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3.24 정명훈 사태로 본 블로거들, 왜 글도 안 읽고 댓글 달까? by 파비 정부권 (37)
  2. 2008.12.25 크리스마스, 단 하루를 위한 휴전 by 파비 정부권 (2)

세상이 온통 정명훈 이야기로 시끄럽다. 진보신당 당원이라고 밝힌 한 블로거의 글 때문이다. 사람들은 두 패로 갈라져 갑론을박하고 있다. 인터넷상에 드러나는 현상으로만 본다면 일방적으로 정명훈이 파렴치한으로 몰리고 있는 듯하다. 내가 봐도 그렇다. 만약 미국에 구걸하더니 이제와 촛불?이란 자극적 제목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예의 사건이 일어난 곳은 프랑스 파리다. 정명훈을 찾아가 귀찮게 한 사람들은 아마도 진보신당 소속의 프랑스 교민들이거나 유학생들이었던 듯하다. 그들은 프랑스 현지에서 공연예술노조 위원장, 파리오페라합창단 단원들,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만났으며 이들로부터 이 놀라운 사태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 받았다.

 

뿐만 아니라 파리의 예술단원들은 유례없는 방식으로 전원 해고된 한국의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의 복직을 위하여 거리콘서트에 대한 논의를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프랑스의 예술가들은 저명한 지휘자인 정명훈을 만나 지원을 호소할 것을 조언했다. 왜냐하면, 정명훈이야말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 중의 한 사람이니까

 

이상이 진보신당 당원이라고 밝힌 블로거가 자신들이 정명훈을 만나고자 하게 된 정황의 대략이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로 정명훈을 만나기 위해 마침 정명훈이 지휘하는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했고 그를 기다렸다. 이들의 기대대로라면 정명훈은 틀림없이 자기들과 만나 지지와 연대의 뜻을 표하며 기꺼이 서명을 해줄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가장 적극적인 연대를 표해준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공연을 마치고 막 나오는 순간이 아니겠는가그가 부당한 해고를 당했을 때 바스티유극장노조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복직했던 전례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불과 몇 년 전 국립오페라합창단과 협연하면서 자기가 만난 최고의 합창단이라고 극찬했던 바로 그 합창단의 단원들이 지금 전원 해고되었고 오페라합창단은 해체된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두 시간 동안 정명훈이 지휘하는 음악을 감명 깊게 감상한 이들은 뿌듯한 가슴에 기대를 가득 담고 정명훈을 만났을 것이고 정명훈은 짜증스럽게 비서에게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 비서는 정명훈이 아직 한국의 사태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서명을 받아 호텔에 맡겨둘 테니 내일 아침 찾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그 비서는 이왕이면 불어가 아닌 한국어로 번역된 문서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조언을 했다. , 이 대목에서 이들은 상당히 고무되었을 것이다. 그 비서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을 것이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겐 강물에 떠내려오는 지푸라기도 거대한 통나무로 보이는 법이다.

 

며칠 남지 않은 오페라단과의 담판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이들은 부랴부랴 한국어본으로 고친 문서를 들고 호텔로 갔다. 그는 마침 1층 레스로랑에 몇몇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에게 이 문서만 전달하고 이들은 돌아갈 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텔 측의 제지를 받았고 실랑이를 벌이다 메모를 (호텔측이 대신) 전달하는 것으로 하고 글을 쓰던 중 만찬을 끝낸 정명훈이 이들에게 다가왔다. 


, 여기까지다. 그 이후에 정명훈에게 한국의 교민들이 당한 수모는 더 이상 줄거리를 요약해주는 수고를 들이지 않더라도 아무도 이의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명훈의 부적절한 언행이나 이기적인 행동에 대하여 공분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정명훈의 견해도 존중 받아야 한다. 정명훈을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의 의견을 표할 수도 있고 변호할 수도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우리나라는 획일화되고 통제된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나라가 아니다. 다만 문제는 일부 의견들 중에는 매우 거칠 뿐아니라 목적에 치우쳐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분들의 대체적인 의견을 종합해보니 대략 아래와 같다. 

 

1. 야밤에 호텔에 찾아가 서명을 강요한 것은 너무 무례한 짓이다.

2.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인 정명훈에게 이러면 안 된다.

3. 그리고 굳이 정명훈이 국립오페라합창단을 지지할 필요가 있나?

