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담'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9.12.24 선덕여왕을 잃어버린 『선덕여왕』 by 파비 정부권 (25)
  2. 2009.12.23 ‘선덕여왕’, 왕위후계자 춘추가 사라진 이유 by 파비 정부권 (54)
  3. 2009.12.07 선덕여왕, 비담이 새 깃털로 만든 부채를 든 이유 by 파비 정부권 (9)
  4. 2009.12.07 '선덕여왕' 비담과 설원공, 의문의 관계 by 파비 정부권 (22)
  5. 2009.11.22 선덕여왕, 비담에게 남긴 미실의 유산 by 파비 정부권 (3)
  6. 2009.10.06 '선덕여왕'소외받는 비담의 안타까운 눈초리 by 파비 정부권 (1)
  7. 2009.09.29 '선덕여왕' 문노가 뿌린 불행의 씨앗 by 파비 정부권 (25)
  8. 2009.09.23 '선덕여왕' 냉혹한 야심가 비담을 위한 변명 by 파비 정부권 (23)
  9. 2009.09.13 선덕여왕과 천추태후로 살펴보는 근친혼 by 파비 정부권 (54)
  10. 2009.09.02 문노가 받은 선덕여왕의 비밀은 무엇일까? by 파비 정부권 (7)
  11. 2009.08.25 미실을 속이려고 유신과 비담마저 속이는 덕만공주 by 파비 정부권 (7)
  12. 2009.08.05 선덕여왕, 비담의 반란 벌써 시작됐다? by 파비 정부권 (29)

『선덕여왕』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당연히 선덕여왕이지!”라고 말해야 옳겠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말하긴 어려울 듯하다. “그럼 대체 『선덕여왕』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이야?” 하고 다시 물어본다면, 아마도 비록 내키진 않을지라도 “미실!”이라고 말하거나 또는 “미실과 비담 모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사실이 그렇다. 사실 나는 선덕여왕 역을 맡은 이요원의 팬이라고 할 수도 있다. 『패션70s』에서 처음 만났던 그녀는 참 매력적이었다. 시골소녀의 풋풋함과 당찬 도시여성으로 성장해가는 전사 같은 모습이 어우러진 이요원을 『화려한 휴가』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그 매력은 여전했다. 물론 선덕여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겐 상경한 시골처녀의 당돌함이 있었고, 그것은 세상을 마주하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어린 덕만 남지현에 이어 등장한 이요원에게도 그것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패션70s』에서의 이요원도 서울에서 멀리 남도 끝자락의 어느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 유배도 덕만처럼 음모에 의한 것이었다. 머나먼 이국의 사막 타클라마칸에서 자란 덕만처럼 『패션70s』의 이요원도 활기찬 사내아이 같았다.

제도에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힘, 나는 그것이 덕만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덕만이 처음 서라벌에 들어와 미실과 마주했을 때 거둔 덕만의 승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순수한 영혼의 힘. 아마도 오래 전 기억이지만-벌써 7개월이란 세월이 흘렀으니-‘하룻강아지’ 덕만과 여우같은 천명의 합작이 미실에게 거둔 첫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포스팅한바가 있다.


나는 그래서 덕만이 머나먼 이국 사막에 버려진 것이-나중에 그것은 덕만의 유모 소화가 문노를 피해 덕만을 데리고 도망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어쩌면 예언의 이끌림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라벌에 있었다면 천명처럼 덕만도 미실을 무서워하며 오금을 펴지 못했을지 모른다. 사실 이런 설정은 여러 고전에서도 발견되는데, 반대의 경우지만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도 그렇다.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예언자의 불길한 예언에 따라 아들을 숲에 버린다.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던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파리스는 목동이 되고 유명한 ‘황금사과의 재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예언의 이끌림에 따라 트로이로 돌아와 왕자의 지위를 되찾는다. 그러나 그는 혼자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의 10만 대군과 맹장 아킬레우스를 끌고 돌아온 것이다.


이런 종류의 설정은 자주 보는 것이지만, 늘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힘이 있다. 덕만도 국조의 예언에 따라 버려졌다. 어출쌍생 성골남진. 결국 이 예언은 이루어진 셈이다. 덕만과 승만을 끝으로 성골은 멸절했으니까.―대체 성골과 진골이 뭐냐는 따짐은 여기선 생략하기로 한다. 성골남진이 춘추가 진골로서 왕이 된 이유라는 사기의 기록을 믿는다는 전제하에―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예언은 이보다 먼저 진흥왕이 문노에게 남긴 예언 즉,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물리칠 자가 오리라!”는 예언을 이루기 위한 보조적인 예언에 불과했다. 덕만을 멀리 사막으로 보내 미실을 물리칠 힘을 키워오도록 해야 하는데 별다른 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불길한 예언’이다. 역사기록을 예언으로 바꾸는 기지가 참으로 놀랍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드라마의 제작 의도는 틀림없이 덕만이 미실이 대표하는 세력 즉, 구세력을 타파하고 신진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보다 강해진 신라를 만들어 삼한통일의 대업을 준비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실을 악으로, 덕만을 선으로 규정해 대립구도를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초기의 시도는 매우 옳았고 성공했다. 그러나 갈수록 미실의 악역이 빛나는 게 문제였다.

매력적인 악의 화신 미실. 시청자들로부터 쏟아지는 미실에 대한 찬사에 제작진들도 넋을 잃은 것일까. 어느 날부터 갑자기 미실이 변하기 시작했다. 미실은 원래 인정사정없는 권력의 화신이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기 부하도 가차 없이 목을 벤다. 실제로 덕만을 안고 도망치는 소화를 놓친 근위병사를 직접 칼을 들어 베지 않았던가. 게다가 동생 미생도 죽이려 했고, 심복 상천관은 끝내 죽였다.

정치적으로는 대귀족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고 중소귀족들과 평민들의 세금을 낮추어주려는 덕만의 정책에 맞서 대토지소유귀족들의 권익을 옹호한다. 뿐 아니라 매점매석으로 자영농을 소작농으로 전락시키고, 소작농에겐 고리대를 놓아 이들을 노예로 만들어 나누어가진다. 전형적인 독재자다. 독재자들이란 늘 그렇듯이 서민들을 핍박하고 대신 기득권 세력을 만들어 그들을 지지기반으로 삼는다.


이런 미실이 극 후반부로 갈수록 묘하게 뒤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원래 그렇게 기획됐던 것인지, 고현정의 열연으로 미실의 인기가 높아진 탓에 변형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볼 때 이것은 부조리였다. 미실을 이기고 새로운 신라를 만들어 삼한통일의 기초를 닦을 덕만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매혹적인 독재자미실이 들어선 것이다.

나중에 미실은 반란까지 일으켰으나 많은 네티즌들은 미실의 반란이 실패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미실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었겠지만, 그게 그거 아닌가. 미실이 죽고 난 뒤에는 비담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비담은 미실의 아들이었던 고로 마치 비담이 난을 일으켜 왕권을 잡으려고 하는 것은 미실의 유지인 것처럼 비쳐졌다.

진흥왕이 자신을 척살하라고 설원공에게 내린 칙서가 비담의 손에 들어갔을 때, 미실은 “제 주인을 찾아갔구나!”라고 말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비담이 사량부령이 되어 새의 깃털로 만든 부채를 들고 나타나자 그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비담은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마지막 12회 분량에서 보여준 제작진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선덕여왕』의 마지막은 비담과 선덕여왕의 사랑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 사랑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세력-염종을 비롯한 전통 귀족세력-의 음모에 의해 비극으로 끝난다. 마지막 비담의 회상에서 미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 “여리디 여린 사람의 마음으로 푸른 꿈을 꾸는구나!” 이 말은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한편 자신이 못다 이룬 대업을 아들이 이루길 바라면서 또 한편 그것이 실패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런 모순이... 그러나 어찌 되었든 『선덕여왕』 후반부의 주인공도 선덕여왕이 아니라 비담이었다. 비담은 미실과 마찬가지로 악한 성정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미실이 그렇듯 비담도 사람을 죽이는데 일말의 양심도 없는 사람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닭고기를 못 먹게 만들었다고 칼을 휘두르는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덕만을 위기에서 구한 첫 번째 공이었지만.

그런 비담도 미실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부터 순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악의 화신이 졸지에 순정만화의 주인공으로 둔갑한 것이다. 애초에 비담이 덕만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문노가 자신에게 넘겨주려 한 신라를 가지기 위함이었다. 너무 오래돼서 모두들 잊어버린 것일까. 그러나 어떻든 비담은 최후마저도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멋있게 죽었다.

“덕만 앞 70보” “덕만 앞 30보” “덕만 앞 10보” 할 때는 마치 이연걸이 주연한 중국영화 『영웅』의 ‘십보필살검법’을 패러디한 것 같아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덕만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는 비담의 모습은 실로 눈물겨웠다. 마지막회는 그야말로 어느 블로거의 표현처럼 비담의, 비담에 의한, 비담을 위한 드라마였다. 그럼 선덕여왕은 그동안 무얼 했을까?

글쎄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질질 짜다가 갑자기 냉철한 모습으로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가 하면 갑자기 사랑의 열병도 앓는다. 그러다가 다시 냉정한 모습으로 그 사랑이 진심인지도 의심하게 한다. 원래는 유신과의 애절한 사랑의 레퍼토리가 끝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갑자기 유신에 대한 연모는 오간데 없고 비담이 덕만의 가슴에 들어앉았다.

미실을 물리치고 ‘덕업일신 망라사방’의 꿈을 이룰 덕만도 없었다. 원래 『선덕여왕』은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선덕여왕은 처음에는 있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블로거 송원섭의 스핑크스 글 제목처럼 ‘진짜 선덕여왕이 『선덕여왕』을 보았다면’ 무어라고 했을까. 아마도 매우 실망했을 것이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하면서.

진짜 선덕여왕은 미실과 비담을 위한 내레이터 정도로 전락한 선덕여왕을 보면서 모욕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 내가 보기에 선덕여왕은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비담의 내레이터였다. 역시 다시 한 번 하는 말이지만,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을 제압하고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끝냈어야 했다. 그리고 미실과 비담도 원래의 모습에 충실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오해를 피하기 위해 굳이 사족을 다는 것이지만-『선덕여왕』은 매우 훌륭한 드라마였다. 이전에 이토록 훌륭한 드라마는 보지 못했다.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광개토대왕을 다룬 『태왕사신기』가 있었지만 이만한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토록 많은 블로거들이 많은 후기를 쏟아낸 드라마가, 또는 무엇이었든, 있었던가.


