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09.08.30 노무현·김대중 조문하지 않은 김기자를 위한 변명 by 파비 정부권 (12)
  2. 2009.08.21 김대중 서거일에 만난 노무현의 마지막 인터뷰 by 파비 정부권 (20)
  3. 2009.08.19 선덕여왕, 다음주를 예언하는 즐거움 by 파비 정부권 (13)
  4. 2009.07.10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by 파비 정부권 (10)
  5. 2009.07.05 노회찬, "서민복지동맹만이 MB독재 깰 무기" by 파비 정부권 (10)
  6. 2009.06.19 100분토론 출연 교수들, 팔아먹을 양심은 있나 by 파비 정부권 (34)
  7. 2009.06.05 좌파정권 10년? 그럼 김태호지사도 좌파빨갱이다 by 파비 정부권 (5)
  8. 2009.01.10 짜집기도 못하는 강만수와 학력주의 바이러스 by 파비 정부권 (7)
  9. 2008.10.07 잃어버린 10년? 그들에게 이미 국민은 전투의 대상이었다. by 파비 정부권 (29)
엊그제 김훤주 기자의 글 <내가 노무현·김대중을 조문하지 않을 까닭> 때문에 좀 시끄러웠습니다. 김훤주 기자는 많은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악플도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인신공격성 댓글도 많았습니다. 익명을 이용한 광기의 수준이 도를 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분의 말씀처럼, 집단적 광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일까?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사실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도 매우 심하다고 합니다. 중국의 경우에 이 집단적 광기는 거의 폭발 수준입니다. 얼마 전 티벳과 위구르 사태 때 서울에서 보여준 중국 극우파 유학생들의 난동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나라의 유학생을 극우파라고 하는 것이 좀 생뚱맞긴 합니다만, 저는 그들이 극우파로 보였습니다. 

사진출처=경남도민일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 무장한 극우세력. 어쨌든 말이 좀 새긴 했습니다만, 저는 모든 지나친 행동은 탈이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김훤주 기자가 굳이 '나는 김대중을 조문하지 않았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가 모두들 조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김대중 선생(!)이 바라는 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김대중이 30년 가까이 싸워왔던 바도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가 생각한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한 사람의 발언을 두고 거의 집단적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쏟아낼 때 김대중 선생이 추구했던 가치들이 하나씩 부서진다는 생각들은 들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저는 많은 사람들의 비난 또는 악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진정으로 김대중을 평가하고 그의 업적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훤주란 사실을 말입니다. 집단적 광기 수준으로 분노를 뿜어대는 지지자들보다 김훤주야말로 제대로 김대중을 추모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말입니다.

도대체 민주당이야 김대중이 결단한 혁명적 사회복지에 대해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고 하더라도―그들의 정체성은 역시 한나라당과 별반 다르지 않은 보수우파가 대부분이다―진보정당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추모논평을 보더라도 매우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민주와 평화를 빼고 복지에 대한 평가를 한 세력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훤주는 그걸 했지 않습니까? 조문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김대중의 업적을 제대로 바라보고 공정하게 평가를 해주었지 않습니까? 비난성 악플을 다는 여러분 중에 김대중의 업적 중에 사회복지의 혁명적인 단초를 마련한 사실을 짚어주신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십니까? 제가 좀 과격하게 말씀드리자면, 우리 모두 허깨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사실 김훤주는 김대중을 조문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김대중의 지지자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와는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공인도 아닙니다. 어떤 정당의 당직자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두들 조문하는 분위기에서 "나는 조문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김대중 선생을 조문한 어떤 사람들보다 김대중의 높은 업적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안목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이쯤에서 제 추억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편을 잡았던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박정희는 비명에 갔습니다. 그때 우리 반 부실장이었던 기종이는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습니다.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덜컥 겁이 났습니다. '혹시 전쟁이라도 터지는 거 아닐까?' 그러나 다행히도 전쟁은 나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열린 비상조회에서 교장 선생님은 면사무소에 마련된 분향소에 가서 조문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네, 제 귀엔 지시였습니다.

물론 저는 조문을 갔습니다. 헌화하고 향을 피우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들 훌쩍훌쩍 울었습니다만, 역시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저 두려웠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분이 일제시대에 교편을 잡았던 문경국민학교 교정에는 꽃이 피었습니다. 신문에도 났습니다. 모두들 영웅이 비명에 가 하늘이 노한 것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지난 7월 말, 낙동강 5차 도보기행 때 구미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구미시 해평면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청국장이 참 맛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식당 건물에서 고향 냄새가 났습니다. 게다가 식당 벽에 걸려있는 십자고상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벽에 붙어있는 사진과 달력이 또 하나의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달력에 "평화통일의 대도"란 쓴 글이 이채롭다. 박정희가 평화통일의 대도를 걸었을까? 또 김일성은 어땠을까?


박정희 대통령 일가의 사진이었습니다. 박정희가 비록 독재를 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했지만 경제를 잘 해서 국민들을 배고픔에서 해방시켰다, 이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이 오늘날 결국 대기업 위주의 재벌공화국을 탄생시킨 원흉이다 이런 평가도 있지만, 아직 국민들이 그런 진실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박정희는 경제개발 정책과 더불어 의료보험제도도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생활보호법도 만들었습니다. 협동조합을 본 딴 농협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제도들은 북유럽을 모방한 제도들입니다. 군사독재의 힘으로 사회주의적 제도들을 이 땅에 수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박정희가 만든 사회보장제도들은 시혜적인 것이었습니다. 불쌍한 국민들에게 정부가 나누어주는….

그러니 그 범위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보장의 효시는 독일의 비스마르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철혈재상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지요. 우리나라에 의료보험제도와 생활보호대상자 제도를 도입한 박정희와 유사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아마 이 두 독재자들이 이런 제도를 도입한 이유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무늬만 입혀놓은 사회보장제도를 김대중이 혁명적으로 바꿨습니다. 생활보호대상자를 정당한 권리자란 의미의 수급권자로 바꿨습니다. 법 이름도 생활보호법이 아니라 기초생활보장법으로, 즉 국가가 보장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김대중이 결단하지 않았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들도 반대했다고 하니까요. 그들 중 대다수는 김대중과 달리 한나라당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김대중이나 노무현이나 어려움이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노무현에 비해 김대중이 역시 거목이라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김대중은 자기 칼을 잘 다루고 쓸 줄 알았지만, 노무현은 자기에게 주어진 칼을 잘 쓰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간수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노무현이 만약 탄핵정국 이후 주어진 사상 최고의 권력을 제대로만 썼더라면, 국가보안법 등 악법들을 없앨 수도 있었을 것이고, 민주주의를 완성한 그는 가장 위대한 지도자의 반열에 이름을 길이 새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아쉬움입니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 그래서 늘 공부하며 새롭게 진화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노무현의 죽음이 더 슬픈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김대중은 충분히 꿈을 꾸었고 또 대부분 그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천수를 다했습니다. 

