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라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9.27 홍라희가 여사? 이건희도 곧 선생 되겠군 by 파비 정부권 (2)
  2. 2008.04.23 삼성의 '행복한 눈물', 태안 주민의 '비통한 눈물' by 파비 정부권

작년이었던가. 내가 신뢰하는 우리 지역의 모 일간지가 이병철을 일러 선생이라고 호칭하며 기사를 쓰는 바람에 몹시 불쾌했던 적이 있다. 기사 제목이 아마도 '의령군이 이병철 선생 생가복원 사업을 한다' 뭐 이런 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 성격에 가만 있었을 리 없었다. 그 신문사에는 친분이 두터운 기자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것이 내 불쾌감의 표출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즉시 내 블로그에 비판 글을 쓰고 그 신문사에 독자투고도 했다.

"이병철이 선생이라고? 이리 나가다간 개나소나 다 선생 되겠다. 이완용 선생 이래봐라. 어울리냐? 하긴 북한정권은 정주영이 한테도 '정주영 선생' 뭐 이러더라만. 그때 노동자들 기분이 얼마나 더러웠을가. 아니 정주영 식으로 표현으로 하자면 뇌동자지. 북한이야 뭐 얻어먹을 게 있어서 정주영이를 선생 반열에 올려줬다고 치고. 신문사 기자는 대체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이병철이더러 선생이라고 부르는 건지."

왜 이런 케케묵은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가. 오늘 포털 다음 메인에 보니 이건희 씨와 홍라희 씨가 손을 굳게 잡고 어디론가 가는 사진이 실렸다. 이런 거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년의 부부가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은 실로 아름다운 장면이다. 사실은 그렇게 못하는 우리가 문제다. 문제는 다시 기자다. 오죽 기사를 쓸 게 없었으면 이들 부부가 다정히 손잡고 해외로 출국하는 사진을 실었을까. 

하지만 그것도 별 문제는 아니다. 뭐 그럴 수도 있다. 기자의 눈에는 이들 부부가 움직이는 모양새가 하나의 중요한 기사감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관심을 갖는 국민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제일 돈 많은 부자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마치 자기기 그리 된 양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기자가 이건희 씨 아내를 일러 '여사'라고 칭했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을 일러 '선생'이라고 부르던 우리 지역의 한 기자가 생각났던 것이다. 이병철 선생이라니. 참 이놈저놈 다 선생이더니 이젠 이년저년 다 여사다. 그냥 편하게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씨가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시장점검을 위해 출국하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일까? 이 기사를 다룬 기자가 혹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여사'란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취미가 아니라면 이것은 정말 난센스다.  

그러고 보니 신문사 이름이 머니투데이다. 머니투데이. 그랬군. 돈, 즉 자본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재단하는 언론이란 느낌이 이름에서부터 팍 온다. 그러니 당연히 존경하는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를 감히 홍라희 씨라고 부르진 못할 게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건 자기들끼리의 사적인 공간에서 그리 하면 될 일이고 공적인 기사의 영역에서 만인을 향해 '홍라희 여사님'을 읊조리는 건 아무래도 기자로서 상식 이하다. 

글쎄 괜히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고 말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 성경에도 보면 태초에 말이 있었다고 했고 우리 속담에도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같은 말이 있는 것처럼 말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홍라희 씨라고 하는 것과 홍라희 여사라고 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두 말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인간의 뇌를 지배할 정도의 엄청난 차이가. 

기자님들이여. 제발 말을 제대로 쓰자.    
    

▲ 머니투데이


ps; 제가 요즘 블로그에 글을 잘 안 쓰는데 갑자기 열 받아서 한번 썼습니다. 열 받은 참에 앞으로 좀 열심히 써야겠네요. ㅋ~ 그리고 참고로 한말씀 더 드리면 옛날 제가 살던 아파트에 어떤 여자분이(그때 겨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을 걸로 기억됩니다만) 자기 남편을 칭해 우리에게 말할 때 늘 "우리 남편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남편께서는 지금 안 계시고 어디 나가셨고요" "우리 남편께 직접 말씀드려 보세요" 뭐 이런 식으로 말해서 우리를 짜증나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부녀회에 와서도 다른 여자분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 말해 모두를 벙 찌게 했다는...

