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자동차'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2.06.21 중년의 유시민이 쓴 풋내기 유시민의 독서 by 파비 정부권 (8)
  2. 2010.01.06 파스타, 셰프의 집단정리해고 유감 by 파비 정부권 (50)
  3. 2009.12.28 정리해고 농성장에 세워진 크리스마스트리 by 파비 정부권 (7)
  4. 2009.12.13 대림차와 지역노조 양쪽에서 눈총받는 천막농성 by 파비 정부권 (2)
  5. 2009.11.29 대림차, 어린아이에게 해고장 전달 울음바다 만들어 by 파비 정부권 (8)
  6. 2009.11.28 대림차노조, 대량 정리해고에 맞선 맛있는 파업 by 파비 정부권 (9)
  7. 2009.11.28 오마이뉴스 대림차 파업보도, 조중동 닮았나 by 파비 정부권 (4)
  8. 2009.11.28 대림차 정문 앞에 3주째 천막을 치고 사는 까닭 by 파비 정부권 (11)

『청춘의 독서』, 유시민 전 장관이 쓴 책이다. 유시민은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다. 내가 유시민이란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스물다섯쯤 되었을까, 그때 나는 공장노동자로 일하던 한창 나이의 젊은이였으며, 노조 활동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비밀지하조직의 일원이기도 했다. 참 우스운 것은, 그 비밀조직이란 것이 기껏 오늘날의 진보신당이나 민노당 정도의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결사체였다는 점이다.

청춘의 독서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유시민 (웅진지식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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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첫 작품, 항소이유서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어떤 면에선 더 유연한 사고의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그 조직에서 유시민이란 사람이 썼다는 <항소이유서>란 문건을 읽어보길 권했다. 비밀조직이었던 만큼 차라리 요구이거나 지시라고 해야 옳을 수도 있었던 그 권고를 나는 충실히 이행했다.


어쨌든 나는 무언가를 읽는 것을 세상의 낙으로 생각하던 사람이었으므로, 그 권고는 썩 마음에 내키는 것이었다. 더욱이 특별한 방향이나 지침도 없이 닥치는 대로, 마치 그저 무언가를 읽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는 듯이 독서를 즐기던 내게 그런 권고는 위험한 바다를 떠도는 뱃사람들의 머리위에서 빛나는 북극성처럼 흡족한 것이었다.


오늘 다시 그 문건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당시 그 문건이 던져주는 힘과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삶은 그 문건에서 내가 느꼈던 힘과 감동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물론 그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그가 존경하는 노무현과 그가 딛고 선 땅은 우리 같은 약자들이 묻힌 세상과는 달랐다.

그들이 권력을 쥐고 개혁을 추구하던 시대에도 여전히 노동자들은 해고와 구속에 시달렸고, 농민들은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쌀을 불태우고 얼어붙은 배추를 추운 눈밭에 버렸다. 모든 진보세력들이 한미FTA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일 때, 노무현은 섭섭한 마음을 TV에 나와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유시민은 그 섭섭함의 대변자였다.


중년의 유시민이 쓴 『청춘의 독서』

그 유시민이 책을 냈다. 바로 <청춘의 독서>다. 그리고 나는 지금 대림자동차 정문 앞 ‘대량정리해고 반대 진보신당 천막농성장’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역시 유시민의 글은 명문이다. 세월의 파고를 넘어온 그의 글에선, 이제 그가 스스로 ‘풋내기’였다고 고백한 젊은 시절의 위험한 선언보다는 차분한 성찰이 돋보인다. 그럼에도 현실주의자가 된 그의 글 곳곳에선 여전히 ‘풋내기’ 이상주의자의 면모가 스며있다.


그게 사랑스럽다. 나는 아직 그의 책을 다 읽지 않았다. 겨우 첫 장만을 읽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서둘러 이 서평을 쓰려는 이유는 그 첫 장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기 때문이다. 풋내기 고교생 유시민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과 감동은 세월이 흘러 현실주의자가 된 중년의 유시민의 눈으로 <청춘의 독서> 첫 장에서 재해석된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살인자다. 그는 도끼로 전당포 노파를 죽였으며, 예정에 없이 나타난 배다른 노파의 여동생 리자베따마저 죽였다. 그의 이 엽기적인 살인은 그러나 ‘초인론’이란 이름으로 포장된다. 말하자면, 선한 목적을 위한 악한 수단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전당포 노파 알료나는 악인이었다. 그녀는 아마도 세익스피어가 묘사한 베니스의 샤일록 같은 존재였을 터이다.


게다가 노파는 배다른 여동생 리자베따를 하녀처럼 부려먹었고 그녀가 부업을 해 번 돈까지 빼앗았다. 이런 이야기를 어느 술집에서 우연히 엿듣게 된 라스꼴리니꼬프는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돈을 빼앗기로 결심하고, 이를 결행한다. 그는 ‘악을 응징하고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악행을 택한 셈이다. 그리고 유시민이 표현한바, 이 ‘초인정신’은 후대에 스탈린과 히틀러에 의해 현실세계에서 발현되었다. 


세상은 비범한 사람들에 의해 구원될 수 있을까

유시민에 의하면 라스꼴리니꼬프처럼 스탈린, 히틀러는 ‘비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류를 구원하려는 신념에 입각해 모든 종류의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부여받은, 혹은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라스꼴리니꼬프가 이들 ‘비범한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끔찍한 정신적 번민과 고통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반대로 스탈린과 히틀러, 이들의 지시를 받아 대량학살을 저질렀던 수많은 부하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런 양심적 가책의 증거도 찾을 수 없는 그들이 그러한 죄악을 저지른 결과 어떤 선한 목적도 이루지 못했다는 증거도 너무나 명백하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고 믿었던 ‘비범한 사람들’의 실패한 악행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선이라고 매듭짓는 유시민의 결론은 유려한 문체와 더불어 빛난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 누가 이 마지막 명제에 반박할 수 있을까.


