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에 해당되는 글 335건

  1. 2017.12.07 남한산성 김훈은 왜 김상헌을 죽였을까? by 파비 정부권 (7)
  2. 2017.11.12 부모 바꾸는 꿈 누구든 꿀수 있어, 황금빛내인생 by 파비 정부권
  3. 2017.11.01 송혜교가 대체 뭐시 이쁘단 말이여? by 파비 정부권
  4. 2017.10.30 황금빛내인생, 7년 만의 외출 by 파비 정부권 (1)
  5. 2015.07.17 밤선비 흡혈귀와 노론, 딱 한국의 오늘 이야기 by 파비 정부권
  6. 2014.11.09 <전설의 마녀>, 진짜 죄인은 감옥에 가지 않는다 by 파비 정부권
  7. 2014.09.16 김수용과 왕자웨이의 공통점 by 파비 정부권
  8. 2014.09.01 왔다 장보리 연예기사, TV도 안 보고 기사 쓰나 by 파비 정부권 (1)
  9. 2014.07.25 세상에 보다보다 이런 엉터리 같은 드라마 처음 본다 by 파비 정부권 (1)
  10. 2014.07.19 아비정전, 어긋난 시간의 노예 by 파비 정부권 (1)
  11. 2014.06.30 역적 정도전의 후손들은 잘 살았다 by 파비 정부권
  12. 2013.10.11 일대종사 대사, 언제 표절했지? by 파비 정부권
  13. 2013.06.10 최고다 송미령, 그 이중성이 맘에 들어 by 파비 정부권 (1)
  14. 2012.12.23 자본주의는 결코 당신을 사랑해주지 않아요 by 파비 정부권 (9)
  15. 2012.10.16 대왕의 꿈, 화형장면은 명예살인 미화 by 파비 정부권 (9)
  16. 2012.10.03 사극주인공은 왜 모두 양반이어야 할까? by 파비 정부권 (7)
  17. 2012.10.02 마의, 전노민의 첫회 퇴장이 슬픈 까닭 by 파비 정부권 (1)
  18. 2012.08.30 각시탈, 아들 죽음도 못말리는 친일파의 심리상태 by 파비 정부권 (4)
  19. 2012.08.26 넝쿨당, 질투는 나의 것, 귀남엄마의 본심은? by 파비 정부권 (4)
  20. 2012.07.26 유령 속의 진짜 유령은 누구일까? by 파비 정부권 (3)
  21. 2012.07.18 추적자, 통속적인 결말 거부한 이유 by 파비 정부권 (3)
  22. 2012.03.26 무신 김준보다 노예에게 무릎 꿇은 장군 박송비가 대박 by 파비 정부권 (5)
  23. 2012.03.16 해품달의 배신, 반전없는 싱거운 결말 by 파비 정부권 (8)
  24. 2012.03.07 초한지 모가비, 샤론스톤 관능미? 차라리 추한 창녀 by 파비 정부권 (5)
  25. 2012.03.05 무신 최충헌, 사기장기 빌미로 이규보 내쫓은 까닭은? by 파비 정부권 (4)
  26. 2012.03.05 무신, 최송이의 어이없는 착각 이유 by 파비 정부권
  27. 2012.02.29 여치와 우희, 남자들이 좋아하는 타입은? by 파비 정부권 (4)
  28. 2012.02.28 무신도 피하지 못한 출생의 비밀 by 파비 정부권 (2)
  29. 2012.02.27 신들의 만찬, 진짜 천상식본 누구 손에 있나 by 파비 정부권 (8)
  30. 2012.02.24 해품달, 연우를 죽인 진짜 살인주술 제물은 누구? by 파비 정부권 (3)

남한산성을 보았다. 극장에서 보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젯밤 문득 남한산성이 보고 싶어졌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는 남한산성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김상헌의 칼에 길잡이 노인이 죽던 장면을 삽입하고 싶었지만 인터넷에 아무리 뒤져도 그 사진이 없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 장면이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ㅠ


김훈의 수려한 문장도 봐야겠지만 그보다는 일단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영화부터 보기로 했다. 케이블에서 2800원짜리를 20% 할인해 다운받았다. 하얗게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화면이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길잡이 노인이 김상헌의 칼을 받고 죽는 것이 시작이었다.


노인의 죽음은 고요했다. 하늘과 땅과 계곡이 하나처럼 하얗게 정지되었고 한줄기 ‘풀처럼’ 노인은 소리 없이 ‘스러졌다.’ 비정한 칼이었다. 노인은 어린 손녀를 돌봐야 한다며 등을 돌렸지만 칼은 사정을 두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은 김상헌의 죽음이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최명길보다는 김상헌에 주목했다. 김상헌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토록 죽음을 마다않고 명분과 의리를 지키려고 했을까. 임금과 백성의 목숨을 담보로 한 명분 그리고 의리, 그것이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임금이 삼전도에서 청의 칸 홍타이지의 발아래 삼궤구고두례를 행하고 있던 그 시각, 예의 비정한 칼은 김상헌의 배를 깊숙이 찔렀다. 김상헌은 죽음으로서 명분을 세우고 의리를 지켰지만 이것은 작가의 상상일 뿐 현실의 김상헌은 달랐다.


82세에 졸했으니 그는 장수했다. 병자호란이 발발한 1636년으로부터 17년이나 더 살다 1652년에 죽었다. 살아있는 동안에 온갖 영광을 다 누렸고 죽어서는 그의 자손들에서 13명의 재상과 수십 명의 판서, 참판을 배출했고 순조비, 헌종비, 철종비 등 왕비 3명과, 숙종의 후궁 영빈 김씨가 모두 그의 후손이었다.


바로 그가 조선후기 세도정치의 본가 안동 김씨의 직계 선조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대 그의 가계는 보잘 것이 없었다. 김상헌의 부친 김극효는 문과에 급제하지 못하고 지방관과 중앙의 말직을 전전하던 미천한 가문이었다. 그의 조부 김생해는 신천군수를 지냈을 뿐이었다.


그러나 김상헌의 부친 김극효가 당대의 권세가 동래 정씨 부인을 맞이함으로써 안동 김씨가는 권력기반을 잡게 된다. 좌의정과 대제학을 지낸 정유길의 사위가 된 것이었다. 왕의 장인이 또한 정유길의 사위였으니 비록 미관말직이라 해도 그 권세가 보통이었을까.


정유길의 조부는 중종조에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이었다. 이 가문에서 조선후기까지 18명의 재상과 수많은 판서, 참판을 배출했으니 김상헌에겐 최상의 조건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출세하려면 좋은 인맥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관계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김상헌이 명예를 다쳤다하여 목숨을 끊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보면 대체로 원칙을 말하고 강경노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막상 위험이 닥치면 제 몸부터 사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틈만 나면 안보를 외치는 자들이 알고 보면 군대도 안 갔다 온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안보회의에 국방부장관 한 사람을 제외하고 전부 군미필자였다던 적이 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지만 웃을 수도 없는 코미디다. 이런 사람들이 입만 열면 나라 걱정이고 기회만 생기면 전쟁을 외친다. 역사적 경험은 정작 이들이먀말로 전쟁 나면 제일 먼저 도망부터 갈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영화대사에서처럼 최명길이 “만고에 역적의 이름”을 얻기를 각오하고 주화론을 폈는지는 알 수 없다. 반대로 김상헌이 “만고에 충절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척화론을 폈는지도 알 수 없다. 나름대로 두 사람 다 자신이 속한 정파의 논리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상헌은 비록 호란 이후에 청에 잡혀가(최명길도 함께. 둘은 이른바 감방동기다)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장수하며 영광을 누리고 후대 세도정치의 기반을 닦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미래의 일을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그렇듯 큰소리치는 놈이 장땡인 게다.


영화 남한산성과 김훈은 그래서 마지막을 김상헌의 자결로써 끝맺음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랬어야 한다는 하나의 교훈을 던져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명분과 의리가 백성의 삶보다 중요하다면, 너부터 먼저 목숨을 초개같이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일갈이 아니었을지.


하지만 김상헌은 그리하지 않았다.  


ps; 참고로 안동 김씨는 두 개가 있는데 김상헌의 계보는 이른바 (신)안동 김씨 혹은 장동 김씨라고 한다. 진짜 안동 김씨들은 이 때문에 아주 곤혹스럽고 불쾌하게 여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자식이 바뀌었다.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가 바뀌었다. 드라마 얘기지만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간혹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황금빛내인생 21, 벌써 중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야기는 바야흐로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있다. 서지안이 가짜 딸이라는 것이 들통나고 서지안의 부모는 서지수(실제는 최은석)의 친부모에게 무릎 꿇고 눈물로 사죄하지만 분노한 지수의 부모는 용서가 되지 않는다.

 

서지안의 엄마는 왜 서지수가 아니고 서지안을 최은석이라고 속였을까? 드라마를 본 이라면 주지하듯이 서지안의 부모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진실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누가 은석이냐고 다그치는 은석의 엄마 앞에 당황한 서지안의 엄마는 서지안을 지목했다.

 

순간적인,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빚어진 실수였을까? 75분의 1초의 지극히 짧은 시간에도 엄마는 결코 착오를 일으키지 않는다. 세상에 엄마만큼 완벽한 아가페가 존재할까. 서지안의 엄마는 지안과 지수를 똑같이 쌍둥이로 사랑한다. 그러면 왜?

 

왜 그랬을까? 엄마는 알았던 것이다. 지수는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행복을 찾을 줄 알았던 반면 지안은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머리 좋은 지안은 늘 현실에 불만족했으며 언젠가 저 높은 곳으로 날아오를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안쓰러웠던 엄마는... 

 


무의식적으로 지안이에요!” 하고 외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식이 바뀐 것이다. 반대로 지안의 입장에서는 부모가 바뀌었다. 며칠의 고만이 따랐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지안은 새로 생긴, 정확히 말하면 원래의 부모 곁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당연히 이 결정에는 명분이 있었다. 부잣집 딸로 들어가 신데렐라가 되는 이기적인 이유가 아닌 다른 명분... 벌써 몇 회나 지났으므로 그 명분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지안은 어떤 명분을 찾아 28년 동안 키워준 부모 곁을 떠나 새로운 부모 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오늘 21회 마지막 장면에서 서지안은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선택한다. 물론 그녀는 죽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이 죽게 되면 50부작 드라마는 이어질 수가 없다.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21회까지 오는 동안 줄곧 그녀가 가짜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들 불안에 떨며 언제 진실이 드러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다수의 시청자들은 지안이 가짜 딸이라는 사실이 들통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한편 지수가 진짜 딸이라는 사실을 알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도 있었지만.

 

왜 그랬을까?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그런 꿈을 한번쯤은 꾸어봤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바뀌는 꿈. 부모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꿈에서만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신데렐라가 되는 것보다 돈 많고 멋진 진짜 부모가 나타난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나는 드라마들이 유독 출생의 비밀에 집착하는 이유가 나름대로 대중적인 정서를 간파한 상업적 판단에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이루지 못한 꿈인 것이다. 드라마가 그걸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드라마 속에서 꿈은 이루어지고 평안과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 기억의 한 편린일 뿐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처럼 윤리에 어긋나는 꿈 따위는 꾸지도 않았겠고 당연하게도 기억도 존재하지 않겠지만. 하지만 지안은 너무 힘들었고 그때 진짜로 부모가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그녀는 오늘 죽었다. 그녀에게 죄가 있을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한 십오년 전이던가? 흑룡강성 가목사시에서 온 한 젊은 친구가 내게 말했다. 아, 그때는 나도 물론 젊었다.


"아, 송혜교, 정말 이쁩네다. 최고 미인입네다."

나를 삼촌이라 불렀던그 젊은 친구는 비엠더블유를 꼭 베엠베라고 불러 나를 불편하게 했다. 아무리 꼬드겨도 끝끝내 비엠더블유가 아니고 베엠베라고 고집했다. 


그 친구가 한국국적을 취득했을 때 장난처럼 "한국과 중국 중 어디를 응원하겠냐"고 물으면 "한국 30프로, 중국 70프로 응원하겠습네다" 하던 친구였다. 말하자면 중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상당한 친구였던 것이다. 그런 그 친구도 송혜교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송혜교는 그에게 있어 국적을 초월한 신앙이었다.


그런 송혜교가 결혼을 한단다. 송중기하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중국인 70%, 한국인 30%였던 젊은 친구의 송혜교 예찬론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체 뭐시 이쁘단 말이여? 영 내 스딸은 아니구만. 우리 마누라가 백배 낫지. ㅠㅠ


아무리 생각해도 눈이 삐었지. 그 친구는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삼촌도 이제 머리 다 빠져 늙은이 될 날 얼마 남지 않았다. ㅜㅜ


<송송 결혼식날 페북에 올렸던 글임. 좀 쭈굴시럽지만 옛 친구 생각이 나서리...>

Posted by 파비 정부권
TAG 송혜교

제목의 두 구절은 사실 별 인연이 없는 것이다. 드라마 <황금빛내인생>7년 만의 외출은 따지고 보면 그 어떤 개연성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또 이 두 구절은 내게 있어서는 전혀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어서 깊은 관련이 있다. 오늘 <황금빛내인생>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쓰는 후기가 나의 블로그에 있어서 거의 7년 만에 쓰는 것이니 말이다.



7년이라는 세월은 짧은 것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드라마 평을 주로 쓰는 파비의 칼라테레비를 기억하고 있다. 20089월부터 2010년 상반기(정확하지는 않지만)까지 드라마 비평을 블로그에 열심히 썼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웬일인지 블로그 활동이 시들해져서 게으름을 피우다가 어느 날부터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다 어제 문득 신실한 동네 후배이면서 절친한 친구인 어떤 분으로부터 형님. 파비의 칼라테레비를 다시 재개해주면 안 되겠느냐는 부탁 아닌 부탁을 받았다. 그 친구가 아마도 요즘 연속극에 좀 빠졌나보다. 미루어 짐작컨대(, 이런 표현은 판사님들이 판결문에서 즐겨 쓰는 표현인데, 아무튼) 사랑하는 아내가 연속극에 빠지니 덩달아 함께 빠진 게 아닌가 싶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사노동을 전업으로 하는 주부들은 필연적으로 연속극에 빠지게 돼 있다. 또 그런 아내를 위하여 함께 연속극에 빠지고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것은 자상한 남편으로서는 필수적인 일이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그것은 행복한 가정을 위한 의무사항이다.

 

혹자는 텔레비전은 백해무익한 것이며 심지어 인민의 뇌를 마비시키는 아편 같은 존재라고 하지만, 내 보기에 요즘 시대에 텔레비전만한 정보 습득 수단도 없으며 때에 따라 피로에 지친 현대인을 위무하고 무료함을 달래주는 좋은 친구다. 비약인지는 모르겠으나 부패하고 무능한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촛불혁명에 불을 지핀 것도 이 텔레비전이 아니었을까.



그러면 또 혹자는 뉴스나 시사프로는 그렇더라도 연속극만은 아니오, 라고 말씀하실지 모른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시라. 연속극이 비록 이른바 막장을 달린다손 치더라도 대사 곳곳에 숨어 빛을 발하는 명철한 분석을 겸비한 사회비판적 언어들을 접하게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당장 <황금빛내인생>을 본 소감이 그러하다.

 

우리는 우리가 아니에요.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될 수 있죠? 우리는 정규직들이나 할 수 있는 소리에요. 비정규직, 계약직들은 그냥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하는 거예요.”

 

주인공 서지안은 이렇게(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략 이렇게) 외친다.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대사였다. 최근 어떤 장관 후보자가 서울대 안 나오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말, 공부 못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말, 그거 다 거짓말이다라고 과거 자신의 책에 썼다고 해서 비판이 이는 모양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면 부정적인 현실이 긍정적인 현실로 바뀌는지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심히 의문이다. 

