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페이스북에 몇 분이 교대로 이른바 도배질하는 내용이 있다. 거제시의원인 모 의원이 동료 장애인의원을 비하하는 행동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다는 것이다. 동료 장애인 의원을 비하한 의원은 진보신당 한기수 의원이며 비하당한 의원은 통합진보당 김은동 의원이다.

그리고 이 내용을 페이스북에 지속적으로 도배질한 몇 분은 통합진보당 경남도당 사무처장 정철 씨와 노정욱 씨(직책불상)다. 이렇게 실명을 밝히는 것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이름을 밝히고 한사람을 매장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점과 피·가해자 모두 공인이란 점 때문이다.

한기수나 김은동이란 이름에 대해 처음 들어본 나로서는 사실관계에 대해선 일단 알 길이 없다. 허나 세상에 속설대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나. 그리하여 일단 도배질 내용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렇다면 한 의원 같은 사람은 매를 맞아도 싸다.

▲ 통합진보당 당직자인 노정욱 씨가 올린 한 의원 비난 페북 글들 중의 하나다.

그리고 분명히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서 본다면, 그래서 한남일보 보도에 따르면 아마도 한 의원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엄연한 폭력이다. 법적으로 따져도 명예훼손과 모욕죄의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게다가 장애인 비하라니.

진보신당 차원에서도 진상을 조사하고 적절한 조치를 내려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합당한 징계가 내려져야 함은 물론이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직후보자의 조건으로 성평등교육과 더불어 장애인차별금지교육도 아울러 실시하는 제도적 보완책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사실을 폭로한 통합진보당 김은동 의원에 대해서도 드는 의문이 있다. 어째서 장애인 비하행위가 있었던 당시에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1년도 더 지난 과거 일을 들추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게다가 한참 야권단일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정치적 목적을 의심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야권단일화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여론조사에서 진보신당 김한주 후보에게 자당 후보가 밀리자 이런 수를 쓴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을 테지만 김은동 의원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기수 의원이 장애인 비하행위를 한 작년 2월 시점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징계와 사과 등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은동 의원이 어떤 정당보다도 전투적인 통합진보당(구민노당) 출신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멸시와 조롱을 받고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참아왔다는 것은 사실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나온 폭로라 더욱 그러하다.

아무튼, 이 일로 통합진보당이 의원직 사퇴까지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정치공세에 불과해보이지만 한 의원은 정중히 사과하고 스스로 당에 징계를 요청하는 대범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뉘우치고 반성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래에 한 의원과 같은 진보신당 소속인 송정문 마산회원 국회의원 후보의 의견을 참고로 소개한다. 송 후보는 휠체어를 타는 1급 중증장애인이다. 페이스북에다 나양주 진보신당 거제시당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대화 형식이다.

중간에 통합진보당과 관련하여 좀 거친 표현이 있긴 하지만 두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나눈 대화라는 점을 고려해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양주 위원장님 / 네,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거제에서 장애인콜택시를 도입하고, 교통약자를 위한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장애인자립지원 정책을 만들기 위해 거제시청에서 긴 기간 농성을 할 당시, 그 자리를 지켜주셨던 분은 한기수 의원이시지 김은동 의원이 아니시지요.

또한 당시 김은동 의원이 거제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 만드는 농성자리에 단 한번 와 본적도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김은동 의원과 함께하는 단체들이 거제에서 장애인정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렇게 애쓰는 사람들에게 ‘거제일이니 다른 지역장애인들은 상관마라’고 했던 사실도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잊겠습니까.

또한 기억합니다. 당시 한기수 의원님께서 나서서 장애인정책은 필요하다고 의회에서 나서주시고, 장애인정책 예산이 마련되도록 애써주신 것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 한마디 실수로 덮을 순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몰라서 실수하셨을 거라 생각하지만, 진보정치를 하시는 분이시라면 모르는 것도 죄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가고자 한다면, 저에게 보여준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의 장애인비하 행동들, 그리고 1년 전 일을 당시도 아닌, 선거기간인 지금에서야 터트리며 문제를 키울 목적을 가진 그 사람들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보십시오. 현재 거제는 단일화과정도 통합진보당이 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진보신당 후보가 지지도가 높은 이유라지요?

그런데 저에게는 단일화하자고 기자회견을 하는 등 쇼를 하고 있습니다. 진보진영의 유일한 중증장애후보가 나왔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배려도 하지 않은 채, 단일화하자고 하면서, 동등한 입장의 후보들이 싸우는 거제에서는 단일화에 미적대는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나양주 위원장님. 우리는 정직했으면 합니다. 잘못은 잘못으로 시인하고, 잘한 것은 잘했다고 서로 칭찬하는, 그런 정당 사람들이었으면 합니다.

장애인예산수립에 앞장서셨던 한기수 의원님이라면, 그동안 보여주신 장애인정책에 대한 열정이 살아있으시다면, 먼저 당기위원회에 나가주시고, 합당한 처벌을 스스로 당당히 요구했으면 합니다. 그게 우리였으면 합니다.  (송정문/ 페이스북)

 

Posted by 파비 정부권

송정문의 진솔한 삶이야기 네 번쨉니다. 휠체어를 타는 1급 중중장애인으로서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송정문 씨는 대학에 갔습니다. 물론 대학이 장애인을 위한 어떤 사소한 배려라도 준비해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남들 다 가는 학교에 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배우고 싶다는 의지로 나도 할 수 있다는 오기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안경광학 공부는 재미있었고 적성에도 맞았습니다. 장학생도 됐습니다. 그러나 취업의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경기불황으로 안경점을 내기도 어려웠습니다.
 

이 이야기는 장애인 송정문 씨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오늘날 모든 젊은이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회에 막 발을 들여놓던 80년대 초는 직장을 구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질 좋은 직장이 많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일자리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이들은 질 좋은 직장은 고사하고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문제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좀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해야 할 젊은이들이 ‘꿈’을 꾸는 것은 사치가 됐습니다. 그런 면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이른바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보다 더 불쌍합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야말로 모두가 장애인일지도 모릅니다. 

삶이야기4. 적 우수 장학생

 

<글쓴이. 송정문>

 

결국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대학시험 준비를 할 수 있었고, 모두가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합격을 하였습니다.

 

대학생활.

물론 수업받는 건물에 양변기가 설치된 화장실이 없어, 화장실 갈 때마다 고생을 해야 했고, 학생식당까지 계단이 너무 많아 늘 도시락을 싸들고 다녀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에게 학교생활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꿀맛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 대학생활의 담소를 나누는 것도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만남도 잠시. 장학생이 되면, 취업할 때 유리하다며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저도 장학생이 되면, 취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나의 꿈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지원한 안경광학이란 학문이 참 재미있었고, 재미있다보니 공부하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았습니다.

