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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학교가 세상을 바꿀까, 세상이 학교를 바꿀까?

교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교육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만들어낸 운동 중에 하나가 대안학교 운동이다. 소셜디자이너란 이름으로 다시 우리에게 다가온 박원순이 그 대안학교들을 둘러본 감상과 거기에서 발견했다는 희망을 들고 왔다.
 
「마을이 학교다」. 박원순이 발견한 희망은 이 책에 담겨있다. 그는 우리 사회에 깊게 드리운 절망의 그늘과 좌절의 한숨 소리에 탄식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맞이한 새로운 밀레니엄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공동체는 회색의 암담한 미래로 채색되고 말았다.”

교육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이 공교육의 자리를 대신했으며, 가계는 사교육비 부담으로 휘청거린다. 박원순은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새순들이 곳곳에서 돋아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마을이학교다함께돌보고배우는교육공동체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박원순 (검둥소,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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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에서 찾을 수 없는 희망을 대안교육에서 찾고 있었는데, 이미 네트워크를 이루고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뭔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발견한 것이다. 박원순이 둘러본 20개가 넘는 학교들은 실제로 기쁨과 희망이 충만해 있었다.

대안학교.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대안학교란 어떤 것일까? 제도권 교육에 익숙하지 않은, 혹은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특별한 학교? 아니면, 제도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적 사회를 구성하면서 새로운 교육을 모색하려는 시도?

어떤 정의든 기존 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운동인 것만은 분명하다. 「마을이 학교다」에 등장하는 대안학교들은 하나같이 행복이 넘쳐났다. 우선 교사들이 가장 행복해보였다. 긍지와 자부심으로 넘쳐나는 교사, 그들이야말로 대안교육의 풍족한 거름이 아닐까. 

대안교육으로 가장 덕을 많이 보는 사람들은 학생과 학부모들일 것이다. 우선 학부모들은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고도 보다 양질의 제대로 된 교육을 아이들이 받을 수 있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더 이상 주입식 교육의 저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 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거의 모든 대안학교들이 초등학교 과정에 집중돼 있었던 것이다. 행복이 넘쳐나는 교육,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지식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물론 풀무학교와 이우학교처럼 중등학교 과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풀무학교는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1호로 인정받는 학교다. 1950년대부터 그 명맥이 이어왔으니 역사도 오래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이것이 이 학교의 정식 명칭이다. ‘더불어 사는 평민’을 배출하는 것이 이 학교의 교육철학이다. 이우학교는 풀무학교와는 많이 달랐다. 민족사관고가 생각났던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무튼 아직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안교육이 성공할 수 있는 곳은 초등학교 과정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실로 대단하다. 나도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지만, 자라나는 새싹에게 스스로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으리라.

그러나 그런 학부모들도 중등학생의 학부모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우학교는 그런 학부모들의 이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믹스한 그런 학교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우학교가 유명세를 타게 된 것도 100대 수능 학교에 들고 외국어와 언어 영역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 아닌가.

만약 이우학교가 나름 제도권 교육 시장에서조차 달성하기 어려운 성적을 내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라도 이 학교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구름처럼 모였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율성을 지향하는 이우학교의 대안교육 프로그램은 매우 매력적인 것은 틀림없어보였다.

결국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대안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매우 높고 계속 확산되어가는 추세에 있지만, 그 유용함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의 일이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꿈은 깨어진다. 그들은 어차피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삶.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비전이요 인생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의 초두에 물었듯이, 과연 교육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교육을 통해 대안적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실천하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썩 믿음이 가지 않는다. 세상은 썩어 악취가 진동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몸에 향수를 뿌리고 깨끗한 옷으로 치장을 한다고 세상이 아름다워질까. 교육이 진실로 교육다운 교육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우선 먼저 세상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의 교육을 배워야 할 모델로 삼는다. 일전에 진보신당의 심상정씨가 핀란드에 다녀와 그쪽 교육 실태에 대해서 보고 겸 강연을 하는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긴 바뀐 세상 아닌가? 우리완 질적으로 다른 사회가 아닌가? 그래서 그런 교육혁명도 가능했던 것 아닐까?”

아마도 우리 사회도 핀란드처럼, 아니 그 반만이라도 닮은 세상이 된다면 박원순이 기쁜 마음으로 답사한 대안학교들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의 우리 마을 어디에서도 만날 수 있는 그런 학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무상급식만 말해도 좌파에 빨갱이가 되는 세상이다.

마을이 학교다 - 10점
박원순 지음/검둥소

핀란드에서 온 어떤 여성이 말했던가. “한국의 좌파는 핀란드에선 우파도 못 돼요!” 이 말을 거꾸로 하면 “핀란드의 우파는 한국의 좌파보다 훨씬 좌파적이다!” 이런 말이 되겠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그러나 어떻든 박원순이 유람한 유토피아들은 매우 의미 있는 것들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절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 빛을 던져주고, 장밋빛으로 물든 미래를 꿈꾸게 해준다. 정말 언젠가 세상이 바뀌어서 굳이 너나 할 거 없이 대학을 가야만 하는 병폐가 사라지는 그런 날이 오면, 이들이 심어 놓은 값진 노력들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고 평화롭게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 대안교육이 주류교육이 되는 그날! 사회가 소득 순으로 서열이 매겨지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학교도 성적순으로 서열을 매길 수밖에 없는 고질적인 상황은 타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기 전에는 대안교육이 튼실하게 뿌리내리길 기대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 

그래서 「마을이 학교다」에 나오는 학교들의 노력들이 더욱 가치 있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