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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1 선덕여왕은 실제로 미인이었을까? by 파비 정부권 (7)
  2. 2009.07.11 선덕여왕, 미실의 출신성분은 무엇이었을까? by 파비 정부권 (8)
MBC 드라마에서 선덕여왕 역을 맡고 있는 이요원은 미인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 경주에 선덕여왕을 만나러 가는 길에 김주완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요원은 볼에 살이 붙으니까 예전에 비해 훨씬 낮죠. 전에는 비쩍 말라서 별로더니, 예뻐졌더라고.” 김주완 기자는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선덕여왕도 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역시 세간의 화제인 선덕여왕을 무시할 순 없나봅니다. 선덕여왕(이요원)의 미모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니 말입니다.
 

경주 낭산 정상의 선덕여왕릉. 김주완 기자와 거다란닷컴 커서님이 선덕여왕릉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요원은 일곱살짜리 아이를 둔 애엄마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아이를 낳고 나서 훨씬 미모가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너무 마른 것 보다는 적당하게 살이 붙어주는 게 남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 여자분들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살이 찌면 곤란하겠지요? 적당한 운동과 적절한 식습관으로 몸매를 관리하는 것도 세계평화를 위해 좋은 일이지요. 물론 건강에도 좋습니다. 아무튼, 그렇다면 진짜 선덕여왕은 어땠을까요? 그녀는 미인이었을까요?

선덕여왕의 미모를 추정해볼 수 있는 두 개의 설화

선덕여왕의 미모에 대하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어디에도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김부식은 사기에서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인 승만공주(선덕왕의 뒤를 이어 진덕여왕이 된다)의 신체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자태가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키는 칠 척이고 팔을 늘어뜨리면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이로 보아 선덕여왕의 자태를 가늠해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선덕여왕 역시 진덕여왕처럼 키가 크고 자태가 풍만한 아름다움을 지녔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선덕여왕의 미모를 추정해볼 수 있는 두 개의 설화가 있습니다. 그 하나가 당태종이 보냈다는 향기 없는 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나라에서 꽃씨와 함께 그림을 보냈는데 이를 본 덕만공주는 단박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는 꽃이다.” 과연 꽃씨를 심어 후에 핀 꽃을 보니 향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는 선덕여왕의 뛰어난 지혜를 드러내고자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와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당태종이 향기 없는 꽃그림을 보낸 것은 선덕여왕을 비하하기 위해 그랬다는 겁니다. “그대는 미모는 꽃처럼 빼어날지 몰라도 향기 없는 꽃에 불과하니 어찌 신라의 왕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아마 이런 메시지를 보내 여왕의 권위에 흠집을 내고 분란을 일으켜 모종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책이 숨어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쨌든 이런 설화로 미루어 살펴보면 선덕여왕의 자태나 풍모가 범상치 않았다는 짐작을 능히 할 수 있습니다.

신라밀레니엄파크 선덕여왕세트장에서 찍은 사진

그러나 이보다 더 확실하게 선덕여왕의 미모를 짐작케 해주는 설화가 있습니다. 바로 선덕여왕을 사모하여 연못에 빠져 죽은 지귀의 전설이 그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모르는 분이 아무도 없겠지만, 한 번 더 들어보시기로 하겠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시대에 지귀라는 거지가 살았습니다. 그는 활리역에서 노숙을 하며 살았는데, 하루는 서라벌에 나왔다가 행차를 나온 선덕여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홀딱 빠져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맏딸로서 성품이 인자하고 지혜로울 뿐 아니라 용모가 매우 아름다워 백성들의 칭송과 찬사가 자자했는데 한 번 행차를 나오면 모든 사람들이 여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거리를 가득 메웠다고 합니다.