드디어, 성적 우수 장학생.

저도 그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취업의 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학을 나와서도, 그냥 집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죠. 누구도 제게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참 답답했습니다. 다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것은 저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안경점이라도 차려보려고 생각했지만, 투자비용이 장난아니더군요. 당시는 개인 안경점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고, 안경점도 체인점화되어 안경점 사업도 순탄하지 않던 시기라, 섣불리 빚을 내서 시작할 수도 없었지요.

저는 전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여기가 내가 도전할 수 있는 끝인가.

내 꿈의 한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슬퍼졌습니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있었던 학생시위를 기억합니다. 프랑스 정부가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 2년 내 해고 자유정책을 입법하려 하였으나, 학생들은 이 정책이 통과되면 기업은 비정규직을 많이 뽑을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격히 많아지면 고용불안을 넘어 삶의 불안을 가져올 것이라며 시작된 시위였죠.

요즘은 열심히 공부하고, 자격증을 취득하여도 운없고, 빽없으면 실업자로 사는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실업자가 아니라고 해도 언제 해고될지 모를 비정규직 인생이라고들 합니다.

부자로 살 순 없어도 최소한의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것. 그것은 욕심일 수 없습니다.

몸뚱아리 하나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얼굴을 저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출처] 4. 성적우수 장학생 (송정문의 삶이야기4)|작성자 dreamsnog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은 ☞휠체어소녀, 국회에 도전장을 내다 에 이어 송정문 씨의 이야기 두 번째입니다. 그녀는 세살 때 입은 장애로 인해 학교에 갈 수 없었습니다. 남들 다 가는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하니 가고 싶은 욕망이 더 절절했고 그 이상으로 절망했습니다. 생명을 내어던질 마음까지 먹었고 실행에 옮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침내 그렇게도 바라던 학교에 갔습니다. 마산대학에 진학해 안경공학과도 나왔고 방송대학에서 교육학도 전공했으며 경남대학교 대학원도 졸업했습니다. 대학원에 다닐 때는 장애인 이동편익시설을 설치하라며 경남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이겼던 사실은 우리 지역사회에 유명한 일화입니다.

송정문 씨는 다시금 국회의원 선거(마산을)에 도전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은 가난하다는 것도, 장애가 있다는 것도, 여자라는 것도, 나이가 많다는 것도 문제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면, 저와 같은 경험 또한 대물림되지는 않겠지요.”


삶이야기2. 교에 가고 싶다.

<글쓴이 : 송정문>

▲ 경남보건신문에 출마 인터뷰하고 있는 진보신당 마산을 송정문 후보

“엄마, 난 왜 학교에 못가?”

어린 시절 저의 철없던 질문에 한숨을 쉬시던 엄마였지만, 동네 친구들이 소풍을 가던 날, 엄마는 저에게도 김밥을 싸주셨습니다. 친구들이 졸업하던 날, 몇몇 친척들은 선물을 사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내게 ‘학교 가고 싶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마치 제게 해선 안될, 금지된 질문처럼 말이죠.

고민을 털어놓던 친구에게 화를 내버린 그 날. 저는 깊은 절망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꿈도 선택할 수 없는 사람... 미래가 없는 사람이 나라면, 왜 살아야 할까.
먹고 살기 위한 고민이 삶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번져가면서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져만 갔습니다.

자살시도.
결국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른 후에야 비로소 금지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용기가 생겼습니다.
‘산다면 뭘 하고 싶어?’라고.
“산다면? 책가방 들고 학교를 다녀보고 싶어...”
‘그럼 해봐. 까짓 거 죽기밖에 더하겠어. 좋아. 앞으론 남들이 못할거라고 말해도,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시도라도 해보자.’

그래요. 죽음의 문턱 앞에서 제게도 하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것.
아버지는 늘 제게 목표를 가지면 그만큼 상처를 받게 될 거고, 저로 인해 가족이 모두 슬퍼질 거라고 했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학시험 준비하겠다는 말을 내뱉은 순간부터, 정말 아버지의 말대로 되어갔습니다.
엄마의 한숨은 더해갔고, 아버지와는 밥상을 마주앉는 것조차 불편해졌습니다.
주위사람들조차 대학에서 절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상처받을 지도 모른다며 조심스레 포기할 것을 권했습니다.

“너 같은 장애인이 대학을 가서 뭐 할거냐”

“니 동생 하나 대학보내는 것도 뼈빠진다.”
“취업도 안될건데 왜 헛고생을 할 거냐.”

사실 그랬죠. 나 스스로도 대학 나와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고, 학비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도, 학교에서 절 받아줄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전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제 인생에 책임이란 걸 져보고 싶었습니다.
이 방법이 안되면, 저 방법을. 저 방법도 안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서라도 말이죠.
그동안 금지되었던 소망이 제 속에서 꿈틀대던 날. 모든 것이 변해갔습니다.

제가 갈 길이 아니라구요?
그럼 제가 갈 길을 만들어야 겠지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교회 담장 헐어낸 참 성직자,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그는 1969년 로마교황 요한바오로 16세에 의해 추기경에 임명됐다.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었다. 또 그는 최연소의 나이에 추기경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최고령 추기경으로서 오늘 영면의 길에 들었다. 그러나 그런 어떤 기록들보다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에 기록된 그의 모습은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교회의 담장을 헐었던 참 신앙인의 모습이었다. 

1981년. 마더 테레사 수녀와 김수환 추기경. /「다음까페」『성직자가사는이야기』아래 사진들도 모두.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70년대 박정희 철권통치에 저항하던 수많은 지식인들과 80년대 전두환 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싸우던 학생, 노동자들에게 명동성당은 따뜻한 품이었다. 김 추기경은 "교회의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는 소신을 몸소 실천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무덤을 찾은 김추기경
몇 년 전이었던가? 김수환 추기경은 심산 김창숙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 김창숙 선생은 행동하는 유림으로 이 시대 마지막 선비로 일컬어지는 분이다. 그는 이승만에 맞서 반독재의 선봉에 섰던 진정한 선비로서 유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김 추기경이 움직이자 기자들이 구름처럼 모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기자들은 이미 곳곳에다 사진기를 설치해놓고 후레쉬를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관심은 과연 김 추기경이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절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심산 김창숙은 단지 위대한 선각자일 뿐만 아니라 유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언론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대니 나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절을 할까?

김 추기경은 묵묵히 산을 올라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정중히 절을 했다. 그것도 두 번 했다. 나중에 하신 말씀이지만, “돌아가신 분에게는 두 번 절하는 것이라고 해서 두 번 했다.”고 말해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는 또 존경하는 분에게 절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세인들의 관심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나는 속으로 매우 흡족했다. 