식당과 붙어있는 안채. 할머니가 토마토도 내주시고 무척 고운 분이었다. 어린 시절 생각이 나게 하는 집 풍경이다.


이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박정희 일가의 사진을 걸어놓았던 구미의 어느 시골 식당의 풍경으로부터 저는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했습니다. <웰컴투 동막골>이란 영화였습니다. 인민군 장교가 동막골의 늙은 촌장에게 묻습니다. "큰 소리 한 번 안 치고도 나오는 그 영명한 지도력은 어디서 나오는 겁네까?" 노인이 먼 산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합니다. 

"그저 뭘 많이 먹이야지 뭐." 네, 맞습니다. 그저 많이 먹여야 합니다. 아프지 않게 해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가고,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고, 돈이 없어서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바로 큰 소리 한 번 안 치고도 나올 수 있는 영명한 지도력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김대중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정작 보지 못하는 영명한 지도력을 김훤주 기자가 보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자고로 정치지도자란 이런 일을 해야된다는 메시지를 던져준 거 아니겠습니까? 이명박이 지금 민주주의를 압살한다고 하지만 이는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에 하나의 작은 소일 뿐입니다.

물결은 휘어지기도 하고 소에서 잠시 쉬어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거대한 강줄기가 되어 바다로 갑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물줄기가 얼마나 주변의 대지에 충분한 물을 공급하며 바다로 가는가 하는 것이지요. 저는 김훤주 기자의 목소리에서 그걸 들었습니다. 이런 방식이야말로 지지자가 아닌 그가 김대중을 가장 잘 추모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고요.

횡설수설 한 것 같지만, 강호제현의 보살핌을 바라마지않습니다. 하하. 저는 김훤주보다 간이 많이 작습니다. 고재열 기자가 말한 맷집도 약하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민주당이 두 분 대통령 김대중과 노무현의 사진을 당사에 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다고 두 분의 유지를 받들 수 있을까요? 

두 분의 생각이 뭔지도 모르면서 유훈을 말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진을 거는 것을 나무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잘 했다고 생각하지만, 노무현이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말한 것처럼 제대로 두 사람을 공부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또 다시 강조하지만,

그 공부는 오히려 조문도 하지 않은 김훤주가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슬픈 일이지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공교롭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던 날 알라딘으로부터 책을 받았다. 오마이뉴스 대표 기자 오연호 씨가 쓴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였다. 나는 김대중 지지자도 아니며 노무현 지지자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아니다. 나는 진보신당 당원이며 그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나는 과거에 노동조합운동을 했던 이력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을 아주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두 분을 존경한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10점
오연호 지음/오마이뉴스


나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했을 때, 정권 창출 과정에서 벌여졌던 모든 불미스럽고 마땅찮은 사정들에 불구하고 내심 박수를 쳤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는 그를 찍지 않았음에도 밤새 술을 마시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새벽 동이 트도록. 정치 9단이라는 김대중의 노련함과 아마추어처럼 보이지만 뚝심으로 정면 돌파하기를 마다 않는 노무현에겐 모두가 존경할 수밖에 없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겐 일관된 철학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길을 걸었다. 비록 그 길이 내가 생각하는 길과 많은 부분 다를지라도 그들은 굳건했다. 김대중은 납치와 사형선고로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노무현은 끊임없이 조중동과 시장권력으로부터 테러를 당했다. 그 두사람이 걸어왔던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나는 그들의 굳건함이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 노무현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늘 김대중을 공부하며 그의 흔적을 찾았다고 이 책에서 말했다. 

노무현의 말에 의하면 김대중은 천재다. 노무현은 스스로 창조적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것은 김대중이 이미 준비하고 예비한 길이었다고 했다. 오연호 기자가 노무현에게 질투심 같은 건 없었느냐고 물었지만, 노무현은 가벼운 웃음으로 받아 넘겼다. 노무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대로 매우 솔직하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질투심 같은 것은 자리할 공간이 없다. 그는 김대중 정부 덕분에 참여정부가 열매를 따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나는 노무현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이야말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천재가 아니고서는 자신을 낮출 줄을 모른다. 자신감으로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자신을 낮추는 방법을 모른다. 노무현은 그걸 아는 사람이었다. 노무현의 말에 의하면 김대중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탁월한 정치가였지만, 그가 빛나는 것은 단지 그것 때문이 아니라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뛰어난 정책능력 때문이다. 

노무현은 이미 김대중이 1971년 대선에 뛰어들 때 내놓았던 4대국 보장론이나 통일정책을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으며 당시 세계 정세를 꿰뚫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며 매우 천재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는 오연호 기자의 해석처럼 김대중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조중동 등으로부터 김대중의 준비된 대통령이란 수사에 비유해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는 혹평을 들었지만, 그는 충분히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어떻게 해서 대통령이 되었을까? 아니, 무엇 때문에 대통령이 되려고 했을까? 거기에 대한 노무현의 진술은 책 속의 어떤 이야기들보다도 파격적이었다. 역시 노무현은 꾸밈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대통령에 출마한 것은 그러니까 이인제 씨 때문이에요." 나는 눈을 의심했다. 무슨 이런 황당한 말씀이. 무슨 원대한 이상과 포부를 말씀하셔야지 기껏 이인제 때문에 출마를 결심했다니…, 그러나 그건 사실이었다.

