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에 해당되는 글 35건

  1. 2016.12.23 그들만의 다른 선택이 생각나는 회폐한 밤 by 파비 정부권
  2. 2016.04.26 별난사람 별난인생, 진짜 별난 것은? by 파비 정부권 (2)
  3. 2016.01.11 조선의 여왕 혜주, 내부자에게 망하다 by 파비 정부권
  4. 2015.11.25 그들이 역사교과서를 지배하고자 하는 이유 by 파비 정부권
  5. 2015.06.03 풍운아, 기인, 또는 건달 채현국 by 파비 정부권 (3)
  6. 2014.06.17 마크 트웨인과 생텍쥐페리의 위로 by 파비 정부권
  7. 2014.04.09 상남동사람들을 정글만리에 견주어 주셨어요 by 파비 정부권
  8. 2014.02.03 여영국, 하늘에서 온 편지(상남동사람들) by 파비 정부권
  9. 2014.02.03 하늘에서 온 아들의 편지(상남동사람들) by 파비 정부권
  10. 2014.01.29 어느 버스운전사의 자영업 퇴출기 by 파비 정부권
  11. 2012.06.21 맹자, 부인을 쫓아내고 성인이 되다 by 파비 정부권 (5)
  12. 2012.06.21 초패왕의 자살 by 파비 정부권 (1)
  13. 2012.06.21 고전을 보지 않고 내일을 말하지 말라 by 파비 정부권 (3)
  14. 2012.06.21 권력자들이 책을 불태우려는 이유, 나비효과 by 파비 정부권 (3)
  15. 2012.06.21 중년의 유시민이 쓴 풋내기 유시민의 독서 by 파비 정부권 (8)
  16. 2012.06.21 청바지, 노동자의 작업복에서 권력이 되기까지 by 파비 정부권 (6)
  17. 2012.01.27 시내버스로 가는 여행, 볼 수 없던 것이 보인다 by 파비 정부권 (8)
  18. 2010.11.04 인터넷서평꾼 로쟈에게 책은 단두대의 칼날 by 파비 정부권 (7)
  19. 2010.08.02 학교가 세상을 바꿀까, 세상이 학교를 바꿀까? by 파비 정부권
  20. 2009.11.10 불경기와 함께 돌아온 도시락의 추억 by 파비 정부권 (7)
  21. 2009.10.19 환상소설가들이 만드는 세계의 첫경험 by 파비 정부권 (11)
  22. 2009.08.29 법조계의 이단아, 법조패밀리의 실체를 까발리다 by 파비 정부권 (2)
  23. 2009.08.22 역설의 퍼즐,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by 파비 정부권 (5)
  24. 2009.08.21 김대중 서거일에 만난 노무현의 마지막 인터뷰 by 파비 정부권 (20)
  25. 2009.08.10 80년광주로 돌아간 이시대에 "거꾸로 희망이다?" by 파비 정부권 (3)
  26. 2009.08.07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by 파비 정부권 (3)
  27. 2009.07.06 MB정권을 현장체험교재로 보는 6월항쟁, <100℃> by 파비 정부권 (9)
  28. 2009.06.15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만 많을까? by 파비 정부권 (2)
  29. 2009.06.01 살벌한 세상에 읽는 ‘고민하는 힘’ by 파비 정부권
  30. 2009.05.22 신영철사태로 다시보는 사법비리 by 파비 정부권 (1)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시절이다.

 

엄혹한 시절, 두 부류의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고난을 감내하며 조국의 독립에 헌신하는 선택이었다. 그 길은 고달프고 험난했을 것이다. 목숨마저도 내놓아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어떤 이들은 가시밭길 그 길을 선택했다.

 

또 하나의 선택은 달콤하고 배부르고 하루하루가 기쁨으로 가득한 현세적 선택이었다. 그 길은 안락하고 평온했으며 자식들에게 편안한 삶의 기반을 물려줄 수 있었다. 비록 양심을 버렸다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어떤 이들은 기어코 붉은 주단이 깔린 배신의 길 그 길을 선택했다.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을 읽으며 들었던 감정은 가시밭길을 선택한 지사들에 대한 경외, 사랑 이런 감정보다는 배신의 길을 선택한 어떤 이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었다. 원래 감정이란 것이 긍정보다는 부정에 더 빨리 더 깊이 반응하는 것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되 아무튼 그랬다.



최근 다시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이 생각나는 것은 이른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인해 시작된 청문회 때문이다. 청문회장에 불려나와 답변이라는 것을 하는 자들의 꼬락서니를 보고 있노라면 울화통이 터져 금세 허파라도 뒤집어질 듯해도 어쨌든 그런 자들을 보며 이른바 <그들의 다른 선택>이란 것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얼마 전 시위 중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은 채 서울대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고 적은 의사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다. 대부분의 의사들도 그의 병사 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에 당당했다.

 

우병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순실을 몰랐을 리 없으며 만약 몰랐다면 무능해도 이만저만 무능한 민정수석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심문했으며 그를 기화로 승승장구했던 검사 출신치고는 너무 형편무인지경이다.

 

그의 선택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늦은 밤 청문회를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거칠고 고달픈 양심의 길과 붉은 주단이 깔린 배신의 길 중에. 승승장구했던 검사 출신의 법조인, 국정원과 검찰, 경찰 등 대한민국 권력기관을 관장하는 민정수석으로서 그가 선택한 길은 무엇이었을까?

 

그리 깊이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결론은 버킹검이라고 했다. 뭐니 뭐니 해도 모든 것은 머니로 통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것처럼 모든 배신의 길은 머니로 통하게 돼있다.

 

그 외 오늘 나온 청문회에 나온 간호사 조여옥 대위 같은 사람은 논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다. 함께 동행한 감시원인지 간호사 동료인지 이슬비 대위인가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군인이며 로봇일 뿐이다. 국방부의 지시를 받아 사전에 답변 원고를 달달 외워 말하는 폼이 참 안쓰웠다. 그렇다고 불쌍해보이지는 않았다. 가증스러웠다.   


아무튼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밤이었다.

 

정신이 회폐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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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사람 별난인생>에서 제일 내 눈길을 끈 사람은 방배추였다. 이름도 별났지만 그의 이력은 실로 별난 것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건달이었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 듣기로 여느 깡패처럼 패를 지어 몰려다는 그런 건달이 아니라 시라소니처럼 홀로 움직이는 싸움꾼이었다.

 

하지만 전설의 주먹이라든가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이라든가 조선 3대구라따위의 다소 선정적인 닉네임에 끌린 것은 아니었다. 내 관심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그는 한때 백만 평이 넘는 부지에 <노느메기밭>이라는 농장을 짓고 함께 일하고 똑같이 나눠 갖는 공동체를 운영했다는 것이다.

 

공동생산 공동분배. 노느메기밭에서는 아무리 일을 잘하는 사람도, 아무리 일을 많이 하는 사람도 남보다 더 많이 가져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일을 못하는 사람도,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한 사람도 남보다 더 적게 가져가지 않았다. 누구든 공평하게 똑같이 분배받았다는 것이다.

 

오호라, 1970년대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일까? 박정희 정권은 두말할 필요 없이 네놈이 빨갱이 아니면 이럴 수 없다면서 그를 잡아다 고문하고 6개월간 징역을 살렸다. 그때의 고문 후유증으로 그는 40대부터 지금까지 이가 하나도 없이 모두 의치에 의존해 살고 있다.

 

그는 진짜 빨갱이였을까?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보면 결코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자본론>을 읽어봤다고 했지만 마르크스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는 마르크스가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 노동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천재였지만 커다란 약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는 푸리에와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메시지가 없는 사람이다. 사실 내 삶 자체가 그러하기도 하고 거창한 철학 따위를 앞세우려는 마음도 전혀 없다. 하지만 숱한 고비와 기회가 다가올 때마다 맨몸 하나를 내던져 새로운 세상을 뜨겁게 만났고 부딪혔다는 점 하나만큼은 자부한다. 나를 건달, 주먹, 깡패, 협객 뭐라고 해도 상관없지만 그냥 뜨거운 내 인생을 찾아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사람으로만 받아줬으면 좋겠다.”

 

방배추 선생(본명 방동규)


방배추라는 사람이 사회주의자여도 상관없고 아나키스트여도 상관없다. 물론 그의 말처럼 아무 철학도 없고 메시지도 없는 그저 깡패거나 협객이어도 상관없다. 다만 그가 1970년대에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공동체를 건설하고 운영할 생각을 했으며 실제로 실행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중요하다.

 

그는 선각자였던 것이다. “최근 정부의 이른바 성과급 중심 임금제 개편이나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 마련 등 정책 어떻게 보느냐?”는 저자(김주완 기자, 경남도민일보 이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만 보아도 80을 훌쩍 넘은 나이의 그가 얼마나 선진적인 사상을 몸과 마음에 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일을 많이 하고 잘난 사람은 돈 많이 주고, 못하는 사람은 적게 주고, 아주 못하는 사람은 퇴출시킨다? 이건 노예의 노동력을 착취할 때 사용했던 방법이에요. 노예끼리 서로 잡아먹고 자기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고, 그건 백 년 전에, 2차대전 전에 했던 경제이론이야.”

 

아무리 평등사상을 신조로 삼는 진보인사라도 이런 주장을 이토록 손쉽게 할 수 있을까? 일을 잘 못하는 사람도 일을 잘하고 많이 하는 사람과 똑같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당하게 그렇소!” 하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방배추는 정말 별난 사람이다.

 

<별난사람 별난인생>에는 방배추 외에도 6명의 별난 사람 이야기가 더 실려 있다. 채현국 선생은 너무도 유명한 별난 인생이라 따로 설명이 필요 없겠다. 장향숙 할머니는 참 아름다운 분이었다. 양윤모, 김장하 같은 분은 별난 인생이라기보다는 의인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노동운동가 김진숙의 삶에 대해선 따로 이야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 나는 이분에 대해서만큼은 별난 인생이라 부르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그의 인생은 뜨겁고 진지하며 정의로운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산업화시대의 사랑과 아픔 그리고 미래가 그를 통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별난 공무원 임종만과 별난 농부 김순재는 특별히 내가 아는 분들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만큼 이분들에 대해서도 따로 할 이야기가 많다. 아마도 임종만은 자신의 임명권자인 시장이 근무하는 시청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하는 인물이니 별종이라고 해도 별로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김순재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 후에는 농촌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살다가 농협조합장까지 오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인생도 들여다보면 만만찮다. 그의 행보뿐 아니라 성격이나 행동도 알고 보면 아주 별나다.


하지만 누구보다 별난 사람은 이 책을 쓴 김주완 기자가 아닌가 한다. 그의 기자 이력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별난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다른 기자들이 안 하는 일을 주로 한다. 그러다 가끔 욕 아닌 욕을 듣기도 하지만 그의 개척정신, 실험정신은 실로 대단하다. 


김주완 기자는 나쁜 사람, 남들이 다루길 꺼리는 비극적 사건을 주로 쫓아다녔는데, 이승만 정권 하의 민간인학살이 대표적이다. 그는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에 일등공신이다. 그의 휘하에(이런 표현을 써서 미안하지만 이 표현이 좀 멋진 거 같아서, 임기자님 죄송^^) 임종금이란 기자는 그의 영향을 받아서 아예 <악인열전>이라는 별난 제목의 책을 불과 얼마 전 출간했다. 


 별난 기자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


아무튼 <별난사람 별난인생> 재미있게 읽었다. 감동도 받았다. 이런 별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빛나고 아름답게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이런 별난 책을 꼭두새벽에 일어나 열심히 쉬지 않고 재미있다고 읽은 나도 참 별난 사람이다.

 

그러나 진짜 별난 것은 이 세상이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이 차별의 세상이야말로 가장 별난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별난 제위들에게 권한다. <별난사람 별난인생>을 읽고 별나지 않은 미래에 동참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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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책이다. ‘실록에서 지워진 조선의 여왕이라고? 조선에 여왕이 있었던가?


<혜주>라는 제목만 보아서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도 없고 또 저자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잘 나가는 공지영이나 전경린, 최근 표절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신경숙 같은 유명 작가가 아닌 바에야 누가 이런 밋밋한 제목의 책에 손을 내밀까. 그런데 부제가 당돌하다.


실록에서 지워진 조선의 여왕



소설은 의외로 속도감이 있었다. 글은 간결하여 짧은 단문들로 채워졌고 거의 은유가 없이 직설적이었다. 깊이 생각하거나 고민할 겨를 없이 책장은 술술 넘어갔다. 시종 연속되는 사건들이 흥분과 긴장을 고조시켰다. 게다가 적절하게 뿌려놓은 성애 장면에 신경이 곤두선다. 어쩌면 그것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핵심 주제였다


혜주는 주인공 혜명공주가 왕이 된 후에 불리는 이름이다. 작명에서부터 풍기는 뉘앙스가 심오하다. 사실 <혜주>라는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번쩍 누군가를 떠올렸으며 호기심이 극도에 다다랐다. 혜주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복잡한 성관계로 얽혀있는데 작명처럼 이러한 설정도 독특하기 이를 데 없다. 게다가 혜주가 어릴 적부터 보모상궁에게 방중술을 배웠다는 대목에선 아연해진다. 그리고 민 상궁이 다시 그 예의 방중술을 무극스님에게 전수하고 혜주의 정인으로 삼게 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르지 않고 누가 배기랴.


더욱 놀라운 것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지만 무극만은 민 상궁이 혜주의 생모인 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모녀관계의 두 여자를 품으면서 무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단순한 애욕의 포로였을까? 무극은 어떨지 몰라도 혜주는 애욕의 포로였다. 어린 그녀가 어떻게 그토록 빨리 성에 눈을 뜨고 집착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이 책에서 별다른 설명은 없다. 다만 혜주의 생부와 생모의 전력으로부터 그것이 유전 문제가 아닐까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 초반부의 혜명공주에게 연민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달째 폭우가 쏟아져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 상황에서 숨겨둔 정인과의 정사가 그리워 궁궐을 빠져나가 며칠씩 나타나지 않는 여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혜주가 열락에 몸을 맡기고 있는 사이 한강이 범람하여 두물섬의 마을 한 개가 수몰되고 주민 백여 명이 몰살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급한 보고도 정념에 사로잡힌 혜주를 빼내올 수는 없었다. 닷새의 휴가를 모두 채우고 돌아온 여왕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이렇게 말한다.


청년들은 헤엄쳐 나왔다는데 다른 사람들은 뭐했나요? 물가에 사는 사람들이 헤엄도 하나 못 치나요?”


, 이쯤 되면 천하에 우둔한 사람이라도 상상력은 한군데로 모아진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두물섬 참사가 잊혀갈 즈음 이번엔 역병이 돌아 수많은 백성이 죽어나간다. 시체가 쌓여 썩는 냄새가 진동하지만 조정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니 하는 일이 없다고 하는 게 제대로 된 표현일 것이다. 결국 반정이 일어나고 혜주는 폐주가 되어 쫓겨날 운명에 처한다. 때는 혜명공주가 왕좌에 오른 지 4년째 되던 해. 이 또한 의미심장한 메타포다.


간결하고 직설적인 문체의 소설은 전반적으로 투박했다. 명쾌한 설명이 없는 설정들에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한다. 갑작스런 사건 전개에 당혹스럽기도 하다. 때로는 어이없는 대사들에 실소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왕비가 회운사에서 시중을 드는 무극스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우리 공주와 짝을 맺어주면 참 좋겠구나라고 생각하는 대목은 실로 난센스 아닐지. 어려서 고아가 된 무극은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천출인 것이다. 체적인 구성과 문장도 매끄럽지 못하다. 너무 촌스럽다거나 속물적인 표현들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겠다.


그러나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혜주>는 힘이 있었다. 박진감이 넘쳤다. 재미있고 다음 장면의 기대로 책장 넘기기를 멈출 수 없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아무리 지고한 사상이 담긴 글이라도 재미가 없어 읽히지 않으면 그뿐이다


<혜주>에는 시대를 엿보게 하는 무수한 장치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다름 아닌 노천이란 책사였다. 그는 이른바 3인방의 한사람으로 여왕의 심복이다. 하지만 그 정체는 의혹투성이다. 두물섬 참사에 대한 대책을 묻는 혜주에게 그는 이렇게 간한다.


“(괘념치 마시옵소서.) 백성들은 마구간 누렁소나 뒷간 똥돼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들은 나면 죽고 죽으면 또 태어나는 법이옵니다. 부디 성심을 굳건하게 보지(保持)하시옵소서.”


그랬던 노천은 혜주가 폐주가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삿갓을 쓰고 대중들 속에 숨어 이렇게 중얼거렸다.


폐주의 패망은 그의 운명이요, 그를 망하게 한 것은 내 소임인 것을…….”


그는 내부자였던 것일까? 노천은 본디 술객으로 앞날을 내다보는 신통력이 있었다. 그런 자를 내부자로 배치했다는 것은 이 소설의 작자 또한 신통력이 있다는 뜻이렸다. 소설 <혜주>는 영화 <내부자>가 개봉되는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출판되었으니 영화의 감독과 교감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실로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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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진리경찰이란 필명을 쓰는 온라인 활동가가 있었다. 그가 요즘도 활동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명박 정권 초기 촛불정국을 전후하여 맹활약(!)한 그는 지독스럽게 빨갱이를 혐오했다. 아니 혐오하고자 하는 모든 대상을 빨갱이로 몰았다.

 

그는 가끔 시인 흉내도 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을 다른 이의 블로그에 댓글로 남기기도 했다.

 

장하다 대한민국 전투경찰

그대는 우리의 전사우리의 자랑

대한민국 전투경찰

그대는 우리의 폭동진압 공격특별대원

(중략)

수백 개의 돌과 쇠파이프와 화염병과

머릿속이 새빨간 벌레 같은 폭도들로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북괴의 흉악한 공작을

그대 몸뚱이로 내리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면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하략)


이미 오래전에 증발해버려 어느 누구의 기억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을 필명이 왜 무단히 생각났을까? 그것은 아마도 <1984>에 등장하는 사상경찰과 너무도 흡사한 이름 때문이었으리라. 물론 진리경찰이 곧 사상경찰을 흉내 낸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나의 상상력일 뿐이다. 어쩌면 진리경찰은 <1984>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진리경찰은 <1984>를 읽었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다른 명저 <동물농장>도 함께. 죽을 때까지 철저한 사회주의자로서 이상을 꿈꾸었던 오웰의 이력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의 저작을 반공주의 교과서로 활용했던 점을 생각한다면, 진리경찰은 다분히 이념적 의지가 함축된 작명이었을 것이란 짐작도 가능하다.


젊은 작가 오웰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스페인내전에 참전했다. 영국독립노동당과 스페인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의 연합 민병부대에 배속된 그는 이곳에서 적과 싸우기에 앞서 같은 편인 스페인공산당의 탄압으로 동지들이 학살되는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이른바 친 소련파 스페인공산당의 헤게모니 투쟁이다.


긴박한 상황, 자신도 체포되면 총살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오웰은 아내이자 동지 아일린과 함께 가까스로 탈출해 영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즉각 <카탈로니아 찬가> 저술에 돌입한다. 엄청난 충격에 분노의 화신처럼 그의 펜은 맹렬하게 전체주의를 향해 포탄 세례를 퍼붓는다. 스탈린주의로 변질된 공산주의는 그에게 전체주의였다. 사회주의 이상사회를 위해 공산주의는 1차적으로 척결되어야 할 악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카탈로니아 찬가>에 이어 <동물농장><1984>가 탄생한다. 오웰이 스페인내전에 참전하여 스탈린주의자들의 참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세 권의 의미 있는 저술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아이러니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실제 현장을 기록한 르포임에도 80여 년의 시공을 넘는 데는 한계를 보여준다. 아무래도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당시와는 너무나 달라진 오늘날의 눈으로 그 시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에 반해 <동물농장><1984>는 다르다. 때로는 사실을 다룬 기록보다 허구를 그린 소설이 훨씬 진실을 잘 전달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두 편의 책은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1984>는 조지 오웰이 마치 예언자의 눈으로 과거의 시점에서 오늘을 보며 글을 썼던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1984>는 마치 예언서와 같다. 1940년대에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냈을까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증오심을 주입하고 세뇌하는 얇은 금속판 통제 장치 텔레스크린은 하루 종일 쉼 없이 떠들어대는 종편방송들과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연상시킨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들을 째려보며 증오를 촉구한다. 잘 차려입은 붉은 얼굴들이 오리처럼 경쟁하듯 꽥꽥거리는 화면을 보고 있자면 어느새 함께 꽥꽥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현대의 텔레스크린 앞에서 증오와 적의로 뭉쳐진 진리경찰들은 그렇게 해서 또 생산되고 단련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1984>에서 우리가 전율하는 것은 바로 다음 말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 말을 다시 쓰면 이렇게 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도 지배하기 위해 과거부터 지배하고자 한다.”

 

섬뜩하지만 이보다 진실을 담은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1940년대의 런던에서 2015년 서울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지 않은가. 박근혜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괜한 것이 아니다. 빅 브라더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과거를 자기 편의대로 고치고 싶은 것이다. 현재처럼 미래도 지배하기 위해…….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기록국에서 했던 일은 과거 발행된 신문기사를 고치는 일이었다. 기록국의 다른 동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채 홀로 빅 브라더의 명령에 따라 이미 발행된 신문을 끄집어내 오늘 일어난 결과에 적합하게 새로 써서 다시 편철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매일매일 새롭게 고쳐 써서 편철되는 역사는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영혼이 없는 활자들일 뿐이다. 2015년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 집필진들도 바로 그런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윈스턴들처럼 그들은 은밀한 곳에 숨어 서로의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채 과거의 역사를 끄집어내 지울 것은 지우고 새로운 활자들로 채울 것은 채울 것이다.


맑지만 쌀쌀한 4월 어느 날 13시 괘종시계가 울리는 것으로 시작한 <1984>는 비극적 엔딩으로 결말짓는다. 서양에서 13은 불길함을 나타내는 숫자다. 우리의 미래는 어떨 것인가. 어제, 대통령은 자기를 비판하는 국민들을 향해 “IS 테러범 같다며 강한 적의를 드러냈다. 텔레스크린이 ‘2분 증오’로 골드스타인을 단죄하듯, 방송들은 연일 시위대에게 증오와 적개심을 퍼부을 것이다.

 

1984년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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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이었다. 사실 나는 이 책 <풍운아 채현국>을 읽어보기 전에 그를 먼저 만났다. 창원대학교 강당에서 열렸던 이 책 출판기념회에서였다. 엄밀히 말하면 출판기념회가 아니고 북 콘서트라고 해야겠다.

 

다시 사실을 말하면, 나는 북 콘서트의 개념을 잘 모른다. 아마 대충 내가 아는 개념대로라면 북 콘서트란, 책을 통해 사람들이 모여 즐기고 소통하는 것이다. 하나의 문화행사다.

 

이날의 북 콘서트는 책을 팔기 위한 목적보다는 채현국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무엇을 했는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런 것들을 나누는 그런 소통의 자리였다고나 할까.

 

하여튼 내가 그때 처음 본 채현국이란 노인은 기인이었다. 그는 거침이 없는 사람이었다. 욕도 예사롭게 해댔다. 그래서 그의 이력을 잘 모르고 그의 대화를 듣게 된다면, 뭐 이런 노인네가 다 있지? 하며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른다.