자, 그런데 나는 이 유려하게 빛나는 첫 장을 읽으며 왜 진한 아픔을 느꼈는가. 그것은 아직도 여전히 목적을 위해 악한 수단이 정당화되는 악행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악행에 저항하는 모든 수단이 역으로 악으로 간주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유시민은 여기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자기 성찰로 성숙한 현실주의자 유시민이 아니라 ‘풋내기’ 유시민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들이 든 것은 대림차 정문 앞 농성장에서 한 해고노동자의 피맺힌 절규를 들었을 때였다. 그는 “악질적인 대림자본의 정리해고에 맞서 우리는 더 악해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저들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정리해고 되어 돌아갈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디에 회사에서 쫓겨난 우리를 따뜻이 맞아줄 세상이 있습니까. 여러분, 저들이 악랄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악해져야 살 수 있습니다.” 


풋내기 유시민이었다면?
정리해고와 비범한 자들의 대량학살을 어떻게 비교했을까


‘기업의 입장’이란 이름 아래 자행되는 대량 정리해고는 대량학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과연 ‘풋내기’ 시절의 유시민이었다면 이런 사태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무어라고 말할까. 자기성찰이 부족한(!) 젊은 날의 그였다면 대량학살에 다름 아닌 정리해고를 남발하는 이 나라 ‘기업의 입장’이야말로 처단 받아 마땅한 노파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아니, 성숙한 현실주의자 유시민이라도 마찬가지다.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업의 입장’은 스탈린과 히틀러 같은 비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행이며, 결코 선한 목적조차도 이룰 수 없다고 외쳐야 마땅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 비범한 사람들의 악행이 멈추지 않는 제도화된 악의 나라라고 외쳐야 마땅하다. 그러나 성숙한 현실주의자 유시민은 그저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고 반박할 수 없는 옳은 말만을 할 뿐이다.


아마도 ‘풋내기’ 유시민이라면 “라스꼴리니꼬프의 초인론으로 현실화된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체주의에 맞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동등한 인권과 참정권을 부여하고,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의사결정권을 위임하는 민주주의 체제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따위의 말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기적인 자기 목적을 위해 악행을 일삼는 자본에 맞서 우리도 스스로 악해져야만 합니다.”

19세기의 도스토옙스키는 민주주의가 승리하는 20세기 세계사를 목격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풋내기’ 시절의 이상이 퇴색한 유시민은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보지 못하는 슬픔이 있는 것이다. 현실주의자가 된 유시민이 현실을 목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있지만, 그의 글 곳곳에 나타나는 이상주의의 그림자들은 아직 그가 ‘풋내기’처럼 맑은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게 사랑스럽다. 그래서 나는 그의 『청춘의 독서』를 꼼꼼히 읽어볼 참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각 장마다 모두 서평을 달 생각이다.

<…………>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그는 글을 잘 쓴다. 대충 훑어본 『청춘의 독서』에는 몇 가지 논쟁적 지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판적 의식을 잃지 않고 잘 읽는다면, 우리의 정신세계가 한없이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이 책속에는 있다. 유시민은 국회의원도 했고 장관도 했지만, 그러나 어떤 잘난 직업보다도 그에겐 뛰어난 글쟁이란 이름이 어울린다. 그리고 그게 가장 훌륭하다. 아마 『청춘의 독서』가 그걸 증명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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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파스타>, 매우 재미있습니다. 음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 <식객>이나 <대장금>이 성공한 것처럼 <파스타>도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KBS와 SBS가 야심차게 준비한 <공부의 신>, <제중원>에 밀리지 않고 월화드라마 지대를 삼분하고 있는 것은 음식이란 성공 보증수표 외에도 공효진과 이선균의 매력이 큰 몫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일요일에 올린 <선덕여왕 떠난 자리, 누가 차지할까?>란 글에서, 치열한 삼파전이 예상되지만 <공부의 신>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나라가 가진 가장 지독한 병폐의 원천이긴 하지만 역시 채널권을 가진 아줌마들에겐 공신이 더 매력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유승호를 비롯한 아이돌 스타들은 학부형과 더불어 청소년들을 함께 불러 모으는 힘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파스타>가 크게 밀리지 않고 선전하고 있는 것은 맛있는 소재인 음식과 공효진, 이선균 커플의 매력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마 시간이 갈수록 공신의 위세가 더해지겠지만, <파스타>는 나름 일정한 지대를 차지하고 자기 역할을 다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신의 자극적인 소재에 좀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역시 맛은 파스타가 좋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재미있는 <파스타>에 칼질을 하려니 마음이 아픕니다. 물론, 극의 재미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설정이란 점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여기에 칼질을 하지 않는 것은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태리인 셰프가 물러나고 새로 취임한 셰프 최현욱(이선균),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여자 요리사들을 모두 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고급 이태리 식당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셰프든 뭐든, 함부로 직원을 해고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건 법 차원의 문제를 떠나 인간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최현욱 셰프가 벌인 대량해고(거의 절반을 해고한 셈이다)는 합리적인 이유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해고한 것입니다. 이 드라마의 주제 중 하나가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불가피한 설정이란 측면도 있지만, 그러나 요즘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량 정리해고와 실직사태를 생각한다면 좀 더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꼭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너는 해고야!" 하는 것으로 끝내야 했을까요?

해고된 막내 공효진의 근무연수가 3년이라고 했으니 다른 선배들의 경우에는 최소한 3년 이상을 근무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게 장기간을 근무한 곳에서 "너는 해고야" 한 마디에 아무 소리도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궁시렁거리기나 하는 요리사들도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집니다. 극중에 부주방장이 서유경(공효진)에게 한 말처럼 자기 권리는 자기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부당해고에 집단행동으로 맞서 싸울 용기가 없다면 최소한 노동부에 진정이라도 해야 되는 거지요. 하긴 노동부는 노동자를 통제하기 위해 있는 부서이지 보호하는 기관이 아니니까 거기 진정해봐야 별로 효과도 없겠지만. 아무튼 연초부터 집단 정리해고 사태를 재미있는 드라마를 통해 보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유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신년사에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말이 사실이라고 믿는 순진한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지금도 창원의 대림자동차에서는 정리해고에 맞선 천막농성이 두 달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이없는 것은 250여 명의 노동자를 강제퇴직, 정리해고의 방식으로 정리한 이 회사의 임원 수는 오히려 늘었다는 겁니다.

