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공주'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09.08.13 선덕여왕, 김춘추는 왜 성골이 아니고 진골일까? by 파비 정부권 (6)
  2. 2009.08.11 '선덕여왕' 덕만의 정광력, 미실의 하늘을 깰까? by 파비 정부권 (1)
  3. 2009.08.11 선덕여왕, 덕만은 살고 천명이 죽어야 하는 이유 by 파비 정부권 (11)
  4. 2009.08.05 선덕여왕, 비담의 반란 벌써 시작됐다? by 파비 정부권 (29)
  5. 2009.07.29 선덕여왕,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 by 파비 정부권 (4)
  6. 2009.07.21 선덕여왕의 ‘도원결의’,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by 파비 정부권
  7. 2009.06.24 이요원이 창조할 선덕여왕 이미지는? by 파비 정부권 (3)
  8. 2009.06.17 하룻강아지 선덕여왕과 여우같은 천명공주 by 파비 정부권 (11)

천명공주가 죽었다. 아쉬운 대목이지만, 덕만공주가 왕이 되기 위해선 불가피한 조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천명공주가 일찍 요절했다는 기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어디에도 없다. 김춘추가 왕좌에 올랐을 때 그의 아비 용춘공을 갈문왕으로 예우해 올렸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천명공주가 덕만이 왕이 되기 전에 죽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오히려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을 때까지 살아있었다고도 한다.


성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은 미실궁주와 덕만공주의 대결구도를 만들기 위해 천명공주를 제물로 삼았다. 어디까지나 드라마로서의 자유를 최대한 누린 것이다. 모두들 드라마를 보면서 느끼고 있을 테지만, 사실 천명공주와 덕만공주가 일국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배후에는 미실이 있다. 만약 미실과 같은 걸출한 여걸이 없었다면(물론 악마지만, 드라마는 악마가 있어야 영웅이 나오는 법이다) 천명도 없었으며 덕만도 없었을 것이라는 뉘앙스가 이 드라마의 배경에 은밀히 깔려 있다.

원래 천명공주는 부군(태자의 존재를 해제조건으로 하는 왕위계승권자)의 자리에 올라 진평왕의 후계를 잇기로 되어있었다. 용춘을 사모하던 천명이 모후인 마야부인에게 "용숙과 혼인하고 싶다"고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용춘이 아닌 용수와 결혼하게 된다. 용숙이라 한 것은 숙부뻘(5촌 아저씨)인 용춘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하고 빗대어 부른 것일 게다. 그러나 마야부인은 용숙을 용수로 착각하고 진평왕과 의논하여 두 사람의 혼사를 정해버린 것이다.   

마음이 유약해 왕실의 법도를 거역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혼인을 하게 된 천명부군은 월성에서 용수전군과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용수전군은 본래 선제인 진지왕의 장남으로 태자였으나 진지왕이 폐위되는 바람에 전군으로 족강한 인물이다. 이종욱 교수의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에 의하면 용수가 성골이 아니라 진골인 것은 진지왕의 폐위로 인한 탓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종욱 교수는 성골에 대해 대체로 이렇게 해석한다. "신라는 골품제 사회다. 골품제는 골품과 두품으로 나뉘는데 두품은 다시 6두품으로 구분했다. 골품은 왕족으로 진골과 성골이 있는데, 성골이란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을 의미하며, 왕과 왕의 가족, 왕의 형제와 그 가족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왕이 바뀌면 성골집단은 새롭게 구성된다."

이런 해석에 의하면 용수는 자기의 사촌형제인 진평왕이 등극함으로써 성골의 범주에서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 것이다. 즉 진평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성골이었으나 진평왕이 왕이 되어 새롭게 성골귀족이 재편됨으로써 진골로 족강한 것이다.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인 승만공주가 성골이므로(진평왕의 형제의 가족이므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용수는 매우 용의주도하며 야심이 큰 인물이었다. 그는 천명과 혼인하기 전에는 폐주의 자식으로 최대한 몸을 낮추었다. 미실에게 다가가 아첨을 하며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미실은 천명의 배필로 용수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폐위시킨 왕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용수의 맹세에 마음이 움직인 미실이 용수와 천명의 국혼을 허락한다. 

천명공주를 부군의 자리에서 폐하고 덕만공주를 여왕의 재목으로 선택한 이유

천명과 혼인하여 부군의 남편 자리에 오른 용수는 이제껏 보여주던 태도를 180도 바꾸어 진평왕의 오른팔처럼 행동했다. 공공연히 미실궁주의 권위에 도전하기도 서슴지 않았다. 마치 천명이 왕위에 오르면 실제 왕은 자기라는 듯 오만하기 그지없다. 이에 미실은 생각을 바꾸어 마야부인을 황후에서 폐하고 새로운 황후를 들여 태자를 생산해야한다는 당론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는 결국 천명부군을 폐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덕만이 미실의 처소로 가 무릎을 꿇고 뜻을 거두어주길 간청한다. "미실궁주께서는 왕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궁주님으로 인해 여자도 부군이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천명공주를 부군의 자리에서 폐하려 하십니까?" 그런 덕만공주에게 미실이 묻는다.

"공주, 그대의 말처럼 나는 미실이란 옥토를 통해 여왕이란 꽃이 필 수 있는 기반을 닦았소. 그대가 제왕으로서 이 땅에 선다면 무엇을 위한 기반을 닦고 싶소?" 무슨 뜻인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던 덕만이 말한다. "덕만은 눈물이 흐르지 않는 나라를 위해 살아갈 것 같습니다.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욕망에서 불거져 나온 전쟁과 협상의 노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심히 이상적이구먼." 미실이 말하자 덕만은 다시 힘주어 말한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삼한의 통일… 제가 제왕이라면 그것을 이상으로 내세우고, 영원토록 추구할 것입니다."  그러자 미실이 덕만을 찬찬히 내려다보며 다시 말한다. "일전에 천명부군에게도 이와 같은 질문을 했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소." 그리고 이어 말한다. "내가 천명부군을 폐한 것은 덕만공주, 뒤늦게 그대를 발견했기 때문이오."

이 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짐작할 것이다. 천명공주는 부군의 자리를 스스로 내놓고 월성에서 낳은 춘추를 데리고 용수와 함께 월성을 빠져나간다. 월성은 왕과 왕의 가족만이 기거할 수 있는 곳이다. 공주가 성골이 아닌 진골과 성혼을 하게 되면 월성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명은 부군의 자리에 있었기에 용수와 혼인하고서도 월성에서 계속 살면서 김춘추를 낳았다. 

즉, 부군으로서 왕위를 계승할 위치에 있었으므로 일반 법도와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군의 지위를 잃었으니 월성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음은 자명하다. 야심만만한 용수전군이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용수전군이라 한들 어쩔 도리가 없다. 그는 부군의 남편이었기 때문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뿐 스스로 힘의 원천은 아니었던 것이다. 

