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숙'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1.04 미실의 난이 실패한 이유? 식자우환이다 by 파비 정부권 (19)
  2. 2009.07.14 ‘선덕여왕’ 미실이 대인배? 그럼 전두환도 대인배다 by 파비 정부권 (50)
  3. 2009.07.08 선덕여왕, 근친혼의 이유는 무엇일까? by 파비 정부권 (68)
미실의 난이 실패했다. 미실은 마지막으로 "그래, 덕만이 네가 이겼다!" 속으로 부르짖으며 화살을 날린다. 도대체 누구를 향해 쏘는 화살일까? 물론 덕만을 향해 날리는 화살일 터이다. 다중이 모인 장소에서 추국을 하기도 전에 신국의 공주를 죽이고자 하는 행동은 "나 역도요!" 하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미실의 도발적 행동, 왜 그랬을까?

도대체 미실은 왜 그랬을까? 옆에서 놀라 제지하는 아우 미생에겐 아랑곳없다는 듯이 그저 묵묵히 화살을 뽑아 시위에 장전해 날리는 모습은 마치 벌써 이런 상황에 대비해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빨랐다. 자포자기했던 것일까?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냉정하게 침착함을 잃지 않던 미실이 아니던가. 


어쩌면 미실은 정변이 실패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덕만과 춘추로부터 자신은 한 번도 꾸어보지 못한 꿈에 대하여 들었을 때 자신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았을지 모른다. 새롭게 떠오르는 두 마리 용의 기개와 지략을 보며 그들을 상대하기엔 자신과 자신의 측근들은 너무 노쇠했다는 사실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던 것일까. 마지막으로 옥처럼 찬란하게 부서지고 싶다고…. 그리고 실제 자기가 말한 대로 찬란하게 부서질 각오로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다. 지금까지 자기가 살았던 방식과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정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정변은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당한다. 아무도 모르고 있지만, 계산에 능한 미실은 간파했다. 

싸움은 이미 끝났다. 노련한 프로 바둑 기사가 수읽기를 통해 패배를 인정하고 돌을 던지듯이 미실도 그렇게 한대의 화살로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이 화살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덕만이 맞게 될지, 아니면 화랑들 중 누군가가 대신 맞을 것인지, 아니면 어떤 출중한 고수가 출현해 화살을 받아낼 것인지….

미실의 난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튼 미실의 난은 실패했다. 그런데 왜 미실의 난이 실패한 것일까? 실질적으로 30여 년간 신국의 권력을 장악해왔으며, 군사력의 대부분을 쥐고 있고, 신료들과 지방귀족들의 지지를 업고 있는 미실이 어째서 덕만에게 패하게 되는 것일까?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드라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우선 일선에서 일을 처리하는 부하들의 실수가 잦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칠숙은 다 잡은 덕만을 놓쳤다. 나는 칠숙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선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만약 내가 칠숙이었다면 복야회의 산채를 포위했을 때 그냥 화공으로 잿더미로 만들었을 것이다.

어차피 덕만은 추포되는 과정에서 죽여야 한다. 살아서 서라벌로 데리고 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 석품의 주진공 암살 실패를 들 수 있겠다. 어떻든 석품은 주진공을 죽였어야 한다. 그런데 어설프게 작전을 감행하다 실패했다. 진평왕 말년에 선덕여왕의 등극에 반대해 난을 일으켰다는 칠숙과 석품, 그 대단한 두 사람의 실수는 어이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실수들은 지엽적인 것이다. 대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 결정적인 실수는 다름 아닌 미실이 저질렀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실 측근들의 실수는 부분의 실수로서 다른 부분에서 만회하면 된다. 그러나 미실이 하는 실수는 보완할 방법이 없다. 미실은 덕만을 보는 즉시 죽였어야 했다. 그런데 미실은 오판했다.  

미실, 너무 똑똑해서 탈이다 

미실이 측근들에게 강조하며 경계한 것이 무엇이었던가. "공주를 살려서 서라벌에 데려와서는 절대로 안 된다. 반드시 추포되는 과정에서 저항하다 장렬하게 전사하도록 해야 한다." 공주를 살려두는 것은 곧 정변을 일으킨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반드시 죽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덕만이 대범하게도 호랑이굴에 제 발로 들어왔다. 물론 미실은 순간 당황했을 것이다. 게다가 옆에는 당나라 사신도 있다. 그러나 미실은 위국부령이다. 신국의 황제를 대신해 역도를 추국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을지라도 당장 평정심을 되찾아 덕만을 잡아 옥에 가두라고 명해야 본래의 미실다운 모습이다. 