 그 전에 나는 혹시나 김 추기경이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절을 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다. 물론 내가 할 필요가 없는 부질없는 걱정이다. 천주교는 전래 초기에 조상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든지, 반상의 법도를 깨트린다든지 하여 왕조로부터 무수한 탄압을 받았다. 순교자가 수만에 이르렀고, 이를 피하여 깊은 산에 들어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으나 이들 중 절반이 호랑이 밥이 되었다 한다.

1972년. 정부의 8·3 긴급조치에 대한 시국메시지를 발표하는 김추기경. "7·4공동성명을 평화를 위장한 전쟁준비와 정치기만술로 이용하지 말 것" …… "온갖 특혜에도 경제를 파탄낸 정부와 기업가들에게 항의와 맹성을 촉구" ……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교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강경한 어조가 생소하지 않다. 한 세대가 흘렀건만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일까?


예수를 닮는 것은 가난한 자들 편에서 평등사상을 실천하는 것   
그러나 오늘날 천주교는 하느님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반상과 적서의 차별을 없이 한 선열들의 정신은 훌륭한 것이었으나 조상을 공경하는 풍속까지 배격한 것은 잘못이었다는 반성을 내놓았다. 매우 옳은 처사다. 그러므로 김 추기경이 심산 선생의 무덤에 절하는 것이 특별한 일도 하등 주저할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나 역시 그 결과가 궁금했다.   

김 추기경은 역시 대범하고 거칠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불교로 말하자면 마치 도를 터득한 경지에 올랐다고나 할까. 물론 그는 자서전에서 “평생을 노력했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며, 예수를 닮는 사제가 되지도 못했다.”고 자책했지만. 그는 최고의 성직자였다. 독재 시절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했으며 스스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중요한 고비마다 성직자로서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1977년. 철거민촌의 김추기경



서울대교구장을 은퇴하고 명동성당을 떠난 그가 몇 차례 가진 인터뷰 등에서 밝힌 변화한 사회에 대한 인식을 놓고 과거 민주화시대의 잣대로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감정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어놓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려는 사람에게 우리가 너무나 세속적인 기대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제 그는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있을 때 명동성당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그는 장애인과 철거민, 빈민들과 만나고 대화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는 독재와 불평등한 현실에 강경한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우리 곁을 떠나는 지금 이 순간, 명동성당은 달라지고 있다.  

며칠 전, 명동성당은 용산참사 철거민들의 농성을 막기 위해 경찰에 시설보호 요청이란 것을 했다. 철거민들과 만나지 않기 위해, 그들이 교회의 담장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해 경찰을 불러 철의 장막을 쌓은 것이다.   교회의 벽을 헐어 가난한 사람들과 만나고자 했던, 장애인과 철거민, 빈민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했던, 그리하여 고립된 담장 안이 아니라 사회 속에 교회를 심고자 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고귀한 정신이 마치 녹슨 철로변의 빈 역사(驛舍)처럼 버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직 그가 완전히 떠나기도 전에….

1995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영화「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관람.

 

교회의 높은 담장을 헐어낸 참 성직자, 김수환 
오늘 김수환 추기경의 영면 소식을 접하며 더욱 슬픈 것은 갈 수록 변해가는 교회의 보수화 바람 때문이다. 교회는 보수적일 필요도 진보적일 필요도 없다. 다만, 가난하고 핍박 받는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는 것, 그들의 편에 서서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고 간 진리다.  그러나 오늘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천주교, 너 마저도!”

이럴 때일 수록 가톨릭 뿐아니라 이 사회에는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이 절실하다. 이제 누가 있어 성당의 담을 헐고 가난한 사람들과 핍박받는 사람들 속에 교회를 세울 것인가.

2009. 2. 16.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저는 이선관 시인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분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분과 가까이 지낼 기회가 제게 별로 없었다는 말입니다. 제가 세상에 오기도 전에 이미 이선관은 시인으로 활동했습니다. 시인은 우리 마산에서 너무 유명한 인물입니다. 아마 마산이 배출한 수많은 예술인들 중에 뽑아보라고 하면 문신과 이선관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또 너무나 잘 아는 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생전에 시인을 딱 두 번 가까이서 뵌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대우백화점 엘리베이터 안에서였고, 또 한 번은 창동 골목의 만초라는 술집에서였습니다.  

아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다 처음 뵈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시인은 지체장애인이었습니다. 잘 걷지도 못하고 잘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이전에 이선관이란 이름만 들었지 그분이 어떻게 생긴 분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었습니다. 제 아내가 정중히 인사를 했고 저도 덩달아 인사를 했지만, 사실은 누군지도 모르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누구시냐?” “이선관 시인도 모르나?” 타박을 듣고서야 이선관 시인을 알아봤습니다. 두 번째 뵌 것은 창동 골목의 만초란 술집이었는데, 제가 앉은 자리의 건너편에 일행들과 함께 술 마시러 오셨을 때였습니다. 이미 한 번 뵈었었기에 가서 인사를 하고 술도 한 상 대접해드리고 나왔습니다. 그래봐야 만원입니다만.

좌로부터 우무석 시인, 이성모 교수, 배대화 교수, 구모룡 교수, 김경복 교수.


그리고 2008년 12월 13일, 세 번째입니다. 이날은 이선관 시인을 직접 만나 뵐 순 없었습니다. 시인은 이미 3년 전 이날(다음날)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대신 「고 이선관 시인 추모모임」이 주최한 『고 이선관 시인 3주기 문학 심포지엄 및 추모문화제』를 통해 그분의 시세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선관의 시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서민적이며 해학적입니다. 시인은 심한 뇌성마비로 발음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저도 딱 두 번 그분과 인사를 했지만, 그분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선관 시인은 부정확한 발음을 오히려 해학으로 승화시켜 한편의 시로 만들어냈습니다. 이성모 교수(김달진 문학관장)는 “은폐되거나 억제된 몸이 오히려 장난스러움으로 전복되는 한편,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는 말로 그의 시를 평가합니다. 

 나는 初志一貫으로 말을 하면
당신네들은 좆이 일관으로 알아듣고

다시
나는 初志一貫으로 말을 하면
당신네들은 좆이 일관으로 알아듣고

또다시
나는 初志一貫으로 말을 하면
당신네들은 좆이 일관으로 알아듣고    
                                                      -「나는」 이선관


시인은 몇 번이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비장한 마음으로 자살을 시도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인의 비장함은 “결여된” 자신의 존재를 넘어 “결여된” 사회를 향한 저항으로 발전합니다. 시인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어쩌면 결여된 존재에 대한 자아로부터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이미 산업화가 시작되던 초기에 “침식되어 가는 자연과 오염에 시달리는 인간”을 발견합니다. 