또 지난해에는 쌍용자동차의 대량 정리해고 사태로 이 사회가 크게 몸살을 앓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자신의 능력 없음을 밝히거나 둘 중 하나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TV드라마가 한 술 더 떠 이렇게 부당해고를 공공연하고 떳떳하게 공중파에 쏘아 보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작가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대본을 썼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그게 더 문제인 것이죠. 부당한 해고가 법적으로도 위법부당할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매우 나쁜 행위이며 사회를 교란시키는 중대한 범죄라는 사실에 대한 의식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커다란 불행입니다.

게다가 해고는 살인입니다. 실제로 쌍용자동차 등에서 정리해고된 이후에 발생한 자살로 인한 죽음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냥 재미로 보면 되지 무에 그런 것까지 신경 쓰냐고 타박을 하시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좋은 시대였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암울한 시대에 그냥 재미로 보기엔 너무나 가슴 아픈 일들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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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웬 농성장에 크리스마스트리냐고요? 사실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황금연휴를 맞아 사방이 고요한 이곳에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나는 불빛이 있습니다. 바로 대림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이 만들어 정문 앞에 달아놓은 ‘정리해고박살’이란 네온사인(네온사인도 아닌데 뭐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겠군요) 불빛이 그것입니다.

회사에서 해고된 사람들에겐 크리스마스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 리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크리스마스는 이들에게 매우 불편한 날입니다. 남들은 가족들과 따뜻한 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이들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의 탄생으로 온 세상이 은총을 받은 듯 환하지만, 이곳만큼은 어둡고 쓸쓸합니다.


올 크리스마스는 3일 동안의 황금연휴가 되다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저녁이면 지원 방문을 오던 지역 노동자(주로 노조간부들)의 숫자도 크게 줄었습니다. 그들도 황금연휴를 함께 즐겨야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휴일도 없이 집에도 가지 못하고 농성장을 지켜야 하는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마음은 더욱 차갑기만 합니다.


그래도 비록 회사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물론,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라고 말하지만, 그 경영상 이유란 게 대체 뭔지―쫓겨나 난장에서 떨며 밥을 먹고 대열을 지어 노래를 부르는 이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회사 정문 아스팔트 위에 술자리를 펼쳐놓고 술잔을 들며 어느 노동자가 말합니다.


“야~! 크리마스트리... 멋지네.”

“일마야, 크리스마스트리가 예 어디 있단 말이고?”

“저 안 있나.”

“오데.”

“저 정문 옆에 담에 안 만들어 놨나.”

“어? 그라고 보니 저거 진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이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나이 지긋한 노동자 한 분이 그럴 듯한 해석을 내놓습니다.


“저게 아마도 우리 눈에는 ‘정리해고박살’이라도, 남들이 지나가면서 보면 희미한 게 무슨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일기다.”


그 시간 이곳 밖에서는 주님의 은총을 찬미하는 노래가 성당과 예배당의 담장을 넘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었겠지요. 또는 상남동과 창동의 번쩍거리는 거리를 왁자한 웃음들이 누비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삭막한 이곳에서도 은총과 웃음은 역시 만들어지고 있었답니다. 그건 누구의 도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쁨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저녁, 정리해고자들이 회사정문 도로변에서 식사중이다.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님은 미리 발표한 신년사를 통해 “일자리 창출보다 중요한 게 없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역설했다고 하는군요. 신년사란 게 보통 연초에 발표하는 게 보통일 테지만 이렇게 미리 크리스마스 전에 발표하는 걸 보면 대개 똥줄이 탔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겠다고요?


그럼 이명박 대통령님, 아니 이명박 장로님, 여기 이곳 회사로부터 아무런 잘못도 없이 정리해고 당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농성하는 현장으로 한번 와보세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세요. 정말 그렇게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소망교회 목사님을 대신해 이명박 장로님은 진정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씀드리지요.


교회에 가서 ‘나는 주님의 종’이라고 말로만 하지 말고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장로님은 대림그룹 회장님과 꽤 친하시다지요? 옛날에 같은 업계에서 함께 일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이런, 그런 장로님한테 되지도 않을 부탁을 했으니 저도 참 바보로군요. 가제는 게편이라는데.

그렇다고 제가 감히 장로 대통령님을 가제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통 가제가 아니라는 거 잘 알거든요. 어쨌든 당신이 믿는(다는) 주님이 사랑하는 그 ‘사람들’을 향해 칼부림만 하는 당신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거룩하게 기도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는군요. 아, 정말 속이 불편하네요. 찬물이라도 마셔야할까 봐요.


아무튼 대림자동차 정리해고반대 농성장에는 아직도 크리스마스트리가 빛나고 있습니다. 이 빛이 지역 노동자들과 진보적 시민단체들과 정당들의 연대를 밝히는 등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만약, 그리하여 정리해고를 철회시키지 못한다면 정리해고의 칼바람은 지역 노동사회로 확산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짓을 보면 쌍용차에서 배운 경험을 이곳 창원에서 시범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아닌 확신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시범케이스가 확실합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대림자동차 경영진은 250여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을 강제퇴직, 정리해고의 방식으로 길거리로 내몰아놓고도 자기들끼리 부서별 회식을 만들어 흥청망청 연말을 보내고 있다고 하는군요. 

세상 참 더럽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오늘밤 이곳에선 여전히 크리스마스트리가 밝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대림자동차 정리해고에 반대해 진보신당이 천막농성을 한 지가 벌써 한달이 넘었다. 11월 11일에 천막을 쳤으니 한달 하고도 3일이 지났다. 정권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이 직접 노조의 투쟁에 몸으로 개입한다는 건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게 옳은 방법인지에 대한 많은 고민도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대림자동차 정문 앞 진보신당 천막농성장. 정리해고를 중단하라 만장기를 든 사람이 여영국 위원장.


