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대충 말하면 다 안다고 생각할까?
며칠 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아내가 막 열을 냈다. "낮에 ○○○씨한테 전화가 왔는데 글쎄 문 후보가 내일 마산에 올 건데 점심을 같이 하자는 기라. 마산에 있는 사람들 모아가지고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나? 그런데 도대체 문 후보가 누고? 내가 문 후보라 그러면 다 알 거라 생각하고 그냥 그렇게 말하는 건지 원. 내 참 기분 나빠서."
아내는 아마도 문 후보가 누군지 알고 이렇게 말했으리라.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가 내려와 점심을 하자고 하지도 않았을 터이고, 부산의 문재인 후보(그는 내가 알기로 출마를 고려하고 있지도 않은 줄로 안다)가 와서 점심을 먹자고 하지도 않았을 터이다. 그럼 문 후보는 누굴까? 이 동네에서 문씨 성을 후보 앞에 붙일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시는 분은 알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문 후보가 민주노동당 문성현 통합창원시장 후보인 줄 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화를 건 상대방은 왜 "민주노동당 문성현 후보가 마산에 와서 여러분들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와 줄 수 있겠느냐?" 하고 정중하게 물어보지 않았을까?
아내는 여태껏 어느 정당에 속했던 적이 없다. 물론 지금도 어떤 정당의 당원도 아니다. 그런 아내에게 그저 문 후보라 호칭하면서 당연히 지지의사를 갖고 참석해줄 것으로 간주하고 전화를 거는 것은 예의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행동이 매우 기분 나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문 후보>란 표현 속에는 "당신은 이미 우리 후보를 잘 알고 있으며, 지지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니 별 일 없다면 내일 꼭 참석해서 함께 점심을 먹자" 라고 하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어쩌면 이는 별다른 의미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에겐 실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끔 나에 대해 가지는 오해들
나와 잘 아는 블로거 중에 어떤 분도 나를 만나면 가끔 이런 비슷한 실수를 하곤 한다. 그는 내가 과거에(더듬어보면 진짜 까마득한 태고 때 이야기다) 노동운동을 좀 했고, 그런 연유로 그쪽 사람들을 좀 알고, 또 그래서 당연히 지금도 그때와 다름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뭐 대체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분이 실수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내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거나 최소한 반대하지 않는 걸로 착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얼마 전 차를 타고 마산 내서읍을 지나가다가 송순호 시의원 후보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는 내게 마치 "당신이 지지하는 송순호 후보가 저기 걸려 있네. 어서 봐!" 하는 식으로 보채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민주노동당 싫어해요.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철천지원수쯤으로 생각하죠. 특히 민노당 후보로 나오는 송순호나 문순규 같은 사람은 제가 개인적으로 원한이 큰 사람이에요. 제게 칼을 들이대고 상처에 소금을 뿌린 자들이죠. 며칠 동안 기분 안 좋겠군요."
아마 그분은 무척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러니까 그날 그분의 오해로 인해 내가 받은 불쾌함이 그분의 탓은 절대 아니다. 그분은 아무것도 몰랐을 테니까. 그분은 지금도 내가 민노당을 왜 그토록 철천지원수로 생각하는지 아리송할 것이다. 사실 나는 민노당을 아주 싫어한다. 한나라당보다도 더 지독하게 미워한다.
그럼 나는 왜 민노당을 그토록 미워하게 되었는가?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주사파들이 장악한 당이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건 그렇게 큰 이유가 안 된다. 주사파는 늘 우리 곁에 있었고, 그들과 함께 투쟁하기도 했고,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으며, 그들로부터 늘 주체사상과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경외심을 들어왔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생각할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새삼스럽게 주사파 때문에 민노당이 밉다고 하면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민노당을 만들 때도 그런 주사파들과 함께 했었던 것이고, 그 주사파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2002년 이후에 노회찬(당시 민노당 사무총장) 같은 인물은 대대적인 개방정책을 썼던 것이 아니겠는가.
