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오후 1시,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유족회> 창립총회가 열렸습니다. 저도 그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유족은 아닙니다. 우리 가족 뿐 아니라 친족 누구도 학살에 희생된 사람은 없습니다. 참 다행한 일입니다. 창립총회 토의발언을 하시면서도 눈물을 적시는 어르신들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치수 회장의 취임사는 민간인학살에 대한 정부태도 성토와 유족들의 결의촉구가 돼버렸다. 오른쪽은 김주완 부장.


우리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십니다. 전쟁이 나던 해 열여덟 살이셨던 아버지는 부산의 어떤 거리에서 술을 마시다 잡혀갔다고 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군사 훈련장이었는데, 그곳에서 특수훈련을 받고 전쟁에 투입됐다고 했습니다. 공도 많이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은성무공훈장을 세 개나 받기도 하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 그 훈장들을 마당에서 석유를 부어놓고 불을 지르셨습니다만, 최근에 다시 받아다 집 거실에 걸어두고 계십니다. 다리에 총상이 선명하도록 처절하게 싸우셨건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한창 공부할 젊은 나이에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교또중학교를 졸업하고 해방을 맞아 귀국했을 때 조종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모든 걸 앗아갔습니다. 전쟁이 끝나고도 10년 가까이 군에 남아있다 제대했지만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석회석광산, 탄광 등지에서 발파감독으로 오래 일하셨지요. 제 어릴 적 아버지의 기억은 살기어린 눈빛과 술과 그리고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훈장을 태우던 힘없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전쟁의 상처가 어떤 것인지를 몸소 느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식들을 앉혀놓고 자기 무용담을 늘어놓는 모습이 어느 날부터인가 푸념처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숱하게 사람을 죽이면서 얻어낸 “이거 하나면 사람 목숨 세 개와 바꾼다”던 훈장은 삶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훈장으로 얻은 것은 피폐한 생활과 살기등등한 성격, 평생을 가도 가슴속에 쌓여있는 분노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매우 불쌍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의 피해자로서 말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저도 매우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매우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전투와 상관없이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것도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나 경찰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들은 모두 민간인이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가서 집단총살 당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배에 태워져 마산 앞바다에서 수장됐습니다.


그중 아홉 구의 시신이 마산 구산면에 떠내려 온 것을 마을사람들이 거두어 묻어주었다고 합니다. 곧 그곳에서 유골 발굴 작업이 벌어질 거라고 합니다.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쌀을 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죽음을 당한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보도연맹 가입자를 늘려 실적을 쌓으려는 천인공노할 만행의 희생자들입니다.


4․19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자 마산에서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유족회가 발족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등장한 박정희 쿠데타정권은 유족회를 강제해산시켰습니다. 이때 노현섭씨 등 지도부는 구속되어 15년을 감옥에서 썩어야했습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48년 만에 유족회가 다시 창립하게 된 것입니다.

학살자 가족들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한이 맺힌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이미 6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사건을 정확하게 밝혀내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유골을 발굴하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1960년에 했어도 어려운 일을 2009년에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다 정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도 없애겠다고 합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월 진실규명 결정문을 통해 '1950년 7월 5일부터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국군과 경찰, 형무관들에 의해 마산형무소 재소자와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 등 최소한 717명이 인근 산골짜기에서 총살되거나 구산면 원전 앞바다에서 집단수장됐으며, 그들 중 358명의 구체적인 신원을 확인했다'(김주완 기자)고 밝혔다고 합니다.


창립총회에서 마산유족회 회장으로 선출된 노치수 회장에 의하면 과거사위원회가 밝힌 숫자는 극히 일부이며 자신들이 확인한 숫자만 해도 1676명이고 신고를 하지 않고 있는 수백 명을 포함하면 최소한 2000명이 넘게 학살당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이 정도라도 밝혀낸 것은 과거사위원회의 공적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그런 과거사위원회가 불편한 모양입니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원혼을 달래고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과거에 국가가 저지른 범죄행위를 반드시 밝혀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교훈으로 삼아야합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게 싫은 것입니다.


‘그게 싫다는 것’은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 유족은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우리 한을 풀어주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절대로 물러나서는 안 됩니다. 제 나이가 육십 넷입니다. 여기 저보다 나이 더 많으신 분들도 많고요. 우리 죽고 나면 아무도 없습니다.”


그랬습니다. 거기 모인 분들은 모두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습니다.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는 어르신을 보니 저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유족도 아닌 제가 눈물을 흘리는 것이 부끄러워 먼 산을 쳐다보았지만, 가슴속에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홀로코스트가 생각났습니다.

산청군 시천면 민간인학살 현장. 발굴팀장 경남대 이상길 교수는 마산유족회 자문위원이다. @김주완

잠시 후에 죽게 될 줄도 모르고 줄을 서서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유태인들, 그 유태인들을 학살한 히틀러의 나찌정권과 우리나라가 무엇이 다릅니까? 그래도 나찌정권은 제 민족을 학살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기 동포를, 바로 얼마 전까지도 한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던 이웃을 집단으로 학살한 것입니다.


이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내내 분노와 슬픔으로 뒤범벅이 된 노인들의 붉어진 얼굴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곧 마산시 구산면 바닷가에서 유골 발굴 작업이 이루어질 거라고 합니다. 10월 26일에는 위령제도 연다고 합니다. 저는 민간인학살 유족회원은 아니지만 그때도 꼭 참석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미력한 힘이나마 그분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자 합니다. 왜 정부는 제 나라 국민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재판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국가범죄행위에 대하여 배상은 고사하고 한마디 사과도 안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그런 학살행위에 대해 찬동하고 있는 것일까요? 자기나 자기 가족이 그런 처지에 놓인다면 무어라고 할지 그게 궁금합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