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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누가 신데렐라를 악역으로 만들었나

사실 신데렐라 언니에 특별히 누가 악역이고 누가 선역인지 구분짓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과 악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는 대체로 성선설에 방점을 두긴 합니다만, 그러나 역시 사람은 환경에 따라 악인이 될 가능성을 늘 소지하고 있습니다.


신데렐라 언니에 나오는 인물들, 신데렐라 효선, 신데렐라 언니 은조, 은조의 엄마이며 효선의 계모인 강숙은 모두 상처받은 영혼들입니다. 은조와 효선의 사이에서 갈등의 축이 될 홍기훈도 역시 상처받은 영혼입니다. 그럼 효선의 아버지 구대성은 어떨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대성만이 가장 건실하고 균형 잡힌 인물인 걸로 생각하지만, 실은 그도 상처받은 영혼 중 한 사람입니다. 대체 젊은 나이에 아내를 잃고 혼자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딸을 키워온 남자가 아무런 상처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신데렐라 언니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가 하나씩의 상처는 다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신데렐라의 상처가 신데렐라 언니의 상처에 비해 떨어진다고도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이 가진 상처는 다 나름대로 아픔의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은조와 효선의 차이가 있다면, 은조의 상처는 폐쇄적인 우울증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상처는 사람을 거부합니다. 그녀는 사람들을 피해 깊숙한 어둠 속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녀는 아마도 세상을 피할 수만 있다면, 떠날 수만 있다면, 그런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고 싶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은조에게도 선한 마음은 살아 있습니다. 제1부에서 도망치던 모녀를 쫓아오던 털보 장씨의 동생들(아마도 깡패들임)을 발견한 은조는 기차 안에서 잠든 엄마를 버리기로 하고 혼자 도망치려 합니다. 그러나 결국 혼자 도망을 가지는 못했습니다.

술에 취해 대성도가에 찾아온 털보 장씨가 만취 상태에서 핸들을 잡으려는 걸 억지로 말린 은조의 행동도 그녀의 속에 깃든 선한 마음 때문이죠. 아마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선 장씨가 음주운전을 하다 죽어버렸으면 하고 갈등했을 겁니다.


효선이도 마찬가집니다. 효선이는 자기가 짝사랑하는 남자친구 동수를 은조가 빼앗겠다고 나서자 그녀를 향해 "거지, 꺼져!"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둘은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싸움을 벌입니다. 그리고 효선 아버지에게 회초리를 맞게 되죠.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를 끝내 거부한 은조의 종아리는 피멍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효선이도 역시 선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한 마음으로 말하자면 효선이가 더 순수해 보입니다. 물론 효선은 은조에 비해 좋은 환경을 가졌고 자기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효선이는 이때까지만 해도 여린 감성을 지녔습니다.

둘이 싸우는 중에도 은조의 입가에 피가 흐르자 당황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언니" 하고 부릅니다. 효선 아버지에게 종아리를 맞아 피멍이 든 은조가 걱정스러워 스타킹을 내밀기도 하지요. 이런 것까지 가식적이고 가증스럽다고 하는 분이 있다면 할 말 없지만, 어쨌든 이때는 진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은조는 이를 뿌리칩니다. 그녀는 효선이 준 스타킹을 내팽개치고 따로 자기 것을 꺼내 신습니다. 그러나 효선의 아버지와 마주 앉은 식탁 앞에서 효선은 은조에게 사이좋은 척이라도 할 것을 제안하고 은조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둘의 갈등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봉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은조는 효선의 아버지를 통해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부성애를 느끼게 되고, 이것으로 은조가 새로운 인생의 길로 들어섰음을 암시합니다. 그녀야말로 진짜 신데렐라가 된 것이죠. 신데렐라에겐 자기를 구박하는 계모와 의붓언니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그런데 문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효선의 마음속에 불화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4부의 마지막 장면, 순식간에 8년이 흐른 화면은 은조가 훌륭하게 성장했음을 보여주었지요. 커리어우먼으로, 어쩌면 대성도가의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럼 효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녀는 이미 8년 전부터 돌변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속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복수와 불화의 냉기로 뒤덮였습니다. 그녀에게 불행이 닥친 것입니다. 마냥 행복해보이기만 하던 효선이 삐뚤어진 복수심으로 불행을 자초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녀는 이미 8년 전에 입대하던 홍기훈이 은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를 가로챘습니다. 그 이후에도 둘의 관계를 끊기 위해 모종의 계략을 꾸몄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변했을까요? 그녀는 신데렐라입니다. 왜 신데렐라가?

동화 속 신데렐라는 계모와 의붓언니들에게 모든 걸 빼앗깁니다. 그리고 바깥일에 바쁜 신데렐라의 아버지는 딸에게 무관심합니다. 그럼 효선은 은조에게 무엇을, 어떤 것들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단순히 자기가 보인 호의를 무시한 은조가 괘씸해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아무튼 누가 신데렐라를 악역으로 만들었을지는 더 지켜보아야겠네요. 결과적으로 '신데렐라에게 계모와 의붓언니는 불행의 씨앗이었다'란 결말로 마무리하게 될지, 아니면 이제 반대로 신데렐라 때문에 언니가 고통 받게 될지 어떨지는 몰라도, 효선이 악역으로 변신하는데 은조의 공이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어 보입니다.

은조의 탓과 효선 스스로의 탓 중에 누구의 역할이 더 컸는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