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종택'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5.05 터널에서 마주친 기차, 사선을 넘어 천국으로 by 파비 정부권
  2. 2009.04.28 치열한 광고전쟁, 똥값이 쌀까, 껌값이 쌀까? by 파비 정부권 (11)
  3. 2009.04.02 대운하, 왜 해보지도 않고 반대하냐고? by 파비 정부권 (13)
  4. 2009.04.02 세상엔 절대적 선도 악도 없다 by 파비 정부권 (2)

이 글은 (사)우리땅 걷기 <다음까페>에 실었던 글입니다.
그러므로 블로그 현실과 조금 차이나는 내용도 있을 수 있답니다. 
 


에휴~ 이 제목도 달고 보니 낚시질 비스름 하구먼요.
할 수 없죠.

내용이 별로면 제목으로라도 승부를 걸어야지요.
어쨌든 그럼 지금부터 감상모드 들어갑니다요.

 

아래 사진은 낙동강 도보기행 제1차 구간이 끝났던 분천역입니다.

당연히 이곳에서 제2구간이 시작되겠지요. 
일기예보에선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날씨를 걱정했지만, ‘스스로 돕기에’ 부지런한 우리땅 걷기에 하늘도 감동해서 도와주는 모양입니다. 

 

상쾌한 아침입니다.   

 

 


이곳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작전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

모두들 신정일 선생님의 작전지시에 경청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저는 딴짓하느라 무슨 소린지 잘 못 들었습니다. 

 

그 결과는 잠시 후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나타나게 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메시지가 바로 그거랍니다. 

“늘 깨어 있어라. 딴전 부리지 말고. 특히 초보들…  
 

 

 

출발입니다. 자욱하게 펼쳐진 운무가 신비로운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훤칠하게 키가 큰 소나무들도 일렬로 줄을 서서 반겨주고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될지 천국으로 가는 길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의 장도를 격려해주는 듯합니다.

 

 

 

철길로 들어섰습니다. 앞에 가는 행렬이 아득해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1차 때도 느낀 것이지만 우리땅 회원들 정말 잘 걷습니다.

아니 제 다리가 부실한 거라고요? 아이, 아닙니다. 아직 제 다리 쓸만합니다.

연식이 아직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거든요 

 

 


이분은
고작가라고 불리는 분이시랍니다.

고작가는 아호랍니다. 미국식으로 아이디’ 또는 ‘닉’이라고도 하지요. 성함은 잘 모르겠습니다.

여자 이름 나이 물어보는 거 헌법상 행복추구권 침해 항목이란 거 다들 아시죠?

스스로 밝힐 때까지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으시네요. 엄청 무거워 보이는 대형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다시 자그마한 똑딱이로 동영상도 만들고, 무지무지 바쁘십니다.

 

기차가 지나갑니다. 얼른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아침부터 기차가 지나가니 기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사진은 뺍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20장만 입장 가능하다는군요. 아래 현동역전과 대합실에

벅적거리는 우리 회원들 사진도 뺍니다. 정원을 좀 늘려주시면 좋을 텐데, <다음>, 신경 좀 써주세요.)

 

그런데 갑자기 저 앞에서 초석님이 막 소리를 지릅니다.

파비님, 파비님, 빨랑 오이소. 우리 터널 드가야 됩미더.

뭐 합미꺼. 좀 있다 기차 또 옵미데이. 빨리 뛰 오이소.

? 이게 뭔 소립니까? 터널이라니? 벌써 풍애터널이란 말입니까?

 

이때 시간이 9 조금 못 되었나요? 마음의 준비도 안됐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아이 무셔~

헐레벌떡 터널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급한 와중에도 이렇게 풍애터널 입구는 찍었답니다. , 대견하지요?

 

초석님 뒤를 따라가며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 착한 우리 초석님도 겁줄 줄을 다 아시네.

승부터널 지날 때도 두 시간 동안 기차가 안 오던데.

이번에도 그렇게 안배를 하셨겠지.

 

그런데 굴을 빠져 나와 숨을 돌리려는 순간,

갑자기 터널 안에서 요란한 굉음이 밀려왔습니다.

기차소리였습니다.


 

, 정말이었군요. 초석님이 괜히 겁주려고 그랬던 게 아니었군요.

다음 차는 9시 48 지나간답니다.

하여간 지휘관 지시사항을 잘 안 듣고 딴전 피는 병졸들이

늘 하나씩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게 하필 저라니

 

철길을 한참을 걷는데 뒤에서 또 기차가 오는 게 보였습니다.