아무튼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이요원이 『선덕여왕』에서 내레이터처럼 만들어진 것은 매우 불만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래봐야 소용없는 일인 줄은 안다. 엿장수 마음이란 말도 있으니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이 8개월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화려한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탄생한 덕만에 대한 기대를끝내 채워주지 못한 채, 선덕여왕은 연모와 왕좌 사이에서 갈등하다 운명을 마쳤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결말입니다. 저는 앞서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여전히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을 진압하고 왕위에 등극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못한 <선덕여왕>은 결국 용두사미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애초 의도했던 선덕여왕에 대한 재조명에도 실패했습니다. 지증왕이 추구하고 진흥왕이 마련했던 삼한통일의 대업을 이룰 개양자의 예언도 오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김유신도 마찬가집니다. 선덕여왕과 함께 삼한통일의 주역으로 그 역할에 기대를 모았던 유신은 문노가 죽기 전에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지목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내용도 활약도 없었습니다.


염종에 의해 또 다른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지목되었던 춘추도 그렇습니다. 염종은 문노와 달리 왕재로 덕만이 아닌 춘추를 지목하고 삼한지세도 그가 가져야한다고 믿었지만, 결과는 영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물론 이는 염종이 비담의 난의 주요인물이란 역사적 기록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떻든 왜 춘추가 아니고 비담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있어야 했습니다.


춘추는 미실에 의해 폐위된, 형식적으로는 진평왕에 의해 폐위된 진지왕의 손자입니다. 물론, 천명공주의 아들이므로 진평왕의 외손자이기도 합니다만, 신라는 어디까지나 부계전승사회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춘추의 지위가 그리 탄탄한 것은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진평왕과 선덕여왕에게 춘추는 정적의 자손일 뿐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춘추는 선덕여왕을 이을 후계잡니다.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을 진압할 때도 “우리에겐 두 개의 카드가 있다. 그게 미실보다 유리한 지점이다”라는 말로 춘추의 입지를 세워줍니다. ‘만약 내가 죽으면 네가 왕이 되면 된다’라는 논리죠. 비담의 난 때도 마찬가집니다. 선덕여왕은 서라벌을 떠나지 않고 반란에 맞설 것을 고집하며 춘추를 울산으로 보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합니다. 사실상 춘추를 후계자로 지명한 셈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왕좌에 올랐지만 아무것도 한 일 없이, 굳이 한 일이 있다면 비담을 사량부령(정보부장감찰부장)에 앉혀 신료들을 사찰하고 통제하고 억압한 일 뿐인데, 느닷없이 선위를 결심하는 장면은 참으로 뜬금없었습니다. 아무튼 비담과 조용한 암자를 골라 여생을 마치기로 하고 선위하겠다고 측근들에게 밝혔을 때, 선위의 대상은 누구였을까요? 당연히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스토리로 보자면 춘추가 그 대상입니다. 


실제로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자 몽진을 권하는 신료들을 뿌리치고 대신 춘추를 울산으로 피신시켜 차기 대권에 대한 대비를 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선덕여왕은 후계자로 틀림없이 춘추를 택한 것이며 모든 신료들도 그걸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도 급히 왕세자를 책봉해 왕과 세자가 따로 피난을 갔던 전례가 있습니다. 이 역시 왕위가 비게 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왕좌가 빈다는 것은 곧 나라의 멸망을 의미하니까요. 자,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춘추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춘추가, 왜 마지막회에서는 그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월천대사와 신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그 중에 대남보의 행방에 대해선 춘추가 밝혀주었지만, 이도 네티즌들이 의혹을 제기한 데 따른 반사 아니었을까—과 다르지 않은 이유 때문일까요?


물론 그것은 아닐 겁니다. 춘추는 사라진 다른 사람들과는 분명 격이 다른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마지막회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윤서아빠세상보기님이 제기한 것처럼 단순히 제작진의 실수였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몇 차례 계속된 연장방영 결정은 작가나 제작진에게도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일정에 쫓기다보니 앞뒤가 안 맞는 경우도 많고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사람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를 인지한 제작진이 김춘추의 입을 통해 “대남보가 왜 갑자기 실종됐을까? 그거 내가 비밀리에 복수한 거야. 죽인 거라고” 미생에게 실토하는 진풍경까지 연출했지요. 그저 제 생각일 뿐, “원래 그렇게 기획된 거야” 하고 말한다면 할 말 없지만. 아무튼 그러나 김춘추는 역시 격이 다르다는 말로 제작진의 실수였다는 변호를 반박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확실히 실수라고 말하기엔 뭔가 허전합니다.


실수라기보다는 애초부터 제작진의 오류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 오류는 어쩌면 이미 예정된 김춘추의 성공 탓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정된 분량 안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야했던 제작진으로서는 김춘추를 선덕여왕의 후계자로 만드는 실수 아닌 오류를 저질렀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김춘추와 선덕여왕 사이에 승만공주(진덕여왕)를 넣어야했지만, 그러기엔 드라마 분량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춘추의 포지션이 애매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연장방송으로 인한 대본 수정, 제작기술상의 변화는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시간을 주지 않았을 겁니다. 원래 <선덕여왕> 홈페이지 등장인물에 보면 승만공주도 나옵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드라마의 줄거리를 잡기 위해선 춘추와 더불어 승만도 나왔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여건상 승만공주가 나올 수 없었다면, 역시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에서 끝났어야 옳았습니다.


그랬다면 시즌2에 대한 기대감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애초의 드라마 제작 목적도 충실하게 수행했을 겁니다. 어떻든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예언을 통해 탄생한 선덕여왕이 마지막까지 그 신비한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마지막에 선덕여왕은 없고 미실과 비담만 남았다는 불평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춘추가 마지막에 사라진 이유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요?


막상 선덕여왕의 죽음에 이르고 보니 선덕여왕의 후계자인 진덕여왕이 걸렸다, 춘추로 하여금 덕만의 유지를 받들며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그래도 무언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조용히 안 보이게 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이렇게 말입니다. 윤서아빠세상보기님의 글에 보니, 선덕여왕이 춘추에게 “왕위는 승만에게 잇도록 하고 너는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나 대업을 준비하라”는 신을 찍었다는 기사를 봤는데 편집하지 않았냐는 의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랬다면 더 우스웠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실컷 춘추를 후계자라고 치켜세워놓고선 이제 와서 “너는 성골이 아니니 굳이 정치적 부담 질 것 없이 승만에게 왕위를 양보하거라. 곧 성골, 진골 구분은 없어질 것이니 그때 대업을 도모하라” 하고 말한다는 게 얼마나 난센습니까? 그러면 비담의 난이 일어났을 때 왜 춘추를 울산으로 보냈을까요. 승만공주를 보냈어야지요.


아무튼 춘추가 마지막회에 나오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제작진의 오류로 인한 실수라고 보여 집니다. 물론, 이것은 망고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모든 시청자들이 인정하듯 저 역시 <선덕여왕>이 대단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니, <선덕여왕>은 최고의 드라마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도 <선덕여왕>이 불세출(!)의 드라마였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선덕여왕>은 정치가 썩은 시대에 정치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본보기도 보여주었으니 이런 정도의 칭찬을 하더라도 아무런 무리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일전에 촌스런블로그님께서 "비담은 왜 부채를 들고 있을까?" 란 주제로 포스팅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저도 이 부분이 매우 궁금했었고 나름대로 이유를 밝혀 포스팅하고 싶었는데, 마침 촌스런블로그님이 주제를 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촌스런블로그에 댓글을 달아 기회가 되면 저도 비담의 부채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선수를 빼앗겼다고 푸념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트랙백으로 남기겠다고 했었죠. 

비담이 부채를 든 까닭은?

제가 뭔가 말을 하면 꼭 지켜야만 하겠다는 강박관념 같은 걸 불필요하게 내장하고 다니는 사람이랍니다. 그래서 비담의 부채 이야기를 꼭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시간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시간보다는 이야기를 풀만한 소재가 빈약했다는 편이 맞을 거 같습니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신라 금관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던 것이 기억나서 그걸 비담의 부채와 연결시키고 싶었지만 기억도 잘 안 나고,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자니 시간은 없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더 늦추다가는 <선덕여왕>이 끝날 거 같은 생각이 들어 이렇게 부랴부랴 쓰기로 했습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비담이 부채를 들고 있는 이유는 신비롭게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비담은 사량부령입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CIA나 FBI 국장쯤 되겠군요. 이스라엘로 치면 사량부는 모사드일 것이고, 옛 소련이라면 KGB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조직이 있는데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 등으로 이름이 변천했습니다. 

그 옛날 삼국지에 나오는 신출귀몰 제갈공명도 부채를 든 모습으로 많이 그려졌지요. 제갈량이 든 부채를 백우선이라고 하는데 학의 깃털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적벽대전에서 백우선을 든 제갈량이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 동남풍을 부르는 장면은 실로 신선의 모습이 따로 없었습니다. 아무튼 부채는 예로부터 신비로운 사람들이 많이 애용하던 물품임에 틀림없습니다. 비담이 부채를 든 것도 바로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그런 목적만 있었을까요? 비담이 든 부채도 보아하니 새의 깃털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갈량의 부채도 새의 깃털로 만들었습니다. 자,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채들이 모두 새의 깃털로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새의 깃털, 여기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요? 왜 신비로운 힘을 과시하기 위해 든 부채를 모두 새의 깃털로 만들었을까요?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저는 이 비밀을 신라의 금관과 연결시켜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부채를 새 깃털로 만든 이유는?

몇 달 전에 김주완 기자님, 커서님과 더불어 경주박물관에 갔을 때, 천마총에서 나온 금관을 보았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화려함, 그 시대에 어떻게 이토록 정밀한 세공을 할 수 있었을까, 놀랍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금관을 다른 말로 황금수목관이라고도 하는데 둥근 다이아뎀에 삐죽삐죽 솟은 것은 바로 나뭇가지들입니다. 즉 금관은 나뭇가지 모양이란 얘기죠. 그래서 수목관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황금수목관.

그런데 그 나뭇가지의 맨 위에는 어김없이 새 한 마리씩이 앉아 있습니다. 즉 나뭇가지 위에 새가 앉아있는 모양을 본 떠 왕관을 만든 것입니다. 모든 왕관들이 그렇습니다. 황남대총에서 나온 금관에도 마찬가지로 나뭇가지 위에 새가 앉아있는 모양입니다. 그럼 왜 임금이 쓰는 금관 위에는 새를 만들어 올렸을까요? 여기에 대해 아직 정통한 학설은 없습니다. 아직은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신기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처럼 왕관 위에 새가 앉아 있는 모양은 유럽에서도 발견됩니다. 가깝게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가 대관식 때 썼던 왕관도 다이아뎀에 솟은 수목에 새가 앉아있는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썼던 왕관도 마찬가지로 위에 새가 앉은 수목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익히 보아오던, 그러나 세심히 보지 못했던 유럽의 왕관들은 거의 모두 이런 모양들이었습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왕들이 쓰는 왕관도 마찬가지고요.
 
