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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환상소설가들이 만드는 세계의 첫경험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는 환상소설이었다. 환타지소설이라고도 불리는. 그리고 이 소설은, 아니 소설집은 단편을 모은 책이었다. 10명의 환상소설가들이 쓴 단편집의 제목이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였다. 나는 처음에 환상소설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환타지소설이란 단어를 찾아내고 "아, 그거!" 했을 뿐으로 나는 환상소설에 대해선 무지했다. 환타지란 낱말과 환상이란 낱말을 연결시키지도 못할 정도로.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영도 (황금가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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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이 책을 다 읽어야만 했다. 내게는 주어진 임무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이 책을 끝까지 다 읽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나는 난관에 봉착했다. 자, 이 열편의 소설 중 어느 것부터 읽어야 하는 거지? 보통 하던 대로 처음부터 읽어야 할까? 아니면 끝에서부터 거꾸로 읽어오기 시작할까? 그러다 나는 이 소설의 제목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부터 읽는 게 아무래도 예의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는 책의 가운데쯤 위치해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상한 마력에 끌려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아, 이런 게 바로 환상소설인가보군.' 기묘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나는 묘한 흥분에 휩싸였다. 마치 딸애가 좋아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함께 볼 때와 같은 두근거림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한 스스로 재미없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하는 주인공은 달팽이와 대화를 나눈다. 

대문과도 대화를 나누고 계단과도 대화를 나눈다. 영화와도 대화를 나누며 티켓과도 대화를 나눈다. 그가 하는 얘기는 재미없는 얘기도 있고 재밌는 얘기도 있다. 그리고 그는 커피잔을 들고 얘기를 하다가 재채기를 한다. 그러면 세상은 하나의 점으로 수축된다. 세상은 모두 한 점에서 시작됐고 한 점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모든 사물은 하나의 씨앗에서 나왔으며 연관돼 있다는 걸 말하고자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생소하고 신선하다. 

아마 어쩌면 첫 대면에서부터 지루하게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난해한 철자를 해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고통을 겪었다면 그만 책장을 덮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렇게 관대한 편이 아니다. 그러나 9장의 워밍업은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제 첫 페이지로 넘어가보자. <학교>.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가 가벼운 워밍업 환타지였다면, <학교>는 본격적인 환타지였다. "세상에… 이런 걸 소설로 쓸 수 있다니."

나는 전율했다. 이 소설은 단편이라지만 꽤나 길었다. 66페이지에 달하는 긴 글의 마지막은 상상하지 못했던 급격한 반전으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러나 두려움이란 묘한 중독성을 갖고 있다. 무서움에 떨면서도 우리는 밀실에 무엇이 있을까 엿보고 싶은 궁금증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어지는 <노래하는 숲>, <노인과 소년>, <천국으로 가는 길>을 읽으며 나는 환상소설의 기묘한 마력에 어느덧 빠져들고 있었다.

책을 읽는 중에 아는 형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잠시 책장을 덮고 인근 중국집으로 그를 만나라 갔다. 짬뽕에 소주를 몇 병 시켜놓고 대화중에 내가 말했다. "형님, 내가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아세요? 환상소설이란 건데요." 내 이야기를 대충 듣던 그 형은 내게 혹시 이영도를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의 맨 마지막에 <샹파이의 광부들>이란 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아직 읽지는 않았다고 말하자 그는 이영도에 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영도 (황금가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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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사람이야. 진짜 대단하지. 너는 그럼 <드래곤 라자> 아직 안 읽어봤겠구나. 한 10년 됐는데 게임으로도 나왔잖아. 그걸 모르다니…, 그 친구 그리고 우리 동네 사람 아이가. 여, 경남대 출신이잖아." 그리고 그는 이어 말했다. "여기 출신들 중에 유명한 소설가가 좀 있지. 전경린이도 있고. 너, 경남대 송 선생 알잖아. 송 선생이 친하니까 만나고 싶으면 언제 한 번 볼 수 있을 거야."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샹파이의 광부>들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작가는 우리 동네 사람이었다.

형의 말처럼 이영도는 실로 대단한 작가였다. 그는 그 동안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을 단박에 깨주었다.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이란 참으로 미안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첫 번째는 서울의 대학에 대한 지방대의 선입견이요, 두 번째는 환타지소설이란 대체로 무협지 이상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종이 위에 뿌려댄 놀라운 상상력의 씨앗들은 실로 역사, 문화, 철학, 과학에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들이라고 여겨졌다. 씨앗들을 엮어내는 문장 솜씨 또한 천하일품. 

<샹파이의 광부들> 속에는 엄청난 파격이 숨어있었다.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상상할 수 없었던 파격들은 내 상식을 여지없이 부셔놓았다. 책을 다 읽고 난 나는 잠시 멍청한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머지 단편들을 마저 읽었다. <은아의 상자>, <뮤즈는 귀를 타고>, <장미정원에서>, <소설을 쓰는 사람에 대한>. 단편소설 <장미정원에서>는 한참동안 나를 슬픔에 빠뜨리기도 했다. 영화 <식스센스>나 <디 아더스>를 감상하며 느꼈던, 그런. 

<뮤즈는 귀를 타고>는 참으로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환타지소설이 아니라면 만들어낼 수 없는 공상의 세계를 이 단편을 통해 유감없이 볼 수 있었다는 건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수천 년의 시간과 유럽과 아시아, 미주의 공간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은 그야말로 환타지소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엄청난 시공여행의 마지막 결론을 콘돔광고로 장식한 것도 매우 재미난 발상이었다. 글쎄, 좀 코믹하단 생각을 하긴 했지만, 환타지 시공여행의 결론이 우리나라였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아무튼 매우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내가 열렬한 환타지소설의 독자가 되리라고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생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하나 더 느낀 것이 있다면, 인터넷이 얼마나 세상을 다채롭게 변화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정말 세상은 많이 변했다. 그런데 나는 무얼 하며 살았을까? 소설의 재미를 떠나 자괴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물론 사람은 저마다 자기 기호에 따라 살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내가 세상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설의 재미를 떠나 그저 드는 생각일 뿐이긴 하지만… 내겐 놀라운 경험이었다.

본 도서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