실상 주체사상을 일러 "민족의 절반이 믿는 생활철학"이라고 강변하는 속칭 일심회 사건의 이정훈 민노당 중앙위원이나 최기영 사무부총장의 법정 태도를 보며 민족의 절반이 믿는다든지, 생활철학이라든지 하는 말은 인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믿을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로 자기가 믿는 신앙의 힘이 너무 지나쳐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기가 믿는 것을 믿고 있다고 착각하는 실수를 가끔 저지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가끔, 아주 가끔 내가 주체사상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매우 존경하는 것으로 오인해서 그들의 신앙고백을 들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자신이 주체총서를 다 읽은 다음 마지막으로 김일성 회고록을 읽은 연후에야 비로소 주사파에 입문했노라고 감회가 아주 새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는데, 이 자리엔 현재 진보신당 마산시 위원장을 하고 있는 이장규씨를 포함 대여섯 명이 함께 앉아 있었다. 그날 그가 왜 그런 고백을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그 당혹감이란.
그런데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김일성 회고록을 읽고서 비로소 주사파에 입문했다고? 거기에도 무슨 인증 절차 같은 것이 있나?" 그는 지금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인지 뭔지 하는 통일운동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또 어떤 분은 심지어 내가 왜 주사파가 아닌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도 있었다.
전과 지금의 내가 달라진 이유는? 대단히 개인적인 문제
한 2년 전에 잘 아는 분이 상을 당해 문상을 갔을 때였다. 그 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어떤 분이 내게 물었다. "아니 자네는 왜 그렇게 생각이 바뀐 거야? 요즘 왜 그래? 전에는 안 그랬잖아." 전에는 안 그랬다고? 천만에.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가 내게 그렇게 의아심을 가질 만한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상갓집의 상주나 그 어떤 분이나 모두 주사파였다. '였다'고 말하는 것은 지금도 주사파인지 확실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에 그들은 주사파였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자주 어울렸고, 그들이 모인 단체가 지리산에 MT를 갔을 때도 따라 갔었고, 그리고 그 깊은 산중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김일성의 사진을 만들어내는 평양군중의 매스게임을 함께 보았었다.
물론 벌벌 떨면서 보았다, 겉으로는 의연한 척 했었지만. 그랬으니 그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상갓집에서 그 의아심이 담긴 말을 들었던 그때, 나는 민노당 내 주사파를 향해 매우 적대적인 의사표시를 자주 하곤 했었다. 주사파는 아니라도 주사파에 꽤나 호의적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태도가 그는 이해가 안 됐던 것이다.
그렇다. 그러고 보니 전이나 지금이나 아주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이 분명히 하나 있다. 전에는 주사파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그렇게 노골적으로 보인 적이 없었다. 주사파를 그렇게 달가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배척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들과 내가 친분을 가지고 지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나는 그들을 원수처럼 생각한다. 그들을 마치 근본주의적인 기독교도나 무슬림처럼 세상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암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다원주의 이런 것들과 주체철학은 절대 융합할 수 없는 것이다. 유일무이하다고 믿는 주체사상, 그것이 곧 전체주의 아니겠는가.
사람은 때로 거창한 일보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건다
그런데 앞에서 나는 이런 것들도 내가 민노당을 미워하는 이유의 하나는 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했다. 그럼 진짜 내가 민노당을 철천지원수로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애석하게도 그것은 그렇게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 개인적 원한의 문제였다. 그리고 전과 지금이 달라진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은 의외로 사소한 일이 거창한 일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민노당은 동일한 문제를 두고 내게 최소한 세 번의 상처를 입혔던 전과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은 거꾸로 내가 그들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민노총 성폭력 사건 때처럼. 성폭력 피해를 입은 전교조 여교사가 경찰에 고소했을 때 일각에서 뭐라고 했던가? "어떻게 적들에게 동지를 팔아넘길 수 있나."
나도 똑같은 얘기를 들었었다. 그렇게 내 상처에 마지막 세 번째로 소금을 뿌렸던 인물 중 하나가 함안에서 민노당 지방의원 후보로 나온단다. 이름이 빈지태다. 언젠가 거리에서든 찻집에서든 어디서든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침을 뱉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해오던 그가 지방의원 선거에 출마한단다. 자주 상상 속에서 친절한 금자씨처럼 깊고 으슥한 폐교를 꿈꾸게 만들던 그들이….