왜 그런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 어떤 학자―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볼 여유도 없고,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는 수목관은 알타이 계통의 민족들에게서 나타나는 왕관의 형식인데 동과 서로 퍼져 그 명맥이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동쪽의 신라 금관과 유사한 수목관이 서쪽 유럽의 왕관들에서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형식은 북쪽에 주로 퍼져 있고 남쪽에는 잘 없는데, 중국 등지에서는 수목관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신라 금관과 유럽의 왕관 그리고 솟대에 앉은 새

여기에 대해선 너무 전문적인 분야인 만큼 이 정도로 하기로 하고요. 그럼 왜 왕관에 새를 만들어 올렸을까요? 그게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솟대를 보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솟대의 모양이 어떻습니까? 높다란 나뭇가지 위에 새가 한 마리 올라 앉아 있지 않습니까? 그 솟대를 보며 황금수목관이 연상되었습니다. 아, 어쩌면 황금수목관과 이 솟대가 무언가 유사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솟대를 발견한 곳은 진주 청동기박물관이었습니다. <경남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에서 주최한 작은도서관 블로거간담회에 참여했다가 다음날 청동기박물관 답사를 갔던 것입니다. 그때 창원대에서 강의를 하신다는 인솔 선생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이 솟대에 앉은 새들을 보니까 말입니다, 생각나는 게 있는데요. 신라시대 금관에도 새가 앉아 있거든요. 어떤 유사점이 있을까요? 듣자하니 유럽의 왕관들에도 새가 있다고 하고요."

"글쎄요. 정확하게 그 관련성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요. 아무튼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인들은 새를 숭배했지요. 하늘을 나는 새는 곧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거죠. 주로 스텝지방을 중심으로 동서쪽으로 이런 문화가 있었던 걸로 보이고요.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도 있는데 이도 원래 새를 숭배하던 풍습이 발전한 것이지요. 일본의 국기에 보면 태양이 그려져 있잖아요? 그것도 마찬가지 의미로 보시면 될 거에요. 고구려도 삼족오가 상징이죠."

"아, 그리고 말이죠. 새를 숭배하는 이런 풍습은 이후에 국가체제가 정비된 이후에도 나타나게 되는데요. 귀족들이 모자나 의복에 새의 깃털을 꽂거나 달고 다녔거든요. 그건 곧 왕과 가장 가깝다, 왕과 나는 일체다, 이런 의미였어요. 곧 새의 깃털은 권력의 상징이죠. 그렇게 보면 왕관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나 솟대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아주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겠네요."

비담의 새 깃털 부채는, 곧 내가 왕과 동일체란 선포 아닐까

그 말을 듣고 저는, 억지로 비담의 부채와 신라 금관과 유럽의 왕관을 연결시키기로 했습니다. 비담이 든 부채는 새의 깃털로 만들었다, 새의 깃털은 곧 최고 권력자와 내가 동일하다는 뜻, 곧 비담은 선덕여왕과 동일체라는 생각, 뭐 그런 걸로 말입니다. 아무튼 비담은 실제로 그런 생각을 현실에 옮기려고 하고 있으니 가히 틀린 억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비담이 갑자기 부채를 들고 나오지 않더군요.

왜 그러는 것일까요? '비담과 선덕여왕 동일체'의 전선에 무슨 이상이 생긴 것일까요? 들고 다니려면 계속 들고 다니던지 이랬다저랬다 하니 참 헛갈립니다. 오늘은 들고 나오려나?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을 보다 보면 늘 사라지지 않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나왔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오랜만에 블로고스피어를 탐방해보았더니 역시 저와 비슷한 의문을 가진 분이 계시더군요. 코스모클로버님은 "선덕여왕, 천명공주 죽인 대남보는 왜 안 보일까?로 대남보가 꽤 비중 있는 사건에 연루된 인물인데도 화면에서 사라진 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소리 없이 사라진 사람들

그러고 보니 대남보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어떤 인물들보다도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김춘추의 원수입니다. 자기 어머니인 천명공주를 죽였으니까요. 김춘추가 어떤 인물입니까? 대야성에서 백제군에게 살해당한 딸과 사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 마침내 백제를 멸망시켰지 않습니까? 혹자는 김춘추의 복수심 때문에 삼국통일이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고도 하더군요. 아무튼 그런 김춘추가 대남보를 그냥 놔 둘리가 만무한데, 거 참 이상합니다.

첨성대를 만들어야 할 월천대사도 사라졌습니다. 혹시 모르죠. 어느 날 갑자기 첨성대 설계도를 들고 나타날지도 말입니다. 그 외에도 사라진 인물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을제대등도 하루아침에 사라져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을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죠. 선덕여왕이 자기를 보좌하여 정무를 보게 하는 인물입니다. 또는 선덕여왕의 남편들 중 한 명이라고도 합니다. 김유신과 결혼한 영모도 안 나옵니다. 그건 이해가 갑니다. 살림 하느라 바쁘겠죠.

춘추에게 보쌈 당해 행복한 강제 결혼을 당했던 보량도 안 나오네요. 역시 살림하느라 바쁜 모양입니다. 문노가 비담과 염종에게 죽임을 당해 사라진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입니다. 원래는 그냥 어린 덕만공주와 함께 조용히 사라지기로 되어 있었다는데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에 힘입어 복귀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별다른 걸 보여주지도 못하고―우리는 모두 그가 무슨 대단한 비밀이나 예언을 풀어놓을 줄 알았지요―허무하게 암습에 가고 말았습니다.

그 외에 아예 처음부터 등장하지도 않는 중요한 인물들도 있습니다. 문희와 보희가 그렇고, 승만공주가 그렇습니다. 승만공주는 선덕여왕을 이어 진덕여왕이 될 사람인데 아직도 등장하지 않으니 이러다간 선덕여왕이 죽음을 앞두고 춘추에게 보위를 전하는 해프닝까지 등장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됩니다. 아이고 이런~ 이야기가 완전 옆길로 샜습니다. 코스모클로버님체리블로거님의 글을 읽다가 원래 생각했던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네요. 그래도 어쨌든 원래 길로 다시 돌아갑니다.

비담은 설원공에게 무엇일까?

지난주에는 선덕여왕을 보다가 이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설원공과 비담의 관계 말입니다. 도대체 설원공은 비담에게 무엇일까요? 또 비담은 설원공에게 무엇이기에 그토록 비담을 위해 목숨마저 내놓고자 하는 것일까요? 설원공에게는 아들 보종이 있지 않습니까? 아들보다 사랑하는 미실의 아들이 더 귀한 것일까요? 진정 미실의 유지 때문에 설원공이 비담을 위해 목숨까지 던지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설원공의 사랑이야말로 참으로 지고지순합니다. 

그러나 지난주 설원공이 죽기 전에 독백하는 장면을 보면서 도대체 설원공과 비담은 무슨 관계일까 하는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물론 그 독백은 죽은 미실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설원공은 윤충이 이끄는 백제군을 맞아 전장으로 나가기 전 미실의 사당에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무릎을 꿇고 향을 피우며 말합니다.

"새주, 비담이 닮지 말아야 하는 것을, 저를 닮았습니다. 누군가를 연모하는 마음을 말입니다. 연모는 날아가는 새나 줘버리라던 새주를 닮았어야 하는 건데. 허나 새주의 마지막 당부였으니 따를 것입니다. 이번 전쟁을 비담에게 반드시 기회로 만들어 주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새주."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 여기에서 약간의 의심이 들긴 했지만, 그러나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실을 워낙 사모하는 설원이니 그녀의 아들조차 사랑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역시 미실의 아들인 하종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것도 영 아니지만―그런데 설원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와 마지막 죽는 장면에서 말입니다. 비담은 왜 그리 슬피 울었을까요? 자기를 위해 전장에 나갔다가 죽게 된 설원이 너무 고마워서 그랬을까요?

그러나 그런 건 비담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냉혹한 비담이 설원의 죽음에 슬피 우는 이유는?

비담이 어떤 사람입니까? 수십 명의 무고한 사람을 독살시키고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던 인물입니다. 그것도 어린아이 때 말입니다. 문노가 비담으로부터 희망을 거두어들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죠. 비담의 냉혹한 성품, 목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잔혹해질 수 있는 차가운 마음은 바로 미실을 닮은 것이었죠. 그리고 어른이 된 비담의 성격은 더욱 난폭해졌습니다. 물론 정에 약한 비담이 천진난만한 모습도 보여주긴 합니다만, 그는 기본적으로 냉혹한 인물입니다.

미실이 죽고 난 이후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완벽한 악인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죠. 그러니 그런 비담이 설원공의 죽음 앞에 슬피 우는 모습이 너무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퍼뜩 설원이 전장에 나가기 전 미실의 영정 앞에서 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 아, 이거 분명 비담은 진지왕과 미실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이건 또 뭐야~

아마 제가 착각한 것일 겁니다. 설원이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 하는 게 뭐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작가가 쓰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미실을 그리워하는 설원의 애달픈 모습을 그리다보니 설원의 입에서 헛말이 나왔을 수도 있지요. 비담도 그렇습니다. 괜히 설원이 자기를 걱정하며 죽으니 슬픔에 겨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리 악인이라도 사람의 죽음 앞에 눈물은 흘릴 수 있습니다. 특히 자기를 위해 죽은 사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겠죠. 그러나 그래도 자꾸만 의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아니 도대체 설원공과 비담은 무슨 관계야? 도대체 무슨 관계이기에 저토록 애틋할 수가 있단 말이지? 혹시나? 하긴 미실은 색공으로 여러 남자를 울린 사람이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요?"

게다가 비담이 태어날 무렵의 미실은 나는 새가 아니라 황제도 떨어뜨릴 수 있는 위세를 가진 인물이었으니까요. 그녀가 원하며 무엇이든 할 수 있던 시절이었죠. 그러나 그래도 그건 아닐 것이란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비담을 진지왕과 도화녀의 아들 비형이란 인물과 합성해 창조한 것도 모자라 설원공까지 끼워 넣는다면 이건 정말 아니죠. 그러나 아무튼 저로 하여금 이런 의심이 들도록 만든 것은 <선덕여왕>의 작가님이십니다.

