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현'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9.10.05 '선덕여왕' 유신, 사랑 버리고 근친결혼한 까닭 by 파비 정부권 (4)
  2. 2009.09.29 '선덕여왕' 문노가 뿌린 불행의 씨앗 by 파비 정부권 (25)
  3. 2009.09.15 김유신이 선덕여왕과 결혼할 수 없는 이유 by 파비 정부권 (22)
  4. 2009.08.11 '선덕여왕' 덕만의 정광력, 미실의 하늘을 깰까? by 파비 정부권 (1)
  5. 2009.07.23 선덕여왕, 미실은 몇 번 결혼 했을까? by 파비 정부권 (9)
  6. 2009.07.08 선덕여왕, 근친혼의 이유는 무엇일까? by 파비 정부권 (68)
김유신이 미실의 아들 보종의 딸 영모와 결혼했다. 물론 이는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의 이야기다. 이전에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유신이 협박에 굴복해 미실의 가문에 장가를 든 것은 난센스란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실제로는 미실이 유신의 가문과 혼사를 맺음으로써 권력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했을 것이란 사실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김유신의 가문이 신라 진골인 것은 시혜인가, 노력의 결과인가

김유신의 조부인 김무력은 금관가야 구형왕의 아들이다. 그는 신라에 귀순한 이후 전장에 나가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관산성전투에서는 성왕을 죽여 백제부흥운동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김무력은 그 공으로 대각간의 지위에 올랐다. 무력의 아들 서현 역시 낭비성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으며 각간의 자리에 올랐다. 각간은 신라 17관등 중 1등위다.

나중에 삼한을 병합한 김유신이 태대각간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대각간이나 태대각간은 상설적인 벼슬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비정규적으로 특설한 것이었다. 김유신의 가문은 신라에 귀순한 이래 대대로 각간에 올랐을 뿐 아니라 진골귀족으로 행세했다(참고로 신라에서는 진골귀족이 아니면 3등위 이상의 관직에 오를 수 없다). 

신라가 귀순한 가야의 왕족에게 진골귀족의 작위를 부여한 것은 나름 정치적 계산이 있었을 테지만, 그것이 다만 시혜적인 것이었을까? 신라란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열린 사고 구조를 가진 나라였을 수 있다. 박씨족에서 석씨족으로, 다시 김씨족으로 왕권이 이전되는 과정을 보아도 그렇다. 신라는 통합왕조였던 것이다. 

하나의 왕조가 다른 왕조를 배타적으로 멸망시키는 관계가 아닌 상생하는 관계였다고나 할까. 여기에 가야계가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이런 전통에 따라 신라는 가야계의 유력한 왕족인 유신의 가문을 진골로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유신 가문이 진골귀족이 된 것이 단순히 가야의 왕족이었기 때문일까?

그들이 아무리 가야의 왕족 출신이라도 탄탄한 무력이 없었다면 모두 불가능한 일이다. 구형왕은 신라에 귀순함으로써 자신과 자식들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영지에 대한 관할권까지도 일정하게 유지했을 것이다. 우리가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면서 유심히 살펴볼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비담의 화랑 입문기다. 

정치적 입지는 무력보다 혼사가 더 큰 변수

비담은 화랑이 되었지만 아직 낭도가 없다. 말하자면 그는 병사 없는 장군이다. 만약 비담이 끝내 낭도를 구하지 못한다면 그는 영원히 나홀로 화랑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여러분은 하나의 의문도 들지 않는가? 어째서 신라는 화랑으로 임명한 또는 인정한 자에게 낭도를 나누어 주지 않는 것일까? 아무튼 김유신은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이런 무력도 그저 가문의 귄위를 지키는 정도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결국 전장에 나가 공을 세우지 않고서 패망한 왕조의 가문의 영광을 일군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나 마찬가지다. 김무력과 김서현은 수많은 전쟁에서 공을 세웠지만 앞으로 김유신도 마찬가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열심히 노력하는 자가 항상 승리의 월계관을 쓰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잘 가르쳐준다. 여기엔 보다 복잡한 고도의 변수가 작용하는 것이다. 그 변수란 다름 아닌 혼사다. 오늘날의 재벌가나 정치인, 고위관료 집단의 혼맥을 살펴보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의 말에 의하면,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조선일보와 이명박 대통령의 혼맥도라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란다. 아마도 내가 느낀 그대로라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거미줄로 쳐진 망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덕업일신 망라사방>이 아니라 <우리끼리 망라독점>이라고 말해도 하나도 지나치지 않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유신과 영모의 결혼도 분명히 책략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에서도 그랬을 수 있다. 김유신이 자신의 누이들과 김춘추를 결혼시키기 위해 벌인 쇼를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꿈을 사고 판 누이들의 이야기로 너무도 유명한 이 아름다운 고사의 그림자 속에는 무서운 책략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김유신의 연애담, 천관녀와의 사랑

그런 김유신에게도 애절한 연애담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천관녀와의 사랑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천관녀는 기생이라고도 하고 제관이라고 하며 주막집 처녀라고도 하는 등 다양한 신분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몇 해 전, KBS 사극 <연개소문>에 등장했던 천관녀는 미실의 양녀로서 하늘에 제사를 주관하는 천관이었다. 

천관녀가 어떤 출신의 여인이었던지간에 분명한 것은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천한 가문에 속했음은 그다지 틀지지 않아보인다. 만명부인으로 말하자면, 법흥왕의 동생 입종갈문왕의 손녀이며 진흥왕의 동생 숙글종(숙흘종이라고도 발음함)의 딸이다. 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왕족이었다. 

당시는 왕족의 명예와 특권을 위해 철저하게 근친혼이 행해지던 때였다. 김유신이 비록 진골귀족이라고는 하나 패망한 가야의 왕족일 뿐이었다. 내물왕계의 후손으로 철저한 근친혼이 신국의 도라고 배웠던 만명공주에게 김서현은 절대 결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만명공주는 김서현을 따라 만노군(충북 진천)으로 도망쳐 그곳에서 유신을 낳았다. 

