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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너는 내 운명', 미네르바와 막장정부

전대미문의 막장드라마 ‘너는 내 운명’이 오늘 막을 내린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막장으로 이름을 날린 것은 어처구니없는 설정과 엉터리 같은 대사에 있었다. 특히 황당무계한 줄거리를 연결시키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독백은 그야말로 막장 중의 막장이었다.

막장의 끝, 호세의 어머니가 백혈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새벽이의 친모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그녀 자신도 백혈병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처지였다. 새벽이의 골수가 시어머니와 자기에게 모두 일치한다는 사실을 안 그녀는 새벽의 행복한 가정을 위해 희생할 결심을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매번 중요한 순간마다 모든 출연자들이 다 그래왔듯이, 그녀는 강인하고 단호한 표정으로 독백을 날린다.

“그래. 새벽이 네 행복은 내가 지켜줄게. 걱정하지 마. 네 시어머니는 내가 반드시 살려줄 거야.”

이 대목에서는 그래도 인간적인 냄새가 느껴졌다. 그래… 자기 목숨을 버려 딸의 행복을 지켜주려고 하는구나. 낼 모래면 끝난다는데 아무리 막장드라마라지만, 이젠 정신을 차려야지. 잘했어. 그리고 곧 새벽의 친모가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러나 새벽의 친모는 우리의 상상을 여지없이 부셔버렸다. 그녀는 곧바로 새벽의 시어머니가 누워있는 무균병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다 쓰러져가는 환자 앞에서 “건강하세요. 꼭 사셔야지요. 골수이식 받기로 하셨다면서요. 잘 될 거여요.” 느닷없이 나타나 놀라자빠지려는 환자에게 이 말을 집어던지고는 횡 하니 돌아서 나간다.

이건 시청자에 대한 엄중한 모독이다. 아무리 허접한 설정과 대사로 칠갑을 한 드라마라지만 이건 지나친 정도가 도의 수준을 넘었다. 그런데 이따위 어처구니없는 설정과 독백으로 가득 찬 드라마가 ‘너는 내 운명’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대한민국 정부가 전대미문의 막장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막장드라마’를 능가하는 ‘막장정부’

이명박은 ‘747’이란 장밋빛 공약으로 국민들을 한껏 비행기 태워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미 이때부터 세계경제엔 금융공황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었다. 미네르바가 계속해서 미국 발 금융위기와 국내증시의 폭락,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경고하고 있을 때, 이명박은 주가 3000시대를 예고하며 주식투자에 나설 것을 부추겼다.

마치 막장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 나오는 출연자들이 너 나 없이 읊어대는 곧 드러날 거짓말들과 파렴치한 행동들이 이명박 정권에 클로즈업되어 보였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어쩜 이리도 닮았을까?’

이명박은 대통령이 된지 1년도 되지 않아 자기가 다 망쳐먹은 나라경제를 걱정하며 새벽이 친모가 독백하듯 한다. “그래, 걱정하지 마. 내가 꼭 살려줄게.” (참고로 새벽이 친모는 젊을 때, 출세를 위해 병든 남편과 어린 새벽을 버렸다. 물론 이 막장드라마에선 그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오지도 않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희한한 일이지만, 새벽이도 자기 친부가 어떻게 되었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막장드라마겠지만….)

그리고는 곧바로 한 일이 청와대 지하벙커에 ‘전쟁상황실’을 개조해 ‘경제상황실’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전과는 ‘미네르바 체포’였다. 조중동을 필두로 보수언론과 정부는 이 엄청난 전과에 한껏 고무되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난리법석이다.

똑똑한 검찰, 경제관료, 청와대까지, 모두 미네르바에게 무릎 꿇고 배우는 게 어떤가? 사진=오마이뉴스


전쟁상황실에서 벌인 경제살리기 첫번째 전과, 미네르바 체포 

아마도 이명박은 경제는 전쟁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 전쟁이다. 지금은 전시상황이다. 앞으로 내 말을 듣지 않거나 엉뚱한 소리하는 자가 있다면 군법에 따라 처단하겠다.”

그리고 시범케이스가 필요했다. 미네르바가 걸려들었다. 언젠가 한 번은 실수를 할 거라 벼르며 호시탐탐 노려온 보람이 있다. 마침내 2008년 12월 29일, 미네르바는 ‘허위사실 유포’로 의심될만한 행동을 했다. 정부가 ‘달러매수금지명령’ 공문을 발송했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이건 엄밀히 말해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미 정부의 외환통제가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이 분야에 약간의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공문이 오고갔느냐의 문제다. 그러나 한 장의 서류를 빌미로 기세등등해서 ‘유언비어유포죄’로 몰아가려는 검찰과 정부는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이 비극적인 막장드라마를 연출하는 정부 앞에서 참담한 심정 가눌 길이 없다. 새벽이 시어머니를 반드시 살려주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한 얼굴로 드러누워 있는 환자에게 찾아가 윽박지르듯 꼭 살아나라고 다그치고는 바람처럼 사라지던 새벽이 친모와 어쩌면 이리도 이 정부는 닮았는가. 비극도 이런 비극이 또 없다. 그래도 새벽이 친모는 사람은 살렸다지만….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연말 대한민국 국회의 폭력사태로 세계에 웃음거리를 제공했다고 연일 떠들어대며 야당을 압박했다. 그런데 사실 이 폭력사태를 빚게 한 원흉은 한나라당에 있지 않은가. 먼저 전쟁하듯 국회의사당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야당의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누구였던가.

세계에 웃음거리가 된 대한민국

그런데 이명박 정권과 검찰이 이번엔 진짜로 세계에 웃음거리를 제공했다. 지금 세계는 대한민국 정부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런 바보 같은 놈들? 백수보다 못한 만수를 기획재정부장관으로 데리고 일하는 덜떨어진 대한민국 대통령?’

그러나 문제는 그런 욕이 아니다. 세계가 지금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으며 민주주의가 말살되고 있다는 점을 외신들이 타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다. 이러다가 지구촌에서 몇 남지 않은 독재국가의 반열에 대한민국이 이름을 올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어떤 외국 투자자가 현재와 미래가 투명하지 않은 독재국가에 투자하려 하겠는가? 경제를 살리겠다며 전쟁상황실을 흉내 낸 경제상황실을 지하벙커에 만들어놓고 그곳에서 발사한 경제살리기 미사일에 거꾸로 나라가 절단 나게 생겼다.

마침내 오늘 막장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이제 다음은 막장정부가 막을 내릴 차례다. 제발 국민들을 위해 막장정부도 그만 막 좀 내려줬음 좋겠다. 그러나 물론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걸 잘 안다. 대신 다음과 같은 ‘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이 함께 ‘유엔 인권결의안’ 대상국으로 전락하는 영광 말이다.

2009. 1. 9.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