노무현은 앞서 자기가 국회의원이 된 것도 국회의원이 되려고 된 것이 아니고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보니까 그냥 어떻게 그리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을 것이다. YS가 변절해서 노태우의 민정당과 합당해서 민자당을 만들었을 때 국회의원 되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를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의를 선택했다. 그가 볼 때 김영삼도 원칙 없는 변절자였던 것이다. 그는 나중에 김대중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부산에서 계속된 낙선의 쓰라림을 맛보았다. 종로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국회의원 뺏지를 달았지만,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또 한번의 고배를 마셨다. 이런 그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승부사에다 바보라는 이름을 얹어주었다. 그에겐 일관된 원칙이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역구도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요원하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이인제는 기회주의의 표징이었다. 그는 변절을 밥 먹듯 하는 원칙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노무현은 이인제 같은 사람이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어서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장래가 암울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인제는 97년 대선에서 이회창에게 한나라당 경선에서 지게 되자 무소속으로 나와 3등을 했다. 그리고 다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2002년 대선에 도전장을 던진 인물로 노무현의 눈으로 보면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였다. 그리고 당시 그는 유력했다. 노무현은 이인제를 이겨야겠다고 결심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일부에선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이도 대통령이 다 되고. 이거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전여옥 같은 사람은 아예 노골적으로 현직 대통령이던 노무현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대학도 나오지 못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참기 힘들 만큼 치욕적인 상황이었다. 김대중-노무현이 만들어놓은 민주주의 공간에서 그들은 상고 출신 운운하며 대통령을 모욕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노무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노무현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자기 원칙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노무현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국민을 가까이 하고 벗이 되고자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은 사실은 '노무현 같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인제나 전여옥 같은 학벌 좋고 똑똑한 사람들은 절대 넘볼 수 없는 경지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서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다. 이 추도사는 원래 노무현 전 대통려의 영결식에서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할 수가 없었다. 김대중은 이런 이명박 정부를 어이없다고 했다. 그는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했다. 그는 이 추천사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깨어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죽기 전에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자신이 만든 사이트 <민주주의 2.0>에 한미FTA 재협상을 해야한다고 올린 글에 심사정이 시비를 건 것이다. 심상정이 노무현에게 한미FTA의 당사자로서 결자해지를 촉구하며 고해성사를 요구했던 것이다. 노무현은 이틀에 걸쳐 심상정의 공격에 반론의 편지를 썼다. 이때 노무현은 자신을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하는 진보진영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토론은 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에 오래지 않아 검찰의 수사로 표적이 된 노무현은 "더 이상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식물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심상정과 인식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토론을 종결하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며 "좀 더 유능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나름의 고해성사에 대신한 솔직한 노무현을 이제 우리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노무현이 이토록 허망하게 죽지 않고 살아서 우리와 호흡하고 토론하고 실천하며 그가 말한 것처럼 정치권력을 넘어서는 시민권력의 전형에 다가가는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 할 수 있었다면 그가 아쉬워했던 '인식의 차이'를 뛰어넘는 어떤 무엇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노무현 같은' 걸출한 인물이라면 가져봄직한 기대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정체하지 않고 늘 공부하며 진화하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으니까.

노무현이 봉하마을에서 만든 홈페이지의 이름이 <사람 사는 세상>이었던가? 아마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도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이렇게 시작하는 거였다고 들었다. 그 노래는 나도 좋아하는 노래다. 내가 20대였던 시절, 노무현은 우리 마을 파업현장에 온 적이 있다. 그는 당시 국회의원이었는데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연설하고 곧 바로 사라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뒷풀이에 남아 난장에서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던 그는 싱싱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있다. 올 한해에만 세 분의 뛰어난 지도자가 세상을 등졌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노무현의 말처럼 "삶과 죽음이란 그저 자연의 한 조각"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심사가 그리 편하지 않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제일 먼저 일어난 일이 숭례문 화재였다. 그때도 무언가 심상찮은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더욱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그런 엉터리 같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 아름답지 못한 세상이 한심하고 슬프다. 마지막으로, 노무현은 바보가 아니었다. 오연호 기자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제 1장의 제목을 <바보를 보내다>라고 썼지만, 그러나 노무현은 바보가 아니다. 그는 원칙에 투철했을 뿐아니라 예지력도 갖춘 뛰어난 지도자였다. 그는 김대중을 천재라고 했지만 그도 역시 천재였다. 그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천수를 다 하지 못했지만 역사에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 

그가 존경했다는 링컨처럼….           파비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10점
오연호 지음/오마이뉴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덕만의 무기, 예언은 예언으로 이긴다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중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맞춰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사실 드라마 선덕여왕은 골든벨에서 학생들이 푸는 퀴즈를 같이 풀며 즐기는 시청자들의 심리를 잘 꿰뚫고 있는 듯하다. 선덕여왕 제작진은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미리 퀴즈의 답을 슬며시 흘리는 전술을 쓰기도 한다. 사다함의 매화가 그랬고, 비담의 김남길이 그렇게 이용되었으며, 김춘추 역의 유승호도 역시 그랬다.  

그러나 선덕여왕을 보면서 가장 궁금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미실이 어떻게 무너질까 하는 것이었다. 미실이 무너지기 위해선 첫 번째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 덕만공주의 복권이다. 그러나 덕만공주가 복권되기 위해선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예언, 쌍생의 저주다. 진평왕이 미실 앞에서 떠는 이유이며 덕만이 사막에 버려진 이유, 성골남진의 예언이다. 이 예언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한 힘을 잃지 않도록 만드는 마력 같은 존재였다.

사실 나 역시 많은 시청자들이 그러하듯 쌍생의 저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작은 퀴즈문제를 풀어가는 데 재미를 느꼈다. 그러나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역시 저주를 어떻게 풀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오늘 드라마 선덕여왕 예고편에서 그 힌트가 나왔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저주를 깨뜨릴 새로운 예언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물론 다음주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쌍생의 저주를 깨뜨릴 새로운 예언, 예언은 예언으로 제압한다, 나는 이미 진즉에 이 사실을 예언(?) 하지 않았던가. 혹시 나의 선덕여왕 후기를 꾸준하게 읽어주신 신실한 독자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7월 29일자 <선덕여왕,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에서 쌍생의 저주를 푸는 방법으로 나는 두 가지를 말했다. 하나는 천명공주가 죽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이라고. 

http://go.idomin.com/288  선덕여왕,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

이제 바야흐로 덕만의 정체가 드러났다. 어출쌍생의 저주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모두 쉬쉬하며 숨겨왔지만 이제야말로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모든 것이 내던져졌다.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 대등 을제는 진평왕에게 왜 덕만을 땅에 묻어 어출쌍생의 저주를 자르지 않았느냐고 다그치고 미실도 덕만의 실체를 눈치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덕만과 천명은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문제의 쌍생의 저주를 어떻게 풀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둘 중 하나, 즉 천명공주와 덕만공주 중 하나가 지금이라도 죽으면 될 일이다. 덕만은 선덕여왕이 될 인물이니 당연히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천명의 몫이다.

그러나 그건 지금까지 보여준 선덕여왕의 주제의식에 맞지 않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사람이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미실은 사람을 죽여 사람을 얻지만, 덕만은 사람을 살려 사람을 얻고 결국 미실을 이긴다는 게 주제다. 그렇게 본다면 쌍생의 저주에 굴복해 천명이 죽는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주제 설정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은 해답은 하나다. 덕만이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이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미실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늘의 뜻은 없다고. 있다면 오로지 미실의 뜻만이 있을 뿐이라고. 천문을 아는 미실이 하늘을 이용해 예언을 퍼뜨리고 계시를 만들었던 것이다.  

덕만이 서역의 상인들 틈에서 천문을 익혀왔다는 사실, 그녀에게 정광록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실에게 대적할 사람은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온다고 한 예언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리) 덕만이 사람을 얻어 천하를 다스릴 조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쌍생의 저주를 풀지 않고서는 결코 왕이 될 수 없다. 