비록 공주라고 하나 덕만은 역적 혐의를 받고 있는 몸, 포박하여 옥에 격리한다고 한들 누가 탓할 수 있으랴. 더구나 위국령이 내려진 엄중한 시점에 말이다. 그러나 미실은 너무 생각이 많았다. 너무 정치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당나라 사신의 눈이 두렵고, 대신들의 눈이 두렵고, 모든 사람들의 눈이 두려웠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미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에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미실이 아니라 세종이었다면 어땠을까? 당장 덕만을 체포해 옥에 가두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을 베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실은 아홉수를 내다보는 노회한 정치인, 여기에 미실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공개추국? 쿠데타에 그런 공정한 재판은 없다

너무 똑똑한 미실, 식자우환이라고나 할까. 쿠데타는 그저 쿠데타일 뿐이다. 명분 따위는 애초부터 필요 없다. 어차피 쿠데타 세력이 내세우는 명분이란 것도 알고 보면 모두 거짓 선동에 불과한 것이다. 반란을 일으키는 마당에 무슨 대의 따위가 소용이 있겠는가 말이다. 결국 나중엔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되어 있는 것을.

덕만의 죽음에 대해선 역모에 대해 추국하던 중 자결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여기에 대해 사실을 확인하자고 달려들 신료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미 황제의 건강상태를 직접 확인해보자던 대신을 현장에서 죽였던 미실이다. 그런 미실이 이미 죄인이 되어 손아귀에 들어온 덕만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춘추가 밖에 있다지만, 그래서 덕만을 죽이더라도 춘추가 그 자리를 대신할 거라는 걱정은, 글쎄 그건 좀 난센스다. 춘추는 진지왕의 손자로서 패주의 자손이다. 설령 춘추에게 대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덕만을 죽이고, 귀족들을 단속하고, 군사를 장악한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남는 문제는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식자우환이다. 너무 똑똑해도 화근이다. 알렉산더처럼 단순해져야 하는 것이다. 단 칼에 실타래를 끊어 푸는 것처럼. 그런데 이거 오늘 내가 엉뚱하게 쿠데타 세력을 찬양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긴 우리가 사는 시대는 너무나 많은 쿠데타를 겪어 마치 반란 교육이라도 받은 것처럼 훤하다.  

미실의 쿠데타 실패는 식자우환 탓 

그래서 내가 아니더라도 미실이 식자우환이란 것쯤은 누구든 이미 눈치 채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미실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출현했던 쿠데타 세력들과는 달리 대의와 명분을 통해 대중적으로 지지받는 정권을 창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혹시 양심적인 쿠데타? 어허, 그러고 보니 나도 식자우환이다. 쿠데타면 쿠데타지, 무슨 대의니 명분이니…, 개뿔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다음뷰에서 선덕여왕 후기를 읽다 보니 이런 제목이 눈에 띈다. 《선덕여왕, 미실이 진정한 대인배다》 미실이 진정한 대인배라고? 도대체 무슨 소린가 궁금해서 내용을 읽어 보았다. 제목만 빼고 대부분의 내용은 수긍이 가는 내용이었다. 그래,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특히 권력을 움직이는 사람일 수록 더 그렇다.


미실은 그런 점에서 나름 성공한 권력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랫사람을 인간적인 신뢰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것은 권력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다. 신뢰와 사랑이 빠진 다스림은 억압과 통제에 불과하다. 그런 다스림은 자그마한 불만들이 조금씩 누적되다가 언젠가 커다란 봇물처럼 터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덕목은 어디까지나 덕만의 생각처럼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권력을 사용하고자 할 때만 그 빛을 발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야욕을 채우기 위해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이에 앞장서는 심복들에게만 베푸는 신뢰와 사랑이라면 그것은 오로지 악마의 간교함에 불과하다. 