 

모두 맞는 말이다. 정명훈씨는 매우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 밤 늦은 시간에 찾아온 것이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만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정명훈이 호텔방에 들어가 잠들었더라면 이들은 그를 굳이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이들은 호텔측의 제지로 메모와 함께 문서를 전달하고 돌아가기로 하고 글을 쓰던 중이었다. 그때 정명훈이 스스로 다가온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잠자는 것도 아니었고 늦은 시간까지 1층 레스토랑에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면 그는 비행기를 타고 떠난다. 무엇이 그토록 무례했단 말인가? 아니 오히려 교민들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폭언을 집어 던진 정명훈이야말로 무례하지 않은가? 그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이므로 괜찮다고?

 

, 이 대목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 정명훈을 변호하는 어떤 블로거의 말씀처럼 그는 미국 국적을 가진 미국인이다. 아마, 어쩌면, 정명훈 자신도 그가 미국시민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한국 교민들에게 자기 의사를 가감 없이 표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한국인이란 자의식이 있었다면 이역만리 타국에서 만난 동포에게 그리 막대할 수 있었을까.

 

그러므로 두 번째,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 그가 세계적 거장인 것은 사실일지 몰라도 ‘위대한 한국인’ 범주에 애써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은 난센스이거나 속된 말로 ‘우리끼리 깨춤 추는’ 짓이다. 한국인이든 거장이든 우리는 소위 ‘잘 나가는’ 사람에겐 너무 관대하다. 나아가 민족주의적 감성 또한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세 번째
, 굳이 정명훈이 국립오페라합창단을 지지할 필요가 있는가? 맞다. 상설 국립오페라합창단을 해체하고 용역으로 바꾸는데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건 정명훈 개인의 자유다. 정명훈의 말처럼
그 사람들이 그렇게 노래를 잘해요? 내가 왜 그들을 보호해야 하죠? 라고 하면 할 말 없다.

 

그러나 여러분, 논란이 된 블로그 어디에도 왜 우리를 지지해주지 않느냐? 그래서 너는 나쁜 놈이야!라고 말하는 대목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다만 호텔에서 당하게 된 예상치 못한 공격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표출했을 뿐이다. 그리고 기대했던 정명훈으로부터 당한 설움이 너무 지나쳐 과격하게 폭발하는 화산처럼 주변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한 점도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정명훈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정명훈이든 누구든 공부 좀 해요. 공부 계집애들이 말이야! 하고 욕을 먹었다면 분명코 이런 식 이상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논란의 주인공이 된 블로거가 좀 과했다는 데는 동의한다.

 

얼마든지 비판이든 비난이든 할 수 있지만 좀 감정에 치우친 측면이 있었다. 특히 정명훈이 마지막으로 던졌다는 기도하라구, 기도!는 마치 기독교와 이명박을 연상시킨다. 물론 본문에도 이명박과 정명훈의 돈독한 관계가 묘사되어있긴 하다. 그러나 특정종교를 빗대어 비하하는 건 옳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오늘 내 주장이나 결론은 앞의 모든 이야기들과 전혀 다른 것이다. 오늘 정명훈 논란으로부터 느낀 내 감상을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장황하게 남의 이야기를 요약하고 내 이야기를 보탰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다음과 같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느낌이며 감상일 뿐이이지만….

 

많은 분들이 블로그에 올려진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댓글을 다는 것 같다. 제목과 소제목 또는 대충 훑어본 내용만 가지고 사실을 왜곡해서 주장을 펴는 경우가 다반사다. 오늘 논란이 된 블로거에 대해 어떤 분은 외국에나 한 번 나가보고 이 따위 쓰레기 같은 글을 올리느냐고 공격했는데, 글 첫 줄만 제대로 읽었더라도 정명훈을 찾아간 분들이 모두 프랑스 교민들이거나 유학생들이었을 것이란 짐작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주 포스팅을 하는 블로거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슬픈 일이다. 실로 그렇다면 시시비비를 떠나 글을 쓰는 사람들에겐 참담한 일이다.”                  파비

 

Ps; 정명훈이 왜 그랬을까 아직도 혼란스럽다. 같은 음악인으로서 오페라합창단을 해체하는데 대해 겨우 그런 식으로 말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아직도 희망처럼 든다. 설마 설마 이건 사상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정치의 문제도 아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라면 절대로 정명훈처럼 해서는 안 될 일이 아닌가? 그래서 아직도 설마 하고 있다. 아니라면 합창단을 그저 오케스트라나 오페라단의 장식물처럼 생각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크리스마스 이브! 그러나 오늘밤 나는 쓸쓸히 집을 보고 있다. 아이들과 아이 엄마는 성당에 갔다. 오늘 여덟 살짜리 우리 딸아이가 성탄전야 미사에서 천사로 등장한단다. 얼마나 예쁠까? 그러나 나는 따라가지 못했다. 10년 전 수술했던 허리가 어떻게 삐끗했던지 다시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화장실에도 걸어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 

그럼 혼자 집에서 무얼 할까? 막걸리나 한 잔 할까? 아니지. 그래도 오늘 같은 성스러운 날 그렇게 술이나 마시며 보낼 수야 없지 않은가.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차에 ‘경남도민일보’에서 소개하는 크리스마스 특선영화 생각이 퍼뜩 스쳤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니 재미있을 거 같다. 나름대로 감동도 있는 영화인 듯싶다. 게다가 EBS 영화라면 믿을만하다.   