나는 그 이유를 천막에서 많은 날들을 지새우며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 깨달음은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이다. 그러나 그 주관이 객관에 비해 결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주관이란 지역 노동진영의 대응이 너무 미미한 상태에서 노조의 연대를 견인하기 위해 천막농성이 불가피했다는 점이다. 

천막농성을 주도하고 있는 진보신당 여영국 위원장도 나와 생각이 같았다. 천막을 친지 딱 한 달 하고도 이틀이 지난 12월 12일 아침 문성현 전 민노당 대표가 진보신당 천막을 찾았을 때 여 위원장은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여기에 천막을 친 데는 나름 배경이 있습니다. 정당이 사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고민도 있었지만,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성현 대표는 사실상 최초로 진보신당 천막을 찾은 민노당 인사다. 문 대표가 오기 일주일 전에 권영길 의원이 잠시 천막에 들어와 인사를 하고 갔지만, 매우 의례적이었다. 그는 마치 어쩔 수 없이 진보신당 천막에 들렀다는 듯이 부랴부랴 수고한다는 말만 던지고 떠났다. 수차례 권영길 의원실과 민노당에 관심을 호소했던 여 위원장으로선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권영길 의원이 움직인 데는 나름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오해할 만한 정황도 있었다. 효성이 직장폐쇄에 맞서 두 달 넘게 파업을 하고 대림차가 정리해고에 맞서 한 달 넘게 싸우는 동안 권 의원은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울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조승수 의원이 대림차와 효성을 방문한 것이다.

대림차 농성장(좌)과 효성노조 농성장(중, 우)을 방문한 진보신당 조승수 국회의원.


여기에 자극 받은 듯 권 의원은 부랴부랴 금속노조 경남지부가 대림차 정문 앞에서 여는 집회에 참석했다. 조 의원이 대림차 농성장에 들어가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어 효성 노동조합에 설치된 농성장에 들른 다음 다시 대림차 정문에서 열리는 금속노조 집회장에 돌아왔을 때까지만 해도 권 의원이 온다는 얘기도 없었고, 진행표 순서에도 없었다. 

그런데 집회가 시작되기 불과 몇 분 전에 권 의원의 연설 일정이 맨 앞에 잡히고 조승수 의원의 연설은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권 의원실과 민노당을 향해 관심과 더불어 연대를 요청했음에도 오지 않던 권 의원은 조승수 의원이 나타나자 실로 번개처럼 나타난 것이다. 물론 고마운 일이다. 어떤 이유였든 권 의원이 자기 지역구에서 벌어지는 정리해고 사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날 연설을 마친 권 의원은 준비가 없었던 듯 현장 방문을 생략한 채, 진보신당 천막을 그냥 지나친 것은 물론이고, 왔을 때처럼 부랴부랴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 잃어버린 숙제라도 하듯이 다시 대림차를 방문했고, 바람처럼 스쳐가듯 했지만 진보신당 천막에도 들러 격려도 했다. 나는 불만은 있지만―권 의원 정도의 위상에 불만이 없다면 이상한 일임이 분명하다―그래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사실 권 의원의 관심이 부족한 것은 권 의원 만의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일개 노조의 농성에 많은 역량을 투입하는 것을 민노당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창진 통합 문제에는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할 수 있어도, 자그마한 사업장의 투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민노당 입장에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저마다 정당의 논리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옳니 그리니 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관점의 문제다. 내 관점은 옳고 네 관점은 틀렸다고 말하면 그야말로 아집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섭섭함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으로 아직 섭섭할 만큼 기대를 품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금속노조 집회에 맨 우측부터 진보신당 경남도당 이승필 위원장, 민노당 권영길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이 앉아 있다.


그래서 이런저런 애증의 갈등을 섞어 문성현 전 민노당 대표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던지, 여 위원장은 따로 귓속말로 문 대표에게 불필요한 말로 갈등을 일으키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문 대표의 말을 들으며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을 뿐이다. 

내가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그때 나는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노동자였는데, 노조 사무장이었던 문 대표는 네루가 딸에게 쓴 편지를 모은 <세계사 편력>이란 책을 읽기를 권했던 인물이다. 주로 노조 사무실에 들러 박범신의 <풀잎처럼 눕다> 따위의 소설만 빌려 읽던 내게 <세계사 편력>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나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았고 그를 무척 존경했다.  

그런 그는 아직 민노당에 남아 있고, 나는 민노당을 떠났다. 함양에 가 있다던 그가 창원에 다시 나타난 이유는 아마도 들리는 소문처럼 창원시장 후보로 나서기 위해서일 것이다. 천막에 들른 이유도, 앞으로 자주 오겠다는 이유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그의 말은 대체로 옳았다. 아니 지극히 옳은 말들 뿐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첫 만남에서 나온 의전적인 언사들을 두고 이러니저러니 평을 하는 것은 속단일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지극히 옳은 말을 들으며 나는 속에서 밀려 올라오는 갈등의 목소리를 참기가 어려웠다.
 
"문 대표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이런 이야기를 들으신다면 어떤 생각을 하실지 궁금하네요. 이런 말씀을 들으시고도 통합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지 말입니다. 당장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선거연합이라도 하자는 소리를 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엊그제 STX엔진 지회장이 대림차 지회장을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진보신당이 대림차 정문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를 해주겠다. 그런데 천막 옆에 진보신당 차는 왜 세워두는 것이냐. 그거 아주 보기 안 좋다. 그리고 여영국은 왜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민노당 보고 연대를 하자니 말자니 그딴 소리를 하는 거냐. 하려면 자기들만 잘하면 되지.'

저는 이 소리를 듣고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리는 다른 곳에서도 들었습니다. 바로 대림차 사장이 하는 소리와 똑같았습니다. 대림차 사장도 진보신당 이승필 위원장에게 말했답니다. '아니 왜 하필 여기 와서 천막농성을 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그 진보신당 트럭은 왜 그 옆에다 세워두시는 겁니까?'

천막 옆에 세워진 진보신당 탑차.


