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이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절정의 순간에 추락했으니 그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김도현은 역시 아직은 애송이였습니다. 김도현은 알아야 했습니다. 이미 유인혜가 자기를 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을 때 대비를 해야 했습니다.
약한 사람은 벼랑 끝에 서서도 자기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곧 떨어질 걸 알면서도 결코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자신이 벼랑 끝에 몰렸으며 곧 추락할 것이란 사실을 인정해야만 활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추락시키려는 힘을 역이용하여 탈출하든지, 아니면 과감하게 벼랑 아래로 떨어지며 살아날 방도를 찾는 것입니다. 뭐 예를 들자면, 아래가 물이라면 헤엄칠 마음의 준비를 한다든가, 숲이 있다면 가급적 덜 다칠 만한 곳으로 떨어지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ㅋ~
물론 이도저도 없다면 눈을 감고 조용히 하늘의 뜻을 기다릴 수밖에요. 아무튼, 김도현은 처음엔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 발버둥 쳤지만, 확실히 머리가 좋은 만큼 판단이 빠릅니다. 과감하게 벼랑 아래로 몸을 날렸습니다. 구속을 택한 거죠.
마이더스는 무협드라마가 아닙니다. 따라서 김도현이 절벽으로 뛰어내렸다고 해서 거기서 천년하수오나 용의 내단을 얻는 기연 따위는 없습니다. 김도현은 재판을 받을 것이고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출소하겠죠. 빈털터리로.
▲ 중국 하남에 많다는 천년하수오 @사진. 다음 안락초교2회동창회 카페서 인용
하지만 이렇게 싱겁게 끝나면 재미없습니다. 비록 이 드라마가 무협지는 아니라도 김도현에게도 천년하수오나 용의 내단에 버금가는 기연이 준비돼 있습니다. 무엇이냐고요? 이미 여러분도 그 기연을 보셨습니다. 그 기연은 이정연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정연은 참으로 기이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김도현의 애인이었습니다. 그들은 헤어졌지만, 지금도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정연은 도현에게 “나를 택하든지 돈(유인혜)를 택하든지 양자택일 하라”고 최후통첩 식으로 말했고, 도현은 돈을 택했습니다.
도현은 자본주의시대의 마이더스가 되고 싶었던 것이죠. 정연은 미련 없이 도현을 떠났습니다. 정연의 직업은 간호사입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방황하는 도현이 그래서 정연에겐 한없는 연민의 대상입니다. 드라마의 설정도 그렇습니다. 도현을 치유할 사람은 정연밖에 없다는.
자, 그렇다면 정연이 갖고 있는 도현을 살릴 기연이란 무엇일까요? 네, 맞습니다. 바로 인진병원 특별병동에 입원해있는 우금지 할머니입니다. 우금지. 그녀는 대단한 재력가입니다. 우금지 할머니가 무서운 것은 그녀가 현찰을 주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 우금지 할머니. 이름도 특별하다. 우리의 돈 기둥?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것이 아무리 산업자본이라고 해도(요즘은 이 말도 별로 신빙성이 없어보입니다만) 역시 가장 강한 것은 현찰입니다. 아마도 이 우금지 할머니는 현찰동원력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왜 부자들은 모두 이정연을 좋아하는 것일까요? 이정연의 동료간호사가 물어보자 이정연이 이렇게 대답해서 사람들을 웃겼죠. “내 예쁜 얼굴 보시는 게 몰핀보다 진통효과가 크시데.” 이른바 공주병 망언이었는데요.
그러나 그게 망언이 아니라 사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불치병에 걸려 살아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유명준도 이정연을 통해 위안과 더불어 생의 마지막 의미를 찾게 되지요. 아마도 그가 만드는 치료재단의 이사장으로 이정연을 낙점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김도현이 제아무리 날고기는 재주를 가진 천재라고 하더라도 자본주의사회에서 자금줄이 없이 막강한 마이더스 유인혜와 싸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김도현이 출소해 사회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줄 기연 즉 자금줄을 이정연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 가장 완벽한 팀으로 보였던 김도현-유인혜 팀. 하지만 돈 앞에 영원한 동지니, 의리니 하는 따위는 없었다.
이미 우금지 할머니는 김도현을 도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정연에게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람이 돈에 미쳐 살면 그렇게 되기 쉽다. 그래서 내가 김도현 같은 사람도 잘 안다. 지금은 자기가 미쳐 사는지 모른다. 불쌍하다. 나한테 잘 해주듯이 그 불쌍한 사람 너무 미워하지 마라.”
그리고 또 하나의 기연이 있습니다. 유명준. 유인혜의 유일한 같은 어머니를 둔 남매입니다. 그는 얼마 살지 못합니다.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소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누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누구도 믿지 못해 결혼조차 하지 못하는 유인혜를 파멸시키는 것이 그 길이라 믿고 있습니다.
유명준이 김도현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힘을 가진 존재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김도현이 감옥으로부터 돌아왔을 때, 그는 정연이 유인혜를 대적할 만한 강력한 원군을 준비하고 그를 기다리고 있으리란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물론 김도현은 감옥에서 내내 소위 복수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짰을 테지요. 하지만 뛰어난 두뇌만으로 일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은 냉혹한 자본주의 세계의 현실입니다. 자본주의사회의 주인은 자본 즉 돈이니까요. 아참, 그런데 왜 부자들은 하나같이 이정연을 좋아할까?
그녀는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이기도 하지만, 착하고, 예쁘고, 차분하고, 기품이 있고, 친절하며,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을 갖고 있지요. 그러니 죄 많은 영혼들이 그녀에게서 위안을 받고 안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또 당연히 그런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결국 김도현을 살려낼 구세주는 오로지 이정연밖에 없다, 그런 얘기가 되겠습니다. 김도현, 참 복도 많습니다. ㅠㅜ
▲ 김도현을 구할 사람은 이정연뿐이다. 착하기만한 간호사 이정연에게 이런 힘이 생길 줄 누가 알았으랴. 어쩌면 이 드라마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줄 아는 간호사 이정연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하지만 그 구세주란 것도 결국 돈일 뿐이니... 역시 자본주의사회는 마이더스의 손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인가.
극 초반부터 왜 두 사람을 헤어지게 만드나 상심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김도현과 유인혜, 가장 파워풀한 두 사람이 한 팀이 됐는데 감히 누가 상대가 있을까, 싱겁겠다, 그리 생각했는데, 이제야말로 진정한 상대가 가려졌습니다.
유성준? 아무리 봐도 그는 김도현이나 유인혜의 상대가 아니었거든요. 최국환? 어쩌면 최국환이 유인혜-김도현 커플에 맞서는 강력한 상대가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는 너무 비겁하고 야비한 존재였으므로 역시 두 사람의 상대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모든 게 제자리에 제대로 놓인 것 같습니다. 김도현 vs 유인혜. 이것이 마이더스의 진정한 대립구도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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