그래! 오늘밤 크리스마스 이브는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와 함께 하는 거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미지="DAUM 영화"


감동실화, “크리스마스, 단 하루를 위한 휴전”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인가? 아니면 신이 내린 가혹한 형벌인가? 

우리에게도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수십 년 전에 동족 간에 총부리를 겨누고 상잔을 벌였던 쓰디쓴 기억이 아직 채 지워지지 않았다. 그 흔적들은 아직도 함양에서 산청에서 또 이름 모를 어느 곳에서 시커멓게 썩어버린 유골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상처를 자극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 동무들과 어울려 놀 때도 ‘군기놀이’를 하며 놀았다. 미국, 북한, 소련, 한국, 이런 식으로 군기를 만들어 집어던지면 그걸 주워 편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게릴라전을 하듯 이리저리 숨어 다니다가 마주치면 누구든 먼저 “꼼짝 마!” 하고 외친 다음 서로의 군기를 확인하는 것이다. 계급이 높은 쪽이 이기고 낮은 쪽은 적의 포로가 되는 것인데, 어느 편이든 군기가 그려진 병사를 포로로 잡으면 전쟁은 끝나게 되어있다. 

요즘 아이들은 무얼 하고 노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렇게 전쟁놀이를 하며 자랐다. 군기놀이가 아니면 산에 지천으로 널린 아카시아 나무를 잘라 칼을 만들어 편을 갈라 ‘칼싸움’을 벌였다. 전쟁만큼 신나는 놀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이 벌이는 ‘진짜’ ‘전쟁’ 은 ‘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내려진 비할 데 없이 참혹한 ‘형벌’이다. 

숨 막히는 전장에 일어난 기적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의 한복판 프랑스 북부 어느 전장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100m도 안 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숨 막히는 접전을 벌이고 있는 이곳에는 자욱한 포연과 죽어가는 동료의 신음만이 가득한 지옥이었다. 이들에게 내일은 없었다. 오로지 맹목적으로 적을 죽여야만 하는 현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죽음의 땅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하얗게 눈 덮인 전장. 적막을 깨고 스코틀랜드 병사의 백파이프 연주가 울려 퍼진다. 잠시나마 긴장을 늦추고자 하는 이 소리에 화답하여 독일군 진영에서도 노래가 흘러나온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이미지="DAUM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얗게 눈 덮인 전장에서 듣는 백파이프 소리와 캐롤 송은 군인들에게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이어서 독일군 진영에서 참호 위에 수십 개의 트리가 내걸렸다. 그리고 전쟁에 징집된 독일 오페라 스타 니콜라스(벤노 퓨어만)가 촛불로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고 캐롤 송을 부르며 전장의 한복판으로 나온다. 하얀 전장에 비치는 촛불이 노래 소리와 어울려 춤춘다.

크리스마스 이브, 와인으로 축배를 들며 단 하루를 위한 휴전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연합군 진영에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당황한 양쪽 진영의 지휘관들은 그러나 평화의 힘에 이끌려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 정상회담을 갖게 된다. 실로 기이한 기적 같은 정상회담은 크리스마스를 위한 단 하루의 휴전을 맺는다. 호츠메이어 대위가 먼저 말한다.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전쟁도 아니고,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하루 쉰다고 누가 나무랄 사람 있겠어요?”

독일군 장교의 제안에 프랑스군 장교도 동의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막사에서 와인을 가져오게 해 축배를 나누어 마신다. 그리고 이어서 전장에 나가는 신도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종군한 스코틀랜드 신부의 집전으로 성탄 미사가 열리고, 장중한 미사곡 대신 남편을 찾아 베를린에서 전장에 찾아온 안나가 아베 마리아를 부른다. 실로 다이앤 크루거의 노래 소리는 천상의 소리다. 

적과 아군이 서로 뒤엉켜 크리스마스 제단에 선 병사들의 지친 눈망울로 천상의 숨결이 스며든다. 아~ 크리스마스 이브, 어둠이 내린 전장의 적막을 타고 흐르는 아베 마리아의 선율은 신이 내린 소리가 틀림없었다. 검은 하늘과 하얀 대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여인의 금빛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러나 전쟁은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안녕히 주무세요.” 서로의 적들에게 인사를 남긴 이들은 각자의 참호로 돌아간다. 자기 진영으로 돌아온 프랑스군 지휘관 오데베르 중위는 본부에 어떻게 보고할지를 묻는 부관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독일군 진영에서는 어떠한 적대행위도 없었음.”