선덕여왕 - 10점
신진혜 지음/창해

   


성골은 신라 왕궁 월성에 살아야 하며, 월성을 떠나면 성골의 지위도 잃게 된다

이상 미실이 신라의 여왕으로 덕만을 택하고 천명을 버린 이야기는 소설 속의 이야기다. 창해출판사에서 펴낸 소설《선덕여왕》은 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진혜라는 역사학도가 쓴 책이다. 그녀는 1985년 생으로 아직 4반세기도 살지 못한 어린 나이다. 이 소설의 텍스트도 물론 화랑세기지만, 소설적 구성을 위해 약간의 변형을 꾀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신진혜 작가가 의도한 소설적 해석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덕만공주가 천명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 배경과 과정을 빠른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필치로 사실감 있게 잘 그려놓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사실 미실이 삼한의 통일이란 원대한 이상을 품은 덕만을 선택했다고 하는 설정은 좀 억지가 있지만, 천명이 아니라 덕만이 왕이 되는 이유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천명공주와 그 가족들이 월성을 떠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천명공주의 신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서강대 이종욱 교수에 의하면, 월성은 성골만이 살 수 있는 곳이고 성골은 월성에 살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월성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은 성골의 지위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광법사의 어머니는 숙명부인이다. 그녀는 지소태후의 딸 숙명공주로 진흥왕의 왕후였으나 이화랑을 사모해 출궁하여 이화랑과 혼인함으로써 성골의 지위를 버렸다. 물론 진흥왕의 포기와 묵인 하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 이화랑의 자손들이 4대에 걸쳐 화랑의 풍월주를 세습하게 되었으며 화랑세기의 기자 김대문은 그 5대손이란 사실은 이미 전회의 포스팅에서 밝힌 바 있다.

어쨌든 천명공주는 부군의 지위에서 물러나 월성을 떠남으로써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다. 춘추 역시 월성에서 살 때는 성골이었으나 진골로 족강되었음은 당연하다. 이러한 성골에 관한 개념이 하나의 원칙이나 제도로 자리잡은 것은 법흥왕 때로 보인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함으로써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이 율령반포에서 중요한 두 가지가 골품제도와 화백회의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특히 왕족들의 신분과 처우에 관한 법이 정비되어있지 않아 늘 정국불안의 한 요인이었던 것을 해소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또한 성골의 범위를 축소하여 왕과 왕의 형제와 그 가족들로 한정했다는 것은 중앙집권제가 시도되었음도 의미한다. 

성골은 왕위계승권을 확정해서 분쟁을 없애기 위한 제도적 장치

율령이 반포되기 전에는 귀족회의인 화백회의 의장을 왕이 맡았으나 상대등을 따로 두어 화백회의 의장 역할을 하도록 한 것도 왕권 강화의 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즉 대등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만장일치제 회의를 하던 관행에서 왕은 빠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 일파가 진평왕과 권력게임을 하는 것도 그러고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법흥왕이 만들어 놓은 성골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귀족들의 불만,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 거기다 아직 확고하게 완성되지 못한 중앙집권도 분란의 씨앗이었다. 어린 나이에 등극한 진평왕을 대신해 태후와 미실궁주의 오랜 섭정도 왕권과 귀족간의 싸움을 부채질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물론 우리란 필자의 주관적 해석이지만―김춘추가 본래 성골이었으나 모후인 천명공주가 부군의 지위를 잃고 월성에서 쫓겨남으로써 함께 진골로 족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진흥왕의 유일한 적통으로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패망하여 신라에 귀순한 가야계인 김유신이 김춘추를 선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김유신이 문희를 태워 죽이겠다고 벌인 쇼를 오로지 김춘추의 인간성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독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김춘추 또한 자신의 운명적 신분에 힘을 실어줄 김유신의 무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 이로써 우리는―역시 필자의 주관적 해석인 우리다―성골이란 현재의 권력관계를 표상하는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성골은 고정불변의 신분이 아니며 성골이 진골로 족강할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로 진골이 성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이 됨으로써 성골의 시대가 끝나고 진골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었다. 

즉, 김춘추 이후로는 진골들이 왕위에 올랐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역시 주관적인 우리는―오늘 이 말이 난센스임을 알았을 것이다. 김춘추가 왕이 된 이후 신라 천 년을 통틀어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왕의 시대가 백년을 넘게 이어졌다. 형제계승을 기본으로 하던 왕위 세습은 장자계승의 원칙이 확립되어갔다. 

김춘추 이후에 진골들이 왕이 되었다는 말은 난센스

다시 말해서 성골의 범주가 더욱 엄격해졌다는 말이다. 성골이란 진골귀족들 중에서 왕위계승권자의 범위를 확정할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앞서 말했다. 굳이 억지로 성골과 진골을 구분하라고 한다면 성골은 왕족이고 진골은 귀족이다. 그러나 신라 하대로 가면서 왕권이 약화되고 골품제도는 혼란을 겪게 된다. 상대등 중에서 왕이 나온 경우도 많았다는 것은 무너진 왕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예다.  

아무튼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다. 김춘추는 성골로 태어났으나 진골로 족강되었다가 다시 왕이 되면서 성골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 김춘추의 후계자들은 보다 더 엄격해진 성골의 기준을 만들고 왕위를 세습했다. 그러니 김춘추 이전에는 성골들이 신라의 왕 노릇을 하다가 김춘추가 정권을 잡으면서 진골들이 왕이 되었다는 말은 난센스다. 

그러나 이런 결론도 뒤집어 말하자면, 성골이란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이며, 존재조차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성골이란 단어가 그리 흔하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성골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기술해놓은 기사도 없다. 화랑세기에서는 아예 성골-진골 대신에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이렇게 본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만들어낸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도 허구로부터 만들어낸 허구 같은 게 되고만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허구 중의 허구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드라마는 재미있으면 된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역사를 왜곡해선 안 된다는 불평도 있지만, 내가 볼 땐 그렇게 왜곡할 만큼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도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중요한 주제는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민심을 얻는 자가 진정한 성골이 아니겠는가. 민심, 그것이 현대적 의미에서 성골의 진정한 척도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선덕여왕, "그 이상을 위해 삼한통일의 기반을 닦겠다!"는 선덕여왕이야말로 진정한 성골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성골이었을까? 그들은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게 되는 나라'를 꿈꾸었을까? 이를 위해 남북통일의 기반을 닦는 것을 이상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영원히 추구한 정권이 있었을까? 물론 어떤 정권이든 다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걸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싶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 진정한 善德은 없다 

위의 마지막 질문은 내가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소설 선덕여왕의 저자인 신진혜 씨가 소설 속에서 암시해준 질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녀는 덕만공주를 통해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온통 눈물 천지다. 용산에선 삼성의 개발이익에 밀린 철거민들의 눈물이 도시를 적시고, 평택에선 기업 살리기란 명분으로 살 길을 잃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눈물이 공장을 적신다. 

세상에 사는 낙이 없다. 그러나 오늘 역사학도이며 선덕여왕(창해)의 작가 신진혜 씨의 글을 읽노라니 기특한 생각에 입가에 번지는 기쁜 미소를 지울 길이 없다. 내가 그녀를 기특하다고 하는 것은 그녀가 이제 갓 만 23세의 대학생이고 나와는 20년이나 차이나는 나이 때문이지만, 그녀가 특별히 욕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녀의 집필의도가 무엇이었든 그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소설 선덕여왕을 읽으며 내가 느낀 감상, 그것이면 족하다. 책을 읽고 가지는 감상은 작가가 아닌 독자의 영역 아니겠는가.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이 축구경기로 말하자면 후반전에 들어섰습니다. 지금까지는 미실의 일방적인 공격에 덕만과 천명이 방어에 급급한 형국이었다면, 이제 본격적인 덕만의 공격이 시작될 태세입니다. 사실 덕만은 경기를 지배할 마음이 별로 없었죠. 그녀에게 관심사는 자기 출생의 비밀에 대해 밝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왜 미실과 칠숙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지, 왜 엄마가 죽어야 했는지, 이 모든 비밀을 밝혀내는 게 그녀의 목표였지요.


