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11.05 람사르 폐막실날 우포늪 가봤더니 by 파비 정부권 (9)
  2. 2008.10.16 습지와 인간이 만들어온 역사와 람사르 by 파비 정부권 (5)
  3. 2008.09.11 사진 찍다가 도로 찍히다! by 파비 정부권
어제 람사르 총회가 창원선언문 채택을 마지막으로 8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연안매립을 강행하면서 람사르 총회장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연방 외치는 정치 쇼에 불쾌해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엉뚱하게 청계천을 습지보전의 성공적 사례로 홍보하는 대통령이나 따오기 외교를 펼치는 김태호 경남지사가 광대처럼 보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람사르 총회가 습지보전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모두 한결 같을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을 습지 보전 모범국가로 만들기로 약속했고 이만의 환경부 장관도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인식하고 개발사업을 할 때 습지 보전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워낙 거짓말을 많이 하는 정부라 이분들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분들이 별로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벌 전경. 그러나 백과사전에는 우포늪의 전경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사진=위키미디어백과


포스트 람사르, 언론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람사르 총회에서 「동아시아 람사르지역센터」를 한국에 유치하기로 사실상 확정하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포스트 람사르의 사실상 교두보가 마련된 셈입니다. 이제 이러한 작은 성과들이 정치 광대들의 쇼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환경단체들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이번 람사르 총회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준 경남도민일보와 같은 언론사의 감시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수년 전부터 습지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국의 습지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 현재 경남도민일보 언론노조 지부장으로 있는 김훤주 기자입니다. 그는 수년 동안 습지를 훑고 취재하고 공부한 결과를 한권의 책으로 냈습니다. 바로 『습지와 인간』입니다. 그가 땀으로 쓴 이 책에는 습지와 인간이 함께 만들어 온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람사르 총회가 폐막식을 하던 날, ‘건강한 습지와 건강한 인간’의 교섭에 관심이 많은 부산과 경남의 몇몇 블로거들이『습지와 인간』의 저자와 함께 대한민국 최대의 내륙 습지 소벌(우포늪)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부산에서 오신 커서님의 차를 타고 아침공기를 가르며 소벌을 향해 달려가는 마음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하늘처럼 맑고 뿌듯했습니다. 저자는 제일 먼저 우포늪 보호구역이 시작되는 창산다리로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국민협조사항을 자세히 읽어보니 우포늪, 목포늪, 사지포늪은 모두 한자이름을 하사 받았는데 유일하게
            
쪽지벌만 이름을 받지 못했다. 희한한 일이다. 창산다리의 위쪽은 우포늪 생태보호구역이 아니다.
                              
창산다리 밑 습지를 관찰하고 있는 김훤주 기자와 커서, 실비단안개님. 
                               한쪽에선 강태공이 여유롭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습지와 인간』의 저자와 함께 둘러본 동양 최고의 습지, 소벌


토평천을 가로지르는 창산다리의 아래쪽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다릿발 위쪽은 보호구역 밖이므로 아무런 제재도 없다고 했습니다. 마침 우리가 갔을 때 다릿발 바로 위 습지에는 승합차를 세워놓고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이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모습이었지만, 행정편의주의의 극단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그리 유쾌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릿발 아래로 펼쳐진 토평천이 만든 습지의 장관은 탄성과 함께 금새 우리의 마음을 돌려놓았습니다. 

가을에 물든 소벌은 두어 달 전에 와봤던 소벌이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올해 본 소벌은 내년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매년 매 계절 소벌의 모습은 바뀌는 것입니다. 은은하게 물든 소벌의 가을은 마치 스펀지처럼 제 마음에 찌든 도시의 소음과 매연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자도 책에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이곳에 두 시간만 가만히 앉아있으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토평천 습지 갈대밭 사이를 걷는 실비단안개님


누렇게 물든 갈대와 노릇노릇하기도 하기도 하고 불굿불긋하기도 한 습지의 생물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에 우리는 흠뻑 빠졌습니다. 그때 여러 명의 아저씨와 아주머니로 구성된 관광객들이 우리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분들은 승합차를 타고 오셨는데 전망대를 찾아간다고 했습니다. 전망대는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친절한 성품의 저자가 세세하게 길을 이러주었지만, 그들은 질러서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사실에 짜증만 내고 있었습니다.