어쨌거나 이런 나를 잘 아는 ○○○씨가 나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문 후보가 내일 마산에 갈 텐데 함께 식사를 하자" 하고 제안을 한 것은 난센스 아니었을까? 아니면 그는 나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린 것일까? 그도 아니면 그는 그런 일 따위는 지나가던 개에게 한 번 물린 일로써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나의 상념과는 달리 아내가 화를 냈던 것은 자기가 왜 문 후보라고만 하면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아마 ○○○씨는 그냥 문 후보라고 하면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 같은 인맥 범주에 들어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게 아니다. 정확하게 "민주노동당 문성현 후보" 라고 했어야 옳을 일이다.
말은 정확하게, 주어, 술어 빼지 말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인맥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을 말하자면 소위 진보 또는 운동권 출신이란 사람들이 누구보다도 인맥을 많이 따진다. 이 계통보다 인맥을 강조하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같은 파벌이면 김길태라도 용서가 된다. 그렇다면 통합시장 후보 중에 나는 어떤 인맥을 따라야 할까? 문 후보? 전 후보? 허 후보? 아니면 박 후보?
일단 문 후보는 아닌 것 같다. 내가 그를 미워할 이유는 없지만 일단 민노당 후보라면 별로다. 그럼 전 후보? 그는 나의 학교 선배라고 하니 우리나라 최대 병폐 중 하나인 학연으로 치자면 단연 1등이다. 허 후보? 심정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이긴 하지만, 일단 안 나오신다고 하니 더 따질 필요는 없다. 그럼 박 후보? 가만, 후보 중에 박씨도 있었던가?
아무튼 그렇고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니 선거운동 하시려면 과거의 인맥 따위는 염두에 두지 마시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하시라, 그런 얘기다. 그리고 가능하면 정중하게, 주어, 술어 그런 것 중에 하나라도 생략하지 말고 정확한 어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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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아내가 막 열을 냈다. "낮에 ○○○씨한테 전화가 왔는데 글쎄 문 후보가 내일 마산에 올 건데 점심을 같이 하자는 기라. 마산에 있는 사람들 모아가지고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나? 그런데 도대체 문 후보가 누고? 내가 문 후보라 그러면 다 알 거라 생각하고 그냥 그렇게 말하는 건지 원. 내 참 기분 나빠서."
아내는 아마도 문 후보가 누군지 알고 이렇게 말했으리라.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가 내려와 점심을 하자고 하지도 않았을 터이고, 부산의 문재인 후보(그는 내가 알기로 출마를 고려하고 있지도 않은 줄로 안다)가 와서 점심을 먹자고 하지도 않았을 터이다. 그럼 문 후보는 누굴까? 이 동네에서 문씨 성을 후보 앞에 붙일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시는 분은 알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문 후보가 민주노동당 문성현 통합창원시장 후보인 줄 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화를 건 상대방은 왜 "민주노동당 문성현 후보가 마산에 와서 여러분들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와 줄 수 있겠느냐?" 하고 정중하게 물어보지 않았을까?
아내는 여태껏 어느 정당에 속했던 적이 없다. 물론 지금도 어떤 정당의 당원도 아니다. 그런 아내에게 그저 문 후보라 호칭하면서 당연히 지지의사를 갖고 참석해줄 것으로 간주하고 전화를 거는 것은 예의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행동이 매우 기분 나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문 후보>란 표현 속에는 "당신은 이미 우리 후보를 잘 알고 있으며, 지지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니 별 일 없다면 내일 꼭 참석해서 함께 점심을 먹자" 라고 하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어쩌면 이는 별다른 의미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에겐 실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끔 나에 대해 가지는 오해들
나와 잘 아는 블로거 중에 어떤 분도 나를 만나면 가끔 이런 비슷한 실수를 하곤 한다. 그는 내가 과거에(더듬어보면 진짜 까마득한 태고 때 이야기다) 노동운동을 좀 했고, 그런 연유로 그쪽 사람들을 좀 알고, 또 그래서 당연히 지금도 그때와 다름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뭐 대체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분이 실수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내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거나 최소한 반대하지 않는 걸로 착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얼마 전 차를 타고 마산 내서읍을 지나가다가 송순호 시의원 후보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는 내게 마치 "당신이 지지하는 송순호 후보가 저기 걸려 있네. 어서 봐!" 하는 식으로 보채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민주노동당 싫어해요.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철천지원수쯤으로 생각하죠. 특히 민노당 후보로 나오는 송순호나 문순규 같은 사람은 제가 개인적으로 원한이 큰 사람이에요. 제게 칼을 들이대고 상처에 소금을 뿌린 자들이죠. 며칠 동안 기분 안 좋겠군요."