물론 전해오는 이야기는 이렇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김서현은 당대의 명장이며 신라 최고의 관등 각간에 '대'자를 더한 대각간이다. 신라 천년역사를 통틀어 대각간의 지위을 받은 인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런 김무력의 가문과 혼사를 맺는 것은 왕족이라 하여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아무튼 만명공주는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젊은날의 에피소드로 인해 콤플렉스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콤플렉스는 자연스레 출세지향적인 성향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런 만명부인에게 천관녀는 가당치도 않은 존재였다. 그런데 자신의 기대를 짊어진 아들 유신이 천관녀에게 빠지다니. 만명부인은 유신에게 호통을 쳤다.

유신, 출세를 위해 애마의 머리를 자르다

"나는 어렵게 너의 부친과 결혼하여 너를 낳았다. 너는 어찌하여 가문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냐? 술 파는 천한 계집과 어울리다니 정신이 있는 게냐, 없는 게냐?" 크게 꾸지람을 들은 김유신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맹세했다. "다시는 천관녀를 만나지도 않을 것이며 그 집에 가지도 않겠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술 취한 유신을 등에 태운 말은 천관녀의 집으로 갔다. 유신의 말은 명마였다. 유신이 술에 취하면 가는 곳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술에 취한 유신이 천관녀의 집에서 운우의 정으로 밤이 깊어감을 잊었음은 물론이다. 다음날 아침 술이 깬 유신은 대경실색했다. 어머니에게 한 맹세를 깨뜨린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유신의 말은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려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주인의 연애를 도운 결과는 비참한 죽음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유신은 진정으로 천관녀를 사랑했을까? 아니면 하찮은 노리갯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천관녀가 주막집 기생이었다면, 그래서 유흥 목적으로 드나든 것이었다면, 만명부인의 충고를 받아들인 유신은 매우 강단이 있는 젊은이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천관녀가 단순히 주막집 기생이 아니라, 요즈음 주로 대세를 이루는 주장처럼 제사를 주관하는 천관이었다면 이야기는 매우 달라진다.

유신 역시 어머니 만명부인과 마찬가지로 매우 출세지향적인 성격의 인물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때 그가 자기 명마의 목을 자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출세를 위해 사랑도 과감하게 버리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영모와 결혼했으며 또 후에 자기 누이가 김춘추와 결혼하여 낳은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유신도 근친결혼, '혼사는 정치야심의 도구'

말하자면, 김유신도 자기 가문의 권위와 특권을 만들기 위해 근친혼을 강행했던 것이다. 하긴 강행이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그 시대에 근친혼이란 이상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신국의 도란 이름으로 권장되던 행위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원술랑이 바로 김춘추와 문희 사이에서 난 공주가 김유신과 혼인하여 낳은 아들이다. 

그토록 출세지향적이었던 김유신, 그래서 천관녀와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말의 목을 잘랐던 김유신, 그러나 천관녀를 향한 사랑의 감정은 가슴속에 남아있었던 것일까? 백제를 멸망시키고 돌아온 김유신은 자신이 드나들던 천관녀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절을 지었다. 천관사란 이름의 이 절은 오는날 흔적은 없고 자취만 남아 천관사지라고 불린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유신이 영모와 결혼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김유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군. 자기 감정을 다스리며 저토록 처절하게 이성에 충실하다는 것은 보통 수양이 깊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지. 실로 삼한통일을 이룰 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거기에 대해선 뭐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사람에겐 저마다 가치관이 다르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는 뉴스를 통해 한국 최고 재벌의 후계자가 이혼하는 것도 보았으며, 또 그 최고 재벌에 시집을 갔다고 해서 신데렐라가 되었다가 스스로 이혼을 결심하고 나온 사람도 보았다. 

신데렐라가 동화 속에서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의 테마일지는 몰라도 현실에서는 어떨까? 왕비가 된 신데렐라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혹은 왕비가 된 신데렐라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단지 유리구두 한 짝 뿐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사실은 인생에서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것은 아니었을까? 

천관사를 완성한 김유신, 천관녀에게 무어라 말했을까?

아무튼 김유신이 미실가문과의 혼사로 정치적 제휴를 맺어 가야 유민들을 살렸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가야 유민들은 김유신에게 목숨을 빚졌다. 그들은 생사를 다해 충성을 다할 것이니 김유신으로서는 확실한 무력을 확보한 셈이다. 그나저나 후반부에서 김유신과 최대의 각을 세우게 될 비담은 어떻게 자신의 군대를 만들어갈까? 

좀 촌스럽게 말한다면, "그것이 궁금하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문노가 어이없이 죽었다. 기껏 김춘추가 찢어 주렴구 같은 장난감을 만들어 놀게 될 삼한지세를 김유신에게 전달하기 위해 길을 가다 독침에 맞아 죽었다. 절세의 무공을 지닌 그가 이리도 허망하게 죽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문노는 곧 죽게 될 것이 자명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가리라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노는 왜 염종 같은 인물을 수하에 두고 중요한 임무를 맡겼을까?

문노의 수하에 염종을 두었다는 자체가 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염종이 삼한지세를 작성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문노의 능력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한 오류였다. 물론 우리가 염종이란 인물의 결말을 미리 알고 있기에 이런 생각도 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것은 문노의 명백한 실수다. 

그러고 보면 문노는 무예가 출중한 것을 빼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일을 처리한 것이 없다. 드라마 초반에 문노는 진흥왕으로부터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이길 자가 오리라"는 예언을 받은 인물이다. 그리고 문노는 진흥왕으로부터 또 다른 유지를 받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짐작하듯 삼한통일의 비결이었을 터이다. 