바다에서

고 이선관 시인


둔탁한 소리가 난다.
이따이 이따이.

설익은 과일은
우박처럼 떨어져 내린다.
이따이 이따이.

새벽잠을 설친 시민들의
눈꺼풀은 아직 열리지 않는다.
이따이 이따이

비에 젖은 현수막은
바람을 마시며 춤춘다.
이따이 이따이.

아아
바다의 유언
이따이 이따이.
                         -「독수대.1」 이선관

시인의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일 것입니다. 그는 날카로운 지성으로 사회적 모순과 불의에 항거하는 시인이었지만, 항상 그가 쓴 시의 밑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흐르고 있습니다. 사랑이 빠진 서정은 서정이 아닙니다. 그건 그저 불의한 모순을 덮는 선전 나팔일 뿐입니다. 그래서 아직 이 시대는 편안한 서정을 노래할 때가 아니라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보야 / 밥 안 먹었지 / 이리 와서 밥 같이 먹자 / 김이 난다 식기 전에 얼른 와서 / 밥 같이 나눠 먹자 / 마주 보면서 밥 같이 나눠 먹으면 / 눈빛만 보고도 / 지난 오십년 동안 침전된 미운 앙금은 / 봄눈 녹듯이 녹아내릴 것 같애 / 여보야 / 밥 안 먹었지 / 이리 와서 밥 같이 먹자 / 밥, 그 한 그릇의 사랑이여 용서여            -「밥, 그 밥 한 그릇의 사랑이여 용서여」 이선관

가수 김산의 축하공연. 화면을 가린 빨간 옷 입은 분은 고승하 선생.


시인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한없는 사랑은 통일에 대한 열망을 노래하는 것으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이성모 교수는 “이선관의 통일시는 통일의 갈망은 있으나, 분단에의 절망이 없다는 점에서 통일시가 지향하는 변증법적 통합은 상당히 유보”되어 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절망과 안타까움을 딛고 통일은 청산해야 할 역사와 새롭게 창조해야 할 역사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청산에 따른 갈등, 반목, 대립은 어떻게 할 것이며, 새롭게 창조해야 할 조화, 이해, 화합의 길은 어떻게 할 것인가? 끝없는 모순의 도출, 그러한 긴장에 의한 변증법적 통합을 향한 회의주의, 그것이 진정한 통일문학으로서의 자유를 보장해 줄 것이다.”    -「통일문학에 대한 회의주의, 그 완벽한 자유, 마산문학 24호」 이성모

매우 어려운 논제이긴 하지만, 또한 매우 깊이 고민해야 할 논제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성모 교수의 말처럼 통일문학은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청산을 통한 새로운 역사의 창조라는 변증법적 통합을 달성한다는 것이야말로 진정 어렵고도 어려운 길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 사고의 자유를 얻지 아니하고서는 불가능한 길이기도 합니다. 자유는 청산을 통해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청산은 매우 어려운 결단이 요구되는 통합의 전제입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사랑만이 이룰 수 있습니다. 시인의 사랑은 말 못하는 나무 한그루에도 다가서 있습니다. 

해마다 년말 가까이 한 달 전부터
예수가 탄생했다는 성탄절을 맞아
밤마다 나무에 대낮처럼 불이
켜진다

나무들은 말한다

하느님이시여
당신 아들 탄생도 좋지만
제발 잠 좀 자게 해 주십시오.
                                        -「나무들은 말한다」 이선관
 
시인의 생명에 대한 사랑,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저항의식은 그러나 자그마한 지역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구모룡 교수(한국해양대 교수)는 “자기 땅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관념은 허황되다. 무엇보다 딛고 선 땅으로부터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선관은 철저한 지역주의자이다. 하지만 그는 지역의 가치를 배타적으로 적용하는 향토주의자가 아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터전을 살리는 행위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한다는 관념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겨자씨의 믿음’처럼 그는 지역에서 출발하여 한 세계를 통일할 생명의 가능성을 열고자 한다.”는 말로 시인의 “전지구적 시각, 지역적 실천”이란 인식세계를 설명합니다. 시인의 이러한 인식의 지평은 “마침내 “지구는/ 참으로/ 거대한 신전이다”(1989, 지구)에 이르게 된다.”는 말로 구모룡 교수는 부연합니다.

지난봄과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들이 가장 즐겨 불렀던 노래는 <헌법 제 1조>였습니다. 이 헌법 제 1조는 이미 1972년에 시인이 썼던 시의 제목입니다. 시인의 인식세계는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사람들을 묶어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제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둔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렇다니까!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래...... .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 그래.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 허긴 그래.
                                      -「헌법 제 1조」 이선관, 1972년, 씨알의 소리

축사 중 시인의 시로 만든 노래 "민들레 꽃씨하나"를 즉석에서 부르는 경남도민일보 허정도 사장.


생전에 시인은 몇 차례나 장례를 치를 뻔 했습니다. 1991년, 지나친 음주와 극도로 지친 삶에 못 이겨 간경화 진단을 받고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기적처럼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시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해 다시 간염말기로 복수가 차올라 병원에 입원하는가 하면, 93년에는 퇴원해 길을 가다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습니다. 이때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문인들은 ‘마산문인협회장’을 치르기로 하고 관까지 짜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극적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시인은 창동 허새비였습니다. 생전에 늘 자기를 일러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창동은 시인의 생활공간이며 시가 생산되는 공장이었습니다. 창동의 지하다방 <흑과 백>이나 <만초> 같은 술집이 그가 주로 다니던 곳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생긴 <책사랑>과 <문화문고>는 시인이 책을 읽고 시상을 가다듬는 장소였습니다. 그곳에서 매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든 신문을 꼼꼼이 살펴보다가 어느 한 귀퉁이를 부욱 찢어 꼬깃꼬깃 주머니에 쑤셔넣으면 그게 바로 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인은 창동 허새비 외에도 스스로 삼류시인, 넝마주의, 바보, 거지 등으로 불리길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후배들이 그를 그렇게 부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느날 후배들이 시인에게 형이라고 하자, 시인이 장난처럼 “쪼꼬만 것들이 감히 형… 형… 한다.”고 나무라자, 그 중 하나가 갑자기 ‘독수선생’이란 이름을 생각해냈습니다. 「독수대」에서 따낸 말입니다. 시인은 부정하지도 거절하지도 않았고 그 다음부터는 독수선생으로 불렸습니다. 

이제 <책사랑>은 없습니다. 시인이 늘 책을 살펴보던 <문화문고>도 없습니다. 모두 교보나 영풍과 같은 대자본의 물량공세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습니다. 이선관 시인이 놀며 술마시며 시를 쓰던 창동도 이제 옛 창동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넘실대던 창동엔 이제 찬바람만 붑니다. 

