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1.28 대림차노조, 대량 정리해고에 맞선 맛있는 파업 by 파비 정부권 (9)
  2. 2009.08.13 선덕여왕, 김춘추는 왜 성골이 아니고 진골일까? by 파비 정부권 (6)
  3. 2009.08.10 80년광주로 돌아간 이시대에 "거꾸로 희망이다?" by 파비 정부권 (3)

제목이 좀 거시기 하군요. 맛있는 파업? 그런 것도 있었나? 이 글을 보시는 독자들 중에선 이렇게 화를 내시는 분도 있으시겠지요. "맛있는 파업이라니. 파업이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하는 것이다. 파업은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는 비장한 결의가 없이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뭐? 파업이 맛있다고?"

네, 맞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맛있는 파업도 있답니다. 아래 사진들을 감상하시고 난 다음 이야기를 계속 나누기로 하시죠.

대림자동차 노조지회장님이 숯불에 조개를 굽고 있습니다. 대림차 지회장님은 참 부지런 분이었습니다. 자기는 먹지도 않고 이렇게 지원 나온 외부 사업장 조합원들을 위해 고기를 굽고 술 부어 주고 청소하고 하느라 늘 바쁘셨습니다.


조개가 맛있게 보이시죠? 이 조개는 어느 조합원이 다이빙해서 잡아온 것이랍니다. 그러니 신선도야 두말 하면 잔소리겠죠?


큼지막한 키조개도 있고요, 전복도 구워 먹었답니다.


숯이 모자라면 이렇게 삽으로 보충합니다. 숯을 넣을 동안 들어낸 석쇠에 놓인 빠알~간 삼겹살이 살짝 보이시죠?  


이분들은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입니다. 지원 방문 왔다가 이렇게 맛있는 거 많이 얻어먹고 간다고 좋아했답니다. ㅋㅋ


자, 삼겹살과 조개만 구워 먹으면 배탈이 날 수 있습니다. 이번엔 싱싱한 생선회 맛을 볼 차례입니다. 회를 뜨시는 분은 대림차 노조지회 상집간부입니다. 아마도 정리해고 1순위가 아닐까 싶네요. 그러나 이분, 회 뜨는 솜씨를 보니 정리해고 되도 살 길은 있을 거 같습니다. 횟집 열면 되겠어요. 아니면 트럭 하나 사서 생선 실고 다니며 회만 쳐서 팔아도…


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요? 알겠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이분 회 치는 솜씨가 거의 프로급이었습니다. 그렇게 빠른 칼잡이를 저는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마산 어시장 생선회 골목의 아지매들도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답니다. 다들 아시죠? 회 맛은 칼잡이의 칼질 속도에 비례한다는 사실….  

아무튼 대림 노조에는 생선회 칼잡이들뿐 아니라 바다 물 속에 들어가 조개며 전복을 따거나 돔이나 노래미 같은 생선을 잡아오는 진짜 어부 뺨치는 어부들이 참 많았습니다.  


잘 먹고 난 다음날 아침은 컵라면으로 때운 우리에게 반가운 소식이 왔습니다. 물메기탕을 끓였으니 먹으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메기탕,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리니 시원한 맛이 한마디로 쥑인다~ 되겠습니다. 물메기탕을 먹기 전에 물메기 회무침을 만들어 먹었는데, 캬~ 그야말로 홍콩 가는 맛이었는데,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사진 찍어야겠다는 생각도 잊어버렸다니까요.   

다음날은 충남 대전에서 발레오공조 노동자들이 지원 방문을 왔습니다. 발레오는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를 먹튀한 것과 똑같은 짓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의 다국적 자본입니다. 발레오 노동자들은 전원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발레오 자본이 단물을 다 빨아먹고 난 다음 회사를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쌍차사태의 복사판이죠.

발레오 노동자들이 오자 이번엔 환영의 표시로 낙지와 꼴뚜기들이 숯불 위에 올랐습니다. 지글지글 하는 소리만 들어도 입안에 군침이 돌았습니다. 이런 거 못 먹어보셨죠? 이날은 특별히 50여 명의 발레오노동자들을 위해 대림자동차 노조지회가 나무를 이용해 술상까지 만들었습니다.
  

낙지가 열심히 익고 있습니다.


여기 낙지를 굽고 계신 분은 진보신당 경남도당 전 부위원장입니다.


