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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마이더스, 알러지와 링거, 왠지 알레르기 반응 일어나

마이더스는 비극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마저도 황금으로 만들어버리는 손을 가진 것이 마이더스입니다. 하지만 이 비극적 신화의 마이더스는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겐 더없는 선망의 대상입니다. 마이더스는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라 자본주의사회에선 로망인 것입니다.

아,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쓸데없는 안티일지도 모를 안티 하나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마이더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원래 이름은 미다스입니다. 영어식으로 읽어서 마이더스가 되는 것이죠. 이런 식의 표기가 요즘 부쩍 많이 늘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알레르기도 알러지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알러지라 발음하면 마치 몸에 알레르기 반응이라도 일어나는 것 같아 알러지란 익숙하지 않은 발음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알러지라 발음하면서 유식함을 자랑하는 듯이 보이는 분들을 보면 ‘나도 알러지라 발음해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알레르기가 익숙하고 부담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알러지, 링거, 이런 표현들이 주류가 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오래전에 무역관련 일을 하다 대학을 갓 나온 젊은 친구들이(하긴 저도 갓 신랑이 된 젊은 나이였지만) 키프로스를 사이프러스라 부르는 걸 보며 멍청해졌던 생각이 떠오릅니다. “지중해에 사이프러스란 나라도 있었어?”

그러고 보니 제 무식의 소치로 생긴 에피소드가 하나 더 떠오릅니다. 역시 오래전 이야깁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 주변엔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들과 술도 자주 마시고 가끔 여행도 함께 하면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저보다 열 살 정도 어린 친구와 하루는 술을 마시면서 논쟁 아닌 논쟁이 있었습니다.

창원에 있는 엘지전자에 다니던 친구였는데, 자동차 얘기를 하다가 “중국에선 BMW가 참 많다”는 이야기로 생긴 에피소드였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저나 이 친구나 사실 똑같이 무식해서 생긴 일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BMW를 비엠더블유라 부르고, 이 친구는 베엠베라 부르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서로 상대가 말하는 차가 BMW란 사실을 알지 못하다가 어는 순간 그것이 똑같은 물건을 놓고 서로 다르게 발음한 것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제가 훈계조로 불쌍하다는 듯이 그랬던 것입니다. “얘야, 그건 베엠베가 아니고 비엠더블유라고 하는 거야.” 하지만 그 친구는 절대 물러서지 않더군요.

“아닙니다, 삼촌. 우리는 베엠베라고 부릅니다. 중국에선 모두 베엠베라 그러는 걸요.” 이 친구는 조선족, 즉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교포였지만 자신이 중국인임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중 축구경기를 보다가 “너는 왜 한국을 응원하지 않냐”고 따지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 친구가 대국인의 자부심 때문에 물러서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그런 모습을 매우 불쌍하다는 듯이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불쌍한 것은 저였습니다.

사실 무식한 것은 저였던 것입니다. BMW는 아시다시피 독일의 명찹니다. 그렇다면 독일식 발음으로 베엠베라 부르는 것이 보다 합당하겠지요. 덩샤오핑을 등소평이 아니라 덩샤오핑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모택동도 모택동이 아니라 마오쩌둥이 맞습니다.

한때 호나우두는 우리에게 로나우도였습니다. 호마리우는 로마리우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로나우도와 로마리우는 사라졌습니다. 축구경기를 좋아하던 저는 갑자기 로나우도가 사라지고 호나우두가 등장하자 잠깐 혼란으로 당황했지만, 이내 “아하, 앞으로는 로나우도를 호나우두라 부르기로 했구나” 하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결정은 옳은 것이었습니다.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 사람 호나우두는 호나우두인 것이지 로나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라 기억하실 분이 별로 안 계실 테지만 레이건을 처음에 언론들은 리건이라 불렀습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 미국 대통령은 지미 카터였습니다.

미군을 철수하겠다던 지미 카터는 북한의 남침공포에 떨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그야말로 지~미 카터였습니다. 이 지미 카터와 대결했던 공화당 후보가 로널드 리건이었던 것입니다. 엇? 저 까마득한 산골마을에서 중학생이었던 저는 그래도 신문을 보시던 아버지 덕에 신문 구경을 할 수 있었는데,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현역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와 대결했던 공화당 후보는 로널드 리건이었는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레이건이었던 것입니다. 레이건? 레이건이 누구야? 그럼 리건은 어떻게 된 거지? 하하, 너무 무식하다고 놀리지는 마십시오. 지금 같으면 금세 레이건이 바로 리건임을 알겠지만, 그때 너무 어렸고 공부가 부족했습니다.

리건이 미국에선 레이건이라 불린다면 우리도 레이건이라 불러주는 것이 예의에 맞겠지요. 그러므로 당시의 언론들이 미국 대통령이 된 리건을 레이건이라 정정한 것은 매우 적절한 결정이었습니다. 아, 이거 잠시 지나치는 말로 하겠다던 안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빨리 마무리해야겠네요.

미다스를 마이더스라 부르는 정도는 그래도 이해를 하겠습니다. 미다스보다는 마이더스가 발음하기도 더 편합니다. 신화의 세계에 잠들어있을 미다스가 들으면 매우 불편해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키프로스를 사이프러스라 부르는 것도 참을 만 합니다. 우리가 키프로스든 사이프러스든 부를 기회가 별로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링거니 알러지니 이런 것들은 어떨까요? 아주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써야할 말들이죠. 저는 아직도 링거라 말하려면 상당한 알레르기를 감수해야만 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그리고 사실 이런 것들은 그 말이 생긴 원산지의 발음을 그대로 인정하고 부르자는 추세와도 반대되는 경향이라고 생각됩니다만.

............ 사실은 자본주의 시대의 마이더스에겐 미다스가 느끼는 고통도, 피도 눈물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다 삼천포로 샜다.

사실 알러지와 링거의 경우만 예로 들었지만, 이외에도 이 비슷한 경우가 무척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세가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미국의 문화적 영향력 아래에서도 오래 버텨왔던 것들이 이제 바야흐로 미국 유학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됐다는 신호인 것일까요?

하긴 알레르기를 미국식 발음으로 알러지라고 하건 그냥 원래대로 알레르기라 하건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유식하게 알러지라 발음하자니 약간의 알레르기 반응을 감수해야한다는 것 말고는……. 아, 그건 그렇고 원래 쓰고자 했던 본문은 따로이 새로 써야 할 듯합니다. 이것 참, 흐흐, 제가 원래 좀 이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