습지는 아는 만큼만 보여준다.

그들의 눈에는 바로 앞에 펼쳐진 천상과도 같은 그림이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천상의 그림 속에서 왜가리며 쇠오리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았나 봅니다. 그들은 어떡해서든지 공신력 있는 관청이 만들어놓은 전망대에 가서 우포늪의 장관을 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짜증을 내며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웃음이 나왔지만 속으로만 흘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분들은 고맙다는 말도 잊은 채 먼지를 일으키며 떠났지만, 무사히 전망대를 찾아 ‘공식적인’ 장관을 감상하며 즐거워했기를 빌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탐방관이나 전망대를 만들어놓고 자신들의 업적을 자랑하듯 자기들이 아는 우포늪을 열심히 홍보하는 정치관료들이 고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벌은 이렇게 평화로운 자태를 유지하며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매번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수 있는 게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소벌 너머 보이는 화왕산 정상 오목하게 패인 넓은 평원에도 산지늪지가 있다. 촬영장소는 나무갯벌(목포)


소벌은 너무나 넓었습니다. 하루에 다 둘러보기에는 무리였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근처에 1박 하면서 차분히 둘러보아야 소벌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룻밤 이곳에서 묵을 수 있다면 깜깜한 소벌의 물위에 떠오른 달과 별을 볼 수 있는 행운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새벽을 타고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채 반짝이기 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없는 행복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1970년대에 습지를 메워 농토를 개간한 기념비를 둘러보았습니다. 1986년에 세워진 이 향군건설기념비에는 거대한 습지를 둑을 쌓고 메워 땅으로 만든 역사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재향군인회였던 모양입니다. 당시는 박정희 유신정권이 있었던 시대이므로 매우 힘 있는 조직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일대는 원래 ‘사물포’라는 습지였는데 1963년에 시작해서 1971년에 공사가 완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인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사물포 아래 ‘세거리벌’이라는 습지를 추가로 메우는 공사가 1979년에 완성됨으로써 이 일대 거대한 습지는 마침내 육지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기념비가 있는 곳에서 모퉁이를 한 번 돌아가자 바로 창녕 읍내가 나왔으니 오래 전에는 이 일대의 습지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으리라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경남도는 논이 된 과거의 습지를 다시 되살려 천변저류지를 조성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습니다.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정일 처 성혜림 생가. 사진출처=까페 '들꽃풍경' http://cafe.daum.net/iyippo


소벌 입구에 우뚝 솟은 거대한 김정일 처의 생가 

고속도로를 찾아 나오는 길에 소벌을 들어서던 입구에서 언뜻 보았던 거대한 고가를 다시 만났습니다. 저자는 저곳이 창녕 성씨의 고택으로 성혜림의 조상들이 살던 집이라고 했습니다. 성혜림도 저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했습니다. 99칸짜리 대궐 같은 집이라고 했는데, 일견해 보기에도 대원군이 살던 운현궁보다 훨씬 거대해 보였습니다.

가만, 성혜림?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습니다. 바로 김정일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아내이며 가끔 TV에 나타나 기행으로 물의를 일으키던 김정남의 어머니였습니다. 1억 5천만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창녕에 또 다른 현대사의 비밀이 숨어 있었습니다. 창녕, 정말 신비로운 곳입니다. 우리는 우스갯말로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김일성이 일가도 부르주아였네?” 

이미 해는 떨어지고 사방은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지였던 경남도민일보 앞으로 돌아온 우리는 금새 헤어지지 못하고 인근의 감자탕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모두들 멀리 가야 한다는 핑계로 술을 기피하는 통에 저 혼자 내어온 술을 다 마셨습니다. 그리고 채 식지 않은 감동에 겨워 일행들에게 쑥스러움도 잊어버리고 말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한지가 채 두 달밖에 안 된 올챙이라 포스팅 주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오늘 해결이 됐네요. 앞으로 습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써 볼 생각이에요. 김훤주 기자가 쓴 『습지와 인간』을 따라 답사하듯 하면 그리 힘든 일도 아닐 거여요. 환경운동이 뭐 별건가요?”