아서라 / 다친다 / 소주나 까자 /
뒤돌아보기 없기다 / 좌우로 살피기 없기다 /
아서라 다친다 / 소주나 까자         
                                                     -「소인들」 이선관

그러나 창동 허새비는 영원히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있습니다. 시인이 생전에 놀며 술마시며 시를 쓰던 창동도 여전히 창동입니다. 아직은 찬바람이 불지만 창동에도 곧 봄이 오고 그러면 허새비도 돌아올 것입니다. 이날 밤, 우리는 창동 허새비를 그리며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시인의 시를 본떠 노래도 불렀습니다. 이렇게요.

“조지일관, 소주나 까자.”

2008. 12. 14. 파비

            
시낭송 "민들레 꽃씨 하나"
저걸 보아라 어디서 살아왔을까

시인의 시를 낭송하는 고등학생들.


도심지에 나비 같아 날아온 민들레
민들레 꽃씨하나
마침내 빌딩벽 틈새로
사뿐히 내려앉은 연약한 생명
마침내 겨울을 이겨내고
사뿐히 뿌리내린 연약한 생명
저걸 보아라 어디서 살아왔을까
도심지에 나비 같이 날아온 민들레 
민들레 꽃씨하나
                                          
-「민뜰레 꽃씨 하나」 
   시/이선관, 작곡/고승하, 노래/김산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제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의 『습지와 인간』 출판 기념회가 있었습니다. 「김훤주를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에서 주관한 행사였습니다. 김주완 기자의 말처럼 저도 그 명단에 이름이 들어있지 않으니 저는 김훤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 속하는 모양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사실은 김훤주 기자를 무척이나 사랑한답니다. 김훤주는 정말 훌륭한 동지였으며 벗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여자가 아닌 남자 
                               김훤주와의 만나다?

여자가 아닌 남자 김훤주와의(?) 만나다. 수고하셨는데, 좀 이상하네여. ~와의 만나다?

「김훤주를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에 실린 명단을 보니 평소 존경하는 정동화 소장님(창원시 전 의원)과 박용규 선생님(마산양덕중학교 교사)의 이름도 보이는군요. 반가운 분들입니다. 행사가 열리는 창원 정우상가 맞은편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나비 소극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물론 자그마한 소극장이긴 하지만 빈 자리가 없이 꽉 들어찼습니다. 행사 진행도 재미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출판기념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습니다.

축하공연도 있었습니다. 장애우 어린이들이 보여주는 공연이었습니다. 특별히 잘한다거나 멋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뭐랄까, 사랑이 넘치는 축하공연이었다고나 할까요. 아이들의 공연이 끝나고 연이어 선생님들의 수화 공연이 이어졌는데, 선생님들의 표정 하나하나에서 넘치는 사랑 같은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웃음 띤 얼굴에서 사랑스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장애인 학교 선생님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저렇게 웃을 때조차 사랑이 눈물처럼 마구 떨어지는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 감상이니 너무 신경 쓰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사실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웃어주기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인데 저런 분들과 너무 비교하면 마음이 힘들어질지도 모르겠지요.

‘장애우 학생들의 국토순례대장정’을 크게 취재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함께 하게 되었다는 장애우들과 선생님들.

제가 김훤주 기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가 마창노련(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편집부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80년대 말, 노조일로 마창노련에 자주 드나들었지만 처음엔 그이와 별로 친해지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말이 별로 없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소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삐쩍 마른 몸매에다 키가 멀대 같이 컸습니다.

마창노련 신문을 만드는 것이 그의 주업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열심히 일했습니다. 마창노련 역사기록의 대부분은 아마 그의 작품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새삼스럽게 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책장 위에 잠자고 있던 "내사랑 마창노련"(김하경 편저)을 꺼내 다시금 읽어보았습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처음 그의 이름은 신성욱이었습니다. 그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일부러 마산창원 지역으로 내려온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새로운 이름 하나를 알게 됐습니다. 이원만이란 이름입니다. ‘부마항쟁사’를 엮어 책으로 펴내는 데 지대한 공헌(편집장)을 한 박영주 씨가 1986년 처음 마산에 내려온 그에게 자기 자취방에서 함께 지내도록 배려했을 때 소개받은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이원만은 신성욱보다 앞선 인물로서 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허연도 전 마창노련 의장. (현) 민주노총 도본부 지도위원이 덕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불과 몇 달 밖에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 이름으로 이미 취직을 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 민증을 빌려 취업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걸 위장취업이라고 불렀습니다. 옛날이야기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치열했던 삶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그가 이제 노동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문제로 삶의 궤적을 넓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습지와 인간』에서 그걸 읽을 수 있었습니다. 습지와 인간은 인간미 넘치는 자연스러운 문체로 습지와 대화하는 책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출판기념회도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장애우 어린이들의 공연으로 시작해서 민중가수 김산이 열창하는 나비소극장엔 훈훈한 감동이 넘쳐났습니다.

그렇게 열기가 오르던 행사 중간에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마창환경운동연합’이 김훤주 기자에게 ‘습지 강사 위촉장’을 수여하는 자리였습니다. 사회자의 말처럼 작가에게 시상식(사실은 수여식)을 하는 출판기념회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환경연합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앞으로 ‘저자와 학생들이 함께하는 습지여행’ 같은 것을 기획하고 있나 봅니다. 정말 좋은 계획입니다.

가수 김산. 이렇게 노래도 잘 하고 얼굴도 잘 생긴 가수가 테레비에는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습지강사 위촉장을 수여하는 마창환경연합 대표 신석규 선생님.

저는 이미 ‘저자와 함께 하는 소벌여행’을 해보았는데 소벌(우포)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눈 뜨고도 보지 못하던 것도 보았습니다. 눈을 감고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도 저자와의 여행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습지는 아는 만큼만 보여준다’는 진리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습지와 인간』이 환경연합을 통해 자라나는 아이들 속에서 새롭게 재조명되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책 속의 습지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나친 저자의 열정 탓에 시간이 너무 늘어나다 보니 짜증이 좀 나긴 했지만, 훌륭한 자료들을 보여주기 위해 뛰어다닌 노력이 절절이 느껴졌습니다. 영상으로 보는 습지들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다운 습지가 인간의 욕심으로 파괴되어가는 현장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저자와 함께 하는 ‘영상으로 보는 습지’. 좋았다. 그런데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지 나중엔 지루해졌다.

그러나 역시 너무 지루하게 오래 끈 것은 결정적인 흠이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감동도 오래가면 그 빛이 바래는 법입니다. 조금만 불편해지면 언제 감동을 먹었었는지 기억도 잘 하지 못하는 게 간사한 인간이랍니다. 가장 좋은 자료 몇 장만 엄선해서 20분 내외로 편집을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자님, 다음 출판기념회 할 때는 유념해 주시와요.