시간을 보니 9시 48. 시간을 잘 지키는군요. 손을 흔들었습니다.

기관사 아저씨도 손을 흔들어주시네요.

 

그런데 제 뒤에 분명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분들이 안 보이는데 그냥 돌아가셨나?

그분들은 원래 우리땅 걷기 회원으로 오신 게 아니라

어느 출판사 직원들이라고 들었던 거 같습니다. 
 
  

 

잠시 후 철길을 벗어난 우리는 이제 한적한 낙동강 변 시골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철길은 완전 이별인가 봅니다.

백색 그랜저 한대가 오더니 손을 흔듭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보니까 안면이 있습니다. 낙동강 걷기에 함께 온 출판사 대표라고 하셨던 분입니다. 

저기요. 사장님. 그런데 함께 오신 일행 분들 있잖습니까?

제 뒤에 따라왔는데 풍애터널에 안 들어오신 것 같거든요.

혹시 되돌아갔을지 모르니까, 반대편에 가서 기다려보는 게 어떨까요?

 

그는 갑자기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 큰일 났네. 어떡하지?

잠시 생각하더니,

일단 제가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어서 따라 가세요.

이 글의 맨 끝을 유심히 읽어보실 여러분이라면

그분의 얼굴에 숨김없이 드러난 수심의 의미를 아마도 이해 하시게 될 겁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현동역이 나왔습니다.

앞서 간 사람들이 모두 거기서 쉬고 있었는데,

그런데 역사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역이 무인역사인 줄 알았습니다.

역사무실을 가득 메운 회원들은 커피도 타먹고 떠들고 하는 폼이

꼭 친한 친구 집을 찾은 듯 자연스럽습니다.

 

? 그런데 역장님이 안에 계십니다. 인상이 아주 좋으십니다.

아예, 책상 위에다 커피를 한 통 내놓으셨군요.

우리 오면 먹으라고 미리 큰 통을 하나 사 놓으셨나?

저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맞아. 신정일 선생님이 미리 전화를 해놓으셨구나. 커피 준비해놓으라고.

그나저나 그 역장님, 정말 성품이 좋으시더군요.

그러고 보니 승부역에서도 똑같은 대접을 받았었지요.

요즘 역장님들은 모두들 다 이렇게 친절한가 보지요?


 


다시 행군을 시작했습니다
.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합니다. 1시간쯤 걸었을까요?

현동 다리 결에 우리를 싣고 온 버스가 서있습니다. 그리고 앞서간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저는 항상 맨 꼴찌로 갑니다.

 

,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뒤에 가는 건 아니고요. 초보라 그렇답니다.

다른 분들은 이 아름다운 자연을 자주 보았겠지만, 초보인 제게는 너무나 신비롭습니다.

하나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사진 찍으랴 걸으랴 바쁘기가 그지 없습니다.

 

그러니 남들보다 운동량도 더 많아서 배도 엄청 빨리 고파지나 봅니다.

바로 앞에 가는 여자회원님들을 따라가며 제가 말했지요.

아유, 점심시간인 모양이네요. 빨리 가야겠어요.

 

무슨 점심? 아직 시간이 11 안됐는데 간식 주는 거 아니에요?

?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그런데 왜 이렇게 배가 고픈 거지요?

하여간 다리도 아픈데 쉰다니 참 좋은 일입니다.

애써 간식을 준비해오신 초석님을 위해 박수 한번 쳐주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이게 웬일이랍니까?

저쪽 다리 반대편에서 뒤에 쳐져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오고 계십니다.

두 분이 아니고 세 분입니다. 모두 출판사 분들입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그런데 그분들 말씀을 듣고 그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분들은 돌아가시지 않고 그냥 터널을 지나왔다는 겁니다.

자기들은 거기가 풍애터널인지도 몰랐답니다. 한참을 걸어오는데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게 덜컥 겁이 나더라는 거지요. 물론 랜턴을 켰겠지요.

 

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기차가 달려오더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이분들은 터널 벽에 납작 붙어 꼼짝도 않고 있었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와, 정말 재미있었어요. 멋졌어요.

 

한 분은 남자분이고 두 분은 여자분. 세상에, 이렇게 간들이 클 수가.

재미있었다고요? 하긴 군대도 제대하고 나면 다 추억만 남는 법이랍니다.

하여간 이분들, 만약 굴 안에서 기차를 만났을 때 행동요령을 잘 숙지하고 있었군요.

 

지난 1차 때 대표님으로부터 교육을 받았었지요.

