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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정명훈 사태로 본 블로거들, 왜 글도 안 읽고 댓글 달까?

세상이 온통 정명훈 이야기로 시끄럽다. 진보신당 당원이라고 밝힌 한 블로거의 글 때문이다. 사람들은 두 패로 갈라져 갑론을박하고 있다. 인터넷상에 드러나는 현상으로만 본다면 일방적으로 정명훈이 파렴치한으로 몰리고 있는 듯하다. 내가 봐도 그렇다. 만약 미국에 구걸하더니 이제와 촛불?이란 자극적 제목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예의 사건이 일어난 곳은 프랑스 파리다. 정명훈을 찾아가 귀찮게 한 사람들은 아마도 진보신당 소속의 프랑스 교민들이거나 유학생들이었던 듯하다. 그들은 프랑스 현지에서 공연예술노조 위원장, 파리오페라합창단 단원들,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만났으며 이들로부터 이 놀라운 사태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 받았다.

 

뿐만 아니라 파리의 예술단원들은 유례없는 방식으로 전원 해고된 한국의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의 복직을 위하여 거리콘서트에 대한 논의를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프랑스의 예술가들은 저명한 지휘자인 정명훈을 만나 지원을 호소할 것을 조언했다. 왜냐하면, 정명훈이야말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 중의 한 사람이니까

 

이상이 진보신당 당원이라고 밝힌 블로거가 자신들이 정명훈을 만나고자 하게 된 정황의 대략이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로 정명훈을 만나기 위해 마침 정명훈이 지휘하는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했고 그를 기다렸다. 이들의 기대대로라면 정명훈은 틀림없이 자기들과 만나 지지와 연대의 뜻을 표하며 기꺼이 서명을 해줄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가장 적극적인 연대를 표해준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공연을 마치고 막 나오는 순간이 아니겠는가그가 부당한 해고를 당했을 때 바스티유극장노조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복직했던 전례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불과 몇 년 전 국립오페라합창단과 협연하면서 자기가 만난 최고의 합창단이라고 극찬했던 바로 그 합창단의 단원들이 지금 전원 해고되었고 오페라합창단은 해체된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두 시간 동안 정명훈이 지휘하는 음악을 감명 깊게 감상한 이들은 뿌듯한 가슴에 기대를 가득 담고 정명훈을 만났을 것이고 정명훈은 짜증스럽게 비서에게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 비서는 정명훈이 아직 한국의 사태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서명을 받아 호텔에 맡겨둘 테니 내일 아침 찾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그 비서는 이왕이면 불어가 아닌 한국어로 번역된 문서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조언을 했다. , 이 대목에서 이들은 상당히 고무되었을 것이다. 그 비서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을 것이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겐 강물에 떠내려오는 지푸라기도 거대한 통나무로 보이는 법이다.

 

며칠 남지 않은 오페라단과의 담판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이들은 부랴부랴 한국어본으로 고친 문서를 들고 호텔로 갔다. 그는 마침 1층 레스로랑에 몇몇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에게 이 문서만 전달하고 이들은 돌아갈 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텔 측의 제지를 받았고 실랑이를 벌이다 메모를 (호텔측이 대신) 전달하는 것으로 하고 글을 쓰던 중 만찬을 끝낸 정명훈이 이들에게 다가왔다. 


, 여기까지다. 그 이후에 정명훈에게 한국의 교민들이 당한 수모는 더 이상 줄거리를 요약해주는 수고를 들이지 않더라도 아무도 이의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명훈의 부적절한 언행이나 이기적인 행동에 대하여 공분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정명훈의 견해도 존중 받아야 한다. 정명훈을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의 의견을 표할 수도 있고 변호할 수도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우리나라는 획일화되고 통제된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나라가 아니다. 다만 문제는 일부 의견들 중에는 매우 거칠 뿐아니라 목적에 치우쳐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분들의 대체적인 의견을 종합해보니 대략 아래와 같다. 

 

1. 야밤에 호텔에 찾아가 서명을 강요한 것은 너무 무례한 짓이다.

2.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인 정명훈에게 이러면 안 된다.

3. 그리고 굳이 정명훈이 국립오페라합창단을 지지할 필요가 있나?