 

불편하지만 그의 말은 진실이 아니라고 쉽게 단언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쨌거나 텔레비전 연속극이 아니면 누가 이런 불편한 그러나 날카롭게 사회적 문제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 누가 그런 말을 들어주기나 하겠는가. 드라마야말로 얼마나 수월한가 말이다. 하고 싶은 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공간. 그래서 나는 드라마가 좋다.

 

각설하고, 신실한 동네 후배이며 절친한 친구인 어떤 이의 부탁을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고자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온종일을 할애해 나는 <황금빛내인생> 1회부터 18회까지 훑어보는 노력 투자를 하였다. 물론 중간 중간 지루한 부분은 리모콘으로 돌려가면서 보았다는 점은 미리 고백하고 양해를 구한다.

 

우선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 몇 년의 세월 동안 이야기를 구성하고 전개하는 방식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우선 당장 눈에 띄는 것은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가 사라졌더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인공 서지안은 남의 것을 빼앗는 악인이고 서지수는 자기 것을 빼앗기면서도 사랑을 베푸는 선인으로 그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다 나름대로 개성과 주관을 갖추고 있으나 그들을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로 그리면서도 나름대로 갈등국면도 만들어내고 속도감 있는 전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부분들이 신실한 후배이며 절친한 친구인 어떤 이가 꼭 보고 파비의 칼라테레비를 재개해주었으면하는 부탁을 하게 했던 것은 아닐지.

 

7년만의 외출은 재미있었다. 앞으로 이 드라마는 빼놓지 않고 결말까지 봐야만 할 것 같다. 친구에게 미리 결말에 대하여 예언을 드린다면, 해피엔딩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해피엔딩이 좋다. 세상은 너무 가혹하고 그래서 최소한 드라마에서라도 해피엔딩을, 특히 주말연속극이라면 더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는 바람이 든다.   


ps; 친구야, 숙제 했데이... ㅎㅎ 마음에 안 들어도 할 수 없다. 나름대로 어렵게 쓴 거다. 안 하다 할라니 힘드네. ㅠㅠ ^^  

Posted by 파비 정부권

밤을 걷는 선비.


귀신 드라마 같기는 한데 흔히 알고 있던 귀신 드라마와는 많이 다른 드라마다. 서양식 귀신을 본 딴 한국판 뱀파이어가 등장한다는 점부터가 식상한 듯해도 뭔가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게 신선한 맛이 있다.

 

게다가 이준기가 너무 잘 생겼다. 꼭 내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다. , 이거 너무 오버 했나? ㅠㅠ 여자 주인공들도 괜찮고. ㅎㅎ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도홧빛 이야기가 들어가면 가슴이 뛰는 법. 안 그러면 당신도 뱀파이어야.

 

그러나 무엇보다 주제가 마음에 든다. 왕 위에 왕이 있고, 그 왕 위의 왕은 흡혈귀인데 노론 대신들은 왕을 따르지 않고 흡혈귀에 충성한다. 물론 흡혈귀의 수족이 된 대가로 노론 귀족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백성의 고혈을 짜 배를 불릴 수 있는 특권이다.

 

딱 대한민국 현재의 상황과 하나 다르지 않다. 흡혈귀가 누구일지, 노론 대신들은 누구일지에 대해선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흡혈귀라. 그 흡혈귀에 빌붙어 사는 노론이라. ~~~~



Posted by 파비 정부권

주말연속극 전설의 마녀, 10번방에서 진짜 범죄를 저지른 수형자는 한 명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죄가 없다. 음모에 희생됐거나 억울하게 교도소에 갇힌 케이스다. 그리고 그 한 명의 죄수조차 실상은 별로 감방에 갇힐만한 범죄행위를 한 게 없다. 진짜 죄지은 놈은 감옥에 안 간다. 감옥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이 가는 곳일 뿐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수용 감독의 <안개>를 보며 드는 생각. 왕자웨이 감독과 많은 면에서 닮았다. 

특히 <아비정전>. 모든 주변의 것들을 생략시키고 오로지 나란히 걷고 있는 두 사람만의 대사에 몰입하는 방식이라거나, 달리는 밤 열차 천장에서 피곤한 듯 희미하게 흔들리는 전등 불빛을 잠시 보여준다거나, 영화 속의 또 다른 관객인 듯 주인공을 훔쳐보는 뭇시선들을 잠시 비추어준다거나, 무엇보다 특기할 것은 정지된 사진, 하나의 사진틀 속에서 활달하게 움직이던 인물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정지된 동작을 보여주는 것, 그것은 곧 이들 감독들이 주요하게 다루는 주제가 바로 시간이라는 것. 모든 시간, 전체로서의 시간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정지된 공간에서의 한정된 시간 속에서 주인공들이 마주하게 되는 다소 일탈적인 에피소드를 보여준다는 것. 

이런 기교는 최근 개봉한 <일대종사>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극 전체를 주도하는 경향을 보여주는데, 김수용보다는 왕자웨이가 기교나 기술적인 면에서 조금 진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왕자웨이가 훨씬 후대의 사람이기 때문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아무튼 <안개>, <아비정전>, 모두 좋은 영화다. 다른 장르의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에게는 별로일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게는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 영화들이다.


ps; 일전에 이성철 교수의 책 <그람시와 문화정치의 지형학>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한 적이 있는데, 이런 것이었다. 


왜 노동자들은 (대체로) 할리우드 액션이나 홍콩 무협영화를, 그것도 비디오를 통해서 보는 것을 좋아할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기사주소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09489223756109002


정말 웃긴다. 이 기사 쓴 기자는 정작 드라마는 보지도 않고 기사를 쓰는가보다. 최소한 오늘 방영분은 봤을지 몰라도(그랬으니 이런 걸 썼겠지) 앞에 했던 드라마는 보지도 않았던 듯. 그러지 않고서야 아무런 의심도 없이 오연서, 친모 김혜옥에 버려진 사실 눈치 챘다와 같은 기사를 쓸 수는 없을 테니까.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연서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이며, 그녀의 부모들은 그녀가 왜 사라졌는지도 알지 못한다. (예의 상황에 놀란) 오연서가 어두운 밤길을 홀로 달려가고 있을 때 이유리와 이유리의 친모 도씨가 몰던 트럭이 오연서를 치었던 것이며, 이를 숨기기 위해 두 모녀가 오연서를 트럭에 싣고 자기네 집으로 데려갔던 것이고, 교통사고로 기억을 상실한 오연서는 이후 20년 간 도씨를 엄마로 알고 살았던 것이다.

 

김혜옥이 딸을 버렸다는 주장은 이유리의 거짓말에 불과하다. 이 드라마는 전통적인 출생의 비밀에 이중인격자들의 악행과 출세지향을 적당히 버무린 전형을 그대로 답습한, 그야말로 한국형 연속극의 대표적인 예다. 과거의 연속극 유형들보다 임팩트가 더 강해졌다는 차이만 있을 뿐.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주인공 이유리(연민정)가 보여주는 리플리 증후군. 아마 내가 생각하기엔, <태양은 가득히>의 리플리, 알랑 들롱도 결코 그녀의 증상에는 상대가 안 될 듯.


아무튼 이 기자의 기사는 오보다. 말하자면 확인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판단해서 쓴 무성의한 기사로써 비난받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무리 연예기사라지만 어떻게 이런 기사를 쓸 수 있을까. 이게 연예기사가 아니고 정치나 사회면에 등장한 기사였다면 이 기자는 명예훼손으로 당장 고소당했을 게 틀림없다.


연예기자도 기자는 기자다. 좀 제대로 쓰자. 너무 어이가 없어 울고 싶다. 이러고도 월급 받는 거니ㅠㅠ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내 세상에 드라마 보다보다 이런 엉터리 같은 드라마 처음 본다. 나는 연속극을 한번 보기 시작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끝까지 본다. 궁금증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없는 드라마라도 일단 보기 시작하면 그 끝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보니 재미없는 드라마도 억지로 보는 경우도 많기는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시나리오도 엉망이지만(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엉성한 시나리오를 쓸 수가 있는지 보는 내가 한심해서 웃는다), 연출 자체도 말이 아니다. 수십 명의 총잡이들이 포위하고 있는 도접장의 집에서 도접장의 딸을 인질로 잡고 탈출을 시도하는 주인공. 그런데 그 딸이 순순히 자기가 길을 안내하겠다며 앞장을 서고, 그 딸의 등을 총으로 겨누고(인질이니까) 따라가는 주인공. 하하하. 웃기는 것은 이 엉터리 같은 주인공 친구, 자기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수십 명의 총잡이들에게 등을 보이고 천천히(물론 날카로운 눈동자를 굴리며 인질의 등에다 총을 겨누고서) 대문으로 따라 나간다. , 그런데 멍청한 인간들은 대체 뭐하는 거야. 그냥 한방이면 끝나는 것을. 등을 보이고 인질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멍청한 주인공이나 이걸 그냥 보고 있는 인간들이나…… 후덜덜이다. 그리고 또 하나 웃기는 것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고종임금이 마치 세종대왕 같은 성군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 고종임금이 통리기무아문을 방문해 새로운 개화사상 학습에 여념이 없는 관리들을 격려하고 치하하는 모습이 꼭 세종대왕이 열심히 연구에 정진하고 있는 집현전 학사들을 방문 격려하던 모습을 베껴놓은 듯하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뭐 드라마니까. 그러고 시나리오나 연출의 엉성함이나 무성의도 그냥 뭐 드라마니까. 이상 케이비에스 드라마 조선총잡이에 대한 평이었다. 이걸 보는 내가 한심하기 이를 데 없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한번 보기 시작한 건 중간에 못 끊는다. 어쨌든 끝은 봐야 하니까. ㅠㅠ  


ps; 그러나 소재는 참 좋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을 보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최근 개봉한 일대종사가 처음이었다. 이후 일대종사를 이해하기 위해 동사서독을 봤고 다시 왕가위를 이해하기 위해 열혈남아, 화양연화, 아비정전을 차례로 보았다. (모두 <다음영화>에서 편당 1,000원씩 주고 다운로드 받았음)

 

1. 특징. 모두 시계가 나온다는 점. 동사서독(일대종사도 마찬가지지만)에서 시계가 안 나오는 건 단지 그 시대에 시계가 없었기 때문이고 역시 이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중요한 소재이며 이슈라는 것.



 2. 왕가위의 모든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을 그리고 있다는 것. 수리첸(장만옥)에게 아비(장국영)는 너와 나는 1분을 같이 했어. 난 이 소중한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지울 수도 없어.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까, 라고 말한다.

“16, …… 416…… 1960416259……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나와 함께예요. 당신 덕분에 난 항상 이 순간을 기억하겠군요. 우린 1분 동안 친구였어요.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내일 다시 올게요.”

 

수리첸은 아비와 함께 한 1960416일 오후 3시를 잊지 못한다. 그에 집착한 나머지 새로 찾아온 사랑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경찰을 그만두고 선원이 되어 바다로 떠난 경찰관(유덕화)에게 전화를 걸지만 이미 타이밍이 어긋난 사랑일 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수리첸이 과거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간을 개척할 마음을 가졌다는 것. 아비는 끝내 시간의 굴레를 떨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3. 아비정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충고. 여우가 말한다. 그렇지만 만약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아마 환하게 밝아질 거야. 그렇게 되면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들과는 다른 발자국 소리를 알게 되겠지. 그리고 다시 말한다. 있잖아. 매일 똑같은 시간에 오는 게 좋겠어. 만약 네가 항상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네 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마음이 설레게 되겠지. 그리고 네 시가 다 되면 나는 흥분해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할 거야. 아마 정말로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겠지! 그렇지만 네가 아무 때나 나를 찾아온다면 도대체 몇 시에 맞추어 내 마음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게 될 거야. 그래서 일종의 준비의식 같은 게 필요한 거야. 의식이란 건 무엇을 말하는지 묻는 어린왕자에게 여우는 계속해서 말한다. 의식이란 어느 하루를 다른 날과는 다른 특별한 날로 만들어 주고, 어떤 한 시간을 다른 시간과는 다르게 만들어 주는 거야. 정말이지 이 대목이야말로 여우가 왜 지혜로운 동물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는데, 아비도 역시 그랬다. 그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수리첸이 근무하는 축구협회 매표소에 찾아가 그녀를 유혹했는데, 나는 그가 매우 영리하며 여자 꼬시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아마 그는 여우를 만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4. 또 하나 생각난 것은,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 중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이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일이다. 영국인들은 인도에서의 골치 아픈 생활은 잊고 여가도 즐길 겸 캘커타에 골프장을 하나 만들었다. 그런데 골프를 칠 때마다 예상치 못한 방해꾼이 나타나 경기를 망쳐놓았다. 방해꾼은 다름 아닌 원숭이. 이 원숭이들은 영국인들이 쳐올린 골프공이 필드에 떨어지자마자 얼른 집어가 엉뚱한 곳에 떨어뜨리곤 했다. 화가 난 영국인들이 골프장의 담장을 두 배로 높였지만 원숭이들에게 소용이 있을 리 만무. 생각다 못한 영국인들은 새로운 골프 경기규칙을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 경기를 진행하라, 는 것이었다. 물론 이 새로운 규칙은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었지만 영국인들은 그 경기를 통해 하나의 진리를 알게 되었다. 골프 경기만이 아니라 삶 또한 그렇다는 것을, 매번의 코스마다 긴꼬리 원숭이가 튀어나와 골프공을 엉뚱한 곳에 떨어뜨려 놓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5. 아비는 영국인들처럼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아비는 시간의 노예였다. 일대종사에서 궁이(장쯔이)는 시간의 노예였지만 엽문(양조위)은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 경기를 진행할 줄 아는 지혜를 터득했다.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비는 다리가 없는 새였다. 다리가 없는 새는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을 하늘에서 날아야만 한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자유롭게 하늘 훨훨 날아다니지만 땅에 닿을 수 없기에 잠 잘 때도 날개를 펴고 하늘에서 자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몸이 땅에 닿는 순간은 죽음에 이르는 시간이다. 아비는 죽음을 앞에 두고 비로소 한 여자를 생각하며 그리워한다. 수리첸(이 부분은 확실치 않다. 단지 그가 알지 못하는 사랑했던 그녀였던 것인지도. 즉, 아비는 죽을 때까지 그리운 대상을 찾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이미 늦었다.


6. 매력적인 영화다. 딱 내 취향이다. 이리 좋은 영화가 어째서 흥행에 참패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작이라고 평가받는 화양연화보다 아비정전이 더 좋다. 열혈남아도 좋았지만 현재로서는 아비정전과 동사서독이 내겐 최고. 최근 개봉한 일대종사도 물론. <다음영화> 예고편 동영상 첨부함. 많이 본 장면일 듯. 아비 장국영을 잊지 못하게 하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영원히 잊지 못할 바로 그 시간. 그러고 보니 장국영이 자살했을 때 중국의 끝도 없는 팬들의 행렬이 사스를 피해 마스크를 쓰고 울먹이던 모습이 생각나는군.  


http://movie.daum.net/moviedetailVideoView.do?movieId=3096&videoId=20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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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래 글은 홍기표 씨의 페이스북 글을 퍼온 것입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새길 만한 내용도 많아 두고두고 보려고 여기다 옮겨 놓습니다.  


    ▲ 위 그림은 <오마이뉴스>의 <정도전> 후기.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글의 관점과는 극단적인 데가 있을까?


    1>

    나는 아직 우리가 조선의 백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첫째, 한글을 쓰고 있다. 
    둘째, 서울을 계속 쓰고 있다.
    세째, 태극기를 쓰고 있다. 
    (태극은 성리학의 핵심 세계관이다. 성학십도의 첫번째 그림이 태극도설이다.)

    이 조선을 설계한 인물이 바로 정도전이다.


    2>
    주말 드라마 <정도전>이 끝났다.

    지금까지 TV드라마는 대부분 <왕>이나 <장군>을 주인공으로 다루었다. 즉 사극에서는 주인공의 직업이 매우 단조로웠다. 심지어는 임금 역할을 맡은 배우들도 고정적이었다. "고려는 최수종이 세우고, 조선은 유동근이 세웠다"는 말이 있을 정도 였다.