천명의 죽음에 분노하며 미실과 대결하고자 각오를 다지는 덕만
그런데 이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미실이 왜 그토록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지도 알았고, 부왕이 왜 자기를 내다버렸는지도 알았으며, 을제 대등이 왜 자기를 소리 없이 죽이려고 했는지 그 이유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혁거세 거서간 이후로 전해 내려오는 황실의 예언 때문입니다.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 결국 이 예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력투쟁의 와중에 언니 천명공주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언니의 죽음을 목도한 그녀의 가슴에 새로 싹튼 것은 분노입니다. 이미 이 분노에 대하여 《선덕여왕》은 여러 차례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미실이 덕만에게 말했지요.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뿐이니라. 하나는 도망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노하는 것이니라." 유신 역시 이 분노에 대해 말합니다. 미실에게 무모하게 대적하지마라고 충고하는 김서현에게 유신은 외칩니다. "아닙니다. 분노가 먼저이옵니다. 우리 집안의 이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미실의 수를 생각하기 전에 분노가 먼접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 하늘의 뜻이란 것이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필시 하늘의 뜻을 살펴볼 재주를 가진 자를 통해 세상에 오는 것인가 보다." 미실의 뜻을 거슬러 상천관은 미생의 아들 대남보를 시켜 덕만을 죽이려 했고 이 음모에 뜻하지 않게 천명공주가 희생되는 불운을 당하고 맙니다. 만약 상천관이 미실의 뜻에 거역하지 않았다면, 덕만은 조용히 중국이나 타클라마칸의 사막으로 떠났거나 설원에게 붙잡혀 미실 앞으로 끌려왔을 것입니다.

후자가 미실의 야욕을 채우는 데 훨씬 유용했겠지만, 사실은 두 가지 다 미실에겐 나쁘지 않은 수였습니다. 그런데 상천관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일을 그르치게 되었습니다. 미실은 예전에 없던 최대 위기에 봉착했고, 나아가 상천관이 엿본 하늘의 뜻이 계시하듯 무서운 적을 다시 서라벌로 불러들이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중요한 전투에서 지휘체계가 무너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 예입니다.  

(잠깐) 상천관은 천관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랍니다. 신라시대 천관은 여자들이었죠.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국가의 천관들도 모두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주몽이나 태왕사신기에서도 하늘의 계시는 신녀들이 받았습니다. 천관녀와 김유신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지요. 김유신이 결국 말의 목을 잘라 천관녀와의 관계를 정리했지만… 그런데 궁금한 건, 왜 남자는 하늘의 계시를 못 받는다는 거지요? 불공평하잖아요?  

상천관, 미실의 하늘을 깰 자 덕만을 다시 서라벌로 불러들이다
그러나 미실은 아직 모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사실 상천관이 미실의 뜻을 어기고 덕만을 죽이려고 했던 것도 다 천기를 통해 미래를 슬며시 엿보았기 때문이었죠. 미실은 그런 상천관을 못마땅해 하며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라고 핀잔을 줍니다. 미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죠. 미실의 예언대로 일식이 일어나자 놀라 벌벌 떠는 덕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의 뜻 같은 건 없느니라. 있다면 오로지 이 미실의 뜻만이 있을 뿐이지." 

젊은 시절의 미실은 천의를 두려워했지만,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황제마저도 떨게 만드는 그녀에게 이제 하늘의 뜻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기억나십니까?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으로 쪼개지던 날 밤, 미실이 두려움에 몸을 떨며 쌍둥이를 잡아오라고 군사를 다그치던 모습…. 그러나 세월은 하늘마저도 무시할 정도로 그녀를 오만하게 변화시켰습니다. 미실의 자만심이 천의마저도 부정할 정도로 오만해지게 된 배경에는 물론 '사다함의 매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미실이 진정 모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덕만이 자신이 가진 하늘의 뜻을 거꾸러뜨릴 또 다른 하늘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음 주 예고편에서 정치적 위기에 처한 미실 일파는 계략을 꾸밉니다. 역시 미실의 주특기인 하늘의 뜻을 빌려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일식을 만들겠다는 거죠. 그러나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광력이 있어야 한다고 월천대사가 말합니다.

여러분, 기억나시는지요? 정광력. 그 정광력이 누구 손에 있었지요? 바로 덕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덕만이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로마와 서역의 상인들을 도와준 대가로 정광력을 받고 온 세상을 얻은듯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우리 모두 덕만의 손에 들린 그 낡은 책자가 엄청난 일을 할 것임을 예감했었습니다. 선덕여왕이 첨성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죠.

덕만의 정광력, 마침내 미실의 천의를 꺽을 것인가
그리고 사다함의 매화가 대명력이란 사실이 밝혀졌을 때, 우리는 모두 역시 그랬구나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미실이 대명력으로 천의를 가로챌 때, 나는 왜 덕만이 정광력을 꺼내들고 대항하지 않는지 그게 몹시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광력이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미실이 가진 사다함의 매화를 물리칠 '타클라마칸의 낡은 책자'…. 마침내 덕만공주와 미실이 하늘의 뜻을 두고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덕만이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을 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기는 바로 이 정광력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이제이, 하늘의 뜻은 하늘의 뜻으로 제압한다는 말로도 바꿀 수가 있겠지요. 덕만이 정광력을 잘 간직하고 있기는 한 건지, 혹시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과정에서 분실되거나 훼손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흐흐~ 별 걱정을 다 합니다. 스텝들이 잘 보관하고 있을 텐데 말이죠. 자, 과연 하늘의 뜻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다음 주가 기대됩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왜? 덕만공주가 선덕여왕 자리에 올랐을까요? 천명공주는 무엇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일까요? 그보다 한술 더 떠 (드라마상이긴 해도) 천명공주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요? 삼국사기는 덕만공주를 진평왕의 장녀로 묘사하고 있지만, 삼국유사는 진평왕의 장녀는 천명공주이며 덕만공주는 차녀라고 하고 있습니다. 화랑세기도 또한 유사와 같이 덕만을 차녀라고 하고 있지요. 그러고 보니 유사와 세기가 비슷한 점이 많고 사기만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째서 천명이 아니라 덕만이 선덕여왕이 되었을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삼국사기는 김부식이라는 중앙관료가 정권 차원에서 집필한 역사서입니다. 따라서 당시 집권세력의 이데올로기가 잘 반영된 기사들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세기와 유사는 집필자의 의도에 따라 보다 자유로운 기사 작성이 가능했으리라 봅니다. 그런 면을 고려한다면, 삼국사기보다는 삼국유사가 더 진실에 근접했을 수도 있습니다. 덕만을 장녀로 묘사한 것도 따지고 보면 신라왕조의 후예인 김부식으로선 당연한 기술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집권세력의 이데올로기든 집필자의 자유로운 의도든 주관이 개입되어있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습니다. 유사가 사기에 비해 150 년 정도 후대에 씌어졌다고 하지만 이 역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점에선 두 기사 모두 차이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화랑세기의 위작논란도 사실 생각해볼 대목이 많습니다. 화랑세기가 위작이라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위작일 가능성은 없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어떤 역사서든 어느 정도의 위작은 가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동양의 유명한 역사서로 사서의 바이블이라 할 사마천의 사기도 결국은 기자의 주관적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점에선 위작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사마천이든 김부식이든 일연이든 고증에 많은 땀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화랑세기의 위작논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화랑세기는 김대문이란 당대의 인물이 당대의 이야기를 저술한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화랑세기가 진본이라고 했을 때 그 폭발력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사실 기존 역사학계의 입장에서 보면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왜 덕만이 천명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을까? 물론 이 질문은 어디까지나 유사나 세기의 기사를 사실로 가정하고 하는 것입니다. 사기의 입장에 서면 이런 질문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왜? 당연히 장녀인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게 순리니까요. 