자, 구경들 잘 하셨습니까? 어쨌든 <맛있는 파업>이 맞기는 맞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아무리 생사의 갈림길에 선 파업의 현장이라지만 잘 먹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당장 10년, 20년을 일해 온 일터에서 쫓겨나야 하는 속마음까지도 맛이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곳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저도 실은 그분들의 쓰라린 속마음까지야 어찌 알겠습니까. 직접 당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쌍용차 노조원들이 왜 그토록 처절하게 싸워야 했는지 그 속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야 어찌 그 마음을 다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회사는 어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고 하는군요. 우편물을 우선 각 가정으로 발송했다고 하던데 아직 결과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58명이라고 하지만, 293명의 정리해고 인원을 채우기 위한 작업은 계속 되겠지요. 다름 아닌 살인 작업 말입니다. 회사는 정리해고자 명단을 게시판에 공고하려고 했다가 철회했다고 합니다.

너무 비인간적이란 비난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저도 처음 그 소리를 듣고 누구 머리에서 나온 발상일까 매우 궁금했었답니다. 말하자면, 사형수 명단을 떡 하니 대로변에다 게시하는 것과 같은 짓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기를 바랐는데, 철회했다니 아쉽군요. 악랄한 대림자본의 비인간적 면모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말입니다.  

노조지회장님은 무엇 때문에 그걸 막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놔두시지…
Posted by 파비 정부권

천명공주가 죽었다. 아쉬운 대목이지만, 덕만공주가 왕이 되기 위해선 불가피한 조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천명공주가 일찍 요절했다는 기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어디에도 없다. 김춘추가 왕좌에 올랐을 때 그의 아비 용춘공을 갈문왕으로 예우해 올렸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천명공주가 덕만이 왕이 되기 전에 죽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오히려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을 때까지 살아있었다고도 한다.


성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드라마 선덕여왕은 미실궁주와 덕만공주의 대결구도를 만들기 위해 천명공주를 제물로 삼았다. 어디까지나 드라마로서의 자유를 최대한 누린 것이다. 모두들 드라마를 보면서 느끼고 있을 테지만, 사실 천명공주와 덕만공주가 일국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배후에는 미실이 있다. 만약 미실과 같은 걸출한 여걸이 없었다면(물론 악마지만, 드라마는 악마가 있어야 영웅이 나오는 법이다) 천명도 없었으며 덕만도 없었을 것이라는 뉘앙스가 이 드라마의 배경에 은밀히 깔려 있다.

원래 천명공주는 부군(태자의 존재를 해제조건으로 하는 왕위계승권자)의 자리에 올라 진평왕의 후계를 잇기로 되어있었다. 용춘을 사모하던 천명이 모후인 마야부인에게 "용숙과 혼인하고 싶다"고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용춘이 아닌 용수와 결혼하게 된다. 용숙이라 한 것은 숙부뻘(5촌 아저씨)인 용춘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하고 빗대어 부른 것일 게다. 그러나 마야부인은 용숙을 용수로 착각하고 진평왕과 의논하여 두 사람의 혼사를 정해버린 것이다.   

마음이 유약해 왕실의 법도를 거역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혼인을 하게 된 천명부군은 월성에서 용수전군과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용수전군은 본래 선제인 진지왕의 장남으로 태자였으나 진지왕이 폐위되는 바람에 전군으로 족강한 인물이다. 이종욱 교수의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에 의하면 용수가 성골이 아니라 진골인 것은 진지왕의 폐위로 인한 탓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종욱 교수는 성골에 대해 대체로 이렇게 해석한다. "신라는 골품제 사회다. 골품제는 골품과 두품으로 나뉘는데 두품은 다시 6두품으로 구분했다. 골품은 왕족으로 진골과 성골이 있는데, 성골이란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을 의미하며, 왕과 왕의 가족, 왕의 형제와 그 가족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왕이 바뀌면 성골집단은 새롭게 구성된다."

이런 해석에 의하면 용수는 자기의 사촌형제인 진평왕이 등극함으로써 성골의 범주에서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 것이다. 즉 진평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성골이었으나 진평왕이 왕이 되어 새롭게 성골귀족이 재편됨으로써 진골로 족강한 것이다.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인 승만공주가 성골이므로(진평왕의 형제의 가족이므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용수는 매우 용의주도하며 야심이 큰 인물이었다. 그는 천명과 혼인하기 전에는 폐주의 자식으로 최대한 몸을 낮추었다. 미실에게 다가가 아첨을 하며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미실은 천명의 배필로 용수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폐위시킨 왕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용수의 맹세에 마음이 움직인 미실이 용수와 천명의 국혼을 허락한다. 