    <정도전>은 .. '정치가'를 다룬 드라마다. 일각에서는 정도전이 매우 대단한 혁명가인것 처럼 묘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볼 때는 <정치인>이 맞는 개념이다. 이 시대 정치인들의 행태와 본질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TV에서는 정도전이 입만 열면 "백성이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파 들에 대해 "이새끼 저새끼.."하는 말을 더 많이 했을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도 "국민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얘기는 ... 공식적인 문헌상으로나 하는 얘기지.. 일반적인 술자리에선 하지 않는다.


    3>

    TV드라마의 한계를 이해하지만. 단지 이방원이 욕심많고 포악하고, 나쁜놈으로 묘사된 것은 좀 아쉽다. 나는 실제 조선의 첫번째 왕은 이성계라기 보다는 이방원이라고 본다.

    인간의 권력의지를 나쁘게만 평가할 일은 아니다. 물론 당시에 선거와 의회가 없었기 때문에 폭력적으로 정권찬탈이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시대적 한계라고 봐야 한다.

    사실 '내가 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한 예수나..
    '내가 왕이 되면 정말 세상이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나.. 
    어차피 '자아'에 대한 확신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본다.

    강력한 자아가 있고, 그 강한 자아들이 모두 자신의 추구하는 바를 
    추구 할 수 있을 때, 사회도 강해진다.


    4>

    TV에서 안나온 후기를 지적하자면.. 역적 정도전의 후손들이 잘 살았다는 점이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역적이라고 규정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그 후손들에 대해서 관대했다.

    정도전의 세 아들중에 한명은 그날 밤 이방원파랑 전투중에 죽었고, 한명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했다. 
    마지막으로 장남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가 그냥 살아남았다. (칼들고 덤비거나 자살하지 않았다면 두 아들도 다 살려줬을 가능성이 높다)

    나중에 정도전의 후손들은 높은 벼슬도 얻고 .. 잘 지냈다. 
    일반적인 역적의 후손들과는 완전히 다른 대접을 받은 셈이다.

    논리적으로는 '역적'의 후손들은 다 죽였어야 맞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후손들이 사회적으로 능력껏 출세할 수 있도록 다 용인 되었다. 
    그 역적이라는 것이 .. 단순히 승리한쪽의 반대파 라는 뜻일뿐,. 실제 조선의 설계자는 
    정도전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무려 500년동안 지속되었던 셈이다.

    정치는 흔히 냉혹한 전쟁터로 비유되지만..
    나는 이것이 조선시대가 품고 있던 <정치의 따뜻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5>

    지금 시대에 유교라고 하면 매우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고려말 <성리학>은 외국에서 수입된 최신 혁명이론이었다.
    80년대 한국에서는 <맑스주의>가 외국에서 수입된 혁명이론 역할을 했다.

    그래서 양자는 사실 비슷한 현상이다.

    원래 혁명이론은 외국에서 수입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외부에서 들어와야 뭔가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청년시절, 외부에서 수입한 혁명이론을 읽으며 
    미쳐 날뛰던 젊은 영혼 중에 한명이었다.
    그에게는 아마도 맹자가 레닌이었을 것이다.


    6>

    정도전도 똑같이 현실의 정치적 고통을 당하며 살았던 그 시대의 정치인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 거의 인생의 반을 귀양으로 살았고, 나이 40에 아무 가진 것없이 광야에 서 있었다. 나이 들고 보수화 되면서 자기가 당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반대파에 갚아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결과적으로 자기 머릿속에 그린 국가 모델을 자기 눈앞에 구현해 낼 수 있었던 원천적인 동력은 .. 어떤 경우에도 <꿈>과 <힘>을 함께 가져야 한다는 철학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국민윤리책에 나온 칸트식 표현을 빌리면
    꿈이 없는 힘은 맹목이고 
    힘이 없는 꿈은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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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정도전

    일대종사 보고 있다. 그런데 익숙한 대사 하나가 나온다.

     

    인생에 사계절이 있다면

    우린 봄에서 곧바로 겨울이 된 거다.”

     

    이거 이 영화 보기 며칠 전에 쓴 글 중에 한 대목과 너무 유사하다.

     

    인생에 사계절이 있다면

    그것은 여름에 불어온 비바람이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난감하네. 아무래도 왕가위 거 표절한 분위기 되는 건데……

    아무튼 영화는 딱 내 취향이다. 스타일뤼시~

    Posted by 파비 정부권

    송미령은 <최고다 이순신>에서 매우 이중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로 등장합니다. 지독스럽게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물이면서도 슬픈 모성애를 가슴속에 담고 아파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한편 표독스럽지만 한편 가련합니다.

    송미령은 이순신의 생모입니다. 본명 김경숙은 시골촌뜨기 시절의 이름일 뿐이지만 늘 그녀의 발목을 잡는 족쇄와도 같습니다. 그녀는 경숙이란 이름이 정말 싫습니다. 순신이 할머니가 “경숙이 네가......”라고 자기를 부를 땐 미칠 것만 같습니다.

    “나는 경숙이가 아녜요. 내 이름은 송미령이라구요. 송미령.”

    그녀에겐 남몰래 숨겨온 비밀이 있습니다. 한창 스타의 꿈을 키워가던 젊은 시절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현재 그 아이는 이순신(아이유)이고 생부는 이창훈(정동환)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창훈은 극 초반에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아마도 너무 빨리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허, 이렇게 빨리 카드를 까버리면 뭘 갖고 줄거리를 이어댈 심산인 거지? 아, 그런데 알고 보니 진짜 출생의 비밀은 따로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본 것은 양파껍질.

    하지만 오늘 이야기는 이순신의 생부가 이창훈이 아니고 김갑수가 아닐까 하는 뭐 그런 상투적인 건 아니에요. 송미령의 이중적 태도에 관한 것이지요. 아마도 지금 송미령의 나이는 대충 어림잡아도 4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정도의 나이로 보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미숙의 나이가 좀 많죠?

    송미령이 이순신을 처음 봤을 때 이상하게 끌리는 감정에 스스로도 당혹했을 겁니다. 그러나 곧 ‘이 아이가 너무 순수하고 또 내 어릴 적 모습과 너무 닮아 그런가보다’하고 스스로 정리를 했겠죠. 그녀는 진심으로 이순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키워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순신이 이창훈의 딸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녀의 마음은 180도 돌아섭니다. 이순신을 자기가 속한 세계로부터 멀리 쫓아버리고 싶었던 겁니다. 물론 이창훈 때문입니다. 과거의 연애관계 때문이 아니라 이창훈의 죽음에 얽힌 사연 때문이었죠.

    단순한 사고였지만 그녀로서는 엄청난 부담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톱스타로서의 그녀에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사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이 자기 친딸임을 알았을 때 흔들립니다. 왜냐. 엄마이기 때문이지요.

    드라마를 보면서 그녀를 향한 묘한 연민의 정이 느껴졌습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겠지만) 두 개 혹은 세 개의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얼굴이 더 잘 보이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순신의 생모에게도 한편 송미령의 얼굴이 있는가 하면 한편 김경숙의 얼굴도 있습니다. 지금은 다만 송미령만 우리에게 보일 뿐인 게지요. 하지만 앞으로는 김경숙의 얼굴도 만만치 않으리란 예감이 듭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이 보이지만 외로운 그녀의 표정이 그걸 말해줍니다.

    그러나 저는 현재의 이중적 송미령이 좋습니다. 만약 우리가 상상하는 엄마의 모습대로 순애보로 나갔다면, 그건 그야말로 파멸의 길이죠. 지금 송미령이 하고 있는 방법이 가장 지혜로운(대부분은 영악하다고 말하겠지만) 방법입니다. 미령이도 살고 순신이도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점에서, 요즘 인물 성격묘사는 과거보다 훨씬 진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정말 돈과 권력과 자본주의만 사랑하세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당신을 사랑해주지 않아요.”

    오늘 우연히 EBS에서 하는 뮤지컬 영화를 보다 눈에 꽂힌 대사였다. 눈에 꽂혔다고 하는 것은 대사의 내용을 자막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니 귀에 꽂혔건 눈에 꽂혔건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기로 하자. 중요한 것은 영화의 대사다.

    “정말 돈과 권력과 자본주의만 사랑하세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당신을 사랑해주지 않아요.”

    정말이지 너무나 멋진 대사가 아닌가. 한국영화를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보고자 노력하지만, 늘 불만이었던 것은 한국영화에서 내 심장을 울리는 대사를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 북에서 내려온 인민군 장교가 강원도 혹은 경북 어느 산골마을 동막골의 촌장노인에게 묻는다.

    “거… 고함 한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그…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요…?”

    “뭐를 마이 멕에이지 머….”

    촌장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며 단순하다. 인민군 장교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결이었지만, 이 단순명료한 답변에 모든 진리가 들어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비결을 제대로 완성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뭐를 골고루 마이 멕에이지 머….”

    자,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오자. 이 뮤지컬 영화의 제목은 <애니>였다. 1999년에 제작된 미국영화. 1930년대 대공황기의 미국이 무대다.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이며 백만장자인 올리버 워벅스의 개인비서 그레이스가 올리버 씨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지낼 고아소녀 애니를 데려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이 영화의 뼈대다.

    영화는 매우 감동적이다. 티 없는 아이들의 장난과 웃음과 노래가 ‘돈과 권력과 자본주의’에 짓눌린 우리의 마음을 한순간이나마 해방시켜 밝은 햇살아래 뛰놀 수 있게 만들어준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뮤지컬 음악도 경쾌하고 즐겁다. 어쩌면 촌스럽다고 느껴지는 춤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것은 맨 위에 소개한 대사였다. “정말 돈과 권력과 자본주의만 사랑하세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당신을 사랑해주지 않아요.” 예쁘고 사랑스러운 올리버 씨의 개인비서 그레이스가 세계적인 갑부 워벅스를 훈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가볍고 가족적이고 재미있는 영화에 이토록 교훈적인 대사가 나오다니. 어쩌다 우연으로 삽입된 대사였으리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영화 <애니>는 한 번 더 교훈적인 만족을 주는 친절함을 베푼다. 올리버 씨와 루스벨트 대통령의 대화. 

    아이들을 무척이나 귀찮게 여기던—실은 올리버 씨는 돈과 권력과 자본주의 외에 모든 것을 귀찮고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올리버 씨는 애니로 인해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가던 중 애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백악관으로 미국대통령 루스벨트를 찾아간다. 여기서 나눈 대화는 대충 이런 내용이다.

    “올리버, 이제 그만 생각을 바꿔 내 정책에 동의해 주게.”

    “자네가 잘못 생각하는 걸세. 그 많은 돈을 왜 그런 곳에다 쓰나. 산업화를 발전시키는데 돈을 쓰는 게 미국의 미래를 위해 훨씬 도움이 될 걸세.”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힘들어하고 있네. 뉴딜정책은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미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자는 걸세.”

    “나는 뜨거운 가슴만 있고 머리는 텅텅 빈 그런 바보 같은 정책에 결코 찬성할 수가 없네.”

    올리버 씨는 완강하게 거부의 뜻을 밝혔지만 영화가 주는 뉘앙스로 봐서는 틀림없이 루스벨트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애니의 사랑이 ‘돈과 권력과 자본주의만 사랑하는’ 백만장자 워벅스를 ‘뜨거운 가슴’만 있고 ‘머리는 텅텅 빈’ 뉴딜정책을 지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1시간 30분짜리 이 영화에서 교훈적이지만 너무나 짤막한 이 두 개의 에피소드를 무심코 지나치고 말테지만, 나처럼 삐딱한(!) 시선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운 주제였다. 나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돈과 권력과 자본주의는 당신들을 사랑하지도 않을뿐더러 당신들을 짓밟고 마침내는 당신들을 망치고야 말 것이오.” 

    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유신의 누이 화형식 장면을 보면서 저는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아랍세계의 명예살인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김유신과 뒤에 김춘추와 결혼해 문무대왕의 어머니가 된 그의 누이 문희에 대한 고사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너무나 유명하지요.

    김유신은 왜 누이를 화형에 처하려 했을까요?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는 김유신이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나옵니다. 흔히 하는 말로 고뇌에 찬 결단입니다. 김춘추를 살릴 것이냐, 김문희를 살릴 것이냐의 기로에서 김춘추를 선택한 것이죠. 왜?

    김유신이기 때문입니다. 김유신은 삼국통일을 일구어낸 신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입니다. 삼국통일이 진정한 삼국통일인가에 대해선 저로선 수긍하기 어려운 바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어쨌든 김유신은 민족통일의 대업을 일군 영웅입니다.

    따라서 드라마는 김유신으로 하여금 천륜에 따른 인정보다는 대의에 따른 결단을 내리도록 설정을 한 것입니다. 그럼 왜 김유신은 동생 문희를 화형에 처하려 한 것일까요? 드라마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사와는 좀 다른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사진. 어느 블로그에서 떠서 자른 자료사진임.

    김유신은 김춘추와 삼국일통의 대업을 이루기로 약속합니다. 김유신에게 이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선 김춘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김유신은 아마도 김춘추야말로 자손이 귀한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좌에 앉을 유일한 인물이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김춘추가 자기 동생과 간통을 했습니다. 이는 물론 김춘추의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문희가 미리부터 작심하고 김춘추에게 접근해 일을 벌인 것입니다. 하룻밤 풋사랑이었지만 문희는 임신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이를 알게 된 김유신과 가족들은 누구의 아이냐고 따집니다. 그러나 김춘추의 안위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문희는 절대 입을 열지 않습니다. 외조부 숙흘종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손녀를 사려둘 수 없다고 펄펄 뜁니다.

    문희를 임신시킨 상대가 김춘추임을 눈치 챈 김유신은 고민에 빠집니다. 누군가 하나는 죽여 사태를 봉합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동생을 죽일 수도 없고 삼국통일의 대업을 함께 지고 나갈 필생의 동지 김춘추를 죽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김유신은 대의를 택했습니다. 동생 문희를 죽이기로……. 그러나 결국 김유신이 내세운 화형의 이유도 외조부 숙흘종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으므로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몇 년 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우리는 신라의 개방된 성문화를 접하고 매우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지나친 면도 없지 않았으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고리타분하고 폐쇄적인 성문화와는 다른 적극적인 성 관념을 우리 조상들이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마도 많은 이들이 고무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조선시대에도 없었던 부녀자 화형식이라니요?

    고사에선 그래도 김유신이 김춘추와 사돈을 맺을 계략으로 꾸민 일이라 귀엽게 봐주고 넘어갔지만, 이 드라마가 만든 설정은 그야말로 야만적이며 끔찍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문희를 화형에 처하는 것은 오늘날도 횡행하고 있는 이슬람세계에서의 명예살인과 하등 다르지 않습니다.

    김유신의 신라군이 쳐들어오자 아내와 자식들을 직접 칼로 쳐서 죽이고 황산벌로 향한 계백장군의 이야기를 매우 감동적으로 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저는 계백장군의 위인전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계백이 왜 훌륭한 사람일까?

    그가 5천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신라의 5만 대군을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대목이 감동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뻔히 질 걸 알았다면 아내와 가족을 죽이고 전장으로 향할 것이 아니라 적당한 은신처를 골라 가족들을 피신시켰어야 옳은 일이 아닌가. 부여에서 멀리 떨어진 벽지로 보낸다면 설사 자신이 죽는다하더라도 가족들은 살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누가 계백에게 아내와 자식들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를 주었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니 그저 한숨만 나왔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고사대로 문희는 죽지 않았습니다. 아직 공주 시절의 선덕여왕이 나타났고 이어 김춘추가 나타나 자신이 문희와 통간한 장본인이라고 고백함으로써 화형은 중지됩니다.

    그러나 아무튼, 이 드라마가 화형식을 미화시킴으로써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구실로 자행하는 명예살인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을 저지른 혐의는 그대로입니다. 

