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에 해당되는 글 61건

  1. 2015.07.29 합천ATV의 진실, 그것이 알고 싶다 by 파비 정부권
  2. 2015.07.27 84세 황강수중마라톤 선수, "아, 쥐가 나지만…" by 파비 정부권
  3. 2015.07.27 합천서바이벌, 살떨리는 쾌감 이유는? by 파비 정부권 (1)
  4. 2015.02.01 전라도의 산 by 파비 정부권
  5. 2013.10.11 지난여름 문경새재 걷기 사진들 by 파비 정부권
  6. 2013.02.02 영암사지에 사자가 엉덩이를 까고 선 까닭 by 파비 정부권 (10)
  7. 2012.11.14 고성옥천사의 진짜 명물은 사자개 by 파비 정부권 (4)
  8. 2012.10.04 보리도자예술가 김은진, 언닌 얼라 스타일! by 파비 정부권 (4)
  9. 2012.09.26 창동골목에 예술촌이 생기고 난 풍경 중 하나 by 파비 정부권 (3)
  10. 2012.09.24 창동예술촌 골목에선 어떤 소리가 들릴까? by 파비 정부권 (1)
  11. 2012.06.27 밀양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전도연? 표충사? by 파비 정부권 (11)
  12. 2012.03.05 제대로 바람 부는 날의 바람의 언덕 by 파비 정부권 (3)
  13. 2011.11.15 갯벌기행, 갯벌을 보면 떠오르는 것들 by 파비 정부권 (3)
  14. 2011.11.09 청도에는 있지만 창원에는 없는 것? by 파비 정부권 (1)
  15. 2011.11.02 청도 감으로 만든 양갱 맛은 어떨까? by 파비 정부권 (7)
  16. 2011.11.01 청도를 보니 갑자기 마산이 걱정된다 by 파비 정부권 (14)
  17. 2011.10.30 내가 모산재를 버리고 합천박물관을 택한 까닭 by 파비 정부권 (9)
  18. 2011.10.25 중딩 아들이 쓴 제주도 여행기, 엄청 기네 by 파비 정부권 (7)
  19. 2011.10.18 합천 홍류동 소리길은 왜 소리길일까? by 파비 정부권 (2)
  20. 2011.10.11 홍류동 소리길! 합천군, 지금껏 뭐한 거야? by 파비 정부권 (3)
  21. 2010.12.04 김주완 "아, 상주팸투어 참 니나노빨 안 받네" by 파비 정부권 (12)
  22. 2010.12.01 경남팸투어 풍경, 담배가 그렇게 좋으세요? by 파비 정부권 (12)
  23. 2010.11.30 감미로운 마을서 만난 김두관, 확실히 촌놈 맞네 by 파비 정부권 (17)
  24. 2010.10.23 지리산은 왜 지리산이라고 부를까? by 파비 정부권 (8)
  25. 2010.04.15 황매산 모산재 서정홍 시인댁에서 시인도 되고 본전도 찾은 얘기 by 파비 정부권 (6)
  26. 2010.04.15 군항제 끝난 진해 벚꽃장의 마지막 장관 by 파비 정부권 (3)
  27. 2010.04.07 여수엑스포, 세계박람회에 홀딱 빠진 여수시민들 by 파비 정부권 (7)
  28. 2010.04.05 원색의 봄빛을 만나려면 여수 오동도로 가라 by 파비 정부권 (20)
  29. 2010.04.01 파워블로거들이 남쪽 여수로 간 까닭은? by 파비 정부권 (16)
  30. 2010.03.05 추노에서 만난 어린시절 소풍장소, 너무 반가워 by 파비 정부권 (8)



Posted by 파비 정부권

합천 황강에서 수중마라톤이란 것을 한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드러난 팔뚝이 금세라도 익을 것처럼 이글거렸지만 나는 마라톤 행렬을 카메라에 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덕분에 다음날 벌겋게 화상을 입은 살갗이 욱신거리고 아파 고생했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한양여대 학생들이라고 하던데...


여름. 흔히 사람들은 봄을 생명의 계절이라고 얘기하지만, 황강에서 만난 여름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밭을 뛰어다니는 젊은 육체들의 팽팽한 피부는 가득 공기를 채운 튜브처럼 탄력이 넘쳤다. 살짝 건드리면 찢어질 것만 같은 윤기가 흐르는 매끄러운 몸체에선 시원한 물줄기가 솟아오를 것만 같은 환상이 느껴졌다.

 

, 이런 이야기를 해도 좋을까. 나는 사실 중학생이 된 이후로 물에 들어가 놀아본 적이 없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여름 내내 물가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그 이후로는 강가에도 해수욕장에도 거의 가본 적이 없다. 기껏 계곡에 가서 발을 담그는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그것도 어쩌다 한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우연찮게 사회적 기업 <해딴에>가 진행하는 황강레포츠 팸투어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한국 여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한국인의 체형을 말할 때는, 특히 한국 여성의 몸매에 대해 말할라치면 우선 짧은 다리부터 연상했다. (좀 미안하긴 하군. 욕 안 먹을지 모르겠어. ㅠㅠ) 서양의 쭉 빠진 체형에 비해 우리의 그것은 정말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테이프가 쳐진 안쪽이 마라톤 코스


그러나 아, 아니었다. 이제 나는 서양 여자의 곡선미를 전혀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이 서양 어떤 지역보다 월등하다는 것. 그 늘씬한 각선미. 팔등신의 비율. 가는 허리에 풍만한 엉덩이. 서양인보다 월등히 우월한 미끈하고 탄력 넘치는 피부. 게다가 한국여자들은 다른 나라 여자들에 비해 얼굴도 훨씬 예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생전 처음 경험한 경이로운 한국 여체의 아름다움보다 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할아버지였다. 하얀 수염이 턱밑으로 길게 자란 남자의 나이는 84세라고 했다. 노인은 경기 시작 전 몸을 푸는 체조를 할 때도 참가선수들의 맨 앞줄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옆에 있던 동료 블로거가 그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하며 입을 열었다.


몸을 풀고 있는 할아버지 선수


, 나도 저 나이에 저렇게 되고 싶다.”

 

하하, 그게 아무나 되나요? 하고 웃었지만 실은 내 마음도 그랬다. 나는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찍기 위해 수중마라톤 코스 바로 곁에까지 다가갔다. 일부러 허벅지까지 물에 담그고 카메라를 설치한 MBC 카메라맨 옆에 섰다. 그래야 마라톤 주최 측의 제지를 안 받아도 될 거라는 잔머리를 나름대로 굴린 것이다. 아무튼…….

 

출발을 알리는 오색 폭죽이 굉음과 함께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대열이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선 자리는 출발선으로부터 약 100여 미터 거리에 있었다. 길게 늘어선 마라톤 행렬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혹시라도 노인을 놓칠까봐 조바심을 내며 행렬을 살폈다.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행렬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느리지만 뛰고 있습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드래곤볼에 나오는 거북도사 같지 않나요?


그때 마침내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느렸지만 뛰고 있었다. 노인의 시선은 30도 정도 아래로 고정되어 있었다. 노인의 표정은 매우 침착했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 달리면서도 노인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노인의 숨결은 가지런히 오르내리며 심장에서 만들어진 동력을 다리로 전달하고 있었다.

 

아아, 다리에 쥐가 나네. 쥐가 난다고. 아아, 이거, 다리에 쥐가 나는구먼.”

 

ㅎㅎ


노인의 얼굴을 담기 위해 셔터를 누른 그 순간 노인은 마치 내게 들으라는 듯 한숨의 쉬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흠칫했다. 저렇게 평온한 얼굴로 100여 미터를 달려온 노인의 다리에 쥐가 나다니. 그 한마디에 서늘한 슬픔이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솟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노인이 완주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그것은 진심이었다. 나는 노인을 앞질러 뛰어가 50여 미터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노인은 여전히 30도 정도 아래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고 숨결은 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었으며 표정은 침착했다. 달리는 속도도 변함이 없었다. 느렸지만 여전히 노인은 달리고 있었다. 노인은 내 앞을 스쳐가면서 역시 같은 말을 되뇌었다.

 

아아, 다리에 쥐가 나네. 아아, 다리에 쥐가 나는데.”


좀 힘들긴 하군


그때서야 나는 그것이 나를 보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노인의 옆에는 한 여자가 의약품 같은 것이 든 투명한 비닐봉지를 들고 함께 뛰고 있었다. 약 40세 전후로 보이는 그녀는 어쩌면 노인의 손녀이거나 간호사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간호사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노인의 유니폼 가슴팍에 병원 이름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노인은 한국 여체의 아름다움보다 더 놀라운 경험을 내게 주었다. 나는 그 노인의 하얀 수염으로부터, 깡마른 늙은 육신으로부터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았다. 84세의 노인. 언제 떠나야할지 모르는 시한이 정해진 생명체. 그러나 쏟아지는 햇빛을 반사시키며 타들어가는 백사장을 끼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리는 그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황강에 생명이 있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survival, 서바이벌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생존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서바이벌 게임의 서바이벌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었습니다.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절박한 목표이며 살 떨리는 욕구였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해봤으니까 알죠. 흐흐~


@사진. 실비단안개/ 단디뉴스 대표 권영란 기자. 폼은 멋지심.


모든 여행은 시작이 아름답습니다. 새로운 여정을 향한 출발은 언제나 가슴 부푼 기대로 시작하게 마련이죠. 어제도 그랬습니다. 합천 황강레포츠축제 팸투어. 경남도민일보 부설 협동조합 <해딴에>가 기획한 행삽니다. 물론 저도 참석했죠. 오래전부터 지기로서 잘 알고 있는 해딴에 단장님이신 김훤주 기자의 특별배려로 함께하게 됐던 것입니다.


수련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이사와 실비단안개

왼쪽은 경남도민일보 정성인 기자

 

역시 시작은 아름다웠습니다. 태풍 할롤라가 몰려온다고 해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날씨는 좋았고 우리는 충분히 들떠 있었습니다. 합천에 진입하기 전 들른 대의휴게소에는 예쁜 연꽃들이 한껏 단장하고 사람들을 반겼습니다. 블로거 본능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요? 살아있네~ ㅎㅎ

 

하지만 잠시 후 맞이하게 될 살인경기를 그 아름다운 마음들은 생각이나 했을까요? 이번 팸투어에 참여한 14명 중에 서바이벌을 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답니다. 실비단안개님과 저만 빼고 모두들 해보겠다고 의욕을 보이더군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역시 사람에겐 숨겨진 거시기본능이 있는 거야. ㅠㅠ



@사진. 실비단안개

 

실비단안개님은 여자고 나이도 있으시니까 빠졌다 치고 저는 왜 빠졌냐고요? 공식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반전평화주의자인데다 실비단님이 빠지면 제가 빠져야 66으로 짝이 맞는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겁이 나서 빠졌어요. ㅠㅠ 군대까지 갔다온 놈이 왜 그러냐고요? 저 사실 군대 가서 험한 훈련 안 받아봤거든요.


@사진. 실비단안개/ 전쟁 시작 전 안전교육. 쓰레빠 신고 있는 자가 나


대신 저와 실비단님은 전쟁터가(서바이벌 게임장이) 내려다보이는 둑 위에 서서 사진을 찍었죠. 경기는, 아니 전쟁은 싱겁게 끝났답니다. 겨우 10분 정도? 한쪽 병력이 전멸하고 말았으니. 세상에 무슨 놈에 전쟁이 이렇게 싱겁담?



경블공 합천 팸투어, 서바이벌 게임
 

@사진. 실비단안개/ 전쟁 투입

@사진. 실비단안개/ 은폐엄폐물을 찾아 전투준비

@사진. 실비단안개/ 전투자세

@사진. 실비단안개/ 왼쪽 한명 죽었음

@사진. 실비단안개/ 전사자는 이렇게 손들고 나와야 함

@사진. 실비단안개/ 나 죽었어요. 쏘지 마세요.

 

하지만 모두들 정말 너무너무 만족한 표정이었어요. 죽인 자도 죽은 자도 신이 나서 막 떠들어댔죠.

 

, 너무 재밌다. 이렇게 신나는 놀인 줄은 미처 몰랐네. 별로 힘도 들지 않고.”

 

총에 맞은 곳이 아프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그러더군요.

 

글쎄 말예요. 맞긴 맞은 거 같은데 내가 총알에 맞은 건지 안 맞은 건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막 긴장되고 흥분돼 있으니까. 하하. 온몸이 짜릿하게 오그라드는 것 같은 긴장감이 정말 대단했어요.”


@사진. 실비단안개/ 전쟁 끝나고 아이스크림 먹으며 분을(즐거움을?) 삭이기


다음은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이사의 말입니다.

 

이게 장난이 아니더라고. 딱 시작하니까, 내가 안 죽어야 되겠다, 적을 죽여야 되겠다, 그런 마음자세가 팍 생기더라고. 적을 죽이고 내가 살려면 몸을 낮추고 정조준해서 맞춰야 되니까…… 사람에게 그런 게 있는 모양이라. 엔도르핀이 막 솟아나는 게 느껴지더라고.”

 

그런 것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전쟁본능? , 그보다는 생존본능이라고 해두죠. 이건 다른 동물에게도 예외 없이 존재하는 거예요. 모든 생명체는 살기 위해 적을 타격하도록 설계돼 있죠. 그런데 문제는요. 그게 단순한 설계가 아니라 즐겁다는 거예요. 인간들만이 그럴 수 있는 거죠. 살생을 유희로 만들 수 있는 능력.


하지만 여기서 골치 아픈 철학적 사유를 해보자는 건 아니에요.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죠. 여기선 다만 사람들이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웠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정말 즐거운 놀이였어요. 사람들은 그 짜릿한 긴장과 전율, 쾌감, 욕구의 분출에 생전 한 번도 그런 것은 느껴본 적이 없다는 듯이 신기해하고 놀라워했어요.

 

시작이 너무 좋았던 거죠. 간단하게 군복만 겉에 입고 안전장구만 착용하면 되었으므로 크게 불편하거나 부담이 되는 것도 아니었어요. 게임 끝내고 지급된 옷과 장구만 벗어버리면 올 때의 상태로 원상회복되니까요. 그러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어요. 너무 간단했죠.

 

단 몇 가지 지적할 내용은 있네요.

 

첫째, 서바이벌 게임은 혼자 할 수 있는 경기가 아니라는 문제가 있어요. 서너 명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최소한 열 명 이상은 돼야 할 수 있는 경기에요. 그러니까 단체로 해야 된다 이 말씀이죠. 하지만 이거야 뭐 문제라고 할 것도 아니네요. 애초에 이런 서바이벌 게임장에 갈 거라면 단체로 갈 생각이었을 테니까요.

 

둘째, 합천의 서바이벌 게임장은 규모가 그리 큰 편이 아니었어요. 자그마한데다 각개전투를 할 수 있는 산비탈이라든지 험한 지형을 갖추고 있지도 않았어요. 아마 서바이벌 전문동호회라면 좀 실망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장점일 수도 있어요. 서바이벌 전문동호회는 아닌데 적당한 단체놀이감이 없을까 고민하는 분들에겐 이 게임장이 적격이란 생각이 들었답니다. 규모가 작은 대신 전혀 위험하지 않고요. 힘도 들지 않고. 그저 간단하게 어릴 적 총싸움놀이 하듯이 놀면 되는 거거든요.


@사진. 실비단안개/ 산악오토바이 ATV


셋째, 이건 문제가 아니라 좋은 점인데요. 이 서바이벌 게임장엔 ATV 주행시설도 있다는 거지요. ATV가 뭐냐고요? 사륜오토바이라 생각하면 되는데요. 자세한 건 다음 포스팅 때 설명드리기로 하고요. 서바이벌 게임을 하기 전에 간단하게 몸을 푼다는 생각으로 사륜오토바이를 타고 신나게 트랙을 돌다보면 몸과 마음이 확 풀어진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요.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나서요. 조금만 밑에 내려가면 래프팅장이 있어요. 거기서 래프팅을 하는 거예요. 지금 같은 여름철에 정말 딱인 운동이에요. 오전 10시나 11시쯤 도착해서 서바이벌 게임장에서 신나게 몸을 푼 다음 근처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오후에 래프팅으로 신나게 노는 거죠.


@사진. 실비단안개/ 영광의 래프팅 출발. 노를 치켜든 왼쪽 선두가 나. ㅎㅎ


참고로 래프팅 역시 코스가 아주 부드럽고 완만해서 가족단위로 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놀이였답니다. 우리 일행들은 서바이벌 게임도 모두 처음이었지만 래프팅도 마찬가지였어요. 모두 처음이었죠. 하지만 너무 쉽고 편하고 즐거웠다는 것. 아무튼 이 래프팅에 관해서도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요.

 

마지막 한 가지. 숙박문제인데요. 여기 위치가 어디냐면요. 합천호 바로 옆이거든요. 그 주변에 팬션 등 숙박시설이 빽빽해요. 거의 모든 팬션들이 합천호를 전망으로 갖고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죠. 합천읍내가 가까우니 거기서 모텔 등에 숙박할 수도 있고요.

 

합천. 여름피서지로 정말 멋진 곳입니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할게요. 사실 제가 지금 술이 약간 된 상태거든요. 합천 황강레포츠축제 팸투어 마치고 집에 와서 샤워한 간단하게 한잔 하고 있는 중이란 말씀이죠. 죄송하고요. ㅠㅠ 하지만 감동이 식기 전에 조금이라도 미리 알려드리고 싶어서.

 

충정으로 이해해주시길. ^^ 


/2015년 7월 26일 19시 

Posted by 파비 정부권

전라도는 어디를 가나 산이 예쁘다. 

여자의 속살같이 부드럽게 

물결치는 곡선들이 푸른 소나무로 물들인 

치마를 입고 비스듬이 누워 

차창에 박힌 여행자의 시선을 홀린다. 

그러다 가끔 새하얀 살결 위로 

솟아오는 쇄골의 장관. 

이래서 남도인 것인가!










Posted by 파비 정부권
TAG , 전라도

교귀정? 



용추? 여기서 궁예가 죽었음. 물론 드라마에서...... 



     





문경새재의 가장 큰 장점은 이렇게 계곡이 길 바로 곁에 붙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온다는 것이다. 




     





제2관문 조곡관. 세 개의 관문 중 최고임. 우리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앨범 표지에 등장하는 풍경. 졸업앨범 사진은 하얗게 눈 덮인 풍경이라 더 멋짐. 제1관문은 주흘관, 제3관문은 조령관. 



조선 정조 때 세워진 산불조심 표지석. 예나 지금이나 산불조심. 



꾸구리 바위? 예쁜 아가씨가 지나가면 꾸구리가 바위를 움직여 흔들거렸다 함. 



문경새재는 맨발로 걸어야 제맛. 




지름틀바우. 기름 짜는 지름틀처럼 생겼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음. 지름틀을 본 적이 없어서. 



새재 입구에서 이렇게 신발을 벗어 숨겨놓고 갔음. 



어둠이 찾아드는 새재. 뒤에 제1관문 주흘관과 조령산, 마패봉, 부봉들이 늘어서있다. 마패봉, 부봉 동북방향으로 문경 황장산과 그 너머 단양팔경까지 월악산 국립공원. 황장산은 입산금지구역이 많아 산행이  어렵다 함.  





Posted by 파비 정부권

합천 하면 떠오르는 것은 해인사입니다. 둘을 붙여서 흔히 합천해인사라고도 부릅니다. 뭘 모르는, 그러나 이제 막 무언가를 알기 시작한 아이들은 해인사 일주문 앞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왜 ‘합천해인사’가 아니고 ‘가야산해인사’라고 적혀 있지요?”

하지만 영암사지를 둘러본 이들이라면 아마도 합천을 말할 땐 오래된 절터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 겁니다. 저 또한 절터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사실을 영암사지를 보기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영암사지를 병풍처럼 받치고 있는 모산재 때문일까요?

영암사지와 모산재의 절묘한 어우러짐은 한 폭의 그림처럼 포근하고 아늑한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다싶습니다. 폐사지, 절은 망하고 터만 남은 곳이 이렇듯 평온과 위안을 줄 수 있다니 대자대비 부처님의 법력일까, 대자연의 신비일까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 영암사터 쌍사자석등. 뒤편으로 모산재가 보인다. @사진=김천령의 바람흔적

이 절터에 가면 가장 눈에 띄는 게 있습니다. 장난기가 한껏 발동한 두 마리 강아지가 떠받들고 있는 모양의 석등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강아지는 강아지가 아니고 사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때 드는 궁금증 하나.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이 석등에 어떻게 우리나라에는 살지도 않는 사자를 만들어 넣을 생각을 했을까? 언젠가 경주 흥덕왕릉에서도 사자상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 옆에는 칼을 든 무인상도 있었는데 전형적인 아랍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영암사지 쌍사자석등이 흥덕왕릉이 지어진 시기와 비슷한 연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본다면, 혹시 아랍인 무사들이 데리고 온 사자가 이곳 영암사지까지 와서 석등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헤벌쭉하니 입을 벌린 채 이빨을 다 드러내고 웃고 있는 흥덕왕릉 사자상의 천진한 모습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엉덩이를 까고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화사석을 떠받들고 있는 네발 달린 짐승 같지 않은 장난기어린 영암사지 사자의 해학적인 모습을 보노라면 영 불가능한 상상도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학자들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세 개의 쌍사자석등 중에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을 최고로 치는 모양입니다.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이 국보 제103호이고 법주사 쌍사자석등이 국보 제5호, 그리고 영암사지 쌍사자석등이 보물 제353호라고 하니 국가가 공인한 격으로 보아도 그렇습니다.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에 비해 영암사지의 그것이 조각기법이 정교하지 못하고 두리뭉실해보이긴 합니다. 오랜 세월의 풍파에 닳고닳아 그렇다고 하기도 합니다만 ‘한국문화유산답사회’의 <가야산과 덕유산> 편이 말하는 것처럼 “애초부터 그랬”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이 석등을 조각한 장인에겐 섬세한 정교함보다는 장난스런 해학을 통해 ‘팽팽한 긴장감’이나 ‘강인함’을 녹여내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반하여 영암사지 쌍사자석등이야말로 최고라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 금당터 앞에 앞으로 삐죽 튀어나오게 쌓은 석축은 오로지 쌍사자석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특별히 안배한 장치처럼 보인다. @사진=김천령의 바람흔적

아무튼 영암사지는 이 쌍사자석등으로 인하여 비로소 염암사지가 됩니다. 쌍사자석등은 ‘불꽃처럼 솟아있는’ 황매산 모산재의 품안에서 번창했던 옛적 영암사의 영광을 들려주는 듯합니다. 사라진 절터에서 허허로움, 쓸쓸함, 무상함 대신에 지나간 시절의 짙은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문화적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대하기로야 황룡사지에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남은 자취만으로도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대화가 있다는 점에서 영암사지야말로 절터 중에 절터입니다. 그 핵심에 쌍사자석등이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의 팁. 불꽃처럼 솟아있는 모산재를 등에 업고 쌍사자석등 옆에 서서 아래를 굽어보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벌판을 볼 수 있습니다. 저 멀리 굽이쳐 흐르는 산맥의 줄기들이 벌판에 밀려나는 물결처럼 일렁이는 모습이 아련하기 그지없습니다.

구불구불 산책로를 따라 살살 내려오다 보면 계곡물이 흐르는 귀퉁이에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가 부침개와 두부무침에 막걸리를 팝니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지난주 우리는 고성군에 있는 연화산 옥천사에 갔습니다. 마산에서 고성 쪽으로 가다가 당항포 좀 지나서 오른쪽으로 꺽어들어가 고개를 하나 넘으면 연화산 도립공원이 나옵니다. 거기에 옥천사가 있습니다. 연화산이나 옥천사나 관광지인만큼 갈색간판이 달려있으니 길 찾기는 쉬울 겁니다.

단풍이 참 좋았습니다. 굳이 지리산 피아골까지 갈 필요가 없다 싶을 정도로 옥천사 단풍은 일품이었습니다. 지지난주엔 피아골 단풍을 보러 일부러 지리산까지 갔었지만 실망만 안고 돌아왔었습니다. 하지만 옥천사 단풍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옥천사에 차를 세워두고 약 200여 미터쯤 걸어 올라가면(차를 가지고 갈 수도 있지만 걸어가는 게 더 낫다) 백련암이란 암자가 있습니다. 이곳에선 그야말로 천하일품의 은행나무 단풍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은행나무 이파리들이 장판처럼 노랗게 바닥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런데 옥천사에는 단풍만큼이나 멋진 명물이 있었습니다. 개인지 사자인지 모를 동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사자개라고 하나요? 언젠가 TV에서 본 것 같군요. 중국 티벳에 있다는 사자개, 짱오 혹은 짱아오라고 부르던 것 같은데요.

정말 사자 같지요?

자태가 자못 늠름합니다.

금술도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이토록 우아하게 친밀한 개 부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신기한 녀석들입니다.

순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사람들이 곁에 다가가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짓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군요. 주인이 이름을 부르자 두 말 없이 주인에게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주인이 인도하는 대로 들어가는군요. 세상에, 이렇게 순할 데가.

옥천사에 있는 사자개는 매우 순한 동물이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사자개는 호랑이도 무서워하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맹견이라고 합니다만, 옥천사 사자개는 그저 순둥이였습니다. 물론 그 용맹한 기질 탓에 자동차가 달려와도 피하지 않는다니, 실로 대단한 갭니다.

옥천사의 명물은 이 사자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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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와 창원시가 주최한 블로그팸투어, 창동예술촌 방문기 세 번째 이야깁니다. 오늘은 예고한대로 김은진 작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지요. 이렇게 말씀드렸지만 실상 제가 아는 게 너무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좀 갑갑하네요. 김은진 작가뿐 아니라 예술 계통에는 제가 빵점이라서요.

우선 무슨 말씀부터 드릴까요? 김은진 작가는 매우 당찬 사람이었습니다. 자신감이 넘쳐난다고나 할까요? 자신을 알리는데도 아주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사실은 이날 김 작가를 만나기 전에 이미 대부분의 블로거들은 김 작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내면이 아니라 외면적인 부분에 대해서겠지만 말입니다. 김 작가가 사람들 사이에 잘 알려진 것은 어쩌면 그녀가 어떤 예술인보다 SNS에 활발하게 대응했기 때문 아닐까도 생각해봤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얼리 어답터였습니다.

▲ 김은진 작가의 페이스북그룹 <보리도자예술>

전체를 놓고 보자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예술인들만 놓고 본다면 그녀는 아주 활동적인 오퍼레이터였습니다. 오퍼레이터란 우리가 공장에 다닐 때 CNC 공작기계를 다루는 작업자를 이르던 말인데, 말하자면 주어진 기술적 진보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란 거죠.

프로그래머까지는 아니라도 오퍼레이터만 돼도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요? 김은진 작가는 예술가답지 않게(?) 인터넷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작가였습니다. 참고로 그녀는 페이스북에 <보리도자예술>이란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 확인해보니 멤버가 3,053명이나 되네요. 창원에서 가장 유명하고 뜨는 그룹이라는 <창원시그룹(일명 페이비)>보다도 멤버가 더 많군요. 음, 아무튼 꽤 유명한 블로거라고 자부하는 저보다도 훨씬 얼리 어답터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 저는 얼라 어답터!

당연히 그녀는 까페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블로그까지 운영하고 있는지는 확인해보지 못했는데 만약 블로그도 운영한다면 그녀는 확실히 예술계의 얼리 어답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걸로 생각됩니다.

페이스북도 매우 유용한 소통의 도구임에는 틀림없지만 김 작가의 보다 내밀한 예술세계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다면 페이스북보다는 블로그가 훨씬 유용할 테지요. 까페도 없는 것보다 좋기는 하지만 블로그에 비하면 구석기시대의 유물쯤일 뿐이니까요.