그런 거죠. 그럼 뭐야. 우리는 모두 당신 남편의 쫄들이란 말이야? 뭐 그런 경우는 그냥 귀엽게 봐주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요. 글로 소개하니까 생동감이 없지만 이웃 아주머니가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고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보세요. 영상으로요. 정말 웃길 거에요. 이렇게요. "우리 남편께서는요. 정말 못하시는 게 없고요. 참 훌륭하신 분이에요." 그때 느낌은 밉다기보다는 그냥 귀엽고 어이없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암튼^^ 그 아주머니, 요즘도 그렇게 사시는지는 모르겠네요. 그 아파트를 떠난지가 벌써 10년이 다 돼 가니까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삼성의 '행복한 눈물', 태안 주민의 '비통한 눈물'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란 그림이 요즘 세간의 화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가 거액을 주고 사들였다는 이 그림은 용인 에버랜드의 창고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리히텐슈타인은 밝은 색채와 단순함, 추상표현주의 등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가한 뉴욕 출신의 작가다. 또 그는 저급한 미국의 대중만화를 소재로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그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중심부로서 자본주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미국의 대중매체를 예술로 승화시킨 미국인의 전형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는 팝아트의 거장이다.


리히텐슈타인은 밝은 색조와 뚜렷한 윤곽선을 통해 슬픔의 상징인 눈물을 거꾸로 행복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만화적 형태가 가지는 단순함은 그림 속의 여인이 흘리는 눈물의 행복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정말 진품이 아니라 사진만 보아도 눈물이 흐르는 여인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런 것이 삶에 지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건 물론 아니다. 

얼마 전, 삼성전략기획실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안주인들이 비자금으로 600억 원대의 해외 미술품을 사들였다고 폭로했다. 그가 제시한 목록 속에는 100억 원을 호가한다는 ‘베들레헴 병원’과 함께 이 그림도 들어있었다.


엊그제 삼성특검팀 수사관들이 용인 에버랜드 창고를 압수수색해서 목록 속의 그림 일부를 발견함으로써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행복한 눈물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아직 특검이 홍 씨가 직접 운영하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을 하지 않아 의혹을 사는 가운데 이 그림이 도대체 어디에서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처럼 행복한 눈물을 놓고 삼성과 특검이 숨바꼭질을 하는 동안 태안에서는 세 사람의 아까운 생명이 세상을 등졌다. 이들에겐 ‘행복한 눈물’은 고사하고 ‘비통한 눈물’을 흘릴 힘도 없었다.


정부와 삼성의 조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태안군민대회에서 심상정 민노당 대표(현 진보신당 상임대표)가 연설하는 동안 바로 심 대표 앞에서 한 군민이 몸에 불을 붙였다. 태안의 한 수산업체 대표였다는 그이도 이제 더 이상 눈물을 흘리며 행복과 슬픔을 따질 기력이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23일 서울역 광장에 모여든 태안 기름유출 피해 어민들은 얼마나 더 죽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며 시커멓게 죽은 수산물과 어구를 내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한 어민의 절규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죽어서 돌아온” 것이다. “우리가 끝이면, 너희도 끝이다”며 오열하는 이들의 눈에는 검은 눈물이 흘렀다.


이런 와중에도 정부에서는 부처 간 업무협조가 원활하지 않다는 등 이유를 대며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삼성에서도 눈치만 보며 묵묵부답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데도 이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쁘다.


홍라희 씨의 거실에 걸려 있었다는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지금 어디에서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태안군민들의 죽음을 불사한 분노의 함성소리에 세상에 나서지도 못하고 어느 으슥한 곳에 숨어 남몰래 행복한 눈물을 감추고 있는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태안에서는 ‘죽음의 눈물’이 바다를 검게 적시고 있다.


/정부권 (마산시 월영동)

2008. 1. 18(금) 경남도민일보 3.15광장란에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