삼한을 통일하는 방법은 결국 무력에 의한 병합뿐이다. 요즘처럼 테이블에 앉아 연방제니 연합제니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당시에 민족의식이 있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삼한지세는 그래서 작성했으리라. 

그리고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비담을 선택했다. 이는 나중에 문노도 깨달았지만, 실수였다. 비담은 삼한지세의 주인이 될 수 없는 자였다. 그의 속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어있었다. 문노는 그것을 보았다. 비담은 목적을 위해 사람을 가차 없이 죽일 수 있는 인면수심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문노는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노는 삼한지세를 만드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비담이 더 이상 삼한지세의 주인이 될 수 없음을 알았는데도 왜 계속 삼한을 누비며 삼한의 정세를 파악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을까? 진흥왕의 유지 때문이었을까? 애초에 문노는 무엇 때문에 삼한을 통일시키고 전쟁을 종식시킬 주인공으로 비담을 선택했을까?

문노의 죽음과 함께 예언에 관한 모든 비밀도 미궁 속으로 사라지나

그리고 미실을 이길 개양성의 주인과 삼한을 통일시킬 역사의 주인은 달랐던 것일까? 이것 또한 진흥왕으로부터 받은 예언 중 일부였을까? 그런데 어떤 연유로 삼한을 통일시킬 인물로 비담을 점 찍었을까? 그리고 비담과 덕만을 혼인시키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것은 문노의 어이없는 죽음과 함께 미궁 속으로 사라졌다.
 
오랜 세월 신비한 구름 속에 잠적해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던 그가 다시 나타났지만 이에 대한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미실의 아들과 덕만을 혼인시키려 했다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으로 사람들을 당혹케 만들었다. 그리고 이마저도 실패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마지막에 역사를 변혁시킬 만한 중요한 임무 두 가지를 이루었다.  

그 하나는 김유신을 풍월주에 앉힌 것이다. 만약 이대로라면 김유신은 절대 풍월주가 될 수 없었다. 물론 진짜 역사에서는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패망한 가야의 왕손인 김유신 가문은 살아남기 위해 못할 일이 없었다. 유신의 조부인 김무력은 전장에 나가 백제 성왕을 죽이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우며 신라 최고의 지위 대각간에 올랐다.

김서현은 어땠는가. 그는 만명공주와 사랑의 도피행각까지 벌이며 김유신을 낳았다. 그러나 만노군 태수로 부임하던 김서현을 만명공주가 따라 나선 것이 도피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시는 신라 최고의 명장 김무력이 건재하고 있던 때이다. 드라마에서처럼 김서현이 만노군에 추방되어있었다는 것은 사실과 달랐을 것이다. 

김유신이 풍월주에 오르던 612년에도 김무력은 여전히 건재하게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614년에 죽은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유신이 풍월주가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화랑세기에서처럼 미실의 가문과 혼인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김유신을 풍월주에 올린 것은 문노 생애 최고의 공적

아마도 드라마에서 미실이 그토록 유신을 얻고자 안달하는 장면은 화랑세기에서 호림공의 부제였던 보종으로 하여금 유신에게 풍월주를 양보하라고 설득하는 데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다. 권력의 정상에 있던 미실도 김유신 가문과의 제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어쨌든 문노는 궁지에 몰린 덕만공주를 위해 김유신을 풍월주에 앉히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원래 풍월주는 비재를 통해 뽑는 것이 아니라 원로들의 결정에 의해 임명하는 자리다. 특별한 하자가 없다면 부제가 승계하는 것이 전통이다. 따라서 풍월주 호림공의 뒤를 이어 보종랑이 풍월주가 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러나 미실은 유신이 풍월주가 되도록 했다.

이것은 화랑세기의 이야기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처리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비재를 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문노는 김유신이 풍월주가 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다음 문노가 이룬 또 하나는 삼한지세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적에 관한 정보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삼한지세를 유신에게 전하려던 이 두 번째 임무는 염종의 암습에 의해 불발로 끝났다. 예고편에서 염종을 사주한 것은 김춘추라는 암시가 나온다. 그러나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수나라에서 돌아온지 며칠 되지도 않은 애송이가 언제 문노란 존재에 대해 파악을 했으며, 문노가 삼한지세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단 말인가. 

그러나 어찌 되었든 삼한지세는 김춘추에게로 갔다. 김춘추는 삼한지세를 뜯어 주렴구를 만들어 던지는 장난질을 치고 있다. 그가 삼한의 형세를 분석한 기서의 내용을 제대로 읽기나 한 후에 뜯어 장난감으로 썼는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알겠지만, 삼한지세가 김춘추에게로 갔다는 것은 주인을 제대로 찾아간 것임에는 틀림없다.

비담이 잉태할 불행의 씨앗은 문노가 뿌린 것

후일 김춘추가 고구려와 일본, 당나라를 드나들며 외교 전략을 펼치며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삼한지세의 주인은 원래부터 춘추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랴. 문노는 살아서도 제대로 일을 처리한 것이 거의 없으며, 죽을 때도 무엇 하나 제대로 알아낸 것이 없다.

오직 하나 있다면 비담의 자기에 대한 진심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죽어가는 문노에겐 커다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노는 여전히 알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비담이 사랑 받지 못하며 자란 불행한 운명으로부터 만들어진 비뚤어진 성정이다. 비담이 스승 문노를 향해 "삼한지세는 내 것"이라고 외치는 것은 애정결핍에 대한 반항이었다는 것을 그는 결국 모르고 죽었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불행을 잉태할 것이란 사실도 그는 모르고 죽었다. 그 불행의 씨앗을 뿌린 것은 결국 자신이란 사실도. 그러니 문노야말로 실로 불행한 인물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역사를 바꿀 만한 두 가지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건 뭐 드라마를 보신 분이면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유신이 자기 입으로 말했으니까요. "가야세력이 살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2인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2인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공주님을 여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유신은 왜 선덕여왕과 결혼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일까

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이 말합니다. "네가 공주님과 결혼하여 부마가 되고 왕이 되는 방법도 있지 않겠느냐?" 유신의 아버지 김서현공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신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2인자가 되어야 하지만, 결코 1인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제가 왕이 된다면 신라의 모든 귀족들이 연합하여 우리를 적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내전이 일어납니다. 가야세력과 신라세력이 싸움을 벌이게 되는 거지요. 그렇게 되어서는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영민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서라벌의 권력 판도를 한 눈에 꿰고 있습니다.