음, 갑자기 블로그 광고가 돼버렸는데요. 까페가 폐쇄적인 공간이라면 블로그는 매우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열린 공간이란 점을 말하고 싶었던 점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배달래 작가 같은 분도 있으니까 함께 (창동)예술인블로그동맹 같은 걸 조직해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김은진 작가는 아주 활달한 사람이었습니다. 친절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도예공방을 방문한 우리에게 무화과를 먹어보라고 권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요? 물질 가는데 마음도 따라간다고…. 하하, 역시 농담입니다.

김 작가의 대표 작품세계가 보리도예인 것처럼 그녀의 아호는 보리라고 했습니다. 그 전에는 토청을 비롯한 몇 개의 호가 더 있었는데 가장 늦게 만들어진 보리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은 퇴근시간도 되고 했으니 이만 줄이고 낼이나 모래쯤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달과 보리와 황금의 예술, 김은진 작가의 보리도자기에 대해서도 그때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잘 알지는 못하니 겉보리 핥듯이 말입니다(이런 표현이 있긴 있었나? 흠~).

하여튼 저는 대중과 보다 더 많이 접촉하기 위해 노력하는 김은진 작가의 모습이 매력적이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같은 일자 무식쟁이에겐 아주 고마운 일이기도 하지요. 덕분에 문명인(문화인) 흉내를 좀 낼 수 있으니까요.

▲ 보리도자기 공방에서 만난 김은진 작가. 왼쪽은 딸이고 오른쪽은 경남도민일보 <해딴에>의 일원인 박영주 지역문화사학자다.

자, 그럼 낼이나 모래쯤 다시 김은진 작가와 함께 보리밭 사잇길을 거닐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헤어지기로 하지요. 저는 아마도 마산어시장 장어구이골목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서 일잔 하기로….

흐흐, 이런 얘기까진 할 필요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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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아기자기한 창동골목에

외국인들이 나타났습니다.

젊은 한국인 가족들이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며

행복 찾는 창동예술촌 골목길에

외국인 가족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립니다.


창동골목에 예술촌이 생겨난 이후로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창동상인들과 창원시가 예술촌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이 변화에 반영되었을까요?

김용운 도시재생과장은 예술촌이 생겨난 이후로 창동에 사람이 많이 늘고 매출도 눈에 띄게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정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이제 창동예술촌이 생겨난 지 겨우 100일이 되었다고 하니 사실 변화를 운운하는 자체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지요.

하지만 김용운 과장의 평가대로 앞으로 꾸준하게 창동을 찾는 사람이 늘고 상인들의 수익도 올라가는 추세가 될 거라고 모두들 믿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그 믿음을 가진 사람 중에 한사람인데요. 경남도민일보가 기획하고 창원시가 후원한 창동예술촌 팸투어에 참여해 창동골목을 돌 때 만난 젊은 가족들이 그런 믿음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예술촌 골목을 돌며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장난도 치는 모습은 창동골목의 미래가 밝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러한 믿음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것은 외국인들의 관심이었습니다.

가족들로 보이는, 혹은 연인이나 친구사이로 보이는 외국인들도 간혹 보이곤 했는데 그들의 관심은 한국인과는 색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리창 가까이 눈을 바싹 들이대고는 무슨 신기한 구경이라도 하는 듯이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집으로 가서 다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들에겐 한국인 예술가들이 좁은 공방에 앉아 작업하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그들에겐 처음 보는 풍경이었을 수 있을 테지요.

아무튼 창동예술촌에선 희망이 묻어났습니다. 보리도자기(?)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은진 작가는 보리가 피는 내년 4월게 이 골목에서 전시회를 열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떤 형식이 될지는 몰라도 매우 독창적이고 신선한 행사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창동골목에 금빛 보리가 한껏 피어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시지요. 다음번엔 김은진 작가의 이야기를 써야겠군요. 그녀의 작품은 달과 보리와 황금으로 만드는 도자기입니다. 여러 예술가들 중에 가장 먼저 김은진 작가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사실은 그녀의 공방에 들렀을 때 얻어먹은 무화과 때문입니다. 물질 가는 곳에 마음도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농담이고요. 아무튼 창동예술촌은 매우 흥미로운 곳이었습니다. 많지 않아 아직 아쉬운 점은 있지만 드문드문 미니까페도 있고 찻집도 있고 주점도 있습니다. 그 집들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어느 주점은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었지만 아직 개업을 하지 않았답니다. 10월 8일인가가 개업날이라고 하더군요.

예술촌이 생기니 이리 멋진 술집도 생기는구나 싶었습니다. 오늘은 바빠서 이 정도로 해야겠군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창동예술촌 정말 좋은 곳이고요, 앞으로 좋은 주점, 찻집, 빵집들도 생길 모양이니 틀림없이 마산사람들뿐만 아니라 창원사람들도 이젠 마산 창동에서 만날 약속을 정하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고 장담합니다.

대로에 지친 사람들이여, 작고 아기자기하고 구불구불한 창동골목으로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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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나는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가 썼다는 대선관련 기자회견문을 비판한 일이 있다. 대중적인 기자회견문에 왜 그람시가 나오나 하는 것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석영철 경남도의원(통합진보당 창원시당위원장)이 페이스북에다 노동을 통한 교화, 총화에 대해 말했다. 

나는 이 글을 보며 허허 웃고 말았는데 좀 비약에 궤변이긴 하지만 말하자면 홍대표가 유럽사대주의라면 석의원은 북한사대주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교화니 총화니 하는 말은 우리네가 잘 쓰는 말이 아니고 북한에서 사상교육을 할 때 즐겨 쓰는 말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엊그제 창동예술촌 팸투어에 갔다가 또 다른 형태의 사대주의적 일면을 보고는 다시 한 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에꼴드 창동골목. 예상대로 어김없이 이에 대한 비판적 질문이 나왔다. 김용운 창원시 도시재생과장과의 간담회에서 김종길(김천령의 바람흔적)씨는 이렇게 물었다. 

▲ 창동예술촌 골목에서 추억을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한 가족.


“에꼴드, 이런 말을 보통사람들이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일반시민들이 잘 알 수 있는 그런 이름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과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네, 듣고 보니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 예술촌 사업은 일단 공모에 당선된 촌장님이 기획한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쎄 이를 두고 사대주의라 하면 비약도 너무 심한 비약이라고 비난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어쨌든 저마다 자신이 보고 배우고 잘 아는 부분에 대해 강한 애착과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욕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창동예술촌은 에꼴드 창동골목이란 고급스런 이름에 걸맞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매우 매력적인 골목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자기한 골목은 구부구불 옛이야기를 담은 채 잘 정돈됐다. 우중충한 과거의 그림자 위에는 예술가들의 활기찬 작업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도예가의 정교한 손놀림이 빠르게 회전하는 흙더미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재생시키며 섬세한 흔적을 남긴다. 탕~ 탕~, 하나의 나무판때기에 불과했던 무생물에 목각공예가의 망치와 끌이 닿자 새로운 생명이 불어넣어진다. 

토요일 오후 창동예술촌 골목을 탐방하며 장인에게 설명을 들을 땐 그저 신기함과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망으로 깨닫지 못했는데 다음날 오전 조용한 골목을 걸으며 나는 정말이지 무생물이 생명체가 되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탕~ 탕~,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정한 크기로 전해져오는 소리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취였다. 말하자면 내게도 일종의 노스탈쟈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향수인지 뚜렷하진 않지만 아무튼 ‘물결 같이 바람에 나부끼는 순정’이 내속에도 감추어져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마치 오래전 어릴 적 향수로부터 들려오는 듯한 소리에 얼굴을 돌렸을 때 그곳엔 어제 보았던 늙은 장인이 색 바랜 낡은 베레모를 쓰고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아아, 이것이었다. 저 아름다운 소리, 고요한 정적을 깨고 골목을 울리는 생명을 다듬는 소리야말로 내가 그토록 바라고 기다려왔던 소리가 아니었을까.

▲ 장인의 설명을 듣고 있는 팸투어 참여 블로거들.


물론 여기에 소년소녀들의 재잘거림과 청춘들의 그윽한 눈길과 노인들의 추억을 되짚는 발길이 뒤섞여도 더없이 좋겠다. 그 왁자함을 뚫고 들려오는 망치소리는 언젠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어느 조용한 찻집에 앉았을 때 잔잔한 회상을 타고 들려올 것이다. 탕~ 탕~. 

그러면 창동골목을 누비며 보았던 예술가들의 섬세한 손놀림과 예술촌 어느 귀퉁이 찻집에서 마셨던 진한 커피 향기와 갖가지 미술품과 오색창호지로 치장된 주점에서 마셨던 막걸리 냄새가 그리워질 것이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만삭이 된 소녀는 이 골목을 찾아 팥빙수도 먹고 싶고 칼국수도 먹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는 다시 이 골목에서 뛰놀며 예술가들의 손길을 받고 팥빙수도 먹고 칼국수도 먹으며 자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에꼴드란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지만 아마 그때쯤이면 에꼴드 창동골목은 얼마든지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이 될 만한 걸맞은 이름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경남도민일보 <해딴에>가 기획하고 창원시가 후원한 창동예술촌 팸투어 후기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 귀에는 색 바랜 낡은 베레모를 쓴 늙은 장인의 망치소리가 들려온다. 탕,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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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전도현과 송강호가 나온 영화 <밀양>이 떠오르신다고요? 네, 맞습니다. 요즘 사람들에겐 밀양 하면 전도현과 송강호가 떠오릅니다. 좋은 영화였지요. 하지만 오늘은 전도연, 송강호는 빼고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그러면 밀양 하면 역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표충사입니다.

표충.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려는 뜻이 이름에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밀양은 사명대사의 고향입니다. 사명대사 생가가 있는 무안면에 가면 표충비가 있는데 국난이 있기 전에 땀을 흘린다고 합니다. 아마도 10.26 때도 그랬고 김정일이 죽을 때도 그랬다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김정일이 죽을 때는 한 달 전쯤인 11월 말에 노무현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7년 만에 크게 땀을 흘려 나라에 큰일이 있을지 모른다며 신문에 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 얼마 안 있어 김정일이 죽었던 것입니다. 표충비는 이외에도 한여름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 두드리면 종소리가 난다는 만어사 경석과 더불어 밀양의 3대 신비로 불립니다.

▲ 표충사 대웅전

아무튼 밀양은 사명대사를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으며 그런 사명대사를 모신 절이 표충사이고 이 표충사의 앞에는 울창한 송림과 시원한 계곡이 있으므로, “밀양 하면 어디가 떠오르세요?” 하고 물어보면 대개 사람들은 “표충사!” 하고 주저 없이 대답하는 것입니다.

물론 밀양에는 표충사 말고도 수없이 많은 볼거리와 놀거리와 먹을거리가 있습니다. 우선 아름다운 밀양강이 있습니다. 이 밀양강변에 세워진 영남루는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와 더불어 조선 3대 누각입니다. 밀양강에서 나는 미꾸라지로 끓인 추어탕은 남원추어탕과 더불어 추어탕의 쌍절이라 할 만합니다만, 제 입맛에는 밀양추어탕이 훨씬 맛있습니다. 

시례호박소, 월연정, 만어사, 위양못, 삼랑진 양수발전소와 벛꽃터널, 사자평 등 단순하게 나열해도 100여개에 이르는 명소들이 즐비합니다. 사실 훌륭한 관광지(혹은 여행지)의 조건을 꼽으라면 아름다운 풍광과 맛있는 음식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밀양은 관광여행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이렇게 많은 명소들에도 불구하고 밀양 하면 역시 표충사인 것입니다. 표충사에 가면 우선 표충사 솔밭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계곡을 따라 하늘 높이 일자로 치솟은 시원한 솔밭 그늘길을 걸어 표충사로 들어가는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면 좋을까요?

이뿐 아니라 표충사 뒤로 산행을 시작하면 층층폭포, 흑룡폭포, 금강폭포를 만날 수 있고 8부 능선에 오르면 광활한 사자평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자평에는 우리나라 고산습지 중에 가장 넓다는 재약산 사자평 산지습지가 있는데 가을이면 은빛물결이 장관을 이룹니다.

오래 전 어느 여름에 재약산 정상에서 내려오다 사자평 근처 주막 평상에 앉아 막걸리 한잔을 기울인 적이 있는데, 머리 위에서 딱, 딱 하고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막 마당 한 귀퉁이에는 차디찬 산수가 도토리가 가득한 커다란 물통 속으로 연신 떨어지고 있었지요. 낙원이 따로 없다 싶었습니다. 

지난 주말, 그 표충사엘 다녀왔습니다. 밀양시가 후원하고 경남도민일보 갱상도문화학교가 주관한 밀양투어에 따라갔었는데 근 10년 만에 가보는지라 실로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열아홉, 스물 무렵 처음 표충사를 방문한 이래 십여 차례 이상 들렀던 곳이라 오랜 친구를 만나는 기분으로 표충사를 향했습니다.

하지만 표충사 입구는 많이 변해 있더군요. 우선 진입도로변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웰빙시대를 맞아 걷기가 유행인 점을 고려해 차도 변에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데크인도를 만드는 모양이었습니다. 다 만들어지고 나면 계곡과 쭉쭉 뻗은 송림 사이를 걸을 수 있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표충사 입구 야영장. 숲속엔 오솔길도 마련돼있다. 텐트를 치겠다고 망치질을 하고 있는 한 아이의 모습이 이채롭다.

전에는 표충사 송림 앞 계곡 옆에 큰 공터가 있고 거기를 승용차나 버스가 주차장처럼 이용했었는데(시내(외)버스 표충사 정류장도 있었죠)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 여기가 표충사 맞나? 하면서 혼란스러웠습니다. 대신 그곳엔 조경이 잘 돼있었고 버스 대신 텐트촌이 들어섰습니다.

별천지더군요. 외지에서 온 관광들에겐 정말 좋겠다 싶었습니다. 텐트자리가 바로 길 옆인데다 계곡 또한 코앞이니 편리하게 쉬고 즐기는 데는 이만한 데가 따로 없다 싶습니다. 게다가 하늘로 높이 솟은 송림이 울창하게 텐트촌을 감싸고 있으니 시원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바비큐파티를 열기 위해 숯불을 피우는 옆에서 캠핑용 의자를 놓고 비스듬히 눕듯이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이의 모습이 그렇게 편안해보일 수가 없습니다. 밀양시가 많은 공을 들였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여년 만에 만난 표충사 입구는 확 달라져 있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유원지처럼 산뜻해지고 편리해지긴 했지만 잃어버린 것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텐트촌이 들어선 옛날 버스정류장에서부터 표충사에 이르는 누렇던 황토 흙길이 하얗게 일직선으로 반짝거리는 대리석 길로 변해버렸던 것입니다.

하얀 대리석의 딱딱한 질감이 발바닥을 타고 전해져오는 순간, 모든 감동들이 일순간에 허물어짐을 느꼈습니다. 정말이지 이건 아니었습니다.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저는 옛날 발바닥을 포근하게 감싸주던 누런 흙길이 더 좋았습니다.

표충사는 그대로였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목탁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소리도 그대로였습니다. 삼층석탑도 그대로였고 달콤한 약수물맛도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달라진 것은 울창한 송림 사이를 가로지른 길과 정류장이 있던 공터였습니다. 하나는 좋았고 하나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예전보다 더 좋아졌을지도 모릅니다. 좋지 않은 것이야 옛날 걸었던 흙길의 추억에 대한 제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니 다른 이들도 다 좋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깔끔한 대리석을 깔아 똑바로 길을 냈으니 오히려 사람들에게는 더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군요.

제 추억이 가진 이기심만 버린다면 표충사는 하나의 관광지로서 훌륭하게 탈바꿈했습니다. 토요일이라 그랬던지 야영장은 꽉 차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텐트들은 여유가 있어보였습니다. 공간도 그렇고 시원한 그늘도 그렇고 바람도 그랬습니다. 풍족해보였습니다. 

▲ 표충사로 올라가는 도로. 사진 오른편으로 데크산책로 공사가 한창이고 그 아래는 계곡이다.

오랜 가뭄에 물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계곡엔 물도 풍성했습니다.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더 없이 밝고 명랑했습니다. 나중에 만난 시장부속실 비서에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야영장에 왜 돈을 받지 않나요?”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아, 그럼 돈을 좀 받아도 될까요?”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대부분 외지에서 오는 야영객들에게 자리 요금으로 만원, 이만원 받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입니다. 생각건대 자가용을 몰고 올 것이 틀림없는 요즘 세태로 보아 밀양에서 먹을거리 등 장을 보았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돈은 창원에서 쓰고, 놀기는 밀양에서 놀고, 쓰레기도 밀양에 버리고 간다.’ 불합리한 것이죠. 물론 놀러온 사람 입장에서는 전혀 불합리한 것이 아니지만 밀양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아주 불합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제안도 생각해봅니다. 밀양에서 장을 보았다는 증표(영수증 같은 것)를 내보이면 야영장을 무료로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겁니다. 제가 이런 거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하, 이야기가 옆으로 좀 샜군요.

밀양 표충사, 정말 좋은 곳이었습니다. 아마 계곡 따라 산책로(데크길)가 완성되면 더 좋아질 것입니다. 야영하기도 아주 편리하게 돼있고 야영하려다가 야영을 포기한 사람들에게도 주변에 민박이나 펜션 등이 많아 불편함이 별로 없어보였습니다.

저도 곧 친구들과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때는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고 싶습니다. 그래본 적이 정말 오래됐습니다.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책도 읽고 싶고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부터는 숯불을 피우고 바비큐파티도 하고 싶습니다. 

▲ 호박소

정말 꼭 이번 여름이 가기 전에 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더 늦으면 이런 거 못할 나이가 벌써 됐거든요. 표충사를 보고 나서 다음 코스로 간 곳은 얼음골 케이블카였습니다. 그러고 바로 위에 있는 호박소도 들렀죠. 호박소도 정말 좋은 곳이었습니다. 제가 그날 현장에서 페이스북에다 호박소 사진 찍어 올렸었는데요. 이렇게 적어놓았었죠.

“호박소. 호랑이가 박 터지게 싸우다 생긴 장소?”

이 설에 대해 별로 이견이 없는 걸 보니 호박소란 이름의 유래를 그렇게 정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만, 아무튼, 그날 호박소에서 꽤 슬프고도 아름다운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얘기하도록 하지요. 오늘은 너무 기니까... 그럼...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엊그제 거제도에 갔습니다. 원래 목적은 야권총선후보 블로거합동인터뷰에 참여하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남아 거제도 일주를 한번 했습니다. 오랜만에 콧구녕에 바람을 집어넣으니 기분이 좋더군요. 바람의 언덕에 갔는데 정말 바람 디지게 씨게 불더군요. 바람의 언덕이 왜 바람의 언덕인지 알겠더이다. 

제 몸무게가 무려 150근에 육박하는데 막 바람에 날려가려고 하더군요. 어이구, 여기선 나도 잘못하면 가랑잎 신세 되겠구먼, 흐흐. 

아래에다 사진 두 장 올립니다. 바람소리가 들리시나요? 아마도 드라마 신들의 만찬을 즐겨보시는 분이라면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소리가 정말 맛있다!"

하지만 맛있다고 콧구녕에 바람 너무 많이 집어넣으면 다칩니다. 우리가 갔던 날은 토요일(3월 3일)이었는데 어제 저는 하루종일 감기몸살로 고생하던 목구녕이 다시 부어 고생을 많이는 아니고 쬐끔 했습니다.

바람의 언덕 근처에는 신선대도 있고 해금강도 있고 볼 게 꽤 많더군요. 아쉽게도 해금강 사진은 못찍었네요. 아래 사진은 제 휴대폰으로 찍었는데 아이폰도 아니고 갤럭시도 아니라서 사진빨이 별롭니다. 양해들 하시고 즐감은 아니라도 대감 정도만 해주시길… 흐흐~
 

 
Posted by 파비 정부권

갯벌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글쎄요, 우선 게가 떠오릅니다. 순천갯벌에서 보았던 짱뚱어도 떠오르는군요. 그리고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6시 내고향’인가 어디서 보았던 갯장어도 떠오르네요. 네, 맞습니다. 주로 먹는 게 떠오릅니다.

장흥 어디 갯벌에서 잡힌다는 장어는 크기가 거짓말 조금 보태 제 팔뚝보다 크더군요. 그걸 팍팍 끓여서 장어탕을 만드는데, 어휴, 거기서 커다란 솥에서 나는 김만 봐도 침이 꼴딱꼴딱 넘어갑니다. 청정 갯벌 속에서 잡히는 장어라 영양도 만점이랍니다.

맛있는 이야기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기다랗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그칠 줄 모르는 사이렌 소리. 11월 15일. 그렇군요. 오늘이 민방위훈련 하는 날인가봅니다. 민방공훈련인가? 아무튼 각설하고….

△ 하동 술상갯벌

지난 11월 4일 갱상도문화학교를 따라 하동과 사천의 갯벌에 다녀왔습니다. 갱상도문화학교가 9월에는 문경새재, 10월에는 우포늪과 화포천 탐방에 이어 세 번째로 기획한 행사였습니다. 12월에는 창녕지역 문화를 둘러볼 예정이라고 합니다.

먼저 간 곳은 하동 술상갯벌이었습니다. 관광버스가 사람들을 내려놓았을 때 햇살이 바다 저편으로부터 거무튀튀한 갯벌을 타고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갯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예전엔 미처 하지 못했을까요? 갯벌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갯벌이 아름다운 것은 단지 햇빛 탓은 아니었습니다. 아, 물론 햇살에 반짝이는 검은색의 갯벌이 신비롭기는 했습니다. 햇빛은 만물을 가꾸는 타고난 능력을 지녔습니다. 햇빛 때문에 나무들은 여름에는 녹색의 옷을 입었다가 가을이면 빨강노랑의 옷으로 갈아입는 요술을 부릴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한낮의 햇빛을 마주한 갯벌이 아니라 저녁나절 석양의 햇빛을 보듬는 갯벌을 보았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아직 그런 갯벌의 색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무척 아름답겠지요. 갯벌 위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게떼들이 갑자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사천 종포갯벌

이쯤에서 잠깐 외도. 개떼가 맞나요, 게떼가 맞나요? 국립국어연구원이 인정하는 바에 의하면 개떼가 맞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 순간, 개떼가 아니라 게떼가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개벌은 온통 게떼 천지였습니다. 까만 갯벌에서 까만 게떼들이 들끓는 광경이라니.

한참 갯벌을 바라보며 걷다가 가이드로 온 윤미숙 푸른통영 21 사무국장으로부터 설명도 들었습니다. 윤 국장의 설명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밟고 선 잔디는 갯잔디라는 것이었습니다. 윤 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갯잔디는 기수역에서만 자란다고 합니다.

기수역? 곽재구 시인의 시에 나오는 사평역과 같은 역이 아니고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역을 일컬어 기수역이라고 한답니다. 갯벌들은 흔히 민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통로에 많이 형성되어 있는 듯합니다. 나중에 만나게 될 사천의 갯벌에서도 갯잔디는 수없이 보았습니다.

갯잔디들 사이에는 칠면초도 자라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갯잔디에서만 서식하는 기수고동이란 것이었습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니 깨알처럼 자그마한 것이 앙증맞기가 이를 데가 없습니다. 마치 잘 다듬어낸 고대의 장신구 같습니다. 귀걸이 같은.

△ 기수고동

△ 생태.문화투어 참가자들이 술상갯벌의 기수역에서 칠면초, 갯잔디, 기수고동 등을 살펴보고 있다.

관광버스는 다시 사람들을 사천의 갯벌로 실어 날랐습니다. 버스는 사천시내에서 종포갯벌로 들어가는 길을 잘 찾지 못해 한동안 헤매는 바람에 우리는 잠시나마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거대한 버스가 과연 이 좁은 마을의 골목길을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역시 선수는 선수. 노련한 버스기사는 그 좁은 골목에서 몇 차례 전진후퇴를 반복하더니 급기야 그 거대한 버스를 반대로 돌려놓고야 말았습니다. 사천 종포갯벌을 둘러보기 전에 우리가 할 일은 ‘금강산도 식후경’을 실천하는 것.

연화정. 음식이 너무 맛있었던 고로 전화번호를 남깁니다. 절대 광고비를 받았다거나 추가로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 없습니다. 055-834-3111입니다. 연으로 만든 각종 음식들 외에도 동동주가 맛있었는데 양이 너무 적었습니다. 한상에 앉은 사람들이 전부 술꾼들이었을까요?

갯벌을 따라 사람들은 기다랗게 걸었습니다. 나중에 종아리에 알이 밸 정도였으니 꽤나 많이 걸었지 싶습니다. 역시 갯벌은 게떼들 천지였습니다. 게떼들의 천국. 그것이 바로 갯벌이었습니다. 저속에 무수한 생명체들이 숨을 쉬고 있다고 생각하니 검은 갯벌이 더없이 반갑습니다.

만약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이 갯벌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모르긴 몰라도 아무 생각도 없을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까마득한 산골마을에서 살았지만, 혹시 이처럼 갯벌이 드넓게 펼쳐진 어촌마을에서 자랐다면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도시에 살면서 꿈에서라도 앞뒤로 우뚝우뚝 솟은 산들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나는 매일매일 꿈속에서 갯벌을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이날 우리가 만난 갯벌은 밀물이어서 그렇게 넓지는 않았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기다랗게 펼쳐진 모양에서만 그 거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을 뿐.

썰물에 갯벌이 온전하게 그 실체를 드러내는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탄성을 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라도 좋았습니다. 거의 밀려들어온 밀물 끄트머리에 살짝 드러낸 검은 피부만으로도 사람들은 충분히 감동했습니다.

갯벌을 잘 알지 못하는 대개의 사람들은 그 정도가 갯벌의 전부인 줄 알고 있었지만, “이건 잠자려고 거의 이불을 덮은 모습이고 썰물에 잠을 깨면 그 크기가 장난이 아니랍니다. 저기 보이는 저기까지가 모두 갯벌이라는군요. 규모가 엄청나죠?” 이렇게 말하면 더욱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아쉬워하는 것입니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갯벌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하고 있다가 좁은 폭에 내심 실망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답니다. ‘그럼 그렇지.’ 하하, 내가 무슨 사천 종포갯벌 대변인도 아니고, 우습지요?

△ 사천 종포갯벌에서 갯잔디를 관찰하고 있는 투어 참가자

△ 칠면초

만약 해가 질 무렵 붉은 석양 아래 활짝 펼쳐진 갯벌을 볼 수 있는 물때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 기쁨을 안고 우리는 바로 삼천포 바닷가의 어느 횟집으로 달려가 싱싱한 회를 안주삼아 소주를 거나하게 마시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삼천포에 있는 코끼리바위와 인사를 나눈 다음 공룡발자국이 무성한 고성군 하이면 상족암을 둘러본 다음 리아스식 해안을 실컷 즐기면서 돌아오는 겁니다. 중간에 굴 양식장에서 굴을 까는 할머니들을 만나면 한 포대 사서 트렁크에 싣는 여유도 부리면서 말이죠.

시간이 좀 남았다면 오늘 길에 옥천사에 들러본다면 금상첨화겠지요. 하지만 이날 우리는 그런 호사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관광버스는 곧장 고속도로에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우리를 다시 마산에 내려놓았습니다. 아쉽지만 이날의 갯벌탐방은 그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어때요? 기회가 된다면 방금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코스 괜찮지요? 사람에 따라 사천 갯벌이 압권이 될 수도 있겠고 또는 사람에 따라 고성 상족암을 들러 돌아오는 길이 압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저 같은 주당에겐 삼천포 횟집이 압권입니다만.