지귀, 선덕여왕의 미모에 흠뻑 빠지다

지귀도 사람들 틈에서 선덕여왕을 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그는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못하고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여왕이 날 안으면 아이고 죽겠네. 아이고 죽겠네.” 사람들이 그의 이 기괴한 행동에 화를 내며 매질을 하였으나 그의 이런 행동은 멈추지 않고 늘 선덕여왕을 사모하는 노래를 부르며 혼자 울기도 하기 웃기도 하는 등 점점 미쳐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욕하기도 하고 동정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문은 급기야 전국으로 퍼졌고 여왕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하루는 여왕이 영묘사에 기도를 드리기 위해 행차를 가는데 지귀가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여왕이여. 사랑하는 나의 여왕이여.” 지귀가 가까이 다가오자 신하들이 제지하여 그를 내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왕은 “어찌 나를 만나러 온 사람을 내친단 말이냐” 하고 신하들을 꾸짖고 지귀가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도록 했습니다. 지귀는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추며 여왕의 행렬을 따라갔습니다. 

선덕여왕이 불공을 드릴 동안 탑 앞에 앉아 기다리던 지귀는 한참이 지나도 여왕이 나오지 않자 안타깝고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신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지귀는 마침내 지쳐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불공을 마치고 나오던 선덕여왕은 쓰러져 잠이 든 지귀를 보았습니다. 자기를 사모하다 지쳐 잠이 든 지귀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여왕은 자신의 팔목에서 팔찌를 풀어 잠든 지귀의 가슴(성기 위 옷 부분이란 설도 있다)에 올려놓고 떠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무튼 잠에서 깬 지귀는 선덕여왕이 자기의 사랑을 인정해준 것이라고 여기고 팔찌를 가슴에 꼭 껴안은 채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가슴속에서 터져나온 불길에 온 몸이 새빨간 불덩어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지귀가 탑을 잡고 일어서다가 탑도 불기둥에 휩싸였으며 거리도 온통 불길로 뒤덮였습니다. 이후부터 불귀신으로 변한 지귀가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화재를 당하는 백성들이 늘어나자 선덕여왕은 다음과 같은 주문을 지어 집에 붙이게 했습니다.  

지귀는 마음에 불이 일어
몸을 태우고 화신이 되었네.
푸른 바다 밖 멀리 흘러갔으니
보지도 말고 친하지도 말지어다.

볼 만한 것도 많고 공연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식당 음식맛이 없었다. 아무리 좋아도 음식 맛이 없으면 다 안 좋게 된다.