    차라리 고사에 나온 대로 김유신이 김춘추와 사돈을 맺기 위해 쇼를 벌인 것 정도로 만들었다면 몰라도, 이 드라마에서처럼 삼국통일 대업의 동지인 김춘추를 구하기 위해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죄를 씌워 여동생을 화형에 처하려 했다는 김유신의 행동은 지독한 난센스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사실은, 난센스가 아니라 최악의 범죄행위라고 해야 옳겠지요.

    ps;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화형쇼” “실감나는 눈물 펑펑 오열 연기” 따위의 연예기사 제목들이 나오는데요. “눈물 펑펑 오열 연기”는 인정해주더라도 “화형쇼” 대목에선 이 기자분들이 드라마는 제대로 보기는 보고 기사를 쓰는지 그게 의심스럽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긴 그분들도 다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마의>, 초반 첫 회가 매우 감동적인 드라마였습니다. 앞으로도 꽤 괜찮은 사극일 거라는 기대가 듭니다. 아마도 이 드라마를 만드는 감독이 이전에 상당히 괜찮은 드라마를 만들었던 모양으로 여기저기서 기대가 큰 모양입니다.

    게다가 저처럼 사상이 울퉁불퉁하다 못해 왼쪽으로 기우뚱한 사람은 “어느 누구든지 의원 한번 못보고 죽는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강도준의 포부를 그야말로 이 시대의 이슈인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벌써 조선 중엽에 선조들이 꿈꾸었다고 제멋대로 해석하여 흐뭇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토록 괜찮은 드라마일 것 같은 예감이 듦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옥에 티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본래 거의 모든 사극들은 주인공의 출생에 관해선 마치 무협지를 보는 것처럼 천편일률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모든 주인공은 고귀한 신분을 타고났다는 설정이 그런데요. 천민의 자식은 고사하고 하다못해 평민의 자식이 주인공이 되는 예를 사극에서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오죽했으면 신분적으로 천한 기생에서 거상의 반열에 오른 김만덕조차도 출신이 서울 양반집 딸이었습니다.

    물론 주인공의 부모가 되는 양반은 역모에 휘말리거나 당쟁에서 패퇴해 몰락함으로써 죽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마의>도 그렇습니다. 주인공 백광현은 실존인물로 글자도 알지 못하는 미천한 인물이었는데 말의 병을 치료하는 마의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침술에 능하고 종기를 치료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내의원 의관에 발탁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말을 치료하며 얻은 오랜 임상경험으로 침술에 달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종기를 절개하여 치료하는 이른바 외과적 수술기법을 최초로 개발하고 보급했다고 합니다.

    글자를 모르니 당연히 의서도 보지 못했을 백광현이 이루어낸 경지란 점을 생각해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아마도 그는 천재였을 것입니다. 무협지 식으로 말하자면 백년에 하나 날까 말까한 기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드라마 <마의>는 주인공 백광현의 운명을 실로 무협지처럼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의 생부인 강도준은 나노라하는 명문세가 출신에 대과에 장원급제한 수재였던 것입니다. 거기다 강도준은 의술에 천부적인 자질을 지녀 읽지 않고 통달하지 않은 의서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기재 중의 기재입니다. 백광현의 생부를 천하의 기재로 만듦으로써 백광현이 의서를 한 번도 읽지 않아도 천재적인 의원이 되는 것은 당연한 운명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싶었던 것일까요?

    하긴 뭐 그게 편할 수도 있겠습니다. 상투적이긴 해도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익숙한 스토리는 별다른 공을 들이지 않아도 설득하기가 쉽습니다. 사람들을 몰입시키기가 수월하다는 말이죠. 그리고 아무래도 상놈의 자식보다는 양반의 자식이 폼도 날 것입니다.

    하지만 드라마 <마의>라면 얼마든지 이따위 상투적인 공식에서 탈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소현세자의 죽음의 비밀을 얽어놓으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굳이 역적으로 몰려 죽은 강도준의 아들이 아니라 그 비밀을 알고 있는 뱃사공의 아들이라도 별 탈이 없지 싶습니다만.

    아무튼 저로서는 백광현이 천민 출신이어도 얼마든지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왜 굳이 양반 핏줄로 만들어야 했는지 그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백광현이 명의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양반의 핏줄을 타고나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다음주 혹은 다다음주엔, 혹은 언제이든지, 백광현의 양부가 백광현 앞에 무릎을 꿇고 출생의 비밀을 밝히는 장면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정말이지 너무 자주 봐오던 장면이라 오글거릴 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도련님. 도련님은 제 아들이 아닙니다. 도련님의 진짜 아버님께서는 대제학 대감댁의 장남이셨습니다. 대과에 장원급제하시고도 유의가 되어 백성을 돌보고자하셨던 훌륭하신 분입니다. 도련님은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의술을 익혀 훌륭한 의원이 되셔야만 합니다.”

    에그, 밥이나 먹자!

    Posted by 파비 정부권

    첫 회부터 사람이 죽는다. 슬픈 일이다. 사람 살리는 일을 하는 의원이 사람 죽이는 일에 앞장서는 것도 슬픈 일이다. 죽임의 대상은 조선의 왕세자다. 하지만 드라마는 왕세자 한사람의 죽음으로 끝내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죽임을 당한다.

    강도준은 대제학의 장남이다. 명문세가의 자제로 대과에 장원급제까지 했으니 전도가 창창하다. 출세가 보장된 그에게 그러나 운명적 만남이 기다린다. 왕을 대신해 대과 급제자들을 축하하는 자리에 나타난 소현세자로 인해 이 전도유망한 청년의 운명이 갈린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 세자빈을 응급처방으로 살려낸 도준에게 소현세자는 의원의 길로 나서보지 않겠냐고 묻는다. 도준이 선뜻 대답을 못하자 소현세자는 실망한 듯이 다시 따져 묻는다. (대사는 물론 대충 기억나는 대로 옮긴다. 본래 의미에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 천한 직업이라 생각되어 그러는 것이오?”

    “아니옵니다. 사람 살리는 일을 천하다 생각하는 양반들의 생각이 천하다고 생각하옵니다.”

    “하하, 그렇구려. 훌륭하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간 언제 칼침을 맞아 죽을지 모르니 조심해야할 것이오.”

    @사진. mbc

    도준은 이때부터 심중에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된다. 명문가 출신으로 대과에 장원까지 한 도준은 모든 것을 버리고 의생의 길을 택한다. 그리하여 내의원 의원이 되었으나 이마저도 던져버리고 가난한 백성을 진료하는 의원이 된다.

    “내 꿈은 의원 한번 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일세.”

    도준은 “(소현세자를 만난 이후) 그래서 의원이 되려고 했던 것이냐”고 묻는 이명환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분이 천하다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의원 한번 만나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 요즘으로 말하자면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세상이다. 

    “아니네. 내가 아니라도 의원이 되어 병자를 고치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나. 내 꿈은 그게 아니라 세자저하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것이었네.”

    아마도 이들의 이 짧은 대화로 미루어보아 도준은 소현세자가 청에 볼모로 잡혀간 이후 거리에서 백성들을 무료로 고쳐주며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자가 돌아와 왕이 되면 하게 될 혁명을 꿈꾸며.

    그러나 도준의 희망대로 소현세자는 돌아왔지만 혁명의 꿈 대신 함께 죽을 운명만 갖고 돌아왔다. 조선의 임금 인조는 세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자의 ‘울퉁불퉁한’ 사상은 기득권세력에 의해 옹립된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믿는 이른바 서학(천주교)에 경도된 세자에게 왕위가 넘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 생각됐던 것이다. 김자점을 위시한 대신들도 그렇게 간한다. 그래서 죽이기로 한다. 천륜을 저버린 왕의 음모에 도준도 희생된다.

    내가 이 드라마에서 유념한 것은 천한 마의(말을 치료하는 수의사)의 아들 이명환이 출세를 위해 신분의 벽을 깨고 친구가 되어준 강도준을 배신한 비정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쯤이야 어떤 드라마건 단골소재가 아니던가.

    그보다는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조선이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아쉬움이 컸던 것이다. 아마도 이때부터 조선은 서인에서 노론으로 이어지는 일당독재의 시대로 접어들었을 게다(따지고 보면 지금도 그때와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흔히들 당쟁이란 말로 조선후기 정치사를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도대체 당쟁이란 표현이 가당키나 할까 싶다. 당쟁을 좀 순화시켜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정당정치가 되겠는데 조선에 그런 게 있었던가? 그랬다면 오죽 좋았을까!

    이야기가 너무 비약했다. 하지만 정통성 시비로부터 늘 불안에 떨었을 인조의 나약함이 아들도 죽이고 조선의 미래도 짓밟았다는 혐의가 그리 어긋난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첫 회부터 전노민이 퇴장하는 것이(물론 특별출연이긴 하지만) 슬픈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잠들기 전, 다시 생각해보아도 소현세자는 실로 불쌍한 사람이다. 도준에게 “(사건을) 들추려 하지 말라” 하고 말할 때 그는 이미 음모의 진원지가 어디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이런 뒌장~ 잠이나 자자!

    Posted by 파비 정부권

    참 어이가 없습니다. 아무리 일신영달에 눈이 어두워 나라를 팔고 친일이 골수에 박혔기로 아들이 죽었는데도 목숨을 구걸하며 재차 친일을 맹세하다니… 도대체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닐까요? 그래도 아들의 죽음 앞에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각시탈과 독립군(투사)들은 친일파 이시용 백작의 아들 이해석의 도움으로 국방헌금을 빼돌리는데 성공합니다. 이 국방헌금은 이시용이 친일 조선인들로부터 거둬들인 10만원의 거금이었습니다. 아비는 친일을 했지만 그래도 아들만은 민족적 양심이 살아있었습니다.

    이해석은 권총을 자기 머리에 쏴 자살했습니다. 비록 조선인의 양심으로 독립군을 도왔지만 아버지를 배신했다는 자책감에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른 척 하고 있으면 될 일을 왜 굳이 자살까지 감행한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해석은 자기 아버지 앞으로 유서를 남겼고 이 유서에는 자기가 독립군을 도와 국방헌금을 빼돌렸다는 사실이 적혀있었습니다. 이시용이 허둥대는 사이에 이 유서는 키쇼카이(대동아공영권을 달성하기 위한 비밀결사) 회장 우에노 히데키에게 전해졌던 것입니다.

    우에노 회장에게 끌려간 이시용은 애통한 듯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내가 자손 대대로 편히 살길, 딱 하나 믿는 아들놈 편히 살길 바라면서 천황폐하 만세를 불렀는데… 비행기 헌납에 쏟은 돈은 어쩌냐….”

    이때가지만 해도 저는 이시용이 아들마저 죽은 마당에 자존심을 지킬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친일행각에 눈이 먼 자의 정신세계를 너무 과소평가한 기대였다는 것이 곧 드러났습니다. 이시용과 그의 처는 우에노에게 살려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습니다.

    우에노는 그런 이시용을 달개며 ‘국방헌금 10만원을 잃어버린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며 조속히 반환하겠다’는 내용의 각서에 사인만 하면 살려줄 것처럼 말합니다. 어리석은 이시용 백작부처. 스스로 죽음을 재촉합니다.

    이시용이 사인을 마치자 우에노 회장은 교활한 눈짓을 보내고 대기하고 있던 일본인 무사들은 칼을 휘둘러 이들 부부를 그 자리에서 베어버립니다. ‘모든 책임을 지고 조속히 반환하겠다’는 각서는 곧 전 재산을 팔아 지옥행 열차표를 끊은 것이나 진배없었습니다.

    오호, 통제라! “뼛속까지 골속까지 천황폐하 자식들”이라던 친일파의 말로라니. 살기 위해 한 짓이 죽음을 재촉했습니다. 하나뿐인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이들의 친일은 반성할 줄을 몰랐습니다. 살기 위해서였다고요?

    정말 이시용 백작의 친일은 살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일까요? 구황실의 황족으로 고대광실에 호의호식하던 이시용에게 도대체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얼마나 잘 살아야 산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식으로 친일을 정당화하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시용처럼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지고도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지기 위해 친일 하던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런 부류를 사회지도층이라 부르나봅니다)이 있는가하면 밑바닥에서부터 출세하기 위해 일본군 장교의 길을 택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도 친일파가 된 목적은 이시용 백작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자자손손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겠지요. 얼마나 더 잘 살기 위해서? 거기에 대해선 답이 없군요. 당시로선 학교선생인 것만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직업인데 굳이 칼까지 차야 했던 것인지.

    아무튼 이시용 백작의 ‘자자손손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친일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드라마에서나 얘기가 되는 것이고, 현실에서는 어떨까요? 친일파들은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언젠가 한 늙은 독립운동가가 “내가 사는 모습을 보면 아무도 애국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했다는 말이 생각나는데요. 거꾸로 이런 건 어떨까요? 한 늙은 친일파가 “내가 사는 모습을 보면 아무도 친일 따위는 하겠다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역사는 친일파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도록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사는 모습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친일을 하려고 들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시용 백작 부부만 불쌍하게 되었네요. 그 아들 이해석이 특히 그렇고요.

    아무쪼록 비록 친일은 했더라도 지옥 중에서도 개중 할랑한 지옥에서 조금이나마 고생을 더셨으면 하는 바램 가져봅니다. 제 아무리 악인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경건해져야 하는 게 우리네 미덕이니까요.  벌써 밤이 깊었군요. 이만들 편안한 밤 되시기를, 총총.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이 <명상록>에서 했다는 유명한 말입니다. 일요일 한낮에 어제 못 본 넝쿨당을 보다 문득 파스칼의 이 경구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기에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질투하는 존재다!”

    어릴 때 아들을 잃어버렸다가 30여년이 지나 우연한 기회에 다시 찾게 된 노부부가 미국에서 아들부부를 만나기 위해 입국하는 양부모를 마중하기 위해 공항에 나갑니다. 너무나 좋고, 고맙고, 밤새 엎디어 절이라고 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일생에 최고의 손님인 거죠.

    마침내 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아들의 양부모, 은인에게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할지… 쩔쩔 매는 방귀남의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는 잃었던 아들을 잘 키워주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해준 은혜에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아마 이들의 심정은 모르긴 몰라도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다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팔이라도 하나 떼어달라면 “오냐, 그러마!” 하고 얼른 떼어줄 마음이었을 테지요. 눈물로 지샌 지난 30년을 생각하면 그깟 팔 한 짝이 무에 대수겠습니까.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실로 간사한 것인가 봅니다. 아무리 친자식이라도 30년 세월이 치고 있는 벽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서 귀남이가 자신들에게 너무 예의바르고 싹싹하게 친절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어머니는 양부모를 만나서 격의 없이 반가워하고 장난도 치는 모습에 마음이 조금 언짢습니다.

    하늘같은 은인들을 만나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던 마음은 파스칼의 경구처럼 금방 갈대가 되어 질투하는 마음으로 돌아섰습니다. ‘우리한텐 그렇게도 무뚝뚝하고 예의만 차리는 아들이 제 양부모들 앞에서 어쩜 저리도 아이처럼 변할 수 있을까?’

    며느리도 그렇습니다. 시양부모(뭐라 불러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를 만난 게 3년 전 결혼할 때 고작 몇 번뿐이었다면서 어쩜 저리도 다정한 푯대를 내는 것인지 미워 죽을 지경입니다. 아들에겐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에 함부로 내색도 할 수 없지만 며느리는 다릅니다.

    결국 시어머니는 따로 며느리를 불러 따질 참입니다. “얘, 너는 나한테는 그렇게도 매정하게 따지고 들면서 미국어머니한테는 어쩜 그리도 살갑게 구는 거니? 그리고 나는 니가 그렇게 애교가 넘치는 앤 줄 이번에 첨 알았다. 나, 아주 기분 나쁘다.” 며느리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물론 “어머니, 그건 아니죠” 하고 반격하는 며느리의 모습이었죠. 음, 아무튼, 저는 뭐 이런 모습이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고 정겨운 모습이고 아름다운 가족사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게 아닙니다. 바로 질투심에 관한 것이죠.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은인을 만나 어떤 요구라도 순순히 복종할 마음을 가졌던 귀남의 어머니가 막상 아들부부와 너무도 다정스레 어울리는 양부모의 모습에 질투심이 발동했던 것입니다. 이 질투는 질투의 일반적 의미가 보여주는 것처럼 과연 나쁜 것일까요?