아무튼 이게 현실입니다. 민노총이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반분된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갈라진 배경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모든 걸 무시하고 통합만 주장하거나, 전술적 연합을 제안하는 것은 정치적 쇼맨십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현실을 개선하는 것부터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은 결국 하지 않았다. 괜히 얼굴을 맞대고 앉아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매우 비정치적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진심이든 의전이든 나름 예의를 차렸다면, 나도 응당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는 게 옳다. 그리고 여 위원장의 부탁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존경받아 마땅한 대선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로라도 내 심정을 밝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여 다시 심중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밝히기로 했다. 그리고 글은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보다 생각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친 김에 글 서두에 권영길 의원과 민노당에 대한 불만도 슬쩍 담았다.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분위기에서는 결코 양당의 화합적 미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은 지독한 위선이란 사실이다. 그러나 진심을 담아 한마디만 더 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그래도 문 대표님. 자주 만나십시오. 우선은 대림에서 자주 만나십시오. 양당의 이해를 떠나 당장 정리해고 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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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정리해고에 맞서 파업 중이던 대림자동차 노조원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이날 오후 7시 회사 정문에서 집회를 열고 있던 조합원들에게 계속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집으로부터 해고통지서가 날아왔다는 소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직 자기가 정리해고 대상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고 있던 조합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혼자 있던 초등학생에게 해고통지서 전달, “네 아빠는 해고야!”

그리고 잠시 후, 술렁임은 분노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조합원이 일어서서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다시 울먹이는 목소리로 절규하듯 외쳤습니다. “이게 도대체 사람이 할 짓입니까? 이건 개, 돼지보다도 못한 놈들 아닙니까?” 그의 입에서는 개새끼 소리가 서슴없이 나왔습니다.

그도 해고통지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직접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을 때까지도 자기가 정리해고자 명단에 이름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아내가 해고통지서를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의 아내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보태야하기 때문에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해고통지서는 어린 아이들이 받았습니다. 집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더 어린 아이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회사 관리자들이 방문하여 초인종을 눌렀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무서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글쎄요, 왜 무서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도 직감 같은 게 있었을까요?

그러자 대림차의 관리자들은 발로 문늘 쾅쾅 차며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우리는 너의 아빠 회사에서 나왔다. 어서 문 열고 회사에서 보내는 통지문을 받아라. 안 그러면 큰일 난다.” 겁이 난 아이들이 문을 열자 그들은 대뜸 봉투를 내밀며 “해고통지서다. 꼭 전달해야한다” 하고는 떠났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음은 물론입니다. 

울먹이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엄마가 도착했을 때 집은 울음바다가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아내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조합원이 ‘개새끼들’이라고 욕을 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순박한 대응일지도 모릅니다. 파업현장을 지키고 있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개새끼들이라고 욕을 하는 게 전부였지만, 그의 마음속에선 칼 가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면 제 귀가 너무 과격한 것일까요?
 

해고통지서에 무너진 세쌍둥이의 꿈

그러자 또 다른 조합원이 격앙된 얼굴로 자기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세쌍둥이의 아빠였습니다. 이번에 세쌍둥이는 나란히 수능시험을 봤는데, 성적이 아주 좋아서 명문대학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집안의 기대가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날벼락을 맞은 것입니다. 그는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눈앞이 캄캄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연도 있었습니다. 한 조합원은 회사 사택을 금년 초에 분양받았습니다. 회사가 구조조정 안으로 회사 사택을 매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걸 샀습니다. 3600만 원에 샀는데, 3200만 원이 빚이라고 했습니다. 그 빚은 은행 담보대출이었고, 회사가 보증을 섰다고 했습니다. 그는 황당해했습니다. “난 받을 퇴직금도 한 푼 없을 거 같아요.”  

정말 황당하지 않습니까? 회사 사택을 분양받도록 해놓고선 정리해고라니. 빚을 내 회사의 구조조정 사택을 분양받은 사람을 해고해버리면 도대체 무슨 돈으로 빚을 갚으라는 말일까요? 설마 그의 퇴직금을 노리고 집장사를 한 것은 아니겠지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대한민국이 우리나라 맞습니까?  

다른 한 분의 사연도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그는 대림자동차에 입사한지가 27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그는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입사 9년 만에 해고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9년 만에 복직했는데 그로부터 9년 만에 다시 해고됐습니다. “강산은 10년 마다 변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9년마다 세상이 변하네요.”

허탈하게 웃는 그의 얼굴엔 이미 깊은 주름이 패어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아이들만 있는 집에 쳐들어가 문을 차며 해고통지서를 전달해 울음바다를 만든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병에 걸려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는 환자를 직접 찾아가 해고통지서를 떡하니 전달했다는 사실입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그 분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중환자실에도 전달된 해고통지서, 이러고도 기업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시라?

또 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다 다쳐 공상으로 치료를 하고 있던 종업원에게도 해고통지서는 어김없이 전달되었습니다. 회사를 위해 뼈 빠지게 일하다 다친 그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요? 회사 일을 하다 다친 그가 산재치료 대신 회사가 원하는 대로 공상처리해서 치료를 하던 중에 받은 해고통지서를 그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대림자동차는 전체 종업원 665명 중에 293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발표한 다음 꾸준하게 명퇴 압력을 가해 이날 현재 184명으로부터 이미 명퇴서를 받아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60명 1차 정리해고자 명단을 통보한 것입니다. 60명 중 58명은 노조원이며 1명은 관리자, 1명은 공상휴직자입니다. 조합원 중에는 중환자실 환자도 1명 있습니다.

제가 몇 차례 대림자동차 대량 정리해고와 관련한 글을 올렸더니 어떤 분이 댓글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기업의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보시지. 참 이런 글을 읽으면… 할말 없음.” 저는 그분에게 정리해고를 직접 당한 당사자들의 심정을 들어보시고서도 역시 그런 생각이 드시는지 물어보고 싶군요. 지금도 같은 생각이신가요?