그러나 세기나 유사의 눈으로 보면 이는 당연히 들 수 있는 궁금증입니다. 성골 남자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장녀인 천명을 제치고 덕만이 왕위를 계승했을까? 진평왕이 재위 54 년 동안 왕자를 한 명도 생산하지 못했거나 생산했더라도 모두 죽었다는 성골남진에 대한 의문에 대해선 일단 덮어두기로 합시다. 유사에서도 선덕여왕 등극의 비밀을 여는 열쇠로 성골남진을 지목했으므로 지금으로선 성골남진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여왕 출현의 이유일 수밖에 없습니다.

선덕여왕 등극의 이유는? 천명이 무능했기 때문
그러나 삼국유사는 단지 성골남진을 지목했을 뿐 차녀인 덕만이 등극한 이유에 대해선 언급이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화랑세기가 보다 많은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요. 요즘 《드라마 선덕여왕》의 인기에 힘입어 출판계에서도 선덕여왕 출간 붐이 일고 있습니다. 서점의 신간 코너에 가보면 온통 선덕여왕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로 화랑세기를 텍스트로 하는 이 소설들은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이 대부분입니다. 그 중에 한 권으로 된 소설 선덕여왕도 있습니다.

선덕여왕 - 10점
신진혜 지음/창해

   


창해출판사가 간행한 신진혜 저 선덕여왕입니다. 전질로 된 선덕여왕에 질린 독자라면 300여 페이지 정도로 간결하게 만들어진 부피에 우선 안도할 것입니다. 이 책은 주로 덕만이 공주의 신분으로 천명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경위와 김춘추와 김유신을 중용해 왕권을 확립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빠르고 박진감 넘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며 들었던 궁금증들을 이 한 권의 책이 충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천명공주는 장녀로서 부군(태자가 없을 경우 왕위 계승권 1순위자에 내리는 칭호로서 태자가 생기면 그 지위는 해소된다)의 위치에 오르지만 매우 유약하여 결단력이 없습니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제 1의 자질은 결단력입니다. 다른 모든 것을 참모가 해주더라도 오직 하나 이 결단만큼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결단은 오로지 최고 지도자의 몫입니다. 천명공주에겐 이것이 부족했습니다. 이 결단력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전반부에 등장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화랑세기에서 차용한 것이겠지요. 천명부군은 용춘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용춘은 세속에 관심이 없고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합니다. 그래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용춘의 형인 용수는 세속적 권력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쨌든 용춘을 좋아하는 천명은 어느 날 모후에게 털어놓습니다. "어머니, 저는 용숙이 좋아요. 용숙공과 혼인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런데 용숙을 용수로 잘못 알아들은 마야부인과 진평왕은 천명의 남편으로 용수를 정하고 맙니다.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게 된 데에는 천명공주의 우유부단함이 작용했습니다. 천명이 차마 용춘이란 이름을 입에 담지 못하고 용숙(龍叔)이라 했던 것입니다. 그리 말하면 응당 자기 마음을 알고 있는 모후가 용춘을 부마로 삼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마음이 유약하고 온순한 사람의 특성이 바로 이겁니다. 남들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고 확실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하길 기피하는 것이지요. 이런 마음은 사실 연약한 희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말 실수로 용춘이 아닌 용수에게 시집가는 천명공주
사태가 어그러졌으면 문제를 일으킨 본인이 해결해야 함에도 천명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결국 덕만이 부왕 앞으로 나가 사태의 진실을 고하고 바로잡아 줄 것을 청합니다. 그러나 이미 결정된 왕실의 혼사는 번복할 수 없다는 대답만 듣게 되지요. 이때 진평왕의 옆에서 덕만공주를 바라보던 원광법사는 그녀의 자질이 왕재임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진평왕에게 덕만의 스승이 되겠다고 자청하지요. 헤게모니가 천명에서 덕만으로 넘어가는 순간입니다. 

오늘 드라마를 보니 내일 천명이 죽게 될 모양이군요. 화랑세기의 기사나 소설 선덕여왕들이 다루는 것과는 다르게 천명공주는 지금껏 강인한 결단력으로 화랑들을 통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은 김서현까지도 발아래 꿇게 만들었지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내일 천명공주가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저주 때문에 두 명의 공주 중 한 명이 죽어야 한다는 것도 대답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둘 중 누가 하나 먼저 죽든 말든 어출쌍생은 일어난 것이며 성골남진의 저주도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죠. 둘 중 하나가 죽더라도 성골남진의 저주가 풀리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죽어야 했을까요? 아니 죽여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성골남진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차녀가 왕이 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를 이 드라마에선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덕만이 천명을 제치고 왕이 되려면 천명이 무능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드라마에서 천명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천하의 김서현을 발아래 꿇리고 알천과 유신을 복종하게 하는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부왕인 진평왕보다 더 뛰어난 지도력을 가졌습니다. 이런 천명공주가 살아있는데 덕만공주가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게다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왔는지도 모르는 덕만공주가 왕위에 오른다면 이건 천지개벽이죠. 그러니 《MBC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천명공주가 죽지 않고서 선덕여왕이 탄생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딜레마는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이 스스로 만든 것일 테지요. 아마 의도는 이런 것이었을 겁니다. 천명을 죽임으로써 자연스럽게 덕만의 왕위계승 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덕만으로 하여금 미실과 건곤일척의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노린 것입니다. 이 역시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덕만의 가슴에는 자기 존재를 찾아야겠다는 집념과 더불어 불타는 증오와 분노가 얹어졌습니다.
 
천명공주의 죽음은 덕만을 왕위에 올리기 위한 드라마 제작진의 고육지책
바야흐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겠군요. 그러나 손실도 만만치 않습니다. 천명공주의 결단성과 지도력에 감탄해 마지않던 시청자들의 실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천명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그간 천명에게 성원을 보내던 수많은 시청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 이 손실조차도 드라마 제작진의 의도일지도 모릅니다. 그 실망과 허탈감은 미실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이 분노는 덕만과 유신에 대한 응원으로 승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연상되는 대목입니다. 어쨌든 천명공주의 죽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가 일전에 올린 글 중에 "쌍생의 저주를 풀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둘 중 하나가 죽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새로운 예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저는 두 번째 경우의 수로 쌍생의 저주를 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첫 번째 방법으로 가고 마는군요.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둘 중 하나가 죽는다고 저주가 풀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주를 푸는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성골남진이면 성골여왕이 등극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라인들은 간단하게 이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겐, 아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썼던 시절의 우리들에게도 도저히 풀기 어려운 난제였을 성골남진을 신라인들은 너무나 쉽게 처리했습니다. "남자만 왕이 되어야 한다는 법이 있는가? 성골 남자가 없으면 여자가 왕이 되면 그만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튼 아쉬운 건 사실입니다. 천명공주를 죽이지 않고 보다 현명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었으면 하는 바람은 이제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천명이 죽어야 하는 운명인 것은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차녀가 장녀를 제치고 왕위에 올라야 하는데 장녀인 천명의 카리스마가 너무나 선명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어출쌍생의 저주는 천명의 죽음으로 새로운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 벌써 내일 드라마가 기다려지는군요. 요즘 사는 낙도 없는데 선덕여왕 보는 재미로 삽니다. 이런 말세에 선덕여왕이라도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벌써 비담의 난이 일어났다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그저 괴담이다. 아직 덕만이 왕위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괴담을 충분히 지어낼 만한 사정이 벌어졌다. 어제 막판에 등장한 비담으로 인해 선덕여왕은 온통 비담 얘기로 들끓었다. 다음뷰 베스트란은 4일 오전 한때 1위부터 10위까지 7~8개가 선덕여왕 리뷰에 덮였다. 하재근블로그의 말처럼 가히 비담의 난이다.
 