천명이 죽든, 새로운 예언을 만들든… 그러나 나는 김유신의 말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과거의 너는 잊어버려. 그런 게 무슨 소용이야. 앞으로 만들어갈 덕만이 네가 더 중요한 거야. 너는 앞으로의 너를 만들어가야 해." 그렇다. 이 말이야말로 해답이다. 과거에 붙들리고서 저주를 풀 방법은 없다. 미래는 과거의 예언이 아니라 만드는 자의 것이니까.

  
쌍생의 저주, 계양성의 예언에 무너진다

물론 내 짐작이 모두 들어맞은 것은 아니다. 나는 두 가지 중 하나의 방법으로 저주가 깨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응당 새로운 예언을 통해 쌍생의 저주를 깨뜨리고 미실로부터 천의를 빼앗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천명공주가 설마 죽으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덕여왕 제작진은 과감하게 천명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 덕만에게 증오를 부추겼다. 나는 여기서 절망했다.(실은 절망이랄 건 없고 그저 실망이지만…) 아, 나의 예언이 빗나갔구나. 


그러나 오늘 나는 마지막 예고편을 보며 다시 희망을 되찾았다. 그래 내 생각이 맞았어. 예언을 깨뜨리는 방법은 단 하나, 오로지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뿐이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 새로운 예언이 이미 혁거세 거서간이 쌍생과 성골남진의 예언을 만들 때 함께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진흥왕이 안배한 것인지, 또 그 예언을 덕만의 힘으로 찾아낸다는 것인지 아니면 바람처럼 나타난 문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질 것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미실의 천의를 깨뜨릴 새로운 천의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예언이란 것이 나타날 것을 이미 내가 예언(!)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천명이 죽음을 맞이한 것은 매우 슬픈 일이며 나의 착오다. 이는 선덕여왕 제작진이 쌍생의 저주를 깨뜨릴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쓰는 초강수를 두었기 때문이다. 덕만에게 증오와 투쟁의지를 북돋우고 동시에 쌍생의 저주를 깨고 당당하게 복권한다는 시나리오는 역시 작가에게만 허용된 상상의 날개였지만…, 

나는 즐겁다. 이독제독, 하늘의 뜻은 하늘의 뜻으로 물리친다. 이렇게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는 보는 그 자체만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내다보고 다듬어간다는 데에도 있을 것이다. 또 선덕여왕을 통해 알지 못했던 고대사회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만만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가끔 내가 예측했던 것이 맞았을 때 느끼는 희열은 무엇에 비기기 힘들 정도로 뜨겁다. 그래서 즐겁다. 그러나 한편 패도는 패도로써 누르겠다는 덕만의 대사를 들으며 슬픈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큰 별이 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왔던 분들이다. 그들의 공과에 대하여는 역사가 말할 것이다. 그들의 집권 10년 동안 신자유주의로 고통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서민도 많다. FTA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 나라는 관용과 포용이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했다. 노무현은 자기에게 주어진 칼마저 버리는 결단을 취하기도 했다. 

패도가 아니라 관용과 포용이 세상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시대는 과연 요원한가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중이 손에 쥐어준 칼을 왜 쓰지도 못하고 버렸는가. 그래서 결국 그 칼에 자신이 당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덕만이 비장한 표정으로 "패도는 패도로써 제압하겠다! 미실이 한 똑같은 방법으로 신라를 먹겠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며 이제 영면의 길로 들어선 두 사람의 모습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그들이 덕만이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으리라. "패도는 패도를 낳는 법! 관용과 포용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어 천하를 태평하게 하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덕여왕을 만드는 제작진이나 나나 그런 상상력을 발휘할 만큼 이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노무현 대통령에 이은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이 그래서 더 안타깝고 슬픈 이유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분 있으십니까? 아마 아무도 없으실 걸로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이런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열린 진보신당 주체의 강연회(주제 : 지역 토호세력의 뿌리)에서 강사로 나선 김주완 기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어땠을 거 같아요?"
 

사진을 못 찍어서 "김주완-김훤주 팀블로그"에서 빌려왔습니다. 왼쪽이 김주완. 그 옆은 김훤주 기자.


생뚱맞은 질문에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엉뚱한 질문이었죠. 그런데 이건 이분의 주특기입니다. 강사로 모셔다가 교육을 받는 중에 느닷없이 자기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아니 질문은 우리가 해야지 왜 자기가 하는 거죠? 하하, 그러나 이보다 더 확실하게 교육생들에게 인식을 심어주는 방법도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누구도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설마라도 해보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런데 김기자의 답은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로동신문보다 더 지독한 친 김일성, 친 김정일 신문이 되었을 것이다"란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조선일보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는 것이지요.

조선일보는 일제시대에는 친일신문으로 그 악명을 떨쳤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조선총독부의 비호 아래 접수하면서부터 그리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는 조선의 젊은 청년들을 태평양전쟁으로 내몰기 위해 "천황폐하의 은혜에 보답하여 대동아전쟁을 승리로 이끌자"고 역설하던 신문입니다.

그런 조선일보가 해방 후에는 이승만 독재에 앞장 섰습니다. 그리고 다시 5·16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에게 아부하며 밤의 대통령 행세를 했습니다. 전두환이 들어서자 민족의 영명한 지도자라고 추켜세우며 다시 전두환에게 꼬리를 치는 기민함을 보였던 것이 바로 조선일보입니다.

김주완 기자의 말에 의하면 조선일보는 보수언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전형적인 기회주의 언론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기회주의의 특성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힘있는 자에게 빌붙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오늘은 간에 붙었다가 내일은 쓸개에 붙는 것이 기회주의인데, 조선일보가 바로 그 전형이란 것입니다.

그러니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틀림없이 김일성 만세를 낮밤 가리지 않고 불렀을 것이란 사실은 매우 자명한 일입니다. "그럼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대통령 할 때는 왜 그렇게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주야장천 실었을까요? 노무현 정부 때는 비판을 넘어 아예 비난 내지는 학대하는 것 같던데요."

혹시 이렇게 질문을 하실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지난 10년 간의 김-노 정권이 민주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정권들은 언론통제를 제일 과제로 삼았습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제일 먼저 장악한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방송국입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언론통폐합 조처였지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노무현이 조선일보 사장을 남산에 끌고 가서 한 사흘 밤낮만 고문하라고 지시했다면 조선일보는 그 다음날부터 바로 노무현 만세를 주야장천 불렀을 거라고 말입니다. 우스갯소리지만 푸념이기도 하답니다. 준비되지 않은 민주주의는 그 과실을 몽땅 조중동과 재벌들이 따먹도록 만들었으니까요. 

하여튼 김주완 기자의 주장은 압권이었습니다.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친 김일성, 친 김정일 신문으로 자나깨나 주체사상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이따위 기회주의 신문이 대한민국 언론계를 평정하고 있다는 것은 국제적인 망신입니다. 그 평정조차도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돈을 뿌려 얻은 것이니 하등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만.