천명공주를 부군의 자리에서 폐하고 덕만공주를 여왕의 재목으로 선택한 이유

천명과 혼인하여 부군의 남편 자리에 오른 용수는 이제껏 보여주던 태도를 180도 바꾸어 진평왕의 오른팔처럼 행동했다. 공공연히 미실궁주의 권위에 도전하기도 서슴지 않았다. 마치 천명이 왕위에 오르면 실제 왕은 자기라는 듯 오만하기 그지없다. 이에 미실은 생각을 바꾸어 마야부인을 황후에서 폐하고 새로운 황후를 들여 태자를 생산해야한다는 당론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는 결국 천명부군을 폐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덕만이 미실의 처소로 가 무릎을 꿇고 뜻을 거두어주길 간청한다. "미실궁주께서는 왕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궁주님으로 인해 여자도 부군이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천명공주를 부군의 자리에서 폐하려 하십니까?" 그런 덕만공주에게 미실이 묻는다.

"공주, 그대의 말처럼 나는 미실이란 옥토를 통해 여왕이란 꽃이 필 수 있는 기반을 닦았소. 그대가 제왕으로서 이 땅에 선다면 무엇을 위한 기반을 닦고 싶소?" 무슨 뜻인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던 덕만이 말한다. "덕만은 눈물이 흐르지 않는 나라를 위해 살아갈 것 같습니다.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욕망에서 불거져 나온 전쟁과 협상의 노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심히 이상적이구먼." 미실이 말하자 덕만은 다시 힘주어 말한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삼한의 통일… 제가 제왕이라면 그것을 이상으로 내세우고, 영원토록 추구할 것입니다."  그러자 미실이 덕만을 찬찬히 내려다보며 다시 말한다. "일전에 천명부군에게도 이와 같은 질문을 했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소." 그리고 이어 말한다. "내가 천명부군을 폐한 것은 덕만공주, 뒤늦게 그대를 발견했기 때문이오."

이 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짐작할 것이다. 천명공주는 부군의 자리를 스스로 내놓고 월성에서 낳은 춘추를 데리고 용수와 함께 월성을 빠져나간다. 월성은 왕과 왕의 가족만이 기거할 수 있는 곳이다. 공주가 성골이 아닌 진골과 성혼을 하게 되면 월성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명은 부군의 자리에 있었기에 용수와 혼인하고서도 월성에서 계속 살면서 김춘추를 낳았다. 

즉, 부군으로서 왕위를 계승할 위치에 있었으므로 일반 법도와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군의 지위를 잃었으니 월성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음은 자명하다. 야심만만한 용수전군이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용수전군이라 한들 어쩔 도리가 없다. 그는 부군의 남편이었기 때문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뿐 스스로 힘의 원천은 아니었던 것이다. 

선덕여왕 - 10점
신진혜 지음/창해

   


성골은 신라 왕궁 월성에 살아야 하며, 월성을 떠나면 성골의 지위도 잃게 된다

이상 미실이 신라의 여왕으로 덕만을 택하고 천명을 버린 이야기는 소설 속의 이야기다. 창해출판사에서 펴낸 소설《선덕여왕》은 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진혜라는 역사학도가 쓴 책이다. 그녀는 1985년 생으로 아직 4반세기도 살지 못한 어린 나이다. 이 소설의 텍스트도 물론 화랑세기지만, 소설적 구성을 위해 약간의 변형을 꾀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신진혜 작가가 의도한 소설적 해석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덕만공주가 천명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 배경과 과정을 빠른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필치로 사실감 있게 잘 그려놓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사실 미실이 삼한의 통일이란 원대한 이상을 품은 덕만을 선택했다고 하는 설정은 좀 억지가 있지만, 천명이 아니라 덕만이 왕이 되는 이유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천명공주와 그 가족들이 월성을 떠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천명공주의 신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서강대 이종욱 교수에 의하면, 월성은 성골만이 살 수 있는 곳이고 성골은 월성에 살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월성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은 성골의 지위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광법사의 어머니는 숙명부인이다. 그녀는 지소태후의 딸 숙명공주로 진흥왕의 왕후였으나 이화랑을 사모해 출궁하여 이화랑과 혼인함으로써 성골의 지위를 버렸다. 물론 진흥왕의 포기와 묵인 하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 이화랑의 자손들이 4대에 걸쳐 화랑의 풍월주를 세습하게 되었으며 화랑세기의 기자 김대문은 그 5대손이란 사실은 이미 전회의 포스팅에서 밝힌 바 있다.