쓸데없이 설원공으로 하여금 "왜 당신을 안 닮고 나를 닮았을까?" 같은 대사를 하도록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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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이 변했습니다. 물론 이런 변화는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것이긴 하죠. 그러나 그 변화의 정도가 너무나 급격해서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비담은 <선덕여왕>이 한창 인기를 끌던 중반 등장하던 순간부터 관심을 한 몸에 모았습니다. 비담이란 이름이 선덕여왕 치세에 상대등을 지냈을 뿐 아니라 막판에는 반란을 일으켜 선덕여왕의 죽음에도 일정하게 관여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궁지에 몰린 김유신이 연을 날리는 전술로 비담군을 격파했다는 월성전투는 너무나 유명하죠.


비담은 실제와 허구를 합성한 캐릭터

<선덕여왕>의 비담이 실존인물 비담과는 다르다는 주장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덕여왕>은 1부를 시작하며 자막으로 ‘시간과 공간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전개될 것’이라고 양해를 구해 상당부분 실제와 허구가 버무려졌음을 밝혔습니다. 특히 비담은 실존인물 비담과 진지왕과 도화녀 사이에서 난 비형이란 설화 속 인물을 합성한 캐릭터입니다. 그러므로 비담이야말로 <선덕여왕>에서 가장 실제와 허구를 넘나드는 인물인 셈이죠. 그러나 어떻든 <선덕여왕>에서 비담은 미실의 아들.

그런데 비담의 변화도 매우 놀라운 것이지만, 덕만의 변화는 더욱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여왕이 된 덕만은 비담에게 정보사찰의 임무를 맡깁니다. 이것은 미실도 하지 않던 일입니다. 비담이 맡은 역할은 아마도 오늘날의 중앙정보부장이나 안기부장쯤 되겠지요. 선덕여왕이 왜 비담에게 이런 중요한 직책을 맡겼는지 아직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왜 선덕여왕이 미실도 만들지 않았던 비밀정보기관을 만들었냐 하는 것입니다. 그 심오한 의도는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는 의문입니다.

아무튼 비담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비담은 염종이 갖고 있던 ‘문노의 비밀정보망’을 모두 손에 넣고 최대한 활용하고 있습니다. 문노가 유신에게 전하고자 했던 ‘삼한지세’도 비담의 손에 있겠지요. 물론 이 삼한지세는 춘추의 머릿속에도 새겨져있긴 합니다만. 이제 비담은 명실상부하게 신국의 2인자가 되었습니다. 유신이 비록 상장군이 되어 전장을 누빈 공로로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있다고는 하지만 왕을 제외한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사량부령의 권력에는 미칠 바가 아닙니다.

선덕여왕이 비담을 비밀정보부장에 앉힌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막강한 권력에 더해 문노의 비밀조직에다 구세력의 핵심인 설원까지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비담이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더욱이 비담의 싸늘한 표정에선 무언가 위험한 미래가 감지됩니다. 마치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에 나오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처럼. 아나킨은 장래가 촉망되던 제다이였지만, 마음속에 숨어있는 두려움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그 두려움이 언젠가 분노로 변할 것임을 제다이들의 스승 요다는 알고 있었지요.

분노가 가져올 욕망과 파괴를 알고 있었던 요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나킨을 오비완의 제자로 만든 콰이곤은 아나킨의 능력만을 보았습니다. 선덕여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비담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분노와 욕망을 보지 못하고 겉에 드러난 능력만을 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에게 겨눌 칼을 스스로 벼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아무런 느낌도 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비담의 분노, 비담의 욕망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비담에게 분노와 욕망의 마음을 불어넣어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미실입니다.

미실이 비담을 버렸을 때, 비담은 욕망덩어리였습니다. 비담은 탄생 자체부터가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미실을 황후로 만들기 위해 태어난 비담은 그 꿈이 좌절되자 버려졌습니다. 비담의 두려움과 분노는 여기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미실에게 버려진 비담을 데려다 키운 것은 문노였습니다. 그러나 문노 역시 비담을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사랑과 배려를 나누어주기보다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어린 비담을 다그치기만 했습니다.

욕망의 근원은 두려움으로부터 솟아나는 분노

비담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싹트는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삼한지세를 되찾기 위해 도적의 소굴에 들어가 수십 명을 모조리 독살한 것도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비담의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결국 분노로 화했습니다. 영특한 미실은 비담의 마음속에 든 두려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곧 분노로, 다시 매우 파괴적인 욕망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비담의 뛰어난 재능이 분노가 가야할 길을 잘 안내할 것이란 점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의 실패를 대비하여 마지막 안배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미실이 난을 일으키기 전, 설원에게 붉은색으로 포장된 서첩을 가져오라 했을 때 모두들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해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공개된 후에도 궁금증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서첩의 내용은 진흥왕이 설원에게 미실을 죽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서첩이 우여곡절을 거쳐 비담의 손으로 들어가고 미실이 “결국 제 주인을 찾아가갔구나!” 하고 말했을 때, 도대체 그 숨은 뜻이 무엇일까 궁금해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대충이나마 그 뜻을 짐작합니다. 붉은 서첩은 미실이 비담에게 전하고자 했던 유산이었던 것입니다. 미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주는 사랑의 증표라고나 할까요. 미실은 끝까지 모자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대신 이 서첩을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동시에 이 서첩은 미실이 비담에게 남긴 유산이자 유언인 셈입니다. 그럼 미실은 무엇 때문에 붉은 서첩을 비담에게 남기려고 했을까요?

미실이 비담에게 남긴 유산, 분노와 욕망

미실은 비담의 내부에서 잠자고 있는 두려움과 분노와 욕망을 일깨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담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하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담에게 남긴 미실의 붉은 서첩은 유산이 곧 유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비담의 변한 모습에서 살아남은 미실 잔당들은 살아있는 미실을 보는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그리고 설원을 비롯한 이들은 새로운 기대로 꿈에 부풉니다.


‘연정이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다!’란 가르침을 주고 떠난 미실의 유지를 받은 비담과 ‘아낌없이 모든 것을 덕만에게 바치겠다!’는 유신의 한판 대결은 불가피한 숙명입니다. 이 두 사람의 가운데에서 선덕여왕이 어떤 태도를 보일까 하는 것도 주목되는 관전 포인틉니다. 그러나 어떻든 선덕여왕이 된 덕만이 보여주는 모습은 현재로선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독재자 미실에 대항하던 덕만이 갑자기 더한 독재자가 된 것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하긴 그것도 다 스토리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장치라고 이해하면 그만이겠지요. 유신과 비담의 마지막 대결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미실에 맞서 싸우던 덕만을 응원하던 저로서는 매우 불만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덕만이 미실도 하지 않았던 비밀정보기관을 만들 수 있을까? 요즘으로 말하자면 조작사건 같은 걸 만들어내는 비담을 용인할 수 있을까?

아무튼 ‘고참이 반합에 똥을 누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했으니 지켜볼 일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비담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비담은 원래 출현할 때부터 예사롭지 않은 눈매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말투와 자유분방한 태도, 새털처럼 몸을 날리는 경공술과 검법은 드라마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비담의 트레이드 마크는 눈으로 하는 연기였다.


비담, 너무나 잘 알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

우리는 비담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비담은 단지 선덕여왕 말년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김유신에게 패해 참형에 처해졌다는 기록으로만 우리에게 존재를 알리고 있을 뿐이다. 고금을 불문하고 역적은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러니 우리가 비담에 대해 아는 것은 선덕여왕 16년(서기 647년)에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 뿐이다. 비담의 반란군은 명활산성에 주둔했는데 반월성에 고립되어 있던 김유신군에 비해 형세가 유리했다. 명활산성과 황궁인 반월성은 보문벌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이때 밤하늘에 긴 꼬리를 늘어뜨리며 별이 하나 떨어졌다. 

떨어진 별은 선덕여왕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비담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반대로 김유신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군세도 역부족인데 사기까지 떨어지니 전투는 끝난 것이나 진배 없었다. 그러나 유신은 기지를 발휘해 사태를 역전시켰다. 연을 이용해 별을 다시 하늘로 띄워 올린 것이다. 

월성전투에서 패한 비담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러나 비담의 난의 여파였던지 선덕여왕도 죽고 말았다. 632년에 즉위하여 647년까지 왕좌에 있었으니 그리 짧은 세월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이 든 아버지 진평왕을 대신해 국사를 관장한 햇수까지 치면 꽤나 긴 세월 바람처럼 살았던 셈이다. 

비담이 상대등에 오른 것은 서기 645년, 선덕여왕 14년이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비담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의 전부다. 비담의 출생과 성장, 출세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다. 비담이 난을 일으킬 때 상대등의 지위에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그는 골품을 가진 왕족으로 왕권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었다는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선덕여왕에 의해 신라 최고 관직 상대등에 오른 비담

이렇게 본다면 비담은 사실은 김유신이나 김춘추에 비해 선덕여왕의 총애가 두터웠던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비담이 김유신이나 김춘추보다 훨씬 강력한 귀족세력을 배후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등에 올랐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신흥세력인 김유신과 김춘추보다 비담을 중심으로 하는 오래된 귀족세력이 선덕여왕이 왕좌에 오르는데 더 큰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원래 상대등은 신라 초기부터 존재하던 지위가 아니었다.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하면서 새롭게 만들어낸 귀족세력의 우두머리가 바로 상대등이다.

율령을 반포하기 전의 신라 왕은 왕이면서 한편 귀족연합체의 수장 역할도 동시에 수행했다. 말하자면, 왕이 국사를 관장하는 것과 별도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기 위한 화백회의의 의장 역할도 겸했던 것이다. 법흥왕은 율령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한 제도적 정비를 단행했다. 왕 대신 상대등이 귀족회의 의장을 맡도록 한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권력을 나누어 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신성한 왕권을 귀족들과 분리시킨 조치였다. 왕과 귀족들이 동등한 대등 자격으로 열던 회의를 폐지하고 상대등이 주관하는 새로운 회의를 창설한 것과 같은 효과를 발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왕권이 허약할 경우에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는 모험이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고 있는 화백회의와 상대등 세종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법흥왕 이후의 역대 신라 왕들은 반드시 자신과 운명을 함께 할 만한 인물을 상대등 자리에 앉혔다. 그러지 못했을 경우에 심심찮은 역모에 휩싸였던 역사를 우리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비담과 김유신의 경쟁관계는 숙명적인 것이었나

이로써 우리는 비담과 선덕여왕의 관계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선덕여왕이 그렇게 허약한 왕이 아니었다는 점을 가정한다면, 휘하에 김유신과 김춘추란 걸출한 인재를 거느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비담은 선덕여왕이 가장 신뢰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비담이 상대등의 자리에 올랐던 사실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런데 이제 바야흐로 역사상 최초로 여왕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 덕만의 옆에서 김유신을 향해 분노와 질투의 눈초리를 날리는 비담은 누구인가? 김유신만이 관심과 논의의 대상이라고 공표하는 듯한 덕만을 향해 안타까운 원망의 눈초리를 날리고 있는 비담은 누구인가? 드라마에서 그는 미실의 버려진 아들이며 진지왕의 왕자다. 