어쨌든 이분들에겐 두고두고 우려먹을 무용담 하나가 생겼네요.

사실 천국이야기보다 지옥에 다녀온 이야기가 더 재미있는 법이지요.

 

그런데 제가 우리 회원님들에게 이 이야기를 너무 흥분해서 하다가,

“돌아가셨는 줄 알았는데, 그냥 지나오셨더라.

고 말했다가 모두들 웃어서 영문을 몰랐는데, 곧 깨우치긴 했지만, 

‘되’자를 빼먹었더라고요. 아유, 큰 실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하하.  

 

, 간식을 먹고 난 우리가 지금부터 걸어갈 길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천국의 길이었답니다. 글쎄요. 천국에 가도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을까요?

금강산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금강산이라도 이리 아름다운 길은 없을 겁니다.

 

금강산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거기엔 낙동강이 없잖아요?

임기 소수력발전소를 지나 만나게 되는 낙동강 변의 바위 길과 모래사장.

명호 수력발전소의 풍경을 타고 넘어오는 꿈결 같은 물길.

한 폭의 그림 같은 청량산. 바로 위 사진이 낙동강을 따라가다 마주친 청량산 뒷모습이에요.

 

그러나 무엇보다 가송리를 가로지르는 끝이 안 보이는 협곡과 단애가 일품입니다.   

이 협곡에는 농암종택과 농암각자를 보는 즐거움도 함께 있습니다.  

이름마저도 아름다운 가송협입니다.

퇴계선생이 이 길을 걸어 청량산을 드나들었다고 해서 퇴계오솔길이라고도 부른다는군요.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천근처럼 무겁던 다리는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점심 때 반주로 마셨던 술기운도 씻은듯이 사라졌습니다.

눈이 확 뜨입니다. 정신도 맑아지고 마음은 상쾌합니다.
 

 

위 사진 첫 번째가 월명담이고요. 그 다음이 농암종택의 긍구당 그리고 마지막 사진이 바로

농암각자랍니다. 저도 모르고 그냥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초석님에게 들어 알게 되었답니다.

원래는 다른 곳에 있었는데 안동댐에 수몰되는 걸 피해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는군요. 농암각자 뒤의 건물은 무엇일까요?

그것도 초석님께 들었는데 까먹었습니다요. 누구 아는 분 계시면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라도 너무 오래하면 재미없겠지요?

자, 이제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센스가 필요할 거 같네요.

사실 오늘 이 후기의 핵심 포인트는

고작가가 어떻게 사선을 넘었으며

또 어떻게 천국을 담았는가!가 되겠는데요.

 

더 이상 자세한 것은 고작가에게 직접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이렇게 대답하실지도 모르겠어요  .

지옥도 너무 짜릿했고요. 천국은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아니면 조만간 수기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요.

 

하하. , 그럼 고작가님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작가님은 용무가 바쁘셨던 만큼 맨 꼴찌였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오시는 모습이 보이시죠.

 

, 꼴찌가 한 명 더 있군요.

그 뒤에 비실거리며 올라오시는 분은 고작가님과 세상에서 가장 친한 분이시랍니다.

이분이 바로 아까 그 수심 가득하던 출판사 사장님이기도 합니다요.

 

 

그리고 밑에 계신 분은 역시 고작가님과 일행으로서 함께 사선을 넘어오신 분인데

꼴찌올림픽 동메달입니다.

그러나 비록 꼴찌일망정 인생의 지혜가 대단하신 듯합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고 다같이 지혜를 배우도록 합시다. 
낙동강 2구간 도보기행을 마치고 맥주와 막걸리로 쫑파티를 하는 중에 찍은 사진이랍니다.  


 

 

고작가님은 작가답게 이번 제2차 낙동강 도보기행의 마지막도 멋지게 장식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손을 들어 파이팅을 요구하기도 하고 김치를 요구하기도 하는

저 모습을 보아주세요.

우리 공윤님의 포스에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고작가님, Fighting! 스펠링이 맞나? ㅎㅎ

 

 

언제든 고작가님이 담으신 천국을 꼭 구경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났네요. 식사들은 많이 하셨나 모르겠어요.  건강하시고요

시간 봐서 또 재미있는 사진 있으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오늘 사진은 하나도 재미 없었다고요? 할 수 없죠, 뭐. 그건 제 관할 밖이에요.

저는 오로지 제 주관의 세계만 관장한답니다.   