아마 김유신이 진평왕의 부마가 되어 왕이 되고자 한다면 그와 가장 절친한 알천마저도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알천 역시도 신라의 진골귀족이기 때문입니다. 알천이 제 아무리 김유신과 친하다고 하더라도 신라의 왕족으로서 가야계가 왕이 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을 터입니다(여왕의 부군이 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만명부인이 김유신에게 한 말 말입니다. "네가 공주님과 결혼하여 부마가 되어 왕이 되면 되지 않겠느냐?"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부마도 왕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답은 "네, 할 수도 있습니다."가 되겠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신라만큼 화통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세계 역사상 한 나라가 천 년 동안 이어진 것은 로마와 신라뿐입니다. 그러나 로마에 여왕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로마는 철저한 부권사회였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와 함께 서구문명의 뿌리를 이룬 것은 로마법입니다. 

신라는 부마도, 외손자도 왕이 될 수 있는 나라였다

정복이 전공인 로마는 도시를 파괴하고 주민을 추방하거나 노예를 만드는 데 세계 최고의 기술을 발휘했습니다. 그런 로마는 강력한 무력을 가진 자만이 통치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에서 여왕이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나 신라는 달랐습니다. 신라는 처음부터 부족들이 연합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된 나라입니다. 차츰 고대국가의 틀이 갖춰지면서 배타적 왕권이 형성되는 것은 다른 나라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여전히 연합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화백회의도 그 중 하나입니다. 신라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신라는 천년 역사를 통틀어 왕이 된 사위만 8명이 나왔습니다. 그 최초의 인물은 너무도 유명한 석탈해입니다. 미추왕, 내물왕, 실성왕, 눌지왕, 흥덕왕, 경문왕, 신덕왕은 모두 사위로서 왕이 된 인물들입니다. 이 중 미추왕은 김알지의 후손으로 최초로 김씨가 신라의 왕이 된 사람이죠.

외손자로서 왕이 된 경우도 흘해왕, 지증왕, 진흥왕 등 3명에 이릅니다. 여기에 더해 3명의 여왕도 나왔습니다.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그리고 진성여왕이 그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모계사회 이후 남녀평등을 가장 잘 실천한 나라는 신라였다고 말해도 그리 과언이라고 탓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이쯤에서 만명부인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덕만공주와 결혼해 부마가 되어 왕이 되면 가야세력의 안전을 보장받지 않을까!" 그러나 김유신은 영리합니다. 영리한 만큼 계산능력도 대단히 뛰어납니다. 그는 자기가 왕이 되면 오히려 신라귀족들의 반발에 직면해 멸망의 길을 가게 되리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가야계를 지키기 위한 김유신의 치밀한 계략은 '선덕여왕 옹립'

그래서 그는 왕이 되기보다 왕을 옹립하여 제 2인자의 자리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덕만공주를 사랑하던 김유신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덕만을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하면서 연모의 정을 끊어버리겠다고 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네티즌들이 거기에 불만을 토로했었지요.

"아니 덕만이 왕이 되더라도 결혼할 수 있잖아. 그러면 되잖아. 여왕은 삼서제에 따라 세 명의 남편을 둘 수 있다며? 그런데 연모의 정을 끊겠다니 웬 황당한 소리야. 너무 웃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김유신은 역시 역사가 말해주듯 매우 권력 지향적이고 냉철하며 계산에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덕여왕을 향한 연정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현실적인 인간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겠지요. 그 정도는 돼야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사상 신하로서 대왕의 칭호를 얻은 공전절후의 인물 김유신이라면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어쨌든 김유신은 자기 부모님들에게 덕만공주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는 가야계의 보존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김서현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계책임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좀 짓궂은 이들 중에 김유신이 덕만공주와 혼인할 수 없는 이유를 드라마가 아닌 다른 곳(역사적 사실)에서 찾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유신에 비해 덕만이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죠. 일부(혹은 다수)에서는 선덕여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는 이미 할머니가 다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어떤 확증적인 사료는 없습니다. 다만 유추하는 거죠. 그럼 우리도 역시 자유롭게 유추해볼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유신과 결혼하기엔 선덕여왕이 나이가 너무 많다?

천명의 아들인 김춘추가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던 632년에 30세였습니다. 여기에다 덕만공주가 장녀라는 삼국사기의 기사를 배척하고 삼국유사를 따른다면, 선덕여왕의 당시 나이를 50대 이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드라마의 무대가 되고 있는 610년 경 덕만공주는 20대였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도 나이가 많습니다. 유신이 595년생이니 그래도 아직 15세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간단하게 생각합시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남녀의 적당한 결혼연령차에 관한 인식은 모두 17세기 양대 병란 이후 어렵던 시절에 만들어진 꼬마신랑 같은 생각들입니다.  

여자가 한 10년 연상이라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아마 그때는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시다. 게다가 덕만은 공주입니다. 그것도 왕위계승권 1순위자. 그러므로 김유신이 덕만공주와 결혼할 수 없는 진정한 사유는 유신랑 본인이 고백한 것처럼 원대한 대의에 따른 것입니다. 