버려진 그를 문노가 안아다 키웠다. 문노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문노는 그런 비담에게 놀랍고도 가슴 벅찬 기대를 던져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것은 삼한지세였다. 삼한의 형세를 분석한 비서, 이 책의 주인은 곧 신라의 주인이기도 했다. 그는 문노가 원래 자기와 덕만을 결혼시켜 왕재로 삼으려 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때 이미 문노의 마음은 자신에게 돌아선 뒤였다. 문노는 측은지심은 고사하고 살생을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쉽게 하는 비담에게 실망했던 것이다. 문노는 비담 대신 유신을 선택했다. 문노의 눈에 유신이야말로 삼한을 통일시킬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유신에게 삼한지세를 전하려던 문노는 비담과 염종에게 암살 당한다. 

비담은 다시 천애고아가 되었다. 그러나 비담은 이제 과거의 비담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진지왕의 아들이며 미실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세 사람 뿐이었다. 그 중 문노는 죽었으니 이제 비담과 소화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비담은 알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아무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비담이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

그러나 비담은 원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는 강한 욕구를 갖고 있다. 잃어 버린 20여 년에 대한 보상심리로 심장은 폭발 직전이다. 덕만공주는 잃어 버린 꿈을 되찾게해 줄 든든한 지렛대다. 광야에서 바람처럼 살아왔던 비담으로서는 거칠 게 없다. 두려움도 없다. 다만 한 가지 있다면 덕만공주의 유신에 대한 애정이 문제다. 

유신을 바라보는 비담의 두 눈은 질투와 분노의 화염으로 이글거린다. 비담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이다. 결국 화산은 폭발할 것이며 곧 비담의 난이다. 비담의 난은 역사를 바꾸는 큰 획을 그은 중대한 사건이다. 비담의 난으로 신라는 상대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중앙집권이 강화된 중대시대의 서막을 준비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았다. 덕만이 아직 왕위에도 오르지 않았으니 최소한 16년 이상의 세월이 남은 셈이다. 그동안 비담이 해야할 일은 산처럼 쌓여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비담 외에 아무것도 모르는 비담이 사실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그리고 있는 그 비담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사롭지 않은 비담의 눈매가 미리 먼 미래의 불행한 결말을 예비하는 것 같아 불안하긴 하지만, 그러나 아직은 비담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그는 어미로부터 버려진 왕자요, 스승으로부터 배척당한 제자다. 사랑 받지 못한 존재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나오는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누구부다 강한 집착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원망과 분노와 질투가 묻어나오는 슬픈 눈초리가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나 오늘은 선덕여왕을 보지 못할 것 같다. 약속시간이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오늘은 술약속이라 하는 수 없이 선덕여왕은 내일 인터넷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오타나 문맥에 약간의 착오가 있더라도 선덕여왕처럼 넓은 아량으로 헤아려주신다면 매우 고맙겠다. ㅎㅎ

아이구~ 늦겠네, 후다닥…  
Posted by 파비 정부권
문노가 어이없이 죽었다. 기껏 김춘추가 찢어 주렴구 같은 장난감을 만들어 놀게 될 삼한지세를 김유신에게 전달하기 위해 길을 가다 독침에 맞아 죽었다. 절세의 무공을 지닌 그가 이리도 허망하게 죽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문노는 곧 죽게 될 것이 자명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가리라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노는 왜 염종 같은 인물을 수하에 두고 중요한 임무를 맡겼을까?

문노의 수하에 염종을 두었다는 자체가 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염종이 삼한지세를 작성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문노의 능력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한 오류였다. 물론 우리가 염종이란 인물의 결말을 미리 알고 있기에 이런 생각도 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것은 문노의 명백한 실수다. 

그러고 보면 문노는 무예가 출중한 것을 빼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일을 처리한 것이 없다. 드라마 초반에 문노는 진흥왕으로부터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이길 자가 오리라"는 예언을 받은 인물이다. 그리고 문노는 진흥왕으로부터 또 다른 유지를 받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짐작하듯 삼한통일의 비결이었을 터이다. 

삼한을 통일하는 방법은 결국 무력에 의한 병합뿐이다. 요즘처럼 테이블에 앉아 연방제니 연합제니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당시에 민족의식이 있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삼한지세는 그래서 작성했으리라. 

그리고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비담을 선택했다. 이는 나중에 문노도 깨달았지만, 실수였다. 비담은 삼한지세의 주인이 될 수 없는 자였다. 그의 속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어있었다. 문노는 그것을 보았다. 비담은 목적을 위해 사람을 가차 없이 죽일 수 있는 인면수심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문노는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노는 삼한지세를 만드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비담이 더 이상 삼한지세의 주인이 될 수 없음을 알았는데도 왜 계속 삼한을 누비며 삼한의 정세를 파악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을까? 진흥왕의 유지 때문이었을까? 애초에 문노는 무엇 때문에 삼한을 통일시키고 전쟁을 종식시킬 주인공으로 비담을 선택했을까?

문노의 죽음과 함께 예언에 관한 모든 비밀도 미궁 속으로 사라지나

그리고 미실을 이길 개양성의 주인과 삼한을 통일시킬 역사의 주인은 달랐던 것일까? 이것 또한 진흥왕으로부터 받은 예언 중 일부였을까? 그런데 어떤 연유로 삼한을 통일시킬 인물로 비담을 점 찍었을까? 그리고 비담과 덕만을 혼인시키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것은 문노의 어이없는 죽음과 함께 미궁 속으로 사라졌다.
 
오랜 세월 신비한 구름 속에 잠적해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던 그가 다시 나타났지만 이에 대한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미실의 아들과 덕만을 혼인시키려 했다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으로 사람들을 당혹케 만들었다. 그리고 이마저도 실패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마지막에 역사를 변혁시킬 만한 중요한 임무 두 가지를 이루었다.  

그 하나는 김유신을 풍월주에 앉힌 것이다. 만약 이대로라면 김유신은 절대 풍월주가 될 수 없었다. 물론 진짜 역사에서는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패망한 가야의 왕손인 김유신 가문은 살아남기 위해 못할 일이 없었다. 유신의 조부인 김무력은 전장에 나가 백제 성왕을 죽이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우며 신라 최고의 지위 대각간에 올랐다.

김서현은 어땠는가. 그는 만명공주와 사랑의 도피행각까지 벌이며 김유신을 낳았다. 그러나 만노군 태수로 부임하던 김서현을 만명공주가 따라 나선 것이 도피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시는 신라 최고의 명장 김무력이 건재하고 있던 때이다. 드라마에서처럼 김서현이 만노군에 추방되어있었다는 것은 사실과 달랐을 것이다. 

김유신이 풍월주에 오르던 612년에도 김무력은 여전히 건재하게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614년에 죽은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유신이 풍월주가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화랑세기에서처럼 미실의 가문과 혼인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김유신을 풍월주에 올린 것은 문노 생애 최고의 공적

아마도 드라마에서 미실이 그토록 유신을 얻고자 안달하는 장면은 화랑세기에서 호림공의 부제였던 보종으로 하여금 유신에게 풍월주를 양보하라고 설득하는 데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다. 권력의 정상에 있던 미실도 김유신 가문과의 제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어쨌든 문노는 궁지에 몰린 덕만공주를 위해 김유신을 풍월주에 앉히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원래 풍월주는 비재를 통해 뽑는 것이 아니라 원로들의 결정에 의해 임명하는 자리다. 특별한 하자가 없다면 부제가 승계하는 것이 전통이다. 따라서 풍월주 호림공의 뒤를 이어 보종랑이 풍월주가 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러나 미실은 유신이 풍월주가 되도록 했다.

이것은 화랑세기의 이야기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처리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비재를 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문노는 김유신이 풍월주가 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다음 문노가 이룬 또 하나는 삼한지세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적에 관한 정보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삼한지세를 유신에게 전하려던 이 두 번째 임무는 염종의 암습에 의해 불발로 끝났다. 예고편에서 염종을 사주한 것은 김춘추라는 암시가 나온다. 그러나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수나라에서 돌아온지 며칠 되지도 않은 애송이가 언제 문노란 존재에 대해 파악을 했으며, 문노가 삼한지세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단 말인가. 

그러나 어찌 되었든 삼한지세는 김춘추에게로 갔다. 김춘추는 삼한지세를 뜯어 주렴구를 만들어 던지는 장난질을 치고 있다. 그가 삼한의 형세를 분석한 기서의 내용을 제대로 읽기나 한 후에 뜯어 장난감으로 썼는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알겠지만, 삼한지세가 김춘추에게로 갔다는 것은 주인을 제대로 찾아간 것임에는 틀림없다.

비담이 잉태할 불행의 씨앗은 문노가 뿌린 것

후일 김춘추가 고구려와 일본, 당나라를 드나들며 외교 전략을 펼치며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삼한지세의 주인은 원래부터 춘추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랴. 문노는 살아서도 제대로 일을 처리한 것이 거의 없으며, 죽을 때도 무엇 하나 제대로 알아낸 것이 없다.

오직 하나 있다면 비담의 자기에 대한 진심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죽어가는 문노에겐 커다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노는 여전히 알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비담이 사랑 받지 못하며 자란 불행한 운명으로부터 만들어진 비뚤어진 성정이다. 비담이 스승 문노를 향해 "삼한지세는 내 것"이라고 외치는 것은 애정결핍에 대한 반항이었다는 것을 그는 결국 모르고 죽었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불행을 잉태할 것이란 사실도 그는 모르고 죽었다. 그 불행의 씨앗을 뿌린 것은 결국 자신이란 사실도. 그러니 문노야말로 실로 불행한 인물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역사를 바꿀 만한 두 가지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자신만만하던 비담, 천진난만하던 비담이 초라해지고 있다. 알천랑의 뒤를 이어 유신의 포스를 누르며 인기를 구가하던 비담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있다. 야심을 드러낸 비담의 야비한 행보가 유신의 진심 앞에 한없이 작아 보인다. 왜 그럴까? 자기 출생의 비밀을 몰랐을 때 비담은 당당했다. 그는 누구에게도 허리를 숙일 필요도 없었고 그러지도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비담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버렸다.

비담과 문노 사이에 놓여진 책이 바로 '삼한지세', 즉 삼국의 형세를 분석한 전략지침서다.


유신의 진심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비담의 야심 

비담은 자기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채 문노에 의해 키워졌다. 비담은 문노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싶었을 것이나, 문노는 그런 비담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문노는 철저하게 스승과 제자로 관계를 한정지었다. 그런 문노에게 비담은 잘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천애고아인 비담,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비담의 심정을 누가 알 것인가.