어쨌든 천명공주는 부군의 지위에서 물러나 월성을 떠남으로써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다. 춘추 역시 월성에서 살 때는 성골이었으나 진골로 족강되었음은 당연하다. 이러한 성골에 관한 개념이 하나의 원칙이나 제도로 자리잡은 것은 법흥왕 때로 보인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함으로써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이 율령반포에서 중요한 두 가지가 골품제도와 화백회의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특히 왕족들의 신분과 처우에 관한 법이 정비되어있지 않아 늘 정국불안의 한 요인이었던 것을 해소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또한 성골의 범위를 축소하여 왕과 왕의 형제와 그 가족들로 한정했다는 것은 중앙집권제가 시도되었음도 의미한다. 

성골은 왕위계승권을 확정해서 분쟁을 없애기 위한 제도적 장치

율령이 반포되기 전에는 귀족회의인 화백회의 의장을 왕이 맡았으나 상대등을 따로 두어 화백회의 의장 역할을 하도록 한 것도 왕권 강화의 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즉 대등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만장일치제 회의를 하던 관행에서 왕은 빠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 일파가 진평왕과 권력게임을 하는 것도 그러고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법흥왕이 만들어 놓은 성골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귀족들의 불만,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 거기다 아직 확고하게 완성되지 못한 중앙집권도 분란의 씨앗이었다. 어린 나이에 등극한 진평왕을 대신해 태후와 미실궁주의 오랜 섭정도 왕권과 귀족간의 싸움을 부채질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물론 우리란 필자의 주관적 해석이지만―김춘추가 본래 성골이었으나 모후인 천명공주가 부군의 지위를 잃고 월성에서 쫓겨남으로써 함께 진골로 족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진흥왕의 유일한 적통으로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패망하여 신라에 귀순한 가야계인 김유신이 김춘추를 선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김유신이 문희를 태워 죽이겠다고 벌인 쇼를 오로지 김춘추의 인간성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독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김춘추 또한 자신의 운명적 신분에 힘을 실어줄 김유신의 무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 이로써 우리는―역시 필자의 주관적 해석인 우리다―성골이란 현재의 권력관계를 표상하는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성골은 고정불변의 신분이 아니며 성골이 진골로 족강할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로 진골이 성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이 됨으로써 성골의 시대가 끝나고 진골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었다. 

즉, 김춘추 이후로는 진골들이 왕위에 올랐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역시 주관적인 우리는―오늘 이 말이 난센스임을 알았을 것이다. 김춘추가 왕이 된 이후 신라 천 년을 통틀어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왕의 시대가 백년을 넘게 이어졌다. 형제계승을 기본으로 하던 왕위 세습은 장자계승의 원칙이 확립되어갔다. 

김춘추 이후에 진골들이 왕이 되었다는 말은 난센스

다시 말해서 성골의 범주가 더욱 엄격해졌다는 말이다. 성골이란 진골귀족들 중에서 왕위계승권자의 범위를 확정할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앞서 말했다. 굳이 억지로 성골과 진골을 구분하라고 한다면 성골은 왕족이고 진골은 귀족이다. 그러나 신라 하대로 가면서 왕권이 약화되고 골품제도는 혼란을 겪게 된다. 상대등 중에서 왕이 나온 경우도 많았다는 것은 무너진 왕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예다.  

아무튼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다. 김춘추는 성골로 태어났으나 진골로 족강되었다가 다시 왕이 되면서 성골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 김춘추의 후계자들은 보다 더 엄격해진 성골의 기준을 만들고 왕위를 세습했다. 그러니 김춘추 이전에는 성골들이 신라의 왕 노릇을 하다가 김춘추가 정권을 잡으면서 진골들이 왕이 되었다는 말은 난센스다. 