    하지만 저는 이 질투심이야말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아무런 사랑의 감정이 없었다면 아들내외와 미국에서 온 양부모가 나누는 다정한 모습에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보기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3자의 입장으로 말입니다.

    며느리 김남주가 “어머니, 사실은 저한테 섭섭한 게 아니고 그이한테 섭섭하신 거 아니에요?”라고 되받았지만 윤여정이 “그래 맞아. 하지만 너한테도 그래”라고 말했던 것은 며느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섭섭함이 있었다는 거죠.

    물론 질투란 많은 경우에 그리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돈이 논 사면 배 아프다’라는 속담처럼 질투는 사회관계에서 매우 부정적인 측면입니다. 조직사회에서도 이 질투 때문에 실력 있는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 친구는 아는 것은 많은데 별로 쓸 데가 없어”라든가 “현실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훌륭한 사람이긴 하지만 조삼모사하다”는 식으로 꼭 한두 가지 흠을 들추어내 평가절하 하는 것입니다. 맞는 말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질투심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귀남이 어머니의 질투는 성질이 다릅니다. 남을 깔아뭉개기 위해서 발동하는 질투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질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도 너무 지나치면 사람관계를 악화시켜 부정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정도의 질투심이 “내가 미국에서 온 저 두 분 양부모님들보다 우리 귀남이 내외에게 더 잘해줘야지. 그래서 내 사랑이 저분들보다 절대 모자라지 않음을 확인시켜줘야지” 하는 경쟁심리를 유발하는 정도라면 더없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질투는 인생을 충만하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중용의 도만 잘 지킬 수 있다면 마치 소금처럼 인생의 간을 맞추는데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참으로 눈물겨운 장면들이 많았던 어젯밤 드라마 <넝쿨당>을 보다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만들어보는 것으로 이글을 마칠까 합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고로 질투하는 존재다!” 어쩌다보니 파스칼과 데카르트가 막 뒤섞인 것 같은 느낌이네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질투한다.”

    ps; 참고로 저는 귀남이 양부모가 입국한다고 할 때 이미 귀남어머니의 질투심이 생길 걸 예상하고 있었답니다. 왜냐? 그게 인간의 본성이거든요. 만약 질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우리는 이미 경찰청 내에 숨어있는 스파이가 누군지 어렴풋이, 그리고 종반으로 다가오면서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스파이의 실체를 실제로 접하게 되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경찰청의 고위간부였던 것입니다. 본청 국장이면 얼마나 높은 계급일까요? 우선 최고위 인사인 경찰청장은 치안총감이고 단 1명뿐입니다. 그다음 계급이 치안정감으로 본청 차장, 서울, 경기지방청장, 경찰대학장 이렇게 4명이 있습니다.

    치안총감과 치안정감, 이 5명의 바로 다음 계급이 치안감입니다. 26명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본청 국장급과 지방경찰청장이 이에 해당합니다. 군대로 치면 치안정감은 군사령관, 치안감은 군단장 내지는 사단장쯤 되는 걸로 보면 되겠습니다.

    ▲ 경찰청 수사국장 신경수

    아무튼 경찰청 내에 잠입한 살인마 조현민의 스파이는 경찰청 수사국장 신경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신국장이 스파이여서가 아니었습니다. 경찰청 수사국장을 일개 민간범죄자의 스파이로 상정할 수 있는 드라마의 설정이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긴 지난주에 종영한 <추적자>에선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야욕을 위해 살인과 납치, 재판조작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리얼한 드라마의 설정에 치를 떨면서도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경찰청 수사국장 신경수는 어쩌면 대통령후보 강동윤의 또다른 모습일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신국장이 야망을 채우기 위해 악행의 그늘에 숨어 악마와 손잡았다는 설정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늘 있을 수 있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조현민의 정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악마였습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조현민은 살인에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픔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과 복수,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것에 대한 집착, 이 두 가지가 그를 악마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악마이면서도 나름대로 동정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불가피하게 악의 수렁에 빠진 자에게 보내는 연민의 정이 가능했습니다. 만약 조현민이 불행한 과거를 겪지 않았다면, 그의 아버지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면 악인을 응징하기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되는 선택을 했을까.

    그런데 극이 중반을 넘겨 종반으로 달려오면서 경찰청 내에 숨겨둔 스파이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사이버수사대의 수사관과 연구원이 물망에 올랐습니다. 그중에 증거분석전문가 강응진 박사가 스파이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강박사는 피라미에 불과했습니다. 더 큰 스파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경찰청 수사국장 신경수. 놀랍지 않습니까? 경찰청에서 청장과 차장 다음으로 중요한 보직에 있는 수사국장이 세강그룹 신임회장 조현민의 스파이였다니.

    경찰청 최고수뇌부의 한사람이 재벌그룹 회장의 간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존재하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실체, 유령. 경찰청 수사국장이란 지위가 이를 가능케 했습니다. 그는 법과 정의라는 그늘에 숨어 악행을 일삼는 유령이었던 것입니다.

    자, 그런데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시하면서도 과거에는 상상조차도 불가능했던 이런 불편한 설정에 이의를 달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대한민국 경찰수사의 최고봉이 추악한 범죄집단의 일원이란 사실에 왜 그다지 놀라거나 분루를 쏟지 않는 것일까요?

    지극히 현실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따위의 불편한 설정은 실은 현실에서 얼마든지 보아오던 것이었습니다. <추적자>의 강동윤은 어쩌면 우리 정치사에 실재하는 인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마당에 신경수쯤이야….

    아무튼, <유령>에서 어둠속에 숨어있는 그림자처럼 실체를 알 수 없던 유령의 존재가 경찰청 내에서도 가장 온화하고 이해심 많은 신경수 경찰청 수사국장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전율이 일었습니다. 정말 무서운 일이죠.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이 유령을 지배하는 더 큰 유령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유령은 <추적자>에서 강동윤이 원했던 바처럼,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가 없는, 영원한 권력”입니다. 강동윤은 대통령 자리조차도 예의 영원한 권력으로 가기 위한 발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노무현대통령도 이에 대해 말한 바가 있습니다.

    “권력은 이미 자본(시장)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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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적자>의 결말은 감동적이었지만 아쉬웠다. 많은 사람들이 통속적인 결말이 없기를 고대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통속적인 결말을 기다렸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성경말씀이 현실에서도 구현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작가는 여론에 편승하기로 한 듯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통속적이지 않은 그러나 매우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론으로 “역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추악하고 역겨운 곳이야!”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뇌까려주는 것으로 한동안 세상을 숨 가쁘게 했던 드라마에 종지부를 찍었다.

    강동윤, 징역 8년, 백홍석, 징역 15년. 이것이 <추적자>가 내린 최종 결론이었다. 최후까지도 법은 진실을 외면했으며 정의를 배반했다. 물론 이것은 현실이다. 지난 두 달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작가는 마지막까지도 너무나 냉정하게 가장 현실적인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였다. 사람들은 권선징악의 결말을 바라지 않았다. 그것은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다. 보라. 땅 투기에 온갖 의혹을 받아도, 법정에서 피고와 함께 기도놀이로 사법부의 권위를 실추시키면서 노동자의 명줄이 걸린 사건에 대해선 단 몇 분의 고민도 아까워하는 판사가 곧 대법관이 되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사법부가 어울리지 않게 정의의 칼을 뽑아 상황을 바로잡는 시추에이션을 만드는 것은 사실에 대한 왜곡이며 진실에 대한 농락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네티즌들은 ‘빤한 결말’에 대해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강동윤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60%를 넘는 지지율이 선거 당일에는 70%도 넘겼다. 대적할만한 후보가 없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 재벌집 사위이기도 하다. 돈과 권력을 모두 겸비한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다.

    하지만 그에겐 꿈이 따로 있었다. 그는 가난한 이발사의 아들이었다. 강동윤은 없는 자의 설움이 무엇인지 피부로 잘 안다. 그는 가진 자의 대열에 합류해서 그들과 함께 그들처럼 살고 싶었다. 그래서 서지수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는 더 큰 꿈을 꾸었다.

    “겨우 5년 권좌에 앉았다가 퇴임 후에 이리 물어뜯기고 저리 물어뜯기는 대통령 따위가 내 목표가 아니야. 내 목표는 따로 있어. 그 자리는 영원히 물러날 필요가 없는 자리이고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가 없는 자리이기도 하지. 그리고 실제로 권력을 움직이는(조종하는) 자리이기도 해.”

    영원한 권력. 그는 자기 장인이 가진 자리를 원했던 것이다. 재벌총수.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가 없는 영원한 권력. 그 자리에 가기 위해 강동윤은 대통령이 되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청와대는 장인이 앉아있는 회장 자리로 달려가기 위한 역마차에 불과했던 것이다.

    강동윤이 달리고 있는 욕망의 도로 위에서 백홍석의 사랑스런 딸이 강동윤의 아내에게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우연이었다. 그러나 이 우연은 강동윤에 의해 필연적인 죽음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강동윤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백홍석의 딸을 죽이도록 교사한 것이다.

    밀고 밀리는 사건의 전개 속에서 강동윤은 형사와 검사를 돈으로 매수하고, 때로는 협박하고 감금하고, 또 때로는 저격수를 동원해 살인을 기도한다. 강동윤에게 매수된 대법관은 억울하게 죽은 백홍석의 딸을 상습 마약중독자에다 원조교제를 하는 못된 여학생으로 만들어버린다.

    백홍석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사랑하는 딸의 행복을 위해 아이돌 스타 피케이준 공연티켓을 구해 생일선물로 바칠 줄 아는 순수한 한 가정의 가장이다. 월급 2백2십만 원의 박봉이지만 용돈을 아껴 딸의 생일잔치를 거하게 챙겨줄 줄도 아는 마흔두 살의 다정다감한 아빠다.

    그에겐 거창한 꿈 따위는 없다. 그저 하루하루 별 탈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라면 꿈이다. 딸이 웃어주는 해맑은 얼굴이 한없이 가슴 뿌듯하고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이 세상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다. 그에겐 지금 이순간이 지상 최대의 낙원이다. 그런데 그게 깨져버렸다, 한순간에.

    법은 그를 지켜주지 않았다. 법은 외면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밀어내고 때리기 시작했다. 딸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마약에 중독됐기 때문이라고 법은 말했다. 평소에 행실도 나쁜 아이였다면서 죽을만한 아이가 죽었을 뿐이라며 살인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이런 제기랄.

    백홍석은 법을 믿지 않겠다고 했다. 스스로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딸의 누명을 벗겨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총을 들고 법정으로 가 피케이준에게 겨누며 외쳤다. “진실을 말해.” 그가 원한 것은 진실이었다. 뒤이어 몸싸움, 그리고 격발, 피케이준 죽음.

    엄숙한 무게로 무장한 재판관들이 입장하고, 기립, 착석, 판결문이 낭독됐다. 강동윤 징역 8년.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저런 정도의 엄청난 일을 벌이고도 고작 8년이라니. 이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 약소한 거 아닌가. 그리고 뒤이어 백홍석, 징역 15년. 허걱~, 허각이 아니라 허걱이다.

    아마도 어쩌면, 작가는 이 재판을 통해 사법부에 사형선고를 내리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징역 8년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 징역 15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권력에 대한 사법부의 굴종. 약자의 하소연과 저항에는 사정없는 괘씸죄의 철퇴. 이미 죽은 사법부에 대한 사형선고다. 

    △ 재판부가 판결문을 읽자 대비되는 두 개의 표정. 왼쪽은 진실과 정의를 원하는 민심의 표정이요, 오른쪽은 부패하고 무능한 검찰의 표정이다.

    한 트위터러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8년과 15년의 의미는 사법부의 8.15독립을 염원 혹은 촉구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독립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죽은 사법부를 다시 살리는 일이겠다. 살지도 못한 것이 독립을 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니까.

    드라마 <추적자>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작가가 이명박대통령과 비비케이 사건 등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이 뚜렷이 보인다. 그래서 강동윤은 기를 쓰고 대통령 선거일만 넘기면 된다고 혈안이었던 것이다. 당선만 되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난다.

    아무튼, 이 드라마, 너무 사실적이어서 너무 무서운 드라마였다국회의원들로부터 임명 동의를 기다리고 있는 4명의 고명하신 대법관 후보자들이 혹시 이 드라마를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긴 그들이라면 보았더라도 아무 생각 없었을 것이다.

    혹시 김신 대법관 후보자라면 이런 정도의 기도는 했을지도 모르지만. “주여, 저 분수 모르고 날뛰는 불쌍한 영혼에게 천벌을 내려주소서! 세상 따끔한 맛을 보여주소서!” 그가 노동자 김진숙 씨에게 불과 몇 분, 몇 시간 만에 내렸다는 결정문을 보면 영 억측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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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이지 ‘무신’ 일이야? 무신에서 장군이 노예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대고 절을 한다.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황당한 장면에 모두들 놀랐을 거다. 박송비, 쟤 미친 거 아냐? 이 느닷없는 상황을 대체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실로 파격 중에 파격이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공명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한마디 고견을 듣기 위해 장군이 노예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는 고사는 어디서도 들어본 바가 없다. 박송비야말로 장군 중에 장군이며 영걸 중에 영걸이다.

    박송비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원래 지방 관아의 형리를 지낸 벼슬아치였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수없이 많은 죄인들을 심리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보았고 마침내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지니게 됐다. 그래서 최우가 그를 중용했다.

    최우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늙은 아비 최충헌은 오늘내일 중으로 세상을 떠날 것이다. 고려 막부의 수장인 아비를 대신해 도방을 책임지고 있지만 최충헌의 주요 가신들은 모두 아우 최향에게 붙었다.

    왜?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인간사란 원래 그런 것이다. 깨끗한 물에서는 고기가 잘 살지 못한다. 최우는 너무 깨끗하고 충직하고 공평무사하며 애국적인 사람이다. 그러므로 먹을 게 없다. 최향은 반대다. 그 결과 최향은 수만의 수도방위군을 거느리게 됐다.

    최충헌을 대리해 고려의 실질적 최고기관인 도방을 다스리면서도 최향에게 늘 목숨이 위태로운 것은 그 때문이다. 이를 잘 아는 최충헌은 최우를 불러 “내가 곧 죽을 것이지만 앞으로 절대 여기 나타나선 안 된다. 죽었다는 소식이 가도 오지 마라!” 하고 명한다.

    그리고 최우에게 두루마리 문서를 하나 주면서 집에 가서 읽어보라고 한다. 문서에는 붓으로 ‘충헌’이라고 쓴 수결만 있고 아무 내용도 없는 백지문서였다. 무슨 뜻이었을까? 최충헌은 너무 강직한 최우의 단점이 걱정이지만 역시 나라는 최우에게 맡기고 싶다.

    왜? 최향이 실권을 잡으면 나라 다 거덜 낼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너무 깨끗한 물에서는 고기가 안노는 법이야!” 하고 최우에게 충고를 하긴 했지만 최충헌이 보기에 자신이 세운 도방을 잘 건사할 재목은 큰아들 최우라고 본 것이다. 그 최우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다.

    최우의 가신들은 하나같이 애가 탈 뿐이다. 상황을 타개할 묘책이 없다. “이거 이러다 무슨 일 나겠는 걸. 멀리 피신해 당장 위험을 모면하고 대책을 세우든지 아니면 최향 측과 협상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야말로 속수무책.

    이때 박송비의 눈에 김준이 들어왔다. 한낱 노예가 불경을 꿰고 사서삼경을 읽으며 병서에 통달하고 정관정요를 안다. 무술은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 위기에 처한 최우와 자신을 살렸는데도 대가로 주는 금덩어리를 거절하며 가병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한다.