비담에겐 오로지 문노뿐이었다. 그런 문노가 어느 날, 자기에게 말했다. "내가 준비하는 모든 것은 다 너를 위한 것이란다. 이 모든 것들은 다 네 것이다." 그가 준비하는 것들이란 다름 아닌 <삼한지세>였다. 진흥왕으로부터 받은 원대한 대업의 꿈, 언젠가 이 불가능한 꿈을 이룰 자가 나타날 때를 대비해 삼한을 누빈지 오래다. 

문노는 이 꿈을 이룰 자가 비담인 것으로 오해했다. 개양성의 주인인 덕만공주와 혼인시켜 비담을 왕으로 만들겠다는 게 문노의 생각이었다. 아마 어리석고 겁 많은 소화가 덕만을 데리고 도망치지만 않았다면 이 계획은 아무런 차질 없이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문노의 이 원대한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비담이 잃어버린 문서 <삼한지세>를 되찾기 위해 도적의 소굴에 들어가 독약을 먹여 남여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죽여 버리고 만 것이다. 문노는 당황했다. 어린 아이의 비정한 참모습에 그가 세운 원대한 계책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때부터 문노는 비담을 멀리했다. 비담을 제자로 인정하려 들지도 않았다. 잔인한 성격을 지닌 비담이 두려웠던 것일까? 

문노는 비담에게서 진심 대신 사심을 읽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신이 나타났다. 비담에게서 찾던 진심을 유신이 갖고 있었다. 처음 볼 때부터 놀라운 눈으로 성장하는 유신을 반신반의하며 지켜보았지만, 유신이야말로 삼한통일의 꿈을 이룰 인재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몇 차례 그를 시험해보았다. 확실히 개양성을 도와 천하를 도모할 인물임에 틀림없다.
 

어떤 왕릉보다도 잘 보존된 화려한 김유신장군묘. 오늘날에도 가장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유신의 기개와 이상은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유신에겐 확실히 비담이 갖지 못한 기개와 이상이 있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유신이 흔들리는 천명공주에게 말했었다. "진심을 다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사람들이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이 말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진심을 다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   

유신은 가야유민의 마음을 얻어 신라사회 안에 자기 세력을 구축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앞장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로써 오랜 세월 의심받고 견제 당하던 신라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넘어 신라를 움직이는 핵심세력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다. 가야세력을 살리기 위해 오히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앞장섬으로써 돌파하겠다는 생각을 과연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비담은 어떤가. 그에겐 원대한 포부 따위는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욕망과 안위가 중요할 뿐이다. 그는 외롭게 살았다. 그는 지켜야 할 가족도 종족도 없다. 오로지 혼자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스승에게 인정받는 길이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문노뿐이다. 문노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일생의 기쁨이다. 그것은 곧 가족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담에겐 사랑받고 사랑해 줄 가족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목이 말랐다. 그리고 그는 그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을 죽였다.

선덕여왕이나 태종무열왕릉에도 이런 장식은 없었다.

김유신장군묘를 둘러 치장한 십이지신상이 화려하다.

 
그러나 스승을 기쁘게 하려고 저지른 행동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스승 문노를 잃은 것이다. 그는 더욱 외로운 존재가 되어갔다.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냉소 뒤엔 늘 쓸쓸한 고독의 그림자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었다. 자기가 미실 새주와 진지왕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비담을 냉혹한 야심가로 만든 것은 바로 스승 문노다

게다가 스승 문노가 자기를 덕만공주와 혼인시켜 왕재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문득 어린 시절 일이 떠올랐다. "여기 내가 만드는 이 삼한지세는 모두 너를 위한 것이란다. 모두 네 것이야." 아, 내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고독한 방황의 삶을 살아왔단 말인가. 

이때부터 비담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비재에서 보여준 그의 야비한 행동은 모두에게 경악과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생모 미실은 그런 그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다. 미실은 자기가 덕만공주에게 잘 보여 사욕을 채우려다 일을 그르쳤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지독한 모욕감을 느낀 비담은 수치심과 분노로 몸을 떤다. 

믿었던 스승 문노도 이미 자기에게 마음을 돌렸다는 사실을 눈치 챈 비담, 이제 그가 가야할 길은 어디일까? 그러나 여러분. 모두가 비담을 탓하고 있지만, 사실은 비담을 이렇게 만든 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한다. 그 첫 번째 원흉은 다름 아닌 비담의 생모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갓난아기를 버렸으며 그 아기의 생부도 죽음으로 몰았다.

비담으로 보자면, 단란한 가정을 빼앗은 것이다. 정상적으로 양육되고 교육받을 터전을 박탈당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원흉은 문노다. 미실에 비해 문노의 죄는 더 크다. 아이를 데려갔으면 제대로 키웠어야 한다. 자신 없으면 데리고 가지 말았어야 옳다. 그런데 문노는 비담을 데려다가 고독과 분노만 가르쳤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 

선덕여왕 세트장에서 김주완 기자와 거다란닷컴 커서. 커서님의 SUV 구입 기념으로 경주에 다녀왔다.


어린아이에게 고독이 얼마나 지독한 형벌인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린아이에게 자신을 보호해줄 울타리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존재가 불분명한 고독은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없게 한다. 대신 자리 잡게 되는 것은 세상을 향한 냉소다. 비담의 행동은 바로 그 냉소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렇다면 앞으로 비담의 운명은?


그럼 유신의 진심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우선 서현공과 만명부인이라는 든든한 부모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자신이 속한 자기 정체성의 뿌리인 가야세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유신의 진심이 기개와 이상으로 승화되고 비담의 냉소가 비굴한 야심으로 추락한 것은 이로부터 비롯된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복야회의 수장 월야의 야심과 비담의 야심을 비교해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월야의 야심은 역시 유신과 마찬가지로 진심에 기반하고 있다. 결국 진심이란 개인적인 욕심으로부터 나올 수는 없는 것이며, 매우 사회적인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유신과 월야와 달리 구속될 세력이 없다는 것은 비담의 크나큰 불행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것을. 운명이 루비콘 강을 건너 저 멀리 달려가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후일 비담과 함께 반란을 주도할 염종이 왜 문노의 명으로 삼한지세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도박장에서 이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고 있는 비담, 구름 속에 몸을 숨긴 신선처럼 느껴지던 문노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불안하다. 

등하불명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대체 작가는 운명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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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선도동 | 김유신장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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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우리는 선덕여왕을 통해 신라가 얼마나 성적으로 개방된 사회인가 하는 걸 알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신라민 전체에 해당되는 건 아니고 골족, 즉 성골과 진골귀족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개방적인 성풍속은 이미 오래전부터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처용가를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처용가는 개방적인 성풍속과는 좀 다른 면이 있습니다. 사실은 아내의 외도를 눈 감아주는 마음 넓은 처용에 대한 이야기지요. 이에 감복한 도깨비(역신)가 은혜를 갚는 뜻에서 처용의 그림이 붙어있는 집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는 룰을 세웁니다. 그러나 어떻든 이런 처용의 관용은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대목입니다.

신라에 이어 등장한 고려왕조도 성풍속이 개방적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면 족내혼에 관해선 신라보다 더 발달했을지도 모릅니다. 고려왕실의 족내혼은 왕씨 정권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려 4대 임금 광종은 족내혼을 권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지방 호족세력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근친혼을 통한 결속은 필수였을 것입니다. 

엊그제 <선덕여왕>에서 비담과 덕만공주의 혼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문노의 계책이었지만, 족내혼에 관한 좋은 예시가 될 수 있겠습니다. 비담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진지왕과 도화녀의 아들인 비형과 실존인물 비담의 합성모델로 진지왕과 미실 사이에서 난 아들입니다. 즉 진평왕과는 사촌지간이란 얘기죠. 덕만공주에게는 5촌 당숙이 됩니다.  

우리나라 민법에는 8촌 이내의 친족은 결혼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4촌 이내의 친족이 아니면 결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일본법으로 말하면 지금이라도 덕만과 비담은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불법입니다. 2005년 이전에는 동성동본간 결혼도 불법이었습니다. 이런 법외혼 관계는 부정기적인 정부의 특별법을 통해 구제받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이 민법규정(동성동본 금혼법)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이 일어나자 유림에서는 "동성동본금혼제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단군건국초부터 전래되면서 관습화된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으로서 전통문화의 하나" 라고 주장했지만, 최근 드라마 천추태후나 선덕여왕을 보면 이런 주장들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어쨌든 고려시대까지도 근친혼은 불법이 아니었으며 위에서 말한대로 권장되기까지 했습니다. 신라시대는 1부1처제 사회였습니다. 물론 고려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왕은 달랐을 것입니다. 왕은 나라를 통치하지만 한편 자손을 번창시켜 왕실을 안정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이는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왕들은 여러 명의 부인을 두는 것입니다. 미실의 경우에 색공을 드는 여인이란 특수한 신분을 빼면 그녀도 1부1처제의 원칙에서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만약 미실이 그녀의 계책대로 황후에 올랐다면 어땠을까? 이건 좀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랬다면 세종과는 이혼해야 되겠지요. 아무리 미실이지만 두 사람과 결혼관계를 유지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상대는 일국의 황제입니다. 미실과 설원공의 관계는 단지 연인관계일 뿐입니다. 미실과 설원공의 사이에서 난 보종은 실제 친자관계를 인정하여 미실의 아들로 인정 받습니다만, 설원공은 그저 연인일 뿐입니다. 세종이 묵인하고 있을 뿐이죠. 기분 나쁘면 이혼할 수도 있겠으나, 이사부 장군의 아들 세종은 감정보다는 권력을 택했습니다.

어쩌면 미실보다 세종이 더 무서운 사람입니다. 아니라구요? 멍청해서 그렇다구요? 음,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렇습니다. 하긴 드라마에서 세종과 하종 부자는 좀 멍청하게 그려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욕심은 배밖에 나와 왕이 되고 싶어 안달입니다. 다 미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요. 하여간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대체로 멍청합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왕족은 철저하게 족내혼을 통해 혈통을 보존합니다. 현 아키히또 일왕이 역사상 최초로 왕족 외의 여자와 결혼했다고 해서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앞서 제 블로그에서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이같은 족내혼 또는 근친혼은 최근 들어,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000년대 들어 TV사극에 자주 등장합니다. 


태조왕건, 제국의 아침 그리고 가장 최근엔 천추태후, 이 천추태후는 그야말로 근친혼을 다룬 드라마라 할 만큼 본격적이고 노골적이었습니다. 사촌형제들이 결혼을 하거나 숙질 간에 혼인을 하는 예는 허다한 일에 속합니다. 심지어 자매가 동시에 왕후로 간택되어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경종에게 시집 간 천추태후와 헌정왕후가 그렇습니다. 