이제 그만 마무리를 하기 전에, 이 글의 제목 ‘갯벌을 보면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답이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특별한 사람들이 있어서 소개를 하는 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이 특별한 분들은 갯벌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정답은 ‘매립’입니다. 땅 만드는 돈이 적게 들거든요.

그분들이 어떤 분들인지에 대해선 따로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

Posted by 파비 정부권

청도하면 생각나는 게 무어지요? 운문사. 합천하면 해인사인 것처럼 청도하면 운문사죠. 뭐, 이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에요. 그러나 반대로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에요. 운문사가 아니면 청도는 별 볼일 없다 이런 해석도 가능한 말이니까요.

사실 운문사는 그림 같은 곳이었어요. 우리나라에 수많은 아름다운 절이 있지만 운문사만큼 아름다우면서도 특별한 느낌을 주는 절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제가 제일 가보고 싶은 절 몇 개를 꼽으라고 하면 그 중에 하나가 순천의 선암사와 더불어 운문사에요.

감 클러스터사업단이 마련한 청도 블로거팸투어. 그러나 아침부터 폭우는 그칠 줄을 몰랐어요. 이래가지고서야 운문사의 가을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러나 우산 속에서 카메라에 담는 운문사의 가을은 너무나 경이로웠어요.

아래의 사진 석장은 운문사 경내에서 찍은 사진들 중 하나인데요. 맨 위가 대웅전 앞 누각이에요. 그 아래는 일반인들은 출입이 금지된 무슨 참선하는 곳 같은데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다들 우산을 쓰고 있죠? 비가 많이 와서 자세히 알아보지 못했답니다.

운문사는 멋진 절이었어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격식이 이곳에서는 완벽하게 깨지고 만답니다. 우선 일주문이 없어요. 그리고 천왕문도 없답니다. 보통의 절들은 일직선으로 배치된 일주문과 천왕문, 누각을 지나 대웅전을 만나지만 여기선 옆문이 곧 정문이랍니다.

참 희한한 절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대웅전 앞에 만들어진 넓은 누각은 마치 통영에서 본 세병관을 연상시킬 만큼 거대했어요. 비구니 절이란 그런지 절은 너무너무 아기자기했답니다. 하나의 예쁜 그림을 감상한 느낌, 그런 것이었어요.

게다가 운문사 주변은 그야말로 절경 중에 절경이에요. 병풍처럼 절을 둘러싸고 있는 운문산, 단풍나무들, 계곡, 특히 산책로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대웅전 근처에 감나무가 누런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군요.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운문사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앞에서도 말했지요? 청도하면 운문사라고…. 하지만 이제부턴 청도하면 운문사만 있는 게 아니라 청도 감도 있다, 그리고 청도 소싸움도 있다 그렇게 말해야겠어요.

청도에는 감도 있다 그러니까 이상하지요? 그러나 청도에 직접 가보신 분이라면, 특히 가을에 가보신 분이라면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예요. 청도엔 정말 감이 있어요.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천지삐까리’로 있어요. 청도군 전체가 온통 감 천지였으니까 말이죠. 

아래 사진은 달그리메님이 찍은 사진이랍니다. 제가 잠시 빌려왔어요. 제가 찍은 사진이 더 좋고 멋지긴 하지만 갑자기 찾으려니 어디 쳐박혔는지 안 보이네요.  

청도읍에서 운문사로 가면서 보았던 청도는 노란 단풍잎과 감을 매단 감나무에 둘러싸인 마을들이 마치 어린 시절 기차를 타고 갈 때 지나치는 전봇대를 연상시켰어요. 만약 비만 오지 않았다면 버스를 타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정말 눈 호강을 실컷 했을 것이에요.

그래도 좋았어요. 청도의 울창한 감나무 숲들. 요즘 무슨무슨 올레길이니 둘레길이니 하는 걸 만드는 게 지자체들마다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데요.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 이야기 하나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네요. 지금 창원도 시장이 둘레길 만들겠다고 그래서 난리에요.

마창진환경연합의 공동의장이라는 두 분이 창원시청 정문 앞에서 죽겠다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어요. 단식? 쉬운 말로 밥을 안 먹는 거지요. 내참. 저는 먹는 게 사는 낙인데 이분들은 밥을 안 먹겠대요. 그런데 왜 그러는 것일까요?

박완수 창원시장이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주남저수지에 60리에 이르는 물억새 둘레길을 만들겠다고 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마창진환경연합의 반대 때문에 못하고 있다가 4대강 사업에 다들 눈이 빼앗긴 사이 살짝 공사를 반절이나 하고 말았대요.

안하기로 철썩 같이 약속해놓고 말이에요. 그게 2008년 일이고 그래서 그때도 37일간이나 이어지던 농성을 풀었다는 거거든요. 아무튼 주남저수지에 길을 내면 주남저수지에 서식하는 명종위기종 철새들은 오갈 데가 없게 되고 말아요.

철새를 이용해 주남저수지를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철새를 쫓아내는 역할을 하게 되는 거지요. 그럼 사람들도 거기에 갈 필요가 없어질 것이고 거기에 쏟아 부은 250억이 넘는 돈은-이건 나머지 반절 공사 금액이랍니다-철새들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가는 거지요.
 
제가 왜 이 대목에서 아래처럼 청도투우장에서 소싸움하는 사진을 실었을까요? 제 생각엔 꼭 우리 시장님이 시민들하고 소싸움을 해보자고 하는 거 같아서 말이죠. 아무튼…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우리 동네 시장이란 사람이 하고 있답니다, 글쎄. 그러나 길을 내는 게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에요. 길은 참 좋을 것이랍니다. 사실은 자동차들에게 길을 다 빼앗기고 정작 사람은 걸을만한 길이 없는 게 현실이지요.

이야기가 옆길로 잠깐 샜지만, 그래서 말인데요. 청도야말로 감나숲 둘러싸인 마을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누리길 같은 걸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았어요. 물론 이 길은 가을에 걷기 좋은 길이 되겠지요. 그러나 꼭 가을이 아니라도 좋아요.

저처럼 감나무가 많은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알 거에요. 혹시 감꽃으로 목걸이 만들어 목에 걸고 다녀 보신 적 있으세요? 네, 없으시군요. 감꽃에서 나는 은은한 향이 죽여주죠. 저는 사실 감꽃도 먹어보고 늦은 봄비에 떨어진 새끼감을 먹어보기도 했답니다.

이런 길이라면 사람에게 정말로 유익한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그리고 이 길은 청도반시를 널리 알려 농가소득을 증대시키는데도 큰 몫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봤지요. 이 길은 정말이지 사람들을 행복하게도 하지만 돈도 되는 길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에 반해 박완수 창원시장이 만들려고 하는 주남저수지 60리 물억새 길은 사람도 죽이고 철새도 죽이는 길이 될 게 뻔해요. 그뿐인가요? 돈도 날리는 길이지요. 무려 250억씩이나요. 물론 이것은 주남저수지 반절에 대한 공사금액일 뿐이니 실제 날리는 돈은 두 배, 세 배가 되겠지요.

또 살짝 옆길로 샜군요. 생각해보니 너무 화가 나서 말이죠. 다시 아무튼, 청도는 운문사만 있는 게 아니었어요. 청도반시가 있고 거기다 청도 소싸움도 유명해요. 소싸움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들려드리기로 할게요.

오늘은 청도에는 맛있는 감도 있다는 것만 말씀드리기로 하죠.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창원에도 감이 엄청 많이 난다는군요. 창원은 공업도시인줄로만 알았더니 단감 주산지로서 전체 생산량의 2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는군요.

그러고 보니 우리 시장님은 아는 게 멀쩡한 마산만을 매립해서 인공섬을 만들어 맨해튼을 만들겠다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철새들이 그나마 거의 유일하게 안전한 서식처로 각광받고 있는 주남저수지를 개발하는 거 말고는 아시는 게 없나보아요.

이거 두 개 사업이 다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게 뻔한 사업인데도 왜 저렇게 고집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긴 뭐 정치하는 사람들이 아는 게 있나요. 한나라당 전 대표 정몽준 씨는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냐고 묻자 “70원 아니에요?” 했다니까….

청도 자랑 좀 하려는데 이거 왜 자꾸 창원, 마산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내참. 죄송해요. 아무래도 너무 서글퍼서 그래요. 혹시 생각 있으신 분은요. 내년 가을에 청도에 가서 한번 걸어보세요. 제 의견으론 와인터널을 구경하시고 그 일대를 한번 걸어보시는 게 어떨까 해요.

거기 마을의 감나무 숲도 장난이 아니거든요. 아래 사진은 제가 찍은 건 아니에요. 함께 청도 팸투어에 갔던 참교육이란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김용택 선생님이 찍으신 거에요. 연세가 곧 칠십을 바라보고 있지만 정말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만 하답니다.

감클러스터사업단에서 청도에서 나는 감으로 만든 상품들이죠. 혹시 마트에서 보시거든 사서 맛을 보세요.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이거 몸에도 다 좋은 것들이거든요. 몸에 좋다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아시죠? 자, 그럼 이만 맛있는 감상 하시는 걸로 끝. 

아, 하나 빠졌군요. 제목, 청도에는 있지만 창원에는 없는 것? 실은 저도 몰라요. 그냥 달 제목이 마땅히 없어서 그리 달았던 거에요. 그래도 생각 한번 해보기로 하죠. 뭘까요? 청도에는 있지만 창원에는 없는 것?
 

Posted by 파비 정부권

제 어릴 때 꿈 중에 몇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양갱을 실컷 먹는 것이었습니다. 뭐 이런 걸 다 꿈이라고 그래? 하고 핀잔을 주실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그래도 제 어릴 적 꿈은 맛있는 걸 마음껏 먹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흔히들 꿈 하면 검판사가 된다거나 박사가 된다거나 의사가 되는 걸 말하겠지요. 훌륭한 버스 기사가 되겠다거나 농부가 되겠다거나 어부가 되는 것은 꿈이 아니지요. 그건 절망이며 인생의 포기에 해당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아무튼 제 꿈은 이도저도 아니고 그저 맛있는 걸 실컷 먹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하루는 꿈을 꾸는데 우리 집이 대궐처럼 변해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행복한 모습으로 하얀 비치의자에 누워 계시고 형들이 그 옆에서 신나게 웃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당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풀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풀장의 물 색깔이 무슨 색이었겠습니까? 놀랍게도 오렌지색이었답니다. 풀장에는 물 대신 환타가 가득 차 있었던 것이지요. 당시 저는 환타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혹시 중독된 것이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죠. 제가 살던 문경은 매우 추운 곳입니다.

△ 문경은 눈도 많이 오고 날씨도 추웠습니다. 모교인 초/중학교 앨범에 거의 단골로 등장하는 사진입니다. 드라마 추노에도 등장했던 곳입니다. 아는 분은 아실 듯.

당시 기록 수은주가 가장 낮다는 봉화-아마도 남북한 합쳐서는 중강진이죠?-에서 가까운 문경도 그에 못지않게 추웠습니다. 바람이 씽씽 부는 추운 겨울의 어느 날 밤, 환타가 먹고 싶어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산골길을 20여 리를 걸어 결국 면소재지 상점에서 환타를 산 다음 다시 집까지 걸어와 따뜻한 제 방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한 다음 병 두껑을 딱~

그만큼 환타를 좋아했으니 꿈에 나타날 만도 하지요. 환타만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실은 촌에서 살았던 저로서는 환타 이외에는 별로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본 것이 없으니까요. 짜장면도 1년 혹은 2년에 한번 겨우 구경하는데다가 풀빵도 없는 동네에서 살았거든요.

언젠가 제가 블로그에다 ‘오홍꾼 뎅합빵’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는 분은 하실 겁니다. 그걸 세로 읽기로 읽으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오뎅 홉합 꾼빵’. 그러니까 촌에서 살다 도시에 온 제가 어느 낡은 가게에 쓰인 메뉴판을 이렇게 읽은 것입니다. ‘오홍꾼 뎅합빵’. 그게 뭘까?

그런데 제가 살던 산촌에도 환타와 함께 팔던 맛있는 물건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연양갱. 까만 것에서 나오는 그 물컹하면서 달콤한 맛. 씹을 때의 그 연한 감촉. 혓바닥을 간질이는 그 감미로운 향기. 어린 시절 어쩌다 행운으로 물게 되는 그 맛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 예정수 감클러스터사업단 단장(엎드린 사람 좌)과 서영윤 팀장(우)이 감으로 만든 상품들을 블로거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 연양갱을 사서 먹어보곤 합니다만, 이번에 청도반시 팸투어에 다녀온 이후로 양갱을 실컷 먹게 되었습니다. 블로거들을 초청한 감 고부가가치화 클러스터사업단(감클러스터사업단)이 따로 만든 회사인 (주)네이처 팜이 청도반시로 만든 양갱을 한 봉지씩 선물했기 때문입니다.

오, 정말 반갑더군요. 환타도 함께 주셨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하, 농담입니다. 아무튼 감으로 양갱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건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쫄깃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게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일반 양갱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습니다.

△ 감양갱 @사진. 커피믹스/달짝지근

일단 단맛이 너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부분은 조금 조절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원래 감이 당도가 높은 과일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 단 음식은 장기 레이스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나 아이들보다도 어른들이 감양갱을 좋아한다면 더 그렇습니다.

사실 어른들로서는 특별히 군것질할만한 과자류가 없는 상태에서 감양갱은 매우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군것질 아닌 군것질거리로 매우 적절한 상품이 아닌가싶습니다. 특히 사무실 같은 곳에서는 감양갱을 하나씩 내놓는다면 고객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겠죠.

산수 좋은 청도 반시로 만든 감양갱이라 하면 얻어먹는 입장에서도 뭔가 대접받고 있다는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다 몸에 좋다는 성분들이 풍부한 감으로 만든 제품이니 건강에도 좋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 효과는 이루 말할 수가 없겠죠.

감으로 만든 제품은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감클러스터사업단이 내놓은 제품들은 실로 그 종류가 다양했습니다. 미니곶감부터 시작해서 홍시로 만든 음료수, 감식초, 감식초 화이바, 감추출 농축액, 홍시퓨레, 냉동 반건시, 감시럽 그리고 커피믹스님이 획기적이라고 칭찬하는 감칩.

그렇습니다. 커피믹스님의 생각처럼 감칩은 정말 획기적인 상품입니다. 역시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의 생각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믿을 수 있으면서도 건강에 이로운 과자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엄마의 큰 기쁨이겠지요.

하지만 역시 저는 감으로 만든 양갱이 탑건. 뭐 이렇게 말해두기로 하죠. “드디어 어릴 적 꿈이 실현되었어. 양갱을 원도 없이 실컷 먹었으니까.”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제품개발에 많은 공을 들였을 예정수 감클러스터사업단 단장님과 서영윤 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와인터널. 일제시대에는 기차터널이었다. 안에는 상상할 수 없이 휘황한 시설들과 와인까페, 수만병의 감와인이 저장된 창고가 있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는 게 어린 시절 꿈이었던 저로서는 감클러스터사업단과 청도군이 힘을 합쳐서 좋은 제품 개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시길 진심으로 바라마지않습니다. “바라마지않습니다” 이런 표현은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이 주로 잘 쓰시던 표현인데, 아무튼, 그 일은 또 다른 의미에서 정말 좋은 일이지요.

감클러스터사업단과 주식회사 네이처 팜의 사업이 번창할수록 청도를 비롯한 상주, 문경지역의 감 농가 수입은 그만큼 더 늘 것이고 또 그것은 반대로 청도의 청정 자연환경이 더욱 잘 보존될 것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아, 제목에 대한 답을 확실히 하지 않았군요. 감으로 만든 양갱 맛은 어떨까? 답은 ‘매우 좋다’가 되겠습니다. 감칠맛이 나는 단맛, 씹는 질감, 혀끝에 감겨드는 촉감 그리고 적당한 크기 모든 면에서 기존 양갱에 비해 비교 우위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결정적인 하나. 맑은 산수에서 나는 청정 감으로 만든 양갱이라는 것. 그래서 건강에도 대단히 좋을 것이라는 것. 거기까지 계산한다면 감양갱은 기존 양갱뿐 아니라 다른 어떤 식품에 비해서도 매우 우월한 상품입니다.

어떠세요? 우리 사무실을 방문하는 손님에게 커피만 달랑 주는 것보다는 양갱 하나 얹어서 주면 훨씬 더 좋아하지 않을까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만.

Posted by 파비 정부권

장복산이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이춘모 씨가 쓴 글을 보면 창원시와 청도군을 비교하고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청도군은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청도 감을 홍보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반면 창원시는 관심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선 블로거 실비단안개도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도 창원에 정착해서 산지가 벌써 30년이 지났건만 창원이 감 주산지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쩌다 차를 타고 창원 동면을 지날 때 주위에 펼쳐진 누런 감밭을 보면서도 저게 창원단감이거니 하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동면과 연접한 진영이 단감으로 유명하다보니 저것도 진영담감이려니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던 모양입니다. 사실 진영과 동면은 경계도 모호할 정도로 붙어있으니 그리 생각할 만도 한 일입니다. 아무튼 이춘모님과 실비단님의 글을 보고서야 아하, 창원이 단감 주산지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진. 장복산

그에 비해 경북 청도군의 감 사랑은 정말이지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물론 청도와 창원은 감 생산의 규모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청도는 군 전체가 감숲에 덮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감나무가 많았습니다. 그녀의 말처럼 청도는 감 ‘천지삐까리’였습니다.

경북 영양에서 청도로 시집왔다는 그녀는 이틀 동안 ‘청도반시 블로거팸투어’ 일행을 안내하던 청도군 문화해설사였습니다. ‘천지삐까리’란 그녀의 표현이 절대로 과장이 아닌 것이 꼭 과수원이 아니라도 집집마다 감나무 대여섯 그루씩은 다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집은 열 그루가 넘는 집도 있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문경도 사실은 청도, 상주와 더불어 감이 유명한 곳입니다만, 청도처럼 이렇게 감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집집마다 감나무가 많았지만 보통 두 그루에서 세 그루였습니다. 흠, 감나무에 올라가 소머즈 흉내를 내다가 머리부터 떨어져 한해 후배가 된 친구놈 생각이 나는군요.

아무튼 블로거 팸투어를 유치한 ‘감 고부가가치화 클러스터사업단’-이름도 참 길죠? 이 사업단은 따로 ‘네이처 팜’이란 주식회사를 만들어 인근 농가에서 생산된 감을 모아 상품화하는데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건물을 지어 임대를 준 것도 청도군이라고 합니다.

감 클러스터사업단 서영윤 팀장.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청도반시 축제장에서도 그는 즐겁다.

문화해설사-이름이 배명희 씨였습니다-의 설명에 의하면 청도는 사방으로 물이 흘러나갈 뿐 어느 곳에서도 물이 들어올 수 없는 지형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수질이 매우 깨끗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청도에서 생산되는 감은 공해와는 100% 무관한 신선도 높은 청정과일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러고 보니 밀양강도 청도에서 시작되는 강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가끔 밀양시 청도면의 밀양강가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 강의 발원지는 바로 인접한 청도군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청도사람들의 청도 감 사랑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예정수 감 사업단장도 오래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매우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지만-거기에 대해선 김훤주 기자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청도반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감 클러스터사업단에 들어왔습니다.

이른바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산악지대의 북쪽에 위치한 청도는 한때 오지였습니다만 이젠 더 이상 오지가 아닙니다. 바로 옆으로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가 힘차게 뻗어가는 교통의 요지가 됐습니다. 부산까지 30분이고 대구는 더 가깝습니다.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만약 마산이나 창원이었다면 감나무 밭을 확 갈아엎어서 공장을 지었을 거야. 아니면 아파트나 상가를 지었을 테지. 뭔가 돈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시장님-아니, 거긴 군수님이군-은 고뇌를 했을 거고 결단을 했을 거야. 어떻게 멋지게 갈아엎을 것인가를.

지금도 창원시장님은 마산만을 갈아엎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계십니다. 이미 수없이 갈아엎어진 마산만이건만 아직도 갈아엎을 곳이 남은 모양입니다. 이번에 그야말로 기상천외합니다. 그나마 남은 마산만에 섬을 만들겠답니다. 거대한 인공섬을 만들어 맨하탄처럼 개발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 마산 쪽에서 보면 마산만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집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 그런 섬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최소한 우리집에선 마산만은 완벽하게 없어지는 것입니다. 반대편 창원 귀산 쪽에서 보면 바다는 보이겠지만 우리동네에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지요.

‘가고파’가 어쩌고저쩌고 마산만을 자랑하면서 마산의 자랑 마산만을 갈아엎는 창원시-거참 마산시란 이름이 없어지고 보니 마산만? 창원시? 헛갈리네-와 청정지역에서 나는 특산물 감을 자랑으로 여기며 발전시키기 위해 애쓰는 청도군.

청도군 문화해설사 배명희 씨와 함께 한 장복산님. 그새 친해졌네요~~

물론 청도군과 창원시를 단순비교하는 게 무리이긴 합니다만 현재 스코어, 청도군에 비해 창원시는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창원시장의 눈에는 감 따위는 보일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산만을 조금이라도 더 갈아엎는 공사를 벌일 수 있을까, 그런 생각뿐이지요.

람사르를 유치하고 유엔사막화방지협약 총회를 유치했던 창원시장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 주남저수지에 60리길을 조성해 철새를 쫓아내겠다는 것입니다. 주남저수지를 발판으로 람사르를 유치했던 창원시가 주남저수지를 없애려 한다니. 토사구팽도 아니고.

청도는 어떨까요? 지금처럼 아름다운 청도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까요? 내 고향 남쪽 바다 어쩌고 하던 마산에 지금은 바다가 없습니다. 모두 매립되고 남은 바다도 곧 사라질 형편입니다. 하지만 감 클러스터사업단의 예정수 단장이나 서영윤 팀장 그리고 청도군의 배명희 문화해설사 같은 분들이 고향을 지키고 있는 한...

감나무 숲이 아름다운 청도는 영원할 것으로 믿어도 되지 않을까요?
그냥 그렇게 믿고 싶네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내가 황매산 모산재 코스를 버리고 합천박물관을 택한 것은 순전히 김훤주 기자 때문이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갱상도문화학교가 주최한 합천명소 블로거탐방 둘째 날(9/30). 해인사를 둘러본 뒤에 만난 홍류동 소리길에서 얻은 첫째 날의 감동이 채 가시기 전에 모산재의 절경을 만났더라면… 그야말로 이번 여행은 완벽했을 것입니다.

모산재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곳이긴 합니다만 사실 한 번도 올라가본 적은 없습니다. 몇 차례 영암사지에서 바라보면서 감탄사만 흘리곤 했었는데 영암사지와 모산재가 하나의 절묘한 조합이 되어 둘 중 어느 하나가 없는 모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 영암사지에서 바라본 모산재 @사진. 김천령의 바람흔적


영암사지를 처음 보았을 때 절터가 이토록 감동을 준다는 사실에 놀라고 병풍처럼 펼쳐진 모산재에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영암사지와 모산재. 이번 코스는 황매산 쪽에서 버스를 내려 능선을 타고 모산재 정상을 거쳐 영암사지로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오! 가장 바라던 길이 아니었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이 환상적인 코스를 포기한 것은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순전히 김훤주 기자 때문이었습니다. 합천명소 탐방은 첫째 날에 해인사와 홍류동 소리길, 대장경 천년문화축전 축제장을 둘러보고 둘째 날에 합천영상테마파크를 보고 합천활로를 걷는 순서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삼간한우 시식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어있었죠.

그런데 합천활로는 하나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합천에 산재해있는 다양한 볼거리들에 길 개념을 혼합해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묶어놓은 게 합천활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홍류동 소리길도 그 하나일 듯싶습니다.

둘째 날 영상테마파크를 둘러본 블로거탐방단은 네 갈래로 나뉘어 합천활로를 걷기로 되어있었습니다. 모산재와 영암사지, 선비길, 강정늪, 합천박물관 이렇게 네 곳이었습니다. 물론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모산재 그 다음이 선비길이었지만 이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여 내가 손을 들지 않으면 합천박물관은 아무도 가지 않는 불상사가 생길 게 뻔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내가 손을 들자 어디로 갈지 망설이던 선비님이 손을 들고 무릎이 안 좋으신 김용택 선생님이 손을 들어서 덕분에 합천박물관에도 세 사람이 배정됐습니다. 공치사는 이 정도로 하고.

우선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이후에 블로그 포스팅들을 통해 ‘모산재-영암사지’와 ‘선비길’ 코스를 다녀온 사람들의 환성이 너무나 대단해서 행사 운영자였던 친구의 사정을 고려한 알량한 우정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아, 나는 늘 이래서 탈이야.

홍류동 소리길의 감동에 젖어 새벽까지 이어진 주류파들의 행진에 동참한 후과는 박물관에서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합천군에서 배려한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따라가며 나는 내내 졸았던 것입니다. 세 명밖에 안 되는 박물관 탐방객을 태운 군청직원도 함께. 그러니 더욱 졸면 안 되었는데 아, 정말 죽을 지경.

만약 내가 이곳 박물관이 아니라 탁 트인 모산재에서 영암사지를 내려다보거나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과 정겨운 마을 사이로 난 선비길을 걸으며 시원스럽게 얼굴에 부딪히는 가을바람과 더불어 남명선생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어제 먹은 술기운이 확 달아나면서 생기가 돌았을 것입니다만, 박물관은 너무 고리타분하고 공기도 텁텁했습니다.

..... 합천박물관 전경. 분수대에 보이는 조형물이 용봉문양환두대도 @사진. 합천박물관


게다가 환갑이 훨씬 넘은 것으로 보이는 문화해설사님은 의욕이 너무 넘쳐나서 처음 들어보는 천오백 년 전의 역사에 대해 장황설을 늘어놓았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정형화된 콘크리트 건물을 보자마자 벌써 몰려드는 잠귀신은 몰려들고. 하지만 메모지를 들고 열심히 듣고 질문하고 하는 김용택 선생님 탓에 내놓고 졸지도 못하고.

보아하니 선비님도 졸리긴 마찬가지인 듯이 보이는데 역시 김용택 선생님 탓에 열심히 듣는 척 하는 걸 눈치 빠른 내 눈은 놓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그렇군요. “뭐야 이거. 그래서 합천박물관 가서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하고 힐난하실 분들이 많겠군요. 마치 일부러 ‘안티’하는 것으로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결코 그런 불순한 의도는 없었다는 점을 천지신명을 빌어 말씀드립니다.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리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원래 블로그에 글을 쓸 때 미리 어떤 주제나 방향을 잡아놓고 시작하지 않습니다. 뭘 쓸지 소재만 정해지면 그냥 붓 가는대로 아니 키보드에 손가락 가는대로 쓴답니다.

그러니 글을 쓰면서도 이 글이 어떤 식으로 끝날지 저도 실은 모르는 거지요. 아무튼 한 시간 반에 걸친 박물관 탐방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박물관 탐방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박물관엔 제가 모르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고대의 역사가.

합천에 다라국이라는 고대국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다라국은 출토된 유물에 의하면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합천 지역에서 흥성했던 가야연맹체의 일원으로 보입니다. 그 이전 신석기, 청동기 유적도 있습니다만 이 시기에 가장 문명이 발달했을 것이라고 유물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유리잔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다라국 역시 신라와 마찬가지로 로마와 교역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신라와의 교역을 통해 로만글라스가 유입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외부와 교류가 활발했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듯합니다.