그러나 이런 결론도 뒤집어 말하자면, 성골이란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이며, 존재조차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성골이란 단어가 그리 흔하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성골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기술해놓은 기사도 없다. 화랑세기에서는 아예 성골-진골 대신에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이렇게 본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만들어낸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도 허구로부터 만들어낸 허구 같은 게 되고만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허구 중의 허구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드라마는 재미있으면 된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역사를 왜곡해선 안 된다는 불평도 있지만, 내가 볼 땐 그렇게 왜곡할 만큼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도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중요한 주제는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민심을 얻는 자가 진정한 성골이 아니겠는가. 민심, 그것이 현대적 의미에서 성골의 진정한 척도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선덕여왕, "그 이상을 위해 삼한통일의 기반을 닦겠다!"는 선덕여왕이야말로 진정한 성골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성골이었을까? 그들은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게 되는 나라'를 꿈꾸었을까? 이를 위해 남북통일의 기반을 닦는 것을 이상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영원히 추구한 정권이 있었을까? 물론 어떤 정권이든 다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걸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싶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 진정한 善德은 없다 

위의 마지막 질문은 내가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소설 선덕여왕의 저자인 신진혜 씨가 소설 속에서 암시해준 질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녀는 덕만공주를 통해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온통 눈물 천지다. 용산에선 삼성의 개발이익에 밀린 철거민들의 눈물이 도시를 적시고, 평택에선 기업 살리기란 명분으로 살 길을 잃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눈물이 공장을 적신다. 

세상에 사는 낙이 없다. 그러나 오늘 역사학도이며 선덕여왕(창해)의 작가 신진혜 씨의 글을 읽노라니 기특한 생각에 입가에 번지는 기쁜 미소를 지울 길이 없다. 내가 그녀를 기특하다고 하는 것은 그녀가 이제 갓 만 23세의 대학생이고 나와는 20년이나 차이나는 나이 때문이지만, 그녀가 특별히 욕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녀의 집필의도가 무엇이었든 그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소설 선덕여왕을 읽으며 내가 느낀 감상, 그것이면 족하다. 책을 읽고 가지는 감상은 작가가 아닌 독자의 영역 아니겠는가.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원래 쓰려고 했던 제목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시사IN에서 만들어낸 책, 거꾸로 희망이다>, 이렇게 제목을 잡으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보내준 이 책을 읽는 동안에 30년 전에나 일어났을 사태가 2009년 오늘에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물론 그 목격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했습니다. 현장에 있지 않아도 현장의 비참함이, 참혹함이, 전쟁 같은 공포가 먹구름처럼 제 가슴을 뒤덮었습니다.
 
거꾸로, 희망이다 - 10점
김수행 외 지음/시사IN북


80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아직은 방송사 언론들이 완전히 죽지 않아서 경찰의 폭력 장면을 여과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폭력이었습니다. 국가에 의해서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력, 이 폭력은 합법인지 불법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쌍용차 노조가 진압된 후(모두들 협상 타결로 대타협을 했다고 하지만 제 눈엔 진압입니다) 노조 간부들은 수십 명이 구속 됐습니다. 그러나 무기를 들고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포착된 경찰 중 구속된 자가 있다는 기사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엊그제 어떤 진보 인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민주주의를 역진 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파쇼라고 부르기엔 좀 그렇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그는 제가 속한 진보신당의 지역당 위원장입니다. 그에게 이런 말을 가끔 들은 바가 있긴 했었지만, (평소 그를 존경스럽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이날은 도저히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파쇼가 아니면 도대체 어떤 때를 파쇼라고 불러야 할까? 그렇게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80년 광주의 봄처럼 꼭 대검과 총으로 시민을 살육해야만 파쇼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쌍용차 공장 지붕에서 벌어진 사태는 경찰들이 대검과 총만 안 찼다 뿐이지 80년 광주의 상황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광주에서 무자비한 살육이 전개되고 있을 때 저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우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학교에 잘 다녔고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그렇지 않았던 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평택에서는 전쟁의 광풍이 휩쓸고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온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정권은 평택의 쌍용차 노조는 폭도일 뿐이며, 이 폭도들을 진압한 것은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 당연한 것이었고, 이제 대한민국은 평온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시나리오는 80년 광주항쟁 때나 2009년 평택 쌍용차사태나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진@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세서 세상보기


대한민국은 이명박 씨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후 절망적인 상태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명박 씨가 스스로 자랑했던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747? 그런 것이 있었습니까? 그런 따위는 미국의 보잉사 공장에서나 찾을 일입니다. 이명박 씨가 한 일은 경제를 살린 것이 아니라 경제를 시궁창에 쳐 박은 일입니다. 시사IN이 펴낸 책 《거꾸로 희망이다》에서 김수행 교수는 한국 경제의 현실을 공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공황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자본주의에 공황은 흑사병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케인스가 등장하기 전에 이 공황은 10년을 주기로 발생했습니다. 양차 세계대전도 실은 이 공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니, 직접적인 계기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진 제국들은 자본주의를 수정해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수정자본주의(혹은 수정사회주의) 정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10 년을 주기로 일어나던 공황을 이연시키거나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공황에 한국 경제가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만 공황에 빠진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도 공황에 빠진 것입니다. 《거꾸로 희망이다》는 공황에 빠진 한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책입니다. 경제가 공황에 빠진 것은 국민이 합심해서 열심히 일하면 헤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황에 빠진 민주주의는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국민이 합심하고 싶어도 합심하지 못하도록 정권이 방해하는 것이 예사입니다.