그의 입에서 마구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 같은 욕설을 듣노라면 그가 과거에 건달이었던지 아니면 최소한 무식한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여길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기 스스로 건달이라고 했다. 또 그 이후에 읽어본 이 책에 따르면, 그의 친구들은 그를 일러 만약 이 친구가 돈이 없었다면 천상병처럼 되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천상병 시인의 기인 행적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던 터이지만, 그러고 보니 채현국 노인의 외모가 천상병 시인을 닮은 듯도 싶다. 각설하고.


 

그는 기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유심히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첫 대목부터 나는 아, 하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그는 기인이 맞다. 그는, 과거 그 시절에 이른바 서울대 중의 서울대라 불리던 서울문리대 출신이었다. (나는 그의 외모나 말투만 보고 진짜 그가 무학자에다 건달 출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토록 무식하게, 쓰레기 같은 욕설이 뒤섞여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말들의 행렬 속에 놀랍도록 고매한 지식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건달 입에서 버나드 쇼가 나오고 니체가 나온다면 사실 평범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건달이었지만, 대단한 학식을 겸비한 건달이었다.

 

, 그럼 지금부터 책 이야기를 하자. 어차피 이 글은 이 책을 읽고 난 독후감이다. 그런데 책 이야기는 안 하고 서두에 노인 채현국 혹은 건달 채현국에 대한 이야기만 해댔으니. 책을 쓴 김주완 기자가 섭섭하다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면 그리 섭섭할 일도 아니다. 채현국을 이야기하는 것이 곧 이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까. <풍운아 채현국>은 김주완 기자가 채현국 노인을 만나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그러므로 그저 채현국의 어록이라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사진.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김주완은 친절하게도 책의 첫머리에 채현국을 모르는 대다수의 독자를 위해 그의 이력을 간단하게 알려준다. 방법은 기록을 찾아 소개하는 것이다. 과거에 그를 아는 사람들이 남겼던 기록을 꼼꼼하게 더듬는 작업은 그 특유의 성실함이다.

 

그는 가끔 술자리에서, 대충 기억나는 대로 쓰자면 이런 말을 했다. “취재하러 왔다는 놈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온다면 그게 말이 되겠느냐. 그래서 나는 누구를 취재하러 가기 전에 먼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사부터 한다. 그게 사람에 대한 예의다.”

 

그가 소개한 채현국은 이런 사람이었다.

 

채현국 형은 가두의 철학자라고 내가 부르는데 당대의 기인이라 할 것이다. 옷도 막 입고 말도 막 하고 술도 막 마시고…… 집안에 돈이 있어서 그렇지 없었으면 천상병 시인과 비슷해졌을 것이다.” (남재희, 언론인, 전 노동부장관)

 

그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고 헤어질 때 차비를 쥐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셋방살이를 하는 친구들에게는 조그마한 집을 한 채씩 사주는 파격의 인간이다. (임재경, 언론인)

 

채현국은, 그 당시 표면에는 일절 나서지 않으면서 군사정권의 지명수배를 받거나 도망치 다니는 사람들을 그 탄광에 받아서 그들에게 호신처를 제공하고, 또 음으로 양으로 반독재 노선을 추구하는 지식인들과 학생들 그리고 문인들을 경제적으로 도와준 훌륭한 분이오.” (리영희, 전 언론인)

 

존경하는 리영희 선생까지 나서서 훌륭한 분이라고 치켜세웠으니. , 이쯤되면 더 소개할 필요가 없겠다. 이외에 인정의 사나이, 활빈당주 등 그를 따라 다니는 수식어들은 실로 넘치고도 남았다. 무엇보다 스스로 건달을 자처하는 그는 기인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의 부친 역시 기인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채기엽. 젊어서 물산장려운동에도 투신했으며, 나중에 임시정부에 합류하고자 상해로 건너가서는 사업에 투신해 큰돈을 벌게 된다. 해방 후 귀국한 이후에도 사업수완을 발휘 재벌급의 기업을 일구게 된다.

 

그의 부친 역시 기인이었다는 것은, 독립운동에 투신하겠다는 일념으로 가족까지 팽개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이나, 대륙에서 트럭을 몰고 사지를 오가며 무역을 해 큰돈을 벌었다는 것이 아니다. 부친도 채현국과 마찬가지로 돈이 생기면 여기저기 나누어주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상해에서 이분에게 은혜를 입은 한국인은 아마 백 수십 인이 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그들이 아직 당시의 은혜를 갚는 것 같지 않다. 뿐만 아니라 계속 누를 끼치고 있기까지 하다. ‘은혜가 다 뭐냐. 다들 건강하게 일 잘하고 있으면 그로써 만족하다고 말씀하시지만 부끄럽기 한이 없다. 희귀한 인물임을 특기해두고 싶다.” (이병주, 소설가)

 

, 이쯤 되면 책 얘기도 더 할 필요가 없겠다. 직접 읽어보시라. 그의 어록을. 그럼에도 하나 특이사항을 소개한다면 대학 시절 그가 탤런트 이순재와 연극반에서 함께 했었다는 사실이다. 책 속에 나오는 그의 말이다.

 

한번 전화를 했는데, ‘이름 들어봐야 잘 모를 끼다. 나 채현국이다했더니 왜 몰라?’ 하대. 그래서 이 자식, 알면서 전화도 한번 안 했냐고 하니 지금도 욕하는데. 뭐 욕먹으려고 전화 하냐?’ 하더군. 2년 선배에요.”

 

그러고 보니 이순재가 서울대 철학과 출신이었다. 나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늙어서 케이블방송에서 상조회 광고나 하는 그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내 사정이고. 아무튼 채현국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 이름들만 해도 쟁쟁하다. 책을 통해 직접 만나보시기를 바란다.

 

채현국 선생은 이미 유명인사가 됐다. 그의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모니터가 그의 사진들로 꽉 찬다.


, 특이사항이 하나 더 있다. 채현국 부자가 현 경남대학교를 당시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이던 박종규가 인수(강탈?)하기 전 소유주였다는 사실. 우리 지역 일이니 관심이 아니 갈 수가 없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비사다. 어쨌든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입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많은 사실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그의 입을 통해 세상을 발가벗겨보는 재미도 느끼게 될 것이다. 채현국은 실로 기인이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세상에 정답은 없다. 무수한 해답만 있을 뿐!” “재산은 세상 것이다!”와 같은 그의 어록이 아니라도 그는 삶 자체가 기인이다. 그러나 이 책 <풍운아 채현국>을 읽고난 이제 그를 이렇게 불러야겠다.

 

채현국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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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람선은 항상 가정과 같은 분위기를 유지함으로써 여행객이 병에 걸릴 경우 주위의 친절한 벗들로부터 가능한 모든 치료와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마크 트웨인 여행기>에 나오는 여행 프로그램의 한 구절입니다. 이 여행 프로그램은 186721일 브룩클린에서 발행된 것으로 실제입니다. 200자 원고지로 대략 2~30매에 달하는 장문의 여행 프로그램인데 일종의 판촉홍보물인 셈입니다. 그 시절에 이런 상세하고 자상한 광고문이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비유하자면 요즘 TV홈쇼핑에서 쇼호스트들이 보여주는 그것과 유사하다 할 것인데 어쩌면 그보다 더 섬세한 리얼함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가 주목한 것은 바로 위에 인용한 문장 중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유럽인들은 치유에 있어서 위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어린왕자>를 보십시오. <어린왕자>의 충실한 독자라면 아마도 생텍쥐페리가 쓴 서문을 기억할 것입니다.


레옹 베르트에게

 

 내가 이 책을 레옹 베르트라는 어른에게 바치게 된 것을 어린이 여러분은 용서해 주기 바랍니다나로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세 가지 있답니다먼저 이 어른은 세상에서 나와 제일 친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또 이 어른은 거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정도로 이해심이 많은데어른의 책들을 비롯하여 어린이를 위한 책들까지도 잘 이해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마지막으로이 어른은 지금 프랑스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살고 있어서 내가 그를 위로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유들로 부족하다면옛날 어린아이였을 때의 그분에게 이 책을 바치기로 하지요어른들도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아이였으니까요(그러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많지 않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헌사를 이렇게 고쳐 쓰려고 합니다.

 

어린아이였을 때의 레옹 베르트에게

 

 이 서문에서 제가 특별히 주목해서 보는 것도 바로 다름 아닌 위로입니다. 아마도 <어린왕자> 서문을 통해 보내온 위로는 레옹 베르트에게 그 어떤 선물보다 큰 기쁨을 주었을 것입니다. 독일에 점령된 나찌 치하의 프랑스에서도 그는 삶이 주는 환희에 감사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위로.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짤막한 이 단어에 인색하지 않나요?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치료와 더불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라 할 수 있습니다. 유럽인들은 그것을 알았기에 간단한 여행 프로그램에서조차 밝히고 있습니다. 이미 백오십여 년 전에 위로는 여행상품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의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우리가 오히려 위로에 인색하다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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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이 쓰신 책 <우상과 이성>에 나오는 한 편의 제목이 ‘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인데요, 이 글의 주인공 임수태 위원장께서 낮에 여영국 도의원 사무실을 들르셨다가 저와 식사를 함께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부권아, 니 <정글만리> 읽어봤나?”

“아니요. 아직 못 읽어 봤습니다.”


저는 혹시나 ‘이놈아, 아직도 그 책도 안 읽어봤단 말이가?’ 하고 핀잔을 하실 것 같아 조금 부끄러운 마음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너그가 쓴 <상남동사람들> 다 읽어봤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정글만리>와 흡사하게 닮아 있더노. 마치 꼭 <정글만리>를 먼저 보고 쓴 것처럼 그렇게 구성이나 형식, 내용이 비슷하더라. 정말 잘 썼더라. 내 보기에는 조정래가 쓴 책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아주 좋았다.”


조정래와 우리를 견주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나중에 대문호 되거든 술 사라”(이 말씀을 여기다 옮기려니 뒷목이 좀 근질거리기는 하네요. ㅎㅎ)는 말씀까지 곁들이셨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그렇게 칭찬을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아니다. 내가 빈말로 칭찬하고 그런 사람 아니다. 나는 늘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인 거 모르나. 진짜로 하는 말이다.”


아무튼 <정글만리>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임 위원장님께서는 “니가 따로 책을 살 필요는 없고 내 책 줄 테니 그거 읽어보면 될 거다” 하셨습니다. 참고로 <워킹푸어>도 임 위원장님께서 주신 책이었습니다. 아무튼 <정글만리>가 현재스코어 백만부 팔렸다는데 우리 책도 10만부는 팔려야 할 텐데. ㅠㅠ 좀 많이 팔아 주이소. ㅎㅎ


음~ 이거 광고성 글 맞습니다요. 그래서 아래에다 경남도민일보에 실었던 광고사진파일 붙임 합니당~  


ps; 페이스북에도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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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버스운전사의 자영업 퇴출기에 이어 역시 편집회의에서 삭제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합니다. 제5장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의 한 부분인데요. 자살한 편의점주가 하늘나라에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너무 뜬금 없다는 평가가 있어서 편집회에서 삭제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 도입부분을 함께 소개합니다. 역시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파비>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

  목차; 바닷가의 자살사건- 조선소, 그리고 가로등- 불안한 하루-불행의 전조-

           유혹- (하늘에서 온 편지)- 사건의 전말- 유배지의 밤


 바닷가의 자살사건

 

시내를 벗어난 자동차는 한참을 달리고 있었다시원하게 뻗은 산업도로 왼편 언덕 아래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바다는 푸른 사막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모든 빛을 집어삼킨 심연을 알 수 없는 막막함이 물과 뭍을 두 세계로 돌이킬 수 없이 갈라놓는 영원한 숙명적 장벽’ 건너 그곳에 있었다쪽빛 바다 위로 비스듬히 쏟아지는 햇빛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다그 너머로 저 멀리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위에 배 한척이 자그마한 점이 되어 떠있는 것이 보였다눈부신 태양 아래에서 영원히 잠든 것처럼 정지된 배는 무겁고 나른한 파도가 출렁이며 몸을 흔들어주지 않는다면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챌 수 없을 것만 같았다피에르 로티가 묘사한 것처럼 거대한 도살자 같은 바다는 붉은 노을에 젖은 잿빛 입김을 내쉬면서 가만히 누워 졸고’ 있었다실로 비할 데 없이 고요하고 온화한 평화가 한가롭게 노니는 심연 저 깊은 곳에서 낡고 오래된 성당 풍금처럼 은은하게 저음으로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멍하게 울리는 그 소리는 천상의 소리처럼 깊고 넓어서 자동차 엔진 소리조차 파묻혀 들리지 않았으며 꿈결처럼 모든 존재가 희미하게 증발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바다는 마법과도 같이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신비한 치유의 힘을 갖고 있었다바다는 지칠 줄 모르는 욕망으로 거대한 사랑의 축제를 벌이고 끊임없는 수태와 탄생의 신비를 자아내는 생명의 보고였다그리하여 모든 생명들은 최초에 바다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결국에는 모두 물속에 녹아들어 자신을 키워낸 원초적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었다거대한 바다는 온갖 것을 다 품고 있지만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으로 파도를 일으켜 웅장한 포효소리와 함께 바위에 부딪혔다하얀 포말이 연기처럼 흩어진다아물지 않은 상처투성이의 해변과 장중한 침묵으로 누워있는 해역을 바라보며 조유묵이 말했다.

아직 멀었나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

도로는 깨끗하게 잘 뚫려 있었다짜디 짠 소금기를 담은 해풍이 아스팔트 위를 달려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바람에 실려 온 소금기에는 묘한 여운이 스며있었다정신없이 달려온 일상을 벗어난 한적한 곳에서 겪게 될 상흔의 기억들이 거기에 알 듯 모를 듯 녹아있었다곧 이어 시가지의 육중한 건물들이 시야를 가리며 나타났다잠자듯 고요한 섬마을에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생겨난 도시였다자동차는 도시를 가로질러 달렸다잿빛도시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스쳐가는 자동차를 배웅하고 있었다백미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도시를 쳐다보며 조유묵은 생각했다.

도대체 편의점이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이 도시를 그냥 지나치다니그럼 여기 말고 이 섬에 다시 다른 도시가 또 있어 나타난다는 것인가?”

…………… 


(편의점주의 자살사건이 일어난 편의점은 한적한 바닷가에 있었습니다. 도입부와  이 글 사이에 편의점주의  어머니와 고인이 편의점을 열게 되기까지의 과정, 편의점 운영과 자살에 이르게 된 동기 등이 이어집니다.)





하늘에서 온 편지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저는 잘 있습니다여긴 너무나 평온하답니다어머니가 계신 그곳에서 이곳을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보일 테지만사실은 그렇지도 않아요실제로는 너무나 빨리 달리기 때문에 오히려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도 몰라요아니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이미 백년도 더 전에 미국의 어떤 유명한 과학자가 그걸 밝혔다지요아마도 이곳에서의 하루는 어머니가 계신 그곳의 시간으로 보자면 1년은 족히 되겠지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그곳에선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이곳에선 너무나 확연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그러나 어머니에게 그걸 직접 보여드릴 수 없다니 정말이지 한스럽습니다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위해 아직도 울고 계실 테지만저는 어머니가 더 걱정이에요.어머니이제 울지 마세요저는 너무나 편안하게 잘 있으니까요이곳은 특별한 슬픔도 없고 특별한 기쁨도 없는 곳이에요누구에게 상처 줄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없죠그래서 혹자에게 지루할는지는 몰라도 그러므로 너무나 평화로운 곳이에요그러나 제게 오직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뿐이랍니다.


옛날 토마스 모어란 사람이 유토피아란 책을 써서 이상향의 세계에 대해 말했었지요사전이 해석하는 대로 말하자면유토피아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으로공산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 및 교육과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가상의 이상국이에요토마스 모어란 분은 원래 독실한 가톨릭교회의 수호자로서 대법관이었는데 영국 왕이 이혼하고 새로 다른 여자와 재혼하는 것에 반대하여 끝까지 이를 승인하지 않다가 결국 목이 잘렸다고 하더군요.


당시는 가톨릭교회법이 그랬다고 합니다정당한 사유가 없는 이혼과 재혼은 금지되었던 거지요정말 고집이 센 분이었어요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단두대에 서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니 놀랍고도 존경할만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에 반해 헨리 왕은 그를 죽이고도 모자라 반역의 문에 한 달 동안이나 그의 목을 걸어 놓았었다니 정말 포악한 임금이었지요.


그러나 아무튼 그로 인해 우리는 토마스 모어란 분이 얼마나 신실한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어요그의 말이라면 온전하게 사실이라고 믿어도 좋을 만큼그러므로 제가 있는 이곳은 사실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가 아니라 어디에든 존재하는 곳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은 그의 의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제가 너무나 평온하고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은 충분히 믿으셔도 좋아요저는 너무나 잘 지내고 있어요어머니가 걱정이지요그래서 이렇게 어머니를 위해 편지를 쓰기로 한 것이랍니다그러나 사실 제가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가 얼마나 위안을 드릴 수 있을지 그건 장담할 수 없군요아무래도 저는 어머니와 달리 사는 세계가 달라서 오히려 어머니를 괴롭게 해드리지나 않을까 걱정이에요.


그러나 어머니저는 그곳에서 보았을 때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을 그대로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자 해요그것이 제가 이곳에서 얼마나 평안하게 잘 지내는지를 보여드리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우리가 처음에 편의점 사업을 하고자 마음먹고 가게를 구하러 다닐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지요어머니가 저에게 얘야너는 편의점이든 휴대폰 가게든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보았지 않니직접 그런 가게라도 한번 해보지 않으련?” 하고 말씀해주셨을 때 정말이지 하늘로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답니다


지나치게 비싼 임대료 때문에 잠시 실망하기도 했었지만 조선소가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아늑한 곳에 있는 아담한 가게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작업복을 입고 조선소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은 또 얼마나 늠름하게 보이던지…….

어머니와 제가 함께 만났던 본사직원도 그렇게 말했었지요.


여긴 정말 최상의 자립니다어떻게 이런 자리를 구하셨는지 정말 용하십니다선생님께서 안 하시겠다면 제가 하고 싶군요.”


어머니께서 평소에 그러셨지요사람이 망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다름 아닌 탐욕이라고요.


세상을 돌아보렴건실하게 제 분수에 맞게 살아간다면 큰일이 일어날 이유가 어디에 있겠니다들 지나친 욕심 때문에 집안도 망치고 몸도 망치는 거란다


늘 그렇게 말씀하셨었지요그런데 그날만큼은 우리도 탐욕의 노예가 되고 말았군요. “월수입 600만 원 보장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저도 그만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충고를 잊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자책하지 마세요그건 어머니 탓이 아니랍니다모든 것이 이 못난 아들 탓이지요제가 제대로 직장만 잘 구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어머니가 어떻게 그런 무모한 결정을 하셨겠습니까모든 것이 제 탓이에요.


그러니 어머니절대 슬퍼하지 마세요어머니는 오로지 크신 자식사랑을 가졌던 죄밖에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까요제가 잠시 부산에 일 보러 간 사이에 어머님이 제 대신 계약서에 서명하시고 모든 준비를 해놓으셨을 때저는 실로 어머님의 크신 은혜를 가슴 깊이 느꼈답니다.


이제 나도 어엿한 직장을 갖게 되었구나그것도 내가 주인인 직장이야열심히 일해서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하나뿐인 여동생 잘 보살피며 멋지게 살아볼 테야.”


그렇게 다짐하며 희망 가득한 미래의 설계도를 마음속에 그려보곤 했습니다그렇게 3개월 정도는 정말 행복했었지요어머니도 사랑하는 여동생 분이도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몇 개월이 제게는 정말 꿈결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딱 3개월뿐이었지요사실은 그 3개월도 불행의 전조를 보여준 것 말고는 그 어떤 밝은 전망도 우리에게 준 것이 없었지만아무래도 콩깍지가 씌었던 가봅니다사랑에 눈이 멀 듯이 우리는 탐욕에 눈이 멀었던 것일까요?


하지만 탐욕이라고 말하기엔 우리의 욕심이 너무 소박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어머니와 분이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꿈그게 제 탐욕의 전부였거든요.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저는 바람소리 말고는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을씨년스런 그 편의점을 혼자 밤새워 지키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본사직원은 왜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을까그는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우리에게 다른 장소를 알아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왜 매달 600만 원 이상의 순수익이 보장된다고 큰소리를 쳤을까?”


이곳에 오기 전에는 저는 정말 그가 미웠습니다어떨 땐 정말이지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노에 치를 떨었습니다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답니다그도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었어요그도 이 사막과도 같은 인생의 벌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지친 몸을 움직여야 하는 가련한 생명체일 뿐이었죠산다는 것은 고통이니까요그리고 그에게도 지켜야 할 가족이 있을 테니까요그는 스스로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건수를 올려야 했을 거예요.


이른바 실적이라 부르는 것이죠그들 점포개발 영업사원들도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이곳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모든 것이 훤하게 다 보이더군요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 사기 쳐서 등쳐먹고 사는 그들은 제가 있는 이곳에 올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요그러니 그들이 훨씬 더 가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그들이랍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제가 그곳에서 550여일 가량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뜬눈으로 지새울 때 유일하게 저를 찾아준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그 두려움은 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손톱만큼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습니다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것만큼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는 것을 저는 그 550여 일의 밤마다 뼈저리게 느꼈고 깨달았습니다할 수만 있다면 조선소 정문으로 뛰어가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강제로 끌고 편의점 매장에 줄을 세우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그것은 그저 망상일 뿐이었지요.


대낮보다 더 환한 조명 아래 앉아서 깜깜한 바깥을 쳐다보면 어떨 땐 제가 말로만 듣던 지하 취조실에 갇혀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답니다유리창 너머 저곳에서 누군가 제가 뭘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이럴 때이런 나날이 하루하루 쌓여갈 때 저의 두려움도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어머니께서 어느 날 제게 그러셨지요.


얘야밤에는 손님도 없는데 힘들면 야간에는 문을 닫지 그러니?”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모를 리가 없는 어머니가 오죽 답답하셨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그러나 실은 저도 그런 생각을 아니 한 것이 아니랍니다아무도 오지 않는 황량한 벌판에 불을 켜놓고 밤새 가로등처럼 지키고 서있는 것이 저로서도 죽기보다 힘든 일이었거든요수익이 나오기는커녕 도리어 밤새 켜놓는 램프의 전기세도 나오지 않는 적자의 노동이 제게는 고문처럼 아팠습니다.


하루에 도 몇 번식 최소한 야간영업만이라도 그만둬야지 둬야지 하면서도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만약 하루라도 편의점 간판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벌로 강제로 계약이 해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천만 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던 때문이지요.


이곳에서 듣자하니 제가 죽고 난 이후에 현대판 지주-소작 관계다 뭐다 해서 난리들이던데왜 꼭 그들은 누군가가 죽어나간 뒤에야 그런 식으로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요왜 좀 더 일찍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어머니저는 강제노동을 당한 것이에요억지로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강제노동을 당했던 것이에요그러나 이것은 흔히들 말하는 강제노동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답니다강제노동에 대해서 사전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지요.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억압으로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억지로 행해지는 노동을 말한다.”


그러나 제가 했던 강제노동은 정신상신체상의 억압뿐 아니라 경제적인 억압과 착취까지 병행하는 것이었어요게다가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강제노동을 계속 하기 위해 돈을 빌려야만 했어요말이 안 되지요어머니사실이에요제가 진즉에 어머니에게 말씀 못 드린 것은 어머니가 너무 마음 아파하실까봐 걱정이 되어서였어요죄송해요하지만 그것은 진실이랍니다.


