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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박근혜에게 수첩공주의 진실을 요구합니다

‘수첩공주’ 언제부터인가 박근혜에게 붙여진 별명입니다. 왜 이렇듯 ‘수첩’과 ‘공주’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만들어진 것일까요? 물론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정치인 박근혜는 수첩이 없으면 현안에 대한 질문조차 답변을 잘 하지 못한다.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는 게 없어 그렇다는 것이 중론이다. 수첩을 보지 않고서는 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수첩공주는 박근혜를 비하하는 놀림용으로 만들어진 조어다.

몇 년 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왔던 박근혜가 수첩에 없는 돌발질문을 하자 버럭 화를 내며 “지금 나하고 싸우자는 거예요?” 했다는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됐습니다. 그리고 어제 KBS 9시뉴스 기자(곽희섭)의 입에서 이 수첩공주가 다시금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 1979년 박정희대통령이 암살되기까지 국정을 도무며 무엇이든 기록하던 습관은 훗날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낳았습니다. …”

실로 어이상실입니다. 요즘 멘붕이란 말이 유행하더니 다 이런 때를 위해 만들어놓은 조어인 듯합니다. 언론이 도둑도 사회사업가로 만들고 악질친일분자도 독립지사로 만들어버리는 요술방망이를 가진 줄은 진즉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박근혜의 무지와 무능을 비하할 의도로 당대에 만들어진 별명이 졸지에 과거부터 그녀의 세심하고 헌신적인 지도자적 소양을 칭송하던 별칭이었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뻔뻔함을 기자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하는 이 기막힌 현실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니.

수첩공주라는 지극히 불쾌하고 수치스러운 이 별명을 공세적으로 역이용하자고 나선 것은 물론 박근혜쪽이었습니다. 작년 10·26 재보선을 앞두고 개설된 페이스북에 수첩공주가 등장했던 것입니다. 물론 박근혜의 머리에서 나온 것은 아닐 테지요. 그럼 그녀는 더 이상 수첩공주가 아니니까요. 

부정적인 이미지의 수첩공주를 “열심히 잘 듣고, 잘 적고,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꾸려는 이 시도는 아주 현명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박근혜 캠프에 장자방이 있어 훌륭한 지략을 낸 거겠지요.

그리고 수첩공주란 별명이 박근혜의 무지와 무식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지긴 했어도 수첩에 열심히 적고 살펴보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습관은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권장되어 좋은 것입니다. 기록은 지혜의 어머니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KBS 곽기자의 ‘수첩공주’ 멘트는 방송이 다시 1980년으로 돌아가 ‘땡전뉴스’라도 부활하려는 듯이 보입니다. 수첩공주를 부정의 이미지에서 긍정의 이미지로 개선시키려는 노력은 갸륵한 것일지 몰라도 거짓이나 사기를 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곽기자는 단순히 박근혜 캠프에서 주는 정보를 토대로 기사를 쓰고 읽었을 뿐이라고 변명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곽기자의 기자로서의 소양만 의심받게 할 뿐입니다. 명색이 기자가 세간에 떠도는 여당 유력대선후보의 소문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까요.

만약 정말로 KBS 곽희섭 기자가 수첩공주의 진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곽기자야말로 ‘수첩기자’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하긴 기자들은 늘 수첩을 지니고 다니긴 하지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곽기자를 일러 수첩기자라고 비아냥거릴 때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 평소 학창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하며 무엇이든 기록하던 습관은 훗날 수첩기자라는 별명을 낳았습니다. …”

어쨌든 이쯤 되면 박근혜 캠프의 의도이든, 알아서 기는 기자의 과잉충성이든 수첩공주의 탄생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하여 어쩌면 우리도 이런 조직 하나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박근혜에게 수첩공주의 진실을 요구합니다>

약칭을 <수진요>로 해야 할까요, <박진요>로 해야 할까요? 

ps; 첨부한 동영상이 진실을 어느 정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군요. 동영상 재밌습니다. 박근혜 왈, "굉장히 준비를 잘해서... 정부가 유도를 하고... 기업 쪽에서는 적극적으로 노력을 하고... 이산화가스... 어, 산소가스를..." 걍 웃음만 나옵니다. 어쨌든 웃음주니 즐겁기는 합니다. ㅎㅎ

http://www.youtube.com/watch?v=s8WkhYLDjFA&feature=player_embed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