그러나 결국 이 평화도 그렇게 오래 가진 못할 것이다. “저들은 불로 모여드는 나방처럼 모두 제단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자들까지도…” 파머 신부가 말하는 불로 모여드는 나방이란 평화를 갈망하는 병사들의 지친 영혼이다. 그러나 곧이어 나오는 지친 영혼의 독백은 평화에 대한 기대가 결국은 허물어지고 말 것임을 예고한다.

“그러나 전쟁은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을 걸세.”

이튿날 아침, 적대적 양 진영의 지휘관들이 만나 죽은 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하고 이들은 서로의 진영에서 상대편 시신을 수습해 넘겨주고 장례를 치르기로 합의한다. 총 대신 삽을 들고 서로 뒤엉켜서 땅을 파고 죽은 전우의 시신을 묻는다. 삽으로 동료의 시신을 묻으며 한 병사가 말한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에 장례를 치를 수 있다니 정말 좋군요.” 

"평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지 몰랐다."

이 평화로운 장면. 그랬다. 수많은 병사들이 어울려 장례를 치르는 모습이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이미지="DAUM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그리고 이어서 이들은 축구시합을 벌이며 즐거운 한때를 갖는다. 이제 더 이상 이들에게 적은 없다. 오로지 친구요 이웃이 있을 뿐이다. “전쟁이 끝나고 파리가 자유로워졌을 때 저희를 바뱅가로 초대해 와인을 함께 마셔 달라”고 부탁하는 호츠메이어와 “꼭 파리에서 다시 만나 와인을 마시자”고 다짐하는 오데베르가 다시 총을 들고 서로를 겨눌 수 있을까?

“평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지 몰랐”던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이웃이요 친구인 적에게 총을 쏠수가 없게 되었다. 적에게 총을 쏘는 대신 이들은 자기편이 폭격을 할 때는 적군을 자기네 진지로 불러들여 그들을 보호하고 그 반대의 경우엔 눈  앞에 보이는 친근한 적들의 보호를 받았다. 꼭 총을 쏘아야 할 때는 하늘을 향해 공포를 날렸다. 

반역도로 몰리는 병사들

그러나 이 평온함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결국 상부에서 이 부적절한 전장의 실태를 알아챈 것이다. 그리고 양쪽에서 새로운 병사들을 데리고 새로운 지휘관들이 내려왔다. 적극적인 전투력을 상실한 이 부대원들은 보다 험한 곳으로 보내져 전장에서 적에게 평화를 선물한 데 대한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했다. 

참전하는 신도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전장까지 따라온 파머 신부도 영국에서 급파된 주교로부터 스코틀랜드 교구청으로 이송명령을 하달 받는다. 평화는 깨졌다. 전쟁이 그들을 가만 놔두지 않은 것이다. 주교는 새롭게 편성된 병사들을 모아놓고 전투에 나가 적을 섬멸하라고 독려한다.  

“주님의 검이 여러분 손에 쥐어졌습니다.”
“독일군은 우리와 다릅니다. 그들은 주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선하든 악하든 독일인을 모두 없애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십시오. 아멘.”   

그러나 평화는 전쟁을 이기고 떠난다

호츠메이어와 독일 병사들은 혹독한 러시아 전선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이들은 러시아로 떠나는 화물열차 안에서 자신들을 사지로 내모는 상관을 조롱하듯 흥겹게 합창을 한다. 그리고 노래 소리를 기적처럼 울리며 기차가 하얗게 솟아있는 수림을 뚫고 달리는 엔딩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흥미로운 기적은 실화다. 이 이야기는  “영국의 신문
<더 데일리 스케치 Daily Sketch>, <더 데일리 미러The Daily Mirror>등의 기사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 “병사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세 나라의 군대기록보관실에 남아있다”고 한다. 

“2005년 11월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두고 프랑스 전역 500여개 개봉관에서 상영된 이 영화는 박스 오피스 상위권을 휩쓸며 흥행에 성공했다. 크리스마스 휴전이란 감동적 실화가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자신과 병사들을 적과 내통한 반역자로 몰아세우는 상관을 향해 외치는 오데베르의 외침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칠면조 뜯으며 명령만 내리는 상관들 보다 독일 군인들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오데베르의 외침은 바로 우리들 이야기

프랑스 장교의 이 외침, 남 이야기가 아니라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 이야기가 아닌가?

2008. 12. 24일 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