덕만공주을 왕으로 옹립하여 자신은 2인자가 됨으로써 가야계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 역시 김유신은 훌륭합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실제로 김유신은 신라의 2인자로 확실한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후 백년에 걸쳐 김유신의 가문은 권세를 누립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화무십일홍이란 말도 있습니다. 김유신이 죽은지도 100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신라계 귀족들은 가야계에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가야계는 신라계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차츰 역모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생기기 시작합니다. 

김유신장군릉. 왕이 아닌 장군의 무덤은 묘라고 한다. 그러나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그의 묘는 '릉'이 맞겠다.


미추왕과 담판을 지어 가야계를 구하는 김유신

마침내 혜공왕 15년(779년) 무덤에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갑옷에 말을 타고 40여 명을 이끌고 나타난 김유신은 죽현릉으로 들어가 미추왕에게 따집니다. "신이 신라을 위기에서 구하고 삼한을 통일한 공이 있다. 혼백이 되어서도 신라를 지킬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경술년에 신의 자손들이 죄 없이 죽임을 당해 서운하기 짝이 없다. 신라를 떠나고자 한다." 

이에 미추왕(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의 영혼이 간곡히 만류하자 회오리바람은 왔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혜공왕은 혼비백산하여 황급히 김유신의 묘를 찾아 사죄하고 김유신이 세운 취선사에 토지 30결을 바쳐 명복을 빌었다고 합니다. 김유신은 죽어서도 가야계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공주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밝히는 김유신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작가의 상상력도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도 알았으므로 작가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유신랑과 보종랑의 결투는 왜 이리 질질 끄는 겁니까? 오늘 결판 낼 줄 알았더니만…. 내일은 반드시 결판을 내겠지요. 결과를 알면서도 그게 자꾸 기다려집니다. 이건 아주 묘한 감정인데요. 아마 드라마 초반에 유신랑이 당한 수모를 빨리 갚아주기를 바라는 뭐 그런 심정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심정이리라 생각하는데,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이 축구경기로 말하자면 후반전에 들어섰습니다. 지금까지는 미실의 일방적인 공격에 덕만과 천명이 방어에 급급한 형국이었다면, 이제 본격적인 덕만의 공격이 시작될 태세입니다. 사실 덕만은 경기를 지배할 마음이 별로 없었죠. 그녀에게 관심사는 자기 출생의 비밀에 대해 밝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왜 미실과 칠숙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지, 왜 엄마가 죽어야 했는지, 이 모든 비밀을 밝혀내는 게 그녀의 목표였지요.


천명의 죽음에 분노하며 미실과 대결하고자 각오를 다지는 덕만
그런데 이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미실이 왜 그토록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지도 알았고, 부왕이 왜 자기를 내다버렸는지도 알았으며, 을제 대등이 왜 자기를 소리 없이 죽이려고 했는지 그 이유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혁거세 거서간 이후로 전해 내려오는 황실의 예언 때문입니다.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 결국 이 예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력투쟁의 와중에 언니 천명공주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언니의 죽음을 목도한 그녀의 가슴에 새로 싹튼 것은 분노입니다. 이미 이 분노에 대하여 《선덕여왕》은 여러 차례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미실이 덕만에게 말했지요.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뿐이니라. 하나는 도망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노하는 것이니라." 유신 역시 이 분노에 대해 말합니다. 미실에게 무모하게 대적하지마라고 충고하는 김서현에게 유신은 외칩니다. "아닙니다. 분노가 먼저이옵니다. 우리 집안의 이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미실의 수를 생각하기 전에 분노가 먼접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 하늘의 뜻이란 것이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필시 하늘의 뜻을 살펴볼 재주를 가진 자를 통해 세상에 오는 것인가 보다." 미실의 뜻을 거슬러 상천관은 미생의 아들 대남보를 시켜 덕만을 죽이려 했고 이 음모에 뜻하지 않게 천명공주가 희생되는 불운을 당하고 맙니다. 만약 상천관이 미실의 뜻에 거역하지 않았다면, 덕만은 조용히 중국이나 타클라마칸의 사막으로 떠났거나 설원에게 붙잡혀 미실 앞으로 끌려왔을 것입니다.

후자가 미실의 야욕을 채우는 데 훨씬 유용했겠지만, 사실은 두 가지 다 미실에겐 나쁘지 않은 수였습니다. 그런데 상천관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일을 그르치게 되었습니다. 미실은 예전에 없던 최대 위기에 봉착했고, 나아가 상천관이 엿본 하늘의 뜻이 계시하듯 무서운 적을 다시 서라벌로 불러들이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중요한 전투에서 지휘체계가 무너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 예입니다.  

(잠깐) 상천관은 천관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랍니다. 신라시대 천관은 여자들이었죠.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국가의 천관들도 모두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주몽이나 태왕사신기에서도 하늘의 계시는 신녀들이 받았습니다. 천관녀와 김유신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지요. 김유신이 결국 말의 목을 잘라 천관녀와의 관계를 정리했지만… 그런데 궁금한 건, 왜 남자는 하늘의 계시를 못 받는다는 거지요? 불공평하잖아요?  

상천관, 미실의 하늘을 깰 자 덕만을 다시 서라벌로 불러들이다
그러나 미실은 아직 모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사실 상천관이 미실의 뜻을 어기고 덕만을 죽이려고 했던 것도 다 천기를 통해 미래를 슬며시 엿보았기 때문이었죠. 미실은 그런 상천관을 못마땅해 하며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라고 핀잔을 줍니다. 미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죠. 미실의 예언대로 일식이 일어나자 놀라 벌벌 떠는 덕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의 뜻 같은 건 없느니라. 있다면 오로지 이 미실의 뜻만이 있을 뿐이지." 