    박송비가 보기에 김준은 먹을 것을 바라고 주인을 위해 짖는 개가 되기보다 최우의 가신이 되기를 바라는 장부다. 박송비에게 한줄기 희망이 보인다. 혹시 저자가? 만약 저자에게서 주군 최우를 살릴 계책이 있다면!

    박송비의 눈은 정확했다. 그리고 박송비는 최우를 살릴 계책을 얻었다. 최향은 최우를 죽이기 위해 최충헌이 위독하다는 핑계로 최우를 최충헌의 관저로 불러들이려 한다. 그곳에 군사를 풀어 덫을 쳐놓았을 것은 자명한 일. 김준은 이를 역이용하라고 말한다.

    최우에게 내린 최충헌의 수결 백지명령서가 있지 않은가! 그것을 이용해 최향의 측근 중 한명을 잡으라고 말한다. 최향에겐 최측근 4명이 있다. 틀림없이 이들이 다시 올 것이라고 말한다. 최우를 불러들이기 위해. 가지 않으면 최우는 최충헌의 장자로서 웃음거리가 될 터.

    얼굴이 상기된 박송비가 최우에게 김준의 계책을 따르라고 간하지만 최우는 이를 듣지 않는다. “아니 어찌 한낱 노예의 말을 듣는단 말인가. 그리고 이미 김약선을 보내 소환했지만 내가 가지 않았다. 다시 오진 않을 것이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보고가 들어온다.

    “지금 대문밖에 최향 대감 댁에서 대감을 뵙고자 두 분 장군이 오셨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최우와 박송비 장군. 김준의 예측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뭐 그다음 장면은 다음 주에 보게 되겠지만 대충 짐작이 간다. 최우는 김준의 계책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제 김준은 최우의 목숨을 구했을 뿐 아니라 권력투쟁에서 결정적인 승리의 단초까지 제공한다.

    유방은 천하를 제패한 후에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면서 1등 중에 1등은 장량도 아니고 한신도 아닌 소하라고 했다. 만약 소하가 후방에서 한나라를 안정시키고 재정을 튼튼히 하지 않았다면 장량의 지략이나 한신의 전략이 빛을 발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뜻일 게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소하의 공로 중에 결정적인 것은 바로 한신의 재목을 알아보고 천거한 점이다. 소하가 천거하지 않았다면 유방은 시골에서 올라온 촌놈을 결코 대장군으로 임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하의 체면을 존중해 마지못해 하게 된 인사가 대업을 이룰 열쇠였다니.

    세상 사람들이 한신을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치는 것은 그가 해하전투에서 당대 최고의 명장 항우를 대패시켰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한나라에서 도망치는 한신을 뒤쫓아 유방 앞에 데려다놓고 대장군으로 쓰도록 강제한 소하가 없었다면? 아마도 유방도 한신도 없지 않았을까?

    박송비가 한낱 노예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술잔을 나누고(이것조차 파격이며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계책을 구걸하지 않았다면? 이는 물론 드라마상이긴 하지만 최우는 최향에게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은 최우가 나중에 최향을 제압하고 실권을 장악하게 된 다음 논공행상을 한다면 1등 중에 1등은 김준도 아니고 다른 장군들도 아니며 오로지 박송비라는 것이다. 장량도 아니고 한신도 아니고 소하가 1등 중에 1등인 것처럼.

    어쩌면 이 드라마의 작가도 유방과 유비가 한신과 제갈량을 얻게 되는 과정을 그린 고전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이런 설정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전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사람을 알아보고 이를 천거해 중용하도록 하는 것. 이게 가장 큰 능력이다.

    그러므로 최우는 이렇게 외쳐야 한다. “박송비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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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품달이 끝났다. 마지막 2회를 남겨두고 MBC노조의 파업여파로 결방되는 바람에 시청자들의 애를 태웠던 해품달, 그러나 결말은 엉성했다. 아니 이건 배신이었다. 애타게 마지막 반전을 기다리던 시청자들을 향한 반역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렸던가. 원작소설과는 다른 무언가 색다른 반전을 기다린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해품달의 마지막 결말에는 그 어떤 반전도 없었다. 한창 일을 벌이다가 갑자기 급한 약속이라도 생긴 듯 주섬주섬 짐을 챙겨들고 떠나는 모습, 그것뿐이었다.

    원작에서처럼 대비도 죽고 윤대형도 죽고 중전도 죽고 설이도 죽고 도무녀 장씨도 죽고, 또 누가 죽더라? 아무튼 죽을 사람은 다 죽는다. 운검은 죽지 않았다. 원작에서는 그가 죽는지 사는지 모르겠지만 죽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죽고 사는 건 스토리상 별 얘깃거리도 안 된다.

    민화공주는 아이를 낳은 후에 관비가 됐다. 이것 역시 원작과 똑같다. 허염은 왕명에 의해 공주와 강제이혼하고 의빈직도 내놓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왕이 공주를 사면해 면천하고 다시 허염 부자와 해후해 행복한 여생을 보낸다는 결말이다.

    나는 이 드라마가 원작을 넘어 만들어낼 반전 중에 세자빈 허연우를 죽이는 흑주술에 사용된 제물이 사실은 공주가 아니라 윤대형의 딸(중전)이길 바랬다. 그리하여 공주는 세자빈을 죽이는 일에 실질적으로는 가담하지 않은 것이 되어 자연스럽게 용서받을 수 있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윤대형의 딸도 원작과 마찬가지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렇듯 해품달의 마지막 결말은 원작이 만들어놓은 결말들을 매우 바쁘다는 투로 부랴부랴 마무리하는 이벤트 회사의 뒷정리처럼 되고 말았다. 

    일당들과 함께 역모를 꾸미는 영상 윤대형이 느닷없이 허염에게 화살에 서찰을 달아 날린다. 실로 느닷없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어이없는 행동이다. 허염에게 사건의 진상을 폭로한다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물론 원작 그대로의 내용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설명이 없는 이런 원작 따라 하기는 그저 황당하고 무계할 뿐이다. 그래서, 그리하여 자존감이 강한 의빈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를 바랬다니. 그리고 죽지 않자 자객을 보낸다는 더 어처구니없는 설정.

    뭐 그렇게 해서 원작에서처럼 설을 죽이고 싶었던가보다. “불꽃을 품고 떠나니 행복하더냐?” 따위의 대사가 원작에서는 어떤 감동을 불러일으켰는지는 모르겠으나 해품달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했다. 그저 멍한 표정으로 ‘설이 죽었구나!’ 했을 뿐.

    이렇게 해품달은 대비도 부랴부랴 밀린 빨래하듯이 죽이는데—나는 대비역의 김영애가 너무 불쌍했다. 온양행궁에 쫓겨 내려갔던 대비가 갑자기 목을 부여잡고 피를 토하며 죽는 장면이라니. 그것도 윤대형에 의해—오랜 세월 쌓아두었을 그녀의 명성이 아까웠다.

    양명군의 죽음이 그래도 좀 감동적이지 않았냐고? 반란군들과 합세해 왕이 되겠다고 나선 양명군이 실은 왕 이훤과 짜고 역모에 가담한 자들의 명부를 확보하기 위한 계략이었다는 것이 극적이라면 극적일 수 있겠고 반전이라면 반전일 수 있겠다.

    하지만 양명의 죽음 역시 나에겐 그 어떤 감동도 만들어주지 못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기도 했지만 윤대형 같은 대단한 인물의 반란치고는 너무나 엉성한 반란이었던 데다가 마지막 양명이 죽는 장면은 공감하기엔 지나치게 역부족이었다.

    이미 반란군의 수뇌부가 다 죽은 마당에 마지막 유일한 생존자인 걸로 보이는 일개 병졸이 쓰러졌다가 일어나며 창을 들어 양명군을 향해 던진다? 그리고 양명은 기다렸다는 듯이 칼을 내려놓고 가슴으로 그 창을 받는다? 이 장면에서 나는 너무 황당해서 웃을 수도 없었다.

    왕 이훤과 허연우의 행복을 빌어주며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는 양명의 거룩한 죽음 앞에 눈물이라도 보여야 했건만 그저 어이가 없어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니. 양명의 입가에 묻은 붉은 피마저도 이훤이 흘리는 서러운 눈물마저도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MBC 파업에 정신이 빼앗긴 피디의 무성의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MBC노조에 맞서 자리 버티기를 하고 있는 김재철 사장을 탓해야 할까? 최고시청률 40%를 넘기며 국민드라마로 칭송받던 해품달의 마지막 결말이 이렇듯 밀린 빨랫감이 되고 말다니.

    무성의한 피디 탓이든 막가파식으로 MBC노조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명박의 낙하산 김재철 사장 탓이든 내 결론은 이렇다. 이럴 거면 차라리 마지막 2회는 방영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듯싶다. 차라리 그랬다면 신비감이라도 남았을 것이다. 물론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하여튼 모든 결말은 싱겁고 아쉬운 법인데 그러지 않을 것 같은 해품달도 결국 배신을 때리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결말을 장식해주길 바랬지만 그런 우리의 바램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해품달의 배신이 반전이라면 반전이랄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샐러리맨 초한지, 드디어 막판 결말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제목처럼 유방과 항우의 대결을 그리기보다는 유방과 항우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시점에 여운을 남기며 드라마는 끝날 듯싶습니다.

    즉, 진시황을 암살(!)한 모가비가 파멸이 눈앞에 다가왔단 말씀이지요. 모가비. 참 이름처럼 독특한 여잡니다. 아니 어쩌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평범한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 숨겨진 모습일 수도 있겠고.

    그런데 이 모가비란 여자, 보면 볼수록 추하다는 생각밖에 들지를 않습니다. 이 여자의 최대 무기는 성입니다. 모가비가 진시황 곁에서 비서실장으로 신임을 받으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모르긴 몰라도 능력보다는 이 성 때문입니다.

    ▲ 부사장 항우에게 도와달라며 안기는 모가비 회장님. 아니 회장님이 매번 부하에게 일 시킬 때마다 이렇게 안겨주면 그거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내보기엔 성희롱 같기도 하고. 회장실에 들어오던 또다른 안길남 범증에게 딱 들켰네. ^^

    모가비는 틈만 나면 진 회장에게 찰싹 붙어서 요염한 짓거리인지 요상한 짓거리인지를 해대며 진 회장의 혼을 빼놓습니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저는 처음에 진시황이 모가비의 속내를 다 알면서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는 줄로 알았습니다. 계략으로.

    그런데 이 얼빠진 남자, 진짜로 홀딱 넘어갔더군요. 사실 여자들의 화장품 냄새에는 남자들의 성욕을 자극하는 묘한 향이 들어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가끔 이 여자들의 분 냄새를 맡으면 참기 어려운 자극이 전해져 옴을 느낍니다. 물론 역한 냄새도 있습니다만.

    결국 진시황은 모가비에게 죽고 말았습니다. 모가비가 당뇨 때문에 쓰러진 진 회장에게 초콜릿을 주는 대신 인슐린 주사를 찔렀는데 간단하게 말해 암살당한 거죠. 불쌍한 진시황. 다 자업자득입니다. 여자인 모가비를 비서실장에 앉힌 그 음흉한 남자의 본능이 죄죠.

    모가비는 진시황만 유혹한 것이 아닙니다. 박범증. 전략사업본부장으로 사실상 회사의 기획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컨트롤 타워입니다. 모가비는 수시로 범증과 술집에서 또는 은밀한 모처에서 밀회를 즐깁니다. 영악한 범증도 남자이긴 마찬가집니다. 홀까닥.

    어라, 그런데 박범증은 진짜인가 봅니다. 정말 사랑에 빠진 듯이 보입니다. 역시 불쌍한 범증. 범증은 모가비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할 기셉니다. 비자금도 만들고 회사공금을 빼내 모가비의 사치와 향락, 허영심에 뒷돈을 댑니다. 이런 걸 공금횡령이고 하나?

    아무튼, 범증도 참 불쌍한 인간입니다. 모가비는 항우에게도 유혹의 손길을 뻗칩니다. 당근 항우를 이용하기 위해서죠. 당장 닥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항우의 인맥과 재능이 필요하거든요. 항우의 사촌형 항량을 사랑했노라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접근했는데….

    그게 통했군요. 모가비에게 사표 내고 미국으로 떠나려던 항우를 붙잡는데 일단 성공했습니다. 그리곤 슬슬 항우에게 은근한 육탄공세를 시작하는데 아 눈뜨고는 못 볼 지경. 정말 낮 뜨거워서. 이건 뭐 완전 창녀 수준입니다.

    어제 20회에서는 마침내 검찰에 조사받으러 가서는 샤론 스톤이 원초적 욕망에서 보여준 다리 꼬고 담배 피다 다시 다리를 바꿔 꼬는… 말하자면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섹시장면을 패러디했는데, 글쎄요 남들은 다 이게 섹시하다 뭐 그러는데 저는 왜 그리 추해보이던지.

    그러나 이제 곧 오로지 알몸 하나로 천하그룹을 집어삼킨 모가비의 운명도 끝장이 나게 생겼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평생 자신의 알몸을 철창 속에 가두어놓아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 뻔합니다. 또 그게 정의기도 하고요.

    알몸으로 흥한 인생, 알몸으로 망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모가비 대단한 여잡니다. 샤론 스톤이 보여준 뇌쇄적인 관능미보다는 그저 추한 창녀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들지만.

    어쨌든 그조차도 모가비 역을 맡은 김서형이 연기를 아주 잘했다는 의미겠지요. 모가비가 추해지면 추해질수록 말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최충헌이 노망이 들었나? 이규보와 함께 장기를 두던 최충헌이 느닷없이 자기를 속였다며 노발대발합니다. 이 순간 들었던 생각입니다. 저 노인네가 드디어 돌았나? 그러나 곧 그의 깊은 속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최충헌은 역시 노련한 권력자였습니다.

    최충헌은 속으로 최우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최충헌 장남인 최우가 권력을 승계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겠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최충헌처럼 노회한 권력자가 장남이라 하여 권력을 물려주지는 않습니다.

    현실에서도 그렇습니다. 김정일은 위의 두 아들을 제치고 삼남인 막내아들(워낙 베일에 싸인 동네라 또 다른 아들이 있는지도 모르지만)에게 권력을 세습했습니다. 삼성그룹의 이병철도 위의 두 아들을 제치고 삼남인 막내아들 이건희에게 경영권을 넘겼지요.

    최충헌은 최우가 장남이라서가 아니라 최우가 최고권력자로서 자기가 세운 도방을 가장 이끌 재목이라고 보았던 모양입니다. 차남 최향은 그런 면에선 많이 모자란 인물이라고 여겼던 게지요. 최충헌이 최우에게 마지막일 듯싶은 충고의 말을 합니다.

    “너무 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안사는 법이다!”

    이는 최충헌의 장남에다 도방의 대리집정자임에도 권력이 사실상 최향에게 넘어간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입니다. 최충헌의 가신들 대부분이 최향에게 포섭된 상태입니다. 왜? 너무 맑은 우물인 최우에게선 별로 얻어먹을 게 없다고 여긴 것이지요.

    혼탁한 우물이랄 수 있는 최향에게 붙어야 백성들을 착취하고 매관매직도 해서 호의호식하며 잘 살 수 있으니까요. 최충헌은 최우야말로 사심 없이 자기가 세운 도방을 이끌고 나라를 잘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봤지만 이점이 늘 걱정입니다.

    맑은 물이 좋기는 하지만 고기들은 흐린 물로만 몰려가니 낭패인 거지요. 최충헌은 마침내 자신도 생을 떠나야할 때가 다가왔음을 압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최우에게 자신의 수결이 된 백지 두루마리를 줍니다. 거기에 네가 원하는 대로 써서 권력을 접수하라, 이런 뜻이지요.