                                      

게다가 저는 아직 자동모드 밖에 쓰지를 못하는 아마츄어거든요

그러므로 널리 이해해주시지 않으면 안돼요그렇게 믿을 게요.

제가 보기에 우리땅 걷기 회원님들은 모두들 너무나 순수하신 분들 같아요.

그렇죠? 까뮈가 말한 순결한 영혼들 말이에요.

 

아니, 참 니이체가 말했었나? 갑자기 헷갈리네요.
신샘이 하도 니이체 타령을 하셔서 “모든 말은 니이체로 통”하게 되어버린 거 같아요.
 



그런데 위 사진에 나오는 버섯, 혹시 이름을 아시는 분 안 계셔요? 청량산 자락을 돌아내려가는 

낙동강 변 어느 모퉁이에서 자라던 버섯(?) 같은 건데요. 이렇게 예쁜 건 보통 독버섯이라고 하던데….

오늘의 마지막 주제는 바로 이거랍니다. 이거 독버섯일까? 또 이름이 있다면 무얼까?      파비

 

ps; 사선을 지나온 진짜 이야기는 다음까페에...
고작가님은 나중에 터널안에서 용감하게도 지나가는 기차의 동영상까지 촬영했습니다. 그리고 칠흑같은 터널에서 멀리 자그마한 점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을 찍었답니다. 저도 조금만 늦었다면 함께 지옥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아깝습니다. 딱 1분 아니 30초만 늦었더라면…
아, 지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다음까페 <우리땅 걷기cafe.daum.net/sankang>에 가시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소미란 아이디로 올라있으니 소미를 검색하시면 되겠지요? 제 블로그에 소개를 하고 싶지만 애써 공들인 저작물을 함부로 그러기도 곤란하고, 좀 써도 좋겠느냐고 물어보면 아는 안면에 거절하기야 하겠냐만, 그것도 다 민폐지요.
오른쪽 사진은 고작가님이 찍어주신 누구랍니다. 가송협 낙동강가에 앉아있는 폼이 꼭…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얼마 전, 주완 기자의 블로그에서 휴대폰
홍보전쟁 기사를 보며 배꼽을 잡았습니다
.

"김주완 김훤주의 세상사는 이야기" 에서 사진 인용


“마산에서 제일 싼 집”
“북한 빼고 남한에서 제일 싼 집”

다음이 완전 압권이었죠?

옆집보다 무조건 싸게 팝니다”


하하.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매일 한번 이상은 이런 홍보문구를 거리에서 보았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무심코 지나쳤던 거지요. 워낙 이런 상술에 익숙해진 지 오래 됐으니까요. 그런데 김주완 기자가 부럽군요. 아직도 이런 것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그는 아직도 풍부한 감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저도 지난 금요일에 구미에 올라갔다가 비스름한 것을 봤습니다. 구미에 간 이유는 낙동강 도보기행 제2구간(경북봉화 임기, 명호, 청량산, 안동 가송협, 도산서원까지)에 함께 갈 초석님이 구미역 근처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그의 퇴근시간이 7이므로 그 시간에 맞춰 열차를 타고 구미역에 내렸습니다. 나중에 따로 포스팅 하겠지만 정말 환상의 강길이었습니다.

섬진강 하동포구길이 올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등에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어디서 본 것 같은데요. 글쎄요. 제가 보기엔 낙동강 가송리 협곡이 가장 아름다운 길이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물론 이 길은 차가 다닐 수는 없는 길이니 섬진강과 비교하긴 좀 그렇지만요. 게다가 이 길은 퇴계 이황 선생의 발자취가 묻어나는 길이기도 하답니다
.

퇴계선생은 이 길을 걸어 수없이 청량산을 올랐을 텐데요,
 자신의 아호마저도 청량산인이라고 고쳤다 하는군요. , 이 정도로 제가 다녀온 낙동강 홍보는 그만 하기로 하고요. 금요일 오후 6 53, 구미역은 엄청나게 북적거리더군요. 한산한 마산역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서울역에 온듯한 착각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촌놈이 된 듯 두리번거리며 역을 빠져 나온 제 눈에 제일 먼저 뛴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이것이었답니다.   “폰값 똥값”


폰값과 똥값 사이에 있는 화투짝 보이시나요? 저게 바로 똥광이란 건데요. 제가 화투는 칠 줄 모르지만 아마 대충 맞을 겁니다. 광 중에서도 팔광과 똥광이 최고라고 들었거든요. 어쨌든 이 휴대폰 가게는 대구 동신골목을 싹쓸이하고 드디어 구미에 판을 깔았다는데요. 휴대폰을 똥값에 팔겠다는 거고요. 똥값에 폰을 사신 고객님은 화투판에서 똥광을 잡은 거나 마찬가지다 뭐 이런 이야기인 것 같네요.