젊은 시절의 미실은 천의를 두려워했지만,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황제마저도 떨게 만드는 그녀에게 이제 하늘의 뜻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기억나십니까?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으로 쪼개지던 날 밤, 미실이 두려움에 몸을 떨며 쌍둥이를 잡아오라고 군사를 다그치던 모습…. 그러나 세월은 하늘마저도 무시할 정도로 그녀를 오만하게 변화시켰습니다. 미실의 자만심이 천의마저도 부정할 정도로 오만해지게 된 배경에는 물론 '사다함의 매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미실이 진정 모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덕만이 자신이 가진 하늘의 뜻을 거꾸러뜨릴 또 다른 하늘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음 주 예고편에서 정치적 위기에 처한 미실 일파는 계략을 꾸밉니다. 역시 미실의 주특기인 하늘의 뜻을 빌려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일식을 만들겠다는 거죠. 그러나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광력이 있어야 한다고 월천대사가 말합니다.

여러분, 기억나시는지요? 정광력. 그 정광력이 누구 손에 있었지요? 바로 덕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덕만이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로마와 서역의 상인들을 도와준 대가로 정광력을 받고 온 세상을 얻은듯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우리 모두 덕만의 손에 들린 그 낡은 책자가 엄청난 일을 할 것임을 예감했었습니다. 선덕여왕이 첨성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죠.

덕만의 정광력, 마침내 미실의 천의를 꺽을 것인가
그리고 사다함의 매화가 대명력이란 사실이 밝혀졌을 때, 우리는 모두 역시 그랬구나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미실이 대명력으로 천의를 가로챌 때, 나는 왜 덕만이 정광력을 꺼내들고 대항하지 않는지 그게 몹시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광력이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미실이 가진 사다함의 매화를 물리칠 '타클라마칸의 낡은 책자'…. 마침내 덕만공주와 미실이 하늘의 뜻을 두고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덕만이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을 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기는 바로 이 정광력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이제이, 하늘의 뜻은 하늘의 뜻으로 제압한다는 말로도 바꿀 수가 있겠지요. 덕만이 정광력을 잘 간직하고 있기는 한 건지, 혹시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과정에서 분실되거나 훼손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흐흐~ 별 걱정을 다 합니다. 스텝들이 잘 보관하고 있을 텐데 말이죠. 자, 과연 하늘의 뜻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다음 주가 기대됩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제는 제가 음주회동이 있어서 《선덕여왕》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니지, 자정이 넘었으니 그 오늘도 이제 어제가 되었군요. 아무튼 역시 또 음주 회동이 있었지만, 과음을 자제하고 맑은 정신으로 들어와 거금 1000원을 결재하고 보았습니다. 물론 500원짜리도 있습니다만, 선덕여왕만큼은 1000원을 내고 보는 편입니다. 화질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그런데 《선덕여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싶은 그런 사소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선덕여왕》을 보면서 신라의 색공 풍습에 관한 문제라든지,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대단히 문란해 보이는 당시의 혼인제도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몇 차례 포스팅을 하면서 여러 서적들을 살펴보았던 제가 좀 예민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했던 생각은 《선덕여왕》 제작진이 좀 오버한다는 것입니다. 자, 제가 오버한다고 생각한 장면은 이겁니다. 미실이 위천제를 올리고 하늘의 계시를 핑계로 가야세력을 궁지에 몰아넣는데 성공합니다. 봇짐을 메고 줄줄이 쫓겨나는 가야인들이 마치 재개발에 밀려 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철거민들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었지요.

그러고 나서 미실이 어떻게 합니까? 자기 측근들을 모아놓고 다음 계책을 이야기합니다. 채찍으로 상처를 주었으니 이제 약을 발라줄 차례라는 거지요. 그 약이란 다름 아닌 김서현의 가문과 자기네 가문이 혼사를 통해 동맹을 맺자는 것이었지요. 그러자 듣고 있던 하종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외칩니다. "어머니, 또요? … 아이, 정말…" 

하종의 짜증스러운 말의 의미를 눈치 챈 세종 또한 얼굴색이 변합니다.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원망이 얼굴 가득하더군요. 그렇다고 큰 소리 칠 수도 없고…. 제일 불쌍한 사람은 역시 설원공이더군요. 그의 얼굴에도 원망과 불만이 가득했지만 세종 부자처럼 내놓고 말도 못합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건 그 다음 미실의 반응입니다.

미실은 측근들의 불만에, 사실 측근들이라고 해봐야 남편들과 아들들과 친동생이었지만, 내심 스스로도 무안했던지 헛기침을 하면서 얼굴을 찡그리며 난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 말고…" 그러나 저는 미실이 얼굴을 살짝 비틀어 숙인 자세로 찡그리며 "나 말고… 자식들 중에서… 아니면, 하종의 여식은 어떨까?" 할 때, 정말 큰 소리로 웃을 뻔 했습니다.

《선덕여왕》이 재미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소재가 신선하고, 박진감 넘치는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연기자들의 연기가 훌륭합니다. 《선덕여왕》만큼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드라마도 흔하지 않습니다. 《대장금》의 인기를 넘어서는 드라마가 아직 없었다고 하지만, 그 《대장금》도 이처럼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햇습니다.

또, 《선덕여왕》에 재미를 더해주는 것은 코미디적인 요소입니다. 사극이 자칫 빠질 수 있는 심각하고 어두운 면을 이 코미디적인 요소들이 잘 어루만져주고 있는 것이지요. 죽방거사의 역할은 감초의 수준을 넘어 《선덕여왕》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그가 있어서 주인공들이 더 빛나는 거지요.