거지의 사랑도 받아들일 줄 아는 선덕여왕이야말로 절세의 미인

그러자 모두 화재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선덕여왕이 지어준 주문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불귀신이 된 지귀가 선덕여왕의 뜻만 쫓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불귀신이 되어서도 선덕여왕을 향한 지귀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귀의 숭고한 사랑도 대단하지만 대체 선덕여왕의 미모가 얼마나 빼어났기에 귀신의 마음마저 움직였던 것일까요? 어쨌든 위 두 개의 설화를 통해 우리는 선덕여왕이 대단한 미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덕여왕의 미모는 무엇보다 노숙을 일삼는 거지와 같은 일반 백성의 사랑도 받아들일 만큼 넓은 도량을 가진 마음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MBC드라마의 선덕여왕도 백성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주의 신분을 회복했음에도 죽방을 일러 여전히 ‘형님’이라고 불러주는 덕만, 선덕여왕의 아름다움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귀의 전설에 나오는 선덕여왕도 마찬가지죠. 누가 감히 선덕여왕처럼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므로 선덕여왕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절세의 미녀였음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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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보덕동 | 신라밀레니엄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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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요사이  MBC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인해 신라의 풍속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다. 특히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화랑들의 이야기로 세상이 뜨거운 것 같다. 화랑세기는 그 위작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라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장치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화랑도에 대한 언급이 있긴 하지만, 이처럼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특히 미실이란 여인은 화랑세기가 아니고서는 만나볼 수가 없다. 화랑세기는 사실상 미실의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저술할 때는, 그가 서문이나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들의 세계(世系)를 밝히고자 함이었다. 그들의 계보를 통해 우리는 화랑의 실체를 접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김대문의 집안은 세습 화랑의 집안이었다. 이 가문은 540년 화랑도가 시작한 이래 681년 폐지될 때까지 1세 풍월주 위화랑부터 시작해서 4세 이화랑, 12세 보리공, 20세 예원공, 28세 오기공 등 모두 5대에 걸쳐 풍월주를 세습했다. 나머지 풍월주들도 대부분 부자가 세습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김대문의 가문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32대에 걸친 풍월주들의 전기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미실이다. 그녀는 5세 풍월주 사다함부터 시작해서 16세 풍월주 보종공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풍월주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었다. 도대체 그녀는 어떤 신분의 인물이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래서 나는 「선덕여왕, 근친혼의 이유는 무엇일까?」
(http://go.idomin.com/268) 라는 글을 통해 미실은 분명 김씨족임이 자명하다고 호언한 바 있다. 신라는 골품제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골품도 없는 여인이 화랑들을 발 아래 두고 국왕까지도 좌지우지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랑세기에서도 미실의 세계에 대하여 자세한 언급은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화랑세기의 목적이 풍월주들의 세계와 세보를 기록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 미실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유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여러 독자가 댓글을 통해 내 글에 반론을 제기했다. 미실은 김씨족이 아니라 박씨라는 것이다.(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또한 모든 네티즌들, 뿐아니라 위키백과에서도 미실을 박미실이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 나의 관심사는 미실이 김씨족인가 박씨족인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라라는 신분제 사회의 특성상 진골귀족 신분이 아니고서 화백회의나 중앙정치를 주무를 수 없다는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을 뿐이다. 그러나 만약 드라마에서처럼 실제 미실의 역할이 그러했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김씨족일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골품제도는 법흥왕 7년(520년) 율령이 반포되면서 정립된 제도라고 말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골품제는 이미 사회적 관습으로 정착되어 있었을 것이다. 법흥왕에 의해 골품을 받은 귀족들은 원래 왕족이었던 박씨족 일부와 김씨족, 그리고 가야의 왕족, 보덕국왕 안승의 후예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 범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박씨족 일부도 진골의 골품을 받았지만, 그들이 신라가 융성했던 중고시대나 중대에 중앙 정계에서 활발하게 활약했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게다가 내물왕 이후 김씨족들이 왕권을 확실히 장악한 이후에 박씨족들은 6부 중 하나인 모량부에 이주해 살면서 가끔 왕비를 배출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고로 화랑세기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미실이나 미생의 역할로 보아 틀림없이 이들의 조상은 김씨족일 거라는 생각은 지금도 확고하다. 그럼에도 여러 독자들이 미실은 박씨라는 주장을 하며 정정을 요구하였고, 심지어는 내물왕의 4대손이며 세종의 아비요 하종의 조부인 이사부조차도 박씨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어 부득이 다시 자료를 확인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사부나 거칠부가 김씨족인 것은 이미 사기에서 밝히고 있는 터라 더 이상 설명은 무의미할 듯하다. 그러므로 당연히 미실의 남편이며 아들인 세종과 하종도 김씨족인 것은 당연하다. 다만 미실에 대해서만 보다 더 확실한 조사가 필요할 것이지만, 아시다시피 그녀에 대한 기록은 화랑세기를 빼고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

그러나 미실의 부모에 대하여 화랑세기에 언급이 있으므로 그녀의 부계와 모계를 확인해 보면 그녀의 출신성분을 알아내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듯싶었다. 미실의 아비는 2세 풍월주 미진부이며 어미는 묘도궁주이다. 미진부의 아비는 아시공이며, 아시공의 아비는  선모이고, 선모의 아비는 장이이고, 장이의 아비는 복호공이다. 복호공은 내물왕의 아들이다. 