그런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민입니다. 저 혼자 만족하자고 취재하고 포스팅하는 게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터인데, 그런 재주가 제겐 턱없이 부족합니다. 은밀하고 신비로운 자태를 내어준 습지에게도 체면이 아닙니다. 그래도 앞으로 시간 내어 해보렵니다. 누라 뭐라고 하든지 보람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아직은 식지 않은 감동이 제 마음 속에서 속삭이는 한 말입니다.  

2008. 11. 5.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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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우리 친구가 책을 한 권 냈습니다. 제목이 <습지와 인간>입니다. 책 제목을 왜 <습지와 인간>이라고 했을까 처음엔 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도시와 인간’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겠는데 습지와 인간은 잘 연결이 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기자가 땀으로 쓴 습지와 인간


그러나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대부터 인간은 습지와 매우 유용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습지는 온갖 생물이 다양하게 분포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신석기시대의 인간들은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고 고기잡이를 하고 채집을 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위험과 부딪히지 않는 안전함”을 유지하면서도 “손쉽게 옮겨” 다니면서 “동시다발적인”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습지였던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저도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곤 동굴에서 살던 인간이 차츰 구릉에 정착하며 살았다는 내용뿐입니다. 습지에 관한 어떤 기억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역사교육을 받아왔는가 하는 걸 새삼 알게 됐습니다. 또 얼마나 편의적으로 역사가 기술되었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고고학이 눈에 잘 띠는 마른 땅만 헤집고 다녔으니 이런 결과가 나왔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하도록 이 책은 잘 안내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또 이 책에서 민족주의가 얼마나 역사를 오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의 역사일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24쪽은 ‘신석기시대에 농경생활이 시작되었다.’고 서술했습니다. 신석기시대가 지금에서 1만 년 전부터 3000년 전 정도까지로 아주 넓은 시대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쌀이나 조, 기장 같은 농경 자취가 확인된 곳은 같은 신석기시대라 해도 5500년 전 이쪽저쪽밖에 안 됩니다.”

저자는 “전체 신석기시대 6000년 가운데서 초·중기 4000년은 어름하게 지우고, 후기 2000년 남짓한 시절이 신석기시대 6000년 전체를 대표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교과서 지은이의 무지 탓이 아니라 어떤 비틀림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비틀림에는 쓸데없는 민족주의가 작용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세계사는 신석기시대가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농경과 목축으로 식량을 생산하는 경제활동으로 생활양식에 일대 전기가 마련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신석기 혁명은 중동과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시작하여 세계 각 지역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사정이 “우리도 세계 흐름에 처질 수 없다”는 민족주의를 자극해서 실사구시의 역사의식을 흐리게 했다는 짐작이 그저 짐작일 뿐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최근 습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오늘 신문에 보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창녕 우포늪을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는 국감행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국감 ‘행사’라고 굳이 표현하는 것은 이 자리가 국정감사보다는 ‘람사르 총회’의 성공을 기원하는 성격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김형오 국회의장도 “이번 국감을 통해 람사르 총회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우포늪 자연생태계를 보전해야 한다는 국민적 관심을 이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창녕 우포늪 인근 유어면 등 일대는 늘 물에 잠기는 습지대였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 때 낙동강 변을 따라 높은 제방을 쌓아 습지대를 농경지로 만드는 대역사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 일대는 지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포늪의 크기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창녕군은 국감에서 둑을 막아 논을 만든 지역을 다시 습지로 조성하는 ‘천변 저류지 조성’ 사업에 대해 설명하며 국회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실로 격세지감입니다. 