폰값이 똥값이라…


, 그런데 옆집을 보세요. 이 집은 “폰값이 껌값이래요.”
 


! 정말 치열한 홍보전쟁이 김주완 기자의 말처럼 점입가경입니다. 차마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이제 아예 폰을 똥값이나 껌값에 팔겠다고 나섰으니… 먹고 살기가 어렵긴 어렵나 봐요. 이렇게 해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한다니. 이거 이러다 삼성전자나 엘지전자 같은 대형회사들 부도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니 휴대폰을 똥값이나 껌값에 팔고 그 원가부담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참으로 걱정됩니다. ? 제가 쓸데 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요? 그래도 다 남는 장사라고요? 하긴 안 남기고 이런 짓 할 리도 없겠지요. 돈 되는 일이라면 공산주의도 팔아 이윤을 남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안 되는 짓을 할 리가 없겠지요. 

그런데 여러분, 사실은요. 제가 저 거대한 똥값과 껌값 간판을 보면서 생각이 들었던 건 그저 이런 이야기가 아니었답니다. 폰값이 똥값이든, 북한 빼고 남한에서 제일 싸든, 아니면 무조건 옆집보다는 더 싸게 팔든 뭐 우리는 이미 이 치열한 생존경쟁에 무덤덤해진 지가 오래 되었잖아요? 

휴대폰 가게를 자세히 보세요. 그리고 간판도 다시 한 번 봐주세요. 가게보다 간판이 더 크지 않나요? 그리고 위에 김주완 기자가 찍어 올린 자기네 신문사 근처에 있는 휴대폰 가게들 간판과도 한 번 비교해보아 주세요. 확실히 틀리지요? 구미는 대체로 간판들이 이처럼 초대형이더군요. 최소한 저 간판은 똥값으로는 달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던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혹시 앞 전에 제가 올렸던 기사 중에 <터미널에서 만난 비키니 아가씨들>을 보셨던 분이라면 "그래 맞다!" 하실 거에요. 제가 한 달 전 낙동강 탐사를 떠나기 위해 이곳 구미에 들렀을 때, 그때는 버스를 타고 구미종합터미널에 내렸었죠. 터미널 앞은 온통 아가씨들로 뒤덮여 있었는데요. 간판 속의 아가씨들 말이에요. 그 간판들 크기도 장난이 아니었죠. 


저는 나날이 이토록 커지는 간판들이 걱정이네요. 작년이었던가요? 아니면 재작년? 모 방송사에서 방영한 신년기획 다큐멘터리에서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프랑스의 얀이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산하를 찍으면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한국의 산과 들은 참으로 아름답다. 정말 눈이 부실 지경이다. 그러나 한국의 도시들은 너무나 황량하다. 미안하지만, 한국의 도시들은 너무 볼품없어서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민망하다.

한국의 도시들은 건물들도 너무 개성이 없이 지어졌지만 거기에 달린 간판들도 너무 무질서하고 너무 크다.

 

대체로 이런 투로 이야기 했던 것 같은데요. 유럽 사람답게 참 솔직하게 말한다 싶었지만, 살짝 기분이 나빴던 것도 사실이었지요. 그런 제 마음을 알았던지 그는 친절하게도 또 이렇게 마무리 코멘트를 해주었답니다.  다만, 한국의 절들은 정말 감동적이다. 자연에 녹아 든 절의 모습은 실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실제로 백두대간을 따라서 헬기를 타고 사찰을 찍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자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오래된 절의 모습은 자연 그 자체였습니다. 요즘은 절에서도 자연을 배제한 인공의 모습이 많이 발견되기도 합니다만,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건축기술을 보고 싶다면 여전히 절로 가야 한다는데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겁니다.  

 

아무튼, 오늘 제 블로그에서 무지막지하게 큰 도시의 간판 때문에 눈을 버리신 분이 있다면 보상하는 의미에서 아름다운 한국의 건축물 사진을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은 제가 엊그제 낙동강을 타고 내려오다 가송리 협곡을 지나 농암종택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긍구당입니다. 뒤에는 낙동강이 살짝 보일 겁니다.