그리고 미실도 가끔 코미디 같은 대사나 행동을 하더군요. 지난주에는 유신을 불러다놓고 하늘의 뜻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하지요. 뇌쇄적인 윙크까지 섞어서 말입니다.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은 필요하답니다." 아마 오늘, 아니 어제였군요. 미실과 측근들이 모여 벌인 해프닝도 결국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활력소를 위한 코믹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확실히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미실은 다행히 정략결혼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고 밝힘으로써 측근들을 안심시켰지만, 이것은 난센스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신라는 모계사회도 아니고 다부다처사회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때도 분명히 부계전승사회였고, 일부일처제가 지켜지는 사회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보다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실은 단 한 번 혼인했으며 남편은 세종 한사람뿐이었습니다. 지금 드라마에서는 마치 설원이 미실의 남편인 것처럼 비쳐지지만, 그는 남편이 아니라 정부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세종이 받는 대접과 설원이 받는 대접은 다른 것입니다. 물론 세종은 진골이며 설원은 두품도 없는 천한 신분이지만서도…

그럼 미실이 3대에 걸쳐 왕들에게 바쳤다는 색공은 무엇일까? 그건 그냥 색공입니다. 미실이 진흥왕에게 색공을 바쳤다고 해서 그녀가 진흥왕비가 아닌 것이며, 진지왕비도 아닌 것이고, 진평왕비도 아닌 것입니다. 다만, 왕실의 자손을 번창시키기 위해서 색공을 바치기로 된 진골 가문의 한 여인에 불과한 것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드라마에서 보여준 '미실의 혼사'는 실은 난센스였던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물론 세종이 죽은 후라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당시는 여자의 재혼을 금하는 어떠한 법이나 관습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미실이 굳이 김서현과 관계를 맺고 싶었다면 혼사가 아니라도 설원과 그랬던 것처럼 은밀하게 정을 통하면 될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미실은 공식적인 정략결혼을 통해 양 가문의 동맹관계를 맺고 싶었던 것이므로 미실이 아니라 자손들 중에서 누군가 하나를 골라 유신과 혼인시킬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하여튼, 비록 난센스라고 제가 비토를 하긴 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이는 자칫 심각하고 무겁고 어두운 사극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장치쯤으로 이해를 하면 그만입니다.

실은 이렇게 비토를 하는 것도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중의 하나입니다. 아무튼 선덕여왕은 매우 재미있는 드라마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보니 드디어 덕만의 정체가 탄로 났군요. 아니 탄로가 난 것이 아니라 본래의 신분을 되찾은 것이지요. 축하를 해야 할 일이겠지만, 대략 예고편을 보니 앞날이 더 험해질 것 같은 예감입니다.

하여간 여러분, 미실은 오직 한번밖에 결혼하지 않았답니다. 남편도 세종 한사람뿐이랍니다. 비록 정부가 여럿 있었으며 세 명의 왕과 한 명의 태자에게 색공을 바치긴 했을지언정 일부종사(?) 했다는 사실,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남자들도 결혼은 한번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의 혼인에 얽힌 고사를 보십시오. 

왜 김유신은 춘추와 사통한 문희를 묶어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지펴 연기를 피우는 연기를 했을까요? 김춘추가 이미 결혼했으므로 문희를 아내로 맞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기는 선덕여왕에게로 날아갔고 결국 여왕의 묵인으로 김춘추는 문희를 정식 아내로 맞이하는 전례없는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신라사회에서는 남자들도 여자와 마찬가지로 결혼은 한번밖에 할 수 없었다는 역사적 기록인 것입니다. 물론 정식 부인은 한명밖에 둘 수 없었지만, 미실과 마찬가지로 정부(첩)는 여럿 둘 수 있었겠지요. 어디까지나 재력과 권력을 가진 귀족들에 한해서만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말입니다. 이런 것도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오늘 새삼스럽게 난센스 이야기 하다 보니 제가 난센스에 빠지는 기분입니다. 흐흐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에 드디어 칠숙이 등장했다. 소화와 함께 서라벌에 나타난 칠숙으로 인해 드라마 선덕여왕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안 그래도 내심 불안했었다. 칠숙이 소화를 구해 살아서 돌아온다는 소문은 진즉에 있었지만, 혹시나 했었다. 만약 칠숙과 소화가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면 과연 누가 덕만의 정체를 증명해줄 것인가.

나는 그게 걱정이었다. 진흥대제(드라마에서 자꾸 대제라고 호칭하니 나도 민족주의 내지는 애국주의적 대세에 편승해서 대제로 부르기로 한다. 경남도민일보의 김훤주 기자라면 이런 걸 무척 싫어할 텐데… 그래도 할 수 없다. 시류에 편승하는 수밖에…)의 신물인 작은 칼 정도로 진평왕이 자기 딸을 확신하기에는 너무 무리다.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진평왕이 덕만을 떠넘긴 소화다. 소화의 증언이야말로 태산도 움직일 수 있는 명백한 증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소화를 어머니로 믿고 따르는 덕만을 보면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소화에 대한 감사와 신뢰는 바다를 메우고도 남을 것이다. 어쨌든 칠숙과 소화의 등장은 부질없는 내 짐 하나를 덜어주었다.

그런데 칠숙은 어떤 인물인가? 칠숙은 기록에 의하면 진평왕 말년에 석품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그도 역시 화랑이었으니 진골귀족이다. 화랑은 진골귀족의 자제들 중 용모가 수려하고 덕망이 높은 자 중에서 선발한다. 이처럼 화랑도가 내면적 정신 못지 않게 외모를 중시하는 것은 신라인들의 영육일체, 선미합일의 미적 관념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설이 대체적이다.

어떻든 이렇게 본다면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화랑들은 모두 같은 씨족들로서 형제자매들이다. 드라마에서 미실이나 설원공이 스스로를 천한 신분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진골귀족 내부에서의 역관계일 뿐이고 이들은 모두 신라 최고의 관등에 오를 수 있는 진골귀족들이다. 그러니 미실이나 설원공이 김씨인 것도 자명한 일이다.

