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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아이리스' 김현준의 죽음과 최승희는 무관할까?

『아이리스』를 방금, 오늘에서야 봤습니다. 이미 김현준(이병헌 역)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터라 별로 긴장감은 없었습니다. 19회와 20회를 연속으로 봤는데 스토리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김현준이 마지막에 죽는 장면은 좀 의외였습니다. 사실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비극적인 설정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비극적인 마무리가 더 진한 여운으로 시즌2를 기다리는 기쁨을 줄 지도 모릅니다.   

어이없는 김현준의 죽음   

김현준의 죽음은 너무 허망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 총에 맞아 죽는다는 설정, 그것도 애인에게 줄 반지를 들고 프로포즈의 단꿈에 빠져 운전을 하다 하얀 등대가 보이는 곳에서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은 매우 로맨틱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시 허무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너무 급작스럽고 너무 어이없는 죽음이었습니다. 도대체 김현준이 왜 죽어야 했을까요? 아이리스의 음모는 분쇄됐고 김현준은 NSS를 떠났는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장면이 오래 전 보았던 한 영화에서 오버랩됩니다. 한석규가 주연했던 『이중간첩』이란 영화였습니다. 여주인공은 고소영이었죠. 위장귀순한 이중간첩 림병호, 남북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된 림병호와 윤수미가 택한 곳은 브라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수미와 함께 행복한 여생을 보낼 단꿈에 젖은 그들의 모습은 김현준과 최승희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수미가 기다리는 집으로 자동차를 타고 가던 병호는 물론 총에 맞아 죽음을 맞습니다.  

그런 병호를 기다리는 수미의 행복한 모습이 마지막을 장식했었지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행복한 시선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며 김현준을 기다리는 최승희(김태희 역)와 윤수미는 확실히 닮은 꼴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난 다음 검색창에서―병호와 수미란 주인공의 이름과 줄거리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이중간첩』을 검색해보았더니 다음뉴스나 다른 블로그들에서도 저와 똑같은 의문을 제기한 분들이 많군요. 『이중간첩』의 오마주 아니냐고 말입니다. 역시 보는 눈은 비슷한가 봅니다.

<아이리스> 라스트 장면은 <이중간첩> 오마주? 


그러나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림병호를 기다리는 윤수미와 김현준을 기다리는 최승희는 다르다고 말입니다. 림병호와 윤수미는 함께 조직을 버리고 제3국으로 탈출을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최승희는 어땠을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최승희의 속마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최승희가 김현준을 무척 사랑한다는 사실만 나열되는 화면을 통해 알고 있을 뿐입니다.

지난주던가요? 아니면 그 전주던가. 아무튼 얼마 전에 저는 백산과 승희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는 최승희의 정체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보여진 적이 없습니다. 최승희는 NSS 내 뛰어난 프로파일러이며 김현준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전혀 알려진 게 없었지요. 저는 최승희를 그저 나레이션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최승희가 아이리스의 테러범들에게 잡혔을 때, 백산의 전화 한 통으로 구출되었을 때, 그녀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그녀는 누구였을까요? 이후에 백산의 딸이다, 백산보다 더 상위에 있는 아이리스의 리더 미스터 블랙의 딸이다, 아니 아이리스 고위층의 애첩이다, 온갖 억측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이에 대한 어떤 해답도 내놓지 않은 채 김현준을 죽임으로써 드라마를 마무리지었습니다. 『아이리스』가 내년에 다시 시즌2로 복귀한다고 하지만, 시즌2라는 이름이 말하듯 전편과는 어떤 연관성도 없는 독립된 스토리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최승희의 실체는 영원히 비밀의 바다로?