선덕왕 오른쪽에 미실 모자가, 왼쪽에 천명 모자가 섰다. 덕만을 등지고 고개를 돌린 유신의 포즈가 의미심장하다.

 
사실 유신랑이 지금껏 보여준 태도는 매우 미심쩍었다. 시청자들이 바라는 유신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강인한 결단력과 추진력, 탁월한 리더십을 보고 싶었던 시청자들에게 유신은 너무 미적거렸다. 우유부단했다. 천명과 덕만이 처한 상황이 그저 결단과 투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건 모두들 안다.

그래서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오기보다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유신의 태도가 조금 불만이긴 해도 그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유신에게서 기대하던 모습을 느닷없이 출현한 비담이 보여주고 말았다. 시청자들은 당연히 열광했다. 비담은 등장하자마자 영웅이 되었다.

자, 그런데 비담이 어떤 인물인가? 비담에 대하여 구체적인 역사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사기나 유사에서 비담이 선덕왕 말년에 난을 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다. 비담이 난을 일으킬 때 그의 신분은 상대등이었다. 상대등은 진골귀족이 아니면 오를 수 없는 자리다. 상대등 뿐만 아니라 17관등 중 5등 이상에 진골이 아니면 오를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신라는 진골귀족, 즉 왕족들의 연합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였다. 화백회의의 존재는 왕이 중앙집권을 통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대등은 이런 신라사회에서 국사를 총괄하는 한편 화백회의라는 귀족회의의 의장 역할을 하는 막중한 자리였다. 소위 일인지하 만인지상을 넘어 왕을 견제하기도 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상대등은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하고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왕권이 강화되어 국왕이 귀족회의를 주재하지 않게 되면서 만들어진 제도이므로 일면 왕권강화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완전한 중앙집권에 이르지 못했음의 반증이기도 하다.)

상대등이 왕에 의해 임명되는 형식적 절차를 거치긴 하지만 '귀족 내부의 세력관계나 골품에 따른 서열에 따라 임명자가 정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비담이 난을 일으킬 당시 상대등의 지위에 있었다는 것은 다른 한편 그가 가진 권력기반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왕이 될 수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사실 신라라는 특수한 나라에서 귀족계급에 속해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중고시대의 신라는 '왕'이 아니라 '왕과 (진골)귀족계급'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였다. 이런 상황에서 왕위계승권을 안정적으로 확정하기 위해 성골이란 제도가 창안된 것인지도 모른다. 

MBC 선덕여왕은 바로 이 성골남진의 위기상황에 착안한 드라마다. 물론 이처럼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소재를 제공한 것은 삼국유사와 필사본 화랑세기였다. 그러나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 파란을 일으키는 비담은 MBC 드라마팀의 작품이다. 비담은 실존인물이다. 그러나 비담의 가계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담은 김유신의 연날리기 전술로도 유명한 월성전투에서 패한 후 구족이 멸하는 참화를 입었다. 비담의 이름을 입에 담을 만큼 간이 큰 자가 누가 있었을까. 비담은 김씨 족보에서도 사라진 것이다. 비담의 난을 제압한 김유신과 김춘추는 명실상부하게 신라의 패권을 장악했을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진덕여왕마저 후사가 없이 죽은 후 김유신이 화백회의에서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했을 때 반대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물론 화백회의는 만장일치제이므로 반대가 있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미 화백회의가 열리기 전에 사태는 결정난 것이 아니었을까? 처음에 상대등 알천이 귀족들로부터 왕으로 추대를 받았으나 스스로 나이 들고 덕이 없음을 들어 사양하고 대신 김춘추를 천거했다고 하지만, 이 모든 정황의 근저에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성장한 신흥 진골귀족 김유신이 있었다.)   

그런데 MBC가 비담의 가계를 살려냈다. 비담은 진지왕과 미실의 아들이라는 설정이다. 참으로 기발하다. 실상 미실이 선덕여왕 집권 말년까지 살아서 대결구도를 펼쳐간다는 것은 아무리 픽션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미실이 덕만과의 대결에서 패하고 사라진 후에도 마지막까지 미실의 세력을 대표해 덕만과 대결을 벌일 인물로 드라마는 비담을 선택한 것이다. 

비담이란 캐릭터는 실존인물 비담과 진지왕과 도화녀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비형을 합성한 모델로 보인다. 실제로 삼국유사는 비형이란 인물에 대해 지금 드라마에서 비담이란 캐릭터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신비하면서도 괴팍한 인물이었다고 전한다. 비형이 진지왕이 폐위되고 유폐된 상태에서 출생한 비운의 인물이었다는 점도 역시 닮은 부분이다.  

그러나 아무튼, 비담의 출현은 드라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유신도 이제 더 이상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일 수 없게 되었다.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자신과 겨룰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으니 그도 이제 뭔가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변화의 암시를 비담과 더불어 등장한 문노가 우리에게 슬쩍 던져주었다. 

오늘 드라마에서 유신이 홧김에 도끼를 집어던지자 장작 패는 받침나무가 쩍하고 갈라진다. 그걸 본 문노가 놀라운 눈으로 유신의 손을 살피며 말한다. "자네는 스승도 없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들어 냈다니… 대단하군. 자네 혹시 누군가와 검술 대결을 해본 적이 있는가? (유신이 고개를 흔들자) 그렇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군." 

비담은 문노라는 걸출한 스승을 만나 놀라운 무공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유신은 스승도 없이 오직 혼자의 힘으로 비담에 견줄 무공을 얻었던 것이다. 곧 덕만의 정체를 문노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유신에게 절정의 무공을 전수해 줄 스승을 만난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리하여 우리는 보다 업그레이드된 유신의 새로운 포스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선덕여왕의 비밀병기 문노와 비담이 공개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춘추다. 김춘추는 유신과 더불어 선덕여왕의 한 팔이다. 유신이 무력을 대표한다면 춘추는 정치를 대표한다. 김춘추는 잘 생긴 외모와 타고난 달변으로 사람의 혼을 빼앗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그가 고구려와 왜를 거쳐 당나라에까지 외교행전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타고난 재주 덕이었다.  

비담의 출현을 반란에 비유한 괴담은―그것이 그저 배우들에 대한 비평의 의도였다 하더라도―매우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비담의 출현으로 반란은 시작된 것이다. 비담이 진지왕과 미실의 아들이란 설정부터가 반란이며, 덕만과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운명이란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거기다 비담은 미실의 잔혹한 성격을 그대로 빼닮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특히 미실이나 비담처럼 사람의 목숨을 자기 기분에 따라 어찌할 수 있는 성품의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들에겐 이루어야할 정의보다는 물보다 진한 피가 더 중할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백성들의 피울음 따위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백성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억압과 고통 속에)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라고 말하는 미실과 고작 자기가 먹을 닭고기를 못 쓰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검을 휘둘러 살생극을 벌이는 비담, 이들 모자는 결국은 상봉하고야 말 운명이 아니겠는가. 바야흐로 양 진영의 전열이 정비되고 있다. 다음 주가 기대된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의 줄거리를 만들어가는 핵심 소재는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다. 성골남진은 삼국유사 왕력편에 등장하는 기사다. 성골남진, 말 그대로 성골남자의 씨가 말랐다는 의미다. 성골이란 무엇인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을 일컬어 성골이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듯하다. 


