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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황금빛내인생, 7년 만의 외출

제목의 두 구절은 사실 별 인연이 없는 것이다. 드라마 <황금빛내인생>7년 만의 외출은 따지고 보면 그 어떤 개연성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또 이 두 구절은 내게 있어서는 전혀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어서 깊은 관련이 있다. 오늘 <황금빛내인생>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쓰는 후기가 나의 블로그에 있어서 거의 7년 만에 쓰는 것이니 말이다.



7년이라는 세월은 짧은 것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드라마 평을 주로 쓰는 파비의 칼라테레비를 기억하고 있다. 20089월부터 2010년 상반기(정확하지는 않지만)까지 드라마 비평을 블로그에 열심히 썼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웬일인지 블로그 활동이 시들해져서 게으름을 피우다가 어느 날부터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다 어제 문득 신실한 동네 후배이면서 절친한 친구인 어떤 분으로부터 형님. 파비의 칼라테레비를 다시 재개해주면 안 되겠느냐는 부탁 아닌 부탁을 받았다. 그 친구가 아마도 요즘 연속극에 좀 빠졌나보다. 미루어 짐작컨대(, 이런 표현은 판사님들이 판결문에서 즐겨 쓰는 표현인데, 아무튼) 사랑하는 아내가 연속극에 빠지니 덩달아 함께 빠진 게 아닌가 싶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사노동을 전업으로 하는 주부들은 필연적으로 연속극에 빠지게 돼 있다. 또 그런 아내를 위하여 함께 연속극에 빠지고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것은 자상한 남편으로서는 필수적인 일이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그것은 행복한 가정을 위한 의무사항이다.

 

혹자는 텔레비전은 백해무익한 것이며 심지어 인민의 뇌를 마비시키는 아편 같은 존재라고 하지만, 내 보기에 요즘 시대에 텔레비전만한 정보 습득 수단도 없으며 때에 따라 피로에 지친 현대인을 위무하고 무료함을 달래주는 좋은 친구다. 비약인지는 모르겠으나 부패하고 무능한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촛불혁명에 불을 지핀 것도 이 텔레비전이 아니었을까.



그러면 또 혹자는 뉴스나 시사프로는 그렇더라도 연속극만은 아니오, 라고 말씀하실지 모른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시라. 연속극이 비록 이른바 막장을 달린다손 치더라도 대사 곳곳에 숨어 빛을 발하는 명철한 분석을 겸비한 사회비판적 언어들을 접하게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당장 <황금빛내인생>을 본 소감이 그러하다.

 

우리는 우리가 아니에요.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될 수 있죠? 우리는 정규직들이나 할 수 있는 소리에요. 비정규직, 계약직들은 그냥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하는 거예요.”

 

주인공 서지안은 이렇게(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략 이렇게) 외친다.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대사였다. 최근 어떤 장관 후보자가 서울대 안 나오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말, 공부 못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말, 그거 다 거짓말이다라고 과거 자신의 책에 썼다고 해서 비판이 이는 모양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면 부정적인 현실이 긍정적인 현실로 바뀌는지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심히 의문이다. 

 

불편하지만 그의 말은 진실이 아니라고 쉽게 단언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쨌거나 텔레비전 연속극이 아니면 누가 이런 불편한 그러나 날카롭게 사회적 문제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 누가 그런 말을 들어주기나 하겠는가. 드라마야말로 얼마나 수월한가 말이다. 하고 싶은 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공간. 그래서 나는 드라마가 좋다.

 

각설하고, 신실한 동네 후배이며 절친한 친구인 어떤 이의 부탁을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고자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온종일을 할애해 나는 <황금빛내인생> 1회부터 18회까지 훑어보는 노력 투자를 하였다. 물론 중간 중간 지루한 부분은 리모콘으로 돌려가면서 보았다는 점은 미리 고백하고 양해를 구한다.

 

우선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 몇 년의 세월 동안 이야기를 구성하고 전개하는 방식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우선 당장 눈에 띄는 것은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가 사라졌더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인공 서지안은 남의 것을 빼앗는 악인이고 서지수는 자기 것을 빼앗기면서도 사랑을 베푸는 선인으로 그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다 나름대로 개성과 주관을 갖추고 있으나 그들을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로 그리면서도 나름대로 갈등국면도 만들어내고 속도감 있는 전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부분들이 신실한 후배이며 절친한 친구인 어떤 이가 꼭 보고 파비의 칼라테레비를 재개해주었으면하는 부탁을 하게 했던 것은 아닐지.

 

7년만의 외출은 재미있었다. 앞으로 이 드라마는 빼놓지 않고 결말까지 봐야만 할 것 같다. 친구에게 미리 결말에 대하여 예언을 드린다면, 해피엔딩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해피엔딩이 좋다. 세상은 너무 가혹하고 그래서 최소한 드라마에서라도 해피엔딩을, 특히 주말연속극이라면 더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는 바람이 든다.   


ps; 친구야, 숙제 했데이... ㅎㅎ 마음에 안 들어도 할 수 없다. 나름대로 어렵게 쓴 거다. 안 하다 할라니 힘드네.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