    그리고 오늘 어이없는 이유로 이규보를 내쫓습니다. 평소 하던 대로 이규보와 장기를 두던 최충헌이 느닷없이 “나를 속이고 사기장기를 두는 것이냐”면서 불같이 화를 낸 것입니다. 마치 옆자리를 지키는 간신배 김덕명(최향의 하수인)이 들으라는 듯이….

    “그동안 내 장기동무라는 것을 빙자하여 부정을 저지른 것을 알고 있다. 목을 베도 시원찮으나 그 동안 인연이 있어 목숨만을 살려주겠다”며 이규보를 쫓아냅니다. 그리고 최우더러 “그래도 옛정이 있으니 죽이지는 말고 살려서 멀리 떠나보내라”고 지시합니다.

    실로 최충헌의 앞날을 내다보는 안목과 안배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충헌은 이미 그 전날에도 이규보에게 “네가 나와 친한 것을 빌미로 뇌물을 많이 받아먹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조심하지 않으면 목숨을 보존키 어려울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지요.

    물론 이때도 김덕명이 옆에 있었습니다. 김덕명은 아주 교활한 자로서 매관매직에 백성들 고혈을 짜는 데 선숩니다. 그래서인지 승병들이 반란을 일으켜 도성으로 쳐들어왔을 때도 최충헌보다 먼저 김덕명을 찾아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최충헌은 이런 자를 가장 가까운 곁에다 두고 있었을까? 궁금한 대목이었습니다. 늙으니 총기가 흐려진 것일까?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최충헌이 김덕명을 바로 곁에다 둔 이유 역시 최우에게 권력이 넘어가도록 안배하기 위한 계략이었습니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아무튼, 최충헌은 자기가 죽고 난 이후에 닥쳐올 환란으로부터 이규보를 지키기 위하여 거짓으로 내쫓아 그의 목숨을 보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규보는 최우가 권력을 승계하고 난 이후에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최충헌이 이규보를 내쫓은 이유는 이규보를 살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최우가 무난히 권력승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입니다. 드라마 초반에 최우의 장인 정숙첨을 파면해 멀리 하동으로 귀양 보낸 것도 최우의 권력승계를 위한 준비가 아니었을까요?

    물론 정숙첨과 관련해서 역사가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최충헌은 정말 용의주도한 인물입니다. 이미 전세가 기운 권력판도를 바꾸기 위해 최향의 첩자(김덕명)를 비서실장으로 쓰다니 말입니다. 거 참.

    Posted by 파비 정부권

    김규리의 어이없는 착각 이유, 이렇게 제목을 썼다면 좋았겠지만, 보통 그렇게들 쓰지만, 왠지 뒷통수가 가려워 그렇게 쓸 수가 없네요. 그건 그렇고 그렇게도 바라던 격구경기가 마침내 끝났습니다. 사실 재미는 있었지만 너무 길었죠.

    하지만 다 길게 끈 이유가 있었겠지요. 격구 시합 중에 최우와 최향, 최충헌의 장남과 차남이 벌이는 권력게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거든요. 최충헌의 의중은 장남 최우에게 있지만 권력의 향배는 이미 최향에게 기운 듯이 보이는데요.

    왜 그렇게 됐을까요? 당연히 최충헌의 장남이며 추밀원부사로 사실상 최충헌을 대신해 도방을 통솔하고 있는 최우가 권력을 쥐어야하는 것 아닐까요? 최충헌의 이 한마디가 권력이 최향에게 기운 이유를 말해주고 있네요.

    “너무 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안 산다!”

    최충헌은 최우가 모든 면에서 자신의 확실한 후계자이고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굴러가고 있지를 못하지요. 늙어가는 최충헌의 가신들은 최우보다는 최향을 선택한 거지요. 거기가 먹을 게 많거든요. 혼탁한 우물.

    자, 아무튼, 재미있었지만 지루했던 격구경기는 곧 전개될 치열한 권력투쟁의 서막이었던 셈입니다. 이제 격구시합이 끝났으니 최충헌의 죽음과 더불어 진짜 본게임이 시작되겠지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최우의 외동딸 최송이는 대체 어떤 착각을 했던 것일까요?

    격구에서 살아남아 최후의 승자가 된 김준이 경기 중에도 가끔 자기 쪽을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곤 했는데 그게 바로 자기를 사모해서 그런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바로 뒤에 서있는 월아를 바라보던 것이었는데 착각을 한 것이죠.

    최송이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을 했을 겁니다. “저자가 감히 노예인 주제에 나를 사모하고 있어. 하지만 괜찮아. 저 정도 사내라면 나를 사모할 자격이 있지. 암 그렇고말고, 그래, 나도 왠지 저자가 싫지 않아. 괜찮은 사내야. 노예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내 상대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고 마지막 승리의 순간에 최우가 승자에게 주어지는 소원을 말하라 명하자 김준이 말을 탄 채로 자기를 바라보는 순간(사실은 월아를 바라본 것이었지만) 터질 듯한 심장을 주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 저자가 마침내 소원을 말하려고 해. 분명 나와 관련된 거겠지.”

    아마도 최송이는 김준이 자기를 위해서 평생 봉사하며 살도록 해달라고 하거나 자기에게 충성하며 살 수 있도록 호위무사로 삼아달라고 하거나 뭐 이런 소원을 말할 거라고 생각했겠지요. 아니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아씨(송이)를 위해 죽고살 수 있는 영광을 달라고 하거나.

    김준이 최송이에게 격구에 나가도록 해달라고 청탁하며 “아씨를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그런 착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게다가 시합 때마다 자기 쪽을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으니까. 하지만 꼭 그런 이유들만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그런 이유들만으로 최송이를 착각에 빠지도록 했다는 것은 활달하고 영민한 최송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최송이로 하여금 그토록 어이없는 착각에 빠지도록 한 이유가.

    바로 사랑입니다. 최송이는 자기도 모르는 새 김준에게 홀딱 빠져버린 것입니다. 당시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자기는 고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최우의 하나뿐인 딸이고 김준은 자기네 집 노예일 뿐입니다. 노예는 죽일 수도 있고 팔아버릴 수도 있는 그저 살아있는 물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눈에 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온갖 정성을 들여 키운 자식들이 어느 순간에 부모의 뜻에 반해 발길을 돌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도 그랬고 제 아내도 그랬으며 제 자식들도 모르긴 몰라도 그럴 게 틀림없습니다(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최송이의 착각은 바로 사랑 때문이었고 이는 머지않은 장래에 몰고 올 피바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바로 월아. 사랑의 포로가 된 송이의 질투심은 월아를 죽이고야 말 것입니다. 어쨌든 송이는 당대 최고의 귀족으로 사실상 공주인 것이며 월아는 천한 노예니까요.

    요즘 같은 세상에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ps; 사람이 사랑에 눈 멀면 상대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아주 강한 집착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물론 안 그런 훌륭한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저는 어떤 부류에 속할까요? 송이과인 것 같기도 하고… 흐흐~ 

    Posted by 파비 정부권

    글쎄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두 여자는 분명 확실히 다른 데가 있습니다. 우선 백여치는 도무지 남자들이 아니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타입입니다. 완전 제 마음대로거든요. 입에는 걸레를 물었는지 수시로 욕설이 오토바이를 탑니다. 다다다다.

    얼마나 심한 욕이기에 소리를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소리를 모자이크 했다고 하니까 좀 그렇긴 한데,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군요. 아무튼 욕이 튀어나오는 부분은 뚜뚜뚜 이런 소리로 가렸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키는 멀대처럼 크고 하는 짓은 꼭 어린애 같습니다. 아마도 모두들 이렇게 뒷담화를 깔게 틀림없습니다. “어이구, 누가 데려갈 건지 참 고생문이 훤하다, 훤해.” 제가 봐도 그랬습니다. “어이구, 누구하고 결혼할 건지 참 신랑 될 사람 고생문이 훤하군 그래.”

    반면에 차우희는 어떻습니까? 얌전하고 이해심이 많고 교양이 넘칩니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죽여줍니다. 뭐 <샐러리맨 초한지> 보신 분들은 아실 테지만 여러 차례 남자들 홍콩 보내는 신이 나왔더랬지요. 몸에 착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교태를 부리는 장면에선… 흐흐흐흐.

    최항우뿐 아니라 태양그룹의 후계자인지 뭔지 하는 항우의 친구조차도 뿅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우희가 제일 예뻐!” 우리 딸내미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예쁘긴 뭐가 예뻐. 비쩍 말라가지고서는.” 제가 말했습니다.

    아무튼 드러나는 모양만으로 비교하면 우희가 여치보다 월등하게 매력적인 여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두 여자를 아무 조건 달지 않고 남자들에게 고르라고 한다면 대부분이 우희를 선택할 테지요. 분명히 그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남자들이 그럴까요? 다른 남자들은 모르겠지만 저에게 두 여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티켓을 준다면—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지만—저는 여치를 선택하겠습니다. 저에겐 우희보다 여치가 더 매력적인 여자입니다.

    왜냐구요? 우선 저는 비쩍 마른 여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희는 제가 보기에 너무 참담할 정도로 말랐습니다. 여치도 말랐긴 매일반이지만 그래도 좀 통통한 것이 나아보입니다. 그러나 여치를 선택하는 것은 이런 외모 때문이 아닙니다.

    우희는 남자에게 사랑을 주기보다는 사랑을 받는 타입입니다. 물론 사랑을 주기도 하겠지만 남자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먼저 남자를 위해 가슴을 열기가 쉽지는 않은 성격이죠. 질투심도 강합니다. 여린 감성에서 나오는 이 질투심은 일을 그르치기 십상입니다.

    그래도 항우의 지극한 사랑이 우희의 차가운 질투심을 녹일 정도로 뜨거우니 다행입니다. 반면에 여치는 어떻습니까? 그녀는 비록 욕쟁이에 천방지축이지만 마음만은 비단결입니다. 일편단심입니다. 한번 마음을 정하면 변하지도 않습니다.

    그녀의 지고한 사랑은 질투심 따위가 결코 넘어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치는 유방이 우희에게 눈길을 줄 때도 변함없이 유방만을 바라봅니다. 좋아하지만 시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저돌적입니다. 매우 주체적이고 주동적인 성격을 지녔습니다.

    이런 그녀라면 절대 남자를 피곤하게 할 것 같지 않은데 어떻습니까? 아, 아니라고요? 오히려 우희 같은 여자가 남자를 편하게 해줄 타입이라고요? 글쎄요, 제가 지금껏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우희는 매우 피곤한 스타일입니다. 당장은 그 교태가 예쁠지 몰라도.

    둘 다 고르면 될 거 아니냐고요? 그건 안 되죠. 우리가 무슨 의자왕도 아닌데. 

    Posted by 파비 정부권

    무신. 오랜만에 사극 같은 사극을 보는 듯해(물론 더 지켜보아야겠죠. 광개토태왕도 처음엔 그랬지만 엉터리사극이 됐습니다) 매우 흐뭇합니다. 주인공 김준은 노예 출신입니다. 최충헌의 가노였던 김준의 아버지는 아마도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김준은 핏덩이 때 절에 맡겨져 수법스님의 손에 자랐습니다.













    김준은 절에서 무예를 배웁니다. 마치 소림사의 승려들이 수행의 한 수단으로 무술을 익히는 것처럼 고려의 승려들도 무술을 익혔던가봅니다. 아마도 이런 설정은 장차 무신(武神) 김준과 대몽항쟁에 선도적으로 나서게 될 승군의 알리바이로 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김준은 절에서 행복했습니다. 그곳은 속세에서 벗어난 무릉도원 같은 곳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그저 고요하고 평화로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곳에는 사랑하는 월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은 오누이처럼 자랐지만 그들의 가슴속엔 오누이 이상의 감정이 싹텄습니다.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최향의 군대가 들이닥친 것입니다. 고려의 정예군은 마치 점령군처럼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오, 세상에.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습니다. 고려군이 아니라 마치 거란군이나 일본군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김준(절에서는 무상스님이라 불렀음)과 월아는 고려군에 끌려갔습니다. 김준은 모진 고문을 받고 처형될 위기에서 최우의 딸 송이의 도움을 받아 죽음만은 면한 채 노역장으로 끌려갑니다. 월아 역시 최우 집안의 가노가 됐습니다.

    ▲ 격구. 알고보니 사람 죽이는 경기.

    격구장. 로마의 검투사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던 콜로세움보다도 더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격구장. 수법스님의 탄식처럼 아귀가 따로 없습니다. 마상에서 목이 잘린 채 떨어지는, 격구선수라고 해야 하나요?, 노예의 모습은 실로 처참해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김준이 이 격구경기에 자원했습니다. 경기장 가운데에 공을 놓아두고 이 공을 먼저 상대편의 골대에 집어넣으면 이기는 격구는 그러나 말이 경기이지 두 팀으로 나뉜 전사들이 상대편을 모두 죽여야만 이길 수 있는 전쟁터보다 더 지독한 죽음의 시합입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말을 탄 선수들이 노리는 것은 공이 아니라 상대편 선수들입니다. 장대를 높이 들어 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선수의 목과 가슴과 머리를 향해 일격을 가합니다. 내가 먼저 적을 치지 않으면 내가 죽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나마 자원한 자들로만 격구경기가 치러진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검투사들처럼 자의와는 상관없이 목숨을 내놓고 경기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원자들로만 격구팀이 구성됩니다. 경기에서 살아남아 한 가지 소원을 얻기 위해 자원하는 노예들.

    김준이 격구대회에 나선 이유도 한 가지 소원을 얻기 위해섭니다. 무슨 소원? 바로 월아를 다시 수법스님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함입니다. 그와 더불어 노예로서의 삶이 아니라 자존감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고 싶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송이의 어머니가 월아를 기억하고 월아의 어머니와 막역한 사이라고 말하고 있다.

    피비린내 나는 격구장은 김준에게 있어서는 빠스카의 신비를 달성할 수 있는 신성한 곳입니다. 이 경기를 통하여 김준은 인간이 아닌 노예의 삶을 뛰어넘어 당당한 하나의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격구를 통해 김준은 자신과 월아를 구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호 통제라! 김준의 이 눈물겨운 구원행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던져 구원하고자 하는 월아가 노예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어엿한 사대부가의 여식이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당대 최고권력자 최우의 부인과 절친한 가문의 딸.

    이럴 수가. 무신에도 출생의 비밀이 끼어들고 말았습니다. 김준과 월아, 송이의 삼각관계가 만들어진다면 고려 최씨 무신정권의 고명딸과 노비가 벌이는 연적관계가 참 볼 만하겠다 생각했는데, 김준이 상대할 것으로 보이는 두 여인이 모두 양반가의 여식들입니다(하긴 뭐 김준 자신도 무상스님이 아니라 노예 김준으로 밝혀져 초장부터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 월아, 김준, 송이

    그렇지, 그럴 리가 없었지, 어떻게 주인공이 노비 따위와 사랑을 나눌 것인가! 어쨌거나 아쉽지만 드라마 무신에도 결국 출생의 비밀이 등장했습니다. 약방의 감초. 모든 인기 있는 드라마들에 어김없이 나오는 전가의 보도.

    무신 다음 시간대에 배치된 신들의 만찬에도 역시 이 출생의 비밀은 등장합니다. ‘실제역사가 스포일러로 작용해 흥미들 돋우고 있는’ 빛과 그림자에도 이 출생의 비밀이 등장했습니다. 카이사르의 말을 한번 흉내 내볼까요? “빛과 그림자, 너마저도!”

    아마도 월아를 최우 부인의 곁에 두어 장차 김준을 두고 송이와 경쟁관계를 만들려는 의도로 보이긴 합니다만 출생의 비밀 같은 거 말고 뭔가 다른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없을까요? 노예 출신인 김준이 노비가 아닌 양반귀족출신 여자들과 엮여야만 멋있어지는 걸까요?