그럼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고대신라는 장자계승의 원칙이 확립되기 이전의 사회였다. 석탈해나 내물왕처럼 왕의 사위가 되어 왕위를 계승한 인물도 있고, 왕의 동생으로 왕권을 이어받은 경우도 허다하다. 또는 왕에게 왕위계승권자가 없을 경우에 왕의 형제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왕위계승에는 하나의 질서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질서는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함으로써 체계화된 법으로 정비되었다. 그것이 바로 성골이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가설일 뿐이지만, 현재로서는 이보다 유력한 가설은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성골은 왕위계승권자인 왕족의 집단으로 그 구성은 새로 왕이 등극할 때마다 바뀐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진지왕의 아들들인 용수와 용춘은 진지왕이 왕이었을 때는 성골이었지만, 진평왕이 등극한 이후에는 진골로 족강되었던 것이다.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의 저자 이종욱 교수의 말을 빌자면, 성골이란 왕과 왕의 형제의 가족들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진평왕은 숙부인 진지왕이 왕이었을 때도 성골이었지만, 진평의 사촌들인 용수와 용춘은 경우가 달랐던 것이다.   

자, 이렇게 되면 성골남진이 어떤 상황인지 대충 어림잡을 수는 있을 듯하다. 그래서 진평왕은 이의 타개책으로 용수를 천명공주와 혼인시켜 사위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방법은 신라에서는 고래로부터 써오던 방법이었다. 석탈해가 그랬고 내물왕이 그랬다. 게다가 용수는 선대왕의 아들이며 성골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대목에서 성골이란 어떤 고정불변의 신분이 아니란 사실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체계에 불과한 것이며, 정치상황의 변동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용수에게 왕위가 가지 않고 선덕이 후계지가 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드라마에서도 이 부분에 주목한 것 같다. 왜 용수에게 왕권이 넘어가지 않고 선덕이 왕이 되었을까? 드라마에서는 용수를 젊은 나이에 죽게 만들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용수와 용춘으로 하여금 선덕여왕을 받들게 하고도 아들이 생기지 않자 을제와 흠반으로 하여금 보좌하도록 하였다는 얘기가 사실이라면 말이다. 

그럼 왜 드라마에서 용수는 젊은 나이에 김춘추를 임신한 어린 부인 천명공주를 두고 죽어야 했을까? 그것은 이 드라마가 성골남진의 원인으로 어출쌍생이란 픽션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성골남진이란 왕위계승권자가 없어진 상황은 중대한 국가적 위기상황이다. 성골남진이란 상태가 단지 정통 권력계승자가 사라진 것일 뿐 위기는 아니라고 말하는 분도 있을 수 있다.

분명 그렇다. 사위에게 왕권을 넘기기도 하고 세 명의 여왕을 배출하기도 한 유연한 신라사회에서 성골남진이 위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부로 화각을 좁혀보면 분명코 위기다. 정통 계승자가 없으니 당연히 암투가 벌어질 것이다. 선덕여왕이 등극하기 직전 칠숙과 석품이 일으킨 난이 이를 반증한다. 

성골남진에 어출쌍생을 접목시켜 하나의 예언을 만들어낸 것은 기발한 발상이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장치가 어디 있겠는가. 권력을 흔들고 쟁투의 장을 만드는데 예언보다 유용한 수단이 어디 있겠는가. 왕건이 왕이 되기 전에도 예언이 있었으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위해서도 예언이 필요했다. 심지어 사초위왕의 예언에 빠져 죽은 조광조도 있다.

그러나 지금껏 드라마는 진평왕이 덕만을 죽이지 않고 소화를 통해 살려 보냄으로써 성골남진을 막지 못한 부분에 대한 갈등을 별로 보여주지 않았다. 덕만이 비록 먼 이국땅 타클라마칸의 사막에 버려졌지만 그녀가 살아있는 한 쌍생의 저주는 그대로 유효한 것이다. 그런데 왕자들의 죽음으로 성골남진의 예언이 이루어질 때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제 바야흐로 덕만의 정체가 드러났다. 어출쌍생의 저주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모두 쉬쉬하며 숨겨왔지만 이제야말로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모든 것이 내던져졌다.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 대등 을제는 진평왕에게 왜 덕만을 땅에 묻어 어출쌍생의 저주를 자르지 않았느냐고 다그치고 미실도 덕만의 실체를 눈치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덕만과 천명은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문제의 쌍생의 저주를 어떻게 풀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둘 중 하나, 즉 천명공주와 덕만공주 중 하나가 지금이라도 죽으면 될 일이다. 덕만은 선덕여왕이 될 인물이니 당연히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천명의 몫이다.

 

그러나 그건 지금까지 보여준 선덕여왕의 주제의식에 맞지 않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사람이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미실은 사람을 죽여 사람을 얻지만, 덕만은 사람을 살려 사람을 얻고 결국 미실을 이긴다는 게 주제다. 그렇게 본다면 쌍생의 저주에 굴복해 천명이 죽는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주제 설정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은 해답은 하나다. 덕만이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이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미실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늘의 뜻은 없다고. 있다면 오로지 미실의 뜻만이 있을 뿐이라고. 천문을 아는 미실이 하늘을 이용해 예언을 퍼뜨리고 계시를 만들었던 것이다.  

덕만이 서역의 상인들 틈에서 천문을 익혀왔다는 사실, 그녀에게 정광록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실에게 대적할 사람은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온다고 한 예언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덕만이 사람을 얻어 천하를 다스릴 조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쌍생의 저주를 풀지 않고서는 결코 왕이 될 수 없다. 

천명이 죽든, 새로운 예언을 만들든… 그러나 나는 김유신의 말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과거의 너는 잊어버려. 그런 게 무슨 소용이야. 앞으로 만들어갈 덕만이 네가 더 중요한 거야. 너는 앞으로의 너를 만들어가야 해." 그렇다. 이 말이야말로 해답이다. 과거에 붙들리고서 저주를 풀 방법은 없다. 미래는 과거의 예언이 아니라 만드는 자의 것이니까.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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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분노였다. 분노하지 않는 자는 두려움을 이길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진실을 가르쳐준 것은 미실이다. 지난주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실이 덕만에게 말했다. “무서우냐? 두려움을 이겨내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도망치거라… 분노하거라…” 그렇다. 도망칠 수 없다면, 또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분노하는 것 그것이 답이다. 그러나 덕만과 천명은 너무나 두렵다. 분노하는 것조차 무서울 만큼 두렵다.  
 

두려움을 떨쳐낼 가장 강한 무기, 분노

이때 이들에게 그 두려움을 깨고 일어서도록 힘을 준 것은 유신이었다. 그러나 역시 유신에게 분노를 일깨워준 것은 미실이다. 미실은 하늘의 계시를 구실로 가야세력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것은 미실의 계략이었다. 일단 사지로 몰아넣은 다음 손을 내밀어 복종하게 하려는 고도의 술책이다. 이런 방법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권력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이기도 하다. 과거 군대에서 고참병들이 졸병들을 제압할 목적으로 ‘줄빠따’를 친 다음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며 달래는 것과 같다.