출토된 유물 중에는 귀고리 등 정교한 금제공예품뿐 아니라 옥으로 만든 반지, 목걸이, 귀걸이 같은 세공품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신라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세공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들인 것입니다. 신라에만 있는 줄 알았던 금관도 있더군요.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용봉문양의 황금칼이었습니다. 고대 다라국의 지배자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지녔을 이 칼은 손잡이의 문양이 화려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정밀한 아름다움에 실로 넋을 잃을 지경입니다. 어떻게 저런 걸 만들었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라국의 당시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합천박물관이 지어진 곳은 바로 이러한 유물들이 출토된 옥전고분군 바로 밑입니다. 만약 전날 과음으로 인한 숙취만 아니었다면 현학적이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좋은 공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옥전이란 이름도 혹시 옥 유물이 많이 나와서 그리 된 것은 아닐까요?

물론 짐작하시는 것처럼 졸면서 박물관을 도느라 그런 것은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박물관을 모두 돌아보고 나서 나오는데-사실은 이 순간 굉장히 행복했답니다. 드디어 차에 앉아 졸 수 있었으니까요-함께 온 군청직원이 바로 위에 고분군이 있다고 알려주더군요. 앗, 그럼 보고 가야지. 핵심을 안 보고 가면 되나.

옥전고분군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박물관 뒤편으로 난 오솔길을 조금 올라가니 그곳에 커다란 고분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세어보지는 못했지만-역시 술 탓-상당히 많은 봉분들이 모여 있었는데 매우 평온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 모양을 바라보자니 술이 확 깨면서 정신이 맑아지더군요.

..... 옥전고분군. 휴대폰으로 찍었다. 좋은 가을날이다.


이런, 순서가 이게 아니었어.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고분군을 먼저 보고 박물관을 보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분군에서 고대의 사람들과 먼저 인사를 나눈 다음 그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살펴보았다면 훨씬 실감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박물관이라고 해서 입구를 꼭 박물관 현관문에 직렬로 세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곧바로 오솔길로 통하도록 안내해서 고대의 사람들이 누워있는 고분군으로 가 그들을 먼저 만나보는 것이 예의에도 맞지 않을까 합니다만. 만약 그랬다면 나도 정신을 버쩍 차려서 박물관의 유물들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건 약간 난센스이긴 합니다만, 엄밀히 말해서 박물관(혹은 그 안의 유물들)의 주인은 바로 고분에 누워있는 고대인들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그들에게 “자, 지금부터 우리가 이 박물관에 소장돼있는 당신들이 쓰던 물건을 둘러볼 참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하고 마음속으로 허락도 구하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인의가 땅에 떨어진 시대에 그깟 예의가 무엇이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반대로 해도 되겠습니다. 먼저 박물관의 유물들을 둘러본 다음 고분에 들러 “당신들이 쓰던 물건 잘 봤소. 참으로 뛰어난 유물들이 많이 있더이다!” 하고 인사를 한 다음 고분군 위에 떠있는 구름과 주변의 소나무들을 한번 둘러보고 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이날 우리를 승용차에 태워(다른 블로거들은 관광버스로 갔고 우리는 세 명밖에 안 되다보니 군청직원이 자기 차로 안내했습니다) 박물관에 모시고 온(?) 군청직원은 욕심 많은 김용택 선생님의 요청에 예정에 없이 우리를 일해공원과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까지 안내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나는 유유자적 흐르는 황강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황금빛 모래톱을 만들어가면서 구불구불 뱀처럼 기어가는 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입니다. 만약 저 황강마저 일직선으로 곧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면? 오 마이 갓!

합천. 다시 가고 싶은 곳입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다니. 해인사, 홍류동 계곡(정운형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금강산을 축소판으로 옮겨놓은 곳), 모산재, 영암사지, 황매산, 합천영상테마파크, 남명 조식 선생을 생각하며 걷는 선비길, 황강, 합천댐의 붕어찜 그리고 무엇보다 삼가한우.

삼가한우란 합천군 삼가면에서 나는 한우고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합천군 삼가면이 한우가 그렇게 유명한 곳인지 이번에 또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산과 창원에도 삼가한우식당이 있더군요. 합천에 다녀온 이후 거기에도 가보았습니다만 역시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한 육즙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여기에 공무원들의 친절한 봉사정신까지.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합천군의 우수한 관광상품을 홍보하고자 하는 목적 때문인 것이겠지만. 이 글 보신다면 사람들이 박물관만 슬쩍 보고 가게 하지 마시고 뒤편 고분군을 더 많이 홍보해주시면 좋겠어요. 사실은 거기가 볼 것이 더 많다는 것.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고대 사람들의 마음도 보고 가시라고.

그리고 내친 김에 하나 더 불평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창원, 마산이 경남의 중심도시이며 광역시를 빼고는 전국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데 합천 해인사로 가는 직통노선이 없답니다. 대구로 가거나 아니면 진주로 가서 합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는군요.

이거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대중교통만 편리하다면 굳이 환경을 오염시켜가면서까지 자가용 끌고 명승지 찾아다닐 이유가 없고요, 또 그리한다면 한적한 가야산 어느 골짜기 주막에서 마음 편하게 동동주를 거하게 마실 수 있는 자유도 누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나는 내일이나 모레쯤 단풍이 지기 전에 홍류동 소리길을 꼭 한번 다시 걸어볼 생각이에요. 가능하다면 그 길에 박물관을 다시 한 번 가보면 좋겠지만 혼자 가는 게 아니라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시골 박물관 하면 단박에 “에이”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다시금 합천군에 건의를 드리자면, 박물관만 보지 마시고 옥전고분군과 주변 환경을 잘 어우러지게 하는 어떤 콘셉트를 만들어보시는 게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박물관과 옥전고분군을 연결하는 고분길 혹은 다라길은 어떨까요? 나무벤치도 몇 개 만들어주시고요. 무슨 길 내는 게 능사가 아니긴 합니다만.

Posted by 파비 정부권
저희 집에는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습니다. 아들은 중학교 2학년이고 딸은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유치원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커버렸습니다. 아이들이 크는 걸 볼 때마다 뿌듯함도 있지만 인생이 무상함을 느낍니다. 
지난 여름방학에 아들녀석이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13일 일정으로 갔는데 태풍으로 인해 하루 더 머물렀으니 14일간 제주도 여행을 한 셈입니다. 그 소감문이 아래에 소개하는 글입니다. 딸아이는 곧잘 시도 쓰고 글도 쓰는 걸 보았습니다만, 아들이 글 쓰는 걸 본 적은 없습니다. 아들녀석은 글 쓰는 걸 무척 싫어합니다. 언젠가 아들녀석의 일기를 훔쳐본 적이 있는데 내용이 이랬습니다.
1일- 오늘은 재수가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재수가 좋은 날이었다. 2일- 오늘도 왠지 재수가 좋을 것 같다. 3일- 오늘 나는 정말 재수가 좋았다. 길에서 천원을 주웠다. 이런 식으로 거의 10일 이상을 재수가 좋다, 좋았다는 이야기로 채우더니 그 다음부터는 기분이 좋다, 왠지 좋을 것 같다는 식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의 검사 탓에 억지로 썼던 이 일기의 중간중간에는 이런 담임선생님의 검사 확인글이 실려있었습니다. 동민이는 매일 그렇게 재수가 좋아서 기분이 참 좋았겠구나! 
그런 아들녀석이 쓴 글이라나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이 글을 올리는데는 또하나의 사연이 있습니다. 이글은 아마도 아이의 엄마가 강제로 여행후기를 쓰라고 강요한 덕분에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 엄마의 노트북 앞에 하루종일 앉아서 죽을 맛으로 써서 탄생한 글이 바로 이글입니다. 그런데 아이 엄마의 노트북이 얼마 전에 웬일인지 다운되고 말았습니다. 프로그램을 새로 깔긴 했지만 이전에 있던 자료들은 모두 유실되고 말았는데 아들이 쓴 글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지요. 
아들녀석이 제 엄마에게 "아니 왜 그걸 날리냐고" 하면서 원망을 하자 아이 엄마는 태연하게 이러더군요. "할 수 없지. 다시 써야지 뭐." 사람에겐 누구나 그런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자기가 창조한 생산물에 대한 강한 애착 같은 것 말입니다. 마치 자식을 대하듯 그런 감정. 아들녀석의 얼굴에선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보통 때 같았으면 "그래서 내가 늘 중요한 자료는 따로 보관을 하라고 그랬잖아. 기계를 절대 믿어선 안 돼. 유비무환. 유비무환~" 이러면서 가족들을 기죽였을 것입니다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실망하는 표정이 무척 안쓰럽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메일을 정리하다가 아들녀석이 쓴 글을 발견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이가 글을 쓰고 저장한 후 화장실에 간 사이에 제가 살짝 제 이메일로 '내게 보내기'를 해놓았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읽어볼 요량으로 그랬던 것이겠지요. 어쨌든 참 다행스런 일입니다. 아래에 소개를 하면서도 사실 저도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 대충 훑어보니 역시 철자법도 엉망인 곳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문장 구성이나 전개가 엉성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중학교 2학년짜리가 이거 밖에 못쓰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록 엄마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긴 글을 기억을 더듬어 썼다는 것이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은 재수가 좋았다- 오늘도 재수가 좋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같은 짧은 글만 쓰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긴 글도 쓸 수가 있었군요.
혹시 아들이나 아이 엄마가 이 블로그를 보고 자기 글이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할지 어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여기 소개하기로 합니다. 이 블로그에 올려놓으면 웬만해선-아니 절대로-불의의 사고로 글이 사라지는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아이의 글을 특별히 손 보거나 하는 일 없이 그대로 올립니다. 원래는 줄 간격 띄우기를 일부러 하지 않았지만 복사해서 여기 같다 붙이니 아래처럼 띄우기가 자동으로 돼버렸습니다. 원래는 줄 간격 띄우기 없이 줄줄이 달아서 써져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제 아들녀석이 쓴 글 중에 이렇게 긴 글을 보기는 처음입니다. 아무리 길어도 열 줄을 넘긴 걸 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역시 보는 게 많아지면 쓰는 것도 많아지는 것일까요? ......        


제주도를 다녀와서

이번에 여름방학을 맞아 12박 13일로 제주도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참가 동기는 제주도를 안 가봐서 한 번 가보고 싶기도 하고 봉사활동을 채우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첫날에는 ‘꽃들에게 희망을’ 사무실이 있는 창원 사파동 민원센터를 갔다. 그곳에서 인솔자인 설미정 선생님(설 쌤)과 영화감독인 김재한 선생님(김 쌤)과 대학생 자원교사와 다른 아이들10명과 모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용돈 13만원을 받고 조를 짜서 팀별로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부산 사상터미널 로 갔다. 또 사상터미널 앞에 있는 사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중앙역으로 가서 중앙역 근처에 있는 여객선 터미널로 갔다. 참 과정이 복잡하기도 하다.

터미널에서 배를 기다리며 친구들 이름을 외웠다. 나중에 배에서 이름을 못 외우면 벌금 만원이 깎이기 때문이다. 먼저 젤 큰형님 이성희 행님이랑 2인자 한윤이 행님, 3인자 형규, 4인자는 나고 5인자 재민이(후에 귀두 컷이라는 별명이 생긴다. 이것도 내 벌금의 이유 중 하나다), 6인자 재현이, 7인자 민규, 8인자 김세화 행님(행님은 그냥 놀리는 것이다), 9인자 정균이, 막내 건영이. 이름을 드디어 다 외웠다. 이름을 다 외워 갈 때 즈음 배시간이 다되어서 배를 타러 갔다. 그리고 배가 출발하고 이름외우기를 했다. 재현이가 제대로 못 외워서 벌금 만원을 냈다. 그리고 나는 아슬아슬하게 다 맞춰서 벌금을 안내어도 되었다.

이름 외우기를 하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친해진 애들이랑 같이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거나 용돈으로 매점에 가서 먹을 것을 먹고 잤는데 일어나보니 제주도에 거의 다 왔었다. 밖에 나가 보니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고 제주도만 있었다. 제주도를 보니 무척 크기가 컸다. 이때 까지 봐 왔던 섬들과는 너무 크기차이가 많이 났다. 그리고 제주도에 첫 발걸음을 디뎠다 멀미가 조금 있어서 속도 울렁거리고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 상태로 택시정류장에서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가 서는 정류장으로 갔다. 제주도에는 특이하게도 시외버스가 시내버스처럼 노선이 정해져 있고 여러 개의 정류장에 멈춰 선다.

우리는 5.16도로를 타고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서귀포시에 있는 토평동에 내린다. 그리고 걸어서 한 유기농 감귤농가에 들어간다. 그곳에는 민박집 비슷하게 집이 한 채있는데 앞에 있는 것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돼지 똥냄새가 나고 나무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곳에는 유기농이라 농약을 치지 않는다. 그래서 잡초가 매우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작년에도 왔던 성희형님이 ‘저기 있는 풀들을 우리가 다 뽑아야 된데이’라고 말했다 그것 때문에 충격을 한 번 더 받았다. 입에서 저절로 ‘아 진짜 이건 아니다’ 등 부정적인 말들이 튀어나왔다. 그 말이 나중에 어떤 재앙을 불러일으킬 줄 은 몰랐다.

첫날은 다행히 풀을 뽑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뱃멀미의 피해자가 한 명 나왔다. 김재한 선생님이 뱃멀미의 후유증 때문에 설미정 선생님이 병원엘 데리고 갔다. 덕분에 우리는 잘 놀 수 있었다.

점심때가 다 되자 미리 사온 밥을 했다. 그리고 주인집 아줌마가 된장찌개를 끓여주었다. 그걸로 밥을 먹고 저녁때 선생님들이 들어올 때 까지 거의 첫날은 놀다시피 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는 생지옥의 시작이다. 저녁이 되었다 선생님들이 들어오고 저녁밥을 준비 했다. 하지만 반찬이 별로 없어서 낮에 먹던 된장찌개 재탕해서 먹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아침에 6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대충 준비하고 잡초를 뽑으러 나갔다. 그리고 설명을 듣고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20분도 안되어서 땀이 흐르고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다 뽑았다. 애들이 모두 녹초가 되어서 들어왔다. 이런 일을 10일이나 지속해서 더 해야 된다니 진짜 걱정이 되었다.

잡초를 뽑고 들어와서 애들이 다 씻고 나오니 설 쌤이 미션을 준다고 하였다. 그 미션은 조별로 퍼즐을 맞추고 제일 먼저 맞추는 조에게는 상금 만원을 주고 늦게 맞춘 조에게는 벌금을 내도록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조별로 모여서 퍼즐을 맞추었다. 우리 조에는 유일한 고등학교 형님인 성희형님이 있어서 퍼즐을 빠르게 맞출 수 있었다. 그날 퍼즐 진도는 우리조가 제일 빨랐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놀다가 잠을 잣다. (참고로 저녁밥은 어제 먹던 된장국 재탕한 것)

다음날이 흘렀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풀을 뽑고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미션은 모두 다 같이 움직여서 감귤박물관과 영화박물관 을 가서 인증 샷을 찍어 오는 것이다. 감귤 박물관 갈 때는 택시를 타서 쉬웠는데 그 뒤부터 문제였다. 돈을 아낀다고 택시를 안타고 버스를 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내려가도 정류장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내려가서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그런데 반대편 정류장에 서서 한 시간씩이나 버려버렸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영화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영화박물관에서 다 구경하고 나온 다음은 쉽게 숙소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밤에 이비에스 문제집을 풀고 좀 놀다가 잠이 들었다.

또 날이 흘렀다. 이제 잡초 뽑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오늘 미션은 아픈 사람과 안 아픈 사람을 나눠서 올레길 코스 하나를 완주하고 오는 것 이었다. 나는 불행이도 안 아픈 사람으로 분류 되어서 제일 힘들다는 제1코스를 완주했다. 그날은 잡초 뽑기 때문에 운동화를 다 버려서 할 수없이 슬리퍼를 신고 걸었다. 슬리퍼로 15km를 걷는 것이 여간 힘들게 아니었다. 덕분에 최초로 올레길 슬리퍼 신고 완주한 사람이 되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를 모르겠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놀다가 공부하고 밥 먹고 또 놀다가 잠이 들었다.

이제 6일째다. 시간이 늦게 흐르는 것 같았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잡초를 뽑지 않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노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쌤들이 오늘 하루 묵언수행을 한다고 해서 우리는 한마디도 못했다. 다행이 그것이 4시까지라서 4시까지는 말을 못했다. 하지만 4시부턴 장애인들과 걷기로 일정이 잡혀서 장애인들과 걸으러 간다. 쌤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간다고 가고 싶은 사람은 각자 돈을 가지고 오게 했다. 나는 슬리퍼가 떨어져서 슬리퍼를 살 겸 성희 행님, 한윤이 행님, 뿡뿡이 누님, 민규, 재현이 와 함께 갔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해서 입이 근질근질하고 따분했다. 가서 냉면을 먹으려 했는데 냉면이 없었다. 그래서 돈가스를 먹고 슬리퍼를 사고 숙소에 돌아왔다. 그리고 장애인들과 걸을 준비를 하고 숙소를 나갔다. 장애인들이 있는 곳에 도착을 했다. 그곳에서 밥을 해주고 고기를 구워주고 설거지를 해주고 짐정리를 도와줬다. 그리고 텐트를 치고 내일 걸을 때 조를 편성 했다. 선발대 후발대 본부조로 나누었는데 선발대는 제일 힘이 남아도는 사람이 가고 후발대는 약간 안 좋은 사람 본 부조는 제일 안 좋은 사람이 편성되었다.

나는 허리가 안 좋아서 본부조로 편성되었다. 본 부조는 본부에 남아서 짐을 나르고 밥을 준비해야 한다. 조 편성이 끝나고 장애인 쪽 봉사자들과 앉아서 자기소개를 하였다. 그런데 도중에 비가 와서 빨리 끝내고 중요한말을 전하고 각자 텐트로 들어갔다.

들어갔는데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이런 냄새는 처음 맡아보는 것 같다. 본부 조에 편성된 애들이랑 내일 아침에 밥할 거 미리 준비하고 텐트에 들어왔는데 냄새가 더 심해졌다. 그래서 본부 조에 있는 한윤이 형님과 노숙을 하기로 결심했다.

한참 잘 자고 있는데 쌤들이 우리가 자는 곳으로 와서 빨리 들어가라고 했다. 덕분에 냄새를 맡으며 잠을 잤다.

밥을 하려고 새벽에 본부 조 아이들과 일어났다. 그런데 같이 노숙하던 한윤이 행님에게서 그 냄새가 났다. 그 냄새의 근원을 보니깐 그 행님과 옆에 자던 재민이의 냄새였던 것이다. 그 형이 말했다. “와 나. 우예 하몬 냄새가 옮을 수가 있노...” 엄청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밥을 하러 갔다. 생각해보니깐 40명의 밥을 차려야 된다니깐 엄청난 책임감의 압박이 눌려왔다. 감잣국을 40명분을 끓이고 햄 구이를 40개를 부치고 계란프라이를 40개를 굽고……. 엄청 힘이 들었다. 밥을 다 차려주고 본부 조 애들이 모두 녹초가 되었다. 그리고 걸으러 가는 아이들을 보내고 짐을 날랐다. 그리고 다음 베이스캠프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밥 준비를 하려는데 밥을 사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거리가 하나 줄어들었다. 또 그 40명치 밥을 했다면 허리가 완전히 나갔을 것이다. 짐정리를 하고 텐트를 폈다. 그리고 애들이 도착했다. 아까 폭우가 와서 애들이 완전히 젖은 상태였다. 우비를 챙겨주긴 했는데 비가 안 오길래 다 본부에 맡겨서 봉변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옆에 식당에서 제육볶음을 먹었다. 얼마 만에 제대로 된 밥인지 다들 밥이 나오자마자 달려들었다.

밥을 다 먹고 숙소로 가야 한다. 또 설 쌤이 미션을 주고 갔다. 우리보고 알아서 숙소로 오라는 것이었다. 쌤들은 택시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버스를 기다리려 정류장으로 갔다. 근데 그 정류장에는 그쪽으로 가는 버스가 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한참 걸어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제주터미널로 가서 또 516버스로 갈아타서 숙소로 돌아왔다. 덕분에 버스비를 엄청나게 소비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평소와 마찬가지로 씻고 놀다가 밥 먹고 공부하다가 놀다가 잤다.

7일째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와서 풀을 뽑지 않으려고 했다. 근데 7시부터 쨍쨍해져서 땅이 다 말라버리는 바람에 결국 또 풀을 뽑게 되었다. 오늘은 조를 바꾸었다. 나는 현재로서는 돈이 별로 없다. 근데 하필 돈 없는 재현이, 형규 와 한조가 되는 바람에 진짜 아니다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 맞다 내가 너무 진짜 아니다 소리를 많이 해서 쌤들이 진짜 아니다 를 하면 천 원씩 벌금을 내게 하였다. 나는 덕분에 엄청난 벌금을 내어서 거지꼴이 된 것이다.

오늘 미션은 조별로 제주도 투어를 하는 것이다. 코스는 쌤들이 정해서 뽑기 형식으로 하는 것이다. 뽑기는 각조 조장들이 나와서 한다. 하필 내가 조장이 되어버려서 내가 하게 되었다. 근데 뽑았는데 제일 돈이 많이 들고 힘든 코스가 나와 버렸다. 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자마자 ‘이건 진짜 아니다!’ 라고 말해버려서 또 천원이 깎였다. 와 오늘 운수는 완전 대박이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제주에 도착 했다. 먼저 제주 돌 문화 박물관을 가야한다. 입장료가 장난 아니다. 5천 원씩이나 한다! 버스비만 해도 천 원씩이나 들어갔는데 최후의 수단은 초등학생이라고 거짓말을 치고 들어가는 것이다. 다행이 안 걸리고 잘 들어갔다. 그런데 잘 구경하고 있다가 길을 잃어 버렸다. 그 돌 문화 박물관이 엄청 넓어서 길을 잃을 정도였다. 그렇게 30분을 헤매다가 겨우 길을 찾아서 나갔는데. 버스가 엄청 늦게 도착했다. 오늘 운수는 진짜 아닌 거 같았다. 계속 가면서 나를 포함해 아이들이 모두 진짜 아이다를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제주로 돌아와서 밥을 먹고 제주항일 기념관으로 갔다. 도착하고 인증 샷을 찍고 입장권을 끊고 들어갔다. 갔는데 운 좋게도 전문가가 공짜로 따라다니면서 해설을 해주었다. 덕분에 이해도 잘하고 안내까지 받았다. 그리고 나와서 버스를 탔다. 그리고 섭지코지로 향했다. 그런데 버스기사가 엉뚱한데 내려주는 바람에 한참 걸어가야 했다. 해변으로 걸어가는데 바다를 보니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앞을 보니 쓸쓸했다. 애들이 모두 노래를 이상하게 변형시켜서 불렀다. 난 결국 정신 줄을 놓고 말았다. 내가 덥다고 가방에서 반바지를 꺼내서 해변에서 바로 갈아입고 물에서 생쇼를 다하면서 걸었다. 그래도 물에서 걸으니 기분은 좋았다. 재현이 와 형규가 날 따라서 같이 물속에서 생쇼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섭지코지에 도착했다. 섭지코지에는 큰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었는데 카페에서 잠깐 쉬려고 들어갔다. 그런데 콜라가 천오백원이나 하고 아이스크림이 이천오백 원씩이나 했다. 나는 배가 너무 고파서 둘 다 먹어 버렸다 덕분에 주머니에서 사천 원이 날아갔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또 하나의 난간이 있었다. 버스정류장 가는 길을 모른다는 것이다 계속 직진하다가 또 길을 잃었다. 다행이 거기서는 해녀 할머니 덕분에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다음으로 갈 곳은 ‘김영갑 갤러리’ 이다. 거기도 버스에서 내려서 한참을 올라가야한다. 가다가 카페에 물을 얻으려고 들어갔다. 드갓는데 우리 조형규가 원래는 돈이 많았던 것이다. 우리는 육두문자를 날리면서 가를 갈궛다, 이사회에서 돈을 숨기면 그렇게 된다는 걸 처음 깨닫던 순간이다. 결국 우리는 아이스커피를 받아내게 되었다. 그리고 더올라갔다. 우리는 가서 입이 쫙 벌어졌다. 문을 닫은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문 앞에서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었는데 배터리가 방전되어서 꺼져 버렸다. 진짜 오늘 운수는 아니었다. 와 진짜 아니다……. 내가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그때 생각이 났다. 쌤이 준 비상용 핸드폰에 카메라기능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걸로 사진을 찍고 내려와서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려서 전화를 걸었다. 애들이 다왔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내부분열이 일어났다. 겨우겨우 내부분열을 막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모두들이 우리를 반겼다. 우리 올 때까지 밥도 안 먹고 있었다. 진짜 감동이었다. 얼른 씻고 앉아서 밥을 먹고 공부하다가 놀다가 잣다.

8일째다, 드디어. 평소와 같이 풀을 뽑고 씻고 밥을 먹고 미션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토평동 문화의집에 가서 김재한 선생님이 스토리텔링 강의를 한다고 한다. 거기 건물을 빌려 쓰는 대신 우리가 가서 청소를 해 주었다. 우리 조는 빨래하는 조라서 숙소에 남아서 빨래를 하고 갔다. 스토리텔링을 하기 전에 마을지도 만들기를 하였다. 덕분에 다리에 알이 아주 많이 배겼다. 그리고 돌아와서 스토리텔링 수업을 시작하였다. 스토리텔링은 간단하게 해서 이야기를 지어내서 거짓말을 치는 것이다. 그리고 직접 이야기를 지어내서 발표를 했다. 나는 고양이가 저주를 내려서 저주를 받은 사람은 헤어스타일이 귀두 컷이 되는 이야기를 지어내었다. 그리고 바이러스가 감염되어서 사람들이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그런 이야기도 나오고 신기한 이야기들을 아이들이 지어냈다. 덕분에 글 솜씨가 좀 늘어난 것 같기도 하다. 수업을 마치고 문화의 집에 있는 당구를 했다. 그렇게 재미있는 당구를 한국에서는 왜 청소년들이 하면 양아치 취급을 하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놀다가 밥 먹고 공부하다가 놀다가 잣다.

