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이야기

그들이 100M 굴뚝에 올라간 까닭

100M 굴뚝농성 현장을 찾아서…

울산은 추웠다. 매서운 칼바람이 뺨을 할퀴며 달려들었다. 현대 미포조선 정문 앞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굴뚝의 위치를 찾았다. 짭짤하고 매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조선소는 황량했다.

굴뚝농성장 아래 도로변에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해 보였다. 이렇듯 엄혹하고 비장한 투쟁의 현장을 화기애애하다고 표현하면 모순일까?

화기애애한 농성장? 그러나…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100M 상공의 굴뚝 위에서 칼바람을 맞고 있을 그들의 동지들과 나누는 휴대폰 통화소리도 더없이 정겨워보였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서있는 모습은 평화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높디높은 굴뚝의 위용이 장관이었다. 까마득한 꼭대기에 움직이는 물체가 감지되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 농성자들이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 같은 사람은 저 높은 곳에 올라갈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까마득한 높이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일었다. 저들은 무엇 때문에 칼바람을 맞으며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운 저 높은 곳에 기어이 올라갔을까?

굴뚝 고공농성,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따스한 연대

굴뚝 위에 올라간 두 명의 노동자는 한사람은 민주노총 울산본부 본부장(권한대행)이고 다른 한사람은 현대미포조선 정규직 노동자이며, 진보신당 당원들이라고 했다.

이들이 100M 상공의 굴뚝 위에서 농성을 시작하게 된 이유에는 매우 특이한 점이 있었다. 바로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정규직 노동자가 벌이는 투쟁이란 점이었다.

굴뚝과 무전기대화 중인 창원 두산중공업 최병석 씨

이들의 요구는 소박했다. 현대미포조선 측이 하청업체인 용인기업 해고노동자 30명에 대해 행한 해고는 부당하므로 복직을 시키라고 명령한 대법원 판결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이 내린 판결도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아니 무슨 ‘백’으로 대법원이 내린 판결도 휴지조각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일까? 모닥불이 타오르는 드럼통 속으로 피우던 담배를 집어던지며 한 노동자가 말했다.

“정몽준이 눈에 대법원 판결 따위가 보이겠어요? 그냥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거죠.”

정몽준에겐 법도 안 통하나?

그랬다. 대한민국을 멋대로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자본가들에게 대법원의 판결 따위는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도 아니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도 아니다.

그저 돈 벌기 좋은 나라이며 돈 많으면 살기 좋은 나라이고 대접받는 나라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노동자 한사람의 목숨쯤은 얼마든지 희생해도 좋은 그런 나라일 뿐이다.

대통령도 자기 편 아니던가? 대통령도 한때는 현대그룹 계열사의 회장으로 노동착취와 탄압에 누구보다 앞장섰을 게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이제 이 나라에서 그들이 못할 짓은 아무것도 없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참으로 희한한 나라이다. 평소 ‘법과 원칙’을 밥 먹듯 떠벌리던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는 꿀 먹은 벙어리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눈엔 법과 원칙을 어기는 현대미포조선과 정몽준의 행태 따위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벌써 농성을 벌인지 2주일이 지나고 있다. 이들 농성자들이 굴뚝에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올라간 것은 성탄 전야였다. 세상이 크리스마스로 들떠있었을 그때, 이들은 비장한 결의를 어깨에 둘러메고 굴뚝 위로 향한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어렵고 복잡한 일이 아니다. 

“대법원 확정판결을 준수하라. 법을 지켜라.” 

식사준비를 위해 그릇을 닦고 있는 굴뚝 아래 농성자들.

점심 메뉴는 컵라면. 그런데 눈치를 보니 삼식 메뉴가 모두 컵라면인 듯.

창원에서 격려방문 온 두사람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편법적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 종이로 만든 철퇴?

우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에서 1970년 자신을 불살라 외쳤던 전태일의 목소리를 다시금 듣고 있는 것이다. 오랜 분쟁의 끝에 내린 대법원의 판결은 다음과 같다.

“용인기업은 형식적으로는 피고 회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업무수행의 독자성이나 사업경영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채 현대미포조선의 일개 사업부서로서 기능하거나 노무대행기관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고…, (따라서) 현대미포조선이 직접 용인기업 30명을 채용한 것과 같은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얼마 전, KTX 여승무원들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이와 비슷한 판결을 내려 하청회사를 만들어 비정규직으로 고용해오다 해고시킨 승무원들을 정규직으로 복직시키라는 판결을 내린바 있다. 법원이 자본의 편법적 비정규직 채용형태에 잇따라 철퇴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법원의 판결에 대해 현대미포조선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로서 실질적 사주인 정몽준 의원은 회사경영을 좌지우지하면서도 막상 이런 문제에는 “나는 상관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일”이라며 발뺌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2003년 하청업체의 폐업으로 6년간 일자리를 잃고 현대미포조선을 상대로 복직투쟁을 해오던 용인기업지회 소속 조합원들이 다시 투쟁을 시작했고, 이를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현대미포조선 조합원 이홍우 씨가 투신하여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 씨는 지금 생사불명의 상태에 있다고 한다.   

땔감을 위해 톱으로 통나무를 자르고 있다.

그런데 그 통나무에서 이런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자분은 사회당 당원인듯.

불을 피워놓은 드럼통 위에다 열심히 무언가를 굽고 있다. 새우깡을 구워 먹으려고 그러나?

드럼통 위에 익은 새우깡(?)을 집어 맛있게 시식 중인 모습. 맛이 매우 고소하다고 했다.


농성장의 평화로운 분위기 이면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이명박이 747 공약으로 장밋빛 미래를 선전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 벌어지는 이 추잡하고 참혹한 현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같았지만, 100M 상공의 굴뚝 위에서 죽음을 불사한 두 사람의 노동자가 온몸으로 진실을 토하고 있었다. 

정몽준과 MB과 원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그러나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들이 사선을 넘나드는 이 순간에도, ‘버스요금이 아직도 70원인 시대에 살고있는’ 정몽준은 죽었다 깨어나도 사태의 진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 누군가 그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뭐라고? 그런 일이 있어? 이런 몹쓸 놈들이…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냥 알아서 처리해.” 

이런 사람이 한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정몽준과 하나 다르지 않은, 아니 더했으면 더했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언론장악도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을 뿐, 곧 다시 칼을 뽑아들고 더 큰 전쟁을 획책할 게 분명하다.

굴뚝농성장에는 10일이 지나도록 경찰과 회사경비원들의 제지로 기본적인 방한장비와 식의약품조차 공급할 수 없었다. “배가 고프면 내려오겠지!” 라는 게 그들의 대답이었다고 한다. 

마침내 민주노총과 대책위가 패러글라이딩을 통해 침낭과 의약품, 육포 등을 공급하는 작전(?)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최소한의 인간성조차 말살된 사람들이었다.

…정몽준과 MB가 원하는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법 없이도 사는 세상? 그러나 이들에겐 벌써 법 따위는 필요 없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이미 치외법권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2009. 1. 7.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