰는 일이 흔해졌다고 말합니다. 사실은 있지도 않았던 우포라는 말이 이제는 농협의 이름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창녕 대합농협과 성산농협을 통합해서 이름을 아예 ‘우포농협’이라 지은 것입니다.

<습지와 인간>은 경남 일대의 내륙습지와 연안습지, 산지습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주남저수지를 인공저수지로 잘못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인공습지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습지와 인간이 만들어온 역사와 문화를 차분한 어조로 풀어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람사르 협약’에 대해서도 다루며 마지막으로 ‘얘깃거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습지’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친절하고 수려한 문체가 읽는 이를 편안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저는 처음 몇 장을 읽어본 순간부터 가슴을 타고 흘러오는 감동에 흠뻑 빠졌습니다. 유흥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래 최고의 걸작이 될 것이라는 직감을 했습니다. 아니 친절하고 부드러운 문체로 보자면 그 보다 훨씬 나은 작품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직 책을 읽은 감동이 식기 전에 독후감도 아니고 소개서도 아닌 소감을 이리도 바쁘게 적어 올리는 것입니다.

경상남도가 제작한 람사르 총회 포스터


곧 람사르 총회가 경남에서 열립니다. 저는 람사를 총회를 개최하는 경남을 보면서 이율배반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경남은 한 편에선 람사르 총회를 맞아 습지 보전을 외치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선 연안습지를 메우는 매립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포늪을 선전하면서 우포늪을 타고 흘러가는 낙동강을 파헤쳐 대운하를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경상남도와 도지사를 보노라면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따로 없습니다. 어떻게 한 입으로 서로 다른 얘기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떳떳하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원래 정치를 하려면 심장과 얼굴을 철제로 만들어야 한다더니 그 말이 진실인가 봅니다. 그래서 습지와 인간을 다룬 이 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이 책을 “아내이면서 둘도 없는 동지(同志) 이애민에게 바칩니다.”라고 썼습니다. 그의 아내는 1년 반 전에 쓰러져 전신이 마비된 채로 지금껏 투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엄마 역할까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문사 기자라는 직업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그런 와중에 낸 책이라 이 책이 더 없이 갸륵하고 소중합니다.

그는 또 책머리에서 “이애민이 제 곁에 있지 않았다면 이 책 또한 생겨나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모든 공을 자기 아내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그이의 친절하고 아름다운 ‘문체’ 만큼이나 역시 친절하고 아름다운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의 아내가 빨리 건강한 모습으로 그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2008. 10. 16. 파비  

ps; 책 값은 15,000원이지만,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구매하면 10% 할인이 됩니다. 

     저자의 블로그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http://2kim.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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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달려 있습니다. 거기를 누르셔서 구입하시면 하루만에 배달이 됩니다. 물론 서점에 가셔서 사실 수도 있지만,  인터
     이 보다 편리하고 저자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