 ‘뒷풀이’ 자리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김훤주 기자(현재는 언론노조 도민일보지부장)는 인간을 소재로 한 새로운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기대가 됩니다.

2008. 11. 28.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여행/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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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10월 10일, 경남도민일보 독자모임이 연속으로 기획한 마지막 순서는 하재근 선생이 강연을 맡았다. 하재근은 작가이며 칼럼니스트이며 시사평론가다. 그리고 '서프라이즈' 편집장이다. 다양한 그의 명함이 있지만, 지금 그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불꽃같은 정열을 담아 건내는 명함은 <학벌없는 사회> 사무처장 하재근이다.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강연중인 하재근 처장. 사진=도민일보 김주완 부장



그의 인상은 불혹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나이답지 않게 매우 젊어보였는데, 어쩌면 촛불 신세대에 가까워보인다고 생각되었다. (그가 구사하는 부드러운 윗지방 사투리가 그렇게 느껴지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런 그의 젊은 인상은 교육문제를 다루는 무거운 강연에 더한 신뢰를 주었다. 어차피 미래는 젊은이들의 것이며, 기득권에 절은 기성세대는 과거의 명예와 현실의 안락함이나 파먹으며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회개혁의 출발은 '학벌 없는 사회'로부터 

그는 '학벌 없는 사회' 없는 '사회의 발전'은 요원하다고 했다. 여기에 한 청중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나름대로 교육문제를 걱정하며 교육개혁운동을 하고 있는 대안학교 같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대안학교운동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십니까?"

"글쎄요. 대안학교 등도 나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사회가 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좋은 일은 좋은일로서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저는 좋은 일 하는 것보다는 사회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데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안학교는 제 관심분야도 아니고 별로 잘 알지도 못합니다."

요약하자면, '사람이 살만한' 사회는 학벌 없는 사회, 즉 교육평준화가 이루어져야 가능한 것이고, '학벌 없는 사회'는 핸재의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또한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개선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답답하지만 현실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안티를 외치는 반대투쟁 일색인데, 결국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정치로부터 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선별하지 않는다

그가 강연 맨 마지막에 소개한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교육제도는 참 꿈같은 이야기로만 들렸다. 독일만 해도 교육평준화가 100% 이루어진 나라라고 한다. 그런 나라들에선 입시경쟁이나 사교육비 문제 같은 것은 아예 존지해지도 않고 존재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이만해도 우리에겐 꿈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16세가 되기 전까지는 선별하지 않겠다."는 것이 바로 핀란드의 교육원칙이라고 한다. 이 나라에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무 구별 없이 함께 학교에 다닌다. 그래서 어떤 학교에서는 청각장애인 한 명을 위해 특수교사를 따로 배치하고 나머지 학생들도 모두 수화를 배운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이들 나라들의 국가경쟁력은 어떨까? 온통 고액과외와 특목고로 도배한 것도 모자라 특수신분의 자녀들만 다니는 학교까지 별도로 만들겠다는 우리나라와 경쟁력을 비교해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일제고사로 학생들을 서울에서 제주까지 줄을 세워 선별해보겠다는 우리나라의 경쟁력과 비교해보면 도대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인민의 집이어야 한다

그러나 애시당초 이들 선진 북구 나라들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려는 자체부터가 틀려먹었다. 이들 나라들은 보통 국민소득이 6만 불을 넘어가는 선진국에다 국가경쟁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들 나라들과 비교를 하겠다는 발상부터가 실례인 것이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국가 기본정책은 "국가는 인민의 집이어야 한다."는 슬로건에 잘 녹아있다. 이들 나라들은 1930년대 이후 사민당과 노동당 등 좌파정당이 정당지지율 1위 자리를 내어준 적이 단 한번도 없는 나라들이다. 스웨덴의 5대 정당을 들어보면 사민당, 보수당, 농민당, 공산당, 녹색당 순이다. 보수당을 제외하면 모두 좌파정당이다. 

스웨덴은 1932년 이래 사회민주노동당(Swedish Socisl Democratic Party, 사민당)이 70년 동안 집권했다. 세계에서 좌파정당이 가장 오래 집권한 나라다. 그리고 오랜 좌파정권의 결과 세계 최고의 평등도를 자랑하면서도 에릭슨, 볼보, SABB와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실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할 대목이다.
 
그러면, 과연 우리에게도 국가는 인민의 집일까?

그 답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만 들여다봐도 금방 답이 나올 듯하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보면 선택권, 자율성 등 온갖 미사려구를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교육의 선택권, 자율성이란 다름 아니라 교육을 말살시키고 국가를 패망으로 몰아가는 길이라고 하재근은 자신 있게 말한다. 

대한민국 교육정책은 국가 패망의 길

그가 말하는 패망이란 우리나라가 남미의 제국들처럼 다수의 빈민과 소수의 부자들로 구성된 그런 나라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명박의 교육정책이 성공을 거둔다면 우리나라는 남미의 여러 나라들처럼 2~30%의 국민만이 겨우 정상적인 소득을 얻어 생활하고 나머지는 기초적인 수입조차 어려운 그런 나라가 되고 말 거란 것이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의 교육제도는 사교육의 몰수에 있다. 만인은 평등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를 가능하게해주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교육이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가 벌이는 교육정책이란 것들은 민주공화국의 거의 유일한 버팀목마저 잘라버리겠다고 도끼날을 갈고 있는 꼴과 하나 다르지 않다. 

하재근은 우리나라는 재벌과 자산가집단, 그리고 이들과 외국자본의 재산을 관리해주는 ('김앤장' 같은)로펌들로 구성된 '그랜드써클'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한다. 그리고 이명박이 추진하는 교육정책은 '그랜드써클'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고 항구화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하재근은 잘라 말한다. "이것은 헌법을 파괴하고 국민을 상대로 한 전쟁이다."

국민과의 전쟁을 통해 만들려는 '이명박의 나라'

그러나 하재근은 그가 말하는 '이명박의 나라'(필자주; 이명박의 교육정책이 실현된 나라)는 이미 1993년 김영삼정권 이래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꾸준히 진행돼왔다고 말한다. 1995년 발표된 정책(5·31교육정책)의 핵심인 '소비자주권'과 '자유화'의 이념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대로 계승되었다고 한다.

'소비자주권'과 '자유화'란 이 그럴싸한 개념은 우리가 재래시장을 죽이고 대형마트를 선택해야하고, 값비싼 사교육비를 물어가며 일류고등학교를 선택해야하고, 교원평가를 통해 교사를 선택해야하는 모순에 가득차고 불행한 시대를 살아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소위 자유와 주권이 거꾸로 자유를 속박하고 평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빼앗아가는 역설을 만든 것이다. 