                
                       10월 15일 오전 창녕 우포늪을 방문한 김형오 국회의장, 이윤성 국회부의장, 추미애 환경노동
                       위원회 위원장 등 국회의원들이 대대 제방 위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과 설명=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제가 우포늪을 처음 알게 된 것은 92~3년 무렵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창녕 사람이 아니라면 우포늪을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창녕 사람들도 우포늪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이 이 무렵부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창녕 사람들에게도 우포늪이란 존재는 92년 이전에는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에겐 ‘우포늪’이 아니라 대대로 ‘소벌’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처음 우포늪을 접하게 된 것은 아마 지역 환경운동단체를 통해서였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소벌’이 아니라 ‘우포늪’이란 이름으로 만났습니다. 그러면 왜 환경운동단체들은 소벌이란 원래의 이름을 지우고 우포늪이란 이름을 쓴 것일까요?

저자는 이 책에서 “환경만 보일 뿐 똑같이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 아래 숨통이 끊어져가는 우리 토종말”을 보지 못하는 환경단체들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습지의 중요성을 알리고 오늘날의 우포늪을 만들어온 대단한 공적이 있는 것과 더불어 과오 또한 만만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2002년 낙동강 언저리 한 횟집에서 문인들이 모여 오간 얘기를 소개하며 다시 한 번 뼈저린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글쎄, 옛날부터 '소벌'이라 하기는 했지. 그렇지만 소벌이라 하면 왠지 투박하고 천하게 들리잖아.”

이렇게 말한 이는 다름 아닌 저자와 고향이 같은 창녕 출신 문인이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결국은 치명상이 되고야 말겠지만, 머리를 쪼개어 두뇌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나 조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무런 살의도 품지 않고, 느끼지 않고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고 합니다.

“소벌을 삼켜버린 우포는 좀처럼 소벌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 인지도를 바탕으로 스스로 세력화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우포가 이제 이름 가치를 인정해 자기네 상표로 끌어다 쓰는 일이 흔해졌다고 말합니다. 사실은 있지도 않았던 우포라는 말이 이제는 농협의 이름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창녕 대합농협과 성산농협을 통합해서 이름을 아예 ‘우포농협’이라 지은 것입니다.

<습지와 인간>은 경남 일대의 내륙습지와 연안습지, 산지습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주남저수지를 인공저수지로 잘못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인공습지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습지와 인간이 만들어온 역사와 문화를 차분한 어조로 풀어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람사르 협약’에 대해서도 다루며 마지막으로 ‘얘깃거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습지’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친절하고 수려한 문체가 읽는 이를 편안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저는 처음 몇 장을 읽어본 순간부터 가슴을 타고 흘러오는 감동에 흠뻑 빠졌습니다. 유흥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래 최고의 걸작이 될 것이라는 직감을 했습니다. 아니 친절하고 부드러운 문체로 보자면 그 보다 훨씬 나은 작품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직 책을 읽은 감동이 식기 전에 독후감도 아니고 소개서도 아닌 소감을 이리도 바쁘게 적어 올리는 것입니다.

경상남도가 제작한 람사르 총회 포스터


곧 람사르 총회가 경남에서 열립니다. 저는 람사를 총회를 개최하는 경남을 보면서 이율배반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경남은 한 편에선 람사르 총회를 맞아 습지 보전을 외치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선 연안습지를 메우는 매립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포늪을 선전하면서 우포늪을 타고 흘러가는 낙동강을 파헤쳐 대운하를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경상남도와 도지사를 보노라면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따로 없습니다. 어떻게 한 입으로 서로 다른 얘기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떳떳하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원래 정치를 하려면 심장과 얼굴을 철제로 만들어야 한다더니 그 말이 진실인가 봅니다. 그래서 습지와 인간을 다룬 이 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이 책을 “아내이면서 둘도 없는 동지(同志) 이애민에게 바칩니다.”라고 썼습니다. 그의 아내는 1년 반 전에 쓰러져 전신이 마비된 채로 지금껏 투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엄마 역할까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문사 기자라는 직업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그런 와중에 낸 책이라 이 책이 더 없이 갸륵하고 소중합니다.

그는 또 책머리에서 “이애민이 제 곁에 있지 않았다면 이 책 또한 생겨나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모든 공을 자기 아내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그이의 친절하고 아름다운 ‘문체’ 만큼이나 역시 친절하고 아름다운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의 아내가 빨리 건강한 모습으로 그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2008. 10. 16. 파비  

ps; 책 값은 15,000원이지만,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구매하면 10% 할인이 됩니다. 