미실이 대인배란 소리를 듣고 보니 전두환 생각이 났다. 전두환이야말로 한때 대인배의 대명사처럼 회자되던 사람이 아닌가, 몰론 세속적인 아첨꾼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지만. 이에 비해 노태우는 매우 좁쌀스럽고 치사한 인간으로 전락되곤 했었다. 전두환은 부하들이 직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는 반드시 전별금이란 것을 하사했다고 한다.

소위 노란봉투로 불려지는 그 두툼한 현금 뭉치는 충성을 바치는 자에겐 더없는 기쁨이며 더한 충성을 맹세할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두환이 퇴임하고 난 이후에도 그의 곁에는 과거의 부하들이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고 했던가. 물론 돈으로 산 충성은 돈이 떨어지면 끝이므로 그 돈이 마르기 전까지만 유효한 이야겠지만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무기 로비스트로 유명한 린다 김 사건이 터졌을 때였다. 추운 겨울 어느날, 린다 김 집 앞에서 죽치던 기자들에게 설렁탕 한그릇 씩이 배달되었다. 기자들은 손을 호호 불면서 따뜻한 설렁탕을 먹게 되니 눈물이 났던 모양이다. 한 기자가 말했다. "아, 이거 추운 겨울 난장에서 설렁탕 얻어 먹자니 몇 년 전 이맘때 생각이 나는구만…"

그의 회고에 의하면 린다 김 사건이 터지기 몇 년 전, 김영삼 정권 초기 전두환의 집 앞에 죽치던 기자들에게도 그 추운 겨울바람 속에 설렁탕이 한그릇씩 배달되었다고 했다.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식사도 거른 채 보름씩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에게 배달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설렁탕은 복음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 기자의 회고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말이야. 노태우 집 앞에서는 보름이 넘게 죽치고 있어도 껌 하나 안 나오더라 이 말이지. 진짜 지독하더구만…" 이 이야기는 오래 전에 MBC라디오 《격동50년》을 통해 들었던 어느 기자들의 대화 내용이다. 실제 기자가 드라마에서 인터뷰 식으로 확인까지 했으니 나름 신빙성 있는 에피소드였으리라. 

무엇보다 전두환의 대인배성을 적나라하게 증언해주는 것은 역시 장세동이다. 5공 청문회장에서 보여준 그의 전두환에 대한 충성심은 전두환이 노태우가 아니라 장세동을 후계로 키웠어야 한다고 호사가들이 떠들도록 만들기도 했다. 하여간 전두환이 보여준 부하에 대한 지극한 신뢰와 사랑(?)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생각해보시라. 그런 전두환이 일반 국민들에겐 어떤 짓을 했는지를. 전두환은 12·12 쿠데타로 자신의 상관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대통령을 감금하다시피 해서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당시 자기 일파에 의해 의해 대통령으로 옹립(?)되었던 최규하는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진지왕이나 진평왕과 같은 존재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지왕이나 진평왕보다 훨씬 못한 그러니까 그저 전두환이 시키는대로 도장이나 찍고 사인이나 하는 전두환의 꼭두각시였다고 하는 게 옳을 터이다. 그렇게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이 무슨 짓을 벌였던가. 국민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가했다. 광주에서만 수천 명의 사람을 죽였다.

거의 20년 만에 돌아온 칠숙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미실…, 그러나 그 미실은 또한 백성들에게는 어떠했던가.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는 반대파들에겐 어떠했던가. 자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병사의 목을 직접 베던 미실이 아니던가. 그 미실의 모습이야말로 전두환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는 원대한 포부 아래 사람 하나 하나를 빠짐없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이 대인배의 진정한 도다. 자기 개인의 야욕을 위해 사냥개처럼 순종하는 자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주면서도 반대파와 일반 백성들에겐 가차없는 채찍을 휘두르는 것은 대인배와는 거리가 멀다. 

미실이 칠숙의 손등에 떨어뜨린 눈물은 악마의 눈물이다. 악마에게도 순정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정이 싸늘한 눈에 물길을 잠시 내었다고 해서 악마가 갑자기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모름지기 전두환이 장세동에게 보인 순정도 결코 미실에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악마의 눈물을 받아 마신 장세동도 칠숙처럼 그랬을 것이다.  

