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촌스런블로그님께서 "비담은 왜 부채를 들고 있을까?" 란 주제로 포스팅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저도 이 부분이 매우 궁금했었고 나름대로 이유를 밝혀 포스팅하고 싶었는데, 마침 촌스런블로그님이 주제를 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촌스런블로그에 댓글을 달아 기회가 되면 저도 비담의 부채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선수를 빼앗겼다고 푸념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트랙백으로 남기겠다고 했었죠. 

비담이 부채를 든 까닭은?

제가 뭔가 말을 하면 꼭 지켜야만 하겠다는 강박관념 같은 걸 불필요하게 내장하고 다니는 사람이랍니다. 그래서 비담의 부채 이야기를 꼭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시간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시간보다는 이야기를 풀만한 소재가 빈약했다는 편이 맞을 거 같습니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신라 금관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던 것이 기억나서 그걸 비담의 부채와 연결시키고 싶었지만 기억도 잘 안 나고,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자니 시간은 없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더 늦추다가는 <선덕여왕>이 끝날 거 같은 생각이 들어 이렇게 부랴부랴 쓰기로 했습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비담이 부채를 들고 있는 이유는 신비롭게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비담은 사량부령입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CIA나 FBI 국장쯤 되겠군요. 이스라엘로 치면 사량부는 모사드일 것이고, 옛 소련이라면 KGB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조직이 있는데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 등으로 이름이 변천했습니다. 

그 옛날 삼국지에 나오는 신출귀몰 제갈공명도 부채를 든 모습으로 많이 그려졌지요. 제갈량이 든 부채를 백우선이라고 하는데 학의 깃털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적벽대전에서 백우선을 든 제갈량이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 동남풍을 부르는 장면은 실로 신선의 모습이 따로 없었습니다. 아무튼 부채는 예로부터 신비로운 사람들이 많이 애용하던 물품임에 틀림없습니다. 비담이 부채를 든 것도 바로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그런 목적만 있었을까요? 비담이 든 부채도 보아하니 새의 깃털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갈량의 부채도 새의 깃털로 만들었습니다. 자,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채들이 모두 새의 깃털로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새의 깃털, 여기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요? 왜 신비로운 힘을 과시하기 위해 든 부채를 모두 새의 깃털로 만들었을까요?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저는 이 비밀을 신라의 금관과 연결시켜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부채를 새 깃털로 만든 이유는?

몇 달 전에 김주완 기자님, 커서님과 더불어 경주박물관에 갔을 때, 천마총에서 나온 금관을 보았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화려함, 그 시대에 어떻게 이토록 정밀한 세공을 할 수 있었을까, 놀랍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금관을 다른 말로 황금수목관이라고도 하는데 둥근 다이아뎀에 삐죽삐죽 솟은 것은 바로 나뭇가지들입니다. 즉 금관은 나뭇가지 모양이란 얘기죠. 그래서 수목관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황금수목관.

그런데 그 나뭇가지의 맨 위에는 어김없이 새 한 마리씩이 앉아 있습니다. 즉 나뭇가지 위에 새가 앉아있는 모양을 본 떠 왕관을 만든 것입니다. 모든 왕관들이 그렇습니다. 황남대총에서 나온 금관에도 마찬가지로 나뭇가지 위에 새가 앉아있는 모양입니다. 그럼 왜 임금이 쓰는 금관 위에는 새를 만들어 올렸을까요? 여기에 대해 아직 정통한 학설은 없습니다. 아직은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신기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처럼 왕관 위에 새가 앉아 있는 모양은 유럽에서도 발견됩니다. 가깝게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가 대관식 때 썼던 왕관도 다이아뎀에 솟은 수목에 새가 앉아있는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썼던 왕관도 마찬가지로 위에 새가 앉은 수목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익히 보아오던, 그러나 세심히 보지 못했던 유럽의 왕관들은 거의 모두 이런 모양들이었습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왕들이 쓰는 왕관도 마찬가지고요.
 
왜 그런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 어떤 학자―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볼 여유도 없고,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는 수목관은 알타이 계통의 민족들에게서 나타나는 왕관의 형식인데 동과 서로 퍼져 그 명맥이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동쪽의 신라 금관과 유사한 수목관이 서쪽 유럽의 왕관들에서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형식은 북쪽에 주로 퍼져 있고 남쪽에는 잘 없는데, 중국 등지에서는 수목관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신라 금관과 유럽의 왕관 그리고 솟대에 앉은 새

여기에 대해선 너무 전문적인 분야인 만큼 이 정도로 하기로 하고요. 그럼 왜 왕관에 새를 만들어 올렸을까요? 그게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솟대를 보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솟대의 모양이 어떻습니까? 높다란 나뭇가지 위에 새가 한 마리 올라 앉아 있지 않습니까? 그 솟대를 보며 황금수목관이 연상되었습니다. 아, 어쩌면 황금수목관과 이 솟대가 무언가 유사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솟대를 발견한 곳은 진주 청동기박물관이었습니다. <경남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에서 주최한 작은도서관 블로거간담회에 참여했다가 다음날 청동기박물관 답사를 갔던 것입니다. 그때 창원대에서 강의를 하신다는 인솔 선생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이 솟대에 앉은 새들을 보니까 말입니다, 생각나는 게 있는데요. 신라시대 금관에도 새가 앉아 있거든요. 어떤 유사점이 있을까요? 듣자하니 유럽의 왕관들에도 새가 있다고 하고요."

"글쎄요. 정확하게 그 관련성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요. 아무튼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인들은 새를 숭배했지요. 하늘을 나는 새는 곧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거죠. 주로 스텝지방을 중심으로 동서쪽으로 이런 문화가 있었던 걸로 보이고요.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도 있는데 이도 원래 새를 숭배하던 풍습이 발전한 것이지요. 일본의 국기에 보면 태양이 그려져 있잖아요? 그것도 마찬가지 의미로 보시면 될 거에요. 고구려도 삼족오가 상징이죠."

"아, 그리고 말이죠. 새를 숭배하는 이런 풍습은 이후에 국가체제가 정비된 이후에도 나타나게 되는데요. 귀족들이 모자나 의복에 새의 깃털을 꽂거나 달고 다녔거든요. 그건 곧 왕과 가장 가깝다, 왕과 나는 일체다, 이런 의미였어요. 곧 새의 깃털은 권력의 상징이죠. 그렇게 보면 왕관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나 솟대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아주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겠네요."

비담의 새 깃털 부채는, 곧 내가 왕과 동일체란 선포 아닐까

그 말을 듣고 저는, 억지로 비담의 부채와 신라 금관과 유럽의 왕관을 연결시키기로 했습니다. 비담이 든 부채는 새의 깃털로 만들었다, 새의 깃털은 곧 최고 권력자와 내가 동일하다는 뜻, 곧 비담은 선덕여왕과 동일체라는 생각, 뭐 그런 걸로 말입니다. 아무튼 비담은 실제로 그런 생각을 현실에 옮기려고 하고 있으니 가히 틀린 억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비담이 갑자기 부채를 들고 나오지 않더군요.

왜 그러는 것일까요? '비담과 선덕여왕 동일체'의 전선에 무슨 이상이 생긴 것일까요? 들고 다니려면 계속 들고 다니던지 이랬다저랬다 하니 참 헛갈립니다. 오늘은 들고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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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