당장 죽어나가는 사람들에게 기업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보라고요? 

ps; 방금 대림자동차 정문에서 3주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진보신당 경남투쟁단장 여영국씨의 말에 의하면, 한 조합원의 집에도 관리자들이 찾아와 해고통지서 수령하라며 문을 차고 하는 통에 집에 있던 여학생이 놀라 농성 중이던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울고불고 했다는군요. 내 참… 어이 상실입니다.

일부러 그러라고 시킨 것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입니다. 정리해고자들의 마음을 아는지 지금 이곳은 오늘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하늘도 해고노동자들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Posted by 파비 정부권

제목이 좀 거시기 하군요. 맛있는 파업? 그런 것도 있었나? 이 글을 보시는 독자들 중에선 이렇게 화를 내시는 분도 있으시겠지요. "맛있는 파업이라니. 파업이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하는 것이다. 파업은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는 비장한 결의가 없이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뭐? 파업이 맛있다고?"

네, 맞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맛있는 파업도 있답니다. 아래 사진들을 감상하시고 난 다음 이야기를 계속 나누기로 하시죠.

대림자동차 노조지회장님이 숯불에 조개를 굽고 있습니다. 대림차 지회장님은 참 부지런 분이었습니다. 자기는 먹지도 않고 이렇게 지원 나온 외부 사업장 조합원들을 위해 고기를 굽고 술 부어 주고 청소하고 하느라 늘 바쁘셨습니다.


조개가 맛있게 보이시죠? 이 조개는 어느 조합원이 다이빙해서 잡아온 것이랍니다. 그러니 신선도야 두말 하면 잔소리겠죠?


큼지막한 키조개도 있고요, 전복도 구워 먹었답니다.


숯이 모자라면 이렇게 삽으로 보충합니다. 숯을 넣을 동안 들어낸 석쇠에 놓인 빠알~간 삼겹살이 살짝 보이시죠?  


이분들은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입니다. 지원 방문 왔다가 이렇게 맛있는 거 많이 얻어먹고 간다고 좋아했답니다. ㅋㅋ


자, 삼겹살과 조개만 구워 먹으면 배탈이 날 수 있습니다. 이번엔 싱싱한 생선회 맛을 볼 차례입니다. 회를 뜨시는 분은 대림차 노조지회 상집간부입니다. 아마도 정리해고 1순위가 아닐까 싶네요. 그러나 이분, 회 뜨는 솜씨를 보니 정리해고 되도 살 길은 있을 거 같습니다. 횟집 열면 되겠어요. 아니면 트럭 하나 사서 생선 실고 다니며 회만 쳐서 팔아도…


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요? 알겠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이분 회 치는 솜씨가 거의 프로급이었습니다. 그렇게 빠른 칼잡이를 저는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마산 어시장 생선회 골목의 아지매들도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답니다. 다들 아시죠? 회 맛은 칼잡이의 칼질 속도에 비례한다는 사실….  

아무튼 대림 노조에는 생선회 칼잡이들뿐 아니라 바다 물 속에 들어가 조개며 전복을 따거나 돔이나 노래미 같은 생선을 잡아오는 진짜 어부 뺨치는 어부들이 참 많았습니다.  


잘 먹고 난 다음날 아침은 컵라면으로 때운 우리에게 반가운 소식이 왔습니다. 물메기탕을 끓였으니 먹으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메기탕,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리니 시원한 맛이 한마디로 쥑인다~ 되겠습니다. 물메기탕을 먹기 전에 물메기 회무침을 만들어 먹었는데, 캬~ 그야말로 홍콩 가는 맛이었는데,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사진 찍어야겠다는 생각도 잊어버렸다니까요.   

다음날은 충남 대전에서 발레오공조 노동자들이 지원 방문을 왔습니다. 발레오는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를 먹튀한 것과 똑같은 짓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의 다국적 자본입니다. 발레오 노동자들은 전원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발레오 자본이 단물을 다 빨아먹고 난 다음 회사를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쌍차사태의 복사판이죠.

발레오 노동자들이 오자 이번엔 환영의 표시로 낙지와 꼴뚜기들이 숯불 위에 올랐습니다. 지글지글 하는 소리만 들어도 입안에 군침이 돌았습니다. 이런 거 못 먹어보셨죠? 이날은 특별히 50여 명의 발레오노동자들을 위해 대림자동차 노조지회가 나무를 이용해 술상까지 만들었습니다.
  

낙지가 열심히 익고 있습니다.


여기 낙지를 굽고 계신 분은 진보신당 경남도당 전 부위원장입니다.


자, 구경들 잘 하셨습니까? 어쨌든 <맛있는 파업>이 맞기는 맞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아무리 생사의 갈림길에 선 파업의 현장이라지만 잘 먹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당장 10년, 20년을 일해 온 일터에서 쫓겨나야 하는 속마음까지도 맛이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곳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저도 실은 그분들의 쓰라린 속마음까지야 어찌 알겠습니까. 직접 당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쌍용차 노조원들이 왜 그토록 처절하게 싸워야 했는지 그 속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야 어찌 그 마음을 다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회사는 어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고 하는군요. 우편물을 우선 각 가정으로 발송했다고 하던데 아직 결과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58명이라고 하지만, 293명의 정리해고 인원을 채우기 위한 작업은 계속 되겠지요. 다름 아닌 살인 작업 말입니다. 회사는 정리해고자 명단을 게시판에 공고하려고 했다가 철회했다고 합니다.

너무 비인간적이란 비난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저도 처음 그 소리를 듣고 누구 머리에서 나온 발상일까 매우 궁금했었답니다. 말하자면, 사형수 명단을 떡 하니 대로변에다 게시하는 것과 같은 짓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기를 바랐는데, 철회했다니 아쉽군요. 악랄한 대림자본의 비인간적 면모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말입니다.  