경종과 이들 두 자매는 사촌지간입니다. 경종이 죽자 헌정왕후는 숙부인 왕욱과 연애를 하게 되고 그 사이에서 아들을 얻게 되는데 이가 곧 대량원군입니다. 그리고 이 대량원군이 강조의 정변으로 실각한 목종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데 바로 현종입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왕욱과 헌정왕후는 결혼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들 두 사람은 연인었지만, 부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왕실은 그들 사이에서 난 아들을 왕족으로 인정하여 대량원군이란 칭호를 내리고 마침내는 왕좌에까지 앉혔습니다. 법도보다는 혈통을 중시한 것입니다.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법도 위에 신국의 도가 있다." 김대문의 조부인 예원공은 유학에 심취하여 근친간 결혼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그의 모친이 타이르며 한 말입니다. 신국의 도. 도대체 이 신국의 도란 무엇일까요? 예원의 모친이 말한 바처럼 인간의 도리보다 위에 두었다는 것은 국가의 존망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천추태후>에서는 목종이 물러나고 현종이 등극했습니다. 그리고 현종이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선대왕인 성종의 딸과 혼인을 합니다. 성종으로 말하자면 현종의 어미인 헌정왕후의 오라비이니 성종의 딸은 모계로 보면 4촌지간입니다. 그러나 현종의 아비 왕욱은 성종과 헌정왕후의 숙부가 되니 부계로는 5촌 당숙이 되는 것입니다.

이 국혼으로 다시 실권을 잡은 성종대의 경주 유학파들은 여세를 몰아 천추태후를 탄핵하며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 사유가 장히 헛갈립니다. 천추태후가 사통을 하였다고 하지만 그들이 세운 현종 임금 역시 천추태후의 동생인 헌정왕후가 사통을 하여 낳은 혼외 자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현종은 결코 왕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지요. 

드라마가 역사를 각색하다 보니 일어난 혼선이라고 보여집니다.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천추태후와 김치양을 역도로 몰아 처단하는 것으로 끝냈다면 간단한 것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어쨌든 고려시대에도 신라의 신국의 도와는 좀 다르겠지만 그 비슷한 사상이 통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근친혼도 결국 역사의 산물이었다, 이런 말입니다.

천 년도 훨씬 전의 일을 이해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당시에는 친형제 자매가 아니고선 혈족이란 유대감도 별로 없었을지 모릅니다. 삼촌이니 사촌이니 하는 개념조차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개념들보다는 신국의 도가 우선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대체 그 신국의 도란 무엇이었을까요?  

근친혼에 '도'라는 거창한 의미까지 부여한 걸 보면 어떤 특별하고 심오한 사상이 숨어있었던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우리는 진흥왕이 국선 문노를 불러 국조의 예언에 대해 말한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덕여왕이 30회를 넘겼으니 벌써 넉 달 전의 일이라 까마득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 국선 문노는 진흥왕으로부터 국조의 예언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계양성이 둘로 갈라지는 날, 즉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개양자가 온다는 예언입니다.


베일에 싸인 진흥왕의 지시는 무엇이었을까

개양자를 진흥왕은 미실에 대적할 자라고 했습니다. 그가 오기 전에는 아무도 미실에 대적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매우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껏 문노를 기다려왔던 것입니다. 그가 비밀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가 나타나는 날 우리는 베일에 가려진 비밀을 알게 될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타날 듯 말 듯 하면서 속을 태우더니 드디어 다음 회부터는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문노가 품고 있는, 진흥왕으로부터 받은 예언이 무엇일까 궁금증을 더욱 부채질합니다. 그런데 예고편에 잠깐 나타난 그의 발언을 보면 무언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예감할 수 있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진의 전략 중 하나가 비밀을 슬며시 흘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궁금증을 부채질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작전을 썼습니다. 문노가 비담으로부터 덕만이 왕이 되려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덕만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덕만공주가 왕이 되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소."

그 다음 하나의 비밀이 더 있습니다. 문노는 소화를 만나 따집니다. "왜 허락도 없이 사라진 것이냐?" 소화가 대답합니다. "비담과 혼인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비담과 혼인을 시킨다고? 도대체 누구와? 이미 현명한 시청자들이라면 모두 눈치 챘을 것입니다. 문노는 덕만을 비담과 혼인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덕만을 비담과 혼인시키겠다는 문노의 계획

자, 우리는 이쯤에서 비담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비담은 물론 미실의 아들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가 만들어 낸 픽션에 불과하지만,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비담은 그 출신성분이 철저하게 가려져 있습니다. 원래 역적의 이름은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법입니다.  

비담이 선덕여왕 말년에 상대등이었다는 사실로 보아 그가 진골귀족이었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골이 씨가 마른 상태에서 그는 왕이 될 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드라마의 설정대로라면 그는 진지왕의 아들이며 진흥왕의 손자입니다. 당대 최고의 실력자인 미실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황후전을 주지 않는 진지왕에 분개한 미실은 비담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버린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후에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비담이 나타날 때까지도 그리고 지금도 사실은 비담이 미실의 아들이란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 단지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을 통해 시청자들이 미리 그렇게 짐작한 것일 뿐입니다. 아이러니지만.

그런데 문노는 언제 어떻게 비담을 데려다 키웠던 것일까요? 이건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나 곧 풀리겠지요. 왜 문노는 비담을 데려다 키웠을까? 자신의 절세무공을 전해주면서까지 악녀 미실의 아들을 거두었을까? 나는 이 대목이 가장 궁금했습니다. 거기에 하나의 미스터리가 더 있습니다. 문노는 왜 비담을 장래에 덕만과 혼인시키려 했을까?

악녀 미실의 아들 비담을 거둔 문노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거 정말 궁금해 죽겠습니다. 문노의 행보가 과연 진흥왕으부터 전해 받은 국조의 예언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소화가 돌발행동을 함으로써, 사실 돌발행동이라기보다는 문노의 계획에 찬동할 수 없었던 소화의 착한 마음 탓일 수도 있겠지만, 문노의 (원대한?)계획은 어그러지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문노의 계획은 무엇이었을까요? 혹시 미실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진지왕의 아들이기도 한 비담과 진평왕의 딸이며 계양성의 운명을 타고난 덕만을 혼인시켜 미실에 대항할 계획이었던 것일까요? 그런데 소화가 문노의 치밀한 전략에 뒷통수를 때렸고, 20년이 지나 갑자기 나타난 덕만은 예언을 조작하여 자기 자리를 되찾는 이변을 만들었습니다. 

문노로서는 매우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에겐 매우 흥미진진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비담과 유신이 벌이게 될 마지막 월성전투, 비담의 난과 맞물려 추리해보는 문노의 비밀, 도대체 문노가 알고 있는 국조의 예언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예언을 관철하기 위해 문노가 벌인 계획은 무엇이었을까요? 다음주가 기대됩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마침내 저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하하. 좀 쑥스럽긴 하지만 이 정도 제 자랑으로 시작하는 걸 너무 나무라진 마십시오. 이것도 다 블로그를 하는 보람 중에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덕만의 이이제이 전략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예언은 예언으로 깬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은 덕만이 쌍생의 하나란 사실을 밝히지 않고서는 자신의 신분을 회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쌍생의 예언을 인정해야만 한다면 결국 쌍생의 예언을 저주가 아닌 복음으로 만드는 방법 외엔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죠.
 

저는 그래서 총명한 덕만이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 새로운 예언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입니다.<7/29,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
http://go.idomin.com/288 8/19, 선덕여왕, 다음주를 예언하는 즐거움 http://go.idomin.com/343> 물론 성골남진의 비문에 이어 개양성의 비밀을 밝히는 새로운 예언이 나타날 수도 있었습니다. 이미 진흥왕이 죽기 전에 국선 문노에게 전한 개양성의 예언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덕만이 스스로 예언을 만드는 게 아니라 국조 혁거세나 진흥왕의 예언이 나타날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드라마 선덕여왕》은 결국 덕만이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걸로 만들었습니다. 그게 더 멋있습니다. 미실의 계략을 역이용하는 기발한 전략, 이것이야말로 덕만이 신라의 왕으로 등극하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는 증좌가 되겠습니다. 이런 덕만의 지혜는 유신과 알천을 비롯한 신라 인재들이 진심으로 충성을 하도록 만들게 될 것입니다. 결국 덕만은 천명이 아니라 스스로 왕이 되는 것이죠. 스스로의 힘으로 말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왕입니다.

자, 그런데 덕만이 만들어낸 혁거세 거서간의 예언이 담긴 비문, 거기엔 개양성이 하늘로 돌아가면 일식이 일어나고 이어 개양성이 다시 서니 신라에 새로운 하늘이 도래한다고 씌어있습니다. 개양성이 하늘로 돌아갔다는 것은 천명공주가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식이 일어나면 나머지 하나의 개양성이 스스로 다시 선다고 했으니 이는 덕만이 공주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뜻이죠. 개양성이 자립하고 새로운 하늘이 도래한다는 것은 덕만의 의지입니다,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그런데 덕만이 일식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미실과 월천대사가 하는 말을 엿들었나요? 저는 한 번도 선덕여왕 보기를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어제는 <블로거스경남>에서 주최하는 블로그 강좌(강사 : 독설닷컴 고재열 기자)가 있어 보지 못했지만, 오늘 인터넷에서 500원 주고 봤습니다. 하여튼 어떤 일이 있어도 저는 선덕여왕을 빼먹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덕만이 어떻게 일식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그게 궁금하네요. 제가 벌써 치매기가 있는 것인지…. 

어쨌든 월천대사도 일식이 일어난다고 했으며, 그 사실을 미실에게도 말했습니다. 게다가 덕만이 만들어낸 혁거세 거서간의 예언이 담긴 비문에도 일식이 일어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일식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혁거세 거서간의 비문은 가짜가 되거나 아니면 개양성이 자립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식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고 또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덕만은 비담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면서 일식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일식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실이 믿게 해야 한다고 주의를 줍니다. 자, 여기서 주목해 봅시다. 비담은 일식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정 앞에서 신통력을 선보이며 백성들의 이목을 모은 후에 개양성의 예언이 담긴 비문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미실 앞에 붙들려 갑니다. 미실에게 잡혀가는 것이 목적이었죠. 그리고 미실에게 일식이 일어날 것임을, 그리고 그 날짜를 내가 알고 있음을 믿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실이 어떤 사람입니까? 상대의 심중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난 계략가입니다. 그래서 비담에게마저 일식은 없을 것이라고 속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미실은 덕만이 자신에 필적할 지모와 방략을 지녔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미실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예고편을 보면 미실은 일식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다고 합니다. 이 대목은 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입니다. 미실은 이미 미생공과 월천대사로부터 일식이 있을 것임을 암시 받았습니다. 다만, 그 날짜를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선 정광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을 뿐입니다. 