만약 설원공(혹은 설원랑)이 김씨가 아닌 설씨라면 그는 화랑도 될 수 없었겠지만 병부령의 자리에도 오를 수 없다. 더구나 대등들만이 참여하는 화백회의에 참여한다는 것은 천지가 개벽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이 화백회의가 매우 민주적인 제도라고 배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신라사회의 이처럼 독특한 골품제와 화백회의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리고 이 골품제를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이 권장되었던 것은 아닐까? 드라마에서 만명부인은 공주의 신분을 버리고 김서현과 결혼해 김유신을 낳았다. 만명공주는 성골의 신분이었지만 골족이 아닌 가야 출신 김서현을 선택함으로써 귀족 신분을 잃게 된다.

김서현이 공을 세워 만명부인의 어머니인 진흥대제 황후의 배려로 다시 진골귀족의 신분을 얻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만명공주가 귀족신분을 잃게 된 이유는 바로 족외혼을 강행했기 때문이란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 김유신 일가는 가야의 왕족으로 신라에 투항한 공을 인정받아 진골 작위를 받고 공주와 결혼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만명공주가 족외혼을 고집해 귀족의 작위를 잃었다는 것은 별로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드라마가 옳든 내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이 옳든)간에 신라는 언제부터인가 족내혼이 하나의 관습이요 제도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씨족사회도 아니고 부족사회도 아닌 국가 체제가 정비된 고대의 강국 신라에서….

언젠가 아키히토가 황태자이던 시절, 천황족 외부의 여인과 결혼한다고 해서 크게 화제를 몰고 왔던 적이 있다. 일본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커다란 사건이었다. 일본에서 천황이 생긴 이후 최초의 일이었다고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도 족내혼의 관습이 법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백제에서 건너간 일파가 일본을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족내혼을 선택했다느니 하는 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역사적 기록이나 신뢰할 만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신라에 대해서도 비슷한 추론을 내세울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 발표된 연구 중에 신라 금관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신라의 금관은 성인의 머리에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물건이었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의 둘레를 재어보았더니 너무 좁아 머리가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장식용이었을까? 그런데 어느 학자가 그 비밀의 동굴에 손을 집어넣었다. 비밀의 열쇠는 고대에 행해진 풍습에 있었다.  

신라 왕족들의 머리는 모두 길게 늘어진 모양이었다. 이는 북방 흉노족의 관습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흉노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에 돌을 올려놓아 머리를 늘어뜨리는 관습이 있다는 것이다. 금관의 둘레가 좁아 성인의 머리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바로 흉노의 이런 관습 때문이란 것이다. 

편두 풍습으로 머리가 가늘고 길쭉해지면 충분히 금관을 쓸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로부터 하나의 가설이 만들어졌다. 신라의 왕족들은 흉노의 일파인 북방 선비족이라는 것이다. 김알지의 신화는 그의 후손이 왕위에 오르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함께 만들어졌다. 충분히 가능한 가설이다.

그 가설이 정당하다는 가정 하에 하나의 가설을 더 추가해보는 것도 그리 엉뚱해보이지는 않는다. 일본의 천황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신라를 장악한 경주 김씨들도 자신들만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족내혼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골품제도를 만들고 골족 내부의 의견을 통일하고 연대를 제고하는 기관으로 화백회의를 둔 것은 아닐까? 

죽은 줄 알았던 소화가 돌아왔다.


신라가 건국될 당시에는 왕은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서 6부족이 세력균형을 이루는 연맹체였을 것이다. 이 6부족의 평화로운 연맹을 위해 6부족장이 아닌 인물을 왕으로 추대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혁거세거서간의 신화는 그래서 탄생했을 것이다. 남해차차웅의 사위로서 유리이사금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석탈해의 경우도 그렇다.

석씨 부족이 철기문화를 가진 강성한 군사력으로 왕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학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사기나 유사를 인용한다면 이때도 평화로운 연맹체가 지향이었으며 왕권은 6부족이 인정하고 승복할 수 있는 덕망있는 사람이 맡았을 것이다. 그러나 석탈해가 계림에서 얻었다는 김알지는 누구였을까? 

그들이 북방에서 남하한 흉노족이었다면 정복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면서 피정복민들을 지배할 효과적인 수단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마도 골품제도는 그렇게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 골품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족내혼은 필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명하기 힘든 또 다른 역사적 함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 김알지의 7세손인 미추이사금 때에 가서야 비로소 김씨가 왕위에 등극하느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가설을 풀어보았으나 이 부분에 대한 답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어떻든 이런 가설이 아니라면 그들의 근친혼을 설명할 길이 없다. 경주 김씨들은 원래 문란한 성전통을 가져서? 그건 아니지 않나.

경주 김씨가 정복민족이었다는 가설은, 그래서 골품제도를 만들고 족내혼을 했으며 나아가 다산을 위해 일부다처 또는 일처다부를 권장했다는 사실을 뒷바침할 수 있는 유력한 논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든 저렇든 칠숙이 돌아왔다. 그도 화랑이다. 그러므로 그도 설원이나 세종처럼 미실을 사랑할 수 있고 충성할 수 있다.

그런 줄 알았다. 안 그러면 아무리 칠숙랑이 우직하다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미실에 대한 사랑은 15년 세월을 만주를 거쳐 타클라마칸까지 유랑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었던 배경을 잘 설명해 준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한다. 특히 남자들은 그렇다. 그런데 이 칠숙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소화를 바라보는 눈빛 말이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려고 그러는 거지? 작가의 의도가 도무지 짐작이 안 간다. 아무리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사를 너무 걸레조각으로 만들면 시청자들의 반감을 사지 않을 수 없다. 칠숙이 소화를 사랑하게 되면 선덕여왕의 등극에 반발해 일으키게 될 반란은 어쩌란 말인가?

실로 귀추가 주목된다. 칠숙, 한 눈 팔지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를… 그리고 그건 법도에도 어긋나는 짓이란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