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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이런저런이야기

방사선검사 때문에 예쁜 우리딸 지울뻔한 사연

가을이다. 가을은 결혼시즌이다. 나도 가을에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을 갑자기 결정하는 바람에 다른 팀에 밀려 10월에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찬바람 들기 시작하는 11월에 마산 완월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성당에서 하는 결혼식은 절차가 좀 까다롭다. 미리 교육도 받아야 한다. 성교육이었나? 무슨 교육을 받았는지 기억은 하나도 안 난다. 

작년 우리집 마당에 피었던 꽃무릇은 이번 가을에도 어김없이 피었다.


1995년 11월 5일이 결혼기념일이니 벌써 십년하고도 몇 년이 흘렀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도 한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서로 말은 못하고 답답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거실 TV위에 앉아있는 작은 달력에 눈이 갔다. 거기에는 빨간 사인펜으로 동그라미들이 그려져 있었다. 숫자들에 그려진 동그라미. 

처음에 나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설명을 듣고 나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동그라미는 연속적으로, 그러니까 1일부터 18일까지 계속 그려져 있었고 또 19일부터 30일까지는 깨끗한 식이었는데,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날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이었다. 그런데 그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날들이 바로 소위 '주기'에 해당하는 날이었단다. 

나는 아내의 한숨소리가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았지만, 내 생활패턴을 바꾸지는 않았다. 당시만 해도―지금도 그렇지만―친구들과 술 먹고 어울려 노는 게 내 인생 최고의 낙이었다. 뭐 보통 남자들이 다 그렇겠지만 나는 유독 심한 편이었던가 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허리를 다쳐 집에서 쉬게 되었다. 나중에 악화돼 수술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 입원하던 그날, 나를 입원시켜놓고 아내는 산부인과에 갔다. 그리고 다들 아시겠지만 8개월 후에 아들을 낳았다. 그 녀석이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건강해졌으며 예전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술 먹고 노는 걸 낙으로 삼으며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2000년 가을 무렵, 아마 이때쯤이었을 게다. 허리통증이 재발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우리는 예쁜 딸을 낳았다. 그런데 아내가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마산 삼성병원에서 암 검진을 받았는데 그 검사는 초음파 뿐 아니라 조직검사와 방사선 검사도 있었다. 무척 신경이 쓰였다. 아내도 걱정이 태산 같다고 했다. 이를 어쩐다? 생각 끝에 아는 의사를 찾아갔다. 

내과의사인 그는 나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또래의 친구였다. "아, 이거 '이러저러' 해서 걱정이 태산인데 어쩌면 좋지요?"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정 걱정이 되면 지우시든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핑 도는 걸 느꼈다. '아니, 이런 대답을 들으려고 온 건 아닌데.' 

하긴 내가 이런 말을 한다면 그 의사의 입장에선 '그럼 무슨 대답을 원하고 왔단 말이요?' 하고 되물을 게 틀림없다. 맞다. 나는 도대체 어떤 대답을 원하고 그를 찾아갔던 것일까? 그는 나와 같은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므로 천주교 가르침에 따라 "생명은 소중한 것이에요. 아무 걱정 말고 낳으세요" 이런 대답이 나오기를 바랐던 것이었을까? 

아마 그랬을 게다. 그러나 그는 무심하게도 "지우시든지요"라는 말로 나를 충격과 갈등에 빠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그의 말은 매우 위안이 되었다. "나는 내과의사라 잘 모르니까 산부인과에 가서 정확하게 알아보세요." 그리고 다음날 바로 어느 산부인과에 갔다. 그 의사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요즘은요. 기술이 발달해서 아무 문제없어요. 그러니까 걱정 말고 산모 맛있는 거나 많이 사드리세요." 뛸 듯이 기뻤다. 며칠 사이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다시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온 기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얻은 딸이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다. 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첫 해 첫 시험에서 10점을 받아왔다. 

지난 봄 진해 벚꽃장에서 찍은 사진


받아쓰기 시험이었는데 이 최초의 시험에서 10점을 받아든 시험지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온 딸애는 내게 말했었다. "아빠~ 아빠~ 나 칭찬해줘. 어서 빨리 칭찬해줘." "왜?" "나 오늘 받아쓰기 시험 10점 받았다~" "뭐? 10점? 그걸 어떻게 칭찬해준단 말이야." 그러자 뾰로통해진 딸이 말했다. "10점이면 잘 한 거지. 빵점보다는 잘 했잖아."  

나중에 딸아이는 10점이 그렇게 칭찬받을 만한 점수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70점, 80점, 점수가 올라가더니 지금은 평균 95점 이상 맞는다. 하긴 초등학교 2학년짜리들 점수란 게 뭐 다 그렇지만. 우리 애하고 가장 친한 민서는 100점짜리 다섯 개를 받아 소위 '올백'이고 미솔이는 백점짜리가 세 개다.
 
어떻든 우리 딸애는 지금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춘다. 피아노도 잘 치고 공부도 잘 한다. 얼마나 알뜰한지 지갑에서 돈이 떨어질 날이 없다. 용돈 관리를 잘 못하는 아들놈은 매일 동생에게 빌붙어 안달이다. "혜민아, 우리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 먹자. 내가 사 올께" 그러나 딸애의 대답은 간단하다. "나 돈 없다." 

예쁜 우리 딸을 볼 때마다 가끔 미안한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가슴 한구석을 쓸어내린다. '아유, 큰일 날 뻔 했네.'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