 

아이고, 결국 마무리는 낙동강 타령이군요. 요즘 제가 낙동강에 풍덩 빠졌거든요. 금강산 가는 길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청량산으로 가는 가송협과 퇴계 오솔길 만은 못할 것이다. 왜냐? 거긴 낙동강이 없으니까….” 이건 그냥 제 말인데요. 믿기지 않으시면 한번 가보세요. 후회는 안 하실 겁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1. 낙동강의 고향, 태백산으로

대운하, 왜 해보지도 않고 반대하냐고?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처연하도록 쓸쓸한 한줄기 빛으로 서있는 철암역을 지나 태백고원자연휴양림을 찾았다. 몇 차례 길을 헤매었건만 길을 물어볼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신정일 선생이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길 위에서 길을 묻는다고? 아니 사람이 있어야 길을 묻지. 길 물을 사람조차 없는 그 고독과 싸우는 게 바로 길을 찾아 걷는 자의 몫이야.

 

아직 서울 사람들은 도착하지 않았다. 고원휴양림 관리소에서 열쇠를 받아 방마다 모두 불을 켰다.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보니 두어 시간쯤 걸리겠다고 한다. 이제 겨우 제천을 지나 태백 쪽으로 길을 잡았단다. 하긴 서울에서 예까지 길이 어딘가.

 

태백 시내를 뒤져 술 몇 병과 안주감으로 골뱅이 깡통과 오징어 땅콩을 샀다. 신정일 선생은 글만 맛깔 나게 쓰는 게 아니라 타고난 달변이었다. 그는 전주사람이다. 전주라면 맛의 본고장 아니겠는가. 그런데 알고 보니 전라도는 음식만 맛난 게 아니라 말도 맛있다.

 

어조가 마치 창 한가락을 듣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전라도는 풍요로운 고장이다. 척박한 경상도에 비해 물산이 풍부한 전라도에서 문학과 예술이 발달했음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군가 이런 대화 중에 그런 소리를 했다. 대신 경상도에는 무인이 많이 났잖아.

 

그 무인이란 대체 누구를 말함이었을까? 그러나 거기까지 물어보진 않았다. 나도 뼛속까지 경상도 사람이니…, 물어보나마나 뻔한 답이 나올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전라도에 가면 가는 곳마다 그림 한 점씩 안 달아놓은 집이 없다고 한다. 어부사시사의 윤선도, 사미인곡의 정철,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자화상을 국보로 남긴 윤두서 실로 모래처럼 많은 기인이사들이 이곳에 족적을 남겼다.

태백고원자연휴양림. 3월의 마지막 주말, 자고 일어나니 온통 눈이 내렸다.


신정일 선생이 아까 농암종택에서 국회 환노위 위원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강연이 끝나면 늘 하던 대로 질문과 토론이 이어지는 법이다. 이때 자리에 있던 한 MBC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좋은 이야기만 하지 마시고 부정적인 이야기도 하나 해주십시오.” 좌중의 위원들과 지방수령들도 맞장구를 쳤다.

내가 여기 모두 한나라당 국회의원님들이시고 군수님과 시장님도 계신데 대운하가 마음에 안 든다든지 뭐 이런 부정적인 이야기하면 안 좋아하실 거 아니에요? 초대받아가지고 예의가 아니잖아요. 그래도 해달라고 하니까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만 하지요.

 

“내가 작년인가 여주에 갔었어요. 그쪽 한강 일대를 답사하는 게 목적이었는데요. 어떤 부동산업자인 듯한 분하고 나이가 좀 드신 여자분이 서서, 말하자면 복부인인데,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더군요. 제가 지나가다가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땅을 사러 왔다고 그러더군요.

 

그 여자분이 거꾸로 내게도 뭐 하러 오셨느냐고 물어보기에 나는 땅을 보러 왔노라 대답해주었지요. 하하. 그분들이 어찌 이해했는지는 나도 몰라요. 앞으로 대운하가 생기면 이쪽에 땅값이 엄청 올라갈 거 같아서 사두려고 왔다고 하대요.

 

그래서 내가 물어보았지요. 아주머니, 대운하가 생기면 뭐가 좋아질 것 같아요? 그랬더니 아주머니 하시는 말씀이 아주 걸작이라. 먼저 경제성장 7%가 달성된다네. 그 다음에 일자리도 창출되고. 차 때문에 도로에 길도 많이 막히는데 배가 다니면 얼마나 좋으냐고.