드디어 9일째다. 오늘도 늘 하던 데로 6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장갑을 끼고 나가서 몸을 풀며 준비를 하고 풀을 뽑고 씻고 밥 먹고 미션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 미션은 또 각 조끼리 어디를 갔다 왔다가 모슬포에 있는 백조일손묘지를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박물관에 당첨되었다. 자동차박물관은 가격이 매우 비싸다. 한 사람당 5천 원씩이나 한다. 그래서 우리 조는 제일 얼굴이 어린 사람을 뽑아서 초등학생표 3장을 사오게 해서 아주 싼(?) 요금으로 입장을 했다. 덕분에 싼 가격에 좋은 구경을 많이 하고 나왔다. 근데 지갑을 열어보니 용돈이 거의 다 떨어져 있었다. 나는 절망에 빠졌다. 나와 같은 처지의 조원이 한명 더 있었다. 우리는 버스정류장을 가면서 애꿎은 버스와 제주도와 태양과 매미와 감귤나무와 잡초와 토평동과 516도로와 중문 관광단지를 저주하면서 걸어갔다. 우리의 정신 상태는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길에서 노래를 부르며 윗도리를 벗고 뛰어가고 정신 줄을 완전히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섭지코지에서 지어낸 이상한 노래를 부르면서 갔다. 드디어 버스가 왔다. 우리는 손을 흔들면서 날뛰었고 주변에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우리는 이제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제 대놓고 버스정류장에서 노숙을 한다. 그리고 버스 소리에 아주 민감해졌다. 버스가 오면 은 자다가도 벌뜩 일어나서 버스를 잡는다. 그리고 버스에 탔다. 그리고 계속 자다가 서귀포 시내에 도착해서 버스 아저씨가 깨워서 겨우 일어난다. 이제 모슬포로 가야한다. 그런데 여기 터미널에서는 모슬포로 바로 가는 버스가 없다고 한다. 타려면 아까 타고 왔던 버스를 중문에서 내려서 앞에 있는 터미널로 가서 환승해야했다. 우린 또 돈을 날리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모슬포에 도착했다. 이제 백조일손 묘지까지 걸어가야 한다. 표지판을 발견했다. 2km 밖에 안한다. 우리는 평소에 10km를 걸었기 때문에 보고 코웃음을 쳤다. 와 근데 걸어보니깐 장난이 아니다. 그늘이 하나도 없었다. 내 조리 바닥을 보았는데 뜨거운 아스팔트 덕분에 바닥이 다 녹아버렸다. 진짜 이건 아니다. 계속 이 말을 반복하고 있다. 그때 설쌤과 김쌤이탄 트럭이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우리는 트럭 짐칸에 타고 달리다가 한윤이 행님 조를 태웠다. 한윤이 행님조는 경운기 히치하이킹을 해서 경운기를 탔다고 한다. 그리고 성희 행님 조를 태우고 백조일손묘지로 갔다. 그전에 일본 비행장을 먼저 가야 한단다. 다시 트럭짐칸에 타고 덜컹거리며 비행장에 도착했다. 비행장 크기가 매우 넓었다. 그곳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비행장 뒤에는 학살 터가 있다. 거기 큰 구덩이가 있었는데 거기에 사람들을 다 잡아넣고 총으로 쏴 죽였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주로 지식인 이였는데 제주도에서 북한이 뭐 어쩌고저쩌고 해서 지식인들은 죄다 빨갱이로 몰아 죽였다. 그 당시에 대통령 말에 반대하면 빨갱이로 다 몰아넣었다고 한다. 진짜 그 죄 없이 죽은 사람들이 불쌍했다. 그러고 비행장을 둘러보았다. 이상한 지하 벙커에 비행기를 넣는 격납고가 있었다. 그곳에 비행기를 격납시켰다가 미군이 쳐들어오면 바로 비행기들을 기동시켜 미군을 격파하려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격납고에서 비행기가 나간 적은 없다고 한다. 그곳을 그 뒤로 국군이 사용하다가 지금은 공군 소유인데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 뒤로 4.3때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러 백조일손묘지로 갔다. 백조일손묘지의 뜻은 백 명의 할아버지가 다 내 할아버지라는 뜻이다. 학살 터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의 시체가 6년 동안 그곳에서 방치되었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시체들이 다 조각이 나서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팔다리를 대충 끼워 맞추고 묘지에 안장 시켰는데 그것 때문에 백조일손묘지라고 한다. 거기서 참배를 드리고 또 트럭을 타고 버스정류장에 갔다. 오늘은 웬일로 쌤들이 택시를 안타고 우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갔다. 오늘은 제주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고 한다. 제주도 영화관은 신기하다. 지하에 있는 영화관이었는데 축구 경기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영화 보다가 축구도 보고 진짜 신기한 구조였다. 영화는 7광구를 보았다. 7광구가 재미있다고는 들었는데 재미는 없었다. 마지막에 하지원 혼자 살아남아서 석유를 파내고 그걸로 끝이 났다. 영화를 보고 이마트에서 식량을 사고 오랜만에 문명의 혜택을 맘껏 누리고 왔다. 오늘은 제주도 와서 젤 좋았던 날 같다. 그러고 숙소에 와서 씻고 놀다가 바로 잠이 들었다.

오늘은 10일째다. 오늘도 아침부터 풀을 뽑고 했다. 오늘은 오일장에 갔다가 강정마을에 간다고 한다. 또 갈 때는 조별로 간다고 한다. 쌤들은 택시를 타고 맨 마지막에 출발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또 떨어져서 가야한다. 참 슬픈 현실이다 다들 친해진 상태라서 같이 가면 재미있고 그런데 조별로 가니깐 심심하고 그렇다. 우리 조는 오늘 운이 좋다. 가다가 길을 물어봤는데 오일장까지 태워다 주신다고 한다. 정말 고마웠다. 그러고 우리가 일등으로 도착했다. 그래서 구경하다가 한윤이 행님 조를 만났다. 만났다. 정말 반가웠다. 얼른 그 조랑 합류해서 시장 구경을 하였다. 와 정말 놀랐다. 시장에 옷들이 다 짜가리들인데 진품같이 만들어 놓았다. 하나 사고 싶은데 돈이 별로 없었다. 정말 슬픈 현실이다. 돈 없는 사람은 못 살아남는다. 그리고 점심을 사먹으러 갔다. 갔는데 거기 주인아줌마가 어디서 왔냐고 물으신다. 내가 대표로 ‘마산에서 왔어요. 라고 하니깐 자기도 마산에서 왔다고 하신다. 와 정말 반가웠다. 이런 외딴섬에서 우리 동네 사람을 만나다니. 그 아줌마는 마산에 살다가 제주도로 이사 왔다고 한다. 덕분에 빵을 얻어먹었다. 와 정말 오늘은 운이 텄다! 그렇게 계속 시장을 보고 강정마을 사 남들에게 선물해줄 수박을 사서 집합장소에 모인다. 또 강정마을까지 갈 때도 따로 와라고 한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로 버스에서 다 모이게 되었다. 다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하늘에 간 걸까? 우리는 다 모여서 같이 도착을 했다. 그리고 강정마을로 가서 농성 자들에게 갔다. 그곳 사람들은 절대로 안 움직이겠다는 뜻으로 몸에 쇠사슬을 감고 가만히 앉아서 농성을 하였다. 진짜 그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 되었다. 거기서 수박과 성금 5만원을 기부하고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곧바로 강정 천으로 갔다. 근데 거기 공사를 하면 강정 천과 옆에 관광단지와 마을이 완전히 사라지고 생태계가 오염된다고 한다. 나도 그 공사는 절대 진행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아름답고 시원한곳을 개발해버리면 어떻게 살란 말인가! 우리는 강정 천에 가서 아주 재미있게 놀고 왔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했다. 옷을 안 갈아입고 그냥 와서 쫌 많이 찝찝했었다. 그래서 바로 샤워를 하고 놀고 저녁먹이고 쌤이 오늘 특별히 제주에서만 난다던 유산균막걸리를 시식하게 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나랑 한윤이 행님이 술에 약해서 나는 3바가지 먹고 취하고 형은5바가지 먹고 취해버렸다. 와 정말 나는 어른 되서도 술을 좀 많이 마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 말로는 내가 가르시아 노래와 뽀로로 노래를 부르다가 잠이 들었다고 한다. 오늘 이사건 때문에 술을 마셨던 재현이, 민규, 성희 행님. 한윤이 행님, 나 이렇게 5명은 밖에 나가서 마루에서 잣다.

이른 새벽 어제 막걸리 때문에 해롱해롱 거리며 일어났다. 하긴 안주도 없이 먹었는데 취할 만하다. 막 쏙이 쓰리고 아프다. 다행이 정신은 말짱해졌다. 시계를 보니 4시다 성희 행님이 모기 때문에 뒤척인다. 결국 형님도 일어나 버렸다. 나는 행님과 일어나서 여러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아침을 맞았다.

오늘은 잡초를 쫌 특이한데서 뽑았다. 트럭을 타고 내려가서 거기서 뽑았다. 그곳은 정말 끔찍했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애벌레와 모기와 지렁이가 정말 많았다. 모든 곤충들이 크기가 매우 컸었다. 와 진짜 이런 곳은 처음이다. 그리고 풀을 다 뽑고 트럭을 타고 가는데 귀두 컷 재민이가 서 있다가 안경을 날려 버렸다. 재민 이는 그 전날에 트럭을 타고 가다가 모자를 날렸는데 진짜 그때 재민이 표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은 숲길을 걷는다. 걸으면서 자아를 찾아 와라는 것이 오늘의 미션 이었다. 또 조별로 간다. 우리 조는 쌤이 특별히 자원교사누나를 붙여서 보냈다. 덕분에 셋이 있는 것보다 재밌지만 자유가 보장이 안 됫다. 가다가 먼저 출발한 한윤이 행님 조를 만났다. 또 다시 합류해서 같이 갔는데 자원교사누나인 미루누나가 그거덕분에 매우 화가 났다. 그리고 다 걷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는데 갑자기 비가 왕창 쏟아졌다. 옷도 다 배리고 완전 물난리가 났다. 버스도 아주 늦게 와서 우리는 다 배린 상태였다. 그런데 버스 안은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아서 아주 고통스러웠다. 도착해서 얼른 씻고 나왔는데 쌤이 미루 누나 화나게 한 것 땜에 나와 한윤이 행님과 재현이와 민규를 불러내어서 혼이 나고 미루 누나한테 가서 정식으로 사과를 받고 왔다. 우리가 맘대로 행동한 것 땜에 화가 많이 났나보다.

오늘은 고기를 구워먹는다고 한다. 아 맞다. 낼은 금식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고기를 왕창 먹었다. 그리고 구충제를 먹었다. 그리고 놀다가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 일어나보니 밖에는 엄청난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불고 있었다. 진짜 저런 태풍은 살다 살다 처음 본다. 덕분에 풀은 뽑지 않았지만, 일단 쌤이 더 자라고 한다. 내일 배가 뜰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일단 잠을 더 잣다. 일어났는데 쌤들이 라면 먹고 있다. 우리는 금식이라서 먹지 못한다. 아 정말 끔찍하다. 진짜 이때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끓여주는 김치찌개도 먹고 싶었다. 와 정말 한계점까지 갔는데 드디어 물 토를 하고 말았다. 그냥 나는 가래침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보니깐 침치곤 너무 많이 나온 거 같았다. 그것은 토였다. 뭔가 목이 계속 따끔거린다. 나 말고 재민 이와 건영이도 구토를 했다. 그리고 쌤이 자아정채성 글을 다 쓰지 않는 사람은 열두시에 죽 줄 건데 안준다고 한다. 그래서 빨리 썼는데 열두시가 넘어가 버렸다. 나 말고 한윤이 행님과 재현이도 다 쓰지 않았다. 그래서 절망하고 바퀴벌레를 잡았는데 세 명이서 삼등분해서 라면스프를 뿌려먹을려고 했다. 그냥 글을 다 쓰기로 결심하고 다 썼다. 그래서 죽을 먹고 한윤이 형과 재현이와 밖에 나가서 라면을 뿌셔먹으며 이야기를 하다가 잣다.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그 지옥에 가서 풀을 뽑지 않았다. 앞에 잡초가 남아 있길레 거기서 풀을 더 뽑았다. 풀을 뽑고 숙소에 들어왔는데 충격적인 소식이 내 귀에 들어 왔다. 바로 오늘 부산가는 배가 결항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사건덕분에 용돈이 제로가 되었다. 내가 진짜 아니다 연달아서 말해서 남은 돈마저 벌금으로 나가 버렸다. 다행이 밥값은 남아 있었다. 오늘은 급히 계획을 바꾸었다. 청소년 문화의 집에 가서 노는 것이다. 오늘은 월요일인데 특별히 우리를 위해서 열어주었다. 대신 태풍 때문에 망가진 콩콩 이를 고치는 것이다. 고치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금방 다 고치고 안에 있는 당구장과 게임기등 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렸다. 여기 와서 당구를 친 덕분에 실력이 전보다 더욱 좋아져서 한윤이 형님과 대결을 했지만 져버렸다. 그 형님 고성에서 당구를 좀 쳐봤다고 한다. 역시 고수의 포스가 느껴진다. 당구를 치고 애들이랑 근처 농협마트에서 밥을 먹었다 먹는데 텔레비전에서 1박2일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걸 보니 우리들을 보는 것 같았다. 복불복같은 미션과 일박이일 스테프 같은 쌤들, 그리고 꼭 한번씩 있는 낙오자나 파산자···. 그 일박이일 에서도 맴버들이 제주도에 있었다. 밥 먹고 문화에 집에 있는 엑스박스에서 권투를 우리의 뿡뿡이 형(김세화)과 붙었는데 2연패로 졌다. 진짜 이것 때문에 형이라 부를만하다. 오늘 문명의 혜택을 맘껏 누리고 또 미션이 있다. 마을 지도를 완성해서 먼저 내는 조가 짜파게티를 먹는 것이다. 오늘 조는 새로 짠다. 우리 조는 건영이(조장),김세화, 형규, 재민이, 나 닭싸움과 물총싸움도 한다는데 그 두 종목에서는 좀 불리하다. 하지만 공간지능이 아주 높은 나와 여자 2명이 있어서 마을지도 만들기에는 아주 유리하다. 결국 우리는 마을지도 만들기에서 이겨서 짜파게티를 획득하였다. 하지만 닭싸움과 물총에서는 영 아니었다. 애들이 다 죽고 내가 마지막으로 남았는데 내가 결국 쓰러져서 졌다. 물총은 처음에는 움직이면서 맞추는 거였는데 가만히 정지한 상태로 계속 쏘다가 먼저 얼굴을 만지고 몸을 숙이면 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우리조가 내덕분에 이길 수 있었는데 한순간의 방심으로 지고 말았다. 어차피 우리는 짜파게티가 있으니깐 하면서 자기위로를 하였다. 그런데 김세화가 물총으로 나를 공개총살 시켰다. 물총에서 진 벌이라고 한다. 그래도 물총싸움의 영웅이 되었다. 너무 끈질기게 버텨서 적팀 영웅인 정균이 마저 포기하려 했었다고 한다. 아 드디어 숙소로 돌아왔다. 일단 씻고 옷을 갈아입고 우리 팀원들과 짜파게티를 끓여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우와 웬일로 우리 뿡뿡이 누님(김세화;;)께서 과자를 사준다고 한다. 짜파게티 대신 끓여준 것과 위험할 때 살려준 것(많은 일이 있었다)때문에 보상해주는 것이다. 맛있게 새우깡을 먹고 김샘이 노트북에 무한도전을 받아서 보여주었다. 진짜 무한도전도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보다가 잠이 와서 자버렸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잡초를 뽑지 않고 마늘을 깠다. 너무 손이 아프다. 하지만 우리는 단련된 노동자라서 쉽게 빨리 깔 수 있었다. 까고 숙소 청소를 하였다. 청소를 다하고 배일도 회장님께 훈화 비슷한 것을 듣고 인사를 하고 숙소를 나왔다. 제길 돈이 다 떨어졋다. 하는 수 없이 김세화 가방을 들어주고 시간당 천 원씩 해서 버스비와 밥값을 벌었다. 먼저 4.3 기념관을 가서 구경을 하고 4.3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나와서 버스를 탔다. 그곳은 버스가 3시간마다 한 대씩 온다. 이러니깐 거기 사람이 별루 없지, 그리고 제주시내로 들어왔다. 여기서 또 갈라진다. 터미널 가서 기다릴 조와 제주시내 구경하고 갈 조. 나는 짐꾼이라서 내 의견 없이 가방주인인 뿡뿡이 누나 말을 들어야 한다. 다행이 내 생각과 같이 시내를 도는 걸로 정해서 잘 따라 다녔다. 점심으로 순대국밥을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먹고 터미널 조와 제주시내조로 분리되어서 다녔다. 제주에는 지하상가가 있는데 마산 대현 프리 몰과 비슷하다. 얼마 만에 보는 지하상가인가. 너무 감격을 했다. 그리고 구경하고 배시간이 다되어 가자 터미널로 향하였다. 그리고 마산에 있는 친구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고 배에 올랐다. 이번에 탄 배는 올 때 탄 배보다 훠얼씬 좋은 배였다. 안에 노래방도 있고(가격이 비싸서 포기) 식당도 아주 좋고 게임장과 객실도 아주 잘 되어 있다. 먼저 배에 타서 짐을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전화번호 교환을 하고 롤링페이퍼를 돌렸다. 그리고 사온 컵라면으로 밥을 먹었다. 식당에 물을 뜨러 갔는데 뜨거운 물 하는데 일인당 천 원씩 달란다. 나는 일한 대가로 받은 돈으로 돈을 낼 수 있었다. 내가 제주도 있을 때 꿈을 꾼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가면서 배를 타고 가는데 너무 추워서 완전 몰골을 하고 담요를 덥고 복도에 나와서 노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대로 실현이 되어 버렸다. 너무 추워서 한윤이 형과, 민규, 뿡뿡이 형(김세화)과 미루 누나 다섯 명 이서 밖에 나와서 노숙을 했다. 하다가 김세화 와 한윤이형은 들어가뿌고 우리 세 명은 남아서 놀다가 잠이 들었는데, 거기 관계자 아저씨가 추우면 VIP실이 비었으니깐 글로 가서 자라고 하신다. VIP실에 들어왔다. 이건 뭐 영화에서 나오는 호텔 분위기였다. 나는 그 상태로 소파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잠시 후 설 쌤이 나타났다. 내보고 일어나란 소리가 들린다. 난 덜 깬 상태로 ‘아 뭐야 무슨 일이야. 누가 죽었어?’라고 했다. 진짜 꿈에서 먼일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 잠꼬대를 한 것 같다. 설 쌤이 우리 없어졌다고 야단을 치신다. 잔소리를 듣고 다시 객실로 돌아가서 추위에 떨며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부산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돈을 벌기위해 가방을 2개들고 배에서 내렸다. 와 얼마 만에 밟는 육지 땅인가‘ 이런 생각이 머리에 들었다. 진짜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저번에 제주 갈 때 방향과 반대로 중앙역-서면역-사상역-사상터미널-창원시외버스정류장-택시-사파동민원센터 이렇게 해서 돌아왔다. 먼저 돌아와서 사진을 찍고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켜자마자 내 핸드폰의 패턴 비밀번호를 까먹었다. 겨우겨우 생각을 해내서 핸드폰 잠금을 풀었다. 그땐 정말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 돈가스는 시의원인 노창석 아저씨가 쏜다고 한다. 맛있게 먹고 마산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우리 뿡뿡이 누님차를 얻어 타고 왔다. 짐꾼한 덕분에 돈도 벌고 차도 타고오고 이렇게 해서 드디어 제주도 봉사활동이 끝이 났다.

가서 여러 가지를 느끼고 왔다. 첫째 농부들의 소중함, 감귤 같은 과일들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다 농부들이 정성들여서 잡초를 뽑아주고 벌레를 잡고 그래야만이 감귤 같은 과일들이 나오는 것 이다. 그리고 둘째로 음식의 소중함, 위에서도 말했듯이 금식을 한 번 했다. 덕분에 음식의 진짜 소중함을 알았다. 셋째로 엄마(가족, 친구)의 소중함, 한동안 안보고 살아서 가족들과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넷째로 문명의 혜택의 소중함, 우리는 13박14일 동안 핸드폰, 컴퓨터, 텔레비전 등의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이로 인해 평소에 자주 접하는 기계들과 여러 가지 문명의 혜택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섯째 돈의 소중함, 이번에 제주도에서 뭣도 모르고 돈을 쓰다가 마지막 날에 다 써서 짐꾼일 을 해서 돈을 벌어서다. 이번기회로 돈을 아꼈으면 좋겠다.

이번에 제주도 봉사를 갔다 와서 기초체력도 다져지고 팔과 다리의 근육이 아주 많이 생겼다. 덕분에 힘도 세어지고 육체적 노동의 고수가 되었다. 이제 정신적 노동만 잘하면 완벽 할 수도 있다. 이제 음식물의 소중함과 문명의 소중함, 돈의 소중함을 느꼈으니 그것을 실천할 길만 남아있다.

제주도를 다녀와서

2011. 8. 15. 정 동 민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언제부터인가 무슨 길 무슨 길 하는 게 유행이 됐습니다. 제주 올레길이 히트를 치고 나서부터 너도나도 덩달아 올레길 만들기가 유행하더니 그게 조금 진화해서 둘레길도 생기고 이제는 지자체별로 특색에 맞게 이름을 따로 만들기도 합니다.

마산에도 그런 영향으로 길이 하나 생겼는데 구산면 저도에 가면 비치로드란 길이 있습니다. 풀어보면 바닷가길 정도가 되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비치로드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바다가 저 아래 까맣게 보이기는 하지만 바닷가를 밟을 수 있는 길이 사실은 없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비치로드란 생경한 외국말이 귀에 익숙하지 못한 탓도 있었을 테지만 길 이름과 실제 모양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좋은 길을 걷고 난 보람에 비해 뭔가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깁니다. 명실상부란 말도 있지만 실제를 잘 드러내는 이름을 짓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에 비해 올레길이니 둘레길이니 하는 이름들은 얼마나 편안합니까? 대구 팔공산에 가면 누리길이란 이름도 있다는데 이 또한 잘 지은 이름인 듯합니다. 명실상부한 이름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비치로드란 버터 냄새나는 이름보단 훨씬 정겹지 않습니까? 아무튼 좋은 바람입니다.

△ 우리를 인솔하고 간 경남도민일보 부설 갱상도문화학교 추진단장 김훤주 기자의 사진을 잠시 빌려왔습니다. 홍류동 소리길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이런 절경들이 걷는 이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합천에도 이런 바람을 타고 길이 하나 생겼는데 이름 하여 소리길입니다. 소리길. 어감이 참 좋습니다. 대체 어떤 길이기에 소리길일까요? 소리길은 유명한 홍류동 계곡에 생긴 길입니다. 홍류동 하면 그 유명세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을 별로 타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곳이지요.

보통 사람들은 해인사 입구에 만들어진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해인사를 둘러본 다음 곧장 가야산을 정상을 정복하고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였던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다보니 역시 저도 홍류동을 듣기만 했을 뿐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최치원이 그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탄복해마지 않았다는 홍류동 계곡에 생긴 소리길이라니. 도대체 어떤 길이기에 소리길이라 이름 지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소리길에 들어서자 벌써 가슴이 설레고 귀가 쫑긋거립니다.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물소리였습니다. 길을 걷는 내내 단 한시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물소리. 그래서 소리길이었나 봅니다. 인근 마을에 사는 어떤 이의 대답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계곡길을 걷는 내내 물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으니 그래서 소리길이지요.”

그러고 보니 그랬습니다. 얼마 전에도 경남도민일보 갱상도문화학교추진단을 따라갔던 문경새재 고갯길을 걸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런 소리가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았습니다. 문경새재 1관문에서부터 2관문까지 걸을 동안 계곡물이 단 한시도 곁을 떠난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만큼 홍류동 계곡이 크고 우렁차다는 뜻일까요? 홍류동 계곡은 실로 크고 우렁찼습니다. 우선 계곡을 덮고 있는 바위들의 색깔에서부터 압도적인 느낌이 전해져왔습니다. 소리길을 적당한 사이를 두고 갈라 우뚝 서있는 거대한 암벽들이 걷는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습니다.

물론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길이 여기만 있으란 법은 없습니다. 지리산 뱀사골에 단장된 길에도 물소리가 끊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뱀사골에선 듣는 물소리와 여기서 듣는 물소리는 뭔가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널찍하게 잘 단장된 뱀사골 탐방로에 비해 오솔길 같은 홍류동 소리길의 모양 때문일까요? 그렇습니다. 소리길은 오솔길이었습니다. 구불구불하고 적당히 오르내리는 오솔길. 가는 내내 울창한 숲속에선 상큼한 바람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물소리와 바람 냄새의 절묘한 조합.

원래 소리길은 새로 만든 길이 아니고 오랜 옛날부터 있던 길이었습니다. 어쩌면 나무꾼이나 해인사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불자들이 다녔을 길입니다. 아마도 매우 힘든 길이었을 겁니다. 그 길을 살짝 손 보고 단장하여 사람들이 편하게 소리를 즐기며 걸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소리길이겠지요.

△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홍류동 계곡. 사진은 역시 김훤주 기자의 것입니다.

9월 29일 우리가 소리길을 걷던 날은 마침 비가 내렸습니다. 그런 탓인지 새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설령 한두 마리 새가 우지진다 해도 물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청명한 날에 이 길을 걷는다면 여러 마리의 새들이 우지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물소리와 바람소리, 새소리의 합주가 되는 것이지요.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마을 뒷산에도 소리길 비슷한 게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마산시가 만든 길인데요. 무학산 둘레길 초입(혹은 마지막 코스)에 새소리가 들리는 편백나무 울창한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이 소리는 진짜 새소리가 아니라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기계음이었답니다. 그 기괴망측한 아이디어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지요. 그냥 바람소리에 담겨오는 편백나무의 향긋한 내음만 감상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무튼 홍류동 소리길. 정말 멋진 길입니다. 이름과 실제도 잘 어울려 명실상부하게 소리길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정운현 선생이 내지른 감탄사야말로 이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지를 잘 드러내주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니 합천군, 지금까지 뭐 한 거야!”

여러분도 이 길을 걷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면 정말이지 명실상부란 말을 실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 짐작에 최치원이 신선이 되었다면 틀림없이 이곳 홍류동에서 여러분이 듣는 것과 똑같은 물소리를 들으며 인간의 탈을 하나둘 벗겨갔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농산정에 앉아 홍류동 계곡을 타고 흘러내려오는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 틈엔가 여러분은 신선이 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리 되려면 여러분도 최소한 최치원 선생 정도의 참을성은 있어야겠지요.

속세를 버리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은 아무리 아름다운 금강산을 보고서도 배가 고프면 금방 산을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지는 것이니까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니 합천군은 지금껏 뭘 했단 말이야?

이것은 사실 합천군을 탓하기 위해 한 말은 아니었다. 너무나 감격에 겨운 나머지 순간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온 것인데 바로 홍류동 소리길의 아름다운 절경에 탄복한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낸 정운현 선생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었다.

물론 나도 여기에 얼른 동조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합천군은 지금껏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금강산이 따로 없었다. 실로 그동안의 게으름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정도로 홍류동 소리길은 아름다웠다. 그러므로 한 번 더 행복에 겨운 감탄사를 내뿜고 가도록 하자.

이렇게 멋질 길을 두고 합천군, 지금껏 뭐한 거야?

..... ▲ 홍류동 소리길은 흙길도 좋지만 이렇게 돌로 다듬어놓은 길도 좋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감탄사가 연발되었던 것은 아니다. 해인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해서 해인사 경내를 둘러본 다음 홍류동 소리길을 찾아 내려올 때만 해도 우리는 투덜거렸다. 아니 이게 뭐야. 가도가도 아스팔트 길이잖아. 이게 무슨 소리길?

나중에 알게 되지만, 하지만 그것은 소리길이 아니었다. 진짜 소리길을 걷기 위해선 한참을 더 내려가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런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아스팔트 길 옆으로 펼쳐진 계곡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다만 아스팔트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우리는 그 길이 곧 소리길인 줄 착각을 하고 말았던 것.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다가 주유소를 하나 만났다. 산중에 주유소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바로 그 주유소 뒤편에 펼쳐진 기괴한 암벽이었다. 오, 이거야말로 장관이다!

계곡물은 요리조리 흔들리며 작은 폭포들을 연방 만들고, 그 모양을 거대한 암벽이 우뚝하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때마침 가는 빗줄기가 안개처럼 흩날리며 암벽을 감싸자 신비로운 기운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다시금 입에서 튀어나오는 불평들.

아 이거 뭐야. 주유소에 가려 사진을 찍을 수가 없잖아.

아무래도 주유소가 문제였다. 아무리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구도를 잡아도 그놈의 주유소 어느 귀퉁이 하나가 반드시 문제를 일으켰다. 그래도 오늘 홍류동 소리길 구경은 이 정도로나마 만족했으니 다행이다, 하고 생각하면서 주유소를 지나 내려오는 순간, 엇! 홍류동 소리길 시작을 알리는 팻말이 보인다.