야간영업은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였어요저는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 사채를 빌려 써야만 했답니다손님이 아무도 없어 수입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는 밤에 가게 문을 열어놓는다면 마이너스가 나는 것은 초등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간단한 수학이지요손님은 없어도 불은 켜놓아야 하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겨울에는 히터를 틀어놓아야 하니까요편의점은 그래야 하니까요.


그리고 또 아무리 어려워도 알바 직원들 월급은 떼먹기 싫었어요정말이지 그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저도 실은 알바 출신이니 알바의 마음은 알바가 알아준다고나 할까요그래서 독사과인 줄 알면서도 사채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에요.


사랑하는 어머니저도 보았답니다이곳에서도 그곳 사람들이 보는 신문을 가끔 볼 기회가 있어요어느 신문사의 기자가 마지막에다 이렇게 써놓았더군요.


유족들이 우는 와중에도 그의 휴대폰으로 대부업체의 독촉문자들이 연이어 날아왔다. ‘입금하지 않을 시 독촉장이 발송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얼마나 원통하셨을까요아들이 죽었는데그 장례식장에서 아들 휴대폰으로 비정하게 날아드는 채무독촉 문자메시지를 보는 심정은 그 누구도 헤아리지 못하겠지요하지만 어머니저는 이곳에서 다 보고 있었답니다어머니의 그 찢어지는 가슴을 저는 다 이해하고 있었답니다.용서해주세요어머니그러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어떻게든 살려보려고 기를 써보았지만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동생 분이가 마음에 걸립니다어째서 어린 동생으로 하여금 연대보증인이 되게 했을까요분이에게는 어떻게든 피해가 안 가게 하려고 했는데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어요그리하여 슬프지만 저는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에요.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이제 더 이상 울지 마세요어머니가 자책하실 일은 아무것도 없답니다어머니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단지 끝을 알 수 없는 자식에 대한 사랑뿐이랍니다모든 것은 제가 못난 탓이지요제가 제대로 된 직장만 얻을 수 있었다면 어머니에게 이토록 큰 상처와 고통을 안겨드리진 않았을 터인데한스럽군요그리고 그 본사직원 탓도 아니에요그이도 원망하지 마세요그 사람도 실은 우리처럼 위로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이랍니다.


저는 편의점을 시작하고 두 번째 맞는 추운 겨울 어느 날깨달았습니다그날도 오로지 우리 가게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을 뿐 사방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있었습니다그날은 하늘에 별들도 모두 숨어버려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요.


오래된 습관으로 저 멀리 어렴풋이 윤곽만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그건 어쩌면 오랫동안 해왔던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다만 그걸 못 느끼고 있었을 뿐이지요.


이건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야이제 지쳤어나는 이제 쉬어야 해거추장스런 낡은 껍데기만 벗어버린다면 나는 해방될 수 있을 거야그건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니라 기뻐해야 할 일이야.”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저는 그때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적이 그 누구도 아니고 바로 거대한 자본대기업이란 걸 깨달았어요그들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에요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죠그들은 제 피를 다 빨아먹고 마침내 제 뼈를 발라서 갈아 마실 위인들이죠제 몸이 갈기갈기 찢겨 공중에 흩어지고 나면 그 다음엔 어머니와 분이에게 달려들 것이 분명했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제가 떠나기로요제가 모든 것을 안고 죽는다면설마 그때도 그들이 모질게 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무엇보다 무서웠어요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 이유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군요죄송해요어머니정말 무서웠어요그래서 도망치고 싶었어요정말 이기적이죠?


그렇지만 그렇게 마음먹고 편의점 냉장고 뒤편 자그마한 공간에 숨어 술을 마실 땐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지더군요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평화가 찾아왔어요번개탄을 피웠어요양주에 수면제를 조금 탔는데 술맛은 그런대로 괜찮더군요약을 탔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그렇게 어머니와 제 희망이 꽃필 줄로만 알았던 그곳편의점 한구석에서 저는 생을 마쳤습니다어머니와 사랑하는 제 여동생 분이와 헤어지는 게 너무 가슴 아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러나 저는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어머니에게 큰 불효를 저지르고 떠나온 제가 있는 이곳은 아주 아름다운 곳입니다.여기선 그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아요실업자도 없고 비정규직도 없답니다저처럼 회사에서 잘리고 다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전전하는 사람들 꼬드겨서 피 빨아먹는 가맹점이 없는 것도 물론이고요저는 이곳에서 완전한 자유인이랍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저는 자유인으로 간주되었었죠하지만 진정한 자유인은 아니었어요이곳에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곳에서의 저는 노예였습니다생각해보세요어머니. 1년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24시간을 편의점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힌 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을 어떻게 자유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러면 혹자는 이렇게 말하겠지요그건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었냐고요옛날 프랑스에 루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인간이 스스로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런 노예계약은 도덕적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는 약속이다.”


루소가 살던 시대는 아직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도래하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가맹점이 있던 시대도 아니었으므로 그가 말한 노예란 신분적으로 예속된 전통적 의미의 노예를 말하는 것이었겠지요.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노예는 겉보기에는 매우 자유로운 인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루소의 노예보다 그 참상이 훨씬 참혹하답니다전통적 의미의 노예는 육신만을 주인에게 구속당하면 되었지만 오늘날의 노예는 육신뿐 아니라 사채까지 빌려 주인을 위해 봉사하다가 마침내는 완전한 파멸까지도 감수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의 존재를 인정했다지요시민으로 불리는 자유인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노예의 존재가 필수적이었거든요노예가 대신 힘든 일을 해주었기 때문에 자유인들은 광장에 모여서 토론도 하고 사색도 하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죠.


완전한 자유란 시간을 자유롭게 허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더군요그들은 그 허비할 수 있는 시간 중 일부를 정치적 자유를 위해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당연히 그것은 노예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만들고 유지되는 그들만의 민주주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노예가 상당히 비쌌다고 하더군요그래서 노예가 병이 들면 주인은 힘든 일을 시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큰돈을 들여 노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성심을 다했다는 거지요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였을 테지만요.


그러나 어머니오늘날의 현대판 노예는 어떤가요자유로운 노예라고도 할 수 있는 우리는 한번 쓰고 나면 버리는 일회용 같은 존재일 뿐이어서 병이 나든 말든 상관조차 하지 않습니다제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도리어 건강한 몸을 유지하면서 계약에 정해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위약금을 요구하지요.


루소가 말한바 노예계약은 도덕적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는 약속이다라는 정신에 따라 스파르타쿠스처럼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답니다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였다면 그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야라고 하면서 크게 화를 내었겠지요.


그러고 보면 민주주의란 사람마다 다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에요어떤 사람에겐 노예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적이지만또 어떤 사람에겐 노예가 민주주의의 필수요건이니 말이에요하지만 공상일 뿐이었어요제겐 그럴 힘도 의지도 없었으니까요.제가 할 수 있는 혁명은 오로지 제 자유의지에 따라 제 목숨을 스스로 거두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아무튼 저는 이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었습니다이곳은 사회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내는 쇠사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이곳에선 어떤 차별이나 경제적 착취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이곳은 실업이 없어요비정규직도 없고요그런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누구나 원한다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죠그러나 대신 누구든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은 일할 수 없어요그러면 다른 사람이 일할 기회를 잃게 되니까요그리고 주말은 반드시 쉬어야 하죠이것들은 의무사항이에요.


말하자면 자유인에게 부과되는 부자유한 속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우리는 이 부자유를 통해서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필요할 때 원하는 사람에겐 안식기간도 주어지는데요저는 주로 그 시간들을 아무런 계획 없이 허비하는데 쓰고 있어요저는 그거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는데여기에 와서야 그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 거지요.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분이와 함께 잘 지내고 계시나요정말이지 가슴 시리도록 보고 싶습니다제가 이곳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바로 어머니와 분이를 만날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그리움보다 더 큰 고통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나 어머니그것만 빼면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그러니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어머니가 걱정이지요제가 전하는 이 편지를 어머니가 받아볼 수 있어서 어머니의 걱정이 덜어진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습니다그렇게 된다면 유일한 제 걱정이 없어지는 것이므로 이곳에서 저는 진정으로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되겠지요.


그러므로 어머니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언젠가는 만나게 될 그날을 기약하며 서로 각자가 사는 곳에서 열심히 살기로 해요저도 그러겠습니다분이에게도 제 사랑의 인사를 전해주세요그리고 부디 건강하세요이제 저는 너무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아셨으니 오로지 어머니의 건강만을 생각하세요그러면 저는 더없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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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느 버스운전사의 자영업 퇴출기에 이어 역시 편집회의에서 삭제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합니다. 제5장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의 한 부분인데요. 자살한 편의점주가 하늘나라에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너무 뜬금 없다는 평가가 있어서 편집회에서 삭제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 도입부분을 함께 소개합니다. 역시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파비>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

  목차; 바닷가의 자살사건-조선소, 그리고 가로등-불안한 하루-불행의 전조-

           유혹(-하늘에서 온 편지)-사건의 전말-유배지의 밤


 바닷가의 자살사건

 

시내를 벗어난 자동차는 한참을 달리고 있었다시원하게 뻗은 산업도로 왼편 언덕 아래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바다는 푸른 사막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모든 빛을 집어삼킨 심연을 알 수 없는 막막함이 물과 뭍을 두 세계로 돌이킬 수 없이 갈라놓는 영원한 숙명적 장벽’ 건너 그곳에 있었다쪽빛 바다 위로 비스듬히 쏟아지는 햇빛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다그 너머로 저 멀리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위에 배 한척이 자그마한 점이 되어 떠있는 것이 보였다눈부신 태양 아래에서 영원히 잠든 것처럼 정지된 배는 무겁고 나른한 파도가 출렁이며 몸을 흔들어주지 않는다면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챌 수 없을 것만 같았다피에르 로티가 묘사한 것처럼 거대한 도살자 같은 바다는 붉은 노을에 젖은 잿빛 입김을 내쉬면서 가만히 누워 졸고’ 있었다실로 비할 데 없이 고요하고 온화한 평화가 한가롭게 노니는 심연 저 깊은 곳에서 낡고 오래된 성당 풍금처럼 은은하게 저음으로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멍하게 울리는 그 소리는 천상의 소리처럼 깊고 넓어서 자동차 엔진 소리조차 파묻혀 들리지 않았으며 꿈결처럼 모든 존재가 희미하게 증발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바다는 마법과도 같이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신비한 치유의 힘을 갖고 있었다바다는 지칠 줄 모르는 욕망으로 거대한 사랑의 축제를 벌이고 끊임없는 수태와 탄생의 신비를 자아내는 생명의 보고였다그리하여 모든 생명들은 최초에 바다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결국에는 모두 물속에 녹아들어 자신을 키워낸 원초적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었다거대한 바다는 온갖 것을 다 품고 있지만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으로 파도를 일으켜 웅장한 포효소리와 함께 바위에 부딪혔다하얀 포말이 연기처럼 흩어진다아물지 않은 상처투성이의 해변과 장중한 침묵으로 누워있는 해역을 바라보며 조유묵이 말했다.

아직 멀었나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

도로는 깨끗하게 잘 뚫려 있었다짜디 짠 소금기를 담은 해풍이 아스팔트 위를 달려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바람에 실려 온 소금기에는 묘한 여운이 스며있었다정신없이 달려온 일상을 벗어난 한적한 곳에서 겪게 될 상흔의 기억들이 거기에 알 듯 모를 듯 녹아있었다곧 이어 시가지의 육중한 건물들이 시야를 가리며 나타났다잠자듯 고요한 섬마을에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생겨난 도시였다자동차는 도시를 가로질러 달렸다잿빛도시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스쳐가는 자동차를 배웅하고 있었다백미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도시를 쳐다보며 조유묵은 생각했다.

도대체 편의점이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이 도시를 그냥 지나치다니그럼 여기 말고 이 섬에 다시 다른 도시가 또 있어 나타난다는 것인가?”

…………… 


(편의점주의 자살사건이 일어난 편의점은 한적한 바닷가에 있었습니다. 도입부와  이 글 사이에 편의점주의  어머니와 고인이 편의점을 열게 되기까지의 과정, 편의점 운영과 자살에 이르게 된 동기 등이 이어집니다.)





하늘에서 온 편지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저는 잘 있습니다. 여긴 너무나 평온하답니다. 어머니가 계신 그곳에서 이곳을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보일 테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아요. 실제로는 너무나 빨리 달리기 때문에 오히려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도 몰라요. 아니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 이미 백년도 더 전에 미국의 어떤 유명한 과학자가 그걸 밝혔다지요? 아마도 이곳에서의 하루는 어머니가 계신 그곳의 시간으로 보자면 1년은 족히 되겠지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그곳에선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이곳에선 너무나 확연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그걸 직접 보여드릴 수 없다니 정말이지 한스럽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위해 아직도 울고 계실 테지만, 저는 어머니가 더 걱정이에요. 어머니, 이제 울지 마세요. 저는 너무나 편안하게 잘 있으니까요. 이곳은 특별한 슬픔도 없고 특별한 기쁨도 없는 곳이에요. 누구에게 상처 줄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없죠. 그래서 혹자에게 지루할는지는 몰라도 그러므로 너무나 평화로운 곳이에요. 그러나 제게 오직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뿐이랍니다.


옛날 토마스 모어란 사람이 유토피아란 책을 써서 이상향의 세계에 대해 말했었지요. 사전이 해석하는 대로 말하자면, 유토피아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으로, 공산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 및 교육과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가상의 이상국이에요. 토마스 모어란 분은 원래 독실한 가톨릭교회의 수호자로서 대법관이었는데 영국 왕이 이혼하고 새로 다른 여자와 재혼하는 것에 반대하여 끝까지 이를 승인하지 않다가 결국 목이 잘렸다고 하더군요.


당시는 가톨릭교회법이 그랬다고 합니다. 정당한 사유가 없는 이혼과 재혼은 금지되었던 거지요. 정말 고집이 센 분이었어요.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단두대에 서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니 놀랍고도 존경할만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에 반해 헨리 왕은 그를 죽이고도 모자라 반역의 문에 한 달 동안이나 그의 목을 걸어 놓았었다니 정말 포악한 임금이었지요.


그러나 아무튼 그로 인해 우리는 토마스 모어란 분이 얼마나 신실한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의 말이라면 온전하게 사실이라고 믿어도 좋을 만큼. 그러므로 제가 있는 이곳은 사실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가 아니라 어디에든 존재하는 곳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은 그의 의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 제가 너무나 평온하고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은 충분히 믿으셔도 좋아요. 저는 너무나 잘 지내고 있어요. 어머니가 걱정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어머니를 위해 편지를 쓰기로 한 것이랍니다. 그러나 사실 제가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가 얼마나 위안을 드릴 수 있을지 그건 장담할 수 없군요. 아무래도 저는 어머니와 달리 사는 세계가 달라서 오히려 어머니를 괴롭게 해드리지나 않을까 걱정이에요.


그러나 어머니. 저는 그곳에서 보았을 때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을 그대로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자 해요. 그것이 제가 이곳에서 얼마나 평안하게 잘 지내는지를 보여드리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우리가 처음에 편의점 사업을 하고자 마음먹고 가게를 구하러 다닐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지요. 어머니가 저에게 얘야, 너는 편의점이든 휴대폰 가게든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보았지 않니? 직접 그런 가게라도 한번 해보지 않으련?” 하고 말씀해주셨을 때 정말이지 하늘로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답니다


지나치게 비싼 임대료 때문에 잠시 실망하기도 했었지만 조선소가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아늑한 곳에 있는 아담한 가게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작업복을 입고 조선소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은 또 얼마나 늠름하게 보이던지…….

어머니와 제가 함께 만났던 본사직원도 그렇게 말했었지요.


여긴 정말 최상의 자립니다. 어떻게 이런 자리를 구하셨는지 정말 용하십니다. 선생님께서 안 하시겠다면 제가 하고 싶군요.”


어머니께서 평소에 그러셨지요. 사람이 망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다름 아닌 탐욕이라고요.


세상을 돌아보렴, 건실하게 제 분수에 맞게 살아간다면 큰일이 일어날 이유가 어디에 있겠니? 다들 지나친 욕심 때문에 집안도 망치고 몸도 망치는 거란다


늘 그렇게 말씀하셨었지요. 그런데 그날만큼은 우리도 탐욕의 노예가 되고 말았군요. “월수입 600만 원 보장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저도 그만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충고를 잊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자책하지 마세요. 그건 어머니 탓이 아니랍니다. 모든 것이 이 못난 아들 탓이지요. 제가 제대로 직장만 잘 구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어머니가 어떻게 그런 무모한 결정을 하셨겠습니까? 모든 것이 제 탓이에요.


그러니 어머니, 절대 슬퍼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오로지 크신 자식사랑을 가졌던 죄밖에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까요. 제가 잠시 부산에 일 보러 간 사이에 어머님이 제 대신 계약서에 서명하시고 모든 준비를 해놓으셨을 때, 저는 실로 어머님의 크신 은혜를 가슴 깊이 느꼈답니다.


, 이제 나도 어엿한 직장을 갖게 되었구나. 그것도 내가 주인인 직장이야. 열심히 일해서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하나뿐인 여동생 잘 보살피며 멋지게 살아볼 테야.”


그렇게 다짐하며 희망 가득한 미래의 설계도를 마음속에 그려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 정도는 정말 행복했었지요. 어머니도 사랑하는 여동생 분이도,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몇 개월이 제게는 정말 꿈결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딱 3개월뿐이었지요. 사실은 그 3개월도 불행의 전조를 보여준 것 말고는 그 어떤 밝은 전망도 우리에게 준 것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콩깍지가 씌었던 가봅니다. 사랑에 눈이 멀 듯이 우리는 탐욕에 눈이 멀었던 것일까요?


하지만 탐욕이라고 말하기엔 우리의 욕심이 너무 소박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어머니와 분이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꿈, 그게 제 탐욕의 전부였거든요.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저는 바람소리 말고는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을씨년스런 그 편의점을 혼자 밤새워 지키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본사직원은 왜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그는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우리에게 다른 장소를 알아보라고 하지 않았을까? 왜 매달 600만 원 이상의 순수익이 보장된다고 큰소리를 쳤을까?”


이곳에 오기 전에는 저는 정말 그가 미웠습니다. 어떨 땐 정말이지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노에 치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답니다. 그도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었어요. 그도 이 사막과도 같은 인생의 벌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지친 몸을 움직여야 하는 가련한 생명체일 뿐이었죠. 산다는 것은 고통이니까요. 그리고 그에게도 지켜야 할 가족이 있을 테니까요. 그는 스스로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건수를 올려야 했을 거예요.


이른바 실적이라 부르는 것이죠. 그들 점포개발 영업사원들도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이곳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모든 것이 훤하게 다 보이더군요. 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 사기 쳐서 등쳐먹고 사는 그들은 제가 있는 이곳에 올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그들이 훨씬 더 가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그들이랍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제가 그곳에서 550여일 가량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뜬눈으로 지새울 때 유일하게 저를 찾아준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은 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손톱만큼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것만큼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는 것을 저는 그 550여 일의 밤마다 뼈저리게 느꼈고 깨달았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조선소 정문으로 뛰어가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강제로 끌고 편의점 매장에 줄을 세우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 그것은 그저 망상일 뿐이었지요.


대낮보다 더 환한 조명 아래 앉아서 깜깜한 바깥을 쳐다보면 어떨 땐 제가 말로만 듣던 지하 취조실에 갇혀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답니다. 유리창 너머 저곳에서 누군가 제가 뭘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이럴 때, 이런 나날이 하루하루 쌓여갈 때 저의 두려움도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느 날 제게 그러셨지요.


얘야, 밤에는 손님도 없는데 힘들면 야간에는 문을 닫지 그러니?”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모를 리가 없는 어머니가 오죽 답답하셨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러나 실은 저도 그런 생각을 아니 한 것이 아니랍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 황량한 벌판에 불을 켜놓고 밤새 가로등처럼 지키고 서있는 것이 저로서도 죽기보다 힘든 일이었거든요. 수익이 나오기는커녕 도리어 밤새 켜놓는 램프의 전기세도 나오지 않는 적자의 노동이 제게는 고문처럼 아팠습니다.


하루에 도 몇 번식 최소한 야간영업만이라도 그만둬야지 둬야지 하면서도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만약 하루라도 편의점 간판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벌로 강제로 계약이 해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천만 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던 때문이지요.


이곳에서 듣자하니 제가 죽고 난 이후에 현대판 지주-소작 관계다 뭐다 해서 난리들이던데, 왜 꼭 그들은 누군가가 죽어나간 뒤에야 그런 식으로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요? 왜 좀 더 일찍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어머니. 저는 강제노동을 당한 것이에요. 억지로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강제노동을 당했던 것이에요. 그러나 이것은 흔히들 말하는 강제노동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답니다. 강제노동에 대해서 사전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지요.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억압으로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억지로 행해지는 노동을 말한다.”


그러나 제가 했던 강제노동은 정신상, 신체상의 억압뿐 아니라 경제적인 억압과 착취까지 병행하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강제노동을 계속 하기 위해 돈을 빌려야만 했어요. 말이 안 되지요? 어머니. 사실이에요. 제가 진즉에 어머니에게 말씀 못 드린 것은 어머니가 너무 마음 아파하실까봐 걱정이 되어서였어요. 죄송해요.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랍니다.


야간영업은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였어요. 저는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 사채를 빌려 써야만 했답니다. 손님이 아무도 없어 수입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는 밤에 가게 문을 열어놓는다면 마이너스가 나는 것은 초등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간단한 수학이지요. 손님은 없어도 불은 켜놓아야 하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겨울에는 히터를 틀어놓아야 하니까요. 편의점은 그래야 하니까요.


그리고 또 아무리 어려워도 알바 직원들 월급은 떼먹기 싫었어요. 정말이지 그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실은 알바 출신이니 알바의 마음은 알바가 알아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독사과인 줄 알면서도 사채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에요.


사랑하는 어머니, 저도 보았답니다. 이곳에서도 그곳 사람들이 보는 신문을 가끔 볼 기회가 있어요. 어느 신문사의 기자가 마지막에다 이렇게 써놓았더군요.


유족들이 우는 와중에도 그의 휴대폰으로 대부업체의 독촉문자들이 연이어 날아왔다. ‘입금하지 않을 시 독촉장이 발송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얼마나 원통하셨을까요? 아들이 죽었는데, 그 장례식장에서 아들 휴대폰으로 비정하게 날아드는 채무독촉 문자메시지를 보는 심정은 그 누구도 헤아리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어머니. 저는 이곳에서 다 보고 있었답니다. 어머니의 그 찢어지는 가슴을 저는 다 이해하고 있었답니다. 용서해주세요, 어머니. 그러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기를 써보았지만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동생 분이가 마음에 걸립니다. , 어째서 어린 동생으로 하여금 연대보증인이 되게 했을까요? 분이에게는 어떻게든 피해가 안 가게 하려고 했는데,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어요. 그리하여 슬프지만 저는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에요.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이제 더 이상 울지 마세요. 어머니가 자책하실 일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어머니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단지 끝을 알 수 없는 자식에 대한 사랑뿐이랍니다. 모든 것은 제가 못난 탓이지요. 제가 제대로 된 직장만 얻을 수 있었다면 어머니에게 이토록 큰 상처와 고통을 안겨드리진 않았을 터인데, 한스럽군요. 그리고 그 본사직원 탓도 아니에요. 그이도 원망하지 마세요. 그 사람도 실은 우리처럼 위로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이랍니다.