이명박의 모든 정책의 종점은 미국에 있다. 우리나라를 미국처럼 만들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 정책의 종착점이다. 산업경제모델을 포기하고 금융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식 경제를 따라가겠다는 것이 또한 이 정부의 기본 노선이다. 그리고 교육정책도 바로 이런 미국식 추종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에 들끓는 논란 속에 치러지는 '일제고사'도 기실 미국에서 먼저 실시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순으로 진행되었던 것처럼 일제고사도 영국-미국 순으로 실시되었고, 이제 절대다수 여론의 반대 속에 이명박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우리가 본받을만한 나라인가? 대답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이미 오래전에 유명한 '쌍둥이 적자'만 남기고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파산선고를 받았다. 빈부의 격차, 인종간 갈등, 고질적인 실업으로 병폐화된 나라가 또한 미국이다. '그랜드써클'의 원조는 사실 미국에 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아이비리그'란 곳이 바로 '그랜드써클'의 자녀들이 차별적인 교육을 받고 다시 대를 이어 '그랜드써클'이 되는 가장 모범적인 케이스다. 물론 부시도 아이비리그 출신이다.  

이명박 교육정책, '아이비리그'식 백년지대계

지금 대한민국 교육은 완전 비상사태다. 박정희가 군사독재의 와중에서도 그나마 만들고 유지해왔던 교육평준화 정책을 이명박이 나서서 쓰레기통에 쳐박으려고 하고 있다. 유럽의 복지사회모델은 거들떠보지도 아니하고 미국의 신자유주의 모델만 고집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 더불어 갖은 혼맥과 인맥으로 짜여진 거미줄, '그랜드써클'이 영원히 잘먹고 잘사는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한 백년지대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동시에 민주공화국을 해체하고 전근대적 봉건사회로 나라를 되돌리려는 국민과의 전쟁이다. 조선시대에는 아무리 공부를 하고 싶어도 97% 평민과 천민의 자제들은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3%에 불과한 소수 양반계층, 그 중에서도 사대부 명문세가의 자제들은 독선생을 두고 우아하게 공부했음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평준화의 해체는 다름 아닌 신분제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재근은 말한다. 곧 과학고나 외국어고 같은 특목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랜드써클'만 다니는 특수학교가 생겨날 것이다. 그곳에서 이명박과 같은 '그랜드써클'의 자제들은 일반서민의 자제들처럼 '박 터지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우아하게' 공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대 등 상위대학들은 이들 우아하게 공부한 학생들로만 채워지는 '그랜드써클' 양성소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교육에서 '소비자주권'과 '자유화'가 바로 이런 사회로 가기 위한 핵심 키워드다.  

바야흐로 '우아한 가족', 그랜드써클들만 사는 나라가 도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2008. 10. 12.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10월1일 오후 7시부터 마산역 앞 사거리 횡단보도에서는 보름이 넘게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 사무소 앞 노상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거리 홍보전을 펼쳤다. 이번에는 파란불이 들어왔을 때 횡단보도에 나가 정차 중인 버스나 승용차를 향해 자기들의 요구를 담은 피켓을 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동작이 빠르지 못한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짧은 파란신호등 시간을 이용해 홍보전을 펼친다는 게 여간 힘겨워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신호는 왜 그리 짧은 것인지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니 신호등마저도 눈치를 보는 것일까?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에게 만나줄 것을 요청하는 피켓을 들고 장애인들이 횡단보도 가에 서있다.


선거 때는 만나기 싫다는 데도 굳이 한 번 만나자며 온갖 헤픈 웃음을 다 팔고 다니던 사람들이 막상 국회의원이 되고 보니 완전 안면몰수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안홍준 의원은 선거 때 악수를 거절하는 농협마트 여직원에게 “누구는 악수하고 싶어 이러고 다니는 줄 아느냐?”며 지배인을 불러 교육을 어떻게 시켰느냐고 호통을 친 적이 있다.

악수하기 싫다는 여자더러 왜 악수를 거부하느냐고 호통을 치던 분이 이제 와선 오히려 한 번 만나달라는 장애인들을 마치 벌레 보듯 하며 거부한다. 똥 누러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온 뒤의 마음이 다르다고 하더니만 이제 볼 일 다 보았다 이런 말이렷다. 

그런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체로 화장실 청소도 잘 하지 않는 법이다. 원래 귀찮고 더러운 일은 자기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고귀한 종족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은 안홍준 의원도 악수를 거절하는 농협 여직원에게 이렇게 고백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은 너희 같은 하층계급들하고 악수하고 다니는 이 일이 내게 얼마나 고역인 줄이나 알기나 해?
하루빨리 이놈의 선거가 끝나야 너희들을 안 보고 살 수 있을 텐데, 나도 좋아서 이러고 다니는 거 아니야.”

그러니 이런 분이 장애인들을 만나줄 이유가 만무한 것이다. 그러잖아도 골치 아픈 장애인복지예산 삭감문제를 들고 나왔으니 더더욱 만나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기본정책방향이 “부자에게 세금감면을! 서민에게 복지삭감을!” 인데 굳이 대통령에게 밉상보일 짓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홍준 의원님. 당신은 대통령의 대변자가 아니라 국민의 대변자입니다. 당신을 뽑아준 것은 국민들이지 대통령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대통령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민의를 듣고 이를 정치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민의를 듣기 위해 장애인들을 만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를 하는 것입니다. 제발 민의에 귀 기울이십시오.”

이런 소리를 백날 해 본들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 명약관화한 일일 터, 괜한 헛수고란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의 사고방식이나 이명박의 사고방식이나 사실 하나도 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인활동보조예산 삭감에 항의하고 있는 장애인단체 회원들


그러나 오늘도 장애인들은 메아리 없는 외침을 계속하고 있다. 쌀쌀한 날씨 속에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것이다. 그래도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묵묵히 침묵으로 일관하며 나타나지도 않는 안홍준 의원에게 한 번 만나줄 것을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안홍준 의원

“안홍준 의원님, 우리를 한 번 만나 주십시오!”                                     



2008. 10. 1.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 이 글은 원래 경남도민일보 팀블로그에 실린 제 글을 다시 옮겨 놓았습니다.  
  글 속의 사건은 국회의원 선거 시기였던 2008. 3. 30일 오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노동을 판다고 정신까지 판 건 아니다

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 때 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우리 마을의 한 농협 앞에서 어느 당 후보의 유세가 있었습니다. 그 후보는 연설을 통해 이 지역의 유력정당 후보이면서 현역의원인 상대후보가 속한 정당의 의료보험정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돈 없는 사람은 이제 병원에도 가지 말라는 것이며, 돈 많은 사람은 지금보다 더 편리하게 병원을 이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이 정부의 의료정책의 핵심 아니냐고 말입니다. 교육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없는 사람은 공부도 하지 말라는 것이 이 정부의 교육정책의 핵심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성이면서 장애인이었던 그 후보는 마침 주변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던 의사출신의 상대후보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변에 모여 있던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과 박수를 받으며 농협 안으로 인사를 하기위해 들어갔습니다.