미실의 부계를 살펴보건대, 미실은 내물왕의 후손인 것이다. 내물왕은 신라의 김씨 왕조를 확립한 인물이다. 내물왕 이전에 미추가 김씨족으로서 최초로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김씨족의 전제 왕권을 확립한 것은 내물왕이다. 그러므로 김씨 왕조의 사실상 시조는 내물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물왕 이후 왕비들은 대부분 김씨족으로 채워졌는데, 이는 김씨족의 배타적 왕권을 확립하려는 결과였다. 이와 같은 근친혼으로 왕권의 지위는 더욱 초월적인 것으로 공고해졌다. 세기에 의하면, 아시공은 법흥왕이 미실의 조모인 옥진과의 사이에서 난 비대공을 후계자로 세우려 하자 이에 반대해 지소태후와 더불어 진흥왕을 옹립하는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어쩌면 미실의 권력은 이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녀가 비록 세습적으로 색공을 하는 여인이었으며 미색이 출중하고 교태가 남다르다 해도 출신이 미천하고서는 권력에 다가서기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조부인 아시공은 당대의 실력자였으며, 아비는 진흥왕의 총애로 2세 풍월주를 거쳐 최고 관등인 대각간에까지 올랐다.    

그렇다면 미실의 모계는 어떨까? 미실의 어미는 묘도궁주이다. 묘도궁주는 영실공과 옥진궁주의 딸인데, 영실공은 수지공과 법흥의 누이 보현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성골이다. 또 미실의 조모인 옥진궁주는 누구인가. 그녀는 1세 풍월주 위화랑의 딸이다. 위화랑은 진골로서 이찬에 오른 인물이다. 위화랑 역시 옥진의 소생인 비대공을 반대해 진흥왕을 옹립했다.

이렇게 미실의 부계와 모계를 살펴보니 양쪽 모두 진골귀족 출신이다. 진골일 뿐 아니라 왕권에 가장 근접한 권력의 핵심들이었다. 미실의 권력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미실의 힘이 어느날 갑자기, 또는 드라마에서처럼 사다함의 매화로,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닌 것이다.
 
자, 그런데 아직 풀리지 않은 독자들의 궁금증이 하나 더 남아 있을 것이다. 바로 설원랑이다. 나는 앞서「선덕여왕, 근친혼의 이유는 무엇일까?」에서 미실 뿐 아니라 설원까지도 김씨족일 거라고 단정을 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의도한 오류였다. 설원랑은 세기에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진골귀족이 아닌 풍월주다.

화랑의 대부분이 진골귀족으로 채워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진골귀족이라 하더라도 아무나 화랑에 뽑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권문세가의 자제여야 하고 인물이 출중하고 덕이 충만해야 한다. 그래야 선발의 기본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그런데 설원은 어떠한가. 그는 진골귀족도 권문세가의 자제도 아니다.

더구나 그의 아비인 설생은 아비의 이름도 성도 모르는 미천한 출신이다. 다만 설생의 어미가 습비부촌의 설씨 가문의 자손이므로 어미의 성을 따라 설씨가 되었다고 한다. 설생은 용모가 출중했는데,그가 모시던 구리지가 전장으로 나간 틈에 구리지의 여인 금진낭주와 관계를 가져 설원을 낳았다고 한다.

금진낭주는 사다함의 어미이기도 하니 설원은 사다함과는 동모이부의 형제인 셈이다. 사다함은 구리지의 아들이며 내물왕의 7세손으로 진골귀족이다. 금진낭주 또한 위화랑의 딸로서 진골귀족이니 설원은 비록 아비가 출신을 모르는 미천한 사람이었다고는 하나 모계로 보면 역시 귀한 자손이며 미실에겐 외숙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부계계승사회인 신라에서 설원랑은 진골은 고사하고 두품조차 받지 못했다. 그런 그가 화랑이 되고 풍월주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미실의 권력을 웅변해주는 대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드라마상에서처럼 설원이 지배집단의 화백회의에 참여하고 병부령의 지위에 올라 군권을 장악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것이다.

그런 일은 미실의 권력이 아무리 태산처럼 높다 하더라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신라의 골품제를 뒤흔드는 일로서 체제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실이라도 그런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화랑은 골품제의 규정을 비교적 덜 받는 자치조직이었으므로 설원랑이 풍월주에 오르는 이변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관직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랬다면 6두품으로 뛰어난 문재를 자랑했던 설총이나 최치원이 비운의 삶을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골품제가 초기에는 왕권을 강화하고 세력을 확장하는 주요한 도구로 기능했을지는 모르지만, 나라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결국 신라를 패망으로 인도하는 결정적 요인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그래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는 금언이 있는 것이 아닐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