미실이 유신의 집을 찾아와 서현공과 만명부인에게 혼사를 맺어 사돈이 되자고 제안한다. 미실은 서현에게 상생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그 상생은 항복과 복종의 맹세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서현은 당장 답을 하지 않는다. 이에 유신은 격분하여 그런 부모에게 항의한다. “왜 미실에게 안 된다, 나가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서현은 유신을 타이른다. “분노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느냐? 네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안 된다, 나가라 답하면 미실은 제2, 제3의 사다함의 매화를 풀 것이다. 그리 되면 우리 가문은, 너는 어찌 되겠느냐? 미실의 다음 수가 무언지도 알지 못한 채 어찌 무턱대고 분노부터 하는 것이냐?” 그러나 유신은 서현에게 결연한 얼굴로 말한다. “아닙니다. 분노가 먼저이옵니다. 우리 집안의 이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미실의 수를 생각하기 전에 분노가 먼접니다.”

“그렇지 않기에 우린 미실에게 놀아난 것입니다. 미실은 우리의 두려움을 이용하고, 하여 우린 분노도 생각도 행동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허면, 허면  너는 떨치고 일어나 죽기라도 하겠단 말이냐?" “예, 그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미실에게 정치적 부담을 지울 수만 있다면요. 백성들에게 미실이 천신 황녀가 아니라 다만 자신의 이익에 따라 몇 천 백성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자란 걸 알릴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공포는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고, 불의에 대한 분노는 세상을 얻는 첫걸음이다

물론 서현은 유신의 뜻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가야의 마지막 임금이며 서현의 조부인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한 이래 오늘날의 기득권을 이루기 위해 유신의 조상들은 피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어렵게 이룬 터전을 분노 때문에 날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정의롭고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사적 이익보다 앞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김유신 장군이 여기서 꺾일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는 선덕여왕을 도와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고 김춘추를 왕위에 올린 인물이다.  

그는 사후에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역사상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도대체 어느 누가 신하의 신분으로 대왕의 칭호를 얻었던가. 유신은 천명공주를 찾아간다. 그리고 함께 있던 덕만과 천명에게 분노할 것을 종용한다. 만약 두려움에 빠져 분노하길 포기한다면 이제 그만 공주도 덕만도 버릴 것이라고 선언한다. 결의에 찬 김유신에게 감복한 덕만과 천명은 마침내 미실이 보낸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느낀다. 덕만과 미실은 쌍성의 개양성이었지만, 계시를 이루기 위해선 유신이 필요했다.

김유신릉.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그의 묘는 묘가 아닌 왕릉이 맞겠다. 그는 살아서도 대각간에 '태'자를 얹어 태대각간이었다.


그렇다. 이 드라마의 키워드가 무엇이었던가? 사람이었다. 천하를 얻으려면 사람부터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진흥왕이 미실에게 가르쳐 준 것이었으며, 이제 아이러니하게도 그 미실이 자신을 대적할 덕만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사람은 유신이었으며 유신은 거꾸로 덕만과 천명을 공포로부터 해방시키고 분노를 심어주었다. 오늘 드라마의 압권은 그렇게 분노에 불타는 세 사람의 도원결의다.

유비와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결의형제를 맺을 땐 비록 세 사람에 불과했지만, 이 세 사람으로부터 천하삼분의 계책이 나왔다. 이들이 없었다면 천하에 웅비하는 복룡의 지략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만약, 덕만과 천명이 분노하지 못하고 계속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미실에게 대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들에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분노를 배운 세 사람이 결의하여 당을 만들었으므로 미실과 싸우기 위해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유신의 분노는 오늘날 우리들을 향한 외침

나는 오늘 드라마를 보면서 전율했다. 유신이 결연한 어조로 외치는 함성을 들으며 전율했다. 유신이 외치는 함성은 비단 덕만과 천명을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외치는 분노의 목소리였다. “분노하라, 분노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분노하는 것이 먼저다. 사소한 개인의 이해를 따지기 전에, 정치를 따지기 전에, 수 천 수 만 백성들의 피눈물에 분노하는 것이 먼저다.”
 
내일부터 언론총파업이 다시 벌어진다고 한다. 용산참사에 이어 쌍용자동차 노조원의 부인이 죽었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까지 죽음을 맞았다. 실로 이 정권 들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피 흘리고 고통의 눈물을 쏟고 있다. 어린 유신이 천명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진심을 다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사람들이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이 대사에 감동했던 나는 오늘 또다시 유신에게 감동하는 것이다. 

“이(利)를 따지기 전에 진심으로 분노하면, 그러면 반드시 세상이 변할 것이다.” 목검을 들고 수천 번을 헤아리며 내리치다 목검이 부러지자 다시 새 칼을 들고 하나부터 다시 시작하는 우직하다 못해 무지하게까지 보이는 유신을 보며 많은 시청자들이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린 유신랑이 그럴 땐 웃었었다. 그러나 오늘은 웃을 수가 없었다. 제작진의 메시지를 얼마쯤은 읽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유신의 그런 모습에서 나는 분노의 바탕에 깔린 진심을 보았다. 

사람들이 진심을 이해하게 하는 방법은 성실한 모습이다. 우직함과 성실함으로부터 표출되는 분노야말로 세상을 흔들 강력한 무기가 아닌가. 미실의 계략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가야유민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빛은 오늘날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를 지켜보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역시 우리는, 유신의 시대가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다. “우리의 분노는, 우리의 진심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파비  

ps; 흥무왕릉 사진을 따로 구할 수 없어 부득이 김해 김씨 가락종친회 까페에서 인용했습니다. 크게 누가 될 일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사진을 게시했습니다. 상단 이미지의 출처는 MBC입니다. 모두 본문의 이해를 돕는 목적으로만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이미지의 모든 권리도 또한 두 단체에 있음을 아울러 밝힙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요원을 처음 본 것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였다. 그때 이요원은 매우 어리고 철없어 보였다. 당돌해보이기도 했던 그런 모습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 다음 본 것은 TV드라마였는데, <패션 70s>에서 그녀는 ‘더미’라는 이름의 남도의 섬마을에서 상경한 소녀였다. 청순함과 터프함이 믹스된 그런 캐릭터였다.


아마도 이런 캐릭터는 시골처녀의 전형일지도 모른다. 한없이 가냘프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속에 끈질긴 생명력을 감추고 있는 것이 땅을 딛고 살아온 시골처녀의 표상이 아닐까. 그래서 도시의 여자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대지와 같은 포용력을 그녀들은 갖고 있는 것이다. <패션 70s>에서 더미가 그랬다.

그리고 재작년이었던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가냘프고 강인하다. 평범한 간호사로 사춘기 같은 사랑과 소소한 삶의 아름다움에 빠져있던 신애가 광주에 진주한 중무장 군대에 맞선 결말을 알 수 없는 사투 속에서 비장하게 보여주던 강인함….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사진=다음영화


선덕여왕도 그런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덕만공주는 궁궐이 아닌 사막에서 각지에서 몰려든 무역상들 속에 자란다. 그녀는 그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잠자리를 보살펴주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웠을 것이다. 숱한 여행자들의 고향 이야기와 경험담을 들으며 포부를 키웠을 것이다.


만약 덕만이 서라벌에서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자랐다면 서민들의 애환도 몰랐을 것이고, 그들과 한마음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고, 더욱이 대지와 같은 포용력은 더더욱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들 속에서, 서민들 속에서 자랐으므로 그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다. 아니 그들의 마음이 그녀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어린 김유신이 천명공주에게 말했던 바로 ‘진심’이다. “진심을 다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사람들이 변하며, 그러면 결국 세상이 변한다!” 그 진심을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것이 가냘프면서도 강인한 캐릭터다. 여기에 이요원이 가장 어울림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패션 70s>에서 고준희 역을 맡았던 김민정이라면 이 역이 어울렸을까?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화려한 캐릭터의 그녀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천명공주 역의 박예진도 마찬가지다. 도회적 이미지의 김민정이나 박예진에게 풋풋한 시골냄새가 풍기는 덕만의 역할을 맡기기엔 분명 무리가 있다. 이요원이야말로 말똥냄새 풍기는 백성들의 고충을 가장 잘 알고 대변해줄 선덕여왕으로서 적격이 아닌가.