하여간 여러분, "조선일보가 북한에 존재했다면?" 답은 이겁니다. "조선일보는 로동신문보다 더 지독한 김정일 찬양신문이 되었을 것이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지난 6월 25일,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창원에 다녀갔다. 초청강연회 연사로 내려온 그의 강연회에 나도 갔었는데, "보수라도 좋다, 밥만 먹여준다면"이란 다소 엉뚱해 보이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보수라도 좋으니 밥만 먹여달라고? 6월항쟁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발전해온 한국인의 의식으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이 말은 그러나 진실이었고 일반 국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말이었다.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노회찬 강연회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위기의 대한민국"


6월항쟁 이후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국민들은 노대표의 말처럼 점차 보다 나은 대통령을 선택하는 현명함을 보였다. 김영삼보다는 김대중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았으며 또 노무현은 김대중보다 나았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비주류가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국민의 정부에 비해 참여정부는 분명 진일보한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국민들은 방향을 거꾸로 틀어 MB라는 괴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일까?

비밀은 바로 "보수라도 좋다, 밥만 먹여준다면' 여기에 있었다. 6월항쟁은 형식적 민주주의에서의 승리를 가져왔지만 거기까지였다. 진정한 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로의 발전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경제, 먹고사는 문제는 수구세력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 국민들의 정서가 이를 반영한다. 국민들은 민주화세력이 양심이나 도덕성에서는 존중할만하지만, 경제에 관해서는 무능한 세력으로 보았다. 그들은 결코 빵울 불려줄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 미리 선을 긋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소위 진보-개혁세력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 실제로 그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답을 제대로 내놓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이 만들어놓은 선진적인(!) 노동법이 걸레조각이 되도록 방치하거나 방조한 것도 그들이었다. 지금 국회에서는 비정규직법과 미디어법을 놓고 일대회전이 준비 중이다. 그런데 일부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보다 중요한(?) 미디어법 투쟁을 위해 비정규직법은 한나라당과 타협하고 넘어가자는 목소리가 들린다.
 
민주당에게 정치민주주의를 저해하는 미디어법 반대투쟁은 사활을 건 문제로 인식되지만, 빵을 위한 투쟁, 경제민주주의를 촉구하는 투쟁, 비정규직법 문제는 소홀히 할 수 없으면서도 매우 귀찮은 문제다. 이명박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선동이 거짓말로 판명된 지금도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헤게모니를 수구세력이 쥐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로서 그 책임의 상당부분이 진보개혁세력에게 있는 것이다. 

강연후 마산 수정만 STX입주 반대 농성장을 찾은 노회찬 대표



만화가 최규석은 이렇게 말한다. "6월항쟁 당시 명동성당에 격리된 사람들에게 밥을 해 먹였던 철거민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맞고 거리로 쫓겨나고 있고, 노동자들은 제 처지를 알리기 위해 전태일 이후로 수십 년째 줄기차게 목숨을 버리고 있지만 전태일만큼 유명해지기는커녕 연예인 성형기사에조차 묻히는 실정이다." 그는 "선생님이 멋있어 보여 선생님을 꿈꾸던 아이들이 지금은 안정된 수입을 위해 선생님을 꿈꾸고 아파트 평수로 친구를 나눈다"고 세태를 비판한다. (최규석 만화 <100 ℃> 작가의 말 중에서) 

그에게 이런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 (민주주의가 기껏) 지배층과 대거리를 할 만큼 똑똑해서 그들의 통치에 훈수나 비판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 더이상 황당한 이유로 끌려가게 되지 않는 것, 민주화란게 겨우 이런 거라면… 할 말 좀 참고 좀 더 배불리 편하게 먹고 사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의 흐름을 어떻게 탓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한국 민주주의가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민주주의에 비해 경제민주주의가 오히려 후퇴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어온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6월항쟁이 세 명의 (자기 출신)대통령을 배출하는 동안 같은 해 일어났던 7·8·9월 노동자대투쟁의 주역들이 현상수배와 구속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치민주주의가 발전했음에도 경제민주주의는 여전히 수렁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쌍용자동차 문제는 6월항쟁 이후 정치민주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자본가들에게 주어진 정리해고의 자유와 같은 한국의 고질적인 병폐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7월이 6월에 짓밟힌 것이다. 노회찬 대표는 이날 강연회에서 이명박 정권의 독재를 막기 위해 그런 6월과 7월이 만나야한다고 강조했다. 6월과 7월의 만남, 정치민주주의와 경제민주주의의 조화, 그것은 결국 서민복지동맹으로서만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실질적인 삶과 무관한 민주주의란 도대체 무슨 소용이겠는가. 민주주의가 그저 액자 속에 잘 그려진 한 폭의 그림처럼 매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애 터지게 싸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계절은 바야흐로 6월의 태양으로 대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7월이다. 중천을 가르던 태양은 서서히 기울어가지만 대지는 용암처럼 펄펄 끓는다. 끓어오르는 대지는 구름을 만들고 거대한 비바람을 몰고 올 것이다. 그리하여 대지는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가을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다. 그러고 보면 인간사도 결국 자연의 한 조각이다. 그러나 인간세상의 계절은 너무 길고 변화가 무쌍해서 한치 앞을 가늠하기가 정말 어렵다. 노회찬의 열변에 고개를 끄덕이면소도 걱정스러운 이유다. 그나저나 서민들의 바구니에 빵을 채워주는 것이 진정 진보라는 인식이 상식이 되는 날은 언제나 올까. 더이상 이명박 같은 괴물의 새빨간 거짓말에 속아넘어가지 않고 '우리 것 우리가 찾게 되는' 날이 언제나 올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MBC 100분토론>에 나온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정진영 교수와 최창렬 교수를 보면서 벽창호도 저런 벽창호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성진 의원도 전직 교수였다고 하니 세 명 모두 교수 출신인 셈인데, 나는 그들이 진정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맞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데 자기들만 민주주의는 아무런 이상도 없으며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 횡행하던 민중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대체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교수란 사람들이 민중민주주의가 무언지, 자유민주주의가 무언지 그 개념이나 제대로 알고 말하는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는 민중민주주의란 것이 존재한 적이 없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고 시도했던 정치적 행위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면,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야말로 확실히 민중민주주의자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데 인터넷과 블로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지금도 앞으로도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6월 항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취되었고, 이후 점차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확대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맞아 대폭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국보법 등에서 보듯 여전히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갈 길이 먼 미완의 민주주의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그 자유민주주의마저 길바닥에 내던져진 것이다.