▲ 홍류동 소리길은 하늘로 우뚝 솟은 암벽 틈에 갇혀 떨어지는 폭포수를 감상할 수 있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거기서부터 비로소 홍류동 소리길이 시작되는 거였다. 나무로 잘 다듬어진 구름다리를 건너니 사뿐사뿐한 흙길이 사람을 반긴다. 꾸불꾸불 오솔길이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웅장하게 한시도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아, 이래서 소리길인가보다.

울창한 숲과 숨 막힐 듯 아름다운 계곡과 물소리는 그렇게 어울렸다. 소리길의 끝무렵은 농산정이 장식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홍류동은 그야말로 천하제일경이다. 이곳에 전국 방방곡곡에 흔적을 남긴 최치원이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리 없다. 고운은 어김없이 농산정에도 그 흔적을 새겼다.

내가 사는 동네의 이름도 고운선생이 머물던 월영대가 있다하여 월영동이고,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있던 해운대도 마찬가지로 최치원이 지은 이름이다. 그렇게 하고많은 고운의 흔적 중에 이곳 홍류동이 제일이다. 만약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최치원이 신선이 되었다면 그 장소는 바로 이곳일 터이다.

홍류동 계곡이 아니라면 어디가 있어 최치원이 신선이 될 수 있었을까? 최치원은 홍류동 계곡에 이르러 비로소 모든 번민을 내려놓고 인간의 탈을 벗고 신선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하여 마지막으로 합천군에 한마디만 더 하고 끝내도록 하자.

늦게나마 이리 좋은 길을 만들어주었으니 실로 고마운 일이다.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부설 갱상도문화학교가 진행한 <합천명소 블로거탐방>에 참여한 후 적은 후기입니다. 앞으로도 몇 차례 더 해인사 팔만대장경 천년문화축전과 홍류동 계곡, 합천영상테마파크, 모산재, 합천박물관 등을 돌아본 소감을 적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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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제 포스팅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경남 팸투어에서는 긴긴 밤을 니나노로 지샜습니다. 

무척 피곤했던 저도 그 니나노를 들으며 흥이 났었는데요. 
노래방 기계 없으면 노래 못하는 저로서는 아쉬운 일이었죠. 

그때 결심하기를 앞으로 가끔 노래방에 홀로 가서
가요 연습을 좀 해야겠다, 그러기도 했었죠. 

저로 말씀드리자면,
사실 유행가는 듣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특이한 종족에 해당한답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저들은 노래를 틀고 
저는 시끄럽다고 노래를 끄고 하기를 몇 차례나 반복하지요. 

제가 노래를 아주 안 듣는 것은 아니지만, 취향이 좀 독특해서... 

김추자를 제일 좋아해서 제가 차 끌고 다닐 땐 늘 이 노래를 틀었었죠.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좋죠? 
그 다음, 문주란도 좋아하고, 백지영 노래도 좋아하는데...

대체로 제가 아는 사람들은 이런 노래는 잘 안 듣더군요.
이들 이외의 노래는 그저 소음으로만 들리니, 저로선 고역인 셈이죠.
 
제가 또 취향이 아주 고상해서 클래식 듣기는 아주 좋아합니다만...
비 올 때는 베에토벤도 가끔 듣지만, 모짜르트를 아주 좋아했죠.
경쾌하고 달콤한 그 음률... 그러나 요즘은 이도 안 듣습니다.

아무튼 전반적으로다가 소리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는데요.
감성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그런데 두 번의 팸투어를 하면서 김주완 국장이 노래를 아주 좋아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니나노를 좋아한다는 걸 말이죠.
니나노... 젓가락 두드리면서 부르는 노래 스타일을 우리는 흔히 니나노로 알고 있습지요.
 

경남 팸투어. 모두들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니나노에 열중하고 있다.


정운현 국장님이 그렇게 노래방 가자고 사정을 했건만...
김주완 국장은
"아닙니다. 이렇게 젓가락 장단 맞춰 니나노가 좋잖습니까? 오늘은 계속 니나노로 갑시다"
 할 정도였지요.

니나노를 듣다 담배 피러 잠시 밖에 나와보면 
사방이 자욱한 안개로 포위된 감 밭 속의 집,
가느다란 불빛만 새나오는 창문에서 들려오는 니나노 소리

환상적이었죠.

경남 팸투어. 한쪽에선 신세대 블로거들의 랩? 아무튼 신났다.


그 환상에 겨운 김주완 국장.
상주 곶감팸투어 때도 다시 니나노판을 벌리고 싶었는데...
그런데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경남 팸투어 당시의 정운현, 임마 등 니나노계의 거물들이
이번엔 모두 빠졌기 때문이었을까요?

새롭게 구성된 팸투어 멤버들...
눈치도 없이 술만 축내고 있습니다.




이에 참다 못한 김주완 국장.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자, 우리 이제 그만 니나노로 갑시다. 팸투어는 밤에 이 니나노를 해야 재미도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한곡조 먼저 뽑겠습니다."




갑자기 주먹을 흔들면서 노래를 부르는 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뭔가 중대한 결심을 하고 나온 듯 자못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좌중들...

갑자기 이거 뭔 시츄에이션이여? 하는 반응들입니다.
오른쪽 열 네 분, 바람흔적, 보라미랑, 실비단안개, 이승환 뉴스보이 대표...
모두 심드렁하게 입에 뭘 집어넣기만 합니다.

지민이의 식객님, 뒤로 몸을 제끼고 경청하긴 합니다만...

유일하게 선비님만이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춰주고 계십니다.

"아, 그래도 이 자리를 만들어준 100인닷컴 대표에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이 노래를 부른다는데.
장단 좀 맞춰주자고."




반응이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김주완 선수 열창은 계속됩니다.

보라미랑 : '아, 되게 시끄럽네.'
실비단안개 : '언제 끝나는 거야?'




반응이 별로란 걸 눈치 챈 우리의 김주완 선수... 

이제 온몸으로 열창하기 시작합니다.
이 정도면 거의 발악 수준...  




그러나 결국 이날 분위기를 니나노로 끌고 가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김주완 국장의 열창이 끝났지만 아무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없네요.

'에이, 오늘 감 껍질 먹인 상주한우 소고기를 너무 많이 먹였나? 전부 다 어째 소 여물 씹듯 하고만 있네."

보라미랑: "어이, 한사 이리와봐. 자 우리 술이나 계속 먹자구. 확실히 우리는 아웃푸트 보다 인푸트가 어울리는 사람들이야. 자자 많이 마셔."  




잠시 후 시무룩하게 술을 마시고 있던 우리의 김주완 국장. 어느틈엔가 조용히 사라지고 없더군요. 방에 가봤더니 벌써 이불 깔고 누웠네요. 하긴 이때 시간이 이미 자정이 지났습니다. 니나노가 없으니 술맛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분명히 팸투어 준비물로 노래 3곡씩 가져오라고 사전 통지 했건만, 상주 곶감팸투어 멤버들 대부분이 다큐멘타리파들이었습니다. 그저 날밤 새는 줄도 모르고 다큐멘타리에만 열중하다 새벽 3시 반이 넘어서야 잠이 들었지 뭡니까. 마지막까지 남았던 인물은 네 사람.

보라미랑. 한사정덕수. 크리스탈. 저는 주최측으로서 마지막 최후의 1인이 잠드는 모습을 보고 자야 했기에 남았던 것이고, 크리스탈님은 다 들어가고 나면 상을 치워야 한다나요? 아니 밖에 나와서까지 그렇게 고생하실 필요가... 아무튼 덕분에 제가 좀 편했습니다만.

다음번 팸투어엔 꼭 노래 세 곡씩 준비하도록 합시다. 끝.  
Posted by 파비 정부권
소문 들어 이미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저희들은 경상남도가 주최하고 경남도민일보와 100인닷컴이 주관한 경남팸투어에 다녀왔습니다.
역시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매우 재미졌습니다. 
경남지능형홈 홍보체험관도 볼 만했고요, 감미로운 마을도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가장 인기 있는 관광상품은 단연 김두관 경남도지사였습니다. 

일부 어떤 분들은 경남팸투어가 무슨 도지사 홍보 자리냐 하고 불평을 하면서 경남도민일보를 향해 나무라는 분도 봤습니다만, 참으로 난센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야 자리만 만들어 줄 뿐이지 블로거들더러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분의 주장을 보노라면 블로거들을 대단히 무시하는 경향마저 있어 보입니다. 

블로거들이 무슨 일개 신문사의 배후조종에 놀아나는(혹은 신문사더러 배후조종해야 한다고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하고) 정도로밖에 보지 못하는 그런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에 대해 한 번 논할까 합니다. 사실은 응대할 가치를 못느꼈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 번 할 필요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무튼 그런 분들의 시샘에 불구하고, 김두관 지사는 단연 경남도의 최고 상품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아마도 서울이며, 전라도며, 부산이며, 대전, 심지어 강원도에서 내려오신 블로거들은 김두관과의 간담회가 있다는 사실에 솔깃했을 것이란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떤 블로거는 "경남 최고의 명품은 김두관"이란 제목으로 포스팅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왜 김두관이 경남 최고의 명품이냐, 경남관광에도 최고의 상품이냐 그건 다음에 기회를 봐 한 꼭지로 잡아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허접한 이야기만 하고 물러갈까 합니다. 제가 칠칠맞게도 눈병에 걸려서 오래 글을 쓰지 못하거든요.

이미 앞서 포스팅에서 보여드린 바와 같이 경남팸투어 첫째날, 감미로운 마을에서 실로 감미로운 1박을 보낸 우리는 주남저수지와 우포늪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우포늪에도 명품이 한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여러 분들의 블로깅을 통해 아시는 바와 같이 노경호 우포늪 생태학습관장님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우포늪에 가시면 철새들보다 이분을 제일 먼저 만나셔야 합니다. 그래야 철새며 우포늪이며 그런 것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이분이 제일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이분 안 보고 그냥 오면 우포늪 구경 반밖에 못한 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ㅎㅎ




저는 이분이 처음에 무슨 쪼그려 뛰기 시범을 보이려나 생각했습니다. 위 사진을 보십시오. 우리들에게도 운동을 시키고 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분이죠?




이게 그러니까 물속에 잠겨있던 생명체들이 슬금슬금 기지개를 켜면서 물위로 올라온다 뭐 그런 뜻일까요? 하도 하시는 모양새가 재미 있어서 설명은 귓등으로 흘려들었나봅니다.




이건 무슨 동작일까요? 태고의 기운을 모아 장풍을? 으얍~ 천상천하유아독존장이닷!




태고의 기운까지 다 모아서 블로거들에게 발사하고 있습니다.




진짜 재미있는 분이었는데요. 말씀을 듣고 대충 짐작해보건대 이 정도의 재미진 생태학습관장님이 되기 위해선 필사의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생태학습관의 주 고객이 초등학생들일 텐데요. 그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자연을 알려주기 위해 나름대로 연구한 결과였지요.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 이런 분들이 사실은 대한민국의 미래요 희망 아니겠습니까?




자, 이제 노 관장님의 인솔에 따라 우포늪으로 향합니다.




노 관장님은 특별히 우리 블로거들을 위해 일반적인(상투적인) 코스를 버리고 오솔길을 택했습니다. 엊저녁 먹은 술이 싹 깨더군요. ㅎㅎ

혹시 우포늪에 가시면 입구에서 왼쪽 산길로 해서 이렇게 오솔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돌아올 때 이리로 오는 방법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리로 해서 전망대로 가 전체 조망을 하고 그 다음 늪과 철새를 구경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망대입니다. 철새들이 노니는 우포늪이 시원스럽군요.




전망대에서 내려오는데 이분들 여기서 뭣하시는 거지요? 단체로 모여서 담배 일발장전하고 있군요.  

파비 : "거기서 뭐하십니까?"
임마 : "담배 핀다, 와~"
파비 : "산불 조심하세요."
임마 : "봐라, 여기 공식적인 흡연장소다."




그러고 보니 진짜네요. 공식 흡연장소가 맞습니다. 담배 재떨이도 있고 그렇네요. 이분들 담배 필 기회가 없어서 고생 꽤나 한 표정들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저렇게 흐뭇한 표정들이 나올 수가 없죠.

담배가 그리 좋으세요?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편집국장은 담배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이란 거 아시는 분은 다 아시죠. 마누라는 없어도 담배는 있어야 된다, 이게 그의 신조랍니다. 언젠가 누가 그러더군요. 나 제사 지낼 때는 다른 거 필요없다. 그냥 담배만 한 보루 상에 올려놔라.




그러거나 말거나 철새들은 잘 놀고 있네요.




정말 아름다운 우포늪이었습니다. 김훤주 기자는 늘 소벌이란 이름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빼앗긴 이름 다시 찾을 길 별로 없을 듯싶습니다. 저도 이미 우포늪이란 이름이 익었네요. 우포늪. 우포 이러니까 저도 첨엔 바닷가의 무슨 포구를 연상했었습니다만, 지금은 우포가 우포인 줄을 잘 알고 있습니다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요즘 눈병이 나서 오래 글을 쓰지 못한답니다. 눈을 너무 오래 부릅뜨고 있으면(제가 글 쓸 때 그런 식으로 합니다) 눈알이 마치 자갈밭에 뒹구는 것처럼 꺼끌꺼끌한 게 영 기분이 거시기해서리…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한 1주일 사람들도 못 만나고, 술도 못 마시고 하니 좀이 쑤시고 그렇네요.

모두들 눈병 조심합시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요즘 눈병철도 아닌데 어디서 옮았지? 거 이상하네. 아무튼 한 2주일 고생할 겁니다. 3~4일 후면 오른쪽눈에도 옮길 거고요." 손들 자주 씻으시고요. 위생에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끝.
Posted by 파비 정부권

자, 경남 팸투어 1차 코스 '경남지능형홈 홍보체험관'을 뒤로 하고 이제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감미로운 마을로 떠납니다. MBC 전국시대 피디와 리포터가 따라 붙었습니다. 전국에서 온 파워블로거들의 경남팸투어를 취재하겠다나요. 이분들은 1차 코스부터 감미로운 마을과 다음날 주남저수지, 우포늪까지 따라 다닐 태셉니다.

카메라맨 뒤에 전화 걸고 계신 여자분 보이죠? 제가 차 안에 탄 블로거들 다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이분을 소개했는데요. 글쎄 "MBC에서 오신 분 나와서 인사해주세요" 하고 소개했지 뭡니까. 알고 보니 도청 직원이라네요. 공보관실 소속이라는데 뭐 어쨌든 공보실이나 MBC나 하는 일은 비슷비슷하니까요.

너무 미인이라서 제가 잠깐 MBC로 실수했지 뭡니까. 저는 미인은 다 MBC나 KBS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흐흐~ 미인을 옆에 두고 졸고 계신 분은 서울에서 내려오신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정운현 선생입니다. 요즘 보림재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꽤 잘나가신다고 하더군요. 이분, 이날 밤 벌어진 '니나노판'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셨습니다.  



먼저 양해 말씀 구하겠습니다. 오늘 다큐멘타리가 엄청 깁니다. 손목 운동 미리 하시고, 특히 노약자들 장거리 운행에 주의해주세요. 국민체조라도 미리 하시면 효과 있겠고요. 자, 그럼 불만 없으신 분만 다큐멘타리 들어갑니다.

감미로운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외국인들이 감을 상자에 담고 있군요. 이분들은 외국에서 감미로운 마을 체험을 오신 분들인데 공짜로 숙식 해결해주는 대신에 이렇게 일을 부려먹는다고 하더군요. ㅋ~ 팸투어 운영팀이 사전답사 갔을 땐 코스모스 씨도 따고 그러더군요.


아래 사진 보시면 수염이 멋지게 생긴 외국인 보이시죠? 저분 보니 엑스맨에 나오는 거 이름이 뭐였죠? 네, 울버린, 휴 잭맨이 연기했었죠. 그래서 제가 어설프게 말했어요. "오우, 유 엑스맨, 울버린…! 굿!" 하고 손을 들어주자 이 아저씨 뭔 영언지는 몰라도 대충 알아들었는지 괜히 쑥스러운 미소를 띠며 고마워 하더군요. 

그 옆에 외국인 아가씨들도 오케이, 오케이 하며 제 의견에 찬동의 뜻을 표했구요. ㅋㅋ 




제가 카메라로 그 황송한(어쨌든 저의 콩굴리쉬 내지 바디 랭귀지를 알아들었으므로) 모양을 찍겠다고 달려들자 이렇게 포즈까지 취해주네요. 감 박스를 들고 말이죠. 결과는, 이렇게 감미로운 마을 단감 홍보 사진이 되어버렸습니다요. 뭐 잘된 일이죠. 어쨌든 이번 경남팸투어의 목적 중 하나가 이 감미로운 마을을 홍보하는 것이니까요.  




일단 감미로운 마을 대표님으로부터 간단한 인사와 감미로운 마을의 역사와 문화, 전통, 미래 비전 등 뭐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다음에…, 에, 이건 농담이고요. 아니, 농담이 아닐 수도 있지요. 사실 대표님의 교육내용이 감미로운 마을에 단감나무가 심어진 배경과 과정, 노력, 신품종 개발, 판로 개척, 장래 계획, 이런 것들이었거든요.
 
단감은 수확되면 곧바로 전량 서울, 부산 등지의 대형 백화점에 납품돼 남는 건 하나도 없다는군요. 그래도 이날 우리 블로거들을 위해 단감을 좀 남겨두었답니다. 단감 따는 실습도 하고, 상자에 넣어 집에 가져가 나누어 먹을 만큼은요. 밑에 사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행복한 하루였죠.  




우리의 정운현 국장님. 제일 열심이시네요. 끊임없이 감미로운 마을 대표님을 귀찮게 하고 있습니다. 뭐가 궁금한게 그리 많으신지…. 궁금한 게 많다는 건 오시기 전에 미리 공부를 하고 오셨다는 말씀. 역시 훌륭한 기자답습니다. 그러니까 편집국장도 하셨지. ㅋㅋ

그 옆에 서 계신 블로거님, 열심히 적고 계신데 누구시더라? 얼굴이 잘려서 누군지는 잘 모르겠네요. 얼굴이 제대로 나왔다면 열심히 기록한 공에 대한 대가로 무언가 선물이라도 하려고 했더니만. 아깝게 됐습니다. 어르신들이 쓰는 모자 비슷한 거 쓰고 옆구리에 군바리처럼 두 팔 공가고 계신 분. 한사 정덕수님입니다.

이분은 양희은이 부른 유명한 노래 <한계령에서>를 작사하신 분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분이 쓴 시를 노래로 만들어 양희은이 부른 것이죠. 참고할 것은 우리가 노래방에서 <한계령에서>를 한곡조씩 뽑을 때마다 이분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인다는 사실. 노래방에 가시면 꼭 1번으로 이 노래 불러주셔요.




단감 보관 창고입니다. 창고 문에 그려진 그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누가 그렸을까요?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무언가 강한 메시지, 힘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여러분도 느껴지신다구요? 네, 그러면 여러분의 안목도 보통이 아닙니다.




자, 이제 감 따러 갑니다. 감 따러 가는데도 이렇게 호강하며 갑니다. 모두들 신이 났습니다. 단감 따는 노동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유람 가는 것 같지 않습니까?




보세요, 이분. 감 농장에 들어가자마자 감 수확할 생각은 하지 않고 벌써 입안 가득 먹기에 바쁩니다. 이분이 누구냐면요. <다음>에서 보물로 친다는 미디어 몽구란 블로겁니다. 아직 총각입니다. 올해 아홉수라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젊은 총각임에 틀림없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저에게 연락주세요. 제가 직접 친하게 지내고 그런 사이는 아니니까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이나 거다란님 통해서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요. 성사된다는 보장은 없지만요. ㅎㅎ 아주 쑥스러움을 많이 타고 그런 총각이었는데, 마지막 인사할 때 보니까 또 아주 말을 그렇게 잘하더군요.

너무 과묵해서 아예 말 같은 건 안 하는지 알았거든요. 또 그런 걸 실천하는 분인 줄 알았죠.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블로거는 포스팅으로 말한다!"




대표님의 열띤 단감 따기 교육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경청하고 있군요. 대체로 이번 팸투어 학생들은 범생이들이었습니다. 말을 아주 잘 듣더군요.




사진으로 자기가 먹던 감을 찍어 트위터로 바로 날리는 블로거도 있고요….




앗, 그런데 한창 작업 중에 훼방꾼이 나타났습니다. 김두관 도지사군요.

"아이, 정운현 국장님. 작업복 차림새가 왜 이래요. 이래서야 어디 단감 제대로 따시겠어요?"
"아하, 이거 김 지사님 왜 이러십니까? 고수가 어디 의상 따지는 거 봤습니까? 때와 장소, 복장에 상관없이 실력이 나와야 고수지요. 그러는 김두관 지사님이나 한 번 실력 보여주시죠."




'허허, 나를 우습게 보다니. 혹시 내가 남해 촌놈인 거 까먹은 거 아냐? 저 양반 요새 영 정신이 없어 보이는 게, 상태가 안 좋더라니만.'

사실은 제가 김 지사님에게 물었답니다. "아니, 김 지사님. 어떻게 그렇게 감을 잘 따세요?" 그러자 옆에 있던 정운현 국장이 말했죠. "아이, 이 사람아. 김두관 지사도 촌놈이잖아. 촌놈."

그 말에 김두관 지사도 솔직하게 고백하더군요. "네, 맞습니다. 제가 원래 촌놈 아닙니까. 그라고 저희 집에도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땐 집집마다 감나무 한그루 이상씩은 다 있었죠. 저 촌놈 맞습니다."

김 지사 스스로 "나는 촌놈이요" 학 자백하니 그 솔직함에 정이 더 가더군요. 그런데 진실로 이날 김두관 지사의 감 따는 실력은 수준급이었습니다. 심지어 블로거들을 향해 감은 이렇게 따는 거다 하고 강의(?)까지 해주셨죠.




그런데 확실히 사고는 사곱니다. 단감 따라고 농장 여기저기로 흩어놓은 블로거들, 전부 김 지사 구경하러 몰려들었습니다. 따라는 감은 안 따고 감 따는 김두관 지사만 구경하고들 있습니다.

김 지사 혼자 감 따는데 앞에서 찍고 밑에서 찍도 뒤에서 찍고 옆에서 찍도 난리 굿입니다.  




보십시오. 진짜로 감 따는 거 강의하고 있지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고 감 농장 사장님 앞에서 감 따는 강의 하고 있습니다. 감 따는 강의만 한 게 아니라 단감은 어디서 많이 나고 대봉감은 어디서 나며 경북에는 떨감이 많은데 감의 북방한계선이 요즘은 자꾸 북상하고 있어서 이게 기후변화하고 연관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는 둥…. 

그래도 우리 김두관 지사, 농사에 대해 뭘 많이 알고 계시더군요. 늘 나는 뭘 잘 모릅니다, 참모들이 가르쳐주거나 사람들이 아이디어 내면 그걸 잘 받아서 운영하는 게 제 특기입니다, 하시던 분이 농사 주제가 나오니까 신이 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확실히 촌놈 맞네!  




그런데 이 두 분, 웬 하늘을 그리 멍하니 쳐다보고 계시나요? 혹시 감 떨어지길 기다리시는 건 아닌지요. ㅋㅋ 
그럼 김 지사님, 입을 벌리셔야 되는뎅~




역시 언론인 출신답습니다. 정운현 국장님. 열심히 필기 중입니다.




괴나리봇짐 김태훈님도 열심히 감 따고 있습니다. 대학을 서울로 간 이후 줄곧 서울에만 살고 계신다는데 오랜만에 처가가 있는 창원에 오니 힘이 펄펄 나시나봐요.




부산에서 오신 커피믹스님도 열심이시군요.




바구니에 단감이 한가득입니다. 풍성한 바구니만큼이나 마음도 풍성합니다.



이건 무엇일까요? 네. 여러분 좋아하는 소주 만드는 기계랍니다. 단감으로 소주를 만드는 거죠. 도수는 놀라지 마시라. 무려 75도. 냄새만 맡아도 뿅 하고 홍콩 가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맛이 정말 기가 막혔답니다. 다시 먹어보고 싶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단감와인도 좋지만, 그보다는 이 단감소주가 더 좋았는데요. 문제는 상품화하는 게 어려운 것으로 보였습니다. 한방울 한방울 이슬을 모아 만드는 술이 곧 소주란 놈인데 이 단감소주의 맛을 유지시키기 위해 보통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는 게 아닐 테지요.

만약 양산화에만 성공한다면? 대박 날 게 틀림없다고 제가 장담합니다. 우선 제가 매일 이 술만 찾을 거고요.




임마님이 김두관 지사와 단감소주로 건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건배 파트너를 잘못 고르신 거 같습니당~ 임마님, 술맛 잘 모르거든요. 술맛은 제가 잘 아는데, 흐흐~




우리가 수확한 감을 선별하는 작업입니다.




"아부지~ 감~~~ 굴러~~~~ 가~~~~~~ 유~~~~~~"




진짜로 감이 막 굴러내리네유~ 이게 그러니까 무거운 놈은 저 앞에서 미리 굴러떨어지고요. 가벼운 놈은 맨 마지막에 굴러떨어지고, 뭐 그런 식으로 선별하는 모양이네요.




이제 선별된 단감을 상자에 담는 작업을 합니다. 김두관 지사와 김주완 편집국장이 작업하고 있습니다.  





김두관 지사,
'제가 먼저 작업 끝냈습니다. 김주완 국장, 저보다도 더 젊은 사람이 일 대개 못하네요.'

물론 이건 속으로 한 말입니당~ " " 하고 달리 ' ' 속의 말은 모두 마음속으로 하는 말이란 거 학교 때 모두 배웠겠지요? 맞나? 아무튼 대충 넘어갑시다요.  




"자 제가 포장한 감은 부산에서 오신 커피믹스님에게 선물!"

아, 역시 정치인이라 실세를 금방 알아보는군요. 커피믹스님은 우리 100인닷컴에서도 실세 중에 실세지요.




우리 김주완 국장도 충청투데이 실세에게 선물하고 있네요.
이분은 충청투데이 홍미애 기획실장으로 <따블뉴스>를 만들었으며 <IN 대전>이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답니다.




남자들만 75도 소주 먹을 줄 아나 어디? 우리도 먹을 줄 안다. 그런데 자기는 안 마시고 김 지사가 진짜로 마시나 안 마시나 감독하고 있는 폼새.

참고로 김두관 지사는 소주 주량이 댓병 하나랍니다. 요즘 도수로 말하면 한 열다섯 병 정도는 마신다는데요. 물론 젊을 때 이야기고요. 나이가 몇인데 이젠 자제하셔야죠? 안 그래도 술 줄이기로 약속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뒷풀이에서 보니 주는 잔 거절을 못하더군요. 그걸 또 꼴딱꼴딱 다 마시고요.  




단체사진도 한 장 찍고…




단감 따기와 단감와인 만들기 체험이 끝나고 농장 안 식당으로 옮겨 <김두관 지사 대 블로거 간담회>에 들어갔습니다.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완전 청문회장 같습니다.


 

김두관 지사의 표정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 이거 오늘 이것들이 뭔 곤란한 질문을 할지 상당히 긴장되는데. 조심해야겠어. 이 앞에 우리 강병기 정무부지사가 블로거 간담회 갔다가 케이오 펀치 맞았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래서 그런지 강 부지사가 요즘 영 상태가 안 좋더라고. 데미지가 컸던 게야. 조금 전에도 절대 조심하라고 강 부지사한테서 문자가 왔었단 말이야. 음~'




'어, 그런데 그게 아니네? 이거 왜 이러지?'