농협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매장 안을 거의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무렵, 현역의원 출신인 예의 그 의사출신 후보도 수행원들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그도 역시 농협 직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한 표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 농협 직원이 악수를 거절한 것입니다. 그는 그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수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바빠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순간 현역의원인 그 후보의 안면이 보기 심하게 일그러졌습니다. 그리고 버럭 화를 냈습니다. 2층에서 지배인이 황급히 뛰어내려왔습니다. 현역 국회의원 후보(?)는 지배인을 향해 일갈했습니다.

"도대체 직원 교육을 어떻게 시켜놓았기에... 어떻게 감히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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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마산을 안홍준 의원.

그 현역후보의 입장에선 참 황당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악수를 거절한 농협 직원의 입장에서도 황당했나 봅니다. 그 분의 말씀이 걸작입니다.

"내가 비록 농협에 취직해서 노동을 팔고는 있지만, 정신까지 팔고 들어오진 않았다."

저는 그 농협 여직원이 꼭 다시 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살아있는 권력이며, 다시 살아남게 될 것이 확실한 현역의원출신 후보 앞에서도 그리 당당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다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그 현역의원출신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이며, 여성장애인 후보는 진보신당 송정문 후보입니다. 그리고 그 한나라당 후보는 또한 다들 예상하신대로 버젓하게 당선되어 다시 국회로 갔습니다.

/정부권 객원기자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객원기자로 활동중인 정부권 씨의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로 포스팅 했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안홍준 씨는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십니다. 또 그분은 꽤 큰 산부인과 병원의 원장님이기도 하십니다. 오랜 세월 인술을 펼쳐 오신 훌륭한 분이실 겁니다. 마산이나 창원에 사는 사람들 중 그곳에서 제왕절개로 애를 낳아보신 분도 많으실 겁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교분이 없더라도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병원 원장님인데다 국회의원까지 하시는 그분의 고매한 인격과 덕망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엊그저께 우연히 길을 가다가, 사실은 열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마산역에 들렀다가 그 근처에 있는 안홍준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우리 동네 장애인들이 농성 같은 걸 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다가가서 보았더니 농성은 아니었고 의원님을 한 번 만나 면담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건물 입구는 경찰이 막고 있고 아무도 들여보내주지 않으니 마치 농성하는 것처럼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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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 회원들이 한나라당 안홍준 국회의원님 사무실 앞
                       길거리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저 뒤에 보이는 카메라는
                       방송국에서 오신 분입니다.  

                       그 위 사진 속에서 고생하는 의경들, 민생치안에나 힘쓰실 일이지 보기에
                       참 안스럽습니다.  - 사진은 제 휴대폰이 찍었습니다.

안홍준 씨는 모두들 알고계신 바와 같이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이며, 국회 보건사회복지분과 위원이기도 하십니다. 또 한나라당에서는 보건복지가족부, 환경부, 노동부, 여성부를 관장하는 정책조정위원장이십니다. 국민의 복지와 인권, 노동문제를 담당하는 매우 요직에 계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최근 한나라당은 복지와 인권을 개악시키는 정책과 법안을 많이 발의하여 국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감세법안을 제출하여 부자들에게는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을 펼치면서 반대로 서민들은 그나마 있는 복지혜택마저도 축소하거나 폐지하겠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장애인활동보조인예산삭감>이란 것입니다. 장애인들에겐 활동보조인이 필요한데 그 활동보조인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예산을 줄여버리는 것은 장애인들은 아예 집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포고령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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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복지예산을 삭감한 한나라당을 장애인들이 규탄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들을 위해 세금을 깎아주는 감세법안을 만들더니
                       이번엔 장애인들을 위해서 복지예산을 깎아버리려는 모양입니다. 여튼
                       깎는 걸 대단히 좋아하는 정부입니다.

그러니 장애인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장 활동보조인예산삭감으로 닥치게 될 불편과 고통을 막아내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우리 동네의 의사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보건사회복지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신 안홍준 씨를 면담하여 한나라당에 항의서한을 제출하고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이 문제에 깊은 고민과 관심을 갖고 해결하는데 앞장서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모두들 그분의 사무실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산과 창원의 장애인단체 회원들은 유력한 집권당의 국회의원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건물 입구에서 저지당한 채 도로에서 농성하는 꼴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끝내 안홍준 의원은 나와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협상 끝에 세 사람만 건물 2층 사무실에 앉아있던 안홍준 씨를 만나기로 하고 대표로 송정문 씨 등 세 분이 어렵사리 면담을 하고 항의서한을 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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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단체 대표인 송정문 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송정문 씨는
                         MBC라디오 <아구할매>란 프로의 방송작가 출신이기도 하고, 지난 총
                         선에선 한나라당 텃밭이라는 마산에서 진보신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
                         해 14%의 득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안홍준 씨는 본래 국회의원이기 전에 의사의 한사람으로서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본래 인술을 펼치던 박애주의자였던 분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되다보니 심성마저도 한나라당스럽게 변모한 것일까요? 장애인들이 화가 나서 민원문제를 들고 자신을 찾아왔다면 버선발로라도 뛰어나와 맞으면서 그들의 애로를 들어보고 해결책을 함께 찾아보는 것이 국회의원으로서, 또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할 의사로서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힘없는 장애인들을 경찰병력까지 배치하며 만나기를 거부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항의서한 하나 전달하려는 것 뿐인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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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던 어르신이 송정문 씨를 알아보고 격려를 해주고 가셨습니다.
                          할아버지 인상이 참 좋으십니다.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란 말이 있지만, 이런저런 거 귀찮고 싫으시다면 그만두시면 될 일인데 요즘은 옛 속담이 해당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부터 그러시지만, 이제 우리나라의 높으신 공복들은 더 이상 공복이길 거부하고 군림하는 벼슬아치가 되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의원님, 부탁드리겠습니다. 민초들이 자꾸 귀찮게 하니 역정도 나시겠지만 그럴수록 밝고 명랑한 얼굴로 즐거운 마음으로 공무에 임해주십시오. 그러면 건강에도 좋을 뿐 아니라 밝은 사회를 이루는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아무리 한나라당 의원이시지만 의사출신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의 복지에 관한 문제에서 만큼은 복지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약한 국민의 편에 서주시길 또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2008.9. 12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