미실은 대인배가 결코 아니다. 그녀는 그저 사악한 전두환과 같은 야심 가득한 출세주의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미실을 대인배라고 하는 것은 전두환을 대인배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칠숙도 충신이 아니다. 칠숙을 충신이라고 한다면 장세동이도 만고에 충신이라고 말하게 되는 역사적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에 드디어 칠숙이 등장했다. 소화와 함께 서라벌에 나타난 칠숙으로 인해 드라마 선덕여왕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안 그래도 내심 불안했었다. 칠숙이 소화를 구해 살아서 돌아온다는 소문은 진즉에 있었지만, 혹시나 했었다. 만약 칠숙과 소화가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면 과연 누가 덕만의 정체를 증명해줄 것인가.

나는 그게 걱정이었다. 진흥대제(드라마에서 자꾸 대제라고 호칭하니 나도 민족주의 내지는 애국주의적 대세에 편승해서 대제로 부르기로 한다. 경남도민일보의 김훤주 기자라면 이런 걸 무척 싫어할 텐데… 그래도 할 수 없다. 시류에 편승하는 수밖에…)의 신물인 작은 칼 정도로 진평왕이 자기 딸을 확신하기에는 너무 무리다.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진평왕이 덕만을 떠넘긴 소화다. 소화의 증언이야말로 태산도 움직일 수 있는 명백한 증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소화를 어머니로 믿고 따르는 덕만을 보면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소화에 대한 감사와 신뢰는 바다를 메우고도 남을 것이다. 어쨌든 칠숙과 소화의 등장은 부질없는 내 짐 하나를 덜어주었다.

그런데 칠숙은 어떤 인물인가? 칠숙은 기록에 의하면 진평왕 말년에 석품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그도 역시 화랑이었으니 진골귀족이다. 화랑은 진골귀족의 자제들 중 용모가 수려하고 덕망이 높은 자 중에서 선발한다. 이처럼 화랑도가 내면적 정신 못지 않게 외모를 중시하는 것은 신라인들의 영육일체, 선미합일의 미적 관념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설이 대체적이다.

어떻든 이렇게 본다면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화랑들은 모두 같은 씨족들로서 형제자매들이다. 드라마에서 미실이나 설원공이 스스로를 천한 신분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진골귀족 내부에서의 역관계일 뿐이고 이들은 모두 신라 최고의 관등에 오를 수 있는 진골귀족들이다. 그러니 미실이나 설원공이 김씨인 것도 자명한 일이다.

만약 설원공(혹은 설원랑)이 김씨가 아닌 설씨라면 그는 화랑도 될 수 없었겠지만 병부령의 자리에도 오를 수 없다. 더구나 대등들만이 참여하는 화백회의에 참여한다는 것은 천지가 개벽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이 화백회의가 매우 민주적인 제도라고 배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신라사회의 이처럼 독특한 골품제와 화백회의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리고 이 골품제를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이 권장되었던 것은 아닐까? 드라마에서 만명부인은 공주의 신분을 버리고 김서현과 결혼해 김유신을 낳았다. 만명공주는 성골의 신분이었지만 골족이 아닌 가야 출신 김서현을 선택함으로써 귀족 신분을 잃게 된다.

김서현이 공을 세워 만명부인의 어머니인 진흥대제 황후의 배려로 다시 진골귀족의 신분을 얻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만명공주가 귀족신분을 잃게 된 이유는 바로 족외혼을 강행했기 때문이란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 김유신 일가는 가야의 왕족으로 신라에 투항한 공을 인정받아 진골 작위를 받고 공주와 결혼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만명공주가 족외혼을 고집해 귀족의 작위를 잃었다는 것은 별로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드라마가 옳든 내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이 옳든)간에 신라는 언제부터인가 족내혼이 하나의 관습이요 제도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씨족사회도 아니고 부족사회도 아닌 국가 체제가 정비된 고대의 강국 신라에서….

