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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아부해' 보던 우리 딸, "여자의 직감?"

우리 아들은 연속극을 즐겨 보지 않습니다. 개콘도 잘 안 봅니다. 대신 소비자고발이나 무한지대 같은 프로를 좋아합니다. 미녀들의 수다도 잘 보고요. 좀 특이한 놈입니다.  

우리 딸은 애비를 닮아 연속극을 무지 좋아합니다. 좋아할 뿐만 아니라 다음 장면을 맞추는 것도 지 애비를 닮았습니다. 제가 좀 그렇습니다. 연속극을 보다 보면 미래의 줄거리까지 대충 꿰고 있습니다. 옆에서 같이 보던 마누라가 말합니다.

"고마 연속극 작가로 나서지."
그렇지만 그건 아니죠. 작가들에 대한 모독도 정도가 있어야겠지요.

지난 주 선덕여왕은 글쎄 결정적인 것까지, 그러니까 삼국통일 정도야 누구든 생각할 수 있는 것일 수 있다고 쳐도, 덕업일신 망라사방까지 맞춘 건 저도 사실 의외였지요. 하여간 제가 대충 그렇습니다. 선덕여왕뿐만이 아니라 연속극 볼 때 그런 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딸도 저를 쏙 닮았습니다.

오늘 조금 전에 kbs드라마 <아가씨를 부탁해>가 끝났는데요. 아가씨가 서 집사에게 소원을 하나 들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서 집사, 내가 연설 잘 하고 나면 내 소원 하나 꼭 들어줘야 돼. 전에 한 가지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
서 집사가 그 소원이 뭔지 궁금하다며 지금 당장 말해달라고 보챕니다. 그때 우리딸이 잽싸게,

"그건 내가 알지. 집사 그만두지 말고 계속 남아달라는 거잖아."

딩동댕♬

흐흐~ 부전딸전이었습니다요.

위 이야기는 지난주에 블공(경남블로거공동체) 까페에 올렸던 글이에요. 그리고 엊그제 다시 우리 부녀는 함께 나란히 앉아 <아가씨를 부탁해(아부해)>를 보았답니다. 그런데 드라마에 한참 열중하던 딸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아빠, 나는 아무리 봐도 아가씨하고 이 변호사는 안 어울리는 거 같아. 변호사가 뭐 저래. 아가씨는 서 집사하고 잘 어울려. 그리고 서 집사하고 결혼했으면 좋겠어. 이 변호사는 여의주하고 결혼하고. 태윤 씨는 의주 씨와 어울리는 것 같아. 아니야,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야."

사실은 제 마음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여자의 놀라운 직감이야." 

뭐, 이 정도면 결론 난 거지요. 우리 딸애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에요. 초딩 2년차의 눈에 그렇게 비쳤다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왜냐고요? 물론 우리 딸애가 말한 여자의 직감 때문만은 아니랍니다. 무엇보다 초딩의 눈에도 보일 만큼 결말이 단순하다는 게 이유지요. 


<아부해>는 코믹멜로드라마잖아요? 그렇다면 단순한 게 좋지요. 이런 드라마가 복잡하면 피곤하잖아요? 멜로에도 적당한 긴장은 필요하겠지만 도를 넘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부해>를 즐기는 시청자들은 복잡한 긴장보다는 편안한 가벼움을 선택한 것이라고 봐요. 명화극장을 보는 게 아니니까요.  

아, 여기서 잠깐 제 변명 하나 하고 넘어갈게요. 제가 우리 딸애와 드라마를 함께 보는 것은 제 의도는 절대 아니랍니다. 저도 애 엄마에게 많이 혼난답니다. "도대체 애 데리고 만날 그런 연속극이나 보고 뭐 하자는 게냐"는 핀잔을 귀가 따갑도록 듣습니다. 그렇지만 굳이 보겠다는 애를 말릴 재간이 없죠.  

아, 이거 그런데 정말 큰일 났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서집사와 아가씨가 키스를 하고 있군요. 좀 어설프긴 하지만. 다른 블로거들의 비평처럼 확실히 어설픈 게 맞네요. 그렇지만 원래 처음 키스하는 장면이란 다 어설픈 거 아닐까요? 아니, 어설퍼야 되는 거 아닐까요? 너무 노련하면 그거야말로 정말 문제가 있는 거지요.

서 집사는 제비 출신이라면서 저리도 어설픈 걸 보면 순진한 제비였나 봐요. 딸과 함께 연속극을 보는 저로서는 그 어설픔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하여간
마누라 등살이 무서운 저는 일부러 과장된 모션을 취합니다. 아이의 두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기에 바쁩니다.

"야, 너는 이거 보면 안 돼. 보지 마, 보지 마."
그러면 딸애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어떻게든 보려고 안달입니다.
"아빠, 이번 한 번만 보자. 다음부턴 안 볼께. 하하하, 한 번만 보자."
기어이 보겠다는 녀석을 이길 방법은 없습니다.
"와, 분위기 참 좋다."

어쨌든 우리 부녀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려나 봅니다. 그런데 요즘 윤은혜가 욕을 좀 먹는 모양이에요. 연기력 논란에다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비판까지…, 의견도 다양하더군요. 심지어 "자막을 부탁해"란 조소까지 나오고 있네요. 그러나 모든 드라마가 뛰어난 연기자들로만 채워질 수는 없습니다. 가끔 연기보다는 이미지를 내세운 배우도 필요한 법이지요.

다음(daum)이미지

그렇다고 연기자로 전업한 윤은혜가 계속 이미지에만 매달리라는 것은 아니에요. 윤은혜도 연기자가 된 이상 연기로 승부를 걸어야겠지요. 그러나 이 드라마, <아부해>에서 윤은혜의 이미지는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윤은혜의 단순하고 화려한 이미지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 드라마가 이 정도라도 선방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에요. 

역시 우리 부녀는 단순한 모양이에요. 초두에서 보여드린 대화에서 보셨듯이 우리 부녀는 확실한 윤은혜 편입니다. 윤상현(서집사)과 윤은혜(아가씨)가 잘 되길 바랄 뿐만 아니라 여의주(문채원)는 좀 빠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마저 있답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대책으로 여의주와 이태윤(정일우)을 짝 지워줄 생각까지 하는 것도 저와 딸애의 마음이 똑같습니다. 

단순한 만큼 작가가 그려주는 단순한 이미지에 잘 동화하는 편이지요. 가끔은 그게 행복할 때가 있답니다. 머리를 텅 비우고 <아부해>를 볼 때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텅 빈 머리로 봐야 할 드라마를 너무 진지하게 따져가면서 본다는 것도 사실은 참 피곤한 일이에요. 아가씨는 선덕여왕이 아닌데도 말이죠. 

아무튼 여자의 직감이 어떨지는 계속 지켜봐야겠네요. 그냥 직감도 아니고 '놀라운' 여자의 직감이라니…. 그런데 써놓고 보니 제목을 <'아부해' 윤은혜를 위한 변명>으로 하는 게 더 어울릴 뻔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