이 세 명의 교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시국선언을 하는 교수들을 향해 왜 교수들이 발언을 해서 국론을 분열시키느냐는 말만 할 뿐이지, 어째서 자신의 양심을 밝히는 정당한 행위를 부정하는지, 집회시위의 자유를 막기 위해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삥 둘러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토론 중간에 어느 아주머니가 전화의견으로 이런 말을 했다. “국회의원들 뽑았으면 그 숫자대로 국회에서 모여 일하면 될 것이지. 왜 거리로 나옵니까? 국민들이 선거로 한나라당을 170석 다수당으로 만들어주었으면 그냥 국회에서 그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왜 일도 안하고 거리로 나오고 그래요? 월급 내놓으세요.”


참으로 무식한 말씀이다. 물론 이 아주머니 의견도 일리는 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일을 해야지…. 그런데 지금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가? 국회에 들어가는 순간, 한나라당은 국민의 뜻을 거역해 이명박 정권만이 좋아하는 법들을 통과시킬 것이다. 지금은 국회에 들어가 일하는 게 오히려 국민의 뜻에 반하는 역설의 시대가 아닌가.  


아주머니의 무식한 말씀에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세 사람의 교수들을 보면서 대한민국 교육현실이 실로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송영길 의원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국회의원을 뽑는 행위가 모든 권리를 백지위임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은 기본에 해당한다. 아무리 국회의원, 대통령이라도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교수란 직업이 무엇인가. 좀 과장되게 학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행위를 빗대어 말하자면, 양심을 팔아 밥 먹고 사는 직업 아닌가? 그런데 이들 교수들에게 대체 팔만한 양심이라도 있는 것인지 의심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100분토론>을 시청한 소감으로는…. 하긴 이들도 살아남아야 하니 너무 나무라기도 그렇다. 이명박 정권에 잘못 보이면 교수직도 언제든 쫓겨나는 것이 요즘 세태 아니던가.


또 다른 시청자의 전화의견을 통해 전해들은 국민정서야말로 현 시국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진단이 아니었을까.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죽으면 떡을 돌리겠다고 하더라!” 이 말을 들으니 퍼뜩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그래, 나도 그런 떡 제발 얻어먹었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듣고도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죄악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면 정말 살아야 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이만 대충 정리하고 잠이나 자야겠다. <ps;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화의견으로 등원 안 하는 의원들 월급 내놓으라고 핏대 올리던 그 아주머니 "동네에서 일을 해보니 법에 호소해서 안 되는 게 없더라!" 라고 하시던데 대충 뭐 하는 분인지 짐작이 간다. 세상이 하 수상하니… 별 생각이 다, 쩝~

ps2; 원래 제목이 "MB 죽으면 떡 돌리고 싶다!" 였지만 누가 먼저 똑 같은 제목을 달았기에 달리 고친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태호 경남도지사의 “좌파정권 10년” 발언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그의 말대로라면, 김태호 자신도 좌파 빨갱이 도지사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지난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 10년에 부화뇌동하여 대북경협사업에 앞장섰던 사람으로서 좌파 빨갱이였다’, 이런 말이다.


그러니까 좀 우스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좌파 빨갱이 도지사였던 김태호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위해 이명박에게 “나 이렇게 확실히 전향했소. 딸랑딸랑~” 하면서 추파를 던지는 꼴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한다고 너무 나무라지들 마시라. 지금 나라꼴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가득 찬 세상 아니던가.
 

자료사진-경남도민일보. 김태호 지사의 '좌파정권 10년' 발언에 사람들이 항의하고 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조금 더 하자면, 소떼를 몰고 분단 장벽을 넘어 평양으로 올라갔던―아마 한국전쟁 이후 걸어서 판문점을 넘어 북으로 간 최초의 인물이었던―고 정주영 회장도 좌파 빨갱이 자본가가 되는 것이고, 개성공단에 입주한 모든 기업들도 북한정권에 돈을 대는 좌파 빨갱이 기업들인 것이다.


물론 통일딸기 재배사업에다 평양 장교리 소학교 건립에 자금을 대는 사업을 추진하던 김태호 지사도 당연히 좌파 빨갱이다. 그리하여 말하자면, 온 세상이 좌파 빨갱이에 점령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좌파 빨갱이 중의 하나인 김태호가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명박에게 전향원서(?)를 제출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 10년의 통일정책은 실패했으며, MB의 비핵개방3000구상이 훨씬 우월한 대북정책’이라는 게 김 지사의 주장인데, 어차피 한나라당원인 김 지사가 제 식구 자랑하는 것에 대해 따질 필요도 없고 따질 생각도 없다. 개들도 비슷한 놈을 만나면 꼬리를 흔들고 반가움을 표시하는 법 아니던가. 하물며 사람들인데…


얼마 전에 미수다(미녀들의 수다)의 따루라는 핀란드 여성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녀는 핀란드 대사관 직원이라고 들었다. 기억이 완전치는 않지만 그녀의 말을 대충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에서 좌파라고 불리는 정치그룹은 좀 이상해요. 우리나라에서 보자면 우파거든요. 한국에는 좌파는 없는 것 같아요.”


아마 따루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일러 한국의 언론들이 좌파정권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한국의 좌파는 우리나라에선 우파밖에 안 된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한국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세력들, 예컨대 진보신당이나 민노당, 사회당 기타 그늘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좌파정치세력들―아마 이들이야말로 따루의 모국 핀란드의 기준으로 보면 핀란드노동당같은 좌파에 해당할 것이다―은 보지 못하고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의 진단은 일견 정당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분명 신자유주의 정권이다. 김-노 정부가 남북화해무드를 주도하고 경협을 추진했다고 해서 그들의 자유주의적 정체성이 훼손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생각하기에 이 10년의 기간에 자본의 자유는 무제한적으로 성장했으며 노동자의 권리는 한없이 추락했다.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가 도대체 우리하고 뭔 상관이야? 그냥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바로 우리 옆에서 늘 그 날카로운 창끝을 겨누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놓은 의료보험제도는 좌파쓰레기―사회주의정책의 소산인 의료보험제도를 독재정권이 만들었다는 게 아이러니지만―로 치부되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게 한 예다. 


나는 얼마 전 체불임금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로부터 도움을 요청 받고 그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로부터 설명을 들은 나는 간단하게 처방(?)을 던져주었다. 임금은 최우선적으로 전액 변제받을 수 있으니까 아무런 염려 말고 일단 노동부에 체당금부터 신청하라고. 그런데 새로 알아본 결과는 아니었다.