책 리뷰를 전문으로 하는 블로그 <흙장난의 책 이야기>를 운영하는 흙장난님이 김 지사에게 도정에 참고하라며 책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장하준 교수가 쓴 <김두관 도지사가 알아야 할 스물세가지 이야기>? 저도 확실히 잘 모르겠네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흙장난님이 사비로 책을 사서 선물한 건 확실합니다.  




어라, 내가 질쏘냐. 이번엔 괴나라봇짐님이 자기가 직접 쓴 책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소리바다는 왜?> 아주 재미있는 책입니다. 저도 지금 읽고 있는데요. 한국의 IT산업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책이며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김두관 지사가 정독해서 열심히 읽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럴 시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각설하고~

'어라, 이거 분위기 꽤 괜찮은데? 괜해 걱정했어. 오늘 아주 잘 왔군. 누가 짰는지 멤버 구성이 아주 좋아. 블로거들 면면을 보니 인물들도 상당히 좋고. 음~ 역시 나는 우리 부지사보다는 운이 좋은 사람이 분명해.'

김두관 지사. 속으로 꽤나 흡족했을 듯싶습니다. 어쨌거나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책을 두 권이나 공짜로 얻었는데요. 게다가 한 권은 저자가 직접 싸인까지 해서 말이지요. 문제는 책을 꼭 읽어야만 할 것 같다는 괴로운 사실인데요. 사실 책 읽는 거 좋아하는 사람도 별로 없지 않습니까?




"아무튼 오늘 기분 매우 좋습니다. 여러분. 기분 좋게 한 잔 합시다. 블로거들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건배~"




"아 거기 커피믹스님. 딴짓 하지 마시고 건배 합시다. 누가 블로거 아니랄까봐. 아이고, 우리 한사님도 한 잔 하시죠. 자~"  




"김 지사님. 밥 맛 좋으시죠?" 
"아, 그럼요. 정 국장님도 공짜로 책 선물 받고 해보세요. 얼마나 기분 좋은가. 그러고 보니 그런 경험 한 번도 없으신 모양이군요. 좀 기다리세요. 제가 담에 책 한 권 내면 그때 싸인 해서 공짜로 드릴 테니까"  




역시 우리 김두관 지사는 촌놈이 확실합니다. 마지막으로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주신 아주머니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고맙다고 악수를 한 다음 단체사진 한 장 콱.

촌놈의 최대 장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의를 안다는. 진짜 예의를 갖추어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잘 구별할 줄 안다는 그거 아니겠습니까?

이날 김 지사는 아주머니들엑 최고의 예의를 선물했습니다. 아주머니들도 무척 기뻐했고, 도지사와 기념사진까지 찍었다는 사실에 더없이 흡족해 했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하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김두관 지사는 예정에 없이 뒷풀이 자리에까지 떠나지 않고 남았습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캠프파이어 비슷한 것을 했는데 연기가 희한하게 김 지사 앞으로 계속 날아가는 바람에 눈물을 삼키고 있더군요. 참 무던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그걸 아무에게도 말도 못하고 눈물만 찔끔찔끔 흘리고 있었으니까요.

보다 못한 제가 가서 자리를 바꾸어 주었습니다. 저는 사실 뒷치닥거리를 하느라 김 지사의 그런 딱한 사정을 보지 못했습니다. 진즉 알았더라면 더 일찍 자리를 옮겨 드리는 건데…. 아무튼 다시 한 번 리바이벌이지만, 김 지사는 매우 순박한 시골 촌놈이 확실했습니다.


각박한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갖지 못할 순수함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사실은 제가 촌놈 출신이라서 촌놈예찬론을 펴는 건지도 모릅니다만. ㅎㅎ




경남팸투어 첫째날은 이렇게 저물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아래 이것입니다. 술상이 없어서 제가 임시로 감박스를 가져다 깔았습니다. 워낙 시골이라 술잔도, 젓가락도 구할 길이 없어서 우왕좌왕 하다가 대충 때웠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불평없이 즐겁게 놀아주신 블로거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특히 정운현 국장님의 니나노는 압권이었습니다. 김주완 국장과 임마님도 대단했고요. 우리 김주완 국장님은 그러시더군요. 다음번 팸투어 기획할 때 심야계획엔 꼭 니나노를 넣어달라고요. 하하.




다큐멘타리가 너무 길어서 죄송합니다. <THE END>
Posted by 파비 정부권
며칠 전, 10월 20일이었군요. 함양 마천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함양읍을 거쳐 구비구비 고갯길을 두 번 돌아 올라가면 이렇게 지리산제일문을 만나게 됩니다.
이 고갯길에 올라 잠시 차를 세워두고 지리산제일문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날이 두 번째 만나는 문입니다. 
처음 만났을 땐 그렇게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 대자연에 웬 어울리지 않는 인공의 구조물이람! 

그러나 두 번째 만나니 그 생소한 불쾌감도 덜합니다. 
저 인공석조물도(석조물인지 콘크리트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세월의 옷을 입게 되면 나름 볼품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문제는 세월의 옷을 입기도 전에 육신이 썩어문드러지는 불상사가 없기를 빌어야겠지요.   




지리산제일문을 넘어서면 웅장하게 늘어서있는 지리산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리산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깁니다.
지리산이란 이름을 느낄 수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죠.

제가 처음 이 고갯길을 넘을 때, 마침 보름달이 둥그렇게 떠있었습니다.
그 달빛 아래 지리산이 지다랗게 펼쳐져 있었죠.
그때 함께 차를 타고 가던 함양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는 김현태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야야, 저 지리산이 와 지리산인 줄 아나?"
"글쎄요."
"우리 어무이 말씀이 그라시는기라. 달리 지리산이 아니고 저렇게 지다랗게 펼쳐져 있으니 그래서 지리산인기라."

그리고 자세히 보니 역시 그랬습니다. 지다랗게 펼쳐진 지리산.
장관이었습니다.
아마도 다시는 그날의 지리산을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보름달을 상들리에처럼 달고 지다랗게 늘어선 지리산은 일품이었습니다.

이 고갯길 아래 터를 잡고 사는 어느 분도 이날 제게 그렇게 물었습니다.
 
"야, 니는 지리산이 와 지리산이라고 생각하노?"
"글쎄요."
"봐라. 저렇게 지다라니까 그래서 지리산 아이가." 

이날은 지다란 지리산을 느끼기엔 별로 좋지 않은 날씨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웅장한 지리산이 지다랗게 늘어서서 흘러가는 모습을...




운전을 해주시는 분은 우리 동네 형님입니다.
사실은 운전을 해주는 게 아니라 제가 옆에 타 준 것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겠습니다.
이분이 이날 너무 일이 하기 싫어 하루 땡땡이를 치는 데 제가 공사다망함에도 불구하고 따라 나섰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시지만, 이렇게 하루를 신나게 놀고 나면...
다음날 할 일이 무척 많아집니다. 한마디로 피곤해지죠.
그러나 좋았습니다. 이런 대자연 속에 파묻혀 살 수 있다면 더 한 행복이 없겠다 싶습니다.

마천면 소재지에서 비빔국수를 먹었습니다.
저는 역시 맛있는 블로그가 아니라 그런지 그 사진은 못 찍었네요.
정말 맛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반찬이 모두 산나물이었다는 겁니다.
아, 고추장 넣고 쓱쓱 밥 비며 먹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혹 가시면 드셔 보시지요.
국수 시켜도 평소 구경도 못하는 산채나물이 엄청 많이 나오니... 역시 산골인심이 좋습니다.
얼마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돈을 이 마을에 사시는 아는 형님이 대신 내셨거든요. 
이분 원래 마산이 토박이인데... 이곳에 들어온지 서너 달 됐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나이가 한 5년은 더 젊어졌군요.
주름살도 펴지고, 얼굴에 화색도 돌고, 무엇보다 표정이 무척 밝습니다.
지리산 공기가 사람의 주름살도 펴주는 다림질 효과도 있나봅니다.
 



위 사진은 지리산에 사는 두 형님과 함께 간 우리 동네 형님과 함께 칠선계곡에 올라간 모습입니다.
비빔국수를 맛있게 먹고 난 다음 곧장 마천면에 있는 칠선계곡으로 간 것이죠.
우리가 관광을 간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구경시켜 주겠다는데 거부할 수도 없었죠.

그런데 올라서니 실로 장관입니다.
저 아래 칠선계속이 보입니다.

이 마을에 사시는 형님이 그러시는군요.

"봐라. 저게 우리나라 3대 비경이라. 멋지지 않나."

제가 3대 비경 뭐 이런 거는 잘 모르지만, 그냥 1대비경이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메라 탓은 아닙니다만, 사진으로는 도저히 직접 본 그 맛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대개 사진이 더 멋있게 나오는 법인데, 이 경우는 완전 그 반댑니다.
사진으로 보니 이날 보았던 비경이 절대 다가오지 않는군요.

안타깝습니다.




칠선계곡은 저 깊은 지리산 어느 곳으로부터 시작해서 수십킬로를 이렇게 흘러갑니다.
저기 보시는 것은 그 중의 짧은 어느 한 구간입니다.
우리는 저 아래 보이는 칠선계곡 깊은 곳까지 내려가보았습니다만, 아쉽게도 그 사진은 남기지 못했습니다.
카메라 밧데리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 이 몹쓸 게으름이여. 그러게 평소에 충전을 잘 시켜놓았어야지.

아무튼, 위에서 내려다본 칠선계곡의 풍광도 일품이었지만...
내려가 직접 계곡에 안겼을 때 우리를 둘러싼 계곡의 아름다움이란...
실로 '필설로 형용하기 어렵다'는 말은 이때 써야하는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칠선계곡으로 내려가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때 이후로 카메라는 더 이상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제 어깨근육만 괴롭혔습니다.
이렇게 꾸불꾸불 내려가는 길도 너무 좋습니다. 
힘들지도 않습니다. 마치 산보하듯 그렇게 가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작은, 아주 작은 마을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사실은 마을이라 하기도 좀 그런, 그렇게 작은 마을입니다.
너무나 아담한 마을은 또 너무나 정겹습니다.
이곳에서 막걸리를 한 사발 시켜 먹었는데, 안주는 그냥 김치였습니다.  

그런데 주인 아주머니가 풋풋한 고추를 밭에서 직접 따다 주시는군요.
아, 밭에서 갓 나온 고추의 이 향기로운 맛...
그것도 보여주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온통 담쟁이 넝쿨로 치장한 담배건조장도 있었고요. 
아마 도시가 아니라도, 시골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그런 풍경이었습니다. 
아참, 마을 이름은 두지터라고 하더군요. 두지터라~

이 이름에도 깊은 사연이 숨어있었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마을을 지나면 곧 칠선계곡의 품입니다. 
칠선계곡 가는 길이 마치 으슥한 밀림의 한 귀퉁이를 지나는 느낌입니다. 
반달곰을 조심하라는 팻말을 보니 오싹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제가 겁이 좀 많습니다. 
미리 마음속으로 곰을 만났을 때 주의사항을 되뇌어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11월 15일부터 내년 2월 15일까지는 이 계곡에 들어가실 수가 없습니다. 
말씀드린 으슥한 밀림의 가운데에 커다란 나무문이 하나 있는데... 
그게 11월 15일 닫힙니다. 

물론 감시원도 지키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 아름다운 칠선계곡의 풍광을 담기 위해 조만간 한번 더 가기로 했습니다. 
아마 11월 2일이나 3일쯤 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때 혹 날씨가 좋다면 지다란 지리산을 찍어서 여러분께 선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때쯤에는 이 지리산도 단풍들이 온통 붉은 옷을 입혀 벌겋게 타오르고 있을 테지요.  
기대해보시지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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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 칠선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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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나무실 마을에서 노가다도 하고, 술도 먹고, 상금도 받고

지난주에 김훤주 기자의 안내로 서정홍 시인 댁에 다녀왔습니다. 서정홍 시인이 사는 곳은 합천군 가회면  목곡리입니다. 목곡리는 우리말로 나무실 마을이라고 합니다. 꽃이 흐드러진 산골마을을 기대했지만, 아직 꽃이 활짝 피지는 않았습니다. 기온 탓입니다. 이제 마산, 창원에 꽃이 피고 지기 시작했으니 지금쯤은 온통 꽃대궐이겠군요. 

황매산 모산재


5월 초에 황매산에서 철쭉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그때면 산이 온통 붉은색 천지겠지요. 아, 그러고 보니 서정홍 선생님 댁 뒷산이 황매산입니다. 그 황매산 입구에는 모산재가 떡하니 병풍을 펼쳐놓고 있는데요. 가히 금강산이 따로 없습니다. 요즘 금강산 관광도 안 되는데 굳이 금강산이 보고 싶으신 분은 이리로 오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전 10시에 도착한 우리는 김훤주의 기자의 인솔에 따라 옷을 갈아입고(저만 갈아입었네요) 감나무 밭으로 작업을 나갔습니다. 저는 그냥 꽃놀이 가는 줄 알았는데 가는 차 안에서 일을 안 하면 밥도 안 주고 술도 안 준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나무 밭에 도착하니 감나무들이 팔을 벌리고 "어서 이리 온" 하면서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듯했습니다.

감나무 벗기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서정홍 시인, 그 옆이 범털씨, 김훤주 기자.


우리가 할 일은 감나무 껍질을 벗기는 일이었습니다. 감나무 껍질을 왜 벗기느냐고요? 아, 그렇군요. 실은 껍질을 벗기는 게 아니라 껍질에 기생하는 벌레를 긁어내는 일이었습니다. 벌레를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 긁어낼 수 없으니 그냥 밑동에서부터 가지까지 다 긁어 벗기는 것이지요. 농약을 안치니 이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수확을 거둘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을 어른들은 "아이고 서 선생, 그저 약 한 말만 치면 될 걸 갖고 고생하시네" 하며 걱정들을 하신다지만 서정홍 선생님은 이게 좋답니다. 감나무를 긁고 있노라면 나무들이 "아유 시원하네, 그래 그래 거기,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마치 등이라도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처럼 고마워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저도 긁어보니 나무들이 시원하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12시가 조금 넘으니 선생님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립니다. 우리는 눈치로 이제 점심시간이구나, 하고 알아챕니다. 배가 고프면 눈치도 느나 봅니다. 사모님께서 밥 먹으로 올라오랍니다. 서정홍 선생님의 부인은 마치 교무실에서 종을 치는 초등학교 선생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오후 4시가 되자 다시 어김없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일마치고 올라오라고요. 

사모님과 서정홍 선생님. 단지들은 송화차. 판매도 하는데 일단 무쟈게 좋은 건 확실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노동 후에 먹는 밥맛은 정말 꿀맛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고 난 논두렁에서 마시는 막걸리 맛도 꿀맛이지요. 이날 저녁 술맛도 정말 맛있었습니다. 준비해간 안주가 조금 질기긴 했지만, 술맛이 워낙 좋다보니 참을 만 했습니다. 술은 물론 소주와 맥주였습니다. 둘을 적당한 비율로 배합해서 마셨는데 밤이 새도록 술이 취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더욱 좋았던 것은 함께 간 일행 권범철 기자―김 기자는 범털이라고 불렀고, 나도 그 이름이 더 마음에 든다. 그는 현재 기자를 그만두고 장편기록만화 창작에 몰두하고 있단다. 그러니 권 작가라고 부르는 게 맞겠다―의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으면서 그러는 유머였습니다. 그는 즉석에서 스무고개를 만들어 우리를 재미있게 해주었습니다. 막판에 이길 뻔도 하다 지는 바람에 기분이 좀 안 좋기는 했지만.

나무에 붙은 벌레와 알집, 기생충처럼 생긴 것들도 기어 다녔다.


뭐든 지는 것은 기분이 안 좋습니다. 더구나 친선게임도 아니고 만 원짜리 돈을 걸고 했으니. 그런데 알고 보니 "막판에 이길 뻔 하다가"는 착각이었습니다. 문제를 낸 사람의 농간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문제는 "이 여행의 찬조금을 모금한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었는데, 결국 나중에 문제의 답은 영 엉뚱한 곳에서 나왔습니다. "똑같은 화분을 사서 한 달간 키워 크게 키운 사람이 돈을 적게 내는" 것이었다나요?

아무튼 저는 돈 만 원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본전은 찾았습니다. 이 게임은 무려 세 시간이 넘게 진행됐는데, 중간에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삼행시 게임을 했습니다. 거기서 1등을 하면 상금이 만원. 삼행시의 시제는 찬조금. 그때 저는 안 돌아가는 머리를 짜내느라 고생을 해서 그런지 배가 몹시도 아팠습니다. 그래서 잠깐 화장실에 다녀와서 삼행시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삼행시라. 완전 옛날 통시 모양으로 특수 제작된 화장실에 가만히 앉아 있자니 이순신 장군 생각이 났습니다. 마침 멀리서 뻐꾸기 우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립니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지. 제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자 즉시 삼행시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했습니다. 제가 두 번째. 맨 먼저 삼행시를 시작한 권 작가. 어설픕니다. 준비가 안 됐나보다. 다음은 제 차례.

사람들이 "찬!" 하고 외쳤습니다. 

찬조금 생각에 머리는 지끈거리는데

어라? 이거 시작이 보통이 아닌데? 이거 게임 끝났구먼, 하고 사람들이 말하자 저는 진짜로 으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휴, 다행이다, 다들 별 준비가 없나보다, 이런 걸 가지고 보통이 아니라니. 게임은 어쨌든 이겨야 기분이 좋습니다. 다시 사람들이 "조!" 하고 외쳤습니다.

조롱하듯 울어대는 저 뻐꾹새 소리

사람들이 "와, 진짜 끝났다" 하고 외쳤습니다. 흐흐, 이럴 수가. 역시 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태양이요 역사의 면류관이 확실해. "야야 볼 거 없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들어보자."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외쳤습니다. "금!"

금일 안에 못 맞추면 너희들은 쪽박 차리              ** 원래는 '못 맞추면'은 '단서를 못 찾으면"이었음.

왼쪽은 밥 먹으러 올라가는 사진, 오른쪽은 서정홍 선생님 집 들어가는 입구.


박수와 함께 1등은 제가 차지했습니다. 뒤에 두 사람은 그냥 포기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스무고개 때문에 하도 인상 쓰고 있으니까 불쌍해서 그런 건지는. 아무튼 저는 본전치기를 하자 몹시 기분이 좋았습니다만, 혼자서 거의 스무고개를 다 넘은 권 작가에겐 슬며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어찌 되었거나 저는 이순신 장군 덕분에 쪽박은 면했습니다. 거기다 등단까지. 일단 어떤 대회든 입상하면 등단으로 쳐주는 거 아닌감~ ㅋ ^.^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예능 프로를 열심히 봐야지. 그래서 다음엔 꼭 스무고개를 다 넘기 전에 무슨 답이든 다 찾아야지."  
Posted by 파비 정부권
작년에는 진해 벚꽃장을 다녀왔습니다만, 올해는 가지 못했습니다. 지난 주말이 절정이었지만, 그때는 다른 일로 바빴습니다. 그런데 화요일이 마침 아이 학교 개교기념일이라 쉬는 날이라고 해서 함께 진해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출발하기 전에 우리 집 앞 창원천 변의 벚꽃을 다시 찍어보았습니다.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앞에 이곳 사진을 몇 장 포스팅했었지요. 활짝 피기 전 과 핀 사진을 찍어서 올렸습니다만, 오늘은 꽃이 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목련은 완전히 떨어지고 푸른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했군요.  


진해여고 앞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이곳도 벌써 꽃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날은 바람도 무척 심하게 불어 꽃잎들이 마구 떨어지고 있었는데 추풍낙엽이 아니라 춘풍낙화였습니다. 낙엽은 생을 마치고 쓸쓸하게 퇴장하는 모습이지만, 낙화는 생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라 낙화란 표현보다는 다른 말을 써야 할 듯싶군요.

그럼 뭐가 있을까요? 춤출 무를 써서 무화? 에이, 그것도 아니군요. 그냥 낙화로 가죠. 화무십일홍이란 말도 있으니 그에 맞추면 낙화가 더 어울릴 듯싶네요.


진해여고 앞 벚꽃길이 시작하는 곳에 이런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요. 읽어보니 진해에 벚꽃을 심은 유래는 일제 해군이었는데, 이유는 그들의 생명경시사상과 닮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생명경시사상? 아, 가미가제를 말하는 것이구나, 웬 생명경시사상을 좋아해 벚꽃을 심었나 했네요. 

생명경시사상이란 다름 아닌 자기 목숨을 버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친다, 뭐 그런 의미였겠죠.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일본군에 자원하면서 지원서에 그렇게 썼다죠? "사쿠라처럼 살다가 사쿠라처럼 죽겠습니다." 그는 정말 사쿠라처럼 살다 사쿠라처럼 죽었을까요?

해방 이후 벚나무가 일본의 나라꽃이라 하여 주민들이 부러뜨리기도 하고 베어 불쏘시개로도 쓰고 해서 일제가 심은 10만 5천여 그루의 벚나무들이 모두 사라졌으나 1960년대에 다시 도시정비를 하면서 가로수로 벚나무를 정하여 심은 것이 오늘날의 진해 벚꽃장을 만든 것이라 합니다. 

당시 가로수로 벚나무를 정한 것은 왕벚나무의 원래 원산이 제주도임을 한국의 식물학자들이 밝혀내었기 때문이라 하는데 빨리 자라고 별다른 병충해가 없는 점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현재 35만여 그루가 진해에 자라고 있다고 하네요.


벚꽃 아래 잘 정비된 개울에 핀 노란 유채꽃이 장관입니다. 연분홍빛 벚꽃과 잘 어울리네요. 개화시기도 같고, 이런 걸 뭐라고 하지요? 저는 무식해서 금상첨화란 말밖에 안 떠오르네요. 그러나 금상첨화는 적당한 비유가 아닌 것 같고요.

서로 잘 어울리는 조화에 빗댄 적절한 비유가 없을까요?


진해여고에서 시작해 죽 뻗은 길이 한참이었습니다. 저는 잠깐 올라가면 끝인 줄 알았더니 벚꽃과 유채로 닦여진 터널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유채꽃 뒤로 반짝이며 개울 위를 흘러가는 벚꽃잎이 보입니다.  


위로 올라가니 아직 벚꽃이 완전히 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동네인데도 100m 아래와 그 위 북쪽의 차이가 이와 같습니다.  


진해여고 벚꽃길 끄트머리에 있는 환경생태공원입니다. 우연히 진해의 대표 블로거 실비단안개님을 만났는데 이곳을 꼭 가보라고 강권해서 들어왔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은 꽃만 보다가 옆에 이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뻔 했습니다.

진해 사람들이 왜 마창진 통합 논의가 있을 때―어이구 이거 또 마창진이라고 했다가 민언련의 어떤 분으로부터 창마진이라고 안 했다고 비판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언련이 무엇 하는 곳인가 했더니 정부에서 창마진으로 부르기로 결정하면 그렇게 부르도록 계몽하는 곳이었나 봅니다. 하긴 뭐 저는 경남도민일보도 아니고 그냥 개인 블로거에 불과하니까―마산은 거지 같다고 통합대상에서 빼자고 했는지 알 거 같습니다.

아무튼 진해가 마산보다는 살기가 좀 낫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저수지(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아래의 번호표를 하나씩 돌리는 겁니다. 한 바퀴 돌면 1, 두 바퀴 돌면 2, 이런 식으로요. 꽤 좋은 아이디어네요.


호수변에 누군가가 그림, 아니 사진인가? 어쨌든 전시를 해놓았네요.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비닐을 씌워 놓았습니다. 그래도 감상은 잘 했습니다. 풍경도 좋고, 그림도 좋고, 모든 것이 좋습니다.


여름에도 시원하겠습니다. 마산시내에도 이런 곳이 있다면 늙어죽을 때까지 떠나고 싶지 않을 텐데. 사실 한때 그런 말이 유행했습니다. 친구들끼리 술자리에 앉으면 이런 말들이 인사인 때가 있었지요.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대부분 아는 친구들은 거의 창원에 다 사니까.  

"너 아직도 마산 사나?"


물이 좋아 물가로 휘어진 나무인가 봅니다. 그 나무 앞에 포즈를 취한 친구는 제 아들입니다. 이 녀석이 어릴 때는 꽤나 시적 감수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함안 군북의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적벽은 아니라도 그 비슷한 절벽 아래 차를 세워두고 그 높이에 감탄하며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절벽은 바위 틈새 이곳저곳에서 물이 새듯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는데요. 이제 갓 네 살을 넘긴 아들 녀석이 말문을 뗐습니다. "바위가 엄마 보고 싶어서 울고 있나." 저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녀석이 정말 시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답니다.  


또 우리 집에 걸린 그림 중에 북한 인민화가 정창모가 그린 것으로 믿고 있는 금강산 그림 한 점이 있는데요. 이 그림에는 운무 위를 날고 있는 세 마리의 새가 그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에게 "저 그림에 새가 몇 마리냐?" 하고 물어보았지요. 나름 셈을 가르친답시고 그런 것이었는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99마리."


저는 깜짝 놀라서 "아니 99마리가 어디 있단 말이냐? 여기 세 마리밖에 없잖아." 그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나머지는 구름 속에 들어가서 안 보이는 거야." 아 그렇구나, 나는 왜 구름 속에 숨은 나머지 새들을 보지 못했을까? 그러나 여러분, 이제 아들의 눈에는 새가 세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답니다.

물론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 흘리는 바위도 없습니다. 시인 같이 생각되던 어린 아이는 이제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승호딕플 사내라고 조르고, 말은 뒤지게 안 듣습니다. 시는 고사하고 책 한 줄 읽기를 최영장군이 황금 보기를 돌보듯 하니, 이거 원.


꽃터널, 사진사들은 꽃들이 만드는 장관을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누릅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사진사는 허리가 아픈지 가끔 허리를 돌려가며 다시 뷰파인더에 눈을 같다 대고 구도를 잡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한 차례 바람이 일기라도 하면 꽃잎들은 사방에 휘날릴 것이고 그때가 사진사에겐 셔터를 누를 최고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저렇게 한곳에 진을 치고 셔터를 누를 기회를 기다릴 만큼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넉넉하지 못합니다. 어떨 땐 그런 사진사들을 보며 태공망을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는 160년을 살았는데 후 80년을 위해 전 80년은 그저 낚싯줄만 드리우고 세월을 낚았다고 합니다.

그게 진짠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 흉내 내다간 속 터져 죽을 거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아무튼 꽃구경은 참 잘했습니다. 진해여고 앞만 한 바퀴 도는데도 하루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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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해시 여좌동 | 진해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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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 사람!

여수에 다녀왔습니다. 저로서는 생애 두 번째로 여수에 갔던 것입니다. 사실 제가 여수에 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경상도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저도 경상도, 아니 제가 살고 있는 마산, 창원 땅을 벗어나 멀리 떠나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여수엑스포 팸투어 선상에서 블로거들. 오른쪽 두 번째는 여수시민 임현철님.


이러할진대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분들을 보면 몹시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내 나라 땅도 제대로 밟아본 곳이 손에 꼽을 정도인데 남의 나라 땅까지 다니는 분들을 보면 부럽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역시 남의 나라 땅보다는 내 나라 땅을 여행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소리냐고요? 그러나 저는 알 것 같습니다. 특히 여수에 가서 그걸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있었습니다. 해외여행에서는 절대 느끼고 맛볼 수 없는 것들이 여수에는 있었습니다. 바로 말이 제대로 통하는 정겨운 사람과 혀를 즐겁게 해주는 음식이었습니다.