저는 편의점을 시작하고 두 번째 맞는 추운 겨울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그날도 오로지 우리 가게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을 뿐 사방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날은 하늘에 별들도 모두 숨어버려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요.


오래된 습관으로 저 멀리 어렴풋이 윤곽만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어쩌면 오랫동안 해왔던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그걸 못 느끼고 있었을 뿐이지요.


이건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야. 이제 지쳤어. 나는 이제 쉬어야 해. 거추장스런 낡은 껍데기만 벗어버린다면 나는 해방될 수 있을 거야. 그건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니라 기뻐해야 할 일이야.”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저는 그때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적이 그 누구도 아니고 바로 거대한 자본, 대기업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들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에요.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죠. 그들은 제 피를 다 빨아먹고 마침내 제 뼈를 발라서 갈아 마실 위인들이죠. 제 몸이 갈기갈기 찢겨 공중에 흩어지고 나면 그 다음엔 어머니와 분이에게 달려들 것이 분명했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제가 떠나기로요. 제가 모든 것을 안고 죽는다면, 설마 그때도 그들이 모질게 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무엇보다 무서웠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 이유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군요. 죄송해요, 어머니. 정말 무서웠어요. 그래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정말 이기적이죠?


그렇지만 그렇게 마음먹고 편의점 냉장고 뒤편 자그마한 공간에 숨어 술을 마실 땐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지더군요.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평화가 찾아왔어요. 번개탄을 피웠어요. 양주에 수면제를 조금 탔는데 술맛은 그런대로 괜찮더군요. 약을 탔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그렇게 어머니와 제 희망이 꽃필 줄로만 알았던 그곳, 편의점 한구석에서 저는 생을 마쳤습니다.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 여동생 분이와 헤어지는 게 너무 가슴 아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러나 저는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어머니에게 큰 불효를 저지르고 떠나온 제가 있는 이곳은 아주 아름다운 곳입니다. 여기선 그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아요. 실업자도 없고 비정규직도 없답니다. 저처럼 회사에서 잘리고 다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전전하는 사람들 꼬드겨서 피 빨아먹는 가맹점이 없는 것도 물론이고요. 저는 이곳에서 완전한 자유인이랍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저는 자유인으로 간주되었었죠. 하지만 진정한 자유인은 아니었어요. 이곳에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곳에서의 저는 노예였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머니. 1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24시간을 편의점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힌 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을 어떻게 자유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러면 혹자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건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었냐고요. 옛날 프랑스에 루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인간이 스스로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런 노예계약은 도덕적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는 약속이다.”


루소가 살던 시대는 아직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도래하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가맹점이 있던 시대도 아니었으므로 그가 말한 노예란 신분적으로 예속된 전통적 의미의 노예를 말하는 것이었겠지요.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노예는 겉보기에는 매우 자유로운 인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루소의 노예보다 그 참상이 훨씬 참혹하답니다. 전통적 의미의 노예는 육신만을 주인에게 구속당하면 되었지만 오늘날의 노예는 육신뿐 아니라 사채까지 빌려 주인을 위해 봉사하다가 마침내는 완전한 파멸까지도 감수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의 존재를 인정했다지요? 시민으로 불리는 자유인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노예의 존재가 필수적이었거든요. 노예가 대신 힘든 일을 해주었기 때문에 자유인들은 광장에 모여서 토론도 하고 사색도 하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죠.


완전한 자유란 시간을 자유롭게 허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더군요. 그들은 그 허비할 수 있는 시간 중 일부를 정치적 자유를 위해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것은 노예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만들고 유지되는 그들만의 민주주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노예가 상당히 비쌌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노예가 병이 들면 주인은 힘든 일을 시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큰돈을 들여 노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성심을 다했다는 거지요.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였을 테지만요.


그러나 어머니. 오늘날의 현대판 노예는 어떤가요? 자유로운 노예라고도 할 수 있는 우리는 한번 쓰고 나면 버리는 일회용 같은 존재일 뿐이어서 병이 나든 말든 상관조차 하지 않습니다. 제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도리어 건강한 몸을 유지하면서 계약에 정해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위약금을 요구하지요.


루소가 말한바 노예계약은 도덕적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는 약속이다라는 정신에 따라 스파르타쿠스처럼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답니다.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였다면 그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야라고 하면서 크게 화를 내었겠지요.


그러고 보면 민주주의란 사람마다 다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에요. 어떤 사람에겐 노예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적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겐 노예가 민주주의의 필수요건이니 말이에요. 하지만 공상일 뿐이었어요. 제겐 그럴 힘도 의지도 없었으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혁명은 오로지 제 자유의지에 따라 제 목숨을 스스로 거두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아무튼 저는 이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곳은 사회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내는 쇠사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선 어떤 차별이나 경제적 착취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이곳은 실업이 없어요. 비정규직도 없고요. 그런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누구나 원한다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죠. 그러나 대신 누구든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은 일할 수 없어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일할 기회를 잃게 되니까요. 그리고 주말은 반드시 쉬어야 하죠. 이것들은 의무사항이에요.


말하자면 자유인에게 부과되는 부자유한 속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 부자유를 통해서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필요할 때 원하는 사람에겐 안식기간도 주어지는데요. 저는 주로 그 시간들을 아무런 계획 없이 허비하는데 쓰고 있어요. 저는 그거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는데, 여기에 와서야 그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 거지요.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분이와 함께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정말이지 가슴 시리도록 보고 싶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바로 어머니와 분이를 만날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그리움보다 더 큰 고통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나 어머니. 그것만 빼면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걱정이지요. 제가 전하는 이 편지를 어머니가 받아볼 수 있어서 어머니의 걱정이 덜어진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유일한 제 걱정이 없어지는 것이므로 이곳에서 저는 진정으로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되겠지요.


그러므로 어머니.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만나게 될 그날을 기약하며 서로 각자가 사는 곳에서 열심히 살기로 해요. 저도 그러겠습니다. 분이에게도 제 사랑의 인사를 전해주세요. 그리고 부디 건강하세요. 이제 저는 너무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아셨으니 오로지 어머니의 건강만을 생각하세요. 그러면 저는 더없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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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래 글은 오는 2월 26일 출판기념회를 통해 출간하는 <상남동사람들> 편집회의에서 잘라낸 부분입니다. 즉 책에는 없는 내용이죠. 그래서 미리 이렇게 소개합니다. 약 70여 페이지가 절삭됐는데 이외에도 몇 개의 에피소드가 더 있습니다. 그것도 <상남동사람들> 출판기념회 전에 맛뵈기로 하나씩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글 <파업>의 주인공은 현재 버스운전사입니다. 그는 10년 가까이 (배달)자영업을 하다 얻은 뼈가 썩어들어가는 상처를 수술한 이후에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출판기념회 당일은 그가 오후반이어서 저자와의 대담에 나오기가 어려운 형편이지만 근무를 조정해서라도 꼭 나오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책 속에는 그가 버스 운전을 하고 있는 뒷모습 사진도 실려 있습니다만, 아직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출판기념회 웹자보를 올리오니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바라 마지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파비>  


` 2014년 2/26일(수) 18:00 창원사파중학교 체육관 (주차는 운동장) 


파업


김휘성은 꿈결 속에서 들려오는 하는 함성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그는 벌떡 일어나 본능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여섯시였다. 새벽까지 마신 술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 그렇군. 어젯밤에 최성규를 비롯한 공작과 친구들이 다녀갔었지. 오랜만이라 그랬는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열흘 만에 파업현장에 나타난 그들의 양 손에는 술과 안주가 한가득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최성규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매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함께 싸우지 못해 미안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밖에서 많이 괴로웠습니다. 늦었지만 우리도 동참하겠습니다. 동지들은 안에서, 우리는 밖에서, 그렇게 힘을 합쳐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최성규는 민추위(민주노조추진위원회) 회원이었고 조직부장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 그는 돌발적으로 일어난 파업상황이 너무도 당황스러워 어떤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며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파업이 세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보름 전이었다. 민추위 회원이었던 하봉연이 이른바 위장취업자였던 사실이 발각되었다. 회사는 그를 즉시 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닷새 후에 해고했다. 그리고 그날 점심시간에 십여 명의 민추위 회원들이 식당에서 식판을 집어던지며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우발적이었던 이 사건은 삽시간에 파업투쟁으로 확대되었다. 지게차가 컨테이너박스를 실어오고 공장 정문은 거대한 바리케이드로 봉쇄됐다. 검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의 쇠파이프와 성난 함성에 쫓겨 관리직들은 혼비백산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어서 공장 울타리에는 붉은 깃발들이 내걸리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이런 구호들이 적혀있었다어용노조 퇴진 민주노조 건설. 위원장 직선제 쟁취.’


아니오. 괜찮습니다. 이제라도 와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고맙소, 동지들. 우리 힘을 합쳐 민주노조 반드시 쟁취합시다.”


김휘성은 최성규의 손을 굳게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그는 동지들은 안에서, 우리는 밖에서란 말이 주는 뉘앙스에 조금 의아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크게 괘념치 않았다. 그보다는 10일 만에 나타난 동지들이 너무도 반가웠다. 민추위에서 홍보부장 역할을 맡았던 그는 최성규와는 막역한 친구이자 동지였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는 생각에 김휘성을 비롯한 파업노동자들은 크게 고무됐다. 처음 파업을 시작할 때 300여 명이 넘던 노동자들의 대오는 날이 가면서 하나둘 고무풍선 바람 빠지듯 떨어져나갔다. 이제 겨우 7, 80명 남짓만이 남아 곧 앙상한 가지를 드러낼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최성규 등이 방문해준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에 크게 고무된 김휘성 등은 파업 첫날의 의기와 자신감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3월의 밤이슬은 아직 차가웠지만 본관건물 2층 사장실에는 훈훈한 온기가 감돌았다.


자자, 한잔들 합시다. 그동안 술 구경도 못했지요? , 이리들 둘러 앉읍시다.”


최성규가 말했다. 그들이 들고 온 봉지에는 소주며 나폴레옹, 캡틴 큐 같은 술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오징어, 새우깡 따위의 안주꺼리도 그득했다.최성규의 제안에 따라 공장 울타리 초소를 지키고 있는 정방대원들에게도 술과 안주가 전달되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살벌한 파업현장은 뜻밖의 방문으로 인하여 마치 잔칫집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오랜만에 불콰해진 김휘성은 애리조나 카우보이도 한곡 멋들어지게 뽑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일 다시 오겠다는 최성규 등을 배웅하고는 곧 사장실 바닥에 누워 얼마만인지 모를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결처럼 들려오는 하는 함성소리에 잠에서 깼던 것이다.


김휘성은 순간적으로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한 전율을 느꼈다.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아팠지만 그는 번개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재빨리 잠자리 옆에 놓아두었던 쇠파이프를 손에 들고 창가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다.


!”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를 맞이한 풍경은 노란 물결이었다. 세상이 온통 노란색으로 화해 있었다. 그 노란색 물결 위에 몇몇 자그마한 검은 점들이 흩어져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와장창…….”


은빛 쇠파이프가 허공을 가르며 공장 마당에 세워진 승용차들을 가격했다. 새벽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회사간부들이 버리고 간 자동차 유리 파편들이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며 비명을 토했다.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다급하게 달려오는 검은 점들은 정문을 지키던 정방대원들이었다.


구사대다! 구사대가 쳐들어왔다!”


공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정방대원들 중 일부는 본관건물 2층으로 도망쳐 들어왔고, 나머지는 정문 반대편으로 죽어라고 내달렸다. 불과 1, 2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노란색 물결은 쓰나미처럼 공장을 집어삼켰다.


본관건물 2층 사장실만이 거대한 파도 위에 홀로 떠있는 섬처럼 흔들거렸다. 마흔 평 남짓한 사장실에는 여명에 번쩍거리는 40여개의 쇠파이프들이 허둥대고 있었다. 구사대의 1차 공장 진입작전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완전히 고립된 사장실은 한차례 태풍이 쓸고 지나간 뒤의 들판처럼 먹먹한 정적이 흘렀다.


그 사이에 수천 명―실제로 나중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800명이었다―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란 화이바를 쓴 구사대는 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지휘자는 공장장이었다. 그는 사장실이 마주보이는 광장(나중에 이곳은 민주광장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에 구사대를 2열로 전개시켰다


그들은 모두 학생용 가방 크기의 포대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주먹 크기의 돌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두 개의 소화전으로부터 소방호스도 길게 뽑아 연결했다. 별도로 편성한 일단의 노란 화이바 부대가 본관 건물 구석에 사다리를 걸치고 2층 지붕위로 올라가는 모습도 보였다. 본격적인 2차 전투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이제 잠시 후면 수천수만 개의 돌과 소방호스로부터 뿜어지는 물대포가 마흔 평 남짓한 사장실을 향해 발사될 것이었다. 구사대의 다른 한쪽에서는, 이미 전세가 결정된 전투에서 후방군으로 편성돼 뒤로 빠진 많은 수의 노란 물결들이 대오를 지어 서서 마치 좋은 구경이라도 한다는 듯이 담배를 피워 물고 저희들끼리 키득거리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김휘성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마치 형틀에 묶인 사형수가 자신의 목을 자를 칼을 벼리고 있는 망나니를 지켜보고 있는 심정이 바로 이러한 것이었으리라.


휴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공장장이 앞으로 나섰다. 포마드를 발라 뒤로 빗어 넘긴 그의 머리가 아침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다. 그는 마치 전쟁의 신 아레스라도 된 듯이 의기양양했다. 양손을 허리에 얹고 두 다리는 한껏 벌려 마음껏 위세를 부린 모습이었다. 그가 호각을 힘차게 불었다.


전투준비!”

“1열 앞으로!”

소방호스 사격준비!”

“1열 던져!”

소방호스 사격 개시!”

“2열 앞으로!”


노란 물결 속에서 시커먼 돌들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우박처럼 쏟아져 날아왔다. 마치 아프리카 초원의 하늘을 뒤덮은 메뚜기 떼들이 태양을 가리며 새까맣게 날아드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차앙…… 창…… 차창.”


심장을 찢을 듯 미친 듯이 울어대는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 이어 후두두… 퍼벅…… 퍽하고 소리를 내며 시커먼 돌들이 사장실 양탄자 위에 떨어졌다. 뒤이어 두 개의 소방호스로부터 콘크리트 벽이라도 부수어버릴 것 같은 물세례가 쏟아졌다. 사장실은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아비규환. 무릎까지 차오른 물속을 헤치며 검은 옷들은 허우적거렸다. 여기저기서 으악하는 비명이 터졌다.


쾅……콰쾅.”


그러더니 천장 위로부터 무언가 둔중한 물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천장이 일부 깨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갑자기 위에서 노란 화이바 하나가 아래로 떨어졌다. 구사대 중 하나가 발을 헛디뎌 지붕 위에서 사장실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다행히도 무릎까지 차오른 물바다가 그에게 구명튜브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가 일어서려는 찰나, 성난 검은 옷들이 그를 덮쳤다. 쇠파이프가 그의 몸 위에서 춤을 추었다. 김휘성은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 사람 하나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재빨리 검은 옷들 사이에 끼어들며 외쳤다.


그만 두시오, 그만 둬! 이놈은 내버려두고 일단 사장실 문부터 방어하도록 하시오!”


그때 김휘성의 눈가에 번쩍 하고 하나의 섬광이 비쳤다. 뜨뜻한 기운이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피였다. 오른쪽 눈두덩이 위에 구사대가 던진 돌이 명중한 것이다. 오른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는데 다시 한 번 소리가 나더니 섬광이 일었다. 뒤이어 흘러내리는 뜨뜻한 핏물. 김휘성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뜨거운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그는 생각했다.


이러다 우리 다 죽고 말 거다. 이왕 죽을 바에야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지.”


그는 무릎까지 차오른 물살을 헤치며 사장실 한쪽 구석에 쌓아둔 방어용 시너 통 쪽으로 달려갔다. 거기엔 약 오십여 개의 시너 통이 가지런히 적재돼 있었다. 그 중에 한통을 들어 뚜껑을 땄다. 그러고는 머리 위에 들어 올리고 그대로 뒤집어썼다. “촤아아하고 신나 흐르는 소리에 이어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목이 매캐하다. 그리고는 다시 시너 한통을 들어 왼팔에 끼고 사장실 책상 위로 올라갔다. 오른손에는 라이터를 들고 불을 켜고서 높이 들었다.


돌 던지지 마라! 가까이 오지 마라! 계속하면 다 죽는다!”


일순 양편 모두에서 침묵이 흘렀다. 어쩌면 커다란 배의 닻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거대한 작살을 들고 2층 사장실 입구까지 올라와 출입문을 부수고 있던 일단의 구사대들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지 황급히 뒤로 물러나 멀찍이 달아났다.


맨 앞에서 작살을 들고 문을 부수던 화이바는 특이하게도 노란색이 아니라 흰색이었는데 마치 악어가죽처럼 울퉁불퉁한 철갑옷을 입고 있었다. 다른 구사대들도 그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중에 사람들은 그가 틀림없이 경찰일 거라고 수군거렸다.


아무튼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투석전을 위해 열을 지어 서있던 구사대들 중에서도 그 누구도 섣불리 앞으로 나서서 돌을 던지려는 자가 없었다. 소방호스도 멈췄다. 그러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공장장이 큰소리로 욕을 해댔다.


, 이 새끼들아. 뭐 하는 거야. 빨리 던져.”


공장장은 다시 김휘성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이렇게 외쳤다.


어이, 소방호스. 저 새끼를 조준해서 뿌려. 빨리.”


20133. 아직 새벽공기는 차가웠다. 자욱한 안개가 검은 아스팔트 위를 유령처럼 배회하는 거리를 달리며 김휘성은 담배연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뿜었다. 승용차 앞으로 달려드는 안개가 마치 하얀 소복을 입고 나풀거리며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뿌연 연기가 그의 하얗게 샌 머리카락 사이를 뚫고 공중으로 피어올랐다가 열려진 창문 틈으로 쏜살같이 달음박질쳤다.


벌써 25년 전 일이군.”


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스물다섯 청년이었던 그의 나이가 어느덧 지천명에 이르렀다. 25년 전 민추위의 파업은 처절하게 깨졌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43명은 시너와 소화전에서 뿌려진 물이 뒤범벅이 된 물에 홀딱 젖은 채 닭장차에 실려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러나 민추위는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2명의 위장취업자를 빼고 모두 훈방된 41명이 다시 노조원들을 규합해 재차 투쟁에 돌입했던 것이다.


노조사무실 앞에서 어용노조 위원장 퇴진을 외치며 노조원들이 다시 농성에 들어가자 화가 난 공장장은 농성노조원들이 보는 앞에서 위원장의 작업복 가슴에 달린 명찰을 뜯어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이렇게 악을 썼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위원장이야? 위원장이 이런 것도 하나 해결 못해? 너는 새끼야, 위원장 자격이 없어.”


노조원들 앞에서 모욕을 당한 위원장은 한시간만에 사퇴서를 던져버렸다. 대의원들도 일괄 사퇴했다.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노조위원장은 사퇴하기 전에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하고 노조규약을 개정해 간선제이던 위원장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실로 졸지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날 오후 열두 명의 민추위 위원들이 그들이 물러간 노조사무실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위원장 선거에 누구를 내보낼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서로 네가 해라” “네가 해라하면서 결론이 나지 않자 그 중 한 위원이 비밀무기명투표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각자가 지명하는 후보 이름을 써넣고 가장 많이 나온 사람을 위원장후보로 추대하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김휘성이 다섯 표, 이영수가 네 표, 최의선이 세 표가 나왔다. 김휘성은 민추위가 추대하는 노조위원장후보로 선거에 출마했다. 그리고 압도적인 표차로 위원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파업 주동 등 혐의로 수배자 신세가 되었으며 차가운 밤거리를 떠돌다 마침내 구속되어 교도소에서 16개월을 살았다.


그 이후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그는 택시운전사가 되었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4년간 핸들을 잡고 도시의 거리를 누볐다. 택시운전사 시절 만난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생수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했다


2년 만에 투자한 돈을 다 털어먹은 그는 다시 핸들을 잡았다. 월급 30만 원에 15일 운행하면 사납금 내고 하루 10만 원 내외가 남아 월 180만 원 정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택시업계의 사정은 어려워졌다.


그러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난 직후에 그는 택시운전사를 그만 두고 자영업시장에 뛰어들었다. 물론 그가 자영업자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더 벌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택시운전사보다는 수입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장상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을 거 같았다. 또 자기계획 아래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8년 만에 자영업시장으로부터 스스로 퇴출되는 길을 택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생각만큼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자영업은 큰돈도 벌 수 없었지만 안정적인 수입도 기대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그는 적더라도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게다가 철가방을 들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던 그의 엉덩이 아래쪽 뼈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옛날 파업 당시에 구사대에게 두들겨 맞은 부위가 힘든 배달일 때문에 도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더이상 돌솥을 철가방에 넣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일은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핸들을 잡았다.


이번엔 버스운전사였다. 마침 택시운전을 할 때 틈틈이 시간을 내 대형면허를 따놓았던 것이다. 깜깜한 이 시간에 그는 버스를 몰기 위해 시내버스 종점 주차장으로 출근하는 길이었다.


새벽 다섯 시. 세상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어둠이 점령한 거리엔 붉은 가로등만이 유령처럼 검은 아스팔트 위를 배회하는 뿌연 안개들의 행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휘성은 왼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인 담배를 입술로 가져갔다. 가슴속 깊은 곳까지 연기를 빨아들인 다음 푸우 하고 내뱉는다푸른빛이 감도는 흰 담배연기가 그의 하얗게 샌 머리칼을 타고 피어오르다 자동차 천장에 부딪힌 다음 아래로 떨어지며 마치 거리를 떠도는 유령에 이끌리듯 차창 밖으로 쏜살처럼 달음박질친다.


그는 크게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오전반 출근을 위해 새벽길을 달리다 도로 위에 떠도는 자욱한 안개를 만날 때면 가끔 이렇게 까마득한 옛일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푸른빛이 감도는 연기를 내뿜으며 나직하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벌써 25년이나 세월이 흘렀어.”



바람


그것은 바람이었다. 아니 필연적으로 불어오고야 말 계절풍이었다고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인생에 사계절이 있다면 그것은 초여름에 몰아닥친 비바람이었다. 김휘성이 2년여의 수배와 그에 이은 1년 반가량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다시 사회의 품에 안겼을 때,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달라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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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가 성인이 되고자 고심하다 마침내 부인을 내쫓았다!”

맹자

예사롭지 않은 이 고대의 스캔들을 들춰낸 사람은 다름 아닌 곽말약이다. 다분히 과장되었을 이 이야기는 그러나 순자로부터 차용한 것이었다. 순자는 ‘해폐편(解蔽篇)’에서 ‘맹자는 패덕을 싫어하여 부인을 내쫓았는데, 이는 가히 스스로 수신에 힘쓴 것’이라고 기술했다.

그런데 ‘맹자는 금욕주의자’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곽말약의 해학이야말로 흥미롭다 아니할 수 없다. 그는 순자의 악패를 부인의 패덕이 아니라 ‘맹자가 자신이 몸을 상할 것을 염려하여 부인을 내쫓았다’는 주장을 펴는 신비한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곽말약. 그는 중국 문화사에서 천재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깊고 넓은 학식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그는 대문호 노신과 쌍벽을 이루는 뛰어난 문학가요 탁월한 역사학자이자 고문학자였으며, 혁명가였다. 