 

그래서 내가 한번 더 물었어요. 그럼 안 좋은 거 딱 한가지만 말해보세요. 좋은 게 아무리 많아도 안 좋은 것도 하나쯤은 있을 거 아니요.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환경영향평가에 통과 안될 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래. 허허…”  

 

우리는 이야기를 듣다가 혹시나 대운하사업이 환경영향평가에 통과 못할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그 아주머니의 걱정에 포복절도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신정일 선생은 계속해서 다음 말로 이어갔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 그러니까 복부인이지. 그러더군.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래.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대요. 왜 해보지도 않고 반대를 하느냐고. 해보고 반대를 해도 해야 될 거 아니냐고.

 

그러나 이건 그저 웃고 넘어갈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이 다만 그 복부인만의 문제도 아닌 것이다. 사실은 대부분의 국민들도 이처럼 어이없는 정보와 견해에 빠져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번 갈아엎은 강은 되살리는 데는 수천 년으로도 모자란다.

 

그런데 4대강을 갈아엎어 얼마나 돈을 벌고 실업자를 구제하고, 또 교통이 얼마나 좋아질 수 있을까? 이미 많은 연구결과들은 부정적이다. 경제성장에 별 도움이 안 되고 일자리도 별로 늘어날 것이 없다고 한다. 얻는 것은 환경을 파괴하고 가져가는 개발업자의 이윤뿐이란 것은 약간의 상식만 동원하면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해보지도 않고 반대하느냐고? 이야기를 듣던 우리는 그저 허망한 웃음만 날릴 수밖에 없었다. 멀리 계곡을 타고 올라오는 버스 엔진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사람들의 왁자한 소음…, 반가운 소리다. 서울사람들이 도착했다. 시계는 이미 새벽 두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1. 낙동강의 고향, 태백산으로

세상엔 절대적 선도 절대적 악도 없다
오후 7, 구미종합터미널에도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초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3분 안에 도착할 테니 터미널 옆 주유소 앞에 서있으란다.


잠시 후 낙동강 변 도로에 비상등을 깜박거리며 달려오는 카렌스 승용차가 보인다
. 이제 출발이다. 낙동강의 발원지 태백산으로 가는 것이다.


초석님은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회원이다. 내일은 근무를 해야 하는 날이지만 치과의원 문도 닫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대화를 통해 그가 신정일 선생의 열렬한 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신정일 선생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침이 마르는 줄 몰랐다.

 

주말엔 쉬어야지요. 우리나라도 대부분 주 5일 근무가 정착되어 가는데, 그래도 토요일 하루 쉬니까 간호사들은 좋아하겠네요?

, 좋아하지요. 그치만 돈이 안되잖아요. 주말만 되면 이러이 돌아댕기니 우리 마누란 별로 안 좋아해요.

 

자동차는 시원한 고속도로를 달려 금새 안동에 닿았다. 구미에서 안동까지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던가. 이미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에 점령당해 있었다. 차는 도산서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자면 안동시내를 지나가야만 한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다리를 건넜다.

 

강은 저 아래 어둠 속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어둠이 빛을 가린들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의 기질마저 감출 수는 없는 일이다.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 물줄기가 대지를 어루만지며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시내에 들어서자 도로변을 밝히는 불빛들이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다. , 그런데 신호등들이 모두 황색점등 일색이다. 깜박거리는 노란색 신호등 아래로 차들은 잘도 지나다닌다. 초석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익숙한 솜씨다. ~ 조수석에 뻗은 두 다리에 쥐가 날 것 같다.

 

다시 어둠에 점령당한 시골길을 달린다. 지금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농암종택(조선 중기 문신 농암 이현보의 종가)이다. 그곳에 <낙동강역사문화탐사>의 저자 신정일 선생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일행들의 낙동강답사(안동지역)에 강연을 한다고 했다.

농암종택의 주인이 살고 있는 안채. 안동댐에 수몰되면서 옮겨온 이곳이 아직도 안정이 덜 된 듯했다.

이미 시간은 9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초석님은 걱정이 되는 듯 신정일 선생에게 연신 전화를 걸어 조금 늦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 이거 선생님 추운데 많이 기다리시겠네. 에이, 농암종택 거 군불도 뜨끈뜨끈하게 때 놓았을 텐데 방안에 가만 계시면 되지 뭐. 혼자서 중얼거리며 달리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러더니 깜깜한 시골길에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이 길을 제집 드나들 듯 했을 초석님도 시간에 마음을 빼앗겼던지 길을 잃고 말았다. 깜깜한 비포장 길을 계속 달리다 보니 경운기 한대도 겨우 지나갈 것처럼 길이 좁아지기 시작한다.