아마 그분은 무척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러니까 그날 그분의 오해로 인해 내가 받은 불쾌함이 그분의 탓은 절대 아니다. 그분은 아무것도 몰랐을 테니까. 그분은 지금도 내가 민노당을 왜 그토록 철천지원수로 생각하는지 아리송할 것이다. 사실 나는 민노당을 아주 싫어한다. 한나라당보다도 더 지독하게 미워한다.
그럼 나는 왜 민노당을 그토록 미워하게 되었는가?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주사파들이 장악한 당이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건 그렇게 큰 이유가 안 된다. 주사파는 늘 우리 곁에 있었고, 그들과 함께 투쟁하기도 했고,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으며, 그들로부터 늘 주체사상과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경외심을 들어왔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생각할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새삼스럽게 주사파 때문에 민노당이 밉다고 하면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민노당을 만들 때도 그런 주사파들과 함께 했었던 것이고, 그 주사파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2002년 이후에 노회찬(당시 민노당 사무총장) 같은 인물은 대대적인 개방정책을 썼던 것이 아니겠는가.
실상 주체사상을 일러 "민족의 절반이 믿는 생활철학"이라고 강변하는 속칭 일심회 사건의 이정훈 민노당 중앙위원이나 최기영 사무부총장의 법정 태도를 보며 민족의 절반이 믿는다든지, 생활철학이라든지 하는 말은 인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믿을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로 자기가 믿는 신앙의 힘이 너무 지나쳐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기가 믿는 것을 믿고 있다고 착각하는 실수를 가끔 저지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가끔, 아주 가끔 내가 주체사상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매우 존경하는 것으로 오인해서 그들의 신앙고백을 들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자신이 주체총서를 다 읽은 다음 마지막으로 김일성 회고록을 읽은 연후에야 비로소 주사파에 입문했노라고 감회가 아주 새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는데, 이 자리엔 현재 진보신당 마산시 위원장을 하고 있는 이장규씨를 포함 대여섯 명이 함께 앉아 있었다. 그날 그가 왜 그런 고백을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그 당혹감이란.
그런데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김일성 회고록을 읽고서 비로소 주사파에 입문했다고? 거기에도 무슨 인증 절차 같은 것이 있나?" 그는 지금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인지 뭔지 하는 통일운동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또 어떤 분은 심지어 내가 왜 주사파가 아닌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도 있었다.
전과 지금의 내가 달라진 이유는? 대단히 개인적인 문제
한 2년 전에 잘 아는 분이 상을 당해 문상을 갔을 때였다. 그 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어떤 분이 내게 물었다. "아니 자네는 왜 그렇게 생각이 바뀐 거야? 요즘 왜 그래? 전에는 안 그랬잖아." 전에는 안 그랬다고? 천만에.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가 내게 그렇게 의아심을 가질 만한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상갓집의 상주나 그 어떤 분이나 모두 주사파였다. '였다'고 말하는 것은 지금도 주사파인지 확실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에 그들은 주사파였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자주 어울렸고, 그들이 모인 단체가 지리산에 MT를 갔을 때도 따라 갔었고, 그리고 그 깊은 산중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김일성의 사진을 만들어내는 평양군중의 매스게임을 함께 보았었다.