‘임금채권전액우선변제권’은 사라진지가 오래였다. 나는 10년도 훨씬 이전의 근로기준법을 가지고 그렇게 자신 있게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의 무지로 만들어진 이 난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매우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공장에 수없이 잡혀있을 질권, 저당권에 후순위로 밀린 임금을 받아낼 묘안이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따위의 극단적인 반노동, 반복지 정책들은 주로 한나라당 정권에서 추진한 것들이다. 그러나 김-노 민주정권도 사실상 그러한 정책기조를 계승했다. 차이가 있다면 민주주의의 대폭적인 신장과 대북정책에서 평화정책을 보다 강조한 것이었는데, 한나라당은 이걸 가지고 소위 ‘좌파정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때 소위 좌파정권의 대북정책에 편승해 남북경협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김태호 지사가 그 좌파정권을 향해 ‘좌파정권의 통일정책은 실패했다’라며 칼을 던졌다. 그 좌파정권과 짝짜꿍해서 남북경협의 단맛을 보던 그가 말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그 이유를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따루의 말처럼 좌파도 아닌 정치집단을 향해 자꾸 좌파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것은 계속 의문으로 남는다. 서울대를 나왔다는 김태호가 이런 기본적인 지식이나 소양도 없어서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떠벌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다. 그런데 그 한쪽 날개를 향해 자꾸 칼을 들이대면서 잘라내려고 한다면 새가 똑바로 날 수가 있겠는가. 한국이 제대로 된 선진사회로 가기 위해선 좌우의 날개를 정립하는 것이 필수다. 그래서 좌파의 복권이 절실한 과제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정리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우파의 자리부터 정리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정치세력이 진정한 우파인가? 나는 그 자리에 민주당이 들어서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무엇인가? 한나라당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정체불명의 존재다. 그들은 마치 소혹성 B612호를 파멸시키는 바오밥나무와도 같은 존재다. 그들은 어린왕자가 늘 잘라내야만 하는 수고를 던져줄 뿐인 존재들이다.  

하여튼 이야기가 꽤나 산만해지긴 했지만,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대충 이거다. “좌파를 좌파라 부르고, 우파를 우파라 부르자!”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좌파 아닌 것을 좌파라 부르지 말고, 우파 아닌 것을 우파라 부르지 말자!” 우리 모두 제발 정직하게 좀 살자.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30세의 젊은이가 세계적 금융위기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국내 주식시장 붕괴를 예언한 미네르바임이 밝혀지면서 파란이 일고 있다. 아직 그가 진정한 미네르바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검찰은 제 2의 미네르바는 없다고 못 박고 있지만, 네티즌 일각에서는 의혹이 계속되고 있다.

30대의 공고 나온 전문대 출신이 ‘미네르바’면 안 되나?

우선 검찰이 발표한대로 그가 30세의 공고를 나온 전문대 출신이며 아직 무직이라는 점이 사람들이 계속 의혹을 제기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네티즌을 조롱하고자 하는 검찰과 조중동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여기에는 심각한 명예훼손의 위험성도 존재한다.

30세의 미네르바는 체포 다음날부터 모 회사에 출근하기로 되어 있었다. 검찰은 그의 직업을 빼앗아버리고 보수언론 조중동과 함께 그를 직업도 없는 ‘놈팽이’로 만들었다. 게다가 조선일보는 그의 이름까지 공개했다. 검찰의 잣대로 보면 검찰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조중동은 명예훼손 혐의로 당장 체포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는 그런 것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미네르바가 진짜가 맞느냐 하는 것이 주 관심사가 되어있는 듯하다. 이건 검찰과 조중동이 의도한 바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너무나 젊은, 게다가 정규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금융업에 종사한 경험도 없는 미네르바는 충격이었을 수도 있다.

노무현도 들었던 “대학도 못나온 주제에…”

물론 여기에는 뿌리 깊은 학벌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도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특히 그 밉살스런 ‘전여옥’이)에서는 그의 학벌을 문제 삼았었다. 노무현이 비록 상고를 졸업한 외에 더 이상의 학력을 추가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법원 판사를 역임했다. 그러나 이런 것조차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오로지 노무현은 뭘 모르는 고졸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전의 대통령 김대중도 고졸이다. 김대중 역시 한때 무식한 상고 출신이란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워낙 해박한 그의 지식은 그런 비웃음이 도리어 웃음거리가 되게 했다. 서울대 나온 무식한 김영삼과 목포상고 출신의 김대중을 비교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는 강고한 학벌주의 사회이다. 이런 글을 쓰는 필자도 사실은 학벌주의 바이러스에 심각하게 감염되어있다. 필자는 기계공고 출신이다. 그럼에도 자식만은 어떻게든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직 초등학생인 녀석들의 성적표가 늘 불안하다.

지난해 9월 열린 '학벌 없는 사회' 토론회 포스터


‘짜집기’도 못하는 서울대 출신 경제장관

그런데 나는 오늘 미네르바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다 새삼스러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다름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학들의 교육능력이 너무나 형편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 최고학부라 자랑하는 서울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필자는 이미 앞에서 잠깐 언급한 무식한 서울대 출신 김영삼과 해박한 상고출신 김대중을 통해 서울대의 무능함을 이미 간파한바 있다.

오늘자 조선일보의 미네르바 관련기사 제목은 이렇다.

검찰 “미네르바는 전형적 혹세무민 사건”

헤드라인도 엄청 크고 굵은 글씨다. 조선일보야 우리가 다 아는 악의와 왜곡의 달인들이 모인 신문이니 그러려니 하면 된다. 그런데 기사 내용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검찰은 박씨의 학력이나 경력에 비해 글이 수준이 높다는 의혹에 대해선 “박씨는 ‘이론경제학’을 수년간 독학했으며…, (전문용어 구사력과 문장력도 뛰어날 뿐 아니라) 인터넷 검색에도 능해 경제정보를 모아 ‘짜집기’ 하는 데도 소질이 있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포털들에 올라온 기사들을 검색해보니 검찰은 특히 이 ‘짜집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미네르바 예언의 신빙성을 줄여보자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못배운 가짜의 혹세무민이라는 쪽으로 몰고 가고 싶을 것이다. 그게 바로 MB의 의중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그 ‘짜집기’란 것이 너무나 영험하다는 데 있다. 아니 미네르바의 ‘짜집기’는 영험이 아니라 과학이었다. 이어진 공황에 빠진 세계경제가 그걸 입증하고 있다. 그러면 이때, 서울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은 행정고시(재경직) 수석합격자 출신의 기획재정부 장관 강만수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서울대부터 없애는 게…

아무것도 안했다. 굳이 한 일이 있다면 환율을 잘못 조작해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든 일 뿐이다. 그러고도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를 등에 업고 ‘대리경질’이란 초유의 인사제도까지 만들어냈다. 조선시대에 주인을 대신해 곤장을 맞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대리경질이란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이런 일이 어째서 가능한가?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학력주의 바이러스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짜집기’조차 못하는 백수(?)보다 못한 만수지만, 학력주의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에겐 대단한 학력과 휘황찬란한 경력은 매력적인 것이다. 그러니 나라가 거덜이 나도 강만수를 결코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의 결론은 이것이다.

