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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84세 황강수중마라톤 선수, "아, 쥐가 나지만…"

합천 황강에서 수중마라톤이란 것을 한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드러난 팔뚝이 금세라도 익을 것처럼 이글거렸지만 나는 마라톤 행렬을 카메라에 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덕분에 다음날 벌겋게 화상을 입은 살갗이 욱신거리고 아파 고생했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한양여대 학생들이라고 하던데...


여름. 흔히 사람들은 봄을 생명의 계절이라고 얘기하지만, 황강에서 만난 여름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밭을 뛰어다니는 젊은 육체들의 팽팽한 피부는 가득 공기를 채운 튜브처럼 탄력이 넘쳤다. 살짝 건드리면 찢어질 것만 같은 윤기가 흐르는 매끄러운 몸체에선 시원한 물줄기가 솟아오를 것만 같은 환상이 느껴졌다.

 

, 이런 이야기를 해도 좋을까. 나는 사실 중학생이 된 이후로 물에 들어가 놀아본 적이 없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여름 내내 물가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그 이후로는 강가에도 해수욕장에도 거의 가본 적이 없다. 기껏 계곡에 가서 발을 담그는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그것도 어쩌다 한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우연찮게 사회적 기업 <해딴에>가 진행하는 황강레포츠 팸투어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한국 여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한국인의 체형을 말할 때는, 특히 한국 여성의 몸매에 대해 말할라치면 우선 짧은 다리부터 연상했다. (좀 미안하긴 하군. 욕 안 먹을지 모르겠어. ㅠㅠ) 서양의 쭉 빠진 체형에 비해 우리의 그것은 정말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테이프가 쳐진 안쪽이 마라톤 코스


그러나 아, 아니었다. 이제 나는 서양 여자의 곡선미를 전혀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이 서양 어떤 지역보다 월등하다는 것. 그 늘씬한 각선미. 팔등신의 비율. 가는 허리에 풍만한 엉덩이. 서양인보다 월등히 우월한 미끈하고 탄력 넘치는 피부. 게다가 한국여자들은 다른 나라 여자들에 비해 얼굴도 훨씬 예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생전 처음 경험한 경이로운 한국 여체의 아름다움보다 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할아버지였다. 하얀 수염이 턱밑으로 길게 자란 남자의 나이는 84세라고 했다. 노인은 경기 시작 전 몸을 푸는 체조를 할 때도 참가선수들의 맨 앞줄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옆에 있던 동료 블로거가 그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하며 입을 열었다.


몸을 풀고 있는 할아버지 선수


, 나도 저 나이에 저렇게 되고 싶다.”

 

하하, 그게 아무나 되나요? 하고 웃었지만 실은 내 마음도 그랬다. 나는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찍기 위해 수중마라톤 코스 바로 곁에까지 다가갔다. 일부러 허벅지까지 물에 담그고 카메라를 설치한 MBC 카메라맨 옆에 섰다. 그래야 마라톤 주최 측의 제지를 안 받아도 될 거라는 잔머리를 나름대로 굴린 것이다. 아무튼…….

 

출발을 알리는 오색 폭죽이 굉음과 함께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대열이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선 자리는 출발선으로부터 약 100여 미터 거리에 있었다. 길게 늘어선 마라톤 행렬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혹시라도 노인을 놓칠까봐 조바심을 내며 행렬을 살폈다.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행렬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느리지만 뛰고 있습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드래곤볼에 나오는 거북도사 같지 않나요?


그때 마침내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느렸지만 뛰고 있었다. 노인의 시선은 30도 정도 아래로 고정되어 있었다. 노인의 표정은 매우 침착했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 달리면서도 노인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노인의 숨결은 가지런히 오르내리며 심장에서 만들어진 동력을 다리로 전달하고 있었다.

 

아아, 다리에 쥐가 나네. 쥐가 난다고. 아아, 이거, 다리에 쥐가 나는구먼.”

 

ㅎㅎ


노인의 얼굴을 담기 위해 셔터를 누른 그 순간 노인은 마치 내게 들으라는 듯 한숨의 쉬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흠칫했다. 저렇게 평온한 얼굴로 100여 미터를 달려온 노인의 다리에 쥐가 나다니. 그 한마디에 서늘한 슬픔이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솟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노인이 완주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그것은 진심이었다. 나는 노인을 앞질러 뛰어가 50여 미터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노인은 여전히 30도 정도 아래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고 숨결은 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었으며 표정은 침착했다. 달리는 속도도 변함이 없었다. 느렸지만 여전히 노인은 달리고 있었다. 노인은 내 앞을 스쳐가면서 역시 같은 말을 되뇌었다.

 

아아, 다리에 쥐가 나네. 아아, 다리에 쥐가 나는데.”


좀 힘들긴 하군


그때서야 나는 그것이 나를 보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노인의 옆에는 한 여자가 의약품 같은 것이 든 투명한 비닐봉지를 들고 함께 뛰고 있었다. 약 40세 전후로 보이는 그녀는 어쩌면 노인의 손녀이거나 간호사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간호사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노인의 유니폼 가슴팍에 병원 이름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노인은 한국 여체의 아름다움보다 더 놀라운 경험을 내게 주었다. 나는 그 노인의 하얀 수염으로부터, 깡마른 늙은 육신으로부터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았다. 84세의 노인. 언제 떠나야할지 모르는 시한이 정해진 생명체. 그러나 쏟아지는 햇빛을 반사시키며 타들어가는 백사장을 끼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리는 그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황강에 생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