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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종북 정리하겠다는 통진당 대표 강기갑, 잘될까?

강기갑 통합진보당 대표가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에 나와 “(통합진보당이) 종북의 빌미를 제공한 부분도 없지 않기 때문에 깔끔하게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오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좀 에둘러 표현하긴 했지만 종북주의의 실체를 사실상 인정하고 결별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집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대단한 발전입니다. 그때만 해도 종북에 관해 질문하면 예의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발끈하며 화를 냈던 강기갑 대표였던 것입니다.

2009년 12월 5일,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에서 열린 ‘강기갑 대표 블로거간담회’에 저도 참석했었습니다. 강 대표는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였습니다. 그때 제가 이런 취지의 질문을 했습니다. (관련기사/강기갑대표 블로거간담회, 질문통제에 유감)

▲ 2009년 12월 5일 강기갑 민노당 대표 블로거간담회

“강 대표께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당장 다시 합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진보대통합을 이루려면 전제조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북주의 문제와 패권주의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거죠. 동질성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통합이 가능하겠습니까?”

강 대표는 발끈했습니다. 민노당이 분당하게 된 이유가 “종북주의를 주장하는 세력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최기영 사무부총장(현 통합진보당 정책기획실장)과 이정훈 중앙위원이 관련된 일심회 간첩사건에 대해서도 “정부가 발표하는 걸 믿을 수 있느냐? 조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하고자 했던 질문의 요지는 “진보대통합을 하려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장애물인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에 대한 이견을 해소하고 동질감을 회복하여야 할 텐데 방안이 있느냐?”는 것이었지만, 결국 질문은 다하지 못했고 답변도 듣지 못했습니다. 강 대표가 발끈한데다 사회를 보던 김주완 기자(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가 잘랐던 것입니다.

민감한 질문은 하지마라는 것이었는데, 저로서는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저는 최근까지도 통합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선 상호간에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당시로선 선도적으로 진보대통합을 외치던 강 대표에게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종북 의혹과 패권포기 약속이 없는 통합이란 실상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진배없다는 것이 당시 저의 생각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른바 ‘묻지마 통합, 묻지마 단결’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합니까? 지난 총선에선 ‘묻지마 야권단일후보’ 때문에 또 얼마나 홍역을 치렀습니까?

2년 전만 해도 “종북? 그런 게 어디 있느냐. 간첩사건? 그건 다 정부가 조작한 거다”라던 강기갑 대표가 종북의 실체를 인정하고 나아가 결별하겠다는 선언까지 선언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물론 외부적 압력 이전에 스스로 그런 결단을 했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아쉬우나마 잘 된 일입니다.

아직도 통진당 부정선거 사태에 대해 “벼랑 끝에 내몰린 미국과 수구세력이 위기를 벗어날 술책으로 종북몰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시는 통합진보당 사람들이 많습니다. SNS에서 그런 이야기를 볼 때마다 “어떻게 같은 사람이면서 저렇게 생각하는 것이 다를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빤히 눈에 보이는 종북행위를 해도 패권만 잡고 있으면 아무 걱정 할 필요가 없다는 아주 종파적인 사고가 종래에 오늘날과 같은 통진당 사태를 불러온 것이 아닐까요? 부정선거를 저질러도, 회계부정을 해 돈을 마음대로 주물러도 패권만 잡고 있으면 아무 문제없다는 종파주의.

아무튼 강기갑 대표의 이번 결단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잘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매우 비관적입니다. 이른바 신당권파의 절대다수인 인천연합이란 조직도 결국은 경기동부연합 등 구당권파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점 때문입니다.

주사파의 대부,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김영환과 하영옥의 경우에서 보듯 맹신하던 사상적 거처를 버린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기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적, 조직적 유대를 끊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선 하기 힘든 일이지요.

게다가 이른바 구당권파의 영향력 아래 놓인 통진당 당원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사는 창원만 해도 대부분이 구당권파이거나 그 영향권 아래 있는 걸로 보입니다. 물론 개중에는 상당수가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슬픈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