    월아의 처지에서는 자신의 출신성분이 사대부귀족이 아니라 김준과 마찬가지로 노비였다면 김준의 바람대로 수법스님 곁으로 돌아가 편안한 여생을 마칠 수 있었을 것을…… 안타깝게 됐습니다. 왜 애꿎은 나를 사대부가의 딸로 만들어 피곤하게 하는 거야, 나 그냥 노비 할래!

    아무튼 250억대의 대규모 자금이 투입됐다는 대작 무신도 출생의 비밀은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참으로 묘한 일입니다. 천상식본 2권의 행방은 어찌 된 것일까요? 모두들 아시다시피 천상식본 2권은 원래 고준영이 갖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오래전에 3대 명장 선노인의 경쟁자였던 이초희가 명장 경쟁에서 탈락하자 실망감에 이 책을 훔쳐 달아나 우도에 숨어 살았죠.

    아리랑—아마도 국립전통한식요리연구원 정도쯤 되는 것 같습니다만—엔 천상식본 1권만이 남게 됐는데 이걸로는 아리랑이 오래도록 이어오던 전통한식을 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드라마의 설명에 의하면 아리랑 2권이 있어야 금천장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것.

    금천장이 뭐냐? 뭐 별 거 아닙니다. 그냥 된장이죠. 그러나 그냥 된장은 아니겠죠, 당연히. 뭔가 특별한 전통의 맛이 깃든, 오묘하고 깊은 여운이 남는 그런 맛이 이 된장에 있겠죠. 이초희가 천상식본 2권을 훔쳐간 이후로 말하자면 아리랑의 장맛은 실전되었던 것입니다.

    ▲ 아리랑의 3대 명장 선노인(맨 오른쪽)으로부터 반시계방향으로 현직 명장 성도희, 성도희에게 진 전 아리랑 수제자 백설희, 현 아리랑 수제자이자 성도희의 딸(가짜딸) 하인주, 새 수제자에 도전하는 고준영(사실은 진짜 하인주로 성도희의 딸)이 마주 앉았다.

    3대 명장 선노인이 그랬듯이 4대 명장 성도희에게 주어진 최대과제는 바로 이 실전된 금천장을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죠. 2대에 걸쳐—짐작컨대 반세기 이상을—부단히 노력했지만 금천장은 만들 수 없었습니다.

    자, 그 와중에 성도희와 4대 명장 경합에서 탈락하고 사라졌던 백설희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천상식본 2권을 들고서. 물론 이 책은 가짭니다. 백설희가 그 책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없는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백설희는 이 책을 근거로 금천장을 만인 앞에 선보이겠다고 합니다.

    저로서는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그래도 백설희는 성도희와 더불어 선노인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녀라면 선노인이나 성도희와 마찬가지로 금방 금천장의 맛을 분간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짜 천상식본을 갖고서 가짜 금천장을 만들어 이를 공개한다?

    두 가지 가정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백설희는 성도희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야말로 아리랑의 수제자 자격이 전혀 없었던 무능한 요리사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설희가 사기꾼이라는 것입니다. 전자는 사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고 후자는 슬픈 가정입니다.

    어떻든 제가 이야기하고자하는 바는 백설희가 무능한 요리사냐 아니면 사기꾼이냐가 아닙니다. 도대체 천상식본 2권이 어디로 사라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잘못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재하에게 반한 고준영이 이초희의 남편인지 오빠인지—확실히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같이 살고 있었으니까. 신구였죠—이 보관하고 있던 이 책을 훔쳐 재하에게 빌려주려고 제주의 한 호텔로 갑니다.

    이때 책을 잃어버릴 뻔 했죠. 우연히 호텔의 주방에 들어가게 된 준영이 요리를 도와주게 되고 그러다가 주방 조리대 아래에 놓아두었던 천상식본을 그냥 두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장탄식을 했었는데요, 이렇게 말입니다. “이거 또 스토리를 이상하게 꼬고 있군!”

    ▲ 덤벙대길 잘 하는 고준영. 두 번이나 귀하디귀한 천상식본 2권을 아무렇게나 다루더니 결국 잃어버렸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그걸 찾으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소녀다. 그렇지만 타고난 신의 손!

    그러나 책을 안 가지고 나온 것을 안 준영이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 책을 챙겨서 제주도(우도)로 돌아갑니다. 신구에게 된통 혼이 난 준영. 그러나 이런저런 곡절 끝에 준영은 자신을 데리러 온 선노인을 따라 나서고 신구—드라마에선 특별한 이름이 없었음—는 천상식본 2권을 주어서 보냅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을 드리자면, 신구가 선노인을 우도로 오도록 만든 것입니다. 천상식본 2권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고준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천상식본 2권도 금천장을 만들기엔 결정적 하자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천상식본 2권으로도 금천장은 만들 수 없었다는 것. 이 무슨 괴이한 소리? 그럼 지금껏 해온 천상식본 타령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떻거나 그건 저도 잘 모르겠고, 금천장은 오로지 고준영의 타고난 미각과 손재주 즉 손맛에 의해서만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고준영이 만든 금천장이 죽어가는 이초희를 몇 년이나 더 살렸다니 가히 빼어난 장맛을 넘어 불로장생의 신묘한 영약이라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신구는 선노인을 따라 아리랑으로 떠나는 준영에게 천상식본 2권을 들려 보냈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저 덤벙거리는 처자가 언제 천상식본을 잃어버릴 것인가?’ 불안해하며 전전긍긍했습니다. 천상식본이 하인주—진짜 이름은 송연우이고 가짜 하인주죠. 진짜 하인주는 고준영인데 여기선 그런 골치 아픈 족보는 잊기로 하죠—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이 드라마가 미리 짜놓은 각본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됐습니다. 어찌어찌하다 주방에서 옷을 홀딱 버리게 된 고준영이 하인주의 집에서 목욕을 하게 됐는데 그때 응접실에 놓아둔 천상식본이 하인주의 눈에 띄게 된 것입니다. 너무나 놀라고 당황하면서도 황급히 책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숨어드는 하인주.

    목욕을 하고 나온 고준영은 잠깐 ‘어 책이 어디 갔지?’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가방만 들고는 하인주의 집을 떠나고 맙니다. 책을 잃어버린 것이죠. 물론 갑자기 들어온 성도희 명장 때문에 당황하긴 했을 테지만 그건 변명이 안 됩니다.

    이미 하인주가 목욕을 하도록 허락을 한 것이므로 아무리 성도희가 무섭다하더라도 사정을 얘기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더욱 문제는, 자기가 잃어버린 책이 너무너무 중요한 천상식본 2권 진본이란 사실입니다. 혹시 고준영은 이 책의 진가를 모르고 있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덜렁 책을 훔쳐 재하에게 갖다 주겠다고 들고 온 것을 보면 그녀는 이 책이 그렇게 귀중한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준영이 가진 ‘신의 손’은 천상식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금천장도 그녀 혼자서 만들었다고 했으니.

    자, 그건 그렇고, 저는 그렇게 해서 천상식본 2권이 하인주의 손에 들어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천상식본 1권과 2권을 모두 가진 하인주(사실은 송연우)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고준영(사실은 진짜 하인주)의 경합이 벌어지고 결국은 준영이 승리한다, 뭐 그런 스토리쯤으로 생각했던 게지요.

    ▲ 선노인이 성도희에에게 진짜 천상식본 2권과 가짜 천상식본 2권을 보여줄 때 나는 정말이지 허걱 했다. 이거 내가 잠깐 치매에 걸리니 것일까? 어떻게 된 거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런데 웬걸? 오늘 드라마를 보니 선노인에게 천상식본 2권이 있었습니다. 고준영을 아리랑의 수제자로 천거한 선노인의 처사를 따지는 성도희에게 선노인은 두 권의 천상식본을 던져놓습니다. 하나는 가짜 천상식본 2권, 또 하나는 진짜 천상식본 2권.

    그러면서 말합니다. 백설희가 공개한 천상식본 2권은 가짜라고. 그리고 진짜는 바로 이것이라고. 아, 이 순간 저는 갑자기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뭐야, 이거. 그럼 고준영이 들고 다니다가 주의부족으로 잃어버린 천상식본은? 하인주가 훔쳐간 천상식본은?

    하인주가 선노인에게 천상식본 2권을 갖다 바쳤나? “할머니 이거 제가 고중영한테서 훔친 천상식본 2권이랍니다” 하면서 말입니다. 도무지 앞뒤가 정리가 안 됩니다. 이거 어떻게 된 일인지 누가 좀 가르쳐주실 분 없나요? 술도 안 먹고 봤는데 왜 이리 혼란스러운지…….

    하지만 드라마 <신들의 만찬>은 맛있는 드라맙니다. 매우 재미있습니다. 네, 그럼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일단 세자빈 허연우를 살해하기 위해 쓰인 주술의 제물은 안타깝게도 공주라고 밝혀졌습니다. 이는 뭐 처음부터 예상됐던 바이기도 합니다. 첫 회에서부터 철딱서니 없는 민화공주가 허염을 갖기 위해 부린 온갖 어리광을 우리는 실컷 보았던 터입니다.

    그런 공주의 모습이 대비 윤씨의 눈에 번쩍 띄었습니다. 오호라, 이거 완전 끝내주는 제물인 걸? 철딱서니 없는 공주가 나를 위해 해줄 일이 있어. 뭐냐구? 바로 네 오라비 세자의 빈을 죽이는 데 쓰일 제물로 네가 선택된 거야. 바로 지금 이 순간 말이지.

    현대과학시대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해품달의 무녀놀이가 도무지 믿을 수 없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줄거리의 밑바탕에는 신기 들린 사람들이 펼치는 주술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술을 관장하는 궁중 부서가 성수청이란 곳입니다.

    ▲ 살인주술의 제물로 허연우를 죽이는데 가담한 진짜는 둘 중 누구일까?

    성수청의 최고 자리는 바로 국무라 칭합니다. 설마 국무총리? 흐흐, 그건 아닐 테고 나라의 최고 무녀 혹은 왕실무녀의 최고 우두머리를 일러 국무라 하는 것 같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적 설정일 뿐이고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튼, 국무 도무녀 장씨는 대비의 공갈 섞인 설득에 못 이겨 세자빈을 죽이는 주술을 펼치게 됩니다. 죽음의 흑주술. 검은 악령의 그림자가 연기처럼 세자빈의 몸을 휘감자 마침내 연우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됩니다. 오, 무서버라.

    그런데 이 살인주술을 시전하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엇이 있습니다. 바로 제물. 악령에게 바쳐질 제물은 그러나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상대의 죽음을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이 함께 이 주술에 참여하는 것, 그게 제물입니다.

    바로 이 제물로 공주가 선택된 겁니다. 그리고 흑주술이 펼쳐졌으며 세자빈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을 맞았습니다(물론 연우의 죽음은 위장된 것이었으며 도무녀 장씨가 무덤을 파내고 관속에서 그녀를 다시 꺼내 살렸다는 것은 우리 모두 주지하는 밥니다).

    보셨듯이 땅속에 묻힌 관속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연우는 8년 동안 전생의 기억을 잃었지만 다시 과거의 기억을 되찾고야 맙니다. 그리고 모든 내막을 알게 됩니다. 대비의 사주를 받은 도무녀 장씨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흑주술을 펼친 일과 다시 살린 일 그리고 공주의 가담사실까지.

    ▲ 세자빈이었던 허연우와 허연우의 죽음을 간절히 바랬을 현재의 중전 윤보경

    연우는 지금이라도 당장 주상에게 찾아가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내가 바로 당신의 하나뿐인 비 연우라고 밝히면 그뿐입니다. 그럼 모든 것이 끝납니다. 지금의 중전은 쫓겨날 것이고 그 자리는 원래대로 자신의 것이 됩니다.

    하지만 공주는? 사랑하는 오라비 허염의 아내이며 자신의 올케 공주의 운명은? 원작대로라면 폐서인이 돼 갖은 고초를 겪게 될 것입니다. 왕친이니 죽지는 않겠지만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 떨어질 게 틀림없습니다. 그녀의 남편 부마도위 허염의 운명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착하디착한 연우에겐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대비 윤씨(이젠 선왕이 죽었으니 대왕대비라 해야겠군요)와 영상 윤대형이 짜낸 절묘한 그물. 한번 걸리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빈틈없는 그물, 바로 혈육의 정이란 그물입니다.

    설령 왕 이훤이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죽은 세자빈 허연우가 다시 살아와 모든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비밀을 덮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이 기막힌 계책이 바로 공주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대왕대비 윤씨의 눈에 비친 공주의 욕망이란 제물.

    자, 이렇게 되면 안타깝게도 제가 바라는(그리고 모두들 바라마지않는) 해피엔딩은 기대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일까요? 연우가 중전의 자리를 되찾거나 아니면 중전자리를 포기하고 조용히 사라지거나 모두 불행한 결말입니다. 오, 통제라!

    그러나 여러분.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이건 드라맙니다. 얼마든지 원작을 개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연우의 연적이며 현재의 중전 윤보경이 바로 그 존재입니다. 윤보경은 왜 그렇게 두려움에 벌벌 떠는 것일까요?

    그녀는 그저 대왕대비 윤씨와 아버지가 꾸민 음모에 죽은 연우가 진짜로 죽었건 살아있건 상관없습니다. 좀 슬픈 일이긴 하지만 자기는 모른 척 하면 그뿐인 일입니다. 그런데 8년 만에 21살이 되어 돌아온 연우를 빼닮은 연우를 보고선 두려움에 벌벌 떱니다.

    왜, 무엇 때문에? 저는 그 순간, 퍼뜩하고 이 드라마가 개작한 부분이 바로 제물을 바꿔치기하는 것이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착한 공주는 허염을 차지하고픈 욕심은 굴뚝같지만 진심으로 허염의 여동생 허연우가 죽기를 바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살인주술이 성공하기 위해선 제물로 바쳐진 사람의 간절한 욕망, 흑주술의 대상을 죽이고 자기 욕망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인간의 이성을 상실한 욕망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공주에겐 그것이 부족합니다(세자빈이 죽어야 자기가 허염과 결혼할 수 있다는 욕망이 있을 수 있기는 합니다만). 최소한 제가 보기엔.

    그것을 대왕대비는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간교하고 영악한 윤보경의 아버지 윤대형은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대비 윤씨의 계략을 듣고는 이렇게 수정했을 것입니다. 마마, 도무녀 장씨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제물을 바꿔치기 하시옵소서.

    바꿔치기한 제물은? 당근 바로 영상 윤대형의 딸 윤보경입니다. 그녀는 세자빈 허연우를 죽이고서라도 그 자리를 빼앗고픈 욕망이 있습니다. 공주는 상상할 수도 없는 사악한 피가 그녀의 몸속에서 용트림치고 있습니다. 그래, 나는 세자빈을 죽일 수 있어, 죽이고 말 테야.

    이 수정계책은 두 가지 이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공주의 나약한 마음으로 인해 주술이 실패할 가능성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왜? 윤보경의 욕망은 자기를 닮아 하늘에 닿아있을 테니까요. 다른 하나는?

    사실은 이게 더 중요한데요, 자기 딸을 중전 자리에 앉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근 자신은 국구가 되는 것이고요. 반드시 이루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빌며 상대를 죽이는 주술에 가담하면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지요? 참 희한하고 신묘한 주술입니다.

    하하, 제 상상력의 날개가 너무 높이 날았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그러나 여러분.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래서 허연우를 죽인 흑주술의 살인제물이 민화공주가 아니라 지금의 중전, 바로 윤보경이었다면? 그럼 해피엔딩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 아닐까요?

    물론 그렇더라도 공주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만 할 것이며 대왕대비 윤씨와 윤대형, 윤보경 부녀의 음모에 놀아난 잘못은 비난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양심의 가책과 비난 이후에 그녀는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주 역시 음모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상기하면서 용서해주겠지요. 그리고 왕 이훤과 중전 자리를 되찾은 허연우의 행복과 더불어 공주와 의빈(부마) 허염 부부의 행복도 빌어줄 테지요. 그럼 얼마나 좋겠습니까?

    꼭 그렇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아멘……. 흐흐흐흐~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