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합천군은 지금껏 뭘 했단 말이야?
이것은 사실 합천군을 탓하기 위해 한 말은 아니었다. 너무나 감격에 겨운 나머지 순간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온 것인데 바로 홍류동 소리길의 아름다운 절경에 탄복한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낸 정운현 선생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었다.
물론 나도 여기에 얼른 동조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합천군은 지금껏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금강산이 따로 없었다. 실로 그동안의 게으름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정도로 홍류동 소리길은 아름다웠다. 그러므로 한 번 더 행복에 겨운 감탄사를 내뿜고 가도록 하자.
이렇게 멋질 길을 두고 합천군, 지금껏 뭐한 거야?
..... ▲ 홍류동 소리길은 흙길도 좋지만 이렇게 돌로 다듬어놓은 길도 좋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감탄사가 연발되었던 것은 아니다. 해인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해서 해인사 경내를 둘러본 다음 홍류동 소리길을 찾아 내려올 때만 해도 우리는 투덜거렸다. 아니 이게 뭐야. 가도가도 아스팔트 길이잖아. 이게 무슨 소리길?
나중에 알게 되지만, 하지만 그것은 소리길이 아니었다. 진짜 소리길을 걷기 위해선 한참을 더 내려가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런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아스팔트 길 옆으로 펼쳐진 계곡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다만 아스팔트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우리는 그 길이 곧 소리길인 줄 착각을 하고 말았던 것.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다가 주유소를 하나 만났다. 산중에 주유소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바로 그 주유소 뒤편에 펼쳐진 기괴한 암벽이었다. 오, 이거야말로 장관이다!
계곡물은 요리조리 흔들리며 작은 폭포들을 연방 만들고, 그 모양을 거대한 암벽이 우뚝하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때마침 가는 빗줄기가 안개처럼 흩날리며 암벽을 감싸자 신비로운 기운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다시금 입에서 튀어나오는 불평들.
아 이거 뭐야. 주유소에 가려 사진을 찍을 수가 없잖아.
아무래도 주유소가 문제였다. 아무리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구도를 잡아도 그놈의 주유소 어느 귀퉁이 하나가 반드시 문제를 일으켰다. 그래도 오늘 홍류동 소리길 구경은 이 정도로나마 만족했으니 다행이다, 하고 생각하면서 주유소를 지나 내려오는 순간, 엇! 홍류동 소리길 시작을 알리는 팻말이 보인다. ▲ 홍류동 소리길은 하늘로 우뚝 솟은 암벽 틈에 갇혀 떨어지는 폭포수를 감상할 수 있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거기서부터 비로소 홍류동 소리길이 시작되는 거였다. 나무로 잘 다듬어진 구름다리를 건너니 사뿐사뿐한 흙길이 사람을 반긴다. 꾸불꾸불 오솔길이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웅장하게 한시도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아, 이래서 소리길인가보다.
울창한 숲과 숨 막힐 듯 아름다운 계곡과 물소리는 그렇게 어울렸다. 소리길의 끝무렵은 농산정이 장식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홍류동은 그야말로 천하제일경이다. 이곳에 전국 방방곡곡에 흔적을 남긴 최치원이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리 없다. 고운은 어김없이 농산정에도 그 흔적을 새겼다.
내가 사는 동네의 이름도 고운선생이 머물던 월영대가 있다하여 월영동이고,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있던 해운대도 마찬가지로 최치원이 지은 이름이다. 그렇게 하고많은 고운의 흔적 중에 이곳 홍류동이 제일이다. 만약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최치원이 신선이 되었다면 그 장소는 바로 이곳일 터이다.
홍류동 계곡이 아니라면 어디가 있어 최치원이 신선이 될 수 있었을까? 최치원은 홍류동 계곡에 이르러 비로소 모든 번민을 내려놓고 인간의 탈을 벗고 신선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하여 마지막으로 합천군에 한마디만 더 하고 끝내도록 하자.
늦게나마 이리 좋은 길을 만들어주었으니 실로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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