10회에서 보여준 이요원의 덕만은 뭇사람들의 그런 기대에 충분히 부응한 듯하다. 아역배우 남지현이 이요원에게 많은 부담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요원을 걱정했지만, 10회에서 보여준 활약은 충분히 그런 불안을 불식시켜주었다. 남지현에서 이요원으로 넘어온 덕만은 어느 곳에서도 이질감을 찾기가 어려웠다.


내가 보기엔, 역시 남지현에 비해 이요원이 베테랑이므로 청순함과 터프함이 믹스된 카리스마를 서서히 구축하며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선덕여왕이 살았던 시대는 신라에겐 힘든 때였다. 북쪽에서는 연개소문이, 서쪽에서는 백제 무왕이 강성해진 세력으로 압박하던 위기의 시대였다.


진흥왕이 쌓아놓은 위업은 역으로 풍전등화의 위험에 신라를 노출시켰다. 시대를 극복할 사명이 주어진 선덕여왕에게 뛰어난 지혜와 담력도 필요했겠지만 무엇보다 백성들과 일체감을 형성하지 않고서는 나라를 위난으로부터 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그러한 점을 고려해 덕만을 사막과 백성들 속에 고군분투하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덕만처럼 백성들 속에서 백성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가냘프면서도 강인한 카리스마를 간직한 지도자를 우리는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덕만처럼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줄을 놓고 낭떠러지로 떨어질 용기를 가진 지도자를 우리는 본 일이 있는가? 그리고 미래에는 그런 지도자를 가질 수 있을까?  


물론 이제 시대가 바뀌어 지도자는 하늘이 내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스스로 만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덕여왕이 될 덕만의 캐릭터를 보면서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 때문이리라. 오늘 10회에서 미실과 설원공이 반대파의 싹을 미리 자를 심산으로 김서현과 김유신을 사지로 몰았다고 자축하고 있지만…


그것이 미래의 선덕여왕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었을 줄이야. 그래서 역사는 아이러니다. 다음 주가 기대된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MBC드라마 선덕여왕이 벌써 8회가 끝났다. 어느새 한 달이 훌쩍하고 지나갔다. 드라마 속에선 20번이 넘게 춘추가 바뀌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다. 진흥왕 사후 20년간 그 누구도, 황제조차도 감히 대적할 수 없었던 신라의 실질적인 주인 미실, 그녀가 최초의 패배를 당한다. 바로 덕만에게…. 덕만이 드디어 서라벌에 등장한 것이다.


덕만공주는 천명공주를 움직였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천명공주는 덕만을 만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어린 유신랑의 말처럼 ‘진심을 다하면 자기가 변할 수 있고, 자기가 변하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에 믿음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바야흐로 북두의 여덟 번째 별 개양성이 감추어진 자신의 비밀에 다가가고 있다.


첫 회에서 진흥왕이 미실에게 말했다. “미실아, 너는 내가 어떻게 이 넓은 세상을 얻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뛰어나서 그렇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사람이다. 나는 사람을 얻었기 때문에 세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후일 진흥왕의 주검 앞에서 또한 미실이 말했다. “폐하, 사람이라고요? 보십시오. 모두 내 사람들입니다.”


이 드라마의 키워드는 사람이다. 치열한 권력투쟁의 승패도 결국은 누가 사람을 얻느냐에 달린 것이다. 물론 사람을 얻기 위해선 사람을 잘 알아보는 혜안도 중요하겠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 ‘무엇’이란 바로 ‘진심’에서 나온다고 어린 유신랑이 설파한다. 


그런데 그 진심을 덕만은 실천으로 몸소 보여준다. 낭떠러지에 매달린 자기를 끌어당기기 위해 줄을 잡고 버둥거리는 천명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줄을 놓아버린다. 그런 덕만을 따라 천명도 낭떠러지로 몸을 날리고 결국 덕만을 구한다. 진심이 천명을 움직였으며 또한 덕만도 살린 것이다. 그럼 덕만의 그 진심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처음부터 보신 분들은 사막에서 모래 유사에 빠진 덕만의 어머니(사실은 궁궐시녀 소화)가 덕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끌어당기던 줄을 끊어버리고 모래 속으로 사라진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 덕만의 진심은 소화에게 배운 것이다. 15년간 덕만은 사막에서 아라비아와 로마의 상인들을 만나 선진문물을 배우고 어머니에게선 진심을 배웠다.


그런 덕만이 드디어 서라벌에 나타났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에 가늘게 몸을 떠는 미실에게 예기치 못한 첫 번째 패배도 안겨주었다. 게다가 승리의 대가로 사람까지 얻었다.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당대의 영웅 김서현 공이며 북두칠성의 꿈으로 태어난 김유신이다. 김유신과 김춘추, 덕만공주와 천명공주….


덕만이 나타남으로서 이렇게 미실에 대항할 진용이 갖추어진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한 점 두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첫째, 어째서 사람들은 모두 미실을 두려워하는데 덕만공주만이 미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황제까지도 두려워 그녀에게 반대를 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물론 답은 너무 쉽다. 덕만은 미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계림 사람들이 미실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녀가 신라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자기에게 방해가 되는 자는 가차 없이 죽인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만은 그것을 모른다. 덕만에게 미실은 그저 나이 든 여자일 뿐이다. 덕만은 사막에서 자란 철부지 하룻강아지였던 것이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왜 사람들은 미실에게 대적을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미실이 두려워 이미 마음속에서부터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덕만도 천명처럼 궁궐에서 공주로 자랐더라면 아마 다름없이 미실을 두려워하며 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막에서 자란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걸 알리가 없다.


다음 문제는, 그렇다면 덕만공주 혼자의 힘으로 미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대든다고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덕만에겐 쌍둥이 언니 천명공주가 있다. 그녀는 궁궐에서 자라 권력의 생리를 잘 안다. 미실이란 적의 장단점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알고 구별할 줄 안다.


두 번째 답도 사실은 이미 8회에서 나왔다. 김서현 공과 김유신을 알아보고 그들을 서라벌에 입성하도록 안배하는 천명공주 역시 북두의 여덟 번째 별이다. 작가의 의도가 어떤 건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아마 물어보더라도 안 가르쳐줄 것이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저주는 나라를 들어먹으려는 미실로부터 황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본다면 어출쌍생이야말로 신라를 보호하기 위한 하늘의 기막힌 안배다. 진흥왕은 죽기 전에 이미 그 안배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받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미실에게 유지를 남겼던 것일까? 물론 그도 인간이므로 설원랑이 미실의 정부요 심복이란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에게 비밀을 말하는 실수를 범했지만….


하룻강아지처럼 대범한 그러면서도 영리한 덕만공주와 범이 무서워 오들오들 떨면서도 냉정하고 신중하게 처신하는 여우같은 천명공주, 이 두 사람의 환상적인 콤비야말로 미실을 격파할 절대적인 무기다. 아마 내가 작가가 아니라서 장담은 못하겠지만, 북두의 여덟 번째 별은 미실을 물리치고 난 다음 다시 하나로 합쳐질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금 빛나는 북두칠성으로 서라벌의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지 않을까, 이건 그저 내 상상이지만… 꼭 그렇게 될 걸로 생각한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