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평

풍운아, 기인, 또는 건달 채현국

기인이었다. 사실 나는 이 책 <풍운아 채현국>을 읽어보기 전에 그를 먼저 만났다. 창원대학교 강당에서 열렸던 이 책 출판기념회에서였다. 엄밀히 말하면 출판기념회가 아니고 북 콘서트라고 해야겠다.

 

다시 사실을 말하면, 나는 북 콘서트의 개념을 잘 모른다. 아마 대충 내가 아는 개념대로라면 북 콘서트란, 책을 통해 사람들이 모여 즐기고 소통하는 것이다. 하나의 문화행사다.

 

이날의 북 콘서트는 책을 팔기 위한 목적보다는 채현국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무엇을 했는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런 것들을 나누는 그런 소통의 자리였다고나 할까.

 

하여튼 내가 그때 처음 본 채현국이란 노인은 기인이었다. 그는 거침이 없는 사람이었다. 욕도 예사롭게 해댔다. 그래서 그의 이력을 잘 모르고 그의 대화를 듣게 된다면, 뭐 이런 노인네가 다 있지? 하며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른다.


그의 입에서 마구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 같은 욕설을 듣노라면 그가 과거에 건달이었던지 아니면 최소한 무식한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여길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기 스스로 건달이라고 했다. 또 그 이후에 읽어본 이 책에 따르면, 그의 친구들은 그를 일러 만약 이 친구가 돈이 없었다면 천상병처럼 되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천상병 시인의 기인 행적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던 터이지만, 그러고 보니 채현국 노인의 외모가 천상병 시인을 닮은 듯도 싶다. 각설하고.


 

그는 기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유심히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첫 대목부터 나는 아, 하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그는 기인이 맞다. 그는, 과거 그 시절에 이른바 서울대 중의 서울대라 불리던 서울문리대 출신이었다. (나는 그의 외모나 말투만 보고 진짜 그가 무학자에다 건달 출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토록 무식하게, 쓰레기 같은 욕설이 뒤섞여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말들의 행렬 속에 놀랍도록 고매한 지식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건달 입에서 버나드 쇼가 나오고 니체가 나온다면 사실 평범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건달이었지만, 대단한 학식을 겸비한 건달이었다.

 

, 그럼 지금부터 책 이야기를 하자. 어차피 이 글은 이 책을 읽고 난 독후감이다. 그런데 책 이야기는 안 하고 서두에 노인 채현국 혹은 건달 채현국에 대한 이야기만 해댔으니. 책을 쓴 김주완 기자가 섭섭하다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면 그리 섭섭할 일도 아니다. 채현국을 이야기하는 것이 곧 이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까. <풍운아 채현국>은 김주완 기자가 채현국 노인을 만나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그러므로 그저 채현국의 어록이라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사진.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김주완은 친절하게도 책의 첫머리에 채현국을 모르는 대다수의 독자를 위해 그의 이력을 간단하게 알려준다. 방법은 기록을 찾아 소개하는 것이다. 과거에 그를 아는 사람들이 남겼던 기록을 꼼꼼하게 더듬는 작업은 그 특유의 성실함이다.

 

그는 가끔 술자리에서, 대충 기억나는 대로 쓰자면 이런 말을 했다. “취재하러 왔다는 놈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온다면 그게 말이 되겠느냐. 그래서 나는 누구를 취재하러 가기 전에 먼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사부터 한다. 그게 사람에 대한 예의다.”

 

그가 소개한 채현국은 이런 사람이었다.