만약 오늘 드라마에서 정말 미실이 일식이 없다고 선언한다면 이는 미실의 실수가 아니라 드라마 제작진의 실수입니다. 미실이 갑자기 그렇게 멍청해진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미실의 다른 숨은 의도가 있든지. 하여간 덕만, 정말 대단합니다. 미실을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자신의 명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비담마저 속입니다. 좀 비유가 아름답지 못하긴 합니다만, 옛날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이 생각납니다. 

맥아더의 이 작전은 손자병법에도 나오는데 유명한 동성서취 전략이죠. 원산을 공격할 것처럼 하면서 인천으로 갔던 겁니다. 원산공작에 투입되었던 특공대원들은 죽을 때까지도 원산상륙작전을 믿었을 것입니다. 2차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성'에 투입된 어떤 임무조에게도 절대 '서취'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철칙입니다. 비담이 투입된 것은 상대를 기만한다는 의미에서 결국 동성작전입니다. 덕만이 얻고자 하는 서취가 어떤 것인지 비담은 알지 못합니다. 

덕만은 이미 미실의 잔머리 수준을 여러 차례 보았고 잘 알고 있습니다. 잔머리에는 잔머리로…. 그러나 덕만의 잔머리는 기가 막힌 반전이 담긴 절묘한 것입니다. 거기다 자신의 명으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하에게마저 속임수를 쓰는 냉정한 가슴마저 지녔습니다. 이제 차츰 미실보다 더 무서운, 미실보다 더 미실다운 덕만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오싹해지는군요. 그러나 미실의 꾀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이용되지만, 덕만의 꾀는 사람을 살리는 데 이용됩니다. 

그러므로 예고편에서 보여준 비담의 최후는 이루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덕만이 반드시 비담을 구하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죠. "나는 너를 구할 수 없다. 살고 싶다면 네 힘으로 살아라!", 라고 말했지만 덕만이 그렇게 모진 사람이 아니죠. 부하를 사지로 몰아놓고 가만 있을 우리의 선덕여왕이 아니란 건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 가게를 잃을 수 없다며 버티는 백성들에게 무장특공대를 투입해 죽게 만드는 어떤 대통령하고는 차원이 다른 지도자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비담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죠. 역사에서 비담은 선덕여왕과 같은 해 죽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비담은 결코 죽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드라마고 작가의 마음이 엿장수 마음과 같은 것이라지만 실존인물의 죽음까지 조작할 수는 없는 일일 테지요. 아무튼 오늘 밤이 기대 됩니다. 흐흐~ 그나저나 우리의 문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이런 중요한 때 나타나지도 않고 말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서 진흥왕이 남긴 경천동지 할 예언이라도 선포하려고 준비 중인 걸까? 궁금해 죽겠네요. ㅋㅋ 
 

ps; 오늘 드라마를 보니 비담 뿐 아니라 유신과 알천, 진평왕과 황후 마야부인, 김서현과 만명부인 등 자기를 뺀 모두를 속였네요. 완전 클라이막스였습니다. 재미있고 시원하네요. 으하하~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벌써 비담의 난이 일어났다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그저 괴담이다. 아직 덕만이 왕위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괴담을 충분히 지어낼 만한 사정이 벌어졌다. 어제 막판에 등장한 비담으로 인해 선덕여왕은 온통 비담 얘기로 들끓었다. 다음뷰 베스트란은 4일 오전 한때 1위부터 10위까지 7~8개가 선덕여왕 리뷰에 덮였다. 하재근블로그의 말처럼 가히 비담의 난이다.
 

선덕왕 오른쪽에 미실 모자가, 왼쪽에 천명 모자가 섰다. 덕만을 등지고 고개를 돌린 유신의 포즈가 의미심장하다.

 
사실 유신랑이 지금껏 보여준 태도는 매우 미심쩍었다. 시청자들이 바라는 유신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강인한 결단력과 추진력, 탁월한 리더십을 보고 싶었던 시청자들에게 유신은 너무 미적거렸다. 우유부단했다. 천명과 덕만이 처한 상황이 그저 결단과 투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건 모두들 안다.

그래서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오기보다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유신의 태도가 조금 불만이긴 해도 그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유신에게서 기대하던 모습을 느닷없이 출현한 비담이 보여주고 말았다. 시청자들은 당연히 열광했다. 비담은 등장하자마자 영웅이 되었다.

자, 그런데 비담이 어떤 인물인가? 비담에 대하여 구체적인 역사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사기나 유사에서 비담이 선덕왕 말년에 난을 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다. 비담이 난을 일으킬 때 그의 신분은 상대등이었다. 상대등은 진골귀족이 아니면 오를 수 없는 자리다. 상대등 뿐만 아니라 17관등 중 5등 이상에 진골이 아니면 오를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신라는 진골귀족, 즉 왕족들의 연합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였다. 화백회의의 존재는 왕이 중앙집권을 통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대등은 이런 신라사회에서 국사를 총괄하는 한편 화백회의라는 귀족회의의 의장 역할을 하는 막중한 자리였다. 소위 일인지하 만인지상을 넘어 왕을 견제하기도 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상대등은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하고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왕권이 강화되어 국왕이 귀족회의를 주재하지 않게 되면서 만들어진 제도이므로 일면 왕권강화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완전한 중앙집권에 이르지 못했음의 반증이기도 하다.)

상대등이 왕에 의해 임명되는 형식적 절차를 거치긴 하지만 '귀족 내부의 세력관계나 골품에 따른 서열에 따라 임명자가 정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비담이 난을 일으킬 당시 상대등의 지위에 있었다는 것은 다른 한편 그가 가진 권력기반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왕이 될 수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사실 신라라는 특수한 나라에서 귀족계급에 속해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중고시대의 신라는 '왕'이 아니라 '왕과 (진골)귀족계급'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였다. 이런 상황에서 왕위계승권을 안정적으로 확정하기 위해 성골이란 제도가 창안된 것인지도 모른다. 

MBC 선덕여왕은 바로 이 성골남진의 위기상황에 착안한 드라마다. 물론 이처럼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소재를 제공한 것은 삼국유사와 필사본 화랑세기였다. 그러나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 파란을 일으키는 비담은 MBC 드라마팀의 작품이다. 비담은 실존인물이다. 그러나 비담의 가계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담은 김유신의 연날리기 전술로도 유명한 월성전투에서 패한 후 구족이 멸하는 참화를 입었다. 비담의 이름을 입에 담을 만큼 간이 큰 자가 누가 있었을까. 비담은 김씨 족보에서도 사라진 것이다. 비담의 난을 제압한 김유신과 김춘추는 명실상부하게 신라의 패권을 장악했을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진덕여왕마저 후사가 없이 죽은 후 김유신이 화백회의에서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했을 때 반대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물론 화백회의는 만장일치제이므로 반대가 있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미 화백회의가 열리기 전에 사태는 결정난 것이 아니었을까? 처음에 상대등 알천이 귀족들로부터 왕으로 추대를 받았으나 스스로 나이 들고 덕이 없음을 들어 사양하고 대신 김춘추를 천거했다고 하지만, 이 모든 정황의 근저에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성장한 신흥 진골귀족 김유신이 있었다.)   

그런데 MBC가 비담의 가계를 살려냈다. 비담은 진지왕과 미실의 아들이라는 설정이다. 참으로 기발하다. 실상 미실이 선덕여왕 집권 말년까지 살아서 대결구도를 펼쳐간다는 것은 아무리 픽션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미실이 덕만과의 대결에서 패하고 사라진 후에도 마지막까지 미실의 세력을 대표해 덕만과 대결을 벌일 인물로 드라마는 비담을 선택한 것이다. 

비담이란 캐릭터는 실존인물 비담과 진지왕과 도화녀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비형을 합성한 모델로 보인다. 실제로 삼국유사는 비형이란 인물에 대해 지금 드라마에서 비담이란 캐릭터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신비하면서도 괴팍한 인물이었다고 전한다. 비형이 진지왕이 폐위되고 유폐된 상태에서 출생한 비운의 인물이었다는 점도 역시 닮은 부분이다.  

그러나 아무튼, 비담의 출현은 드라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유신도 이제 더 이상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일 수 없게 되었다.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자신과 겨룰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으니 그도 이제 뭔가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변화의 암시를 비담과 더불어 등장한 문노가 우리에게 슬쩍 던져주었다. 

오늘 드라마에서 유신이 홧김에 도끼를 집어던지자 장작 패는 받침나무가 쩍하고 갈라진다. 그걸 본 문노가 놀라운 눈으로 유신의 손을 살피며 말한다. "자네는 스승도 없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들어 냈다니… 대단하군. 자네 혹시 누군가와 검술 대결을 해본 적이 있는가? (유신이 고개를 흔들자) 그렇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군." 

비담은 문노라는 걸출한 스승을 만나 놀라운 무공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유신은 스승도 없이 오직 혼자의 힘으로 비담에 견줄 무공을 얻었던 것이다. 곧 덕만의 정체를 문노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유신에게 절정의 무공을 전수해 줄 스승을 만난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리하여 우리는 보다 업그레이드된 유신의 새로운 포스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선덕여왕의 비밀병기 문노와 비담이 공개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춘추다. 김춘추는 유신과 더불어 선덕여왕의 한 팔이다. 유신이 무력을 대표한다면 춘추는 정치를 대표한다. 김춘추는 잘 생긴 외모와 타고난 달변으로 사람의 혼을 빼앗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그가 고구려와 왜를 거쳐 당나라에까지 외교행전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타고난 재주 덕이었다.  

비담의 출현을 반란에 비유한 괴담은―그것이 그저 배우들에 대한 비평의 의도였다 하더라도―매우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비담의 출현으로 반란은 시작된 것이다. 비담이 진지왕과 미실의 아들이란 설정부터가 반란이며, 덕만과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운명이란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거기다 비담은 미실의 잔혹한 성격을 그대로 빼닮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특히 미실이나 비담처럼 사람의 목숨을 자기 기분에 따라 어찌할 수 있는 성품의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들에겐 이루어야할 정의보다는 물보다 진한 피가 더 중할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백성들의 피울음 따위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백성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억압과 고통 속에)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라고 말하는 미실과 고작 자기가 먹을 닭고기를 못 쓰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검을 휘둘러 살생극을 벌이는 비담, 이들 모자는 결국은 상봉하고야 말 운명이 아니겠는가. 바야흐로 양 진영의 전열이 정비되고 있다. 다음 주가 기대된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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