족발, 제목에 깃든 오묘한 철학
 그가 역사적 사실들로부터 제재를 취하여 집필한 글들을 묶은 책의 제목으로 <豕蹄>, 우리 말로 하면 <족발>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 책의 한국어판 역자(신진호)는 제목에 얽힌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썼다.

“이 시제(豕蹄)라는 말이 우리나라 말로는 돼지족발을 의미하는데 곽말약은 족발이라는 제목이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성질을 잘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값싸고 천한 돼지족발도 불을 세게 때서 푹 삶고, 알맞게 간하고 향신료를 뿌리면 평민들이 즐겨 먹는 요리가 될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라성 같은 성인‧영웅호걸들의 공식적 역사 속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작은 이야기들도 보는 관점과 다루는 방식에 따라서는 평범한 현대인들이 세상을 달리 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꺼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목에 얽힌 이 이야기 속에는 곽말약의 번뜩이는 기지와 자유로운 상상력 그리고 투철한 역사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처음에 곽말약은 ‘역사제재 꽁트’(史題空託)라는 이름을 쓰려했지만, 네 글자가 너무 거추장스럽다고 여겨 ‘사제(史題)’로 줄이려고 했다가 다시 ‘사체(史體 )’로 바꾸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살찐 자기 친구에게 이 책을 바치면서 발음이 같은 시제(豕蹄)로 결정했다고 한다.

오늘 나는 우연히 책장에서 걸어 내려와 방바닥에 뒹굴고 있는 <족발>을 발견했다. 이 책을 산 것이 어언 십년하고도 4년이 더 흘렀다. 그동안 나는 이 책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니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게 된 셈인데 무척이나 반가웠다.

나는 오래전, 이 책 속에서 맹자의 아내를 보았었다. 그녀는 매우 고결했으며 현명하고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곽말약의 비유에 따르면 그녀는 현숙했을 뿐 아니라 매우 요염하고 색기가 넘치는 젊은 여자였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했다. 곽말약의 뛰어난 문재는 맹자가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쩔쩔 매는 모양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적나라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었다.

아내의 미모에 홀린 맹자, 공부가 안 돼
<족발> 속에 등장하는 이 글의 제목은 <맹부자출처(孟夫子出妻)>다. 우리말로 번역한 제목은 <맹자, 부인을 내쫓다>이다. 맹자가 부인을 내쫓았다고? 참으로 독특하고 기이한 제목이 아닌가? 나는 제목을 보자마자 끓어오르는 흥미를 참을 수 없었다.  

공자의 아내는 그 추하게 생긴 몰골과 괴팍하고 못된 성격으로 그의 남편 못지않은 명성을 누렸다. 혹자는 공자가 성인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아내의 추하고 못된 성격이 한몫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공자는 집을 떠나 천하를 주유했던 것일까?

맹자는 정반대의 경우였다. 맹자의 아내는 매우 아름다웠다. 조숙했으며 지혜롭기까지 했다. 그녀는 맹자가 설파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알았으며 부동심(不動心)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맹자가 아침밥을 먹을 동안 옆에 다소곳이 앉아 시중을 들었다.

그녀는 예를 알아 행했다. 밥을 퍼서 건넬 때도 나무쟁반을 중간매체로 삼아 고개를 숙여 두 손으로 받쳐서 건넸다. 식사는 맹자가 좋아하는 담백한 생선죽과 생강 한 조각, 콩나물 무침으로 매우 정갈했다. 그러나 맹자는 밥을 먹는 내내 아내의 얼굴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곽말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어젯밤의 상황과 오늘 아침의 상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맹자는 어젯밤에 부인을, 한 방울의 즙까지도 아까워하면서 참외를 먹듯이 그렇게 애무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바로 어젯밤 그 애무 때문에 맹자는 이렇듯 점잔을 빼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란 이처럼 모순된 것이었다.”

생선도 내가 원하는 바요, 곰 발발닥도 내가 원하는 바라
맹자는 공자를 따라 성현이 되고자 하는 뜻을 세우고 그 요체로 ‘부동심’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의 부인만 보면, 특히 밤에는 마음이 흔들리고 다음날이 되면 여지없이 나른한 기운으로 온몸이 가득 차니 공자가 질책하는 듯해 괴롭기 이를 데 없었다.

곽말약은 계속해서 맹자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직시하지 않는 것 역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부인의 온몸, 그 적나라한 몸이 사실 그의 모든 감각기관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갈저고리 아래 튀어나온 봉긋한 유두, 그의 비밀을 모조리 꿰뚫어 보는 듯한 흑요석 같은 눈, 그 온화함, 그 유연함, 그 숨결, 그 유선(流線)……. 그는 천근의 무게에 짓눌린 듯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 악마야! 나는 공자의 제자이지, 너의 제자가 아니야!’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외쳐대던 그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주방으로 가 있으시오. 밥은 내가 직접 퍼서 먹겠소.” 부인을 내보낸 맹자는 벽에 걸린 공자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탄식했다.

공자

그러자 부엌에 있던 부인이 놀라 다시 돌아와 맹자에게 말한다. 그녀는 이미 맹자의 속마음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 저를 당신의 아내로도 여자로도 여기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하실 수 없나요? …… 당신 곁에 제가 없으면 전 당신이 불편할까봐 염려스럽습니다. …… 여보, 진정 저를 제자나 하인으로 여겨 주세요.”

여기에 대해 맹자는 “생선도 내가 원하는 바이고 곰 발바닥 요리 역시 내가 원하는 바이다. …….”란 애매한 경구로 답을 대신한다. 역시 맹자는 유식한 지식인이다. 생선은 아내요, 곰 발바닥 요리는 공자다. 극진한 모성애를 느낀 맹자의 아내는 즉시 물러나 짐을 싼다.

천하의 성인도 다른 이의 노동 없이 이루지 못한다
순간, 맹자의 자세는 허물어진다. 그는 심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곽말약은 계속해서 적고 있다. “아내가 가 버린다면 기름이니, 소금이니, 땔감이니, 쌀 같은 것들은 누가 맡아 살림을 해준단 말인가? 그는 이때 한 가지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의 성현이 되려면, 아니 심호흡을 하는 것조차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작은 노동 덕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가엾은 맹자는 부인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잘못을 빌며 가지 말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부인은 그를 안아 일으키며 말한다.

“아니에요. 저는 당신에게 감사해요. 여보, 당신은 천하의 스승이에요. 저 한 사람이 독차지할 수 있는 분이 아니지요. 제가 여기 남아있는 것은 당신에게 도움이 못 되요. 제가 떠나는 것이 당신에게 이로운 거죠. 당신에게 이롭기만 하다면 불속에라도 뛰어들 거예요.”

맹자는 문득 아내가 공자보다도 위대하다고 생각되었다. 아내는 이미 만공선생에게 맹자를 보살펴줄 것을 부탁하고 온 참이었다. 그녀는 입으로만 인의를 떠들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했다. 맹자는 생각했다. 공자도 그의 아내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어찌 천하를 주유하며 세상을 가르칠 수 있었겠는가.

위대한 스승은 멀리 공자가 아니라 가까운 아내였다
마지막으로 맹자의 결심을 곽말약은 이렇게 적고 있다. “그렇다. 말하지 않고 행하는 것, 실천, 실천! 나는 멀리 공자를 스승으로 모시느니 차라리 가까이서 아내를 본받아야겠다.”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맹자는 역시 훌륭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글쎄, 이게 왜 홀연히 세월을 뛰어넘어 방바닥을 뒹굴고 있었을까? 나는 우리 집에 이 책이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지 오래였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새삼스러운 사실 하나를 다시금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은 아내들이란 사실을 말이다. 물론 십여 년 전에도 느꼈던 바이기는 하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맹자가 깨달았던 평범한 진리는 더욱 절실하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작은 노동 없이는 단 한 시도 살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을 아내들은 말없이 실천으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의 경우 특히 그렇다. 그래서 오늘 이 책이 무척 반가우면서도 한편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2009. 2. 2.  파비

ps; 뛰어난 희극작가요 시인이었던 곽말약의 문학세계는 노신과 더불어 쌍벽을 이룬다. 그러나 그가 중국공산당에 이용당하는(또는 스스로) 작품을 많이 썼으며, 권력에 아부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는 역시 변함없이 중국 현대문학사에 빛나는 별이다. 이글에 등장하는 묘사들 중에는 현대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것은 이글이 세상에 나온 때가 1930년대란 점을 감안하면 그리 큰 불만은 없을 것이다. 아쉽게도 곽말약의 사진은 구하지 못했다. 대신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을 사진으로 만들어 올릴 생각이지만, 지금 카메라가 없으므로 서너시간 정도 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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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패왕의 자살

서평 2012.06.21 01:24

괄막약의 역저 『족발』은 맹부자출처를 비롯하여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특유의 해학과 풍자로 쓴 이야기들을 엮은 책이다. 거기에는 맹자, 공자, 장자, 항우, 진시황, 사마천, 노자, 가의, 그리고 두 명의 제나라 용사가 등장한다. 또 공자를 만나기 위해 멀리 서양에서 찾아온 마르크스도 등장한다.

이 책이 어느 날 홀연히 책장에서 걸어내려 와 방바닥을 뒹굴게 되면서 나는 14년 만에 다시 고대 중국의 명인들을 만나보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2200년 세월의 벽을 넘어 항우를 만나보는 것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다.

‘역발산기개세’ 항우의 자살
항우는 초한지에 등장하는 유방의 맞수다. 그래서 우리는 항우를 잘 알고 있으며 '역발산기개세'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는 것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항우는 유방에게 패함으로써 천하제패의 꿈을 접었다.

해하에서 사면초가에 몰린 항우, 부인 우미인마저 자신의 초전검으로 자결하자(항우와 우희의 애달픈 생사이별을 노래한 ‘패왕별희’는 너무도 유명하다) 남은 군사를 이끌고 퇴각하여 오강에서 처절하게 싸우다 스스로 목을 베어 파란만장한 생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곽말약의 족발에서 항우에 대한 이야기의 제목은 「초패왕자살(楚覇王自殺)」이다. 그러나 곽말약이 그려낸 초패왕의 자살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항우는 용맹한 장수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그에 못지않은 종리매를 비롯한 용맹한 무장들이 부지기수였다. 그의 부대는 천하무적이었다. 그가 비록 해하전투에서 패해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용맹은 시대를 넘어 회자되고 있다.

그런 그가 그리 허무하게 죽었을까? 아니다. 그의 죽음은 장렬했다. 그는 용맹한 부하들과 더불어 마지막 순간까지 투쟁했다. 항우에게 전장은 따뜻한 고향의 품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최후를 맞이할 장소로서 전장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전장이야말로 그가 살아온 곳이며 그가 죽어야할 곳이었다. 그러나 곽말약은 죽음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무인은 함부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용사에게 죽음이란 천하만인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항우의 최후가 장렬하기는 하였으나 곽말약의 관점에서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명예에 집착하는 헛된 죽음일 뿐이다.

장강에 이는 풍운(風雲)
연일 내린 폭설로 오강포 부근 우저산과 백벽산 일대는 온통 새하얗게 뒤덮였다. 솟아오른 아침 태양에 흰빛만이 반짝이며 저항할 뿐 인적은 끊어지고 새 한 마리조차 날지 않았다. 세상은 온통 흰빛에 정복되어 있었다. 저 휜 눈에게 항복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지칠 줄 모르고 흐르는 장강과 하늘의 태양뿐이다.

이곳에 난데없이 한때의 군마가 어지러이 달려오고 있었다. 넓은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파도처럼 강변에 당도한 웅장한 소리는 스물일곱 명의 사람과 스물일곱 마리의 말이었다. 그들이 강가에 다다르자, 그 기세는 강변에 부서지는 물결의 포말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들의 대장을 태운 말은 검푸른 빛을 띠며 아직도 더 달리고 싶다는 듯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강을 향해 연신 울부짖으며 뿌연 김을 내뿜고 있었다. 말의 주인은 매우 지쳐있었다. 그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한군데 성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강가에 버려진 조개껍데기처럼 널려 있었다.

말들도 기진맥진했다. 기수가 내리자마자 모래톱에 긴 수면을 취하려는 듯 쓰러져버렸다. 검푸른 말만이 앞발로 모래톱을 연신 차대고 있었다. 말에서 내린 대장인 듯한 사내는 잔뜩 충혈 된 두 눈으로 분노하듯 장강을 노려보았다. 나이는 30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항우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오강(烏江의) 정장(亭長)
이때 고요를 뚫고 한 척의 나룻배가 나타났다. 배 위에는 중년의 남자가 노를 젓고 있었는데 예사 사공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의 생김새는 여위었으나 넓는 이마 아래 두 눈에선 지혜어린 광채가 발하고 있었다.

“대왕. 제가 틀리지 않았을 거라 믿습니다. 당신은 틀림없는 우리의 서초패왕이십니다. 뒤를 쫓아오는 병사들이 곧 들이닥칠 것입니다. 어서 배에 오르십시오.”

대왕이라 불린 이 사내는 바로 서초패왕이라 자칭하던 항우였다. 그랬다. 모두들 조개껍데기처럼 널려졌지만, 유독 그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던 검푸른 말은 다름 아닌 천하의 명마, 오추마였던 것이다. 항우와 그의 부하들은 유방의 군사들에게 쫓기고 있었던 것이다.

수백 년을 이어오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종지부를 찍고 천하를 통일한 것은 진시황이었다. 그러나 진시황은 폭정으로 민심을 잃었다. 농민들에게 과도한 세금과 부역, 병역을 부과해 국가경제의 기반이던 농민들의 삶을 도탄에 빠트렸다. 분서와 갱유는 수천 년에 걸친 중국의 문화를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만들어놓았다.

항우, 진시황을 능가하는 폭정으로 민심을 잃다
진시황이 죽자 전국 각지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농민봉기를 주도하던 진승, 오광 그리고 시정의 평민들을 이끌고 유방이 있었다. 거기에 항우도 봉기의 한 세력을 담당했다. 항우는 숙부인 항량과 더불어 출전했다. 그들은 파죽지세였다. 이때 항우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칭호를 얻었다.

결국 진나라는 봉기세력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폭정을 일삼는 진왕조의 전복이란 백성들의 염원이 반영된 결과였다. 함양에 입성한 항우는 득의양양했다. 자신의 역발산기개세가 진왕조를 멸망시킨 것이다. 이제 그에게 거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당초 항우는 사람됨이 좋고 힘과 용기까지 갖추어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패자가 되자 자만심이 그를 지배했다. 진왕조를 멸망시킨 것은 오로지 그의 능력 때문이라고 믿었다. 항우는 포악해지기 시작했다.

진의 수도 함양의 궁실과 각종 서적들을 불태웠다. 무고한 아녀자를 무참히 살해했다. 진시황이 저지른 분서와 갱유를 능가하는 폭정을 자행했다. 민심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민심이 떠나자 항우는 더 이상 역발산기개세가 아니었다. 이어 벌어진 유방과의 패권다툼에서 항우는 연전연패했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초패왕
유방의 군사에 쫓긴 항우의 앞에는 장강이 가로막고 있었다. 불과 수십 리 밖에는 그의 목을 베어 공을 세우려는 무리들이 휜 눈을 날리며 쫓아오고 있다. 이때 오강의 정장이 나룻배를 끌고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를 구하기 위해. 그러나 항우는 그를 믿을 수 없었다.

지금껏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속였던가. 음릉에서 한왕에게 쫓기다 길을 물었을 때 늙은 농부는 그를 속여 서쪽으로 가게 하여 속여 죽을 고비를 넘겼다. 연도(沿道)의 주민들은 밥과 따뜻한 국으로 그를 맞지 아니하고 집을 텅 비우고 모두들 도망을 갔다. 그러나 무엇보다 야속한 것은 하늘이었다.

실로 기진맥진한 그들에게 눈을 내려 고통을 더해주는 하늘이 가장 미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강도 더할 수 없이 미웠다. 공교롭게도 그가 오는 것을 기다려 배를 정박하고 있는 정장이 마치 하늘의 화신인양 생각되었다.

‘음릉의 늙은 농부와 연도의 주민들도 다 하늘이 조종해놓은 것이다. 아, 내 앞에 서서 배에 타기를 권유하는 이자는 틀림없이 첩자다. 나는 물에 익숙하지 못하다. 내 부하들도 모두 북쪽사람들이라 물의 특성을 알지 못한다. 이놈이 그걸 알고 우리를 죽이려는 것이다.’

초패왕은 불끈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이 모든 것은 하늘이 안배한 것이다. 하늘은 궁극적으로 나보다 강하다. 내 어찌 하늘을 이길 수 있겠는가.’

하늘은 초패왕을 버렸는가?
칼자루에서 손을 뗀 항우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말했다. “배에 한 명밖에 오를 수 없다면 여기 종리매와 나의 오추마를 데려가게. 종리매는 나의 가장 훌륭한 전우이지만 지금 그는 너무 다쳐 몸을 움직일 수도 없네. 내가 아끼는 이 오추마도 전장에서 죽게 하고 싶지 않으니 데려가 살려주게.”

초패왕은 뜻밖에도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너그러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함양을 정복한 이후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던 웃음이 그에게 돌아온 것이다. 『사기』의 「항우본기」에 등장하는 항우의 말을 곽말약은 다음과 같이 옮겨놓았다.

‘이것은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다면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숙부와 더불어 회계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우리가 8천명의 강동 젊은이를 이끌고 강을 건너 싸우기를 8년, 70여 차례의 싸움을 치르고 난 지금엔 모두들 죽고 아무도 남지 않았다. 숙부께서도 일찍이 정도에서 전사하셔서 이제 나 혼자만이 남았다. 나 혼자 강동으로 돌아가 설령 강동의 노인들이 나를 가엾게 여겨 왕으로 추대할지라도 내가 무슨 면목이 있어 그들과 만날 수 있겠는가?’

정장은 계속해서 항우에게 배에 오르기를 권했지만, 끝내 항우는 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종리매와 오추마를 그의 부하들을 시켜 배에 태우게 했다. 그리고 항우는 왼손으로 힘차게 방패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나머지 스물다섯 명의 장사도 마치 명령을 받은 것처럼 동시에 방패를 들어올렸다.

초패왕의 장렬한 최후
적들의 말발굽 소리가 지척에 들려왔다. 족히 수백 마리는 됨직하였다. 항우는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항우의 초전검과 함께 스물여섯 줄기의 검광이 휜 눈에 반사되어 무수한 무지개를 뿜어냈다. 스물여섯 줄기의 검광은 말을 달려 앞으로 달려 나갔다. 두 무더기의 거대한 파도가 부딪히자 거대한 물보라가 일었다.

항우는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그는 부하들이 모두 죽자 두려워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는 적 앞에서 우희가 자결한 초전검으로 스스로 그의 목을 베었다. 역사에 의하면 그의 목을 차지하기위해 다투다 수십 명이 밟혀 죽었으며 항우의 시신은 다섯 동강이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시신의 각 부분을 차지한 장수들은 공훈을 인정받아 후한 상을 받았다고 한다. 

장국영 주연의 『패왕별희』의 한 장면/이미지출처=다음영화


멀리 강 한 가운데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정장은 종리매에게 고백한다.

“종리매 장군. 사실 저는 정장이 아닙니다. 저는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서생일 따름이지요. 하지만 이곳의 정장이 달아나버렸으니 정장이라 해도 이상할 것은 없겠지요. 애초에 호의를 품고 여기에서 기다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한왕의 첩자는 아니올시다. 당신도 이 사실은 분명하게 알아야겠지만 오늘날의 백성들 특히 우리 글 읽는 사람 가운데 항왕에 대해 그 누가 아직도 좋은 뜻을 품고 있겠습니까? 그 자신이 민심을 저버린 때문입니다. 그는 처음에 사람이 좋아 민심을 얻었습니다. 진시황의 폭정에 시달린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진나라 통치를 뒤엎으려했습니다.

민심을 저버린 항왕, 더 이상 역발산기개세는 없다
이러한 백성들의 뜻에 부응한 항왕은 세상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무두들 자신의 생명을 아까와 하지 않고 그를 돕고 추대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2년도 채 못 되어 진나라 사람의 폭정을 뒤엎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힘어었습니까? 그것은 항왕의 힘이 아니라 백성들의 힘이었습니다.

항왕이 역발산기개세일 수 있었던 것은 백성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떠난 항우에게 더 이상 역발산기개세는 존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항우는 자기보다 훨씬 약한 유방에게 패하고 만 것입니다.”

“종리매 장군! 하지만 저는 오늘 항왕이 당신과 이 말에게 보여준 태도를 보고 매우 감동했습니다.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에 친구를 생각하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득 생각난 것인데 당신도 알 것입니다. 한왕 유방은 도망갈 때 자기 자식들을 수레에서 밀어 떨어뜨렸다는 얘기 말입니다. 대체로 이러한 것들이 인간의 모습이지요.

항왕은 이점에서 유방보다 더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러한 마음을 널리 베풀었다면 그는 결코 오늘 같은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그를 죽이려던 마음을 바꾸어 그를 살려주어 강동으로 돌아가 재기하기를 바랐지만 그는 자신의 실패를 하늘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운명은 하늘 탓이 아니다
정장은 계속해서 말한다. 자기 잘못을 알아야지 어찌 하늘을 탓하는가? 하늘은 말이 없다. 항왕이 들먹거리던 이 하늘이었고 한왕이 들먹거리던 하늘도 이 하늘이다. 백성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저 자신만의 권세를 생각하고 백성의 생사 따위엔 개의치 않던 사람이 자멸의 걸어갔다고. 그는 죽을 때까지도 자기만 생각했다고.

이어 정장은 항우를 따라 죽고자하는 종리매에게 이런 말로 타이른다.

“장군. 죽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필사적인 마음으로 타인을 이롭게 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사람됨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 저의 집이 여기서 않습니다. 제가 배를 돌린 이유는 당신을 저의 집으로 데려가 부상을 치료하고 잘 쉬게 한 다음에 당신으로 하여금 다시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초패왕자살>은 지칠 줄 모르고 흐르는 장강의 충고로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있다. 장강은 말한다. “너희들이 아무리 잘난체해도, 너희들이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갖고 거드름을 피워도 결국은 모두 나에게로 녹아 흘러들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에게로 와 함께 생명의 찬가를 부르는 게 어떻겠는가?”

『족발』, 해학과 기지가 돋보이는 명작
곽말약은 참으로 신묘하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린 초패왕과 초나라 군사들. 그들은 짙은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초가(楚歌)에 전의를 완전히 빼앗겼다. 하나 둘 탈영이 이어지고 마침내 소수의 부하들과 자신만 남게된 초패왕,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명예롭게 죽음을 택하는 길외엔 없었을 터이다

하지만 곽말약은 초패왕의 비장한 최후를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살려놓았다. 날렵한 해학과 날카로운 기지가 다시금 돋보이는 작품이다. 곽말약의 작품도 뛰어나지만, 이 작품을 번역한 역자 신진호의 순발력 또한 뛰어나다. 그는 원제 <楚覇王自殺>을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늘은 초패왕을 버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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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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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 - 10점
모리야 히로시 지음, 지세현 옮김/시아출판사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면 세상살이가 한결 가벼워진다
세월을 뛰어넘은 통찰로 인생을 경영하는 지혜를 배운다
… 인간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원칙과 지침을 제시해 주는 고전의 세계

고전을 읽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고전을 통해 선현들의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우리는 고전을 읽지 않는가?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삶에 지쳐서 그러하기도 하다. 또는 고전처럼 딱딱하고 두꺼운 책을 쉽사리 들기가 부담스러운 점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공자 왈’ 한다거나 ‘맹자 왈’ 한다는 말로 그를 무시한다. 이로써 공자와 맹자는 성현의 지위에서 매우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와 맹자는 참으로 고리타분한 사람들이었던가?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공자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고초를 다 겪었지만 자신을 갈고 닦아 결국 성현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맹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집안에 틀어박혀 ‘공자 왈’ ‘맹자 왈’ 한 사람들이 아니다. 천하를 주유하며 온갖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논쟁하며 세상을 경영하기에 분투한 사람들이다.