 

결국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서 우리는 어렵사리 차를 돌렸다. 다시 되돌아 나와 국도변에서 보니 농암각자(聾巖刻字)라고 쓰여진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그걸 보고 잘못 길을 들은 것이었다.

 

, 저걸 보고 헷갈렸네. 길도 진짜 비슷하게 생겼습디더. 그래도 좋은 거 하나 알았네요. 저 안에 어디 농암각자가 있는 모양인데 다음에 꼭 한 번 와봐야겠심더. 초석님의 사투리는 속된 말로 완전 오리지널이다. 의사보다는 농군 냄새가 더 물씬한 것이 정겹다.

 

다시 1Km쯤 더 내려오니 이번엔 진짜 농암종택이라고 쓴 이정표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꺾어 드니 정말 아까 잘못 들었던 길과 생김새가 비슷하다. 한참을 달리니 낙동강이 보인다. 낙동강 변을 달리는데 낭떠러지 아래 물살이 제법 세다.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 물결이 무섭기까지 하다.

 

드디어 농암종택 도착. 대문 앞 공터에는 관광버스와 수십 대의 승용차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최신형 제네시스도 보이고 대체로 고급차들이다. , 그러고 보니 오면서 들은 대로 이곳에는 7명의 환노위 국회의원들과 봉화군수와 안동시장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수행원들도.

 

이분들은 오늘 안동과 봉화 일원의 낙동강을 직접 발로 걷고 느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강문화 전도사 신정일 선생으로부터 훌륭한 강연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분들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결심했을까? 글쎄 그게 가장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강연도 모두 끝나고 왁자지껄한 담소 소리가 담장을 넘어왔다. 고색창연한 고가의 적막을 기대했지만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이미 국회의원들과 이 고을 수령들과 수행원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기대는 애초부터 말았어야 했다.

 

바깥채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앞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하늘의 별이 유난히 맑게 빛났다.

대신 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 있었다. 검은 어둠 위에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다. 맑은 대낮에 보는 하늘보다 더 푸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하늘은 머리 위에 쏟아질 듯 지척에다 별들을 매달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별들이 더없이 하얗게 빛난다.

 

사랑채와 긍구당(肯構堂)등을 둘러본 다음 이 저택의 주인이 살고 있는 안채로 가보았다. 안채는 대청에 매달린 불빛만이 사람이 산다는 것을 증거할 뿐 조용하다. 서울에서 온 귀한 손님들을 위해 그저 묵묵히 안방만 지키기로 한 것일까.


다시 사랑채 마당으로 나오니 신정일 선생이
MBC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나름대로
찬스다! 싶어 얼른 카메라를 들이댔다. 항상 자동모드만 고집하는 내 카메라는 번쩍 플래시를 터트렸다. 카메라 기자가 움찔하며 손을 들어 제지하며 당황한다.

 

이런, 이럴 때 플래시를 꺼야 하는데 할 수 없지. 이미 지나 간 일. 나 때문에 텔레비전에서 인터뷰 하던 얼굴에 갑자기 하얀 불빛이 지나가면 민망하고 미안해서 어쩌지? 초석님이 옆에서 훈수를 둔다.

 

이런 데는 플래시 터트리면 안됩니더. 오토에다 놓지 말고요. 항상 플래시발광금지 모드에다 놔 두이소. 사람들이 잘 모르고 무조건 오토에다 놔 두거든예~. 그런데 플래시발광금지가 오토하고 똑같심니더. 플래시만 안 터진다 뿐이지요.

 

태백산으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신정일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는 것이여.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서 낙동강 살리기다 운하다 말들이 많은데, 물론 나는 대운하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어쨌거나 요즘처럼 낙동강에 많은 관심을 보인 시절이 어디 있었나? 그러니까 절대적인 악이란 것도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이제. 

 

그러고 보니 낙동강이 오늘날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랬다. 매년 6월 깨나 ‘낙동강전선’이란 피어린 이름으로 우리에게 기억되었을 뿐 낙동강을 낙동강으로 살펴준 적이 제대로 있었던가.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절대적인 악이란 것도 절대적인 선이란 것도 없다는 그 말.  나는 철학적 심오함이 숨겨진 듯한 그 말의 깊은 뜻을 아직은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낙동강과 함께 길을 걸으며 서서히 그 뜻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멀리 철암역의 불빛이 보인다.

 

쓸쓸한 적막 속에 아스라히 빛나는 역사의 불빛. 언젠가 읽었던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느낄 수 있는 불빛이 아마 저런 것이었으리라.       파비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낮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