 

모두 맞는 말이다. 정명훈씨는 매우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 밤 늦은 시간에 찾아온 것이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만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정명훈이 호텔방에 들어가 잠들었더라면 이들은 그를 굳이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이들은 호텔측의 제지로 메모와 함께 문서를 전달하고 돌아가기로 하고 글을 쓰던 중이었다. 그때 정명훈이 스스로 다가온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잠자는 것도 아니었고 늦은 시간까지 1층 레스토랑에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면 그는 비행기를 타고 떠난다. 무엇이 그토록 무례했단 말인가? 아니 오히려 교민들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폭언을 집어 던진 정명훈이야말로 무례하지 않은가? 그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이므로 괜찮다고?

 

, 이 대목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 정명훈을 변호하는 어떤 블로거의 말씀처럼 그는 미국 국적을 가진 미국인이다. 아마, 어쩌면, 정명훈 자신도 그가 미국시민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한국 교민들에게 자기 의사를 가감 없이 표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한국인이란 자의식이 있었다면 이역만리 타국에서 만난 동포에게 그리 막대할 수 있었을까.

 

그러므로 두 번째,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 그가 세계적 거장인 것은 사실일지 몰라도 ‘위대한 한국인’ 범주에 애써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은 난센스이거나 속된 말로 ‘우리끼리 깨춤 추는’ 짓이다. 한국인이든 거장이든 우리는 소위 ‘잘 나가는’ 사람에겐 너무 관대하다. 나아가 민족주의적 감성 또한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세 번째
, 굳이 정명훈이 국립오페라합창단을 지지할 필요가 있는가? 맞다. 상설 국립오페라합창단을 해체하고 용역으로 바꾸는데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건 정명훈 개인의 자유다. 정명훈의 말처럼
그 사람들이 그렇게 노래를 잘해요? 내가 왜 그들을 보호해야 하죠? 라고 하면 할 말 없다.

 

그러나 여러분, 논란이 된 블로그 어디에도 왜 우리를 지지해주지 않느냐? 그래서 너는 나쁜 놈이야!라고 말하는 대목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다만 호텔에서 당하게 된 예상치 못한 공격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표출했을 뿐이다. 그리고 기대했던 정명훈으로부터 당한 설움이 너무 지나쳐 과격하게 폭발하는 화산처럼 주변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한 점도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정명훈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정명훈이든 누구든 공부 좀 해요. 공부 계집애들이 말이야! 하고 욕을 먹었다면 분명코 이런 식 이상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논란의 주인공이 된 블로거가 좀 과했다는 데는 동의한다.

 

얼마든지 비판이든 비난이든 할 수 있지만 좀 감정에 치우친 측면이 있었다. 특히 정명훈이 마지막으로 던졌다는 기도하라구, 기도!는 마치 기독교와 이명박을 연상시킨다. 물론 본문에도 이명박과 정명훈의 돈독한 관계가 묘사되어있긴 하다. 그러나 특정종교를 빗대어 비하하는 건 옳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오늘 내 주장이나 결론은 앞의 모든 이야기들과 전혀 다른 것이다. 오늘 정명훈 논란으로부터 느낀 내 감상을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장황하게 남의 이야기를 요약하고 내 이야기를 보탰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다음과 같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느낌이며 감상일 뿐이이지만….

 

많은 분들이 블로그에 올려진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댓글을 다는 것 같다. 제목과 소제목 또는 대충 훑어본 내용만 가지고 사실을 왜곡해서 주장을 펴는 경우가 다반사다. 오늘 논란이 된 블로거에 대해 어떤 분은 외국에나 한 번 나가보고 이 따위 쓰레기 같은 글을 올리느냐고 공격했는데, 글 첫 줄만 제대로 읽었더라도 정명훈을 찾아간 분들이 모두 프랑스 교민들이거나 유학생들이었을 것이란 짐작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주 포스팅을 하는 블로거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슬픈 일이다. 실로 그렇다면 시시비비를 떠나 글을 쓰는 사람들에겐 참담한 일이다.”                  파비

 

Ps; 정명훈이 왜 그랬을까 아직도 혼란스럽다. 같은 음악인으로서 오페라합창단을 해체하는데 대해 겨우 그런 식으로 말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아직도 희망처럼 든다. 설마 설마 이건 사상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정치의 문제도 아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라면 절대로 정명훈처럼 해서는 안 될 일이 아닌가? 그래서 아직도 설마 하고 있다. 아니라면 합창단을 그저 오케스트라나 오페라단의 장식물처럼 생각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