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패밀리, 참 끔찍한 드라마다. 아,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살 수가 있을까. 차라리 야차패밀리라고 불러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패밀리. 정가원은 JK그룹의 본산이다. 그 속에서 로열은커녕 노멀도 못되는 비천한 계급의 한 여인이 18동안 숨죽이며 살았다. 짐승처럼 대접 받으며.
정가원의 가족들은 하나같이 특별한 신분의 사람들이다. 김인숙 같은 평민이 여기에 끼였다는 자체가 그들에게는 치욕이다. 그들은 김인숙을 케이(K)라 부른다. 18년 동안 김인숙의 시어머니는 물론이고 윗동서, 아랫동서, 시아주버니들, 심지어 아이들까지 모두들 이름대신 케이라 불렀다.
그러나 케이는 서서히 18년간의 침묵을 깨고 자신의 본모습을 하나씩 들러내기 시작한다. 준비된 여인. 갈고닦은 복수심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JK그룹에 필적하는 구성그룹의 장녀인 정가원의 큰며느리를 발아래 무릎 꿇리고, 국회의장쯤 되는 정치인 아버지를 둔 작은 동서를 보기 좋게 물 먹이는 케이.
정말이지 섬뜩하리만치 로열패밀리는 사실적이다. 그들의 생각, 그들의 행동, 그들의 밀계와 협잡, 자기들 말고는 아무도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천박한 우월주의. 드넓은 정가원에는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물론 간단한 식사나 술을 마실 수 있는 바도 있다.
거기에서 마주 앉아 케이에 대한 험담부터 시작해 온갖 이야기를 아무 스스럼없이 해대는 정가원의 로열패밀리들에게 정가원의 직원들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에겐 무표정한 모습으로 앞에서 서빙을 하는 직원의 존재는 감각이 없는 무생물인 것일까. 아무튼, 로열패밀리, 너무 독특하고, 너무 재미있는 드라마다.
그래서 처음부터 보지 못한 나는 일부러 iMBC에서 돈을 주고 구입해 1편부터 8편(3월 24일 방영분)까지 모두 보았던 것이다. 700원×8회=5,600원. 케이와 마찬가지로 로열은 고사하고 노멀도 못되는 나로서는 드라마 한편 보자고 꽤 많은 돈을 썼다. 주제에 로열패밀리의 은밀한 구석을 들여다보기 위해 과잉지출을 한 셈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비싼 지불을 하고 본 로열패밀리에도 옥에 티가 있었다. 케이에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케이가 정가원의 며느리가 된 18년 전 이전에 케이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엊그제 8부에서 숨겨진 비밀 중 가장 충격적인 비밀이 거의 전격적으로 드러나고야 말았다.
그렇다. 전격적이었다. 하긴 원래 비밀이란 예고도 없이 전격적으로 나타나는 법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그 비밀을 제압할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케이에겐 혼혈인 아들이 있었던 듯하다. 그녀가 이태원에서 살았다고 하는 정황이 나오는 것도 갑작스레 등장한 혼혈청년이 그녀의 아들임을 짐작케 한다.
▲ 케이 앞에 "마리"란 이미 사망처리된 옛 이름을 부르며 나타난 혼혈청년은 누구인가?
어떻게 될까? 돌아가는 사정으로 보아 미리 큰 사고가 예비된 분위기. 어쩌면 혼혈청년은 죽게 될지도 모른다. 정가원의 집사장 엄기도가 JK그룹 본사빌딩 옥상으로 뛰어올라가는 것으로 보아 몇 가지 상황을 예상할 수도 있다. 혼혈청년은 건물 옥상 혹은 다른 어떤 곳에서 케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다른 하나의 예상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케이를 보고 절망한 혼혈청년이 옥상에서 투신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케이가 JK클럽 사장에 취임하는 순간 케이의 숨겨진 아들이 죽게 되는 비극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또 다른 하나의 예상은 케이를 대신해 엄기도가 혼혈청년을 죽이는 것이다.
엄기도는 어떤 인물인가? 케이와 마찬가지로 그도 베일에 싸여있다. 아니 어쩌면, 케이보다 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둘만이 있을 때, 케이는 그를 아저씨라 부른다. 케이와 엄기도는 어떤 관계일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정가원에 들어온 지 20년이 넘었다는 엄기도가 케이가 정가원 며느리가 되는데 어떤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것.
아하, 옥에 티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옆길로 샌 것은 아니다. 옥에 티는 바로 혼혈청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짐작컨대 혼혈청년은 스무 살 남짓이다. 그런 청년이 남루한 복장에 여행용 배낭을 메고 JK그룹 본사를 활보한다.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수많은 경비원과 보안요원들이 보여주던 철통같은 경계는 혼혈청년에겐 통하지 않는다. 오랜 여행에 지친 그의 남루한 복장과 먼지만 수북이 쌓인 채 테디베어를 매단 배낭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들에게 혼혈청년은 투명인간일까? 더욱이 이날은 JK그룹의 지주사 JK클럽 사장이 취임하는 역사적 순간 아닌가 말이다. ▲ 시어머니 JK 공회장의 "저거 치워" 한마디에 힘없이 끌려나가던 케이가, JK클럽 김인숙 사장이 됐다. 이제부터 시작인가?
하긴 옥에 티라도 그렇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케이의 가장 은밀한,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비밀이 드러나는 마당에 그까짓 옥에 티 하나 못 참고 넘어갈 것은 아니다. 혼혈청년을 좀 더 깔끔하고, 좀 더 단정한 모습으로 그렸으면 어떨까도 생각해보았다. 그랬다면 옥에 티 논란은 아니 할 수도 있었을 터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너무 극적인 맛이 없다. 지친 듯 남루한 복장과 배낭에 매단 테디베어, 그리고 어딘가 어리숙해보이면서도 슬픈 듯이 보이는 눈망울. 그것이 다음 주에 일어날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예고편이다. 그리고 그 비극은 JK그룹 본사 빌딩 안에서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케이가 JK클럽 사장에 취임하는 그 순간에.
그러므로 JK그룹의 정예 보안요원들과 경비원들이 혼혈청년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방치함으로써 옥에 티를 잡아내지 못한 것은 어쩌면 운명이랄 수도 있겠다. 케이가 만들어가는 비극적인 운명 앞에 JK나 정가원의 누구도 무력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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