언젠가 아키히토가 황태자이던 시절, 천황족 외부의 여인과 결혼한다고 해서 크게 화제를 몰고 왔던 적이 있다. 일본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커다란 사건이었다. 일본에서 천황이 생긴 이후 최초의 일이었다고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도 족내혼의 관습이 법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백제에서 건너간 일파가 일본을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족내혼을 선택했다느니 하는 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역사적 기록이나 신뢰할 만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신라에 대해서도 비슷한 추론을 내세울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 발표된 연구 중에 신라 금관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신라의 금관은 성인의 머리에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물건이었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의 둘레를 재어보았더니 너무 좁아 머리가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장식용이었을까? 그런데 어느 학자가 그 비밀의 동굴에 손을 집어넣었다. 비밀의 열쇠는 고대에 행해진 풍습에 있었다.  

신라 왕족들의 머리는 모두 길게 늘어진 모양이었다. 이는 북방 흉노족의 관습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흉노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에 돌을 올려놓아 머리를 늘어뜨리는 관습이 있다는 것이다. 금관의 둘레가 좁아 성인의 머리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바로 흉노의 이런 관습 때문이란 것이다. 

편두 풍습으로 머리가 가늘고 길쭉해지면 충분히 금관을 쓸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로부터 하나의 가설이 만들어졌다. 신라의 왕족들은 흉노의 일파인 북방 선비족이라는 것이다. 김알지의 신화는 그의 후손이 왕위에 오르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함께 만들어졌다. 충분히 가능한 가설이다.

그 가설이 정당하다는 가정 하에 하나의 가설을 더 추가해보는 것도 그리 엉뚱해보이지는 않는다. 일본의 천황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신라를 장악한 경주 김씨들도 자신들만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족내혼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골품제도를 만들고 골족 내부의 의견을 통일하고 연대를 제고하는 기관으로 화백회의를 둔 것은 아닐까? 

죽은 줄 알았던 소화가 돌아왔다.


신라가 건국될 당시에는 왕은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서 6부족이 세력균형을 이루는 연맹체였을 것이다. 이 6부족의 평화로운 연맹을 위해 6부족장이 아닌 인물을 왕으로 추대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혁거세거서간의 신화는 그래서 탄생했을 것이다. 남해차차웅의 사위로서 유리이사금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석탈해의 경우도 그렇다.

석씨 부족이 철기문화를 가진 강성한 군사력으로 왕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학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사기나 유사를 인용한다면 이때도 평화로운 연맹체가 지향이었으며 왕권은 6부족이 인정하고 승복할 수 있는 덕망있는 사람이 맡았을 것이다. 그러나 석탈해가 계림에서 얻었다는 김알지는 누구였을까? 

그들이 북방에서 남하한 흉노족이었다면 정복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면서 피정복민들을 지배할 효과적인 수단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마도 골품제도는 그렇게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 골품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족내혼은 필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명하기 힘든 또 다른 역사적 함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 김알지의 7세손인 미추이사금 때에 가서야 비로소 김씨가 왕위에 등극하느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가설을 풀어보았으나 이 부분에 대한 답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어떻든 이런 가설이 아니라면 그들의 근친혼을 설명할 길이 없다. 경주 김씨들은 원래 문란한 성전통을 가져서? 그건 아니지 않나.

경주 김씨가 정복민족이었다는 가설은, 그래서 골품제도를 만들고 족내혼을 했으며 나아가 다산을 위해 일부다처 또는 일처다부를 권장했다는 사실을 뒷바침할 수 있는 유력한 논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든 저렇든 칠숙이 돌아왔다. 그도 화랑이다. 그러므로 그도 설원이나 세종처럼 미실을 사랑할 수 있고 충성할 수 있다.

그런 줄 알았다. 안 그러면 아무리 칠숙랑이 우직하다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미실에 대한 사랑은 15년 세월을 만주를 거쳐 타클라마칸까지 유랑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었던 배경을 잘 설명해 준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한다. 특히 남자들은 그렇다. 그런데 이 칠숙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소화를 바라보는 눈빛 말이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려고 그러는 거지? 작가의 의도가 도무지 짐작이 안 간다. 아무리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사를 너무 걸레조각으로 만들면 시청자들의 반감을 사지 않을 수 없다. 칠숙이 소화를 사랑하게 되면 선덕여왕의 등극에 반발해 일으키게 될 반란은 어쩌란 말인가?

실로 귀추가 주목된다. 칠숙, 한 눈 팔지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를… 그리고 그건 법도에도 어긋나는 짓이란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