물론 여기까지는 저의 헛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여행의 진미를 잘 아시는 독자라면 틀림없이 제 헛소리에 박수까지는 아니라도 고개 정도는 끄덕거려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실 겁니다. 네, 훌륭한 경치에는 반드시 감미로운 맛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도 있잖습니까? 아, 이건 진짜로 헛나온 말이었습니다. 실수~ ㅋ

역시 먹는 걸 좋아하는 내겐 여기가 최고. 여수 풍물시장. 값도 엄청 저렴해 깜짝 놀랄 정도.


여수는 그야말로 여행의 3박자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아름다운 경치, 맛깔스런 음식, 그리고 그 경치와 맛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사람들, 이 세 박자가 잘 어우러진 여수는 진짜 여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뭔가 사연이 생길 것 같은 이름을 가진 도시 여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여수를 흔히들 예향이라고 말합니다. 예향,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고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고을'이란 뜻입니다. 하긴 전라도 치고 예향 아닌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라도는 집집마다 그림 한 점 안 걸어놓은 집이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허름한 시골의 다방이라도 산수화나 꽃 그림, 글씨 한 점 정도는 꼭 걸려 있습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 의견이긴 합니다만, 심지어 전라도 사람들은 말소리조차도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합니다. 그들의 대화를 듣노라면 마치 잘 빠진 창 한 자락을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들의 억양엔 시적 운율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서편제와 동편제가 모두 전라도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남도의 구석구석이 모두 예향인 것입니다.

향일암에서 내려오다 만난 그림 그리는 아저씨.


그 가운데에서도 "여수를 예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양한 문화예술의 인적자산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양한" 이란 문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수는 전통적인 문화예술의 인적 자산뿐만 아니라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문화예술의 인적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고장입니다. 그 대중적인 자산 가운데 왕년의 영화배우 박노식과 백일섭도 들어 있습니다.  

백일섭은 현재 여수엑스포 홍보대사라고 하는군요. 게다가 8, 90년대의 암울했던 젊은 시절, 칙칙한 지하 만화방에서 그래도 살아있는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던 허영만 화백이 태어난 곳도 여수입니다. 여기에 세계가 인정한 소나무 사진가 배병우의 예술세계도 있습니다. 이처럼 전통과 현대의 문화예술이 잘 어우러진 그런 곳에서 엑스포가 열린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어떤 훌륭한 사람들보다도 여수를 사랑하는 평범한 여수시민들이 저는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수에서 만난 여수사람들은 정말 열정적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멀리 경상도에서 여수엑스포 팸투어를 위해 왔다는 저를 위해 30여 분 가까이 설명을 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스스로 여수엑스포 홍보대사라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동백꽃사탕 한봉지를 사자 한봉지를 덤으로 얹어줘 커피믹스님을 기쁘게 한 오동도 동백꽃차집 사장님.


그 열정은 예향 여수의 힘이요 자긍심이었습니다. 어떤 열정도 자긍심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없이 뜨거운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여수사람들에겐 자긍심과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해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멀리 객지에서 온 여행객을 위해 아낌없이 시간을 내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꼭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여수엑스포는 여수를 위한 것만이 아니에요. 이건 세계를 위한 일이지요."

저는 그렇게 열정적인 여수시민들을 보며 "여수시가 시민들 제대로 세뇌시켜놓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어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렇게 자발적으로 세뇌되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여수시민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구나." 그리고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한용운 스님의 시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그들에게 여수는 님이요 사랑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합니다. 자기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운 사람은 다른 고장에 대한 애정도 뜨겁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수시민들의 "여수엑스포는 세계를 위한 것"이란 말이 허언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서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번 여수엑스포 팸투어에서 얻은 가장 귀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과 그 속에서 끌어올린 맛, 그리고 그보다 더 아름답고 맛있는 여수 사람들…

욕쟁이해장국 주인 아줌마. 욕쟁이 할머니는 돌아가셔서 이제 욕은 안 준다.

이순신 장군과 여수현감.

엇, 장군님. 칼 조심하셔요. 여수시의회 의장님쯤 되는 줄 알았더니, 중앙동 주민.

여수엑스포의 성공을 기원하는 초딩 여수시민.

역시 여수엑스포 성공을 기원하는 여수시민.

가족나들이도... 여수엑스포 성공기원으로.

선상투어 때 열정적으로 해설하시던 할아버지도 여수시민.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3일 동안 제일 고생 많으셨던 여수시 공무원.

여수의 명물 통장어탕. 또 먹고 싶다. 그러나 역시 이보다 더 맛있는 건 여수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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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여수엑스포 팸투어 첫날 첫 관광지, 동백꽃이 피를 토하는 오동도


여행을 좋아하는 이라면, 특히 의미 있는 답사여행을 좋아하는 이라면 유흥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한 번쯤은 읽었으리라. 유흥준은 자신의 답사기 제1장 제1절에 남도를 올리고 이름 하여 '남도답사 1번지'라고 정한 것은 결코 무작위의 선택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나아가 그는 "지역적 편애라는 혐의를 피할 수만 있다면 '남도답사 1번지'가 아니라 '남한답사 1번지'라고 불렀을 답사의 진수처가 바로 남도"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남도의 봄빛을 보지 못한 자는 감히 색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남도의 봄에는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자연의 원색, 우리의 원색이 있으며, 그 원색의 물결 속을 거닐"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행운인 것이다. 유흥준에게 남도는 강진과 해남이었을 것이지만, 실은 남도의 봄빛, 그 화려한 원색의 향연이 가장 먼저 당도하는 곳은 여수 오동도였다.


여수에 도착한 우리는 엑스포 홍보관에서 지친 눈을 비비며 세계박람회 현황을 들은 다음 제일 먼저 오동도에 들렀다. 진초록으로 깊게 팬 터널 사이로 선홍빛 동백꽃이 내뿜는 붉은 홍채가 우리의 잠든 심장을 박동 치게 한다. 피로에 눌려 허물어지던 눈꺼풀도 파르르 떨며 일어섰다. 

오동도. 왜 오동도라 했을까?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야♬" 이 노래하고는 별 관련이 없는 걸까? 아무튼 참 예쁜 이름이다. 곽재구 시인의 말처럼 어느 날 홀연히 떠난 여행자가 밤을 새운 기차여행 끝에 도달한 한 낯선 바닷가의 이름이 목포, 부산, 포항, 강릉이라도 좋겠지만, 그 마을의 이름이 여수라면 누가 한눈에 그 마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여수의 오동도.

나는 오동도가 여수를 대표하는 이유로 그저 시내에서 가깝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오동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명품, 자연유산이었다. 성채처럼 둥그렇게 바다를 막아선 깎아지른 절벽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파도가 마치 적군들처럼 깊숙이 부서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 위로 날카로운 시누대를 앞에 두고 핏빛 선명한 붉은 동백전사들이 정말 유흥준의 말처럼 목이 부러져 풀밭에 누워 피를 토하고 있었다. 실로 장엄한 광경이었지만, 내 카메라가 그 현장을 따라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너무나 놀라운 광경에 압도당한 탓이었을까. 

진초록을 뚫고 뚝뚝 떨어지는 선홍빛 향연의 터널을 지나면 다시 더욱 깊고 기다란 검은빛의 터널을 만난다. 시누대 터널. 시누대는 이순신 장군이 화살을 만들기 위해 심었다는 대나무다. 날카롭게 뻗은 위용이 예사롭지 않다. 전라좌수영 수병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오동도 등대에 오르니 좌청룡 우백호, 왼쪽엔 남해섬이 오른쪽엔 돌산도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남해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돌산도는 여덟 번째로 큰 섬이란다. 과연 천혜의 요새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달리면 머잖아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격전지 노량이 나타난다.

4백여 년 전, 이곳은 아마도 핏빛 바다였으리라. 선홍빛 동백꽃보다도 더 붉은 전사들의 피가 이 바다를 물들였으리라. 그러나 오늘 바다는 너무나 평화롭다. 바다 건너 남해를 배경 삼아 정박해있는 유조선들이 마치 한가로이 휴양 나온 여행객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등대에서 내려오니 함께온 일행들이 옹기종기 모여 차를 마시고 있었다. 동백꽃차. 어떤 이는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찻잔을 놓고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동백꽃으로 만든 차라니, 참으로 신기하다. 어떤 맛일까? 새콤달콤한 게 특이한 맛이다. 아주 좋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이게 건강에 참 좋단다.  


대한민국 사람 치고 몸에 좋다는데 마다 할 사람 있을까. 나 역시도 대한국인. 사람들 틈에 끼여 열심히, 정말 열심히 동백꽃차를 마셨다. 일단 몸에 좋다니까. 그런데 맛이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았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이라고 해도 맛이 없다면 곤욕 아니겠는가. 

동백꽃잎차는 특히 피를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하는데 동백꽃의 선연한 핏빛을 보노라면 일리 있다는 생각을 넘어 매우 과학적이란 생각에까지 미친다. 현대인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이 바로 피가 혼탁해지는 것 아닐까. 알코올에, 지방에, 과도한 영양섭취에 우리들의 피는 원래의 선홍색을 잃어가고 있다.

동백꽃으로 차만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사탕도 만들어 파는가보다. 아래 사진처럼 동백꽃제리도 있다.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은 한 번쯤 사서 복용해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일단 맛만으로도 저렴한 가격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받을 것이므로, 건강이 좋아졌다면 그건 덤이다.    

                  동박새꿈정원  blog.daum.net/camelliatea  이메일 cssj1229@한메일

첫날 저녁은 이곳에서 먹었다, 여수시특산품전시판매장이 아니고 그 밑에 보면 한일관이라고 작게 적혀있는 곳에서. 늘 그렇지만 첫 날 첫 번째 먹는 저녁이 가장 푸짐하고 맛있는 법이다. 어딜 가나 그랬다. 역시 이날도 그 통상적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은 맛의 고장 남도에서도 여수다.  


블로거들이란 대체로 피곤한 사람들이다. 물론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지만. 한 블로거가 푸짐한 밥상을 앞에 두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그의 촬영행각이 끝날 때까지 모두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실은 식사 대기하고 있는 다른 블로거들은 이미 촬영을 마친 상태. 

그러니까 지금 이 블로거는 지각생이다. 남들 다 찍을 때 뭐 했을까? 그의 카메라 행각을 아주 겸손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이는 시사블로거 거다란닷컴의 커서님이다. 그리고 포스 넘치는 동작으로 카메라를 조준하고 계신 이는 나도 잘 아는 부산의 블로거, 따뜻한 카리스마. 역시 표정만 봐도 카리스마가 넘친다.


얼큰하게 소주 한 잔 걸치고 야경을 보러갔다. 어라? 그런데 왜 이렇게 아름다운 거야.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걸까. 참으로 아름다운 야경이었다. 내가 사는 마산의 야경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술 취한 손가락 탓에 사진이 실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창원 귀산동 쪽으로 가면 아마도 마산의 야경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 한 번 거기 가서 여수의 야경과 비교해 보고픈 충동이 인다. 그러나 안 하는 게 낫겠지? 괜한 일로 자존심만 상할 뿐일 텐데. 그러나 한편 걱정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을 지키려면 얼마나 많은 욕심들을 꺾기 위해 싸워야 할 것인가.  


우리들의 숙소다. 김주완 기자, 커서와 커피믹스 부부, 아 그러고 보니 이분들 커씨들이었네? 커플이라고 성씨도 커씨였구먼. 숙소가 아주 대만족이다. 디오션 리조트라고 했다. 여수에서 여기가 제일 좋은 곳인가? 잘 모르겠다.


늘 그렇지만 여행자들은 밤에도 잠을 잘 자지 않는다. 낮의 감동이 밤에는 술로 이어지기 마련. 등을 보이고 손을 흔들며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계신 분이 임현철님(알콩달콩 섬이야기), 그 옆으로 김주완 기자, 팰콘님(팰콘의 스케치북), 커서님(거다란닷컴), 커피믹스님(달짝지근), 따뜻한 카리스마님이다. 물론 내 얼굴은 여기 없다.  


꼭 내 얼굴을 보고 싶으신 분은 저쪽 창밖에서 이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잘 생긴 남자를 보면 된다. 좀 침침하긴 할 테지만, 원래 그렇게 보아야 잘 생겨 보이는 법이다. 어흠~


새벽 세시 반에 우리는 잠들었다. 나는 김주완 김자와 한 방, 한 침대에서 자게 되었는데, 남자와 자는데 익숙하지 않은 나로선 매우 고통스러운 밤이었다. 그리고 새벽 6시경 김주완 기자의 우악스런 발에 밀려 나는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덕분에 나는 하나의 선물을 받았다. 바다 건너 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글쎄, 내가 일출을 본 것이 몇 년 만이었던가? 정확하진 않지만, 고등학교 때 설악산권으로 수학여행 갔을 때, 경포대에서 일출을 본 후 처음이었다.

신혼여행도 설악산으로 갔었는데, 현재의 아내와 낙산사 의상대에서 일출을 보려고 했으나 일기 탓으로 실패했었다. 그 이후론 굳이 일출을 볼 일도 보고자 한 일도 없다. 매년 1월 1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줄지어 떠나는 걸 보면서 그 짓들을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나였다. 

아무튼, 김주완 기자 덕분에 나는 장엄한 일출을 생애 두 번째로 볼 수가 있었다.    


아침은 여수시내에서 욕쟁이해장국을 먹었다. 이 얘기는 다음에 해야겠다. 무슨 해장국이 이렇게 싸고 맛있는지. 키조개 완자도 들어있고, 홍합, 굴도 들어 있다. 그리고 가격은 5천원. 이런 해장국집을 우리 동네에다 차리면 갈고리로 돈을 끌어 모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속물근성.


바로 이 집이다.


그리고 우리가 만난 아줌마가 바로 이 아줌마다. 문화해설사. 그녀는 경상도에서 시집온 전라도 아줌마다. 고향은 경상도 함양 땅, 그러나 인생의 대부분을 이곳 남도에서 살았다. 경상도 톤이 베이스로 깔린 전라도 말씨는 참으로 유창했다. 그야말로 에이스 해설사였다.

이 아줌마 얘기도 별도로 해야겠다. 두 손에 동백꽃잎을 들고 동백꽃의 전설, 동백꽃이 수정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백나무는 특이하게 벌이 아니라 동박새가 꿀을 따고 수정을 시켜준단다. 그런데 동박새가 미처 꿀을 따기도 전에 저렇게 스스로 목을 부러뜨려 장렬하게 떨어진다고 하니 실로 신기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뭇 사람들의 눈에는 동백꽃이 피를 토하고 풀밭에 쓰러져서도 그 선홍빛 자태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실로 감탄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저녁을 먹으러 갔던 식당의 정원에도 온통 붉은 동백꽃 천지였다. 여수는 동백의 나라였던 것이다.


마산에 돌아온 나의 눈에 우리 집 마당에 활짝 핀 동백꽃이 들어왔다. 그래,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마당에도 동백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매년 봄이 오기 전에 그 꽃들이 피는 것을 보아왔을 터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 꽃들을 보며 원색의 선연함에 감탄하지 못했을까? 

떨어진 동백꽃을 보며 왜 나는 스스로 부러뜨린 목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까? 목이 부러져 피를 토하며 부르는 노래를 듣지 못했을까? 아니 그보다 왜 그토록 처연한 원색의 봄빛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여수에 가서야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어쩌면 남도의 동그마한 산등성과 넓은 벌판, 신기루처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나의 눈이 빛깔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외로운 한 두 그루가 아니라 천지로 둘러싸인 해묵은 동백나무들과 일사불란하게 목을 부러뜨리고 풀밭에 누워 피를 토하는 동백꽃들의 집단성이 흑백의 겨울에 갇힌 나를 꺼낸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원색의 남도, 여수는 아름다웠다. 그래서 이름이 여수였던가 보다. 여수…. 

2012 여수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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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한려동 | 오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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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파워블로거들이 남쪽으로 간 까닭?

글쎄요. 어떤 게 파워블로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모두들 그렇게 부르니 저도 그렇게 부르기로 하지요. 아마도 인기블로거, 이렇게 생각하면 별로 틀리지는 않을 거 같네요. 저도 거기에 끼였으니 나름 인기블로거일까요? 역시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겸양을 떠는 게 아니라 저는 아직 아닌 거 같아요.
 

여수엑스포 공사 현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여수시청 관계자들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한지도 어언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났고, 방문객도 250만을 헤아리고 있으니 초보블로거라고 하긴 뭣하지만 아직 파워 혹은 인기를 머리에 달 만큼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거든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변에 파워블로거라고 불려도 하나 손색없는 분들을 몇 분 알고는 있지요.

그래서 파워블로거들과 친한 블로거, 이렇게 불린다면 뭐 그렇게 틀린 표현도 아니고 썩 유쾌하지 않은 표현도 아니지요. 그리고 실은 그 덕분에 여수에도 가보게 되었던 것이고요. 팸투어, 말로만 들었지만 제가 팸투어를 가게 될 줄은 생각을 못했었지요. 사실은 팸투어가 무슨 뜻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답니다. 

아, 제목이 왜 "파워블로거들이 남쪽으로 간 까닭은?" 이냐구요? 음, 사실은 제 기준으로 보자면 남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갔다고 해야 맞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블로거들이 서울에서 오셨으니 "파워블로거들이 남쪽으로 간 까닭은?" 하고 제목을 단 것이지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서 힌트를 딴 거예요.  

오동도에서 블로거 거다란(커서). 붉게 빛나는 것은 동백꽃잎. 이 잎으로 동백차를 만드는데 다음에 소개.


잘은 몰라도 달마가 동쪽으로 간 데에는 대단히 심오한 뜻이 있었다고 하지요. 블로거들이 남쪽으로 간 데에도 나름 심오한 뜻이 있었던 것이에요.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관광이나 하러 갔던 것은 아니고요. 세계박람회가 2012년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데요. 바로 여수에서 열린다고 하더군요. 

여수, 남쪽 끝이지요. 우리나라 도시의 이름 중에 이처럼 아름다운 이름이 있을까요? 여수, 정말 아름답지요? 이름만 들어도 뭔가 낭만적인 사연이 생길 것 같은 그런 이름이지요. 그런데 여수란 이름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에 대해 잘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팸투어 첫날 여수 엑스포 홍보관에서 교육을 받기는 받았는데…, 헐~, 암튼.  

요즘 잘나가는 신진파워블로거 커피믹스를 환영하는 오현섭 여수시장. 20년 가까이 젊은 나보다 젊어보였다.


여수는 아주 아름다운 곳이에요. 그래서 여수겠지요. '한려수도'에도 여수가 가운데 떡하니 지키고 있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겠어요. 제가 여수를 가보기로는 이번이 딱 두 번째인데요. 2004년 여름, 향일암에 갔던 것이 첫 번째였어요. 정말 멋있었지요. 아마 바다를 바라보는 암자로 그렇게 멋진 곳은 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팸투어 길에도 큰 기대를 갖고 참여했답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남도에 대한 아련한 추억 같은 걸 갖고 있지요. 흔히들 남도라고 하면 호남, 그 중에서도 전남 지방을 말하잖아요? 야트막한 산등성과 넓게 펼쳐진 들판, 거기에 봄이라면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신기루처럼 피어오르겠지요. 정말 정겨운 곳이죠.

한 번도 가보지 않았어도 늘 그리운 고향 같은 곳이 바로 남도지요. 같은 남해안에 있으면서도 왜 경상도는 남도라고 부르지 않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남도의 산천은 실로 유흥준의 말처럼 "꿈결 속에 다녀온 미지의 고향 같다"는 말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어요.

오동도등대에서 바라본 바다. 왼쪽은 남해섬, 오른쪽은 돌산도가 지키고 있다. 좌청룡 우백호?


붉게 타오르는 동백꽃으로 치장한 오동도. 이 오동도를 두고 함께 간 김주완 기자가 말했어요. "왜 오동도가 여수에서 제일 유명한 섬일까요?" 물론 여수에 오동도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훨씬 아름다운 섬들이 즐비한 곳이 여수지요. 거문도, 백도, 이런 섬들의 이름만 들어도 벌써 가슴이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나요?

"오동도요? 그야 뭐 시내에서 제일 가까운데 있으니까 제일 유명하겠죠. 가까우니까 가기도 쉽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러나 아니었어요. 처음 발을 들여놓은 오동도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어요. 무릉도원도 이런 곳이 있을까? 게다가 마침 빠알갛게 타들어가는 동백꽃들의 천지, 시누대의 터널, 그 너머에 창창한 푸른 바다와 건너다보이는 섬 남해.

오동도 시누대 터널. 이순신 장군이 화살을 만들기 위해 심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경남 남해가 바로 코앞에 길게 누워 있더군요. 남해는 정말 큰 섬이었어요. 여수와 남해를 잇는 한려대교가 가설된다면 여수 엑스포에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고, 장래 이곳 경제를 이끌어갈 관광자원으로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들 했지만, 현 정부는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이에요. 캔슬 시켰다고 하더군요.

내색을 안 하려고 노력했지만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는데, 누구라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어요. 남해 출신인 김주완 기자의 설명에 의하면 자기가 어릴 때는 큰 장을 보려면 배를 타고 여수에 왔었다고 하더군요. 남해는 여수가 생활권이었던 거지요. 지금도 다리만 놓는다면 여수와 남해는 하나의 생활권이 될 것 같아요. 

자, 말이 길어지고 있으니까 답을 드려야겠군요. 파워블로거들이 남쪽으로 간 까닭은? 여수 엑스포를 홍보하기 위해서랍니다. 첫날 도착한 우리는 제일 먼저 여수 엑스포 현장부터 갔어요. 그곳에서 미리 나온 여수시 공무원들로부터 일단 브리핑 형식의 교육을 받았지요. 

찍을 때마다 색깔이 달라 카메라가 고장 났나 하고 봤더니 수시로 색깔이 바뀌는 돌산대교였다.


다음 엑스포 홍보관 강당에서 슬라이드로 강의를 들었는데 역시 공부는 힘들었어요. 예나 지금이나 학생 신분이 되면 누구나 졸리운 건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인 모양이에요. 그리고 이어 오동도를 구경하고 저녁을 먹은 다음 돌산대교와 여수시 야경을 구경했는데요. 완전히 환상적이었죠.

2박 3일 일정으로 우리가 돌아본 곳은 주로 여수 엑스포의 주제인 이순신 장군 유적지였는데요. 여수시의 중심에 이순신광장도 만들었더군요. 여수시민들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했어요.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로 부임해서 거북선을 만들고 군사를 양성했기에 조선이 살아남았다는 거지요. 

이순신광장에 만들어진 낙서판(희망다짐글)에는 여수시민들이 줄지어 자기 희망들을 적어 넣고 있었는데요. 그들에겐 한결 같은 것이 있었어요. 여수 엑스포를 반드시 성공시켜야겠다, 그런 다짐들이었지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이에요. 정말 대단했어요. 그분들 인터뷰 비슷하게 한 게 있는데요. 그건 다음에 쓰기로 하고요.

이분은 남해에서 시집왔다고 했다. 그러니까 경상도에서 태어난 전라도 아줌마다.


아무튼 대단했답니다, 여수시민들. 여수 엑스포가 성공해야 나라도 잘 되고 세계가 산다고 입을 모으는 그들을 보며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야, 여수시가 시민들 확실히 세뇌시켜놨구나." 세뇌란 표현은 아주 안 좋은 거지요. 그러나 이렇게 자발적으로 세뇌당한 여수시민들이야 얼마나 행복할까요?  

한용운 스님도 그러셨잖아요.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그러나 한용운 스님보다 여수시민들이 훨씬 행복한 거 같아요. 여수 엑스포는 스님의 님처럼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만 남긴 채 차디찬 티끌이 되어 한숨에 날아가'진 않을 테니까요. 엑스포는 해양도시 여수의 미래지요.

여수 엑스포, 파이팅!!! 블로거들이 남쪽으로 간 까닭에 대해선 대충 이 정도로 말씀드렸으니 앞으로 여러 회에 걸쳐서 무엇을 보고 듣고 왔는지 포스팅을 통해 말씀드릴게요. 다시 한 번 여수 엑스포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아, 그리고 여수는 맛있는 음식이 참 많은 고장이었어요. 지금도 입맛이 쩝쩝 다셔지는군요. 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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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한려동 | 오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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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제 천지호가 죽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왜 천지호를 죽였을까? 대길이와 함께 힘을 합쳐 황철웅과 좌의정 일당을 박살내는 꼴을 보고 싶었는데…,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나더군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인명은 재천인 것을. 아니지요. 인명이 재천이 아니라 천지호의 명줄을 쥐고 있는 건 <추노> 감독과 작가가 아니겠는지요. 

아, 그러고 보니 작가님 성함이 천성일, 천지호와 종씨로구먼요. 그런데 왜 이렇게 허무하게 천지호를 죽였을까나…. 아무튼 천지호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이번 주 <추노>를 보다가 낯익은 장면에 깜짝 놀랐답니다. 그리고 곧 휘둥그레진 두 눈은 반가움으로 더 커졌지요. 바로 제가 어릴 때 자주 놀던 곳이었거든요.  

원손을 업고 도망가는 언년이가 마주친 곳, 문경새재 제2관문 조곡관이다.


이곳은 소풍장소로도 자주 애용되었는데 우리는 이곳을 관문이라고 불렀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앨범에도 맨 첫 장을 장식하는 유서 깊은 장소지요. 어디냐구요? 문경새재 제2관문이로군요. 새재에는 세 개의 관문이 있습니다. 그 중 첫 번째 관문의 이름은 주흘관입니다. 아래 사진이 주흘관입니다. 작년에 찍은 사진입니다. 뒤에 나란히 손잡고 가는 세 사람이 우리 가족입니다.

작년 2월 봄방학 때 아이들과 문경새재에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 어릴 때 자전거 타고 여기 자주 왔다.


제1관문을 지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왼쪽 편에 KBS 촬영장이 있습니다. 여기서 사극의 대부분을 찍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1관문에서 바라보는 왼쪽이 조령산, 오른쪽은 주흘산이다


1관문 주흘관을 지나 한참 올라가면 제2관문이 나옵니다. 조곡관이라고 부르지요. 세 개의 관문 중에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17부에서 언년이 또는 김혜원이 원손을 업고 도망을 가다 검문을 당하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아래 두개의 사진을 한 번 비교해 보세요. 비슷한가요? 저는 너무 반가웠답니다. 테레비에서 고향을 만나다니요. 흑흑~

남쪽에서 바라본 제2관문 조곡관

역시 조곡관, 위 사진과 비슷하나요?


이건 북쪽에서 바라본 조곡관입니다. 이쪽에 문루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남쪽에서 쳐들어오는 왜적을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요새라는 걸 알 수 있네요. 언년이가 부랴부랴 원손을 안고 도망가고 있습니다.


여기는 제3관문, 조령관입니다. 저 문을 넘어서면 충주 수안보랍니다. 저 아래는 경치가 너무너무 좋은데요, 별장들이 많더군요. 산 이름도 신령스런 신선봉이랍니다. 월악산 국립공원지역이지요. 아, 이런 산을 배경으로 집을 지어놓고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면서 걸어 내려가는데 아뿔싸, 바로 그 자리에 떡하니 별장이 있더군요. 그리고 또 있고, 또…. 

나중에 돈 많이 벌어도 소용없겠더라고요. 벌써 좋은 자리는 다 차지하고 있으니, 헐~   

두 아이는 1년새 많이 컸습니다. 훨씬 길어졌지요.


이다해씨, 눈길에 촬영한다고 고생 많았겠어요.


언년이가 검문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장면이네요. 어휴~ 큰일 났습니다요.


아무튼 무척 반가웠습니다. 더구나 하얗게 눈 덮인 고향산천을 바라보니 더 기분이 좋네요. 흐흐 ^^*
아래 사진은 우리 모교 졸업앨범 첫 장에 나오는 사진으로 조곡관입니다. 어제 <추노>에 나왔던 바로 그 장솝니다. 멋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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