쌍용차사태에서 우리는 그걸 보았습니다. 대화와 타협으로 상생의 길을 찾도록 이끌어야 할 정부가 앞장서서 대화와 타협에 폭력을 가합니다. 정부와 자본이 책임져야 할 경제공황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면서 "너희들이 죽지 않으면 회사를 살릴 수 없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참으로 비통함을 느낍니다. 많은 국민들 중에 이런 이데올로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도 있겠지만, 도대체 그 죽어야 할 사람들에게 살아나는 경제가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이토록 절망적인 민주주의가 공황에 처한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우리나라의 대표적 지성인 여섯 사람을 또 다른 여섯 사람의 지성인들이 인터뷰하고, 강연하고, 질문하는 형식으로 만들어 낸 책이 바로 《거꾸로 희망이다》입니다. 제일 먼저 이문재 시인이 녹색평론 대표 김종철 교수에게 '생태적 상상력'을 묻습니다. 그 다음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에게 '위기의 심리'에 대해 질문합니다. 

정치경제학 전문가인 김수행 교수와 정태인 교수가 '자본의 미래'를, 우석훈 교수가 조한혜정 교수에게 '문화적 상상력'에 대해 묻습니다. 시민운동가 하승창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함께 '대안경제'에 대한 해법을 상상해봅니다. 정해구 교수는 서중석 교수와 함께 '역사의 위기'에 대하여 토론을 벌이고 "역사는 후퇴하는 게 아니라 에돌아갈 뿐"이라는 결론을 끌어냅니다. 책은 대화체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했던 강연회를 책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런 만큼 딱딱하지 않습니다. 편안합니다. 연사로 등장하는 열두 사람의 주장도 간결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거꾸로 희망이다!"에 대한 희망이 진실로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 글의 초두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책을 읽는 중에 쌍용차 무력 진압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에 거의 백기투항하다시피 한 노조와 협상을 벌여 대타협이란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분노와 절망으로 숨조차 쉬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인 내게 이 책의 제목은 정말 사치스러웠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거꾸로 희망'이란 말이야!" 정말이지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숨을 가다듬고 책을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역시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책의 연사들 덕분입니다. 게다가 이 책이 진실로 "거꾸로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살인진압규탄 농성중인 강기갑 의원에게 떠나기를 요구하는 사진속 여인들의 뒷모습에서 측은함보다는 비정함을 느낀다.


그러나 사실은 아직도 무엇이 희망이라는 것인지에 대해선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렇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희망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 글 앞에 포스팅했던 <쌍용차아내모임, "제발 그들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세요">에서 보았듯이 산 자의 아내들이 쌍용차 정문에서 돗자리를 깔고 살인진압을 규탄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강기갑 의원을 찾아가 떠나기를 강요하는 것이 이 시대의 현실입니다. 

나는 그녀들, 산 자의 아내들의 비정한 모습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 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거꾸로 희망"이 있다는 열두 연사들의 열띤 웅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심쩍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희망이 있는 것일까? 책 속에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청중의 한 분이 김종철 교수에게 질문합니다. "선생님, 혹시 최근 신문과 방송에서 가장 히트치고 있는 광고가 뭔지 아십니까?" "아니요 잘 모릅니다." "죽었을 때 매장해주는 거. 상호부조회사." "네, 주로 케이블TV에서…."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마을 공동체가 모두 모여 장례를 치르고 매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매장을 책임져주는 공동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두 개인의 일입니다. 이제 사람은 돈이 없으면 자유롭게 죽을 자유마저도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정말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책의 연사들은 그렇다고 답합니다. "거꾸로 희망이다!"라고 말합니다. 아직 나는 그 말이 실감나게 가슴에 와 닿지는 않지만,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볼 작정입니다. 차분하게 숨을 가다듬고… "정말 거꾸로 희망일까!", 해답을 찾아보기 위하여. 여러분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파비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