“‘짜집기’도 못하는 강만수 같은 학생들이나 양산하는 서울대부터 없애자!”

2009. 1. 10.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나는 노무현을 찍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이 당선됐을 때 감격해서 동이 트도록 오징어를 뜯으며 맥주를 마셨고, TV에서 흘러나오는 당선방송을 보고 또 보았다. 노무현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노무현이 검사들과 대화를 한답시고 TV 앞에 앉았을 때, 나는 또다시 오징어를 뜯고 맥주를 마시며 분개했다. “어떻게 쥐어준 권력인데 그따위 허접한 검사들을 모아놓고 손수 칼을 쥐어준단 말이냐.”

봉하마을 주민이 된 노무현=경남도민일보


'잃어버린 10년', 그리고 '인터넷검열'을 보며 드는 단상(斷想)

그리고 대통령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조중동으로부터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마침내 별다른 이유도 없이 국회에서 탄핵되었을 때, “거봐라, 칼 쥐어주었더니 그 칼 내다버리고 잘하는 짓이다.”하면서 조롱했다. 어쩌면 허탈감과 배신감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노무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김대중 정부에 이어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이 서민경제 파탄의 주범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한미FTA는 그가 추진한 정책 중 최악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해 수많은 농가가 타격을 입고 국민건강이 위협받는 것도 그 출발은 노무현 정부에 있었다.

한편, 반대로 노무현이 민주주의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대통령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였고, 대중적 참여의 적나라한 모델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정치의 발달에도 한 몫 기여했을 것이다.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실험은 바로 노무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역시 나는 여전히 노무현의 팬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민주당도 나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들이 한나라당으로부터 진보니 좌파니 하는 오해를 받든 말든 그건 상관없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통해 이루려고 하는 시장자유주의가 내가 생각하는 분배의 정의를 통한 선의 추구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에 이들이 방송국을 장악하고 인터넷까지 검열하겠다며 달려드는 모습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나라당에게 잃어버린 10년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그들은 그토록 민주주의가 불편했던 것이다. 국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비판하고 참여하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거짓 선동으로 여론을 호도하며 권력을 장악한 한나라당

지난 대선 내내 한나라당이 외쳤던 구호는 “잃어버린 10년”이었다. 그들이 잃어버렸다는 것은 정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정권을 잃어버린 것이 마치 나라를 빼앗기고 독립투쟁이라도 하는 양 국민을 선동했다. 그것은 한나라당 외의 정치세력은 모두 악이라고 호도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BBK주가조작, 위장전입, 탈세의혹을 뚫고 이명박은 대통령이 됐다. 사진=오마이뉴스


이 어처구니없는 선동질은 주로 경상도 땅에서 주효했다. 이 선동질의 선두에서 나팔수 역할을 한 것은 물론 다름 아닌 조중동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마치 집단최면상태에 빠진 것처럼 분기탱천했고, 선거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연신 외치며 결전에 임했다. 그들은 바야흐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들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승리했다. 지난 10년 동안, 특히 연이어 대선에 패배한 이후 지난 5년 동안, 그들이 얼마나 이를 갈고 복수심을 불태웠는지는 정권을 탈환(?)한 이후의 행보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정권을 잡자마자 이전 정권에서 진행해왔던 모든 정책들을 뒤집어버렸다. 신자유주의적 기조를 유지하며 진보세력과 대립했던 김대중-노무현 두 정권을 좌파정권으로 몰아 붙였다. 그나마 민생안정용으로 만들어놓았던 개혁적 제도들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판이고 일부는 이미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질 운명에 처해있다.

전 세계가 산업화와 개발바람에 파괴된 자연을 회복하자는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이때, 거꾸로 나라의 젖줄인 한강과 낙동강을 파헤칠 대운하 구상을 하고 있다. 당장 저항에 주저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엄청난 개발이득을 노린 재벌과 집권세력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난관이 봉착해도 반드시 실현시키려고 할 것이란 점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모든 노력들도 ‘퍼주기’란 이름으로 폄하하고 양측의 정상이 약속하고 서명한 합의서까지 파기하는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는 재협상 가능한 쇠고기협정조차 거부하는 이중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앞으로 어떤 나라가 이런 정부를 신뢰하고 조약을 맺고 교류를 하려고 하겠는가?

한순간, 촛불이란 장벽에 부닥치긴 했으나 이제 그들은 거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방송도 장악했고, 곧 가장 껄끄럽던 사이버공간마저도 함락이 눈앞에 보인다. 마침 벌어진 유명 연예인들의 연이은 자살은 그들에게 호재다. 이런 기회를 놓칠 그들이 아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인터넷을 평정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정권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호시탐탐 인터넷을 장악할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기려고 했지만, 촛불이 그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촛불이 잦아들더니 기대하지 않았던 호재까지 겹쳤다.

여론을 장악하고 영구집권을 꿈꾸는 한나라당

그리고 드디어 그들은 ‘최진실법’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인터넷검열제’란 칼을 들었다. 그들이 이 새로운 전투에서 한 번 더 승리한다면 국민들의 입마저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괴벨스가 했던 것처럼 라디오를 하나씩 나누어주고 자기들 말만을 들으라고 할 것이다.

여론장악과 선동정치로 독재자로 군림한 히틀러


안타깝게도 이와 같이 지난 1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느끼는 격세지감은 단순한 감상의 수준을 넘어 시나브로 현실을 압박하고 고통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칼을 함부로 내다버린 노무현을 조롱하던 그 순간도 어느덧 낡은 앨범 속의 추억으로나 기억하게 될 것이 분명할 듯보인다.

진보진영의 어느 인사는 이 격세지감의 시기를 히틀러의 파시즘을 연상시키는 것은 옳지 못하며 그리 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 이유를 “히틀러가 살던 시대와 달리 한국 사회의 지배자인 대자본은 지금 방식으로도 충분히 지배 지속 가능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일당독재’의 가능성이야 높지만, 그것은 파시즘이 아니라 한국판 자민당 시대의 개막이지 않을까?”(진보신당 이재영-레디앙) 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글쎄,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히틀러도 처음부터 파시스트가 되려고 작정하고 그리 되었을까?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화가를 꿈꾸었던 그가 희대의 독재자가 되리라고 처음부터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히틀러가 죽고 난 후에 연합국 진영의 많은 정치가들도 그의 타고난 선동술과 대중장악력에 대해 연구했다는 걸 보면 시사 하는바가 크다. 전두환이나 이명박이 언론을 장악하는 기술도 알고 보면 원조는 바로 히틀러가 아니겠는가.

방송장악에 이어 인터넷검열제를 시도하는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며 전운戰雲을 감지한다.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는 그들에게 국민은 이미 전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2008. 10. 7.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