 

채현국 형은 가두의 철학자라고 내가 부르는데 당대의 기인이라 할 것이다. 옷도 막 입고 말도 막 하고 술도 막 마시고…… 집안에 돈이 있어서 그렇지 없었으면 천상병 시인과 비슷해졌을 것이다.” (남재희, 언론인, 전 노동부장관)

 

그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고 헤어질 때 차비를 쥐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셋방살이를 하는 친구들에게는 조그마한 집을 한 채씩 사주는 파격의 인간이다. (임재경, 언론인)

 

채현국은, 그 당시 표면에는 일절 나서지 않으면서 군사정권의 지명수배를 받거나 도망치 다니는 사람들을 그 탄광에 받아서 그들에게 호신처를 제공하고, 또 음으로 양으로 반독재 노선을 추구하는 지식인들과 학생들 그리고 문인들을 경제적으로 도와준 훌륭한 분이오.” (리영희, 전 언론인)

 

존경하는 리영희 선생까지 나서서 훌륭한 분이라고 치켜세웠으니. , 이쯤되면 더 소개할 필요가 없겠다. 이외에 인정의 사나이, 활빈당주 등 그를 따라 다니는 수식어들은 실로 넘치고도 남았다. 무엇보다 스스로 건달을 자처하는 그는 기인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의 부친 역시 기인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채기엽. 젊어서 물산장려운동에도 투신했으며, 나중에 임시정부에 합류하고자 상해로 건너가서는 사업에 투신해 큰돈을 벌게 된다. 해방 후 귀국한 이후에도 사업수완을 발휘 재벌급의 기업을 일구게 된다.

 

그의 부친 역시 기인이었다는 것은, 독립운동에 투신하겠다는 일념으로 가족까지 팽개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이나, 대륙에서 트럭을 몰고 사지를 오가며 무역을 해 큰돈을 벌었다는 것이 아니다. 부친도 채현국과 마찬가지로 돈이 생기면 여기저기 나누어주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상해에서 이분에게 은혜를 입은 한국인은 아마 백 수십 인이 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그들이 아직 당시의 은혜를 갚는 것 같지 않다. 뿐만 아니라 계속 누를 끼치고 있기까지 하다. ‘은혜가 다 뭐냐. 다들 건강하게 일 잘하고 있으면 그로써 만족하다고 말씀하시지만 부끄럽기 한이 없다. 희귀한 인물임을 특기해두고 싶다.” (이병주, 소설가)

 

, 이쯤 되면 책 얘기도 더 할 필요가 없겠다. 직접 읽어보시라. 그의 어록을. 그럼에도 하나 특이사항을 소개한다면 대학 시절 그가 탤런트 이순재와 연극반에서 함께 했었다는 사실이다. 책 속에 나오는 그의 말이다.

 

한번 전화를 했는데, ‘이름 들어봐야 잘 모를 끼다. 나 채현국이다했더니 왜 몰라?’ 하대. 그래서 이 자식, 알면서 전화도 한번 안 했냐고 하니 지금도 욕하는데. 뭐 욕먹으려고 전화 하냐?’ 하더군. 2년 선배에요.”

 

그러고 보니 이순재가 서울대 철학과 출신이었다. 나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늙어서 케이블방송에서 상조회 광고나 하는 그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내 사정이고. 아무튼 채현국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 이름들만 해도 쟁쟁하다. 책을 통해 직접 만나보시기를 바란다.

 

채현국 선생은 이미 유명인사가 됐다. 그의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모니터가 그의 사진들로 꽉 찬다.


, 특이사항이 하나 더 있다. 채현국 부자가 현 경남대학교를 당시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이던 박종규가 인수(강탈?)하기 전 소유주였다는 사실. 우리 지역 일이니 관심이 아니 갈 수가 없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비사다. 어쨌든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입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많은 사실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그의 입을 통해 세상을 발가벗겨보는 재미도 느끼게 될 것이다. 채현국은 실로 기인이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세상에 정답은 없다. 무수한 해답만 있을 뿐!” “재산은 세상 것이다!”와 같은 그의 어록이 아니라도 그는 삶 자체가 기인이다. 그러나 이 책 <풍운아 채현국>을 읽고난 이제 그를 이렇게 불러야겠다.

 

채현국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