     저자의 블로그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http://2kim.idomin.com/
 에 가시면 <습지와 인간> 광고 배너
     가 달려 있습니다. 거기를 누르셔서 구입하시면 하루만에 배달이 됩니다. 물론 서점에 가셔서 사실 수도 있지만,  인터
     이 보다 편리하고 저자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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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8월 30일, 경남도민일보에서 주관한 <경남블로거 컨퍼런스> 마지막 행사인 우포늪 탐방 때 모습입니다. 사실은 진짜 이름은 '소벌'이고 ‘우포늪’이란 이름은 람사르가 중요해지기 시작하던 93년 무렵부터 임의로 지어낸 이름이라는군요. 아마도 한자로 이름을 지어 불러야만 직성이 풀리는 많이 배우시고 매우 높으신 누군가가 지어냈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가짜가 진짜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 꼴이지요. 역사에서 그런 꼴을 많이 봐왔던 터라 뭐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경남도민일보의 김훤주 기자가 습지에 관한 오랜 연구와 취재의 결과물을 곧 <습지와 인간>이란 제목으로 책을 낸다고 하네요. 출판사는 <산지니 출판사>랍니다. 저도 한 번 사서 읽어봐야겠습니다.
김기자는 "습지와 사람(www.sobulman.tistory.com)"이란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도 오늘 알았습니다. 올챙이도 열심히 꼬리를 흔들며 다니다 보니 안 가르쳐줘도 많을 걸 보고 알게 되는군요.

사실 우포늪은, 아니 소벌은 자주 아이들과 마누라와 함께 둘러보았지만, 이렇게 늦여름에 와보기는 처음입니다. 주로 겨울에 철새 구경하러 왔었지요. 여름에 땀 뻘뻘 흘리면서 습지 구경하겠다고 나설 만큼 제가 그렇게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라서 말이지요.(이날 이후로 정말 자연을 사랑해야겠다는 각오가 들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런데 여름에 와서 보니 실로 장관이군요. 물론 제가 김훤주 기자가 그동안 경남도민일보에 게재해왔던 습지에 관한 기사라든가 이인식 선생님 같은 습지환경운동가들의 노고를 통해 약간의 귀동냥이라도 한 것이 없었다면 그냥 우중충한 경치만 감상했을 뿐 별 감동이야 얻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김훤주 기자 말마따나 "습지는 아는 만큼만 보여준다!"는 말이 참말인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만큼 보고 왔다는 증거로 사진 한 장을 맨 아래쪽에 소개하겠습니다. 물론 사진은 제가 찍은 게 아닙니다. 김주완 기자나 김훤주 기자가 찍은 사진을 도용해서 그냥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위 두 번째 사진에서 제가 들고 있는 사진기를 눈여겨 보셨다면 제가 결코 아래와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없으리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눈치 채셨을 겁니다. 두 분은 저와는 좀 아는 처지고 또 제가 하는 짓을 충분히 이해하고 용서해 주실 분들이라 여겨지므로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가시연꽃이라고 하는군요.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아! 그리고, 제 왼쪽에서 니콘 카메라를 들고 계신 분은 김용택 선생님입니다. 전교조 창설 때부터 고생하시는 모습을 먼발치에서나마 존경하며 뵈었던 선생님인데 지금은 은퇴하셨습니다. 이렇게 나이 드셨어도 사진기에 자연도 담고 참교육운동에 늘 앞장서시고 게다가 블로그도 열심히 하시니 보기에 참 좋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얗게 쇤 머리가 참 멋있지 않습니까? 사진은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님이 찍으신 건데 우리가 사진 찍는 걸 또 언제 찍으셨는지, 참 기자란 역시...

사진 찍다가 그만 도로 사진 찍히고 말았습니다.

2008. 9. 6 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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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신연꽃은 고사하고 가시연도 저는 처음 봤습니다. 렌즈 성능만 좋았으면 더 좋은
                         사진 나왔을 텐데, 다음부터 렌즈 좋은 거 좀 갖고 다니세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