논어와 맹자를 읽는 현대인들이 녹슬지 않는 그 지혜에 탄복하는 것은 수없이 많은 수레바퀴를 마멸시키며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하는 책,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는 논어, 맹자, 사서삼경, 순자, 노자, 채근담, 십팔사략 등 방대한 중국고전 중에서도 현대인들이 읽었으면 하는 내용을 엄선하여 수록한 책이다.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 - 10점
모리야 히로시 지음, 지세현 옮김/시아출판사


나는 한글세대이다. 우리가 흔히 한글세대라고 하면 1970년 박정희 정권의 한글전용정책 이후에 교육받은 세대를 말한다. 한글전용정책 덕분에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거의 0%로 떨어졌다.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을 말할 때 배우기 쉽고 매우 과학적인 글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배우기 쉽다는 것은 한글전용정책 이전 6~70%에 달하던 문맹률이 거의 0%로 떨어졌다는 사실로 쉽게 증명할 수 있다. 그러면 과학적 측면에서의 우수성은 어떨까? 그것도 이미 증명되었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한자를 계속 쓰고 있었다면 오늘날처럼 IT강국이 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한글전용정책은 기업들에게도, 특히 컴퓨터와 휴대폰 업체들에게, 비용과 부담을 덜어주는 혜택을 주었다. 이처럼 얻은 것이 많은 대신 우리는 한자를 잃었는데, 그것만 잃은 것이 아니라 한자가 만들어내는 한문 즉, 고전도 함께 잃어버린 것이다. 성장제일주의를 넘어 다시 인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한문이 새로 관심을 받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이책의 저자는 일본인 모리야 히로시다. 그는 일본의 대표적 중국문학자로 중국고전의 대부분을 번역했다. 그는 머리말에서 “나는 이 책을 30대 이상의 이 사회를 열심히 지탱해나가고 있는 사람들, 특히 40대 이상의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중국고전은 단순히 지식과 교양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식과 교양만을 얻기 위해선 중국고전이 적합하지 않다고? 그럼 무어란 말인가.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이는(중국고전은) 어디까지나 실학으로,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실천했을 때 의미가 있으며 비로소 그 값어치가 살아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층은 사회의 중심 세대이긴 하지만 고전의 내용과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아직 이르다.”


저자는 요즘 젊은이들이 유명한 고사성어인데도 걱정스러울 정도로 잘 이해를 못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컴퓨터를 비롯한 온라인 매체의 홍수에 빠진 요즘 세대들이 중국고전에까지 신경쓸 여가가 없다는 데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첨단매체, 첨단기술의 습득도 중요하지만, 고전은 그에 비길 수 없는 무한한 가치의 보고란 점을 강조한다.


나는 저자가 일본인인데도 나와 매우 비슷한 눈을 갖고 있다는데 놀랐다. 그것은 다른 말로 일본도 우리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말 중에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대학에 나오는 말로써 수신제가에 힘쓴 연후에 나라를 경영해야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고사성어를 설명하면서 “요즘 정치가들을 보고 있으면 새삼 인물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냥 무심코 이 말을 지나치다가, 왜냐하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으니까, 문득 그가 일본인이란 사실을 깨닫고 생각했다. ‘아, 일본의 정치인들도 우리네 정치인과 별로 다르지 않은가 보구나.’


오래전 황광우는 이렇게 말했었다. “修身齊家에서 제가란 가정을 잘 돌보라는 말이 아니다. 공자와 맹자가 가정을 잘 돌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들은 제가를 이루었다. 제가란 곧 이다. 자신을 잘 갈고 다듬어 이렇듯 제가 즉, 정당을 만들어 나라를 경영하고 천하를 평안케 하는 것이 정치가(그는 노동운동가였으므로, 사실은 노동운동가)의 역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면 황광우가 말한 수신제가는 고사하고 전통적 의미의 수신제가도 제대로 하는 경우를 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을 이 사회의 중견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3~40대의 직장인들이 읽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정치인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들이 이 책을 읽고 스스로 자신을 수양할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다면 나라의 장래를 위해 큰 덕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은 수신제가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정계에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 원칙일 터이지만, 그것은 이상이고 현실은 차가운 것이므로 그런 정도의 소망이라도 가져보는 것이다.


나는 또 이 책을 스스로 진보운동에 헌신하고 있다는 사람들도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은 진실로 이 사회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자 부단히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가끔 자기신념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것 같은 슬픔을 본다. 고전의 명구는 그들에게도 마음의 평안을 줄 것이다. 


고전을 읽는 것은 마치 훌륭한 그림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가 위대한 화가가 그려놓은 그림을 어제 보고 오늘 또 보지만 거기서 항상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처럼, 고전을 읽는 것은 늘 새로운 깨달음을 우리에게 준다. 고전에 등장하는 고사성어들은 씹으면 씹을수록 맛을 내는 특별한 향신료라도 들어있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논어나 십팔사략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완파하겠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결심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친절하게도 수많은 중국고전들 중에서 겨우 109개의 경구만을 가려 뽑아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겨우라고 했지만, 현대인들의 처세에 매우 핵심적인 내용들로 이정도만으로도 지혜의 숲을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침 이 책에 독서방법에 대한 하나의 교훈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송나라 주자 등 학자들의 글을 뽑아 편집한 『近思錄근사록』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근사란 논어의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仁은 그 안에 있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하루는 주자의 스승인 정이천에게 한 제자가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 묻자 “모름지기 책을 읽어라!” 하고 전제한 후에 “많이 읽는 것보다는 핵심을 파악하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많이 보고도 그 핵심을 모르는 자는 서사(책방주인)일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말일 것이며, 아무 책이나 읽어서도 안 된다는 말이겠다.


그러면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 것인가? 근사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반드시 많이 읽을 필요는 없다. 많이 읽는 것보다는 책이 말하고 있는 핵심을 간파하도록 유의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 모리야 히로시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지식을 얻으려면 이러한 독서가 가장 실천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핵심을 잘 간파할 수 있는 유용한 독서법을 얻으려면 풍부하면서도 날카로운 사고능력이 요구되는데, 이는 고전읽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고전읽기만큼 생각을 풍부하게 해주는 독서가 또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적절한 시점에 나왔다. “오늘 새롭고, 나날이 새롭고, 또 하루가 새롭다”는 대학의 경구처럼 우리는 나날이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방법으로, 우선 가볍게 전체를 한번 훑어본 다음 화장실에 두고 매일 한 구절씩 그 뜻을 음미하며 읽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화장실이야말로 가장 편하면서 친숙한, 사색을 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공간이 아닌가. 고전은 단번에 베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다. 조금씩 두고두고 천천히 되새김질하듯 음미해야 그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만 20년 전에 내가 들었던 말을 오늘 다시 여기 옮기는 것으로 이 글을 끝낸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아마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고전을 읽어라. 고전을 읽지 않고 어떻게 오늘을 분석하고 내일을 설계할 수 있겠는가. 고전 속에는 오늘을 말하고 내일을 보는 지혜가 들어있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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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중국의 전국시대를 종식시킨 진시황은 분서갱유를 단행했다. 그가 갱유, 즉 역사상 유례없는 대학살을 자행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서에 대해서만큼은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분서로 인하여 진시황 이전의 수많은 위대한 문명들이 잿더미 속에 사라졌다. 

인류 문명을 향한 치명적 테러는 진시황만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 세계에서도 이런 분서가 예외 없이 저질러진 시대가 있었다. 기원 2~4세기 초기 기독교는 신성에 대한 해석을 놓고 갈등과 대립이 치열한 시기였다. 그노시스파로 불리는 영지주의는 당대 세계의 중심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가톨릭을 위협했다.

책을 불태우려는 사람들, 책이 가진 나비효과를 잘 알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로마 황제의 승인을 받은 가톨릭이 승리했고, 그노시스파의 모든 종교적 저작물들은 이단이란 이름 아래 망각의 불길 속에 내던져졌다. 20세기에 이르러 이집트의 동굴에서 2천 년 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그노시스의 파피루스가 발견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는데, 신국론과 고백록으로 중세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를 닦은 아우구스티누스도 처음엔 그노시스파(마니교)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세기 후반의 대한민국에도 분서는 예외 없이 행해졌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부에서 인정하지 않는 책을 소지하고 있다가 불심검문, 압수수색 등에 의해 교도소로 간 사람들이 많았다. 교도소란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곳이란 뜻이다. 최근엔 국방부에서 금서목록을 만들어 물의를 일으킨 일도 있었다.

18세기 조선에서도 예의 이 분서는 어김없이 행해졌는데, 당시 조선에는 정치에서 소외된 남인들을 중심으로 천주교가 널리 퍼지고 있었다. 이에 체제적 위협을 느낀 조정은 천주학 관련 서적에 대한 대대적인 분서를 단행했다. 천주교 관련 서적을 가지고 있다가 발각되는 날엔 책과 함께 목이 잘려나갔다.

그러나 역시 가장 악명 높은 분서는 근세기 중국에서 벌어졌다. 문화혁명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홍위병들의 이 잔혹한 테러가 처음 시작한 곳이 유서 깊은 소림사였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오쩌둥이 공산당원들의 자녀들을 불러 모아 홍위병을 처음 조직한 곳이 바로 소림사였던 것이다.

495년경에 세워진 소림사는 중국 선불교의 발상지다. 소림사를 창건한 달마는 특정한 자세로 벽만 바라보면서 수행에 정진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르고자 했다. 후에 이러한 선법은 《벽암록》이란 책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동양세계에 선불교가 꽃피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누구도 금지할 수 없는 자유가 존재하는 곳, 깊숙한 정신세계

《벽암록》이 추구하는 선이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고유한 힘과 그 힘의 원천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화혁명의 광풍은 《벽암록》을 추종하는 선승들을 무력으로 제압했지만, 승려들은 '그들의 정신세계 속으로 깊이 침잠해서 홍위병은 절대 얻을 수 없는 자유, 그리고 마오쩌둥조차 절대 금지할 수 없는 자유에 도달했다.'

책 vs 역사 - 10점
볼프강 헤를레스.클라우스-뤼디거 마이 지음, 배진아 옮김/추수밭(청림출판)

볼프강 헤를레스는 독일의 저명한 언론인이다. 1950년 독일 바이에른에서 태어난 그는 빌 게이츠를 비롯한 유명한 경영자들을 불러 자기 프로그램에 담는 등 매우 정력적인 활동을 벌였을 뿐 아니라 다수의 정치서적, 실용서, 소설을 집필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연출로도 유명한 저널리스트다.

그는 자신이 쓴 책 《책 vs 역사 》에서 '책이 만든 역사' 혹은 '역사가 만든 책'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역사는 책을 만들었지만, 책은 다시 역사를 만들었다. 모든 책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헤를레스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수백만 독자가 읽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러나 이 소설은 역사까지 만들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미의 이름》은 책의 가공할 힘에 대해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책이다. 그는 역사를 만든 책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판매량을 잣대로 책의 영향력을 가늠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엄청난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코란》은 역사를 만들었다. 그런데 세계를 바꾼 책 중에는 인류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진 작품도 적잖이 있다." 

책과 역사 사이에는 사람이 있다. 헤를레스는 어떤 책은 금서가 되고 또 어떤 책은 불태워지는데, 이런 행위를 하는 자들은 책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불에 타 사라지는 것은 그저 잉크와 종이일 뿐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도 없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고, 생각은 자유로우며, 생각을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책 속의 활자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 책이 선정한 역사를 만든 책 50권의 구성에 불만을 가지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또는 이 책의 저자가 활자 틈새 곳곳에 숨겨놓은 가치관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마도 어쩌면 헤를레스는 유럽 중심주의나 루터교에 경도된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헤를레스는 지나치게 마르크스나 마오쩌둥을 비난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독자들의 몫이다. 독자들은 얼마든지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을 자유가 있으며 그럴 권리도 있다. 만약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경향성에 대해 불평하면서 책을 고른다고 한다면 우리가 읽을 책은 세상에 한 권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책은 독자가 읽으면서 새롭게 해석하고 창조적으로 다시 쓰는 것이다.

그 점만 잘 유의해서 본다면 이 책은 실로 유용한 책이다. 책을 대하는 독자들의 태도가 조금이라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은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500년 전 탄생한 공자의 《논어》를 설명하면서 1899년 중국에서 발생한 비밀결사 대원들의 철도 습격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헤를레스의 화술은 역시 그가 유능한 저널리스트임을 실감하게 한다. 

한번들 읽어보시라. 그러면 어떤 분서나 금서로도 막을 수 없는 책의 위대한 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경 첫 구절에 의하면 태초에 말이 있었다고 한 것처럼 인류 역사를 만들어온 수많은 말들이 있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막강한 힘을 지닌 서적들의 배후엔 어떤 본보기와 선구자, 갖가지 상상과 아이디어, 유례를 알 수 없는 신화와 전설'이 숨어 있을까?  

단, 헤를레스의 관점을 탓할 생각은 버리고, 독자 여러분이 가진 생각의 그물에 활자의 물고기를 걸러 가면서 차분하고 천천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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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청춘의 독서』, 유시민 전 장관이 쓴 책이다. 유시민은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다. 내가 유시민이란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스물다섯쯤 되었을까, 그때 나는 공장노동자로 일하던 한창 나이의 젊은이였으며, 노조 활동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비밀지하조직의 일원이기도 했다. 참 우스운 것은, 그 비밀조직이란 것이 기껏 오늘날의 진보신당이나 민노당 정도의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결사체였다는 점이다.

청춘의 독서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유시민 (웅진지식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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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첫 작품, 항소이유서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어떤 면에선 더 유연한 사고의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그 조직에서 유시민이란 사람이 썼다는 <항소이유서>란 문건을 읽어보길 권했다. 비밀조직이었던 만큼 차라리 요구이거나 지시라고 해야 옳을 수도 있었던 그 권고를 나는 충실히 이행했다.


어쨌든 나는 무언가를 읽는 것을 세상의 낙으로 생각하던 사람이었으므로, 그 권고는 썩 마음에 내키는 것이었다. 더욱이 특별한 방향이나 지침도 없이 닥치는 대로, 마치 그저 무언가를 읽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는 듯이 독서를 즐기던 내게 그런 권고는 위험한 바다를 떠도는 뱃사람들의 머리위에서 빛나는 북극성처럼 흡족한 것이었다.


오늘 다시 그 문건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당시 그 문건이 던져주는 힘과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삶은 그 문건에서 내가 느꼈던 힘과 감동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물론 그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그가 존경하는 노무현과 그가 딛고 선 땅은 우리 같은 약자들이 묻힌 세상과는 달랐다.

그들이 권력을 쥐고 개혁을 추구하던 시대에도 여전히 노동자들은 해고와 구속에 시달렸고, 농민들은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쌀을 불태우고 얼어붙은 배추를 추운 눈밭에 버렸다. 모든 진보세력들이 한미FTA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일 때, 노무현은 섭섭한 마음을 TV에 나와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유시민은 그 섭섭함의 대변자였다.


중년의 유시민이 쓴 『청춘의 독서』

그 유시민이 책을 냈다. 바로 <청춘의 독서>다. 그리고 나는 지금 대림자동차 정문 앞 ‘대량정리해고 반대 진보신당 천막농성장’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역시 유시민의 글은 명문이다. 세월의 파고를 넘어온 그의 글에선, 이제 그가 스스로 ‘풋내기’였다고 고백한 젊은 시절의 위험한 선언보다는 차분한 성찰이 돋보인다. 그럼에도 현실주의자가 된 그의 글 곳곳에선 여전히 ‘풋내기’ 이상주의자의 면모가 스며있다.


그게 사랑스럽다. 나는 아직 그의 책을 다 읽지 않았다. 겨우 첫 장만을 읽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서둘러 이 서평을 쓰려는 이유는 그 첫 장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기 때문이다. 풋내기 고교생 유시민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과 감동은 세월이 흘러 현실주의자가 된 중년의 유시민의 눈으로 <청춘의 독서> 첫 장에서 재해석된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살인자다. 그는 도끼로 전당포 노파를 죽였으며, 예정에 없이 나타난 배다른 노파의 여동생 리자베따마저 죽였다. 그의 이 엽기적인 살인은 그러나 ‘초인론’이란 이름으로 포장된다. 말하자면, 선한 목적을 위한 악한 수단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전당포 노파 알료나는 악인이었다. 그녀는 아마도 세익스피어가 묘사한 베니스의 샤일록 같은 존재였을 터이다.


게다가 노파는 배다른 여동생 리자베따를 하녀처럼 부려먹었고 그녀가 부업을 해 번 돈까지 빼앗았다. 이런 이야기를 어느 술집에서 우연히 엿듣게 된 라스꼴리니꼬프는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돈을 빼앗기로 결심하고, 이를 결행한다. 그는 ‘악을 응징하고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악행을 택한 셈이다. 그리고 유시민이 표현한바, 이 ‘초인정신’은 후대에 스탈린과 히틀러에 의해 현실세계에서 발현되었다. 


세상은 비범한 사람들에 의해 구원될 수 있을까

유시민에 의하면 라스꼴리니꼬프처럼 스탈린, 히틀러는 ‘비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류를 구원하려는 신념에 입각해 모든 종류의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부여받은, 혹은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라스꼴리니꼬프가 이들 ‘비범한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끔찍한 정신적 번민과 고통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반대로 스탈린과 히틀러, 이들의 지시를 받아 대량학살을 저질렀던 수많은 부하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런 양심적 가책의 증거도 찾을 수 없는 그들이 그러한 죄악을 저지른 결과 어떤 선한 목적도 이루지 못했다는 증거도 너무나 명백하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고 믿었던 ‘비범한 사람들’의 실패한 악행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선이라고 매듭짓는 유시민의 결론은 유려한 문체와 더불어 빛난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 누가 이 마지막 명제에 반박할 수 있을까.


자, 그런데 나는 이 유려하게 빛나는 첫 장을 읽으며 왜 진한 아픔을 느꼈는가. 그것은 아직도 여전히 목적을 위해 악한 수단이 정당화되는 악행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악행에 저항하는 모든 수단이 역으로 악으로 간주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유시민은 여기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자기 성찰로 성숙한 현실주의자 유시민이 아니라 ‘풋내기’ 유시민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들이 든 것은 대림차 정문 앞 농성장에서 한 해고노동자의 피맺힌 절규를 들었을 때였다. 그는 “악질적인 대림자본의 정리해고에 맞서 우리는 더 악해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저들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정리해고 되어 돌아갈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디에 회사에서 쫓겨난 우리를 따뜻이 맞아줄 세상이 있습니까. 여러분, 저들이 악랄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악해져야 살 수 있습니다.” 


풋내기 유시민이었다면?
정리해고와 비범한 자들의 대량학살을 어떻게 비교했을까


‘기업의 입장’이란 이름 아래 자행되는 대량 정리해고는 대량학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과연 ‘풋내기’ 시절의 유시민이었다면 이런 사태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무어라고 말할까. 자기성찰이 부족한(!) 젊은 날의 그였다면 대량학살에 다름 아닌 정리해고를 남발하는 이 나라 ‘기업의 입장’이야말로 처단 받아 마땅한 노파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아니, 성숙한 현실주의자 유시민이라도 마찬가지다.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업의 입장’은 스탈린과 히틀러 같은 비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행이며, 결코 선한 목적조차도 이룰 수 없다고 외쳐야 마땅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 비범한 사람들의 악행이 멈추지 않는 제도화된 악의 나라라고 외쳐야 마땅하다. 그러나 성숙한 현실주의자 유시민은 그저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고 반박할 수 없는 옳은 말만을 할 뿐이다.


아마도 ‘풋내기’ 유시민이라면 “라스꼴리니꼬프의 초인론으로 현실화된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체주의에 맞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동등한 인권과 참정권을 부여하고,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의사결정권을 위임하는 민주주의 체제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따위의 말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기적인 자기 목적을 위해 악행을 일삼는 자본에 맞서 우리도 스스로 악해져야만 합니다.”

19세기의 도스토옙스키는 민주주의가 승리하는 20세기 세계사를 목격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풋내기’ 시절의 이상이 퇴색한 유시민은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보지 못하는 슬픔이 있는 것이다. 현실주의자가 된 유시민이 현실을 목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있지만, 그의 글 곳곳에 나타나는 이상주의의 그림자들은 아직 그가 ‘풋내기’처럼 맑은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게 사랑스럽다. 그래서 나는 그의 『청춘의 독서』를 꼼꼼히 읽어볼 참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각 장마다 모두 서평을 달 생각이다.

<…………>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그는 글을 잘 쓴다. 대충 훑어본 『청춘의 독서』에는 몇 가지 논쟁적 지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판적 의식을 잃지 않고 잘 읽는다면, 우리의 정신세계가 한없이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이 책속에는 있다. 유시민은 국회의원도 했고 장관도 했지만, 그러나 어떤 잘난 직업보다도 그에겐 뛰어난 글쟁이란 이름이 어울린다. 그리고 그게 가장 훌륭하다. 아마 『청춘의 독서』가 그걸 증명해주리라 믿는다. 

청춘의 독서 상세보기
본 도서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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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청바지변천사,
자유와 저항에서 구속과 권력으로

청바지는 원래 작업복으로 태어났다. 노동계급의 작업복. 청바지가 탄생할 즈음, 1848년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한 해였다. 혁명의 소용돌이가 유럽을 휩쓸었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2월 혁명은 독일의 3월 혁명으로 이어지며 전 유럽을 혁명의 열병 속으로 밀어 넣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을 발표했다. 이 짤막한 한 권의 책은 유령처럼 나타나 성경을 능가하는 독자를 확보하며 세계를 양분했다.


1848년은 미국에게도 매우 중요한 한 해였으며 전환기였다. 미국은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대가로 콜로라도, 네바다, 아리조나,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를 얻었다. 1848년 어느 날,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었다. 스코틀랜드 출신 제임스 윌슨 마셜은 제재소의 방수로를 점검하다 번쩍이는 물체를 발견했다. 골드러쉬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때 유태인 리바이 스트라우스도 그 대열에 합류했는데 그는 금을 캐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막촌으로 변한 캘리포니아에 천을 팔기 위해서였다. 

최초의 청바지는 천막용 천으로부터
그러나 리바이의 천은 품질문제, 재고누적 등으로 곧 커다란 곤경에 처한다. 모든 성공담이 그러하듯 위기는 늘 기회와 함께 찾아온다. 리바이 스트라우스에게도 기회는 위기 속에 숨어 찾아 들었다. 납품 클레임에다 엄청난 재고, 산더미 같은 빚과 밀린 임금에 허덕이던 리바이의 눈에 광부들의 낡은 작업복이 들어왔다. 천막 재고는 당장 캘리포니아 노동자들을 위한 바지로 변신한다.

