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튼^^ 신기생뎐에서 아수라는 아다모의 아버지이며, 나름대로 준재벌쯤 되는 기업을 거느린 회장님입니다. 뭐 원래 그렇고 그런 것이지만, 생각하는 수준은 완전 쓰레기 같은 인간이죠. 물론 남존여비 사상에 찌든 아수라의 아내도 생각 수준이 쓰레기인 건 마찬가지고요.
그런 부모들을 경멸하는 아다모의 생각 수준도 사실은 자기 부모들과 오십보백보입니다. 결국 아다모가 단사란을 버렸잖아요. 느닷없이 벌어진 어이없는 사태의 이유가 참 한심합니다. 결국은 "너는 내 상대가 아닌데 하도 도도하게 굴기에 한 번 놀려본 거야. 잘 놀았어" 이거였죠.
왜 단사란이 상대가 안 되느냐고요? 그거야 말 안 해도 다들 아시잖습니까? 자기는 재벌집 아들인데, 단사란의 아버지는 실직자에 어머니는(그것도 계모다) 기생집 주방에서 일하고 있으니 이거 밸런스가 안 맞아도 너무 심하다 이런 말이죠.
신기생뎐의 아수라. 이름도 참 특이하다.
저로서는 엄청 황당했죠. 갑자기 근처 목욕탕 가듯이 일본으로 가서는 실컷 온천욕으로 호강하고 와서(저는 일본 온천은 고사하고 일본땅 밟아보지도 못했어요) 한다는 소리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였으니 말입니다.
잘 나가던 단사란의 신데렐라 행보에 억지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려는 듯 아다모에게 단사란을 소개해주려던 다모의 할머니가 급사를 하지 않나, 좀 어이가 없긴 합니다. 어쨌거나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런 게 아니니 이 정도만 하기로 하죠.
오래전에 제가 잘 아는 선배의 여동생 부부가 개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이 부부로부터 저녁식사를 초대받았는데요. 현관을 들어서니 제일 먼저 뛰어나오는 건 조끼와 모자를 쓴 견공이더군요. 얼마나 놀랐던지….
사실 저는 개가 집안에, 그것도 아파트 안에 살고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거든요. 개는 저를 보고 무슨 원수라도 만난 듯이 마구 짖어대더군요. "왕왕! 우우으으~ 우왕, 왕~" 그러자 아는 선배의 매제(편의상 A라 부르기로 하죠)가 나오더군요. A는 선배와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가끔 나와 일을 도와주곤 하는 사이였습니다.
"아이, 라라, 이러지마. 그러면 안 돼. 우리집에 오신 손님이란 말이야." 그러자 개는 신기하게 조용해지면서 A의 품에 안겨 조용해지더군요. 그리고 A의 아내(선배의 여동생, 편의상 A-라 부르기로 합니다)와 인사를 하고(이때가 초면이었습니다) 식탁으로 가 앉았습니다.
식탁이 차려지고 A 부부와 제가 마주 앉았습니다. A 부부에겐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밥을 먹으려는데, 개가 식탁으로 낼름 올라 앉는 겁니다. 그러자 A와 A-는 개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아이구, 귀여운 우리 새끼" 이러면서 자기가 먹던 숫가락으로 밥이며 고기를 떠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숫가락으로 다시 밥을 떠서 자기 입에…, 개는 주인의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는 순간을 기다리기 힘들었던 모양인지 주인의 입을 혀로 막 핥고, 그러자 A와 A-, 그 모양이 너무나 기특하다는 듯이 입에 든 음식을 서로 나누고….
아무튼 불과 제 눈앞 30Cm에서 벌어지는 그림에 저는 그저 당혹 또 당혹. 식사시간이 얼마나 길고 힘들었을지 상상이 가십니까? 그렇게 저녁식사는 세사람이, 아니 세 사람과 한마리 개가 사이좋게(?) 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이 식사초대가 힘들었던 것은 이들 부부가 술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술도 없이 멀뚱한 정신으로 이 혼란스러운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다는 것이 저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고역이었지요. 술이라도 있었다면, 저도 개의 등이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귀여운 녀석" 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얼마 후, 사무실에서 업무회의 중이었든지 어쩐지 기억은 잘 안 납니다만,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 매제가? 와 전화했노?"
"흑흑, 형님, 혀엉~님, 우짜면 좋습니꺼?"
"무슨 일이고, 말을 해라. 와 그라는데?"
"혀어엉~님, 어허, 어흥, 어어엉~ 엉~"
"이봐라, 대체 무슨 일이고? 어서 말을 해라."
"형님, 우리 라라가, 라라가 죽었슴미더~"
"……"
"라라가 죽었다 말입니더. 어엉~ 엉~"
"그거 가이고 그라나. 일마 자슥. 괘얂다. 그만 울고 뒷산 어디 양지바른 곳에 묻어줘라."
"알겠습니더, 형님. 내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나서 다시 전화드리께예."
"됐다. 전화는 안 해도 된다. 고마 잘 묻어주고 마음이나 추스리라."
그 선배와 저는 얼굴을 마주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벌써 5~6년 전 일입니다. 그런데 신기생뎐을 보다가 거의 A 부부와 비슷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바로 아수라. 끌어안고, 부비고, 서로 입술을 빨아대는 모양새가 딱 A였습니다.
애완견의 호화 생일파티도 열어주는 아수라
하긴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도 있고, "머리 검은 짐승만 배신할 줄 안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사랑스런 애완견이 가장 가까운 친구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수라처럼 말 안 듣는 자식보다 말 잘 듣는 개가 더 좋을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연속극을 보다가 A가 생각났던 것입니다. A는 잘 살고 있을까? 갑자기 그의 안부가 궁금해졌습니다. 라라(사실은 개의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고 제가 임의로 붙인 이름입니다. 설마 도꾸나 메리, 쫑, 이런 이름은 아니었을 테지요)는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었을까요?
저야 뭐 아직도 그들의 우정 혹은 애정행각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그들의 의리 만큼은 높이 사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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