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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기자들이 사장을 뽑기도 자르기도 하는 신문사

"기자들이 신문사 사장을 자른다고?" 경남도민일보 서형수 사장 사퇴 파문
 

제목과 같은 신문사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아주 특이한 경우지만 이런 신문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경남도민일보가 그렇습니다. 국민주주신문으로 알려진 한겨레신문사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경남도민일보는 사장과 편집국장을 기자들이 뽑습니다.

경남도민일보의 진짜 주인? 사장과 편집국장 임명권을 가진 기자들이었다

요즘 MBC가 KBS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회사 정문을 가로막고 사장의 출근을 저지하고 있지요. 그러나 경남도민일보는 이런 일이 일어날 일이 없습니다. 신문사의 주인이 특정 자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진=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에서 인용


경남도민일보의 주인은 도민들로 구성된 주주들입니다. 도민들이 십시일반해서 모은 돈으로 만든 신문사가 바로 경남도민일보인 것입니다. 저도 그 십시일반에 동참했으니 주인중의 한 명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소위 ‘김주완 편집국장 임명사태’는 저 같은 사람은 주인 축에 낄 수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의 진짜 주인은 기자들이었습니다. 기자들은 사장을 임명할 수도 있고, 편집국장을 임명할 수도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추천된 사장이나 편집국장을 기자들이 투표로 결정하는 제도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제도는 경남도민일보의 창간 과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창간주체의 핵심이었던 창간기자들이 만든 제도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어떤 언론사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민주적인 제도였습니다. 경영권으로부터 완전하게 독립된 편집권, 그야말로 꿈의 시스템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조중동에 이런 제도가 도입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절대 불가능한 일이란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방에 자랑할 만한 이 제도로 인해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사장이 임명한 편집국장 동의안을 부결시켜 떨어뜨린 경남도민일보

사장이 추천한 편집국장 임명동의안을 기자들이 부결시키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불행히도 그 당사자는 경남도민일보의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는 김주완 기자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주완 기자 없는 도민일보를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김주완 기자가 사장에 의해 편집국장으로 임명됐고, 그걸 기자들이 떨어뜨렸습니다. 


외견상으로는 어떤 언론사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민주적인 제도에 의해 사장이 임명한 편집국장이 떨어진 것에 대해 이의를 달 일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일종의 반란이라는 유력한 주장이 있는 것입니다. “반란이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창간 이래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특히 경영상의 위기는 자그마한 지역신문사에겐 늘 달고 다니는 위궤양 같은 것입니다. 위궤양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나중에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경남도민일보는 타개책으로 서형수 한겨레신문 전 사장을 영입했던 것입니다.


서형수 사장은 경남도민일보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으로 개혁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의 일환으로 자신의 개혁의지를 가장 잘 반영할 인물이라고 판단한 김주완 기자를 편집국장에 임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자들이 사장이 임명한 편집국장에 동의하지 않는 초유의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김주완 편집국장 임명은 서형수 사장의 개혁의지의 표현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편집국장 임명동의안 부결을 조직적으로 만들어낸 세력이 있으며 결국 이들의 입김이 승리했다는 의혹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의혹은 그저 의혹일 뿐입니다. 그러나 여기엔 의혹이란 말로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서형수 사장이 취임한 이후 취한 개혁적 조치들 중에는 몇 가지 재정적 과제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 하나는 경영관계 국장이 가져가는 광고비 리베이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광고수주는 경영관계 국장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업무에 속합니다. 그런데 광고비의 1%가 무조건 경영관계 국장의 손으로 들어가는데 대해 서형수 사장이 칼을 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제보해 준 한 내부구성원의 말에 의하면 그 금액이 대략 3~4천만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작은 금액이 아닙니다. 지역 주재기자들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들도 지자체로부터 받는 광고비의 20% 가량을 리베이트로 챙긴다고 했습니다. 이걸 서형수 사장이 전격적으로 자른 것입니다.


사진= 김훤주 기자 블로그에서 인용


불만이 있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만약 이러한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김주완 편집국장 임명동의안 부결사태’가 개혁에 저항하는 내부세력의 반란이란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풀리지 않는 하나의 의문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제가 듣기에 주재기자 수는 서울을 포함해 모두 열일곱 명이라고 했습니다.


제기되는 조직적인 반란투표 의혹, 기득권 세력의 반발?

아마도, 꼭 집어 말하지는 않지만, 뉘앙스는 경영관계 국장과 외부 주재기자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투표결과는 28대 30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17명 외에도 최소 13명 이상의 본사 기자들도 동조했다는 얘깁니다. 그들은 대체 누구였을까요? 이에 대해 김주완 기자는 사직의 변에서 이 사태를 개혁세력에 대한 '사내좀비'들의 반발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김주완 기자는 자신의 이름이 계속 거론되는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계속 부르는 것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잔인한 행위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경남도민일보의 간판기자인데다 이 사태가 가져올 파장이 만만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영상의 문제는 사원들과 주주들이 힘을 모으면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2003년 경영파동 때 김주완, 김훤주 등 여러 기자들이 힘을 모아 돈도 모으고, 우리사주조합을 만들었던 경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청체성의 위기입니다. 경남도민일보가 창간정신에서 천명한 정체성을 버리고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경험은 “결코 없다!”고 말합니다.

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의문을 제기하고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기자들이 투표를 통해 사장과 편집국장 추천에 동의하는 (결과적으로는 임명하는) 제도를 여전히 민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아니오.” 창간초기에는 가장 민주적이고 바람직한 제도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경남도민일보의 진짜 위기는 재정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기자들 중에는 창간주체가 아닐 뿐 아니라 창간정신 따위엔 전혀 관심도 없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기자는 이병철 삼성그룹 전 회장을 일러 호암선생이라고 부르며 기사를 쓰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선 제가 직접 비판한 바가 있습니다. <☞관련기사; 경남도민일보, '약자의 힘' 어디로 갔을까?> 좀 과격한 표현을 빌자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주인을 뽑으라고 시키는 꼴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주주요 독자의 한사람으로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며칠 후면 지면평가위원회가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지면평가위원들의 진지하고 냉정한 평가를 기대합니다. 이보다 더 중대한 지면평가 사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논의를 중단하고 이 부분에 대해 집중 토론하는 태도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주주, 독자들의 각성입니다. 창간할 때 푼돈 좀 내고 신문 한 장 받아보는 것으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지요. 주인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되새길 좋은 기회로 삼는다면 이번 사태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간할 때의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결국 서형수 사장이 2/25 이사회에서 사퇴의사를 밝혔다고 하는군요.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편집국장 동의투표가 사실상 사장 신임투표가 된 셈입니다. 사장의 사퇴선언에 반대하는 기자들이 피켓팅을 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일부 기자들과 경영진 중에는 반기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필이면 이 글을 쓰면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같은 시가 생각나는군요.

아무래도 마침 엊그제가 삼일절이어서 그런 것일 테지요. 아마 그런 것이 분명하겠지요. 그리고 그래야지요. 아무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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