질기고 튼튼한 작업복은 노동자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다. 1853년 리바이는 <Levi Strauss Firm>을 설립했고 후일 Livi's사의 시초가 되었다. 리바이스의 청바지는 진화했다. 뻣뻣하고 무겁고 거친 천막용 회색 범포는 프랑스 님 지방에서 생산되는 서지 드 님(데님)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제노바의 이름을 따 진(jean)이라고도 불리는 보다 부드러운 천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뱀을 피해 일 해야 하는 광부들을 위해 푸른 물감을 들였다. 


청바지가 푸른색으로 태어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광산노동자들의 작업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유는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청색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서민들의 색이었다. 바스코다가마(Vasco Da Gama)가 항로를 개척하여 햇빛에 잘 바래지도 않으며 거친 노동에 긁히거나 때도 잘 타지 않는 청색염료 인디고를 얼마든지 값 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해 준 이후로 청색은 서민에게 친숙한 그리하여 너무나 평범한 색이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블루칼라의 옷이 된 것이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 10점
TBWA KOREA 지음/알마
 “인간은 상징을 조작하는 동물이다.” 
                        상징은 기호의 한 형태다. 
                인간은 옷으로 그 ‘시대’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

    청바지는 노동자의 끈기와 강인함에서 새로운 상징으로 진화해왔다.
 

    
청바지 사회문화사로 세상을 읽다
     프래그머티즘에서 팍스아메리카나로,
          제임스 딘에서 양희은으로,
          노동에서 여가로,
     미국에서 세계로,
     실용에서 사치로,
          마초에서 페미닌으로, 
     반항에서 제도권으로,
     해방에서 구속으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대량생산에서 수제로…

청바지 150년의 역사를 기록한 책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캘리포니아 광부의 작업복으로 태어난 청바지가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했으며 세상을 점령했는가에 대한 지난 150여 년의 역사를 감각적인 디자인과 문장으로 엮어놓은 책이다. 이 책을 보는 순간,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마치 한편의 다큐멘타리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아니 그것은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이 책은 다큐멘타리 영화다. 한 편의 기록영화를 감상하듯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 치웠다.

표지부터가 스타일뤼시한 이 책의 저자는「TBWA KOREA」다. 티비와 코리아? 이름부터가 생소하면서 남다르다. TBWA KOREA는 광고회사다. 매출기준으로는 업계 2위, 평판에서는 업계 1위의 매우 괜찮은 광고회사다. 무엇보다 이들은 세상에 화젯거리를 던질 줄 아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밝은 광고회사다. 우리 눈에 익숙한 광고를 수없이 만들어 낸 이 회사는 그러나 단순한 광고회사이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들은 거부의 증표 중 하나로 이 책을 냈다. 

우선 이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는 것이라는 필자의 느낌을 확인하듯 저자 소개부터 독특하게 시작한다. 

함께한 사람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7명의 TBWA KOREA의 차애리, 허진웅, 윤혜진, 김현우, 이상민, 조주연, 양희선이 글을 쓰고, 1명의 사람 좋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TBWA KOREA 박승욱 부장)가 진행했고, 1명의 익스큐티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TBWA KOREA 박웅현 ECD)가 총감독을 맡았다.


마치 영화의 오프닝이나 엔딩에 등장하는 출연진과 제작진의 자막 같지 않은가? 이 오프닝을 접하는 순간 우리는 “블랙홀 같은 눈빛”과 “스펀지 같은 감수성”에 빠질 각오를 해야 한다. “눈부신 아이디어의 서식지”를 탈출한 이 책은 읽는 내내 “롤로코스터를 타는” 듯한 현기증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실로 이 책은 실존하는 찬란함으로 빛날 뿐 아니라 젊은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까지 한다.

젊음과 자유와 저항의 상징 청바지
우리의 젊은 시절을 대표하는 것이 무엇이었던가? 생맥주, 통기타와 음악다방의 MC,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상징으로 만들어내는 청바지. 청바지가 없이 어떻게 젊음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캘리포니아 광부의 작업복으로 세상에 태어난 청바지는 그러나 우리의 젊음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규제와 구속 대신에 자유와 반항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났다.

절제된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으로 대공황과 양차대전을 견디어낸 프롤레타리아의 청바지도 드디어 자유를 갈망하기 시작한다. 팍스아메리카의 영광과 함께 청바지를 입은 제임스 딘이 등장했다. 그는 자유와 반항의 아이콘이었다. 1960년대를 달구었던 변혁의 회오리 바람 속에도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청재킷과 청바지에 전쟁과 핵무기, 침략을 반대하는 구호를 페인팅 했다. 

평화와 평등을 외치는 그들로 인해 “가장 미국적이던 청바지는 미국을 거부하는 상징으로 변했다.” 노동의 복장이 투쟁의 복장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하여 청바지는 “가장 혁신적인 의복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80년대에 청바지는 “움직이고 달리는” 투쟁현장의 복장으로 등장했다. 청바지는 자유와 저항의 목소리를 뿜어내는 젊음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 이르러 청바지는 다시 한 번 변신을 시도한다.

새로운 종족 보보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KTF의 광고 카피처럼 청바지를 입은 CEO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일명 보보스라고 불리는 신종 엘리트들로서 칼라 없는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캐주얼을 신었다. 이들은 부르주아의 삶을 살지만 보헤미안의 정신세계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헤미안적 저항정신을 보다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물질주의에 반대하는 부자들” “엘리트주의에 반대하며 자란 엘리트”, 이것이 이들에 대한 수사다.

보보스는 WASP(White Anglo Saxson Protestant)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기득권 집단이 아니면서 교육 받은 엘리트로서 부르주아의 영토에 진입한 새로운 종족이었다. 이들의 등장은 블루진에도 상당히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고가의 프리미엄진이 등장했다. “보보스는 하위 계층과 같은 품목을 공유하지만 보다 고가의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지점에 존재하던 보보스와 청바지의 만남은 청바지 역사에 큰 전환점을 만들었다.”

누구라도 잘어울리는 "청바지와 컨버스"의 문화코드에 비해 개성 강한 프리미엄진과 짝꿍 하이힐은 또 하나의 코드다.


19세기 프롤레타리의 작업복으로 탄생한 청바지는 팍스아메리카나의 시작과 함께 검은 음료 코카콜라와 헐리우드와 더불어 세계를 점령했다. 1929년 이전, 청바지는 패셔너블한 옷이 아니었다. 특별한 격식이 필요하거나 멋지거나 스타일뤼시한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저 거친 노동환경에 적합한 질긴 작업복이었다. 그러나 청바지는 대공황을 거치면서 자신만의 상징을 획득했다. 바로 ‘끈기’와 ‘강인함’그리고 ‘힘’이었다. 

대공황으로 무너져가던 미국을 살린 노동계급의 상징성에 카우보이의 멋과 실용주의와 보보스의 철학이 덧칠해졌다. 청바지는 진화했다. 노동현장에서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태어난 블루진이 이제 세계를 주름잡는 팍스아메리카나와 더불어 점령군이 되었다. 블루진은 마지막 식민지라는 여자의 세계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남성성을 대표하던 청바지는 여자들도 점령했다. 프리미엄화되고 개성이 강해지지기 시작하면서 블루진도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청바지는 여성을 두 개의 계급으로 분열시켰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마지막 장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청바지에 구속당하는지에 대해 선명한 LCD화면처럼 자세히 보여준다. 블루진이 하나의 권력이 되기 위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에 대한 디테일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마지막 임무다. 블루진은 최후의 식민지 여성을 새로운 식민지로 삼았다. 청바지는 여성들의 몸을 중세의 코르셋에서 풀어주는 대신 그녀들의 종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청바지는 여성들을 새로운 계급으로 분열시켰다. 이 책은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국광산노동자. 1981년 브룩쉴즈는 "나와 캘빈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란 캘빈 클라인 블루진광고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전지현이나 정려원처럼 축복받은 몸매를 자신 있게 드러내고
어떤 스타일의 청바지든 멋스럽게 소화해내며
우월감을 느끼는 계급과,

그런 그녀들의 몸과 자시의 몸을 번갈아보며 열등감을 느끼고
몸을 움츠리며, 노출 패션을 조장하는 더운 여름이 한없이
원망스러운 계급”


계급간의 괴리가 생기자, 청바지는 (이전에 노동자 계급의 편에 섰던 것처럼) 열등감을 느끼는 계급의 편에 섰다.


다양한 스타일과 색으로
몸매를 보정해주고
청바지가 가진 스타일뤼시함을
그녀들에게도 선물했다.
청바지의 다양한 스타일과
컬러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중세여성의 코르셋과 재단사를 풍자한 그림


그러나 이런 친절한 디테일을 꼼꼼히 들여다볼 열등한 계급의 여성들이 과연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아무리 뚱뚱하고 짧은 다리를  소유한 여자라도 꼭 전지현과 같은
블루진을 고집하려고 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이면서도 늘 부르주아의 영토를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른지….
블루진 다큐《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데님 바지를 갖추고 있는 곳.
현대백화점 무역센터 5층. 청바지 편집 매장 ‘데님바’
그곳에는 9개 나라, 50여 개 브랜드, 450여 가지 스타일의
바지가 가지런히 걸려 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청바지는
과연 얼마나 될까
청바지를 보고 있는 여성들이
청바지를 고르는 것일까
청바지가 이 여성들을 고르는 것일까?
 
 

우리는 과거를 읽었다, 미래를 읽는 건 독자들의 몫?
이 책은 별도로 어떤 결론을 내려고 애쓰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을 만들어낸 이들이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이들은 이 책의 결말이나 결론도 소비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려고 하는 것일까? 청바지의 미래까지 포함해서…. 경쾌하고 발랄한 문체와 신선한 디자인과 편집은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그 경쾌함과 발랄함 뒤에는 메시지의 모호함이 꽤나 아픈 단점으로 투영된다. 어쩌면 그조차도 광고 전문가들인 저자들의 의도일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또 다른 문제점을 하나 발견했다. 끈질기고 강인한 프롤레타리아의 상징성과 자유와 저항, 재해석과 창조 의지를 담은 청바지를 스타일뤼시하면서 자극적인 디자인으로 편집한 이 책이 매우 아이러니한 결함을 하나 갖고 있었다. 스타일에 치중한 탓인지 제본이 조금 허약하다. 두세 차례 책을 뒤적이고 난 지금 청바지 무늬로 포장된 이 책의 일부가 틑어지기 시작했다.

스타일뤼시하면서도 100년이 가도 틑어지지 않을 튼튼한 책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청바지처럼…. 청바지처럼 너무나 친숙하고 그리하여 너무나 평범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한 책이라면. 그러나 어쨌든 이 책의 획기적인 시도는 성공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새로운 도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파비   (주) “ ” 안은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본문 인용/이미지도 모두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속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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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타고 우리지역 10배 즐기기
/김훤주 쓰고 경남도민일보 엮음

우선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아쉬움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왜 비매품으로 했을까? 돈을 받고 팔아도 얼마든지 잘 팔릴 책인데….”

그렇습니다. 비매품이라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아, 공짜로 책을 얻을 수 있었으니 좋지 않았냐고 말씀하실 분도 계시겠습니다. 사실 이 책의 저자는 저와 약간의 인연이 있는 관계로 유료였더라도 책값을 받지 않고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비매품이든 아니든 그것이 제게는 별 상관없는 일일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책을 거저 얻지 못하더라도 저는 얼마든지 돈을 내고 이 책을 사서 볼뿐만 아니라 책장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꺼내보며 두 눈을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운 경치들과 맛깔스런 글들을 되새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웠던 것입니다.

“돈을 받고 팔아도 대형서점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진열될 수 있었을 텐데….”

▲ 시내버스를 타면 눈에 들어오는 너른 들판이 너무 시원하지 않은가! @사진=김훤주

하긴 책의 가운데와 마지막에 지역 기업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의 광고가 실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광고수입은 그저 일회성에 그칠 뿐이고 꾸준하게 들어오는 수입은 역시 책을 팔아 얻는 인세수입이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돈 얘긴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쌀재 임도를 타고 넘어오는 봄내음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행암갯벌에서 반지락을 캐는 할마시들의 웃음소리도 정겨웠습니다. 고성 상족암 바위마다 새겨진 6500만 년 전 혹은 1억 년 전의 공룡발자국들이 바다를 이불삼아 덮었다 걷었다 하는 모양도 아른거립니다.

시내버스는 창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주에도 있고 하동에도 있고 고성에도 있으며 함양에도 있었습니다. 저 멀리 남쪽바다 거제도와 남해에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곳은 시외버스도 함께 타야 합니다.

그러나 김해의 박물관과 왕릉을 둘러보는 데는 시내버스만으로 족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창원에서 김해까지 시내버스가 다닌다니. 이 책을 읽은 독자만이 얻을 수 있는 고급정보라고 하면 좀 지나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어쨌든 유익한 정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한때는 우리도 자가용은 돈 꽤나 있는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사치품이었던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가용 한두 대쯤 없는 집이 없으니 누구나 할 것 없이 바야흐로 행복을 갈구하던 시대에서 만끽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만 같습니다. 과연 그런가요?

▲ 차창 안에 한가득 핀 꽃들이 너무 정겹다. @사진=김훤주

우리는 물질문명이 주는 약간의 풍요로움은 얻었지만 대신에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우선 마음의 여유를 잃었습니다. 그 옛날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떠들고 웃던 시간들도 잃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건물들과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도 이젠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시내버스는 우리에게 유용한 교통수단임과 동시에 사색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차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바라보며 턱을 괴고 깊은 상념에 빠지거나 엔진이 쏟아내는 굉음을 타고 눈부시게 쳐들어오는 따가운 햇살이 안겨주는 나른한 포만감에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제 추억의 저편으로 밀려난 시내버스를 다시 타보라고 권유합니다. 그리하여 요란한 물질의 세계에서 벗어나 조용히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권유합니다. 그 속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옛사람들의 정다운 목소리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저자가 원하는 것은 매일 시내버스를 타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말 혹은 시간이 날 때 시내버스를 타고 가까운 교외로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멀리 바람 따라 나가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무한한 자유와 평화와 행복과 또 뭐 그런 것을 얻을 수 있게 되리란 것입니다.

저자가 미리 앞서 개척한 바에 따르면, 시내버스를 타고 즐기는 여행은 경남의 동쪽 끝 양산, 김해에서부터 서쪽 끝 하동, 함양까지 모두 가능했습니다. 자가용을 버리고 시내버스로 움직이는 여행은 더할 나위 없는 홀가분함과 더불어 주당들에겐 술 마실 자유를 선물로 줍니다.

▲ 버스여행엔 이렇게 맛있는 반주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사진=김훤주

그리고 또 있습니다.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자가용을 끌고 가면 중간에 돌아와야만 합니다. 그러나 자가용을 버리고 떠나면 가고 싶은 곳까지 마음껏 갈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자유가 어디 있을까요? 자가용은 편리함을 주지만 반대로 사람을 구속하기도 합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면 공해 배출도 줄일 수 있고 에너지도 적게 쓰게 되며 교통비 지출도 줄어들게 된다”는 저자의 환경주의적 충고나 재무상의 배려까지 들을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저 시내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따라 다르게 펼쳐지는 창밖 풍경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는 장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당장 시내버스를 타고 통영 앞바다부터 구경해보시는 것은 어떨는지요? 동피랑도 보시고 멍게회덧밥도 한 그릇 드시고 말입니다. 여유가 되신다면 밤마실 끝에 생선회에 소주 한잔 걸치시고 하룻밤 유하시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아니면 우선 가까운 창원 진동면에 있다는 진해현 관아부터 들러보시는 것은 어떨는지요? 원래 진해가 진해의 반대편에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지요? 떠나실 때는 <시내버스 타고 우리지역 10배 즐기기>를 들고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김훤주 기자가 제대로 썼는지 한번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테지요. 만약에 틀린 것이 있다면 돌아와 혼내주면 될 터이고, 제대로 맞게 썼다면 돌아와 술을 한잔 사주면 좋겠지요.

아, 이것도 괜찮겠군요. 팀을 짜서 확인답사를 한번 해보는 것입니다. 큰 돈 드는 것도 아니니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일정을 잡아 떠나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이름도 있어야겠군요. 이러면 어떨까요? <‘시내버스 타고 우리지역 10배 즐기기’ 감사원정대>.

마지막으로 진짜 아쉬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 재미나게 책을 읽다가 문득 허기가 져 컵라면을 끓였습니다. 뜨거운 물에 불고 있는 컵라면에 김이 샐까봐 이 책을 살짝 올려놓았겠지요. 그런데 그만 책 표지가 쭈글쭈글해지고 말았습니다. 흐미~

특히 모자를 눌러쓰고 합천 영암사지 벚꽃길을 걷고 있는 김훤주 기자의 허벅지 부위에 선명하게 엑스자로 주름이 졌습니다. 이런, 참으로 죄송하게 됐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탓은 아닙니다. 혹 표지에 비닐 비슷한 성분이 너무 많이 포함됐던 때문 아닐까요? 흐흐.

ps; 이미 신문에서 대부분 읽었던 것들이지만, 책으로 읽으니 새롭고 더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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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었던 <나는 왜 쓰는가>에서 조지 오웰은 그렇게 말했었다. “작가가 글을 쓰는 첫 번째 동기는 ‘순전한 이기심’ 때문이다.” 그리고 오웰은 그 ‘순전한 이기심’에 대해 친절하게 이렇게 번역해 놓았다. ‘허영심.’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많이 배워야 한다거나, 그래서 허영심을 채워야 한다거나 하는 따위의 엉뚱한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늘 내가 읽고 주제넘게 서평이란 걸 써야 하는 책, <책을 읽을 자유>의 프롤로그를 통해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배움을 통해 얻는 지식은 사람에게 자신감을 준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조지 오웰도 숱한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그런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을 쓰는 이유는 “유명해지고 싶은 허영심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책을 읽을 자유 - 10점
이현우(로쟈) 지음/현암사


 


<책을 읽을 자유>의 저자 이현우 역시 그 비슷한 감흥을 두툼한 책의 첫머리 프롤로그에서부터 내게 주었다. 아주 예감이 좋다. 책을 읽기도 전에 뭔가 커다란 수확을 거둔 농부처럼 마음이 풍성하다. “인생은 ‘책 한 권’ 따위에 변하지 않아.”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럼 지금껏 수많은 위인들이 특별한 책 한 권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던 것은 모두 거짓이었단 말인가?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인터뷰에서 밝히는 것처럼, 어떤 한 권의 책을 통해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했다고 하는 것은 그럼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러 권’입니다. 우리가 좀 ‘덜 비열한 인간’이 되거나 더 나아가 ‘비열하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면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 다수의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인생이 아직도 비열한 인생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가 ‘책만 읽어서’가 아니라 ‘책을 덜 읽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멘트는 평균 독서량이 ‘한 달에 한 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인의 독서 습관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독서캠페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인간이 한 권의 책만 가지고 어떤 깨달음을 얻거나 가치를 정립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을 자유 - 10점
이현우(로쟈) 지음/현암사

그걸 이 저자는 매우 자신 있게 그리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어 그는 또 하나의 특이한 주장을 하게 되는데, “인류는 원래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독서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계발되는 것이다.

물론 이 특이한 주장 역시 그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책 읽는 뇌>라는 책의 저자가 그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그는 덧붙여 인류가 책을 읽게 된 것은 전체 인류사에 견주어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고, 대중적인 독서는 불과 100여 년의 역사에 지나지 않으므로 너무 당연한 말이라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독서 능력이라는 ‘발명품’은 인간에게 주어진 ‘특별한 옵션’이다. “인간은 똑똑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똑똑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란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무기”다.

<책을 읽을 자유>의 저자 이현우는 <로쟈의 저공비행>이란 블로그의 주인장으로 더 유명하다. 나도 사실은 이현우란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었을 뿐이며 로쟈란 이름부터 먼저 알았다. 특별히 지적 허영심이 강한 내게 그의 블로그는 매우 인상적이며 매력적이었다.


<책을 읽을 자유>는 로쟈의 꾸준한 블로그 활동의 결과물이다. 몇 년 동안 알라딘 서평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과 <한겨레>와 <경향신문>, <시사인>등에 실었던 서평이 보태졌다. 그래서 이 책은 그의 표현처럼 매우 ‘불룩한’ 책이 되었다. 무려 600여 페이지에 달한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600여 페이지를 달리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주제, 즉 한 권의 책을 위한 서평에 보통 3페이지, 어떤 경우엔 겨우 1페이지 정도의 가벼운 산책만 하면 된다. 물론 좀 더 긴 것도 가끔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어려운 인문학 주제를 다룬 책들을 이렇게 가볍게 산보하듯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그러다 어떤 하나의 서평에 반해서 선뜻 그 책을 사서 달리기를 해볼 결심을 한다면 그야말로 더 큰 행운을 안게 되는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 책 읽기란 머나먼 이국 땅에서 ‘서울에서 가져온 라면에 김치를 먹을 때’처럼 행복한 일이다. ‘인류가 산출해낸 가장 위대한 정신들의 거처이자 가장 아름다운 양식들의 창고’를 만나는 일이다. 그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독서에 처형된’ 존재였다.

그러나 우리는 굳이 이 선택 받은 저자처럼 책이 만든 단두대에 행복하게 목을 들이밀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독서를 아침 저녁으로 하는 이닦기처럼 습관처럼만 할 수 있다면 족하다. 책을 애인처럼 늘 곁에 두고 자주, 혹은 가끔이라도 애무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흐뭇한 일이랴.

그러다 혹시 알겠는가. 정말 우리도 어느 순간, 행복하게 자청하여 목을 들이밀 ‘단두대의 칼날’을 얻게 될지. 그리하여 진정한 영혼의 거처를 만나게 될지도. 물론 저자의 넋두리처럼 ‘화려한 정신의 맨션’으로 안내 받는 게 아니라 ‘맨땅에 헤딩’할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책을 읽을 자유 - 10점
이현우(로쟈) 지음/현암사

ps1;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고도 돈만 굴리면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발악하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예비 노동자인 대학생들은 자본이 자신을 착취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랄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바라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편입’이라는 것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정직한 토로다.” <379p, 사상의 은사에서 사상의 오빠로, <리영희 프리즘>, 고병권 외, 사계절>

위 글을 읽으면서 ‘책을 읽을 자유’는 고사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취업 수험서를 팔 자유’밖에 없이 ‘자본의 착취’로부터 호명 받을 날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오늘날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정신들의 거처’니 ‘양식들의 창고’니 논하는 것이 배부른 헛소리가 아닌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쩌랴. 당장 육신의 생활고 때문에 영혼의 거처를 포기한다는 건 가엾은 일이 아닌가. 인류를 다른 생명체들, 예컨대 “오징어나 말미잘과 다르게 해주는 것”이 바로 독서다. 인류에게 주어진 이 ‘특별한 옵션’을 포기하는 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더 불행한 것은, 아직 이 세상은 몇몇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특별한 옵션’을 집행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책이 읽기 싫어서’가 아니라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다. 

ps2; 책을 1페이지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다 읽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특히 이 책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내키는 대로 어느 페이지건 심지 뽑듯이 뽑아 읽어도 좋을 그런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마음대로 읽을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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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교육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만들어낸 운동 중에 하나가 대안학교 운동이다. 소셜디자이너란 이름으로 다시 우리에게 다가온 박원순이 그 대안학교들을 둘러본 감상과 거기에서 발견했다는 희망을 들고 왔다.
 