실제로 대충 훑어본 바에 의하면―이 글을 쓰는 중 잠깐이었지만―제작자인 태원엔터테인먼트 측은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최승희의 정체는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게 되는 것일까요? 물론, 최승희가 김현준에게 “나는 중앙정보부 요원의 딸이며,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연루된 아버지가 사형당한 후 백산의 도움으로 살았으며, 백산의 인도로 NSS에 들어오게 됐고 아이리스를 적대시하기 어려웠다” 하고 고백하지 않았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말하고 김현준의 품에 안긴 최승희의 눈동자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눈은 거짓말을 못하는 법이니까요. 최승희는 눈을 감지 않았습니다. 보통 진실을 고백하고 연인의 품에 안긴 상태라면 눈을 감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최승희는 눈을 감지 않았을 뿐 아니라 눈동자를 좌에서 우로 굴리더군요. 저는 최승희가 김현준에게 모든 진실을 고백했다고 믿지 않습니다. 최승희의 움직이는 눈동자가  흔들리긴 했지만…. 

김현준이 최승희에게 진실을 고백하도록 미리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말할까봐 그게 겁나” 하고 말했지만, 최승희가 고도로 훈련된 프로파일러란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럼 또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최승희는 아이리스가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배치한 저격수들을 모두 제거했지 않느냐. 결국 그녀는 아이리스를 배신하고 김현준에게로 간 것이 아니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저도 확언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어폰에 묻힌 김현준 암살의 총성

그러나 저는 최승희의 귀에 꽂은 이어폰을 통해 그녀가 김현준의 암살에 관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합니다. 제주도에서 최승희가 백산과 또 다른 한 사람―어쩌면 이 사람이 바로 미스터 블랙일 수 있다―을 만나는 장면이 담긴 CC-TV 화면을 보면 최승희가 백산과 의문의 사람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게 무얼 뜻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최승희는 백산 뿐 아니라 미스터 블랙과도 매우 가까운 사이란 걸 직감했습니다.

즉, 최승희는 아이리스의 핵심이란 사실입니다. 김현준도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눈이 먼 김현준은 애써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답을 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최승희가 자기 부친이 중앙정보부 요원이었으며 사형당했다고 말했을 때 김현준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 내 사랑하는 승희가 아이리스일리가 없지.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던 거야.” 사람에겐 그런 게 있습니다. 특히 위기에 몰린 사람일 수록 좋은 쪽으로 나는 결말을 믿는 마음 말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백산이 말한 것처럼 되었습니다. 백산이 말했죠? “김현준, 너는 내가 설계한 대로 지금껏 살아왔어. 앞으로도 그렇게 될 거야. 너는 어떤 비밀도 알지 못할 걸야. 아무것도 모른채 죽게 되겠지. 네가 죽게 되는 것은, 네가 금단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이야.” ‘금단의 열매’란 것이 최승희란 사실은 분명해 보이는데, 아직 최승희에 대해 밝혀진 게 하나도 없네요. 김현준의 죽음도 의혹 투성이지만, 최승희가 왜 ‘금단의 열매’란 것인지…. 최승희는 정말 김현준의 죽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요?


풀리지 않은 의혹,
아이리스와 미스터블랙 그리고 최승희

미스터 블랙은 누구였을까요? 미스터 블래과 최승희의 관계는? 아무튼 『아이리스』가 시즌2에서 이 부분에 대한 의혹을 어느 정도는 풀어주는 친절을 보여주시길 바란 뿐입니다. 아무리 독립된  스토리로 간다고는 하지만 시청자들을 위해 그 정도 배려는 할 수 있겠죠. 『아이리스』는 많은 기대와 비판―비판도 기대의 연장이죠―을 한 몸에 받았지만,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과 북이 한 팀이 되어 아이리스에 맞섰다는 것입니다.

남과 북 내부에 아이리스와 연결된 반통일 세력이 있으며, 이들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남과 북의 첩보조직이 힘을 합쳤다는 설정은 좀 억지라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참신하고 통쾌한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로 북쪽에 올라가서 협상을 진행하는 것과는 반대로 남쪽에 내려와서 남북이 협상을 했다는 점도 의미 있는 대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북한 호위총국 김소연의 활약은 남남북녀란 말을 실감나게 했습니다. 시즌2에도 꼭 나왔음 하네요.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되었든, “최승희 도대체 너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