노조지회장님은 무엇 때문에 그걸 막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놔두시지…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우선 이런 글을 쓰게 된 점에 대해 매우 유감입니다. 저는 오마이뉴스가 진보적인 언론으로서 그 기능을 착실히 해왔다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에 대해 부정하지 않습니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의 말처럼 진보언론이란 도대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지만, 오로지 있다면 올바른 언론과 그렇지 못한 언론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어떻든 오마이뉴스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입장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대림자동차의 대량 정리해고와 이에 맞서는 노조의 파업에 대해 상세히 보도를 해주는 오마이뉴스에 대해선 매우 고맙기까지 합니다. 사실 이런 보도를 조중동이 제대로 해줄리 없습니다. 지방 방송사에서도 그저 일회성 보도로 그치는 실정에서 오마이뉴스가 집중적으로 살인적인 대량 정리해고 사태에 대해 보도를 해주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도 대단히 유익한 일입니다. 정리해고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할 때 오마이뉴스의 태도는 정론이 갈 길이라 생각합니다.
 

진보신당 노동탄압저지 경남투쟁단 천막농성 돌입 기자회견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이 유감은 저로서는 매우 가슴 아픈 것입니다. 이 유감이 생기게 된 근저에는 종파의 뿌리 깊은 독소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신문기자도 인간이며 그 중에서도 지식인에 속합니다. 신문기자도 양심을 갖고 있으며 저마다 쫓는 신념이 있을 겁니다. 호불호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저는 어떤 신문기자가 어떤 사물에 대해 어떤 관점이나 어떤 노선을 가지고 기사를 작성하는 데 대해선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그리하여 진실을 호도하는 것에 대해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저는 전에 민중의소리에 대해서도 이런 뜻으로 유감을 표한 일이 있습니다. 민중의소리는 지난 국회의원 보궐선과와 관련하여 의도적으로 기사에서 사실관계를 삭제해서 보도하는 태도를 많이 보였습니다. 진보신당과 조승수 의원에 대한 이야깁니다. 민중의소리는 조승수 의원의 기사는 의도적으로 빼거나 왜곡하여 보도하기를 즐겨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조선일보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도 그와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제 눈에는 그는 매우 종파적인 듯이 보입니다. 제가 그를 종파적인 기자라고 낙인찍는 것은, 그가 자기와 사상이나 신념이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과는 매우 친하게 지내면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을 골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와 사상이나 신념이 비슷하지 않은 사람은 외면하거나 왜곡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진실인 것처럼 보입니다. 

대림자동차가 파업에 돌입하자 제일 먼저 동조 투쟁에 돌입한 것은 진보신당 경남투쟁단이었습니다. 11월 11일 오전 8시, 대림자동차 정문에 천막농성장을 설치하고 10시 30분에 무기한 천막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 기자회견장에는 경남도민일보 등 지역 신문사와 MBC 등 방송사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기자는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오려고 했으나 조금 늦었을 수도 있습니다.

민생민주회의 대람차 정리해고 반대 기자회견. 기자회견의 주축은 민노당과 민노총이다.


그러나 기자회견이 끝나자 막 도착한 그는 11시 30분에 열리는 민생민주경남회의 기자회견장에만 참석하려는 것이었음을 누구나 알 수 있게끔 행동했습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조금 늦었더라도 왜 천막농성을 시작했는지, 기자회견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탓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도 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하니까요. 하나의 정당이 3주일 동안이나 노상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있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건 조중동도 마찬가지니까요.

그러나 어제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를 보고선 도저히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대림자동차 정리해고에 왜 지역사회는 가만있나"였는데 기사를 읽어본 저는 실로 착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었습니다. 기사에서 말하는 지역사회란 창원시장과 시의회 등 관료사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가 지어낸 말도 아니며 민주노총과 민생민주경남회의가 보도자료를 통해 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목만 보는 사람들로서는 마치 대림차의 정리해고에 민생민주회의를 제외한 지역사회 전체가 침묵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사회에는 진보신당을 비롯한 민노당, 민주당 등 정치세력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진정 그렇습니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진보신당은 대림차 지회가 파업에 돌입하자마자 즉각 동조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갔습니다. 민노당과 민주당은 아직 별다른 행동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조만간 그들도 투쟁에 동참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태클을 걸자면, 마치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것이 창원시장이나 시의회인 것처럼 호도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매우 불쾌합니다. 지역사회라고 하지 말고 그냥 "창원시장과 시의회는 왜 가만있나?" 라고 했다면 좋았을 걸 했다는 생각입니다. 민생민주회의와 민노총이 그런 식으로 보도자료를 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사용하는 단어의 파장에 대해 고민하고 조정하는 것도 기자의 역할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님께서는 제가 제목에 "오마이뉴스 대림차 파업보도, 조중동 닮았나?"라고 적은 것을 과민반응이고 지나친 아전인수에 편협한 종파주의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종파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주로 종파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하더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금속노조 경남지부 회의를 대림차 지회에서 하는데 대림차 지회 지도부가 진보신당과 친하다고 해서 아예 안 오는 분들도 일부 있다는 것입니다.

천막농성장을 만들고 있는 김창근 전 전국금속노조 위원장. 그는 진보신당 당원이다.

 
이것은 제 이야기가 아니고 공장 정문에서 "개새끼들" 하며 화를 내는 어느 대림차 지회 간부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물론, 오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오해의 근저에는 오래된 종파의 뿌리가 독소처럼 퍼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혹시나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님께서도 그 독소의 독한 향기에 취하신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디까지나 근본은 종파란 뿌리의 탓이지 윤 기자님의 탓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어려울 때는 모두 함께 해야 합니다. "어깨 걸고 나가자!"란 말을 말만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게 단결입니다. 말로는 단결을 외치면서 뒤에서는 종파질을 하는 것은 비겁한 짓입니다. 오마이뉴스가 스스로 진보언론이라고 자처한다면, 기사 하나하나에도 배려하는 세심함으로 그런 실천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언론일 뿐 그런 일을 할 수도 할 마음도 없다!" 라고 하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그것도 옳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렇게 오마이뉴스가 듣기에는 심히 거북한 글을 쓰게 된 애초의 이유는 "지역사회가 왜 가만있느냐"는 제목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지만, 종파 문제까지 비약하는 실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님의 넓으신 아량으로 베풀어주시는 이해를 바라마지않습니다. 아울러 앞으로도 보다 폭넓은 관심과 취재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이런 글을 써올릴 수 있는 것도 오마이뉴스가 비판을 생명처럼 여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란 점을 강조드립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대림자동차는 오토바이를 만드는 회삽니다. 원래 기아산업 산하였던 이 회사는 신군부가 집권한 80년대에 대림그룹에서 인수했습니다. 그때부터 대림자동차가 되었지요. 기아산업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다 봉고신화로 기사회생 기아자동차, 기아기공 등을 일구어 재기했지만, IMF 때 침몰하고 지금은 현대-기아자동차, 현대위아로 다시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대림자동차 정문에 금속노조 경남지부가 농성용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있다.