물론 벌벌 떨면서 보았다, 겉으로는 의연한 척 했었지만. 그랬으니 그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상갓집에서 그 의아심이 담긴 말을 들었던 그때, 나는 민노당 내 주사파를 향해 매우 적대적인 의사표시를 자주 하곤 했었다. 주사파는 아니라도 주사파에 꽤나 호의적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태도가 그는 이해가 안 됐던 것이다.
그렇다. 그러고 보니 전이나 지금이나 아주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이 분명히 하나 있다. 전에는 주사파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그렇게 노골적으로 보인 적이 없었다. 주사파를 그렇게 달가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배척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들과 내가 친분을 가지고 지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나는 그들을 원수처럼 생각한다. 그들을 마치 근본주의적인 기독교도나 무슬림처럼 세상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암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다원주의 이런 것들과 주체철학은 절대 융합할 수 없는 것이다. 유일무이하다고 믿는 주체사상, 그것이 곧 전체주의 아니겠는가.
사람은 때로 거창한 일보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건다
그런데 앞에서 나는 이런 것들도 내가 민노당을 미워하는 이유의 하나는 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했다. 그럼 진짜 내가 민노당을 철천지원수로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애석하게도 그것은 그렇게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 개인적 원한의 문제였다. 그리고 전과 지금이 달라진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은 의외로 사소한 일이 거창한 일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민노당은 동일한 문제를 두고 내게 최소한 세 번의 상처를 입혔던 전과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은 거꾸로 내가 그들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민노총 성폭력 사건 때처럼. 성폭력 피해를 입은 전교조 여교사가 경찰에 고소했을 때 일각에서 뭐라고 했던가? "어떻게 적들에게 동지를 팔아넘길 수 있나."
나도 똑같은 얘기를 들었었다. 그렇게 내 상처에 마지막 세 번째로 소금을 뿌렸던 인물 중 하나가 함안에서 민노당 지방의원 후보로 나온단다. 이름이 빈지태다. 언젠가 거리에서든 찻집에서든 어디서든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침을 뱉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해오던 그가 지방의원 선거에 출마한단다. 자주 상상 속에서 친절한 금자씨처럼 깊고 으슥한 폐교를 꿈꾸게 만들던 그들이….
어쨌거나 이런 나를 잘 아는 ○○○씨가 나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문 후보가 내일 마산에 갈 텐데 함께 식사를 하자" 하고 제안을 한 것은 난센스 아니었을까? 아니면 그는 나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린 것일까? 그도 아니면 그는 그런 일 따위는 지나가던 개에게 한 번 물린 일로써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나의 상념과는 달리 아내가 화를 냈던 것은 자기가 왜 문 후보라고만 하면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아마 ○○○씨는 그냥 문 후보라고 하면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 같은 인맥 범주에 들어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게 아니다. 정확하게 "민주노동당 문성현 후보" 라고 했어야 옳을 일이다.
말은 정확하게, 주어, 술어 빼지 말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인맥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을 말하자면 소위 진보 또는 운동권 출신이란 사람들이 누구보다도 인맥을 많이 따진다. 이 계통보다 인맥을 강조하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같은 파벌이면 김길태라도 용서가 된다. 그렇다면 통합시장 후보 중에 나는 어떤 인맥을 따라야 할까? 문 후보? 전 후보? 허 후보? 아니면 박 후보?
일단 문 후보는 아닌 것 같다. 내가 그를 미워할 이유는 없지만 일단 민노당 후보라면 별로다. 그럼 전 후보? 그는 나의 학교 선배라고 하니 우리나라 최대 병폐 중 하나인 학연으로 치자면 단연 1등이다. 허 후보? 심정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이긴 하지만, 일단 안 나오신다고 하니 더 따질 필요는 없다. 그럼 박 후보? 가만, 후보 중에 박씨도 있었던가?
아무튼 그렇고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니 선거운동 하시려면 과거의 인맥 따위는 염두에 두지 마시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하시라, 그런 얘기다. 그리고 가능하면 정중하게, 주어, 술어 그런 것 중에 하나라도 생략하지 말고 정확한 어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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