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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아메리카노 소동, 통진당 폭력사태의 연장선상

“이젠 하다하다 별 커피를 가지고 다 싸운다!”

통합진보당 내에서 벌어진 이른바 아메리카노 소동을 바라보는 한 네티즌의 반응입니다. 정말 별 거지같은 걸 가지고 다 싸운다, 는 비웃음이 나올 만도 합니다. 제가 봐도 별 거지같은 걸 갖고 난립니다. 우선 한번 웃고 넘어갑시다. 허허.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이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소동을 이끌어낸 장본인은 통합민주당 김미희 의원의 남편인데 김미희 의원이 소위 구당권파가 강기갑 통진당 비대위에 반대해 만든 당원비대위의 대변인으로 구당권파의 핵심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 백승우란 사람이 통합진보당 사무부총장이란 고위직이었다가 지난번 중앙위 폭력사태를 끝으로 해임(사퇴라고도 하지만 사실상 해임이라고 봄)됐으며 김미희 의원의 지역구가 있는 성남의 지역위원장 출신으로 경기동부연합의 핵심인물이란 것입니다.

烏飛梨落이란 말도 있듯이 특별히 조심해야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별 거지같지도 않은’ 아메리카노 소동을 벌였으니 세상이 시끄러워지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조중동이든 한겨레, 경향이든 이렇게 좋은 이야깃거리를 놓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럼 이 백승우란 분이 도대체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요? 간단하게 딱 두 가지였습니다.

1. 유시민-심상정 대표는 대표단회의 전에 반드시 아메리카노를 먹어야만 회의를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노동자, 민중과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2. 그리고 비설실장이나 비서가 당사 밖에 나가 아메리카노 커피를 사오는 심부름을 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들이다.

통진당 게시판이 난리가 났음은 물론이고 네티즌들도 격하게 반응했습니다. 초점은 “아메리카노 커피 먹으면 미제의 앞잡이고 민중을 착취하는 거냐?”라는 쪽으로 모아졌습니다. 백승우씨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아메리카노’에 집중됐습니다. 그냥 ‘커피’라고 해도 됐을 것을 왜 굳이 ‘아메리카노’란 특정한 명칭을 사용했는지 주목하고 따지고 들었던 것입니다. 거기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종북’이었습니다.

8, 90년대의 학생운동을 지배했던 것이 소위 NL(민족해방)계 주사파였는데 당시 이들은 아메리카노 커피나 코카콜라를 ‘미제의 똥물’이라 부르며 마시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게 경기동부연합이니 광주전남연합이니 울산연합이니 하는 조직들이란 거죠.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백승우씨는 한겨레신문의 기사 하나를 문제 삼아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식으로 사태수습에 나섰습니다. 통진당 게시판에도 올리고 해당기자에게도 이메일로 보냈다고 하는군요.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한겨레신문 김지훈 기자님, 왜곡기사 수정해주십시오.

한겨레신문 김지훈 기자님! 온라인 한겨레신문 기사를 읽고 당황스럽습니다. 한겨레신문이 최소한 지켜야할 공정한 보도를 부탁드립니다.

어느 네티즌이 쓴 “커피믹스 먹으면 진보, 아메리카노 먹으면 착취?” 라는 선정적인 글을 한겨레신문 기사 제목으로 쓰셨습니다. 김지훈 기자님이 쓴 제목은 제가 쓴 당게시판 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유시민, 심상정 전 대표가 아메리카노 커피 먹는 자체를 비판하는 글을 저는 쓴 적이 없습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사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쓴 글의 요지는 유시민, 심상정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대표단회의가 있을 때마다 비서실장이나 비서를 통해 아메리카노 커피를 외부에서 배달해 먹는다는 것이고, 배달된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어야 회의를 하는 모습은 권력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라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종이포장으로 허겁지겁 갖고 오는 커피 배달 심부름이 당직자가 매일 회의 때마다 해야 하는 역할은 아닙니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는 게 문제다, 라고 이야기 한 적이 없습니다. 글의 맥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왜 조선일보처럼 왜곡된 선정적인 제목으로 글 내용과 다르게 써야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기사 수정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다른 분의 비판 인용도 최소한 찬성 입장과 반대 입장을 적시하여 기사를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른 언론 기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왜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만 통합진보당에 굴절된 시각을 갖고 계시는 진중권씨나 진보신당 대변인 같은 분들의 멘트만을 인용하시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김지훈 기자님! 공정한 기사를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정작 선정적인 소동을 만들어놓은 사람이 “왜 선정적인 보도를 하느냐?”고 따지는 것 같아 별로 아름답지 않아 보입니다. 끝에다 “통진당에 굴절된 시각을 가진 진중권씨나 진보신당 대변인(박은지를 말하는 듯) 같은 분들의 멘트만 인용하느냐”는 말로 은근히 비난여론을 특정세력의 음모로 몰려는 얄팍한 수마저 보입니다.

이런 태도에 대해선 통진당원들 내부에서조차 비난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어야 회의를 할수 있는 이 분들을 보면서 노동자 민중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의아할 뿐입니다.’ 이거 백승우씨가 쓴 거 맞죠? 물론 앞서 비서관심부름에 대한 글도 쓴 거 압니다. 백승우 당신이 심부름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다면 심부름에 대해서만 썼으면 됐을 거 아닙니까? 아메리카노 어쩌고저쩌고 한 거 당신입니다, 당신. 당신이 왜 아메리카노를 글 속에 집어넣었는지 당신도 알고 사람들도 다 압니다. 순진하지도 않은 사람이 순진한 척 하지마세요.”

물론 참여계 당원인 것으로 보이는 이런 분들만의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민노당 출신으로 <바위처럼>이란 필명으로도 알려진 한성우씨는 그의 페이스북에서 “제정신이 박힌 넘이라면 이 문제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함에도 종북마녀사냥을 위해서라면 덮어씌우기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자행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 “개 같은 잡넘들이 <커피셀프>라고 말해줘도 못 알아 쳐먹고 커피심부름을 여전히 악의적으로 자행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의 본질이었다”면서 “한걸레신문 김지훈이란 기자로 보기 어려운 한심한 작자는 본질을 벗어난 펌프질을 기사로 교묘하게 위장해서 내놓았다”고 악평을 했습니다.

내가 비록 황희정승은 아니지만 이쪽 말도 일리가 있고 저쪽 말도 일리가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백승우씨가 오해받을 짓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잖아도 종북주사파 혐의를 받고 있는 분이 과거 주사파 운동권에서 ‘미제의 똥물’로 취급하던 아메리카노 소동을 벌였으니 진중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들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전직 사무부총장이었던 백승우씨가 전직 공동대표였던 유시민씨를 까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번 소동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비판은 할 수 있으나 이성을 가지고 했어야 하는데 내가 볼 때 백승우씨는 현재 이성상실의 상태인 듯싶습니다.

어쩌면 이런 상태는 이른바 구당권파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앙위 폭력사태가 그 절정을 보여주었죠. 백승우씨가 당게시판에 싸지르는 글들을 보면 저주와 분노, 적개심이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반미자주, 통일운동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쌓인 것들일까요?

아무튼, 요즘 때로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낙도 별로 없는 이 각박한 세상에 그래도 통진당이 이렇듯 가끔 웃음 주는 사건을 만들어주니 즐겁지 아니한가!’ 지난 5월에 일어난 소위 ‘중앙위 폭력사태’도 그랬지만 이번 소동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보면 참 재미난 일입니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