대림자동차, 종업원 절반을 정리해고

아무튼 자본이란 그런 것입니다. 누가 소유하든 축적된 노동의 산물인 자본은 존재하는 것이며, 노동자들의 힘으로 가동되는 것입니다. 물론, 자본도 그 생명을 다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미 있는 생산물을 만들어내지 못할 때 자본도 결국 소멸하게 되는 운명을 맞게 되겠지요. 그러나 대림자동차는 아직 소멸할 운명에 처할 만큼 의미 없는 생산물을 만드는 회사는 아닙니다.

중국 상품이 국내 시장을 잠식해서 점유율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40% 이상의 시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수출시장에서도 대림이 차지하는 위상은 결코 만만지 않습니다. 중국이 저가 물량공세로 세계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는 것은 비단 이륜차만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공산품 분야에서, 심지어 아이들이 쓰는 연필마저 중국산이 점령했지요.

그러나 서서히 중국산 제품의 실체가 벗겨지고 있습니다. 중국산 이륜차들이 싸다는 이유로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을지는 몰라도 곧 몰락할 것은 자명합니다. 사는 값보다 더 많은 수리비와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는 걸 알게 될 소비자들이 다시 중국산 제품을 사는 바보짓을 할리 만무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중국산 연필이라면 '에이' 하고 돌아섭니다.

그런데 그런 소비자들보다 더 바보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대림자동차 경영진입니다. 이들은 대림자동차가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전체 종업원의 절반에 달하는 인력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도대체 절반을 잘라내고서도 공장이 돌아간다는 것인지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분명 바보짓임에 틀림없습니다.

정리해고는 비인도적 살인행위

그러나 바보짓 이전에 이는 양심을 버리는 행동입니다.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이라도 최소한의 양심은 지켜야 합니다. 기업은 이윤만을 추구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견지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기업도 사람처럼 감정을 지니고 세상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대림차 경영진이 잘라내고자 하는 정리해고 대상자들은 오늘날 국내 1위의 이륜차 제조업체를 만들어온 1등 공신들입니다. 그들은 10년, 20년 이상 청춘을 바치며 대림차의 이윤추구에 몸 바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잠깐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가차 없이 자르는 것은 양심을 저버린 행동입니다.  

대림차 정문 앞 철농장 아스팔트 바닥. 대림차 노조지회장과 여영국 진보신당 경남투쟁단장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이란, 양심 따위는 없다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업도 사람이 운영하는 것입니다. 기업이 양심이 없는 것은 그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양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날 기업은 감정과 양심을 가져야만 살 수 있는 시댑니다. 감정과 양심이 없는 기업이란 도대체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요즘의 사상입니다.

돈 잘 벌 때는 실컷 부려 먹다가, 이제 돈이 잘 안도니까 그만 나가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 회사의 발전을 위해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사표 쓰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겠지요. 여러분이 무슨 가미가제도 아니고 말입니다. 가미가제야 일왕에 충성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여러분에겐 무엇이 있겠습니까. 

정리해고는 사회를 향한 칼부림

오로지 행복한 가정의 파탄만 있을 뿐이지요. 대림자동차의 정리해고 사태는 제2의 쌍용차 사태에 다름 아닙니다. 중국 자본의 먹튀(알짜만 빼 먹고 튀는 외국자본의 상술)에 희생된 쌍용차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점도 있겠지만, 정리해고라는 살인으로 수많은 가정을 파탄내고 경제를 교란시킨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정리해고는 살인입니다. 한 사람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정 전체를 죽이는 집단 살인입니다. 또, 경제를 교란시키는 행위입니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도 정리해고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반국가적 행윕니다. 수많은 정리해고자를 양산하는 것은 결국 사회를 향한 칼부림에 다름 아닙니다. 

조환익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사장이 쓴 <한국, 밖으로 뛰어야 산다>란 책을 읽어보니 거기에도 그렇게 써놓았더군요. "적자를 내더라도 착한 기업이 되라." "문을 닫는 순간까지 사람과 기술은 안고 가라. 인재(사람)을 버리면 미래가 없다." 글쎄 이 책을 쓴 조 사장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짐짓 맞는 말 아닙니까? 

그러나 대림자본은 착한 기업이 되기보다 악질 기업의 길을 택하고 있습니다. 유효수요를 창출해 국가경제를 다시 살리겠다는 정부의 정책에도 반하는 이러한 행태는 당장 창원 경제에도 악영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600명 중 300명이 직장을 잃었다고 당장 창원의 상권이 무슨 영향을 받겠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무슨 말씀을 더 드리겠습니까. 

진보신당이 설치한 농성용 천막 앞에서 투쟁 중인 대림지회 노동자들과 진보신당 당원들


금속노조, 진보신당 등 천막농성으로 대림자본의 정리해고에 맞서

대림자본의 정리해고에 맞서 대림자동차 정문 앞에서는 거의 3주일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림자동차 노조지회와 금속노조 경남지부 그리고 진보신당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의 바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살인적인 정리해고만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왜 함께 사는 길을 택하지 아니하고, 너를 죽여 내가 살겠다는 비인도적 발상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4대강 삽질로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어이없는 발상을 하는 정부가 있는가 하면 한쪽에선 정리해고의 칼질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쌍용차나 대림차와 같은 자본이 존재하는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 우리는 모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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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웅남동 | 대림자동차공업(주) (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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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