「마을이 학교다」. 박원순이 발견한 희망은 이 책에 담겨있다. 그는 우리 사회에 깊게 드리운 절망의 그늘과 좌절의 한숨 소리에 탄식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맞이한 새로운 밀레니엄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공동체는 회색의 암담한 미래로 채색되고 말았다.”

교육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이 공교육의 자리를 대신했으며, 가계는 사교육비 부담으로 휘청거린다. 박원순은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새순들이 곳곳에서 돋아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마을이학교다함께돌보고배우는교육공동체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박원순 (검둥소, 2010년)
상세보기

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에서 찾을 수 없는 희망을 대안교육에서 찾고 있었는데, 이미 네트워크를 이루고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뭔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발견한 것이다. 박원순이 둘러본 20개가 넘는 학교들은 실제로 기쁨과 희망이 충만해 있었다.

대안학교.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대안학교란 어떤 것일까? 제도권 교육에 익숙하지 않은, 혹은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특별한 학교? 아니면, 제도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적 사회를 구성하면서 새로운 교육을 모색하려는 시도?

어떤 정의든 기존 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운동인 것만은 분명하다. 「마을이 학교다」에 등장하는 대안학교들은 하나같이 행복이 넘쳐났다. 우선 교사들이 가장 행복해보였다. 긍지와 자부심으로 넘쳐나는 교사, 그들이야말로 대안교육의 풍족한 거름이 아닐까. 

대안교육으로 가장 덕을 많이 보는 사람들은 학생과 학부모들일 것이다. 우선 학부모들은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고도 보다 양질의 제대로 된 교육을 아이들이 받을 수 있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더 이상 주입식 교육의 저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 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거의 모든 대안학교들이 초등학교 과정에 집중돼 있었던 것이다. 행복이 넘쳐나는 교육,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지식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물론 풀무학교와 이우학교처럼 중등학교 과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풀무학교는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1호로 인정받는 학교다. 1950년대부터 그 명맥이 이어왔으니 역사도 오래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이것이 이 학교의 정식 명칭이다. ‘더불어 사는 평민’을 배출하는 것이 이 학교의 교육철학이다. 이우학교는 풀무학교와는 많이 달랐다. 민족사관고가 생각났던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무튼 아직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안교육이 성공할 수 있는 곳은 초등학교 과정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실로 대단하다. 나도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지만, 자라나는 새싹에게 스스로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으리라.

그러나 그런 학부모들도 중등학생의 학부모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우학교는 그런 학부모들의 이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믹스한 그런 학교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우학교가 유명세를 타게 된 것도 100대 수능 학교에 들고 외국어와 언어 영역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 아닌가.

만약 이우학교가 나름 제도권 교육 시장에서조차 달성하기 어려운 성적을 내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라도 이 학교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구름처럼 모였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율성을 지향하는 이우학교의 대안교육 프로그램은 매우 매력적인 것은 틀림없어보였다.

결국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대안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매우 높고 계속 확산되어가는 추세에 있지만, 그 유용함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의 일이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꿈은 깨어진다. 그들은 어차피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삶.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비전이요 인생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의 초두에 물었듯이, 과연 교육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교육을 통해 대안적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실천하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썩 믿음이 가지 않는다. 세상은 썩어 악취가 진동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몸에 향수를 뿌리고 깨끗한 옷으로 치장을 한다고 세상이 아름다워질까. 교육이 진실로 교육다운 교육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우선 먼저 세상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의 교육을 배워야 할 모델로 삼는다. 일전에 진보신당의 심상정씨가 핀란드에 다녀와 그쪽 교육 실태에 대해서 보고 겸 강연을 하는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긴 바뀐 세상 아닌가? 우리완 질적으로 다른 사회가 아닌가? 그래서 그런 교육혁명도 가능했던 것 아닐까?”

아마도 우리 사회도 핀란드처럼, 아니 그 반만이라도 닮은 세상이 된다면 박원순이 기쁜 마음으로 답사한 대안학교들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의 우리 마을 어디에서도 만날 수 있는 그런 학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무상급식만 말해도 좌파에 빨갱이가 되는 세상이다.

마을이 학교다 - 10점
박원순 지음/검둥소

핀란드에서 온 어떤 여성이 말했던가. “한국의 좌파는 핀란드에선 우파도 못 돼요!” 이 말을 거꾸로 하면 “핀란드의 우파는 한국의 좌파보다 훨씬 좌파적이다!” 이런 말이 되겠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그러나 어떻든 박원순이 유람한 유토피아들은 매우 의미 있는 것들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절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 빛을 던져주고, 장밋빛으로 물든 미래를 꿈꾸게 해준다. 정말 언젠가 세상이 바뀌어서 굳이 너나 할 거 없이 대학을 가야만 하는 병폐가 사라지는 그런 날이 오면, 이들이 심어 놓은 값진 노력들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고 평화롭게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 대안교육이 주류교육이 되는 그날! 사회가 소득 순으로 서열이 매겨지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학교도 성적순으로 서열을 매길 수밖에 없는 고질적인 상황은 타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기 전에는 대안교육이 튼실하게 뿌리내리길 기대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 

그래서 「마을이 학교다」에 나오는 학교들의 노력들이 더욱 가치 있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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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도시락에 얽힌 추억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동무들과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몰래 도시락을 까먹던 일, 겨울이면 난로 위에 서로 먼저 도시락을 얹어놓으려고 쟁탈전을 벌이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경제위기와 함께 돌아온 도시락의 추억

체육시간이면 남의 도시락 반찬을 훔쳐 먹기 위해 몰래 교실로 기어들던 녀석들도 있었다. 그런 도시락이 요즘 다시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아니라 직장인들 사이에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북하우스>가 펴낸 남진희 글 『직장인 도시락 전략』은 이렇게 말한다.


직장인 도시락 전략
카테고리 요리
지은이 남진희 (북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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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혼자 점심을 먹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어떤 메뉴가 좋을지 의논하며 삼삼오오 몰려나와 점심을 먹는 모습이 많이 줄어든 반면, 편의점에 앉아서 라면이나 김밥 등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거나 샌드위치를 사다가 사무실에서 홀로 먹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이처럼 혼자서 식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식비절약’이라고 한다.

경제위기. 유사 이래 최고의 불경기는 직장인들의 식문화까지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도시락 문화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잃어버렸던 추억을 다시 살린다는 것도 좋은 일이고, 동료들과 점심을 나누어 먹으며 담소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며, 무엇보다 자유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어 좋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들이 도시락을 싼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뜻은 좋지만 작심삼일이 되기 십상이다. 다양하게 소소한 행복을 도시락에 싸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직장인들이 넘어야할 현실의 벽은 높다. 『직장인 도시락 전략』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여든일곱 가지에 달하는 도시락 반찬들을 뒤적이다보면 일단 눈이 즐겁다. 세상에, 이렇게도 많은 종류의 도시락 반찬들이 있었단 말인가. 그저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기만 했던 갖가지 반찬들의 모습이 새삼스럽다. 살아오면서 한 번씩은 만났을 것들인데도 어쩐지 처음 보는 것처럼 생경한 반찬도 있다.

그저 눈으로 보기만 하여도  행복하다. 사람이 누리는 기쁨 중에 먹는 기쁨을 빼놓을 수 없다. 아름다운 산수를 여행하면서 먹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란 말이 실감나리라. 그러고 보니 어찌 직장인에게만 도시락 싸는 기쁨이 행복일쏘냐. 주말 산행에도 빠질 수 없는 게 맛있는 도시락의 즐거움이다.

4가지 유용한 도시락 전략

김밥 하나로 통일된 산행 점심이 직접 싼 도시락으로 대체된다면 자연의 공기가 얼마나 더 풋풋할 것인가. 이 책은 도시락 싸기 비법을 알려주기 전에 먼저 도시락에도 전략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도시락을 싸는 단순한 행동도 반복하면 삶의 전략이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이 전해주는 유용한 4가지 도시락 전략이란 무엇일까?

첫째, 식비절약이다. 하루 점심값 5천원과 커피 값 3천원을 한 달로 치면 약 20만 원이지만, 1년이면 240만 원을 절약하는 셈이 된다. 점심값만 따로 저축해서 여행펀드를 만들거나 노트북을 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건강을 챙길 수 있다. 식당에서는 아무래도 가정에서보다 좋지 않은 재료를 쓰거나 맛을 내기 위해 조미료를 많이 쓴다. 
도시락을 싸면 내가 먹고 싶은 반찬을 내 입맛에 맞게 적당한 양 만큼 선택할 수 있다. 식당에서처럼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고 무리하게 많이 먹을 필요도 없다.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면 칼로리 조절도 가능하다. 그러고 보니 건강을 위해선 도시락이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다이어트로 체중을 조절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셋째,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식당과 메뉴를 찾아 헤매는 시간을 줄이고 대신 책은 본다든가 외국어 학습으로 자기계발을 이끌 수도 있다. 사무실 주변의 조용한 공원에서 산책을 즐기거나 명상에 잠길 수도 있다. 또는 인터넷 서핑을 통해 뉴스를 보거나 새로운 정보를 습득할 수도 있다.

넷째, 친목 도모에 유용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나중엔 점심시간이 친목 도모의 장이 될 것이다. 도시락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개인의 성향이나 가족사까지도 빠짐없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게 되고 신뢰가 쌓일 것이다. 

점심 도시락으로 맺어진 우정과 신뢰는 저녁시간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휴가 때 가족들과 함께 주말농장에 놀러 갈 수도 있다. 작은 친목은 나아가 평소 교류가 없던 부서의 직원들과도 친해지게 되어 인맥 쌓기에도 도움이 된다. 식비절약으로 출발한 도시락이 건강과 자투리 시간과 친목을 통한 인맥까지 제공하는 것이다. 

도시락은 생활의 즐거움

이 책은 ‘소소한 이유로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여 지금은 도시락 마니아가 된 5명의 도시락 고수들’이 들려주는 도시락 생활의 즐거움도 소개한다. “밥 먹고 남는 시간에 아이를 위한인터넷 쇼핑을 한다”는 김혜원 주부는 웹 디자이너다. 출판사기획편집자인 박상경 씨는 “몸은 물론 마음도 건강해진 느낌”이라고 말한다. 

점심식사후의 산책을 통해 하루의 활력소를 찾았다거나, 점심값을 아껴서 스노보드복을 구입했다는 도시락 마니아들. 그러나 무엇보다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온라인 마케터 원동령 씨의 인터뷰에선 공감과 희망이 함께 묻어났다. 그리고 이 책은 짤막하게 여러나라의 점심 풍경과 도시락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일본은 역시 도시락 천국이다. 다양한 종류의 도시락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집 떠날 때 가져가는 오니기리에서 시작된 일본의 도시락은 이제 현대인에게 매우 필요한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혼자 사는 직장인들이 집에서 음식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네모난 도시락 하나면 한 끼가 만족스럽게 충족되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책상을 제외한 네 발 달린 것은 모두 먹는다는 중국은 직접 싸기보다는 주문형 도시락이 주종을 이룬다. 아침도 점심도 모두 사먹는 외식의 나라 베트남, 실용의 나라 미국의 점심 풍경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음식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의 점심풍경은 또 우리와 얼마나 다를까? 

『직장인 도시락 전략』은 본격적인 도시락 싸기 비법을 알려주기 전에 <식재료&밑반찬 장보기 노하우>부터 소개한다. 도시락을 싸기 위해선 우선 기본부터 익혀야 하는 것이다. 오이나 당근, 버섯을 고르는 방법을 신선한 사진과 함께 보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장보기의 달인이 되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직장인 도시락 전략』과 함께 꿈꾸는 미래는 행복

소고기, 돼지고기 등 육류와 건어물 그리고 양파, 달걀, 두부, 대파&쪽파 등 기본식재료 역시 친절한 사진 설명과 더불어 어떤 것이 신선하고 좋은 것인지 알려준다. 대표 볶음 밑반찬, 대표 젓갈, 대표 장아찌, 대표 김치를 각 4가지씩 익히고 나면 이제 우리는 도시락을 싸기 위한 준비를 반은 한 셈이다. 

이어지는 집으로 배달되는 인터넷 밑반찬집과 도시락 용기 쇼핑몰에 대한 소개, 초보에게 꼭 필요한 도시락 쉽게 싸는 요령 10가지는 초보 도시락 마니아들을 위한 정보다. 거기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두고 먹는 반찬, 시판 양념장을 이용한 스피드 반찬까지 보았다면 아무리 초보자라도 도시락을 싸기 위한 준비는 거의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야 이 책의 독자들은 도시락 싸기 비법을 실전처럼 전수받을 준비를 하게 된다. 비로소 87가지 각양각색의 도시락들이 맛깔스런 그림들과 함께 펼쳐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α로 확 달라지는 스페셜 도시락까지 배우고 나면 여러분은 드디어 도시락 고수다. 

이 책은 요리책이다. 그러나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다. 경제전략이 숨어있는 요리책이며, 인맥의 가이드이며, 행복의 안내자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을 받아보고 ‘이걸 읽고 어떻게 후기를 쓰지?’ 하고 걱정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가장 찾기 쉬운 책장에 꽂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들고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즐거운 책이었다. 

『직장인 도시락 전략』을 통해 도시락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추억과 정은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커다란 힘’이다. 그리하여 여러분 중 누군가가 추억의 담장을 넘어 지금 당장 도시락 싸기를 마음먹었다면  물질적, 육체적 이득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큰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상상해보라. 그대의 미래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가.

직장인 도시락 전략
카테고리 요리
지은이 남진희 (북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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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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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는 환상소설이었다. 환타지소설이라고도 불리는. 그리고 이 소설은, 아니 소설집은 단편을 모은 책이었다. 10명의 환상소설가들이 쓴 단편집의 제목이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였다. 나는 처음에 환상소설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환타지소설이란 단어를 찾아내고 "아, 그거!" 했을 뿐으로 나는 환상소설에 대해선 무지했다. 환타지란 낱말과 환상이란 낱말을 연결시키지도 못할 정도로.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영도 (황금가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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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이 책을 다 읽어야만 했다. 내게는 주어진 임무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이 책을 끝까지 다 읽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나는 난관에 봉착했다. 자, 이 열편의 소설 중 어느 것부터 읽어야 하는 거지? 보통 하던 대로 처음부터 읽어야 할까? 아니면 끝에서부터 거꾸로 읽어오기 시작할까? 그러다 나는 이 소설의 제목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부터 읽는 게 아무래도 예의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는 책의 가운데쯤 위치해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상한 마력에 끌려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아, 이런 게 바로 환상소설인가보군.' 기묘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나는 묘한 흥분에 휩싸였다. 마치 딸애가 좋아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함께 볼 때와 같은 두근거림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한 스스로 재미없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하는 주인공은 달팽이와 대화를 나눈다. 

대문과도 대화를 나누고 계단과도 대화를 나눈다. 영화와도 대화를 나누며 티켓과도 대화를 나눈다. 그가 하는 얘기는 재미없는 얘기도 있고 재밌는 얘기도 있다. 그리고 그는 커피잔을 들고 얘기를 하다가 재채기를 한다. 그러면 세상은 하나의 점으로 수축된다. 세상은 모두 한 점에서 시작됐고 한 점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모든 사물은 하나의 씨앗에서 나왔으며 연관돼 있다는 걸 말하고자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생소하고 신선하다. 

아마 어쩌면 첫 대면에서부터 지루하게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난해한 철자를 해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고통을 겪었다면 그만 책장을 덮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렇게 관대한 편이 아니다. 그러나 9장의 워밍업은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제 첫 페이지로 넘어가보자. <학교>.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가 가벼운 워밍업 환타지였다면, <학교>는 본격적인 환타지였다. "세상에… 이런 걸 소설로 쓸 수 있다니."

나는 전율했다. 이 소설은 단편이라지만 꽤나 길었다. 66페이지에 달하는 긴 글의 마지막은 상상하지 못했던 급격한 반전으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러나 두려움이란 묘한 중독성을 갖고 있다. 무서움에 떨면서도 우리는 밀실에 무엇이 있을까 엿보고 싶은 궁금증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어지는 <노래하는 숲>, <노인과 소년>, <천국으로 가는 길>을 읽으며 나는 환상소설의 기묘한 마력에 어느덧 빠져들고 있었다.

책을 읽는 중에 아는 형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잠시 책장을 덮고 인근 중국집으로 그를 만나라 갔다. 짬뽕에 소주를 몇 병 시켜놓고 대화중에 내가 말했다. "형님, 내가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아세요? 환상소설이란 건데요." 내 이야기를 대충 듣던 그 형은 내게 혹시 이영도를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의 맨 마지막에 <샹파이의 광부들>이란 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아직 읽지는 않았다고 말하자 그는 이영도에 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영도 (황금가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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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사람이야. 진짜 대단하지. 너는 그럼 <드래곤 라자> 아직 안 읽어봤겠구나. 한 10년 됐는데 게임으로도 나왔잖아. 그걸 모르다니…, 그 친구 그리고 우리 동네 사람 아이가. 여, 경남대 출신이잖아." 그리고 그는 이어 말했다. "여기 출신들 중에 유명한 소설가가 좀 있지. 전경린이도 있고. 너, 경남대 송 선생 알잖아. 송 선생이 친하니까 만나고 싶으면 언제 한 번 볼 수 있을 거야."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샹파이의 광부>들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작가는 우리 동네 사람이었다.

형의 말처럼 이영도는 실로 대단한 작가였다. 그는 그 동안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을 단박에 깨주었다.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이란 참으로 미안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첫 번째는 서울의 대학에 대한 지방대의 선입견이요, 두 번째는 환타지소설이란 대체로 무협지 이상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종이 위에 뿌려댄 놀라운 상상력의 씨앗들은 실로 역사, 문화, 철학, 과학에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들이라고 여겨졌다. 씨앗들을 엮어내는 문장 솜씨 또한 천하일품. 

<샹파이의 광부들> 속에는 엄청난 파격이 숨어있었다.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상상할 수 없었던 파격들은 내 상식을 여지없이 부셔놓았다. 책을 다 읽고 난 나는 잠시 멍청한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머지 단편들을 마저 읽었다. <은아의 상자>, <뮤즈는 귀를 타고>, <장미정원에서>, <소설을 쓰는 사람에 대한>. 단편소설 <장미정원에서>는 한참동안 나를 슬픔에 빠뜨리기도 했다. 영화 <식스센스>나 <디 아더스>를 감상하며 느꼈던, 그런. 

<뮤즈는 귀를 타고>는 참으로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환타지소설이 아니라면 만들어낼 수 없는 공상의 세계를 이 단편을 통해 유감없이 볼 수 있었다는 건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수천 년의 시간과 유럽과 아시아, 미주의 공간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은 그야말로 환타지소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엄청난 시공여행의 마지막 결론을 콘돔광고로 장식한 것도 매우 재미난 발상이었다. 글쎄, 좀 코믹하단 생각을 하긴 했지만, 환타지 시공여행의 결론이 우리나라였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아무튼 매우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내가 열렬한 환타지소설의 독자가 되리라고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생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하나 더 느낀 것이 있다면, 인터넷이 얼마나 세상을 다채롭게 변화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정말 세상은 많이 변했다. 그런데 나는 무얼 하며 살았을까? 소설의 재미를 떠나 자괴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물론 사람은 저마다 자기 기호에 따라 살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내가 세상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설의 재미를 떠나 그저 드는 생각일 뿐이긴 하지만… 내겐 놀라운 경험이었다.

본 도서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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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가끔 터지는 사법 비리를 볼 때마다 우리는 커다란 슬픔에 빠진다. 신영철 대법관이 이메일을 일선 판사들에게 보내 판결에 개입했다는 보도가 났을 때, 세상 사람들은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며 부패한 사법부에 질시의 눈길을 보낸다. 그러나 그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무어라 생각하건 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신영철 대법관은 여전히 법복을 입고 법정에서 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그가 가진 저울이 권력에, 자본에, 구체적으로 삼성에 기울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아니, 그들만은 이 모든 사실들을 모르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법조라 불리는 특수한 세계에 사는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선택받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불멸의 신성가족』의 저자 김두식도 바로 이 특별한 사람들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에게 보내는 사람들의 지나친 예우는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이미 영감이 된 것이다. 그는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맑스가 말한 것처럼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된… 고독한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인 신성가족의 실체를 자신이 속한 특수한 세계의 특별한 사람들로부터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마음속으로부터 울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 타락하고 부패한, 거부할 수 없는 관계망으로부터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법복을 벗고 교수가 되었다. 그는 이제 마음속에 숨겨진 양심에 따라 세상을 향해 신성가족을 고발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 결과가 이 책이다. 여기서 우리가 만날 주제들은 하나같이 낯설지 않은 것들이다. ‘전관예우’ ‘거절할 수 없는 돈’ ‘청탁’ ‘압력’ ‘평판’…, 신성가족의 일원으로 이 주제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이 책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에 진실이란 옷을 입혀준다. 이 책은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러나 편안하게 대포집에서 막걸리를 나누며 친구와 대화하듯 하는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실의 구술자들은 모두 현직 판검사, 변호사들이다. 그들이 사법비리를 폭로하면서도 자기변명을 하는듯한 태도가 좀 거슬리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그들 역시 신성가족의 일원이란 사실을 잠시 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들과 함께 대포집에 앉아 마음껏 신성가족의 실체를 까발겨보자. 그리고 마음껏 분노해보자. 세상은 우선 까발기고 분노하는 것으로부터 변화의 싹이 트는 것이니까. 이 책은 바로 그 분노의 밭에 씨앗을 뿌리는 농부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불멸의 신성가족 - 10점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위 글은 8/28일자(금) 경남도민일보 1면 <책이 희망이다> 코너에 실렸던 글입니다. 본래 이렇게 써 보낸 글이 너무 길다고 뒷부분이 살짝 잘렸습니다. 이발을 잘 해주신 덕에 신문에 난 글이 더 훌륭해 보이지만, 그래도 저는 원래 제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원문을 여기 올려봅니다. 김훤주 기자의 전화 부탁으로 썼는데, 전날 심상정 초청 토론회 갔다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새벽까지 과음한 관계로 오전 내도록 해매는 중에 받은 전화였습니다. 저는 원래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무조건 '네' 또는 '응'이 먼저 나가는 편입니다. 역시 그랬습니다. 후회가 막급했지만, 오후 2시경 일어나서 부랴부랴 써서 넘겼습니다. 4시까지 마감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다른 저명한 분들에게 여기저기 부탁하다가 너무 시간이 급하다고 고사하는 바람에 제가 대타로 찍혔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저를 찍어준 김훤주 기자에게 고맙습니다. 김훤주 기자는 자기가 고맙다고 한 잔 사겠다고 했지만, 그건 아닙니다. 우리가 신문에 이름 내기 어디 쉽습니까?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는 분도 계신 판에요. 그래도 한 잔 산다면 그것 역시 저는 거절할 수 없습니다. 똑 같은 이유로 말입니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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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알라딘에서 받은 책 제목이다. 무슨 이런 섬뜩한 책 제목도 다 있단 말인가. 사람을 먹으면 안 된다니. 그럼 사람을 먹는 사람들이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물론 이건 나의 기우였다. 섬뜩한 제목과 달리 책은 처음부터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33개의 퍼즐로 구성된 이 책의 첫 번째 퍼즐은 "생각이 많으면 공주를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어느 왕국이 있다. 이 왕국에는 왕과 왕비가 있다. 왕과 왕비에겐 아리따운 공주가 있다. 그리고 똑똑이 왕자와 안똑똑이 왕자가 있다. 똑똑이 왕자는 별로 잘 생기지도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